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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탱자를 위한 변명
중국의 춘추시대에 초나라 임금이 제나라의 명재상인 안영을 초청했다. 초나라 왕은 안영과 제나라를 조롱할 심산으로 도둑질을 하다 잡힌 제나라 사람을 끌고 오게 했다. 왕이 제나라 사람들은 도둑질을 잘한다고 비웃자 안영은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듣기로는 귤이 회수 남쪽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수 북쪽에서 나면 탱자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백성들 가운데 제나라에서 나고 성장한 자는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초나라로 들어오면 도둑질을 합니다. 초나라의 물과 땅이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잘하게 하는 것입니다.” 귤화위지(橘化爲枳),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뜻으로 중국 고전인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말이다.
고 김용균 씨 사건 등
비정규직 노동자 안전 사고
열악한 산업 현장에서 비롯
파견·계약직 규제, 중대재해처벌법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 없지만
한국에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법
한국GM의 최고경영자인 카허 카젬 사장이 임기를 마치면서 한국경제에 대해 남긴 쓴소리가 화제라고 한다. 카젬 사장은 한국이 세계 최고수준의 부품 공급망과 우수한 인력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경직된 노동 관련 제도 때문에 해외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예로 카젬 사장은 “파견·계약직 규제가 불명확해 사업을 하는 데 상당한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선진국에서는 통상 민사 사안인 노동 관련 행위가 한국에서는 형사 처벌 대상”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훈수꾼이 더 잘 본다는 말처럼 때로는 우리들 자신보다 외국인들이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더 잘 볼 때도 있다. 특히 카젬 사장처럼 세계적인 기업의 최고경영자라면 그의 지적에 당연히 귀를 기울여 듣고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일이 많을 터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파견직 문제일까? 실은 카젬 사장 자신이 불법파견 등의 혐의로 출국금지를 당하며 곤욕을 치렀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파견·계약직 규제가 불명확해 불만이고, 선진국에서는 민사 사안인 문제가 한국에서는 형사 처벌 대상이어서 불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노동 관련 규제는 다른 선진국들보다 더 엄격할까? 다른 선진국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불법 파견노동과 부당한 계약직 고용이 한국에서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정은 모두 차치하고 카젬 사장에게 물어 보자. 당신은 GM의 모국인 미국에서도 그런 불법파견을 저지릅니까? 아니면 유럽의 다른 GM지사에서도 그런 불법파견을 저지릅니까? 그 대답은 당연히 아니오일 것이다. 만약 미국에서 그런 행위를 했다면 지금 카젬 사장은 한국GM이 아니라 미국의 어느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카젬 사장이 연설한 행사에는 디어크 루카트 주한 유럽상공회의소 회장도 함께 참석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루카트 회장도 한국의 중대재해처벌법이 모호한 점이 많다면 유럽에는 이런 법이 없다고 말했다. 왜 유럽에는 없는 법이 한국에만 있을까? 한국에서만 그런 재해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광주에서 일어난 아파트 공사현장의 붕괴사고나 고 김용균 씨 사건 이후에도 끊이지 않는 현장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안전사고가 독일이나 다른 EU 회원국들에서도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나는 들어 보지 못했다. 만약 루카트 회장의 모국에서 그런 사고가 일어났다면 그 경영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아니라 형법으로 처벌받았을 일이다. 아니 형법 이전에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할 줄 모르는 데 대한 사회적 지탄을 스스로 견디지 못했을 터다.
나는 우리나라에 진출한 외국기업과 그 경영자들에 감사하며, 당연히 카젬 사장이나 루카트 회장을 비난하려는 뜻은 조금도 없다. 다만 왜 한국에 온 외국기업들은 자신들의 모국에서는 저지르지 않는 불법행위들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가 하고 묻고 싶은 것뿐이다. 우리 기업들이 먼저 그런 불법행위들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귤이 회수를 넘어 탱자가 되었다면, 그것은 탱자의 잘못이 아니라 척박한 토양과 기후의 탓이기 때문이다.
2022-05-0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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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검수완박, 이렇게 풀자
전주에 있는 한 슈퍼에 3인조 강도가 들어 금품을 강탈하고 피해자 한 명의 목숨을 뺏는 사건이 있었다. 검찰은 인근에 살던 세 사람을 기소했고, 용의자들은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몇 개월 후 부산에서 이 사건의 진범들이 체포되었다. 부산지검은 전주지검으로 사건을 송치했는데, 전주지검은 이들이 범인이 아니라며 석방해 버렸다. 범인들을 석방한 검사는 바로 처음에 이 사건을 수사하고 세 사람의 용의자를 기소했던 검사였다. 자신의 수사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검사의 체면 때문에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던 세 사람의 인생은 망가져 버렸다. 다행히 형기를 모두 살고 나온 한참 뒤에야 진실은 밝혀졌지만, 돈으로 보상을 받는다고 해서 인생을 보상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 검찰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사건이다.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늘 갈등
검수완박으로 마지막 진통
새 정부 들어서기 전 해결해야
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 논란
검찰이 어떻게 해결할지 큰 관심사
검찰 스스로 능력 공정성 보여야
검수완박이라는 말을 처음 신문에서 접했을 때 솔직히 어리둥절했다. 요즘 젊은 세대가 자주 쓰는 말 가운데 가끔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지만, 젊은 세대가 아니라 늙은 정치권에서 나온 이 요상한 신조어의 의미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줄임말이라는 것을 알고서야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특정 범죄에 대해서만 검찰에 주어졌던 수사권을 완전히 경찰로 이전한다는 뜻인데, 이를 두고 박탈이라는 표현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정부기관들 간에 권한과 책임이 오고가는 일은 자주 있지만 그것을 박탈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무튼 검수완박에 대한 검찰의 반발이 예사롭지 않은 모양이다. 전국의 검사장들이 모여 정부를 성토하더니 이번에는 김오수 검찰총장이 사표를 냈다. 사표를 쓰는 일은 자기 뜻대로 할 일이니 시빗거리가 안 된다. 다만 일반 공무원이나 교사들의 정치활동이 금지된 나라에서 검사들은 저렇게 공개적으로 정치적 행위를 해도 되는지는 궁금하다. 검찰개혁 문제가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 제기된 일은 아니지만, 유난히 이 정부에서는 검찰개혁으로 인한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누구를 편들거나 누구를 비난할 뜻은 없다만 이른바 조국 사태도 개혁에 반발하는 검찰의 표적수사로 일어난 사건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제 새 정부가 들어설 날이 불과 며칠 남지 않았는데, 어떻게든 이 문제는 지금 정부가 해결하고 물러나야 옳다. 많은 국민들이 검찰개혁을 요구하고 지지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검찰의 능력과 공정성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검사면서 검찰에 증거제출을 거부한 이가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되고 온 검찰이 나서고도 몇 달 동안 그 휴대전화 한 대를 열지 못해 수사를 못하는, 그렇게 무능력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전혀 공정하지 못한 검찰을 어떻게 신뢰하느냐는 말이다. 그러니 이제야말로 검찰이 스스로 능력과 공정성을 증명해 보여야 할 때다.
윤석열 당선자가 장관 후보자들을 발표했는데, 여론의 반응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듯싶다. 그 가운데 특히 정호영 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자녀 특혜 편입학과 병역 면제를 두고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이 많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나는 정 후보자가 자녀들의 편입학에 개입했을 것이라거나, 후보자의 딸에게 만점을 준 동료 교수들이 부정을 저질렀다거나 후보자의 아들에게 진단서를 발급해 준 후보자와 같은 병원의 의사가 허위진단서를 발급했다고 주장할 마음은 없다. 다만 이제 검찰이 이 문제를 어떻게 수사하는지 지켜보고 싶다. 많이도 말고 대한민국 검사 2000명만 달라붙어 정 후보자 자녀의 중학생 때 일기장을 압수하고 후보자의 배우자가 어느 마트에서 콩나물을 사는지, 후보자 주변 인물들 가운데 야한 동영상을 다운받는 이는 없는지 먼지 한 톨까지 조사한다면 나는 검찰의 능력과 공정성을 신뢰하고 검수완박에 반대할 생각이다.
2022-04-2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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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문명과 야만
TV의 〈동물의 왕국〉에서 정말 생각해 보지 못한 장면을 보았다. 다리가 부러진 가젤이 스스로 사자를 찾아가 먹이가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 이해되기는 한다. 부러진 다리로는 먹이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겠지만 사나운 포식자의 공격을 받았을 때 도망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터다. 그래서 어차피 먹이가 될 바에는 부러진 다리를 끌며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이다. 내가 놀란 이유는 그것이 본능에 따른 행동인지 깊은 고민을 거친 행동인지는 모르겠지만, 동물도 자살을 한다는 일이다. 만약 가젤이 자신의 처지를 고민한 끝에 그런 판단을 내렸다면 정말 놀랄 일이 아닌가 말이다.
위험에 처한 동료
보살펴 주는 것이 ‘문명’
장애인 단체 시위에
‘비문명적’ 비난 이준석 대표
장애인들의 불편
못 본 척하는 것은 ‘미개’
출근 시간 도시철도 역에서 시위를 벌인 장애인들을 향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거친 비판을 쏟아내 논란이 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 대표를 비판하거나 화를 내기도 하지만 나는 굳이 그럴 마음이 없다. 유시민 작가가 다른 곳에서 한 말처럼, 도척의 개가 공자를 보고 짖는다고 해서 개의 잘못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흥미롭게 생각한 것은 이 대표가 장애인 단체의 시위를 두고 비문명적이라고 말한 대목이다. 솔직히 이 대표의 말뜻을 잘 모르겠다. 시위의 요구사항이 비문명적이라는 말인지 시위의 방식이 비문병적이라는 말인지, 장애인이 감히 시위를 한다는 일이 비문명적인지 아니면 모든 시위가 비문명적이라는 말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비문명적이라는 그 표현이 너무 강하게 다가와 과연 문명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20세기의 가장 유명하고 가장 영향력 큰 인류학자 가운데 한 분인 마가렛 미드 여사에게 어느 기자가 문명이란 무엇인가 하고 물은 적이 있다. 아마 기자가 기대한 대답은 문자의 사용이라든지 도시의 건설 같은 것이었을 터다. 그런데 미드 여사의 대답은 뜻밖에도 부러졌다가 다시 붙은 흔적이 있는 다리뼈였다. 스스로 사자의 먹이가 되는 가젤처럼 동물들이나 문명 이전의 인류의 먼 조상들은 다리뼈가 죽으면 고통을 참으며 죽음을 기다리든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명화된 인류는 다르다. 같은 공동체에 속한 누군가의 다리가 부러지면, 다시 다리뼈가 붙을 때까지 가족이든 친구든 동료든 누군가가 음식을 나눠 주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위험에 처한 동료를 도와주고 보살펴 주는 것이 바로 문명이라는 뜻이다.
장애인들의 시위 때문에 불편하다는 분들도 없지 않다. 하필이면 출퇴근 시간이냐고 항의하는 분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왜 이분들은 이렇게 불편한 시위를 하는 것일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도 돌아봐 주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다고 외쳐도 심지어는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호소해도 들어 주는 이들이 없으니 저렇게 불편한 시위를 하는 것이다. 이제는 곧 집권당이 될 거대 정당의 대표로부터 비난을 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시위가 효과적이라는 반증이 된다. 물론 불편하다. 1980년대 군사정권의 폭정 아래서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거리로 나왔던 학생들의 시위 때문에 퇴근길이 늦어진 시민들도 불편했을 터다. 촛불 집회 때문에 지하철이 광화문역에 서지 않고 통과했을 때도 불편한 시민들이 많았을 터다. 다리가 부러진 동료에게 음식을 나눠 주고 위험으로부터 지켜 주었던 이들은 또 얼마나 불편했을까? 그러나 불편하지 않다가 아니라 불편하지만 참고 지켜 주는 것이 바로 문명이다. 문명의 반대는 무엇일까? 이준석 대표는 비문명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뜻을 모르겠다. 마땅히 가져야 할 인간의 심성을 가지지 못한 상태를 야만이라 부르고, 심성은 가졌으나 무지해서 알지 못하는 상태를 미개라고 부른다. 내가 조금 불편하다고 다리가 부러진 동료를 사자굴에 밀어 넣는 것은 야만이고, 시자굴에 던져진 동료를 못 본 척하는 것인 미개다.
2022-04-06 [1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