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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부산이라 좋다'가 역설적으로 들리는 이유
3년 전 일이다. 20여 명의 지인과 부산이라는 도시를 알아가기 위해 ‘도시탐사대’를 만들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도시 곳곳을 탐사하고 이를 기록하기로 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단 한 번의 현장 탐사를 끝으로 사실상 중단돼 버렸다. 최근에는 코로나의 위세도 점점 잦아들고 반대로 도시를 알고 싶은 기자의 갈증은 더 높아져 주말에 짬을 내 3~4명의 지인들과 함께 ‘동네 한 바퀴’를 하며 도시 곳곳을 돌아보고 있다.
모르는 도시 곳곳을 알아가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지인들과 동네를 둘러보며 문화와 역사의 흔적을 찾고 얘기하는 즐거움, 또 맛집이나 카페, 유명 건축물 등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도로가 사방을 막아버려 섬처럼 고립돼 버린 ‘정과정 유적지’(수영구 망미동)를 보곤 많이 안타까웠다. 과거와 현재의 단절, 소통의 부재를 보아서다. 유배 문학이나 고려가요, 혹은 부산의 역사를 언급할 때 좀처럼 빼놓을 수 없는 곳이지만, 우리는 이를 너무 홀대하고 있었다.
단절은 도시 속에 널브러져 있었다. 특히 아파트 단지는 심각했다. 대부분 스크린 도어가 설치돼 주민이 아니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가로경관 대신 성벽같은 아파트 담장이 가로막고 있었다. 마을의 확장이라는 ‘수평적 확대’에서 고층 아파트를 내세운 ‘수직적 압축’으로 도시가 바뀌면서 가장 큰 도시 변화는 바로 이웃과의 소통 부재인데 이걸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구덕산 아래 빼곡히 들어선 고층 아파트를 보곤 격세지감을 느꼈다. 이런 생각도 해봤다. 어릴 적 여기서 살았던 사람이 오랜만에 이곳을 방문한다면, 어떤 마음일까? 어린 시절의 흔적이나 추억을 찾을 길 없어 꽤 슬펐을 텐데.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생활상이 도시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 흔히 ‘도시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다’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이를 보고, 만지고, 느끼면서 성장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자긍심도 갖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산이란 도시는 너무 쉽게 그 흔적을 지워 버렸다. 남선창고, 하야리아 공원 내 건물들, 동래구청사 등. 때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때론 재개발·재건축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영화에 대한 공간 소멸은 그 단적인 예다. 삼일·삼성·보림극장은 이제 옛 이름이 돼 버렸다. 누군가에겐 “내 청춘은 여기서 시작돼 이곳에서 마침표를 찍었다”고 할 수 있는 곳이었지만, 이들 극장들은 하나둘 사라져갔다.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아야 할 ‘영화 도시 부산’의 부끄러움이며 슬픈 과거다.
이것만이 아니다. 수많은 공간이 단순히 오래됐다는 이유로 허무하게 소멸돼 갔다. 이런 걸 보면 부산은 ‘과거를 지우는 지우개 도시’라 해도 할 말이 없다. 과거를 지움은 추억 ·시간과의 단절이요, 나아가 우리의 아버지·할아버지 세대와의 단절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 도시 어디에선가 또 다른 우리의 기억들이 너무 쉽게 지워지고 있을 터이다.
영국의 환경심리학자인 제니 로와 건축학자 라일라 맥케이는 공동저서 〈회복도시〉라는 책에서 ‘행복한 도시를 위한 7가지 요건’을 얘기했는데, 이중 ‘이웃도시’와 ‘포용도시’가 포함돼 있다. 이는 서로 배척하지 않고 이웃처럼 함께 살아가는 도시를 말한다.
예기〈禮記〉에 이런 말이 있다. ‘예라고 하는 것은 근원으로 돌아가 옛것을 보존하며 자신을 존재하게끔 한 사람들을 잊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이젠 도시에서도 예가 지켜져야 한다. 부산이란 도시가 그랬으면 좋겠다.
도시는 표정만 있는 게 아니라 역사와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곳이어야 한다. 켜켜이 쌓인 우리의 삶이 살아 숨쉬는 곳 말이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없애고, 지워도 두려워하지 않는 도시는 정녕 두렵다.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않는 도시는 병든 도시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평론가 발터 베냐민은 “새것을 갖는 게 아니라, 오래된 것을 새로운 가치로 만들면 아무리 오래된 것도 새것이 된다”고 했다.
이젠 부산도 달라져야 한다. 단절이 일상화되는데도, 미래 자산이 눈앞에서 사라지는데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 놓고 ‘Busan is good(부산이라 좋다·부산의 새 슬로건)’라고 해선 안 된다. 그렇다면 양심 불량이다. 아니 도시 정체성의 상실이다. 시민의 입에서 “부산이라 좋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그때를 상상해 본다. 도시 슬로건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뉴욕시의 슬로건 ‘I Love New York’은 50여 년간 그대로다.
지금 ‘부산이라 좋다’라는 말이 역설적으로 들리는 이유다.
2023-01-2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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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사람이 모이는 부울경
새해를 맞아 지인들과 마주한 자리. 여러 이야깃거리를 따라 흐르다 결국 종착지는 ‘부울경의 현실’이다. 부산을 중심으로 한 부울경이 살기 좋은 곳이긴 하나, 살아가며 헤쳐가야 할 처지가 해가 갈수록 녹록하지 않아서다. 실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서로 응원해야 할 연초부터 이 데자뷰를 벗어나지 못한 지 오래다.
〈부산일보〉는 올해 신년기획의 한 테마를 ‘사람 모이는 도시로’로 정했다. 더 이상 부산권에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계속 탈출한다. 기획보도를 하면서 2035년으로 예상됐던 부산과 인천의 인구 역전이 실은 2028년께로 앞당겨질지 모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가까스로 지키고 있는 부울경 최대 도시, 대한민국 제2의 도시 위상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부산이 처한 상황은 그만큼 다급하다.
전국을 집어삼키는 수도권에 대항하는 부산·울산·경남권의 3대 미래 동력은 메가시티, 2030부산엑스포, 가덕신공항이다. 한데 어느 것 하나 확실히 이뤄 놓은 게 없다. 핵심인 메가시티는 성사를 코앞에 두고 단체장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침몰했다. 가덕신공항마저 그 위상이 타지에 위협받는다. 이대로는 파국이다.
운 좋게도 연수차 1년간 지냈던 미국 텍사스주 주도 오스틴은 성장하는 도시다. 남부의 명문 텍사스대학(UT)이 인재를 배출하는 교육·문화도시이기도 하다. 애플과 구글, 삼성전자는 물론 혁신의 아이콘인 테슬라까지 세계적인 기업들이 계속 오스틴 권역에 둥지를 튼다. 실리콘밸리 오라클도 최근 본사를 오스틴으로 옮겼다. 청년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계속 늘어나니 당연히 전국에서 사람이 몰려 든다. 10년간 인구증가율이 30%를 웃돌고, 45세까지 청년 인구가 절반에 가깝다. 도시가 살아 숨쉬고, 도시 특유의 문화와 축제가 꽃을 피운다. 그러니 미국 청년이 살고 싶어하며,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힌다.
대체 오스틴의 비결은 뭘까. 단 하나를 남긴다면, ‘법인세와 개인소득세가 없다’는 것이다. 기업으로선 무시 못할 큰 혜택이다. 개인으로 봐도 캘리포니아나 뉴욕 등 타지에 비해 세금 부담이 현저히 낮다. 그렇다고 도시의 세수가 부족하지도 않다. 기업친화적인 환경이 덩달아 경제를 성장시키며 선순환한다.
그렇다면 부산은? 부울경 시도민의 세금 목줄을 정부, 즉 수도권이 쥐고 있다. 세금 규모를 결정할 권한이 없는 지자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부산권에 오는 기업에 지역 은행이 금리를 파격적으로 낮춘다면 민간 기업의 부산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경쟁력이 떨어진 시중은행들이 앞다퉈 부산형 금리를 내세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지역 은행의 금리가 월등히 낮다고 말하는 이가 없다. 지역 은행 수익이 나지 않아 그렇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다.
차라리 민·관이 손을 잡고 대대적인 부울경발 봉기를 일으키는 건 어떨까. 지역 국·공립대의 등록금을 파격적으로 낮추도록 만들어 청년과 인재를 더 붙잡고, 지역 공기업의 지역대학 인재 할당 비율을 더 높이자는 것. 이에 더해 부울경에 남거나 찾아오는 국내외 청년, 학생들을 위한 대규모 민·관 기금 마련을 추진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기업에 양질의 인력을 공급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부산일보〉는 최근 ‘이방인이 된 아이들’ 기획 보도로 가파르게 늘고 있는 부산권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의 현실을 알리고 대안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보도 이후 가장 많은 반응은 ‘그런 아이들이 있는 줄 몰랐다’는 것이다. 팍팍한 삶을 살다 보면 눈길을 주기 힘든 건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기사 댓글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로 못할 악플이 무수히 달렸다. 저출산과 학령인구 감소, 청년 탈출로 소멸하는 지역이 문을 걸어 잠근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수도권 일극주의를 타파하자고 외치지만, 정작 이들을 위한 사회 시스템은 수도권에 비해 한참 뒤진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나마 법무부 부산출입국외국인청과 부산시, 지역 대학 등이 함께 인구감소지역 취업비자를 시범 도입하며 생활인구를 다잡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기서 부울경 시도민이 눈여겨 볼 지점은 바로 리더의 자질이다. 부산의 박형준식 외유내강 리더십, 대구 홍준표식 돌격형 리더십 가운데 승자는 누구일까. 중차대한 현안을 돌파해야 할 박 시장의 리더십에 한계가 온 건 아닌지 부산시민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경남과 울산 시도민도 메가시티 등 주요 현안을 두고 내린 단체장의 결정이 옳았는지, 선거로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부울경은 편가르기를 벗어나 산업 재편으로 전남 남부, 경북 해안까지 포용하는 신남부권 중심지가 되는 더 큰 꿈을 꾸어야 한다.
2023-01-1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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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살기 좋은 부산, 떠나는 부산
아이들이 대학 갈 나이가 되니 부산의 교육과 대학 현실이 새삼 와 닿는다. 과거 이류, 삼류로 취급받던 서울 몇몇 대학들의 입시 수시·정시 합격선을 보고 깜짝 놀랐고, 이름도 낯선 서울과 수도권 대학이 부산대와 비슷한 수준인 것에 더 놀랐다. 여기다 요즘 아이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을 우리 때보다 훨씬 더 선호한다. 성적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조금의 가능성만 있다면 기를 쓰고 서울로 가고 싶어 한다.
생활 인프라를 갖춘 대도시이면서도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고, 물가도 상대적으로 저렴해 “그래도 부산만큼 살기 좋은 곳 있나”라고 말 해왔던 것은 기성세대의 자위일 뿐이다. 20여 년 전만 해도 지방대를 나와 대기업에 입사하기가 그리 어렵진 않았다. 또 지역의 탄탄한 중소기업에 들어가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부산은 제조업 기반의 전통산업이 몰락했고, 새로운 돌파구는 여전히 열지 못했다. 부산에 삶의 터전을 이미 마련한 어른들은 만족할지 몰라도, 아이들은 일자리가 없는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경쟁하고 싶어 한다. 지방대를 나와선 수도권 대학 출신들과의 경쟁에서 밀린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예전보다 지방 학생들의 의·약대와 서울 명문대 진학은 갈수록 바늘구멍이 되고 있다. 이들 인기 대학과 학과엔 갈수록 서울 강남 3구를 위시한 수도권 학생들의 몫이 계속 커진다.
무한경쟁 속에 지방의 산업과 교육은 맥을 못 추고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대학 진학과 취업을 위해 부산 청년들은 수도권 등 타지역으로 빠져나가고, 신산업에 뛰어든 기업들은 인재 확보가 어렵다며 부산을 떠나고 싶어한다. 부산의 15개 대학 중에 무려 10곳은 올해 정시 경쟁률이 3 대 1 미만으로 사실상 미달이다. 인구 감소로 대학 구조조정은 이제 필연적이긴 하나,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는다는 ‘벚꽃 엔딩’ 이 눈앞에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지긋지긋하게 강조돼 온 말이지만, 정부 수립 이후 지속돼 온 수도권 일극주의를 멈추지 않고는 딱히 해답이 안 보인다. 기업과 자본, 인력이 넘쳐나는 수도권과의 경쟁에 이미 부산을 비롯한 지방은 백기를 들었다. 이제 제발 살려달라는 아우성뿐이다. 그러나 중앙의 권한과 자원을 지방으로 넘기는 지방분권은 여전히 요원하다.
지방이 바라는 2차 공공기관 이전도 아직 갈 길이 멀다. 1차 공공기관 이전으로 부산에 금융·해양 공기업들이 모여들면서 청년들이 선망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생겨났다. 부산 최고의 직장이 지역마다 다 있는 ‘지방은행’이란 자조 섞인 푸념은 이제 듣지 않아도 된다. 또 부산대가 그나마 이 정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일정 부분 이들 공기업의 지역인재 할당제 덕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부산이 기대했던 금융중심지 육성은 1차 공공기관 이전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지난 10여 년의 세월동안 명확해졌다. 보다 많은 금융기관의 집적으로 시너지를 내야 금융중심지로서의 성장은 물론 신산업 투자 확대로 부울경 산업 생태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부산이 가장 기대하는 것은 가덕신공항 건설과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다. 육해공 물류 허브를 구축하고 엑스포를 통해 다양한 기반시설을 조성하면 물류와 산업, 금융, 문화, 관광이 결합한 글로벌 허브도시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물론 이 두 개의 중요한 과제를 빈틈없이 준비해야겠지만, 다급한 부산의 현실을 보면 2030년까지 이것만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장의 일자리 창출과 경쟁력 있는 대학 만들기에도 전력을 다해야 하는 처지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부산 기업 (주)금양이 미래 핵심산업으로 주목받는 이차전지 생산공장을 기장군에 짓기로 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금양은 국내에서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에 이어 세 번째로 ‘2170 원통형 배터리’를 자체개발하는 데 성공했지만, 마땅한 부지를 찾지 못해 다른 지역을 알아보기도 했다. 이에 부산시가 적극적으로 나서 땅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해 기장에 둥지를 틀게 됐다. 또 금양은 부경대 공대 인력 양성 지원을 해 왔는데, 최근 상위권 학생 상당수가 금양에 입사했다. 금양은 2026년까지 8000억 원을 투자해 공장을 조성할 계획으로, 이를 통해 연구·관리·생산 분야 일자리 1000여 개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의 혁신과 지자체·대학의 적극적인 의지가 이뤄낸 ‘지산학’ 합작품이다.
중앙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수적이긴 하지만, 내부의 변화와 혁신 없이 부산이 새롭게 나아갈 수는 없다. 지자체와 기업, 대학 모두 경쟁력 강화와 긴밀한 협업으로 제2, 제3의 금양 사례를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2023-01-0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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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부산의 나눔 열기 새해에도 쭉~ 이어지길
최근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으로 선행을 베푸는 ‘팬덤 기부’가 주목을 받고 있다. 팬덤 기부는 단순히 스타를 지지하는 팬 활동을 넘어 나눔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려는 행동으로 나눔 문화를 새롭게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으로 가수 임영웅의 팬카페 ‘영웅시대 위드 히어로’의 부산 남구·수영구·해운대구 모임인 ‘부산남수해’와 ‘부산금정산’은 각각 3년간 1000만 원 이상 기부를 약정하며 사랑의열매 ‘나눔리더스클럽’에 가입해 있다. 부산 영도가 고향인 강다니엘의 팬클럽인 ‘다니티’와 ‘like cat’, ‘팀어벤저스’ 등은 매년 영도 관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쌀, 난방비, 코로나 관련 방역물품 등을 기탁하고 있다. 가수 김호중의 팬클럽 ‘아리스’ 역시 유독 어려웠던 유년시절을 겪은 김호중을 응원하며 그의 생일마다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팬덤 기부’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고 하니 반갑다.
사랑의열매와 적십자사, 초록우산 등 각 모금기관에는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클럽이 형성돼 있다. 단순히 금전적 여유만 있다고 해서 이러한 고액기부자 클럽에 가입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고액기부자들은 기부금 납부 뿐 아니라 매년 아동시설을 방문해 직업·직장 멘토링 사업과 시설 개보수, 연탄나눔 봉사 활동 등에도 적극적이라고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고액기부자의 봉사활동 역시 참여숫자가 더욱 많아지고 그 활동도 다양해지고 있다고 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지난해 사랑의열매 고액기부자 클럽 가입자 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았던 도시가 부산이다. 그 증가폭 역시 부산이 최고였다. 기업이 3년간 1억 원 이상 기부하는 나눔명문기업 또한 부산의 누적 가입 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 더하여 지난해 적십자 월후원 회원의 증가율 역시 부산이 가장 높다. 부산이 내세울 수 있는 어떠한 기록보다 값진 것으로 자부할 만하다. 한 번 불이 붙으면 화끈하게 결과를 만들어내는 부산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의리’를 좋아하는 부산에서는 그 나눔의 모습도 ‘의리’가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따르면 인재양성 사업인 ‘아이리더’에 참여해 5명을 후원하는 (주)아이에스 김인석 대표의 선행에 영향 받은 (주)나우이엔티 손상호 대표, 홍원국제물류(주) 이웅석 대표, (주)비엔애드 김오성 대표는 나눔을 위해 김인석 대표와 ‘F4’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각각 1명의 아이리더를 더 지원하고 고액기부자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특히 이들은 김인석 대표의 생일을 맞아 부산지역 저소득가정 아동들에게 특별제작한 마스크 1만 장을 기부하기로 하자 이 소식을 들은 김 대표가 1만 장을 보태 총 2만 장의 마스크를 기부했다. 이밖에도 자신의 사업분야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기부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인성하이텍 이인웅 대표도 이들의 나눔에 합류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선한 영향력 확대의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와 별개로 지난해 10월 (주)디에이알 황성준 대표, (주)바른약품 배용우 대표, (주)다현메디칼 박기종 대표, (주)노벨 박용찬 대표, 포워드컴퍼니 강민철 대표 등은 모임을 가지다가 뭔가 좋은 일을 해보자는 결의를 하고 한 날 한 시에 초록우산을 통해 부산지역 내 보호아동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 역시 부산지역 기업인들 사이에 확산되는 나눔문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대한적십자 부산지사에 매월 기부금을 내면서 140회에 이르는 헌혈봉사까지 하고 있는 수월물류(주) 서영호 대표, 매년 100만 원씩 기부해서 10년에 1000만 원의 기부 목표를 세운 원불교적십자봉사회 박정수봉사원, 1004명의 적십자후원회원 추천을 목표로 현재 837명의 후원회원을 추천한 연산9동적십자봉사회 서영희 봉사원 등도 부산의 나눔문화 확산의 주역이다.
이밖에도 묵묵히 선한 일을 실천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의 힘으로 우리 사회가 버텨가고 있다. 기부와 봉사 활동을 적극적으로 알려 선한 행동에 타인이 동참하게 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 선한 행동을 알려 이들을 칭찬하고 본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바로 언론의 임무일 것이다. 새해 본연의 임무를 더욱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해본다.
이달 말까지 부산 부산진구 송상현광장에는 ‘사랑의온도탑’이 서 있다. 107억 원을 목표로 해서 목표액의 1%인 1억 700만 원이 모일 때마다 나눔 온도가 1도씩 올라간다. 지난해 마지막 날까지 77억 6000만 원이 모금돼 72.6도를 달성 중이다.
2023년 새해에는 우리 사회의 선한 이들이 더욱 주목받고 사랑받아 그 선한 영향력이 더 적극적으로 전파되길 바란다.
2023-01-0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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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2030부산세계박람회에 목숨을 걸라
하면 좋고 안해도 되는 행사가 아니다. 이번에 못하면 다음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 죽기 살기로 매달려야 하고, 반드시 해야 하는 행사이다. 바로 ‘2030부산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얘기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이번에 못하면 다음에 하면 된다”거나 “우리가 사우디와 싸워서 이길 수 있겠느냐”는 부정적인 얘기가 나돈다. 일정 부분 맞는 얘기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막대한 ‘오일머니’로 물량 공세를 펼치고,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세계를 유혹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2030엑스포를 유치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다고 세계가 깜짝 놀랄 정도로 우리나라에 엑스포 열기가 퍼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가 언제부터 국제사회에서 돈으로 승부했나. 전 국민의 관심과 기술력, 뚝심으로 올림픽을 두 번이나 유치했고, 아시안게임도 멋지게 해냈다.
미리 기죽을 필요가 없다. 2030엑스포 유치의 최일선에 선 박형준 부산시장 말처럼 우리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국회 엑스포 특위 위원으로 활약 중인 안병길 의원은 “우리가 승리할 수 있고,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말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 최태원 SK 회장 등 우리 사회 주도 세력이 총동원돼 유치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왜 미리 겁을 먹는단 말인가.
2030엑스포를 반드시 유치해야 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미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2030엑스포를 유치하면 올림픽·월드컵·등록엑스포 등 세계3대 국제행사를 모두 개최하는 세계 7번째 국가가 된다. 경제효과도 엄청나다. 엑스포가 유치되면 43조 원의 생산유발효과, 18조 원의 부가가치 등 61조 원의 경제 효과와 50만 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예상된다. 6개월의 행사 기간에 넉넉 잡아 5000만 명의 국내외 관람객이 부산을 찾을 전망이다. 부산에 젊은이들이 돌아오고 급감하던 인구도 다시 늘어나게 된다. 그야말로 부산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도시로 발돋움하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는 얘기다.
엑스포 유치에 성공하면 가덕신공항 건설이 급속도로 진행돼 2030년 이전에 완공되고, 각종 인프라 구축도 훨씬 빨라진다. 이미 확정된 산업은행 부산 이전 외에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등 각종 공공기관도 쉽게 부산으로 가져올 수 있다. 그런데도 “이번에 못하면 5년 뒤에 하면 된다”는 말이 나온다. 요즘 같은 초스피드 시대에 5년 늦어지면 우리가 50년 이상 뒤쳐진다.
사회의 각 주도 세력에 2030엑스포는 ‘위기이자 기회’이다. 엑스포 유치에 성공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국정 지지도는 급상승하고 자신의 구상도 과감히 추진할 수 있다. 실패하면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이런 점을 잘 알기에 윤 대통령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엑스포 유치에 에너지를 쏟는 것이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마찬가지다.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엑스포 유치에 성공하면 박 시장은 단번에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오를 수 있다. 2026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3선에 오른 뒤 2027년 대선에 도전할 수 있다. 실패하면 ‘3선 부산시장’ 자체가 힘들지도 모른다.
2030엑스포는 차기 총선 5개 월 전인 내년 11월 유치 여부가 결정된다. 엑스포가 여야 정치권 명운과 직결된다는 의미다. 엑스포 유치를 못하면 국민의힘은 22대 총선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국민의힘 소속 모 의원은 “엑스포 유치에 실패하면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참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국민의힘 과반 달성이 물건너 가고, 윤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국민의힘은 부산·울산·경남(PK) 총선에서 직격탄을 맞게 된다. 국민의힘은 현재 33석(전체 40석)의 PK 의석을 유지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상당수 의석을 민주당에 내줄 가능성도 있다. 국민의힘 PK 의원들이 엑스포 유치를 핑계로 실속도 없이 혈세를 써 가며 외국을 드나들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진정성 있게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 엑스포 유치에 힘을 보태야 한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우리와 무관한 일”인양 외면해선 안 된다. 엑스포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 민주당 지도부는 정신 차려야 한다. 민주당도 유치 실패의 역풍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대한민국의 모든 구성원이 목숨 걸고 엑스포 유치에 매달려야 한다. 부정적인 생각은 완전히 버리자.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반드시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 구국의 일념으로 엑스포 유치에 전념하자. 그리고 그 결과는 생각하지 말자. 그때 가서 득실을 따져도 늦지 않다. 노력하는 자에겐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뒤따른다. 모두 힘차게 외치자. “2030엑스포는 우리의 것이다.”
2022-12-25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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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잉크와 링크 사이
세기말의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던 1999년, 기자가 되었다. 신문사라는 곳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코였다. 잉크 냄새가 건물 전체에 은은했다. 점심 전에 나오는 신문(당시 석간)은 덜 마른 잉크 때문인지 촉촉한 느낌과 함께 진한 향기를 풍겼다. 기자라는 직업은 그렇게 아날로그로 다가왔다.
15년 뒤, 기자인 덕분에 미국 연수를 다녀왔다. 호기심에 들른 저널리즘스쿨 도서관에서 인상적인 내용의 책을 발견했다. ‘잉크의 시대는 가고, 링크의 시대가 온다’. 뉴스 플랫폼이 종이(ink)에서 웹(link)으로 옮겨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막연하게 느껴지던 디지털의 쓰나미가 확 덮쳐오는 것 같았다.
같은 시기 수업에서 ‘Disintermediation’(탈중개화)이라는 단어도 난생 처음 들었다. 그동안은 기자와 뉴스 소비자 사이에서 신문사나 방송사가 중개(media) 역할을 했는데, 앞으로 기자와 소비자가 바로 연결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언론사보다 기자 개개인의 브랜드가 중요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 2030년을 내다보는 지금, 기자들에게 웹이나 자기 브랜드는 일상이 되었다. 포털에서는 특정 기자를 구독해 그의 기사만을 골라 볼 수 있다. 또 어떤 기사를 많이 클릭했는지 매순간 성적표가 나온다. 외국의 언론 관련 콘퍼런스에 가면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기자’도 더러 볼 수 있다.
종이신문은 어떻게 됐을까.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 종이신문을 읽은 비율은 지난해 8.9%다. 2000년 81.4%, 2011년 44.6%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부산일보 11월 8일 자 23면 임영호 명예교수 칼럼)이다. 이런 급전직하의 한중간에서 나는 기자로 살았다. 반면, 1999년 서비스를 시작한 네이버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게 됐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나의 처는 집에서 삼겹살 구울 때나 ‘신문지’를 찾고, 기사는 오로지 포털에서만 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뉴스 자체에 대한 수요는 줄지 않는다는 점이다. 종이신문, 인터넷, 모바일을 다 합쳐 신문기사를 읽은 비율이 90%에 육박한다. ‘종이’로 된 신문은 잘 안 읽지만, 뉴스에 대한 수요는 여전한 것이다. 신문사 잉크 냄새가 마냥 좋았던 24년 차 기자 입장에서 이 같은 현실이 상전벽해처럼 느껴진다.
근본적 고민은 언론에 대한 신뢰 하락이다. ‘기레기’(기자 쓰레기)는 이제 낯설지 않다. 과거 ‘오보’라고 항의받던 것이, 요즘은 ‘가짜뉴스’라고 지탄받는다. 틀린 보도를 일부러 했다는 뜻이 담겼다. 클릭수에 매몰돼 정작 지향해야 할 것이 뭔지 잊기도 한다. 무신불립(無信不立).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백약이 무효다.
지난달 말 편집국 콘텐츠센터장으로 발령났다. “콘텐츠센터가 뭐하는 뎁니까?” 지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묻는 질문이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무엇이고,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 아래 <부산일보>는 도전을 시작했다. 편집국을 두 센터(콘텐츠, 신문)로 분리했다. 콘텐츠센터가 재료(기사·동영상·그래픽 등)를 생산하면, 신문센터가 그 중에서 엄선해 종이신문을 만드는 개념이다. 종이신문을 만들던 편집부 기능 일부는 취재부서로 돌렸다. 70년 넘게 신문을 만들던 관성을 깨고, 있는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재구성해 보려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도대체 뉴스 소비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모든 시도는 콘텐츠 생산 역량을 높이기 위함이다. 종이든, 포털이든, 부산닷컴(busan.com)이든 결국 승부는 ‘내용’에 따라 갈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내용의 폭과 깊이를 고민하는 중심이 콘텐츠센터장이다.
팩트를 검증하고, 맥락을 짚고, 쉽게 전달하는 것은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이다. 여기에 수도권 중심으로 돌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지역 여론을 결집하고 전달하는 도구로써 언론만 한 게 있을까. 시쳇말로 ‘가성비’ 높은 상품이다.
물건이 준비됐다면 어디에서 팔지 정해야 한다. 우리에겐 두 목표가 있다. 일단 독자 대부분이 있는 웹에다 많은 콘텐츠를 유통한다. 하지만 종이신문에 소홀할 수 없다. 책 <아날로그의 반격>에서는 눈, 코, 입, 귀, 손 등 오감을 쓰는 종이신문은 정보과잉시대에 럭셔리 상품이 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느린 저널리즘’을 대표하는 게 종이신문이다. 웹은 포털이 대세이지만, 부산닷컴의 자생력을 높이려고 한다.
“기자는 비판정신을 팔아먹는 직업이다.” 지금은 회사를 떠난 어느 선배가 내게 해줬던 말이다. 저널리즘(비판)과 비즈니스(밥벌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 이것은 언론사의 오랜 고민이다. 돌이켜 보면 세기말의 불안이 그나마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언론이라는 업(業)의 본질을 생각하며 더듬거리며 나아갈 뿐이다. 독자들의 응원과 비판을 바란다.
2022-12-1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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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2020년 11월 시작한 〈부산일보〉 젠더데스크 시스템이 어느새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초대 젠더데스크를 맡아 지금까지 활동 중인데 대한민국에 몇 명 되지 않는 젠더데스크라는 이유로 여러 번의 인터뷰를 비롯해 다양한 행사에 토론자로, 강연자로 섰다. 참석자도, 행사 성격도 다르지만 받는 질문은 대체로 비슷하다.
우선 “당신은 페미니스트인가요?”라는 물음이다. 답을 하기 전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라고 되묻게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혐오하고 늘 화가 나 있는 여자’ 혹은 ‘여성우월주의자로 남성과 대립하는 센 여자’로 잘못 알려져 있다.
그럼 페미니즘이란 무엇일까. 작가이자 평론가인 벨 훅스는 그의 저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에서 명쾌하게 페미니즘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라고 설명한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성차별을 받을 수 있고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성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할 권리가 없고, 그 어떤 조건으로도 차별받아서도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벨 훅스의 정의에 따르면, 나는 페미니스트가 맞다. 그렇게 페미니즘의 정의에 대해 공감을 나누고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답한다.
두 번째 자주 듣는 질문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는데 아직도 성평등이나 젠더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이다. 공정이 시대의 화두인데, 오히려 여성 때문에 남성이 역차별받는 불공정한 상황이 생길 때도 있다고 말한다.
얼마 전 ‘여성이 여전히 차별받고 있을까’라는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패널로 나온 젊은 남성은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가정에서 군림했고 가정을 돌보기 위해 어머니가 희생했다는 건 인정한다. 아버지 세대 남자들은 잘못이 있지만 우리 젊은 세대는 억울하다. 2022년 현재는 여성이 차별받는 것이 거의 없는 것 같다”라고 항변했다. 취준생 아들을 둔 60대 참석자는 여학생들이 워낙 학점 관리, 스펙 관리를 잘해서 아들의 취업이 더 힘든 것 같다는 자신의 사례를 말하기도 했다.
나는 이 토론회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리는 특권에 관해 이야기했다. 차별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민감하지만, 정작 자신이 누리는 특권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내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엄청난 재산을 가진 것도 아닌데 무슨 특권을 누리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 젠더의 관점에서 당신이 어떤 특권을 누리는지 몇 개의 질문을 던져본다.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안전을 걱정하는가’ ‘배달이 왔을 때 문을 열어줄까 고민한 적이 있는가’ ‘밤에 택시를 잡을 때 망설인 적이 있는가’ ‘택시를 탔을 때 집에 도착할 때까지 불안에 떨어본 적이 있는가’ ‘더 자주 웃으라는 말을 듣는가’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하는가’ ‘같은 자격을 갖추고 있는데 나의 임금이, 직급이 다른 젠더 동료보다 낮아서 속상해 본 적이 있는가’ ‘나이가 들어도 매력적으로 보여야 한다며 관리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런 문제들로 고민해 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다고 해도, 젠더 영역에선 타고난 특권을 누리고 있다. 젠더 영역뿐만 아니라 성적 취향, 인종, 연령, 지역, 능력, 사회경제적 계급, 장애 등 다양한 분야별로 특권층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모임에서 “좋아하는 이성 스타일은?”이라고 물었는데, 당사자가 “저는 동성애자인데 이성 스타일을 물어 당황스럽다”라고 답한다면 당신은 특권층으로서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 해결책은 무엇일까. 〈뷰티풀 젠더〉라는 책에선 ‘자신의 특권을 직시하고, 다른 사람의 공포나 불편함을 공감해주면 좀 더 평등한 세상이 열릴 것이다’라고 조언한다. 이 해결책은 차별에 대해서도 해당한다. 인식하지 못한 채 우리는 누군가를 차별하고 아프게 하는 말과 행동을 했을 수 있다.
다행히 사회 곳곳에서 차별적인 표현 수집하기, 가치중립적인 단어 사용하기 등 부끄러운 우리를 돌아보고 나아지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평등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 조직이 정의와 원칙에 의해 지배받는 한,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라는 말을 다시 새긴다.
젠더데스크 시스템이 혐오와 차별 문제에 대한 해답이 아닐 수 있어도, 노력의 시작임은 분명하다. 더디지만, 우리는 분명히 나아가고 있다.
2022-12-1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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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이건희컬렉션'을 보고 와서
2일 찾은 부산시립미술관 1층 로비는 활기가 넘쳤다. 부산일보사와 부산시립미술관이 공동주최하는 이건희컬렉션 한국 근현대 미술 특별전 ‘수집: 위대한 여정’을 보러 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며칠 전 부산시립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한 뒤 받은 문자를 안내 데스크에 보여 주고 입장권을 받았다.
3층 전시장으로 들어가자 권진규, 김기창, 김환기, 박고석, 박래현, 박수근, 오지호, 유영국, 이대원, 이상범, 이인성, 이중섭, 장욱진, 천경자 등 한국 미술사 주요 거장들의 주요 시기 작품 100여 점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지역에서 한국 근현대 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국립현대미술관·대구미술관·전남도립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컬렉션을 비롯해 리움미술관, 고려대박물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뮤지엄 산, 가나문화재단 등 컬렉터들의 애장품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압권은 이건희컬렉션이었다. 이건희컬렉션은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생전에 수집한 미술품과 문화재다. 이건희 회장 유족 측이 지난해 4월 문화재와 미술품 총 2만 300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공립 기관에 대거 기증하며 한국 공공컬렉션의 새 역사가 열렸다.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1957년)에 많은 이들의 시선이 머물렀다. 아기를 업은 채 일하는 여인을 모습을 담았는데 박수근 작품 중 보기 드문 대작(130cm·97cm)이다. 국민화가 박수근이 우리나라에 흔한 화강암 재질을 작품의 마티에르로 승화시켜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색채로 구현했다.
도슨트로부터 주요 전시작에 대한 해설을 들으니 작품 이해도가 훨씬 높아졌다. 천경자의 ‘누가 울어2’(1989년)는 작가가 65세쯤 미국 중서부 여행을 마치고 그린 작품인데 가수 배호의 노래 ‘누가 울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천경자는 사랑의 애절함을 담은 배호 노래를 매우 좋아해 노래 제목을 작품 제목으로 썼다.
한국 추상회화의 선구자로 한국 화단의 모더니즘 전개에 앞장선 김환기의 대형 전면 점화 ‘작품 19-Ⅷ-72 #229’은 시선을 압도했다. 복잡한 숫자의 배열로 보였던 작품 제목에 대한 궁금함은 도슨트의 설명을 듣고 완전히 해소됐다. 1972년 8월 19일 완성됐으며, 김환기 화백의 229번째 작품이란 뜻이었다. 글과 그림에 능통했던 김환기는 문학을 좋아하고 서정성이 넘쳤다고 한다. 근현대문화계의 ‘핵인싸’였던 김환기는 김광균, 서정주, 조병화, 김광섭 등 여러 시인과 가깝게 지냈다. 김환기는 김광섭 시인을 마음속 깊이 존경했다고 한다. 김환기 화백은 김광섭 시인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라는 시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김 화백이 이전 작업과 달리 점을 찍으면서 시작한 작업의 출발점이자 모노크롬 회화의 시조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이번 전시는 지난달 11일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개막했는데 개관 1시간 전부터 대기 줄이 생길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달 27일 기준 1만 5000여 명이 전시를 관람했다. 내년 1월 29일까지 무료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이건희 컬렉션 지역순회전’으로 마련된 것이다.
‘이건희 컬렉션 지역순회전’은 올 10월 초 국립광주박물관과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시작됐으며 2024년까지 전국의 박물관·미술관에서 진행된다. 경남도립미술관은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영원한 유산’ 전시를 10월 28일 개막해 내년 1월 25일까지 연다. 올해는 광주와 부산·경남지역에서 열리며, 내년에는 대전을 비롯한 7개 지역, 2024년에는 제주를 비롯한 3개 지역에서 순회전이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4년 이후에는 지역 수요와 상황 등을 고려해 순회전 확대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각 지역미술관은 ‘이건희컬렉션 한국근현대미술 특별전’ 국립현대미술관 업무 협약에 따라 엄선된 명작 50여 점과 기타 작품들을 각 기관 상황에 맞춰 전시한다.
이번 부산 전시를 비롯한 지역순회전은 그동안 수도권에 집중됐던 지역 간 문화 불균형을 해소하고 비수도권 국민도 문화를 즐겁게 향유하는 장이 됐다. 올 8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한 ‘어느 수집가의 초대-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을 관람한 적이 있다. 그때 화려한 전시 작품에 대해 감탄하면서 ‘서울에 굳이 가지 않고 지역에서도 이런 전시를 자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수도권에 비해 문화 인프라가 열악하고 문화적 향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비수도권에는 이번 지역순회전과 같은 기회는 더욱 확대돼야 한다. 이번 전시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사는 지역에 차별받지 않고 수준 높은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문화 국가균형발전’을 앞당기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2022-12-04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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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이태원 참사, 너무 이른 망각
언뜻 캐럴이 들리는 듯했다. 귀를 의심했지만 틀림없었다. 매장 가득 울리는 선율이 차분한 편이어서 그다지 거북하진 않았다. 흥겨운 멜로디의 캐럴은 아니니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며칠 전 동네 노래자랑 소리가 때마침 떠올라 별안간 마음이 불안해졌다. 최근 어느 축제 현장을 지나칠 때였다. 누군가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대형 스피커를 통해 동네방네 울려 퍼졌다. 신명 나는 트로트 곡조였다. 벌써 이래도 되나 싶었다. 불편하고 불안했다.
‘이태원 참사’ 때문이다. 퍽 자연스러운 듯한 일상의 환경과 마주치면 어색해진다. 너무나도 가슴 아픈 기억인데 이토록 재빠르게 옅어질 수 있나 싶어 안타깝다. 언론사 사회부장으로 일하며 매일 참사 관련 소식을 꼼꼼히 챙기다 보니 더 민감해졌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축제도 모임도 행사도 모조리 취소하던 참사 초기에 비해 요즘은 너무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참사 초기 자리에 앉으면 누구라도 먼저 말을 꺼내 다 같이 안타까워하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지금은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더러 있을 정도다. 참사를 각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언쟁을 벌이던 술자리 모습도 이젠 거의 사라졌다. 집단의 기억이란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아직 참사가 벌어진 지 한 달이 채 안 지났다.
잊혀지는 건 무서운 일이다. 참사 희생자 유족에겐 두려운 현상일 수도 있다. 책임이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수많은 희생의 안타까움들이 완전하게 공감되지도 못했다. 망각은 사회적 책임감을 무디게 만든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주시할 때 우리는 깊이 반성하며 고쳐야 할 걸 찾는다. 고통과 슬픔을 함께 치유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외면하고 잊으면 필연적으로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지 못하고 원점 회귀할 수밖에 없다.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일어난 화재 참사를 봐도 알 수 있다. 지난 6월 어느 날 새벽 해운대구 한 고층 아파트 단지에서 불이 나 입주자 한 명이 숨졌다. 사망자가 나와 안타깝지만, 비교적 흔한 유형의 화재 사고라 누구도 큰 관심을 쏟지 않았다. 그러나 사건에 신경을 기울일수록 문제가 부각됐다. 처참한 화재 현장을 확인한 〈부산일보〉 사회부 기자는 부상자 2명의 상태도 위중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예의 주시했다. 결국 화재 사고는 가족 3명이 차례로 숨지는 참변으로 귀결됐다. 단순 사고를 외면하지 않고 파고든 기자들은 그 속에 엄청난 실수가 숨어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된다. 화재 희생자들이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숨진 건 화재경보기가 정상적으로 울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화재 직전 아파트 다른 동에서 화재경보기가 오작동되자 관리사무소 직원이 아파트 전체 경보 시스템을 꺼버렸다. 화재경보기가 13분가량 먹통이 된 사이 진짜로 불이 났다. 인재였다. 지역 언론과 정치권 등이 일가족 참변을 추적하자 묻혀 있던 사건의 진상이 하나씩 드러났다. 결국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7명이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흔한 화재 사고를 잊지 않고 계속 떠올리며 주시한 결과다.
너무 이른 망각이 걱정스러웠던 참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나섰다. 이름도 얼굴도 애처로운 슬픔도 가려진 희생자들. 그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으려면 참사가 벌어지기까지 어떤 잘못과 문제가 있었는지를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유족들의 요구도 그것이다. 철두철미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더불어 유족들은 생존자를 포함한 참사 모든 피해자의 소통 기회와 공간 보장을 요구한다. 희생자 이름 공개 의사를 유족에게 신속히 확인해 추모 대책을 마련할 것도 촉구한다. 기억에는 공감과 공유가 필수다. 희생자 158명 개개인의 애달픈 슬픔이 세상에 전해질 때 더 오랜 기억으로 이어질 수 있다. 꽃다운 청년 모두가 하나의 우주였고, 그들의 가족에겐 세상의 전부였다. 애절한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아무 잘못 없는 그들을 떠나보내게 만든 우리의 허술한 시스템에 분노하지 않을 이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익명으로 파편화된 희생자들은 한 묶음으로 뭉뚱그려지기 쉽다. 희생자와 유족 저마다의 슬픔으로 애절하게 기억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158명의 희생 덕에 우리가 많이 배우게 됐다’는 따위의 헛소리도 난무한다.
구체적인 슬픔으로 추모되기 위해선 먼저 유족들이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들끼리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국정조사 수사 등을 통한 진상 규명과 동시에 개별 희생자를 세상과 연결 짓는 과정이 필요하다. 방법을 따로 고민할 필요는 없다. 유족들의 자유로운 만남만 보장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2022-11-27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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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2002년 월드컵으로 돌아가고 싶다
지난해 개봉해 평단의 호평을 받은 ‘혼자 사는 사람들’이란 독립영화가 있다. 영화 속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주인공이 일하는 카드사 고객상담실에 소위 ‘진상’ 고객이 늘 전화를 한다. 타임머신을 개발했는데 과거로 돌아가서도 카드를 쓸 수 있냐고 매번 묻는다. 그가 가고 싶은 시기는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이다. 고객상담실 측은 그를 ‘정신이상자’로 분류해놓고 있다. 하지만 사회의 험난함에 적응하지 못하는 수습사원 ‘수진’은 그 ‘정신이상자’ 고객에게 왜 2002년으로 가고 싶냐고 진지하게 묻는다. 그는 “그 많은 사람들이 노래 부르고 어깨동무하고 얼싸안고 춤추고 난리도 아니었다”며 “다시 한 번 진짜 그 사람들 속에 들어가고 싶다”고 답한다. 그 대답에 ‘수진’은 “자기도 함께 데려가주면 안 되겠냐”고 눈물을 글썽이며 부탁한다.
분명히 2002년 여름은 국민 모두가 ‘어깨동무하고 얼싸안고 춤췄던’ 그야말로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판타지 같은 날들이었다.
그 해 6월 18일 이탈리아와의 16강전 거리응원을 마치고 붉은 티셔츠를 입고 걸어서 귀가한 기억이 생생하다. 길을 걷기 힘들 정도로 지나는 차들이 빵빵 경적을 울리며 창을 내리고 손을 흔든다. 붉은 옷만 입고 있으면 서로 손을 흔들고 인사하고 기뻐했다. 이탈리아전뿐 아니라 매 경기마다 붉은 대한민국 국민은 다함께 얼싸안고 춤추고 그야말로 ‘난리도 아니었다’.
붉은 옷을 입고 거리를 메운 인파가 너무 많아 믿기지 않았던 한 해외 언론사에서 파견 취재 기자에게 ‘합성 사진을 쓰면 어떻게 하냐’고 질타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대한민국 국민의 저력을 보여준 것 같아 한껏 뿌듯했다. 2002년을 살았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두 가지 벅찬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20년의 세월이 흘러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맞았다. 우리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할 것이고 선전할 것으로 기대한다. 다시 한 번 4강의 성적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목표인 16강 달성보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더 아름다울 것이다. 그 최선을 다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 국민이 다함께 얼싸안고 춤추면서 하나된 2002년의 벅찬 기운을 다시 한 번 맛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카타르 월드컵을 맞는 분위기가 여전히 무겁다. 다시 거론하기조차 힘든 이태원 참사 때문에 월드컵을 축제 분위기 속에 치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참사 후 거리응원을 취소했던 붉은악마는 토론 끝에 광화문 광장 응원은 하겠다고 밝혔지만 전국의 국민이 함께 열광하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월드컵을 통해 다시 한 번 힘을 내고 하나 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달리 국민을 분열시키려는 정치권의 시도가 극에 달해 안타까움을 넘어 울화가 치민다. 겉으로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 대한 추모를 가장하고 있지만 그 말과 행동에서는 이미 추모가 사라진 지 오래다.
특히 희생자 명단 공개를 두고 정쟁을 벌이는 대목에서는 아연실색할 지경이다. 명단 공개 여부가 도대체 정치권이 왈가왈부할 사안인가? 장례식 조문객들이 힘든 유족 앞에서 자기들 입맛에 맞는 예법 운운하면서 장례절차를 좌지우지하려는 ‘패악질’과 무엇이 다른가?
최근 수년 간 대한민국은 두 진영으로 갈라져 극렬한 대립을 해오고 있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과정에서 보았지만 양 진영간 주요 쟁점은 국가적 거사나 정책이 아니었다. 그저 상대의 말이나 행동의 실수를 끄집어 올려 최대한 ‘싸가지 없는’ 말로 서로를 공격하는 일이 일상이 됐다. 급기야 성직자들이 대통령이 탄 전용기를 추락시켜 사람들을 죽여달라고 하나님께 부탁하는 지경에 이르니 저급한 진영 대결이 갈데까지 간 모양새다.
2002년에도 많은 사건사고가 있었다. 그 해 4월 중국국제항공 129편의 김해 돗대산 추락과 6월의 효순·미선양 미군 장갑차 사고, 제2연평해전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12월에는 제16대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대선이 있었던 해인 만큼 특정 사안이 선거과정에서 집중 거론되기도 하고, 또 어떤 사안은 제대로 평가되지 못하고 묻혀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해 월드컵으로 단결된 국민적 기운이 훼손될 만큼 양 진영이 서로에게 ‘패악질’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2002년의 하나된 우리 모습은 이후 국가적 어려움을 이겨내는 단군 이래 최대의 에너지로 기억되고 있다.
20년이 흘렀다. 다시 한 번 우리 국민의 저력이 재연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정치권이 갈라놓으려는 국민 사이의 간극을 월드컵의 힘으로 단단하게 묶었으면 좋겠다. 최선을 다하는 대한민국 선수들의 모습에 국민 모두가 어깨동무하고 얼싸안고 춤추면서 다시 한 번 커다란 에너지를 모아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2-11-20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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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꼭 부산 출신이어야 합니까?"
‘흑묘백묘(黑猫白猫)’란 말이 있다. 중국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취한 개혁·개방정책으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뜻이다.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덩샤오핑은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중국 인민을 잘 살게 하면 된다”며 이 정책을 밀어붙여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중국식 사회주의를 탄생시켰다.
이 시점에서 이 말이 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을까. 아마도 부산에 가장 필요한 사고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우리는 “부산답다”거나 ‘부산 싸나이’란 말을 유달리 좋아한다. 부산에서 태어나거나 중·고교를 다니든지, 그것도 아니면 ‘남성다움’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게 필요한 적이 있었다. 오늘날 부산이 대한민국 제2의 도시로 성장하기까지 ‘부산다움’이 큰 힘이 됐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까지 그런 정서에 갇혀 있어야 할까. 언제부턴가 이 말이 ‘배타주의’ ‘지역이기주의’로 변질된 것은 아닌지 되짚어 봐야 한다. 세계 모든 국가와 지역이 경쟁적으로 문호를 개방하는 시대에 말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지난해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때 일부 정치인들이 그의 ‘출신’ 문제를 제기했다. 그가 부산에서 태어나 30여년 간 대학교수로 몸담았고, 온갖 시민단체 활동을 펼쳤으며, 국회의원과 청와대 수석으로 재직하면서 부산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는데도, 단지 중·고교를 이곳에서 졸업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부산사람이 맞나”고 공격한 것이다. 한심하기 그지 없다. 그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박 시장은 1995년 지방자치제가 도입된 이래 가장 유능하다고 평가받으며, 지난 6월 지선에선 70%에 가까운 압도적 지지로 재선에 성공했다.
‘부산 우선주의’는 국회의원 총선거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총선 때마다 가장 많이 따지는 게 ‘출신 고교’다. 실제로 전체 부산 국회의원 중 부산에서 고교를 나오지 않은 사람은 3명밖에 없다. 대체로 ‘부산 연고성’에 집착하는 정치인일수록 의정활동 성적이 부실하다.
우리는 더욱 냉정해져야 한다. 부산이 독자적으로 세계 일류 도시로 도약하기 힘들다는 냉혹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지난해 매출액 기준으로 한국 100대 기업에 포함된 부산 업체는 1개도 없다. 2002년 해당 조사가 시작된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부산 1위인 르노코리아는 전국 120위이고, 2위인 부산은행은 189위이다. 겨우 한국 1000대 기업에 부산이 27개 포함됐을 뿐이다. 정말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결론은 분명하다. 세계 일류 기업을 유치해야 한다. 그것이 힘들면 대한민국의 최고 기업을 끌고 와야 한다. 그래야 일자리가 생기고 청년들이 부산을 등지지 않는다. 그러려면 우리 스스로가 ‘부산 집착’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물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비슷한 능력의 소유자라면 부산 출신을 우선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능력이나 비전이 절대 부족한 데도 단지 ‘우리 사람’이란 이유만으로 부산을 고집해선 안 된다.
때마침 부산의 몇몇 유력기업과 공기업에서 CEO 인선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노조를 비롯한 일부 진영에서 ‘내부 승진’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능력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 게 하는게 맞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능력이나 자질이 최우선 기준이 돼야지 ‘출생지’를 앞세워선 안 된다. 차라리 이들에게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한번 추천해 보고 싶은 심정이다.
부산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췄다. 세계 어느 나라를 돌아다녀 봐도 부산처럼 산과 강, 바다가 함께 어우러져 있고, 교통이 잘 발달된 도시도 없다. 가덕신공항 건설과 산업은행 이전만 예정대로 추진되면 부산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금융·물류·해양·관광 중심도시로 발돋움하게 된다. 게다가 부산은 원래 대한민국에서 가장 개방적인 도시로 이름나 있다. 이를 더욱 계승·발전시키면 된다.
우리는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우리가 반드시 유치해야 하고,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엑스포가 유치되면 6개월의 행사 기간 동안 약 3500만 명의 관람객이 부산을 찾게 되고, 약 43조 원의 생산 유발효과와 50만 명의 고용 유발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야말로 부산이 ‘대한민국 제1의 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단 여기엔 조건이 있다. 엑스포가 ‘부산만의’ 행사가 아니듯 부산이 모든 걸 주도한다는 생각을 가져선 안 된다. 정부와 대통령실, 대기업, 문화·체육계, 정치권 등 대한민국의 모든 역량이 결집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부산 순혈주의’의 틀을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그건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2022-11-13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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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국가의 역할
미리 썼던 글을 싹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쓴다. 핼러윈을 앞둔 지난달 29일의 참사. 이 일을 두고 한가하게 다른 이야기를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왜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을까. 정부는 도대체 어디에 있었던가. 우리는 과연 안전한가.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돼야 할까. 그래서 다시 묻는다.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날 밤 서울 이태원에서 156명의 꽃다운 이들이 숨졌다. 또 151명이 다쳤다. 거리 두기가 완화한 상황에서 여러 위험 징후가 있었다. 하지만 경찰, 구청, 시청 등의 행정기관은 사실상 손을 놓았다. 주최자 없는 행사라는 이유 때문이다. 지난 1일 공개된 112 녹취록에 말문이 막혔다. 사고 4시간 전부터 현장에서 ‘압사’를 경고하는 다급한 신고가 잇따랐다. 그 순간 국가는 없었다. 뒤늦게 윤희근 경찰청장은 “대응이 미흡했다”고 사과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것만도 충격적이다. 파출소의 기동대 지원 요청은 묵살됐고, 사고 전후 행정안전부·경찰청의 컨트롤 타워 기능은 작동하지 않았다. 심지어 대통령 보고 뒤에도 행안부 장관, 경찰 지휘부는 참사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 와중에 사찰 논란까지 불거졌다. 참사 다음 날 경찰청에서 만든 진보 성향 단체 관련 ‘정책참고자료’ 때문이다. 총체적 난국이다.
경찰이 적절히 대응하지 않은(또는 못한) 이유는 뭘까. 사고 직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경찰과 소방 대응이 사고 원인이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런 참사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일 “국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사고 엿새 만의 첫 공개 사과였다.
경찰청은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 지난 2일 용산경찰서, 서울경찰청, 용산구청, 서울시소방본부, 서울교통공사 등 8곳을 압수수색했다. 국회에서는 국정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경질설이 나돈다. 그러나 한두 명 자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다.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이 장관의 말을 곱씹어 보면 ‘자유방임적’ 기조가 은근히 풍긴다. 세상은 알아서 잘 돌아가고, 정부 개입이 외려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이른바 ‘작은 정부론’이다. 이는 그를 임명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기조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은 ‘자유’를 유난히 강조한다. 5월 취임사에서 35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33번,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21번 외쳤다.
여기에서 자유는 뭘까. 윤 대통령은 그동안 ‘자유연대’를 역설했다. 이를 통해 중국, 북한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 맞선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를 강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기업의 역할, 규제 완화, 세금 감면, 재정 축소 등 ‘경제적 자유’를 내포한다. 이는 공적 시스템과 사회안전망 축소 등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자유는 곧 자율이다. 자기 이유와 책임 아래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전에 대한 국가의 책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고 이후 경찰관직무집행법 등 경찰의 개입 근거를 찾느라 바쁘다. 그러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존재 이유다. 올 9월 태풍 때 윤 대통령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엄중히 대처하라”고 지시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소홀했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말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정치의 목표는 공동체의 유지와 발전이다. 보수와 진보는 거칠게 보면 국가적 자원과 역량을 어디에 좀 더 집중할 것이냐의 차이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은 공동체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사상누각이다. 이번 참사를 통해 ‘작은 정부’를 돌아본다. 상황에 맞게 정부가 더 해야 할 일과 덜 해야 할 일을 잘 판단해야 하는데, 대전제가 ‘안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망자’냐 ‘희생자’냐, 합동 분향소 표기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인간 공동체는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유지돼 왔다. 안전에 대한 경계심이 느슨해졌을 때 어김없이 희생양을 찾는다. 대표적인 예가 전쟁과 사회적 참사다. 위정자들이 최우선해야 할 가치는 공동체 안전이다. 이는 언론을 포함한 ‘살아남은 자들’의 역할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 이번 참사의 ‘공범’이라는 반성이 필요하다.
현 정부가 출범한 지 딱 6개월이 지났다. 정부는 지난달 29일을 기점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마치 그날 출범한 것처럼. 국가의 역량과 자원을 배분하는 데 행여 구멍이나 그늘은 없는지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안타까운 희생이 헛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자유는 자칫 공허하거나, 위험할 수 있다.
2022-11-0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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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신문 왕국' 일본 신문의 디지털 전략
“50대 이하의 사람들은 신문을 잘 읽지 않습니다. 뉴스는 모바일이나 PC를 통해 공짜로 보죠.”
익숙한 내용이지만, 한국 상황이 아니다. 최근 방문한 〈서일본신문〉의 디지털전략국 사카이 국차장이 한 발언이다. “1997년 정점이었던 일본의 신문 구독자 수가 2022년 현재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신문 대신 야후 뉴스 서비스를 찾아 봅니다.”
일본은 세계 유료 일간지 발행 부수 상위 10순위에 자국에서 발행하는 4대 일간지가 밀려난 적이 없는 ‘신문 왕국’임은 여전하지만, 정작 일본에서 신문을 만드는 이들은 극도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젊은 독자의 이탈이다. 그리고 구독 감소다.
후쿠오카에서 탄 지하철에서도 그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이전인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의 대중교통에서 신문을 읽는 사람을 여럿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갔던 일본의 지하철에서 아쉽게도 신문을 읽는 이는 볼 수 없었다. 청년들은 이어폰을 낀 채 스마트폰을 쳐다봤고, 일부 책을 읽는 사람은 있었지만, 신문을 보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한때 부산의 지하철에서도 출퇴근 시간에 신문을 읽는 이들을 꽤 볼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석간 발행 때였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퇴근하며 그날 나온 따끈따끈한 신문을 읽다가 내릴 때는 슬며시 지하철 선반 위에 떨어지지 않게 잘 올려 두곤 했다. 지하철에서 신문을 보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곁눈질로 ‘무슨 기사가 났나?’ 하고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는 재미가 은근했다. 신문은 내리기가 무섭게 다음 주자가 차지해 갔다. 어느 날부터 두고 내린 신문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어졌다. 종착역까지 선택받지 못한 신문은 청소원이 모아 폐지로 처리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서일본신문〉 관계자의 고민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디지털 온리’를 표방한 〈부산일보〉는 네이버 구독판을 활용해 독자에게 24시간 다가가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일본신문〉은 2021년부터 독자 앱을 만들어 디지털 신문 전쟁에 뛰어들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조직도 생겼다. 크로스미디어부다. 신문과 디지털의 경계를 넘나들겠다는 의지가 다분히 반영된 부서 명칭이다.
“디지털과 종이 신문에 똑같은 가치를 두고 운영합니다. 지면 제작을 담당하는 편집국과 미래에 증가할 디지털 비중을 동시에 염두에 두고 운용하는 부서입니다.” 신문 왕국 일본의 변화를 적나라하게 실감할 수 있는 일본 언론인의 발언이었다.
디지털 전환 과정에 그들은 고민했다. 포털 사이트 야후에 기사를 제공하고 받는 금액이 너무 적다는 것. 별도의 모바일 앱을 만들고 유료 독자를 모집하고 있지만, 종이 신문만큼 획기적이지 않다는 것. 사회 전반에서 신문의 신뢰도가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것 등이다.
1877년 창간해 후쿠오카시와 규슈 전 현에 총 44개의 지사가 있고, 미국 워싱턴과 중국 베이징, 태국 방콕, 한국의 서울과 부산에도 특파원을 파견하고 있는 〈서일본신문〉. 조간 발행 부수만 여전히 45만 부가 넘는 일본 최대의 블록지(지역연합지)지만, 시대의 변화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종 실험을 마다치 않고 있었다.
역사와 배경이 다른 한국과 일본의 언론사이지만, 작금의 시대 변화 앞에서 디지털이라는 공동의 과제로 마주 앉은 이날 양국 지역 언론인들은 공감대를 쉽게 형성했다.
가장 공감한 말은 지역의 천착이다. 서일본 규슈 지역의 소식은 오직 우리를 통해서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주 독자층 역시 후쿠오카 출신을 대상으로 삼았고, 캐치프레이즈도 ‘후쿠오카의 응원단’으로 정했다. 부울경 독자를 기반으로 하는 동남권 최대 신문 〈부산일보〉와 일치했다.
독자 중심의 신문으로 거듭나자는 목표도 우리와 일치했다. ‘당신의 특명 취재반’이라는 기동취재팀은 〈부산일보〉가 그동안 다양한 형태로 운영했던 독자 우선주의 조직과 일치했다. 물론 디지털 시대를 맞아 유리해진 측면도 있었다. 새로운 기사 쓰기가 가능해진 것. 기사 분량과 사진 숫자에 제약 없는 기사 작성, 댓글 등을 통한 쌍방향 소통, 실시간 소식을 바로 전달할 수 있는 속보성 등이다.
“9월 14호 태풍 난마돌이 규슈에 상륙했을 때 불과 몇 시간 만에 45개가 넘는 기사를 배포했습니다. 게재한 사진도 50장이 넘었고요.” 태풍이 아니라 디지털의 위력을 실감한 날이었다고 했다.
“서일본신문의 디지털 버전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서일본신문입니다.” 〈서일본신문〉의 디지털 목표에 관한 그들의 대답이다. 바야흐로 한·일 신문에 디지털 태풍이 상륙했다. 살아야 한다.
2022-10-30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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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탕웨이가 탕웨이인 이유
‘영화도시’ 부산의 10월이 저물고 있다. 해마다 10월이면 부산은 부산국제영화제(BIFF)와 〈부산일보〉가 주최하는 부일영화상 시상식의 뜨거운 열기에 휩싸인다.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정상 개최된 올해 제27회 BIFF와 2022 부일영화상 시상식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많은 영화팬들과 세계 각지에서 온 배우, 감독 등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우러진 부산의 10월은 그야말로 진정한 ‘영화의 용광로’였다.
10월의 끝자락에 선 요즘, 유독 생각나는 배우가 있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출연한 배우 탕웨이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부일영화상 16개 부문 가운데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박해일), 여우주연상(탕웨이)을 휩쓴 데 이어 촬영상, 음악상까지 5관왕을 차지했다. 부일영화상 심사위원들도 ‘헤어질 결심’과 탕웨이 등에 대한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영화평론가인 정민아 성결대 교수는 “멜로와 미스터리를 오가는 이야기에서 신비로움과 열정을 존재 그 자체로 뽐낸 탕웨이, 투철함과 엉뚱함을 조화롭게 연기한 박해일, 두 배우의 연기 앙상블로 인해 박찬욱의 작가성은 더욱 빛난다”고 평가했다.
중국에 머무르는 탕웨이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부일영화상 시상식에 직접 참석하지 못했다. 탕웨이 취재를 담당한 〈부산일보〉 기자는 그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미리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배우 등 연예인들의 서면 인터뷰 답변은 의례적인 경우가 드물지 않다. 본인이 아니라 소속사 홍보 전문가들이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 시간에 쫒기는 유명 연예인이라면 그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본인이 작성했더라도 답변이 너무 짧거나 알맹이가 없어 기자들이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탕웨이의 불참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가장 걱정한 부분이 이런 점이었다.
하지만 탕웨이는 달랐다. 취재기자로부터 전해 받은 답변서는 무척 정성스럽고 상세했다. 기자의 짧은 몇가지 질문에 탕웨이는 이례적이라고 느낄만큼 장문의 답변을 전해온 것이다. 답변은 특히 딱딱한 문어체가 아니라 마치 상대방에게 조곤조곤 말하듯이 쓴 구어체 문구들로 가득했다. 직접 연기 방향을 구상하고, 연기에 몰입했던 당사자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심경 등을 자세하게 묘사한 부분이 많았다. 모호하거나 두루뭉수리한 표현도 찾기 어려웠다. 이런 점으로 미뤄볼 때 그는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이 되지 않도록 무척 신경을 쓰면서 직접 답변을 꼼꼼하게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기자가 자신의 의도를 잘 파악할 수 있도록 탕웨이는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 동어를 반복 사용하는 등 시종일관 인터뷰어를 배려하면서도 위트를 잊지 않는 따뜻한 문체로 답변을 이어갔다. 예를 들면 ‘他演的太太太太太好了(그의 연기가 너무 너무 너무~ 좋아서)’라고 의견을 밝히는 식이다. 탕웨이의 세심함, 확고한 프로의식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인상적인 답변이었다.
‘헤어질 결심’의 많은 부분은 부산에서 촬영됐다. 탕웨이는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부산의 포장마차도 기억에 남는다. 자주 가는 포장마차가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내가 오면 자리를 마련해두겠다고 메시지를 보내시는데 그게 정말 감동적이다. 부산에서 촬영할 때 일부러 찾아갔었는데, 아쉽게도 그때는 안 계셨다…해운대 해안길도 좋아한다. 해일 씨가 소개해준 산책로인데, 오후부터 저녁까지 걸었던 걸로 기억한다. 돌아오는 길에 마지막 기차를 놓쳤지만, 그래서 황혼과 밤의 절경을 만날 수 있었다. 아직도 그때 그네를 타고, 라면 한 그릇을 먹고, 바닷가 하이킹을 끝냈던 기억이 난다. 모두에게 강력 추천하는 코스다. 혼자도 좋고, 둘이나 가족도 좋고, 누구에게나 편안하고 적당한 코스다. 그리고, 부산의 해산물도 좋아하는데, 생선훠궈 같은 매운탕도 기억에 남는다.”
탕웨이를 담당한 취재 기자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살가움을 넘어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은 한편의 에세이 같은 답변이었다는 반응이다. 취재 기자는 또 “답변서를 읽으며 느낀 ‘완벽을 추구하는 연기 열정과 성실함, 인간에 대한 따뜻하면서도 깊은 시선’은 탕웨이가 왜 탕웨이가 되었는지를 보여준 것 같다”는 후일담을 밝혔다. 또 다른 동료는 “탕웨이뿐만 아니라 다정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부산에서 팬들과 소통한 이병헌과 량차오웨이(양조위) 등을 보면서 ‘좋은 배우는 결국 좋은 인간이다’라는 생각을 했다”는 취재 후기를 전하기도 했다.
깊은 고민과 성찰, 따뜻한 연민으로 인간을 품는 좋은 배우들을 만날 수 있는 내년 10월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2022-10-23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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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깨지는 믿음들
지난 15일 오후 지인이 요청한 정보를 공유하려고 카카오톡을 열었던 기자는 서버 통신이 원활하지 않다는 메시지가 뜨면서 전송이 되지 않는 상황이 잠시 당황스러웠다. 두세 번 시도해도 불통이 계속됐다. ‘통신사 네트워크 문제인가’하며 문자 메시지로 보내봤더니 전송이 원활했다. 잠시 후 뉴스에서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 관련 서비스가 먹통 사태를 일으켰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카카오톡뿐 아니라 포털 다음과 카페, 블로그 등 전체 서비스의 접속이 막힌 것이었다. 네이버도 이 화재로 일부 서비스 장애를 겪었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과 네이버 일부 불통 사태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혼란을 불러왔다. 메신저와 뉴스, SNS, 쇼핑, 결제, 교통 등 거의 모든 일상을 포털이라는 플랫폼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뒤늦게 깨닫게 됐다. 데이터센터 한 곳 화재로 엄청난 불통 사태가 발생함으로써 전 국민 삶에 깊이 들어온 포털의 안전 관리는 생각보다 치밀하지 못했다는 것 또한 드러났다. 집적화해 편리와 효율을 추구한다는 것이 때로는 재앙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우리는 통신 서비스가 공기나 물처럼 당연하게 무한정 안정적으로 공급될 것이라 믿고 살지 않는가. 턱없는 믿음의 근거는 너무 허술했다.
메신저는 문자 메시지로 대체할 수 있고, 급하지 않은 소식은 좀 천천히 봐도 괜찮다. 훨씬 더 중요한, 시민 건강과 안전에 대한 믿음이 깨지는 사례가 최근 잇달아 발생했다.
부산시민 절대다수가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낙동강에서 지난여름 공업용으로도 사용할 수 없는 수준의 물을 취수했다는 사실이 국정감사 자료로 확인됐다. 6월 17일부터 8월 18일까지 63일 가운데 총유기탄소량(TOC) 1~3등급 물이 물금·매리 취수장에 공급된 날은 불과 닷새뿐이었고, 폐수 수준인 6등급은 열흘, 나머지는 4~5등급이었다고 한다. 정수하면 괜찮다지만, 수질 나쁜 물을 고도정수처리 하느라 사용하는 약품 때문에 총트리할로메탄 같은 소독 부산물이 수돗물에 남는 문제로 이어진다.
게다가 반경 30km에 380만 부울경 지역민이 사는 고리·신고리 핵발전소에서는 고준위 핵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건식 저장시설을 발전소 내에 짓겠다는 움직임이 확인돼 시민을 불안하게 했다. 유럽연합(EU)은 핵발전을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에 포함하면서 2050년까지 고준위 핵폐기물 저장시설을 운영하겠다는 확실한 국가계획이 수립돼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우리나라는 중·저준위 핵폐기장을 경주에 짓는 데에만 꼬박 20년 걸렸다. 핀란드는 1983년 고준위 핵폐기물 영구처분 방침 수립 후 41년 뒤인 2024년에야 운영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영구 핵폐기장이 들어설 때까지만 모든 핵폐기물을 핵발전소 내에 보관하겠다’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설명은 지역민에게 ‘핵발전소가 곧 영구 방폐장’이라는 말로 들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경주 월성원전에선 사용후핵연료 보관 수조 바닥에 균열이 생겨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국정감사 지적에 ‘방사성 물질은 유출되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한수원 해명을 듣다 보면 도대체 ‘원전 안전 신화’의 끝은 어디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부동산과 주식에 빚을 끌어넣은 사람들은 요즘 급등하는 금리에 당장 생활비 긴축을 강요당한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불안한 세계정세로 물가마저 고공행진 중이라는 사실이다. 미국이 2008년 이후 자국 경기 부양을 위해 시작했던 양적 완화의 후과는 이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 ‘스텝’을 타고 세계로 수출된다. 달러와 미국을 제외한 세계 경제가 무참히 밟히고 있다. 공급망에서 중국을 포위하려는 움직임은 더 노골적이고, 동맹이나 개발도상국에 대한 고려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세계 평화와 자유·번영의 거점’이던 유일 패권국 미국이 각자도생의 선봉에 설 줄 누가 알았을까.
뭉치는 것은 흩어지고, 믿음은 깨지기 마련인가. 당황스럽더라도 턱없는 믿음의 근거가 부실했던 것 아닌지 찬찬히 돌아볼 때다. 무턱대고 믿어버리면 배신당하기 전까진 차라리 편하다. 반면 사실과 주장을 분리하고, 사실 여부를 철저히 검증해 그에 근거해 판단하는 일은 수고스럽다.
세계 경제나 국내외 정세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불확실성이 극으로 치닫는 요즘 같은 상황이라면 불편하고 귀찮더라도 회의주의적 태도가 필요하다. 특히 정부가 관리할 수 있는 시민 안전과 건강 관련 정책에 대해서만큼은 헌법적 권리를 내세워서라도 정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마침 어제 16일은 부마항쟁 43주년이었다. 박정희 정권 붕괴를 촉발한 시민혁명이다. 영원할 것 같던 정권도 총칼 없는 시민혁명에 무너졌다.
내 주변 환경을 바꾸는 일부터 크고 작은 변화는, 그렇게 믿음에 대한 재점검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2022-10-16 [1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