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 칼럼] 사이버 보안 역량이 도시 경쟁력
수석논설위원
코딩 몰라도 범용 AI로 해킹 가능해져
데이터센터·AI 산업 유치 중요하지만
공격 차단 능력 없으면 모래성 우려
해양수도·금융중심지도 안전 최우선
동아대 실전형 공방훈련장 인력 양성
지역 특화 보안 생태계 구축 계기 돼야
모든 길이 인터넷으로 통하게 만든 기반에는 TCP/IP라는 통신 규약이 있다. 도로의 교통 법규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 운영체제에도 당연히 TCP/IP 기능 코드가 있다. 회사 서버·금융망·VPN에 접속할 때 작동하는 요소다.
최근 윈도의 네트워크 코드에서 버그(소프트웨어 오류)가 발견돼 적잖은 충격을 줬다. 개발사인 MS가 문제를 확인하고 수정했으니 다행이라고 안심만 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이 허점을 개발자가 아닌 AI(인공지능) 에이전트가 찾아냈기 때문이다. 악의적인 해커나 통제 불능의 AI가 이 취약점을 악용하는 상황을 가정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윈도 기반 PC와 서버가 뚫리면 금융망과 업무망, 공공망 곳곳에서 연쇄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
AI가 사이버 보안의 판도를 바꾼 최근 사례는 앤트로픽의 미토스다. 보안 연구와 취약점 탐색을 돕는 모델로 개발됐는데, 워낙 성능이 뛰어나 되레 우려를 낳았다. 전문가가 오랜 시간 들여다봐야 할 약점을 AI가 대규모로 탐색하고 식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축복이면서 동시에 재앙의 예고일 수 있다. 악용 가능성 때문이다. AI 에이전트가 허가 없이 외부 시스템에 접근한 사례까지 고려하면, 영화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처럼 인간 통제를 벗어난 AI의 독단이 불가능하다고만 볼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최근 국내 금융권 해킹 사태도 우려를 키운다. 중국에서 개발된 오픈소스 침투 테스트 도구 아르텍스와, 클로드 코드 같은 에이전트형 코딩 도구가 함께 활용된 정황이 드러났다. 과거 악성 코드를 짜고 침투 경로를 분석하려면 상당한 컴퓨터공학 지식과 코딩 능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AI 에이전트의 시대에 해킹의 문턱은 크게 낮아졌다. 고급형 미토스가 없어도 범용 AI 모델과 자동화 도구를 조합하면 비전문가도 과거보다 훨씬 쉽게 공격을 흉내 낼 수 있다는 데 상황의 심각성이 있다.
AI가 해킹과 정보전, 사회 기반 시설 교란용 무기로 전용될 가능성이 커지자 세계 각국이 AI를 안보 차원에서 보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부산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부산은 금융중심지이자 해양수도, 항만물류도시, 조선해양 산업의 거점이다.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이기도 하고, 스마트시티와 디지털 행정의 확장도 추진하고 있다. 이는 부산이 보호해야 할 데이터와 네트워크가 그만큼 광범위하다는 뜻이다. 금융망, 항만 운영망, 물류 정보망, 선박·조선 협력망, 블록체인 서비스, 공공 행정망이 모두 공격 목표가 될 수 있다.
부산이 AI·디지털 산업의 중심 도시를 꿈꾼다면 사이버 보안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데이터센터를 짓고 AI 산업을 유치하는 일이 중요하지만 그 전에 데이터를 지킬 능력부터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금융중심지와 해양수도를 향한 구상도 마찬가지다. 기관을 유치하고 인프라를 짓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항만이 멈추면 물류가 마비되고, 금융망이 흔들리면 도시의 신뢰가 추락한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7월 동아대 사이버보안교육센터 개소와 대학원 과정 개설은 의미 있는 첫걸음이다. 이 센터는 동남권 실전형 사이버 공방훈련의 거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이버 레인지(Cyber Range)는 공격자와 방어자가 실시간 대결하는 가상 훈련장으로 사이버 보안 인력을 양성하는 핵심 시설이다. 센터 측은 정부 과제로 추진되는 ‘K미토스’가 완성되면 이를 연계해 ‘AI 공격을 AI로 방어’하는 훈련을 실시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동아대의 공방훈련장과 석박사 과정은 지역 특화형 사이버 보안 생태계 구축을 위한 출발점이 된다. 훈련장을 거점으로 삼고, 한국해양대·동서대 관련 학과와 기업의 현장 수요를 연결한 산학관 협력 체제를 모색해야 한다. 부산시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나 앵커 사업, 디지털 산업 육성 정책을 사이버 보안 훈련과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부산시는 대학과 BNK 등 금융기관, 부산항만공사, 공공기관, 경찰·국정원, 보안기업이 참여하는 협력 네트워크 형성을 유도하고 지원해야 한다.
금융중심지와 해양수도는 구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외부 공격자가 쉽게 넘볼 수 없는 도시, 사고가 나도 신속히 탐지하고 복구하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지역 인재가 사이버 보안 전문가로 성장해 도시의 안전을 책임지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부산이 미래 산업의 거점이 되려면 먼저 안전한 디지털 도시가 되어야 한다. 보안은 비용이 아니라 도시 경쟁력을 지키는 투자다.
데이터센터의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의 데이터를 지킬 능력이고, AI 산업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공격을 견디고 회복하는 힘이다. 사이버 보안 능력이 부산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한다.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