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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아이들에게 ‘공부의 기쁨’을 돌려주자
최근 우리 교육계는 거센 입시 개편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 있다. 문·이과 통합형 수능과 고교 내신 5등급제를 뼈대로 한 28학년도 대입 개편안이 현실로 다가온 데 이어, 국가교육위원회를 중심으로 중장기 대입 개편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수능 전 과목 절대평가, 서·논술형 평가, 수시와 정시의 통합 여부 등이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학부모와 교육 현장은 또다시 정책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같은 변화의 밑바탕에는 분명한 문제의식이 있다. 지금의 정답 맞히기식 교육으로는 눈앞에 다가온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입시의 틀과 평가 방식을 바꾼다고 해서 교실의 배움이 저절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제도를 바꾸기에 앞서 우리가 ‘배움’이라는 행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창의성 발현되는 궁극적 뿌리는 호기심
세상을 향한 의문, 알고 싶다는 갈망은
새로운 생각 싹 틔우는 유일한 자양분
스스로 묻고 오래 탐구하다가 마침내
새로운 앎 닿았을 때 번지는 환한 미소
배움을 대하는 우리 태도부터 바꿔야
‘논어’의 첫 문장은 잘 알려진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로 시작한다. 우리는 이를 흔히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해석하고 학습의 중요성을 떠올린다. 그러나 문장의 무게중심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핵심은 ‘학(學)’이나 ‘습(習)’ 그 자체보다 그 뒤에 이어지는 ‘열(說)’, 즉 마음에 차오르는 참된 ‘기쁨’과 ‘희열’에 닿아 있다. 배움의 끝에 있는 것은 기쁨과 희열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몰랐던 세계의 문이 열리고, 풀리지 않던 의문이 풀리며, 사물의 이치를 새롭게 깨닫는 순간이 있다. 그때 찾아오는 지적 희열은 누군가에게 인정받거나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의 만족과는 다르다. 어쩌면 공자의 제자들이 이 문장을 ‘논어’의 첫머리에 놓은 것도 배움의 본질이 지식의 축적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앎에서 비롯되는 기쁨에 있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교육에서는 이 ‘기쁨’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21세기에는 생성형 AI가 인간이 오랜 시간 축적해야 할 지식을 몇 초 만에 찾아내고 정리한다. 단순한 지식 습득과 정형화된 문제 풀이에서 인간은 기계보다 효율적이기 어렵다. 그래서 교육은 최근 창의성을 강조한다.
창의성은 교과서에 밑줄을 긋거나 주입식 문제 풀이 요령을 익힌다고 해서 길러지는 능력이 아니다. 창의성이 발현되는 가장 궁극적인 뿌리는 바로 ‘호기심(Curiosity)’이다. 세상을 향해 품는 순수한 의문과 알고 싶다는 갈망이야말로 새로운 생각을 싹트게 하는 유일한 자양분이다. 호기심이라는 불꽃이 마음속에서 타오르지 않는다면 어떤 창의적 통찰도 일어날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 호기심으로 가득 찬 탐험가였다. 흙바닥에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만 보아도 쪼그리고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보았고, 부모의 옷자락을 붙잡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왜?”라는 질문을 쏟아냈다. 세상 모든 것이 경이로웠고,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달을 때마다 눈동자는 반짝였다. 아이들에게 배움은 고통스러운 의무가 아니라 가장 신나는 놀이이자 마법 같은 모험이었다.
그러나 학교에 들어가면서 호기심은 조금씩 사라진다. 정해진 정답을 남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야 하고, 오답은 감점으로 이어진다. 질문도 교사의 의도에 맞게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은 틀리지 않기 위해 남의 생각을 따라 하고, 엉뚱한 상상을 스스로 검열한다. 배움은 어느새 탐구가 아니라 경쟁이 되고, 공부는 참아내야 하는 일이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개혁은 평가 방식만 바꾸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서술형 평가를 도입한다고 해서 갑자기 창의성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수능의 절대평가 전환만으로 질문하는 학생이 길러지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평가 방식이 또 다른 ‘점수 따기 기술’로 변질된다면 교육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진정한 미래 교육은 아이들이 다시 질문하도록 만드는 교육이어야 한다. 질문은 정답을 몰라서 생기는 부족함이 아니라, 알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배움의 문이다. 좋은 교육은 그 문을 닫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엉뚱한 질문도 존중받고, 실패와 오답도 새로운 발견으로 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지는 교실이어야 한다. 교사는 정답을 알려주는 사람에 머물지 않고 학생의 질문을 더 깊은 탐구로 이끄는 안내자가 되어야 한다.
입시제도를 바꾸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제도보다 먼저 바꾸어야 할 것은 배움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인지도 모른다. 공부가 고통이 아니라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설렘이 될 때, 아이들의 잠재력은 비로소 피어난다.
아이들의 눈동자에서 잃어버린 호기심을 되찾아주자. 스스로 묻고, 오래 탐구하고, 마침내 새로운 앎에 닿았을 때 번지는 그 환한 미소. 우리가 미래 교육에서 되돌려주어야 할 것은 어쩌면 바로 그 ‘배움의 기쁨’인지도 모른다.
2026-10-0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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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부캉이'가 일깨운 부산 관광의 현실
북항 친수공원에 나타난 상어 지느러미 하나, 이른바 ‘부캉이’에 부산 시민들이 열광하고 있다. 예산 한 푼 들이지 않은 우연한 해프닝이었지만, 시민들은 패러디를 만들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스토리를 입히며 유연하고 유쾌한 도시의 놀이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거창한 공공 기획이나 수십억 원의 혈세가 투입되지 않아도, 시민들은 이미 도시 공간을 활력과 즐거움으로 채울 준비가 되어 있음을 단적으로 증명한 대표적 장면이다.
도시에서 축제와 문화 콘텐츠가 가지는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 축제는 단지 하루 이틀 스쳐 지나가는 유흥이나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지친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유쾌한 숨통을 트여주고 삶의 만족도를 높여주는 가장 직관적인 도구다. 어디 그뿐인가. 인구 감소와 저성장 구조로 지역 경제의 위축이 가속화하는 오늘날, 잘 짜인 관광 축제는 전국과 세계의 발길을 불러 모으는 강력한 경제적 동력이다. 골목 상권을 살리고, 지역 소상공인과 관광·문화 산업 생태계 전체에 온기를 불어넣는 지역 경제 활성화의 핵심 마중물인 셈이다.
앞으로 부산이 새롭게 선보일 수 있는 축제와 문화 콘텐츠의 가능성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천혜의 바다 자원은 물론,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며 가치를 인정받은 금정산의 생태·문화적 자산, 그리고 다채로운 로컬 문화가 어우러져 독창적인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낼 수 있다. 여기에 내년 열릴 세계청년대회(WYD)도 부산의 관광과 축제를 본격적으로 글로벌 무대로 도약시킬 강력한 엑셀러레이터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지역 관제 축제 기구의 풍경은 이러한 축제의 본질적 가치 및 다가오는 미래 기회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축제의 질을 높이고 지역 문화 생태계를 견인해야 할 현장은, 관행이라는 탈을 쓴 비합리와 기형적 구조로 얼룩져 씁쓸함을 자아낸다.
오랫동안 지역 이벤트·축제 업계가 지속적으로 지적해 온 핵심 병폐는 바로 ‘지역 우대 정책을 무력화하는 무임승차’와 ‘하도급 재대행’이라는 왜곡된 구조다. 사업을 따내기 위해 현실성 없는 화려함만 내세운 수도권 대행사들의 무리한 베팅, 그리고 불투명하게 사업을 몰아주는 관행이 수년간 이어져 왔다. 특히 지자체의 ‘지역 업체 우대 정책’에 대응해 수도권 대행사들이 부산에 이름뿐인 사업자를 내고 축제와 전시 사업을 싹쓸이하는 편법마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정작 거액의 물량을 따낸 위장 외지 업체는 지역 업체에 질 낮은 재대행을 맡기는 일이 되풀이됐다. 이 과정에서 공공의 혈세는 혈세대로 새어나갔고, 지역 축제의 품질 저하는 물론 진정성 있는 지역 문화·행사 업체들의 설 자리가 박탈되는 악순환이 고착화했다.
문제는 이러한 오래된 카르텔과 그릇된 관행을 바로잡으려는 ‘혁신의 시도’가 지금 이 순간에도 거센 저항과 시험대에 올려져 있다는 점이다. 축제 행정을 정상화하고, 위장 업체의 수의계약과 이권 개입을 차단하여 지역 축제의 구조를 바르게 세우려는 개혁 의지는 기득권의 강한 반발에 직면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혁의 의지는 결코 여기서 좌절되거나 후퇴해서는 안 된다. 잘못을 저지른 주체가 개혁을 저지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는 적반하장이 현실화한다면, 그 여파는 단지 내부 투쟁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계청년대회와 같은 글로벌 빅 이벤트를 앞둔 시점에서 부산이 자랑할 만한 독창적이고 수준 높은 축제 콘텐츠의 발전은 완전히 멈춰 설 수밖에 없다. 또한, 지역 업계와 시민들로부터 신뢰받고 사랑받는 중심 기관으로 거듭나야 할 축제 전담 기구의 존재 이유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올바른 방향을 잡으려는 개혁의 불씨에 지금 더 큰 힘을 실어주어야 하는 이유다.
친수공원의 ‘부캉이’ 신드롬과 관제 축제 행정의 씁쓸한 현실은 오늘날 부산 문화 생태계가 처한 극명한 온도 차를 여실히 보여준다. 시민들의 문화적 감수성과 창의성은 저만치 앞서 나가며 자유롭게 뛰놀고 있고 세계가 부산을 주목하고 있는데, 정작 판을 깔아줘야 할 공공 행정은 닫힌 카르텔과 개혁을 둘러싼 진흙탕 싸움에 발이 묶여 있다.
도시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예산이나 자원의 부족이 아니라, 개혁을 방해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관행이라는 이름의 타성’이다. 축제는 부산 시민의 행복한 일상을 만들고, 글로벌 관광객을 유치하여 지역 경제에 새로운 숨통을 트여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아름다운 무기다. 위장 업체의 독점과 재대행 폐단을 수술하고, 오래된 병폐를 바로잡으려는 개혁 의지에 힘을 실어줄 때 비로소 부산 축제의 미래가 열린다. 외풍에서 벗어나 시민의 삶만을 바라보는 정직하고 유연한 부산의 축제·관광 생태계가 새로이 구축되기를 기대한다.
2026-09-3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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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달러는 이미 있다, 원화는 지금부터다
최근 글로벌 결제기업 비자(VISA)가 공개한 수치들이 눈길을 끌었다. 2026 회계연도 2분기 기준, 전 세계에서 운영되는 스테이블코인 연계 카드 프로그램이 160개를 넘어섰고, 결제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약 200% 늘었으며, 연환산 정산 규모는 2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7조 원에 달했다. 1년 전만 해도 스테이블코인은 거래소에서 코인을 사고파는 결제 수단에 머물러 있었다. 지금은 카드를 긁는 순간, 그 뒤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정산을 처리하는 시대가 됐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투자 자산이 아니라 결제 인프라의 한 축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원화는 어디쯤 와 있을까. 놀랍게도 그리 멀리 뒤처져 있지 않다. 셀프 사진관 포토부스 결제에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하는 작업,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받은 무역 대금을 원화로 정산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작업, 여기에 더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비자의 카드 결제망과 연동하는 작업도 추진 중이다. 이들이 실현되면 해외 여행이나 유학 중인 국내 이용자의 현지 소비, 해외에서 활동하는 콘텐츠 창작자의 정산, 해외 법인을 둔 기업의 출장 경비 관리에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곧바로 사용할 수 있다.
세 가지 사례 모두 의미가 작지 않다. 그러나 냉정히 보면 아직 개별 기업의 실증 단계 수준이다. 포토부스에서 결제가 되고, 무역 대금이 정산되고, 카드망에 연동되는 각각의 실험은 훌륭하지만, 이 점들이 하나의 도시,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이어지지 않으면 결국 개별 서비스의 흥미로운 사례로 남을 뿐이다. 결제 인프라는 점이 아니라 면으로 존재할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이미 다른 도시들은 그 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싱가포르는 통화청(MAS) 주도의 ‘프로젝트 가디언’을 통해 채권과 펀드, 외환의 토큰화 실증을 국가 차원에서 진행하는 한편, 관광객이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할 수 있는 가맹점 네트워크를 함께 넓혀 가고 있다. 두바이는 별도 가상자산규제청(VARA)을 세워 토큰화 자산과 결제 인프라를 하나의 감독 체계 아래 통합했고, 관광과 부동산, 무역 결제 전반에 스테이블코인을 끌어들이는 실험을 국가 정책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두 도시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개별 기업의 실험이 자연스럽게 쌓이기를 기다리지 않고, 도시나 국가가 먼저 판을 깔고 규칙을 정한 뒤 민간이 그 위에서 뛰게 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도시가 있다면, 단연 부산이다. 부산은 두 가지 결제 접점을 동시에 가진 드문 도시다. 하나는 관광이다. 매년 수백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해운대와 남포동, 크루즈 터미널을 오가며 결제를 한다. 환전 수수료 없이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즉시 결제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도시 경쟁력이 된다. 다른 하나는 해운이다. 선박 급유비, 도선료, 컨테이너 물류비처럼 국경을 넘나드는 무역 대금 정산이 부산항에서 매일 이뤄진다. 관광이라는 소액 결제와 해운이라는 대규모 정산이 한 도시 안에 공존한다는 것은, 결제 인프라를 실증하기에 이보다 좋은 조건은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도전적인 실행이다. 부산이 이미 가진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라는 제도적 자산을 살려, 관광특구와 크루즈 터미널, 항만 배후 단지를 하나로 묶는 ‘스테이블코인 결제 실증지구’를 지정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지구에서는 포토부스와 같은 관광 소비 접점, 무역 정산 인프라, 비자와 같은 국제 카드망이 각자 흩어져 실험하는 대신 한자리에서 검증받도록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우선 지자체가 관광특구 내 가맹점들을 대상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결제 시범 사업을 공모해 초기 가맹점망을 빠르게 확보하고, 둘째로 항만공사와 선사, 물류 기업이 참여하는 무역 대금 정산 실증을 병행해 대규모 결제의 신뢰성을 검증하며, 셋째로 실증에서 쌓인 데이터를 중앙정부의 디지털자산기본법 시행령 논의에 실증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 서로 다른 사업자들이 각자 만든 결제 실험을 한 도시가 하나의 생태계로 묶어 내는 시도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사례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전 세계 카드망 깊숙이 들어와 있는 지금, 원화가 실물경제와 만나는 접점을 만들어 성공하기에는 시간이 그리 길게 남아 있지 않다. 결제 표준은 한 번 자리 잡으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관광객 지갑과 항만 정산 창구에 어떤 통화가 먼저 자리를 잡느냐가, 향후 수십 년의 결제 지형을 결정할 것이다.
부산이 관광객의 손끝과 항만의 대금 정산에서 동시에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증명해 낼 수 있다면, ‘블록체인 특구’라는 이름은 비로소 간판이 아니라 실체를 갖게 될 것이다. 결제의 실험실이 되는 도시, 그것이 지금 부산이 쥘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미래다.
2026-09-28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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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불협하는 합창은 어디에서 울리는가
며칠 전 부산비엔날레를 찾았다. 8월 말 개막한 비엔날레는 을숙도 부산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영도의 옛 부산남고, 스페이스 원지에서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22개국 46개 팀이 참여해 11월 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의 주제는 ‘불협하는 합창’(Dissident Chorus)이다. 주제에 걸맞게 각각의 작품은 시공간을 압도하는 여러 형태의 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때로는 작품에 깊이 몰입하도록, 때로는 시각적 대상이 낯설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전시를 둘러보는 내내 끊임없이 변동하는 소리의 진폭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소리는 작품과 관객 사이에서 일정한 긴장 관계를 형성하며, 이번 전시가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거듭 되묻도록 했다.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운 채 말이다.
지난달 개막 부산비엔날레 관람
다양한 소리 활용한 작품 경험
여럿이 함께 만들어 내는 소리
공고한 체제 대항하고 균열 가해
부마민주항쟁 47주년 앞두고
연대와 저항의 힘 떠올리게 해
불협하는 합창. 선명한 역설(paradox)의 표현이다. 불협과 합창은 쉽사리 결합할 수 없는 모순된 말이다. 이 역설의 언어 속에서 우리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첫째, 합창은 조화로워야만 한다는 우리의 관념에 가하는 균열이다. 여기서 조화는 하모니(harmony)의 의미에 가까울 텐데, 서로 다른 소리가 아름답게 한데 어우러짐을 뜻한다. 그렇다면, 과연 불협하는 합창을 진정한 합창이라 일컬을 수 있을까? 이 물음은 조화로서의 아름다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어우러진다는 것은 어쩌면 전체를 위해 부분을 희생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부분들은 각각의 개성을 일정하게 깎아내야만 한다. 이는 화합된 전체가 그것을 이루는 개개의 합보다 크다는 생각에서 비롯한다.
비엔날레의 작품 몇몇은 자신의 개성을 포기한 채 전체에 순치되기보다 고유의 소리를 지켜내기를 택한 존재들을 비춘다. 십여 년에 걸쳐 탈북민 공연단의 모습을 기록한 이동근 작가의 ‘아리랑 예술단’과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내몰렸던 고려인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소리를 포착한 전소정 작가의 ‘구미호하기’가 대표적이다. 탈북민과 고려인 모두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의 성격을 지닌다. 경계 위를 늘 위태하게 걸어가는 그들이 지켜내는 것은 다름 아닌 소리다. 호흡과 함께 만들어지는 인간의 소리는 가리거나 숨길 수 없는 오롯한 내면적 힘이라는 사실을 이들 작품은 뚜렷이 보여준다.
한편, 이번 부산비엔날레의 주제가 환기하는 또 다른 의미는 여럿이 함께 만들어 내는 소리가 공고한 체제에 가하는 균열이다. Dissident Chorus를 직역한다면 ‘반체제적 합창’이라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쌓여 울려 퍼지는 거대한 소리는 너무도 공고하여 무너지지 않을 듯한 것들에 대항하는 힘이 된다. 류성실 작가의 ‘만 가지의 꿈’은 합창이 지닌 대항적 성격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풀어낸다. 작가는 공사장의 철제 리프트 위에 똑같은 교복을 입은 12구의 마네킹과 세 곡의 합창곡을 통해 한국사회가 수십 년에 걸쳐 쌓아 왔던 원대한 성장의 꿈을 통렬하게 비웃는다.
해방 후 한국 사회가 짊어져야 했던 만 가지나 되는 꿈은 과연 무엇인가. “지구촌 시민의 꿈, 전쟁 끝나는 꿈, 평화통일의 꿈, 남남북녀의 꿈, 출산율 회복의 꿈, 국토개발의 꿈, 경제 성장의 꿈…” 작가는 끊임없는 꿈의 연쇄가 우리를 쉴 새 없이 달리도록 만들었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꿈으로 누리는 만 가지 꿈”이라는 가사를 통해 꿈의 허위성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만 가지의 꿈은 결코 실현되거나 완성되지 못한 채 꿈으로만 존재한다. 꿈은 가닿을 수 없어야만 한다. 꿈이 성취되는 순간, 꿈을 향해 달리도록 만든 동력은 일순간에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은 경쾌한 합창 소리를 통해 강제된 꿈의 연쇄를 끊어내려는 시도를 펼쳐 보인다. 이는 부산비엔날레에서 울려 퍼지는 모든 소리‘들’의 공통된 목적이자 효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부산현대미술관 복도 한가운데 ‘민중가요 저장소’가 배치되어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역사의 크고 작은 고비마다 거리로 뛰쳐나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드높이며 불협하는 합창을 불렀던 존재가 바로 민중인 까닭이다. 우리 현대사는 모두에게 똑같은 교복을 입힐 수는 있을지언정, 내면으로부터 솟아나는 서로 다른 소리를 단일하게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과정이었다.
1979년 10월 16일 아침, 부산대학교에 모인 수백수천의 청년들은 불의한 독재에 항거하고자 거리로 나섰다. 그들은 ‘통일의 노래’와 ‘애국가’ ‘선구자’ 등을 힘차게 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거대한 함성과 구호, 노랫소리가 도심을 가득 메웠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소리는 순식간에 증폭되었으며, 부산 전역을 넘어 마산으로까지 퍼져 나갔다. 공기를 타고 흐르는 울림은 강력했고, 뜨거웠으며, 거침없었다. 부마민주항쟁 47주년을 앞둔 지금, 부산비엔날레를 통해 불협하는 합창이 이루는 연대와 저항의 힘을 다시금 곱씹게 된다.
2026-09-2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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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우먼파워 인 부산!
전재수 부산시장이 ‘시민과 함께 만드는 해양수도 부산’이라는 이름으로 취임 후 첫 타운홀 미팅을 열었다. 그는 해수부, 해운 대기업 이전, 북극항로 개발로 이제는 해양수도 부산의 콘텐츠를 채워가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해양수도 부산’의 비전은 북극항로 개척이나 항만사업이라는 중심을 논외로 하더라도 훨씬 더 많은 확장성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각종 기관 유치와 인프라 구축이 도시 비전의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과정이라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가는 콘텐츠의 개발은 보다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사실 부산의 콘텐츠는 충분히 존재한다. 아무도 그것을 콘텐츠로 인식하지 않을 뿐이다. 실제로 부산을 가장 잘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로 자갈치 아지매를 생각해 보자. 자갈치 시장은 6·25전쟁 이후 격동기를 살아낸 여성들의 고난과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공간이다. 일제강점기 방직공장과 고무공장, 산업화 시기 신발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이 공장 안에서 부산의 산업을 떠받쳤다면, 자갈치 아지매는 바다를 끼고 자리한 해양도시에서 그 경제를 순환시킨 또다른 주역이었다. 그러고 보면 근대화 이후의 부산은 여성의 사회참여가 활발한 역동적인 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근대화 이후 부산은
대표적인 여성 사회참여의 도시
해양경제 순환의 주역
자갈치 아지매는 상징적 콘텐츠
부산의 새 여성가족플라자
일하는 여성 위한 비전 채우기를
그러나 이는 도시의 공식 역사로 충분히 승인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제주도의 경우 해녀는 그 지역의 가장 강력한 콘텐츠 중 하나다. 제주 해녀에 대한 인류학적, 사회학적 연구가 국내외에서 숱하게 이루어졌고 국가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국가 지자체 차원의 대규모 학술 아카이빙 지원이 있었다. 그러나 자갈치 아지매는 억척스러운 여성 이미지로만 소비되거나 라디오 프로그램의 제목으로만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을 뿐 이들 여성 노동자의 역사에 대한 연구나 스토리텔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영도의 도시재생사업 일환으로 깡깡이 아지매와 같은 여성 노동자의 삶이 복원되고 재조명받은 정도다.
그나마 이런 여성 노동의 역사가 제도로나마 흔적을 남긴 곳이 있다면, 현재 대연동 청사에 자리잡은 부산여성회관일 것이다. 1966년 개관한 부산여성회관은 전국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여성회관으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의 여성들에게 양재, 편물, 이미용의 기술기능교육을 제공했다. 부산여성회관의 개관 배경이 명확하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일하는 주체로서 여성들을 상정했던 공간이 전국에서 최초로 열린 것은 당시 부산의 환경을 생각하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여성회관은 1960년대 이래로 콘텐츠의 개발이 부족하다고 지적되고 있는 실정이다. 양재, 꽃꽂이 등과 같은 직업훈련과목은 오늘날 부산 여성들의 다양한 활동 반경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고 그마저도 일부 여성인력개발센터와 다를 바 없이 운영되고 있는 실정이다. 부산에는 여성회관과 여성문화회관이 있지만 생각보다 이들 공간은 시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부산여성회관이 대규모 투자 계획을 통해 부산여성가족플라자로 거듭나기로 한 배경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물론 이마저도 가족 중심 공간으로 편성함으로써 애초 1960년대 일하는 여성을 위한 공간으로서 건립된 여성회관의 취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점은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얼마 전 전재수 시장이 여성가족플라자 건립과 관련하여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해당 사업계획이 추상적이며, 기존 시설과의 차별성이 부족하다는 취지로 질타했던 것도 결국 이 공간이 무엇을 위한 곳인지 스스로도 답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렇다면 차별성은 시설의 기능이 아니라 정체성에서 나와야 한다. 기존 여성인력개발센터가 기술과 취업을 가르치는 곳이라면, 새 플라자는 부산이라는 도시가 일하는 여성의 역사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것이 가족 중심 편성으로 흐려진 지금의 설계와, 자갈치 아지매의 후예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원래의 정체성이 갈라지는 지점이다.
실제로 청년인구가 빠져나가는 현상은 경북 경남 다음으로 부산이 가장 많고, 그중에서도 여성 청년인구의 순이동률이 남성보다 더 높다. 소속감을 주지 못하는 도시에서 여성은, 특히 젊은 여성은 머무를 이유를 찾지 못한다. 해양도시의 비전을 부산 여성의 우먼 파워에서 찾고 이를 확장시키는 일, 부산은 여성 노동자의 피땀으로 경제를 부흥시키고 일군 도시임을 도시의 공식적인 역사로 기억하고 그 정신을 이어가는 일은 미래세대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새로운 여성가족플라자가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비전을 안고 그 기능을 하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는 자갈치 시장에서, 신발공장에서 부산의 경제를 일으켜 세운 여성 노동자의 자식이자 후손들로서 해양수도 부산의 비전에 우먼파워를 더해야 한다.
2026-09-2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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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티어] 더 많은 성장을 연결하는 기회, 미래전략캠퍼스
부산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보 격차를 줄이고, 다양한 분야의 협력 네트워크를 만들어 현장에서 실제적 협업을 통해 더 많은 성장의 기회를 연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청년들이 서울로 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전략캠퍼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미래전략캠퍼스는 2015년부터 매년 3월 부산과 동남권 기업들, 스타트업과 공공기관, 대학 관계자가 모여 주요 산업 동향과 추진 중인 프로젝트를 공유하고, 외부 환경에 대한 빠른 대응과 지속 가능한 지역 생태계를 만들어가자는 취지로 민간 주도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작은 세미나로 시작했다. 개막식과 불필요한 의전 대신, 참석자를 우선으로 하는 프로그램으로 만들었고, 청중을 바라보고 모두가 함께 찍는 단체 사진 한 장만 기념으로 남기는 행사로 잘 알려져 있다. 작년 10주년을 계기로 개최 장소를 북항으로 옮겼고, 올해는 부산항만공사와 공동주최하여 해양 분야를 강화하고, 부산의 강점인 관광과 미래 부산 경제를 이끌어 갈 스타트업을 핵심 주제로 구성했다.
부산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미래를 읽는 힘을 키우고
흐름을 주도하는 도시가 되어야
청년들이 기회의 도시 부산에 모여
자신의 꿈을 펼칠 판을 함께 만들고
‘모두의 캠퍼스’ 통해 도전 이어가길
최근에는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이전하고, 해외 관광객 500만 명을 바라보는 등 부산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서울, 대전, 제주 등 타 지역 참가자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동남권 네트워크에 함께 참여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신청하거나, 시장조사 및 홍보를 위해 참여하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현상이다.
올해는 작년보다 규모가 2배 이상 커져서 3월 26~27일 2일간 해양수산, 스타트업, 관광MICE, 디자인과 콘텐츠, 에듀테크 교육과 문화산업, 아시아 시장 진출 등 크게 8개 트랙으로 나누어 16개 세션 70명의 각 분야 전문가가 발표하고, 1000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함께하며 미래전략캠퍼스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재확인했다.
1일 차 오프닝은 부산을 대표하며 빠르게 성장하는 젊은 기업인 모모스커피 전주연 대표와 삼진어묵 박용준 대표가 그간 성장 과정과 앞으로의 도전을 보여주었고, 이어서, 해양 실리콘밸리와 수산 데이터를 중심으로 해양수산 세션, 성장하는 스타트업들의 AX전환 인사이트와 로컬기업의 성장기를 함께 다뤘다. 특히, 관광MICE 세션에서는 스포츠와 연계하여 새로운 트렌드와 부산의 가능성을 살펴보고, 해양관광의 최근 성장세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이어갈지 고민하기도 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일본영사관과 함께 준비한 한일세션은 최근 관심이 높은 관광을 주제로 발표들이 이어졌다.
처음 시도하는 ‘창업가들의 항해’ 특별세션에서는 지역 스타트업들의 어려움과 극복 사례, 그 과정에서 배운 경험과 인사이트를 후배 기업들과 공유하는 의미 있는 기회였고, 매년 지역 출신의 창업가들이 부산으로 모이는 홈커밍데이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키워갈 계획이다.
2일 차 오프닝은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스타트업의 역할과 인구변화의 관점에서 살펴봤고, ‘아시아 퓨처 캠퍼스’ 세션에서는 지역에서 시작해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여 잘 성장하고 있는 창업기업들을 소개했다. 그 외에 교육과 문화산업, 디자인과 콘텐츠 등 새로 추가된 주제 세션에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여 실무적 협력을 위한 네트워킹을 이어갔다. 미래전략캠퍼스의 주요한 역할이 발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만남을 계기로 실제적 프로젝트로 연결되고, 성과로 이어져 현장의 변화와 미래의 문제에 빠르게 대처하고, 부산의 미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올해 처음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모두의 캠퍼스’라는 현장 실무형 멘토링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지난 10년간 미래전략캠퍼스로 구축된 지식 네트워크와 경험들을 청년들과 공유하자는 취지이며, 4월부터 매달 주제를 정해 희망하는 청년대학생들이 무료로 참여 중이다. 멘토는 올해 발표자로 참여한 70명의 각 분야 전문가가 함께한다. 처음 7개 대학 25명으로 시작하는데, 9월 현재 10개 대학 50명 이상이 함께하고 있다. 내년 12회 미래전략캠퍼스는 2027년 3월 25~26일 예정돼 있다. 또, 어떤 주제가 제시되고, 새로운 협업을 통해 얼마나 많은 성장의 기회가 만들어질지 벌써 기대된다.
2026-09-1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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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성과와 헌신을 함께 보는 법
연봉 협상 시즌이 다가오면 조직은 잠시 정직해진다. 지난 한 해 누가 무엇을 얼마나 해냈는지, 모두가 숫자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맘때면 늘 마음에 걸리는 얼굴들이 있다. 성과표에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지만, 그가 없으면 팀이 확연히 삐걱대는 사람들이다.
데일 카네기는 〈인간관계론〉에서 단순하지만 묵직한 말을 남겼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비판보다 이해가, 지적보다 진심 어린 인정이 사람을 움직인다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백 년 전의 통찰인데, 성과와 숫자로 사람을 재는 데 익숙해진 요즘 조직에 오히려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윤활유 역할 떠맡는 '글루 워크'
성과표에는 아무런 기록 없어도
조직 속 마찰 줄이는 귀한 노력
정확하게 성과 평가하는 눈과
기여와 헌신을 찾아내는 눈은
진심 어린 관심으로만 하나 돼
최근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런 노동을 가리키는 말이 생겼다. ‘글루 워크(glue work)’. 조직을 붙여 주는 접착제 같은 일이라는 뜻이다. 회의를 매끄럽게 정리하고, 신입의 질문을 받아 주고, 흩어진 논의를 하나로 엮어 내는 일. 팀을 실제로 굴러가게 하지만, 정작 개인 성과로는 좀처럼 환산되지 않는 노동을 일컫는다. 기계로 치면 톱니바퀴가 아니라 그 사이를 메우는 윤활유에 가깝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것이 마르는 순간 기계 전체가 마찰음을 내며 멈춰 선다.
팀을 맡기 전까지 나는 이 노동의 무게를 절반만 이해하고 있었다. 팀원이던 시절에는 눈에 보이는 결과가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관리자가 되고 팀 전체를 위에서 내려다보게 되자, 성과표에 잡히지 않던 노력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회의를 준비하며 남들보다 먼저 자료를 훑어둔 사람, 담당이 애매한 일을 말없이 떠안은 사람, 손은 조금 느려도 동료들 사이에서 윤활유처럼 팀의 공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던 사람. 이런 헌신은 어떤 지표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사라지면 조직은 이내 삐걱댄다. 존재할 때는 보이지 않다가 부재로써 비로소 증명되는 노동, 그것이 글루 워크의 속성이다.
문제는 이 글루 워크가 글로벌 재택 환경에서 더 쉽게 지워진다는 데 있다. 같은 공간에 있었다면 눈에 띄었을 수고가, 화면 너머에서는 조용한 메시지 한 줄로만 남기 때문이다. 시차를 두고 일하다 보면 서로의 얼굴조차 자주 보지 못하니, 누가 어떤 배려를 하고 있는지는 더더욱 흐릿해진다. 그래서 카네기의 말은 재택 시대에 역설적으로 더 무겁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서로를 알아봐 주는 마음인데, 그 마음이 가 닿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성과를 채근하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여기에 관리자의 진짜 딜레마가 있다. 평가라는 제도는 아무래도 뚜렷한 성과를 낸 사람, 자기 일을 또렷한 언어로 설명하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기울기 마련이다. 묵묵히 팀을 떠받친 사람일수록 정작 자신의 공을 말하는 데 서툴다. 그렇다면 그 보이지 않는 기여를 발견해 제 몫의 이름을 붙여 주는 일이야말로, 숫자가 놓치는 빈자리를 메우는 팀장의 진짜 역할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성과를 눈감아 주는 온정주의를 뜻하지는 않는다. 냉정한 성과주의와 무른 온정주의는 둘 다 절반씩 틀렸다. 숫자만 보면 팀을 지탱하는 헌신을 놓치고, 온정만 앞세우면 결국 열심히 한 사람이 손해 보는 조직이 된다. 카네기의 인정이 빛나는 지점은 바로 그 사이다. 그의 인정은 입에 발린 칭찬이 아니라, 상대가 무엇을 어떻게 해냈는지 정확히 짚어 내는 데서 나오는 것이었다. 막연히 잘한다고 말하는 것과, 구체적인 기여를 콕 집어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진심 어린 인정에는 관찰이 필요하고, 관찰에는 관심이 필요하다. 성과와 온정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관찰 위에서 비로소 만난다.
그래서 나는 팀장으로서 작은 원칙을 세웠다. 성과 지표에 잡히지 않는 노력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누군가 조용히 메운 빈틈을 발견하면, 짧게라도 그 노고를 짚어 말해 준다. “그 부분 챙겨 줘서 팀이 편했다”는 한마디면 충분하다. 사람은 자신의 수고가 누군가의 눈에 보였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을 얻기 때문이다. 신뢰란 그렇게, 알아봐 준 순간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백 년 전 카네기가 던진 화두는 여전히 유효하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통제나 압박이 아니라, 진심으로 알아봐 주는 마음이라는 것. 성과는 숫자로 기록되지만, 사람은 인정으로 기억한다. 다가오는 연봉 협상 시즌, 당신의 곁에도 성과표에 적히지 않는 노력으로 팀을 조용히 떠받친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 수고를, 숫자로 환산되기 전에 한 번 소리 내어 알아봐 주면 어떨까. 좋은 팀장은 성과를 잘 재는 사람이 아니라, 재어지지 않는 것까지 볼 줄 아는 사람일 테니까. 인정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오늘부터 연습할 수 있는 습관이니 말이다.
2026-09-1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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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어공과 늘공을 넘어, 부산 블록체인의 다음 10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가에는 ‘어공’과 ‘늘공’이라는 말이 다시 등장한다. 선거와 함께 들어온 ‘어쩌다 공무원’이 핵심 자리를 맡고, 오랜 기간 전문성을 쌓아온 ‘늘 공무원’이 뒤로 밀리는 풍경을 두고 요즘에는 ‘관료 잔혹사’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나 어공이라서 문제도, 늘공이라서 해답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권한을 가진 자리에 그 권한을 감당할 전문성과 책임이 함께 있느냐는 것이다.
민선 9기 부산시가 출범했다. 수장이 바뀌면 사람과 정책의 우선순위도 달라진다. 다만 블록체인과 디지털금융처럼 기술과 금융, 규제와 산업이 얽힌 분야라면 인사의 기준은 더 엄격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어공’은 단순한 자문위원이 아니다. 시장과 가까이 호흡하며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주요 사업의 방향을 최고 의사결정권자에게 직접 설명하고 관철할 수 있는 정무형 책임자다. 그렇다면 이런 자리에 필요한 기준도 분명하다. 시장과의 인연이 아니라 산업에 대한 전문성, 중앙정부와의 협상력, 그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이다.
부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의 성적표를 보면 그 필요성이 선명해진다. 2019년 특구 출범 당시에는 기업 유치와 창업 등 250개사에 이르는 효과가 기대됐다. 그러나 2025년 특구 입주기업은 17개사였다. 신규 실증사업은 2023년부터 3년 연속 없었고, 지금까지 부여된 규제특례 17건 가운데 법령 정비가 완료된 것은 4건이다. ‘블록체인 도시 부산’이라는 이름과 산업의 현실 사이에 간극이 생겼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이 결과를 담당 공무원의 역량 부족으로 설명하는 것도 본질을 놓치는 일이다. 얼마 전 서울의 한 증권사 대표는 전국 여러 지자체와 블록체인 사업을 논의해 봤지만 부산만큼 담당 공무원들이 기술을 공부하고 기업과 함께 해법을 찾으려는 곳이 드물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람보다 특구가 가진 권한의 한계와, 그 한계를 돌파할 힘의 부족에 가깝다. ‘규제자유특구’라는 이름만 들으면 부산에서 필요한 규제를 자유롭게 풀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다르다. 부산시는 기업과 사업을 발굴하고 실증을 설계할 수 있지만, 실증특례는 중앙정부와 관계 부처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 더 큰 관문은 그다음이다. 실증에 성공해도 전국적인 사업으로 키우려면 해당 규제를 담당하는 중앙부처가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
부산은 실험의 무대는 만들 수 있지만 제도의 문까지 혼자 열 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무형 책임자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산업을 이해하고, 현장 공무원이 축적한 경험을 존중하며, 부산에서 확인된 가능성을 들고 중앙정부를 설득해 규제 개선과 제도 변화까지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부산의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2024년 시작된 블록체인 특화 클러스터 사업은 최근 2년간 178억 원의 투자 유치와 123명의 신규 고용을 만들어냈다. 올해도 19개 기업을 대상으로 55억 원 규모의 지원이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실증과 규제 개선, 투자와 기업 정착을 하나의 선으로 잇는 힘이다. 스타트업 지원 정책도 같은 원칙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부산의 일부 지원사업은 부산에 본사를 둔 기업뿐 아니라 지사를 둔 기업에도 문을 열고 있다. 외부의 좋은 기업을 끌어들이려는 취지라면 지사 기업을 배제할 이유는 없다. 다만 공공 재원을 배분할 때 ‘부산 주소’만 확인해서는 안 된다.
부산에서 몇 명을 고용했는가. 지역 인재를 채용했는가. 연구개발과 매출이 실제 부산에서 일어나는가. 지원이 끝난 뒤에도 부산에 남아 투자와 고용을 이어가는가. ‘부산에 사무실이 있는 기업’과 ‘부산에서 성장하는 기업’은 같지 않다.
지원사업의 목적은 좋은 제안서를 고르는 데 있지 않다. 좋은 기업을 키우고, 그 기업이 부산에서 사람을 뽑고 성장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그래서 기업의 지원 횟수보다 부산에서 만든 고용과 투자, 매출과 잔류 성과를 더 무겁게 평가해야 한다.
새 시정의 성패는 몇 명의 기관장과 정책 책임자를 바꿨느냐로 평가되지 않을 것이다. 부산에서 몇 개의 좋은 기업이 태어나고, 투자받고, 사람을 뽑고, 결국 부산에 남았느냐. 그 숫자가 진짜 성적표다.
어공에게는 추진력이 필요하고, 늘공에게는 전문성과 행정의 연속성이 있다. 민간에는 시장을 읽고 빠르게 움직이는 실행력이 있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신할 수 없다. 세 힘이 한 팀으로 움직일 때 ‘특구’라는 행정의 이름은 비로소 ‘산업’이 된다. 부산 블록체인의 다음 10년은 사람을 바꾸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부산에서 기업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끝내 남을 이유를 만드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2026-09-1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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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금융센터세계연합 부산 총회와 경쟁의 본질
다음 주 세계 주요 금융도시의 리더들이 부산을 찾는다. 국제금융센터세계연합(WAIFC) 연차 총회가 13~16일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와 누리마루 APEC하우스에서 열린다. 해양금융과 블루 이코노미를 주요 의제로 삼는 이번 총회는 부산의 산업적 강점과 금융도시로서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릴 좋은 기회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총회 자체가 아니다. 이번 총회를 계기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세계의 금융도시들은 왜 치열하게 자본과 기업을 끌어들이려 하는가. 그리고 부산은 과연 그 경쟁에서 무엇을 갖고 있으며, 무엇이 부족한가.
두바이와 아부다비, 인도의 GIFT시티, 카자흐스탄의 AIFC 등 새로운 금융 거점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이들이 국제금융센터를 국가적 과제로 추진하는 이유는 금융중심지가 단순히 금융회사 몇 곳을 유치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이 모이면 기업이 모이고, 기업을 따라 인재와 정보가 움직인다. 법률·회계·컨설팅·리서치 등 연관 산업도 성장한다. 결국 금융중심지를 갖는다는 것은 경제의 중요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확보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부산은 흥미로운 위치에 있다. 세계적 수준의 항만을 기반으로 조선·해운·물류산업이 집적돼 있고, 선박금융과 해상보험, 인프라 투자, 친환경 선박 전환 등 금융과 결합할 수 있는 산업적 기반도 충분하다. 산업과 금융을 연결할 수 있는 출발점으로서는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좋은 산업도시가 저절로 좋은 금융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부산에서 배가 만들어지고 화물이 오가지만, 그 산업에 필요한 자금 조달과 투자 결정까지 부산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산업은 부산에 있는데 금융 거래와 의사 결정은 다른 도시에서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금융의 부가가치 역시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바로 이 간극을 좁히는 것이 부산 금융중심지의 핵심 과제다.
금융중심지의 경쟁력은 건물의 높이나 입주 기관의 숫자로 측정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누가 실제로 거래를 만들어내느냐이다. 부산의 기업이 해외 자금을 조달할 때 부산의 금융회사와 전문가들이 그 과정의 중심에 서고, 해외 투자자가 부산의 산업과 프로젝트를 찾아와 투자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금융의 이름만 부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금융의 의사 결정과 거래가 부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WAIFC 부산 총회의 의미도 여기에 있다. 세계 각국의 금융도시 관계자들이 부산에 모이는 만큼 그들이 어떻게 자본을 유치하고 금융 거래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봐야 한다. 동시에 그들의 눈으로 부산의 금융 환경을 바라볼 필요도 있다. 해외 금융회사와 투자자가 부산에서 거래하려 할 때 무엇이 불편한지, 어떤 제도와 인프라가 부족한지, 무엇을 갖춰야 부산을 선택할 것인지 묻고 답을 찾아야 한다.
해양금융은 부산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그 자체가 최종 목적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해양산업에서 축적한 금융 경험을 인프라와 대체투자, 친환경 전환, 디지털 금융 등으로 확장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분야의 이름을 하나 더 붙이는 것이 아니라 부산에서 실제로 새로운 금융거래가 얼마나 만들어지느냐이다.
제도 역시 같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규제 완화 자체가 목표일 수는 없다. 해외 자본과 금융회사가 부산에서 더 쉽고 예측 가능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 필요한 규제와 제도가 무엇인지도 추상적으로 논의할 것이 아니라 실제 투자와 거래의 관점에서 하나씩 따져봐야 한다.
글로벌 금융도시 경쟁은 결국 자본과 의사 결정을 둘러싼 경쟁이다. 어디에 금융회사가 몇 개 있는가보다 어디에서 자본이 만나고 거래가 이루어지며 새로운 투자가 결정되는가가 승부를 가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WAIFC 부산 총회의 성패 역시 참석자의 숫자나 행사의 규모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총회가 끝난 뒤 부산과 세계 금융도시 사이에 새로운 거래와 투자가 시작되는지, 부산의 기업과 프로젝트에 해외 자본이 연결되는지, 실질적인 금융 협력이 이어지는지가 더 중요하다.
부산은 이미 세계와 연결되는 항만을 갖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항만을 오가는 물류뿐 아니라 세계의 자본과 금융의 의사 결정이 부산을 거쳐 흐르게 하는 일이다.
이번 총회가 부산을 세계에 보여주는 행사에 그치지 않고, 부산이 스스로의 금융 경쟁력을 세계의 기준으로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금융중심지는 선언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본이 움직이고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곳, 그곳이 금융중심지다.
2026-09-0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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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공공기관 이전, 경제성장의 기회로
정부가 균형발전과 공공기관 개혁을 위한 조치로, 내년부터 중앙행정기관을 순차적으로 세종으로 이전하고, 최소한의 기관을 제외한 수도권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추진한다. 이에 대하여 나눠주기식 공공기관 지방이전이 되면 안된다는 지적이 있다. 한편, OECD는 올해 7월 한국경제보고서에서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을 위해 지역 간 경제적 격차를 완화하고 지역거점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균형발전을 단순히 지역 간 형평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성장이라는 관점에서도 살펴볼 시점이다.
사회과학의 여러 이론에는 하나의 공통된 통찰이 있다. 사회의 어느 한 부분에서 일어난 변화는 다른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은 다시 처음의 원인으로 되돌아와 전체의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뮈르달은 경제와 사회의 격차가 발생하면 그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어 격차를 더욱 확대시키는 현상을 ‘누적적 인과관계’로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도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지방의 쇠퇴와 수도권의 과밀은 서로를 강화시키는 누적적 인과관계, 즉 순환구조인 셈이다.
수도권 과밀 현상 집적 불경제 초래
지방 쇠퇴와 소멸 비용도 국가 부담
나눠주기식 지역 균형발전 안 돼
지역산업 연관 기관 집적 바람직
2차 이전으로 새 성장축 조성해
성장 선순환 이어지는 계기 만들길
그렇다면 수도권 과밀은 과연 수도권에 계속 이익일까. 수도권 과밀은 결국 수도권에도 비용을 발생시킨다. 집적에는 생산성 향상 등 이익이 있으나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집적의 경제가 집적의 불경제로 바뀐다. 주거비 상승은 장거리 통근과 교통혼잡을 초래하고, 생활비 증가는 삶의 질의 저하로, 교통환경 개선을 위한 비용 증가는 사회적 부담의 확대로 이어진다. 수도권 집중의 편익은 기업과 국가가 얻지만, 과밀의 상당한 비용은 수도권 주민의 주거비와 생활비 등의 형태로 부담한다 할 수 있다. 이 비용은 저출생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요인이기도 하다.
지방쇠퇴가 심화되면 수도권이 그 부정적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지역불균형은 국가의 성장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손실로 연결된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시기에는 한 지역에 인구를 집중시켜 얻는 효과보다 전국 각지의 인적·물적 자원을 고루 활용함으로써 얻는 효과가 더 클 수 있다. 지역에서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입은 단지 지역 인재 유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재가 지역의 토지·산업·학교·인프라와 결합하여 창출했을 경제적 가치까지 사라지게 한다. 균형발전 정책은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국가의 성장자원을 생산에 투입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또한 지방소멸의 비용은 결국 국가 전체가 부담한다. 지역 인구가 절반으로 줄었다고 해서 기반시설·행정·의료 비용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구밀도가 낮아지면서 일정 수준의 공공서비스를 유지하는 비용이 상승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고령화가 빠른 지역에서는 의료·복지수요가 증가한다. 그 비용은 해당 지역 주민들과 중앙정부의 지출을 통해 결국 국민 전체가 부담하게 된다. OECD의 한국경제보고서도 지역격차 문제와 고령화에 따른 재정부담을 구조적 과제로 봤다.
결론적으로, 지방소멸은 지역의 경제활동인구는 줄어드는데 국가가 유지해야 할 공간과 서비스는 남는 과정이고, 수도권은 그 재정부담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에 균형발전의 목표는 서울의 것을 지방에 나누어 주는 데 그치면 안 되고,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이전도 수도권에서 공공기관을 빼내 지방에 나눠주는 정책이어서는 안 된다. 균형발전의 목표는 수도권 집중과 지역쇠퇴의 악순환을 끊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공공기관 이전을 통해 지역의 성장축을 형성함으로써 수도권으로 향하는 인구와 기업의 압력을 낮추고, 수도권의 과밀비용도 줄여야 한다.
이를 위해 이번 공공기관 이전은 1차 이전의 성과를 넘어 수도권 외의 복수의 성장엔진을 만들어내야 한다. KDI의 1차 공공기관 이전 분석은, 혁신도시의 인구·고용은 상당히 증가했으나 제조업·지역서비스업 외에 지속적인 지역성장을 위한 지식기반산업 고용은 유의하게 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2차 공공기관 이전은 단순 배분 대신 지역산업에 연관된 기관을 집적시키고, 이를 토대로 지식기반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올해 우리 경제는 2% 후반대 성장을 바라보고 있다. 성장률만큼 중요한 것은 성장의 효과를 확산시키고, 이로써 다음 성장의 기회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대기업의 수출 성과가 당연히 내수경기와 지역경제의 회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역의 기업과 소비시장을 육성해 성장의 성과가 투자와 고용·소비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지역균형발전이 그 주요 방안인 것이다. 지역에 새로운 성장엔진을 더해 국가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것이 이번 공공기관 이전이 지향해야 할 방향이다.
2026-09-0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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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재난에는 평균이 없다
지난달 17일 경남 거제에 하루에만 654.3mm 비가 쏟아졌다. 1972년 관측 이래 일 강수량 신기록이자 전국 역대 세 번째 기록으로, 200년에 한 번 내릴 법한 폭우로 판단된다. 사흘 누적 강수량은 평년 여름 한 철 강수량에 육박했다. 섬 지형의 좁은 수로와 경사지 주택 밀집이 피해를 키웠고, 산사태로 1명이 숨졌다. 부산과 통영에서도 침수와 고립이 잇따르자, 정부는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했다. 기후 위기가 부르는 극한 재난이 미래 경고가 아니라 현실임을, 이번 폭우가 분명하게 알려준 셈이다.
같은 시각 태평양 건너에선 재난관리 체계를 흔드는 논쟁이 한창이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둘러싼 개편 논란이다. 1979년 설립된 FEMA는 대형 재난 시 복구 지원과 이재민 구호, 공공시설 재건을 총괄한다. 노무현 정부가 2004년 이를 벤치마킹해 소방방재청을 세웠던 만큼, 우리 재난관리 체계에도 그 골격이 스며 있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이유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 개편 놓고 논란
주 정부 재난 대응 주도 땐 주민 부담
국내 소방방재청 재난관리 체계 비슷
부산·경남, 태풍·해일 등 고위험 지대
국지적 극한 피해까지 담는 게 중요
재난의 새로운 기준과 원칙 세워야
올해 5월, 트럼프 행정부가 구성한 ‘FEMA 검토위원회’는 연방의 역할을 줄이고, 주(州) 정부가 재난 대응을 주도하도록 하는 개편안을 내놓았다. 한 분석 보고서는 개편안이 재난 지원 문턱을 높이고, 비용을 지방정부와 생존자에게 전가할 것이라 경고했다. 재난 선언을 가늠하는 1인당 피해액 지표를 1.94달러에서 2.99달러로 올리면, 2012년부터 2025년까지 주요 재난 선언의 약 29%가 지원 대상에서 빠졌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연간 약 15억 달러(약 2조 원)의 부담이 지방과 피해 주민의 몫으로 돌아갈 것으로 추산된다.
기후 위기 시대에 위험은 배가된다. 이 1인당 피해액 지표는 주 전체 인구를 분모로 삼기에, 인구가 적은 지역은 마을이 초토화돼도 광역 통계에 묻혀 지원에서 배제될 수 있다. 그러나 기후 재난은 이번 거제의 경우처럼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국지성 폭우로 닥친다. 광역 통계로 환산하면 평균에 희석되지만, 그 좁은 지역에 사는 이들에게는 삶터 전체가 무너지는 재난이다. 평균의 함정이 가장 먼저 타격받는 지역을 제도 밖으로 밀어내는 셈이다.
논쟁은 재난 ‘이후’ 지원만이 아니라 ‘이전’의 경보에도 그림자를 드리운다. 개편 논의와 함께 미국 해양대기청의 관측과 예보 예산 감축이 추진되고 있어서다. 지난달 26일 네팔에서는 빙하 붕괴가 부른 돌발홍수로 633명 넘게 숨졌는데, 붕괴는 감시망 밖에서 일어났다. 극한 재난일수록 경보 몇 분이 생사를 가른다. 시간당 100㎜ 이상의 국지성 폭우도 촘촘한 경보와 선제적인 대피 없이는 대참사로 번질 수 있다.
또 다른 뼈아픈 대목은 미국의 개편안이 FEMA의 장기 주거 지원을 없애려 한다는 점이다. 임시 대피에서 더 나은 재건으로 가는 길이 끊기면, 잠깐의 대피가 그대로 돌아갈 곳 없는 처지로 굳어진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산불로 집을 잃고 임시 조립 주택에 살던 경북 안동과 의성 이재민들은, 올여름 집중호우로 그 임시 주택마저 침수당했다. 이재민을 벼랑 끝에서 붙드는 안전망은, 국가와 지방이 재정과 역량을 함께 쥘 때 비로소 작동한다.
이 논쟁이 묵직한 까닭이 있다. 소방방재청은 2014년 세월호 참사로 국민안전처에 흡수돼 독립 외청의 지위를 잃었고, 2017년에는 행정안전부와 소방청 등으로 다시 쪼개졌다. 통합과 효율의 명분은 있었지만, 재난 대응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흔들렸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재난 전담 역량이 정치적 명분에 따라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FEMA 축소’ 논쟁은 우리가 지나온 길을 비추는 거울이다.
부산과 경남은 이 질문의 최전선에 있다. 태풍의 길목에 자리해 강해진 태풍과 폭풍해일, 도시 침수, 산사태가 겹치는 고위험 지대다. 이번에도 국가 재난 사태로 대응했기에 특별교부세가 긴급 지원됐다. 우리 역시 특별재난지역 선포 기준과 지역 선정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국지적인 극한 피해가 제도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 ‘광역이나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알아서 하라’는 책임 전가형 분권으로 흐른다면, 지방의 부담은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재난 대응체계를 조정할 때는 세 가지가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중앙과 지방 역할 분담에서 사무 이양보다 재원 이양의 원칙을 먼저 세워야 한다. 둘째, 지방에 대한 책임 전가를 우려하는 것은 지방이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부산시와 경상남도는 자체 재난 기금과 조기경보 체계, 전문 인력을 평시에 축적해야 한다. 셋째, 임시 거처에서 삶의 회복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극한 피해를 반영하도록 지방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재난은 행정구역을 가리지 않지만, 청구서는 늘 특정 지역과 계층에 집중된다. 이제 국지적 극한 피해까지 담아내는 재난의 새로운 기준과 원칙을 세워야 한다. 재난에 평균은 없기 때문이다.
2026-09-0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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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티어] ‘만드는 해운’에서 ‘선도하는 해운’으로
글로벌 해양 환경 규제가 본격화하면서 전 세계 선사들이 짊어져야 할 운항 비용 부담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당장 EU ETS(탄소배출권거래제) 규제에 따라 선박이 부산에서 로테르담으로 이동하는 1항차에 대해, 선사들은 일종의 탄소세 개념으로 약 5억 원에 달하는 탄소배출권을 구매해 제출해야 한다.
왕복 시 무려 10억 원에 이르는, 이 막대한 추가 비용은 상한선이 없으며, 규제가 심화함에 따라 지속해서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선박 연료유의 탄소 집약도를 직접 규제하는 FuelEU Maritime 역시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고 2050년까지 감축 기준이 가파르게 강화될 예정이다. 이는 글로벌 해운·조선 시장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고 있음을 뜻하며, 향후 친환경 선박 전환과 고효율 친환경 기자재에 대한 전 세계적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처럼 거세지는 환경 규제의 파도 속에서, 수에즈운하를 우회하는 기존 항로 대비 운항 거리와 시간을 대폭 단축하여 물류비용과 탄소 배출을 동시에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북극항로’의 개척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과거 러시아 야말(Yamal) 프로젝트가 초대형 쇄빙 LNG 운반선 수요를 창출하며 북극해의 상업적 운항 가능성을 증명했듯, 북극권 물류 수송은 이미 세계적 관심사다.
북극항로가 제도적·기술적으로 정비된다면, 부산은 동북아의 관문 항만을 넘어 아시아의 싱가포르를 뛰어넘는 글로벌 친환경 급유 및 해양 종합 서비스 허브로 도약하는 천문학적인 경제적 이점을 누리게 된다. 우수한 해기사와 선원 공급 체계, 기자재 산업, 인근 대형 조선소까지 완비된 부산의 인프라는 이를 위한 최고의 자산이다.
특히 우리는 세계 해운·조선 시장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설 판도 변화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 전 세계 선박의 약 55%가 아시아 선주 소유이고 조선 건조의 90% 이상이 아시아에서 이루어지는 실질적인 해운·조선 강국이지만, 실상은 몸으로 만들어내는 2차 산업 중심으로 기대 수익률에 한계가 있다. 핵심 기술에 대한 라이센스비, 선박금융, 보험, 중개, 국제 규제 제정 등 고차원의 고부가가치 산업은 여전히 유럽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을 아득히 넘어 AI 전환이 현실화하는 지금, 우리가 축적한 독보적인 선박 건조 및 운항 실무 데이터를 기반으로 산업데이터를 수집하고 활용한다면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가는 해운 산업에서 데이터 기반의 AI 서비스 생태계야말로 우리가 선점해야 할 거대한 블루오션이다.
이러한 고부가가치 산업 패러다임의 전환은 부산이 직면한 가장 뼈아픈 사회적 과제인 ‘청년 인구 유출’을 해결할 가장 확실하고 근본적인 열쇠가 될 수 있다. 현재 부산에서는 매년 약 2만 명에 달하는 청년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며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 등으로 떠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확실한 주도권을 쥔 ‘해운’과 ‘조선’이라는 명확한 테마 위에 AI·데이터, 선박금융 등 지식 기반 일자리를 결합한다면 상황은 완전히 반전된다. 부산은 쾌적한 주거 여건과 도심 인프라를 완벽히 갖춘 도시이니 고부가가치 일자리만 뒷받침된다면 청년과 전문 인재들에게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비전을 담아낼 도시적 그릇과 지원 체계도 이미 탄탄히 갖추어져 있다. 도심형 워케이션 센터들이 활발히 운영되어 유연한 근무 환경을 제공하고 있으며, 부산테크노파크와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등 지역 혁신 거점 기관들이 청년들의 창업과 기술 도전을 다각도로 지원하고 있다. 나아가 해양수산부의 주요 정책 기능과 산하 공공기관들이 부산에 집적되어 해양 정책의 중심축이 마련된 만큼, 이제는 ‘부산’과 ‘해운’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깊이 있게 엮어내 자본과 투자가 유입될 때이다. 글로벌 해양 규제의 파도를 발판 삼아 북극항로와 친환경·디지털 해운 생태계를 선점한다면, 부산은 청년들의 활기와 자본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기회의 땅으로 재도약할 것이다.
2026-09-0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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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정이한 피습 자작극과 제3정당의 딜레마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지난 8월 26일 당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주영 정책위 의장을 비롯한 당 지도부 대부분이 동반 사퇴했다. 개혁신당은 천하람 원내대표의 직무대행 체제로 전환됐다. 조만간 임시전당대회를 열고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겠으나 전과 같은 동력을 얻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미 가용 자원을 총동원했던 터라 새 지도부를 꾸릴 자원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준석당’에서 이준석의 대체자를 찾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개혁신당은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처참한 성적을 거뒀다. 광역·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선거에 192명을 내보냈는데 기초의원 1명을 당선시키는 데 그쳤다.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원외 정당이 된 정의당은 물론 존재감이 미미했던 여성의당보다도 표를 얻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정이한 전 개혁신당 부산시장 후보의 ‘음료 피습 자작극’ 논란이 불거졌다. 검찰 공소장 등에 따르면 정 전 후보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PT 트레이너였던 지인과 피습 자작극을 기획했다. 그에게 “유세 중 음료를 던져달라”고 부탁하며 “물은 옷에 흔적이 남지 않으니 녹차라테처럼 색이 남는 것이 좋다”고 구체적으로 주문했다. 선거 참패에 그쳤다면 무관심 속에 당을 쇄신하는 작업을 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광역단체장 후보의 피습 자작극 논란으로 개혁신당은 도덕성에도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당명에서부터 내세웠던 개혁의 기치가 빛이 바랬음은 물론이다.
개혁신당은 왜 정이한 전 후보에게 부산시장 후보라는 중요한 자리를 맡겼을까. 정 전 후보는 백종헌 국민의힘 의원(부산 금정) 비서관과 국무총리실 사무관을 지냈다. 2025년 9월 개혁신당 대변인에 임명되어 활동하다가 올해 3월 부산시장 후보로 공천받았다. ‘깜짝 발탁’된 인물은 아니지만, 이력이 길지 않았다. 개혁신당 관계자에 따르면 그의 세평 조회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구석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개혁신당이 그를 부산시장 후보로 내세웠던 건 마땅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후보 한 명이 아쉬운 마당에 자신이 큰돈 써가며 부산시장 선거에 나서겠다고 하니, 전과 등에서 심각한 결격 사유가 보이지 않는다면 딱히 마다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개혁신당 같은 군소 정당은 광역단체장 후보를 내기가 쉽지 않다. 이들에게 선거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기본적으로 소선거구제는 인지도가 높고 조직이 탄탄한 거대 양당에 유리하다. 유효투표 총수의 15%(전액) 또는 10%(반액)를 넘어야 비용을 보전받는 선거제도도 더불어민주당·국민의힘보다 작은 정당에서 출마하는 이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사실상 당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기 돈을 써가며 선거를 치러야 한다. 어지간한 사명감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어려운 일이다.
제3지대 정당은 보통 기성 정치에 대한 염증과 환멸에서 시작된다. “새로운 정치”를 외치며 호기롭게 깃발을 올리지만 이내 냉혹한 현실에 직면한다. 돈도 조직도 없는 이들이 기대할 수 있는 건 인물 경쟁력뿐. 문제는 작은 정당이 참여자들에게 나눠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점이다. 보조금과 당비는 쥐꼬리만큼 들어오고, 챙겨줄 수 있는 자리도 몇 없다. 그래서 양질의 정치 자원들은 당선 가능성이 낮고 보상도 거의 없는 소수 정당에 좀처럼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제3정당은 기존 정당에서 밀려났거나 처음부터 그 리그에 진입하기 어려웠던 인물들로 채워지기 쉽다. 그런 현실을 잘 보여줬던 게 국민의당이다. 국민의당은 한때 호남 지역 의석을 석권하며 돌풍을 일으켰으나 지역 조폭 동원 의혹, 제보 조작 사건, 최고위원의 폭행 사건 등 구성원들의 지저분한 논란이 계속된 끝에 문을 닫았다.
정이한 전 후보의 피습 자작극 논란은 제3지대 군소 정당이 처하게 되는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많은 기회를 포기할지언정 믿을 수 있는 소수정예로 버틸 것인가, 아니면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일단 많은 인물을 확보하는 데 힘쓸 것인가. 개혁신당의 선택은 후자였던 듯하다. 개혁신당은 “99만 원으로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며 진입 장벽을 대폭 낮추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200명 가까운 후보자를 배출한 건 조직 기반이 취약한 개혁신당으로선 대단한 모험이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피습 자작극으로 개혁신당은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에까지 놓이게 되었다. 남은 기회도 그리 많지 않다. 구성원의 일탈이 다시 한번 반복되면 그땐 정말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인사든 정책이든, 의사결정을 하는 모든 순간이 살얼음판이다. 국민은 왜 유독 군소 정당에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제3지대 정당이 부도덕하고 부패한 기성 정치권에 대한 안티테제로 부상하는 것임을 고려하면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기도 하다.
2026-08-3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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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새로운 집을 위한 실험
“안녕하세요? 이번 주 603호에서 독서 모임을 해도 될까요?” “네, 그럼요. 대신에 화분에 물도 주고 환기도 부탁드려요.”
이번 주 토요일 우리 집을 사용하고 싶다는 지인의 문자다. 우리 집을 이웃에게 열어둔 지 반년, 달력에는 매달 크고 작은 예약이 적힌다.
우리 가족은 엄마와 나, 둘이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줄곧 타지에서 지냈고 부산 본가에는 엄마가 혼자 살았다. 가족 구성원이 떠난 자리에 엄마는 가끔 독서 모임을 열고, 외국인 여행자들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던 올해 초, 엄마가 갑작스럽게 해외에서 일하게 되면서 집이 아예 비게 되었다. 예정된 근무 기간은 2년, 마냥 현관문을 잠가 두기에는 꽤 긴 시간이었다. 고민 끝에 우리는 집을 지인들과 공유해 보기로 했다.
소식을 알리자, 집을 사용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여럿 생겼다. 이들과 함께 ‘603호 관리위원회’라는 이름의 단체 대화방을 만들었다. 집 사용 일정을 공유하고 집안일을 나눴다. 이름은 거창했지만, 규칙은 간단했다. 집을 사용하는 사람은 다음 사용자를 위해 집을 돌보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 집은 다른 이름을 얻었다. 우리 집을 가장 많이 찾는 이들은 엄마의 독서 모임 회원들이다. 예전부터 우리 집에 익숙한 이들은, 창문을 열고 화분에 물을 준 뒤 모임을 연다. 그날의 거실은 동네의 작은 서재가 되었다.
부산 공연을 계기로 인연을 맺게 된 재일교포 극단의 배우와 스태프도 우리 집 단골손님이다. 작은 극단이 타지에서 공연을 준비하려면 숙소를 마련하는 일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부산에서 공연을 준비할 때면 배우와 스태프는 우리 집에 머물며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한다. 이번 광복절에는 일본으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의 삶을 그린 일인극 ‘고픈이’를 부산의 한 소극장에 올렸다. 집 안에 붙여둔 공연 포스터를 본 독서 모임 사람들이 극장을 찾아가기도 했다.
호주에 사는 지인도 몇 년 전 우리 집을 방문한 뒤로, 한국에 올 때면 우리 집에 머문다. 그녀의 할머니가 우리 집 근처에 사시는데, 연세가 든 할머니는 집에 누군가와 계속 함께 머무는 것을 힘들어하신다. 그녀는 우리 집에서 지내며 아침이면 할머니 댁에 가서 식사하고, 오후에는 돌아와 자신의 시간을 보냈다. 우리 집은 할머니와 손녀가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지낼 수 있도록 이어주는 동네의 곁방이 되었다.
우리 집을 오가는 사람들은 집을 매개로 서로에게, 그리고 동네에 조금씩 연결되기 시작했다. 공간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시도는 호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멜버른 브런즈윅의 ‘나이팅게일 하우징’은 1인 가구도 이웃과 관계를 맺으며 살 수 있도록 만든 공동주택 프로젝트다. 산업 쇠퇴로 활력을 잃은 동네에서 집을 투자 대상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 되돌리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입주자는 각자의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필요할 때 이웃과 만나고 공동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시드니 인근 혼즈비의 ‘빌리지 허브’는 새 시설을 짓는 대신 기존 카페와 주민의 경험을 연결해 모임을 만든다. 하나는 공간을 함께 사용하도록 처음부터 설계한 집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존재하던 사람과 장소가 만날 방법을 설계한 모임이다. 두 사례는 방식은 다르지만, 개인의 독립을 지키면서도 이웃과 연결될 선택지를 열어둔다는 점에서 닮았다.
이에 견주면 우리 집의 변화는 소박하다. 코하우징도 지역 공동체 시설도 아니며, 집의 구조나 소유 방식이 달라진 것도 없다. 다만 우리는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대신 집의 빈 시간을 나눈다. 때때로 집은 동네의 서재가 되다가 공연을 준비하는 숙소가 되고, 다시 할머니와 손녀를 이어주는 곁방이 되기도 한다.
가족의 모습은 계속 달라지는데, 집은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가족의 규모는 작아지고 1인 가구는 늘어나지만, 많은 집은 과거의 가족 형태를 품은 채 남아 있다. 부산에서는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7%를 넘어섰으니 열 가구 중 네 가구가 혼자 사는 집이다. 우리 동네에도 1인 시니어 가구가 부쩍 많아졌다. 우리 집 아랫집도, 그 아랫집도 그렇다.
혼자 사는 집이라도 언제나 한 사람만을 위한 공간일 필요는 없다. 어쩌면 미래의 집은 더 편리한 기술과 새로운 구조만큼이나, 달라진 생활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일 수 있다. 이미 있는 집의 쓰임을 새롭게 상상하는 일도 미래의 주거를 준비하는 방법일 것이다. 지금 우리 집은 그 실험을 먼저 해보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머지않아 엄마가 돌아오면 우리 집 역시 1인 가구가 된다. 그때 우리 집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2026-08-2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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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대학판 플랫폼 시대
몇 달 전 중국 항저우에 있는 세계적인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 본사를 방문했을 때 들은 이야기다. 한 임원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한 시골마을에서 생산되는 채소를 플랫폼에 올렸더니 소위 ‘대박’을 쳤다는 일화를 전했다. 과거라면 시골장을 벗어나기 어려웠을 상품이 온라인 플랫폼을 만나면서 중국 전역의 소비자와 연결된 것이다.
바야흐로 플랫폼의 시대다. 플랫폼은 공급자와 소비자를 연결하고 선택의 폭을 넓히며 거래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춘다. 좋은 상품만 있다면 어디에서 생산되었는지는 더 이상 결정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대학은 어떨까.
고등교육은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생은 한 대학에 입학하면 대부분 그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과정 안에서 공부를 마친다. 국제 교류도 소속 대학이 협정을 맺은 제한된 자매대학과의 교환학생이 중심이다. 세계는 거대한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있는데 대학은 아직도 하나의 ‘섬’처럼 운영되고 있는 셈이다.
플랫폼, 소비자·생산자 직접 연결
시골 채소도 전국 '대박' 나는 시대
대학, 여전히 한 학교 내에서 교육
네트워크 연결 시대에 뒤처진 '섬'
여러 대학·학생 잇는 '플랫폼 대학'
'학생 선택권 확대' '대학에도 기회'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상호의존이 갈수록 깊어지는 시대를 살아갈 청년들에게는 아쉬운 현실이다. 기업은 이미 국경이라는 제약이 없이 움직이고 공급망은 여러 나라를 연결한다. 하나의 제품에도 여러 국가의 기술과 인재가 참여한다. 그런데 정작 대학생은 하나의 대학, 하나의 국가 안에서 배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여러 나라에서 공부하려면 비용 부담이 크고, 개별 대학이 수많은 해외 대학과 일일이 협정을 맺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쉽지 않다. 아무리 세계적인 명문대학이라도 혼자서 학생들에게 아시아를 아우르는 교육과 경험을 제공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플랫폼형 대학’이라는 새로운 발상이다. 여러 대학이 각자가 가진 교육 역량과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서로 공유하는 방식이다. 학생들은 그 가운데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선택한다. 학생의 배움과 경험이 소속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 더 넓은 교육 자원과 기회로 확장되는 것이다.
유럽은 일찍부터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통해 국가 간 학생 이동의 장벽을 낮췄고, 온라인 공개강좌(MOOC)는 세계 어디서나 우수한 강의를 접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에라스무스가 주로 제도화 된 대학 간 이동을, MOOC가 온라인 강의의 개방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면,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볼 수 있을 것이다. 강의뿐 아니라 공동학위, 인턴십, 현장 프로젝트, 공동연구, 여름학기, 단기연수 등 각 대학이 가진 다양한 기회를 하나의 플랫폼에 모아 학생들이 자유롭게 프로그램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학과 대학을 개별적으로 잇는 ‘1 대 1 방식’에서 여러 대학과 학생을 동시에 연결하는 ‘다 대 다 방식’으로의 전환이다.
최근 필자가 속한 대학을 포함한 아시아 여러 대학들이 의기투합해 이러한 실험을 시작했다. 오는 10월 출범을 준비 중인 ‘아시아연합대학’(Asia Alliance University)이다. 학생들이 소속 대학의 경계를 넘어 참여 대학들의 교육과 경험의 기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현재 17개국 163개 대학이 참여 의사를 밝히고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 플랫폼의 성공 여부보다 이러한 방식이 가져올 변화다. 학생의 선택권이 커지면 대학도 선택받기 위해 더 좋은 프로그램을 내놓게 되고, 개별 대학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교육은 다른 대학과 협력을 통해 한층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규모나 명성보다 ‘무엇을 잘 가르치고 어떤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가’가 중요해질 수 있다. 국제적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아시아의 작은 대학도 독창적인 프로그램 하나로 일약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획도 잡을 수 있다. 알리바바에서 이름 없는 시골의 채소가 전국적인 상품이 된 것과 같은 원리다.
한국 대학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한류를 통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해외 학생들이 한국 대학의 다양한 교육 콘텐츠를 온라인에서 먼저 접하고, 이후 한국을 찾아 프로젝트와 인턴십 등에 참여한다면 관심이 실제 교육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대학의 플랫폼화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학점 인정과 교육의 질 관리, 등록금 배분, 국가마다 다른 학사제도 등 넘어야 할 장벽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때문에 대학 간 연결 자체를 포기할 이유는 없다.
플랫폼 시대에는 어느 대학에 입학했느냐보다 무엇을 배우고, 어디에서 경험하며, 누구와 연결되는가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이제 대학도 섬에서 벗어나 플랫폼이 될 때다.
2026-08-24 [1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