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의 끝은 요양소였다” 日 전역에 갇힌 조선인 한센인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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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공창서 강제노동하다 발병
가혹한 노동·열악한 생활조건에
재일 조선인 발병률 일본인 10배

지난 2일 일본 군마현 중감방자료관에 전시된 특별병실(중감방) 수용자 명단 중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수용자들의 정보. 입퇴실일자와 거류기간, 입실이유, 사인, 사망연월일 등이 작성돼있다. 자료관 측은 이들의 수용 경위가 다른 기록에서 확인되면 옆 칸에 기재하고 있으나, 조선인에 대한 정보는 아직 발견되지 않아 빈 칸으로 남아있다. 군마(일본)/사진=손혜림 기자 hyerimsn@ 지난 2일 일본 군마현 중감방자료관에 전시된 특별병실(중감방) 수용자 명단 중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수용자들의 정보. 입퇴실일자와 거류기간, 입실이유, 사인, 사망연월일 등이 작성돼있다. 자료관 측은 이들의 수용 경위가 다른 기록에서 확인되면 옆 칸에 기재하고 있으나, 조선인에 대한 정보는 아직 발견되지 않아 빈 칸으로 남아있다. 군마(일본)/사진=손혜림 기자 hyerimsn@

일제의 강제징용과 한센병요양소 강제격리라는 이중의 피해에 처했던 조선인은 구마모토 국립한센병요양소 기쿠치케이후엔(부산일보 8월 14일 자 1면 등 보도) 외에도 더 존재했다. 명부를 남긴 건 기쿠치케이후엔의 조선인 단체 ‘우애회’가 유일했지만, 도쿄, 오카야마 등 다른 지역의 요양소 속 강제징용자이자 한센인이었던 이들의 목소리는 구술 기록 등을 통해 조각조각 확인된다.

일본의 식민지 책임을 연구해온 릿쿄대 명예교수 고(故) 야마다 쇼지의 연구반이 1989년 펴낸 책 〈살아남았다는 증거로〉에서는 도쿄 국립한센병요양소 다마젠쇼엔에 입소했던 재일 한센인들의 구술 기록이 담겨있다. 강제징용으로 일본에 온 입소자들의 입국 경위, 발병·입소 당시 경험, 광복 당시 감정을 전한다.

책에 따르면 대전 출신 오성육 씨는 1944년 가을 징용됐다. 산에 숨었지만 사복 경찰관 5명에게 붙잡혀, 부산을 거쳐 일본 가나가와현 해군공창으로 끌려가 터널을 파고 군함을 만들었다. 1945년 초 검진에서 팔에 반점이 발견됐고 곧이어 해군병원에서 한센병을 진단 받았다. 경찰에 의해 다마젠쇼엔에 강제 수용된 이후 구술기록을 남기기까지 43년간 요양소에서 살았다. 한국에는 징용 당시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부인과 아이들이 있었다.

광복에 대해 오 씨는 “8월 15일에 뭘 했냐고? 아무것도 안 했지. 나는 병실에 있었으니까”라고 구술했다. 요양소에서 조선인, 일본인이 한데 모여 천황의 패전 방송을 라디오로 들으며 “다행이다고 생각했다”며 “입으로 말하지는 못해도, 다른 조선인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오카야마 국립한센병요양소 오쿠코묘엔의 조선인 단체 ‘호조회’가 1959년 펴낸 기록집 〈외로운섬〉에도 강제징용으로 탄광에서 일했던 입소자 박학신 씨의 이야기가 수록됐다. 그는 1943년 11월 징용을 가라는 순경 부장의 겁박에,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 오사카 인근 광산으로 끌려갔다. 징용자가 맞는 모습은 일상이었고, 폭발사고로 친구를 잃기도 했다. 친구를 잃은 탄광에서 도망친 그는 포병공창에서 일하며 귀국할 자금을 모으려 했다. 그러나 공습은 점점 격렬해졌고 그 사이 광복이 왔다. “공습에 쫓겨 도망다니는 사이 8월 15일이 오고 말았습니다. 들고 있던 돈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1947년 여름, 박 씨는 목욕 중 몸에 붉은 반점을 발견했다. 처음엔 의사를 찾아가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지만 돈이 없어 치료를 지속할 수 없었다. 반년 뒤 얼굴에 종기가 돋았다. 점점 외적 변화를 겪던 그는 현청 직원의 제안에 1949년 6월 3일 요양소에 들어갔다.

오 씨와 박 씨처럼 징용과 격리를 함께 겪은 재일 한센인들은 일본 요양소 곳곳에 있었다. 광복 직전인 1944년 기준 최소 517명의 조선인 한센병 환자가 일본 내 요양소에 있었으며, 해방 이후로도 증가해 1962년 716명에 달했다. 일본 내 조선인의 한센병 발병률은 일본인의 10배에 달했는데, 열악한 노동·생활 환경 속에서 한센균에 그만큼 더 많이 노출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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