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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15분 도시'로 재도약 꿈꾸는 양산 물금읍
경남 양산시가 최근 물금읍 재도약을 위한 ‘내일의 도시 물금, One Stop Life’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한강 이남 최대 규모의 신도시 조성으로 지역 다른 곳에 비해 인프라가 잘 갖춰진 물금읍에 대한 시의 비전 발표라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17년 신도시 완공 이후 계속 증가해 온 물금읍 인구가 최근 13개월 연속 줄어들며 심상찮은 조짐을 보이자 시가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선 것이다. 물금읍 인구는 13개 읍면동을 가진 양산시 전체 인구의 33%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 물금읍 인구는 2021년 9월 12만 1006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증감을 반복하다 2024년 말 11만 6836명으로 최고점 대비 4170명이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세대 수는 372세대가 늘었다. 인구는 줄었지만, 세대 수는 늘어난 것이다.
‘물품 거래를 금하지 말자’라는 뜻을 가진 물금은 1900년 전 가락국 역사서인 개황력(118년)에 지명으로 첫 등장했다. 당시 물금은 가야와 신라의 접경지에 위치한 데다 사통팔달 교통망으로 인해 자유무역지대가 됐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역참이 설치돼 운영됐다. 조선시대에는 오늘날 고속도로인 영남대로가 지나가면서 동래와 언양 등 주변 16개 역을 관할하는 황산역까지 설치되는 등 주요 도시로 성장과 변신을 거듭해 왔다.
물금읍은 30여 년 전 또 한 번 변신을 시도한다. 낙동강이 범람하면 일시적으로 물을 저장하는 유수지 역할을 담당했던 전·답이 아파트가 가득한 꿈의 신도시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곳에는 56개 공동주택 4만 7881가구와 단독주택 3400가구 등 총 5만 1000여 가구에 15만 2000명의 주민이 거주하게끔 설계됐다.
1994년에 착공한 신도시는 공사 과정에서 IMF 사태 등으로 6차례나 지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2017년 말 완공 때까지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정부 목표를 달성했다. 부울경 지역 중심에 있고 지하철과 자전거도로, 대규모 공원 등을 포함한 인프라를 갖췄다. 부산에 비해 낮은 가격(땅값·아파트 분양가)도 물금읍 성공의 또 다른 이유다.
문제는 신도시가 22년 만에 완공되면서 공사 초기에 건설한 인프라와 건축물이 노후화했고 사송신도시까지 조성되면서 인구 유출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와 진학 때문에 젊은 인구 유출도 늘어나고 있다.
시는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물금읍 재도약 비전까지 발표하게 된 것이다. 비전의 키워드는 ‘One Stop Life’인 ‘15분 도시’다. 주거와 업무, 상업, 학습, 의료, 여가 등 생활에 필수적인 다양한 시설을 복합적이고 밀도 높게 갖춰 주거지 가까운 곳에서 도보나 자전거 등으로 15분 안에 이용할 수 있도록 물금읍 도시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15분 도시 개념은 프랑스 소르본대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가 만든 것으로 2020년 파리 시장이 파리를 재설계하는 데 적용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와 부산시도 이 개념을 도입해 추진 중이다.
물금읍 재도약 핵심은 도시개발과 재생 사업을 통한 인구 유입, 문화 인프라와 관광자원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어디든 빠르고 쉽게 오갈 수 있는 도로망 확충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물금신도시 조성 과정에서 빠졌던 개발제한구역인 물금읍 증산리 80만㎡ 부지를 계획인구 1만 5000여 명이 거주하는 미니신도시로 개발하는 것이다. 시는 최근 사업자 공모와 개발제한구역 해제 절차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정부의 공간혁신구역 선도 사업에 선정된 부산대 양산캠퍼스 110만㎡ 중 유휴부지로 방치 중인 54만여㎡ 부지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곳에는 4000가구의 주거단지와 산학연구단지, 문화시설(양산문화예술의 전당과 시립미술관) 등이 조성된다. 인구 유입과 일자리 창출, 문화인프라 확충까지 동시에 해결할 복안이다.
시는 또 부울경 지역 최대 수변공원인 낙동강 황산공원 시설 업그레이드와 낙동강 관광자원 활성화, 낙동선셋 바이크파크 조성, 물금지구 뉴빌리지사업, 범어지구 도시재생사업도 펼친다. 사업이 완료되면 물금 도심과 황산공원을 잇는 곤돌라가 설치되고, 낙동강 유람선도 운항한다.
15분 내 어디든 빠르고 쉽게 갈 수 있도록 남물금 하이패스 IC 건설에 착수했고, 토교~물금 간 도로 건설, 오봉산터널 개설, 경부선 물금역사 전면 리모델링도 추진 중이다.
각종 사업이 계획대로 완료된다면 물금읍은 명실상부한 15분 도시, 원스톱 라이프가 가능한 도시로 거듭난다. 살기 좋은 곳에 사람이 몰려드는 것처럼 물금읍 역시 신도시 조성 때처럼 많은 인구가 유입돼 양산은 물론 부울경의 핵심 거점도시로 거듭나길 고대한다.
김태권 동부경남울산본부장 ktg660@busan.com
2025-02-1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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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알고리즘 이겨내는 생활정치
2019년 봄, 부산에서 꽤나 흥미로운 정치 실험이 있었다. 당시 자유한국당 부산시당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자유시민 정치 박람회’를 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시당의 부산행복연구원 산하 시민정치토론센터가 동력이었다.
시당은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 공간을 마련했다. 18개 지역구 당협, 산하 단체들이 각각 부스를 마련해 정책을 소개하고, 정책 비전을 공유하는 시간이 진행됐다. 청년 당원들이 대거 참여한 것은 물론 당 대표까지 현장을 찾았다. 기대했던 젊고 자유로운 ‘스탠딩 파티’와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척박한 정치 환경 속에서 그나마 선진 정치를 향한 첫걸음을 뗐다는 데 의미를 두기에 충분했다.
사실 이런 시도는 세계적인 모범 사례로 꼽히는 스웨덴의 ‘알메달렌 정치박람회’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그해 6월 시당은 ‘알메달렌 원정대 출정식’을 열고 현장을 체험하도록 청년 정치인을 보내기도 했다. 박람회는 1968년 7월 휴가지인 스웨덴 고틀란드섬의 작은 마을 알메달렌에서 씨앗을 뿌렸다. 당시 휴가 중이던 교육부장관이 광장의 트럭에 올라 작은 정책 간담회를 연 게 시작이었다.
총리가 된 장관은 이듬해에도 알메달렌에서 자신의 정책을 이야기하는 행사를 열어 주목을 받았다. 이후 다른 정당 지도자들에게 참여를 제안하면서 덩치를 키우기 시작했다. 1982년 진보와 보수, 극우와 극좌 정당, 성소수자와 환경 단체 등 이익단체, 어린이와 청소년, 기업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국민의 생각을 대변하는 이들이 일주일간 대규모 정치 축제를 여는 ‘알메달렌 주간’이 공식 출범했다.
행사 기간 동안 알메달렌의 광장과 골목, 호텔, 카페, 식당은 서로 소통하는 축제의 장이 됐다. 수천 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세미나에서 수만 명이 얼굴을 맞대고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은 전체를 바라보고 종합하게 하는 선순환을 가져왔다. 장소를 가리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삶을 바꿀 정책과 정치에 진심으로 다가가서는 모습을 보였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더라도 상대를 존중하는 매너가 자리를 잡아갔다.
누구나 정치인이 되어 생활 속 정치를 실현하는 이 모델은 북유럽으로 퍼져 나갔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핀란드 등지에서 유사한 정책 박람회가 매년 열린다. 알메달렌 박람회는 정치 꿈나무를 키우는 공간으로서 더욱 특별하다. 어릴 때부터 정치를 꿈꾸는 아이들이 알메달렌을 경험하면서 어엿한 국가 대표 정치인으로 커가는 것이다. 광장의 꼬마가 지역 정치인으로, 다시 국회의원으로 단계를 밟아가며 성장하니 청년 정치가 정치 입문의 필수코스인 셈이다. ‘나름 성공했으니 이제 정치나 해볼까’하며 나선 이들에 밀려 청년 정치인들이 들러리를 서게 되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된다.
짐작했겠지만 굳이 지난 이야기를 들추어내는 것은 지금 대한민국 정치 상황이 녹록하지 않아서다. 지난해 12월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발동은 정치의 중요성을 모두에게 일깨우는 각성 효과를 냈다. 정치를 혐오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이들까지 매일 정치 뉴스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정치가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뼈저리게 체감한 것이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붕괴 직전이다. 심리적 내전 수준이라 해도 무방할 일들이 공공연히 벌어진다. 이 위기가 지난 뒤 시민들이 여전히 정치에 무관심하게 되면 무능력하고 자질 없는 정치인이 그대로 득세할 것이다. 알맹이 없는 섣부른 정책이 난무할 게 뻔하다. 예산을 나눠 먹으며 불평등, 양극화, 수도권 집중화 현상 역시 더욱 가중될 것이다. 정치적 혐오와 무관심의 피해자는 결국 국민 자신일 수밖에 없다.
부산에서 첫 정치박람회가 열릴 때만 해도 북유럽의 어느 나라처럼 우리 정치인들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며 생활정치를 실현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소통하며 미래를 논의하는 모습을 언젠가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었다.
한데 지금 우리는 모두가 알메달렌의 교훈과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2020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거리두기를 하는 사이에 돈벌이만 생각하는 유튜브 등 SNS 플랫폼 알고리즘과 더 자극적인 콘텐츠로 경쟁하는 크리에이터들에 의해 더욱 강력한 정신적 지배를 당하게 됐다. 나의 생각에 오류는 없는지 끊임없이 토론하지도 않고 마땅한 근거나 검증 노력 없이 상대를 혐오하며 ‘도파민 중독’에 빠져 허우적대는 건 아닐까. 우리나라뿐 아니라 인류가 이렇듯 공고한 ‘소셜 딜레마’에 빠져들었다.
어떤 정치적 다름을 지녔든, 그들도 누군가의 부모이자 아들딸이다.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이다. 백척간두에 선 민주주의의 근간을 살리는 길은 결국 직접 대면하고 소통하며 생활 속 정치를 제대로 실현하는 것이다.
2025-02-1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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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품격 있는 나눔의 도시
이번 겨울은 어느 때보다 춥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 12·3 비상계엄에 이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마음이 무겁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하는 ‘관세전쟁’은 수출 중심 국가인 우리나라에도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그야말로 ‘내우외환’에 빠진 형국이다. 불안과 우울의 긴 그림자 위에 한파까지 덮치면서 몸과 마음이 더욱 위축되는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2일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소식이 전해졌다. 부산 ‘사랑의 온도탑’ 나눔 온도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올해는 경기침체에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겹쳤지만, 이를 무사히 극복하고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부산 지역 시민과 기업의 온정은 한파를 물리칠 만큼 뜨거웠다.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부산사랑의열매)가 지난해 12월 1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진행한 ‘희망2025나눔캠페인’ 사랑의 온도탑 나눔 온도는 지난달 31일 오전 11시 기준 124도였다. 총모금액은 134억 7000만 원으로, 목표액 108억 6000만 원을 26억 1000만 원 초과했다. 이는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역대 최고 모금 실적이다. BNK금융그룹이 지난해 12월 12억 원을 기부했고, 지난달 화승그룹 4개 계열사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고액 기부를 약정하는 ‘나눔명문기업’으로 동시 가입했다. 지난해 캠페인보다 기업 기부금 규모가 7억 원 이상 더 늘어난 것이 역대 최고 모금액 달성의 주된 요인이라고 한다.
부산사랑의열매에 성금을 전한 개인 기부자들의 다채로운 사연이 눈길을 끌었다. 부산국제장애인협의회 강충걸 회장 가족이 대표적이다. 강충걸 회장과 부인 박영희 씨, 아들 예성 씨는 20년째 새해 첫날 이웃돕기 성금 기부를 이어왔다. 기부를 통해 이웃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점이 강 회장 가족에게는 더 큰 선물이 된다고 한다.
부산 사상구 덕포동 ‘해물왕창칼국수’ 박기대 대표와 김지영 부대표의 사연도 감동적이었다. 남편인 박 대표는 2017년 부산 아너 소사이어티 133호에 가입했고, 부인인 김 부대표는 지난해 11월 부산 아너 소사이어티 369호 회원이 됐다. 부부 아너 가입 소식이 〈부산일보〉에 소개되자 ‘칼국수를 먹으면 기부가 된다고 하니 좋은 일에 동참하고 싶다’는 손님이 많아졌다고 한다. ‘자신들처럼 평범한 사람도 기부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져 많은 사람이 기부와 나눔에 동참하길 바란다’는 이들의 소망이 깊은 울림을 줬다.
‘사랑의 온도탑’이 뜨거워지는 동안, 많은 단체와 기관이 지역 아동을 위한 따듯한 나눔에도 동참해 훈훈함을 더했다. (주)ERK 리더모아 영어도서관은 지난해 말 초록우산 부산지역본부에 저소득가정 아동을 위해 1400만 원 상당의 동절기 이불, 베개, 쿠션 174세트 등을 후원했다. 기부 물품은 부산 지역 복지관, 모자원,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 총 24곳의 아동복지기관을 통해 저소득가정 아동에 전달됐다. 리더모아 영어도서관 고영하 대표는 부산 지역 저소득가정 어린이들이 좀 더 따뜻한 겨울을 보내게 해주고 싶어 이번 후원을 제안했다. 어린이용 이불, 베개, 쿠션을 받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떠올리니 흐뭇해진다.
자동차부품 회사 (주)퓨트로닉(대표이사 회장 고진호)은 올 초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에 또 1억 원을 기부하며 부산 지역 1호로 ‘레드크로스 아너스 기업 3억 클럽’에 가입했다. 퓨트로닉은 2014년부터 매년 연말에 일시 기부와 2023년 9월부터 정기후원으로 매달 100만 원씩 기부해 지난해 기부액이 2억 원을 넘어섰다. 올 초 1억 원 기부로 누적 기부가 3억 1000만 원에 달했다. ‘레드크로스 아너스 기업’은 대한적십자사의 단체 고액기부 인증 프로그램이다. 퓨트로닉 사례는 기업이 인도주의적 활동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일수록 주변을 살피고 보듬는 마음이 부산의 저력이 아닐까 싶다. 따듯한 공동체를 만드는 시민과 기업들의 나눔 선순환을 접하면서 (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가 지난해 12월 발간한 인문무크지 〈아크(ARCH)’ 9호: 품격〉이 떠올랐다. 아크 9호 첫 장에 실린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가 쓴 ‘품격, 이타성의 다른 이름’이란 글 때문이었다. 장 대표는 “인간의 품격은 결국 나와 타인이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을 존중하고 공공선에 헌신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품격 있는 사람은 자기희생을 바탕 삼아 이기심을 억제하고 타인을 관용하며 공적 가치를 위해 헌신한다”고 적었다.
최근 활발한 나눔의 궤적을 보면서 부산은 품격 있는 도시로, 부산 시민은 품격 있는 존재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품격 있는 나눔의 도시, 부산’에서 타인과 공존하는 희망의 빛이 더 널리 퍼지기를 바란다.
2025-02-1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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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관광객 부르는 로컬
열차 안에 갑자기 ‘명탐정 코난’의 메인 테마곡이 울리고 원작 속 주인공 목소리까지 들렸다. 누가 실수로 동영상 오디오 기능을 켠 것인가 했더니 ‘이시카와현 관광 정보를…’ 하는 내용이 귀에 들어왔다. 철도 여행상품 안내방송이었다.
지난달 일본 혼슈 호쿠리쿠 지역을 방문했다. 한일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 ‘한국재팬리포터방일단’이 홈스테이를 하는 후쿠이까지 가기 위해 간사이국제공항에서 열차를 세 번 갈아탔다. 앞에 언급한 안내방송은 신오사카역과 쓰루가역을 잇는 특급 열차에서 들었다. ‘명탐정 코난 가나자와·가가·고마쓰 미스터리 투어’는 서일본철도여객주식회사와 이시카와현 등 지자체가 공동으로 만든 여행상품이다. 이용객은 작품 속 장소를 찾아 수수께끼를 푸는 동시에 지역 관광도 즐긴다. 2001년 시작한 코난 미스터리 투어는 구마모토·히로시마 등 여러 도시에서도 진행됐다. 인기 애니메이션 스토리를 더한 색다른 철도 여행으로 지역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안내방송에 대한 의문을 풀고 나니 좌석 주변 안내문에 눈이 갔다. 간이 테이블에 붙은 QR코드는 쓰루가역에서 호쿠리쿠 신칸센을 갈아타는 방법을 안내한다. 외국어 버전에서 한국어 선택도 가능하다. 열차에서 내리면 마주할 환경을 동영상으로 미리 확인하니 도움이 됐다. 좌석 앞 포켓에서 환승객을 위한 기간 한정 캠페인 전단을 꺼냈다. 후쿠이현 지역 정보 앱 접속자에게 1만 원 상당의 디지털 지역통화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앱 가입자를 늘리면서 방문객의 지역 소비도 독려한다.
신칸센 플랫폼의 후쿠이현 공식 관광 안내 사이트 알림판과 지역 특산품 홍보 래핑 열차까지. 승객은 열차를 이용하는 내내 다양한 관광 정보에 노출되고 있었다. 지역 관광을 살리기 위한 철도회사와 지자체 협업의 긍정적 결과물이다. 어제 신문에 실린 부산진구청과 코레일의 철도 여행상품 개발과 운영 협력 기사가 반가웠던 이유다. 동해선과 중앙선 개통으로 부전역은 부산의 새로운 관문 역할을 하게 됐다. 인근 재래시장·상권과 연계한 관광 상품 개발로 지역에 활기가 돌면 좋겠다. 동해안권 도시와의 협력으로 부산발 새로운 K-관광 루트가 나올 수 있겠다는 기대도 해본다.
2024년 한 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633만 명. 같은 기간 방일 외국인 관광객은 3687만 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엔저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인프라와 콘텐츠의 차이를 이야기한다. 한국은 몇몇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관광객 이동이 쉽지 않고 정보도 부족하다. 이에 비해 일본은 교통망을 확충하고 지역 고유의 스토리와 관광 콘텐츠를 발굴해 소도시까지 외국인을 끌어들인다.
실제로 현지에서 각종 관광 정보가 그물을 짜듯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후쿠이 시내에 위치한 요코칸정원에서는 제철을 맞은 수선화 꽃장식과 함께 에치젠 해안의 수선화 군락지를 소개했다. 기차역 1층 관광정보센터에는 지역별 정보를 제공하는 팸플릿이 다양하게 비치되어 있었다. 특산물 소바와 지역 사케를 함께 즐기는 ‘소바(BAR)’ 투어, 상점가연합회가 만든 시내 점포 가이드맵, 상공회의소가 발행한 체험 여행 안내서 등은 색다른 여행 계획을 짜는 데 도움이 됐다. 체험 여행의 경우 에치젠시의 칼 공방 집적지, 사바에시의 안경회관과 같이 지역 대표 산업과의 연결고리 역할도 했다. 후쿠이 등 여러 소도시를 방문한 한국재팬리포터방일단도 지역이 자신만의 강점을 극대화해서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지역 캐릭터나 지역 한정 컬래버 상품 개발이 한국에서도 더 활발하게 이뤄지면 좋겠다는 참가자도 있었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위기를 겪는 것은 한국과 일본 모두 같다. 일본 정부는 2023년 관광백서를 통해 관광 산업 발전 없이는 지역 사회와 경제를 지속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관광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해 숙박시설·관광시설 개선, 지역관광 통합 사이트 구축 등 여행자 편의성 강화, 자연·먹거리·교통·역사와 문화예술을 활용한 지역의 간판 상품 개발을 지원했다. 또 오래된 집을 활용해 마을 전체를 호텔로 변신시키기, 배움 여행으로 지역의 민속예능 이수자 부족 문제 해법 찾기, 도시 청년이 빈번하게 찾는 제2의 고향 만들기 등 소멸 지역을 살리는 국내여행 모델 개발에도 열심이다. 이 국내여행 모델은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 2025년 8대 핵심사업에 ‘지역이 강한 나라, 관광으로 크는 지역’이 있다. K-관광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서, 더 자주 찾고 더 오래 여행하고 싶은 한국이 되기 위해서 ‘로컬리즘 추구’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더 많은 관광객을 부르는 부산다운 관광이란 무엇일까. 다양한 의견과 제안이 오가는 공론의 장이 한 번쯤 필요할 것 같다.
2025-02-1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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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상식적이지 않은 윤 대통령의 '계엄 방어법'
12·3 비상계엄 실패 직후 대국민담화에서 “모든 법적·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던 윤석열 대통령은 이후 수사에 일체 불응하고, 위헌·위법적 지시에 대한 책임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계엄 포고령과 같이 증거가 명확한 부분은 ‘집행 가능성이 없는 상징적’인 것이라며 의미를 축소하거나 은근슬쩍 책임을 밑으로 떠넘겼고, 녹취가 없는 ‘지시’ 부분은 수명자의 신뢰성을 공격하면서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전략을 쓰고 있다. ‘싹 다 잡아들여라’는 지시 내용을 밝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폭로 동기를 ‘인사 불이익’으로 암시하면서 “(계엄 당일)통화를 해보니 벌써 반주를 한 느낌이 들었다”고 깨알 같은 항변을 남긴 게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공수처에 체포될 당시 관저를 찾은 여당 의원들에게 “나라가 위기인데 임기 2년 반 더 해서 무엇하겠나”면서 ‘정권 재창출’을 부탁했다고 한다. 이 때만 해도 윤 대통령이 탄핵심판 등에서 자신은 물러나더라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의 폭거로 인한 헌정 질서의 위기는 막아야 한다고, 좀 크게 대응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 법정에 선 윤 대통령의 모습은 법의 허점을 찾아 요리조리 피해가려는 일반 형사범의 태도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검사로서 당당한 기백에 매료됐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왠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든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헌재의 5차 탄핵심판 변론에서 “상식에 근거해 본다면 이 사안의 실체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말대로 윤 대통령 측이 들고 나온 ‘계몽령’이 궤변인지, 아닌지 몇 가지 쟁점을 ‘상식적으로’ 판단해보자. 윤 대통령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을 저지할 생각도, 정치인을 체포하라는 지시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 계엄군은 도대체 왜 그 밤에 유리창까지 깨면서 본회의장에 진입하려고 기를 썼으며, 절대 복종 관계인 군 지휘관들은 왜 있지도 않은 군통수권자의 지시를 ‘문을 부숴서라도’ 등 구체적인 표현까지 동원해 날조했을까? 계엄 선포 직후 그 급박한 시간에 이전까지 단 한 번도 통화한 적 없는 국정원 1차장에게 전화해 ‘간첩 잡는 데 협조하라’는 일반적 지시를 내렸다는 설명은 상식선에서 이해가 되나? 윤 대통령 자신도 논리가 좀 궁색하다 여겼던지 “실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렇다 저렇다 말은 많지만 결국 지시했다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실체가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일텐데, 범죄 미수도 범죄라는 것 또한 당연한 상식이다.
계엄 실패 직후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거취를 당에 일임한다”던 윤 대통령이 한 달 만에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이는 건 예상치 못했던 지지율 급상승으로 ‘복귀’ 가능성이 열렸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9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정문을 살펴봤다.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 자유 침해, 국민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등 4개의 혐의 중 탄핵 사유로 인정된 것은 최서원(최순실) 씨의 국정개입 허용과 대통령 권한 남용 단 한 가지였다. 여기에 수사 불응, 부정확한 해명 등으로 ‘헌법 수호 의지가 없다’는 판단이 더해졌다. 이에 비춰보면 윤 대통령 탄핵심판의 결론이 어떻게 날지 상식적 판단도 명료해진다. ‘법잘알’인 윤 대통령이라고 이를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전면 부인 전략은 탄핵 인용 이후에도 불복하는 지지층을 모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속내도 깔렸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기대가 미몽으로 끝날지 반전이 있을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발등의 불은 여당인 국민의힘에 떨어졌다. 계엄 초기 대두된 ‘질서 있는 퇴진론’은 수습의 시간을 벌겠다는 의도였을 뿐,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이 더 이상 어렵다는 건 친윤(친윤석열)계도 공감하는 바였다. 그러나 지지층 결집에 고무된 당 지도부는 이젠 ‘옥중 발언’까지 챙기며 윤 대통령을 당의 중심으로 다시 끌어왔다. 어렵게 단절한 ‘아스팔트 보수’ 세력과 더 깊게 손을 잡았고, 변방에 머물렀던 부정선거 음모론에 점점 편승하려 한다. 사법부 테러 행위를 양비론으로 감싸면서 헌재 재판관을 향한 사상 검증이라는 낡은 전가의 보도를 다시 끄집어냈다. 2020년 ‘총선 폭망’ 이후 30대 이준석 대표를 앞세워 건넜던 ‘탄핵의 강’에서 다시 되돌아와 어렵게 축적했던 전국정당화의 자산들을 송두리째 날려버리고 있다. 법 체계 내에서 점진적 변화를 모색하는 보수 정당이 폭력을 옹호하고, 법치주의의 기반을 흔드는 자기 부정 행태를 보이지만, 내부 자정 기능은 전혀 작동하지 않는 듯하다.
‘집토끼’만 챙기면 중도층은 자동적으로 끌려올 것이라는 지금 여권 내부의 팽배한 믿음은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중도층의 마음에서 크게 이탈해버린 국민의힘의 앞길에 험난한 가시밭길을 예상하는 시각도 지극히 상식적이지 않을까.
전창훈 서울정치부장 jch@busan.com
2025-02-0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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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국력 다시 모아야 할 때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은 현재 미증유의 내우외환”이라고 진단했다. 밖으로는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는데 안으로는 여야 정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북한은 수년째 계속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병력을 파견하면서 전격 개입했고 도널드 트럼프가 최근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주요국에 대한 관세 부과 등으로 글로벌 무역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주요 거래국에 대한 관세 부과를 결정하고 향후 한국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반도체, 철강 등에 대해서도 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우리 정부와 기업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미국발 글로벌 관세 전쟁의 직간접적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작년 10월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이 있는 한국을 포함해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주요국이 맞대응하는 최악 시나리오가 펼쳐진다면 한국 수출이 최대 448억 달러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됐다. 이 경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도 0.29~0.69% 감소할 것으로 예측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적자를 두고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역대 최대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한 한국 정부도 무역수지 균형을 위해 미국산 원유·가스 수입 확대 등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흑자 규모는 지난해 기준 중국, 멕시코, 베트남, 독일, 아일랜드, 대만, 일본에 이은 8위다. 한국의 지난해 연간 대미 무역 흑자 규모는 556억 9000만 달러였다.
정부와 대통령실도 최근 연일 대책 회의를 열고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와 국내 기업·수출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방안 등을 논의중이다.
기업들도 각 분야별로 미칠 파장에 수시로 대책회의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들 기업들은 미국 내 생산 증대, 수출처 다양화, 생산기지 이전 등을 검토하고 있지만 비용과 효율성 면에서 제약이 커 이러한 대안들을 당장 추진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부자 나라인 한국을 지키는 데 미국이 돈을 많이 쓰고 있다”고 주장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 압박용으로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 카드를 내밀 수도 있다. 실제 J.D. 밴스 미 부통령이 국내외 주둔 중인 미군의 규모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글로벌 전력 현황 검토 결과에 따라 주한미군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외부 정세가 심상치 않은데, 국내 정치권은 해법 찾기는커녕 계엄·탄핵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할 시기에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 부산역 광장은 주말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열리며 국론 분열만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이를 놓고 일부에선 1945년 광복이후 신탁통치냐 반탁이냐 하는 갈림길에서 좌우 진영이 극한적 대립양상을 보였는데, 그때 상황과 다르지 않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동안 뒷짐 지고 있던 정치권도 마지못해 움직이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일 미국의 관세압력에 대해 “국회에 통상 특위 만들어 ‘관세 문제’에 초당적 대응을 하자”고 했다. 정쟁 중단 얘기는 쏙 빠져있다.
일단 한국으로선 미국의 관세 등 각종 압력에 외적으로 혼자 감당하기보다는 국가간 단합이 우선이다. 벌써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관세공세가 계속된다면 대중국 압박에 대해 협조하지 않겠다”며 집단대응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한국도 일본 등 아세안 국가들과 힘을 합쳐야 한다. 이번 미국발 관세전쟁에서 우리와 처지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인구 5000만 명의 소국으로 석유나 철광석 같은 주요 자원도 빈약한 상황에서 거둔 성과는 놀라울 정도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과 군사력 세계 5위, 1인당 GDP가 3만 6000달러에 이른다. 문화 분야에서도 영화, 가요, 드라마 등 K콘텐츠를 앞세워 강국이 됐다.
이 같은 성과는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 우리 국민이 숱한 외세침입과 일제탄압, 6.25 한국전쟁, IMF 외환 위기 등 숱한 역경을 이겨낸 결과물이다. 한국민들에게는 위기시에 특유의 국난 극복 DNA가 작동한다고 얘기한다. 이번 상황도 잘 헤쳐나갈 것으로 믿는다.
2025-02-0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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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말할 수 없는, 정치
“나 엄마 톡을 차단했어. 엄마는 모르시겠지만….” 지인 A는 최근 SNS 메신저에서 가족을 차단 목록에 넣는 극단의 조치를 했다. A는 “어머니가 극우 유튜브 채널의 링크나 기사 같은 걸 보내는 게 너무 큰 스트레스라 어쩔 수 없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전엔 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다가 정치 얘기가 나오는 바람에 크게 다퉜다며 울분을 토했다. 넘을 수 없는 세대의 벽 때문일까. 평소엔 부모님과 사이가 좋은 편인데, 정치에 대한 의견만큼은 하나도 맞지가 않아 답답하다는 게 그의 고민이다.
다가오는 설 연휴에 가족들과 하지 말아야 할 이야기 1순위로 정치가 꼽힌다. 8년째 구급대원으로 일해온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당신이 더 귀하다〉라는 책을 펴낸 저자 백경(필명)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명절에 가족끼리 정치 얘기는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119에 신고가 들어올 정도면 말싸움으로 끝나지 않고 주먹다짐에, 심하면 칼부림까지 나기도 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에 비하면 지난해 설에 등장한 ‘잔소리 메뉴판’ 같은 건 애교 수준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이 메뉴판은 걱정하는 척하며 비수를 꽂는 친척들의 말을 유료 결제 후 듣겠다는 기가 막힌 발상을 담았다. 예를 들어 ‘어느 대학 갈 거니?’라는 말에는 10만 원의 가격을 매겼고, ‘회사에서 연봉은 얼마나 받니?’라는 질문을 하려면 50만 원을 내라는 식이다. ‘머리가 좀 휑해졌다’ 같은 상처 주는 말이나 ‘둘째는? 외동은 외롭대’ 같은 선을 넘는 질문엔 최대 100만 원까지 가격을 책정했다. 심지어 올해는 이런 가격표를 옷에 인쇄한 ‘잔소리 티셔츠’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돈 안 되는 잔소리는 원천 차단하겠다는 강한 의지마저 읽히는 세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말을 조심해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이들이라면 얼마든지 의미 있는 토론이 가능할 것 같은 정치 이슈가 어쩌다 입에 담지 못할 금기의 주제가 된 걸까. 불과 수십 년 사이에 급격한 체제 변화와 경제 발전을 이룬 우리나라의 특수한 환경 탓에 세대 간 인식 차가 지나치게 큰 것이 하나의 원인으로 꼽힌다. 40대 중반인 지인 B는 “개발도상국 시대에 태어난 우리가, 선진국에서 태어난 요즘 애들의 생각을 어떻게 알겠냐”는 우스갯소리를 종종 한다. 극명한 세대 차이를 또 그렇게 ‘팩트 폭행’하며 설명하니, 듣는 이들 또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80대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20대 후배 C는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저녁 식사 시간에 가족끼리 뉴스를 볼 수가 없게 됐다고 한다. 정치 얘기만 나오면 다투게 된다는 게 이유다. 탄핵 찬성 집회에 참가하기도 했던 그는 “할아버지는 ‘어떻게 감히 대통령을 끌어 내리냐’고 생각하고 계신 거 같은데, 대통령을 마치 왕정 시대의 왕 모시듯 하는 것 같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살아온 궤적이 달라서 설득은 절대 불가능한 것 같다”면서 “할아버지도 박박 대드는 60살 차이 손녀가 얼마나 미울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덧붙였다.
물론 정치적 견해 차를 단순히 세대의 문제로 치부할 순 없다. 지난 19일 서울서부지법에 침입해 난동을 부린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현행범 90명의 절반 이상이 20~30대인 것만 봐도 그렇다. ‘태극기 부대’로 상징되는 기존 극우 세력이 노년층이었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양상이다. 일부에선 탄핵 찬성 집회의 주요 참가 층이 20~30대 여성이었다는 점과 이번 난동을 주도했던 층이 20~30대 남성이었다는 점을 들어 성별에 따른 차이를 부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적 사고는 젠더 갈등을 더 심화시킬 뿐이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쓴 미국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소셜 미디어가 정치인의 급진적 행동을 조장한다”며 “한국뿐 아니라 미국 등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인이 과격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일부 극우 유튜버 등의 주장을 주류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협상과 타협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는 점도 강조한다.
대화와 설득, 협상과 타협이 사라진 곳에 아집과 불통, 갈등과 분열이 자리 잡는다. 각자가 보고 싶은 뉴스만 소비하며 확증편향을 강화하기보다 열린 자세로 토론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한 때다. 가까운 사이에도 논하기 힘든 금단의 영역에 정치가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고, 다른 의견도 기꺼이 경청하는 성숙한 시민 의식이 가짜 뉴스와 정치 양극화를 막는 예방책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억지스러운 침묵이 아니라 건강한 대화와 합리적인 토론이 아닐까.
2025-01-2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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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목 대행의 변신은 '무죄'[데스크 칼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실 경제수석일 때의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22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한·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최 수석이 현지에서 정상회의 성과를 설명하는 브리핑을 가졌는데 그 때 기자는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관련한 질문을 던졌다.
2012년 캄보디아 신도시 건설 사업 실패로 부산저축은행이 파산하자 예금자 3만 8000여 명이 예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피해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캄보디아 교민들은 윤 대통령 방문에 맞춰 “원리금 회복을 위해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해달라”고 현수막을 걸고 여론전을 벌였다. 윤 대통령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2과장 시절 이 사건의 주임검사였는데 이 때문에 교민들은 대통령의 캄보디아 방문을 더욱 좋은 기회로 봤다.
최 수석은 ‘교민들의 호소에 대통령실은 어떻게 대응할지’ 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번 같은 다자간 정상회의에서 언급할 내용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정식 의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참모라면 재외국민들의 호소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당시 기자의 생각이었고, ‘역시 경제관료 출신이어서 정무적 판단은 못하는구나’라고 아쉬워했다. 그런 최 수석이 지금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다. 대통령의 부재에 따라 임시 관리자 역할만 하려는데 갈수록 난제가 쌓여가고 있다.
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킨 ‘2차 내란특검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하고,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력사태 등 극단적 세력이 벌이는 사회 분열상을 수습해야 한다. 바깥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에 따른 국가적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은 최 권한대행에 협력하기는커녕 상반된 요구를 하면서 그를 압박하고 있다. 국회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 가운데 2명을 임명한 것을 놓고 협공에 시달렸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의 권한을 침범한 반헌법적 행위이자 헌재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흔드는 부적절한 처사”(강유정 원내대변인)라고 비판하며 탄핵까지 거론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회의 재판관 선출 권한 등이 침해됐다”며 헌재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반면 여권의 ‘빅마우스’ 홍준표 대구시장은 “권한대행의 대행이 임명권을 행사하는건 웃지 못할 코미디”라면서 “기재부 장관의 ‘대통령 놀이’는 참 기막힌 노릇”이라고 비판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헌법재판관 임명에 반발해 집단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여야는 그런 식으로 최 권한대행을 몰아붙이다가도 필요하면 또다시 그를 끌어들였다.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때 다시 한번 샌드위치가 된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경호처가 총기를 들고 불법적으로 저항하는 행위를 왜 방치하느냐”며 “입으로는 경제 안정 노래를 부르면서 가장 불안정하게 만드는 주범이 바로 최상목”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지난 7일 직무 유기 혐의로 최 권한대행을 경찰에 고발했다.
이에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시민 안전이 중요하고 대한민국의 국격이 좌우되는 문제인 만큼 적절한 조치를 요청한다”고 정반대의 주문을 했다.
최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 임명에서 ‘셋 중 두 명만 임명’하는 절묘한 대안을 택했다. 여야 온건파들의 주장을 간접적으로 전해듣고 이런 결단을 내렸다는 뒷이야기도 나온다.
윤 대통령 체포 국면 때는 ‘국가기관 사이의 충돌은 막아야 한다’는 대전제를 앞세워 최악을 피했다. 여야 정치인들은 최 권한대행을 ‘비겁하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기자의 눈에는 그런 정치인들이 더 비겁해 보인다.
최악을 ‘차악’으로 만들고, 극단적 상황에서 절충안을 찾는 건 ‘정치의 영역’이다. 정치인들이 협상과 조율을 통해 파국을 막는 해법을 찾지 못하니 경제관료 출신인 최 권한대행이 그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여야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비판하지만 원래 그런 결론은 없다.
경제수석 때 원칙만 내세우는 뻣뻣한 모습에 실망했던 기자는 국가적 위기에서 드러난 최 권한대행의 변신이 놀랍다. 양쪽으로부터 욕 먹고 있는 걸 보니 권한대행 역할을 제대로 한다고 확신할 수 있겠다. 앞으로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대통령 놀이’라는 비아냥을 듣더라도.
2025-01-2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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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설날 연하장 한 장 어때요?
새해 사무실과 집 책상 서랍에서 물건을 정리하다 예전에 받았던 연하장 여럿을 발견했다.
아직 서로 연락하고 지내는 지인이 보낸 연하장도 있다. 또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분의 연하장도 있고, 한때 가깝게 지냈던 분의 연하장도 있다. 연하장은 보낸 이의 고운 마음까지 느껴져 오랜 세월 소중하게 간직한다.
오래 전 연말 성탄절이 다가오면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문구를 빌려 축하 카드를 직접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설을 앞두고는 다양한 연하장을 보냈다.
일반 편지와 달리 연하장에는 복을 비는 그림과 60갑자에 따라 그해를 상징하는 동물이 그려져 있었다. 새해를 축하하고, 받는 사람의 건강과 만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글로 써서 전했다.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 때문에 연말연시가 되면 문구점과 서점, 우체국이 북새통이었다. 깜찍한 아이디어로 꾸며진 다양한 크리스마스카드와 연하장을 구경하는 재미도 적지 않았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에게서 연하장을 받으면 그동안 소원했던 마음도 봄눈 녹듯 사라지고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요즘말로 썸타는 이성으로부터 처음 받는 크리스마스카드는 세상을 다 갖는 느낌을 받았다.
연하장을 준비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며 잠깐 잊고 지냈던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크리스마스카드를 쓰면서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 속에만 감춰뒀던 사랑을 보냈다.
그래서 연말연시가 되면 평소에 안부를 묻지 않고 지내던 사람도 챙기게 됐다. 반면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하지 못하는 이들을 정리하기도 했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군가를 잊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것도 그만큼 소중한 일이다. 만나는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안 만나는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세상에 큰 업적을 이룬 이가 보낸 연하장에 적힌 힘 있는 격려와 응원 글귀는 새해를 시작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가족이나 사랑하는 보내는 연하장은 세상을 살아가는 따듯함이 되어준다.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이어지는 비정상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지난해 말과 설을 앞둔 요 며칠 새 연하장이 크게 줄었다. 대신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나 카톡이 요란하게 들어오고 있다. 보내기도 쉽고 받기도 쉽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설 연휴 잘 보내라' '잘 사느냐' 등. 설날을 앞두고 하루 수십 건의 문자나 카톡이 온다. 나 혼자에게만 보내는 정성이 느껴지는 문자도 있지만 대부분은 인터넷상에서 찾아서 붙인 사진이나 문구들이다. 이들을 계속 보고 있자면 '영혼 없는 광고'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번 설을 앞두고 세상이 너무 불안하다. 여기저기서 불황에 따른 자영업자의 한숨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건설 경기는 얼어붙어 멈춰진 사업장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진보와 보수가 극단적으로 갈려 타협과 절충이 사라졌다. 우리 사회에 부족한 것이 무엇일까. 도무지 끝을 알지 못하는 반목과 질시의 터널을 벗어나게 할 묘책은 없을까.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장만하고 정성스레 글을 쓰고 이를 우체국에 가서 부쳤던 한 장의 연하장이 답이 될 수는 없을까.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시간을 양보하고 정성을 쏟은 마음을 갖고 있다면 서로 양보할 수도 있고 타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희망에 가까운 상상을 해본다.
어떤 문자를 받았을 때 마음이 환해질 것인지 떠올려 본다. 따지고 보면 그 문자는 새해 다짐이나 각오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멋진 문구의 메시지를 받으면 은은한 미소를 머금게 된다.
모두 연하장 한 장을 써보자.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다.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한 줄이라도 적어보자. 아름다운 문구라도 좋고, 관심을 표현하는 문구라도 좋다. 받는 사람이 미소를 짓는 내용을 담아보자. 다른 이를 배려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만이 이 얼어붙은 세상을 조금이라도 녹일 수 있지 않을까.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을 맞아 나는 연하장을 사러 간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데울 욕심에 가족, 친지, 친구, 그동안 소원했던 오랜 벗 모두에게 연하장을 보낼 작정이다. 누구라도 내 연하장을 받고 이 엄중한 세월의 무게를 잠시라도 내려놓길 기대하면서.
2025-01-1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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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집 앞에 ‘전남친순대’가 왔다
“집 앞에 ‘전남친순대’가 온대.”
‘전남친’이란 단어를 듣고 훅 올라올 뻔했지만 뒤에 순대라는 말이 붙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 아내의 카톡에서 기대감이 느껴졌다. 기대감은 분명 심부름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순대가 무엇이 특별한 것이 있다고 이렇게 호들갑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순대쯤이야 그냥 사 오면 되지’란 생각에 전남친순대를 맞이하러 갔다. 그냥 슬리퍼를 신고 가서 순대를 들고 오면 될 줄 알았던 내 생각은 틀렸다. 푸드트럭 전남친순대 앞에는 20명도 넘는 이들이 줄을 서 있었고 전남친순대를 획득하는 건 1시간 이상이 걸리는 고된 일이었다. 슬리퍼 때문에 얼어가는 발을 꼼지락거리며 버텼지만 그마저도 먹고 싶던 ‘내장 모음’은 30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 포기했다.
전남친순대는 부울경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푸드트럭으로 전남친처럼 잊을 수 없는 맛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현재는 0호차에서 14호차까지 있다. 판매하는 장소는 인스타그램에 낮 12시에 공지된다. 사려는 사람이 워낙 많아 1인당 1팩밖에 사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남친순대의 인기는 최근 인스타에서 사그라들 줄을 모른다. 전남친순대의 15호차가 되려는 이들도 많은지 DM 문의도 빠르게 답하지 못해 죄송하다라는 게시물이 있을 정도다.
프랜차이즈 제빵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예전에는 유명 프랜차이즈 빵집은 폐업이 없어 ‘프랜차이즈의 귀족’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다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대전 성심당을 운영하는 ‘로쏘’의 2023년 매출은 1243억 1543만 원으로 전년 대비 52.1% 늘었다. 지역 빵집 매출액이 1000억 원을 넘은 건 성심당이 처음이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104.5% 늘어난 315억 원을 기록했다. 반면 대규모 프랜차이즈 빵집들의 성적은 처참하다. 영업이익이 성심당의 3분의 2 수준에 머물렀다. 성심당이 1956년부터 68년간 대전에서만 매장을 운영해 왔고 현재 은행동 본점, 대전역, 롯데백화점 대전점 등 6곳에서만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성적은 더 충격적이다.
전문가들은 특색있는 제품들이 시장에서 먹히고 있다고 본다. 성심당은 튀김소보루와 부추빵, 전남친순대는 항아리에서 찌는 토종 순대라는 확실한 에이스 메뉴가 있다. 여기에 소비자들에게 플러스 알파를 제공하면 할수록 인기는 더 올라간다. 성심당은 전통의 메뉴인 튀김소보루와 부추빵에 딸기시루을 더해 오픈런도 있다. 전남친순대도 토종 순대에 내장 모음이라는 플러스 알파를 더해 매출을 늘린다.
한때 프랜차이즈 사업은 규모의 경제로 비용을 아끼고 품질을 균등하게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손님이 몰렸다. 하지만 최근 소비 트렌드는 너무 빠르다. 불과 몇 년 만에 마라탕에서 탕후루로 유행이 넘어갔고 이마저도 어느새 두바이 초콜릿으로 바뀌었다. 최근에는 두바이 초콜릿도 서서히 시들해지며 요아정(요거트 아이스크림 브랜드)까지 이어진다. 한때 SNS 숏폼에서 “선배 탕후루 사주세요”로 이어지는 탕후루 챌린지가 유행이었다. 불과 몇 달 전 “마라탕탕후루후루 지나고 두바이 바이바이야”로 바뀐 챌린지가 유행하더니 이마저도 벌써 시들하다. 빵 만해도 마찬가지다. 한 때 소금빵, 크로플(크로아상+와플), 크림베이글 등으로 빠르게 유행이 지나가고 있다. 인건비, 마케팅비, 물류비의 규모의 경제가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히려 소규모 매장들은 실패하더라도 위험이 적어 트렌드 적응에 유리하다는 말이 납득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에게는 좋은 환경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부산시와 부산경제진흥원은 지난해 12월 17일부터 24일까지 부산 수영구 남천동 도모헌에서 ‘2024 부산 청년 로컬페스타’를 열었다. 부산바다샌드·부산바다카라멜을 만든 (주)부바, 루이보스차·콤부차·미역 비누 등을 선보이는 루이코리아, 지역 기념품과 커피빈 손 비누 등을 판매하는 코스마일 코퍼레이션, ‘명란삼남매’ 굿즈·명란아몬드 등을 출시한 타이밍어스&머거본, ‘광안밤’ 막걸리를 만든 꿀꺽하우스, 맥주 ‘막나른’을 만든 주든, 광안리 카페 겸 바 썽쑤씨 등이 참여했는데 지역민은 물론 관광객들의 만족도가 높았다고 한다.
부산은 관광이 산업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만큼 특색있는 지역 아이템 개발이 중요하다. 2025년 대전의 성심당을 이을 지역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선전을 응원해 본다. “마라탕탕후루 지나고 두바이 바이바이야를 했지만 여전히 너를 못 잊어 부산바다샌드” 쇼트폼을 보고 ‘좋아요’를 누를 날이 기대된다.
2025-01-1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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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태양광 실패, 바다에선 막자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곧 신재생 에너지의 세상이 올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하지만 2025년 지금도 여전히 원자력 발전은 국내에서 건재하다. 사고의 기억이 점점 옅어지자 원전 업계는 우수한 가성비를 거론하며, 원전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화석연료를 쓰지 않으면서 싸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건 원전뿐이라고 설명했다.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신재생에너지를 지지하는 이들은 원전의 가성비가 우월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것저것 따지고 보면 원전의 전기 생산 단가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태양광이나 풍력이 낫다고 주장했다. 의외로 논쟁은 상당히 치열했다.
얼핏 보면 전기 생산 단가 논쟁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들어간 경비와 전기 생산량을 비교하면 간단히 끝날 수 있는 논쟁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기 생산 단가라는 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원자재 값을 비롯해 발전소 건설이나 유지 비용 등이 계속 변한다. 발전소 문제와 별개로, 전력망과 송출 시스템에 따라 발전 비용도 달라진다. 조건에 따라 전기 생산 단가가 다르니, 다들 자기에게 유리한 결과만 선택해 주장을 했다.
이 과정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발전소의 경쟁력은 고정불변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조건을 만드느냐에 따라 시장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시장 조사 기관인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가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태양광 시장이 2018년 539억 달러(약 74조 원) 규모에서 2026년 3337억달러(약 457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엄청난 속도로 커지는 시장이다. 태양광 단가 하락도 가파르다. 2023년 3분기의 경우 전 세계 평균 태양광 모듈의 가격이 2023년 1분기에 비해 30~40%나 싸졌다. 기술이 좋아진 것도 있지만, 대량생산을 통한 규모 경쟁력도 한몫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중국이다. 전 세계 태양광 소재 점유율은 75~95%가 중국산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도 2019년 33.5%였던 중국산 셀 비중이 2023년 74.2%로 커졌다. 국산 셀 비중은 같은 기간 50%에서 다시 반토막이 났다.
중국은 10여 년 전부터 태양광 시장이 커질 것을 예견하고 달려들었다. 다른 나라들이 보기에는 폭력적인 수준일 수도 있다.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남의 나라 시장을 무자비하게 잠식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최상의 선택을 한 셈이다. 당장은 태양광 단가가 매력적이지 않아 보였지만 조건이 변하면 태양광이 더 주목을 받을 것을 알고 미리 행동했다. 지금은 그 과실을 누리는 셈이다.
태양광은 중국이 주도했지만, 아직 해상풍력 시장에는 독보적인 승자가 결정되지 않았다. 세계풍력에너지협의회(GWEC)는 전 세계 해상풍력 누적 설치 용량이 2022년 63GW에서 2032년 477GW까지 늘 것으로 전망했다. 10년 만에 7배로 성장하는 것이다.
국내 시장의 성장세는 어쩌면 더 가파를 수 있다. 2030년까지 해상풍력을 14.3GW가 늘린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현재 해상풍력 발전량은 0.12GW에 불과하다. 14.3GW의 절반인 7GW만 달성해도, 5년 새 시장이 60배 가까이 커진다. 없던 시장이 새로 창출되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럼 국내 해상풍력 시장의 과실은 온전히 우리에게 돌아올까. 우리 기업들이 해상풍력 시장에서 돈을 많이 벌면 좋겠지만, 현재로서는 부정적인 관측이 많다. 이 정도 시장을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이 드물다.
해상풍력엔 터빈, 지지구조물, 변전소, 케이블 등 전문적인 하드웨어와 엔지니어링 기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해상풍력은 거대한 해저케이블로 송전망이 연결되어야 하는데, 이를 설치할 수 있는 해양 기업은 국내에 매우 드물다. 자칫하면 외국 기업들이 들어와 잔뜩 돈을 벌어갈 수 있다. 대규모 공사가 줄줄이 잡혀 있는데, 당장 공사에 필요한 바지선 공급도 쉽지 않아 중국배가 들어올 수 있다고 한다.
이미 100조 원의 국내 해상풍력 시장을 중국산이 싹쓸이할 것이라는 경고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산업계가 해상풍력 시장에서 국내 지분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할 수 있을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태양광 시장의 실패가 바다 위에서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연스레 헛된 상상을 해본다. 만일 10여 년 전, 우리가 좀더 현명했다면 어떠했을까. 당장의 시장 상황과 가격 경쟁력만 따지지 않고 미래를 생각했다면, 지금 과실을 누리고 있지 않을까. 시장 가치는 고정불변이 아니다. 조건에 따라 경쟁력은 달라진다. 그리고 의지를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면, 시장의 조건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그땐 왜 몰랐을까.
2025-01-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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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한강 문학 정신, 계엄을 뒤집었다
지난해 연말 광주를 다녀왔다. 광주는 축제 분위기로 충만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축제라고 해서 폭죽을 터트리면서 먹고 마시는 분위기만 연출하는 것은 아니다.
광주 출신 소설가 한강(54)의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는 축하행사는 물론 책 읽기와 수상 배경을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엿보였기 때문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해 10월 10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을 선정했다.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최초 수상이다.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은 2000년 고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에 이어 두 번째, 아시아 작가 수상은 2012년 중국 작가 모옌 이후 12년 만이다. 한림원은 한강 선정 이유로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서는 동시에 인간 생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시적인 산문”이라는 평가했다.
광주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 이후 3개월 지난 최근까지도 민주화 정신을 계승하는 차원의 책읽기가 이어지고 있다. 민주화의 상징인 옛 전남도청 별관을 비롯한 광주시내 곳곳에 수상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내걸리고, 각종 기관에는 기념행사가 계속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정중동으로 그 정신을 이어주는 곳이 도서관이다. 광주 북구에 있는 무등시립도서관에는 그해 11월 16일 ‘한강의 소설 깊이 읽기-소년이 온다를 중심으로’라는 특강을 비롯해 연말까지 한강 작가 작품 20여 점 전시회를 열었다. 도서관 현관에는 한강 작가 소설을 읽은 시민들의 감상문이 전시돼 있다. 한강 작가 책에 대한 대출 신청이 폭주하자, 도서관들은 ‘당분간 대출이 어려울 수 있다’는 안내문까지 게시했다. 도서 대출 요구가 쇄도하는 것은 물론 책을 읽기위해 열람실을 찾는 방문객이 전국에서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왜 이렇게 열광할까? 광주 출신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라는 거대한 ‘상장’ 무게보다, 과거 쓰라린 아픔을 간직한 광주 민주화 정신이 책으로 조명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한강의 여러 작품 중 노벨문학상에 이르게 한 결정적 작품으로는 〈소년이 온다〉가 꼽힌다. 이 책은 1980년 군사 정권의 비상계엄 선포와 5월 광주 학살로 이어지는 타임라인을 정면으로 마주한 작품이다. 책에는 군부의 잔혹함과 살아남은 이들의 후유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가는 소설을 관통하는 ‘죽지 말아요’란 문장을 통해 ‘5월의 광주’라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가감없이 표현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은 전국을 국가적 축제 분위기로 달궜다. 수상자 발표 당시 라오스를 방문 중이던 윤석열 대통령도 당일 페이스북에 축하 글을 올렸다. 그는 “대한민국 문학 사상 위대한 업적이자 온 국민이 기뻐할 국가적 경사”라며 “우리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위대한 문학작품으로 승화시켰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두 달 후인 12월 3일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민은 어안이 벙벙했다. 계엄 실상을 다룬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나라에서 두 달 만에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된 것이다. 44년 전 총을 들고 광주 시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군대는, 다시 한 번 총을 메고 국회에 난입했다. 계엄 때문에 겪었던 44년 전 아픔을 문학으로 치유했다고 자찬하는 순간, 계엄이 또다시 등장한 셈이다.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국회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일주일 만에 한강 작가는 노벨상 시상대에 올랐다. 그는 수상 기념 강연 ‘빛과 실’에서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한강의 문학 정신은 혼란스러운 국내 정치에 강력한 메세지를 던졌다.
그가 낭독했던 ‘빛과 실’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 대한민국 국회 본회의장에서 다시 울려 퍼졌다. 12월 14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에 대한 2차 탄핵안 제안설명을 하면서 “저는 이번 12·3 비상계엄 내란사태를 겪으며,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하고 싶다. 1980년 5월이 2024년 12월을 구했기 때문이다. (중략)44년 전 고립무원의 상황에서도, 죽음을 각오하고 계엄군과 맞섰던 광주 시민들의 용기가, 그들이 지키려 했던 민주주의가, 우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고 강조했다.
당시 국회 앞과 거리에서 탄핵을 갈망하던 국민들의 열망은 국회를 통과했다. 44년 전에는 계엄이 국민을 짓밟았지만, 2024년에는 문학이 계엄을 뒤집는 힘이 됐다. 정치가 추락시킨 국가의 품위를 문학이 떠받친 셈이다. 역사의 트라우마에 맞선 한강의 문학 정신이, 광주만 아니라 대한민국에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김길수 중서부경남본부장 kks66@busan.com
2025-01-0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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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한국 정치를 구하는 '블록체인 철학'
블록체인 기술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로 먼저 알려졌지만, 그 활용 범위는 여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블록체인은 데이터의 위변조 방지와 분산 저장의 특성을 통해 금융을 넘어 행정, 의료, 물류, 심지어 커피 산업에서도 혁신을 이끌고 있다. 블록체인이 단순히 기술적 도구를 넘어 사회적 신뢰를 재정립해 더 나은 세상을 설계하는 기반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블록체인은 우리 일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꾸고 있을까.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주민등록증 서비스를 도입했다. 기존의 종이 신분증이나 중앙 서버 의존 방식에서 벗어나, 블록체인의 분산 저장 시스템을 통해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한다. QR코드 생성이나 IC 칩 태그 방식으로 간편하게 발급받을 수 있는 이 서비스는 세종시와 경기 고양시 등 9개 지역에서 시범 운영 중이며,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올해 전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부산에서 도입된 지역화폐 ‘부산이즈굿 동백전’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시민의 일상 속에 디지털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통합했다. 걷기나 자원봉사와 같은 활동으로 포인트를 적립해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이 플랫폼은 거래 데이터를 투명하게 관리한다. 아울러 디지털 시민증 발급, 정책자금 신청 등의 기능도 제공한다. 동백전은 단순한 지역화폐를 넘어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혁신적인 도구로 탈바꿈하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부산의료원의 의료정보 플랫폼 ‘메디노미’는 개인 의료 정보의 안전한 관리를 가능하게 한다. 게다가 환자가 스스로 정보를 선택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환경도 제공한다. 외국인 환자를 위한 외국어 지원과 실시간 대기 시간 관리 시스템은 의료 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였다. 이는 의료 관광 산업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블록체인의 영향은 커피 산업까지 확장되고 있다. 부산 커피 R&D 랩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커피의 원산지, 유통 경로, 품질 데이터를 투명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소비자는 자신이 마시는 커피가 어떤 경로를 거쳐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 제공하는 정보는 신뢰성과 정확성을 보장한다. 이는 커피 산업의 디지털화를 앞당기고, 품질 관리와 생산자·소비자 간 신뢰 강화에 기여한다. 아울러 블록체인에 인공지능(AI) 기반 분석 기술까지 접목하면 생두의 화학 성분을 평가하고, 최적화된 로스팅 기술까지 구현할 수 있다.
이러한 블록체인 기술 기반 산업은 지역 경제에도 활력을 불어넣었다. 부산시는 지난해 블록체인 특구로 지정된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 40개 이상의 블록체인 기업을 유치해 500억 원 이상의 투자와 14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또한 신규 고용 효과는 100여 명에 이른다.
블록체인 기술의 가장 큰 특징은 ‘탈중앙화’다. 중앙집권적 구조에서 벗어나 분산된 네트워크를 통해 데이터를 관리하고,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장하는 철학은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부산항의 환적 모니터링 시스템 ‘포트아이’는 이러한 탈중앙화의 장점을 활용해 물류 관리의 투명성을 높였고, 서울 서초구의 ‘서초코인’은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며 지역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있다.
블록체인의 탈중앙화는 정치 분야에서도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반헌법적인 비상계엄 논란과 탄핵 사태는 중앙집권적 정치 구조의 취약점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다. 이른바 ‘87년 체제’로 불리는 6공화국 헌법은 대통령 5년 단임제를 핵심으로 한다. 이는 독재자가 다시는 이 땅에 등장하지 못하도록 하고, 부당한 권력에 맞선 시민이 피를 흘리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설계된 것이다. 비록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의결하며 헌법 체계가 일정 부분 작동했음을 보여주었지만, 제왕적 대통령제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독재의 망령을 다시 불러올 위험을 남겼다.
이는 더 많은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검증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시스템의 필요성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국민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고 결과를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 운영 말이다. 마치 블록체인이 경제와 일상 속에서 신뢰와 분산의 가치를 구현하듯이, 지방분권화된 정치 구조에서도 시민의 주체적 참여를 더욱 효과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비대한 중앙 권력을 해체하는 방식으로 우리 정치와 민주주의에도 건강한 혁신을 가져올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 같은 시도는 투명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향한 한 걸음이 될 것이다.
2025-01-0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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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심판'이 사라진 나라
따지고 보면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은 사법부 탓이 크다. 일례로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도입해 폐지 수순을 밟고 있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만 해도 그렇다. 대법원장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겠다던 이 제도는 결국 법원 간부 인기투표로 전락했다. 법원장이 법관에게 재판 독촉 한마디 못 하는 사이 판결문 하나에 목을 맨 법률 서비스 이용자는 숨이 넘어간다.
특히나, 정치권 인사가 연루된 송사는 재판 지연이 변수가 아닌 상수다. 그 폐해는 이번 정부 들어 더 심해졌다. 모든 정치권의 관심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수사와 재판 스케줄에 집중됐다. 의정 활동은 팽개친 채 어떻게 하면 사법부의 호흡을 빠르게 할 것인지, 느리게 할 것인지에 여당과 야당이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지난달 윤미향 전 의원의 선고가 있었다. 대법원은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윤 전 의원에게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기소 이후 4년 2개월이 걸린 법원의 판단이다. 이미 윤 전 의원은 지난 4월 국회의원 임기를 모두 마쳤다. 국회의원이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는데 임기를 끝내고 7개월이 지나서야 단죄가 내려졌다는 이야기다.
이달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도 징역 2년 확정 선고를 받고 수감됐다. 2019년 12월 기소된 입시 비리 혐의에 법원은 만 5년 만에 결론 내렸다. 공범 격인 배우자가 먼저 형기를 다 마치고 구치소 면회를 오는 희한한 풍경이 펼쳐졌다. 1심과 2심 유죄 선고에도 법정구속을 면한 조 대표는 당을 차려 지난 총선에서 비례로 12석을 얻었다. 금정구청장 보궐 선거에서는 후보까지 냈다. 입시 비리로 수감되면서 구치소 앞에서 시국선언을 하던 그의 모습을 보며 국민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모르긴 해도 일을 여기까지 끌고 온 사법부에 조소를 보내는 이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 조직이든, 운동 경기든 사람 있는 곳이면 시비는 늘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준엄한 손짓 한 번에 선수는 고개를 숙이고 경기는 재개된다. 심판이란 그런 존재다. 하지만 법원이 재판을 내려놓자 나라에 ‘심판’이 사라졌다.
극한의 정치적 대치 속에서도 사법부의 결정만은 늘 존중받아 왔다. 법원의 판단이 내려지면 예외 없이 고개를 숙였고, 후속 조치가 이어졌다. 사회적 갈등은 빠르게 중재됐다. 지지 정당을 떠나 법치국가에 살고 있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존재했던 시절 이야기다.
그러나 이제는 법원 앞 집회가 연례행사다. 무력시위가 있고 난 후에는 재판이 늘어지기 일쑤였다. 사법 시스템이 스스로 그 권위를 내려놨다는 냉소가 나오는 까닭이다. 지연된 숱한 재판의 나비효과는 사회 곳곳에서 태풍이 되어 민생을 덮쳤다.
그 와중에 시대를 망각한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까지 터져 나왔다. 국민 앞에 당당하겠다던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탄핵 심판과 관련한 서류 제출을 미루고 출석까지 거부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체포 영장이 청구됐다. 이재명 대표는 우편 송달을 거부하다 변호인 선임까지 미루는 중이다. 야당 대표가 국선 변호인을 쓸 판이다. 권위를 잃은 사법 시스템을 조롱하듯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민사 잡범들이나 할 짓을 태연히 국민 앞에서 벌이고 있다.
이처럼 재판 지연 전략은 일종의 법조 트렌드가 됐다. 판결이 불리하다 싶으면 헌법소원에다 위헌 심판청구부터 제기하고 본다. 헌법재판소에 ‘던지면’ 진행 중인 재판 일정이 줄줄이 밀린다는 걸 다들 안다는 이야기다. 대법원 확정 선고로 교육감직을 상실한 하윤수 전 부산시교육감도 1심에서 당선무효형이 선고되자 헌법소원을 꺼내 들고 임기를 반 가까이 채웠다. 기약 없던 교육감 재판 일정은 2년 간의 정통성 잃은 교육청 행정과 뒤늦은 재선거로 이어졌다. 법 위반이야 당사자의 잘못이지만 그로 인한 교육 서비스의 파행에서 법원도 그 책임을 피해 갈 수 없다.
지난 주말 부산 시내에서는 국회의원 사무실을 점거하고 내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는 무력시위까지 벌어졌다. 비상계엄의 내란죄 여부를 판단하고 단죄하는 건 시민이 아닌 사법부다. 이런 사적제재의 기저에 깔린 심리는 두 가지다. 법원을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 혹은 법원 대신 내가 단죄하겠다는 만용. 그 어느 곳에도 사법부에 대한 존경은 없다.
신문을 펼치면 정치면 기사의 반 이상이 재판 소식이다. 민심이 여기까지 싸늘해졌다면 사법부도 ‘지연된 정의’란 저잣거리 비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경기가 끝나고 텅 빈 경기장에서 제아무리 근엄하게 휘슬을 불어본들 심판에게 존경심을 표할 관중은 없다. 그리고 뒤늦게 울린 휘슬로 뒤틀린 경기 결과는 열정을 바친 선수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새해에는 준엄한 심판의 귀환을 기다린다.
2024-12-3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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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2026년 양산 방문의 해 추진에 따른 제언
경남 양산시 하면 딱 떠오르는 것이 뭐가 있을까? 통도사, 천성산, 낙동강, 배내골, 황산공원 등 자연과 문화자원일 것이다. 양산시가 최근 이들 자원을 활용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양산 방문의 해’를 추진하고 나섰다. ‘방문의 해’ 행사는 1960년 미국을 시작으로 세계 여러 나라들이 시행 중이다. 우리나라는 1993년 서울정도 600주년이 되는 1994년을 ‘한국 방문의 해’로 선포하면서 첫선을 보였다.
‘지역 방문의 해’는 2004년 강원도를 시작으로 경기도(2005년) 등을 거쳐 2013년 ‘부울경 방문의 해’로 이어졌다. 이후 2017년 전남 강진군이 처음으로 정부 공식 후원 명칭 사용을 승인받은 ‘지역 방문의 해’를 열면서 기초자치단체로 확산하는 계기가 됐다. 지자체들이 ‘굴뚝 없는공장’으로 불리는 관광산업을 ‘방문의 해’에 활용하는 것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 상당한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관광객이 늘어나면 이들의 소비가 소상공인에게 혜택을 주고, 일자리도 창출된다. 호텔이나 레스토랑, 도로 등 인프라 확충으로 지역 발전도 앞당긴다.
양산시도 이런 이유로 2026년을 ‘양산 방문의 해’로 정하고, 조례 제정과 관련 용역에 착수했다. ‘양산 방문의 해’ 목표는 ‘새로운 30년을 준비하는 다시 뛰며 도약하는 문화관광 체육도시 양산’으로 정해졌다. 시는 행정과 시민을 하나로 연결하는 등 ‘양산 방문의 해’ 성패를 결정짓는 150명 규모의 시민추진단을 모집했다.
양산에는 천성산과 영축산, 신불산 등 명산이 많다. 세계문화유산인 통도사와 암자, 낙동강을 끼고 있는 187만㎡의 수변공원인 황산공원, 1300년을 이어온 국가 제례 의식인 가야진 용신제와 가야진사도 있다. 우리나라 아름다운 자전거길 100선에 선정된 낙동강 베랑길, 맑은 물이 흐르는 배내골과 내원사 계곡, 그중에서도 천성산 일출은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먼저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원동매화축제를 시작으로 미나리축제, 물금벚꽃축제, 웅상회야제, 삽량문화축전, 국화축제 등 사계절 다양한 축제도 열린다. 일 년 내내 골프를 즐길 수 있는 7개의 골프장과 스키장, 루지와 축구, 파크골프 등 각종 스포츠를 할 수 있는 체육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다.
또 부산과 울산 등 대도시를 끼고 있는 데다 경부와 중앙고속도로 지선 등 6개 고속도로가 통과하거나 인접하고 KTX가 정차하는 등 전국 최고의 사통팔달 교통망을 갖추고 있다. 양산을 찾는 방문객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방문객은 600만 명가량이다.
문제는 ‘양산 방문의 해’를 통해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더라도 이들의 지갑을 열지 못하면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강진군 사례를 눈여겨볼 만하다.
강진군은 2017년 ‘남도 답사 1번지 강진 방문의 해’를 선언했다. 군은 행정과 군민을 하나로 연결하는 소통과 홍보 역할을 담당할 50명 규모의 추진위원회를 발족했고, 이 추진위가 성공적인 방문의 해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군은 매월 각종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선보이며 관광객을 유치했고, 이들의 지갑까지 여는 데 성공했다.
군과 군민이 하나로 뭉친 결과 연간 120만 명에 불과하던 방문객은 250만 명으로 늘었다. 지역에서 생산된 농·특산품 매출은 50% 이상 늘었고, 수산시장 매출 역시 급증했다. 스포츠대회도 기존 17개에서 33개로 늘리면서 83억 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창출하는 등 ‘강진 방문의 해’ 성공의 일등 공신이 됐다.
양산시 역시 강진군 못지않은 자원을 가진 데다 사통팔달의 교통망까지 갖추고 있어 이들 자원과 접목한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개발하고 적극적인 홍보에 나선다면 성공적인 방문의 해를 기대할 수 있다.
해결해야 할 문제점도 있다. 사통팔달의 교통망은 ‘관광’에 있어 양날의 칼이다. 관광객이 쉽게 양산을 찾을 수 있도록 하지만 지역에 머물지 않는 스쳐 가는 관광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관광객이 지역에 머물러야 소비(숙박과 음식)로 이어지고 지역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관광객이 지역에 머물도록 하는 방안(숙박업소)이 필요한 이유다.
관광하면 먹거리다. 부산하면 돼지국밥과 밀면, 울산 고래고기, 진주 냉면이라고 바로 나오지만, 양산하면 ‘딱’ 생각나는 먹거리가 없다. 특산물도 마찬가지다. 지역 관광지와 먹거리, 숙박업소를 묶는 패키지 개발도 절실하다.
관광객을 유인할 콘텐츠 개발과 전국대회 규모의 스포츠대회 유치 등 스포츠 행사도 뒤따라야 한다. 나아가 ‘양산 방문의 해’를 마친 후에도 다시 양산을 찾을 수 있도록 재방문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이런 것들이 해결됐을 때 양산시가 원하는 ‘양산 방문의 해’ 목표 달성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2024-12-25 [1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