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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건만
별스레 추웠던 겨울이 가고, 온 세상이 봄이다. 시인은 찬란한 봄을 이렇게 읊는다.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김소월 시 ‘금잔디’) 이내 한라에서 백두까지 꽃잔치가 벌어질 것이다.
이 봄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가, 잠시 생각해 본다. 104년 전인 기미년 봄엔 “대한독립 만세!”의 외침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터졌고, 그 16일 뒤인 3월 17일에는 러시아 원동의 우수리스크에서 ‘대한국민의회’가 열렸다. 대한민국 최초의 임시정부로, 같은 해 4월 11일에 중국 상해에 세워진 상해임정보다 25일 정도 빨랐다. 그리고 우리는 이 봄에 4·3항쟁, 4·19혁명, 5·18항쟁을 겪지 않았던가.
유엔개발회의 “한국은 선진국”
경제 걸맞은 문화 품격 갖춰야
민족 시인 김소월 홀대 아쉬워
가장 개방적인 도시 부산에서
지난해 말 국제소월협회 출범
세계 향한 문화수도 거듭나야
이런 희생과 노력이 쌓여서 지난해 7월 스위스에서 개도국을 완전히 졸업하고 선진국이 되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1964년 설립 이래 대한민국을 최초로 그렇게 분류한 건데, 어떤 데이터는 우리의 국력이 이제 세계 6위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같은 외형적인 ‘폭풍’ 성장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대단히 아쉬운 대목이 있다. 바로 우리의 정신에 대한 이야기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대표하는 민족시인 김소월(1902~1934)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가. 문학관 이야기부터 해 보자. 한류 대중문화와 한국어가 전 세계를 휩쓸고, 전국에 123개의 크고 작은 공·사립 문학관이 있다. 그런데도 김소월 전용 문학관은 전국 어디에도 없다. 필자가 이 이야기를 주변에 하면 반문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아니, 다른 시인도 아니고, 김소월 시인을 우리가 그렇게 홀대해 왔다고요?” 유감스럽지만 그랬다.
탁 트인 태평양이 있고 한국전쟁 때 피란수도였던 부산은 한국의 도시 가운데 가장 진취적이고 개방적이다. 우리 도시는 2030월드엑스포 유치를 계기로 명실상부한 국제도시로 발돋움하려고 한다. 그런데 도시의 품격은 경제와 물류, 컨벤션만으론 안 된다. 문화를 키우고 문화를 확대 재생산할 때 도시는 내적인 위엄에 빛날 것이다. 식민지를 경험한 개도국에서 문학은 문학의 영역에만 머물 수 없었다. 근대 100년의 한국 문학사는 그 자체가 우리의 정신이고 근대사이며, 그 출발점과 정점에 소월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진달래꽃’ ‘초혼’ ‘엄마야 누나야’ 등 소월시를 애송하지 않는가. 소월의 시는 1946년 미군정 시기부터 교과서에 실렸고, 그동안 800여 종의 시집이 나와 있다. 320여 가수가 66편의 소월시를 노래로 불렀으며, ‘산유화’ 등 소월시를 소재로 한 인기 영화는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귀화시험에서조차 소월의 시가 단골로 출제되고 있다. 그런데도 민족시인을 기리는 문학관, 동상, 동판, 거리명 등 문화 기억장치는 이 나라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는 문화 최빈국들이나 보이는 초라한 모습이다.
소월은 1923년 일본 유학길에 오르면서 부산항에서 관부연락선에 오르고 내렸다. 그리고 누구보다 바다를 동경하여 10여 편의 바다시를 남겼다. ‘지역 연고성’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지역이기주의라는 좁은 울타리에 민족의 대시인을 가둘 순 없다. ‘산유화’ ‘개아미’ ‘첫 치마’ ‘비단안개’ 등 주옥같은 그의 시들을 낭송해 보시라.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과 사랑, 소월의 세계동포주의가 절절히 느껴지지 않는가. 오죽했으면 북한에서도 소월 시인을 ‘한반도 민중의 정서를 대변한 애국 서정시인’으로 재평가하며 이상화 시인과 함께 교과서에 그의 시를 다시 싣고 있을까.
다행히 지난해 12월 26일 부산에서 ‘국제소월협회’가 출발하였다. 1925년 12월 26일 매문사에서 시집 〈진달래꽃〉이 나온 바로 그날인데, 국민시인 소월의 위상을 되찾고 그의 맑고 높은 시 세계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부산시의회 정태숙 의원(교육위원회)의 노력으로 황령산에 ‘김소월 진달래길’ ‘생태문학 탐방로’를 조성하는 방안이 시의회 발언대에서 제안되었고, 부산시와 일부 기업이 이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는 시민의 입장에서 매우 반가운 소식이며, 소프트 파워 시대에 부산의 브랜드 가치를 문화적으로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수도는 모스크바이지만 ‘문화수도’는 발틱해의 항구 도시 페테르부르크이다. 우리 부산도 국제화와 함께 문학과 문화의 꽃향기로 대한민국의 문화수도가 될 수 있다. 다른 나라와 민족에 그들을 대표하는 괴테(독일), 푸쉬킨(러시아), 셰프첸코(우크라이나), 네루다(칠레), 리잘(필리핀) 등이 있다면 우리에겐 자랑스러운 김소월 시인이 있다. 부산역 광장의 ‘유라시아 플랫폼’에서 소월의 아름답고 고운 시들이 소월의 고향인 북한 땅 정주를 지나 저 넓은 유라시아 대륙으로,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지로 힘차게 달릴 날을 기대해 본다.
2023-03-27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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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63빌딩 크기 크루즈 승선 체험기
코로나 팬데믹 이후 바닷길이 열리면서, 국제 크루즈 운항도 아시아 곳곳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 홍콩, 대만, 일본 등 인근 국가에서 최근 아시아 크루즈 운항을 알리는 반가운 소식을 전하고 있다. 홍콩은 카이탁 크루즈 터미널을 모항으로 운항하는 리조트 월드 원(Resorts World One) 크루즈의 운항을 재개했으며, 대만 타이베이 근처 지룽항에서도 크루즈 입항 금지령 이후 3년 만에 카니발 사의 홀랜드 아메리카 라인 등 국제 크루즈가 올해 72회 이상 입항을 예고하고 있다.
크루즈 운항 재개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해외 관광객이 항공 노선 이외에 부산국제여객터미널로 3월 15일 기항하여 투어를 시작했다. 코로나 이후 3년 만에 속초를 통해 입항한 독일 국적 2만 9000톤급 아마데 아호로아마데아호로 지난해 12월 프랑스 니스에서 출항해 중남미, 일본, 한국, 동남아, 중동을 거쳐 5월 말 프랑스로 돌아가는 월드 와이드 크루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중단된 이후 한국에 입항한 첫 크루즈선이다. 이 크루즈는 19일 제주항을 통해 한국 기항을 마무리한다.
2023년 부산항 국제크루즈터미널을 통해 입국하는 국제 크루즈는 90항차 이상으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크루즈는 10항차 부산을 기항지로 예정하고 있다. 지난 3월 10일 요코하마 크루즈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하여 부산항을 기항지로 하는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크루즈호가 4박 5일의 특별한 시범 운항을 하였고, 필자도 시범 운행에 참가했다. 특히, 일본을 모항으로 크루즈 운항을 한 지 올해 10주년을 맞이하는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코로나 이후 새롭게 마련된 프로토콜에 따라 승객과 기항지 검역 절차를 준수하는 철저한 안전 운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프린세스사가 운영하는 크루즈는 크기에 따라 14만 톤 약 3600명 규모 탑승이 가능한 로열 클래스, 11만 톤 승객 2600~3000명 탑승 규모의 그랜드클래스, 9만 톤 2000명 탑승 규모의 코랄 클래스, 7만 톤 2000명 승선할 수 있는 썬 클래스, 3만 톤 670명 탑승 규모의 R-클래스가 있다. 프린세스 다이아몬드 크루즈선은 그랜드 클래스로 축구장 3배보다 살짝 작고, 250m 높이의 63빌딩보다 살짝 큰 크기다.
바다 위를 63빌딩이 가로로 누워 있다고 상상하면 어떤 느낌인지 실감 날 듯하다. 이런 크루즈 객실은 위치나 크기에 따라 스위트룸, 발코니룸, 바다 조망, 인사이드 타입으로 나뉜다. 또한 나이트클럽, 수영장, 헬스장, 쇼핑, 카지노 등 편의 시설도 아주 다양하게 있다. 특히, 모든 음식이 무료로 제공되고, 룸서비스도 무료다. 다만 술이나 탄산음료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크루즈 여행이 처음이라면 발코니룸을 추천하고 싶다.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망망대해를 혼자만의 바다로 즐길 수 있다. 승선 시 지급되는 승선 카드(Ship Card)가 신분증과 카드 결제, 객실 열쇠 기능까지 한다.
크루즈 안에는 다양한 국적의 승무원들이 있다. 객실, 식당과 주방, 안내 데스크 등에 배치되어 승객을 맞이하고 항상 친절하게 인사를 먼저 하거나, 오늘의 기분이 어떤지 묻고, 또 국적에 따라 간단한 인사말이나 감사의 표현을 승객에게 배우기도, 가르쳐 주기도 한다. 혼자라도 크루즈 여행은 쉽게 글로벌 친구들도 만들고 그들과 문화적 교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어쩌면 해외 1주일, 한 달 살기와 같은 유사한 경험을 크루즈 여행에서 맛볼 수 있다. 다양한 국적의 크루즈 승객을 옆방 룸메이트로 만나고, 일상을 나누고, 저녁이면 사교 파티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크루즈 여행 기간 이웃으로 지낼 수 있다.
크루즈에 머무는 동안 매일 아침 집으로 배달되는 조간신문처럼 크루즈에서 일어나는 각종 이벤트와 식사 메뉴 등이 빼곡히 소개된 책자가 모든 객실로 배달된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크루즈 안에서 매일 새로운 일정들로 바쁘게 보내거나 객실에서 무료 룸서비스를 주문하여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최대한 개인 취향대로 쉼을 즐기거나 다양한 국적의 글로벌 친구들과 매일 매일 신나는 파티 문화를 경험할 수도 있다.
이런 색다른 크루즈 여행이 비행기를 이용한 여행보다 아직은 낯설고 편하지 않다. 이는 김해공항이나 인천공항을 이용해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하는 것처럼,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출발과 도착하는 크루즈가 항공 노선만큼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는 6월 1일 부산에 본사를 둔 팬스타그룹의 팬스타엔터프라이즈에서 부산을 모항으로 일본을 기항하는 국제 크루즈선(코스타 세레나·승무원 1200명·승객 3000명) 운항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코스타 세레나 이외에도 부산을 모항으로 하는 크루즈선을 유치할 수 있도록 부산시, 부산관광공사, 부산항만공사, 관련 여행사 등 유관기관과의 협력으로 선사 유치 마케팅 활동이 절실히 요구된다.
2023-03-2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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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역행하는 노동개혁
노동개혁을 외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윤석열 정부는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청년 노동자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듣겠다고 했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과 주 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었지만 해결해야 할 일들은 여전했다. 일터에서 다치거나 죽는 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들리고, 초과근무를 하면서도 합당한 보수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만연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청년 노동자로서 ‘더 나은 노동환경’을 기대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작년 11월부터 시작해 최근 윤 정부가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보며 그 기대는 착각임을 알았다. 개혁은 개혁인데,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역행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는 현재 1주 최대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월 단위 이상으로 확대해서 1주일에 최대 80.5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주 평균 근로시간을 잘 관리하고 장기휴가를 활성화해서 과로를 없애고 생산성을 올리겠다는 것이 고용노동부의 설명이다. 물론 다양화하고 세분화된 현재의 산업군에 따라 노동환경이 변화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흐름에 발맞추어 탄생한 탄력근무제는 오히려 노동시간 증대와 과로사 증가라는 치명적인 문제를 낳았고, 주 52시간 노동 제도는 노사 협의만 있으면 일을 12시간 더 시킬 수 있는 퇴로를 열어 놓아 노동환경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개선하지 못했다. 이렇듯 노동자의 과로 사회가 개선조차 되기 전에 ‘주 69시간’ 정책으로 다시 노동 시간이 늘어난 셈이다.
일할 때 바짝 일하고, 일이 없으면 휴가를 몰아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이번 정책의 핵심 메시지이다. 매우 이상적인 선언이지만, 이런 환경이 가능한 일터가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최근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47.2%가 ‘유급 연차 휴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49.4%, 월 150만 원 미만 임금노동자의 55.6%는 자유로운 휴가를 쓰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금도 휴가를 자신의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은데 어떻게 장기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할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주 69시간’ 정책은 장기휴가라는 외피를 입고 있지만 결국 ‘노동시간 증가’를 내포하는 정책이다. 그동안 노동 정책의 국제적 추세는 일·가정 양립과 복지 중심의 담론으로 향하고 있었다. 성장과 개발을 위해 노동자들이 혹사당하던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국제적 흐름이었다. 이번 정부는 오히려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제도와 유사하다며 주 69시간 정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면밀히 따져 봐야 할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다. 독일의 경우 1일 8시간 이상 초과근로를 금지하고, 네덜란드나 벨기에와 같은 국가도 1주 40시간 또는 44시간으로 근무시간을 엄격하게 규정한다. 반면 대한민국은 2021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장시간 노동한다.
게다가 정부는 이번 개편 방안을 준비할 때 ‘청년 노동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선포해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MZ 노조로 불리는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는 정부의 새로운 노동개혁 방침에 반대의 뜻을 표명했다. “주요 선진국에 견줘 평균 노동시간이 많은 한국이 연장근로 시간을 늘리는 것은 노동조건을 개선해 온 국제사회의 노력에 역행한다”는 것이 이유다. 또한 노동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주 69시간’ 정책이 직접 노동하는 당사자들의 온도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정치의 발견〉의 저자 박상훈은 “정치가 중요하다는 것은 정치가 모든 것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상황 내지 인간이 만든 사회문제를 개선하는 데 있어서 매우 유력한 수단이자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책은 누군가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회적 합의다. 특히 노동은 먹고사는 문제 그 자체이기 때문에 민생과 직결되어 있다. 그 무게를 알고 있다면 현실적 고민 없이 이상만 있는 정책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고용부는 근로자 대표와 사용자가 서면 합의를 하며 근로시간을 조절하고 장기휴가를 적립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현재 근로시간을 누가 어떻게 정하는 것인지 정해진 바가 없다. 근로시간 저축계좌 제도를 어떻게 시행할 것인지도 구체적인 합의가 없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노동 현장의 온도를 느끼고 노동자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이 제도가 ‘과로사 조장법’이 되지 않도록 보완점을 모색해야 한다. 선언만 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 ‘정치’ 본연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2023-03-1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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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위기의 한국 외교, 올인은 안 된다
한국 외교가 위태롭다. 아슬아슬하다. 안정이 아니라 불안, 질서가 아니라 혼란의 시대다. 이유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국제사회의 거대한 변환에 있다. 국제사회가 구조적으로 크게 변하면서 한국의 외교 정책도 불확실성과 위기감에 빠져 있는 것이다. 작금의 국제 사회는 신냉전과 중상주의와 보호주의를 목도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국제사회는 탈냉전에서 신냉전으로 그리고 신자유주의 무역 질서에서 중상주의와 보호주의 무역 질서로 거대한 전환을 경험하는 것이다.
신냉전은 미·중 간 패권 경쟁의 산물이다. 국제정치학에서 패권안정이론과 세력전이이론, 장주기이론 등은 현존 패권국에 대한 신흥 패권국의 도전이 거세지는 시기가 바로 패권 전쟁이 가시화되고 국제사회가 가장 불안정한 시기라고 주장한다. 중국의 부상은 미국과의 패권 경쟁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미·중 간 무력 충돌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금의 국제체제는 미국이 주도하는 지구적 차원의 대중국 봉쇄 정책이 국제사회의 주요 관계를 거의 규정하는 체제다. 미국은 안보뿐 아니라 경제 분야에서의 중국 봉쇄와 고립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구조적 영향력을 벗어나 독자적인 외교 정책을 추구할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거의 없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먼저 안보 분야에서 미국은 중국을 압박하고 고립하기 위해 기존의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에 더해 새롭게 한·미·일 군사협력을 더욱 강화하려 하고 있다. 미국 시각에서 보면 한·일 간 역사적이고 영토적인 분쟁이 한·미·일 군사협력을 방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제3자 변제 방식은 미국의 이러한 인식과 기대를 반영한 정책이다.
경제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중국의 경제적 패권국으로의 성장을 차단하기 위해 열심이다. 미국은 신자유주의적 자유무역 질서가 중국의 배만 채워 주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자국의 차세대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한 보호주의와 중상주의에 나선 지 오래다. 이를 위해 차세대 성장 산업에서 중국을 고립시키고 미국이 이 분야에서 다시 국제적 표준으로 자리 잡기 위해 노력 중이다. 거대한 전환의 시기에 한국의 외교는 어찌해야 하는가?
첫째, 한국은 더 이상 어정쩡한 중립이나 균형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런 시기는 지났다. 현재 미국은 변함없는 글로벌 군사 패권국이며, 경제적으로 중국의 도전을 뿌리치고 다시 경제 패권국이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런 시기에 아직 패권국이 아닌 중국을 미국보다 우선시하는 외교는 한국의 선택이 될 수 없다. 미국 중심 외교가 지금으로서는 한국 외교의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에 올인하는 외교는 바람직하지 않다. 외교는 상대가 있고, 기본적으로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미국에 올인하는 외교는 우리가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내어 주는 관계를 만들기 쉽다. 한국은 미국에 올인하는 것이 아니라 미·중 사이에서 미국 쪽으로 무게 중심을 조금 옮기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외교적 균형추가 미국 쪽으로 조금 이동한다면 미국도 이에 상응하는 외교적 선물을 한국에 지불해야 한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 지원법에서 한국기업을 차별하는 것은 이런 인식에서 바라보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올인은 이렇듯 국가 간에 주고받는 관계를 저해한다. 받는 것 없이 다 내어 주는데, 알아서 잘 챙겨 주는 나라는 없다. 동맹도 마찬가지다.
둘째, 대외 의존 경제와 수출 주도 경제를 지닌 한국은 국제경제질서가 자유무역에 정초해 있는 것이 유리하다. 한국은 WTO 중심의 자유무역질서를 옹호하고 확대·강화해 나가야 하며, 지역주의 블록도 보호주의와 패권 경쟁의 도구가 아니라 무역 자유화의 수단이 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칩4 등과 같이 미국의 대중국 경제봉쇄가 더욱 확대되어 간다면 한국은 그 방향으로 함께하는 큰 기조를 세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방향으로 가더라도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지속하고 유지하려는 노력은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 중국 없는 한국 경제는 미국과의 경제 동맹만으로 제대로 보상받기 어렵다. 또 미국은 한국이 칩4와 같은 대중 경제 봉쇄에 참여하는 대신 그 반대급부를 반드시 한국에 지불해야 한다. 세상에 완전한 공짜는 없다. 동맹도 이런 주고받는 관계를 잘하는 동맹이 더 견고하고 더 오래간다.
나라의 운명이 불확실한 글로벌 대전환 시기에는 외교관계에서 위험 분산과 주고받는 자세를 견지하는 데 더 충실해야 한다. 올인은 안 된다. 너무 단순하고 위험하다. 올인은 전시에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시에도 외교는 살아 있고 적과도 대화를 하는 법이다. 중국과 완전히 척지고 미국에 올인하는 것은 한국의 생존 전략이 아니다. 올인이 아니라 약간의 무게추 이동이 답이다.
2023-03-1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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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장미의 이름
“1936년 봄, 한 작가가 장미를 심었다.” 리베카 솔닛의 최근작 〈오웰의 장미〉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자신의 정원에 장미를 심고 가꾼 이는 바로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이다. 전체주의를 비판하고 계급의식을 풍자하며 노동자의 현실을 드러내는 치열한 저항의 글쓰기로 유명한 오웰에게 장미라니, 어울리는 조합은 아닌 듯하다. 이 반전을 통해 솔닛은 오웰이 현실의 절망과 싸우면서도 사랑과 보살핌, 희망과 아름다움을 놓지 않는 사람이었음을 이야기한다. 오웰의 장미는 일상 속의 돌봄, 위기 속의 희망, 절망 속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의미한다.
장미가 떠오른 건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면서다. 여성의 날의 상징이 바로 빵과 장미인데, 이는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 원한다”는 슬로건에서 비롯되었다. 이 유명한 슬로건은 여성 참정권 운동가 헬렌 토드의 1910년 연설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의 투표권(참정권)은 이 나라에서 태어나 자신의 권리를 갖게 될 모든 아이들에게 집, 피난처와 안전을 의미하는 인생의 빵과 음악, 교육, 자연과 책을 의미하는 인생의 장미를 선사할 것입니다.” ‘빵’이 먹고사는 문제, 즉 생존권을 의미한다면, ‘장미’는 참정권으로 해석하곤 한다. 그러나 이 연설문에서 드러난 것처럼 참정권은 빵과 장미 모두를 위한 것이며, 이때 장미는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는 바임을 알 수 있다.
켄 로치 감독의 동명의 영화 ‘빵과 장미’의 대사처럼 “누구도 장미를 거저 주지 않았다”. 노예 해방과 더불어 1870년 흑인 노예에게도 투표권을 주었던 미국에서는 여성들이 쇠사슬을 몸에 두르고 백악관 앞에서 투쟁을 한 끝에 1920년이 되어서야 겨우 여성들에게도 투표권이 주어졌다. 전투적인 참정권 운동이 벌어졌던 영국에서는 여성 참정권 운동가 에밀리 데이비슨이 달리는 국왕의 경주마 앞에 몸을 던져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의 투표권이 주어진 것이 겨우 2015년이 되어서였다. 이처럼 여성이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누리고 제자리를 찾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희생과 거대한 운동이 있었다.
한국 사회 역시 여성 인권에 있어 커다란 진전을 일구어 왔다. 호주제가 폐지되고, 낙태죄는 위헌 판결을 받았으며, 여성 폭력을 가시화하고 법제화하는 데 성공했다. 아직까지 성별 임금격차는 OECD 국가 중에 가장 심각한 수준이고 유리 천장 지수도 전 세계에서 최고에 달하지만, 여성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위한 싸움에 한국의 여성들이 누구보다 치열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저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를 되찾는 여정이었다. “다 같은 인간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한국에서 가족법을 개정하는 데 앞장섰던 이태영 변호사는 가족법 개정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서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여성이 새로운 것을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제자리’를 찾았을 따름입니다.”
오늘날 현실에서는 여전히 생존권을 위한 빵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고, 또한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를 얻기 위한 장미의 투쟁도 벌어지고 있다. 어느 나라에는 히잡을 벗어던질 수 있는 자유가, 어느 곳에서는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지위를 누릴 수 있는 평등이 장미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이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여전히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안타깝다. 이란에서는 여성에게 강요되는 히잡 착용을 거부하며 목숨을 건 시위가 벌어지고, 여학교를 중심으로 독가스 테러가 일어나는 등 심각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정치권이 앞장서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여성의 인권과 성 평등 가치를 위한 노력을 폄훼하면서, 이를 보편적인 가치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올해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열린 한국여성대회 자리에 성 평등을 지지하는 외교관들도 참석하였는데, 주한 EU 대사의 말이 가슴을 울렸다. “우리는 여성들이 이룬 업적을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성 평등은 유럽연합과 여기 참석한 국가들의 핵심 가치이자 모든 정책에서의 우선순위다. 모든 여성과 소녀들은 자신이 선택한 삶의 길을 자유롭게 추구하고 동등한 기회를 가지며 동등하게 우리 사회에 참여하고 이끌 자유가 있다.” 성 평등 가치가 국제사회에서 보편적 상식임을 담담하게 드러내기까지 참으로 긴 시간이 걸렸다.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힘들게 얻어 낸 인생의 장미다. 우리 모두에게도 장미를 가꾸고, 인생의 장미를 누리고 살 권리를 당연히 받아들이는 마음이 필요한 건 아닐까. 세계 여성의 날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장미의 이름을 한번 더 되새길 수 있는 그러한 날이 되기를 염원한다.
2023-03-0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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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룡 칼럼] 다중심의 부산, 15분 도시로 가는 길
‘15분 도시’를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터널을 뚫고 고속도로를 내어 이동 시간을 단축하여 도시를 개조하는 일쯤으로 생각한다. 주지하듯이 우리 부산은 산과 구릉이 많아 도로가 부족하여 막히거나 정체가 빈번하니 지하를 이용하거나 우회로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그런데 15분 도시는 이와 같은 이동의 속도를 높여 도달하려는 목표가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이동성과 연관하여 소요된 시간을 되찾으려는 구상에서 비롯한다. 다시 말해서 일터와 여가 공간, 편의시설과 공원을 가기 위하여 이동하는 데 들었던 시간을 단축하여 15분 거리에서 이 모두를 수행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자는 도시 혁신의 기획이다. 주거공간과 일터가 분리되어 있어 시민들이 매일 자동차나 전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지 않다. 15분 도시는 이처럼 이동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되돌려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비롯한다.
〈도시에 살 권리-세계도시에서 15분 도시로〉를 쓴 카를로스 모레노는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를 드는 가운데 서울의 청계천 공원 조성 프로젝트를 도심 고속도로를 없애고 도로 밑에 감춰져 있던 하천을 복원하여 자동차를 위해 할애되었던 도시 공간을 삶의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사례로 든다. 그러니까 15분 도시는 기본적으로 자동차의 도시를 인간의 도시로 바꾸는 일로 나타난다. 집합 주거 단지인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비중이 높고 이에 따라서 일터와 학교와 여가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자동차를 줄이는 일이 쉽지는 않다. 더군다나 자가용차를 위신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의식이 지배적인 사회라면 차 없는 거리를 만들거나 주차장을 공원화하는 일이 수월할 수가 없다. 하지만 덴마크의 코펜하겐은 ‘5분 동네’라는 구호를 내세울 만큼 환경과 사회와 경제를 하나의 공간으로 수렴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와는 너무 먼 이야기에 속한다. 카를로스 모레노도 도시의 밀도 차이를 인정하면서 ‘30분 영토’를 제안하기도 한다. 여하튼 ‘5분 동네’와 ‘30분 영토’, 그 사이에 ‘15분 도시’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눈을 바깥으로 돌리면 서울 혹은 수도권 일극 체제가 우리 사회의 큰 모순 구조로 보인다. 그런데 로컬을 중시하는 이들은 서울이나 경기도에서 로컬이 강한 도시와 동네를 주목한다. 가령 모종린 교수 등이 쓴 〈로컬 브랜드 리뷰 2023〉을 보면 소중심의 문화가 있고 청년인구가 밀집되며 원도심 형태의 건축환경을 지니면서 로컬 크리에이터가 존재하는 도시 혹은 동네가 전국에 산재하고 있다. 부산의 경우 부산진구 전포동과 영도구 봉래동이 리뷰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여기서 말하는 로컬이 강한 도시와 동네는 그동안 유행한 창조도시 개념의 재해석에 가깝다. 15분 도시는 창조도시처럼 일과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중심에 두기보다 근접성과 시간에 중점을 둔다. 앞서 말한 카를로스 모레노의 말을 빌리면 ‘시간과 공간, 삶의 질, 사회적 교류가 밀접하게 연결된 품격 있는 도시 생활의 리듬을 만드는’ 방향이다. 이를 위하여 도시의 개발보다 도시에서의 삶을 개발하는 게 관건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부산이 15분 도시로 가는 길이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산복도로에 사는 사람들이 병풍처럼 수직화한 아파트의 출현으로 바다 경관을 상실하고 있다. 오래도록 도로로 덮인 하천이 쉽게 공원으로 변모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사람을 불러 모으는 장소는 도로가 아니라 공원이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부산은 15분 도시로 가는 기본 요건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바로 다중심적 도시라는 사실이다. 여러 개의 중심을 가진 도시라는 비전은 15분 도시로 가는 가장 긴요한 지향이다. 16개 구·군이라는 행정단위가 아니라 공간과 시간과 장소가 한데 어울리고 환경, 경제, 사회가 삶의 새로운 리듬을 만들 여러 권역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들 권역을 새로 나누면서 그 요건을 세심하게 조사하고 따져 볼 필요가 있겠고, 그다음으로 15분 도시로 갈 수 있게 하는 정책과 시민의 운동이 뒤따라야 하겠다.
‘C40도시기후리더십그룹’도 팬데믹 이후의 경제와 환경 그리고 인간을 위한 도시를 표방하는 핵심 개념으로 ‘15분 도시’를 채택한 바 있다. 결국 인류가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도시에서 살고자 한다면 15분 도시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시간에 쫓겨 허덕이는 삶에서 벗어나 근접성 속에서 일하고 만나고 노는 과정이 함께 이뤄지게 하자고 한다.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문화적으로 집적한 공간에서 그동안 강제된 시간에서 풀려나 새로운 생활 양식을 창출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15분 도시라면 팬데믹과 기후 위기를 맞은 우리 시대가 호응하며 만들어 가야 할 공통의 목표라 할 수 있겠다.
2023-03-0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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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수도권 전당대회’가 불편하다
더불어민주당을 상징하는 지역은 어디일까?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지역은 호남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 정당이다. 인천 계양을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이재명 대표와 서울 중랑을의 박홍근 원내대표를 비롯해 선출직 최고위원 5명이 모두 서울·인천 등 수도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지난해 8월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는 그야말로 수도권 의원들 간의 경쟁이었다. 본 경선을 끝까지 치른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자 중 비수도권 의원은 광주 서구갑의 송갑석 의원이 유일했다.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호남에서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는 정당이지만, 정작 유일한 호남 후보였던 송 의원은 10.81%를 득표하여 최고위원 선거에서 낙선했다. 그렇게 호남 정당으로 인식되던 민주당은 수도권 중산층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거듭났다. 어떻게 보면 민주당이 고질적인 지역주의를 타파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중심으로 이익이 대변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수도권 유권자 수 지방보다 많아
여야 수도권·MZ세대 민심에 민감
서울·경기·인천 중심 전당대회 씁쓸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 지방 외면
지방 소멸 지역 정치 소멸로 이어져
지역 정치 어떻게 복원할지 고민해야
사정은 국민의힘도 다르지 않다. 3·8 전당대회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지난해 12월, 주호영 원내대표는 “수도권과 MZ세대에게 호소력 있는 인물이 차기 당 대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게 국민의힘의 주요 지지 기반인 영남과 60대 이상에 머물지 않고 당이 확장성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인 건 잘 안다. 그러나 여야가 하나같이 수도권 민심을 지향점으로 삼고 거기에 맞춰 당을 재편하려는 현실은 씁쓸하다. 이는 캐스팅 보터로 역할하는 부동층이 다른 지역에 비해 수도권에 많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으로 인해 기본적으로 수도권이 보유한 표 자체가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로 대통령 선거의 선거인 수 변화를 2002년부터 10년 단위로 살펴보면 수도권 유권자의 비중은 는 반면 부산을 비롯한 다른 지역 유권자 비중은 감소해 왔다. 제16대 대선까지만 해도 전국의 46.9%를 차지했던 서울·경기·인천의 유권자 비중은 제18대 대선에서 48.9%로 상승했다. 급기야 지난해 치러진 제20대 대선에서는 50.5%로 절반을 넘기에 이르렀다. 같은 시기 부산의 유권자 비중은 8.0%에서 7.0%, 6.6%로 감소했다. 세종시 등의 개발로 충청권이 소폭 오르긴 했지만, 이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비수도권 지역에서 하나같이 유권자 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수도권으로의 인구 집중은 비단 지방대학과 지방 의료의 위기뿐 아니라 지방 정치의 소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만 봐도 그렇다. 용산을 중심으로 한 정쟁만 오갈 뿐 지역 현안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수도권 민심을 좇겠다고 대놓고 표방한 마당에 지역 문제가 제대로 다뤄지길 바라는 건 무리가 아닐까 싶다. 청년이라고 다르지 않다. 부산 출신에, 부산 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걸로 알려진 장예찬 청년최고위원 후보는 지난 14일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치러진 ‘부산·울산·경남 합동연설회’에서 지방대학 소멸과 부산엑스포 유치 등을 언급하며 “우리가 남이가”를 외쳤지만, 정작 대부분의 장소에선 이런 지역 문제 해결보다 “이준석을 제거하겠다”는 데 자신의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구 학자인 서울대 조영태 교수는 “저출산·고령화란 모두에게 평등하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 차별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구 감소의 충격이 대한민국 전체에 고루 미치는 게 아니라 비수도권에 집중적으로 가해진다는 의미다. 어느 나라든 완벽하게 균형발전을 이룬 곳은 없겠지만, 우리나라의 문제는 제2의 도시 부산도 그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부산의료원마저 의사를 구하지 못해 응급실 운영 시간 단축을 검토하는 건 상징적이다. 이런 와중에 모든 정치적 논의가 대통령 의중이나 전직 당 대표 처신에 쏠려 있는 건 비정상적이다. 이 나라 정치에는 중앙만 있어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를 우리나라의 망국적인 폐단으로 보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정치 인생을 걸었다. 그 시절엔 분명 그랬다. 특정 지역 출신들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자원을 독점함으로써 기회의 고른 배분을 저해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달리 생각해 보면, 비록 영남과 호남 두 지역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수도권으로 쏠릴 뻔한 자원을 다른 지역으로 배분한 측면도 있었다. 어느 지역이 먼저냐는 형평성은 차치하고서 말이다. 양당이 보여 주고 있는 ‘수도권 중심 전당대회’는 그런 점에서 불편하다. 원내 정당들이 하나같이 지역이라는 딱지를 떼어 내고 수도권만 바라보고 있는 현시점에서 지방 소멸과 더불어 지방 정치 소멸의 그림자도 함께 어른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각 지역을 어떻게 대표할 것이냐를 고민해야 할 때다.
2023-03-0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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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샌드박스 룰로 부산 스타트업 생태계 살려야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산 스타트업 창업자의 절반 이상이 부산을 떠나 서울로 가려고 고민 중이라고 한다. 왜 부산의 청년 창업가들은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는가? 부산시로부터 극초기 스타트업 자금과 행정적 지원을 받을 수는 있지만, 이후 성장을 위한 재투자를 받기가 어려운 것이 큰 이유로 꼽혔다. 이는 스타트업의 자금줄 역할을 하는 벤처 캐피털 대부분이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국내 VC의 90%, 부산을 대표하는 민간 벤처 캐피털인 BNK 벤처투자 본사도 서울에 있다. 스타트업 전문 엔젤 투자자들 모임도 수도권에 몰려 있으니, 전국의 창업가들도 서울로 몰린다. 부산의 창업가들도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간다. 별다른 인연도 없는 서울이 부산의 청년 창업가들을 반겨줄 리는 만무하다. 고생문이 열렸다. 그것을 알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으니 유니콘을 꿈꾸는 부산의 스타트업 CEO들은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부산시는 그러면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을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는가? 작년 말 부산시는 아시아 창업엑스포를 열어 부산 기반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 및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행사를 열었다. 이날 엑스포에는 평소 부산의 창업가들이 만나고 싶어 할 만한 화려한 멘토들과 VC들이 참석해서 자리를 빛냈다. 그러나 엑스포는 지속성이 없다. 부산 청년 CEO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발성이 아닌 지속적인 지원이다. 부산시도 스타트업 생태계의 지속적 지원을 위해 예산과 공간을 지원하며 나름대로 노력 중이다. 그러나 부산 스타트업 CEO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처럼 효과가 없다. 스타트업에는 당장 돈이나 사무실 공간과 같은 인프라 지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맥과 네트워크 같은 소프트 파워이다. 이런 소프트 파워는 부산시가 스타트업을 위해 사무실을 빌려주고, 예산을 지원한다고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부산에서 스타트업할 때 가장 큰 문제는 네트워킹이라고 한다. 회사를 운영할 때 자금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남들이 모르는 고급 정보다. 이런 정보는 업계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부산 스타트업들에 절실한 것은 서울에 위치한 스타트업들이 누리는 이런 환경이다. 성공한 선배들이 지나간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조언해 줄 수 있는 멘토, 정보를 나누면서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네트워크 등 실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좋은 학군에서 공부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사귀어서 학원 같이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하면 실력이 쑥쑥 느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부산 스타트업에는 상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스타트업 보육 시스템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이런 소프트 파워를 가지려면 해당 산업의 생태계 전반을 새로이 구축해야 한다. 한꺼번에 AI 산업, 로봇 산업, 바이오 산업 생태계를 동시에 키울 수는 없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한 분야를 정해서 집중 지원을 해 한 분야라도 서울보다 더 잘하는 분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서울의 기업들도 내려온다. 기업이 내려오면 인재도 따라 내려오고, VC와 같은 금융도 내려온다. 산업 생태계가 새로이 구축되는 것이다.
그럼, 부산은 어떤 분야를 먼저 키워야 할까? 아니 어떤 분야를 선택해야 서울보다 더 경쟁력이 있을까? 산업의 성장성은 높은데, 중앙정부와 금융기관의 규제 때문에 서울의 유망한 기업들이 해외로 뛰쳐나가는 분야가 있다. 바로 블록체인이다. 부산에서 블록체인 산업 분야에 ‘규제 유예 샌드박스 룰’을 적용해 보면 어떨까? 규제 유예 샌드박스 룰이란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하는 제도이다. 서울에서는 금융위원회가 주로 핀테크 분야 기업에 ‘혁신금융서비스’란 이름으로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하여 새로운 금융서비스가 출시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부산은 블록체인 특구이다. 블록체인 특구에서 산업의 혁신과 성장을 위해서 샌드박스 룰을 적용하여 블록체인 분야의 혁신적인 서비스가 출현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할 것을 제언한다. 만약 부산이 블록체인 산업 분야의 규제를 완화해 준다면 해외로 나가려던 서울의 유망한 블록체인 기업이 부산으로 올 것이다. 기업이 부산에 자리를 잡으면, 인재들도 부산으로 온다. 유망한 기업에서 실력을 키운 인재들은 새로운 기업을 창업한다. 그리고 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려는 VC도 부산으로 온다. 이렇게 부산 블록체인 산업의 선순환 구조가 완성되고, 스타트업 생태계도 자연스레 풍요로워진다. 이쯤 되면 서울의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멘토와 자금을 쫓아 서울역에서 부산행 KTX를 타고 올 것이다. 블록체인 특구, 부산시는 블록체인 기업에 샌드박스 룰을 하루빨리 적용하여 죽어 있는 부산 스타트업 생태계를 살려 보자.
2023-02-2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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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자성대인가 부산진성인가
1592년 4월 14일 새벽 6시, 조선을 침략한 왜군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1만 8700명의 왜군이 부산진첨사 정발이 지키는 부산진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성안에 있던 거의 모든 조선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정확한 수는 알 수 없지만, 전투 병력은 1000명 미만이었을 것이고, 백성들까지 포함하면 3000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 측 기록에는 “문짝 아래 숨어 있던 병사도 찾아내고, 엎드린 병사도 밟아 죽였으며, 남녀는 물론이고 개와 고양이까지 모두 죽였다”고 돼 있다. 그 현장이 현재 정공단이 있는 일대라고 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왜군은 부산진성의 배후에 위치한 증산에 왜군의 총지휘부라고 할 수 있는 부산진 왜성을 축조하였다. 현재 증산공원, 좌천시민아파트, 동구도서관 일대가 바로 그 자리다. 증산공원 전망대가 서 있는 곳이 성곽의 중심지에 해당한다. 성북시장 가운데를 지나는 성북로는 수정산 쪽에서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좁은 다리처럼 인위적으로 조성한 지형이다. 부산진 왜성의 동쪽 800m 거리에는 교두보적인 성격을 갖는 자성(子城)도 함께 축성하였다. 모성(母城)과 자성을 세트로 만든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참혹한 전쟁터
홀대 받은 ‘왜성’, 명칭도 바꿔
유적 역사성 살리기 위한 목적
하지만 현재 남은 것은 성곽뿐
동·서문 위치 복원, 원래와 달라
수치스러운 역사도 기억할 필요
지금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부산 지역에 쌓은 성들의 흔적을 찾기가 어려운데, 그나마 원형에 가깝게 남아 있는 성이 기장의 죽도 왜성과 자성대 왜성 정도다. 부산의 인구 증가와 도시개발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자랑스럽지 못한 유적이라고 홀대 받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당시 축조된 자성대 왜성의 성벽은 놀라울 정도로 잘 남아 있다. 현재도 왜성을 관광자원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논의는 비극적인 역사를 상기시키는 행위로 비난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피해 당사자였던 조선은 왜성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조선왕조실록〉을 인용해 보자.
병조가 아뢰기를, “북쪽 변경의 성제(城制)를 한결같이 왜성에 의거하여 고치라는 명령을 전달받았습니다. (왜에) 포로가 되었다가 나온 사람들이 전후로 많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중에도 전 좌랑 강항(姜沆), 부장 손문욱(孫文彧), 무안(務安)에 사는 무과 출신 정몽추(丁夢鯫)가 오랫동안 왜에 머물러 있었으니, 또한 필시 왜의 성지(城池)와 기계(機械)에 대해 상세히 알 것입니다.”(선조실록 33년 7월 17일 자)
임진왜란이라는 참혹한 전쟁의 피해 당사자들은 왜군이 쌓은 성의 유용성을 인정하고, 다시 있을지도 모르는 왜군의 침략에 대비하여 왜성을 그대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조선 후기의 부산진성은 왜군이 쌓은 자성을 있는 그대로 두고, 그 바깥을 에워싸는 방식으로 축조되었다. 평지의 성벽이 왜군에 의해 돌파되더라도, 왜성에 들어가 끝까지 방어하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왜성이 전후에도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게 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부산진성의 서쪽 경계가 경부선 철도와 가까웠다. 성벽은 현재의 부산진시장 동쪽으로 나 있는 진시장로 20번 길을 따라가다가 성남초등학교 북쪽을 지나 자성로 87번 길, 조선통신사 역사관으로 이어졌다. 동쪽 경계는 더조은방문요양센터 쯤이며, 거기서 서북쪽을 비스듬하게 올라가 KT남부산지사 서쪽을 지나 범일로 90번 길과 만난다. 이 길이 대체로 부산진성의 북쪽 경계라고 볼 수 있다. 다시 인근 부산은행 남쪽을 지나 남서쪽으로 부산진시장으로 연결되었다.
1872년의 지방지도에도 부산진성의 가운데 위치한 산 정상부에 성벽 표시와 함께 자성대(子城臺)와 만공단(萬公壇)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동쪽에는 부창(釜倉), 서쪽에는 객사 등의 관아 건물들이 보인다. 남문 바깥은 원래 바다였으나, 현재는 매립돼 남성초등학교가 들어섰다. 서문 바깥에는 영가대와 선창(船倉)이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왜군이 쌓은 왜성뿐이고, 부산진성의 동문과 서문은 원래 위치가 아니라 자성대에 바짝 붙여서 복원되어 있을 뿐이다.
복원된 서문에서 북쪽으로 가면 바로 왜성의 외곽 성벽이 보인다. 더 위로 올라가면 높이 10m에 달하는 왜성의 특징적인 성벽이 나타난다. 그렇다면 이것을 부산진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한정식집 현관을 들어서자 일식집이 나오는 격이다.
그런데 부산시는 ‘자성대공원’의 이름을 ‘부산진성공원’으로 바꾸었다. 조선 시대 부산진성의 일부였다는 역사성을 살리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부산진성이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한가, 아니면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그곳에 성을 쌓고 조선을 지배하려고 했던 사실이 중요한가? 참혹하고 수치스러운 역사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특히 왜 우리가 거듭 일본의 침략을 받게 되었는지도 기억해야 한다.
2023-02-2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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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두고두고 논란이 될 무죄 판결
법조계에서는 ‘자백 천국, 부인 지옥’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설프게 공소 사실을 부인할 경우, 괘씸죄로 형이 가중되는 경우가 많기에, 변호인으로서 유·무죄를 다투는 사건의 변론 방향을 정할 때는 매우 조심스럽다. ‘무죄 추정의 원칙’이 형사사법의 대원칙이라 하지만, 일단 기소가 되고 나면 ‘유죄 추정’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증거를 다투어 무죄를 선고받기는 참으로 어렵고도 드문 일이다.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받은 관련자들의 진술 조서에 일일이 부동의를 하고 법정에 증인으로 불러 반대 신문을 진행하는 형사 절차는 피고인에게 법으로 인정된 당연한 권리이지만, 그러한 증거가 수십 개일 경우 그 모든 진술을 부동의하고 증인 신문을 진행하는 일은 실제 재판에서 쉽지 않다.
기소 후 ‘공소 사실’ 부인 쉽지 않아
곽상도, 윤미향 등 무죄 판결 쏟아져
고위 공직자만 ‘무죄 추정 원칙’ 적용
교과서처럼 피고인 권리 철저히 보장
50억 원 퇴직금 누구에게나 가능할까
일반인도 법 앞에 평등한지 살펴봐야
몇 년 전, 업무상횡령죄 등으로 기소된 사건을 변론했다. 검찰은 20명 이상의 관계자들로부터 토씨 하나까지 똑같은 내용의 진술서를 받아 이를 모두 증거로 제출했지만, 그 내용이 실제 진실과 다르고 피고인에게 불리한 내용이었기에 모두 부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당시 그 사건의 재판장님은 변호인인 내게 “재판 과정에서의 증거인부에 대한 태도도 양형에 반영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라는 강압적인 발언을 하였다. 본격적인 재판 시작도 전에, 증거를 다툰다고 양형에 반영하겠다는 발언을 하다니,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재판부의 눈총을 받으면서 가슴 졸이며 수차례에 걸쳐 모든 진술자에 대해 증인 신문을 진행했고, 결국 무죄 판결을 받고서야, 그 모든 과정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그만큼 양형에 불이익을 입게 될까 봐, 일반인 입장에서는 재판 과정에서 공소 사실을 부인하고 증거의 신빙성을 다투어 무죄를 받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 어렵다는 무죄 판결 소식이 요즘 여기저기서 들린다. 곽상도 의원 아들 퇴직금 50억 원 뇌물수수 무죄, 윤미향 의원 업무상횡령 등 대부분 무죄,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에 대한 직권남용 무죄 등등….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의 무죄 판결 소식을 듣고 국민은 어떤 생각을 가질까.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 때문인 걸까, 사회적으로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만 유독 엄격히 적용되는 무죄 추정의 원칙 때문인 걸까. 재판 진행 횟수와 그 기간만 보더라도 교과서에서 나오는 표본대로 형사상 피고인의 권리를 철두철미하게 보장하고, 그 판결 역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원칙을 너무나도 잘 반영하는 것 같다.
사건 기록 전체를 보지 않고서 판결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곽상도 의원의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6년간 일하고 50억 원의 퇴직금을 받아 기소된 뇌물죄 사건에 무죄가 선고된 것은 일반 국민의 법 감정으로는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도대체 어떻게 곽 의원 아들이 6년간 일을 하고 50억 원이라는 퇴직금을 받았는데도, 곽 의원이 무죄를 받을 수 있었는지 판결문을 들여다보니 눈에 띄는 문구가 있다. “사회 통념상 아들은 혼인 후 독립적 생계를 유지했기 때문에 곽 전 의원이 아들에 대한 부양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곽 의원 아들이 받은 돈과 이익을 곽 의원이 직접 수수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대목에서 재판부는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놨다. 곽병채 씨는 곽 전 의원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화천대유에 입사할 수 있었고, 근무 기간, 월급 수준 등을 볼 때 50억 원은 국회의원 아버지가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상황인데, ‘사회 통념’이란 말이 일반 국민의 눈높이와 왜 이리 다른 것인지 모르겠다. 이번 판결 논리라면, 결혼하여 분가한 고위공직자의 자녀를 취업시켜 상여금, 퇴직금이란 명목으로 막대한 돈을 주는 방법으로 뇌물을 주면, 뇌물죄로 처벌받지 않을 수 있고, 고위공직자 입장에서는 증여세까지 면제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렇게 곽 의원은 50억 원 뇌물수수 무죄를 선고받고, 법정에서 나오며 “무죄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고 밝혔고, 검찰은 국민 상식에 맞지 않다며 항소를 했다.
대법원은 얼마 전 마약류관리법 위반 사건에서 ‘1심의 증거가치 판단이 명백히 잘못됐다거나 사실 인정에 이르는 논증이 논리와 경험 법칙에 어긋나는 등으로 그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면 1심의 사실 인정에 관한 판단을 항소심이 함부로 뒤집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이러한 대법원 판결까지 선고된 분위기 속에서 앞으로 검찰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사건을 항소심에서 어떻게 뒤집을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만약 이대로 무죄 판결이 확정된다면 두고두고 논란이 될 판결임은 분명하다. 더불어 고위공직자들 사건이 아닌 일반 형사사법에서도 그 무죄 추정의 원칙이 그토록 잘 지켜지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2023-02-2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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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재주는 AI가 부리고 우리에게 남는 건
2007년 처음 세상에 등장한 아이폰은 우리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고 파급력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혁신적이었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수많은 서비스가 탄생하고 사라졌으며 산업은 재편되었다. 그리고 2023년 현재 대화형 인공지능(AI) 챗GPT가 또 다른 혁신의 중심에 서 있다.
챗GPT가 주목받는 이유는 바둑을 두고 그림을 그리는 특수한 역할을 뛰어넘어 보고서를 작성하고 코딩을 짜며 사람의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전문직 면허 시험부터 대학원 시험까지 모두 통과할 수 있는 실력이라고 하니 과연 AI 앞에서 인간이 설 자리가 남아 있을지 걱정이다. 20년 뒤라고 어림잡아도 현재의 청년 세대는 AI 확산의 여파를 마주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의 허리’로 일컬어지며 한창 직업 활동에 종사하고 있을 장래의 중·장년 시기에 격변이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 업무 대체 가능 AI 속속 등장
현 일자리 존속 여부 두려움 커져
엄청난 능력의 AI도 맹점은 있어
육체노동·영성 등 분야에서 한계
거대한 기술혁신의 흐름 속에서도
인간 존엄성은 반드시 지켜 내야
자연스럽게 어떤 직종이 미래에 살아남고 AI에게 대체되지 않을지 고민해 본다. AI가 갖추지 못한 약점 혹은 AI와 비교해 인간이 지닌 강점에서 힌트를 얻자면 몸으로 하는 일, 감정을 다루는 일, 관계를 맺는 일이 먼저 떠오른다. 인간이 AI보다 탁월한 점으로 언급되는 보편적인 예시들이다. 우선 AI는 지능이기 때문에 신체가 없고 이성만으로 인간의 고유한 감정을 정확하게 헤아리기 어려우며 관계의 미묘함과 복잡성을 다루지 못한다.
구체적인 직무로 떠올려 본다면 육체노동, 심리상담, 대면영업 등이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일로 꼽힌다. 예컨대 AI는 우울증 환자에게 세로토닌과 수면제를 처방해 줄 순 있지만 우울한 감정의 내면을 살피고 심리에 공감하고 성찰을 돕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한편 관계의 줄타기는 특유의 눈치와 적절한 타이밍, 상황 판단이 중요하기에 대면영업과 외교 같은 일은 AI에게 버거워 보인다. 정리하자면 AI는 육체(Body), 영성(Spirit), 관계(Relations)라는 세 가지 요소에 결점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AI의 허점은 경제학이 전제하는 자본주의 작동 원리와 유사한 맥락을 공유한다. 시장경제는 신뢰에 기반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며 물리적인 실체가 없다. 또한 모든 인간을 무한히 이기적인 존재로 상정하기에 인간의 이타성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감정도 없다. 마지막으로 제한적인 게임이론과 비교우위 기능만을 강조하는 거래의 조건은 상호관계 및 국가 간의 지정학적 관계를 논의하지 못한다. 이는 이론과 시스템이 결코 포용하지 못하는 인간성에 관한 영역이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지난 역사를 통해 자증(自證)한 혁신적인 경제체제이기도 하다. 인간의 이기성이 촉발한 자율적인 경제활동으로 인류는 역사상 가장 빠르게 가장 큰 풍요를 이루었다. 동시에 자본주의의 등장은 자원 분배에도 기여했는데, 중세까지 극소수의 상류 계급만이 독점했던 부를 민주화하는 동력이 되었다. 물론 지금의 모습은 피케티의 역설대로 분배가 다시 왜곡되며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지만 말이다.
전문가들은 AI가 지식의 민주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전망한다. 인터넷이 이룩한 정보의 민주화를 넘어 앞으로는 전문 지식까지도 개인이 AI만 있다면 손쉽게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전문성의 경계를 허물고 지적 불평등이 해소되는 장밋빛 미래를 그려 볼 수도 있다.
거창한 이야기들이 쏟아지는 건 인공지능이 인류를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할 엄청난 창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역시 근대에 창조된 시스템이다. 편의상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펴낸 1776년을 기원년으로 삼는다면 최소 250년 동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근대의 대표작이다. 이는 초반에 언급한 아이폰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21세기의 발명품인 스마트폰은 인터넷과 네트워크 연결성이라는 시스템의 대발명에 부속해 있다. 구분하자면 ‘창조/대발명’과 ‘발명’으로 표현의 차이를 둘 수 있겠다. 즉 AI가 창조된 결과로서 챗GPT는 발명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향후 AI가 잉태할 발명은 무궁무진하다.
먼 미래 AI는 얼마나 무시무시한 시스템이 되어 있을까. 현대 자본주의 아래서 경험하는 한계성과 교훈에 비추어 반드시 지켜 내야 할 가치는 언제라도 인간성이다. 우리는 모든 걸 시장에 완전히 내맡겨 시스템적으로만 움직이도록 놔두지 않으며 부단히 지켜보고 수정하고 개입하고 개선한다. 사람에게 주어진 영역이며 그 일을 소홀히 할 때 사회적 안정성과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될 수 있다. AI가 거역할 수 없는 압도적인 흐름으로 몰려오고 있는 변곡점에서 AI의 장점과 기여를 취하면서도 잃지 말아야 할 절대적인 가치는 어쩌면 우리가 이미 겪어서 잘 알고 있는 것이다.
2023-02-1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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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 않는 이유
갈수록 태산이다. 2022년 2월 24일에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시작되었으니, 며칠 뒤면 꼭 1년이 된다. 이전에 북쪽에서 남쪽까지 우크라이나를 자주 여행했다. 1679개에 이르는 동슬라브 도시들의 ‘어머니’로 불리는 키이우. 가을이 되면 연분홍의 밤꽃이 유난히 아름다웠던 이 도시는 지금쯤 얼마나 파괴되어 있을까. 기다리고 기다려도 종전회담 소식은 없고 상황은 악화하고 있다. 두 나라 군인만 벌써 23만 명이 죽었다는데,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이 야만적인 전쟁이 끝날 것인가. 마구잡이식 징집을 피하여 인근 국가를 떠도는 20여 만 명의 러시아 청년들은 또 언제나 그리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전쟁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쩌면 베트남 전쟁(1960~1975)이나 아프가니스탄 전쟁(1979~1989, 2001~2021)보다 더 꼬여 있지 않나 싶다. 베트남 전쟁은 북베트남-미국,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소련-무자헤딘, 미국-탈레반의 양자 싸움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해당사자가 많고 전쟁의 배경과 전개 양상 또한 훨씬 복잡하다.
배경·과정 복잡한 국제전 양상
서방 “동진 않겠다” 약속 어겨
러시아 침공 유발했다는 의혹
내년 대선 앞둔 美 공세 강화
전쟁 종식 전망 갈수록 암울
핵전쟁 등 확전 우려 제기돼
수십 년간 미국이 부추기고, 결국은 러시아가 먼저 방아쇠를 당기고, 급기야 유럽, 이스라엘, 중국 등 전 세계가 직간접으로 얽혀 버린 국제전이 되어 버렸다. 우선 미국은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때 “소련이 독일 통일에 협조해 주면 미국과 서방은 독일 동쪽으로는 한 발자국도 진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지난 30여 년간 동진 정책을 고수해 왔다. 그동안 나토와 유럽연합은 여러 동유럽 국가들과 그루지아, 일부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였고, 특히 2013년 이후에는 우크라이나의 국내 정치 분열을 이용하여 그곳에 이른바 ‘곰 함정’(Bear trap)을 깊게 파고 거기로 러시아를 몰아갔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결국 러시아가 걸려들어 지금의 사태에 이르렀고, 러시아가 수세로 몰리자 미국과 서방은 대규모 공격용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보내겠다고 한다. 미국 ‘M1 에이브럼스’ 31대, 독일 ‘레오파드2’ 14대 등 총 321대의 서방 전차가 그것인데, 미국의 매파들은 이참에 러시아를 벼랑 끝으로 밀어붙여서 ‘곰 사냥’을 끝내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미국의 이런 공세는 2024년 11월로 다가온 미국 차기 대선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면 러시아라고 가만히 있겠는가. 이미 탄도미사일과 무인기를 동원하여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시설, 학교, 병원, 시골 마을 가릴 것 없이 폭격을 해 댔고, ‘3월 춘계 대공세’를 예고해 놓은 상태다. 게다가 러시아의 핵무기 격납고에는 6000개의 핵탄두가 있다. 그렇잖아도 푸틴은 2012년 재집권 이후 국내총생산(GDP)이 마이너스 성장으로 떨어지고 연금개혁과 금융위기 타개에 실패하는 바람에 국내에서 인기가 전만 못하다. 2014년 3월 크림반도 병합 이후에 지지율은 잠시 80%대로 회복됐으나, 최근에는 다시 60%대로 급락하고 있다. 가부장적 권위주의 정치 문화의 러시아에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60%라는 건 영구집권이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그런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군대를 그냥 뺄 리가 없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내부 사정은 어떤가. 거기에는 전쟁 종식과 평화회담의 희망이 있는가. 유감스럽지만 여의치 않다. 우크라이나 또한 우리처럼 진영 갈등이 심한 나라다. 동서 지역 갈등, 종교 갈등, 노선 갈등 등으로 나라가 좌우로 쪼개져 있고, 권력층의 부패와 외세 커넥션도 심하다. 여기에 원래부터 푸틴과 같은 편이었던 벨라루스의 루카센코가 노골적으로 러시아와 연합군을 형성하고, 중국과 북한이 러시아 군사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2월 6일 대지진으로 엄청난 인명이 희생된 튀르키예마저 중재국을 자처하며 은근슬쩍 러시아 편을 들고 나서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국제전 성격은 갈수록 짙어지는 추세다.
약소국 지도자는 줄타기 외교를 잘해야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지킬 수 있다. 균형외교에 실패하여 자기 국민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미국에 이어 영국 프랑스 독일에 대고 “장거리 미사일과 전투기까지 지원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이렇게 평화는 멀고 전쟁 당사자들 모두가 자신의 권력욕이나 작은 국가이익 속에서 ‘불장난’에 여념이 없을 때, 죽어나는 건 힘없는 우크라이나 서민이고, 에너지 가격과 곡물가 폭등에 시달리는 제3세계 민중들이다. 확전과 핵전쟁, 제3 세계대전의 검은 악령이 지구촌을 어슬렁거리는 가운데 하루하루가 바늘방석 같다. 코로나가 주춤해지니까 우크라이나 전쟁이 코로나를 대신할 태세다. 21세기에 이게 무슨 짓인지, 인간의 탐욕은 과연 어디까지인지, 지구촌이 많이 걱정된다.
2023-02-13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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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세계인을 유혹하는 도시, 부산
2022년 한 해는 관광·마이스 산업에 희망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완화된 방역 수칙으로 주요 국가의 비즈니스 목적형 국외 이동이 가능하게 되었다. 2023년 계묘년은 코로나19 여파가 남아 있고, 세계 경기 침체, 우크라이나 전쟁 이슈 등 다소 불안한 상황이 존재하지만 부산이 관광·마이스 산업의 새로운 트렌드를 선점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구글에서는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에 대한 검색량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접속한 노트북, 스마트폰 등을 이용하여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재택·원격근무를 하면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런 재택근무 또는 원격근무에서 한 단계 진화한 개념이 워케이션(Work-Vacation 합성어)이다. 근로자가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면서, 삶의 질적 만족도를 고취시켜 조직에 대한 충성도까지 높일 수 있는 참신한 경영 관리 전략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관광·마이스 분야도 이런 거대한 트렌드에 따라 새로운 비즈니스 수요를 잡으려는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정부는 관광도시 발리에 대한 전 세계 원격 근무자들의 높은 수요를 파악하고, 디지털 노마드 제세 지원 정책을 공표했다. 원격근무자들이 5년간 세금을 내지 않고 체류할 수 있도록 ‘디지털 노마드 비자’를 도입하여 장기 체류 방문객을 확대하고 궁극적으로 지역관광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는 전략을 수립했다. 일본도 ‘지방 재택근무제’를 실행하여 수도권에 있는 기업이 지방에 있는 인재를 뽑아 인력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일본 지방관광청들은 이를 지방 관광산업 육성 전략으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가균형발전을 목표로 정부가 원격근무 활성화를 지원하고 있는 만큼 관광 브랜드에 그 의미와 방향성을 담아 낸 것은 매우 유의미한 일이다. 2022년 9월에 부산시와 부산관광공사가 국제관광도시 부산을 전 세계에 세일즈 하기 위해 ‘관광 브랜드’를 발표했다. 부산 최초 ‘부산 관광 브랜드’는 즐기고(Play), 일하고(Work), 살고(Live) 싶은 도시 부산을 슬로건으로 하여 모던한 고딕 타입 서체로 부산(Busan)의 반전 매력을 상징화했다. 보라색은 창조와 영감을, 푸른색은 바다·혁신을 표현했다. 부산 관광 브랜드 개발을 위해 전문가와 시민 아이디어 3000여 개를 접수했고, 전문가 회의 등을 거쳐 최종 후보 3개를 마련했다. 이어 브랜드 전문가들의 선호도 조사를 거쳤고 ‘부산 관광 브랜드’로 결정됐다. 총 10개월이 소요됐고, 4만여 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이 브랜드의 키워드 안에는 관광·마이스 도시 부산의 지향점인 워케이션 개념이 충만하다. 또한 부산이라는 도시에 대한 대단한 자신감도 넘친다. “일단 놀러 와봐. 너무 좋은 거지. 산도, 바다도, 강도, 그 지역 역사를 고스란히 품은 원도심도, 세련된 현대적 감각의 도심도 단 30분 안에 어디든 갈 수 있으니 일단 와서 놀아봐. 그리고 일도 가능해. 그러면 다시 태어나도 부산에서 살고 싶을 거야”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국제회의 참가자나 여행객으로 부산에 한번 왔는데 사람들의 진심 어린 친절에 감동하고, 그래서 또 오고 싶고, 왔다 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살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세계 경제는 밝지 않은 전망을 내놓고 있고, 이런 어려운 경기 속에 극한의 합리적 소비자(관광객, 마이스 참가자)가 나타난 것이다. 보편적 경험보다 유일함, 차별화 등의 대체 불가능함이 뉴노멀 시대에 관광·마이스 산업의 생존전략이 되었다. 이들은 가성비를 추구하는 합리적인 행동의 소비자인 체리슈머(cherry-sumer)이기도 하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강조되는 평균 실종과 체리슈머 같은 거대한 흐름 속에 관광·마이스 산업은 무한의 도전을 받고 있지만, 관광 브랜드로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워케이션 실증 사업을 통해, 세밀하게 디자인된 맞춤형 상품으로 관광객(비즈니스 방문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 민관학은 혁신적인 협력을 이루어야 한다.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지나 우리가 기다리던 순간이 오고 있다.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마스크를 벗기 시작했고, 공항도 열리기 시작했다. 관광·마이스의 정상화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만 같다. 부산은 제2 도시, 동북아시아 물류 허브, 항만물류의 산업 도시로 불렸지만, 2023년에는 토끼처럼 껑충 한 단계 도약하는 다른 이름, 국제관광도시로 불릴 때가 왔다. 부산시민이 모두 함께 불러 줄 때 그 이름은 파동을 타고 에너지를 얻어 전 세계로 뻗어 갈 수 있다. 다 함께 주문을 외워 보자. “놀고, 일하고, 살고 싶은 도시~ 부산”이라고.
2023-02-0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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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추락하는 시장, 블록체인도 끝난 걸까
미니홈피 싸이월드는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이 등장하기 전 2000년대를 주름잡으며 1촌 맺기를 유행시켰다. 더불어 많은 이들은 싸이월드 서비스 종료와 함께 사용자들이 장기간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도 함께 소멸하는 아픈 경험을 했다. 유사한 사례는 게임 업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온라인 1인칭 슈팅 게임 서든어택을 만든 개발사 게임하이가 넷마블과 게임 유통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게임하이가 넥슨에 인수되면서 넷마블과의 계약 연장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넥슨은 서비스의 연속성을 위해 넷마블에 사용자 데이터를 요구했지만, 양사 간의 마찰로 데이터가 공유되지 못했다. 결국 사용자들만 불편과 손해를 감내해야 했다. 얼마 전 있었던 카카오 서버 다운 사태도 그렇다. 또 시중은행이나 증권사 전산 장애처럼 시스템을 통제·관리하는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사용자의 데이터 사용이나 처리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서비스 종료돼도 데이터 보유
탈중앙화로 민주화 이끌 기술
코인 가치 급락 냉각기 불구
각국 법규 정비로 제도권 편입
투기성 거래만 보고 비난 말고
기술 잠재력·파급 효과 이해해야
블록체인은 이처럼 중앙화된 기존의 데이터 시스템에 반기를 들고 탈중앙화, 보안성, 투명성, 신뢰성 등을 핵심 가치로 두고 개발된 기술이다. 블록체인은 참여자 모두가 데이터를 검증하고 동일한 데이터를 대조·보관한다. 이로써 수많은 참여자를 한꺼번에 해킹하지 않고서는 데이터를 탈취하거나 위·변조할 수 없다. 모든 참여자들이 데이터를 확인하고 모니터링이 가능한 투명성까지 갖췄다. 수많은 참여자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동일한 데이터를 공유하기 때문에 고장, 정전이나 네트워크상에 장애가 발생해도 다른 통신망이 계속 작동하여 데이터의 가용성과 신뢰성이 유지된다.
블록체인 기술이 싸이월드나 서든어택에 적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싸이월드에 저장해 둔 사용자들 개인의 무수한 글과 사진을 마음껏 즐기고 공유하고, 친구들과 애틋한 추억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게임 내에서 많은 경기를 통해 획득한 전적이나 레벨 데이터, 구매한 아이템 등은 게임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어디든 상관없이 게임 유저가 자유롭게 옮겨 갈 수 있다. 심지어 게임 서비스 자체가 없어져도 관련 데이터 자체는 그대로 보유할 수 있게 된다. 중앙화된 시스템과 달리 정전이나 장애가 발생하더라도 다른 참여자를 통해 얼마든지 데이터 사용의 연속성이 보장된다. 이런 마법 같은 일들이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구현되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다채롭게 만들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특정 소수가 데이터를 통제·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 누구나 함께하는 방식, 즉 데이터 통제·관리에 있어서 ‘민주화’라는 혁신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전 세계를 강타하자 블록체인 기술의 아이콘이 된 비트코인은 한때 단 1코인이 8000만 원을 호가하고, 투자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2022년 하반기 들어서면서부터 빙하기라 부를 정도로 각종 코인과 토큰의 가치가 하락하고 관련 시장은 급격히 위축되고 말았다. 반면, 웹 3.0 시대의 핵심 기술 중 하나로 블록체인이 포함되고, 가상자산에 대해서는 각국이 법규를 정비해 제도권 내로 편입하려 애쓰고 있다. 해외 유명 금융기관들은 가상자산이 기존 자본시장에 포섭되는 것을 기정 사실로 보고 관련 시장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이러한 괴리는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된 부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가상자산 투자 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부산시는 블록체인 기술에서 성장 동력을 찾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을 기대하며 각종 정책과 방안을 계획 및 시행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상반된 모습이 상존하는 것에 당황해서는 안 된다. 블록체인이 개발된 배경과 잠재력을 직시하고 방향을 잘 설정해야 할 것이다. 아직 블록체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가 대중들 사이에 충분히 형성되지 않아 오해의 여지가 많다. 코인이나 토큰은 블록체인 기술을 발전시키고 꽃피우기 위한 자금 확보를 목적으로 블록체인 개발자들이 고안해 낸 새로운 자본확보 수단일 뿐이지 블록체인 그 자체가 아니다. 금융당국이 촘촘히 쳐 놓은 규제에도 불구하고 라임 펀드, 옵티머스 펀드와 같은 천문학적 규모의 금융사고들이 발생하고 있듯이, 코인·토큰 관련 사기 혹은 투기성 거래는 사용하는 사람의 문제이지 블록체인 자체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부산시를 비롯해 블록체인을 먼저 깨달은 소수가 대중들에게 블록체인이라는 구호만 앞세워 혁신의 대열에 함께하라고 강권해서는 곤란하다. 가상자산 시장이 냉각기를 갖고 있는 지금은 블록체인 기술의 잠재력과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해 충분한 이해와 공감대를 끌어내는 일에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2023-02-0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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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MZ를 배우는 MZ
“요즘 MZ세대들은 이런 말 쓴다며?” 최근 이런 얘기 들을 기회가 많았다. 처음 몇 번은 당황스러웠지만, 이젠 꽤 변죽 좋게 “아유, 그럼요” 하며 받아친다. 적극적인 동조처럼 보이지만 사실 소극적인 방어다. 나는 여기도 저기도 속하지 않는 회색지대 MZ이기 때문이다. ‘제 생각은 좀 달라요’ 하며 MZ세대와 스스로를 분리하는 ‘요즘 애들’이 있는가 하면, ‘저는 MZ세대처럼 말하고 행동해요’라며 트렌드세터(유행 선구자)를 자처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침묵함으로써 ‘MZ세대’ 이미지에 조용히 편승하는 편에 속한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인터넷으로 MZ를 배우는 MZ가 되어 가고 있다.
자기 주관과 개성이 뚜렷한 세대. 아마도 요즘 온라인 세상에서 그리고 있는 MZ세대의 모습인 듯하다. OTT 플랫폼 쿠팡플레이에서 공개되는 코미디 프로그램 ‘SNL’은 20대 사원들을 현실감 있게 그려 내 대중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 채 노래를 들으며 일하고, 상사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되려 상사를 눈치 보게 만들고, 의례적으로 막내들이 해 온 행동들(수저 놓기, 물 떠오기, 자진해서 심부름하기)을 하지 않는다. 물론 과장이고, 속으로야 한 번쯤 생각해 봤을 상황이다. 대놓고 과장된 캐릭터들이 등장해 불편한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그게 웃기다. 불편하면서도 짜릿하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요즘 애들’에 편승하는 이유일지 모르겠다. 문제의식은 있는데 용기는 없는 마음을 콘텐츠가 대변해 준다.
사실 현실에서 미디어 속 MZ세대처럼 할 말 다하고, 남들 신경 안 쓰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는 사람을 실제로 본 건 손에 꼽을 정도다. 어쩌면 남을 지나치게 신경 쓰기 때문에, 남들로부터 더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하는 ‘요즘 애들’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 속 MZ세대는 사실 실체가 없다. 어디를 가나 회자되는 MZ 밈(유행 콘텐츠)도, 사실 온라인 세상에 존재하는 모방 콘텐츠의 산물일 뿐이다. MZ세대의 이미지는 왜곡된 채로 일반화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MZ 문화가 트렌드를 지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MZ세대 문화를 향유하는 것에 일종의 이익이 따라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젠가 “MZ세대로서의 이미지가 먹힐 때 휴가를 쓰자”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 있다. 나에게 주어진 정당한 휴가인데도 상사 눈치를 보고 쓸지 말지를 결정해야 할 때가 있는데, 이왕이면 MZ세대 문화가 유행처럼 퍼져 있을 때 휴가를 쓰자는, 웃기지만 다소 슬픈 이야기다. 노동환경이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눈치 보기’가 팽배한 경직된 사회 속에서 ‘눈치 없는 척’ 휴가를 쓰는 건 누군가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상황에 놓인 노동자에게 새로운 문화는 ‘요즘 애들처럼 한 번 해 보자’ 하는 용기를 줄 수 있다. 조직도 중요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로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도하게 눈치를 보며 쉬지 못하는 상황은 피하자는 것이다.
<불안>의 저자 알랭 드 보통은 “유머는 불만을 제기하는 데 특별히 효과적인 방법이다. 겉으로는 즐거움을 주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은근히 교훈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만화가들은 우리가 혼자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아주 어색한 측면들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한 이 지점이야말로, 현대인들이 MZ 콘텐츠를 소비하고 즐기는 이유가 아닐까. 꼰대 같은 상사를, 책임감 없는 누군가를, 배려 없는 타인을 대신 일갈하고 자신의 행동도 돌아보게 만드는 것. 이것이 유머 콘텐츠의 순기능이다.
사실 MZ세대 문화는 전 세대가 즐기고 향유할 만한 문화다. 우리는 모두 답답한 일상에서 ‘사이다’ 같은 일침을, 비상식적인 규칙에 대한 반기를,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는 당당한 태도를 꿈꾼다. 지금의 MZ와 멀어 보이는 기성세대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언젠가는 청년이었다. 미디어를 통해 본 X세대는 지금의 MZ보다 더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변화를 이끌었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그 당시 새로웠던 문화가 지금의 기성문화가 된 것뿐이다. 새로운 세대는 기성세대와 충돌하고 화합하면서 변화를 도모할 수밖에 없다. MZ도 MZ 문화를 배우는 이 상황에, 다른 세대라고 배우지 못할 건 없다.
결국 중요한 건 ‘MZ세대의 문화’가 아니라 ‘변화하는 자세’다. 청년으로서 지금은 MZ 문화가 편하고 즐겁지만, 앞으로 나이가 들었을 때 새로운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를 일이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새로운 문화가 내게 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세대를 비판한다면 어떻게 될까. 새로운 것들은 계속 등장하고 세대는 변한다. 비록 실체 없는 세대론이라 하더라도, 또 다른 세대의 출현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 변화에 민감한 어른이고 싶다.
2023-02-01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