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치혐오 부추기는 현수막, 엑스포도 망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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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간 자극적 비방·공격 표현 많아
BIE 실사단 평가에 악영향 없게 해야

상대당을 비난하는 정치 현수막이 설치돼 있는 부산역 앞 중앙대로변. 이재찬 기자 chan@ 상대당을 비난하는 정치 현수막이 설치돼 있는 부산역 앞 중앙대로변. 이재찬 기자 chan@

전국 거리가 정치 현수막으로 뒤덮이고 있다. 여야 정당과 정치인들이 상대방을 헐뜯거나 비난하는 현수막을 경쟁적으로 내걸면서 대로변 횡단보도와 교차로 같은 요지는 현수막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문제는 정치 현수막이 전에 없이 부쩍 늘어난 데다 대부분 무차별적인 비방과 인신공격성 문구로 가득해 국민의 정치 혐오감을 키우는 데 있다. 특히 부산의 길거리 곳곳에 내걸린 정치 현수막은 자칫 2030부산월드엑스포(국제박람회) 유치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정치 발전에 역행하는 현수막 게시를 근절하려는 정치권의 자정 노력과 함께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전국적인 정치 현수막 난립은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해 발효된 옥외광고물관리법 개정안 때문이다. 정당 현수막의 수량·규격·장소부터 신고·허가 절차까지 모든 제한을 없애 버려 사실상 아무 문구나 마음대로 써서 내걸 수 있게 된 것이다. 통상적인 정당 활동을 보장한다는 게 법 개정의 취지였지만, 여야가 마구잡이로 내놓고 있는 현수막은 서로 원색적으로 비방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상대편을 깎아내리기 위한 자극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는 실정이다. 정당 활동 홍보는커녕 정치 혐오를 부추기고 분열까지 조장하는 한심한 정치 수준을 보여 준다. 개정법 시행 3개월 만에 국민의 짜증을 유발하는 정치공해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비등한 이유다.

이 때문에 울산시가 최근 정치 현수막 난립을 막기 위해 현수막 개수와 위치 등 세부 기준의 구체화를 행정안전부에 건의한 것은 시의적절한 조치로 보인다. 전북 전주시의회가 시의원들에게 현수막을 부착하지 않도록 권고한 것도 바람직하다. 반면 부산에서는 부산시가 이달 2일 구·군의회에 정당 현수막 설치 자제를 요청했을 뿐 후속 움직임이나 긍정적인 반응이 없어 문제가 심각하다. 내달 2~7일 국제박람회기구(BIE)의 부산엑스포 현지 실사에서 정치 현수막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부산일보〉 취재진이 BIE 실사단의 이동 예정 경로를 점검한 결과 비방 현수막이 자주 목격됐다. 실사단에 단합된 엑스포 유치 열기를 보여 줘야 할 마당에 살벌한 분열상이 담긴 현수막이 부산의 이미지를 크게 흐릴 수 있으므로 한시적인 철거 등 대책이 시급하다.

지난 16일 한·일 정상회담의 결과를 둘러싸고 시각차를 보이는 여야의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여야 간에 현수막을 통한 비방전도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국민의 불쾌지수와 고통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같이 염려되는 상황을 만든 정치권에 결자해지의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국회가 정부와 함께 현수막 공해를 해소할 제도 개선에 조속히 나서기를 촉구한다. 여야는 마구 나붙은 정치 현수막이 미관을 해칠 뿐 아니라 보행자와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 국민 안전마저 위협하고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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