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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사라지지 않을 영화
어떤 영화는 단 한 줄로도 설명 가능하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그 깊이를 모두 전달할 수 없는 영화가 있다. 그럴 땐 진부하지만 영화 보기를 꼭 당부한다. 보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으니 내가 느낀 감정, 영화가 주는 여운을 직접 느껴보길 권한다. 설명하긴 어려우나 꼭 보길 권하는 영화. 이강현 감독의 영화들은 대중적이진 않지만, 그의 작품을 접한 관객이라면 누구나 감정이 움직이는 어떤 순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4년 전, 이강현 감독을 영화 '얼굴들'로 처음 만났다. 기존에 없던 영화 형식에 놀라워하며 그의 다른 작품을 찾아본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신작 소식을 들려줄 것 같던 그가 세상을 떠났다. 슬픔 속에서 그의 영화를 다시 꺼내볼 줄은 차마 상상도 못한 일이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서 느리지만 그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온 감독임을 다시금 느끼게 됐다.
얼굴 3부작이라 불리는 ‘파산의 기술記述’ ‘보라’ ‘얼굴들’까지 누군가의 얼굴에 관심을 기울여 온 이강현 감독은 비극적 사건을 겪은 누군가의 얼굴, 모든 걸 내려놓은 참담한 얼굴들을 만나게 한다. 어떤 사건 속에 휘말린 얼굴 혹은 어떤 사건에도 휘말리지 않은 평범한 얼굴들은 ‘나’의 것일 수도 있어서 영화가 끝나고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감독의 첫 번째 작품 ‘파산의 기술記述’에는 IMF 사태 이후 달라진 2005년 풍경과 그 당시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느껴진다. 감독의 다른 작품들도 그러하듯 이 영화도 어떤 사건의 원인을 추적하고 고발하는 여타의 다큐 스타일을 따르지 않는다. 즉 그는 ‘파산’한 사람들만 조명하지 않는다. 파산한 사람들과 더불어 IMF 사태 이후 달라진 노동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과 IMF 사태로 무언가를 얻은 사람들을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그러니까 파산은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얼굴들’을 같이 담아내야만 온전히 그들의 삶을 기술할 수 있음을 감독은 묵묵히 전달하는 것이다.
다큐 ‘보라’는 노동 현장에서 숱한 산업재해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The Color Of Pain(고통의 색깔)’이란 부제가 달린 것처럼 영화는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삶, 그들이 산업재해로 질병을 얻을 수밖에 없었음을 알린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노동자에 대한 감독의 고발이나 비판이 먼저가 아니다. 사회 이면의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를 꼬집으며 바뀌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각시킨다. 그리고 밤샘 근무 속에도 인터넷을 하거나 가요를 듣는 관리자, 사진 수업을 듣는 학생들, 게임을 하는 노동자의 얼굴을 보여주며 노동자의 얼굴을 각인시킨다.
이강현 감독은 세 번째 작품에 이르러 극영화를 만든다. 그런데 그는 기존의 극영화들과 달리 기승전결의 내러티브에 의존한 해석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영화 ‘얼굴들’을 내놓는다. 먼저 이 영화는 ‘기선’과 기선의 옛 애인 ‘혜진’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실을 넘나들며 전개되는데, 영화에서는 분절된 신, 파편적으로 엮인 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나의 이미지들로 담아내고 있어 흥미롭다. 극영화이지만 마치 한 편의 다큐 같은 형식 그리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어긋나는 관계들, 흐릿하고 옅은 존재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묘하게 마음이 사로잡힌다. 사실 보고 싶은 건 이강현 감독의 얼굴이라서 그의 영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거리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내가 모두 설명하지 못해도 그의 영화가 영원히 빛날 거라는 사실, 그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다.
2023-03-1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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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진심을 말해야 하는 순간
글을 써봤거나 가르쳐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듣거나 해봤을 말이 있을 것이다. ‘진실한 글을 써라’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어라’ ‘진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고민해라’ ‘주변의 사물을 관찰하라’ 등등. 누구나 알고 있지만 사실 글을 써보면 내 이야기를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거짓과 가장을 섞어가며 쓴 글은 결국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상태가 되기 일쑤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글을 쓰는 일은 누구든지 어렵다.
대학 글쓰기 강좌의 강사 ‘찰리’는 온라인 강좌에서 학생들에게 정직하고, 진실한 글을 쓰라고 당부하며 수업을 마친다. 온라인 강좌답게 캠을 켜놓은 상태에서 강사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학생들 모습이 노트북 모니터에 비친다. 그런데 무엇 때문인지 강사인 찰리만이 자기 얼굴을 감춘 채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강의가 끝나고 카메라는 천천히 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272kg 거구의 몸. 스스로 움직일 수도 웃는 것도 먹는 것도 쉽지 않은 불편한 몸을 가진 그.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대학 글쓰기 강사가 주인공인 ‘더 웨일’
신경성 폭식증으로 272kg 거구가 돼
죽음 감지하고 오래 못 만난 딸과 소통
브렌든 프레이저 눈부신 연기 돋보여
영화 ‘더 웨일’의 찰리는 가정이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제자와 사랑에 빠져 가족을 버린 남자다.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선택한 삶이지만, 그 연인이 죽으면서 사랑 또한 지속되지 못했다. 이후 신경성 폭식증에 걸려 자신을 학대하다 결국 거구의 몸이 되어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거실에 앉아 온라인으로 학생들에게 에세이 쓰기를 가르치는 것. 찰리의 생존을 확인하고자 간호사 친구인 ‘리즈’가 그의 집에 들르면 함께 TV를 보는 일 정도다.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사는 찰리는 삶에 대한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 혈압이 234까지 치솟으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상태이지만, 찰리는 건강보험이 없어 병원에 갈 수 없다고 버틴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꽤 많은 돈을 모았지만, 딸 ‘엘리’에게 물려주기 위해 병원에 가지 않았다. 찰리는 자신의 목숨 따윈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이제 정말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음을 감지한 찰리.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딸에게 연락해 자신과 시간을 보내면 재산을 물려준다고 말한다. 그렇게 사춘기 딸과 짧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게 분노하는 딸과 보내는 시간은 녹록지 않다. 찰리도 가족을 버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부녀는 가벼운 소통조차 불가능해 보인다. 게다가 찰리가 집 밖을 벗어나지 못하기에 두 사람은 집 안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적절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관찰하며 대치하는 느낌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낙제한 엘리는 찰리에게 에세이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찰리는 학생들에게 말한 것처럼 엘리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써보라고 조언한다. 그게 엘리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자면 진짜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건 찰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람들에게 정직한 글을 쓰라고 해도 정작 자신은 친구와 가족에게 진실을 전하지 못한 채 죽기 전 딸에게 용서받거나 혹은 화해하고 싶은 것이다. 진심을 전하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어린 시절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줄 알던 엘리가 아빠에게 상처받은 후 진심을 숨기기 급급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서로가 진심으로 대할 때 그 감정은 전달되기 마련이다.
동명의 연극이 원작인 ‘더 웨일’을 빛나게 하는 건 찰리 역을 맡은 브렌든 프레이저의 눈부시고 화려한 연기 덕이다. 거구 역을 위해 보철 분장을 했고, 무거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껌뻑거리는 선량한 눈과 마주치게 된다. 그의 연기가 한 치의 거짓이 없음을 벅차오르는 울림으로 전달받는다. 저 아래 어둠 속에 있는 내 차가운 마음도 녹여내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진실한 연기를 펼친다.
2023-03-0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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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영화, 절대 망하지 않아!
코로나19로 격리와 해제가 반복되는 사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건 의미가 없어졌다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실제 코로나로 극장에 가는 관객이 줄어들었고, 제작자는 개봉을 미루거나 OTT 공개로 방향을 선회하는 선택을 하기도 했다. 함께 영화 보기가 불가능해지자 OTT 구독자는 점점 늘어났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정말 찬란했던 극장의 영광은 사라졌을까? 영화는 그 어떤 예술보다 늦게 탄생했지만, 대중이 원하는 바를 빠르게 알아차렸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기술의 발전에 발맞춰 영화를 경험하는 방법도 다양해지는 등 어떤 예술보다 눈부시게 진화했다. 동시에 영화는 가장 대중 친화적인 예술이 되었다.
영화 역사 영화적으로 접근한 ‘바빌론’
1920~1950년대 할리우드 민낯 그려
시대 변화 맞는 배우와 영화인 이야기
영화의 의미 되새기려 고전 영화 활용
미국 상업 영화 태동기와 부흥기를 소재로 영화사를 과감히 그려내면서 영화가 무엇인가를, 영화적으로 접근하는 작품이 바로 ‘바빌론’이다. 그것도 영화사 시간에나 배움직한 이야기를 3시간가량의 러닝 타임 동안 영화라는 매체를 빌려 황홀하게 그려낸다. 한시도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인물들과 섬세한 미장센, 강렬한 음악을 통해 급변하는 영화의 시간을 말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매력에 빠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보인다.
인상적이고 자극적인 오프닝 시퀀스를 지나면 영화의 제목이 왜 ‘바빌론’인지 알 수 있다. 화려했지만 타락했던 도시 바빌론. 성경에서 이 도시는 온갖 죄악의 상징이자 타락한 인간상을 투사한 곳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바빌론을 닮은 할리우드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스타들. 예술 및 실험 정신이 빛났던 유럽 영화들과 달리 할리우드는 대중문화 산업을 이끌어간다. ‘바빌론’은 바로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교체되는 192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를 시대 배경으로 삼으며 할리우드의 민낯을 그려낸다.
무성영화 시대를 대표하는 슈퍼스타 잭 콘래드, 야성의 매력이 넘치는 신인배우 넬리 라로이, 영화 일을 하고 싶은 멕시코 청년 매니 토레스 그리고 흑인 트럼펫 연주자 시드니 팔머의 이야기를 통해 할리우드의 낭만과 비극, 타락과 광기를 오간다. 하지만 영원히 빛나는 별이 없듯이, 영화 속 한 시대를 풍미했던 별들은 ‘자신의 목소리’로 연기를 해야 하는 순간이 도래하자 모든 것이 바뀐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존 콘래드는 유성영화 시대가 시작되면서 퇴물 취급을 받자 극 중 영화평론가를 만나 따진다. 평론가는 “당신의 시대는 갔지만, 당신의 재능으로 빚은 영화는 천사의 영혼처럼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이야기가 넘쳐남에도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영화를 즐긴다. 그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는 스타들, 영화 산업이 만들어내는 환상을 보며 달콤한 미래를 꿈꾼다. 할리우드를 떠났던 매니는 시간이 흐른 후 극장에 앉아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그가 본 것은 한 편의 영화가 아니라, 그가 보냈던 화려하고 위험천만한 바빌론, 그 속에 살았던 스타들과 할리우드를 꿈꾸었던 자신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한 시대가 끝나도 영화는 남아 매니의 마음을 울린 것이다. 그리고 이 엔딩은 영화 ‘시네마 천국’을 오마주하며 영화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라라랜드’로 배우를 꿈꾼 여성과 재즈를 사랑한 남성의 열정과 사랑을 그렸다면, 이번 영화는 할리우드의 역사와 영화를 사랑하는 감독의 마음을 드러낸다. 또한 코로나로 힘을 잃어가는 극장에서 ‘다시’ 영화를 체험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전한다. 별이 져도 영화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영화 혹은 극장도 시대와 상황에 맞게 변모한다. 상황이 이러한데 극장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말은 영화를 진정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한심한 소리다.
2023-02-1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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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유령은 죽지 않는다
마돈나처럼 완벽한 여자가 되어 짝사랑하는 일본어 선생님 앞에 서는 게 꿈인 고1 소년 동구의 이야기를 그린 ‘천하장사 마돈나’. 참신한 소재에 매력적인 인물을 내세운 이 영화 한 편으로 이해영 감독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졌다. 이후 그는 소녀들의 신비로운 얼굴에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로 독특한 미스터리물을 완성했고, 2018년엔 스타일리시한 연출력이 돋보였던 ‘독전’을 통해 감독의 이름을 대중에 각인시킨다.
영화를 내놓을 때마다 이전 작품과는 다른 결을 선보여 왔던 이해영 감독이 ‘유령’으로 돌아왔다. 한국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보는 것 같다는 평가처럼 독보적인 미장센을 담아낸 이번 영화는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한 스파이 액션물이다. 물론 대부분의 스파이물이 그렇듯 어디서 본 듯한 액션 장면도 분명 있지만, 이 또한 감독 특유의 분위기와 만나 새롭게 창조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1933년, 이제 조선이란 단어가 희미해져 갈 무렵의 경성. 누군가는 조선에 희망이 없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해방을 꿈꾸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철저히 숨기며 적을 처단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희생도 기꺼이 감내한다. 거기 있지만 없는 존재, 자신이 누구인지 존재를 노출해선 안 되는 항일조직인 흑색단. 그들을 일컬어 ‘유령’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유령을 모조리 색출해서 조선의 독립운동을 뿌리 뽑겠다는 일본. 이 충돌이 바로 영화 ‘유령’의 시작이다.
신임 총독의 경호대장인 ‘카이코’의 임무는 유령의 존재를 밝혀내 조직의 일원들을 처단하는 것이다. 총독부 통신과에서 암호문 기록을 담당하는 ‘차경’, 정무총감 비서 ‘유리코’, 감독관 ‘무라야마 쥰지’, 암호 해독 담당 ‘천계장’과 말단 직원 ‘백호’가 유령으로 의심받는 인물들이다. 영화 전반부는 유령으로 의심받는 5명이 외딴 호텔에 감금되면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유령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심리 추리극의 형식을 띤다. 이후 영화는 유령의 존재가 발각되면서 장르가 전환되어 한 편의 첩보극으로 흘러간다.
그런데 영화는 추리나 액션 외에도 영화 속 주요 공간과 소품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유령이 암호 전달을 위해 드나드는 아지트인 극장 황금관과 경성 주변 거리는 비밀스러움과 스산함이 묻어난다. 5명이 감금된 호텔의 경우 고풍스럽고 우아함이 넘쳐나며 영화 속에서 긴장감을 부여하는 소품인 성냥갑, 영화 티켓이나 포스터까지도 상당히 공을 들여 제작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인물들이 입고 있는 의상은 캐릭터의 개성을 살려주는 스타일로 시각적인 즐거움도 만족시킨다.
사실 지금까지 항일 독립투사가 등장하는 영화들의 경우 대부분 남성이 주인공이고 여성들은 주변부 인물로 등장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성들의 연대를 통해 항일투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특히 남성 캐릭터가 부각됐던 ‘독전’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겐 낯설 수도 있을 텐데, 감독 초창기 작품들의 결을 상기한다면 이번 영화 속 여성 연대는 감독이 이전부터 보여 왔던 작품들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영화 속 여성들이 함께하는 총격신과 액션은 단순히 적을 물리치는 것이 아닌, 유연하고 아름다운 몸짓 그리고 결연함까지 더하고 있어 기존에 볼 수 없던 장면들을 선사한다.
마지막으로 ‘유령’을 논하면서 배우들의 열연을 빼놓을 수 없다. 강렬한 액션신과 더불어 점차 서로를 신뢰하며 동료가 되어가는 과정을 흡입력 있게 그려내는 이하늬, 박소담과 애묘인으로 등장하는 서현우 배우의 연기는 기묘하면서 귀엽다. 이 영화가 어중간한 추리물이나 첩보물이 되지 않은 데에는 배우들의 힘이 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23-02-0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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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만화
농구 초보 주제에 자신을 천재라고 지칭하는 강백호. 백호가 리바운드를 배우고, 점프슛을 몸에 익혀 나가는 1년 동안 ‘나’도 백호와 함께 농구를 배웠다. 물론 코트에서가 아니라 글로 배웠다는 게 백호와 다르지만 말이다. 농구라고는 해본 적도 하고 싶은 적도 없었지만, 농구를 사랑하게 만든 그 작품. 1990~1996년 주간 만화잡지 ‘소년챔프’에 연재된 ‘슬램덩크’를 빌려보기 위해 책방을 들락날락거린 그 시절. 나의 학창 시절이 암울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슬램덩크’ 덕분이다.
일본 만화인지 국산 만화인지 알지도 못한 채 자연스레 접한 ‘슬램덩크’나 ‘드래곤볼’ 등의 만화책을 통해 꿈과 희망, 열정 그리고 유머를 배웠다. 그 중 ‘슬램덩크’는 꺾이려는 마음이 들 때마다 다시 일으켜 세웠던 그 시절 나의 특별 참고서였다.
1990년대 만화 ‘슬램덩크’ 영화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인기몰이
강백호 대신 송태섭이 주인공
3D 애니메이션·클린샷 장면 인상적
수업 시간 몰래 읽던 ‘슬램덩크’를 영화화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큰 기대감은 없었다. 만화책이 한창 인기를 끌 무렵 만들어진 20분 내외의 애니메이션은 만화 속 농구 경기의 스피디함과 역동성을 구현하기에 완성도가 턱없이 떨어져 충격과 실망감이 컸기 때문이다.
전국 제패를 꿈꾸는 북산고 농구부 5인방의 열정과 도전을 소재로 하는 만화 ‘슬램덩크’는 세계적으로 1억 7000만 부가 판매된 히트작이고, 한국에서도 1450만 부 가까이 팔린 수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만화이기에 극장판 소식은 누군가에겐 반가움을 또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망가뜨리는 건 아닌지 우려스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외면할 순 없었던 이유는 원작자인 이노우에 아케히코가 감독 겸 각본을 맡으면서, 그 시절 우리가 그리워했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먼저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원작에서의 마지막 경기 과정을 다루면서, 원작에 없는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북산고가 전국 제패에 다가가기 위해서 최강 산왕공고를 이겨야만 하는데 극장판은 원작과 동일하게 이 경기를 중심으로 진행하면서, 주인공을 백호에서 송태섭으로 바꾸는 선택을 한다. 천재 서태웅도, 불꽃남자 정대만도, 고릴라 주장 채치수도 아닌 송태섭이 주인공인지 궁금했다. 독특한 인물들이 즐비한 북산고에서 주목을 덜 받은 인물이 송태섭이기도 한데, 영화를 보면 감독이 왜 그를 주인공으로 바꿨는지 알 수 있다. 포인트 가드 태섭은 경기 전체를 들여다보고, 팀 내에서 가장 많이 움직이며, 골을 가장 잘 넣을 수 있는 동료에게 패스하는 팀의 사령관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돋보이기보다는 팀을 먼저 고려하고, 팀에 흐름을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어린 시절에는 화려하고 과감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덩크슛을 넣고 높이 날아올라 리바운드하는 플레이어를 보며 나 또한 그들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서 백호나 태웅이는 누구든 될 수 있지만,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태섭의 역할이 어려운 일임을 알게 되었다. 20대에 처음 ‘슬램덩크’를 그렸던 원작자도 만화의 팬들과 함께 나이가 들면서 화려한 북산고의 농구를 지탱하는 힘이 태섭에게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농구장에 들어온 듯한 현장감과 입체감을 주기 위해 3D 애니메이션을 도입하는데, 특히 정대만이 넣는 클린샷 장면은 디테일하고 부드럽게 느껴지는 등 기존 스포츠물과 다른 생동감을 부여한다. 또한 북산고와 산왕공고의 경기 종료 직전 모든 음악과 대사를 뺀 채 화면으로만 신을 구성하는데, 그 순간 극장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이미 결론을 알고 있음에도 다음 장면이 궁금해지는 건 이 애니메이션이 잘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2023-01-1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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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가족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
새해, 가족과 함께 보기 좋은 영화는 어떤 작품일까.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에 가서 기분 좋게 자리를 뜰 수 있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작품 말이다. ‘아바타’가 인기라지만 3시간가량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닌 듯해서 가족과 볼 만한 작품에서 제외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대중이 좋아하는 작품을 잘 만드는 감독을 이미 알고 있다. 그는 천만 명이 선택한 영화 ‘해운대’와 ‘국제시장’을 통해 국민들의 보편적인 감성을 끌어낸 감독으로, 영화를 자주 보지 않는 사람들도 극장으로 오게 만든 저력이 있지 않던가.
윤제균 감독의 8번째 영화 ‘영웅’이 개봉했다. 전작 ‘국제시장’에서도 그랬듯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일본 법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국한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준비하던 1909년 10월부터 죽음을 맞기까지 마지막 1년을 그린다. 그것도 뮤지컬 영화다. 한국에서 인기 없는 장르가 뮤지컬 영화인 걸 감안한다면 ‘천만 감독’이 선택한 ‘영웅’은 기획 자체가 모험 같다. 일례로 작년 염정아·류승룡 배우의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도 흥미를 끌 법한 요소들을 지녔음에도 신파와 대중음악의 결합은 비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내며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런데 ‘영웅’은 기존 한국에선 볼 수 없었던 뮤지컬 영화로 차별점을 둔다. ‘영웅’은 2010년 초연을 올린 뒤 뉴욕과 하얼빈 등에서도 공연되는 등 가장 대중적인 국내 대표 창작뮤지컬로 유명한 작품이다. 무대에서 보던 그 작품을 영화로, 그것도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역사의 한 대목을 다룬다는 점은 사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뻔한 이야기를 빤하지 않게 그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먼저 안중근의 일대기에 음악을 입혀 감동과 몰입을 불러일으킨다. 영화의 오프닝은 드넓은 설원 위를 걷던 안중근이 자작나무 숲에 이르러 동지들과 네 번째 손가락을 잘라내는 ‘단지동맹’을 맺는 데서 시작한다. 이 시작은 결연함과 비장미로 가득 차 있지만 ‘그날을 기약하며’를 부르는 안중근의 목소리는 묵직한 이야기를 한 톤 가볍게 접근하게 만든다. 또한 영화는 안중근 의사를 영웅으로 미화하기보다는 이토 히로부미의 처단이 동양평화론과 관계있음을 밝히고, 그와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동지들에 주목하게 만들면서 지금까지의 역사 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나아간다.
특히 주목했던 부분은 윤제균 감독의 전작들에서 남성 히어로(황정민, 설경구)들이 영화를 지탱했다면 이번 영화는 여성 캐릭터가 눈에 띤다는 점이다. 조선의 궁녀였다가 스파이가 된 ‘설희’와 안중근의 어머니 ‘조마리아’, 안중근의 아내 ‘김아려’, 독립운동가의 여동생 ‘진주’의 서사가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소소한 웃음을 안기다가 안중근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진주, 아들의 죽음이 조국을 위한 희생임을 알리는 어머니의 슬픔, 남편의 사형을 면하게 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아내까지. 그녀들은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 않음에도 임팩트 있는 장면들로 관객들의 뇌리에 남는다. 또한 자신들의 심정을 노래하는 부분은 감동과 더불어 뮤지컬 영화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모두 함께 부르는 ‘누가 죄인인가’와 죽음을 앞둔 아들에게 불러주는 어머니의 노래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는 그 목소리만으로도 심금을 울린다. 국내 최초 현장 라이브 녹음 방식이라고 알려진 것처럼 배우들이 촬영장에서 모든 넘버를 소화했고, 이는 생생하고 진정성 있게 전달된다. 그중 뮤지컬 무대에서 오랫동안 안중근 역을 소화해온 배우 정성화는 스크린을 통해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그의 연기와 노래에는 힘이 있고 깊이감이 더해져 마치 뮤지컬 무대를 연상시키며 영화를 안정적으로 지탱하고 있다. 새해, 가족들과 함께 보기 적당한 영화 한 편이 아닐까 싶다.
2023-01-0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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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우리'의 역사
손이 귀한 외가. 증조할아버지에겐 두 아들이 있었다. 장남은 내 외할아버지이고, 둘째는 일본할아버지셨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 한국말이 서툰 그를 일본할아버지라고 불렀다. 증조할아버지는 일본에서 살고 있는 막내아들이 제 뿌리를 바로 알아야 한다며 방학 때마다 안동으로 불러들였고,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는 일본할아버지는 나이 차가 많이 나지 않는 엄마와 산으로 들로 사진을 찍으며 다녔다고 한다.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일본할아버지는 제 아버지의 고향으로 더 이상 오지 않았고, 나는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서야, 외할아버지와 똑 닮은 일본할아버지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증조할아버지께서 어떻게 일본인 여성과 결혼했는지, 일본엔 어떻게 가셨는지 그 내력을 잘 모른다.
증조할아버지의 역사와 일본할아버지에게 국가는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어쩐지 이제껏 한 번도 여쭤보지 못했다. 다만 한국인 아버지를 두었다는 것만으로 일본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안동에서 결혼해 일본으로 건너간 할머니에게 건너 들었다. 나는 내 가족의 역사를 알지 못했고 지금도 모른다. 나는 양영희 감독의 영화를 보며 우리들에게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그리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역사 하나쯤은 가슴 속에 묻어두고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보았다.
양영희 감독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
최근 개봉 ‘수프와 이데올로기’ 등
재일코리안 가족 자전적 비극 다뤄
개인 넘어 민족의 참담한 역사와 연결
물론 양영희 감독의 영화를 단순한 가족사나 비극으로 정의할 수 없다. 감독의 아버지는 제주도 출생으로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오사카로 건너갔으며, 해방 이후에는 북한 국적을 선택하며 조총련 간부로 활동했다. 당시 많은 재일코리안이 북한 국적을 선택했는데 북한은 1957년부터 조선인학교에 원조금 등을 보내며 재일교포 사회에 관심을 보냈고, 일본에서 차별당하던 그들은 ‘지상낙원’이라고 알려진 북한으로 자식을 보내거나 가족들 모두가 이주하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었다고 한다. 이 사업이 바로 1959년부터 시작된 귀국사업(북송사업)이다. 감독의 부모도 아들 셋을 북한으로 보냈다. 재일코리안이 북송사업 때 북한을 가족을 보낸 숫자가 무려 9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재일코리안 사회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도 끊어내지도 못한 채 이어가고 있는 상처임을 알린다.
일본에 살았던 부모, 북한 국적을 가진 오빠들, 남한 국적을 가진 감독. 한 가족 안에 세 개의 국가가 공존하고 있는 아이러니를 양영희 감독은 평양 연작이라고 불리는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 극영화인 ‘가족의 나라’와 최근 개봉한 ‘수프와 이데올로기’까지 장장 17년의 세월 동안 담고 있다. 그런데 감독의 가족에게 일어난 일을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이 가족의 비극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이 만들어낸 참담한 역사와 연결된다.
특히 북한을 조국으로 여겨 세 아들을 평양으로 향하는 귀국선에 떠나보냈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던 딸의 방황과 소통을 다룬 ‘디어 평양’에 이어, 평양에 사는 둘째 오빠의 딸 조카 ‘선화’를 통해 감독이 겪었던 정체성의 고민을 조카도 겪고 있음을 ‘굿바이 평양’에서 밝힌다. 양영희 감독은 처음 만났을 때의 밝고 활기찬 선화가 시간이 지날수록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하는 모습, 메뉴 하나도 제대로 선택하지 못해 망설이고 불안해하는 선화를 통해 대물림되는 비극에 안쓰러워한다. 그리고 감독은 북한에 있는 아들과 손주들을 위해 돈과 생활용품을 보낸다고 박스를 꼼꼼히 포장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주는데, 어머니의 헌신이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충성인지, 자식을 볼모로 삼았기 때문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아마도 이는 분단, 재일교포, 북송사업, 제주 4·3 등 근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는 가족의 내력을 단순히 한 가족사로 볼 수 없음을 증언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22-12-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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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내게도 '요정'이 있었으면 좋겠다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이 찾아오면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하지만 그 마음이 로또를 사는 것과 다르지 않은 확률임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세상엔 설명할 수 없는 일도 일어나기 마련이니까, 그런 기적이 하나 찾아오길 바란다. ‘요정’은 바로 우리가 기다리는 기적 같은 일을 다루는 영화다. 그런데 이 기적은 동화처럼 허황되지만, 또 현실적이라 묘하다. 한 집 걸러 편의점이던 시대가 무색하게 요즘은 어딜 가나 카페 행렬이다. 장사가 잘될까 우려가 될 정도로 카페들이 들어차 있는 어느 중소 도시. 작은 카페를 운영 중인 ‘영란’은 우연히 만난 근처 경쟁 카페 사장인 ‘호철’과 눈이 맞아 부부의 연을 맺는다.
각각 카페를 운영하는 부부는 자신의 카페 수익이 더 높다며 신경전을 펼치지만 손님이 들지 않은 건 도긴개긴이다. 티격태격하던 부부는 더 이상 두 카페를 운영할 형편이 되지 않음을 인정하고 매출이 좋지 않은 호철의 가게를 정리하기로 한다. 하지만 임대 기간이 1년이나 남아 있어 방법이 없다는 건물주의 말에 부부는 체념하며 술잔을 기울인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호철이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키면서, 미스터리한 청년 ‘석’을 만나고 부부의 일상이 달라진다. 석은 교통사고를 문제 삼지 않을 테니 일자리와 숙식을 제공할 수 있는지 조심스레 묻는다. 부부는 석이가 의심스럽지만 지은 죄가 있으니 석이를 호철의 카페 직원으로 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바로 그날부터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손님이 없어 파리만 날리던 호철의 카페에 손님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카페 수익마저 영란의 가게를 앞지르자, 영란은 호철에게 찾아온 행운이 바로 석이라는 요정임을 눈치챈다.
중소도시 카페 사장 ‘영란’과 ‘호철’
서로 경쟁하다 눈 맞아 부부의 연
부부에게 요정 같은 청년 ‘석’ 등장
가벼운 판타지에 현실 반영한 전개
영란에게 기 한번 펴지 못하던 소심한 호철이 카페 매출이 늘어나자 단번에 음식물 쓰레기 당번에서 해방되고, 영란 몰래 전 부인에게 양육비까지 보낼 수 있게 되는 호철의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부부의 관계가 역전된 이유는 돈 때문이고, 이는 부부간에 불신의 원인이 되며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호철은 전 부인과 딸에게 못 해준 것이 많아 마음이 쓰인다면, 영란은 자신을 키워준 언니네 가족 일에 돈과 시간을 들이면서 정작 신경 써야 하는 부부간의 관계가 소홀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영란과 호철은 부부이지만 아직 서로를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영란이 석이라는 요정을 자신의 카페로 데려가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더욱 심화된다.
부부의 관계가 현실적이라면, 석이라는 존재는 판타지다. 석이가 카페에 있을 때 매상이 두 배 넘게 오르지만, 영화는 이를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석이에 대해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가족은 있는지 등 무엇 하나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행운이 깃들게 만든다. 실제로 영화를 보다 보면 석이가 진짜 요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신비롭게 표현된다. 또한 석이 같은 기적이 내게도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바라본다. 영화는 살면서 한 번쯤 기대하는 기적 같은 순간을 석이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석이는 요정이 아닐 수 있다. 카페의 매출이 오른 건 우연일 수 있다. 아마도 요정은 경쟁에 치이고, 노동에 지친 우리가 불러낸 환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영화는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 석이라는 인물이 가지는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점 등 부족한 부분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요정’은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가벼운 판타지와 현실과의 접점을 고려하며 경쾌한 방식으로 흘러간다. 또한 큰 사건보다는 소소한 일상을 전달하기에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영화인데, 영란과 호철을 연기한 류현경과 김주헌의 생활 연기가 없었다면 ‘요정’은 그저 그런 귀여운 영화로 기억됐을지도 모르겠다.
2022-12-0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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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인간이 착각하고 있는 것!
응원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 보고 있는 것 자체로 경이로운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작품이 있다. 69분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박재범 감독이 들인 시간은 장장 3년 3개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3차원에 실제 인형과 세트를 제작하고 이를 한 컷씩 카메라로 촬영해서 연결해 색다른 입체감과 사실감을 보여주는데, ‘엄마의 땅’이 바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기본으로 한다. 사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시간도 품도 많이 들어 요즘엔 많이 작업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감독은 세트와 캐릭터를 손수 만드는 등 애니메이션에 신비로운 느낌을 부여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고 한다.
시베리아의 눈 덮인 툰드라를 배경으로 하는 ‘엄마의 땅’은 유목 민족 예이츠 부족의 소녀 ‘그리샤’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다. 그리샤는 이제 막 생리를 시작한 사춘기의 예민함과 남동생과 다투는 모습까지 평범하고 귀여운 소녀다. 다만 소녀가 살고 있는 마을의 하루는 우리가 사는 하루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순록의 피와 살을 나누어 먹으며 자연과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이츠 부족에게 시베리아의 혹독한 겨울보다 두려운 사건이 벌어진다.
그것은 자연을 거스르고 숲(자연)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연합군 소속 ‘블라디미르’와 한때 부족민이었으나 어떤 사건으로 연합군을 돕는 ‘바자크’의 등장이다. 툰드라 땅은 이미 연합군의 영토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부족은 땅의 주인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블라디미르는 부족에게 국가와 민족,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땅을 떠나라고 회유와 강압을 이어나간다. 그는 마치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듯 행동한다. 하지만 부족민들에게 땅은 인간이 소유할 수 없는 것이며, 자연을 지배하는 진정한 주인은 따로 있다고 믿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리샤의 엄마가 병으로 쓰러지게 되면서 아빠가 도시로 약을 구하러 간 사이, 그리샤와 남동생 ‘꼴랴’는 땅의 정령이자 주인인 ‘붉은곰’만이 엄마를 살릴 수 있다고 믿으며 북쪽 땅 끝으로 모험을 떠난다. 남매는 부모에게 배운 대로 순록 썰매를 타고 숲의 나무를 해치지 않으며 자신들이 지나갈 수 있는 만큼의 길을 만든다.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자연이 주는 변화의 징후들을 알아차리려 노력한다. 늑대에게 쫒기는 위험천만한 사고도 있었지만 남매는 조용히 자연 속에 융화되어 가는 듯 보인다.
예이츠 부족은 붉은곰을 숲의 주인이면서 신성한 존재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죽음과 생명을 관장하는 존재이기에 또한 두려운 대상이기도 한 붉은곰. 그 실체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딘가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는 영적인 존재가 바로 붉은곰인 것이다. 그리고 붉은곰을 처단해야 부족민들을 회유할 수 있다고 믿는 블라디미르와 자신의 가족을 지켜주지 않았던 붉은곰에 적대적인 감정을 느끼는 바자크의 욕망은 붉은곰, 즉 자연을 파괴하는 욕망으로 나아간다. 자연을 훼손하려는 자들과 이를 지켜내려는 자들의 욕망이 충돌하며 영화는 한 편의 흥미진진한 모험극을 완성한다. ‘엄마의 땅’은 어찌 보면 단순한 서사로 진행되는 모험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리데기 설화와 이국 땅의 풍경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조합은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애니메이션에서 혹독한 추위를 표현하는 눈과 물, 불과 오로라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뭉클함이 전해지는데, 이것들은 천이나 스티로폼 등으로 감독이 손수 제작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한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에서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건 과찬일까? 우리에게 익숙한 디즈니물처럼 화려함은 없지만 다가오는 겨울, 가족들과 함께 관람하기에 좋은 따듯하고 우직한 작품임은 분명하다.
2022-11-2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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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가난, 그게 뭐라고?!
바닥에 불판을 놓고 고기를 구워먹는 부부. 아내 ‘정희’가 주인집이 전세를 올릴지를 남편 ‘영태’에게 묻자 영태는 쌈을 싸먹으며 “모르지”라고 무심한 듯 말한다. 부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언제고 그런 일이 생길 거라는 걸, 아는 듯 소주잔을 기울인다. 실직 상태인 부부에게 전세금이 오른다는 건 집을 떠나야 함을 의미하지만 그렇다고 뾰족한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까지 보면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가난을 이야기하는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가난을 사유하는 방식은 특별하다. 생활비를 걱정하는 정희가 “보일러를 아껴 쓸 걸 그랬나?”라고 말하자, 영태는 “우리 삶의 질도 중요하니까”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들의 삶이 가난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걸 예상할 수 있다.
영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실직에도 돈에 연연치 않는 부부
고군분투 속에도 품위 잃지 않아
비관 대신 스며든 유머에 웃음도
영태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면접도 보러 가고, 같이 일을 하자는 고교 동창의 제안도 받지만 직장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정희 또한 강사 지원을 해보지만 답이 오지 않는다. 생활비는 필요한데 일자리는 구해지지 않자 부부는 대리 기사와 배달 등 일용직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마저도 진상 손님과의 마찰로 쉽게 풀리지 않는다. 부부의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고 결국 불안감을 느낀 정희는 사채를 빌려 쓰기로 한다.
사실 열심히 알바를 뛰어도 나빠져만 가는 상황에 지칠 법도 한데 부부는 서로에게 큰 소리 한번 내지 않으며, 서로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영태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도 정희는 남편을 다그치기보다 그 회사가 이상한 곳이라며 남편을 위로한다. 그러고 보면 부부는 이상하다. 하루하루 위태로운 상황인데도 언제나 함께 소주 한 잔이나 밥을 나눠 먹으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들은 돈에 연연하지 않는다.
영화는 대략 이런 식이다. 직장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절박해 보이지 않고,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니 알바를 하지만 품위만은 잃지 않는다. 이 점은 부부가 가진 것 중 가장 값나가는 카메라를 선배에게 빌려주는 장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영태는 카메라를 빌려간 선배에게 연락이 없자 직접 선배를 만나러 간다. 그런데 믿었던 선배가 카메라를 팔아버렸다고 하자, 영태는 홧김에 카메라 값 300만 원을 억지로 받아낸다. 집으로 돌아온 영태는 돈을 너무 많이 받은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다. 결국 영태는 자신이 부당한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해 선배에게 100만 원을 돌려준다는 문자를 보낸다. 누구보다 돈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인간의 존엄과 신뢰와 도리를 먼저 생각한다는 건, 돈이 우선인 이 사회에서 조금은 이상하게 보일 정도다.
그러니까 부부에게 있어 가난은 조금 불편하고,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나 자신들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 원흉도 아니다. 그저 오늘이 가난한 것뿐이다. 내일을 위해 돈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는 가난을 말하는 여느 영화들과는 다른 리듬으로 진행되고, 우리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간다. 비관과 자조가 사라진 자리에는 잔잔한 유머가 스며들어 슬며시 미소 짓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 건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당연한 일상을 잊고, 낮에는 시원하고 밤에는 따듯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 삶을 누리기 위해 악착같이 일하고, 누군가를 상처 낼지도 모를 일이다. 돈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지만, 그 삶을 지속하기 위해 나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부부를 통해 생각해본다. 또한 실제 부부인 박송열, 원향라가 영화에서도 부부 역을 맡고 있으며, 감독과 제작까지 더하고 있기에 특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어 보인다.
2022-11-09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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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예측 불가능한 마음들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사랑하고 헤어지고 아파하고 고민하고 또 사랑에 빠지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청춘의 이야기를 다룬다. 특히 주인공 ‘율리에’라는 여성을 통해 20·30대가 느낄 혼돈과 고민, 사랑과 이별의 과정을 담백하게 그리고 있어 깊은 몰입을 유발한다.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도시, 오슬로를 배경으로 3인칭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12개의 장,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구성돼 마치 율리에라는 소설을 읽는 것 같다. 우리는 그녀의 인생 중 터닝 포인트가 되는 어떤 지점과 만나며 그녀의 이야기를 조금씩 알아나간다.
청춘 사랑·이별 그린 트리에 감독
누구나 공감할 인생의 불확실성
예상 비껴가는 주인공 선택 담아
그림 같은 오슬로 풍경도 ‘눈길’
29살의 율리에는 우수한 성적으로 의대에 진학했지만 어느 날 의사란 직업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해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시각에 예민한 기질이 있다고 생각해 사진작가가 되겠다며 카메라와 장비까지 구매한다. 이 지점에서 율리에는 자신이 했던 선택을 후회하기 보다는, 더 좋은 선택을 위해 기존의 결정을 과감하게 폐기할 줄 아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그 선택이 자신에게 ‘나쁜 선택’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다는 걸 아직은 모른다.
율리에의 나쁜 선택 중 하나가 바로 ‘악셀’과의 연애다. 악셀은 마흔 무렵의 유명 만화가로 이미 많은 경험과 명성을 가진 남자다. 그에 반해 율리에는 몇 번의 전공을 바꾸어 겨우 자신의 진로를 찾은 사회 초년생이다. 사회적 위치와 연령대가 다른 두 사람이 함께 하니 서로의 입장이 다름은 당연하다. 특히 악셀의 생활양식에 맞추다보니 반짝였던 율리에는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잊어간다.
율리에는 악셀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주인공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별을 고민한다. 바로 그때 그녀 앞에 운명처럼 새로운 남자 ‘에이빈드’가 나타난다. 에이빈드에게 끌리는 마음을 숨길 수 없던 율리에는 결국 악셀과의 사랑을 정리하지도 못한 채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한다. 이때 율리에의 마음을 포착하는 연출은 아름답다. 어느 아침, 율리에는 에이빈드를 만나기 위해 거리를 달려간다. 그 순간 도시의 시간은 정지되고, 우주는 마치 두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 보인다. ‘델마’와 ‘라우더 댄 밤즈’에 이어 오슬로 3부작을 만든 트리에 감독의 작품답게 이번 영화에서도 오슬로는 연인들의 애틋한 마음이 드러나는 공간으로 묘사되는데, 특히 율리에와 에이빈드가 함께 바라보는 석양이 지는 오슬로의 풍경은 그림 같다.
그런데 율리에의 이번 사랑도 위태하고 불안하다. 에이빈드와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미래에 대한 회의감과 에이빈드의 결점들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율리에는 전공을 바꿀 때도, 악셀과 이별할 때도 그랬다. 목표를 향해 돌진했지만 막상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서 헤매었다. 자신의 삶에서 조연으로 밀려나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정작 주인공이 되기 위한 방법은 알지 못한 채 갈등을 외면해왔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영화도 일관된 흐름을 가지지 않는다. 율리에의 사랑과 이별이 주된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페미니즘 논쟁과 자연환경 문제까지, 그리고 어떤 죽음을 통한 삶의 성찰까지 하나의 영화가 여러 갈래로 분기한다.
율리에의 선택 또한 예상을 비껴가기 일쑤다. 율리에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선택뿐만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감정도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다. 그로 인해 그녀는 이기적으로도 비춰지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공감이 가기도 한다. 우리 또한 율리에처럼 사랑에 빠지거나 이별로 방황했으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견디는 중이거나, 그 시기를 지나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이 그녀를 단단하게 만들 것임을 잘 알고 있다.
2022-10-26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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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밤과 유령, 그리고 눈과 해
1960년 4월, 시민들은 거리를 점령했으나 이듬해 5월 거리는 다시 군인들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짧은 승리 이후 오랜 암흑기를 거쳐 1979년 10월 박정희 정권의 철폐를 외치며 시민들이 다시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바로 소설 ‘밤의 눈’의 ‘옥구열’이 6·25와 4·19, 5·16 군사정변을 겪고 부마항쟁을 맞이한 인물입니다. 그는 폭력의 시대에서 살아남았지만 정치적 표적이 되어야 했으며 생존자 또는 유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잔인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저는 이 아프고 무거운 이야기를 오민욱 감독이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했습니다.
오민욱의 ‘유령의 해’는 조갑상의 장편소설 ‘밤의 눈’을 다시 쓰는 다큐입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 걸었던 거리를 다큐 속 인물 ‘승미’가 걷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걷는 수정동과 남포동, 부산역과 부산진역 일대는 무척 낯설고 모호해 보입니다. 그곳이 어디였는지 깨닫기도 전에 공간의 풍경들이 흐릿하게 뭉개집니다. 도무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풍경 속에서 승미의 위치를 짐작케 하는 건 부산타워입니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부산타워의 불빛만이 승미의 존재를 확인시킵니다. 소설 속 하늘의 ‘달’이 처참한 역사의 유일한 목격자였다면, 부산타워는 지금 이 시대의 불투명해지는 모든 것들을 지켜보는 증인 같습니다.
낮과 밤의 거리를 유령처럼 배회하던 승미는 어느 날 불현듯 사라집니다. 옥구열이 사라지지 않고 끝내 보고만 자유의 거리를, 승미는 버텨내지 못하고 사라져 버립니다. 그런데 승미의 사라짐의 이유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사라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니까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누군가 사라져도 의문을 가지지 않는 바로 ‘유령들’의 도시니까요.
‘유령의 해’는 오민욱 감독이 조갑상 소설가에게 ‘편지’를 보내며 시작합니다. 소설의 내용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한 편의 소설을 영화로 옮기게 된 경위를 편지로 씁니다. 이 오프닝은 마치 그의 전작 ‘해협’을 연상케 하지만, “육신 같은 문장”들을 영화로 옮기는 행위는 편지를 쓰는 방식과는 전혀 다릅니다. 승미는 한 통의 편지를 읽는 것처럼 소설의 문장들을 낭송하지만 이는 서사를 재현하기 위한 방식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입니다.
승미가 읽어주는 문장들을 가만히 듣다 보면 재현할 수 없는 문장들을 이미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가로등이 켜지고 네온사인에 불이 들어와도 어둠이 주는 모호함과 익명성은 짙어져 가고 인파로 넘치는 거리는 언제 불씨로 떨어질지 모르는 휘발성으로 가득 차 있”는 소설의 문장을 오민욱은 어둠 속 작은 불빛들의 점멸을 통해 표현합니다. 소설 속 빛과 어둠, 침묵, 두려움, 슬픔, 공포의 감정을 이미지화합니다. 도무지 영상으로 옮길 수 없을 것 같은 문장들이 이미지로 부유합니다. 감독의 말대로 소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아주 잠깐 왜 그가 조갑상의 소설에 매료되었는지 알 것도 같았습니다.
사적인 이야기와 소설이 혼재되던 승미의 내레이션은 어느새 거대한 역사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승미가 반복해서 걸었던 그 거리에는 역사적 사건들이 빠르게 기록됩니다. 4.19와 5.16의 푸티지, 거리를 점령했던 시민과 군인들의 모습이 병치됩니다.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과 성대한 국가장 그리고 2022년 승미가 머무는 작은 호텔로 걸려오는 집요한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 전화벨 소리까지 그 모든 것이 영화적 장치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서사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된 실험적인 다큐 ‘유령의 해’는 조금은 낯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편의 영화 속 의미를 모두 파악할 필요가 있을까요? 공간과 시간, 빛과 어둠, 감독이 표현하는 그 이미지들을 감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2022-10-12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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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성덕보다 힘겨운 탈덕
3년 전 유명 아이돌들의 성범죄 사건이 있었다. 사건의 가해자들은 거대한 덕후를 둔 스타들이었기에 그 충격은 상당했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된 다큐 ‘성덕’은 바로 그 범죄에 연루된 스타들의 팬, 이른바 ‘성덕’(성공한 덕후)이 주인공이다. ‘성덕’은 스타를 좋아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이야기를 다룬다. 스타의 성공이 마치 자신의 것인 듯 기뻐하고, 굿즈를 모으고, 스타의 하루를 공유하는 것이 즐거움인 팬들. 그런데 자신의 청춘을 바쳐 ‘덕질’을 했던 팬들은 스타의 범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다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다큐 ‘성덕’, 감독 자전적 이야기
좋아했던 가수, 성범죄 나락으로
혼란·죄책감 시달리는 팬들 위로
피해자 마음 아울렀다면 아쉬움도
다큐는 앞서 언급한 스타의 성덕이었던 오세연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다. 감독 또한 10대 시절 그 가수의 열렬한 팬이었고, 그 가수를 보기 위해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갔으며, 가수의 눈에 띄기 위해 팬 사인회 때마다 한복을 입었다. 어느 날은 그 가수의 이름이 적힌 명찰을 달고 방송에 출연하는 등 감독은 성덕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결국 그 가수도 기억하는 성덕이 되었다. 하지만 좋아했던 가수가 성범죄라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서 감독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느낀다.
감독의 입덕과 성덕 그리고 탈덕으로 이어지는 자기고백 이후,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성덕들과 만나면서 이야기는 확장된다. 범죄 사건의 가해자인 스타들의 팬들은 여전히 혼란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이 가해자인 듯 숨죽여야 했고, 또 그 스타를 응원하고 좋아했던 시간을 부정하는 동시에 그런 스타를 좋아했던 자신을 질책했다. 이때 감독은 성덕들이 느끼는 복잡한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덕을 위한 시간을 마련한다.
팬들은 어렵게 모은 굿즈를 진열하고, 국화꽃과 초를 놓고 ‘굿즈 장례식’을 거행한다. 좋아했던 시간 자체를 부정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진정한 이별식을 치른다. 그런데 다큐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덕질이 자신들의 세대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알린다. 고인이 된 배우 조민기의 팬이었던 감독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자인 태극기 부대까지 세대와 성별을 넘어선 덕질 문화를 살핀다.
그간 팬들의 덕질을 한때의 감정으로 평가 절하해온 기성세대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K팝 아이돌 산업의 폭발적 성장을 이루어 낸 핵심 동력에는 팬심이 자리한다. 팬들은 스타의 성장을 바라보며, 스타의 인기를 자신의 것인 양 기뻐했다. 여기서 감독은 자신이 좋아했던 스타의 추락에 괴로워하고 성덕인 자신을 원망했을지언정 팬 문화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좋은 영향을 받고 자기 삶을 윤택하게 꾸려나간다면 ‘덕질’은 여전히 긍정적”임을 주장한다. 감독에겐 실패한 덕질이었지만 그 마음만큼은 실패한 것이 아님을, 상처 입은 팬들을 만나며 서로를 위로하는 과정을 다큐는 그리는 것이다.
이번 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성덕’은 여러모로 주목 받는 작품이다. 다큐가 사회적 이슈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룬다고 생각했다면 ‘성덕’은 가볍고 유쾌한 방식으로 민감한 사안에 접근하고 있으며 대중성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팬과 전직 스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범죄자가 된 스타의 ‘팬’들을 위로하는 데 그 목적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지점이 존재한다. 이 다큐는 팬의 마음, 팬과 스타의 관계에 몰두한다고, 범죄의 피해자들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다. 물론 팬들의 마음은 진실 되고 위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 범죄로 여전히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피해자들의 마음까지 아우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2022-09-2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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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다시 찾아온 공동경비구역
한국영화의 화려한 서막을 쏘아올린 작품 중 한 편은 아마도 ‘공동경비구역 JSA’(이하 ‘공동경비구역’)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남북한 간의 총격사건이 발생하고 진상규명을 위해 남북한 합동 수사단이 꾸려지면서 시작한다. 하지만 수사단은 사건의 본질보다는 이념의 갈등으로 협상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이를 위해 중립국감독위원회는 한국계 스위스인 소피 장 소령을 파견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살인사건의 실체로 파고 들어간다.
새천년이 시작되고 만들어진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의 작품답게 미장센뿐만 아니라 한국영화의 저력을 보여준 동시에 남북문제를 인간 대 인간, 군인들의 우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첫 번째 영화로 대중적 인기도 함께 얻었다. 그리고 22년이 지난 후, ‘공동경비구역’처럼 최전방 GP에서 일어난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 한 편 개봉했다. 공동경비구역에서 우정을 나눈 군인들이, 2022년에 이르면 공동급수구역 JSA에서 단합하는 영화 ‘육사오’는 ‘공동경비구역’을 떠올리게 하지만 시종일관 가볍고 유쾌한 웃음을 만들고 있어 ‘공동경비구역’과는 또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로또 1등 당첨금 57억 얻기 위한
남북 눈치전 다룬 코미디 ‘육사오’
이념 갈등에 자본 결합한 기발함
시대 어울리는 소재로 웃음 유발
말년 병장 ‘천우’는 우연히 1등 당첨 로또를 줍고 달콤한 미래를 꿈꾸지만, 로또가 북으로 날아가면서 행복은 지속되지 못한다. 천우는 그 로또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그를 돕기 위해 뼛속까지 군인 ‘강 대위’, 어리바리해 보이는 관측병 ‘만철’이 남한 측 로또 원정대를 꾸린다. 그리고 로또를 주운 북측 군인 ‘용호’와 북한 정치지도원 ‘승일’, 대남 해킹 전문 북한 병사 브레인 ‘철진’이 로또 당첨금을 가지기 위해 남한 군인들과 협상을 시작한다.
영화 ‘육사오’는 코미디 영화지만 억지로 웃음을 유발하지 않는다. 로또 1등 당첨금 57억을 얻기 위한 남북의 치열한 눈치 싸움과 협상이라는 상황 자체가 주는 웃음은 자연스러우면서도 현실에서도 있음 직한 일이라 수긍할 만하다. 최전방 GP에서 일어나는 대북심리 방송과 공동급수구역 JSA에서 성사된 남북 평화회담 장면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무겁고 어두운 회담이나 체제 선전용 방송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서 모처럼 극장에서 낄낄대며 웃을 수 있다. 또한 ‘공동경비구역’에서는 협상 중재를 위해 한국계 스위스인 소령으로 배우 이영애가 등장했다면, ‘육사오’에서는 보급관 류승수가 평화의 중재자로 등장하고, 당첨금을 안전하게 전달받기 위해 포로 맞교환 대신 군인 맞교환 작전을 펼치며, 거액을 분배하기 위해 남한 막내 병사가 은행으로 가는 여정까지 영화는 차근차근 웃음의 단계를 높여나가고 있다. ‘달마야 놀자’ 각본을 쓴 박규태 감독이 15년 만에 연출한 작품이기에 웃음에 공을 더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제목도 눈여겨 볼만하다. 한국전쟁 날짜인 육이오(6.25)와 헷갈릴 수 있지만, 감독은 “로또를 보면 45개의 번호 중 6개를 맞히면 1등 당첨이라고 하며 그 의미를 담아 6/45”라고 설명한 바 있다. 소소한 웃음과 더불어 영화 장면마다 의미를 담아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공동경비구역 JSA’가 최근에 개봉했다면 2000년만큼의 파장이 일었을까 궁금해졌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분단국가임을 기억할 때는 정권이 바뀌거나 프레임을 바꿀 때 말고는 현실을 느끼기 어려운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산이나 통일이라는 단어가 아주 오래된 단어처럼 들리는 걸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육사오’는 어쩌면 조금은 민감하고 이제는 시들한 감정인 남북 이념 갈등을 ‘자본’과 결합하여 풀어나가고 있어 기발하다. 즉 지금 이 시대에 어울리는 소재라서 누구나 가볍고 경쾌하게 영화를 만날 수 있어 보인다.
2022-09-1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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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멀리 있지 않은 예술
‘작은새’ 김춘나 씨는 서예와 그림을 즐기고, ‘돼지씨’ 김종석 씨는 시를 쓴다. 노년의 부부는 전시회를 준비 중이고, 딸이자 감독인 ‘김새봄’은 부모의 예술성을 인정하며 부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다큐 ‘작은새와 돼지씨’는 감독이 부모 이야기를 전하는 사적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다가도, 예술이란 무엇인지를 묻는 자못 거창한 담론으로 향하고 있어 흥미롭다.
다큐는 딸 새봄이 유치원 재롱잔치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찍어둔 비디오 영상을 보여주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돌연 이 재롱잔치에서 돼지씨와 작은새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흥과 끼가 넘쳐나는 가족임을 알려주는 오프닝이 아닐 수 없다. 그 옛날 누군가가 찍어주었던 새봄의 재롱잔치 영상이 끝나면, 이제 새봄이 부모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한때 24시간 슈퍼를 운영하며 일과 쉼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했던 돼지씨와 작은새는 건물주의 집세 인상으로 슈퍼를 접고, 현재는 경비원과 주부로 살고 있다.
다큐멘터리 ‘작은새와 돼지씨’
부부의 서예와 그림, 시 창작
일상을 지속시키는 원동력 돼
프로와 아마추어 경계 묻기도
돼지씨와 작은새는 함께 밥을 먹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발톱을 깎아주거나 발바닥에 박힌 가시를 빼내 주는 등 여느 부부들처럼 티격태격하다가도 세상 없이 다정한 모습을 보여 준다. 그리고 아침이 밝아오면 돼지씨는 출근을 하고 작은새는 문화센터로 향한다. 두 사람의 일상은 평범하다 못해 단조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줄 아는 인물들임을 알 수 있다. 작은 아파트의 경비원으로 일하는 돼지씨는 일을 하는 중에도 영감이 떠오르면 낡은 연습장을 꺼내어 시를 쓰고 낭송을 한다. 문화센터로 간 작은새는 자신의 작품을 피드백해주는 사람들의 말에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로 답한다.
두 사람에게 예술은 오래된 취미이자 일상에서 오는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었다. 작은새는 슈퍼를 운영하며 오는 스트레스를 서예와 그림 그리기로 풀었다고 한다. 돼지씨의 시 창작 역사는 오래되었다. 작은새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를 시작으로 슈퍼에서 일할 때는 자투리 종이 조각과 담뱃갑에, 경비 일을 하면서는 광고지 이면에 시를 썼다. 새봄은 전시회 준비를 위해 돼지씨가 낡은 상자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둔 오래된 시들을 한 장 한 장 꺼내어 본다. 켜켜이 쌓인 시간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겨진 돼지씨의 시들이 세상과 만나는 순간, 그들이 바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예술가임을 알게 된다.
작은새와 돼지씨는 자신들을 예술가라 생각하지 않지만 그들에게 예술이 삶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큐에서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무엇인지 묻는 장면이 있다. 이는 곧 누구를 예술가라고 명명할 수 있는지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예술을 전공하고, 제도권이 인정하는 상을 수상해야 예술가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예술가는 누군가의 인정에서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그 자체를 사랑하는 이들의 것임을 영화는 말하는 것이다.
영화의 결말이자 하이라이트는 단연 작은새와 돼지씨의 작품 전시회다. 전시회 날 새봄은 사회를 보고, 작은새는 전시를 보러 온 관객들에게 작품을 소개하고, 돼지씨는 자신이 쓴 시를 낭송한다. 그동안 그들이 홀로 즐겼던 예술세계를 세상 밖으로 펼쳐 내는 작은 전시회는 소박하지만 감동적이다. 누군가는 작은새와 돼지씨를 보며 자신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얻을지도 모른다. 이 다큐의 매력은 바로 예술은 어렵고 낯선 것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즐길 수 있음을 말하는 데 있다. 돼지씨는 일상 자체가 곧 예술임을 말하고, 작은새는 일상의 어려움을 이겨 내기 위해 예술로 눈을 돌렸다고 말하는 데서 그들에게 예술은 거창하거나 멀리 있지 않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말을 건넨다.
2022-08-31 [1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