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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부산을 위한 실리는?
지난 칼럼에서 기자는 부산이 지금까지 국가로부터 큰 실익을 챙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와 HMM 본사 부산 이전, 해사법원 설립, 동남권투자은행 신설, 가덕도 신공항 적기 개항을 통해 부울경을 명실상부한 해양수도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걸고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됐다. 실용주의 노선을 천명한 그와 마찬가지로, 이제 부산은 어떤 실익을 챙겨야 할까.
해수부와 HMM 부산 이전만 우선 살펴보자. 해수부 공무원들과 HMM 육상 노조의 반발을 잠재우는 것이 숙제다.
이들의 반대 논리를 보면, 해수부는 인접 부처·기관과의 정책·예산 협의에 부산이라는 물리적 거리가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하고, HMM은 화주·선박금융 영업력 저하 우려가 크다고 한다. 직원과 가족들이 생활 근거지를 갑자기 옮겨야 하는 데 대한 반발은 공통적이다.
꼭 20년 전인 2005년 6월 24일. 정부는 공공기관 지방이전계획을 발표했다. 그해 제정된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따른 조치였다. 노무현 대통령 때 시작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의 당위를 지금 더 설명할 필요는 없다. 국가의 미래를 내다본 그의 혜안과 뚝심이 20년 세월이 지나서도 시행되지만, 한편으로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 장벽은 오히려 높아진 것 같아 허탈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동안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고, 이전 기관과 종사자들이 지역에 안착할 대책이 필요할 뿐이다. 금융·해양·영화 3대 분야 공공기관이 이전한 부산에선 다른 지역에 비해 그나마 낫다고는 해도 아직 나홀로 이주 비율이 높다. ‘공무원도 국민’이라는 관점에서 정주 여건 개선은 끊임없이 추구해야 할 과제다.
우리가 그동안 부족했던 점이 무엇일까? 이전한 공공기관들을 지역사회와 연결하는 데 소홀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보자. 영도구 동삼동에 자리한 글로벌 수준의 해양 연구기관들을 지역 해양산업계와 연결하는 데 부산시와 지역사회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의문이다. 부산에 유치했다고 실적 발표 잔치만 하고 끝낼 일이 아니라, 유사 이전 기관들을 연결하고 그 연합체와 지역 산·학·연을 엮어내 명실상부한 클러스터를 만들어 냈다면 어땠을까. 자본은 차치하고, 우선 인력 면에서라도, 다양한 경험을 가진 우수한 지역 인재를 양성해내는 것만큼은 성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처럼 산업은행, 해수부에 매달릴 필요도 없이, 부산에 있는 금융·해양·영화 관련 기업들의 역량이 크게 성장하지 않았을까. 좀 더 비약하자면 수도권 관련 분야 기업들이 스스로 우수한 인재가 넘치는 부산으로 본거지를 옮기려 하지 않았을까.
압축성장에 익숙한 우리는 공공기관 지방 이전 20년인데 왜 아직 성과가 없냐고 이렇게 닥달이다.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다. 이전 기관으로서도 지역 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는 자부심이 들도록, 그래서 부산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끔 부산시와 지역사회가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면 된다.
그 전략의 첫걸음은 해수부가 기존의 ‘국가예산 1% 꼬마 부처’ 그대로 오게 할 것이 아니라, 글로벌 해양패권 경쟁 흐름에 맞게 해운 분야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된 조선과 국제 물류 산업 만큼은 더 관장하도록 하는 일이다. 서울에서 세종으로, 세종에서 부산으로 두 번째 이삿짐을 싸야 하는 해수부에게 ‘이번 기회에 부처 업무 영역이 넓어지고 위상이 강화된다’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외부 기관·부처와의 상시 협의가 필수적인 해수부와 HMM은 부산에 이전하더라도 불가피하게 서울·세종 사무소에 일부 인력을 남겨둘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통째로 오지 않느냐’고 성마르게 굴 일은 아니다.
해수부 부산 이전을 계기로 해양 클러스터 구축이 충실히 진행돼 5~10년 내 인력과 산업 분야에서의 성과가 나온다면, 마침 그 무렵 북극항로 시대와 마주하게 된다. 지방이 아무리 외쳐도 불가능하던 거대 자본의 부울경 이전, 해외 투자의 부울경 집중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HMM이 만나야 할 해양금융기관이 여의도가 아니라 문현금융단지에 밀집하면, 서울사무소를 남겨둘 이유도 없어질 것이다.
허황돼 보이지만 ‘남방항로의 요충’ 싱가포르 성공 사례를 보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다만, 지금 우리가 어떤 전략 아래 실천을 충실히 해 나가느냐에 달렸다. 물론 북극항로 시대가 온다고 부산항이 저절로 거점항이 되는 일은 결코 없다. 인프라 구축 같은 내부 준비는 기본이고, 세계 최대 화주인 중국, 유럽행 북극항로 절반 이상을 영해로 보유한 러시아, 아직은 최대 패권국인 미국 등과의 협력이 필수다. 부산항이 한국의 성장을 견인할 미래를 위한 5년, 부산에 오는 해수부에게 30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다.
이호진 경제부 선임기자 jiny@busan.com
2025-06-1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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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벌써 뜨거워진 부산시장 선거 관전 포인트
이재명 대통령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 정확히는 부산시장 선거에 각별한 관심을 가진 건 분명해 보인다. 첫 국무회의 때부터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공약을 콕 찍어 “신속 추진”을 지시했고, 인수위원장 격인 국정기획위원장은 “해수부 이전은 워낙 강력한 공약인 만큼 ‘이례적으로’ 국정과제에 들어간다”고 그 의미를 한층 띄웠다.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부산 공약은 보통 지역 숙원사업 위주인 타 지역 공약과는 구성이 확연히 달랐다. ‘깜짝 선물’ 같은 ‘해양수도 패키지 공약’에 지역 정가에서는 내년 지선 공략의 신호탄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런 분석에 쐐기를 박듯, 이 대통령은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 인사들과 저녁을 먹으며 “내년 부산 선거 박 터지겠네요”라고 넌지시 말하기도 했다. 일거수 일투족이 뉴스가 되는 취임 초 대통령의 이런 행보를 우연으로 보긴 어렵다. 오히려 이 대통령 스스로 부산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시그널을 분명하게 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이재명 정부 임기 초반 국정운영 성과를 인정받는 가장 명확한 잣대는 지방선거 승리이고, PK(부산·울산·경남) 결과는 그 기준점이 될 수 있다. 특히 PK 지선 승리는 민주당 전국정당화의 최대 성과인 동시에 이 대통령 개인으로서도 ‘헬기런’ 등으로 쌓인 지역 내 비토 정서를 일거에 뒤집는 정치적 설욕의 의미도 가질 테다. 부산시장 선거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게 됐다.
임기 1년을 갓 지난 막강한 대통령이 지선을 염두에 두고 정책과 예산을 쏟아붓는다면 여당 후보에게 상당한 힘이 실릴 것은 자명하다. 물론 지역으로서도 실리적인 관점에서 이런 움직임을 환영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다만 무턱대고 좋아만 하기엔 그 이면의 냉엄한 현실을 간과하기 어렵다.
해수부 이전은 전임 정부 공약이자 지역 숙원인 ‘산업은행 이전’의 대체재다. 이 대통령이 대선 기간 부산에서 해수부 이전을 띄우면서 산은 이전은 ‘불가’라고 분명하게 밝힌 데서도 그 성격이 드러난다. 민간기업인 HMM을 이전하고, 동남권투자은행까지 설립하려는 마당에 산은은 더 이상 재론 말자는 게 여권의 솔직한 속내다. 시민 160만 명의 서명에도 민주당의 ‘태업’으로 멈춰선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도 마찬가지 신세다.
그런데 짚어봐야 할 건 현 여권이 산은 이전을 반대한 이유 대부분이 해수부에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해수부 역시 이전에 찬성하는 직원들은 극소수이며, 타 기관과의 연계성 등 여러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터전이 한 순간에 뒤바뀌는 충격을 쉽사리 수용하지 못하는 건 국책금융기관 종사자든, 정부 부처 공무원이든 마찬가지다. 결국 산은과 해수부의 운명은 기관의 역할이나 지위가 아니라 ‘소수 여당’ 윤석열 정부 공약이냐, ‘다수 여당’ 이재명 정부 공약이냐 그 차이에 갈린 셈이다. 더 세밀하게 들어가면 해당 기관의 이전을 강력 반대하는 최측근이 대통령 주변에 있느냐 없느냐도 무시할 수 없는 배경이다. 누구 얘기인지 부산시민이라면 익히 아는 바다. 정치적 유불리를 둘러싼 수 싸움이 국가적 자산의 재배치를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그렇더라도 해수부 이전은 부산으로선 분명한 기회이며, 남은 1년 동안 단지 선거용 카드가 아닌 ‘해양수도’로의 도약을 위한 실질적인 발판이 될 수 있도록 견인해야 하는 건 지역의 당면한 숙제다. 얼마 전 해수부 직원은 익명 게시판인 ‘블라인드’에 올린 글에서 “3~4년 시행착오 뒤 부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찾을 것”이라면서도 “진짜 걱정은 5년 뒤”라고 토로했다. 정부의 역점 사업인 북극항로 개척이 현재의 외교적 여건 상 성과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 다음 정권에서 해수부 재배치 문제가 다시 부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현 정부는 부산 시대를 맞는 해수부의 권한과 기능의 실질화에 분명한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3전 도전이 유력한 박형준 시정에 대한 평가도 내년 지선의 향배를 가를 요소다. 대선 이후 지역 여권은 ‘박 시장이 그 동안 한 게 뭐 있느냐’며 본격적인 공세에 나설 분위기다.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실패, 공기 연장이 불가피해진 가덕신공항 등 굵직한 현안만 보면 부정적인 면이 두드러져 보이는 게 사실이다. 반면 최고 수준의 투자 유치 실적, 2019년 대비 절반까지 내려간 청년 유출율 등 각종 지표에서 확인되는 도시의 변화상 역시 시민들의 평가표에 함께 들어가야 정확한 판단이 가능할 테다. 마침 박 시장도 시정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 대시민 직접 설명에 나선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래저래 내년 부산시장 선거의 판이 커지게 됐다. 아무쪼록 여야 간 치열한 논쟁을 통해 소멸 위기에 직면한 지역의 미래 비전과 리더십을 정립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전창훈 서울정치팀장 jch@busan.com
2025-06-1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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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정의선 회장의 '파격 행보'
수년 전 현대차그룹 한 임원이 자식 결혼을 앞두고 인사 대상이 돼 물러나야 할 상황이 됐다. 당시 그룹 경영을 총괄하던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이 같은 소식을 듣고 인사를 결혼식 이후로 미뤘다.
이런 정 회장이지만 노조의 파업 사태나 시위에 대해선 강경한 모습이다. 올 초 실적부진 속에 계속된 현대제철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와 부분파업 진행에 결국 공장폐쇄를 결정했다. 로봇과 자동차 부품 회사인 현대위아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조의 정규직 요구 시위에 대해서도 경남 창원 본사의 ‘타 지역 이전’ 카드로 대응했다. 1년간 계속된 집회와 시위로 회사 영업에까지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현대제철은 포스코홀딩스와 손잡고 8조 원 이상을 투자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전기로 제철소를 짓기로 합의했다. 이렇게 될 경우 향후 국내 생산 물량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포스코와는 오랜 기간 앙숙 사이였지만 과감하게 손을 잡았다. 과거 정 회장의 부친 정몽구 명예회장이 일관제철소를 세우는 과정에서 이를 막으려는 포스코와 갈등을 빚었고, 일관제철소 완성 후에는 서로 거래까지 끊었다.
지난해에는 창사 이래 최초로 현대차 최고경영자(CEO)에 외국인 호세 무뇨스 사장을 선임한 데 이어, 싱크탱크 수장에는 한국계 미국인 성김 전 주한미국대사를 앉혔다. 무뇨스 사장의 경우 주요 회의를 영어로 진행하면서 회사 내에선 “이제야 글로벌 기업이 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2018년 정몽구 회장을 대신해 수석부회장으로 경영 최일선에 오른 뒤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는 정 회장의 파격적인 행보들이다.
정 회장은 미래 현대차그룹의 밑그림도 이미 그려놓았다. 미국의 로봇 스타트업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와 자율주행 기업 42닷 인수, UAM(도심항공모빌리티) 등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자동차 회사가 아닌 모빌리티 회사로의 변화다. 정 회장은 이미 2019년 현대차 서울 양재본사에서 가진 타운홀미팅에서 그룹의 향후 사업 비중을 자동차 50%, UAM 30%, 로보틱스 20%로 꾸려갈 것이라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2020년 그룹 수장에 오른 정 회장은 취임 2년 만에 그룹을 글로벌 ‘톱3’ 완성차 업체로 끌어올렸다. 일본 토요타그룹과 독일 폭스바겐그룹 다음이다. 현대차와 기아의 2023년과 지난해 2년 연속 역대 최대 영업이익 달성도 이끌어냈다.
정 회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한결같고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꾸준한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글로벌 자동차 톱3에 머물지 않고 모빌리티 분야를 선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전기차 분야 수요 확대에 대비하기 위해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HMGMA)을 시작으로 기아 오토랜드 화성 전기차 전용공장, 현대차 울산 전기차 전용공장을 차례로 가동키로 했다.
정 회장은 이를 기반으로 2030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연간 전기차 364만 대를 생산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 톱3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 회장은 전기차를 기반으로 한 미래 모빌리티 구상을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로보틱스, 자율주행,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등으로 구체화해 나가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로서 미래 시장에 대비하는 수준은 전기차 업체로 우주선을 띄우는 테슬라 못지 않다.
과제도 적지않다. 현대차는 수년 동안 전쟁, 판매 감소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 온 러시아 공장과 중국의 충칭 공장을 2023년 매각했다. 앞서 2021년에도 베이징 1공장을 팔았고, 창저우 공장도 매각을 추진 중이다. 미국시장에선 성장하고 있지만 러시아와 중국이라는 큰 시장에서 입지가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는 것이다. 이들 시장의 경우 언제 재진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대차그룹이 대규모 투자를 한 전기차 분야도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정체) 등으로 시장이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정 회장은 올 초 글로벌 자동차 시장 침체와 미국의 투자 압박이 있는 상황에서 신년사를 통해 현재의 위기를 ‘퍼펙트 스톰’(다발적 악재에 따른 경제적 위기)으로 간주하고 “면밀한 준비를 통해 위기를 이겨내자”고 강조했다.
정 회장의 이 같은 행보와 성과에 대해 재계 한 관계자는 “10대그룹 오너들 가운데 미래 시장에 가장 잘 대응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추켜세웠다.
2025-06-1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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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야구팬과 부산 시민이 만드는 북항 야구장
야구팬이라면, 특히 부산의 야구팬이라면 참 야구 볼 맛 나는 시절이다. 부산을 연고지로 하는 롯데 자이언츠가 정규 시즌에서 초반 상승세를 중반까지 이어갈 기세다. 미국 메이저리그로 눈을 돌리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이정후 선수와 LA 다저스 김혜성 선수의 활약이 눈부시다.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이나 프리미어12 같은 야구 국제 대회에서 KBO 소속 선수가 주축으로 구성된 국가대표팀이 대회 초기 호성적과 달리 최근 몇 개 대회에서 조기 탈락하거나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 들면서 야구와 절연한 팬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롯데 자이언츠의 돌풍과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의 활약은 이들을 야구장이나 TV 앞으로 다시 불러 모으고 있다.
메이저리그를 즐겨보는 부산의 야구팬이라면 이정후 선수가 뛰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 ‘오라클 파크’가 낯설지 않을 듯하다. 기자 역시 오라클 파크를 보며 ‘부산에도 저런 야구장이 있었으면’ 하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 적이 많다. 오라클 파크는 아름다운 바다 풍광이 배경이 되는 입지 덕에 수많은 메이저리그 구장 중에 가장 아름다운 구장으로 손꼽힌다. 우측 외야 바깥쪽은 바다로 이어지는데, 타자가 타구를 장외 바다인 ‘맥코비 만’(미션 만)에 떨어뜨리는 것을 일컫는 ‘스플래시 히트’는 바다와 접한 오라클 파크의 매력을 완성하는 핵심 포인트다. 바다 야구장답게 오라클 파크 좌측 담당 뒤엔 요트 계류장이 있다. 많은 야구팬은 요트나 보트, 카약을 타고 스플래시 히트 야구공을 줍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기도 하고, 뜰채로 바다에 떠 있는 공을 떠 올리기도 한다. 일부 팬은 수륙 양용 보트를 타고 등장하거나, 요트 위에 헐크와 스파이더맨 등 이색 복장을 하고 나타나는 등 바다 야구장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과 묘미는 하나하나 열거하려면 끝이 없다.
타구 방향과 반대로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오라클 파크가 바다 야구장으로서 매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요소다. 역풍은 스플래시 히트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오라클 파트의 개성으로 자리 잡았고, 바닷가에는 야구장이 적합하지 않다는 우려도 떨쳐냈다.
최근 부산에도 오라클 파크와 같은 바다 야구장 건립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북항 재개발 사업의 핵심 부지인 랜드마크 부지 일대가 실질적인 사업화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데다, 사직야구장 재건축안이 사업비 확보 차질 등으로 난망한 상태에 빠져 있는 현실과 오버랩되면서다. 여기에다 부산의 한 기업가가 북항 야구장 건립에 2000억 원을 기부하기로 하면서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의 불씨가 되살아나고 있다.
국내 프로야구팀 중에 바다가 있는 지역을 연고로 한 팀이 없진 않지만, 해양 도시 부산의 바다 스케일이나 풍광에 감히 비할 바 아니다. 북항 야구장은 바다 야구장이라는 차별화된 입지 외에도 부산역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으로 원정 팬들에게도 친화적인 야구장이 될 수 있다. 해외 성공 사례를 좇아 시즌 외에는 콘서트장으로 사용되고, 쇼핑몰, 호텔, 온천 등이 어우러진 복합스포츠콤플렉스 모델로 추진한다면, 투자 유치와 사업성 면에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나아가 북항 야구장은 단순한 스포츠 시설을 넘어 엄청난 경제 파급 효과로 부산의 부흥을 이끌며 부산의 지속 가능한 도시 브랜드와 미래 경쟁력을 상징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물론 1조 원이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이는 비용을 어떻게 충당하느냐는 상당한 난제임이 틀림없다. 롯데그룹이 기대 이상의 통 큰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막대한 공공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며칠 전 야구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북항 야구장의 가능성에 고무돼 있다며, 야구팬과 부산 시민들이 북항 야구장 건립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기금 조성 참여 정도에 따라 할인 관람 또는 무료 관람이 가능하도록 하거나, 좌석에 참여자의 이름을 새겨 넣어준다면 기금 조성에 탄력이 붙을 것 같다고 했다. 300만 원은 기꺼이 내놓을 수 있다는 친구는 부산을 비롯해 전국에 부산의 미래와 상징이 될 야구장 건립에 참여하고 싶은 야구팬과 시민들이 많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수도권 집중과 지역 소멸로 대기업의 투자 역시 수도권으로 더욱 몰리고 있지만, 부산시도 부산 부흥의 기회를 북항 야구장 복합스포츠콤플렉스에서 찾고, 이를 위해 대기업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세일즈에 나서면 어떨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야구장 건립 기금 조성을 통해 야구팬들과 부산 시민들의 뜻까지 하나로 모은다면, 북항 야구장의 꿈이 이뤄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2025-06-0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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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몽골의 모래바람을 잠재운 K컬처
얼마 전 직장 동료와 함께 몽골에 다녀왔다.
몽골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드넓은 초원과 게르, 양, 말, 칭기즈칸 등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그동안 상상했던 몽골의 한 장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원이 많은 몽골에는 말과 양 떼만 있는 평온함, 그 자체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도심에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들녘에 비닐하우스가 생겨나는 등 산업화 바람이 거세다. 이 가운데 가장 센 바람은 대한민국이라는 사실이다. K-컬처가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지만, 몽골에는 유독 심하다는 점이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는 고층 아파트 건설이 줄을 잇는 등 산업화가 한창이다. 도심에는 우리나라 편의점인 CU와 GS25가 진출해 성시를 이룬 지 오래다. 한국어 간판을 단 식당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또, E-마트를 비롯한 대형 유통시설도 몽골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도심에선 한국어로 길을 물어봐도 될 정도다. 한국이 몽골 산업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가보지 않은 사람도 언론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이 몽골 자연환경까지 바꾼 성공 사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울란바토르에서 북쪽으로 350km 떨어진 셀렝게 주 토진나르스. 이곳은 몽골 최 북단으로 러시아 국경과 인접해 있다. 특징이라면, 나무 한 그루도 보기 힘든 여느 몽골 평원과 달리 소나무 숲이 무성하다. 밖에서 보면, 몽골이 아닌 한국의 소나무 조림지라는 느낌을 준다. 조림 면적은 3250ha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11배다.
몽골에서도 오지나 다름없는 이곳에 세계 곳곳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한국인은 물론 백색 피부와 푸른 눈을 가진 서양인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숲 입구에는 매표소도 있다. 이와 함께, 관광객이 숲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도록 4층 높이의 전망대도 설치됐다. 전망대 입구에는 숲을 조성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한국어 안내판도 세워졌다. 이곳은 몽골 자연림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조성한 숲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숲 전체에 높이 3~4m 소나무가 가로, 세로로 대형을 맞춰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현지 산림관리자에 따르면 2000년대 초 이 곳에 큰 산불이 발생했다. 이곳에는 몽골 전체 소나무 숲의 16.2%를 차지할 만큼, 무성한 산림지역이었다. 산불로 인해 모랫바닥이 드러나고 사막으로 변할 우려가 높았다. 당시 몽골 정부는 국제사회에 도움을 청했다.
한국 기업인 유한킴벌리가 2003년부터 조림 사업을 시작했다. 올해로 20여 년이 지났다. 산불로 인해 모래 언덕으로 변했던 곳이 20년 만에 거대한 소나무 숲으로 환골탈태한 경우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소나무 숲은 망망대해나 다름없다. 누런 모랫바닥이 푸른색의 나무바다로 변한 셈이다. 몽골판 ‘상전벽해’나 다름없다.
이 숲은 몽골 사람은 물론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에게 큰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황량한 모랫바닥에 던진 ‘희망과 가능성’의 씨앗인 셈이다. 거대한 숲은 몽골 초원의 모래바람을 잠재운 한국 바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성공신화를 바탕으로 한국의 여러 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수 년전부터 몽골 조림 사업에 나서고 있다. 조림 사업에 힘입어 최근 곳곳에서 생겨나는 것이 한국판 비닐하우스다. 울란바토르 외곽 도로를 달리다 보면 주택 인근에 설치된 비닐하우스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나무 심기 전 육묘작업을 위해 설치했던 비닐하우스가 요즘에는 채소 재배와 각종 농작물 생산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몽골에서 볼 수 없었던 수박과 방울토마토, 오이 등을 재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유목민의 나라 몽골에서도 채소와 과일에 대한 신세계가 열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농업전문가 진단이다. 최근에는 K-스마트팜 기술까지 전수하고 있다.
한국은 1990년 몽골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몽골 영토는 한국 면적의 15배가 넘지만 인구는 340만 명이다. 330만 명인 경남 도민보다 조금 많다. 그 때문에 몽골은 인구밀도가 매우 낮다. 그렇다고 해서 황량한 초원에 말만 키우는 나라가 아니다. 생산량 세계 9위의 몰리브덴을 비롯, 주석 등 다양한 희소금속을 보유한 세계 10대 자원부국이다.
특히, 희토류가 다량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올해로 수교 35주년이다. 몽골에서 유행하는 K-컬처를 바탕으로 한국과의 자원외교가 더욱 활성화되길 기대해 본다.
김길수 중서부경남본부장 kks66@busan.com
2025-06-0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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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주민도 안 반기는 야구장을 지었는데…
부산의 야구팬을 설레게 또는 긴가민가하게 하는 두 가지 이슈가 있다. 롯데 자이언츠의 선방으로 이번엔 가을야구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하나이다. 나머지는 정철원 협성종합건업 회장의 2000억 원 기부 약속으로 촉발된 북항 야구장 가능성이다. 어쩌면 정말 ‘바다 야구장’이 들어설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그 덕에 여기저기서 모범 사례로 국내외 야구장이 소개되고 있다. 다들 화려하고 멋진 야구장들이다. 국내에는 서울 ‘고척스카이돔’이 있고, 일본에는 화려한 공연이 자주 열리는 일본 ‘조조 마린스타디움’이 있다. 스플래시 히트가 유명한 ‘오라클 파크’, BTS의 콘서트장이었던 ‘시티필드’ 등 미국의 야구장들도 단골 메뉴로 소개된다.
메이저리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홈구장 ‘트루이스트 파크’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야구장만 보면, 4만여 명 관중석 규모의 평범한 곳이다. 시야를 넓혀 복합 개발 프로젝트로 추진된 ‘배터리 애틀랜타’ 단지까지 같이 함께 살펴보아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야구장을 잘 지은 사례라기보다 도시재생에 성공한 프로젝트다.
2013년 11월 브레이브스 구단은 애틀랜타 교외의 코브 카운티와 새 야구장 건설 MOU를 체결했다. 이어 시설 노후화 등을 이유로 2016년 계약 만료와 함께 도심의 ‘터너 필드’를 떠나고, 대신 교외에 새 구장을 짓고 주변을 엔터테인먼트 단지화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사업은 극비리에 진행됐는데, MOU 발표와 동시에 난리가 났다. 예상보다 훨씬 저항이 컸다. 터너 필드 주변보다 코브 카운티에서 반발이 거셌다. 지역 사회는 사업 예정지가 지하철이 안 가는 곳이라 새 구장이 흥행할 리 없다고 우려했다. 그런 사업에 혈세를 지출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트루이스트 파크 사업비는 6억 7200만 달러, 원화로는 9000억 원이 넘는다. 45%인 3억 달러, 4100여억 원을 지자체가 공공채권을 발행해 부담했다. 나머지는 구단이 마련했다. 추가로 함께 추진된 배터리 애틀랜타 단지의 사업비는 4억 달러, 5500억 원 정도다. 모두 민간 자금으로 이뤄졌다. 이 단지에는 4성급 호텔, 4000석 규모의 공연장, 각종 상업시설로 채워졌다. 500세대 주거지와 각종 오피스도 들어섰다.
코브 카운티 행정 당국은 새 구장 건설에 적극적이었다. 야구장과 엔터테인먼트 단지가 결합하면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여론은 반대였다. 도심 외곽이다 보니, 야구장 팬들도 줄고 단지도 텅텅 빌 것이라고 봤다. 극비리에 사업이 추진된 것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밀실 행정이었다는 거다. 극심한 충돌로 의회 안건 심의가 안 될 정도였고, 주민들의 소송으로 대법원 판결까지 받아야 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2017년 야구장과 엔터테인먼트 단지는 겨우 준공했다.
어떻게 됐을까. 2021년 코브 카운티 상공회의소는 이 프로젝트를 “지역과 주 전체에 윈-윈이 된 홈런”이라고 평가했다. 2022년 한 해에만 1000만 명 이상 찾았으며, 세금 수입도 기대치를 초과 달성하고 있다. 파파존스 피자의 본사도 이전해 올 정도로, 배터리 애틀랜타 단지는 인파로 북적거린다. 부동산 가치가 너무 폭등해 문제가 될 정도다.
일각에서는 파급효과가 과장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때마침 2021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을 하는 등 운도 좋았다. 그럼에도 트루이스트 파크 일대가 애틀랜타의 명소이자 지역 경제의 핵심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지금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브레이브스 구단주는 사업을 극비로 추진한 것에 대해 “일찍 알려졌다면 ‘정말 타당한지 검증해 보자’라며 반대하는 이들이 훨씬 많아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밀실 행정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예사롭지 않은 일에는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불가피하다는 건 사실이다. 우려를 이겨낼 용기가 있어야 큰 일을 하는 법이다.
트루이스트 파크와 비교하면 북항 야구장은 오히려 전망이 밝다. 접근성이 좋고, 바다와의 연계 등을 고려하면 각종 사업을 유치하기도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많은 시민이 원하고 있어,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도 있다. 오히려 공공에서 주저주저하고 있는 분위기다. 정부와 부산시가 우려보다 가능성을 보려 하면, 다른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상황이다.
사실 굳이 미국까지 갈 필요도 없다.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가덕신공항 등도 비슷한 경로를 겪었다. 처음엔 꿈 같은 소리처럼 들렸는데 현실이 됐거나 되고 있는 중이다. 부산이 추가 홈런을 날리려면, 우리가 한번 더 용감해져야 하는 때가 됐다.
2025-06-0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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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예타 통과만 기다리는 부울경 광역철도
장미대선이 5일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 후보들이 전국을 돌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지역 맞춤형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그럼, 부울경 지역 대표 공약은 무엇일까? 아마도 수도권 집중화를 막고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부울경을 연결하는 광역철도 건설이 아닌가 싶다. 부울경에서는 수년 전부터 이 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반응은 뜨뜻미지근을 넘어 소극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부울경 지역 관계자들은 최근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를 찾아 1년가량 늦어지고 있는 부울경 광역철도의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 통과와 조기 착공을 촉구했다.
〈부산일보〉와 지역 정치권 취재를 종합하면 기재부는 지난해 6월 부울경 광역철도에 대한 예타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 그런데 같은 해 9월로 한차례 미뤄지더니 다시 12월로, 올해 상반기로 늦춰졌다.
결과 발표가 늦어지면서 급기야 ‘사업이 물 건너갔다’는 이야기마저 나돈다. 부울경 지역 시장·도지사는 물론 국회의원, 기초 자치 단체장들이 기재부와 국토부,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잇달아 방문해 예타 통과와 조기 착공을 건의했지만, 기재부는 말이 없다.
부울경 광역철도는 부산 노포동에서 양산 웅상을 거쳐 KTX 울산역을 잇는 총연장 48.8km 규모로 건설되는 사업이다. 건설비는 3조 424억 원으로 추정된다.
이 철도는 2021년 8월 국토부 국가 철도망 계획 선도 사업에 선정되면서 가시화됐다. 1995년, 이 철도가 처음 언급된 지 26년 만이었다.
국토부 사전 타당성 조사를 거쳐 2023년 6월 기재부 예타에 포함됐다. 사타 당시 비용편익이 기준치(1.0)에 미치지 못했으나, 예타에 선정되면서 사실상 사업이 확정될 것으로 기대를 모아었다.
그러나 결과 발표가 늦어지면서 지역 정치권은 물론 765만 부울경 지역 주민들이 동요하고 있다. 자칫 소문대로 ‘사업 무산’이 현실화할지 우려돼서다. 사업 시행 여부를 결정짓는 예타 결과가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나왔을 가능성”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기재부 예타는 인구나 경제력이 집중된 곳일수록 높게 나오게 돼 있어 인구와 경제력이 모여 있는 수도권이 비수도권보다 더 유리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지방에서 추진되는 국책사업의 예타 통과가 수도권에 비해 어려운 것이다. 부울경 광역철도 역시 765만 명이 거주하는 곳에 건설이 추진 중이지만, 현재의 예타 잣대로는 경제성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 역시 이런 문제점을 알고 비수도권 사업에 대해 예타를 면제해 주기도 한다. 가덕신공항이나 부산신항~김해 고속도로, 남부내륙철도, 울산외곽순환고속도로 등 20여 개 사업이 이 혜택을 입었다.
정부의 예타 면제가 일부 사업에 그치면서 아쉽게 부울경 광역철도는 제외됐다. 이 사업은 2018년 당시 부울경 3개 시도가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과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계획한 비수도권 최초의 광역철도여서 예타 면제 대상을 기대했지만, 빠지면서 부울경 주민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국회도 개별 사업을 지정해 예타 면제 등을 규정한 특별법을 발의하고 있다. 실제 김태호 국회의원도 부울경 광역철도의 예타 통과가 불투명해지자, 예타 면제 등을 규정한 ‘특별법’까지 발의했으나 국회의 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개별 사업마다 예타를 면제하거나 특별법을 발의할 수 없는 만큼 대선 공약으로 채택되는 지방 국책사업 중 필요 사업에 한해 예타 면제와 함께 국가가 신속하게 시행하도록 하는 관련 법 제정이나 개정이 절실하다.
특히 대선 후보들이 20여 년 전부터 선거 단골 공약이었던 부울경 광역철도를 대선 공약으로 채택한 만큼 예타를 통과시켜 주거나 면제해 조기 착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부울경 광역철도가 완성되면 765만 명이 거주하는 부울경이 하나의 교통망으로 연결되면서 1시간 생활권으로 묶이게 된다. 이는 단순한 이동 편의성을 넘어 지역 경제와 사회 통합을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나아가 부울경 광역철도는 교통 인프라 확충을 넘어 인구 유출 방지와 지역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공약은 흔히 ‘약속’이라고 한다. 자기가 행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언행에 제약을 가해야 하며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뜻이다. 부울경 광역철도의 예타 통과와 조기 착공은 공약 중 가장 중요한 대선 공약인 만큼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다. 만약 약속을 지키지 않고 계속해서 희망 고문을 이어간다면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2025-05-2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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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믿으라"는 SKT와 정부, 못 미더운 행보
“믿고 안심하셔도 됩니다.”
SK텔레콤이 유심(USIM)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 가입자에게 강조한 말이다. ‘보안 기술 고도화’로 해킹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금융 피해가 발생해도 100% 보상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럼 정말 안심해도 되는 걸까.
SK텔레콤을 공격한 해커는 2022년 6월 최초 악성코드를 심었다. 해킹 사태에 대한 민관합동조사단의 공식 조사 결과다. 해커는 먼저 서버 장악을 위해 웹쉘(Web Shell) 프로그램을 침투시켰다. 이후에는 ‘BPF도어’(BPFdoor)라는 악성코드를 심었다.
웹쉘은 서버에서 임의의 명령을 실행할 수 있도록 제작한 프로그램이다. 비교적 흔하게 사용되는 해킹 도구다. ‘BPF도어’는 보다 은밀하고 정교한 해킹 도구로 원격 제어형 백도어로 분류된다. BPF도어는 중국계 해킹 그룹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커는 SK텔레콤 서버 23대에 25종의 악성코드를 심었다. 감염 서버는 추후 조사로 늘어날 수 있다. 해커가 지난 3년간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드러난 것은 지난달 2695만 건의 유심(USIM) 정보를 빼내갔다는 사실이다.
SK텔레콤은 해킹 사실을 3년간 몰랐던 데 대해 “침해는 알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또 통신망의 원활한 유지를 위해 백신 프로그램 설치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통신망이 백신 없이 운영된다는 사실은 국회 청문회 등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SK텔레콤은 침해를 탐지하기 어렵지만 “(정보) 유출은 감지할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이 설명대로라면 정보 유출이 발생한 뒤에야 해킹을 알 수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SK텔레콤 측은 “뼈아픈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웹쉘이라는 흔한 해킹도구 사용을 잡아내지 못한 데 대해서도 “뼈아픈 부분”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은 보안 관련 비판이 이어지자 당초 “어렵다”던 백신 설치도 “진행 중”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SK텔레콤 해킹 사태와 관련해선 정부의 발표도 오락가락이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발표한 1차 조사 결과에서 “단말기 고유식별번호(IMEI) 유출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IMEI 유출이 없었다는 것은 이날 배포된 정부 자료의 제목이었다. 정부는 “유출된 정보로 유심을 복제해 다른 휴대전화에 꽂아 불법적 행위를 하는 행위가 방지됨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IMEI가 없어서 ‘복제폰’을 만들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한 달도 안 돼 IMEI 유출 여부에 대해 “모른다”로 입장을 바꿨다. 지난 19일 2차 조사 결과 발표에서 정부는 “악성코드가 감염된 서버들에 대한 분석 중 IMEI 등이 포함돼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해당 서버의 로그기록이 없는 2년여 기간에 대해 “자료 유출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IMEI 유출 여부에 대한 입장이 바뀐 데 대해 정부는 1차 조사가 “조사 초기였고” “서버 분석 작업을 긴급히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조사가 충분하게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IMEI 유출이 없었다고 발표함 셈이다. 성급한 발표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광범위하게 확산됐던 우려를 해소하자는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정확한 진상 규명보다 ‘우려 해소’ 목적이 앞섰다는 사실을 인정한 발언이다.
IMEI가 유출됐을 경우 복제폰은 만들어질 수 있는 걸까. 정부는 “좀 어렵다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IMEI 숫자 조합만 가지고는 복제폰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제조사들의 해석”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그러나 “복제폰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서 100%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기술적으로 100% (안전은) 장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설명이다. 가입자로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통신리서치 전문회사인 컨슈머인사이트 조사 결과 SK텔레콤의 해킹 사태 '대응'에 대한 긍정 평가는 11%에 그쳤다. 신속한 처리, 충분한 사고 대응과 보상, 가입자 입장에서의 공감과 투명한 소통 모두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응답이 70%에 육박했다. 이번 해킹 사태가 본인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3명 중 2명(63%)이 '우려한다'고 답했다. SK텔레콤 이외 KT와 LG유플러스 가입자도 이번 사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정부 대응에 대해서도 같은 조사를 한다면 SK텔레콤보다 나은 평가를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kjongwoo@busan.com
2025-05-2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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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손기정과 일장기, 보스턴마라톤
마라톤 영웅 고(故) 손기정 선생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출전과 우승 소식을 담은 ‘조선중앙일보 원본 신문’ 1936년 8월 10, 13, 14일 자 발행분 3점이 지난달 14일 경매에 나와 화제가 됐다. 손기정 선생은 한국 마라톤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선구자다.
손기정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나 소학교 시절 때부터 마라톤을 시작했다. 손기정은 1932년 동아일보 주최 경영마라톤대회, 1933년 고려육상경기회 주최 제3회 15마일 크로스컨트리경주대회 등 각종 국내 대회에 출전해 우승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이후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했고 일제강점기 시기 한국인 신분으로 일본인들을 이겨 일본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이때 같이 선발전에 출전한 한국인 마라톤 선수 남승룡도 국가대표로 뽑혔다.
일제는 한국인이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을 막으려고 베를린 현지에서 2차 선발전을 진행하는 등 몽니를 부렸으나 손기정과 남승룡은 빼어난 실력으로 일본 선수들을 다시 한번 눌렀다. 손기정은 1936년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2시간29분19초로 골인해 당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따냈다. 남승룡은 2시간31분42초로 결승선을 끊어 은메달을 딴 영국의 어니 하퍼와 불과 19초 차이로 값진 동메달을 획득했다.
한국인으로서 따낸 자랑스러운 올림픽 금메달과 동메달이었지만 한국은 일제 치하 지배를 받았기에 때문에 이 두 선수의 가슴엔 일장기가 박혀있었다. 당시 남승룡은 시상대에서 고개를 푹 숙였고, 손기정은 월계수로 가슴의 일장기를 가렸다.
동아일보는 신문 지면에 손기정의 가슴에 박혀있던 일장기를 지우고 사진을 게재하는 이른 바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일제로부터 무기한 정간을 당하기도 했다. 나라의 주권이 상실된 상태에서 이 두 선수는 한국인의 뿌리와 절개를 잊지 않았다. 손기정은 한국인의 모습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선 오직 올림픽 무대 금메달 획득이 정답이라 생각하며 뛰었고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조선’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특히 남승룡은 동메달을 획득하였음에도 자신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가리지 못한 사실을 부끄러워 했으며, 남달리 조국을 위한 신념이 강했던 그는 대회가 있을 때마다 각국의 기자들에게 자신이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임을 눈물로 호소함으로써 또 다른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남승룡은 손기정 못지않은 마라톤 실력을 발휘하며 1932년 제8회 조선신궁경기대회 1위, 1933년 제20회 일본육상경기선수권대회 2위 등의 빛난 업적을 이뤘다.
남승룡의 조카 남청웅씨는 “남승룡 선생은 양정고등보통학교 시절 서울에서 고향인 순천까지 하루에 200리(80㎞)에서 250리(100㎞)를 5일간 뛰고, 부모님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 여수까지도 뛰는 등 달리기를 항상 생활화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손기정과 남승룡의 뒤를 이어 한국 마라톤을 빛낸 선수는 바로 서윤복이었다. 서윤복은 1947년 4월 19일 보스턴국제마라톤대회에서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국제 대회에서 2시간25분39초의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감격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국민 영웅’ 손기정은 마라톤 감독을 맡아 서윤복의 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남승룡은 코치이자 페이스 메이커로 서윤복의 우승을 돕기 위해 35세 나이를 잊은 채 대회를 완주해 12위를 차지했다.
서윤복은 당시 최강으로 평가받았던 일본과 미국 선수들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1947년은 해방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으로, 서윤복의 우승은 단순한 스포츠 승리를 넘어 국가적 자존심을 회복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지금까지도 보스턴마라톤은 세계 최고 권위의 마라톤대회 중 하나로 꼽힌다.
그의 우승이 더욱 값진 것으로 평가받았던 이유는 당시 한국은 해방 후 혼란기였고, 훈련 환경이나 지원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윤복은 개인적인 노력과 투혼으로 세계 정상에 오른 것이다. 서윤복은 경기 후 “달리는 내내 조국과 민족을 생각했다”며 “일제 때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아픔을 생각하며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결심으로 뛰었다”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서윤복의 보스턴마라톤 우승 이후 한국 마라톤의 전통은 황영조, 이봉주 등으로 이어졌는데, 현재 한국의 최고 기록은 2000년 도쿄국제마라톤에서 이봉주가 세운 2시간7분20초로 25년째 깨지지 않고 있다. 즉, 2000년 이후 한국 마라톤은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마라톤의 부흥을 위해 정부와 체육계의 장기적이고 대대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2025-05-21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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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지역의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 기후위기를 마주하며,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이 ‘평범한’ 진리를 상처 입으며 몸으로 깨달았다. 네가 안전해야 내가 안전하고, 내가 살아야 너가 산다고.
반얀트리 공사장 화재로 인한 삼정기업의 기업회생 신청, 촉망 받던 2차전지 기업 금양의 상장폐지 위기는 지방은행의 건전성 악화로 연결됐다. 부산은행의 지난 1분기 당기순이익은 전년보다 33%나 감소했다. 대손충당금이 증가하고, 석 달 이상 연체된 부실채권 비율을 나타내는 고정이하여신비율이 상승하면서 자산 건전성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 KB금융의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62.9% 상승해 1조 7000억 원가량을 기록하는 등 시중은행·인터넷은행들이 당기순이익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고공행진을 할 때, 부산은행은 지역 경제의 신음을 지표로 들려줬다.
연결 고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방은행인 부산은행의 위축은 결국 지역 경제 위축으로 이어진다. 당장 지역에서 경제 활동을 이어가는 기업과 소상공인, 가계 자금 흐름에 영향을 미치며, 이익을 다시 지역사회로 환원하는 사회공헌 사업 또한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지역 우수 인재들을 지역에 머물게 하는 좋은 일자리도 줄어든다. 지방은행은 단순한 금융기관이 아니라, 지역경제의 핵심 축이다.
지난 17일 성황리에 개최된 부산은행의 대표적 사회공헌 사업 ‘I LOVE(아이사랑) 페스티벌’에 3000여 명의 시민들이 참가했는데, 3000여 명에게 선물했던 ‘소소한 행복의 하루’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지방은행은 그렇잖아도 인터넷 전문은행과 빅테크 기업들의 금융업 진출, 시중은행의 지방 영업 강화와 같은 위험 요소들에 직면해 있다. 인구와 산업, 자본시장 규모가 수도권에 비해 절대적 열위에 있고, 이 격차가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는 점은 지방은행의 근간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 요소다. 앞서 외환위기 때는 많은 지방은행이 시중은행에 흡수되기도 했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온라인 플랫폼 시장 확대로 10년 후쯤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던 일이 5년 이상 앞당겨져 일어나고 있다. 이제 막 준비하려 했는데 이미 들이닥쳐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했는데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은 초기 인터넷, 스마트폰이 확대되던 때보다 훨씬 더 숨가쁘게, 급격한 곡선을 그리며 일어나고 있다.
지방은행의 위기 감지는 그래서 더 예민한 촉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조는 지난달 열린 제1차 금융노동포럼의 주제를 ‘지역 경제의 위기와 지방은행의 역할’로 정하고 지방은행이 지역 밀착형 관계금융을 통해 지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만큼, 지방은행을 통해 지역의 돈이 지역에 재투자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부산경실련도 최근 대선을 앞두고 발표한 공약 제안에서 공공기관들이 지방은행 거래 비중을 더 높여야 하며, 이를 위해 공공기관 경영 평가 시 가산점을 주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선 조사에서 부산 이전 공공기관의 지방은행 거래 비중이 낮아 공공기관의 운영 자금 대부분이 시중은행을 통해 역외로 유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해 낸 보고서에서 지방소멸을 억제하기 위해 은행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는데, 지자체가 시 금고를 지정할 때 은행의 해당 지역 중소기업의 대출 실적에 가점을 주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물론 지역 경제 순환의 고리 어디쯤에서 ‘나’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이건 어떨까. 올 초 지역 신발산업을 대표하는 향토기업 트렉스타가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소식을 전해들은 부산, 경남 시민들과 지자체, 지방은행이 앞다퉈 향토기업 살리기에 동참하면서 내수에서만 매출이 지난해 대비 140% 상승하고 온라인 구매 실적은 260% 증가했다고 한다. 이에 화답하듯 트렉스타는 4000만 원 상당의 등산화를 경남 산불 피해 지역에 기부했다. 지역 경제의 핵심은 순환이고, 연결이다.
부산 커피 기업 모모스는 전국에 원두를 판매하며 모모스커피의 원두와 부산우유의 절묘한 맛의 조합을 알린 덕에 부산우유를 쓰는 곳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로컬의 미래〉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지역화는 글로벌 경제가 입힌 손상을 만회하는 가장 전략적이고, 효과적이며, 상식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수도권 과밀화와 지방소멸을 막을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하다. 지역화는 행복의 경제학이라고 했는데, 개개인을 공동체 그리고 자연과 다시 이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역 순환 경제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한 경제다. 이 순환의 핵심 축은 지방은행에 있다.
2025-05-1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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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부산 크루즈 관광, 첫인상이 중요하다
‘부산항국제여객 제2터미널입니다. 야외 주차장 안으로 들어와서 직진해 주세요.’
부산을 찾은 외국인 크루즈관광객이 손에 쥐고 다니는 명함 크기의 안내문에 적힌 내용이다. 이 명함은 부산시관광협회가 부산의 ‘헷갈리는 크루즈터미널 명칭’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만들었다.
최근 크루즈를 타고 부산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지만, 그들을 맞는 부산의 수용 태세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지난해 부산 크루즈 관광객은 15만 2000명으로 2023년에 비해 1000명 이상 늘었다. 부산에 입항한 크루즈선도 2023년 105척에서 2024년 118척으로 증가했다. 올해는 증가세가 더 가팔라 크루즈 171척이 부산에 입항하며, 관광객 수도 21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부산시는 올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 목표를 300만 명으로 정하고, 관광업계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특히 부산항 크루즈 관광 활성화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정부는 올해 1년간 전담 여행사와 크루즈 선사가 모집한 3인 이상 중국인 단체 관광객에 한해 무사증 입국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 같은 ‘크루즈 관광상륙허가제 시범사업’ 논의는 지난해 부산시가 정부에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코로나19 이후 개별 관광을 선호하는 여행 행태가 바뀌고 있는데도 단체관광객 유치만 가능한 제도 때문에 일본에 밀려나고 있다는 점을 피력한 것이다.
이런 정책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전반적인 수용 태세 점검은 더 중요하다. 지역 관광업계가 입을 모아 심각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택시 호객’이다. 부산항에 크루즈가 입항하고 터미널 앞 주차장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쏟아져나오면 일부 택시 기사들이 투어 팻말을 들고 호객에 나서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불법 호객도 문제지만, 턱없이 비싼 바가지요금을 받는 데다 단거리 승객은 태우지 않는 승차 거부도 예사다. 신용카드를 받지 않고 현금만 요구하다가 손님과 실랑이가 벌어지는 일도 많다. 관광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부산에 내려서 처음 마주치는 광경이 택시 호객 행위라니 부끄럽다”며 “망친 첫인상을 짧은 체류 시간 안에 회복하고 돌아갈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지자체와 경찰 단속을 요구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단속반이 현장에 잘 나오지 않고, 나오더라도 지켜보기만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강력 단속과 더불어, 호객 행위가 많은 공항택시의 거친 이미지를 바꾼 인천공항 콜택시 사례를 눈여겨볼 만하다. ‘거북이택시’는 미터기 사용, 청결한 차량, 친절한 기사, 사전 예약제와 24시간 상담 등 신뢰 기반 서비스를 통해 공항택시 이미지를 바꾸고 있다. 부산도 이를 참고해 단속을 넘어 서비스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부산 크루즈터미널 명칭도 외국인 관광객을 당황하게 한다. 현재 부산에 크루즈가 입항하는 곳은 동구 초량동의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부산항국제여객 제2터미널, 영도구의 국제크루즈터미널 등 총 3곳이다. 정기선은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을 이용하고, 대부분의 크루즈는 부산항국제여객 제2터미널로 입항한다. 제2터미널의 선석이 찼거나, 부산항대교를 통과하지 못하는 초대형 크루즈는 영도구의 국제크루즈터미널로 입항한다.
문제는 3곳의 명칭이 헷갈린다는 점이다. 특히 영어 명칭이 International Passenger Terminal(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International Cruise Terminal(국제크루즈터미널)로 비슷하고, 제2터미널은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주차장 안에 있어 찾기가 쉽지 않다. 부산의 택시 기사들도 3곳의 터미널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다 보니, ‘크루즈를 타고 왔다’는 승객 말에 영도로 안내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관광 안내데스크 직원들이 콜택시를 불러줘서 겨우 출항 시간에 맞춰 오는 일도 벌어진다. ‘영도에서 국제여객터미널로 갔다가 마지막에 제2터미널로’ 오는 일도 있다.
관광 콘텐츠도 돌아봐야 한다. 대부분의 크루즈는 수도권 여행사와 계약해 ‘부산 겉핥기’ 식 상품으로 운영된다. 지역 업체들은 진입 장벽을 느끼겠지만, 특히 개별 관광객을 위한 특색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적극적으로 알리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들에게 부산 진면목을 보여주지 못하면 다시 돌아올 이유가 없다.
크루즈 관광은 단기 체류형이다. 짧은 시간에 도시 인상을 받는다. 그 짧은 시간이 혼란과 불쾌감으로 채워진다면 아무리 크루즈가 많이 들어와도 부산의 이름은 남지 않는다. 부산의 첫인상을 바꿀 때다.
김동주 경제부 차장 nicedj@busan.com
2025-05-1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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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동남권 관문공항에 알맞은 시기는 언제인가
4월 초, 진로 강의를 간 적이 있는 부산 한 여고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학생들이 수행평가를 위해 지역지와 중앙지의 차이점과 역할에 대해 궁금한 점을 메일로 묻고 싶다는 요청이었다. 꼼꼼한 질문들에 답하면서 지방공항 논쟁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남부권 관문공항이 필요하다는 숙원에 ‘멸치 말리는 공항’ 운운하면서 국토 절반에 살고 있는 지역민들을 모욕한 일부 언론을 지적하고, 가덕신공항 건설 확정에는 지역의 목소리를 전한 지역 언론의 역할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때만 해도 지나간 이야기인줄 알았다.
한 달 만에 상황은 급변했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국가계약법을 어기고 정부 입찰 공고에서 약속한 공사 기간보다 2년을 더 초과한 공사 기간을 반영해 기본설계를 내놓으면서 가덕신공항 공사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국토교통부가 가덕신공항 부지조성 공사 입찰을 처음 공고한 것이 지난해 5월이다. 세 차례나 단독 입찰을 했던 현대건설은 이런 조건을 잘 알고 수의계약에 참여하기로 해놓고는 6개월 만에 입찰 조건을 어긴 기본설계안을 들고 왔다.
국토부 장관은 현대건설의 공기 연장안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했지만, 2029년 12월 개항, 착공 7년 후 준공이라는 정부 약속을 믿고 기다린 남부권 국민들만큼 황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덕신공항은 참여정부 때 국가적 이슈로 등장해 정권이 다섯 번 바뀌는 동안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정부 기본계획으로 확정된 국정 사업이다. 국가계약법도 무시하는 전례 없는 건설사의 배짱으로 대규모 국책 과제가 최소 1년을 허비하게 됐다. 국정 과제를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할 국토부도 당연히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이 사태에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이제 와서 정부 기본계획이 틀렸다면 동남권의 30년 숙원 사업을 정부가 타당한 근거도 없이 추진했다는 말이다. 공기 연장이 필수라는 건설사 논리가 맞다면 정부가 1년 동안 전문가 용역을 거쳐 수립하고 고시한 기본계획을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대신에 엉뚱한 이야기들이 다시 흘러나온다. 가덕신공항 규모를 이야기하면서 ‘여의도의 몇 배’ 운운하는 것 정도는 수도권 중심 시각의 가장 가벼운 단계다. 정부가 약속한 국책 사업을 지연시키고 흔들어놓은 쪽은 따로 있는데, 일부 언론은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고 애초에 정치적으로 무리하게 추진된 일정이라고 화살을 돌린다. 더 나아가 가덕신공항 자체가 표퓰리즘으로 결정된 사업이니 이참에 사업 추진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운운한다.
기막힌 이야기는 더 있다. 인천공항은 2033년에 여객 수용이 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지방공항의 눈치를 보느라 5단계 확장의 적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내년에 수립될 제7차 공항개발종합계획에 가덕신공항 등 지방공항에 승객이 얼마나 분산되는지를 먼저 검토하겠다는 것을 두고 무분별한 공항 건설은 정치 논리고, 선거용으로 결정된 가덕신공항 건설은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해공항은 포화 상태를 넘어선 지 오래고, 정부가 남부권의 관문공항으로 가덕신공항을 추진 중이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선거철마다 남발되는 정치적 SOC(사회기반시설) 공약의 예견된 실패라는 분석도 등장했다. 가덕신공항과 나란히 예시로 든 것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후보가 나란히 들고 나온 수도권광역급행열차(GTX) 확대 공약이다. GTX A·B·C 노선의 신속한 추진과 수도권 외곽, 강원까지 가는 연장 노선에 더해 D·E·F 노선의 단계적 추진을 검토한다고 한다. 약 134조 원이 필요하다는데, 가덕신공항 건설 사업 예산은 13조 5000억 원이다.
동남권은 안전한 공항의 적기 개항을 바란다. 2029년 12월은 2030월드엑스포 유치를 전제로 당긴 일정이 맞다. 동시에 엑스포를 지렛대 삼아 지역과 국가가 함께 생존하기 위한 전략상 마지노선이기도 했다. 나라를 망치는 수도권 일극체제에서 탈피해 국가의 새로운 발전 축을 가동하기 위한 목표다. 노인 인구가 청년 인구를 역전한 부산에서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가지 않고도 미래를 계획하고 세계를 꿈꿀 수 있는 시간표다. 지금 이 순간도 인천공항을 오가는 데 연간 1조 원이 넘는 돈을 길바닥에 쏟고 있는 동남권 국민들의 불편을 해소할 적기다. 지금 당장이라고 해도 늦었다. 안전은 기본이다. 신공항 논의가 본격화된 계기가 2002년 129명 사망자를 낸 김해 돗대산 중국 민항기 추락 사고다. 무엇보다 동남권 국민들이 직접 이용할 공항이다.
정부는 동남권 800만 국민들과 정부 약속에 대한 신뢰를 최우선에 두고 안전한 공항을 제때 개항하기 위해 가능한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국민들도 대선 후보들 중 누가 국가균형발전에 진정성을 갖고 가덕신공항을 말하는지 똑똑히 지켜볼 것이다.
최혜규 사회부 차장 iwill@busan.com
2025-05-12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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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캡틴 아메리카의 추락
검찰이 ‘캡틴 아메리카’ 복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 시위를 하며 중국 대사관에 난입하고 경찰서 유리창을 깨부순 40대 남성에게 지난달 말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이 남성은 최후진술에서 “모든 죄를 지금 다 인정하고 피해받은 모든 분에게 사과드리고 싶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잘 녹아 들어갈 수 있도록 선처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지금은 이미 때가 늦었다. 며칠 전에는 부산역 광장을 지나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드는 시위대를 마주친 일이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캡틴 아메리카에 대해서도 찾아보게 됐다.
마블코믹스 영화의 히어로 캡틴 아메리카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1년 전인 1940년에 탄생했으니 우리 나이로 85세의 노인인 셈이다. 당시 주적은 나치였다. 작가 조 사이먼은 신문을 읽다 유럽을 정복하려는 히틀러를 보고 세상에서 보기 드문 완벽한(?) 악당이라고 감탄했다. 그가 히틀러의 ‘대적자’로 만든 캐릭터가 캡틴 아메리카다. 캡틴 아메리카는 미국을 진정 사랑하는 애국자다. 그의 주된 고뇌가 “나는 미국이 이대로 흘러가는 걸 지켜봐야 하는가?”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자의식 과잉 상태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2016년에 나온 영화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에서 스파이더맨과 대화하는 대목은 그가 누구인지를 말해 주고 있다. “언론이 뭐라고 하건 상관없어. 대중이 뭐라고 하건 상관없어. 온 나라 전체가 그릇된 것을 옳다고 하더라도 상관없어. 이 나라는 다른 것보다 이 한 가지 원칙을 기반으로 세워졌네. 결과에 상관없이, 우리가 믿는 것을 옹호해야 한다는 것. 만약 대중이나 언론, 전 세계가 자네한테 비켜야 한다고 말한다면, 자네의 임무는 진실의 강 옆에 선 나무처럼 굳게 뿌리를 박고 이렇게 말하는 거지. 싫어, 네가 비켜!” 캡틴 아메리카는 나중에 미국 대통령까지 된다. ‘호수 위 달그림자’가 생각난다. 왜 이런 부류의 분들은 맥락 없이 ‘진실의 강 옆에 선 나무’ 같은 문학적 표현을 억지로 끼워 넣는지 모르겠다.
영화 속 캡틴 아메리카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를 앞세워 미국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다. 80세를 바라보는 트럼프는 나치 자리에 중국을 대적자로 갈아 끼운 뒤 전 세계를 상대로 “싫어, 네가 비켜” 식의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 결과는 한마디로 말해 ‘카오스’다. 트럼프 취임 100일이 지나면서 세계는 혼돈에 빠졌고, 미국은 우리가 알던 나라가 아니게 되었다. 미국인 수십만 명이 “4년 내 미국이든 트럼프든 하나는 무너지겠다”며 시위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대외적으로는 큰형 노릇을 하고,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이민자들을 유입시킨 덕분에 오늘날의 미국이 되었다. 이대로 가면 아메리카라는 용광로가 머지않아 꺼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캐나다 마크 카니 신임 총리는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어야 한다는 무례한 발언과 관세 공격에 미국과의 오랜 관계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가자지구와 파나마운하, 덴마크 자치령 그린란드까지 트럼프의 영토 확장 욕심이 심상찮다. 트럼프의 노골적인 반이민정책에 미국 영주권자들은 혹시 돌아오지 못할까 해서 해외여행마저 취소하고 있다고 한다.
애플 창업가 스티브 잡스는 시리아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전 세계 고급 인공지능(AI) 연구원 절반이 중국 출신인데, 이들 중 57%가 미국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아메리칸드림으로 일어선 나라다. 처음엔 트럼프가 캡틴 아메리카를 닮았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위협을 통한 영토 확장 야욕과 반이민정책은 히틀러와 놀랍도록 닮아 있으니 이 무슨 아이러니인지 모르겠다.
트럼프의 관세 전쟁 선포에도 ‘한국호’에는 선장이 없는 지금의 상태가 안타깝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부산 기업들은 미국으로부터 불공정 거래 압박을 받는 등 이미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는 주부산미국영사관의 문을 닫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부산미국영사관은 부산·울산·대구·경남·경북·제주 지역을 관할하며, 양국의 우호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상징적인 곳이다. 한국을 머니머신(현금인출기)이라고 말하고, 동맹을 많은 것을 얻어내기 쉬운 거래 상대로 생각하면 더 이상 신뢰관계가 유지되기 어렵다.
캡틴 아메리카도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앤트맨, 블랙위도우 같은 영웅들과 힘을 합쳐 싸웠다. 삥만 뜯어낸다면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싶다. 한국과 미국은 각자의 집 앞에 내린 눈을 치워야겠지만 대통령 한 명 잘못 뽑아 이 무슨 난리인가 싶다. 손바닥의 ‘왕(王)’ 자는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표시였다.
박종호 스포츠라이프부 선임기자 nleader@busan.com
2025-05-0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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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해수부 부산 이전과 함께 챙겨야 할 일
대통령 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기 대선에서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공약은 부산 지역 민심에 꽤 반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도 공약이 없었던 게 아니어서 기시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해수부를 필두로 해양수산 관련 공공기관이 관련 기업들까지 부산으로 이전하는 마중물 역할을 확실히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큰 것도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수도권이나 충청, 호남, 대구·경북 등 다른 지역에 비해 부산은 실속을 못 챙기는 면이 많았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때 사업 규모가 큰 공공기관을 끌고 오지 못했다. 부산 이전 대상인 큰 공공기관은 핵심 기능은 수도권에 남겨두고 옮기는 행태를 보였다.
해수부는 어떤가. 여러 정부 부처 가운데 예산 규모는 꼴찌 수준이다. 1996년 8월 처음 설립된 이후 30년이 됐지만 올해 예산은 6조 7816억 원에 그친다. 해수부보다 늦게 생긴 중소벤처기업부 올해 예산이 15조 2920억 원에 이르는 것을 보면 해양수산에 대한 국가 차원 인식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해수부 부산 이전 공약이 야당 후보 입에서 발화된 뒤 지난달 22일 지역 시민사회단체에서 해수부 기능 강화를 공약에 반영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은 이런 문제의식과 궤를 갖이한다. 건설교통부 외청이던 해운항만청, 농림수산부 외청이던 수산청에 수로국과 해양경찰청을 더해 만든 해수부가 더 성장하지 못하고 30년의 외피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재에 밝은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2기를 시작하면서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를 건드리고, 대규모 선박 발주를 추진하는 데서 보듯, 지금은 해양패권 쟁탈전이 벌어지는 시대다. 1995년 1월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30년간 유지됐던 글로벌 분업과 공급망에 근원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다. 물론 중국의 글로벌 패권 장악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미국의 의도 때문이지만, 과거의 자유무역 틀이 그대로 유지되기 어려운 것만큼은 분명하다. 이 공급망을 연결하는 것이 바로 해운·항만·물류산업이기에 그 중요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특히 2030년을 전후해 연간 6개월 이상 상업 운항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북극항로가 열리는 것은 유럽과 미주로 향하는 마지막 환적 거점으로서의 부산항 위상을 더 강화시킬 절호의 기회다. 선박 연료와 선용품 보충, 선원 교체 등 북극해로 향하기 전 마지막으로 화물을 환적하고 배와 선원을 채비하는 거점 역할을 부산항이 하게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바다 없는 세종시에서 한반도 대표 항만 부산항에 오는 기회를 지켜보고만 있어서야 되겠는가. 북극항로 시대의 부산은 수에즈운하로 향하는 길목, 믈라카 해협을 끼고 급성장한 싱가포르처럼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게 된다. 물론 국가와 지방 차원의 면밀한 준비가 선행되어야 하고, 이 준비작업을 부산에 이전한 해수부가 주관해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해양 금융·보험과 해운 정보 서비스, 해사법원 등 부가가치 높은 해운산업이 전통적인 해운항만 산업의 체질을 새롭게 탈바꿈시킬 것이다.
부산항발전협의회와 신해양강국국민운동본부 등은 조선·해양플랜트 산업과 물류 산업 관련 업무를 해수부가 함께 관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각에서는 해양 치유 등 새로운 산업으로 떠오르는 해양관광레저 산업도 해수부가 관할해야 한다고 본다. 현재 조선과 해양플랜트 산업은 산업통상자원부, 물류산업은 국토교통부, 해양관광레저는 문화체육관광부가 맡고 있다. 담당 업무를 맡은 정부 부처는 흩어져 있지만 무역과 공급망의 흐름에서 보자면 대체로 제조사-운송-해운-육상운송-재가공(보관)-유통점-소비자 형태로 흐름이 이어진다. 이 흐름을 여러 부처가 나눠 맡는 것이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되는지 진지하게 살펴야 한다. 수출품 99.7%를 해운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 현실에서 해수부가 이 흐름 전체를 관할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 아닐까? 배를 새로 짓고, 해양 시추를 위한 플랜트를 만드는 일도 결국 글로벌 해운·에너지 시장 흐름과 맞물리는 일이므로 해운을 중심에 두고 국내 제조 산업을 진흥해야 할 것이다.
연간 예산 7조 원도 안 되는 해수부로는 한국의 해양 경쟁력을 담보하기 어렵다. 해양 관련 전·후방 산업을 총괄하는, 강력해진 해수부로 부산에 올 때 그 진정한 시너지가 발휘될 것이다. 전국 최고 속도 초고령 도시가 되어가는 부산을 살릴 마지막 기회이자, 해양패권시대 우리나라의 살길을 도모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다. 대선을 앞두고 부산이 챙겨야 할 실리가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는가.
2025-05-0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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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탄핵 포비아'가 이끈 역주행의 결말은
‘12·3 비상계엄’이 실패로 끝나는 순간, 공동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여당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는 자명했다. 정적 제거에 군을 동원한 시대착오적이고, 위험천만한 대통령은 더 이상 권좌에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상당한 고통의 시간을 감수하더라도 철저한 사죄·반성·쇄신에 나서는 것이었다. 잘못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 뒤 재기에 나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경로다. ‘차떼기당’으로 무너지던 한나라당의 ‘천막당사’가 그랬고, 2007년 대선 폭망 이후 친노(친노무현) 핵심의 ‘폐족’ 반성과 총선 불출마가 그랬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번엔 정반대 방향으로 ‘역주행’했다. 대통령의 ‘버티기’를 엄호하면서 “계엄은 이재명 민주당의 폭거 때문”이라고 받아쳤다. 염치 불구하고 이대로 머리를 숙이면 ‘보수 궤멸’이고, 공격이야말로 최상의 방어라는 논리가 횡행했다. 근거는 2017년 경험한 탄핵의 공포였다. 당 중진, 영남권 의원 등을 중심으로 “탄핵으로 남은 것은 정치 보복, 적폐 수사 뿐”, “이번에도 무너지면 20년 동안 정권을 잡기 어렵다” 등 ‘탄핵 트라우마’를 부추기는 경험담이 초·재선들의 상식적 판단을 압도했다. “탄핵 반대해 욕 많이 먹었지만, 1년 후에는 ‘의리 있어 좋다’며 찍어주더라”는 어처구니 없는 무용담도 회자됐다. 여기에 ‘정치 보복은 몰래 하는 것’이라는 ‘이재명 포비아’가 공포를 배가했다.
결국 계엄을 막고, 탄핵을 이끈 당 대표가 ‘배신자’ 질타 속에 쫓기듯 사퇴했다. 대통령의 일탈을 가장 크게 책임져야 할 친윤(친윤석열) 핵심들이 다시 당의 방향타를 쥐었다. ‘국정 농단’과는 비교할 수 없는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한 사태에도 사죄는 미미했고, 누군가 책임 지는 일도, 뼈를 깎는 쇄신도 없었다. 대신 “계엄으로 민주당의 국정마비, 국헌문란 행태들을 국민들이 알게 됐다”며 당 지도부가 ‘계몽령’을 실제인 양 언급했다. 군인들이 국회와 선관위를 침탈하는 장면을 온 국면이 실시간으로 지켜봤는데도 말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대통령의 궤변처럼, 국민의힘에서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상식을 뒤집은 역발상(?)은 일순 성공하는 듯했다. ‘광장’의 결집이 이뤄졌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치솟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2017년과는 사뭇 다른 전개에 “우리 전략이 맞았다”는 환호성이 당내에 울려퍼졌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탄핵 선고로 조기 대선이 시작되면서 역주행에 대한 ‘과태료’는 시시각각 쌓이고 있다. 분당은 없지만, 분열은 현재진행형이고, 결별하지 못한 전직 대통령은 탄핵의 강 앞에서 당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 있다. 그토록 “이재명은 안 돼”를 외쳤지만, 민주당 이 후보가 보수 후보 전체 지지율을 압도하는 대선 구도는 변함이 없다. 해양수산부 이전 공약에 부산이 들썩이고, 기획재정부의 예산 편성권을 대통령실에 두겠다는 발상에 국민의힘이 “제왕이 되려 하느냐”고 발끈하는 모습 자체가 이 후보에게 대선 주도권이 넘어갔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2017년 보수는 궤멸적 타격을 입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 탄핵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겪으면서 아픔과 상처가 없을 수 있나. 그 과정이 쌓여 5년 만의 정권 탈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설픈 탄핵 경험에 기대 아픈 정공법을 피하고 존재하지 않는 우회로를 찾으려니 더 큰 궁지에 몰린 형국이다.
국민의힘 5개월 전으로 돌아가 대통령과 깔끔하게 결별하고, 친윤 핵심이 2선으로 물러난 뒤 ‘이재명 민주당의 폭주를 저지하기 위해 마지막 기회를 달라’고 절절하게 호소했으면 어땠을까? ‘육참골단(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이라고 했다. 아무런 변화도 희생도 없이 3년 전부터 줄창 틀어댄 ‘반 이재명’의 낡은 레코드로는 중도층의 귀를 사로잡을 수 없다.
국민의힘의 소위 전략가들이 짜고 있는 ‘빅텐트’가 구원의 동아줄이 될 수 있을지도 현재로선 회의적이다. 2002년 정몽준-노무현 단일화는 서로 다른 영역을 차지한 두 후보의 확장형 연대였고, 불리한 여건을 수용하고 정면 승부에 나서는 드라마가 있었다. 탄핵된 정부의 총리와 하는 ‘동종교배’가 이런 감동과 변수를 만들 수 있을까. 그저 단일화라는 정치 기술 만으로 국면을 뒤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면 유권자들의 수준을 너무 낮게 보는 것이다.
최근 만나본 국민의힘 의원들은 ‘반 이재명’ 정서에 기대 어차피 ‘51대 49’ 싸움이라며 2022의 박빙 대선을 그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나는 어째 2017년의 전철을 고스란히 밟아가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입법부와 행정부를 완전 장악한 절대 권력의 탄생이 임박한 지금, 견제 세력의 지리멸렬은 정치를 넘어 국가적 위기 요인이다. 남은 30일, 보수는 과연 희망의 불씨를 지필 수 있을까?
2025-04-30 [1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