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일필일침] 보완수사권 폐지, 그 한가운데 국민은 있는가?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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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세종, 억울한 사람 생기는 것 매우 경계
오늘날의 사법 절차도 이 정신에 부합

최근 여당 중심 보완수사권 폐지 논의
이러한 원칙 다시 묻게 하는 계기 돼

‘힘 빼기’ 등 권한 조정 집중 안타까워
국민 기본권·인권 보호 중심에 놓아야

조선 제4대 국왕 세종은 형벌을 다룰 때 무엇보다 억울한 사람이 생기는 일을 경계했다. 지방관의 조사 결과를 그대로 믿지 않고 “다시 조사하라” “다시 국문하라”는 명을 자주 내렸다. 저주로 사람을 죽였다는 여자 양민의 진실을 밝혀준 ‘약노 사건’은 대표적이다. 세종은 사형수의 경우 별도로 두 고을의 수령이 합동 신문한 뒤, 인근 고을로 옮겨 다른 수령이 다시 심문하도록 했다. 또 만에 하나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신료들에게 당부하고, 그들이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지 엄정히 살폈다. 〈조선왕조실록〉에 반복해 등장하는 이러한 왕의 명령은 한 번의 판단이 언제나 옳을 수는 없으며 국가는 끝까지 진실을 확인해야 한다는 통치 철학을 보여준다.

오늘날의 사법 절차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한 번의 수사를 절대적인 것으로 전제하지 않는다.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다시 확인하고, 미흡한 부분은 보완한다. 잘못된 판단은 바로잡을 수 있도록 여러 절차를 마련해 두었다. 이는 특정 기관의 권한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장치다.

최근 여당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 논의는 이러한 원칙을 다시 묻게 한다. 민주당은 검찰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돼 왔다는 문제의식에서 이를 추진하고 있다. 실제로 검찰이든 경찰이든 권력이 한곳에 집중될 때 수사의 왜곡과 남용이 반복돼 왔다. 그래서 권력기관은 반드시 견제받아야 한다. 이는 민주사회의 기본 원칙이다.

하지만 보완수사권 폐지는 권력 견제를 넘어 수사의 오류를 바로잡고 진실을 다시 확인할 기회마저 줄이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보완수사권은 검찰 조직을 위한 특권이 아니라 수사의 오류를 시정하기 위한 절차다. 억울한 피해를 막고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며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는 검찰의 권한이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 곧 인권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기존 판단을 쉽게 뒤집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정당화’와 ‘확증 편향’으로 설명한다. 한번 내린 결론을 무의식적으로 옳다고 믿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려는 심리다. 경찰도 예외일 수 없다. 어떤 조직이든 스스로 내린 결정을 뒤집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민주적 사법제도는 어느 한 기관의 판단을 절대시하기보다 서로의 판단을 점검하고 견제하는 장치를 둔다. 이런 점에서 경찰이 자신의 수사를 스스로 보완하는 구조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검찰이 보완수사권을 그대로 갖는다면 경찰 수사를 독립적으로 다시 살펴볼 수 있다. 광주 여고생 살인 사건과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에서는 초기 수사와 재판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던 성범죄 정황이 검찰의 추가 증거 확인으로 밝혀졌고, 공소 내용도 변경됐다. 물론 모든 사건이 보완수사권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찰의 초동 수사 한계를 검찰이 보완해 진실 규명에 한 걸음 더 다가간 사례인 것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수사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일이다.

보완수사권을 유지하자는 것은 검찰 권한을 지키자는 말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권한의 존치가 아니라 권한에 대한 엄격한 통제다. 보완수사권 행사 기준을 더욱 엄격히 하고 책임도 강화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기존 권력을 허무는 과정에서 또 다른 권력이 탄생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일이다. 광주 여고생 살인사건 등 최근 잇따른 사건이 보여주듯 경찰의 수사 역량과 시스템이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특히 검찰의 보완수사요구권까지 일괄적으로 없애는 것은 정말 신중해야 한다. 소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권력은 바뀔 수 있고, 제도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법제도든 그 중심에는 언제나 국민이 있어야 한다. 이 원칙을 잃는 순간 제도는 정의와 개혁을 실현하는 장치가 아니라 권력을 유지하고 행사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이유도, 우리가 어떤 제도를 선택하든 끝까지 놓쳐서는 안 될 기준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세종이 꿈꾸었던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은 억울한 백성이 없는 나라였다. 600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 원칙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논의는 수사의 주체가 검찰이냐 경찰이냐에 머물러 있다. 헌법상 보장된 수사기관의 수장들마저 수개월째 공석인 현실을 외면한 채 이런 논쟁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보완수사권 폐지 논의의 중심에 있어야 할 국민은 정작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답답하고 안타깝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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