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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일기] 안전문제, 과도한 불안은 없다
“이번 사고의 경우 인명피해나 재산피해가 발생하지 않아 재난 상황으로 봐야 하는지 판단하는 데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지난달 25일 부산 동래구에서 발생한 만덕~센텀 대심도 토사 붕괴 사고에 대한 부산시 입장이다. 시공사인 롯데건설이 사고 이전 붕괴 조짐을 확인했고, 작업자를 미리 철수시켜 피해가 없어 큰 사고가 아니라고 봤다는 게 주된 설명이다.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사고 발생 나흘째에야 시민에게 알린 이유에 대해서도 시는 “제대로 된 원인조사 없이 발표할 경우 시민들이 과도한 불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4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안전에 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조그마한 사항에도 최대한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지자체의 의무로 보고 있는 것이다. 시민 안전보다 과도한 불안감을 먼저 걱정하는 시의 사고 대응 방식이 법 취지와 동떨어져 보이는 이유다.
지난 2일 열린 현장브리핑에서도 이번 사고를 대하는 시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브리핑 전날 시는 취재진에게 공사 현장 입구에서 모인 뒤 안내요원의 안내에 따라 현장으로 이동한다는 내용의 공지사항을 전달했다. 다음날이 되자 브리핑 장소에는 사고 현장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취재진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브리핑 당일 시는 취재진에게 안전상의 이유로 현장 출입은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 사고 장소에 들어가는 대신 현장검증을 진행한 토목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라는 이야기였다. 결국 취재진은 사고가 발생한 지하가 아닌, 지상 공사장을 배경으로 전문가의 원인 분석을 듣는 ‘현장 없는 현장브리핑’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현장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취재진은 먼 곳에서 지하 공사장으로 내려가는 작업 차량의 모습을 찍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추가 사고 발생 가능성이 작다던 시는 시민에게 정보를 제공하려는 취재진에게조차 현장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는 납득할만한 이유를 내놓지 못했다.
이번 토사 붕괴 사고가 발생한 동래구 온천동 공사 현장 100m 이내에는 아파트와 빌라, 원룸 등 주택이 밀집해 있다. 공사장으로부터 200m가량 떨어진 곳에는 900여 명의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도 자리 잡고 있다. 이렇듯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지하 공사 현장에서 약 1분간 25t 트럭 40대 분량의 흙과 돌이 쏟아져 내렸다. 정말 부산시는 이번 사고가 별일이 아닌 걸로 판단할 걸까. 아니면 별일이 아니길 바라는 걸까. 사고발생 당시 큰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시가 사고 발생 사흘째에 들어서야 도시철도를 시속 70km에서 25km로 서행 운전하는 조치를 왜 내렸는지 의문이다.
대심도 붕괴 사고가 알려진 이후 싱크홀 등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시민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시민들은 시가 민간사업자의 운영 기간을 늘리는 꼼수를 부리는 등 유독 민자도로건설 과정에서 사업자에 대해 ‘저자세’를 보이는 것 같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한 시민은 “대심도가 개통되면 2000원 가량의 요금을 내고 도로를 이용하는 것은 부산시민이고, 사고가 발생할 경우 위험에 처하는 것도 부산시민”이라면서 “시가 사업을 모두 민간 사업자에게 맡기는 게 아니라 사고 예방을 잘 하고 있는지 적극적으로 감시해야 한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안전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과도한 불안감은 없다. 대형 사고 발생 전, 비슷한 작은 사고와 사전 징후가 여러 차례 나타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은 시가 왜 이번 사고를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 잘 설명해준다. 향후 사상~해운대 대심도 공사 등이 계속 이어지는 만큼, 시민들이 걱정 없이 도로를 이용할 수 있도록 시가 부디 제 역할을 다하길 기대한다.
2023-03-0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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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일기] ‘세법’ 모르는 김해세무서
“현금영수증 의무발행업종이 늘었다고요? 언제부터 시행됩니까?”
김해세무서 직원이 기자에게 되물었다. 기자는 지역 일부 업체 사이에서 현금영수증을 발행하지 않는 ‘얌체 상술’이 기승을 부린다는 제보를 받고 해당 사례와 현황을 취재하는 중이었다.
현금영수증 의무발행업종의 경우 10만 원 이상 현금거래를 하면 반드시 현금영수증을 발행해야 한다. 10만 원 미만이면 고객이 요청할 때 발행해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고의로 다른 번호로 발행하거나 할인을 미끼로 미발행을 유도하는 등 사례는 다양했다.
현금영수증 의무발행업종은 2023년 1월 1일부터 기존 항목에 17개가 더해져 총 112개로 늘었다. 그러나 김해세무서 담당자는 올해부터 시행된 국세청 지침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부가가치세과 관계자는 “미발행 사례 신고를 접수해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하지만 올해 의무발행업종이 확대된 사실을 몰랐다. 관련 지침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게다가 현금영수증 미발행 신고 건수와 포상금 지급액 현황 관리도 제대로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보 부재’를 이유로 취재진의 정보공개요청에 응하지 못한 것이다.
이 관계자는 “한 건씩 신고 접수는 하지만 특정 기간에 몇 건이 발생했는지 조회할 수 있도록 정리해두지 않았다”며 “지난해 신고 건수와 포상금 지급 액수가 얼마인지 모른다. 정리해 둔 자료가 없어서 제공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부울경과 제주지역을 관할하는 부산지방국세청의 현금영수증 신고포상금 지급 건수와 액수는 2021년 2002건 3억 9800만 원으로, 2019년 974건 1억 7200만 원 대비 2배 이상 급증했다.
그런데도 김해세무서는 현황 파악조차 못 해 세무 공백으로 인한 시민 혈세 낭비가 우려된다. 무조건 세무 당국만 믿고 있을 게 아니라 직접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직접 현금영수증 발행 여부를 확인하려면 국세청 홈택스 홈페이지에 접속해 공동인증서로 로그인한 후 조회/발급, 현금영수증 조회, 사용내역 조회 아이콘을 차례로 클릭하면 된다. 발행 당일 거래는 확인할 수 없으며, 하루 전날까지 기록만 볼 수 있다.
연말정산 기간이라 바쁘다면서 정작 바뀐 현금영수증 관련 지침과 관할 구역 미발행 신고 건수·포상금 지급 현황은 모르고 있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이제부터라도 공제 항목 누락으로 손해 보는 시민이 없도록 김해세무서는 관리·감독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2023-01-1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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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바루 기자의 시선] 핵무기 없는 평화는 이상인가… 기시다 총리의 양면성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날인 지난 6일. 히로시마 출신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평화기념식에 참석해 “우리는 77년 전의 참화를 결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유일한 피폭국인 일본의 책무이며 피폭지 히로시마를 정치적 고향으로 둔 총리로서의 서약이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평소에도 핵무기 폐지를 “라이프워크(일생의 일)”라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날 연설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비핵 3원칙(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을 지키면서도, 심각한 안보 환경의 현실을 ‘핵무기가 없는 세상’이라는 ‘이상’에 연결시키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이다. 중국과 미국 간의 긴장관계나 북한의 위협 속 핵무기 폐지를 이미 현실적이지 않는 이상이라는 사상이 엿보였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1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검토회의에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참석해 역시 이렇게 연설했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가운데 핵에 의한 위협이 행해지고 핵무기의 참화가 다시 반복되는 것이 아닌지 세계가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핵무기 없는 세계를 향한 길이 한층 어려워졌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두 연설에서 핵무기 근절을 위한 국제조약인 핵무기금지조약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피폭국이면서도 핵무기금지조약에 찬성하지 못하는 모순을 이번에도 보여 준 셈이다. 불안정한 세계정세를 전제로 한 이 같은 ‘현실과 이상론’은 자민당이 추진하는 평화헌법 개정의 근거이기도 하며, 이 논리는 일본 국민에게도 급속히 침투하고 있다. 지난 6일 한 피폭단체는 총리와의 면담에서 “우리는 낙담하고 있다”며 곧장 항의했다. 피폭국으로서 평화를 추구하는 메시지가 유명무실해지는 상황에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원폭 비극에서 77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나가며 희미해지는 기억을 계승하는 어려움도 있다. 일본에서는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여름방학 기간이라도 히로시마 원폭날(8월 6일)이나 나가사키 원폭날(8월 9일)에 등교해 평화학습 시간을 갖는다. 기자도 한여름에 체육관에서 전교생들과 원폭에 관한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중학생 때는 평화학습에서 강제징용에 관한 영화를 봤는데, 가해자로서의 일본을 알게 돼 충격을 받기도 했다. 요즘에는 이런 여름방학 평화학습 시간이 점점 줄고 있지만 수학여행은 아직까지 많은 학교가 히로시마나 나가사키로 간다.
한국의 광복절인 8월 15일은 일본에서는 패전일이며 전쟁이 끝난 날이다. 일본에선 마침 추석(오봉) 날이기도 해 성묘하러 간다. 습한 더위 속에 입추를 지나 남은 여름을 살아 내려는 매미들이 힘껏 우는 소리를 들으며 묘소에서 고개를 숙인다. 77년 전 ‘동아시아 공영권’이라는 명목으로 전쟁한 일본 제국주의는 원폭으로 무너졌고 수많은 무고한 희생이 뒤따랐다. 히로시마에서는 조선의 왕족 이우도 희생됐다.
일본에게 8월은 전쟁을 뒤돌아보고 평화를 생각하는 시간이며 영혼들을 모시는 시간이다. 이 여름에도 일본은 간절히 평화를 외치면서 전쟁할 수 있는 ‘보통 나라’로 탈피하려는 양면성과 딜레마에 흔들리고 있다.
2022-08-08 [1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