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옥의 시네마 패션 스토리] 42. 델마와 루이스

  • 가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청바지·카우보이 부츠, 가부장제 맞서는 당당한 여성상 강조

비극적인 결말을 예고하는 듯한 두 주인공의 비장한 표정. 델마의 해골 무늬 티셔츠에서도 그런 비장감이 얼핏 느껴진다. 진경옥 씨 제공

청바지는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옷이다. 이 청바지가 시작부터 끝까지 나오는 영화가 1991년 '델마와 루이스'(리들리 스콧 감독)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초 남녀 구분이 없는 청바지는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상징이자, 전통적인 성 역할을 거부하며 수동적 여성상에 맞선 페미니스트들의 무기였다. 이 영화를 계기로 청바지는 남성의 섹시함을 부각하는 아이템에서 여성의 시크한 매력을 발산하는 도구로 그 상징성이 확장됐다.

영화는 주인공인 델마(지나 데이비스 분)와 루이스(수잔 서랜든 분)가 당시 미국 사회의 가부장적 제도와 여성의 한계에 당당히 맞서는 과정을 그린 페미니즘 시네마의 진수로 평가된다. 두 여배우의 연기도 탁월했다. 이들은 영화 상영 후 그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 모델이 되기도 했다. 시나리오를 쓴 여류 작가, 켈리 쿠리는 이듬해 아카데미상과 골든글로브 각본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 못지않게 페미니즘적 상징성을 영화에서 잘 묘사한 의상 디자이너도 주목 받을 자격이 있다. 의상 담당은 엘리자베스 맥브라이드(1955∼1997)로, 그는 두 주연을 위해 미국 서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웨스턴 스타일의 데님과 티셔츠, 카우보이 모자를 만들었다. 이때 면과 데님, 하양과 파랑이라는 소재와 색상은 둘의 동질감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질감과 선은 약간의 차이를 두어 서로의 이질적인 측면도 함께 드러나도록 했다.

질감의 경우, 델마는 라인스톤 포켓 청바지와 진주 장식의 데님 재킷으로 텍스처 질감을 강하게 살렸고, 루이스는 장식 없이 밋밋한 청바지로 차별화했다. 일반적으로 곡선은 자유 의지, 일탈, 해방감을 나타내고, 직선은 빠른 속도감, 독립심, 용기를 표현한다. 색이 배제되면 선의 양식이 중요하다.

초반부에 델마는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넘치는 퍼프 슬리브가 달린 흰 블라우스와 데님 소재의 요크가 강조된 프릴 스커트를 입었다. 퍼프와 프릴은 곡선을 대표하는 스타일이다. 반면에 루이스는 청바지에 셔츠, 그 위에 평평한 청 재킷을 걸쳐 직선 실루엣을 강조했다. 이후 영화가 전개되면서 이들의 패션도 조금씩 달라진다. 특히 델마는 직선 스타일의 의상을 선호한다. 극한 상황에 처하면서 의존적 성격이 강인한 성격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파국으로 치닫는 마지막 장면에서 루이스가 갈취한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목에 데님 소재의 끈을 두르고 카우보이 부츠를 신거나, 델마가 청바지 위에 검은 해골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은 것은 삶의 목적이 바뀌었음을 나타내는 신호가 됐다.

영화에 등장한 청바지는 의상팀이 직접 제작했다. 하지만 일부는 협찬이었다. 진주 장식이 달린 델마의 데님 재킷은 '제트 페리스', 루이스의 카우보이 부츠는 '토니 람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청바지의 대명사로 불린 '리바이스'는 이 영화에 등장하지 않았다. 유일한 협찬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스스로 의상 협찬의 기회를 걷어찼다는 후문이다.

이들이 미국 남부를 여행하면서 보여 준 페미니스트 의상은 20년이 지난 지금에 봐도 근사하다. 밑위가 길게 재단돼 허리까지 올라오는 청바지 스타일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kojin1231@naver.com


진경옥

동명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