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와 눈으로 엿보는 500년 대가야의 흥망성쇠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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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고령군 대가야 역사 탐방

가야금 형상 본떠 만든 우륵박물관
우륵 12곡 의미와 변천사 일괄 전시
전통 가야금줄 등 제작 시연회 인기
고대 생활사 전하는 대가야역사관
금 귀걸이 등 장신구 화려함 놀라워
‘대가야 열두 개의 별’ 특별전 주목

가야의 소리를 담은 가야금이 전시된 고령군의 우륵박물관. 김진성 기자 paperk@ 가야의 소리를 담은 가야금이 전시된 고령군의 우륵박물관. 김진성 기자 paperk@

2026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이 열린 미국 뉴저지주 이스트러더퍼드의 뉴욕뉴저지스타디움. 지난 20일(한국 시간) 스페인과 아르헨티나가 월드컵 우승컵을 놓고 격돌한 현장에서 BTS의 ‘다이나마이트’ 음악이 울려 퍼졌다. 월드컵 첫 하프타임쇼에 BTS가 등장하며 K팝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이뿐 아니다. 지난달 11일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월드컵 개막 공연에서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주인공 루미 역을 맡은 이재(EJAE)가 월드컵 주제가를 노래했고, 걸그룹 블랙핑크의 리사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다른 개막 경기에서 공연을 했다.

이번 월드컵 대회 시작과 끝을 한국의 음악인들이 장식한 셈이다. 도대체 한국 음악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시대를 거슬러가다 문득 ‘악성’ 우륵이 생각나 고령으로 달려갔다.

우륵박물관 전경. 김진성 기자 paperk@ 우륵박물관 전경. 김진성 기자 paperk@

■가야의 소리 가야금을 담은 우륵박물관

휘영청 달 밝은 제 창 열고 홀로 앉다/ 품에 가득 국화 향기 외로움이 병이어라/ 푸른 담배 연기 하늘에 바람 차고/ 붉은 술그림자 두 뺨이 더워온다(중략) … 풍류 가얏고에 이르는 꿈이 가이 없다/ 열두줄 다 끊어도 울리고 말 이 심사라. 조지훈의 ‘가야금’이란 시다.

경북 고령군에 있는 우륵박물관으로 향하면서 이 시가 드문드문 떠올랐다. 학교 다닐 때 배운 것인지 정확히는 기억에 없지만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게 신기했다.

우륵박물관에 도착하니 은은한 소리가 먼저 반겼다. 경쾌한 가야금 소리였다. 정겨웠다. 우륵박물관 마당에 설치된 조형물 우륵연주상이 마치 연주를 하는 듯 했다. 상쾌한 마음으로 우륵박물관으로 들어가려니 외형이 독특했다. 마치 가야금 모양이다. 알고보니 우륵박물관은 가야금의 형상을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우륵박물관은 가야금을 만든 우륵과 관련된 자료를 발굴, 수집, 보존하고 가야금과 전통 음악 등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이다. 2006년 개관한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우륵과 가야금’ 전문 박물관이다. 현재의 박물관 자리는 우륵이 예술 활동을 펼쳤던 곳으로 전해진다.

가야금의 역사를 보면 애잔하다. 나라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남고 있어서다. 당시 고령에 위치한 대가야의 왕인 ‘가실왕’은 분열된 가야를 음악으로 통합하기 위해 우륵으로 하여금 각 지역의 특성을 담은 12곡을 만들게 한다. 우륵은 변한과 진한 등 여러 지역의 현악기를 개량해 가야금을 만들고, 가실왕의 명에 따라 12곡을 만든다.

하지만 가실왕의 염원인 대통합은 이뤄지지 않았고, 대가야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망해가는 조국을 바라보며 우륵은 큰 결단을 내린다. 우륵은 가야금을 안고 적국인 신라로 망명한다. 조국보다 음악을 선택한 것이다.

우륵의 가야금 소리를 들은 진흥왕은 “하늘이 내린 소리”라며 감탄하고, 가야의 음악은 신라의 궁중 음악으로 거듭난다. 우륵은 조국을 버렸지만, 대가야의 혼이 담긴 우리 음악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무엇보다 가야금은 단순한 음악이 아니다. 음양오행적 의미가 담겼다. 가야금의 윗판이 둥근 것은 하늘을 상징하고, 밑판이 평편한 것은 땅을 의미한다. 가운데가 빈 것은 천지와 사방을 나타내고, 12줄을 얹은 것은 1년 12달을 의미한다.

대가야역사관 외부에 마련된 분청자탑. 김진성 기자 paperk@ 대가야역사관 외부에 마련된 분청자탑. 김진성 기자 paperk@

우륵박물관에는 가야금의 역사적 제작과정과 우륵 12곡의 의미는 물론 가야금의 재료, 변천사 등 가야금의 다양한 세계를 알 수 있다. 궁중 음악에 쓰이는 정악 가야금과 민속악 연주에 쓰이는 산조 가야금, 18현, 25현 가야금까지 다양한 가야금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가야금 제작 과정도 체험할 수 있다. 가야금은 오동나무로 만들어지는데, 우륵박물관 야외 한켠에 가야의 혼을 알리려는 수백 개의 오동나무 울림통이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히 우륵박물관에서는 해마다 이맘때면 전통 가야금줄 제작 시연회가 열린다. 가야금의 줄은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생사가 여러 가닥으로 모여 완성된다. 가야금 줄 한 가닥에는 적게는 30가닥, 많게는 80가닥의 명주실이 사용된다. 이를 소나무 방망이에 감아 삶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해야 비로소 악기에 필요한 탄력과 강도를 갖추게 된다.

가야금 한 대가 완성되기까지의 여정은 인내의 시간이다. 울림통으로 사용되는 오동나무를 수년간 자연 건조시키고, 줄 제작과 조립, 음향 조정까지 200여 개의 세밀한 공정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탄생한 악기에는 최소 5년의 시간이 담긴다. 제작 시연회는 2007년부터 시작해 매년 거르지 않고 열리고 있는 우륵박물관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프로그램이다.

우륵박물관을 나와 왼쪽편에 있는 ‘소리체험관’도 방문을 추천한다. 1층에 각 나라의 현악기를 볼 수 있고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인도 전통 현악기인 시타르를 비롯해 미얀마의 사웅가욱, 베트남의 단보우, 미국 애팔래치아 산맥 지역의 애팔래치안 덜시머, 아프리카와 유럽의 악기가 결합한 밴조, 중국의 구친, 일본의 고토 등 이름도 생소한 독특한 모양새의 현악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곳 지하 1층에는 소리를 체험할 수 있는 소리마당과 악기 놀이터인 놀이마당. 빛마당 등 각종 체험시설이 마련돼 있어 아이들에게 인기다.

소리체험관에서는 오는 9월 27일까지 K뮤지엄 지역 순회전시인 ‘음률의 질서, 선율이 되다’를 운영한다. K팝이 전 세계를 감동시키는 단초를 여기서 찾을 수도 있다.

500년 이상 이어온 ‘철의 왕국’ 대가야의 역사와 혼이 담긴 대가야역사관. 김진성 기자 paperk@ 500년 이상 이어온 ‘철의 왕국’ 대가야의 역사와 혼이 담긴 대가야역사관. 김진성 기자 paperk@

■대가야의 역사와 혼을 담은 대가야역사관

우륵이 태어난 대가야를 알고 싶어 차량으로 10분 거리의 대가야역사관으로 향했다. 이곳은 대가야와 고령 지역의 역사를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구석기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역사·문화 유물을 전시해 놓았다. 대가야는 서기 42년부터 562년까지 약 520년 동안 이어진 고대 국가다. 서기 592년 9월 신라에 의해 멸망했다. 500년이 넘는 긴 역사를 가졌다는 게 놀랍다.

대가야 역사관엔 유독 대가야 토기가 많다. 주로 회청색으로 항아리와 뚜껑 접시 등 다양한 형태가 발견됐다. 특히 음식물이 담긴 항아리가 발견되었는데 그 속에는 닭, 꿩 등의 조류와 대구, 참돔, 고둥 등의 생선과 해산물의 흔적이 확인됐다.

특히 대가야는 ‘철의 왕국’으로 불릴 만큼 철기 문화가 발전됐다. 역사관에서는 투구와 갑옷 등과 이를 만들기 위한 덩이쇠들이 전시됐다. 덩이쇠는 최고 교역물이자 화폐로 사용됐다. 대가야의 철은 삼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 등에 수출하는 교역 물품이었다.

말에게도 철로 된 갑옷을 입힐 정도면 당시 대가야의 세력이 어느 정도 인지 짐작이 갔다. 500년 이어온 역사가 그냥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이나 금동으로 만들어진 귀걸이 등 장신구의 화려함이 놀랍다.

이곳에서는 다음 달 17일까지 ‘대가야 열두 개의 별’을 주제로 대가야박물관 기획 특별전이 열린다. 대가야시대 유물 중 토기, 무기, 말갖춤, 장신구 등 12개의 명품을 선정해 전시하는데, 대가야만의 독자성과 자율성, 우수성이 돋보인다.

인근의 대가야왕릉전시관은 국내 최초로 확인된 대규모 순장 무덤인 지산동 44호분의 내부를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무덤의 구조와 축조 방식, 주인공과 순장자들의 매장 모습, 부장품 종류와 성격 등을 직접 볼 수 있다.

대가야역사관을 나와 왼쪽편에 보면 2023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지산동 고분군도 만나볼 수 있다. 봉분의 푸른 잔디 때문일까. 고분군의 1500년의 세월에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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