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도 식후경… 눈보다 입이 더 즐거운 미식여행
충북 제천시 ‘가스트로 투어’
1인당 2만 7500원·사전 신청은 필수
의림지 소나무와 수양버들 풍치 더해
생곤드레밥 식감·풍미 일품 호반식당
블랙티와 마들렌의 하모니 카페 피노
현대적 감각의 전통 궁중다과 약선재
충북 제천을 맛보고 걷고 이야기 들을 수 있는 미식 여행 ‘가스트로 투어’(Gastro Tour). 건강한 음식에 한껏 행복해진 뒤 만나는 치유의 숲은 관람객은 물론이고, 지역민들에게 힐링과 치유의 공간이 되고 있다. 김진성 기자 paperk@
여행지를 다니다 보면 주변에 맛집이 더러 있다. 소개를 할까 늘 고민이었지만 자제했다. 맛이 주관적인 측면도 있고, 자칫 맛집 홍보로 이어질까 염려해서다. 먹는 즐거움 또한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일이라 맛집 갈증은 늘 있어 왔다. 그러던 차에 충북 제천에 미식 여행이 있다고 해서 한걸음에 달려갔다. 이번엔 대놓고 맛집 소개를 할까 한다.
■의림지를 품고 있는 가스트로 투어
‘가스트로 투어’(Gastro Tour). 이름부터 생소하다. 충북 제천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탈리아어로 ‘위장’이란 뜻의 가스트로(Gastro)에 투어(Tour)가 붙어 만들어진 신조어다. 쉽게 말해 ‘미식 여행’이다.
가스트로 투어는 2019년 10월부터 운영되고 있다. 제천시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서울의 미식여행을 벤치마킹했다. 아름다운 숲과 호수를 품고 있는 제천에다 맛있는 음식의 옷을 입힌 것이다. 가스트로 투어엔 문화해설사가 동행한다. 문화해설사와 함께 제천을 걷고, 제천 음식을 먹고, 제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가스트로 투어를 하려면 사전 신청이 필수다. 인터넷을 통해 보니 시내권(A, B)코스와 의림지권(A, B)코스로 나뉜다. 시내권 A코스에선 50년 전통의 수제 찹살떡집인 ‘덩실분식’을 시작으로 연잎밥 한정식, 막국수, 샌드위치, 빨간어묵을 차례로 맛볼 수 있다. B코스는 ‘덩실분식’과 함께 ‘대장금식당’을 거쳐 중국식 볶음면이 들어있는 쌀방, 메밀전, 빨간어묵을 즐길 수 있다. 지난해 4월 시작된 의림지권 코스는 기존 시내권과 달리 의림지와 솔밭공원, 비룡담 저수지 등 제천의 자연경관과 한방·약선 요소를 추가한 것이 특징이다.
의림지권 B코스를 선택했다.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삼한시대 수리 시설 중 하나인 의림지가 가스트로 투어 출발 지점이다. 호수 주변의 수백 년 된 소나무와 수양버들이 가을 풍치를 더한다.
‘호반식당’의 생곤드레밥과 청국장 정식. 김진성 기자 paperk@
이곳에서 만난 문화해설사는 가스트로 투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는 “2019년 서울에서 벤치마킹해서 시작됐지만, 지자체에서 운영 중인 곳은 제천이 처음”이라며 “다른 지자체에서 제천을 찾아 가스트로 투어를 벤치마킹하고 있지만, 제천이 가장 인기가 많고 활성화된 곳이다”고 했다.
첫번째 미식 탐방지인 ‘호반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대표가 식당 부근에 직접 재배하고 있는 곤드레를 본 해설사는 “술 취한 사람들을 두고 ‘곤드레 만드레’라고 하잖아요. 곤드레가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그런 말이 나왔다”고 했다.
해설사의 말에 미소 지으며 식당에 들어서니 점심시간 1시간 전인데도 60여 명이 앉을 식당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10여 명이나 됐다. 미리 예약한 덕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잠시 뒤 식당 대표가 직접 개발한 말리지 않은 생곤드레를 데쳐 갓 지은 밥과 청국장을 곁들인 음식이 나왔다. 기본 반찬은 무려 10가지나 된다. 맛은 물론이고, 재료들이 훌륭했다. 어머니가 해 주신 가정식 반찬 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 생곤드레를 데친 밥에 간장을 비벼 먹으니 곤드레의 살아있는 식감과 향긋한 풍미가 입안에 가득했다. 함께 나온 청국장은 깊이가 있으면서도 청국장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평소 청국장을 즐기는 터라 질 좋은 콩을 사용했음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집에서 먹으려고 별도로 조금 샀다. 밥과 반찬을 모두 비우며 제법 많은 양을 먹었는데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그만큼 식재료가 훌륭하고, 정성이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해설사는 “30년 이상 된 맛집이다. 현지 사람들도 줄을 서서 먹는 곳”이라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의림지역사박물관 내 미디어아트. 김진성 기자 paperk@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다음 장소인 카페로 향하는 길에 해설사는 의림지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말했다. “삼한시대 3대 수리시설인 김제 벽골제와 밀양 수산제는 제방을 뜻하는 ‘제’(堤)를 사용하지만, 의림지는 연못 지(池)를 사용합니다. 의림지는 임의로 만든 제방이기보다는 저수지 내부에서 용출되는 샘이 있는 연못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입니다.” 가뭄에도 의림지 물이 마르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다음 장소로 가기 위해 의림지 인근을 20여 분 동안 걸었을까. 시원한 소나무밭이 나타났다. 어른 한 아름 되는 소나무로 이뤄진 군락지다. 곧게 뻗은 소나무들 사이로 휘어진 소나무들의 유연함이 포근함을 준다. 잠시 쉬어가라는 것 같다. 이곳은 처음부터 소나무 군락지가 아니었다. 아카시아 나무와 돌이 가득한 척박한 환경에 자생 소나무는 몇 그루 되지도 않았다. 제천이 시로 승격된 1980년, 제천시의 위상을 살리기 위해 지역 의용소방대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 아카시아와 돌을 캐낸 이들은 이곳에 소나무를 심었고, 무려 770여 그루의 소나무들이 지금의 ‘의림지 솔밭공원’을 이룬 것이다.
기운찬 솔밭공원을 품고 있는 ‘카페 피노’가 두 번째 맛집이다. 솔밭공원이 마치 카페의 정원 같다. 아트갤러리 같은 외관의 카페는 홍차와 커피를 비롯해 다양한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이곳은 블랙티, 스페셜티, 우롱티 등 다양한 차의 맛집이다. 카페 대표의 추천으로 맛본 블랙티는 매일 아침 굽는다는 스콘과 마들렌과 함께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뤘다. 카페 창문으로 솔밭공원을 바라보며 먹는 티와 디저트는 천국이다. 제천의 가스트로 투어가 왜 인기인지 알 듯 했다.
유럽풍 카페 ‘카페피노’의 블랙티와 마들렌. 김진성 기자 paperk@
■미식으로 채운 포만감 치유의 숲에서 비우기
좀처럼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음식으로 채운 배를 조금 비워 내고, 제천도 더 알고 싶었다. 카페를 나오니 ‘의림지 치유의 숲길’로 이어진다. 소나무와 백무동이 조화로운 군락지에 들어서니 세상의 찌든 때가 모두 벗겨지는 기분이다. 덱으로 이루진 무장애 길을 따라가면 ‘마법의 성’이 있는 비룡담 저수지를 볼 수 있다. 제2의 의림지로 불리는 이곳은 아름다운 경치와 성 형태의 구조물이 어우러져 마치 유럽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특히 이곳은 야경 맛집이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이곳에서 차량으로 30분가량 떨어진 국립제천치유의숲도 추천한다. 금수산 자락에 위치한 제천치유의숲에서는 이황 선생의 건강 비법인 ‘활인삼방 숲테라피’와 ‘사상체질 차테라피’ 등 다양한 건강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음이온치유숲길에서는 계곡 주변을 걷다가 쉼터에서 명상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고, 발의 감각을 깨우고 고저차를 활용한 운동효과를 느끼는 숲내음치유숲길도 인기다.
한식 디저트 전문인 ‘약선재’의 한방 차와 궁중 다과. 김진성 기자 paperk@
수제빵과 커피가 맛있다는 ‘카페꼬네’를 거쳐 투어의 마지막 집인 ‘약선재’에 도착했다. 한식 디저트를 전문으로 하는 약선재는 전통과 현대의 감각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다과상을 주문하면 한 폭의 그림을 받는 듯하다. 디저트도 한식이다. 달지만 달지 않은 다과의 향미가 은은하다. 해설사는 “카페 약선재에서 제공하는 궁중다과상은 한국의 전통 다과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정갈하고 세련된 비주얼과 함께 전통적인 맛을 그대로 살리고 있다”고 자랑했다.
가스트로 투어는 코스에 따라 약간 차이가 있지만 대략 2~3시간이 소요된다. 한 곳을 지나면 기본적으로 10~20분가량은 걸어야 하는 동선이 좋았고, 무엇보다 제천의 자연과 이야기를 함께 할 수 있어 유익했다. 1인당 2만 7500원 가격도 착하다.
손님이 넘쳐나도 가스트로 투어 관광객들에게 친절함을 잃지 않는 식당들, 제천의 아름다움과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전하려는 해설사의 마음에서 가스트로 투어의 인기와 진가를 느낄 수 있다.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