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잊힌 한센병 조선인 역사, 제대로 밝혀 기억할 수 있길
'식민 지배' '강제 격리' 이중 피해 고통
수백여 명 격리 기록, 이제라도 남겨야
광복 81주년을 맞았지만 일제강점기의 여파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일제 때 강제 격리 정책으로 인권 유린과 차별을 겪고도 제대로 조명 되지 못한 일본 내 한센병 조선인들이 마지막일지 모를 호소를 보내고 있다. 광복 직전인 1944년 기준, 일본 내 요양소에 격리돼 있던 한센병 조선인이 최소 517명이었다는 사실이 〈부산일보〉 취재로 확인됐다. 당시 일본에는 한센인 요양소가 13곳 있었고, 그 가운데 10곳에 조선인이 수용돼 있었다. 조선인 한센병 피해자 모임인 ‘우애회’ 회원 대상 조사에서 70% 이상이 징용, 모집, 군인·군속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내 한센병 조선인들은 분명히 일제 강점 피해자들인 것이다.
한센인 요양소의 인권 유린은 어느 정도 규명됐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이 개발한 약물을 투여하는 인체실험이 벌어지거나 사망자 해부가 자행됐다는 보고도 있었다. 하지만 조선인 피해 조사는 따로 이뤄지지 않았다. 해방 전까지는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거나 피해를 입어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자급자족을 강요 당하며 이른바 ‘환자 작업’을 하며 버텨야 했다는 증언이 숱하다. 그들에겐 광복도 남의 일이었다. 1931년 시행된 일본 ‘나예방법’은 한센인 절대 격리와 멸종을 목표로 내세웠고, 조선인들은 요양소를 떠날 수 없었다. 남의 나라에 의해 찍힌 ‘식민지병’ 낙인으로 돌아갈 고향마저 사라진 것이다.
일본 내 한센병 강제 격리 피해자에 대한 사과가 2001년 일본 정부 상대 배상 재판에서 피해자들이 승소하면서 처음 이뤄졌다지만, 이를 완전한 사과라고 볼 수 없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식민 지배나 강제 징용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점은 강제 격리 피해 한센병 조선인 가운데 상당수가 식민 지배의 결과로 일본에 끌려간 피해자라는 사실이다. 그 시절 요양소에는 조선인이 유독 많았다고 한다. 이는 식민 지배를 피하거나 생계를 위해 현해탄을 건넌 조선인들이 열악한 노동·생활 환경에서 한센균에 노출될 위험이 더 컸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더 늦기 전에 한센병 조선인들을 일제강점기 피해 역사에 담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피해자 대부분은 피해의 기록을 남길 능력이 없었고, 남의 나라가 찍은 낙인에 스스로를 드러낼 의지도 없었다. 가족에게 피해가 미칠까 봐 이름도, 가족도 속여야 하는 처지였다. 다행히 조선인 피해 단체들이 남긴 간행물 기록, 재일 조선인 사진작가 조근재 씨의 촬영 기록, 연구자들의 구술 조사 등 그간 피해 사실을 남기는 작업들이 뒤따랐다고 한다. 시간이 얼마 없다. 일본 한센병 요양소 3곳에 여전히 살고 있는 재일 조선인 21명의 기억부터 되살려야 한다. “30대에 선물 받아 평생 간직한 한복을 죽을 때 입고 가겠다”는 피해자 마음엔 여전히 고국이 있다. 이제라도 고국이 응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