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더 조그만 사랑 노래 / 황동규(19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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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멎지 않은

몇 편(篇)의 바람

저녁 한 끼에 내리는

젖은 눈, 혹은 채 내리지 않고

공중에서 녹아 한없이 달려오는

물방울, 그대 문득 손을 펼칠 때

한 바람에서 다른 바람으로 끌려가며

그대를 스치는 물방울

-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1978) 중에서


응결되는 것은 단단하면서 아름답다. 금강석이 그러하고 수정이 그러하다. ‘조그맣게, 더 조그맣게’ 응축되는 것은 안에 강력한 힘을 끌어안고 있어 아슬아슬하고 위태롭지만 그 힘의 내뿜는 빛살로 인해 영롱하다.

인연이라는 ‘바람’에 정처 없이 떠돌다 내리는 ‘젖은 눈’은 ‘그대 문득 손을 펼치’는 것을 보고 가닿고 싶음에 ‘물방울’이 된다. 운명이 부르는 모습에 ‘젖은 눈’은 제 자신을 좀 더 단단히 하고자 몸을 말고, 공중에 더 머무르고자 방울이 된다. 젖은 채로 땅에 떨어져 그냥 흘러가버린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엇갈림일 것인가. 그대에게 닿기 위해, 좀 더 공중에 떠 있기 위해 물방울이 되고자 하는 젖은 눈의 안간힘! 그러므로 ‘그대를 스치는 물방울’은 삼생을 넘어 달려오는 운명의 얼굴이다. 덧없이 아름답게 피었다 지는 인연의 꽃망울이다.

김경복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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