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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 경고 메시지
지난달 6일 발생한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으로 두 나라에서 5만 명 이상이 숨지고 수백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지구촌 최악의 대지진으로 튀르키예에서만 45조 원이 넘는 경제적 피해가 발생했고, 2차 및 간접 영향까지 고려할 경우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한 외신 보도도 나왔다. 국내에서는 정부와 복지단체 등을 중심으로 두 나라 피해 지원을 위한 성금 모금 활동과 구호 물품 전달이 지난달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튀르키예 지진 피해 지원과 복구에 이처럼 뜨거운 동참을 하는 데는 양국이 오랫동안 ‘형제의 나라’라는 국민적 인식이 한몫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는 ‘투르크’족의 후손들이 세운 국가로, 고조선 시대에선 ‘흉노’, 고구려 시대에선 ‘돌궐’이란 나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돌궐은 몽골계 유목민으로 고대 동아시아 역사에서 중국 한족을 수없이 위협하며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한 민족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보면, 고조선은 흉노와 강력한 동맹이었고, 고구려는 돌궐과 연합해 당나라와 싸웠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고구려 연개소문 장군은 돌궐 공주와 혼인을 맺을 정도였으니 두 나라의 동맹 관계가 얼마만큼 탄탄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튀르키예(당시 터키)의 한국전쟁 참전도 양국이 ‘형제의 나라’라는 인식에 큰 기폭제가 됐다. 국제연합군(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튀르키예는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4번째로 많은 1만 5000여 명의 병력을 파견하며 한반도 곳곳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튀르키예는 참전뿐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국내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데도 큰 힘을 쏟았다.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던 곳 인근을 빌려 보육원을 설립했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1952년 경기도 수원에서 문을 연 ‘앙카라 학교’이다. 앙카라 학교에는 수백 명의 부모 잃은 어린 아이들이 숙식을 했다고 한다. 튀르키예는 한국전쟁이 휴전 국면에 접어들 시점에도 보육원 지원을 계속할 정도로 우리 국민들에게 온정을 베푼 나라다. 현재 수원에는 당시 튀르키예군의 고마움을 잊지 않기 위해 앙카라 학교 공원과 기념비가 건립돼 있다.
튀르키예의 연합군 참전에는 당시 자국의 역사적 배경이 크게 작용한다. 1940년대부터 소련(지금의 러시아)의 영향으로 동유럽에 공산주의 국가가 점차 늘자, 튀르키예는 심한 위기 의식을 느꼈다. 이에 따라 이슬람 교도가 대다수인 튀르키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려 했지만, 기독교와 가톨릭이 주축인 가입국들의 반대가 심했다.
그 무렵 한국전쟁이 터졌다. 튀르키예는 자국의 정치적 이념과 노선이 공산주의가 아닌, 자본주의임을 널리 알리고 싶어 참전을 결심했다. 결국 1952년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게 됐는데 연합군 국가들의 도움과 한국전에서 빛났던 전투력, 한국인들에게 베푼 선행이 큰 힘이 됐다. 이후 양국은 1957년 수교를 맺었다.
특히 1990년대까진 튀르키예는 우리 국민들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진 국가가 아니었다. 하지만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한국과 튀르키예가 3·4위전에서 만나게 되면서 우리 국민들 사이에 이 나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이처럼 오랜 시간 끈끈한 정과 역사적 배경으로 돈독한 우호를 과시해 온 튀르키예에 지난달 대참사가 빚어지자, 최근 ‘한반도는 지진의 안전 지대’인가라는 주제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6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개최한 ‘국민생활과학토크콘서트’에서 박정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반도는 지각의 충돌이 일어나는 판의 경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역사적으로 큰 피해가 발생한 지진이 많지는 않았다”면서도 “오늘날 지방과 수도권에서 일정 이상 규모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튀르키예 지진과 같이 큰 지진 피해를 입는 지역은 대부분 충돌이 많이 일어나는 대륙판의 경계에 자리잡고 있다. 한반도의 경우 대륙판 경계와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지진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보다는 2차 피해를 입는 일이 많았다. 지진의 빈도 자체도 낮았지만 크거나 중간 규모의 지진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역사 기록물에도 한반도에 과거 2000년 동안 일상생활에 피해를 입힐 정도인 규모 5~10의 지진이 40회 정도 발생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언제든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큰 규모의 지진이 아니더라도 상당한 피해가 있을 수 있다는 국민적 경각심을 갖고, 건물 내진 설계 강화 등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2023-03-2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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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내 아들이 살아갈 나라
기자에겐 20대 아들이 둘 있다.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사랑스런 존재다. 하지만 이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많다. 우리 부모 세대의 잘못으로 미래세대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넘겨주는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요즘 발표되는 각종 지표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17일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하면서 대부분의 주요국은 상향 조정했지만 한국과 일본은 내렸다. 한국의 올해 성장률은 종전 전망치(1.8%)보다 0.2%포인트(P) 낮은 1.6%로 제시했다. 올들어 지난 10일까지 우리나라의 무역적자는 228억 달러로 지낸해 연간 적자액(478억 달러)의 절반 수준에 도달했다. 한국인 1인당 약 57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난해 말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내놓은 ‘2075년 글로벌 경제 전망’ 보고서는 더욱 충격적이다. 올해 세계 경제규모 12위인 한국이 27년 뒤인 2050년에는 15위권 밖으로 밀려날 것이란 전망이다. 그 대신 골드만삭스는 우리와 비교가 안되는 인도네시아와 나이지리아, 이집트가 15위권 내에 진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저출생·고령화를 우리 경쟁력 하락의 주범으로 꼽았다.
실제로 저출생은 이만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2006년부터 280조 원을 퍼부어 출생률 제고에 공을 들였지만 지난해 합계 출생률은 0.78명에 불과하다. 세계 최저 수준이다.
지난해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저출생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우리 청년세대(만 19~34세)가 출산을 원치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양육비와 교육비 등 경제적 부담(57%)이었다. 실제로 지난 7일 발표된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서 지난해 우리 사교육비 총액은 26조 원이다. 학생 1인당 월평균 41만 원의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층을 둘러싼 경제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올 상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세운 기업은 45%에 불과했고, 절반 이상은 “채용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채용계획을 수립한 기업의 25%도 지난해보다 채용규모를 줄이겠다고 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기업은 신입사원보다 경력직을 더 선호했다. 올 대학 졸업자들은 매우 난감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부모 세대의 부담은 더욱 가중된다. 국무조정실이 지난해 전국 1만5000 가구를 조사한 결과 19~34세 청년 10명 중 6명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캥거루족’이다. 경제적 여건을 갖추지 못해 부모에게 얹혀 사는 것이다. 이들의 68%는 “부모로부터 독립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일부 조사에선 미혼 청년의 75%만이 “결혼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이젠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한다. 대한민국 구성원 전체가 국가 경쟁력 제고에 힘을 합쳐야 한다. 일시적이거나 인기영합적인 정책은 통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역대 정부가 실패한 ‘3대(노동·연금·교육) 개혁’을 반드시 관철시켜야 한다. 지지율 하락이나 내년 총선 영향력 등에 연연하지 말고 강하게 밀고 나가야 한다. 집요하게 국민들을 설득하고, 정치권에 협조를 구해야 한다. “3대 개혁의 성공없인 대한민국의 재도약은 불가능하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반대세력을 직접 만나야 한다.
보다 적극적인 경제살리기 운동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이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면서 세일즈 외교에 집중하거나, 균형발전의 핵심인 가덕신공항 완공 시기를 대폭 앞당긴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동력인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막대한 경제·고용 유발효과가 예상되는 2030월드엑스포는 부산만의 행사가 아니다. 유치하면 좋고, 안해도 되는 행사는 더더욱 아니다. 정부 관계자 못잖게 우리 기업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하다. 과거 정주영·이건희·최종현·정몽구·정몽준 등 기업총수들이 각종 국제 행사 유치를 주도한 것처럼 대기업 CEO들이 공격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치권도 자세 전환이 요구된다.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인 국회 의석을 내세워 터무니없이 몽니를 부리거나 국민의힘이 소수당이란 핑계로 각종 경제법안 처리를 늦춰선 안된다. 경제 살리기 대열에서 이탈하는 세력은 내년 22대 총선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게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여야가 이달 중으로 반도체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대폭 높이는 ‘반도체특별법(조세특례제한법)’ 합의처리키로 한 것은 칭찬할 만하다.
20~30년 후 우리 아들 세대로부터 “부모 세대의 노력으로 우리가 풍요롭게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23-03-1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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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부산포와 엑스포(浦)
일제가 그린 1960년 부산의 계획인구는 30만 명이었다고 한다. 그들이 근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부산의 다이내믹한 운명을 짐작했을 리 만무하다. 해방 때 28만 명이던 부산 인구는 1949년 이미 47만 명이었다. 한국전쟁 때 천일 동안 임시수도가 되면서 2년 만에 다시 배(84만 명)로 늘었다. 1955년 100만 명을 돌파한 뒤에도 대한민국 제2 도시로 덩치를 키웠다.
인구가 계속 늘었다는 것은 숱한 꿈들이 이 도시에서 모이고 탄생했다는 뜻일 것이다. 그것이 생존이든, 성공이든, 배움이든 부산은 넉넉한 무대였다. 그 꿈들이 경쟁하고, 좌절하고, 조화하며 부산을 만들어 왔다.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는 동안 부산은 언제나 맨 앞에 있었다. 부산의 꿈이 곧 대한민국의 꿈이기도 했다.
부산을 바꾼 여러 꿈 가운데 대표적인 게 부산국제영화제다. 1990년대 중반 영화를 좋아하는 몇몇(이용관·전양준·김지석)이 “우리도 영화제 한번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그 꿈을 부산시(시장 문정수)가 거들고, 시민이 응원하고, 언론이 힘을 보태 1996년 BIFF가 탄생했다. 김동호 초대 집행위원장은 “문화 불모지 부산에서 국제영화제가 성공하겠냐는 우려가 컸지만 오기와 집념으로 밀어붙였다”고 말했다.(중앙SUNDAY 올 1월 인터뷰)
당시 영화를 담당했던 〈부산일보〉 김은영 기자(현 문화부 부국장)는 이렇게 회상한다. “2회째인가. 영화를 보러 갔는데 극장에서 쥐가 나온 거예요. 기사로 써야 되나 고민하다가 안 썼어요. 가뜩이나 달가워 하지 않는 서울언론사들이 떼로 비난할 게 뻔했으니까요.” 그는 영화제가 끝나고 이 내용을 보도했다.
노무현 정부 때이던 2005년 지역균형발전 사례를 배우러 유럽에 갔다. 그때 동행한 청와대 관계자가 했던 말이 지금도 또렷하다. “부산은 국제영화제를 성공시킨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부산은 저력이 있는 도시입니다.” 그 뒤 2007년 노무현 정부는 북항재개발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첫 항만재개발 사업이다. ‘북항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자’는 모토 아래 워터프런트(수변공간)를 줄기차게 요구한 결과다.
가덕신공항도 2전3기의 산물이다. 2011년과 2016년 정부가 백지화했던 것을 2018년 오거돈 부산시장 때 시민들이 불씨를 살린 것이다. 2021년 2월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되돌릴 수 없는 사업이 되었다. 부산의 성취를 돌아보건대, 어느 것 하나 거저 주어진 것이 없다.
이처럼 꿈에 부풀었던 부산이 갈수록 쪼그라든다. 꿈을 찾아 모이던 곳에서, 꿈을 찾아 떠나는 곳으로 전락했다. 패배의 언어가 난무한다. 출생률도 서울 다음으로 낮다. 인구는 1995년(388만 명) 정점을 찍은 뒤 계속 내리막길이다. 현재 331만 명까지 떨어졌다. 이대로 ‘노인과 바다’의 도시에 만족해야 하는 걸까.
부산이 새로운 꿈에 도전한다. 바로 엑스포다. 시민서명운동을 거쳐 2019년 국가사업으로 확정됐다. 필요성을 공유하고, 냉소를 극복하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엑스포가 부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만능키는 아니겠지만, 활로를 열 핵심키임에는 틀림없다. 홍보대사가 부산국제영화제를 빛냈던 이정재이고, 주무대가 재개발하는 북항이며, 필수 인프라가 가덕신공항인 것은 상징적이다. 시민들의 꿈이 현실이 되었고, 그 현실이 다시 꿈을 잉태하는 셈이다.
언론도 그 꿈에 함께한다. 〈부산일보〉는 지난달부터 시리즈를 시작했다. 20개 분야를 선별해 엑스포가 열리면 무엇이 좋은지 짚고, 유치를 기원하는 30명의 인터뷰를 릴레이로 싣는다. 엑스포가 열릴 ‘2030년’에 착안한 것이다. 인터뷰 두 번째 주자였던 조수미는 엑스포 유치 도전을 ‘뷰티풀 챌린지’(beautiful challenge)라고 규정했다. 그의 말대로 도전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다. 부산은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서 신화를 창조한 경험들이 있고, 그런 DNA가 시민의식에 면면히 흐른다.
국제박람회기구(BIE)가 지난 6일 4개 후보국에 대한 실사를 시작했다. 이로써 실질적인 유치전이 시작됐다. ‘오일 머니’를 앞세운 사우디 리야드와의 경쟁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부산에는 세계를 감동시킬 보편적인 ‘이야기’가 있고, 대한민국에는 K컬처, 기술, 맨파워 등 공유할 거리가 많다. 다음 달 2일 한국을 찾는 엑스포실사단에게 이런 콘텐츠가 유감없이 전달되길 바란다.
끝으로 이런 상상을 해본다. 부산에는 물가를 뜻하는 ‘포’(浦)가 들어간 곳이 많다. 호포, 구포, 덕포, 다대포, 부산포, 미포, 청사포, 구덕포…. 강과 바다를 품고 있으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면 어떨까. 엑스포(浦). 배뿐만 아니라 비행기가 가덕도를 통해 드나들며, 세계인들이 농수산물 대신 자기 나라 물건을 바리바리 싣고 와 교류하는 곳 말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2023-03-1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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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얼마면 될까? 얼마면 돼?
저출생 문제가 대한민국에 가장 큰 위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처음으로 월 출생아 수 2만 명 선이 붕괴하였고 1만 명 대로 굳어질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출생아 수 급감에 사망자 수는 늘어나 인구 자연 증감은 37개월째 마이너스 행진 중이다. 코로나 사태까지 겹쳐 2022년 인구 자연 감소는 10만 명을 넘어섰다. 세계가 놀라는 한국의 합계 출생률 0.7명대는 더 악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국의 인구 위기는 이제 세계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될 정도이다. 옥스포드인구문제연구소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나라가 한국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한국의 저출생 상황이 해결되지 못하면 경제 성장률이 2020년대 2%에서 2030년대 1.4%, 이후 0.8%를 기록할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를 내놓았다.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마저 지난해 본인의 SNS에 “한국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면, 인구는 3세대 안에 현재의 6%(330만 명) 미만으로 떨어지며 인구 대부분이 60대 이상을 차지할 것이다”라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되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한국 정부가 이 같은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16년간 무려 280조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악화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는 점이다. 결국 한국 정부의 해결책은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뜻이며 사실상 실패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정부를 비롯해 지자체의 저출생 대책은 대부분 둘째, 셋째를 낳으면 축하금과 육아용품을 지원하는 형태였다. 여기서 조금 더 발전한 내용이 유아, 유치원생 등 저연령 아동의 돌봄을 확대하는 내용이다.
최근 대책들 역시 핵심은 기존보다 지원 금액을 더 올리겠다는 내용이다. 부산 북구청은 올해부터 셋째 아이를 출산하면 1000만 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해 관심을 받았다. 얼마 전 모임에서 이 뉴스가 대화 주제로 올라온 적이 있다. 1000만 원을 주면 셋째를 낳겠냐고 물었더니 6명의 참석자 모두 코웃음을 치며 그 힘든 걸(출산과 양육) 다시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입 맞춰 말한다. 인기 드라마의 유명한 대사 “얼마면 될까? 얼마면 돼?” 같이 돈을 더 주겠다는 정책만으로는 심각한 저출생 상황은 해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럼 어떤 정책들이 필요할까. 한국의 상황을 분석한 외국 언론과 전문가들이 답에 관한 힌트를 주고 있다.
미국 CNN은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입해도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다. 아이들의 일생을 지속해서 지원하는 식으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나 역시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으로 이 지적에 크게 공감한다. 밥만 주면 알아서 자라고 혼자서 놀거리를 찾는다는 건 옛말이다. 생후 3개월 때 문화센터 유아강좌부터 시작된 아이 뒷바라지가 초등을 넘어 중등,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까지 이어지고 있다. 청소년쯤 되면 밥도 알아서 차려 먹고 엄마가 챙겨줄 게 없지 않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안타깝게도 요즘 청소년들은 밥을 챙겨 먹을 시간이 없다. 워킹맘들은 학원 중간 시간에 맞춰 음식이 도착할 수 있도록 배달앱 주문 시간을 알람으로 맞추고 있다. 부모의 정보력과 분석력, 준비 상황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는 한국의 입시 제도는 최소 20년 혹은 그 이상을 부모가 아이 한 명에게 올인하게 만든다.
〈뉴욕 타임스〉와 영국 BBC는 “집값 상승이 청년의 주거 문제로 이어져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일자리를 찾아 서울 수도권으로 청년이 몰리고 수도권의 비싼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하니 결혼을 망설이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 서울과 지방 불균형을 해소하지 못하면 저출생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일본의 한 언론은 “대부분의 OECD 회원국은 출생률이 올라가는데, 한국과 일본은 반대이다. 이는 두 나라의 남녀평등지수가 세계 99위와 116위라는 점이 관련되어 있다”고 언급했다.
인구학자들 역시 양성 평등한 분위기와 출생률은 깊은 관계가 있다고 강조한다. 스웨덴의 저명한 인구학자 안데르손 교수는 “한국은 일과 가정을 함께 하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이다. 젠더 평등한 가족정책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정부가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붓는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개인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고 사회가 기꺼이 도와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이 양육과 관련해 눈치 보지 말고 직장에서 조퇴하거나 휴가낼 수 있어야 하고, “이제 다 컸는데 아직도 신경써야 하냐”는 식으로 돌봄의 연령을 맘대로 해석하지 말라는 뜻이다.
2023-03-0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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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원북원부산' 20주년을 맞아
“좋은 책을 읽으면 세상과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과 반성을 하게 된다. 책 열 권을 읽는 것보다 한 권의 책을 깊이 읽고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누는 여유가 중요하다. 좋은 책은 굳어진 나를 흔들고 출렁이게 한다. 그 출렁임은 견고한 아집을 무너뜨리고 삶의 깨달음을 준다.”
2020년 산문집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로 ‘원북원부산(One Book One Busan)’ 일반 도서에 선정된 이국환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의 말이다. 3년 전 이 교수를 인터뷰할 때 들었던 이 말은 올해 20주년을 맞은 ‘원북원부산’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원북원부산’은 ‘책 읽는 도시 부산’을 목표로 2004년 출범한 범시민 독서생활화운동이다. 출범부터 부산시와 부산시교육청이 주최해 왔으며 현재 부산시민도서관을 비롯해 부산지역 48개 공공도서관(분관 포함)이 공동 주관하고 있다. 원북원부산은 20년 동안 부산 시민들이 참여해 ‘한 권의 책’을 선정해 읽고 토론하는 장으로 역할을 했다. 부산시민도서관 등은 원북원부산 어울림 한마당 외에도 원북 독서릴레이, 원북 독후감 공모, 원북 작가 순회 강연회와 같은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원북원부산은 시민들의 공감대 형성과 독서인구 저변 확대를 통해 ‘책 읽는 부산, 생각하는 시민, 토론하는 사회’ 조성에 크게 기여했다.
원북 선정 과정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된다. 14명으로 구성된 원북원부산 도서선정위원회가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운영된다. 위원들은 매달 130여 권의 검토도서를 읽고 토론을 거쳐 원북 후보도서 목록을 축적한다. 여기에 독서단체, 학생, 학부모, 독서전문가, 시민 등으로부터 연중 추천도 받는다. 추천도서 검토 뒤 12월에 다음 해 원북 후보도서 100권을 선정한다. 그 뒤 원북원부산 선정협의회를 개최하고 독서와 토론을 거쳐 다음 해 1~2월에 단계별(100권→50권→25권→9권)로 후보도서를 선정한다. 올해는 특별히 20주년 기념 부산도서 10권을 추가해 총 110권을 선정했으며 단계별로 110권→58권→30권→12권 순으로 줄였다.
원북원부산 20년 역사에서 2020년은 커다란 전환기였다. 우선 사업 명칭이 ‘원북원부산 운동’에서 ‘원북원부산’으로 바뀌었다. 원북 최종도서 선정도 1권에서 일반, 청소년, 어린이 등 독서 대상별로 총 3권을 뽑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이 방식을 적용해 2020년에는 이국환 교수의 산문집 외에 청소년 부문 김지혜 작가의 〈선량한 차별주의자〉와 어린이 부문 이혜령 작가의 〈우리 동네에 혹등고래가 산다〉가 원북 도서로 선정됐다. 주최 측은 그해 4월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원북원부산 어울림 한마당’을 열 계획이었지만 사상 초유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행사를 연기했다. 이국환 교수는 당시 인터뷰 때 “원북은 단순히 책 한 권을 함께 읽자는 것이 아니다. 경계를 허물고 서로에게 닿는 길 하나를 함께 열자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독자들과 책에 관해 토론하는 공유의 기회가 위축돼 아쉽다. 저자와의 만남 행사가 열리면 텍스트 너머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다”고 기자에게 심정을 전했다. 선정 작가 3명은 우여곡절 끝에 두 달 뒤인 6월 부산시민도서관 시민소리숲에서 규모를 축소한 북콘서트 형식으로 독자들과 만날 수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은 원북 선정 방식 변화는 물론, 원북 행사의 새로운 형태를 모색해야 하는 시기였다.
이달 초 ‘2023년 원북 후보 도서’가 확정됐다. 올해는 원북원부산 20주년을 기념해 일반·청소년·어린이 외에 부산 도서 부문을 추가해 12권(부문별 3권)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일반 대상 후보 도서는 〈단어의 집〉(안희연, 한겨레출판) 〈돌보는 마음〉(김유담, 민음사) 〈헌책방 기담 수집가〉(윤성근, 프시케의숲)이다. 청소년 대상 후보 도서는 〈지금 당장 기후 토론〉(김추령, 우리학교) 〈페퍼민트〉(백온유, 창비) 〈훌훌〉(문경민, 문학동네)이다. 어린이 대상 후보 도서는 〈6분 소설가 하준수〉(이수용, 위즈덤하우스) 〈거짓말의 색깔〉(김화요, 오늘책) 〈우리가 케이크를 먹는 방법〉(김효은, 문학동네)이다. 부산 관련 후보 도서는 〈망치질하는 어머니들 깡깡이마을 역사 여행〉(박진명, 너머학교) 〈부산에 살지만〉(박훈하, 비온후) 〈호텔 해운대〉(오선영, 창비)이다. 부문별 최종 한 권을 가리기 위한 부산 시민 투표는 3월 16일까지 부산시민도서관 홈페이지, 부산지역 공공도서관과 초·중·고등학교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오프라인 투표는 공공도서관에 비치된 투표지를 활용하면 된다.
올해는 어떤 책들이 원북에 선정될지 벌써 궁금하다. 많은 시민이 원북과 함께 책 속으로의 즐거운 여행에 동참하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를 받아 원북원부산이 ‘품격 있는 도시, 부산’을 만드는 마중물이 됐으면 한다.
2023-02-2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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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지하철 적자를 노인 탓으로 모는 나라
지하철 적자가 노인 탓이라고 한다. 참 수월한 논리다. 거대 공기업들의 적자 요인을 이렇게 단순하게 요약하는 용기가 놀랍다. 노인들 마음은 어떨까. 졸지에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한 듯한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한쪽으론 사회에 부담을 준다는 자책감에 모두가 속으로만 끙끙 앓는 건 아닐까 싶다.
부산도시철도 2021년 당기순손실은 1948억 원이었다. 그해 노인 승객을 위한 무임수송비는 1090억 원으로 집계됐다. 부산교통공사는 이를 ‘무임손실액’으로 잡아 전체 손실의 56%를 차지한다고 설명한다. 만 65세 이상 노인들을 공짜로 태워주는 게 적자의 가장 큰 요인이라는 변명이다. 서울도 엇비슷하다. 서울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의 2021년 영업손실은 9385억 원이다. 그해 노인 무임수송비는 2311억 원이다. 같은 논리를 들이대면 노인 무임수송비가 서울지하철 전체 영업손실의 24%가량을 차지한다. 2021년 국내 6개 도시 지하철 전체 무임수송비 규모는 4717억 원에 이른다. 65세 이상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논란은 국내 지하철의 만성적 적자구조에서 비롯됐다. 부산교통공사, 서울교통공사 등이 운영하는 각 도시 지하철은 엄청난 규모의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부산교통공사 올해 적자 규모는 1365억 원에 달할 것으로 부산시는 추정한다. 서울교통공사 총 누적 적자는 17조 원에 달한다.
국내 지하철은 수익 구조가 열악하다. 건설비는 어마어마한데도 상대적으로 낮은 운임 체계를 유지해 적자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우리와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외국을 다녀봤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만큼 지하철과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 요금이 저렴한 선진국은 흔하지 않다. 그래서 ‘대중교통 천국’이라 불리기도 한다. 국민 편의와 교통복지를 위해 우리 사회가 태생적 적자 구조의 지하철 시스템을 ‘채택’한 것이다. 그런데도 지방자치단체와 교통공사들은 만만한 노인만 물고 늘어지며 적자 타령이다. 노인 무임승차가 지하철 적자의 주범인양 떠든다. 그렇다면 노인에게 요금을 꼬박꼬박 다 받는 시내버스 적자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준공영제인 부산 시내버스는 무임승차 제도가 없는데도 만성 적자에 허덕인다. 결손액 보전을 위해 해마다 거액의 혈세가 시내버스 업계에 지원된다.
사회적 약자인 노인이 타깃이 된 듯하다. 정부와 지자체 등은 구조적 요인은 깊숙이 숨겨 놓고 약한 고리만 들춘다. 저렴한 요금 체계, 공기업의 방만 경영, 인구 구조 변화 등이 지하철 적자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하철 운영 적자는 무임승차 제도로 인한 손실이 원인이 아니라는 한국교통연구원 보고서도 있다. 수송원가에 비해 낮은 운임을 징수하는 구조가 근본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누구도 이 같은 근원적 문제에는 관심을 크게 두지 않는 듯하다. 말 없는 노인들만 억울한 노릇이다.
노인 무임승차 논란은 어제오늘 이야기도 아니다. 폐지 또는 축소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번번이 퇴짜 맞았다. 부산교통공사 등 전국도시철도운영기관은 2005년 무임수송비용 관련 법률 개정을 국회에 건의하기도 했다. 당시 노약자 ‘무임우대권’ 폐지 시도는 무위에 그쳤다. 노약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 회피로 지하철 공공성 훼손이 우려된다는 여론이 높았던 까닭이다. 2010년 이명박 정부의 김황식 국무총리는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를 ‘과잉 복지’라고 말했다가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김 총리는 결국 사과로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부산도시철도를 타면 노인이 유독 많은 건 사실이다. 국내 지하철 무임승차 비율을 살펴보면 부산이 광주 다음으로 높다. 부산도시철도 이용객의 60%가량이 65세 이상이다. 그런데 부산도시철도 무임승차 비율이 높은 것도 노인들 탓은 아니다. 수도권 초집중화로 젊은이들이 왕창 빠져나갔으니 부산에 노인이 많아 보일 수밖에 없다. 지역도 그럭저럭 살 만하던 나라가 어느새 사람과 돈이 모조리 한데 쏠린 ‘서울 공화국’으로 변질돼 버렸다. 통계청 집계 결과 부산에선 지난해 1만 3562명이 다른 지역으로 순유출됐다. 이 가운데 1만 2317명이 서울(7885명)과 경기도(4432명)로 떠났다. 부산 순유출 인구의 91%가 수도권으로 쏠린 것이다. 수도권 일극화로 지역은 빈사 상태다.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른 건 노인들만이 아닌 모두의 책임이다.
노인 세대가 요즘 무척 쓸쓸해 보인다. 한때 고도 성장기 산업화의 역군이었던 그들이다. 선진국 기틀을 닦은 한 시대 주역들을 성가신 짐짝 취급하는 건 몹시 무례한 태도다. 대한민국을 오늘의 모습으로 키운 노인들은 무임승차를 누려 마땅하다. 그들의 피와 땀으로 일군 선진국에 우리가 무임승차한 건 아닌가부터 따져 보자.
2023-02-1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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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부산울산경남특별연합 만시지탄
얼마 전 부산시 인사 명단에서 ‘부산·울산·경남 특별지자체 합동추진단’을 이끌던 이재형 사무국장이 교육 파견을 떠난다는 소식을 접하고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부울경특별연합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부울경특별연합 실무의 최일선에 선 공무원이었다. 그는 특별연합이 난관을 만날 때면 ‘안타깝다’ ‘답답하다’는 문자를, 또 성과라도 나면 ‘행복하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대표선수’ 격인 이 국장의 부재는 부울경 행정 조직 내에 특별연합을 진행할 기구가 더는 없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실제 그의 인사에 뒤이어 부산시의회가 울산시의회와 경남도의회에 이어 지난 8일 본회의를 열고 ‘부울경특별연합 규약 폐지 규약안’을 통과시켰다. 아직 행정안전부 승인·고시 절차가 남았다지만 부울경이 추진 중단 결정을 내리는 순간 특별연합 추진은 중단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제서야 털어놓지만 특별연합이 불안정한 형태의 도시 결합이라는 생각을 내내 지우지 못했다. 개별 광역지자체와 광역의회를 유지하면서 또 다른 행정 조직인 특별연합을 둔다면 과연 실질적인 권한을 가질지 의구심이 컸다. 특정 사안을 놓고 대표성 논란이 불거진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도 의문이었다. 부울경특별연합이 본격적으로 운영돼도 과연 부울경 미래를 밝힐 정답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본질적인 물음에도 마땅한 답을 떠올릴 수 없었다.
간사이광역연합 취재 차 지난해 8월 오사카를 찾았을 때 의문들이 막연한 불안감 때문은 아니었음을 확인했다. 간사이광역연합 간부 공무원은 간사이광역연합 역할의 한계를 걱정했다. 간사이광역연합은 세계적으로 메가시티 성공 사례였다. 당시 가슴이 턱 막혔던 기분은 아직도 여전하다. 그는 간사이광역연합도 2010년 출범 때 정한 방재, 관광·문화·스포츠 진흥, 산업 진흥, 의료, 환경보전, 자격시험·면허, 직원연수 등 7개 사무에서 더는 확대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기능적·실용적 결합에 머물고 있을 뿐 화학적·본질적 결합으로 나아가지 못 하고 있다는 취지였다.
부울경특별연합은 폐지 역시 불안정한 결합의 결정체답게 드라마틱했다. 부울경 3개 시·도 광역단체장이 더는 못 하겠다고 합의한 순간 부울경특별연합 항해는 끝나버렸다.
부울경특별연합 중단은 여러 한계와 문제에도 오래도록 안타까운 도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전문가들의 오랜 연구와 논의 끝에 불안정한 형태이지만 현 단계에서 시도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다는 점에서다. 행정이 불필요하게 끼어드는 경제동맹이나 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행정통합은 현실성이 더 떨어진다는 게 중론이었다. 간사이 사례를 참고해 부울경특별연합은 40개 사무를 정해 더 확장적으로 운용될 수 있도록 보완했다. 대다수 주민도 기대를 걸었다. 많게는 80% 넘는 주민이 ‘특별연합 추진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부울경에서는 한 번 도전해 볼 일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혔다는 의미다.
3개 시·도 단체장은 중단 이유로 ‘비용만 들고 실익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부울경특별연합을 추진해야 할 이유다. 부울경 주민은 이미 메가시티에 살고 있다. 누가 등 떠민 일도 아니고 부울경이 하나여야 한다는 의무감의 발로는 더욱 아니다. 해운대구 아파트에 사는 이웃은 울산 온산공단 직장으로 출퇴근을 하고, 부산 북구에 사는 지인은 중학교를 마친 아들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경남 양산으로 이사를 갔다. 부산외곽순환도로가 생기고 나서는 주말이면 경남에서 부산 기장과 해운대를 찾는 차량 행렬이 길게 늘어진다. 시·도 경계 때문에 불편한 도시가 됐다는 의미다. 주민 불편을 해소하고 원활한 경제 활동을 도와야 할 행정은 아직 뒷받침 역할을 못하고 있다. 비용이 들고 실익이 없는 일을 행정기관이 못 하겠다면 어느 영역이 해결하라는 말인가.
빨대 효과를 부울경특별연합의 부작용으로 보는 시각도 반대한다. 경남과 울산의 인구와 기업이 부산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하지만 수도권으로 향하는 직경이 더 큰 빨대를 막는 일이 급선무다. 누구도 대놓고 언급하지 못했지만 부울경특별연합의 숨은 요체는 부울경에 새로운 중심지를 만들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울경 이탈을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내부에 중심지를 새로 만들자는 불가피한 해법이다. 말하진 않아도 중심지가 새로 생긴다는 사실은 모두가 경험적으로 알았다. 부울경 여러 지자체가 특별연합 사무소를 유치하려고 쟁탈전도 벌어지지 않았나.
3개 시·도 단체장은 부울경을 묶기 위한 노력에 더 매달려야 한다. 수많은 반대에도 부울경특별연합 추진을 중단시킨 일이 그들의 전횡으로 기억되지 않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2023-02-1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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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뜨거운 가덕신공항, 감당할 수 있나
요즘 가덕신항공이 뜨겁다. 2~3년 전 신설 문제로 부산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였던 가덕신공항은 이후 어렵사리 신설 건립이 결정되면서 조용한 행보를 해왔다. 이후 부산의 가장 중요한 이슈는 2030세계박람회 유치로 이어졌다.
그랬던 가덕신공항에 대해 최근 빨간불이 커졌다. 관련된 쟁점은 크게 2가지다.
첫째, 조기 개항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부산의 입장에서 2030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서는 가덕신공항이 2030년 전에 개항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국토교통부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하다. 국토부는 매립식 건설공법으로 2035년에나 개항되는 원안을 그동안 고수하다가, 최근 2~3년 공기를 앞당길 수 있는 수정안을 내놨다.
부산시가 공기를 앞당기기 위해 제시한 하이브리드 공법(매립식+부유식)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다. 국토부의 건설공법 자문회의에서 그 분위기가 그대로 읽힌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위원들은 건설공법의 공사기간보다는 안전성에 대한 검증만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국토부가 공사기간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 자문회의가 이어진다면 2030년 이후에 개항되는 국토부의 매립식 건설공법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고 일부 자문위원들은 분위기를 전했다. 국토부가 2030세계박람회 유치 실패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둘째, 대구경북(TK) 통합신공항이 경쟁구도로 올라왔다는 것이다. 가덕신공항은 동남권 관문공항으로 추진됐다. 국가의 제1공항인 인천국제공항에 이어 유사시 인천공항을 대신할 수 있는 지방 최대의 공항으로 육성한다는 게 정부와 부산시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TK신공항특별법에서는 TK신공항이 중·남부권 중추공항으로서 역할을 한다는 것이 명시돼 있고, TK신공항 건설 시 부족한 재원은 국고로 지원하다는 것 등이 일사천리로 추진되고 있다.
중추공항으로서 위상과 국제물류공항으로서의 역할이 겹친다. 중추공항으로 지정되면 국가의 지원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항공노선 신설에 유리하다. 가까운 위치에 있는 영남권의 2개 관문공항은 물류허브로서 성장하는 데 서로 걸림돌이 될 뿐이다.
이처럼 상황이 심각한데, 부산 정치권과 부산시는 안이하고 무기력하다.
조기 개항과 관련해서는, 국토부가 가덕신공항의 조기 개항을 천명했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2030세계박람회 유치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니, 설마 조기 개항에 문제가 있겠느냐는 안이한 인식이다. TK신공항과의 경쟁구도를 부추기는 것은 지역 갈등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말을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한다. 그저 예산 분산으로 인한 ‘치킨 게임’ 양상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며 여론을 잠재우기 바쁘다.
현 시점에서 부산 정치권과 부산시는 가덕신공항 문제를 감당하기 어려워 보인다. 향후 대응방안이나 출구전략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2~3년 가덕신공항 유치 때 보였던 전략 부재를 다시 한번 되풀이하는 모양새다. 그때도 부산 정치권과 부산시의 컨트롤타워는 전략보다는 그저 부산시민의 열망에 기대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하고 나서야 겨우 유치에 성공했다.
부산 입장에서는 가덕신공항의 조기 개항과 동남권 중추공항 위상은 둘 다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다. 우선, 조기 개항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건설공법이 2월 말이나 3월에는 결정되는 만큼 국토부와의 긴밀한 협의가 더 절실하다. 매립식이든 하이브리드 공법이든 절충을 해서 공기를 앞당기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가덕신공항특별법의 개정안도 이른 시기에 통과시켜 건설공법 결정과 동시에 향후 가덕신공항 ‘조기 개항 로드맵’을 완성시켜야 한다. 지금의 불확실한 일정으로는 2030세계박람회 유치에 장애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덕신공항의 위상 문제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TK신공항이 여당 내의 TK세력 입지, 홍준표 대구시장의 추진력 등으로 위상이 급부상했고 개항 이후 사실상 무한경쟁체제로 들어설 가능성이 큰 만큼, 이를 막는 것 못지않게 향후 중추공항 표기 등 가덕신공항의 위상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8월에 마무리되는 가덕신공항 기본계획 용역에 제2활주로 배치, 활주로 길이, 추가확장 계획 등 공항의 규모와 기능을 높이는 방법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게 바람직하다.
2030세계박람회 유치에 매진해야 할 시점에 가덕신공항 문제가 불거진 것이 안타깝다. 수도권 팽창에 맞서는 지역 공항을 두고 경쟁을 벌여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현 상황에 답답한 부산 시민들은 부산 정치권과 부산시가 국토부와 대구 등에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모습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풀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2023-02-0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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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부산이라 좋다'가 역설적으로 들리는 이유
3년 전 일이다. 20여 명의 지인과 부산이라는 도시를 알아가기 위해 ‘도시탐사대’를 만들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도시 곳곳을 탐사하고 이를 기록하기로 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단 한 번의 현장 탐사를 끝으로 사실상 중단돼 버렸다. 최근에는 코로나의 위세도 점점 잦아들고 반대로 도시를 알고 싶은 기자의 갈증은 더 높아져 주말에 짬을 내 3~4명의 지인들과 함께 ‘동네 한 바퀴’를 하며 도시 곳곳을 돌아보고 있다.
모르는 도시 곳곳을 알아가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지인들과 동네를 둘러보며 문화와 역사의 흔적을 찾고 얘기하는 즐거움, 또 맛집이나 카페, 유명 건축물 등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도로가 사방을 막아버려 섬처럼 고립돼 버린 ‘정과정 유적지’(수영구 망미동)를 보곤 많이 안타까웠다. 과거와 현재의 단절, 소통의 부재를 보아서다. 유배 문학이나 고려가요, 혹은 부산의 역사를 언급할 때 좀처럼 빼놓을 수 없는 곳이지만, 우리는 이를 너무 홀대하고 있었다.
단절은 도시 속에 널브러져 있었다. 특히 아파트 단지는 심각했다. 대부분 스크린 도어가 설치돼 주민이 아니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가로경관 대신 성벽같은 아파트 담장이 가로막고 있었다. 마을의 확장이라는 ‘수평적 확대’에서 고층 아파트를 내세운 ‘수직적 압축’으로 도시가 바뀌면서 가장 큰 도시 변화는 바로 이웃과의 소통 부재인데 이걸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구덕산 아래 빼곡히 들어선 고층 아파트를 보곤 격세지감을 느꼈다. 이런 생각도 해봤다. 어릴 적 여기서 살았던 사람이 오랜만에 이곳을 방문한다면, 어떤 마음일까? 어린 시절의 흔적이나 추억을 찾을 길 없어 꽤 슬펐을 텐데.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생활상이 도시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래서 흔히 ‘도시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다’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이를 보고, 만지고, 느끼면서 성장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자긍심도 갖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산이란 도시는 너무 쉽게 그 흔적을 지워 버렸다. 남선창고, 하야리아 공원 내 건물들, 동래구청사 등. 때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때론 재개발·재건축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영화에 대한 공간 소멸은 그 단적인 예다. 삼일·삼성·보림극장은 이제 옛 이름이 돼 버렸다. 누군가에겐 “내 청춘은 여기서 시작돼 이곳에서 마침표를 찍었다”고 할 수 있는 곳이었지만, 이들 극장들은 하나둘 사라져갔다.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아야 할 ‘영화 도시 부산’의 부끄러움이며 슬픈 과거다.
이것만이 아니다. 수많은 공간이 단순히 오래됐다는 이유로 허무하게 소멸돼 갔다. 이런 걸 보면 부산은 ‘과거를 지우는 지우개 도시’라 해도 할 말이 없다. 과거를 지움은 추억 ·시간과의 단절이요, 나아가 우리의 아버지·할아버지 세대와의 단절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 도시 어디에선가 또 다른 우리의 기억들이 너무 쉽게 지워지고 있을 터이다.
영국의 환경심리학자인 제니 로와 건축학자 라일라 맥케이는 공동저서 〈회복도시〉라는 책에서 ‘행복한 도시를 위한 7가지 요건’을 얘기했는데, 이중 ‘이웃도시’와 ‘포용도시’가 포함돼 있다. 이는 서로 배척하지 않고 이웃처럼 함께 살아가는 도시를 말한다.
예기〈禮記〉에 이런 말이 있다. ‘예라고 하는 것은 근원으로 돌아가 옛것을 보존하며 자신을 존재하게끔 한 사람들을 잊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 말은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이젠 도시에서도 예가 지켜져야 한다. 부산이란 도시가 그랬으면 좋겠다.
도시는 표정만 있는 게 아니라 역사와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곳이어야 한다. 켜켜이 쌓인 우리의 삶이 살아 숨쉬는 곳 말이다.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없애고, 지워도 두려워하지 않는 도시는 정녕 두렵다.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지 않는 도시는 병든 도시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평론가 발터 베냐민은 “새것을 갖는 게 아니라, 오래된 것을 새로운 가치로 만들면 아무리 오래된 것도 새것이 된다”고 했다.
이젠 부산도 달라져야 한다. 단절이 일상화되는데도, 미래 자산이 눈앞에서 사라지는데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 놓고 ‘Busan is good(부산이라 좋다·부산의 새 슬로건)’라고 해선 안 된다. 그렇다면 양심 불량이다. 아니 도시 정체성의 상실이다. 시민의 입에서 “부산이라 좋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그때를 상상해 본다. 도시 슬로건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뉴욕시의 슬로건 ‘I Love New York’은 50여 년간 그대로다.
지금 ‘부산이라 좋다’라는 말이 역설적으로 들리는 이유다.
2023-01-2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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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사람이 모이는 부울경
새해를 맞아 지인들과 마주한 자리. 여러 이야깃거리를 따라 흐르다 결국 종착지는 ‘부울경의 현실’이다. 부산을 중심으로 한 부울경이 살기 좋은 곳이긴 하나, 살아가며 헤쳐가야 할 처지가 해가 갈수록 녹록하지 않아서다. 실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서로 응원해야 할 연초부터 이 데자뷰를 벗어나지 못한 지 오래다.
〈부산일보〉는 올해 신년기획의 한 테마를 ‘사람 모이는 도시로’로 정했다. 더 이상 부산권에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계속 탈출한다. 기획보도를 하면서 2035년으로 예상됐던 부산과 인천의 인구 역전이 실은 2028년께로 앞당겨질지 모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가까스로 지키고 있는 부울경 최대 도시, 대한민국 제2의 도시 위상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부산이 처한 상황은 그만큼 다급하다.
전국을 집어삼키는 수도권에 대항하는 부산·울산·경남권의 3대 미래 동력은 메가시티, 2030부산엑스포, 가덕신공항이다. 한데 어느 것 하나 확실히 이뤄 놓은 게 없다. 핵심인 메가시티는 성사를 코앞에 두고 단체장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침몰했다. 가덕신공항마저 그 위상이 타지에 위협받는다. 이대로는 파국이다.
운 좋게도 연수차 1년간 지냈던 미국 텍사스주 주도 오스틴은 성장하는 도시다. 남부의 명문 텍사스대학(UT)이 인재를 배출하는 교육·문화도시이기도 하다. 애플과 구글, 삼성전자는 물론 혁신의 아이콘인 테슬라까지 세계적인 기업들이 계속 오스틴 권역에 둥지를 튼다. 실리콘밸리 오라클도 최근 본사를 오스틴으로 옮겼다. 청년이 선호하는 일자리가 계속 늘어나니 당연히 전국에서 사람이 몰려 든다. 10년간 인구증가율이 30%를 웃돌고, 45세까지 청년 인구가 절반에 가깝다. 도시가 살아 숨쉬고, 도시 특유의 문화와 축제가 꽃을 피운다. 그러니 미국 청년이 살고 싶어하며, 전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힌다.
대체 오스틴의 비결은 뭘까. 단 하나를 남긴다면, ‘법인세와 개인소득세가 없다’는 것이다. 기업으로선 무시 못할 큰 혜택이다. 개인으로 봐도 캘리포니아나 뉴욕 등 타지에 비해 세금 부담이 현저히 낮다. 그렇다고 도시의 세수가 부족하지도 않다. 기업친화적인 환경이 덩달아 경제를 성장시키며 선순환한다.
그렇다면 부산은? 부울경 시도민의 세금 목줄을 정부, 즉 수도권이 쥐고 있다. 세금 규모를 결정할 권한이 없는 지자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부산권에 오는 기업에 지역 은행이 금리를 파격적으로 낮춘다면 민간 기업의 부산행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경쟁력이 떨어진 시중은행들이 앞다퉈 부산형 금리를 내세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지역 은행의 금리가 월등히 낮다고 말하는 이가 없다. 지역 은행 수익이 나지 않아 그렇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없다.
차라리 민·관이 손을 잡고 대대적인 부울경발 봉기를 일으키는 건 어떨까. 지역 국·공립대의 등록금을 파격적으로 낮추도록 만들어 청년과 인재를 더 붙잡고, 지역 공기업의 지역대학 인재 할당 비율을 더 높이자는 것. 이에 더해 부울경에 남거나 찾아오는 국내외 청년, 학생들을 위한 대규모 민·관 기금 마련을 추진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기업에 양질의 인력을 공급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부산일보〉는 최근 ‘이방인이 된 아이들’ 기획 보도로 가파르게 늘고 있는 부산권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의 현실을 알리고 대안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보도 이후 가장 많은 반응은 ‘그런 아이들이 있는 줄 몰랐다’는 것이다. 팍팍한 삶을 살다 보면 눈길을 주기 힘든 건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기사 댓글에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로 못할 악플이 무수히 달렸다. 저출산과 학령인구 감소, 청년 탈출로 소멸하는 지역이 문을 걸어 잠근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수도권 일극주의를 타파하자고 외치지만, 정작 이들을 위한 사회 시스템은 수도권에 비해 한참 뒤진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나마 법무부 부산출입국외국인청과 부산시, 지역 대학 등이 함께 인구감소지역 취업비자를 시범 도입하며 생활인구를 다잡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여기서 부울경 시도민이 눈여겨 볼 지점은 바로 리더의 자질이다. 부산의 박형준식 외유내강 리더십, 대구 홍준표식 돌격형 리더십 가운데 승자는 누구일까. 중차대한 현안을 돌파해야 할 박 시장의 리더십에 한계가 온 건 아닌지 부산시민은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경남과 울산 시도민도 메가시티 등 주요 현안을 두고 내린 단체장의 결정이 옳았는지, 선거로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부울경은 편가르기를 벗어나 산업 재편으로 전남 남부, 경북 해안까지 포용하는 신남부권 중심지가 되는 더 큰 꿈을 꾸어야 한다.
2023-01-1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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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살기 좋은 부산, 떠나는 부산
아이들이 대학 갈 나이가 되니 부산의 교육과 대학 현실이 새삼 와 닿는다. 과거 이류, 삼류로 취급받던 서울 몇몇 대학들의 입시 수시·정시 합격선을 보고 깜짝 놀랐고, 이름도 낯선 서울과 수도권 대학이 부산대와 비슷한 수준인 것에 더 놀랐다. 여기다 요즘 아이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 진학을 우리 때보다 훨씬 더 선호한다. 성적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조금의 가능성만 있다면 기를 쓰고 서울로 가고 싶어 한다.
생활 인프라를 갖춘 대도시이면서도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고, 물가도 상대적으로 저렴해 “그래도 부산만큼 살기 좋은 곳 있나”라고 말 해왔던 것은 기성세대의 자위일 뿐이다. 20여 년 전만 해도 지방대를 나와 대기업에 입사하기가 그리 어렵진 않았다. 또 지역의 탄탄한 중소기업에 들어가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부산은 제조업 기반의 전통산업이 몰락했고, 새로운 돌파구는 여전히 열지 못했다. 부산에 삶의 터전을 이미 마련한 어른들은 만족할지 몰라도, 아이들은 일자리가 없는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경쟁하고 싶어 한다. 지방대를 나와선 수도권 대학 출신들과의 경쟁에서 밀린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예전보다 지방 학생들의 의·약대와 서울 명문대 진학은 갈수록 바늘구멍이 되고 있다. 이들 인기 대학과 학과엔 갈수록 서울 강남 3구를 위시한 수도권 학생들의 몫이 계속 커진다.
무한경쟁 속에 지방의 산업과 교육은 맥을 못 추고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대학 진학과 취업을 위해 부산 청년들은 수도권 등 타지역으로 빠져나가고, 신산업에 뛰어든 기업들은 인재 확보가 어렵다며 부산을 떠나고 싶어한다. 부산의 15개 대학 중에 무려 10곳은 올해 정시 경쟁률이 3 대 1 미만으로 사실상 미달이다. 인구 감소로 대학 구조조정은 이제 필연적이긴 하나,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는다는 ‘벚꽃 엔딩’ 이 눈앞에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지긋지긋하게 강조돼 온 말이지만, 정부 수립 이후 지속돼 온 수도권 일극주의를 멈추지 않고는 딱히 해답이 안 보인다. 기업과 자본, 인력이 넘쳐나는 수도권과의 경쟁에 이미 부산을 비롯한 지방은 백기를 들었다. 이제 제발 살려달라는 아우성뿐이다. 그러나 중앙의 권한과 자원을 지방으로 넘기는 지방분권은 여전히 요원하다.
지방이 바라는 2차 공공기관 이전도 아직 갈 길이 멀다. 1차 공공기관 이전으로 부산에 금융·해양 공기업들이 모여들면서 청년들이 선망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생겨났다. 부산 최고의 직장이 지역마다 다 있는 ‘지방은행’이란 자조 섞인 푸념은 이제 듣지 않아도 된다. 또 부산대가 그나마 이 정도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일정 부분 이들 공기업의 지역인재 할당제 덕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부산이 기대했던 금융중심지 육성은 1차 공공기관 이전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지난 10여 년의 세월동안 명확해졌다. 보다 많은 금융기관의 집적으로 시너지를 내야 금융중심지로서의 성장은 물론 신산업 투자 확대로 부울경 산업 생태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부산이 가장 기대하는 것은 가덕신공항 건설과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다. 육해공 물류 허브를 구축하고 엑스포를 통해 다양한 기반시설을 조성하면 물류와 산업, 금융, 문화, 관광이 결합한 글로벌 허브도시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물론 이 두 개의 중요한 과제를 빈틈없이 준비해야겠지만, 다급한 부산의 현실을 보면 2030년까지 이것만 바라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장의 일자리 창출과 경쟁력 있는 대학 만들기에도 전력을 다해야 하는 처지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부산 기업 (주)금양이 미래 핵심산업으로 주목받는 이차전지 생산공장을 기장군에 짓기로 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금양은 국내에서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에 이어 세 번째로 ‘2170 원통형 배터리’를 자체개발하는 데 성공했지만, 마땅한 부지를 찾지 못해 다른 지역을 알아보기도 했다. 이에 부산시가 적극적으로 나서 땅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해 기장에 둥지를 틀게 됐다. 또 금양은 부경대 공대 인력 양성 지원을 해 왔는데, 최근 상위권 학생 상당수가 금양에 입사했다. 금양은 2026년까지 8000억 원을 투자해 공장을 조성할 계획으로, 이를 통해 연구·관리·생산 분야 일자리 1000여 개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의 혁신과 지자체·대학의 적극적인 의지가 이뤄낸 ‘지산학’ 합작품이다.
중앙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수적이긴 하지만, 내부의 변화와 혁신 없이 부산이 새롭게 나아갈 수는 없다. 지자체와 기업, 대학 모두 경쟁력 강화와 긴밀한 협업으로 제2, 제3의 금양 사례를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2023-01-0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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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부산의 나눔 열기 새해에도 쭉~ 이어지길
최근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이름으로 선행을 베푸는 ‘팬덤 기부’가 주목을 받고 있다. 팬덤 기부는 단순히 스타를 지지하는 팬 활동을 넘어 나눔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려는 행동으로 나눔 문화를 새롭게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으로 가수 임영웅의 팬카페 ‘영웅시대 위드 히어로’의 부산 남구·수영구·해운대구 모임인 ‘부산남수해’와 ‘부산금정산’은 각각 3년간 1000만 원 이상 기부를 약정하며 사랑의열매 ‘나눔리더스클럽’에 가입해 있다. 부산 영도가 고향인 강다니엘의 팬클럽인 ‘다니티’와 ‘like cat’, ‘팀어벤저스’ 등은 매년 영도 관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쌀, 난방비, 코로나 관련 방역물품 등을 기탁하고 있다. 가수 김호중의 팬클럽 ‘아리스’ 역시 유독 어려웠던 유년시절을 겪은 김호중을 응원하며 그의 생일마다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팬덤 기부’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고 하니 반갑다.
사랑의열매와 적십자사, 초록우산 등 각 모금기관에는 이름은 조금씩 다르지만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클럽이 형성돼 있다. 단순히 금전적 여유만 있다고 해서 이러한 고액기부자 클럽에 가입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고액기부자들은 기부금 납부 뿐 아니라 매년 아동시설을 방문해 직업·직장 멘토링 사업과 시설 개보수, 연탄나눔 봉사 활동 등에도 적극적이라고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고액기부자의 봉사활동 역시 참여숫자가 더욱 많아지고 그 활동도 다양해지고 있다고 하니 고마울 따름이다.
지난해 사랑의열매 고액기부자 클럽 가입자 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았던 도시가 부산이다. 그 증가폭 역시 부산이 최고였다. 기업이 3년간 1억 원 이상 기부하는 나눔명문기업 또한 부산의 누적 가입 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 더하여 지난해 적십자 월후원 회원의 증가율 역시 부산이 가장 높다. 부산이 내세울 수 있는 어떠한 기록보다 값진 것으로 자부할 만하다. 한 번 불이 붙으면 화끈하게 결과를 만들어내는 부산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의리’를 좋아하는 부산에서는 그 나눔의 모습도 ‘의리’가 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따르면 인재양성 사업인 ‘아이리더’에 참여해 5명을 후원하는 (주)아이에스 김인석 대표의 선행에 영향 받은 (주)나우이엔티 손상호 대표, 홍원국제물류(주) 이웅석 대표, (주)비엔애드 김오성 대표는 나눔을 위해 김인석 대표와 ‘F4’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각각 1명의 아이리더를 더 지원하고 고액기부자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특히 이들은 김인석 대표의 생일을 맞아 부산지역 저소득가정 아동들에게 특별제작한 마스크 1만 장을 기부하기로 하자 이 소식을 들은 김 대표가 1만 장을 보태 총 2만 장의 마스크를 기부했다. 이밖에도 자신의 사업분야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기부활동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인성하이텍 이인웅 대표도 이들의 나눔에 합류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선한 영향력 확대의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와 별개로 지난해 10월 (주)디에이알 황성준 대표, (주)바른약품 배용우 대표, (주)다현메디칼 박기종 대표, (주)노벨 박용찬 대표, 포워드컴퍼니 강민철 대표 등은 모임을 가지다가 뭔가 좋은 일을 해보자는 결의를 하고 한 날 한 시에 초록우산을 통해 부산지역 내 보호아동들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 역시 부산지역 기업인들 사이에 확산되는 나눔문화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대한적십자 부산지사에 매월 기부금을 내면서 140회에 이르는 헌혈봉사까지 하고 있는 수월물류(주) 서영호 대표, 매년 100만 원씩 기부해서 10년에 1000만 원의 기부 목표를 세운 원불교적십자봉사회 박정수봉사원, 1004명의 적십자후원회원 추천을 목표로 현재 837명의 후원회원을 추천한 연산9동적십자봉사회 서영희 봉사원 등도 부산의 나눔문화 확산의 주역이다.
이밖에도 묵묵히 선한 일을 실천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의 힘으로 우리 사회가 버텨가고 있다. 기부와 봉사 활동을 적극적으로 알려 선한 행동에 타인이 동참하게 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 선한 행동을 알려 이들을 칭찬하고 본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바로 언론의 임무일 것이다. 새해 본연의 임무를 더욱 열심히 할 것을 다짐해본다.
이달 말까지 부산 부산진구 송상현광장에는 ‘사랑의온도탑’이 서 있다. 107억 원을 목표로 해서 목표액의 1%인 1억 700만 원이 모일 때마다 나눔 온도가 1도씩 올라간다. 지난해 마지막 날까지 77억 6000만 원이 모금돼 72.6도를 달성 중이다.
2023년 새해에는 우리 사회의 선한 이들이 더욱 주목받고 사랑받아 그 선한 영향력이 더 적극적으로 전파되길 바란다.
2023-01-0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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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2030부산세계박람회에 목숨을 걸라
하면 좋고 안해도 되는 행사가 아니다. 이번에 못하면 다음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 죽기 살기로 매달려야 하고, 반드시 해야 하는 행사이다. 바로 ‘2030부산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얘기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이번에 못하면 다음에 하면 된다”거나 “우리가 사우디와 싸워서 이길 수 있겠느냐”는 부정적인 얘기가 나돈다. 일정 부분 맞는 얘기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막대한 ‘오일머니’로 물량 공세를 펼치고,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세계를 유혹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2030엑스포를 유치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렇다고 세계가 깜짝 놀랄 정도로 우리나라에 엑스포 열기가 퍼져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가 언제부터 국제사회에서 돈으로 승부했나. 전 국민의 관심과 기술력, 뚝심으로 올림픽을 두 번이나 유치했고, 아시안게임도 멋지게 해냈다.
미리 기죽을 필요가 없다. 2030엑스포 유치의 최일선에 선 박형준 부산시장 말처럼 우리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 국회 엑스포 특위 위원으로 활약 중인 안병길 의원은 “우리가 승리할 수 있고,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말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 최태원 SK 회장 등 우리 사회 주도 세력이 총동원돼 유치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왜 미리 겁을 먹는단 말인가.
2030엑스포를 반드시 유치해야 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미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2030엑스포를 유치하면 올림픽·월드컵·등록엑스포 등 세계3대 국제행사를 모두 개최하는 세계 7번째 국가가 된다. 경제효과도 엄청나다. 엑스포가 유치되면 43조 원의 생산유발효과, 18조 원의 부가가치 등 61조 원의 경제 효과와 50만 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예상된다. 6개월의 행사 기간에 넉넉 잡아 5000만 명의 국내외 관람객이 부산을 찾을 전망이다. 부산에 젊은이들이 돌아오고 급감하던 인구도 다시 늘어나게 된다. 그야말로 부산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도시로 발돋움하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는 얘기다.
엑스포 유치에 성공하면 가덕신공항 건설이 급속도로 진행돼 2030년 이전에 완공되고, 각종 인프라 구축도 훨씬 빨라진다. 이미 확정된 산업은행 부산 이전 외에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등 각종 공공기관도 쉽게 부산으로 가져올 수 있다. 그런데도 “이번에 못하면 5년 뒤에 하면 된다”는 말이 나온다. 요즘 같은 초스피드 시대에 5년 늦어지면 우리가 50년 이상 뒤쳐진다.
사회의 각 주도 세력에 2030엑스포는 ‘위기이자 기회’이다. 엑스포 유치에 성공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국정 지지도는 급상승하고 자신의 구상도 과감히 추진할 수 있다. 실패하면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이런 점을 잘 알기에 윤 대통령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엑스포 유치에 에너지를 쏟는 것이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마찬가지다.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엑스포 유치에 성공하면 박 시장은 단번에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오를 수 있다. 2026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3선에 오른 뒤 2027년 대선에 도전할 수 있다. 실패하면 ‘3선 부산시장’ 자체가 힘들지도 모른다.
2030엑스포는 차기 총선 5개 월 전인 내년 11월 유치 여부가 결정된다. 엑스포가 여야 정치권 명운과 직결된다는 의미다. 엑스포 유치를 못하면 국민의힘은 22대 총선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국민의힘 소속 모 의원은 “엑스포 유치에 실패하면 (국민의힘은) 총선에서 참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국민의힘 과반 달성이 물건너 가고, 윤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국민의힘은 부산·울산·경남(PK) 총선에서 직격탄을 맞게 된다. 국민의힘은 현재 33석(전체 40석)의 PK 의석을 유지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상당수 의석을 민주당에 내줄 가능성도 있다. 국민의힘 PK 의원들이 엑스포 유치를 핑계로 실속도 없이 혈세를 써 가며 외국을 드나들 때가 아니라는 얘기다. 진정성 있게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 엑스포 유치에 힘을 보태야 한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우리와 무관한 일”인양 외면해선 안 된다. 엑스포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는 민주당 지도부는 정신 차려야 한다. 민주당도 유치 실패의 역풍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대한민국의 모든 구성원이 목숨 걸고 엑스포 유치에 매달려야 한다. 부정적인 생각은 완전히 버리자.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반드시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야 한다. 구국의 일념으로 엑스포 유치에 전념하자. 그리고 그 결과는 생각하지 말자. 그때 가서 득실을 따져도 늦지 않다. 노력하는 자에겐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뒤따른다. 모두 힘차게 외치자. “2030엑스포는 우리의 것이다.”
2022-12-25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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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잉크와 링크 사이
세기말의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던 1999년, 기자가 되었다. 신문사라는 곳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코였다. 잉크 냄새가 건물 전체에 은은했다. 점심 전에 나오는 신문(당시 석간)은 덜 마른 잉크 때문인지 촉촉한 느낌과 함께 진한 향기를 풍겼다. 기자라는 직업은 그렇게 아날로그로 다가왔다.
15년 뒤, 기자인 덕분에 미국 연수를 다녀왔다. 호기심에 들른 저널리즘스쿨 도서관에서 인상적인 내용의 책을 발견했다. ‘잉크의 시대는 가고, 링크의 시대가 온다’. 뉴스 플랫폼이 종이(ink)에서 웹(link)으로 옮겨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막연하게 느껴지던 디지털의 쓰나미가 확 덮쳐오는 것 같았다.
같은 시기 수업에서 ‘Disintermediation’(탈중개화)이라는 단어도 난생 처음 들었다. 그동안은 기자와 뉴스 소비자 사이에서 신문사나 방송사가 중개(media) 역할을 했는데, 앞으로 기자와 소비자가 바로 연결되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언론사보다 기자 개개인의 브랜드가 중요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 2030년을 내다보는 지금, 기자들에게 웹이나 자기 브랜드는 일상이 되었다. 포털에서는 특정 기자를 구독해 그의 기사만을 골라 볼 수 있다. 또 어떤 기사를 많이 클릭했는지 매순간 성적표가 나온다. 외국의 언론 관련 콘퍼런스에 가면 회사에 소속되지 않은 ‘독립기자’도 더러 볼 수 있다.
종이신문은 어떻게 됐을까.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 종이신문을 읽은 비율은 지난해 8.9%다. 2000년 81.4%, 2011년 44.6%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부산일보 11월 8일 자 23면 임영호 명예교수 칼럼)이다. 이런 급전직하의 한중간에서 나는 기자로 살았다. 반면, 1999년 서비스를 시작한 네이버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게 됐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나의 처는 집에서 삼겹살 구울 때나 ‘신문지’를 찾고, 기사는 오로지 포털에서만 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뉴스 자체에 대한 수요는 줄지 않는다는 점이다. 종이신문, 인터넷, 모바일을 다 합쳐 신문기사를 읽은 비율이 90%에 육박한다. ‘종이’로 된 신문은 잘 안 읽지만, 뉴스에 대한 수요는 여전한 것이다. 신문사 잉크 냄새가 마냥 좋았던 24년 차 기자 입장에서 이 같은 현실이 상전벽해처럼 느껴진다.
근본적 고민은 언론에 대한 신뢰 하락이다. ‘기레기’(기자 쓰레기)는 이제 낯설지 않다. 과거 ‘오보’라고 항의받던 것이, 요즘은 ‘가짜뉴스’라고 지탄받는다. 틀린 보도를 일부러 했다는 뜻이 담겼다. 클릭수에 매몰돼 정작 지향해야 할 것이 뭔지 잊기도 한다. 무신불립(無信不立).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백약이 무효다.
지난달 말 편집국 콘텐츠센터장으로 발령났다. “콘텐츠센터가 뭐하는 뎁니까?” 지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묻는 질문이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무엇이고,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 아래 <부산일보>는 도전을 시작했다. 편집국을 두 센터(콘텐츠, 신문)로 분리했다. 콘텐츠센터가 재료(기사·동영상·그래픽 등)를 생산하면, 신문센터가 그 중에서 엄선해 종이신문을 만드는 개념이다. 종이신문을 만들던 편집부 기능 일부는 취재부서로 돌렸다. 70년 넘게 신문을 만들던 관성을 깨고, 있는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재구성해 보려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도대체 뉴스 소비자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모든 시도는 콘텐츠 생산 역량을 높이기 위함이다. 종이든, 포털이든, 부산닷컴(busan.com)이든 결국 승부는 ‘내용’에 따라 갈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내용의 폭과 깊이를 고민하는 중심이 콘텐츠센터장이다.
팩트를 검증하고, 맥락을 짚고, 쉽게 전달하는 것은 언론의 기본적인 역할이다. 여기에 수도권 중심으로 돌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지역 여론을 결집하고 전달하는 도구로써 언론만 한 게 있을까. 시쳇말로 ‘가성비’ 높은 상품이다.
물건이 준비됐다면 어디에서 팔지 정해야 한다. 우리에겐 두 목표가 있다. 일단 독자 대부분이 있는 웹에다 많은 콘텐츠를 유통한다. 하지만 종이신문에 소홀할 수 없다. 책 <아날로그의 반격>에서는 눈, 코, 입, 귀, 손 등 오감을 쓰는 종이신문은 정보과잉시대에 럭셔리 상품이 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느린 저널리즘’을 대표하는 게 종이신문이다. 웹은 포털이 대세이지만, 부산닷컴의 자생력을 높이려고 한다.
“기자는 비판정신을 팔아먹는 직업이다.” 지금은 회사를 떠난 어느 선배가 내게 해줬던 말이다. 저널리즘(비판)과 비즈니스(밥벌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 이것은 언론사의 오랜 고민이다. 돌이켜 보면 세기말의 불안이 그나마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언론이라는 업(業)의 본질을 생각하며 더듬거리며 나아갈 뿐이다. 독자들의 응원과 비판을 바란다.
2022-12-1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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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2020년 11월 시작한 〈부산일보〉 젠더데스크 시스템이 어느새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초대 젠더데스크를 맡아 지금까지 활동 중인데 대한민국에 몇 명 되지 않는 젠더데스크라는 이유로 여러 번의 인터뷰를 비롯해 다양한 행사에 토론자로, 강연자로 섰다. 참석자도, 행사 성격도 다르지만 받는 질문은 대체로 비슷하다.
우선 “당신은 페미니스트인가요?”라는 물음이다. 답을 하기 전 “페미니즘 혹은 페미니스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라고 되묻게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가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혐오하고 늘 화가 나 있는 여자’ 혹은 ‘여성우월주의자로 남성과 대립하는 센 여자’로 잘못 알려져 있다.
그럼 페미니즘이란 무엇일까. 작가이자 평론가인 벨 훅스는 그의 저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에서 명쾌하게 페미니즘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페미니즘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다’라고 설명한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성차별을 받을 수 있고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성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할 권리가 없고, 그 어떤 조건으로도 차별받아서도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벨 훅스의 정의에 따르면, 나는 페미니스트가 맞다. 그렇게 페미니즘의 정의에 대해 공감을 나누고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답한다.
두 번째 자주 듣는 질문은 “시대가 많이 달라졌는데 아직도 성평등이나 젠더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이다. 공정이 시대의 화두인데, 오히려 여성 때문에 남성이 역차별받는 불공정한 상황이 생길 때도 있다고 말한다.
얼마 전 ‘여성이 여전히 차별받고 있을까’라는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패널로 나온 젊은 남성은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가정에서 군림했고 가정을 돌보기 위해 어머니가 희생했다는 건 인정한다. 아버지 세대 남자들은 잘못이 있지만 우리 젊은 세대는 억울하다. 2022년 현재는 여성이 차별받는 것이 거의 없는 것 같다”라고 항변했다. 취준생 아들을 둔 60대 참석자는 여학생들이 워낙 학점 관리, 스펙 관리를 잘해서 아들의 취업이 더 힘든 것 같다는 자신의 사례를 말하기도 했다.
나는 이 토론회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리는 특권에 관해 이야기했다. 차별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민감하지만, 정작 자신이 누리는 특권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내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도 아니고, 엄청난 재산을 가진 것도 아닌데 무슨 특권을 누리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 젠더의 관점에서 당신이 어떤 특권을 누리는지 몇 개의 질문을 던져본다.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안전을 걱정하는가’ ‘배달이 왔을 때 문을 열어줄까 고민한 적이 있는가’ ‘밤에 택시를 잡을 때 망설인 적이 있는가’ ‘택시를 탔을 때 집에 도착할 때까지 불안에 떨어본 적이 있는가’ ‘더 자주 웃으라는 말을 듣는가’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하는가’ ‘같은 자격을 갖추고 있는데 나의 임금이, 직급이 다른 젠더 동료보다 낮아서 속상해 본 적이 있는가’ ‘나이가 들어도 매력적으로 보여야 한다며 관리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런 문제들로 고민해 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다고 해도, 젠더 영역에선 타고난 특권을 누리고 있다. 젠더 영역뿐만 아니라 성적 취향, 인종, 연령, 지역, 능력, 사회경제적 계급, 장애 등 다양한 분야별로 특권층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모임에서 “좋아하는 이성 스타일은?”이라고 물었는데, 당사자가 “저는 동성애자인데 이성 스타일을 물어 당황스럽다”라고 답한다면 당신은 특권층으로서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 해결책은 무엇일까. 〈뷰티풀 젠더〉라는 책에선 ‘자신의 특권을 직시하고, 다른 사람의 공포나 불편함을 공감해주면 좀 더 평등한 세상이 열릴 것이다’라고 조언한다. 이 해결책은 차별에 대해서도 해당한다. 인식하지 못한 채 우리는 누군가를 차별하고 아프게 하는 말과 행동을 했을 수 있다.
다행히 사회 곳곳에서 차별적인 표현 수집하기, 가치중립적인 단어 사용하기 등 부끄러운 우리를 돌아보고 나아지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평등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 조직이 정의와 원칙에 의해 지배받는 한,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라는 말을 다시 새긴다.
젠더데스크 시스템이 혐오와 차별 문제에 대한 해답이 아닐 수 있어도, 노력의 시작임은 분명하다. 더디지만, 우리는 분명히 나아가고 있다.
2022-12-11 [1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