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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연근해 어업을 살려야 해양 경제가 살아난다
부산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항만도시다. 세계적인 컨테이너 항만과 첨단 물류시스템은 부산 경제를 이끄는 핵심 축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부산을 오늘의 해양도시로 성장시킨 출발점은 거대한 컨테이너선이 아니라 새벽마다 바다로 나가는 어선이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연근해 어업의 발상지이자 원양어업의 전진기지였다.
부산의 해양 경제는 항만이 아닌 바다에서 시작됐다. 연근해에서 생산된 수산물이 있었기에 공동어시장이 형성되었고, 수산 가공산업과 냉동·냉장 물류가 성장했으며, 항만은 이를 국내외로 연결하는 관문이 될 수 있었다. 오늘날 수산업은 단순한 1차 산업이 아니다. 어선 한 척이 출항하기 위해 조선, 기자재, 금융, 인력이 움직이고, 어획물이 도착하면 위판·유통을 거쳐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가공된 뒤 세계시장으로 수출된다. 생산에서 소비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해양 가치사슬(Value Chain)의 출발점이 바로 연근해 어업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 첫 번째 고리가 흔들리고 있다. 우리나라 연근해 어업 생산량은 한때 연간 150만t을 웃돌았지만, 최근에는 80만t 안팎까지 감소했다.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온 상승, 자원 감소와 고유가, 어업인 고령화 및 인력 부족이 겹치며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 문제는 이 위기가 어업인만의 어려움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원료 공급이 줄어들면 수산 가공업체의 부담이 커지고 냉동 물류와 위판장 가동률도 떨어진다. 결국 지역경제와 고용시장 전체가 타격을 입게 된다.
부산은 이러한 변화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도시다. 부산에는 국내 최대 공동어시장과 국제 수산물도매시장, 감천항 일원을 중심으로 집적된 냉동·냉장창고 등 대한민국 최고의 수산 인프라가 집적되어 있다. 이 산업생태계는 연근해 수산물이 안정적으로 공급될 때 비로소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항만은 미래산업, 수산은 전통산업으로 분리해 바라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부산 해양 경제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바라본 결과다. 항만은 스스로 화물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물동량은 산업이 만든다. 수산물과 수산가공품은 부산항을 통해 수출되는 고부가가치 화물이며, 신선식품 특성상 일반 화물보다 더 높은 물류 가치와 고용효과를 창출한다. 결국 수산이 살아야 항만도 성장하고, 항만이 발전해야 수산의 경쟁력도 높아지는 공생 관계다.
이제 부산의 해양 정책도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 연근해 어업, 수산 가공, 콜드체인 물류, 스마트 위판, 항만물류를 하나의 통합된 해양산업 생태계로 육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과학 기반의 수산자원 회복과 기후변화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 둘째, 노후 어선 현대화와 스마트 어업 전환을 추진하고, 셋째, 청년들의 안정적인 정착 기반과 교육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넷째, 친환경·저탄소 어업 기술을 확대하며, 다섯째, K수산식품의 고부가가치화를 지원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스마트 위판과 디지털 유통 체계를 구축해 부산을 세계적인 수산 유통 허브로 발전시켜야 한다.
부산은 항만도시이면서 대한민국 최대의 수산 도시다. 이제는 바다를 중심으로 생산, 가공, 물류, 금융이 하나로 연결되는 진정한 해양 경제 수도를 만들어야 한다. 새벽 바다로 출항하는 어선 한 척은 단지 물고기를 잡는 것이 아니라, 부산의 가공공장을 움직이고 항만을 살리며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가치사슬의 첫걸음이다.
부산의 미래는 풍요로운 바다에서 시작된다. 연근해 어업이 살아야 수산업이 살고, 수산업이 살아야 부산항도 경쟁력을 갖는다. 부산이 세계적인 해양 경제 수도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첫 번째 산업은 바로 연근해 어업이다.
2026-10-07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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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시민 생명과 직결된 '물 안전'
“시민과 적극 소통하고 민생을 즉시 살피겠다”던 전재수 부산시장의 약속. 그 첫 시험대는 바로 부산 시민의 밥상과 일상을 위협하는 ‘안전한 먹는 물 확보’가 되어야 한다.
날씨가 더워질 때쯤 시민들의 걱정은 깊어만 간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낙동강의 ‘녹조’ 때문이다. 창밖에 이글거리는 태양의 열기보다, 우리 집 싱크대와 욕실로 흘러드는 수돗물이 더 두렵고 걱정스러운 것이 오늘날 부산시민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 문제는 당장 식탁 위의 생존 문제와 다름없다. 아이에게, 가족에게 깨끗한 물을 먹이고 싶은 것은 세상 모든 어머니의 가장 소박하고도 간절한 바람이다. 녹조가 창궐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정수 과정에서 모두 걸러지니 안심하고 마시라”는 정부와 지자체의 상투적인 답변은 더 이상 위로가 되지 못한다. 발암물질과 간 독성을 유발하는 마이크로시스틴은 눈에 보이기라도 하지만, 낙동강 상류의 수많은 공장 폐수에서 흘러나오는 미량유해화학물질과 과불화화합물(PFAS)은 소리 소문도 없이 우리의 몸속으로 침투하고 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현장에서 이 문제를 끊임없이 감시해 온 시민단체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산업이 번창하고 경제가 부강해진들 무엇하겠는가? 부산 시민의 기대수명이 전국 최하위권을 기록하는 기막힌 현실 속에서, 매번 불안감을 안고 생수를 사 나르거나 정수기 필터를 교체해야 하는 일상을 우리는 언제까지 감내해야만 하는가? 왜 우리는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 불리는 부산에 살면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안전한 물을 마실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가?
낙동강 표류수에만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재의 급수 체계는 기후위기 시대에 이미 그 한계를 드러냈다. 매년 반복되는 사후약방문식의 고도정수처리나 임시방편적인 대책만으로는 이 거대한 환경 재앙을 막을 수 없다.
녹조 독성과 미량유해물질에 대한 공포는 단순한 환경오염을 넘어 시민의 건강과 생존권을 직접 위협하는 ‘사회적 재난’ 단계에 이르렀다. 한여름 폭염이 녹조를 부른다면, 장마와 폭우는 전 국토의 오염물질을 쓸어내리며 낙동강 표류수의 탁도를 악화시킨다. 그런데도 부산 시민은 여전히 그 물을 정수해서 마실 수밖에 없는 처지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근본적이고 과감한 결단과 실천이다. 부산시장 그리고 정부에 강력히 촉구한다.
첫째, 취수원 다변화 사업은 정부의 정책적 결단으로 조속히 실행해야 한다. 안전한 물 공급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행복권이자 기본권이다. 언제 어디서나 안심할 수 있는 물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식수 전용 댐이 마땅히 있어야겠으나, 차선책은 갈등 해소와 제도 개선을 통해 깨끗한 원수를 관계 지자체와 공유하는 것이다. 부산시 공무원들이 취수 영향 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휴일도 반납하며 설득에 공을 들여온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시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중재 노력이 없다면 지역 간 협의는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뿐이다.
둘째, 정부는 더욱 책임감 있는 자세로 중재에 나서야 한다. 시민들은 1991년 낙동강 페놀사태 이후 무려 40여 년 가까이 물 불안을 감내해 오고 있다. 만약 수도권 주민들이 마시는 팔당댐과 한강 표류수의 COD(화학적산소요구량) 기준이 여름 내내 5~6ppm에 달했다면 정부가 이토록 수수방관했겠는가. 이제 정부는 부산시와 협력하여 시민의 안전한 상수원 확보를 위해 더 이상 머뭇거림 없이 실질적인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
언제까지 시민들이 짙은 녹색으로 물든 낙동강을 바라보며 불안에 떨어야 하나. 아이들에게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물’을 물려줄 수 있도록, 그동안 부산시와 시민단체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새 시장이 앞장서 주길 바란다.
2026-10-0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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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가 본 정명훈의 '오텔로'
오페라의 대명사 주세페 베르디(1813~1901)의 대표작으로는 흔히 ‘리골레토’(1851)와 ‘라 트라비아타’(1853), ‘일 트로바토레’(1853)를 꼽는다. 그러나 이는 가장 대중적인 작품들이고, 베르디의 기법이 무르익은 최고 걸작으로는 ‘돈 카를로’(1884)와 ‘오텔로’(1887)를 친다. 여기에 종교성악곡으로 ‘레퀴엠’(1874)을 추가하면 베르디 걸작 빅3가 완성된다. 베르디의 가장 파퓰러한 빅3와 위대한 빅3는 이렇게 나뉜다.
공교롭게도 전자의 세 작품은 중기작이고, 후자의 세 작품은 후기작이다. 그만큼 베르디는 환갑을 넘긴 후기로 갈수록 관현악법에 심오함과 밀도를 더했다. 그러한 밀도가 극대화된 작품이 ‘오텔로’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원작으로 70대의 베르디가 작곡한 ‘오텔로’는 바그너풍의 두터운 화성을 베르디가 독자적으로 소화한 명작이다. 연주의 난도가 높아 무대에 자주 오르지 못하는 난곡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오텔로’ 스페셜리스트는 손에 꼽을 만큼 희소하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툴리오 세라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카를로스 클라이버 같은 옛 거장들만이 이 작품의 진정한 해석자로 평가되어 왔다. 이들이 사라진 지금 정명훈은 현존 최고의 ‘오텔로’ 스페셜리스트로 추앙받고 있다. 1993년과 2013년 파리와 베네치아에서 두 번 ‘오텔로’ 전막을 녹음했고, ‘레퀴엠’ 또한 1998년과 2001년 도쿄와 서울에서 두 차례 녹음했다. 현존 지휘자 누구도 베르디 만년의 최고 걸작 두 편에서 이 같은 업적을 남긴 이는 없다.
필자는 2001년 4월 1일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정명훈 지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라디오 프랑스 합창단의 연주로 ‘오텔로’를 관람한 적이 있다. 다니엘레 아바도의 공간연출(Mise en espace)이 가세한 무대는 가히 초절적인 명연이었다. 테너 호세 쿠라의 오텔로와 소프라노 카리타 마틸라의 데스데모나, 바리톤 앤서니 마이클 무어의 이아고, 테너 체사레 카타니의 카시오 등 캐스팅도 특급 일색이었다.
이들의 가창과 연기도 훌륭했지만 수훈갑은 단연 정명훈이었다. 당시 48세의 정명훈은 천지개벽할 천둥과도 같은 사운드를 1막 도입부의 폭풍우 장면에서부터 이끌어냈다. 오케스트라의 노도와도 같은 포효는 2막 말미 오텔로와 이아고가 의기투합하는 2중창과 3막 베네치아 총독의 특사 로도비코의 등장 장면에서도 이어졌다. 21세기 최고 ‘오텔로’ 스페셜리스트다운 정명훈의 명지휘였다. 2006년 6월 9일 파리 근교 생드니 대성당에서의 ‘레퀴엠’ 연주도 같은 맥락의 명연이었다.
그런 정명훈이 내년 9월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무대를 수놓을 것으로 보인다.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음악감독 신분으로 지휘해 베르디의 ‘오텔로’와 ‘레퀴엠’을 공연하는 협의가 한창이다. 라 스칼라는 두 걸작을 초연한 단체다. 부산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부산오페라하우스가 74세의 노장 정명훈의 지휘로 역사적인 개막을 알리기를 소망한다. 다음달 개관하는 상하이 그랜드 오페라하우스는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과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상트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을 통째로 초청해 화려한 개막을 준비 중이다. 부산이 상하이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 아시아 유일의 세계적 거장 정명훈만이 그의 고향 부산이 잉태한 부산오페라하우스의 개막을 알릴 권한과 의무가 있다.
2026-09-27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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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각지대 메우는 부산형 현장 안전망
부산은 조선·기자재, 뿌리산업, 항만·물류 등 다양한 산업이 도시의 성장과 일자리를 떠받치고 있다. 그러나 산업현장의 규모와 여건은 제각각이다. 자체 안전관리 인력과 체계를 갖춘 기업이 있는 반면, 인력과 비용의 한계로 위험요인을 알면서도 적절한 개선 방법을 찾지 못하는 소규모 사업장도 적지 않다. 중대재해 예방정책의 성패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지를 넘어, 예방의 손길이 이러한 현장까지 실제로 닿는지에 달려 있다.
산업재해는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전에는 대부분 여러 위험 신호가 반복된다. 낡은 설비, 정리되지 않은 작업 동선, 익숙함 때문에 소홀했던 보호구 착용, 언어 차이로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 안전수칙 등이 겹치며 사고 가능성을 높인다. 특히 소규모 사업장은 무엇을 먼저 개선해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고, 기존 지원사업의 정보를 제때 접하지 못하거나 복잡한 신청 절차에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따라서 현장에 직접 찾아가 위험요인을 함께 확인하고, 진단에서 교육과 개선까지 이어주는 촘촘한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부산테크노파크는 고용노동부와 부산시의 지원을 받아 ‘지역 중대재해 예방 사각지대 해소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이를 ‘고위험 산업 사각지대 집중관리사업’, 줄여서 ‘지중해 사업’으로 운영한다. 이 사업은 단발성 점검에 그치지 않고, 고위험 사업장을 발굴한 뒤 안전 전문가의 현장 진단과 기술지도, 안전시설 개선을 위한 재정 지원, 근로자 보호구 지원, 내·외국인 맞춤형 안전교육 등을 현장 여건에 맞게 연계하는 데 중점을 둔다.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정답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변화를 만드는 일이다. 안전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생산 일정과 비용, 인력 부족 때문에 미뤄지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가 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위험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현실적인 개선방안을 제시하면 기업은 무엇부터 바꾸어야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여기에 필요한 시설과 보호구, 교육을 연계함으로써 진단이 실제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지중해 사업의 핵심이다.
외국인 근로자가 늘어나는 산업현장의 변화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안전교육을 실시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근로자가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위험한 순간에 행동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부산은 외국인 근로자 대상 교육과 안전표지 지원, 현장 내 안전리더 양성 등을 통해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 공백을 줄이고자 한다. 안전은 국적이나 고용 형태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되는 기본적인 권리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과제는 지원이 끝난 뒤에도 현장의 변화가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다. 개별 사업장의 지원 경험을 일회성으로 남기지 않고 지역 전체의 예방 역량으로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대재해 예방은 한 기관이나 기업의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안전 전문기관, 기업과 근로자가 각자의 역할을 다하고 긴밀하게 연결될 때 비로소 현장의 변화가 만들어진다. 무엇보다 기업이 지원을 부담스러운 점검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더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한 기회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부산테크노파크는 산업과 기업을 지원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안전정책과 산업현장을 잇는 가교가 되고자 한다.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정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안전에서 소외되는 일터가 없도록 현장의 목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듣겠다. 안전 사각지대를 하나씩 메우는 꾸준한 노력이 부산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일하는 시민 모두가 안심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가장 확실한 기반이 될 것이다.
2026-09-2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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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오페라하우스의 첫 무대, 부산의 위대한 꿈을 노래하자
부산 북항에 새로운 오페라하우스가 문을 연다. 바다를 향해 열린 이 극장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다. 부산이 걸어온 시간을 품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향해 문을 여는 새로운 문화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그 첫 무대에서는 무엇을 노래해야 할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를 초청해 화려한 개관 공연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부산의 첫 무대에서 세계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보다 부산이 걸어온 위대한 이야기를 세계의 예술언어인 오페라로 만들어 들려주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그래서 북항 오페라하우스의 첫 작품으로 ‘부산, 위대한 꿈’을 제안하고 싶다. 부산의 현대사는 한 편의 거대한 오페라와 닮았다. 일제강점기의 어둠 속에서도 나라의 독립을 꿈꾼 사람들,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 불타버린 부산역과 폐허가 된 도시, 그리고 그 잿더미 위에서 다시 삶을 일으켜 세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 중심에 윤상은과 윤인구 부자의 꿈을 놓을 수 있다. 아버지 윤상은이 나라의 독립을 꿈꾸며 부를 일구었다면, 아들 윤인구는 교육을 통해 사람을 키우는 것이 나라의 미래를 만드는 길이라고 믿었다.
해방 직후인 1946년 5월 15일, 부산대학교는 지역민들의 헌금과 교육에 대한 열망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종합국립대학으로 출범했다. 그리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 대학의 미래를 위해 뛰었던 윤인구 초대 총장 앞에 위트컴 장군이 있었다. 윤인구가 대학의 꿈을 설명하자 위트컴 장군은 그 꿈을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였다. 그는 현재의 장전동 약 50만 평에 이르는 캠퍼스 부지 확보와 공사 지원에 힘을 보탰고, 미 공병부대를 동원해 온천동과 부산대 사이를 잇는 도로까지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전쟁 중인 나라에서 대학을 세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미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위트컴 장군의 이야기는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그는 1953년 부산역 대화재 때 군수창고를 열어 이재민을 도왔고, 의료기관과 전쟁고아 지원에도 힘을 보탰다. 특히 부산대의 터전을 마련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전쟁이 끝난 뒤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를 키우는 일에 힘을 보탰다.
집은 오늘을 살게 하지만 교육은 내일을 살게 한다.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한 사람을 구하지만, 한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그가 살아갈 수많은 내일을 바꾼다. 부산은 그렇게 다시 일어섰다.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가진 것이 거의 없었음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씨앗을 심었고, 누군가는 그 씨앗에 물을 주었으며, 누군가는 폭풍 속에서도 나무를 지켰다. 오늘의 부산은 이름 없이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의 어제 위에 세워져 있다.
그래서 북항 오페라하우스의 첫 무대는 특별해야 한다. 세계의 유명 작품을 부산에서 공연하는 것은 세계를 부산으로 불러오는 일이다. 그러나 부산의 이야기를 세계적인 오페라로 만들어 세계에 들려주는 것은 부산을 세계로 보내는 일이다. 진정한 문화도시는 세계의 작품을 소비하는 도시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창조해 세계에 들려주는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부산은 전쟁을 경험한 도시다. 그러기에 평화를 말할 자격이 있다. 가난을 경험한 도시이기에 나눔을 말할 수 있다. 폐허에서 일어난 도시이기에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북항은 과거의 부산항과 미래의 부산이 만나는 곳이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첫 노래 역시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해야 한다. 한 사람의 꿈이 한 도시의 꿈이 되고, 한 도시의 꿈이 한 나라의 꿈이 되며, 마침내 인류의 꿈이 될 수 있다. 부산은 이미 그것을 보여주었다. 폐허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이제 북항 오페라하우스에서 부산은 다시 세계를 향해 꿈꾸어야 한다. ‘부산, 위대한 꿈’. 그것은 지나간 부산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미래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첫 무대의 마지막 합창은 아마 이렇게 끝나야 할 것이다. “우리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 부산의 꿈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2026-09-2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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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포해전에서 이순신과 넬슨을 생각하다
1592년 음력 9월 1일(양력 10월 5일), 조선 수군은 부산포를 공격했다. 전라도 해남에 주둔하던 전라우수군까지 먼 바닷길을 거쳐 참전했다. 조선 수군이 본거지를 멀리 떠나 남해안을 따라 일본군의 핵심 거점인 부산포까지 진격했다는 점에서, 부산포해전은 매우 담대하고 전략적인 대규모 원정작전이었다.
부산포에는 일본 함선 약 470척이 정박해 있었다. 조선 수군은 함선과 육상에서 저항하는 일본군을 뚫고 적선 100여 척을 깨뜨리고 불태웠다. 전라좌·우수군이 주력을 이뤘고 경상우수사 원균도 남은 함선을 이끌고 참전했다. 삼도수군통제사라는 직책이 생기기 전이었지만, 이순신은 조선 수군을 사실상 지휘하여 대승을 이끌었다.
부산포해전을 되돌아보면, 자연스럽게 이순신이 7년 전쟁에서 남긴 전공과 군사적 혁신을 생각하게 된다. 임진왜란 7년 동안 이순신은 자신이 참전한 해전에서 적선 700여 척을 격파하는 세계 해전사에서도 보기 드문 전공을 세웠다.
필자의 사료 고증과 군사공학적 분석에 따르면, 부산포해전에도 투입된 거북선은 적진으로 돌진해 대형을 교란하고, 견고한 덮개로 아군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초근접 함포 사격의 명중률을 극대화한 장갑형 돌격함이었다. 세계 해전사에서도 주목할 군사혁신이자 16세기 해전의 ‘게임체인저’였다.
이러한 이순신의 전공과 군사혁신을 세계 해전사의 시야에서 바라보면 200여 년 뒤 영국의 호레이쇼 넬슨 제독이 떠오른다. 시대와 전쟁의 조건이 달라 두 사람의 우열을 단순히 가릴 수는 없다.
그러나 이순신이 서방 세계에 알려지던 일제강점기, 일부 해외 군사사가와 해군 인사들은 그의 전공과 지휘 능력을 넬슨에 비견하거나 더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오늘날 해외에서도 이순신은 만화와 짧은 영상 등을 통해 간헐적으로 소개되지만, 주로 영웅적 일화나 신화적 서사에 머물러 있다. 영미권 주류 해전사 학계에는 사료 고증과 과학적 검증에 기초한 영문 전문서와 연구가 부족하고, 국내 연구 성과도 언어의 장벽을 넘어 충분히 확산되지 못했다. 이러한 학술적 공백으로 인해 이순신은 그 역사적 성취에 걸맞은 조명과 평가를 아직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다.
대중적 인지도와 학문적 평가는 다르다. 역사적 인물의 세계사적 위상은 명성이 아니라 검증된 연구의 축적과 학계의 지속적인 평가를 통해 세워진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러한 학술적 공백을 메우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K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 이순신과 거북선도 세계 해전사의 공론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순신의 세계화는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료 고증과 과학적 검증에 기초한 연구 성과를 세계 학계와 공유하고, 그 역사적 성취에 걸맞은 자리에 올려놓는 일이다.
부산포해전 승전일, 세계 해전사에서 이순신이 차지해야 할 진정한 자리를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는 이순신을 흔히 ‘한국의 넬슨’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언젠가 세계인이 넬슨을 ‘영국의 이순신’이라 부르는 날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2026-09-2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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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부산에서 닻 올린 ‘유산 오디세이’ …존엄과 평화를 향해
지난 7월 부산에서 개최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성황리에 끝난 지 한 달여 지났지만, 그 여운은 깊다. 문화유산과 인간의 존엄성을 연구하는 필자는 부대행사에서 ‘평화의 수호: 존엄과 정의를 향한 우리의 영원한 유산 여정(Defenses of Peace: Our Enduring Heritage Odyssey Toward Justice and Dignity)’을 주제로 발표했다. 인류의 숨결이 깃든 세계유산을 돌아보며 평화와 존엄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전 세계 유산 전문가들과 공유한 값진 시간이었다.
도쿄대 소속이자 이코모스(ICOMOS) 한국위원회 정회원으로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을 10년 가까이 연구해 온 필자에게 이번 행사는 더욱 각별했다. 유엔묘지를 집중 연구하며 미국 유엔본부에서 1000여 장의 사료를 발굴한 열의 때문만은 아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품에 안겨 피란길 언덕을 구르며 목숨을 건졌다던 아버지의 고투와 디아스포라의 기억이 나의 유전자에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부산 유산 연구를 통해 평화와 인류애를 전파하는 작업은 피란민 후손으로서 나의 뿌리를 찾고, 그들의 희생에 연대하려는 작은 헌신이자 사명이다.
발표에서는 부산 유산의 인류 보편적 가치를 쉽게 전하고자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캐릭터인 ‘금순이’와 ‘금동이’가 떠나는 가상의 유산 여정을 구성했다. 1776년 선포된 미국 독립기념관의 ‘법적 권리와 인간 존엄’, 제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 추모 유적지의 ‘초국가적 기억과 연대’, 남아공 넬슨 만델라 유산의 ‘공동체적 화해 정신 우분투(Ubuntu)’. 이 세 보물은 한국전쟁 당시 인류애와 피란민 구호가 실천된 부산에서 하나로 어우러진다.
임시수도중앙청과 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은 대한민국의 법적 주권과 국제협력의 거점으로서 미국 독립기념관의 이념과 맞닿아 있다. 세계 유일의 유엔묘지는 유엔 깃발 아래 스러져 간 병사들을 기억하는 초국가적 연대의 장소로, 서부전선 추모 유적의 메시지와 공명한다. 또한 피란민의 슬픔과 희망이 교차하던 영도다리와 피란주거지는 만델라의 우분투 정신처럼, 삶의 질곡 속에서 피어난 공동체적 포용과 회복력을 전한다. 부산은 포화 속 인류애의 기억을 70여 년에 걸쳐 자유민주주의로 승화시켜 온 ‘살아있는 평화의 실천 수도’다.
이 교훈을 미래세대에 전승하기 위해 유산을 통한 세대 간 교류, 교육·미디어 확산, 박물관·아카이브 협업, 언어 다원성 존중이라는 4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캐릭터를 등장시킨 까닭은 분쟁 속에서도 아이들이 유산을 통해 배움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는 유네스코의 핵심 가치인 ‘교육’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어쩌면 금동이의 모습에서 70여 년 전 피란길에 올랐던 한 어린 소년, 나의 아버지를 보았는지도 모른다.
이번 부산 선언에는 세계유산협약의 기존 5개 전략목표를 관통하는 원칙으로 ‘협력(Collaboration)’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이 협력의 정신에 지속가능발전목표의 글로벌 파트너십(SDG 17), 대한민국 보은 정신, 그리고 부산의 상징색인 자주와 파란색이 뜻하는 ‘포용과 화합’의 메시지를 담아내야 한다. 재외동포 연구자 시각에서 볼 때, 부산 선언이 터를 닦은 ‘K협력’의 시대에 대한민국의 역할은 막중하다. 기후변화와 인공지능 고도화,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산을 매개로 공존의 다리를 놓을 때 비로소 평화는 일상의 실재가 된다.
비극의 상흔을 ‘평화의 수호’로 승화시킨 부산 유산은 반목으로 얼룩진 세계를 향해 새 이정표를 제시한다.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 개최지로서 부산의 역할은 막을 내렸지만, 2030년 세계유산 등재를 향해 나아갈 피란수도 부산 유산은 인류애를 입증할 또 다른 위대한 오디세이의 닻을 올렸다.
2026-09-1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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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 로컬 브랜드가 전국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것
부산에는 좋은 로컬 브랜드가 많다. 바다와 항만, 관광, 금융, 청년 문화가 만나는 도시답게 독특한 감각을 가진 가게와 기업도 적지 않다. 그러나 좋은 브랜드가 곧 전국 브랜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에서 사랑받는 것과 다른 도시에서도 반복적으로 선택받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부산다운 개성은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확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로컬 브랜드가 전국으로 가기 위해 가장 먼저 갖춰야 할 것은 화려한 홍보가 아니라 운영표준이다. 특히 F&B 브랜드는 메뉴가 맛있다는 말만으로 확장할 수 없다. 같은 맛을 유지하는 제조 기준, 원가율 관리, 발주 방식, 직원 교육, 피크타임 대응, 고객 불만 처리, 재고 관리가 반복 가능해야 한다. 첫 매장의 성공이 대표의 감각과 노동에만 기대고 있다면, 두 번째 매장은 곧 리스크가 된다. 확장은 간판을 하나 더 다는 일이 아니라, 성공한 운영 방식을 다른 사람이 다시 실행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많은 브랜드가 확장 단계에서 가장 먼저 디자인과 광고를 고민한다.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매장 안에서 매일 반복되는 작은 기준이다. 컵 한 잔을 내는 시간, 재료 보관 위치, 주문 오류 대응, 신입 직원이 혼자 근무할 수 있는 시점까지 정해져 있어야 한다. 이런 기준이 없으면 브랜드가 커질수록 품질은 흔들리고, 고객은 빠르게 떠난다.
필자 역시 부산 BIFC 오피스 상권에서 매장을 운영하며 같은 문제를 확인하고 있다. 같은 메뉴라도 출근 전, 점심 직후, 오후 시간대 고객의 반응은 다르다. 유동인구가 많아 보여도 실제 결제로 이어지는 시간과 동선은 따로 있다. 따라서 출점 판단은 ‘사람이 많다’가 아니라 ‘누가, 언제, 왜, 얼마나 반복해서 구매하는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매출이 높아 보이는 시간대와 수익이 남는 시간대가 항상 같은 것도 아니다.
대형 저가 커피 브랜드와 경쟁하는 상황에서는 가격만으로 오래 버티기 어렵다. 낮은 가격은 금방 모방되고, 임대료와 인건비가 오르면 가장 먼저 무너진다. 결국 로컬 브랜드의 경쟁력은 낮은 가격이 아니라 합리적인 가격 안에서 일정한 경험을 제공하는 능력이다. 지역의 감각과 운영의 안정성이 함께 갈 때 고객은 다시 찾는다.
이 지점에서 데이터와 AI 상권분석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상권의 업종 분포, 경쟁 밀도, 배후 수요, 임대료 수준, 시간대별 흐름을 함께 보면 창업자의 직감이 어디에서 과장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데이터가 현장을 대신할 수는 없다. 매장 앞 동선, 건물 출입구 방향, 점심시간 줄의 흐름, 주변 직장인의 소비 습관은 직접 확인해야 한다. 데이터는 결정을 대신하는 답이 아니라 잘못된 결정을 줄이는 질문이어야 한다.
부산 로컬 브랜드의 전국 확장은 ‘부산을 벗어나는 일’이 아니다. 부산에서 검증한 경험을 다른 도시에서도 이해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꾸는 일이다. 지역성은 브랜드의 얼굴이지만, 표준화와 숫자는 브랜드의 체력이다. 이 체력이 부족하면 좋은 이야기와 멋진 간판도 오래 버티기 어렵다. 반대로 운영 기준이 분명하면 지역의 색깔은 더 멀리 갈 수 있다.
지역 기관의 지원도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 단순한 홍보 행사나 일회성 지원보다 초기 브랜드가 운영 데이터를 쌓고, 테스트 매장을 검증하고, 다른 상권으로 확장할 때 필요한 교육과 멘토링을 제공해야 한다. 부산의 청년기업과 소상공인이 전국으로 나가려면 감성적인 응원보다 냉정한 진단과 실험의 기회가 더 중요하다. 지원의 목표도 ‘행사 참여 기업 수’가 아니라 ‘재현 가능한 성장 모델을 만든 기업 수’로 바뀌어야 한다.
전국 브랜드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 지역에서 축적한 고객 경험을 숫자로 정리하고, 매장 운영을 표준화하고, 다른 상권에서도 반복 가능한 구조로 바꿀 때 가능성이 생긴다. 부산 로컬 브랜드가 더 크게 성장하려면 이제 ‘부산다운 감성’을 넘어 ‘부산에서 검증된 시스템’을 보여줘야 한다.
2026-09-1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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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계유산위원회는 끝났다, 부산은 이제 시작이다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부산에서 막을 내린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우리나라가 세계유산협약 가입 이후 처음 개최한 이 회의에 세계 160여 개국에서 3000여 명이 참가했다. 이제 행사의 열기가 가라앉은 자리에서 그 성과가 부산의 미래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 되짚어 볼 때다.
‘한국의 갯벌’ 확장 등재와 함께 가장 상징적인 성과는 ‘세계유산에 관한 부산 선언’의 채택이었다. 부산 선언은 기존 5대 전략목표에 ‘협력’을 추가할 것을 제안하고, AI 기술 활용과 그 책임을 공식 의제로 제시했다. 베니스 헌장과 리우 선언처럼 도시 이름을 담은 국제 문서는 그 도시를 하나의 가치와 정신으로 기억하게 한다. 이로써 부산의 이름도 세계유산의 역사에 오래 남게 되었다.
참가자들은 해양경관뿐 아니라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국가 기능을 유지하고 피란민을 받아들이며 국제사회의 연대 속에서 도시와 공동체를 지켜 낸 ‘피란수도 부산’의 역사를 현장에서 만났다. 인류애와 포용, 국제연대와 평화를 증언하는 부산의 가치가 세계인과 소통할 수 있음을 확인한 자리였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분명하다. 세계유산위원회 이후 부산은 무엇을 할 것인가. 국제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렀다는 기억만 남긴 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성과는 후속 사업의 지속성과 실행력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지난달 22일 우리나라 최초의 북동항로 컨테이너선 시범운항에 나선 ‘팬스타 아크로호’가 부산신항을 출발했다. 북극항로 시대가 구호를 넘어 실제 항해로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과 북극항로 개척은 부산이 글로벌 해양도시로 도약할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러나 글로벌 해양도시는 항만과 물류의 규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바다를 통해 세계와 교류해 온 역사와 문화, 전쟁과 피란의 위기를 국제연대로 견뎌 낸 경험이 함께해야 한다. 북극항로가 부산의 미래를 여는 새로운 길이라면, 세계유산은 그 길에 부산만의 정체성과 품격을 더하는 힘이다. 항로 개척 또한 북극 환경과 해양생태계,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동반해야 한다. 바다를 이용하는 도시를 넘어 바다를 이해하고 지키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이번 위원회를 통해 항구와 원도심, 산과 바다, 피란수도의 기억이 어우러진 ‘부산다움’이 세계인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제 그 관심을 부산항과 원도심으로 이어 지역의 변화와 혁신을 이끄는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세계유산은 도시를 멈춰 세우는 보존제도가 아니다. 유산을 문화관광·교육·연구·첨단기술과 연결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미래 자산이다. 다만 그 출발점은 유산의 진정성과 장소성에 대한 존중이어야 한다. 보존 없는 활용도, 시민과 지역공동체가 빠진 세계화도 오래갈 수 없다.
부산시는 국제유산포럼의 정례화와 유네스코 카테고리2센터 유치를 후속사업으로 제시했다. 이제 누가, 어떤 조직과 예산으로, 언제부터 실행할 것인지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아야 한다. 조선통신사 기록물의 보존과 활용, 피란수도 부산유산의 세계유산 등재와 통합관리, 부산의 해양·산업·근현대유산 연구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장기적인 유산정책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는 끝났지만 부산의 세계유산 여정은 이제 시작이다. 부산 선언은 회의장의 문서에 머물지 않고 도시정책과 시민의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부산이 바다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도시이자 인류애와 평화, 자연과 유산에 대한 책임을 세계와 나누는 도시가 되도록 이제 다시 힘껏 노를 저어야 한다.
2026-09-0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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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의 노후도시를 움직일 법, 운영기준이 문턱이 되어선 안 된다
부산의 정비사업 현장에서 시공사를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동래 복산1구역은 시공사 선정 11년 만에 시공단과 결별했고, 해운대 우동1구역과 동래 명장3구역은 경쟁 입찰이 잇따라 유찰됐다. 남구 문현6구역은 1500세대가 넘는 대단지임에도 입찰 참여 건설사가 전무했다. 공사비와 PF금융비용은 전국적으로 급등했으나, 수도권과 달리 지방은 분양가와 수요 회복세가 더뎌 사업성이 급격히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긴 인허가 기간과 맞물려 늘어나는 이자 부담은 지역 건설사의 경영기반마저 흔들고 있다.
2024년 기준 부산의 30년 이상 노후주택은 43만 2913호(전체의 32.1%)에 달하며, 원도심 일대는 저층 주거지와 소규모 공동주택이 혼재돼 단독 개발로는 채산성이 나오지 않는다. 대규모 신도시를 겨냥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2023년 12월 26일 제정, 2024년 4월 27일 시행)의 적용 범위에서도 벗어난 사각지대가 다수 존재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등장한 제도가 바로 ‘도심 복합개발 지원에 관한 법률’ (2024년 2월 6일 제정, 2025년 2월 7일 시행)이다. 역세권과 준공업지역에 용적률 상향 등 파격적인 특례를 부여하고, 신탁사·리츠 등 전문기관의 참여를 열어 도심 정비의 숨통을 틔우자는 취지다.
이에 발맞춰 부산시도 도심복합개발사업 운영 기준을 마련했으나, 실제 작동 가능한 현실적 기준인지 냉정한 점검이 필요하다. 가장 큰 문제는 ‘비주거시설 의무비율(원칙 15%, 예외 10%)’이다. 상권 침체가 장기화된 지방에서 상업·업무시설을 강제하면 대규모 미분양과 공실 대란으로 이어져 사업 자체가 좌초된다. 또한, 운영기준이 주택법상 준주택을 비주거 인정 범위에서 배제하고 있는 점도 개선이 시급하다. 청년 기숙사나 고령자 복지주택, 사업자가 자발적으로 추가 공급하는 임대주택 등을 비주거 의무비율로 인정해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공공기여량의 50% 이상을 공공주택으로 일률 강제하는 방식 역시, 법정 용적률 특례에 따른 의무 임대주택과 중복돼 사업성을 떨어뜨린다. 공공기여는 획일적 주택 공급을 넘어 지역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주차장, 공원, 문화·체육 생활SOC 등으로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도심복합개발이 공염불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시장에서 작동하려면, 지역 건설사와 건축주(토지등소유자), 시민의 3대 주체가 체감할 수 있는 실효적 유인책이 결합되어야 한다.
먼저, 지역 건설사 관점에서 수주 리스크 해소와 사업 지속가능성이 확보돼야 한다. 획일적인 상업시설 대신 청년임대와 노인복지주택, 공공기여시설로 대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아울러, 지역 건설사가 시공사 또는 공동시행자로 참여할 경우 용적률 가산 인센티브를 부여하거나 지자체 차원의 정비펀드 보증 우대를 연계해, 고사 위기에 처한 지역 건설 생태계를 살려야 한다. 또한, 통합심의를 통해 시공 기간 장기화에 따른 금융비용 및 추가 공사비 리스크를 줄여주어야 한다.
건축주 관점에서는 분담금 예측가능성을 제시하고 자산가치를 보전하는 방향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 도심복합개발은 토지등소유자가 사업 위험을 분담하는 구조다. 비주거비율 완화 기준과 공공기여 산정 산식을 사업 초기부터 투명하게 제시해 분담금 증가 우려를 불식시키고 동의율을 신속히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법률상 상한용적률 초과에 따른 공공주택 의무 공급과 지자체 운영기준상의 토지 가치 상승 기여분이 이중으로 부과되지 않도록 해 주민들의 재산권 침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또, 신탁사 등 전문개발기관이 공정하게 사업을 대행·관리할 수 있는 행정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시민 관점에서도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체감형 생활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 비주거 공간에 노인복지 인프라 및 청년 지원시설을 만들어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하도록 하고, 재개발에서 소외된 노후 주거지를 신속히 재생해 도시 균형 발전과 주거 안전망을 동시에 구축해야 한다.
법은 노후 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문을 열었다. 지자체 운영기준은 그 문 앞에 새로운 문턱을 쌓는 규제가 아니라, 지역 건설사가 짓고, 건축주가 동의하며, 시민이 함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든든한 징검다리가 되어야 한다.
2026-09-0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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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네팔 빙하 붕괴가 보내는 경고
지구에는 수많은 산악빙하가 존재한다. 유네스코(UNESCO)에 따르면 전 세계 빙하는 약 27만 5000개, 총면적은 약 70㎢에 달하며, 20억 명 이상이 빙하와 눈이 녹아 흘러내리는 물에 의존해 살아간다. 빙하는 단순한 얼음덩어리가 아니다. 인류에게 수자원을 공급하고 생태계를 유지하며 지구의 기후를 조절하는 거대한 자연자산이다.
그러나 이 얼음의 세계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모든 빙하가 당장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빙하 후퇴가 진행되고 그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네스코와 세계기상기구(WMO)는 빙하 질량의 급격한 감소가 가져올 위험을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그 위험을 보여주는 일이 최근 네팔 히말라야에서 발생했다. 랑탕 리룽 인근의 빙하와 암석이 붕괴하면서 대규모 토석류와 돌발 홍수로 이어져 인명피해와 함께 하류 마을과 도로, 교량 등 기반시설에 큰 피해를 입혔다. 정확한 원인 조사가 필요한 만큼 이를 기후변화만의 결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다만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줄고 고산지대 환경이 불안정해지면서 복합재난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빙하는 겨울 동안 물을 저장했다가 따뜻한 계절에 내보내는 거대한 ‘자연 저수지’다. 빙하가 지나치게 줄어들면 식수와 농업용수 부족은 물론 생태계와 수력발전에도 영향을 준다. 녹아내린 빙하는 해수면 상승에 영향을 미치고, 고산지역에서는 빙하호 붕괴 홍수와 산사태 같은 재난 위험도 커질 수 있다.
우리나라에 거대한 빙하가 없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기후에는 국경이 없다. 해수면 상승은 부산과 같은 해안도시의 장기적인 침수 위험을 높이고 폭풍해일 피해를 키울 수 있다. 부산은 항만과 산업시설, 주거지역이 해안에 밀집해 있어 기후위기가 환경문제를 넘어 도시 안전과 산업경쟁력의 문제가 된다.
해외의 가뭄과 농업생산 감소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농산물과 원자재 가격 상승, 글로벌 공급망 불안은 우리의 식탁 물가와 기업의 생산비용으로 이어진다. 히말라야의 변화가 부산의 바다와 산업현장, 시민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정부와 기업은 온실가스 감축과 재생에너지 확대, 에너지효율 향상과 산업의 저탄소 전환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동시에 해수면 상승과 극한기상, 홍수와 산사태에 대비한 기후적응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피해가 발생한 뒤 복구하는 것보다 위험을 미리 예측하고 피해를 줄이는 예방투자가 중요하다.
시민의 역할도 있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일회용품과 음식물쓰레기를 줄이는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행동만으로 빙하를 지킬 수는 없지만 수많은 시민의 선택은 소비문화를 바꾸고 기업의 생산방식과 정부 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시민의 실천을 사회적 변화로 확장하는 것이 ESG시민운동의 역할이다.
특히 미래세대를 위한 ESG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빙하의 변화가 해수면과 수자원, 식량, 재난과 경제에 어떻게 연결되는지 알려주고 배움을 생활 속 행동으로 이어가도록 해야 한다. 빙하를 지키는 교육은 결국 미래세대의 삶과 안전을 지키는 교육이다.
빙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줄어드는 질량과 잇따르는 재난을 통해 인류에게 신호를 보낸다. 빙하가 녹는 곳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여파는 우리의 도시와 식탁, 경제에까지 이어진다.
빙하를 지키는 것은 단순히 얼음을 보존하는 일이 아니다. 지구의 생태적 균형을 지키고 우리의 도시와 삶을 보호하며 미래세대에게 지속 가능한 지구를 물려주는 일이다. 이제 빙하가 보내는 경고에 행동으로 답해야 한다.
2026-09-0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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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골든타임 임박한 해양바이오, 부산이 '주인'으로 나서야
‘바다의 반도체’라 불리는 해양바이오 산업이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먹거리로 급부상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최근 해양바이오를 미래 신해양산업의 핵심 축으로 지정하고, R&D 투자 확대, 규제 완화, 거점 인프라 구축 등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전국 지자체들 역시 지역의 해양자원을 활용해 고부가가치 의약품, 소재, 식품, 에너지 등을 개발하며 해양바이오 선점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해양바이오 산업은 잠재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육상 생물자원이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지구 생물종의 80% 이상이 거주하는 바다는 미개발 바이오자원의 노다지다. 극단적인 환경에서 자라는 해양생물 특유의 생리활성 물질은 헬스케어, 신약 개발, 친환경 소재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확장성이 폭발적이다.
이러한 국면에서 부산은 전국 어느 지역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춘 도시다.
우선 인프라 측면에서 해양수산 분야 국책 연구기관과 공공기관이 밀집해 있다. 여기에 대형 대학병원과 산학연 연계가 가능한 주요 대학들이 인접해 있어 기술 개발부터 임상, 제품화, 사업화까지 이어질 수 있는 완벽한 생태계적 잠재력을 지녔다. 물류와 입지적 이점까지 감안하면 부산은 대한민국 해양바이오 산업의 컨트롤타워이자 글로벌 허브가 되기에 최적의 요람이다.
하지만 현실은 안타깝게도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 거창한 수식어와 가능성만 논할 뿐, 산업 생태계를 하나로 묶어 구체적인 결실을 만들어내는 ‘엔진’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 사이 타 지자체들은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특화 지구를 지정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고 있다.
부산이 해양바이오 산업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전환이 시급하다.
첫째, 바이오산업 전체를 바라보는 인식의 대전환이다. 해양바이오를 단순한 전통 수산가공업의 연장선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첨단 기술과 바이오 헬스케어가 융합된 고부가가치 미래 산업으로 인식하고, 이에 걸맞은 투자와 지원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 지자체와 지역 사회 전체가 해양바이오의 가치와 골든타임의 시급성을 명확히 인지해야 할 때다.
둘째, 산업 생태계를 총괄 집행할 ‘전담 부서(조직)’의 신설이다. 아무리 좋은 재료와 뛰어난 원천 기술이 있어도 이를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산·학·연·병·정을 하나로 묶어줄 책임 주체가 없으면 동력을 얻지 못한다. 연구기관의 기술과 대학병원의 임상 자원, 대학의 인재, 기업의 자본을 유기적으로 엮어내고 해수부 등 중앙정부의 정책을 신속하게 유치·집행할 수 있는 전담 기구가 반드시 설치되어야 한다.
해양바이오 산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국적인 주도권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다. 여기서 더 머뭇거린다면 부산은 천혜의 자원과 완벽한 인프라를 갖고도 타 지자체의 뒤를 쫓는 ‘만년 후발주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부산이 진정한 ‘글로벌 허브도시’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단 하나의 열쇠, 그것은 해양바이오 산업에 대한 확실한 정책적 결단과 이를 견인할 전담 조직의 신설이다. 더 늦기 전에, 부산이 가진 바다의 진짜 가치를 찾아 나서야 한다.
2026-09-0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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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제분쟁해결 허브, 부산의 새로운 도시 경쟁력
부산이 글로벌 허브도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항만·물류·금융과 같은 산업 기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제적인 기업과 자본이 모이고 거래가 활발해질수록 계약, 운송과 보험, 금융거래 등을 둘러싼 법적 분쟁도 함께 늘어난다. 중요한 것은 분쟁이 발생하느냐가 아니라, 그 분쟁을 어디에서 얼마나 신속하고 전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느냐이다. 국제도시의 경쟁력은 거래를 끌어들이는 힘뿐 아니라 분쟁을 안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역량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최근 부산의 변화는 이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으로 해양·수산 정책의 중심축이 부산으로 이동하고, 해운기업과 관련 기관의 집적도 본격화되고 있다. 북극항로를 비롯한 새로운 국제물류 환경도 부산에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대한상사중재원 부산지부와 아시아·태평양해사중재센터 등 국제상사·해사분쟁을 처리할 기반이 마련되어 있으며, 해사국제상사법원의 개원도 예정되어 있다. 해수부 이전과 해사국제상사법원의 출범은 부산이 단순한 항만·물류도시를 넘어 국제해사·상사분쟁을 해결하는 법률서비스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부산의 해운·항만·조선·물류·금융 분야에서 발생하는 상당수의 대형 국제분쟁이 여전히 서울이나 해외에서 해결된다. 그 결과 법률서비스와 전문인력뿐 아니라 사건 처리 경험과 노하우도 지역 밖에 축적된다.
런던과 싱가포르 등 주요 국제도시는 금융·무역·항만 기능과 함께 법원, 국제중재기관, 전문 로펌과 법률가가 결합된 법률서비스 생태계를 발전시켜 왔다. 거래가 모이는 곳에 분쟁이 생기고, 신뢰할 수 있는 분쟁해결 시스템은 다시 새로운 거래와 투자를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부산도 법원·중재·조정을 균형 있게 활용하는 종합적인 분쟁해결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권위 있는 사법적 판단이 필요한 사건에는 법원이, 전문성과 신속성·비공개성이 중요한 사건에는 중재가 적합할 수 있다. 거래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 경우에는 조정이 효과적일 수 있다. 특히 해사국제상사법원은 전문적인 국제분쟁을 부산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법적 기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여기에 중재·조정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산에서 어떤 국제상사·해사분쟁이 발생하고 있으며, 기업들이 왜 부산이 아닌 서울이나 해외의 기관을 선택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해상운송, 선박금융, 해상보험, 국제물품매매 등 부산이 강점을 가진 분야의 전문성을 축적하고 장기적으로 국제금융과 디지털 거래 분야까지 확대해 나가야 한다.
대학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역 산업에서 발생하는 국제거래와 분쟁을 연구하고 해외 주요 도시의 법률 인프라를 비교해 부산에 적합한 제도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부산시와 사법기관, 중재·조정기관, 법조계와 산업계를 연결하는 역할도 맡을 수 있다. 부산대학교에 2027년 해사국제상사법무대학원이 개원하는 것도 전문 연구와 인력 양성의 기반을 확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국제분쟁해결도시의 경쟁력은 어느 한 기관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해양수산부 이전을 통해 형성되는 해양정책과 산업의 집적, 해사국제상사법원을 중심으로 한 사법 인프라, 중재·조정기관, 법조계, 산업계와 대학의 역량이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되어야 한다.
부산에 분쟁이 없는 것이 아니다. 부산의 산업에서 발생한 분쟁이 부산에서 해결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이제 부산은 국제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소를 넘어 그 거래에서 발생한 분쟁까지 신뢰받으며 해결할 수 있는 도시를 지향해야 한다. 항만·물류·금융에 법률 인프라까지 더해진다면 부산의 글로벌 허브도시 전략은 더욱 탄탄한 기반을 갖추게 될 것이다.
2026-08-3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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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평화를 디자인하는 부산의 새로운 100년
부산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해양도시이자 해양디자인의 중심도시이다. 세계적인 항만과 아름다운 해안, 풍부한 해양문화는 물론 한국전쟁의 역사와 유엔의 정신을 함께 간직한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도시이다. 이제 부산은 산업과 물류 중심의 도시를 넘어 역사와 문화, 평화와 디자인이 융합된 세계적인 해양문화도시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특히, 지난 7월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부산의 미래를 다시 설계할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세계의 전문가들이 부산을 찾은 지금이야말로 도시의 정체성을 역사와 문화, 디자인으로 확장해야 한다. 지난해 기준 부산을 찾은 해외 관광객은 300만 명을 넘어섰으며, 앞으로도 세계인의 방문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이제 부산은 시민뿐 아니라 세계인이 오래 기억하는 명품도시로 변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항 재개발은 단순한 항만개발이 아니라 향후 100년의 부산을 재해석하고 설계하는 국가적 프로젝트라는 관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부산에는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공원과 유엔평화기념관이 있으며, 국립부경대학교에는 유엔지상군사령부 부속 지휘소(현 워커하우스)가 남아 있다. 이곳은 1950년 9월 6일부터 9월 24일까지 18일 동안 미 제8군 사령부의 지휘본부로 사용되며 낙동강 방어선 작전과 반격을 준비했던 역사적 공간이다.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켜낸 결단이 이루어진 현장이자, 오늘날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살아 있는 역사교육의 장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시설의 보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원형을 충실히 복원하고 당시의 공간 구조와 기록을 바탕으로 전쟁의 기억을 평화의 가치로 전환하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일이다. 당시의 문서와 사진, 작전지도, 구술자료,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콘텐츠를 구축한다면 미래 세대는 단순히 역사를 배우는 것을 넘어 자유와 국제협력의 의미를 직접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공간의 재생은 부산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해양문화디자인 모델이 될 것이다.
오늘날 세계는 여전히 갈등과 무력 충돌을 반복하고 있다. 2022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최근 미국과 이란 간의 군사적 충돌은 평화가 결코 당연한 가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고 있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전쟁의 흔적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평화를 배우고 성찰하는 공간을 마련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유엔지상군사령부 부속 지휘소는 과거를 기억하기 위한 장소를 넘어 미래 세대에게 평화와 국제연대의 가치를 전하는 교육의 공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도시의 경쟁력은 더 이상 초고층 건물이나 경제 규모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역사와 문화, 디자인, 그리고 도시가 품고 있는 철학이 세계인의 기억을 결정한다. 부산은 이미 세계가 인정하는 해양도시이다. 이제는 해양과 평화, 문화와 디자인을 하나의 도시 브랜드로 융합해 세계인이 다시 찾고 오래 기억하는 세계 해양디자인도시이자 세계 평화도시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2026-08-3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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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바다의 사막화 '갯녹음'
바다와 육지가 맞닿은 연안의 암초 지역은 해조류, 즉 우리가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김, 미역, 톳 등이 서식하고 있다. ‘바다숲’이라 불리는 모자반, 곰피, 감태, 대황 등의 다년생 해조류 군락도 있다. 바다숲은 육지의 산림과 같이 대형의 해조류가 번성해 이룬 군락으로 해양생태계에 먹이와 영양 등 에너지를 공급하는 제1차 생산자로서의 역할은 물론, 해양환경을 정화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온실가스 저감에도 기여한다. 또한 해양생물의 산란 보육장을 제공하는 등 건강한 바다 생태계를 유지하는 생명자원의 보고이다. 이러한 바다숲이 기후변화, 해양오염 등 여러 요인으로 사라지면서 바다숲에 살던 해양생물이 함께 사라지는 갯녹음 현상으로 위협받고 있다.
갯녹음 현상은 기후변화와 함께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수산자원공단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안의 전체 조사 암반 면적 428.4㎢ 중 약 37.1%에 해당하는 159.07㎢에서 갯녹음 현상이 확인되었다. 특히 동해안과 제주 지역의 피해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갯녹음은 해조류가 사라지고 석회조류가 우세해져 연안의 암반이 하얗게 변하는 현상으로 ‘백화 현상’으로도 불린다. 석회조류는 석회 성분(탄산칼슘)을 만들어 내는 조류인데, 해조류를 섭식하는 해양생물에게는 먹이로서의 가치가 낮으며, 이들이 암반 지역에 착생하면 바닥면이 강알칼리성으로 변해 다른 해조류들이 생존하기 힘든 환경이 된다. 바다숲이 사라진 암반 지역에 무절석회조류가 무성해지면 사막처럼 황폐해지고 해양생물의 서식 환경이 파괴되어 ‘바다 사막화’가 발생한다.
갯녹음의 원인은 기후 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과 해조류를 먹이로 하는 초식동물의 과다한 섭식으로 알려져 있다. 수온이 상승하면 해조류의 성장이 둔해지는 반면 성게·소라와 같은 초식동물의 먹이 섭취가 늘어나 해조류 군락이 점점 줄어든다. 또한 무분별한 연안 개발과 산업·농업 폐수 등 오염물질의 유입은 연안 생태계 파괴, 부유물 침착 증가 등 해양 환경 변화를 유발하고, 이로 인해 해조류의 서식지가 줄며 성장도 저해된다. 갯녹음이 발생하는 해역은 우리나라 연안을 지나는 따뜻한 해류인 쿠로시오 난류의 경로와 연관이 있다. 쿠로시오 난류는 가속화되는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전체 열량이 증가하는 추세인데, 이는 앞으로 갯녹음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갯녹음 원인이 지역별로 다르고, 갯녹음 해역의 해저지형·수심·수온 등 물리적 요인 및 서식 생물상 또한 지역별로 다르기 때문에 바다숲 조성방법도 지역별로 달라져야 한다. 갯녹음은 수온상승, 해양오염 및 연안개발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갯녹음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해역별 지속적인 모니터링으로 원인규명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에 따라 지역 특성에 적합한 대응과 생태복원·맞춤대책이 필요하다. 갯녹음으로 인한 연안해역 생태계 복원을 위해서는 바다숲 조성지의 서식환경에 적합한 해조류의 이식과 해저지형, 수심, 연안생태 등 지역 특성을 반영한 인공어초, 해중림초의 설계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연안생태와 서식생물상 등 지역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획일적인 해중림초의 설계는 해조류 번식과 서식지 축소뿐만 아니라 다양한 해양생물의 서식지 기능을 저하시킨다. 따라서 해중림초를 설계할 때는 해당 지역의 생물다양성과 서식지 기능을 보전하는 방향으로 입지·공간·구조를 조정해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갯녹음에 대한 해결책으로 인위적인 어린 해조류의 이식, 해중림초 투입을 통해 해조류의 포자 방출을 유도함으로써 바다숲을 조성하거나, 해조류가 부착할 수 있도록 바위에 붙어 있는 무절석회조류를 닦아내는 갯닦이 작업을 하고 있다. 또한 성게가 해조류를 과도하게 섭취해 갯녹음이 발생한 해역은 성게 제거 작업으로 개체수를 조절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갯녹음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해역별 원인 규명이 선행되어야 하며, 특히 무분별한 연안개발로 인한 콘크리트(탄산칼슘) 유입과 산업·농업 폐수 등의 육상 오염원을 줄일 수 있는 정책과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2026-08-26 [1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