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안고 딸 결혼 기다리던 엄마…마지막 선물은 세 사람의 삶
지난 8월 첫 손주를 품에 안았고, 내년에는 작은딸의 결혼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할 날들을 손꼽던 구진희(55) 씨는 딸과 떠난 여행에서 갑작스레 쓰러졌다. 25년간 투병하면서도 늘 누군가를 돌봤던 그는 생의 끝에서 세 사람에게 새 삶을 건넸다.
구 씨는 지난달 18일 고신대학교복음병원에서 뇌사 장기기증으로 세 명의 환자에게 간과 양쪽 신장을 나누고 세상을 떠났다.
딸과 베트남을 여행하던 구 씨는 9월 12일 뇌출혈로 쓰러졌다. 국내로 옮겨져 치료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2001년 임신 중 특발성 혈소판 감소증을 진단받은 구 씨는 오랫동안 입원을 반복했다. 몸 상태가 안정되면 가족과 여행을 떠났다. 항공사 기장인 남편 김기선 씨는 아픔을 잊고 즐거워하는 아내를 위해 함께 떠날 기회를 자주 마련했다.
구 씨는 자신이 아픈 가운데서도 이웃을 챙겼다. 2015년 부산으로 이주한 뒤 남편 회사의 신앙 모임에서 직원과 가족들을 도왔고, 환자 문병과 해외 봉사에도 나섰다. 남편과 두 딸은 평소 그가 가족에게 밝혀온 뜻에 따라 기증을 결정했다.
큰딸 지수 씨는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며 엄마의 가치관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작은딸 지원 씨는 “엄마가 내 엄마라서 너무 행복했다”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남편도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여보, 당신을 만난 지 33년,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들 잘 간직할게. 이제 아픔 없는 곳에서 걱정 말고 편히 쉬어. 사랑하고 너무 고마웠어. 안녕.”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