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부정의 복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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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용 소설가

세상을 걷다 보면, 타성과 무심한 고개 끄덕임, 이런 것들을 종종 만난다. 한 번 두 번 넘어가다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도저히 넘어가지 않을 때가 온다. 그럴 때는 어렵게 잽(jab)을 날려 타진한다. “그건 아니지 않나요? 그동안 그렇게 해왔다고 다 맞는 건 아니잖아요. 상황에 따라 방법을 바꿔야 되는 것 아닌가요?”

이렇게 툭 툭 부정의 잽을 날리면, 어김없이 한 체급 높은 선수가 링 안으로 등장한다. 등장해서 부드러운 척 코너로 몰아간다. “사람이 좀 긍정적이어야지. 그리 삐딱 선을 타면 될 일도 안 돼. 일이 진도가 안 나가잖아. 마음에 안 들어도, 어? 두루뭉술하게 좀 맞추고, 어?”

긍정은 잽(jab) 없는 복싱

'나는 하지 않는 편 택하겠습니다'

가끔 부정의 잽(jab) 날리자

코너에 몰려 가드(guard)를 잔뜩 올리고 있으면, 내가 날린 잽에 동조의 눈빛을 보내던 동료들도 슬그머니 눈을 돌리기가 십상이다. 돌아서는 눈빛들을 확인한 체급 높은 선수는 더욱더 힘을 내어 훅을 날린다. “어이구, 세상 저만 잘났다.”

한숨 쉬며 떠나는 체급 높은 선수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텅 빈 링 위에 홀로 서 있으면 외로움과 자책이 밀려온다. ‘그냥 참았어야 했나? 애초에 가능한 일이기는 했었나? 내가 뭐라도 된다고 착각했나?’ 뒤를 이어 부스러지는 허무가 내려앉는다. ‘그냥 참자. 다들 참고 사는데, 카드 결제일도 곧 다가오고, 나라고 뭐 어쩌겠어.’

터벅터벅 링을 내려오다 보면, 뒤통수에서 버섯 처럼 짜증이 자라난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그리고 뒤따라 바틀비(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의 주인공)의 말이 볼록볼록 돋아난다.

‘나는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I would prefer not to.)’

19세기 미국 월가의 한 변호사는 필경사(원지에 철필로 글씨를 쓰는 직업) 바틀비를 고용한다. 창백한 얼굴로 조용하고 충실하게 글을 옮겨 적던 바틀비는, 변호사의 서류 검토 요구에 조용한 목소리로 자신의 선택을 밝힌다. ‘하겠다, 못하겠다’가 아니라, 하지 않는 선택을 알린다. 그리고 자기 책상을 지키기 위해 같은 선언을 반복하며 버틴다. 다수가 만든 상식을 믿음으로 섬기는 세계에서, 외롭고 고독한 싸움을 이어간다. 그 후로 바틀비의 선언은 몇 가지 더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로 이어지고, 종국에는 ‘먹지 않는 것’을 선택함으로 죽음마저도 자기의 선택사항으로 만든다.

바틀비를 알게 된 이후로, 가끔 바틀비의 선언을 소리 내어 말해본다. 내가 날린 잽이 외로움과 허무로 돌아올 때면, ‘나는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중얼거린다. 그러고 나면, 저 멀리 오래된 우주에서 내 편이 같이 중얼거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든든하다. 그 든든함과 함께 의지가 슬거머니 되살아나서 다시 잽을 날릴 수 있는 힘이 된다.

나도 안다. 바쁜 현대사회에 매사 툭 툭 잽만 날리며 살 순 없다. 열심히 잽을 날린다고 월급이 오를 리도, 드라마틱하게 올곧은 상사의 눈에 띄어 진급을 할 리도 만무하다. 오히려 삐딱선 탄 질풍노도의 시기에 멈춘 어른아이 취급 받기가 십상이다. 하지만, 잽 없는 세상을 상상하면 박제된 미래가 떠올라 답답하다. 불편하고 피곤해도 꾸준히 잽을 뻗으면 세계가 조금은 바뀌지 않을까. 우리의 선배와 조상도 그렇게 조금씩 세계를 바꿔왔을 테니, 이 세계를 누리려면 가끔이라도 잽을 날리는 걸 택하는 게, 선배들에 대한 적절한 응대(應對)이지 않을까? 어쩌면 후배에 대한 배려가 될 수도.

그러니, 가끔은 잽을 날리자. 세계에 무심한 긍정은 잽 없는 복싱 같다. 아무것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밤새 내린 눈처럼 하얗게 덮어버리고 감추기만 한다. 하지만 부정은, 언제나 의지를 품고 잽을 날린다. 손을 뻗으며 상황을 타진한다. 방향과 노정(路程)을 점검하고, 여차하면 회심의 어퍼컷을 날려 전복의 기회를 노린다. 바틀비처럼, 불편한 모양새일 때가 많겠지만, 적어도 어떤 것을 일으킨다. 새로운 것을 상상하게 하고 변화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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