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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의 지금 여기] 한·미·일 안보, ‘과거사’ 제물 삼나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의 역사를 새로 썼다. 한·일 관계의 정상화라는 취지와 미래 지향성을 강조하다 일본군 위안부·강제동원 피해자 관련 내용은 뺀 것이다. 국민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보수 성향의 사람들도 놀란 것 같다. “3·1절에 할 소리는 아니다.” “안보 믿음 있어서 뽑았는데 국가관이 이러면 어쩌나.” 메시지를 내놓은 시기·방법 모두 부적절하다는 비판이었다.
윤 정부는 왜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해 볼 틈도 없이 또 다른 보도가 잇따랐다. “매우 지지한다.” 윤 대통령의 기념사에 대한 미국의 환영 메시지다. 이례적일 정도로 즉각적이다. 그동안 윤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한·미·일 3국의 안보 협력을 강조했다. 올해 초에는 일본의 군사 대국화 움직임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짐작되는 바가 없지 않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재무장을 용인하고 한·일 간 화해를 종용해 왔다. 최종 목표는 ‘한·미·일 군사동맹’이다. 그 전제가 한·일 두 나라의 관계 개선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려면 발목을 잡아 온 과거사 문제가 먼저 해소돼야 한다. 넓게 보면 이 모두가 미국의 큰 그림 안에 있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부는 6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 배상 해법을 급히 발표했다.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국내 재단이 대신 배상금을 지급한다는 게 골자다. 예상했던 대로 일본 피고 기업들의 배상 기금 참여와 사과 방안은 거기에 없었다. 당연히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양국이 동등한 협상 파트너로서 논의한 결과물인지, 아니면 국가 위신과 자존심을 저버린 우리 정부의 일방적 굴욕인지. 한·미·일 안보 협력 체제 구축을 위해 과거사 문제를 희생시킨 건 아닌지. 물론 일본과의 협력이 한반도 평화에 중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우리로서는 최종적으로 한·미·일 군사동맹에 올라타는 일이 과연 국익을 위한 최선인지, 한반도 정세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우선 지금의 국제정세는 예년과 사뭇 다르다. 일단 세계 패권국으로서 미국의 위상이 이전 같지 않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경제·군사·외교 통제권 밖에 있고, 동맹국들과 친미 국가들도 이탈 조짐이 뚜렷하다.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피해로 아우성이 커지고 있는데, 특히 독일이 지난해 11월 총리의 중국 방문을 기점으로 양국 간 경제협력에 시동을 거는 모양새다. 전통적 친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중국·러시아와 손잡은 것도 이변이다.
미국이 그나마 기대는 곳이 한국·일본·대만 같은 동북아 동맹국들이다.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 붕괴만은 막아야 하는 처지다. 미국이 한미연합훈련과 전략무기 투입의 중단 같은 북한의 요구에 응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금의 한반도 정세는 ‘전쟁 불사론’까지 횡행할 정도로 위중하다. 지난해 북한은 70여 차례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했다. 올해는 7차 핵실험까지 감행할지 모른다. 남북·미 정부의 거친 발언, 최고조에 달한 군사 행동과 강경 조치들, 장기간 교착 상태에 빠진 대화와 협상 등 악조건이 이미 겹겹이 누적된 상황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그 위기가 정점에 닿을지 모를 올해를 매우 중대한 시기로 전망한다.
이럴 때일수록 국제정세를 올바르게 읽는 판단력과 한쪽에 휩쓸리지 않는 객관적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의 행보는 아쉽다. 대통령 당선 뒤 국군보다 주한미군 기지를 먼저 찾은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나라의 핵심 이익에 대한 면밀한 손익계산이 있다면 나올 수 없는 행동이다. 다극 체제로 가는 국제관계의 현실 앞에서 특정 방향으로 안보 체제를 구축하는 건 대단히 위험하다. 장기적 국익을 고려할 때 무역의존도가 높은 중국과의 관계 설정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가장 큰 문제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 등 대외 정책에 국민이 믿고 따를 만한 원칙과 구체적 지향이 없다는 데 있다. 대체로 ‘힘에 의한 국가 안보’만 강조되고 한반도 평화 전략은 잘 안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의 이번 과거사 해법이 한반도 위기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작용하게 될지 걱정되는 이유다. 결국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평화와 공존의 대원칙’이다. 상대를 적으로 보지 않고 상호 존중과 상생의 대상으로 삼는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때이다.
2023-03-0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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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의 지금 여기] 부산을 살릴 도시 브랜드 슬로건
늘 그렇듯 아쉬운 설 연휴가 끝나면 비로소 새해가 왔다는 느낌이 든다. 이즈음은 개인과 더불어 도시라는 공동체 역시 새 출발의 의지를 다지는 시간이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시간의 출발점에 선 한 도시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그건 바로, 도시의 가치를 간결한 문구와 이미지에 담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하는 ‘도시 브랜드 슬로건’이 아닐까 한다.
부산시는 13일 도시브랜드위원회를 열고 ‘부산 이즈 굿(Busan is Good)’을 새 슬로건으로 결정했다. 세 개의 최종 후보안 가운데 가장 많은 표를 가려낸 선호도 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공교롭게도 서울시도 최근 새 슬로건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기존 슬로건 ‘아이.서울.유(I.SEOUL.YOU)’의 의미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그동안 끊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4개 후보안을 놓고 시민 선호도 조사가 이달 말까지 실시되고 있다.
‘잘 만든 슬로건 하나가 도시 전체를 살려 낸다.’ 도시 브랜드 슬로건의 중요성을 이만큼 잘 설명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의 눈과 귀에 쏙 들어오는 슬로건을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지역의 정체성을 담으면서도 보편적인 감동을 끌어내는 문구가 흔할 리가 없다. 그래서 만들었다가 버리고 다시 새로운 슬로건을 찾는 일도 빈번하다. 부산에는 2003년 선포된 ‘다이내믹 부산’이라는 슬로건이 있다. 역동성에 초점을 맞춘 이 슬로건은 도시 부산을 알리는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냈다.
그 역사가 20년에 이른 이즈음, 부산시는 슬로건 교체를 추진 중이다. 시가 밝힌 개편의 명분은 이렇다. ‘부산의 가치와 역사성, 미래 지향성을 담기 위해 새로운 슬로건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도시 경쟁력을 더 높이고 새로운 미래를 열겠다.’ 좋은 말이긴 한데 막연한 수사로 느껴진다는 사람들이 많다. 왜 그럴까.
슬로건 교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왜 바꾸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째서 지금이어야 하는지’다. 이에 대한 근거가 명쾌하지 않아서다. 부산시가 내놓은 설명을 보자. ‘기존 슬로건이 세월이 흐르는 사이 글로벌 도시로 성장한 부산의 위상과 품격을 충분히 담아내기 어렵다는 인식이 높았다.’ 이런 인식이 어디서 나왔고 시민적 공감대는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한다.
물론 부산시는 사전 적정성 조사를 벌인 바 있다. 지난해 11월, 응답자 70%가 ‘새로운 슬로건이 필요하다’고 답했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이 적정성 조사의 정확한 문구는 무엇이었을까. 조사 문항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의심하려는 게 아니다. 설문을 비롯한 각종 조사는 문구의 미묘한 내용에 따라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상식을 상기하고 싶을 뿐이다. 또 일각에서는 조사 대상으로 삼은 시민들에 대한 대표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새 슬로건 ‘부산 이즈 굿’에 대한 평가는 팽팽하게 엇갈린다. 단순하고 기억하기 쉽다는 호평이 있는 반면, 모호하고 전달력이 약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후자의 경우 ‘부산이라는 특색이 없어 밋밋하다’거나 ‘다른 도시 슬로건과 비슷하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국내 굴지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고 시민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부산시가 기울인 노력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후보 3안이 나왔을 때, 혹은 최종안이 결정된 뒤에라도 기존 슬로건을 포함한 선호도 조사를 할 수는 없었을까. 그렇다면 지금 같은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아쉬움이 있다.
과거 서울시의 슬로건 ‘아이.서울.유(I.SEOUL.YOU)’가 만들어질 때도 논란이 많았다. 그때 영국 신문 〈가디언〉은 작위성을 꿰뚫어 보고 이런 지적을 남겼다. ‘조급함, 객관성 부족, 지루한 전략, 잘못된 리더십, 선전의 힘에 대한 순진한 믿음, 지름길에 대한 열망.’ 이는 부산시 역시 명심해야 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미리 짜놓은 각본이나 혹은 전문가의 명망과 이벤트의 힘에 기대려고 한다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물론 하나의 슬로건이 도시의 모든 구성원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처음엔 어색했으나 이후의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사랑받게 된 경우도 있다. 부산의 새 슬로건은 어떤 길을 걷게 될까. 몇 해를 넘기지 못하고 시민들로부터 잊히기보다는 미래에 길이 남을 명작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부산의 도시 슬로건은 한 시대를 대표할 만큼 내구력을 갖춘 슬로건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예산 낭비라는 안팎의 비판도 피할 수 있다.
3월 말 최종 결정 시기까지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 최선의 보완과 마무리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제대로 만든 최고의 도시 슬로건을 누릴 자격이 있는 부산 시민이다.
2023-01-26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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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의 지금 여기] 원도심 되살릴 유산들
최근 뜻깊은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 유산’의 문화재청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가 최종 결정됐다는 뉴스가 그것이다. 그동안의 ‘조건부’ 꼬리표를 털어 내고 5년 만에 확정지은 것이라 의미가 크다. 한국전쟁은 20세기 냉전 시대 최초의 전쟁으로, 세계사의 중대한 변곡점이었다. 당시 ‘천일 수도’였던 부산은 지금도 살아 있는 역사의 증거물이라는 사실. 이번 등재 결정은 이를 웅변하는 소중한 성과다.
이번에 결정된 피란 유산은 경무대·임시 중앙청·아미동 비석 피란 주거지(서구), 국립중앙관상대·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부산항 제1부두(중구), 하야리아 기지(부산진구), 유엔묘지·우암동 소막 피란 주거지(남구) 등 9곳이다. 긴급한 정부 유지와 국가 운영의 기능을 담당한 건축물, 전국의 피란민들을 받아들인 포용의 장소, 정부와 유엔 등의 국제 협력이 이뤄진 공조의 현장이 두루 걸쳐 있다. 한국전쟁 관련 유산이 국내에 적지 않지만 피란수도 부산은 단 한 번의 폭격도 받지 않은 유일한 도시라는 점까지 더하면 세계유산으로서 전혀 손색없다.
피란수도 부산은 이로써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특별한 것은 도심지 안에 있는 유산을 대상으로 한 첫 사례라는 점, 그것도 근대유산은 처음이라는 점이다. 향후 국내의 근대유산 보존에도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감을 높인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문화재청의 우선 등재목록 선정, 등재신청 후보 및 등재신청 대상 선정, 그리고 유네스코의 예비심사와 자문기구 평가 등 국내외 절차를 거쳐야 한다.
피란수도 유산 중에서도 핵심적인 장소가 바로 부산항 제1부두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다행히 근대유산의 원형을 품고 있는 까닭에 그 가치가 높다. 그동안 1부두 일대의 문화재 지정에 주저하던 부산항만공사(BPA)가 인식을 바꿔 근대유산 보존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 건 고무적인 일이다. 현재 1부두 소유자인 BPA는 1부두의 문화재 등록 신청을 낸 상태다. 소재지 관할 관청인 중구청이 이를 검토하느라 두 달가량을 흘려보내고 있는데 더딘 발걸음이 아쉽다. 문화재 등록이 원도심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인구소멸을 겪고 있는 부산 원도심의 처지는 지금 열악하기 이를 데 없다. 11월 기준으로, 중구의 인구는 전국 광역시 기초지자체 중 처음으로 4만 명 선이 무너졌다. 인구 감소세는 부산 전체와 비교해도 3배나 빠른 속도다. 침체를 벗어나 새로운 활력소를 찾는 것은 이 지역 절체절명의 과제임이 분명하다. 얼마 전 일부 상업지역의 건축물 최고 높이 제한을 완화해 도심 개발 촉진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경쟁력을 확보해 지역을 되살리려는 노력과 소망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다만 원도심 부활이 반드시 경제적 성과와 생산성 위주의 개발로만 가능한 것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도심 안의 역사와 문화, 근대적 유산들을 잘 활용하는 것도 원도심을 살리는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스페인 항구도시 빌바오, 프랑스 문화도시 낭트와 같은 유럽의 도시들이 그렇게 변신에 성공했다. 부산 원도심도 그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지역의 유산들을 잘 보존한다면 도시의 쇠락을 막는 건 물론이고 관광 자원으로, 그리고 미래 먹거리로 삼을 수 있다. 인구소멸을 겪는 지역이 되레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문화유산의 거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단순히 ‘정주 인구’를 늘리는 게 아니라 ‘체류 인구’를 다양하게 관리하고 확대해 나가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부산시가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 역사와 문화유산, 문학적 스토리, 음악과 미술, 축제 등 다양한 방식의 지역발전 비전이 정책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기초지자체는 지자체대로 지역 정체성을 잘 파악해 자신만의 매력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방향으로 개발 방식을 찾는 노력이 요구된다. 개별 건축물의 사업성 향상에만 치중하는 경제 논리로는 되레 지역 이기주의에 발목 잡힐 위험성이 높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는 원도심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구와 함께 3개의 세계유산을 보유한 서구의 행보는 그런 점에서 주목된다. 아미동 비석마을을 보존·관리하기 위한 지구단위계획 용역을 수립 중인 서구청은 서구 지역 전체를 피란 생활 박물관으로 바라보는 관점과 의지가 남다르다. 부산은 역사의 흔적과 기억을 생생하게 증거하는 근대 유산을 품고 있다. 그것은 전쟁의 아픔을 딛고 평화의 시대를 여는 보편적 상징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면 보다 많은 국내외 방문객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부산 원도심의 미래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2022-12-2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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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의 지금 여기] 언로 제한, 삼류국가로 가는 길
‘자유’는 윤석열 대통령의 통치관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취임식에서, 8·15 경축사에서, 그리고 유엔 연설에서도 수도 없이 외친 단어다. 그중 언론자유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강조하고 다짐한 영역이다. 윤 대통령은 줄곧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은 표현의 자유에 있다”고 말하곤 했다. 당선 이후에도 초유의 출근길 문답을 통해 언론과의 소통 의지를 다졌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의 언급도 기억할 만하다. “민심을 가장 정확하게 읽는 언론 가까이에서 제언도, 쓴소리도 잘 경청하겠습니다”.
이랬던 대통령의 태도가 취임 6개월 만에 사뭇 달라진 느낌이다. 기존의 입장과는 다른 언행들이 속속 나와서다. 물론 그런 조짐이 없진 않았다. 이를테면, 지난 3월 언론노조를 두고 “허위 보도를 일삼고” “갖은 못된 짓 다한다”며 강하게 질타한 사례가 있다. 지난달에는 만화공모전 수상작인 고등학생의 풍자 카툰을 문제 삼아 문체부를 통해 엄중 경고를 날리기도 했다. 청소년의 자유로운 예술 창작까지 간섭할 일인지 비판이 쏟아진 게 그때다.
시간이 흐를수록 궁금증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지. 결국 이번 동남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불편한 속내가 확연히 드러났다. 대통령실은 출발 직전 갑자기 MBC 기자들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막더니 그 이유로 ‘왜곡·편파 보도’를 들었다. “비속어 자막 조작, 우방국과의 갈등 조장 시도, 김건희 여사의 대역을 고지하지 않은 방송” 등이 그 사례로 지목됐다.
과연 그럴 일인가. 비속어 논란은 대통령 본인이 자초한 면이 있는 데다 다른 언론사도 함께 보도했다는 점에서 명분이 군색하다. 외교 문제와 무관한 논문 표절 의혹 제기를 ‘중요한 국익’과 연결한 것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한 것이지 MBC의 취재를 제한한 적 없다”는 대통령실 주장 역시 억지에 가깝다. 순방 기간 전용기는 기자간담회 등이 열리는 공적인 취재 공간이다. 탑승 배제는 취재 제한으로 이어지고 결국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 특정 언론의 보도 태도를 빌미로 삼은 점은 더욱 심각한 문제다.
대통령실은 13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미, 한·일 정상회담 현장도 공동취재단에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대통령실 ‘전속 취재’로 내용을 편집해 추후에 기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했을 뿐이다. 대통령실은 “양국 협의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지만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북한의 7차 핵실험 위협 속에 한반도 정세와 역내 안보 등 주요 현안이 논의되는 중대한 회담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윤 대통령이 친분 있는 특정 기자들만 전용기 안의 전용 공간에 따로 불러 접촉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대통령직과 공적 권력의 사유화 논란을 부를 수 있는, 대단히 부적절한 행위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언론자유가 구미에 맞는 자유, 우호적인 언론을 가리키는 건 아닌지 의구심을 부른다. 밉든 곱든, 공무에 개인적 감정과 사적 관계를 개입시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선은 군주제 국가지만 사간원·사헌부·홍문관이라는 언론 삼사를 두었다. 이중 핵심은 국왕에 대한 간언, 관리에 대한 탄핵, 주요 정치 현안에 대한 충고 등을 맡은 사간원이다. 왕조 초기 임금과 사간원은 사사건건 충돌하지만 점차 사간원의 역할이 정착되면서 임금도 사심 없는 비판을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이런 역사 속에서 유독 돌출된 군주가 있었으니 바로 연산군이다. 연산군은 간언 자체를 유난히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거슬리는 간관들을 옥에 가두고 유배를 보내는 것도 모자라 마침내 사간원과 홍문관을 없애버렸다. 그러나 왕위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자마자 사간원과 홍문관은 다시 설치됐으니, 이게 역사의 도도한 흐름이다.
"간하는 것을 들어 흥하지 않은 적이 없고, 간하는 것을 듣지 않고 망하지 않은 적이 없다." 예로부터 사간원 간관들이 해 온 말이다. 임금은 진실한 마음으로 간언을 구해야 한다는 뜻이겠다. 간관들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른말을 하는 것은 국가와 백성을 위한 일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언을 거부하는 임금은 어두운 임금’이라 했다. 언관들의 태도도 중요하다. “임금의 잘못을 공격하고 백성들의 숨은 고통을 알리되, 지극히 공정한 마음(至公之心)으로 해야 한다.”(정약용)
역사를 돌아보는 일은 반성적 성찰의 기회를 얻기 위한 것이다. 오늘날의 언론 현실이 왕조 시대보다 낫다 할 수 있을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언론 통제는 정치권력의 몰락을 앞당길 뿐이라는 사실. 더 두려운 건 그것이 나라까지 위태롭게 한다는 데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다.
2022-11-1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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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의 지금 여기] 국가 리더십의 위기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회의 첫 국정감사가 시작부터 난장판이다. 4일부터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는 여야의 충돌은 말 그대로 ‘사생결단’의 결기로 서슬 퍼렇다. 사태의 발단은 대통령의 해외 순방 중 불거진 비속어 논란. 이 사안만 놓고 보면 단순 해프닝 수준인데 어쩌다 이렇게 커져 버린 걸까.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과연 리더란 무엇이며 리더의 역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리더는 조직 혹은 사회 안에서 일정한 ‘성과’를 위해 발탁된 사람이다. 발탁이라는 말에는 주체성이 결여돼 있으니 사회와 조직을 ‘이끈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아무튼 조직의 목표를 위해 성과를 내는 사람이 리더다. 하지만 성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 반대편의 ‘책임’이다. 권한에 상응하는 책임.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지 못하면 리더의 자격이 없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그렇다면 리더의 말과 행동은 왜 중요한가. 조직문화 전문가인 존 칠드러스의 말을 빌린다. “조직은 그 리더의 그림자다.”(〈컬처 레버리지〉) 리더의 리더십에 따라 조직과 그 구성원이 함께 움직이므로 너무나 당연한 말 같다. 하지만 여기 숨은 의미망은 결코 작지 않다. 조직원은 리더의 언행을 보고 리더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우선시하는 것, 중요하게 여기는 것 등을 판단한다. 거기에 자신을 맞추려 노력하고 조직 안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간다.
문제는 리더의 말과 행동이 일관성을 잃을 때다. 구성원들은 혼란에 빠지고 조직의 앞날도 위태로워진다. 실제로 기업에서 직원들이 이직을 결심하는 가장 큰 이유로 두 가지가 있는데 상사의 ‘떠넘기기’와 ‘가로채기’라고 한다. 이중 떠넘기기는 책임지지 않는 리더십의 전형이다. 말과 행동이 어긋나고 겉과 속이 다른 리더들의 특징이다. 책임지지 않는 리더십의 결말은 조직 건강성의 심각한 훼손이다.
물론 이런 질문이 있을 수 있다. 혹시 조직 구성원의 문제는 없는가. 리더에 대해 반항하고 거부하는 사람, 혹은 조직의 부패와 잘못을 숨기는 사람 같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사상가 한비자의 지혜를 경청할 만하다. “군주는 때때로 어떤 일에 미혹되거나 언론에 귀가 가려질 수 있다. 이를 조심해야 한다.” 고전 〈한비자〉 ‘남면’ 편, 곧 군주가 나라를 다스릴 때 범하기 쉬운 허물을 이야기한 대목이다. 말인즉슨, 아무런 근거 없이 무책임한 의견을 내는 신하들, 반대로 일신의 안녕을 도모해 어떤 진언도 하지 않는 신하들을 경계하라는 것.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된다. “신하가 의견을 올릴 때 진언한 사실과 성과가 부합하는지 살펴 칭찬과 비판을 아끼지 않고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하들에게도 말과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운다는 점. 더불어 중책에 있으면서 의견을 말하지 않는 경우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 한비자는 그래야 군주가 신하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사탕발림에도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군주가 독자적인 판단력과 결정권을 갖추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결국 리더는 자신의 언행에 책임져야 함은 물론 아랫사람들도 본인의 말과 행동에 책임지도록 견인하는 사람이다. 모든 게 리더의 책임이요, 리더십의 몫이라는 뜻이겠다.
리더의 역할이 이토록 엄중할진대 한 나라의 통치권자인 대통령 자리는 더 말해 무엇하랴. 윤 대통령은 당선 이전부터 이미 크고 작은 리더의 소임을 경험한 바 있다. 비속어 논란 이후 눈덩이처럼 커진 이번 사태 앞에서 먼저 지적돼야 할 것은 대통령의 대응 방식이다. 진상을 가장 잘 알고 있을 당사자가 “진상이 철저하게 규명돼야 한다”는 유체이탈 화법을 썼다. 대통령이 알면서도 모른 체한 것일까? 그렇다면 떠넘기기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그걸 받아 다시 특정 언론에 떠넘겼다. 국가 리더십이 품어야 할 책임감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모습이다.
물론 대통령의 미숙함이 정치 논리나 진영 대립에 의해 과도하게 부각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인정할 건 인정하고 책임질 건 책임지는 통 큰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의를 위해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솔직해야 할 때는 솔직해야 한다. 국민들이 보고 싶은 것은 리더로서의 진정성이다.
지금 윤 대통령에 대한 낮은 지지율, 그 정체 상태가 심상치 않다. 어쩌면 대통령실 안에 올바름을 간하는 사람이 없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것을 막는 세력이 너무 강하든가. 대통령이 자신을 엄정히 되돌아보고 마음가짐을 다시금 가다듬어야 할 시점이다. 또 무책임한 말만 쏟아 내는 사람은 없는지, 침묵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은 없는지 주변도 면밀히 살펴야 한다. 나라가 총체적 위기 속에 처해 있다. 리더십의 기본을 되찾지 않는 한 국난 극복의 길은 요원하다.
2022-10-0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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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의 지금 여기] 피란수도 부산과 도시의 품격
요즘 집중호우는 그 출몰을 가늠키 힘들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피란수도 부산 문화재 야행’ 행사가 열리던 지난 20일도 그랬다. 점심시간 지나자 멀쩡하던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더니 부산시민공원 일대에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것이었다. 행사가 취소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다행히 몇 시간 후에 비는 그쳤다.
궂은 날씨에 촉각을 곤두세운 건 ‘피란수도’ 행사가 올해 부산시민공원으로 그 무대를 넓혔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피란시절 부산에 ‘스윙 댄스’ 문화가 꽃피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한국전쟁 때 각국 포로들이 ‘춤’을 매개로 행복을 꿈꾼다는 내용의 ‘스윙키즈’ 영화가 공원 잔디광장에서 상영됐는데, 전쟁의 아픔과 신명 난 몸의 행위가 교차하는 아이러니가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어찌 보면 피란수도의 역사를 껴안으려는 지금 우리의 노력들이 이미 그런 역설을 품고 있다. 아픔을 과거에 가두지 않고 미래로 끌어안는 ‘승화’는 성장을 향한 소중한 자양분이다.
말이 나왔으니 피란수도 얘기를 더 해 본다. 부산이 임시수도로 지정된 건 1950년 8월 18일,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곧장 수원과 대전, 대구로 천도가 이뤄지지만 그 기간은 불과 며칠, 길어야 한 달 정도였다. 부산은 한국전쟁 1129일 중 1023일간 임시수도였다. 1차(1950.8.18~10.26)와 2차(1951.1.4~1953.8.14), 두 번에 걸쳐 그 소임을 다했다.
당시 김동리가 임시수도 부산을 그린 단편 ‘밀다원 시대’의 유명한 묘사가 있다. ‘끝의 끝, 막다른 끝, 거기서는 한 걸음도 떠나갈 수 없는,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바다에 빠지거나 허무의 공간으로 떨어지고 마는 그러한 최후의 점 같은 곳….’ 더는 나아갈 수 없는 곳, 어쩔 수 없이 죽음과 마주한 곳이 부산이었던 것이다. 임시수도 시절 정치는 독재로 치달았고, 전시경제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으며, 사람들은 꿀꿀이죽으로 연명했다. ‘침몰 직전의 구명정’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막다른 끝에서 마침내 일어선 곳이 부산이다. 가마 ‘부(釜)’ 자를 쓰는 도시답게 부산은 모든 것을 녹여 내는 뜨거운 가마였고, 모든 것을 품어 내는 바다였다. 전쟁과 죽음의 고통으로 휘청거렸으나 거기에는 포기할 수 없는 삶이 있었던 것이다. 국란 극복의 원천이 고통과 상처로부터 왔다는 역설은 진실이다.
이를 상징하는 공간으로 서구 아미동 비석마을과 남구 우암동 소막마을을 꼽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의 공동묘지 위에 오갈 데 없는 피란민들이 판잣집을 지었던 곳, 그리고 소 막사를 개조해 거처를 만들고 마을을 이룬 곳이다. 피란수도의 이런 유산들은 지금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소막·비석마을을 포함해 총 9곳이 2017년 문화재청의 잠정목록에 조건부로 선정된 바 있다. 경무대(임시수도 대통령 관저)와 임시중앙청(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 국립중앙관상대(부산기상관측소) 등 정부 지원 유산 3곳, 미국 대사관(부산근대역사관)과 부산항 제1부두, 하야리아 기지(부산시민공원), 유엔묘지(유엔기념공원) 등 국제협력 유산 4곳이 여기에 포함된다.
문화재청의 조건부 선정은 피란 생활상이 반영된 유산의 추가와 종합 보존관리 계획 수립이라는 조건을 달고 있다. 그러려면 문화재로 지정되거나 등록하는 게 필수적이다. 피란 유산 가운데 제1부두가 소유자인 부산항만공사의 동의를 얻지 못해 문화재 지정에 애로를 겪고 있다고 한다. 세계유산에 등재되려면 이 부분이 해결돼야 하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방자치단체와 국가의 의지라 하겠다. 당장 눈에 보이는 업적보다는 나라와 시민의 미래를 위한 길을 정책의 눈높이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올해 초 아미동 비석마을 주거지가 처음으로 부산시 등록문화재가 된 데 이어 최근 들어 마을 보존·관리를 위한 지구단위계획 수립이 시작된 것도 그런 노력의 연장선일 테다. 지난 6월 하야리아 부대에 남아 있던 장교클럽(1949년 건립)이 문화재로 지정된 것도 마찬가지다.
피란수도의 세계유산 등재 효과는 관광을 통한 경제적 파급력과 국격의 상승에 그치지 않는다.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서 국민과 시민이 갖게 될 자긍심은 그 무엇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다.
끝에서 다시 일어선 곳, 새로운 시작점이었던 곳, 죽어야 살 수 있었던 곳, 부산. 과거를 건강하게 기억하고 그 가치를 후대에 전승하는 일은 대단히 소중하다. 국란을 이겨 낸 그때처럼 부산이 다시 도약하는 또 하나의 거대한 힘이 될 수 있어서다. 21세기 글로벌 도시의 진정한 품격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2022-08-25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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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필즈상 수상, 한국 수학교육의 쾌거라고?
■ 한국계 수학자 필즈상 첫 수상
지난 5일 낭보가 날아들었다.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의 필즈상(Fields Medal) 수상 소식. 덩달아 한국 수학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우선 필즈상은 국제 수학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이다. 4년에 한 번 시상하는 데다 40세 미만 수학자들에만 준다는 점에서 노벨상보다 타기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허 교수가 높은 평가를 받은 건 대수기하학을 이용해 조합론 분야에서 다수의 난제를 해결한 대목에서다. 대수기하학은 방정식을 통해 도형이나 공간의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 조합론은 중·고 교과에 나오는 ‘경우의 수’를 기초개념으로 하는 분야다. 영국 수학자 로널드 리드가 1968년 제시한 ‘리드 추측’ 등 11개의 난제를 푼 게 그의 업적이다.
한국계 최초 수상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수학계의 쾌거로 여겨진다. 특히 올 2월 국제수학연맹이 한국 수학의 국가 등급을 최고 등급인 5그룹으로 상향한 것과 함께 한국 수학계의 경사다.
■ 한국 수학교육의 경사?
허 교수의 이채로운 성장사는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미국 국적이지만 초등학교부터 대학원 석사까지 한국에서 교육받았다는 점이 언론 보도에서 부각됐다. 한국 교육 시스템 안에서 성장해 세계적 기초과학 학자로 거듭났다는 논리가 거기서 나온다. 한국 교육의 쾌거라는 것이다.
다른 시각도 만만찮다. 한국 교육의 성공 사례이기는커녕 그 한계를 여실히 보여 주는 경우라는 것이다. 허 교수는 어릴 때부터 수학 영재와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수학을 좋아했지만 시험 위주의 제도권 교육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시인을 꿈꾸던 그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로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들어간다. 그래도 마음 붙일 데 없는 건 마찬가지. 학점은 D와 F가 수두룩했다. 우울증도 생겼다.
그를 붙잡은 건 해외 석학 초청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일본 수학자였다. 개인적인 인연이 수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미국에 건너가 대학원 박사과정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잠재력을 불태우고 천재 수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니 그의 성취를 한국 교육 시스템의 성과로 보는 것은 견강부회가 아닐까. 좋은 스승을 만난 행운에다 아이를 믿고 늦은 성장을 묵묵히 성원해 준 부모의 뒷받침이 컸다고 본다. 되레 천재를 거두지 못한 한국 교육의 현실을 아프게 돌아볼 일이다.
■ “수학은 곧 세상을 보는 눈”
여기서 허 교수의 인상적인 수상 소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 교육에서는 보기 힘든 면모라서 그렇다. 우선 “심리적 안정감”. 추상적인 기초학문에 꼭 필요한 덕목이란다. 젊은 과학자들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오랫동안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도 했다. 입시 위주의 경쟁적인 교육에 반하는 개념으로 읽힌다.
“어릴 적 시인을 꿈꿨다”는 소망도 예사롭지 않다. 독일의 유명한 수학자 카를 바이어슈트라스는 “시인이 아닌 수학자는 진정한 수학자가 아니다”고 했다. 시가 세상의 진실을 간결한 언어로 드러내는 것이라면, 수학은 우주의 본질을 숫자로 보여 주는 것이다. 그 둘의 아름다움은 닮았다.
“다른 사람과의 공동 연구”도 강조했다. 골방에서 혼자 머리 싸매는 수학자의 이미지는 편견일 뿐이다. 동료들과 적극 협력하지 않으면 더 멀리, 더 깊이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그는 40세가 되기도 전에 어떤 깨달음에 닿은 듯하다. 하나의 이치에 지극하게 닿으면 세상과 인생을 보는 통찰이 생기는 모양이다.
■ 대입(수능)에 갇힌 교육의 한계
한국처럼 전 국민이 수학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나라도 없다. 물론 수학 자체의 문제일 리 없다. 모든 게 입시로 연결돼 있는 완강한 그 구조가 문제다. 우리 아이들이 공식만 외워 지겹도록 문제 풀기를 되풀이한 암기식 반복 학습의 결과는 ‘수학 흥미도·자신감 세계 꼴찌’(2019년)로 나타났다.
한국 수학의 모든 과정은 대입(수능)에서 시작해 대입에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능 문제는 생각을 하든, 하지 않든 3분 내외로 한 문제를 풀게 돼 있다. 제대로 생각하는 능력(기본 원리에 대한 깨침)을 함양하는 게 불가능한 구조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 준다는 수학의 근본 취지는 공염불이다. 생각을 키우는 학습은 수능을 망칠 뿐이다.
입시와 맞물린 수학교육의 가장 큰 고질은 ‘변별력’에 있다. 입시 난이도가 계속 높아지는 이유다. 그런데, 많이 생각해야 풀 수 있는 문제와 많이 알아야 풀 수 있는 문제 사이에서 후자를 택한다. 그래서 고등학교 지식수준 이상의 내용이 버젓이 나온다. 학원에 다닐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좋은 학원에 다닌다고, 문제를 많이 푼다고 생각하는 능력이 얻어지는 건 아니다. 대학 진학 후에도 달라지는 건 없다. 한국 수학자의 필즈상 수상은 기적에 가깝다.
■ 우리는 바꿀 수 있을까
그런데 생각을 키우는 학생들이 결국 성공한다는 사실, 허 교수가 증명했다. 그는 전형적인 늦깎이였다. 대학 4학년이 돼서야 수학을 시작했다. 지름길 놔두고 둘러 가느라 쌓은 다양한 경험이 결국에는 자산이 된다. 어릴 때부터 접한 시와 글과 음악 등등, 거기서 여러 가지가 통합돼 창조가 이뤄졌다.
한 군데 매몰되면 새로운 사고의 접합이 일어나기 쉽지 않다. 허 교수도 서로 다른 수학 영역을 왔다 갔다 하다 발상이 전환되면서 난제를 푸는 실마리를 찾은 경우다. “굽은 길이 사실은 최선의 경로였다”는 그의 말 그대로다.
이제 한국의 수학교육 방식은 변해야 한다. 빠른 시간 안에 많은 문제를 푸는 능력을 측정하는 방식에서, 여유롭게 큰 그림을 보는 능력을 키워 주는 방향으로.
사실 우리는 머리로는 이미 다 알고 있다. 복잡하게 얽힌 견고한 교육 시스템을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난감할 뿐. 어쩔 수 없이 우리 아이가 더 많은 점수를 받기를 원하는 개인적 차원에 머물고 있다. 필즈상을 탄 허 교수의 생애 자체가 그래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은 아이들이 기존과 다른 가치관으로 커서 성공하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작은 가능성. 진정, 생각하는 아이를 키우고 싶다면 이 소망에 동참하는 건 어떤가.
2022-07-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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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의 지금 여기] 위험한 신호탄인가, 해빙의 마중물인가
일본 보수 우익의 ‘심장’이 총탄에 스러졌다. 8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피격 사망은 일본 열도 안팎에 거대한 충격파를 안긴다. 21세기 하고도 20년이나 흐른 최첨단의 시대다. 쇠락했다고는 하나 미국과 중국 G2에 이은 세계 경제 규모 3위의 엄연한 대국 일본이다. 전 총리가 백주대낮에 총격을 받는 일이라니. 더군다나 일본은 총기 소유에 관용이 없고 총기 폭력 발생률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다.
그러나 일본에서 정치인 피습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역사의 비극이다. 아베 신조의 죽음 역시 안타깝지만 그 연장선에 있다. 그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역시 1960년 당시 총리를 지내다 칼에 찔려 중상을 입은 바 있다. 비극의 씨앗은 일찍이 일본 근현대사에서 자행된 정치인 테러와 암살로 거슬러 오른다. 1921년 하라 타카시 전 총리, 1930년 하마구치 오사키 전 총리가 희생됐고, 1936년 육군 청년 장교들의 쿠데타로 전 총리 다카하시 고레키요와 사이토 마코토 대신이 피살됐다.
일본 보수 우익 상징 아베의 죽음
그가 숭앙한 정신적·사상적 지주는
메이지 유신 설계한 요시다 쇼인
중심의 소멸로 우파 혼란 예상되나
되레 강경파 득세의 빌미 될 수도
가능성의 공간 냉철하게 직시해야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테러가 의회정치를 훼손시키기 위한 체제전복적 의도였다면 전후에는 정치인 개인에 대한 습격이라는 성격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공통점은 대부분 우익에 의해 자행된다는 점. 아무튼 전후에도 끊이지 않던 정치인 습격은 2000년대 이후까지도 이어졌다. 2014년 이시이 히로키 도쿄 세타가야구 하원 의원의 흉기 피살, 2019년 이토 가즈나가 나가사키 시장의 총격 피습 사망은 근년에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대표적 사례다.
이번 아베 피습은 일단 정치적 목적과 결부돼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베의 때 이른 사망 자체가 ‘핵폭탄급’이라는 데 이견을 달기 힘들다. 아베 신조라는, 일본 우익의 상징성 때문이다. ‘52세 최연소 총리 취임’ ‘총재임 8년 9개월 최장수 총리’ 등의 기록에서 보듯, 일본 정계를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한 인물이 아닌가. 퇴임 뒤에도 자민당 내 최고 파벌인 아베파(세이와정책연구회)의 수장으로 현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상왕’ 역할을 해 왔다.
아베의 사상적 발원지를 살펴보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다. 일본의 과거 행적과 현재, 미래의 행로까지 짐작게 하는 핵심 단서이기 때문이다. 아베는 일왕도 발길을 끊은 야스쿠니 신사를 2013년 참배한 이후 해마다 공물 봉납을 빼먹은 적이 없다.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해 246만여 명을 합사한 일본 내 가장 규모가 큰 이 신사의 맨 상단에 새겨진 이름이 요시다 쇼인이다.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제 국가체제를 꿈꾼 그는 메이지 일본을 설계한 인물이다. 160여 년 전 이미 한반도 정벌론을 주장했던 군국주의 이론의 뿌리이기도 하다. ‘쇼카손주쿠’라는 학당에서 그가 길렀던 제자들이 메이지 신정부의 요직을 차지한 뒤로 그의 사상은 오늘날 일본의 보수 우익 정치 신념의 토대로 이어졌다. 쇼인을 거의 신적 대상으로 숭앙하는 이가 바로 아베인 것이다.
이로부터 사상적 유산을 이어받은 아베가 추진한 각종 정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 대부분 급격한 우경화 색채를 띤다. 2002년 북·일 관계를 파탄 낸 장본인이 바로 당시 관방 부장관 아베였으며, 2019년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보복 조처를 취한 것도 아베 내각이었다. 아베 필생의 과업은 바로 평화헌법을 개정해 종국적으로 ‘전쟁 가능 국가’가 되는 것이다.
우익의 상징 아베의 죽음이 일본 역사의 물줄기를 어떤 식으로 바꿀지는 단언하기 힘들다. 중심의 소멸로 인한 우파의 혼란은 일단 불가피할 것이다. 강경 보수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아베의 부재로 개헌과 방위력 강화를 위한 추진력을 잃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마땅한 후계자가 없다 보니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아베파의 세력 약화와 분열까지 점치는 언론도 있다. 힘의 진공상태 속에서 기시다 총리가 강경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다소 유연한 행보를 걸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대는 보편적 인권을 무시한 채 민족주의에 매몰된 행태를 보인 아베의 길이 조금이라도 바뀌는 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그렇듯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베의 죽음과 맞물린 이번 참의원 선거 결과 그에 대한 추모와 동정 여론이 주류를 이루면서 집권 자민당이 압승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아베는 죽었지만 그 유산은 굳건하다. 동정 열기를 타고 강경파 입지가 더 넓어져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탈지도 모를 일이다. 우파의 목소리에 더 큰 힘이 실린다면 해빙을 기대했던 한·일 관계의 앞날이 순탄할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명백한 가능성의 공간이다. 우리로서는 눈을 크게 뜨고 새롭게 전개되는 사태의 추이를 면밀히 살피면서 냉철한 판단을 해야 할 때다.
2022-07-1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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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의 지금 여기] 투표가 행복을 좌우한다
그 옛날에도 정치란 것은 고역으로 여겨졌나 보다. 고대 중국의 제왕 시절인 요순시대 얘기다. 요 임금이 기력이 쇠해 더 이상 일을 하기 힘들었던지 허유라는 사람에게 임금의 지위를 넘겨주려 했다. 이 말을 들은 허유는 펄쩍 뛰었다. 못 들을 소리를 들었다며, 임금 노릇은 절대 못 한다며, 냇물에 귀를 씻고 또 씻었다는 것이다. 그 냇물 이름은 ‘영수’다. 이를 지켜본 허유의 친구 소부는 한술 더 떴다. 허유가 귀를 씻어 더럽혀진 물을 소가 먹을까 봐 아예 소를 냇물 상류 쪽으로 끌고 가서 마시게 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기산’이라는 산에 들어 평생을 은거하며 지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가 ‘기산영수(箕山潁水)’ ‘소부허유(巢父許由)’다. 물론 최고 존엄의 자리조차 거부했던 옛 은사들의 높은 기개를 상찬하는 말이지만, 정치 혐오의 태도를 보여 주는 상징적 사례로 읽어도 무리가 없다.
정치 혐오, 동서고금 막론한 현상
지금도 여전히 대의 민주주의 불신
당리당략에 갇힌 지방선거 큰 문제
주민이 자기 지역의 진짜 주인 돼야
삶을 변화시킬 최후의 수단은 투표
싫은 걸 바꾸기 위해서라도 행사를
동서고금을 펼쳐 봐도 사람 사는 모습이 크게 다를 리는 없는 것인지, 지금도 정치를 싫어하고 정치인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21세기를 훌쩍 넘긴 현대는 옛날의 왕조 시대와 달리 국민들이 선거권을 갖고 있는 민주주의 시대다. 그런데도 정치 혐오가 여전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국가와 지역사회를 이끄는 리더들의 모습이 기대에 한참 못 미친다는 뜻이다. 지금은 정치를 하는 사람, 행정을 맡은 사람, 민의를 대변하는 사람을 지역 주민이 직접 뽑는다. 그런데 유권자의 노력이 들인 공에 비해 결과가 별로 신통치 않은 것이다.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라고들 한다. 민주주의는 저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같다는 비유가 있다. 눈앞에서 아름답게 반짝이지만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
이번 지방선거로 눈을 돌려 본다. 여당이니 야당이니, 진보니 보수니 하는 프레임에 갇힌 선거 구도가 여전함을 알 수 있다. 지방선거에서는 지역 발전과 비전을 어떤 후보가 가장 잘 실현하고 구현할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후보들이 개인적인 정치 셈법이나 소속 정당의 당리당략에 휘둘리면 그런 건 뒷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선거전이 치열해지면서 득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태가 어김없이 나오는 것이 그 방증이다.
선거운동 기간 후보들에게서 가장 흔하게 듣는 말이 있다. “민의를 받들겠다”는 다짐이다. 하지만 번지르르한 말로 그칠 뿐이다. ‘공약 코스프레’가 공해가 된 지 오래다. 당선 뒤 지역 주민들의 뜻을 도외시하고 독불장군의 길을 걸었던 씁쓸한 사례는 얼마든지 많다.
공자는 요순시대의 핵심을 이렇게 짚었다. “요순이라는 성인 정치가들은 나라가 어려울 땐 언제나 꼴 베는 나무꾼에게 의견을 묻고 그들의 뜻에 따르는 정치를 했다.” 요순시절이면 박하게 계산해도 지금으로부터 무려 4000여 년 전이다. 이 까마득한 시절에 이미 태평성대를 누린 비결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라의 주인은 백성, 고쳐 말하면 지역의 주인은 지역 주민이라는 사실. 2022년 지방선거 후보들이 이를 뼈저리게 깨닫지 못한다면 출마 자격이 없다. 민의를 위임받아 위정(爲政) 하는 일은 한 치의 빈틈도 허락되지 않는 무거운 책무다. 꼴 베는 일꾼들과도 의견을 나눌 정도로 우리 사회의 가장 낮고 후미진 곳 구석구석까지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은 6·1 지방선거 본 투표일. 유권자들의 눈은 저런 자질과 경륜과 지혜를 두루 갖춘 후보들을 골라내는 데로 향해야 한다. 누차 말했듯이, 아직도 많은 사람이 대의정치에 대한 불신 때문에 투표 행위에 회의적이다. 물론 국민들에게 식상함만 안기는 정치 탓이 크다.
그래도 우리 삶을 바꿀 최후의 수단은 정치요 투표일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위정자를 뽑아 올바른 정치로 이끌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 나라가 존재하고 주민들의 살아갈 길이 열리겠나. 투표는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다. 아니, 싫은 걸 바꾸기 위해서라도 해야 한다. 자기 권리를 행사하지도 않으면서 이 땅의 주인임을 내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 저널리스트 출신 작가 수전 제이코비가 이런 말을 했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무감각해져 있거나 무지할 경우 잘 작동하지 않는다.”(〈반지성주의 시대〉) 그는 미국에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원인을 진단하면서 무지와 맹목을 지목했다. “무지는 좌·우파를 가리지 않는다”고도 했다.
문제는 선택이다. 정확히 말해서, 그것을 뒷받침하는 유권자들의 안목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후보 선택의 최고 기준은 진정성과 실행 능력이라고 본다. 말 바꾸기나 마타도어, 편 가르기, 지역감정 조장, 기만적인 정치공학 따위가 통하지 않는 시대임을 보여 줘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공동체의 미래를 원하는가. 유권자가 답할 시간이다.
2022-05-31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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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의 지금 여기] 산사의 품격
우리나라 산사(山寺)의 아름다움은 세계적이다. 지구촌이 이를 공식 인정한 때가 2018년이었다. 경남 양산 통도사를 비롯한 한국의 전통사찰 7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인류 문화유산으로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우리 문화의 획기적 성과라 할 만하다. 산사는 특히 진입로가 아름답다. 절에 들어서는 일주문부터 사찰 수호신이 버티고 선 천왕문까지 이르는 그 길은 “성역에 이르는 공간적 의미”(유홍준 미술사학자)를 지닌다. 산사의 아름다움은 단지 풍경의 아름다움에 머물지 않는다는 얘기다. 거기엔 세속의 욕심을 꾸짖고 오염을 정화하는 정신적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산사의 가치가 물질의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다.
부산에는 금정산 자락에 범어사라는 걸출한 산사가 있다. 신라의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삼국유사〉에 따른다면 범어사는 1300년 이상의 세월을 잇고 있는 고찰이다. 〈범어사 창건사적〉을 봐도, 예로부터 ‘각종 법당과 요전(寮殿) 등이 별처럼 늘어서 있는 대명찰’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고승들을 배출해 ‘선찰대본산’이라는 이름을 얻은 건 물론 긴 세월만큼이나 숱한 문화재들을 품에 안고 있는 대가람이다.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만 해도 조계문, 삼층석탑,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등이 있고, 그밖에 각종 시 지정 유형문화재까지 포함하면 백수십 건에 달하는 문화재가 범어사의 안팎을 이룬다. 가람 한편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등나무 군락도 있다. 이렇듯 많은 문화재와 자연환경을 품고 있는 부산의 자산이 범어사다.
세계유산 된 한국의 아름다운 산사
범어사도 숱한 문화재 품은 가치의 공간
최근 경내에 신축 건물 건립 계획
산사 원형 보존 노력에 미흡함 없길
일반인 교육·홍보 등도 중요하지만
문화유산으로 길이 남기를 소망
최근에 소식 하나를 접했다. 내용인즉슨, 일주문인 조계문을 사이에 두고 성보박물관 맞은편 나대지에 새로운 설법전 혹은 교육홍보관을 추가로 짓는다는 계획. 얼마 전 범어사는 대설법전 건립 타당성 조사연구 용역을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문화재청 국고보조사업의 일환으로 신청했다고 한다. 현대의 사찰은 수행과 전법의 도량에만 머물지 않고 일반인을 위한 교육과 문화, 복지의 열린 공간으로 변신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기존 설법전이 작다 보니 많은 신도나 시민들이 궂은 날에도 야외에서 법회를 들어야 할 정도로 고생한다고 하니 부산의 대표 사찰로서는 면이 서지 않는 노릇이다. 그런 점에서 범어사의 입장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기존의 설법전이 좁다면 이외에도 선문화교육관을 비롯해 활용 가능한 시설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설법전 추가 건립과 관련해서 무엇보다 걸리는 대목은 새로 짓겠다는 건물 위치가 사찰 경내라는 점에 있다. 산의 지형을 이용한 전체적인 가람 배치와 구도는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돼 왔고 그것이 지니는 의미가 다 있을 텐데, 이에 대한 고려가 미흡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다. ‘문화재는 원형 보존이 원칙이므로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사업은 제외된다.’ 문화재청 국고보조사업 신청 지침도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이번 설법전 건립은 국고보조사업 지원 대상인 ‘문화재 보수·정비’ 명목으로 돼 있다. 하지만 일주문 안에 새 건물을 세우는 일이 문화재 보수·정비와 관련성 있는 것 같진 않다.
전남 구례의 빼어난 전통사찰인 화엄사는 2018년 세계유산 등재에서 제외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사찰 건축 양식이나 공간 배치 등 불교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고 한국의 토착성까지 잘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유산의 가치 공간으로 손색이 없었던 화엄사다. 하지만 당시 일주문 안에 신축된 템플스테이 건물 때문에 경관이 훼손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공의 건축물로 인한 원형 보존의 미흡으로 선정에서 배제된 것이다. 범어사 역시 문화재 보호구역으로서 그 자체가 길이 보존돼야 할 문화재라 할 수 있다. 이런 사례를 보더라도 범어사 경내 건물 신축은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문화재청 국고보조사업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보조금 형태로 국·시비가 투입되는 사업이다. 국민과 부산 시민의 혈세가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해당 건축물이 왜 필요한지, 어떤 공공성의 가치를 지니는지 더 많은 시민들이 알 권리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공론화 과정이라든지 문화재위원회 같은 전문가 심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부산시가 이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화재 유산으로서의 큰 가치를 인정받는 대가람이라면 일반인에 대한 교육과 홍보 못지않게 원형 보존 노력도 소중하다. 우리나라의 큰 절들이 잘 보존된 숲을 지키고 있는 건 사찰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범어사 역시 그런 치열함으로 부산의 자산이자 자랑으로 거듭났음을 알고 있다. 범어사가 넉넉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산사로서의 품격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2-05-0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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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수의 지금 여기] '한반도 평화' 대원칙 흔들려선 안 된다
북한이 끝내 선을 넘었다. 올 들어 잇달아 타전한 시그널이 미국에 먹히지 않는다고 판단한 때문인지 결국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카드를 꺼내 들었다. 확인된 정점 고도는 6200㎞ 이상, 비행 거리는 1080㎞, 정상 각도보다 높게 쏜 고각 발사였다. 통상 궤도였다면 1만 5000㎞ 이상을 날아 미국 동부 해안을 포함한 미국 전역에 도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실상 전 세계가 사정권 안에 들었다는 뜻이다. 이게 기존 화성-15형인지 신형 화성-17형이 맞는지 논란이지만, 2017년 11월 발사한 화성-15형보다 더 멀리 더 높이 날아간 건 분명하다. 기술적 진전이 있었던 것 같다.
24일 모라토리엄 약속을 4년 4개월 만에 스스로 뒤집은 북한의 ICBM 발사는 두말할 나위가 없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요, 동북아를 포함한 국제사회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다. 착탄 지점이 일본 해역이라서 당장 일본의 반응이 부산스럽다. 일본 열도가 북한 미사일의 앞마당이란 사실이 재차 확인된 데다, 일본의 육지가 아닌 인근 바다에 떨어지도록 한 고각 발사의 정확도에 충격을 받은 듯하다. 여기에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에 새 건물이 들어서고 2018년 폭파한 일부 핵실험장 갱도가 복구된 정황이 28일 탐지됐다고 한다.
끝내 ICBM 카드 꺼내 든 북한
모라토리엄 4년여 만에 파기
한반도 평화 다시 격랑 속으로
새 정부 혼란 속 새로운 시험대
2018년 이후 성과들 불씨 살려
평화 정착 주도권 만들어 가야
해가 바뀌자마자 집중되고 있는 북한의 잇단 강수는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세계정세의 혼란과 한국의 정권 교체기를 노렸다는 의미다.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마당에 미국의 대북 제재안에 러시아가 협조할 리 만무하다. 미국과의 갈등이 장기화하고 있는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발사 직후 유엔안보리는 가장 낮은 수준의 회의 결과물인 언론성명조차 내지 못했다. 한국의 정권 교체기를 틈탄 것은 향후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쥐려는 심산일 가능성이 크다.
이로써 한반도 평화에 다시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는 암울한 전망이 빗발친다. 그런데 시선을 단발적 사건에 두지 말고 거시적 관점으로 확대해 볼 필요가 있겠다. 북한이 시종 ICBM 개발과 소형 핵탄두 탑재에 매달리던 때가 2017년이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8년은 매우 중대한 전환의 해로 기억된다. 이 시기 남·북·미가 여러 차례 정상회담을 가졌고 다양한 합의들이 발표됐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미국이 사실상 북한의 핵 억지력을 인정했다. 대북 압박이 군사적 수단에서 외교적 수단으로 바뀐 점, 다시 말해 대북 전략이 무력이 아닌 협상으로 변화한 것은 고무적인 변곡점이라 할 만하다.
안타깝게도, 북·미는 끝내 신뢰 구축에 실패했다. 북한은 자신의 선제적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미국의 조치를 요구했고, 미국은 회담 이후 북한에 대한 신뢰를 문제 삼으며 전면적 비핵화 이행을 요구하는 강경파들의 목소리에 휩쓸렸다. 그렇게 북·미 관계가 원점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뒤 북한은 아예 북·미 간 협상이나 대화에 대한 기대를 접은 듯하다. 바이든의 ‘매파’ 전략은 지금 러시아가 군사행동 수위를 높일 때마다 추가 경제 제재를 부과하는 맞대응 전략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원하는 바를 얻는 수단으로 무력을 선택했지만 북한의 궁극적 목표는 대북 제재 완화·해제에 있다. 이는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종국에는 북·미 관계 개선, 종전 선언, 체제 인정으로 이어지는 것만이 살길임을 북한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펼쳐지는 한반도 상황은 위기 국면이라기보다는 앞서 말한 2018년 ‘한반도 평화 전환’ 이후의 과정 속에 있다고 보는 게 옳다. 최근 세종연구소에서 펴낸 〈한반도 평화 대전략〉(백학순 외)이라는 책이 그런 통찰을 제공한다. 2018년부터 이미 한반도에서 ‘평화’를 중심으로 한 대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를 항구적 정착으로 끌고 나가는 전략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일궈 낸 성과들을 평화 정착의 불씨로서 살려 내고 주변 관련국과의 전략적 관계 개선을 통해 한반도 평화라는 대원칙을 흔들림 없이 지켜 나가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주도권 행사에 있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주변국과의 협력과 포용, 설득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지 치열한 고민과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새 정부는 전례 없이 험난한 시험대에 섰다고 할 수 있다. 역사는 늘 반복된다. 2017년 겪었던 전쟁 위협의 재발을 막고 항구적인 평화 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이뤄 내야 할 민족의 과제다. 이는 인류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2022-03-29 [1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