[사설] 보조금 수준 지역별 전기요금제 재설계가 마땅하다
정부안, 사실상 모든 권역 인하 기업만 혜택
발전·소비 불균형 전기료 반영돼야 균형발전
지난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산업용 지역 전기요금제 설계안 진단 및 개선방향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기후시민프로젝트 제공
수도권이 전력을 대량 소비하는 반면 비수도권은 발전소와 송전망 부담을 떠안는 구조가 국토 불균형 발전을 상징한다. 주민 수용성이 떨어지는 원전, 화전, 고압 시설을 지방에 전가한 채 수도권은 인력과 자산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고도 성장했다.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으려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제정되고 지역별 차등요금제의 근거가 마련됐다. 특히 산업용 전력은 기업의 투자와 입지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별 가격 신호의 의미가 크다. 하지만 정부안은 수도권을 비롯해 지방까지 모든 권역의 요금이 골고루 인하되는 구조다. 가격 신호도, 입지 유인도 기대할 수 없는 이상한 요금제가 되는 것이다.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용 지역 전기요금제 설계안 진단 및 개선 방향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선 김대욱 숭실대 교수는 지난 8월 정부가 공개한 설계안은 재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력자급률·지방우대지수·산업위기지역 등을 요금 산식에 반영한 탓에 계통 정책·균형발전·산업 지원이라는 상이한 세 가지 목적이 무리하게 섞였기 때문이다. 송전 거리와 망 이용 비용, 계통 혼잡, 전력 자급률 등 실제 발생한 비용이 반영된 합리적 요금 체계와 거리가 멀어진 바람에 요금 체계라기보다 산업 보조금으로 인식될 우려까지 나온다. 이 때문에 당초 취지였던 기업 유치를 위한 입지 신호가 흐려졌다는 대목은 뼈아프다.
정부안은 전국을 11개 지역으로 나눈다. 수도권 남부는 현행 요금을 유지하되 수도권 북부는 ㎾h당 최대 10원, 강원·충청 등 중부권은 최대 15원, 원전·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은 부산·울산·경남 등 남부권은 최대 18원까지 인하하는 방식이다. 이 설계안의 맹점은 인하만 있고 인상은 없어서 시장 원리에 반한다는 점이다. 2조 8000억 원으로 추산되는 인하 비용은 결국 한전이나 정부 재정, 다른 전력 소비자 가운데 누군가가 부담해야 한다. 새 요금제가 이름만 지역 차등일 뿐 산업계에 2조 원대 혜택을 나눠 주는 보조금으로 변질되고 균형발전의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면 시행을 서두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차등 요금제는 전력 생산과 송전 부담을 감당해 온 지역의 비용과 기여에 대한 보상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새 요금 체계는 이들 지역에 신규 공장과 증설 투자가 이뤄지면 계통 여건을 반영한 가격 신호가 분명히 작동해야 한다. 도소매 권역 합리화 등을 통해 기업이 실제로 얼마를 왜 더 내거나 덜 내는지 알 수 있어야 입지 선택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려면 송전 비용과 계통 혼잡, 발전·소비 불균형이 요금 체계에 녹아들어야 한다. 지금의 정부안처럼 보조금 같은 요금제로는 수도권 집중도, 전력망 비효율도 해결할 수 없다. 정부는 지역별 전기요금제를 원가에 기반한 균형발전의 가격 신호로 재설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