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자로 외면받던 조부, 사실 독립투사였다!
■비밀의 들판/마거릿 주혜 리
한국계 미국 기자, 조부 과거 추적
전과자이자 집안 수치였던 사람
독립투사이자 사상가 실체 확인
사후 60년 후 독립유공자로 추서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저자의 할아버지이자 독립투사인 이철하의 묘. 저자 제공
일제가 작성한 이철하의 수감 명부.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자료
국립현충원 이장식에 참석한 가족들 모습. 저자 제공
국립현충원 이장 당시 이철하의 관 모습. 저자 제공
비밀의 들판/마거릿 주혜 리
1966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에서 태어나 1969년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이사해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는 마거릿 주혜 리. 초·중학교 때 그녀는 자주 “너는 누구이며 어디 출신이냐”라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그녀가 기억하는 삶은 온통 휴스턴뿐이기에 당연히 “휴스턴”이라고 답하지만, 사람들은 그건 정답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 가족은 지역에서 거의 유일한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마거릿 주혜 리는 휴스턴이 자신의 고향이자 정체성이라고 생각했지만, 출신을 묻는 질문이 거듭되자 자신을 포함해 가족의 역사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 집안에서 할아버지에 관해 묻는 건 금기였다. 어렴풋하게 할아버지가 전과자이자 집안의 수치였고, 아버지조차 자신의 부친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일을 했고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했다.
20여 년에 걸쳐 쓴 이 책은 마거릿 주혜 리가 자신의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추적하는 기록이며 그 사람의 인생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맞닿아 있다. 할머니조차 남편의 정체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고 평생 오해 속에 남편을 원망하며 살고 있었다. 미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끝내고 한국에 돌아가지 않은 저자의 아버지는 부친에 관해 조사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언론학을 전공하고 기자가 된 마거릿은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할아버지에 관한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충남 공주 최초로 항일 동맹휴학을 이끌고 수차례 항일 시위를 조직한 10대 학생 운동가였다. 나라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공산주의 혁명에 뿌리를 둔 사상가이기도 했고 조선학생과학연구회에 가입해 비밀결사 활동을 하다 일제에 의해 체포돼 몇 년간 투옥되었다.
빨치산 활동을 주도한 유명한 인물, 이현상의 동지였고 뛰어난 학문적 역량을 발휘해 여러 글과 책을 쓴 지식인이었다.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일제의 박해와 투옥 생활로 몸이 병들었고 20대 후반 일찍 죽는다. 집안끼리의 약속으로 10대 중반 결혼했지만, 남편은 항일 시위로 고향에서 살 수 없었고, 어린 아내를 시댁에 둔 채 서울로 공부하러 떠난다. 아내는 남편과 함께 한 시간이 거의 없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분단을 겪으며 아내는 남편과 관련된 모든 기록(편지, 저술, 기사, 저서 등)을 태운다. 감옥에 간 전과자, 공산주의 이론에 빠진 사상가라는 남편의 흔적은 홀로 여자가 두 아이를 부양하는데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을 위험하게 할 수도 있었다.
재봉사와 보육원 일을 전전하며 두 아들을 키웠고 훌륭히 자란 아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서울대학교)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떠난다. 저자의 아버지는 한국의 삶이 편하지도, 떳떳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전과자였고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때문에 아버지의 정체를 아는 게 두렵기도 했다.
저자의 긴 추적 끝에 범죄자였던 할아버지는 사후 60여 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추서되고 국립현충원으로 이장된다. 저자의 아버지에게 상속된 줄도 모르고 있던 토지를 정리해, 할아버지의 모교인 공주고등학교에 장학금을 기부한다.
한국말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저자가 할아버지의 기록을 찾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비싼 돈을 지불해 일제 시대 수감 기록을 사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실체를 찾는 건 아버지에게 가장 큰 효도였다. 저자 자신에게도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독립투사였다는 정체를 알게 되었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평생 자신을 고생시킨 남편을 쉽게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죽기 직전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묘에 자신을 묻으라는 말로 남편을 용서한다.
저자는 자신의 아이에게 할아버지의 호인 ‘성야(星野:별이 빛나는 들판)’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역사와 동떨어진 개인은 없다. 개인은 역사를 이루는 강력한 하나의 점이다. 미국인 마거릿 주혜 리이자 한국인의 핏줄이 이어진 이주혜의 할아버지 이철하의 삶을 복원하는 작업은 현대 대한민국의 오늘과 이어지는 길이다. 저자는 “할아버지를 찾으며 마침내 집을 찾은 것 같다”라는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마거릿 주혜 리 지음/장상미 옮김/한겨레출판/408쪽/2만 2000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