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사망한 탓?…빈소도 없이 바로 화장 [연결: 다시 쓰는 무연고자의 결말]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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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지킬 수 없는 당신의 끝

지난 10일 무연고 사망자 고 박동현(가명) 씨의 활동지원사 정영이 씨가 동현의 생일파티 사진을 보고 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 지난 10일 무연고 사망자 고 박동현(가명) 씨의 활동지원사 정영이 씨가 동현의 생일파티 사진을 보고 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

2023년 12월 1일 오전 8시. 활동지원사 영이가 찾은 동현(가명)의 집은 고요했다. 살짝 열린 화장실 문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왔다.

단말기에 활동지원 출근 기록을 입력하던 영이는 오늘따라 인사도 없이 유독 조용한 동현이 이상했다. 뭘 하는 건지 살피기 위해 고개를 살짝 돌려 화장실로 시선을 보냈다. 별다른 의심 없이 “뭐해?”라고 말하며 쳐다본 그곳엔 동현이 쓰러져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동현은 아무리 흔들어도 반응이 없었다. 코 밑에 갖다 댄 손가락에선 숨이 느껴지지 않았다.

119에 신고하자 구급대원은 금방 출동할 테니 그동안만이라도 심폐소생술을 해보라고 했다. 영이는 온 힘을 실어 어떻게든 동현을 똑바로 눕히려고 했지만 딱딱하게 굳은 그의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동현의 피부엔 싸늘함이 감돌았다.

구급대원이, 경찰이, 국과수 관계자들이 동현의 집으로 왔다. 현관엔 사건 현장임을 알리는 노란색 테이프가 붙었다.

치아가 없어 부드러운 음식을 좋아하는 그를 위해 비빔국수를 만들어줬던 부엌도, 나란히 누워 시덥잖은 이야길 하며 오후를 보냈던 안방에도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었다.

동현의 주검은 다대포의 한 병원 영안실로 옮겨졌다. 경찰 조사 결과 사인은 자연사였다.

영이는 동현을 위해 호화롭지는 않지만, 소박한 빈소가 차려질 줄 알았다. 향을 피우고 술 한 잔 올려 고인의 사망 직전 반년간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으로 마지막 도리를 다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가족 같은 관계에도 처참한 이별

지난 10일 고 박동현(가명) 씨의 활동지원사 정영이 씨는 “동현 씨는 엄마의 보살핌에 대한 그리움이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소파에 앉더라도 꼭 자신 바로 옆에 앉는 걸 좋아했다”며 “종종 활동지원사가 바뀌다보니, '이모도 금방 갈거지?'하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었다”고 회상했다. 정 씨는 “활동지원사와 지원받는 사람 사이의 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돈독하다”며 “매일같이 만나며 보살피다 보면 가족같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 지난 10일 고 박동현(가명) 씨의 활동지원사 정영이 씨는 “동현 씨는 엄마의 보살핌에 대한 그리움이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소파에 앉더라도 꼭 자신 바로 옆에 앉는 걸 좋아했다”며 “종종 활동지원사가 바뀌다보니, '이모도 금방 갈거지?'하며 투정을 부리기도 했었다”고 회상했다. 정 씨는 “활동지원사와 지원받는 사람 사이의 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돈독하다”며 “매일같이 만나며 보살피다 보면 가족같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

사망 현장을 처음으로 목격한 영이는 쓰러진 동현을 발견했을 때를 떠올리면 트라우마처럼 눈물부터 차오른다. 영이가 동현을 마지막으로 본 건 사망 이틀 전인 11월 29일이었다.

“이모 힘들잖아. 한 달 푹 쉬고 와”

영이의 도움 없이는 몸이 불편해 밥 한 끼 차려 먹기 힘든 동현이었다. 오후 2시쯤 활동지원 시간이 끝나 집을 나서는 영이에게 동현은 한 달 정도 푹 쉬고 오라며 농담을 건넸다. 다음날 교육 일정이 잡혀 모레 다시 방문하기로 했는데, 하루 못 본다는 사실에 동현이 아쉬움이 녹아든 고마운 감정을 장난스럽게 건넨 것이다.

“‘밥은 어떻게 하게’라고 말했더니 ‘내가 차려 먹으면 되지’ 그러더라구요. 참 애틋하고 그래서 ‘동현 씨 사랑해 모레 봐’ 하면서 꼭 안아줬어요. 그게 마지막 인사였어요.”

동현은 선천적으로 폐, 위장 등 기능이 약했고 지적장애가 있었다. 사회와 단절된 복지시설에서 평생을 살다 불과 약 3년 전부터 홀로 생활을 시작했다.

영이가 동현을 맡는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가족과의 왕래가 없는 동현에게 매일 찾아오는 영이는 유일한 ‘가족’이었다.

동현의 집에선 다대포 바다가 내려다보였다. 창문 너머로 화물을 실은 배가 지나다니는 모습을 하루에 대여섯 번은 볼 수 있었다. “배 간다 배 간다”고 하며 감탄하는 그를 위해 영이는 동현을 데리고 유람선을 타러 가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1일 세상을 떠난 무연고 사망자 고 박동현(가명) 씨가 생전 유람선에 탑승해 즐거워하는 모습. 활동지원사 정영이 씨는 평소 창밖너머 다대포 앞바다를 지나다니는 화물선을 보고 감탄하는 그를 위해 함께 유람선을 타러 가기도 했다. 사하두바퀴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제공 지난해 12월 1일 세상을 떠난 무연고 사망자 고 박동현(가명) 씨가 생전 유람선에 탑승해 즐거워하는 모습. 활동지원사 정영이 씨는 평소 창밖너머 다대포 앞바다를 지나다니는 화물선을 보고 감탄하는 그를 위해 함께 유람선을 타러 가기도 했다. 사하두바퀴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제공

“길을 갈 땐 손 잡고 가고, 오후가 되면 머리를 맞대고 누워있기도 했어요. 그러니 가족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죠. 정말 가족과 다름없어요.”

장례조차 치러주지 못한 참담한 이별을 겪은 뒤 영이는 종종 마음속에 엉킨 밧줄이 무겁게 짓누르는 듯한 먹먹함을 느낀다.

불자인 영이는 종종 절을 찾아 동현의 명복을 뒤늦게 빈다.



#빈소조차 없는 사람의 마지막을 쫓는 방법

영이가 소속된 사하두바퀴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영훈 팀장은 동현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병원 장례식장으로 부리나케 향했다. 동현은 장례를 치러줄 가족이 없었다. 일단 장례식장에 도착한 다음, 시신이 옮겨지면 직원에게 생전 망자를 지원하던 복지기관 관계자라고 설명하려고 했다. 그다음부턴 장례에 관한 사항을 논의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동현과 동현을 돌보던 복지시설 관계자의 사이는 '남'에 불과했다. 장례식장 직원은 “구청에서 연락이 갈 거다. 무연고 사망자는 국가가 장례비를 준다. 절차대로 한다”는 이야기뿐이었다.

주말이 지나 희망을 안고 구청에 문의하자, 공영장례를 진행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동현은 운이 나빴다. 공영장례 예산은 11월 말에 소진됐는데 하필 12월 1일에 사망한 것이다.

동현에겐 그동안 받아온 수급비 등 남은 재산이 조금 있었다. 예산이 없다면 남은 재산이라도 활용하면 될 것 같았다. 재산의 일부를 활용해 장례를 치를 수는 없는지 구청에 물었지만, 명확한 답변을 듣지는 못했다.

장례식장 직원을 귀찮게 하며 화장 때만이라도 알려주겠다는 구두 약속을 겨우 받아냈다. 장례를 치르지 못한 아쉬움은 뒤로 하고, 화장장에서라도 마지막 인사를 건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직원은 연락을 깜빡한 모양이었다. 동현이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지하 봉안당에 안치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10여 일 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락공원 홈페이지에 ‘박동현’ 이름을 검색해 보니, 이미 화장 이후 영락공원 지하 1층 무연고자실에 봉안까지 된 상태였다.

장례주관자라는 제도를 알게 된 건 시간이 한참 흐른 뒤 한 인터넷 기사를 통해서였다. 알고 보니 무연고 사망자의 유류금품을 활용한 장례비 충당도 법적으론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숨이 끊긴 무연고자 앞에서 ‘남’으로만 규정된 이들이 마지막을 챙기기 위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법적으로 보장된 장례비 활용을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내해 주는 곳은 없었다.

지난 10일 고 박동현 씨의 자립생활을 지원해온 사하두바퀴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영훈 팀장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 지난 10일 고 박동현 씨의 자립생활을 지원해온 사하두바퀴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영훈 팀장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

최 팀장은 “동현의 사후 내내 장례식장이나 행정기관에선 ‘가족 관계가 아니면 어렵다’는 태도였다. 때론 ‘가족이 아닌데 굳이 해야 하느냐’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며 “사비를 모아 장례비를 마련하는 방법도 고민했지만, 빈소를 빌리는 단계부터 ‘그렇게 해도 된다’고 말하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불가능한 일인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예산이 없어서 장례를 못 치른다면, 재산이라도 조금 사용해서 장례비에 쓸 수 없는지 구청에 문의했다. 그러나 명쾌한 답변을 듣지는 못했다”며 “앞으로 또 이런 사례가 나올까 봐 무연고사가 우려되는 센터 이용자 분들이 유언을 남기게 하는 방법도 고민했는데, 복지기관이 나서서 유서를 쓰게 한다는 외부의 부정적인 시각이 우려돼 검토에 그쳤다”고 말했다.



#사문화된 무연고사망자 재산 장례비 충당

무연고 사망자의 재산 일부를 장례에 활용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로 취급된다. 법적 근거는 있지만 막대한 행정 비용이 투입되고, 뒤늦게라도 상속인이 나타났을 경우 법적 분쟁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장사법에선 ‘시장이 무연고 사망자가 남긴 유류금품을 무연고 시신 처리 비용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비용 충당을 위해선 최소 2년 이상 걸리는 상속재산관리인 선임 청구 절차를 거쳐야 한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이유는 장사법에 따른 무연고자가 민법상 상속인이 없는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장사법에 따른 연고 수색 범위는 배우자와 직계가족, 형제자매인데, 민법상 상속권한은 4촌 이내의 방계혈족(고모, 삼촌, 조카 등)까지로 훨씬 넓다. 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해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하더라도, 상속자로는 인정받을 수는 있다.

보건복지부 노인복지과 관계자는 “민법상 상속 등 다양한 법률관계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장사법만으로 유류금품 처리에 관한 세부 규정 등을 두기에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 방안을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망자의 유류금품이 방치된 사이, 해마다 늘어나는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장례 예산 확보도 만만찮다. 지난해 부산 지역 무연고 사망자는 619명인데, 이 중 415명이 공영장례를 지원받았다. 올해 예산은 3억여 원으로, 지난해 부족했던 예산과 동일하다.

부산시 노인복지과 관계자는 “무연고 사망자의 유류 재산과 관련한 절차를 밟으려면 몇 년씩 법원을 오가야 하는데 지자체마다 무연고자 담당은 1명 정도로,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며 “또 뒤늦게라도 상속인이 나타났을 때 법적 분쟁에 휘말릴 우려도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오로지 ‘장례 의식 주관’에 대해서만 사회적 관계의 개입 여지를 열어둔 데 따른 한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질적으로 장례사무를 처리할 권한이나 사망직후부터 장례 이후까지 연결되는 세세한 사후처리 단계에서 사회적 가족이 쉽게 배제된다는 것이다.

서울시공영장례상담센터를 운영하는 나눔과나눔 박진옥 상임이사는 "돌봄은 사회화되었는데 장례와 죽음에 관한 것은 여전히 개인의 문제로 보고 있다"며 "장사법의 연고 범위와 민법상 연고자 범위를 동일하게 맞추는 것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혈연 중심의 법률을 관계 중심으로 재편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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