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죄가 없다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김영한 논설위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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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수난 시대’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검증 과정에 등장한 ‘오빠’ 단어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브로커의 전화에 오빠가 나서서 정상 절차로는 어렵던 신약 허가 기간을 확 줄여준 사실이 드러나며 온 국민이 도대체 어떤 ‘오빠-동생’ 사이인지 지켜보게 만들고 있다.

되돌아 보면 일상의 호칭인 오빠가 정치 스캔들이나 권력 남용, 불미스러운 성희롱 사건에 얽혀 수난을 겪은 사례가 한두 차례가 아니다. 오빠는 시대적·사회적 맥락에 따라 무대 위 스타를 지칭하는 ‘애정의 단어’였다가 ‘정치 거래의 언어’로, 때론 ‘위력 행사의 폭력’으로 변모했다. 오빠의 변천사를 한 번 돌아봤다.

가수 나훈아 공연. 부산일보DB 가수 나훈아 공연. 부산일보DB

청춘의 우상이자 낭만의 대명사

오빠는 남매 사이에, 연령 차가 있는 남녀 사이에, 때로는 연인 사이에 쓰이는 친근함과 친밀감 담은 호칭이다. ‘동네 오빠’ ‘선배 오빠’ ‘옆집 오빠’ ‘교회 오빠’, 온갖 오빠가 있다. 관계와 상황, 어조에 따라 오빠 호칭에 담긴 감정도 다양했다. 서울 가면 비단 구두 사다 줄 것만 같던 전통적 의미의 오빠에 본격적으로 사회적 의미를 더한 것은 대중문화였다.

1960~70년대 ‘원조 오빠’ 남진·나훈아를 거쳐 ‘영원한 오빠’ 조용필이 인기를 끌면서 오빠는 대중문화 전면에 등장했다. 얼마나 오빠가 편했던지 리처드 클리프 같은 외국인도 ‘오빠’였다. 공연장에서 터지던 오빠 함성은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에 눌려 있던 여성들이 열정과 애정을 발산하는, 사회적으로 용인된 언어였다.

스포츠에도 오빠가 생겨났다. 대략 1990년대 농구대잔치에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스타들이 등장했을 때다. 농구장을 가득 메우던 ‘오빠 부대’를 향한 우려 섞인 시선도 없진 않았지만 순수한 팬심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였다.

대중문화 산업도 오랜 기간 스타를 친근하고 보호받고 싶은 오빠로 인식하게 하는 데 성공, 유대감과 충성도 높은 팬덤을 만들어 냈다.

1997년 1월 서울 올림픽 제1체육관에서 열린 농구대잔치 챔피언시리즈 2차전에서 연세대 선수들이 상무와 경기를 펼치고 있다. 부산일보DB 1997년 1월 서울 올림픽 제1체육관에서 열린 농구대잔치 챔피언시리즈 2차전에서 연세대 선수들이 상무와 경기를 펼치고 있다. 부산일보DB

정치에 입성한 ‘오빠’, 팬덤을 만들다

이 낭만적인 단어가 정치와 결합하면서 의미 분화가 이뤄졌다. 정치에서 오빠 단어 효과를 본 정치인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꼽힌다. 노 대통령을 당선시킨 일등공신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대선 과정에서 세를 불려나가면서 열혈 지지자를 비판하는 ‘노빠’(노무현 오빠 부대) 용어가 나왔다. 하지만 노사모 회원들은 스스로 노빠를 자처하면서 긍정적 의미로 바꿔냈다. 이후 정치권에서는 ‘~빠’가 자연스러워졌다.

수긍이 쉽게 안 가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오빠’ 수혜자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이 대통령 지지자들은 ‘경제 먼저, 오빠 먼저’ 플래카드를 들고 지지 활동을 펼쳤다. 경쟁자였던 박근혜 후보와 대비시키고, 경제 대통령과 오빠 이미지를 앞세워 지지세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이 대통령이 대선 때도 트로트곡 ‘오빠만 믿어’를 개사한 ‘명박만 믿어’를 로고송으로 쓴 사실을 보면 오빠 마케팅 효과가 없진 않았나 보다. 이때만 해도 정치권에서도 ‘오빠’ 호칭은 정치 팬덤을 지칭하거나 지지를 유도하는 친근함의 의미가 강했다고 할 수 있겠다.

학력위조 파문의 주인공 신정아 씨가 2007년 9월 검찰에 소환되자 취재진이 열띤 취재를 하고 있다. 부산일보DB 학력위조 파문의 주인공 신정아 씨가 2007년 9월 검찰에 소환되자 취재진이 열띤 취재를 하고 있다. 부산일보DB

‘오빠의 추락’…공사 경계를 넘다

오빠 호칭에 부정적 의미가 강화된 것은 오빠를 앞세워 공적·사적 영역이 허물어지는 일이 터지면서다. 2007년 신정아 씨 사건 당시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을 가리킨 ‘예일대 오빠’라는 표현이나,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서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이 윤관석 전 의원과의 통화 중 “거기 해야 돼 오빠”라고 말한 녹취록이 대표적이다. 공식 호칭 대신 오빠라는 사적 호칭이 사용된 정치 스캔들이 이어지면서 국민들에게 오빠는 공적 권력과 은밀한 청탁을 뒤섞는 매개로 조금씩 자리 잡게 됐다. 부당한 뒷거래가 있는 것처럼 비쳤고, 때론 정권에 부담이 가기도 했다.

최근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싸고 불거진 ‘오빠 로비’ 의혹도 국민에게 유사한 인식을 부르며 연일 파장이 커지고 있다. 후보자와 사적 친분이 있는 브로커가 오빠라고 부르며 이권 청탁을 시도했고, 김 후보자가 그 청탁을 적극적으로 들어줬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오빠-동생’이라는 사적 소통 구조가 권력의 그늘에서 작동한 것 아니냐는 점에서 국민 공분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물이 공적인 검증과 권한 행사가 핵심인 법무부 장관 수장에 적합하냐는 문제제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한 빌딩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한 빌딩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빠’ 오남용, 부메랑이 되다

정치인 스스로 부적절한 ‘오빠’ 표현을 써 구렁텅이에 빠지는 일도 잦았다. 우근민 전 제주지사는 2002년 여성단체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발 당하자 “오빠 동생 하는 사이였다”는 황당한 말로 위기를 모면하려다 반발을 불렀다. 우 전 지사는 추후 대법원으로부터 성추행 최종 판결을 받았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오빠 오남용 사례도 있다. 2019년 이 의원이 단식투쟁을 벌이던 황교안 당시 대표를 풍자하는 과정에서 오빠를 잘못 끌어다 쓴 일이다. 이 의원은 황 대표를 비판한다면서 나경원 의원의 이름을 빌려 ‘황교안 오빠, 나경원 올림’ 이란 가상 편지를 써 SNS에 올렸고, 성희롱성 지적에 부랴부랴 글을 수정했다.

최근 사례로는 지난 총선 때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하정우 후보 지원 유세 현장에서 초등학생에게 “여기 정우 오빠, 오빠 해봐요”라고 유도해 논란이 벌어진 일이 있다. 이 사태에 국립국어원까지 나서서 초면에 나이 차이가 40세 이상 나는 연상의 남성에게 오빠 호칭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답변까지 내놨다.

정치 무대에서 오빠가 등장할 때마다 예외 없이 불거지는 ‘오빠 게이트’, 혹은 ‘오빠의 정치학’은 이제 한국 정치가 넘어야 할 음습한 유산이 돼가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하정우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가 지난 5월 부산 구포시장에서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부산일보DB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하정우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가 지난 5월 부산 구포시장에서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부산일보DB

권력 가리는 ‘오빠’의 일상화

“교수라 부르면 F학점, 오빠라고 부르면 A학점을 주겠다” “‘오빠, 오빠’하며 술을 따라야 한다” “탄탄대로 걷게 해 줄게. 오빠만 믿어” “오빠들 만나러 가려면 수업 빠져도 돼”…. 쉽게 안 믿기겠지만 최근 수년간 실제로 쓰여져 피해자까지 만들어 낸 말들이다.

오빠를 교묘하고 비열한 방식으로 쓰는 일은 영역이 따로 없다. 교단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스스럼없이 내뱉는가 하면, 공직 사회나 민간 기업에서 상급자가 동료 직원들에게 위력을 행사할 때 오빠라는 가면으로 가렸다. 위계가 분명한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런 성추행과 성희롱은 피해자가 상하관계 때문에 문제 제기를 못할 것이라는 계산도 깔렸다는 점에서 비겁하기까지 하다.

공적 권력과 사적 친밀함을 구분하지 못하고 위력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오용된 오빠라는 호칭. 공과 사의 경계를 바로 세우지 않는 한, 한때 정겹고 낭만적이던 이 단어가 예전의 순수함을 회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김영한 논설위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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