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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의 치고 달리기] 베이징의 영광, 다시 한번
‘야구 월드컵’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개막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은 다음 달 9일부터 13일까지 일본 도쿄돔에서 1라운드 4경기를 치른다. 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은 이번 대회에서 4강 이상의 성적을 목표로 한다. 대표팀 선수와 코치진은 이달 중순 미국 애리조나에서 공식 훈련을 시작한다.
‘4강 진출’이라는 선명한 목표와 달리 대표팀의 분위기는 훈련 시작 전부터 어수선하다. 전 야구 국가대표 출신 추신수의 대표팀 선수 차출 관련 발언 때문이다. 그는 ‘한국 대표팀의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발언의 여파는 컸다. 대표팀 주장 김현수는 “대표팀은 원해서 가는 곳이 아니다. 뽑히는 곳이다. 세대교체를 위해 인위적 발탁은 안 된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김인식 전 WBC 국가대표팀 감독도 “WBC는 어린 선수들의 경험을 쌓는 대회가 아니다”고 일침을 가했다.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전현직 국가대표들의 의견 충돌은 분명 유쾌하지 않다.
현재 한국 야구 대표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은 떨어져 있다. 2017년 WBC 대회 조별 예선 탈락에 이어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도 노메달에 그쳤다. 끊이지 않고 나오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잇따른 학교 폭력 논란 역시 팬들의 실망을 부채질했다. 팬들은 일부 프로야구 선수들의 코로나19 방역수칙 위반 논란에 또다시 분노했다.
무너진 팬들의 기대감은 관중 수 감소로 나타났다. 한국야구위원회는 관중 800만 명 회복 대신 600만 명 붕괴(2022년 607만 명)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한국 프로야구 관중 수는 2017년 최다 기록(840만 명)을 세운 뒤 내리막이다. 관중 수 감소는 한국 야구의 쇠퇴를 초래할 뇌관이 될 수 있다.
이번 WBC는 침체한 한국 프로야구 인기를 끌어올릴 절호의 기회다. 국민들은 축구 대표팀이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만든 기적을 야구에서도 기대하고 있다. 야구 대표팀은 이미 국민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한 경험이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다. 당시 야구대표팀은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수확했다. 일본도 쿠바도 적수가 아니었다. 2023 WBC 대표팀 이강철호의 목표는 선명하다. 베이징 때 쌓은 승리 DNA를 15년 만에 되살리는 것이다.
야구에는 어느 종목보다 열정이 느껴지는 명언이 많다. 현재 한국 프로야구는 ‘9회 말 2아웃, 패배까지 1아웃만을 남겨둔 위기 상황이다. 한국 대표팀엔 ‘역전 끝내기 홈런’이 절실하다. 관중 없는 프로 스포츠는 생명력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2023 WBC는 국민들의 갈증을 해소해 줄 기회다. 또 한 번의 ‘베이징 기적’이 반드시 필요하다.
2023-02-0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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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의 그림책방] 온기를 나눠요
설 연휴 잘 보내셨나요? 행복, 건강, 성공을 기원하는 수많은 덕담도 주고받으셨겠지요.
서정홍이 쓰고 곽수진이 그린 <덕담>(다림)은 새해를 맞아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나의 다짐과 기도’가 들어있는 그림책입니다. 작가는 설 아침 내린 눈을 보며 ‘우리 올해는 저 하얀 눈처럼 깨끗한 마음을 갖자’, 까치 소리를 들으며 ‘우리도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되자’, 알록달록 어우러진 색동 한복을 보며 '우리도 세상과 잘 어우러지게 살자'고 이야기합니다. 덕담은 함께할 때 더 의미가 있다는 작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예쁜 복주머니에 한가득 채운 복을 다른 이들과 같이 나누는 사회에 대한 바람. 살다 어려운 일이 닥쳐도 팽이처럼 다시 일어나자는, 함께라면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격려. 당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음을 잊지 말라는 당부. 세상을 향한 그림책의 덕담을 들으면 가슴에서 훈훈한 기운이 올라옵니다.
<겨울 이불>(창비)은 뜨끈한 아랫목의 온기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자박자박 눈을 밟으며 집에 돌아온 아이는 훌러덩 겉옷을 벗고 이불 밑으로 쏘옥 들어갑니다. 아이가 들어간 이불 아래에는 안녕달 작가 특유의 참신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세상이 펼쳐집니다.
‘방바닥 귤, 아궁이 군밤, 불구덩이 군고구마’ 같은 간식을 먹으며 뒹굴 수 있는 ‘이불 찜질방’이 독자를 기다립니다. 추위를 피해 몰려든 곰, 너구리, 거북이 등 이웃 동물들과 함께 뜨끈하게 몸을 지집니다. “우리 강아지 왔니?” 반겨주는 할머니·할아버지와 달걀도 먹고 식혜도 나눠 마시며 스르르 잠이 드는 아이를 보면 우리 몸도 같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듭니다.
<겨울 이불>에서 가장 마음이 가는 장면은 일을 마친 아이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입니다. 할아버지가 이불 밑에 묻어둔 밥그릇을 꺼내 “밥은 먹고 다녀야지”라고 말하며 상을 차려 주십니다. “일은 힘들지 않으냐” “괜찮다” 평범하게 오가는 대화에 마음을 덥히는 온기가 묻어납니다. 이런 온기가 있어 거친 세상 앞에 다시 설 용기를 얻게 됩니다. 여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까지 같이 온화해지면 더 좋겠지요? 새해 덕담처럼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는, 온기를 나누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3-01-2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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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진의 여행 너머] 솥바위 발은 3개인데…
몇 년 전 미국에서 외국 기자들과 교류할 때의 일이다. “난 당신이 쓰는 폰을 만든 나라(South Korea)에서 왔어.” 삼성폰을 들고 있던 그 기자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삼성이 일본기업 아니었어?” 애국심이 발동해 ‘소니는 일본’ ‘삼성은 한국’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이 처음 만든 제품이 뭔지 알아? 쌀과 설탕이야.”
지난 연말, 여행 취재차 경남 의령군 정곡면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생가를 탐방하면서 그 기자의 놀란 토끼 눈이 떠올랐다. ‘호암 생가’에 전시된 낡은 농기구를 보면, ‘천석지기’ 집안 출신인 이 회장이 정미소 사업부터 시작한 배경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창업주 생가 하면, LG그룹을 공동 창업한 구인회 회장과 허만정 선생이 태어난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도 빼놓을 수 없다. 행정구역만 다를 뿐 호암 생가에서 자동차로 30분이면 닿을 정도로 지척이다. 양대 그룹 생가의 중간 지점, 남강 한가운데엔 우뚝 솟은 ‘솥바위’가 있다. 수면 아래, 솥의 다리처럼 3개의 발이 바위를 떠받치는 형상이라 붙여진 이름. 솥바위 반경 20리 안에 큰 부자 3명이 태어난다는 전설이 있는데, 실제로 삼성·LG·효성그룹의 창업주가 탄생했다.
이들 생가와 솥바위를 둘러보며 외국인들도 충분히 흥미로워할 만한 여행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병철·구인회 회장은 지수초등학교(당시 보통학교) 같은 반에서 공부했고, 학교 운동장엔 효성 조홍제 회장까지 3명이 함께 심었다는 100년 넘은 ‘부자소나무’도 있다. 게다가 이들 창업주가 두루 나눔을 베풀었다는 미담도 전하니,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기업가 정신을 소개하기에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아쉬운 건 솥바위 전설에도 불구하고 생가 3곳의 콘텐츠를 하나로 엮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호암 생가 주변은 의령부자마을·부자길 등으로 홍보 중이고, 승산마을 구씨 허씨 집성촌의 고택들은 일반에 비공개다. 함안군 군북면 효성 조홍제 회장 생가는 더 동떨어져 관람객 발길이 뜸하다.
솥바위 전설은 ‘부자가 3명’이어서 가치가 있다. 의령군과 진주시·함안군, 3개 지자체가 힘을 모아 공동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면 어떨까. 남강 물줄기처럼 생가 3곳에 얽힌 이야기를 촘촘히 잇는다면 세계적인 명소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행정구역 경계를 허물면 가능성이 열릴 여행지는 무수히 많다. 지난해 가을엔 낙동강벨트 6개 지자체장이 모여 낙동강관광 공동개발에 뜻을 모으기도 했다. 한 도인의 예언에 불과했던 전설이 얼마나 생명력을 지닐지는 후대에 달렸다. 또 아는가. LG 텔레비전에서 솥바위 전설을 접한 외국인들이 삼성폰 카메라를 들이밀며 한국으로 몰려올지.
2023-01-1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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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하의 월드 클래스] 혐오가 비극을 만든다
“일본 사람들은 우릴 바퀴벌레라고 불렀지. 땅 속에 다시 처박아야 된다면서….”
한인 이민 가족을 조명한 이민진 작가의 소설 〈파친코〉를 드라마로 볼 때 이 대사를 듣는 한국인이라면 착잡한 심경에 사로잡힐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재일한국인이 일본인으로부터 받은 차별과 멸시를 이 한 마디에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재일한국인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 해충으로 불렀다는 것은 명백한 혐오이자 인종차별이다. 다음 표현도 같은 선상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쟤네들도 인간이었어? 유사 인종 바퀴벌레 아님?” “저 나라 착한 사람은 죽은 사람들 뿐이다” “저것들은 씨를 말려버려야 함”.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에게 뱉은 말이 아니다. 최근 〈부산일보〉의 특정 국가와 다문화가정 관련 기사에 달린 살벌한 글들이다. 다시 말하면 이번에는 혐오의 주체가 한국인들이다. 혐오의 대상은 어린 아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중도입국 아동·청소년에 대한 기사에 “제발 꺼져”라는 댓글이 돌아왔다. 이 밖에도 더 수위가 높은 댓글도 많지만, 지면에 그대로 인용하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5월 기자는 마스크조차 구하기 어렵고, 납세자임에도 지자체 재난지원금 지급에 소외된 난민들을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역시 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이 가관이었다. 혐오성 댓글은 특정 국가의 사람에게, 또 국내에 체류하는 아시아 국적의 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향한다. 우리 곁에 머물고 있는 이들 외국인은 분명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이고 약자다.
한반도 주변 국가들이 자국주의를 내세워 한국과 잦은 마찰을 빚는 일은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개인의 자유다. 문제는 혐오성 댓글이 국가와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심지어 사람을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이 재일한국인을 바퀴벌레로 바라보던 시각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객관적인 지표만 고려할 때 한국은 이제 선진국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기사 댓글마다 혐오성 표현으로 도배되는 현실을 보면 한국이 진정한 ‘월드 클래스’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대부분 한국인은 양식을 갖추고 있는데 목소리가 큰 사람 몇몇이 혐오 댓글을 주도하는 것일지 모른다. 어찌됐든 월드 클래스의 품격은 혐오를 단호하게 거부하는 데에서 온다고 본다. 언론도 혐오를 조장하는 기사 생산을 경계하고, 거대 포털 사이트도 ‘혐오의 굿판’이 돼 버린 댓글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홀로코스트,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2023-01-1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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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욱의 오오티티] 달리 가면과 하회탈
*이 글은 극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종이의집 공동경제구역-파트 2’가 지난달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로 공개됐다. ‘국뽕’ 짜깁기였던 파트 1. 부끄러움은 시청자 몫이었다. 파트 2에 대한 기대치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넷플릭스 콘텐츠 중 ‘전 세계 누적 시청 수 2위’인 스페인산 원작의 첫 리메이크.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지. 다행히 파트 2는 담백해졌다. 다짜고짜 BTS 노래에 춤을 추는 국뽕과 여배우 신체를 클로즈업하는, 80년대 ‘호스티스 영화’ 같은 촌스러움은 사라졌다. 한국판 종이의집의 모든 에피소드가 한 번에 공개됐다면 평가는 달라졌을 테다. 몰아보기라는 OTT 채널의 초심을 잊고 시청자를 늘리려 꼼수를 쓴 넷플릭스의 패착이다. 달리 가면 대신 하회탈을 쓴 강도단의 활약은 파트 1의 아쉬움을 만회했다.
한국판에서 원자 단위로 까인 ‘통일을 앞둔 한반도’라는 설정은 파트 2로 오면서 당위성을 얻는다. 강도단이 조폐국을 점령, 인질과 함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돈을 찍어내 훔쳐간다는 설정은 원작과 같다. 다만 디테일이 추가됐다. 찍어낸 4조 원은 명목상 통일 자금이지만 실제로는 정경유착에 의한 비자금이었던 것. 이 돈을 훔치는 강도단은 자연스럽게 ‘의적’으로 인정받고, 부패 국회의원 ‘김상만’을 메인 빌런으로 내세워 긴장감도 높였다. ‘교수’와 ‘베를린’의 서사에도 입체감이 생겼다. 원작보다 분량이 줄어든 만큼 곁가지는 줄이고 두 인물의 비중을 높였다. 원작처럼 형제라는 설정은 유지한 채, 탈북 과정에서 생이별한 형제로 리메이크됐다. 진부하지만 익숙하다. 인물의 성격이 충돌하고 갈등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는 후반부, 시청자의 집중도가 떨어질 무렵 익숙함은 친숙함으로 바뀌어 몰입감을 다시 높인다.
하지만 단점도 여전하다. 해킹한답시며 보이는 의미 없는 알파벳 소스 코드, 속어와 초성 채팅이 난무하는 인터넷 방송등 한국 영화의 클리셰들은 여전히 가득하다.
특히 리메이크판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원작을 ‘복붙’해 현지화에만 집중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케이퍼 무비’의 가장 큰 핵심은 반전으로 인한 카타르시스. 한국판 제작자와 배우들이 “원작과 다르다”고 말한 순간 사람들은 새로운 반전을 기대한다. ‘강도 실패’는 부담스럽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원작에서 죽은 인물을 살리거나 반대로 살아남은 인물을 죽이는 것. 한국판은 베를린을 살렸다. 예상 가능한 반전이다. 더 큰 문제는 캐릭터가 가진 비장미를 무시했다는 점이다. 베를린은 죽음으로, 희생으로 완벽해지는 캐릭터다. 원작 베를린은 시즌 2에서 죽는다. 하지만 회상으로 시즌 5까지 등장한다. 살았으면 얻지 못했을 인기. ‘무지성’으로 캐릭터를 살린, 파트 2의 가장 큰 패착이다.
2023-01-0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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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철의 '금알못' 탈출기] 개미지옥 2022년 주식시장
2022년은 국내 개인 투자자들에게 잊지 못할 한 해다. 2021년 불어온 주식 투자 열풍에 국민 대다수가 올라탔고 호황기를 맞으며 제법 투자를 성공한 이들도 있었지만 올해는 국내외 가파른 금리 인상 등의 악재가 겹치며 코스피가 폐장일인 29일에도 급락하며 2250선마저 내줬다. 올해 개인 투자자 순매수 금액은 전년(76조 9315억 원) 대비 3분의 1에 불과한 24조 4963억 원(28일 기준)에 그쳤다.
하지만 ‘금알못’(금융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인 기자를 포함한 일부 개미(개인 투자자)들은 ‘산타랠리’가 아닌 ‘사탄랠리’, 곳곳에 들어온 ‘파란 불’에도 여전히 기대를 포기하지 않는다. 혹자는 희망보다는 현실 도피가 아니냐고 되묻기도 한다.
이같은 상황에도 실낱같은 희망은 남아있다. ‘주식 투자 방정식’이라 불리는 ‘1월 효과’다. 특별한 호재가 없어도 새해 시작으로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상승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1990년 이후 코스피지수의 1월 평균 수익률은 2.2%로 나타났다. 월별로 보면 1월과 11월이 평균 수익률이 가장 높은 달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한파가 몰아친 지금 같은 주식 시장에선 이러한 공식이 작동되지 않을 것이란 암울한 전망마저 나온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다. 삼성증권이 최근 7년간(2016~2022년) 국내 상장주식의 월 평균 수익률을 분석한 결과 “1월에 주식을 사서 4월에 매도하면 수익률이 가장 높게 나왔다”는 분석을 내놨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떤 업종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지가 남아있다. 참고할 만한 자료를 찾아봤다. 같은 기간 1~4월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 코리아’ 업종별 평균 수익률이 가장 높았던 업종은 에너지(4.4%)였다. 이어 소재(3.2%), 정보기술(IT·2.4%) 순이었다. 반면 헬스케어(-1.7%), 유틸리티(-1.3%), 경기 관련 소비재(-0.9%)는 손실을 봤다.
세계 경제가 급변하고 있는 만큼 이들 업종이 내년에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이들이 연초 강세를 보인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자. 에너지, 소재 업종은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연초 경기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의 확산이 긍정 영향을 미친 것이다. IT는 연초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를 포함해 테크 산업 전반에 대한 새로운 기술과 표준들이 등장하면서 상승세를 보였다.
유튜브 경제 채널 ‘삼프로TV’의 김동환 의장은 “투자를 승부로 여기지 않고 늘 공부하는 자세를 가져야 건전한 투자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기자뿐 아니라 모두들 내년에는 ‘개미지옥’ 탈출을 위해 ‘열공’하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2022-12-2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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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의 치고 달리기] 대담한 발걸음
한국 축구가 강해졌다. 12년 만에 이룬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성과는 값지다. 성적만큼이나 훌륭한 성과는 또 있다. 4년 넘게 갈고닦은 ‘한국 축구’가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얻은 것이다. ‘한국 축구’에 대한 믿음, 4년 뒤 2026 월드컵을 넘어 꾸준히 이어 가야 할 한국 축구 대표팀의 자산이 됐다.
‘한국 축구’는 4년 4개월 동안 정성 들여 빚은 도자기와 같다. 파울루 벤투 감독의 축구 철학이 반영된 전술·전략 위에 선수단의 피와 땀이 더해졌다. 실패도 있었고, 위기도 있었다. 그때마다 선수단과 코치진은 ‘우리는 제대로 가고 있다’는 자신감으로 극복했다. 선수단은 월드컵 16강전에서 브라질에 진 뒤 벤투 감독 등 코치진과의 이별에 아쉬움과 슬픔을 드러냈다.
‘한국 축구’의 위기는 정작 카타르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찾아왔다. 벤투 감독의 후임을 정하는 문제를 둘러싼 잡음이 일었다. 일부 언론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추측성 기사들이 쏟아졌다. ‘국내파·연봉 10억 원·국가대표 출신 축구 해설가….’ 국내 축구 팬과 국민들은 분노했다. 벤투 감독과 선수단이 이룬 성과에 대한 평가가 내려지기도 전에 후임 감독의 기준이 언급되는 것에 실망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일부 언론의 보도가 나온 뒤 ‘후임 감독 논의는 진행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미 불은 번진 상태였다.
월드컵 16강을 이끈 선수들도 섣부른 후임 감독 논의에 불만을 드러냈다. 주전 수비수인 A 선수는 ‘감독 결정에 있어 선수의 입장을 귀담아들어 달라’고 밝혔다. 주전 미드필더 B 선수는 ‘우리의 감독님을 너무 쉽게 선택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 번이라도 더 고심하지 않을까’라며 현 상황에 대한 복잡한 속내를 밝혔다.
대표팀 선수들이 감독 선임 논의에 대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선수들의 입장 표명은 선수들과 대한축구협회 사이에 한국 축구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는 증거다. 선수들로서는 감독·코치진과의 신뢰의 중요성을 체감한 상황인 만큼 설익은 후임 감독 논의가 납득하기 어렵다. 팬들 역시 이런 논의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차기 감독 선임을 결정할 대한축구협회는 대담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여론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대한축구협회는 카타르 월드컵을 통해 확인한 선수단과 코치진 간의 신뢰를 이어 갈 감독을 찾아야 한다. ‘한국 축구’가 세계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뚝심을 밀어붙일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 무엇보다 선수들에게 자부심과 자신감을 불어넣을 감독이 필요하다. 그렇게 ‘한국 축구’는 다시 한번 성장해야 한다.
2022-12-2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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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의 그림책방] 하나에서 함께로
시작은 하나부터. 씨앗 하나에서 이야기가 출발하는 두 권의 그림책이 있다.
막달레나 스키아보가 쓰고 수지 자넬라가 그린 〈처음에 하나가 있었다〉(초록개구리)의 씨앗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다음에는 파도에 실려, 그다음은 흙먼지에 쓸려. 씨앗이 모이고 모였다. 그러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 씨앗들은 따로 살기로 했다. 같은 씨앗끼리만 살면 더 좋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행복하지 않았다. ‘어디에서 왔든 어떤 종류이든 중요하지 않아.’ 다양한 씨앗이 모여 사니 다시 행복해졌다(그림).
키티 오메라와 킴 토레스의 〈언젠가 고요한 숲속에 씨앗 하나를〉(사파리)에서는 새가 씨앗을 가져왔다. 땅 위에 떨어진 씨앗은 온갖 색깔을 머금은 꽃이 됐다. “노란색이다.” “초록색이다.” “보라색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본 색만이 꽃의 진짜 색이라고 우기고 다퉜다. 있는 그대로의 꽃을 본 아이 덕분에 사람들은 알게 됐다. ‘누구나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색깔에는 저마다의 이야기와 의미가 담겨 있다.’
첫 번째 씨앗은 함께하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음을 알려줬다. 두 번째 씨앗은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퍼트렸다.
〈점: 세상에서 제일 작은 점〉(내인생의책)에는 씨앗 같은 점이 등장한다. 까만 점과 그 친구들은 부유하다. 까만 점의 세계는 좋은 것들로 채워져 있다. 하얀 점과 친구들은 잘살지 못한다. 그들의 세상은 부족하고 비어있다. 하얀 점은 까만 점의 세계로 가고 싶어 했다. 까만 점은 하얀 점을 받아들였을까?
지안카를로 마크리, 카롤리나 자로티 작가는 일방적 수용이 아닌 어울림의 해법을 택했다. ‘너희 일부를 받아줄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희 쪽으로 갈게’ 즉 “우리 함께하자”고 말한다. 함께하면 더 많은 것이 가능해진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고, 행복도 더 커진다. 시작은 하나였을지라도 끝은 ‘함께, 같이 행복한 사회’라고 쓸 수 있는 세상. 노력해야 이룰 수 있다.
2022-12-1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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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진의 여행 너머] 어떤 무지개
지난 여름, 국제행사 참석을 겸해 노르웨이 오슬로를 방문했을 때 조금 특별한 무지개를 만났다. 거리와 건물 곳곳에 무지개 깃발이 가득했다. 마침 ‘성소수자 축제의 달(Pride month)’이었다. 우리나라가 국경일에 태극기를 내걸 듯, 오슬로 시청을 비롯해 관공서마다 대형 무지개 깃발이 펄럭였다.
거리를 걸으며 무지개에 익숙해질 즈음, 다소 낯선 느낌을 받았다. 관공서인 듯 아닌 듯 빨간 벽돌건물 외벽에 쌍으로 내걸린 무지개 깃발. 건물의 정체는 고등학교였다. 학교 건물에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깃발이라니. 최근 새 교육과정에 ‘양성평등’ 대신 ‘성평등’ 용어를 쓰려다 논란이 된 우리나라로선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다.
하지만 상상력을 조금만 발휘하면 학교야말로 무지개가 어울리는 공간이다. 출신도 배경도 인종도 종교도 다른,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회화를 배우는 학교는 ‘다양성’이 더욱 강조돼야 하는 공간이다.
무지개 덕분에 오슬로라는 도시가 새롭게 다가왔다. 거리 구석구석을 다녀도 동양인에 대한 낯선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다. 들르는 가게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친절함이 묻어났다. 노벨상 중에서 유일하게 평화상 시상식만 스웨덴 스톡홀름이 아닌 오슬로에서 열리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오슬로가 지닌 다양성의 힘은 위기 상황에서 더 빛을 발했다. 체류 기간 끝 무렵인 6월 25일, 낮에 열릴 예정이던 성소수자 축제 ‘프라이드 퍼레이드(Pride Parade)’를 앞두고 새벽에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도심의 한 호텔 성소수자 클럽 등지에서 총을 쏴 2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다쳤다. 추가 테러를 우려한 경찰의 권고에 주최 측은 거리 행진을 취소했지만, 되레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연대의 뜻으로 수천 명이 모여 거리 행진을 벌였고, 행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박수로 응원했다. 그날 오슬로는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다양성의 가치를 지켜냈다.
최근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무지개가 화두로 떠올랐다. 동성애 금지 등 카타르의 차별 정책에 반대하는 뜻으로 유럽 7개국 대표팀 주장이 ‘무지개 완장’을 착용하려 했지만, 국제축구연맹(FIFA)의 금지 결정으로 무산됐다.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여성에 대한 차별과 인권 탄압 등 카타르 월드컵은 세계인이 한마음으로 즐기기엔 많은 오점을 남겼다.
역대 개최국 중 유일하게 3경기 전패를 당한 카타르는 이번 월드컵에서 무엇을 얻었을까. 무지개 완장을 허용하고, 경기장마다 무지개 깃발이 내걸렸다면 어땠을까. 좀 더 많은 나라에서 무지개를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2-12-0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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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하의 월드 클래스] ‘백지’도 맞들면 낫다
“한국 기자가 어떻게 이 곳을 알고 들어왔나요?” “스스로 기자임을 증명해 보세요.”
기자가 중국의 ‘백지시위’ 참가자들이 모여있는 글로벌 메신저 대화방에 처음 접촉했을 때 몇몇 참가자들이 경계심이 잔뜩 묻어나는 말투로 질문했다. 이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어떻게 해서 그들을 찾을 수 있었는지 설명했다. 또한 한국 기자가 틀림없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한국어와 영문으로 표기된 명함의 양면을 사진으로 찍어 그들에게 전달했다. 더 나아가 인터뷰를 하더라도 민감한 정보를 적지 않겠다고 알렸다. 그럼에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사이버 공간에서도 중국공안의 감시가 번득이고 있으니 그들의 이런 반응은 당연했지만, 취재가 엎어진 것 같아 조금 실망스럽긴 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한 참가자가 별도 대화방을 만든 뒤 기자를 초청해 “우리 모임은 숫자가 작으니 더 큰 그룹과 접촉을 하는 게 좋을 것”이라며 회원 1000명이 모인 그룹을 알려줬다. 그곳에서도 명함을 보여주고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전하자 많은 사람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심지어 한 사람과 인터뷰 와중에도 시위에 대해 말하고 싶다는 다른 사람의 연락을 받았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도 인터뷰에 응하고 싶다는 몇몇 중국인이 접촉해왔는데, 그들에게 아직 답문조차 하지 못했다.
중국 시위 이면에 숨겨져 있던 몇 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10대부터 중년의 시민까지 자유롭게 말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는 사실이었다. 중국 방역당국의 불합리한 ‘제로 코로나 정책’은 물론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 추모, 언론·집회의 자유, 민주주의 실현까지…. 중국인들은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표현하더라도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상황을 갈망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한 중국 시민은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시위는 긴 시간 중국인들을 억누른 압제에 대한 스트레스가 가혹한 코로나19 규제와 맞물려 폭발한 것이다”며 “우리는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분명히 했다. 대규모 시위에도 그들은 “중국 공산당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계속 싸우겠다는 의지만은 확고해 보였다.
중국인들은 외부의 도움을 절실히 호소했다. 중국 정부가 언론 매체는 물론 소셜미디어까지 통제의 고삐를 죄고 있다 보니, 그들은 고립돼 있다고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인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지지를 표시해왔다. 2019년 홍콩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 때도 그랬고, 2021년 발생한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때도 미얀마 시민들을 응원했다. 이제는 공산당에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중국인이 외롭지 않도록 그들에게 연대의 뜻을 전할 시간이다.
2022-12-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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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리의 묘념묘상] 서로 다른 우리의 시간
며칠 전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여행의 주제는 ‘응답하라 1998’. 24년 전 제주도 가족여행을 재연하는 것이 콘셉트였습니다. 당시 입은 옷과 최대한 비슷한 옷을 입고 그 장소를 찾아가 비슷한 포즈로 사진을 찍기로 했죠.
1998년 꼬마였던 저는 옷을 다시 사야 했습니다. 그 시절에 입던 옷은 남아있지도 않을뿐더러, 남아 있다고 한들 사이즈가 맞지 않아 입을 수도 없었을 테죠. 아버지는 서랍 깊숙한 곳에서 그때 입은 니트를 찾으셨습니다. 그 시절과 체형도 변화가 없어서 똑같은 옷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비슷한 포즈로 사진을 찍기 위해 20년이 더 지난 사진을 여러 번 들여다봤습니다. 사진을 한참 동안 보시던 부모님은 생각에 잠긴 듯 보였습니다. 그러고는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며 지난 시간을 되짚으셨습니다. 제 기억에는 없는 부분까지 부모님은 다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어느새 흘러가 버린 24년의 세월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제게는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유치원 꼬마가 사회인이 되기까지의 긴 시간이었습니다. 반면, 부모님에게는 그 세월이 쏜살처럼 짧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품 안에 쏙 안기던 아이는 어느새 훌쩍 커버렸는데, 그 시절이 아직 눈앞에 그려질 만큼 생생하시다고요. ‘시간이 빠르다’는 말이 어릴 땐 참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하루, 한 달, 일 년이 어느새 지나버린 걸 보면 말이죠.
사람의 시간도 이렇게 빠른데, 수명이 15~20년인 고양이의 시간은 얼마나 빠를까요. 흔히 고양이의 시간은 사람보다 4배 더 빠르다고 합니다. 7살이 넘어가면 본격적으로 노화가 시작되고, 11살이 넘으면 노년기에 접어들었다고 봅니다. 노년기에 건강 관리를 잘하면 20살 넘게도 살 수 있다고 하죠. 반려동물의 나이가 20살이 넘으면 대학생이라는 농담이 있습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내 반려동물이 대학생이 되길 바랍니다. 대학원생이 될 때까지 함께 있어 준다면 더 바랄 게 없고요.
저의 반려묘 ‘우주’는 <부산일보> 편집국으로 올 때부터 나이가 많았습니다. 7살이었으니, 노화가 시작될 시기였죠. 우주를 입양하고 1년이 또 순식간에 지났습니다. 우주는 이제 곧 9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평소엔 나이가 많다는 게 느껴지지 않지만, 사냥놀이를 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거나 너무 오래 잠을 잘 때는 순간 현실을 깨닫습니다.
우리에겐 얼마의 시간이 남은 걸까요. 하루가 지나가는 게 아깝게만 느껴집니다. 함께할 수 있는 이 시간을 더 소중히 여겨야겠습니다.
2022-11-24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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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연의 주거안정] 평균실종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가 최근 펴낸 ‘트렌드 코리아 2023’은 내년도 주요 트렌드 중 ‘평균 실종’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소득 양극화로 소비도 평균이 사라진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온라인에서 저렴한 물건을 찾는 동시에 명품으로 대변되는 고가의 소비도 동시에 이뤄지는 소비의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것이다. 아예 한쪽에만 소비가 몰리는 단극화 현상도 평균 실종의 한 모습으로 꼽았다. 평균보다는 개인의 욕구와 취향에 맞춘 소비가 늘어나는 N극화 현상도 심해져 평균을 무의미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했다.
‘평균 실종’은 집값에서도 양극화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주택소유통계를 보면, 공시가격 기준으로 지난해 주택을 소유한 가구의 평균 주택 자산가액은 3억 7600만 원이다. 2020년 평균 주택 자산가액은 3억 2400만 원으로 1년 사이 5200만 원 올랐다.
소유 주택의 총 자산가액이 1억 5000만 원에서 3억 원 구간에 위치한 가구는 289만 8000가구(24.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주택 자산가액 기준 10분위별 현황을 보면, 10분위(상위 10%)의 평균 주택 자산가액은 14억 8000만 원으로, 2020년(13억 900만 원)보다 1억 7500만 원 늘어났다. 이는 평균 집값 증가 폭인 5200만 원 보다 훨씬 크게 뛰었다.
반면 1분위(하위 10%)의 평균 자산가액은 3000만 원으로, 2020년(2800만 원)에서 200만 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 상위 10%와 하위 10%의 평균 주택 자산가액은 약 50배 차이가 났다. 2020년 약 47배였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사이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이다. 상위 10% 평균 집값 증가 폭은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5년 이후 매년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소득에 따라 주택 수와 면적도 차이가 났다. 상위 10%의 평균 소유 주택 수는 2.35호였지만, 하위 10%는 0.98호에 그쳤다. 주택 면적도 상위 10%는 111.0㎡(33.6평)이었지만, 하위 10%는 63.0㎡(19평)다.
집값 양극화는 자산의 가치가 크게 오를 때 심화됐다. 그렇다면 경기 침체가 예고되는 내년에는 양극화가 어느 정도 해소될까? 자본주의 체제에서 ‘양극화 해소’는 노력만 있을 뿐 닿을 수 없는 목표일지 모른다. 어쩌면 지금은 단극화를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진단하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겠다. 분명한 것은 집값 양극화는 덜하고 대신 집주인 개성이 묻어나는 다양한 형태의 집이 공존하는 N극화는 강할수록 많은 사람들이 살기 좋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2022-11-1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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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의 치고 달리기] 언더독의 반란
‘언더독(Underdog)의 반란’은 없었다. SSG 랜더스의 정규리그·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으로 끝난 2022 한국프로야구 이야기다. 키움 히어로즈는 정규리그 1위 SSG와 한국시리즈에서 팽팽한 대결을 펼쳤다. 많은 야구팬들은 정규리그 3위 키움이 1위 SSG를 잡고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반전 드라마를 꿈꿨다. 하지만 키움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수비 실책과 투수들의 난조가 거듭됐고, 결국 발목이 잡혔다.
올 시즌 한국 가을야구를 뒤돌아보며 씁쓸한 생각을 놓칠 수 없다. 홈 팀 롯데 자이언츠의 5년 연속 가을야구 탈락은 접어둔다. 한국프로야구에는 언더독의 반란을 기대할 구조가 마련돼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하위 팀이 상위 팀을 꺾고 우승할 수 있는 기반 말이다. 과연 KBO리그 챔피언을 가리는 대결 구도가 공정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키움이 이번 가을야구에서 치른 경기는 무려 15경기다. 준플레이오프 5경기, 플레이오프 4경기, 한국시리즈 6경기다. 반면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SSG가 치른 경기는 6경기에 불과하다. 9경기를 치르고 한국시리즈에 올라온 팀과 첫 경기를 치르는 팀이 똑같은 조건에서 경기를 치른다고 볼 수 있을까. 양 팀의 야구 실력을 떠나 체력적인 측면에서 동등하게 맞붙었다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정규리그 1위 팀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은 필요하다. 144경기를 1위로 마친 만큼 그 가치는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행 한국 포스트시즌 체제에서 5위로 가을야구에 오른 팀이 한국시리즈에 오르려면 최소 8경기, 최대 12경기를 치러야 한다.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팀이 얻는 혜택은 너무나도 크다.
현행 가을야구 체제의 대안으로는 양대 리그가 거론된다. KBO는 1999년부터 2000년까지 당시 8구단 체제에서 드림리그·매직리그로 4팀씩 나눠 운영했다. 미국 MLB와 일본 NPB의 양대 리그를 참고해 만든 제도였다. 하지만 2년 만에 리그별 승률 편차에 따른 공정성 논란, 관중 수 감소 등으로 폐지됐다.
양대 리그 전환이 현행 KBO리그 포스트시즌의 문제 해결의 유일한 방안은 아닐 것이다.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포스트시즌의 시행 이유를 명확히 해야 한다. 선수들에게는 도전 의식을, 팬들에게는 야구의 재미를, KBO와 구단에게는 입장 관중 수와 부가 수익을 안겨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한 KBO의 역할은 중요하다. 프로야구에서 관중은 시작이자 끝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제약이 사라진 올해 KBO리그 전체 관중 수는 607만여 명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보다 120만 명 줄어들었다. 총 관중 수 600만 명 시대도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 KBO는 프로야구 관중 감소의 원인이 무엇인지 뒤돌아봐야 할 때다.
2022-11-1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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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의 그림책방] 당신에게
천사 같은 아이였을 겁니다. 아기 때 꼭 쥔 작은 손이 참 예뻤겠지요. 까르르 웃고, 뒤집기를 하고, 첫걸음을 내딛고. 당신의 하루하루를 기쁨으로 채워주었을 겁니다. 퇴근하는 당신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을 보면 힘들었던 기억은 금세 사라져 버렸겠지요. 좋아하는 음식이나 잠버릇 등 당신을 꼭 닮은 모습을 발견한 날은 신기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했을 겁니다.
조금 더 자라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라고 말하고 “아빠한테만 알려 줄게”라며 별것 아닌 비밀 이야기를 속삭였을 때. 아이는 당신 인생 최고의 단짝 친구였을 겁니다.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이 점점 많아지는 아이를 보며 뿌듯함도 느꼈겠지요. 당신은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주고, 손잡아주고, 꼭 안아주고. 영차영차 함께 걸어가는 부모였을 겁니다. 학교에 가고 친구를 사귀고… 아이는 자신의 세상을 점점 넓혀갔을 겁니다. 당신은 뒤에서 까치발로 아이의 성장을 지켜봤겠지요. 지식을 쌓고 인간관계를 배우며 아이는 빠르게 커 나갔을 겁니다. “엄마 나 합격했어.” 아이가 더 큰 세상으로 나가게 되었을 때 당신은 정말 기뻤을 겁니다.
성인이 된 아이에게 해 줄 말이 참 많았을 겁니다. ‘낯선 풍경에 움츠러들 수도 있지만 처음엔 누구나 그런 거라고. 혼자라 생각이 들 때 주변을 둘러보면 친구가 있을 거라고. 천천히 가야 보이는 것도 있으니 불안해하지 말라고. 우리가 늘 너의 곁에 함께 있다고.’ 못다 한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이제 진짜 인생 친구처럼 지낼 수 있게 되었는데. 당신의 아이는 너무 빨리 세상에 이별을 고했습니다.
충격적인 참사가 발생했던 그날. 많은 이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내 아이, 내 형제, 내 조카, 내 친구 같아서 새벽까지 뒤척인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를 잃은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며 두 권의 그림책을 책장에서 꺼냈습니다. 옥희진의 〈너에게〉(노란상상)와 최숙희의 〈길 떠나는 너에게〉(책읽는곰). 아이를 향한 사랑이 가득한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 깊이 박힙니다. 자식의 너무 이른 죽음 앞에 무너진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신의 곁을 지키며 같이 애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지를 함께 고민하고 대책을 찾아가야겠지요. 당신의 슬픔에 함께하겠습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
2022-11-0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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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우의 맛있는 여행] 이제는 여행을 떠날 때
9~22일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에 여행을 다녀왔다. 행복의 기운은 인천공항에서 이륙한 바르샤바 행 폴란드 항공기에 탑승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시작했다. 오랜만의 외국 여행에 가슴이 설레는 듯 다들 항공기 창밖의 구름을 내려다보며 즐거워했다. 4년 만에 먹어보는 기내식은 왜 그렇게 맛있는지 놀라는 눈치였다.
세 나라에서는 가는 곳마다 행복에 겨운 웃음이 흘러넘쳤다. 모든 사람의 얼굴에는 속박에서 벗어난 기쁨이 샘솟았다. 날씨마저 기분이 좋은지 하늘은 푸르렀고, 공기는 깨끗하고 맑았다. 하얀 뭉게구름은 덩실덩실 어깨춤을 췄고, 작은 새들은 그 춤에 맞춰 신나게 노래를 불렀다.
체코 프라하와 오스트리아 빈에는 사람이 넘쳐났다.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이제 곧 닥칠 여행객을 맞이하기 위해 도시 전체에서 대대적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인파로 뒤덮인 거리에서는 다른 사람의 어깨에 부딪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할 정도였다. 외국인 관광객뿐 아니라 내국인도 모두 마스크를 벗고 거리를 활보했다.
프라하에서 맛본 체코 전통 음식 꼴레뇨, 빈에서 고소함을 음미한 ‘오스트리아 돈까스’ 슈니첼, 부다페스트에서 긴 여행에 지친 구미를 되살려준 굴라시까지 오랜만에 만난 외국 음식을 입에 넣을 때마다 즐거운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젊은 사람들은 휴대폰 구글맵으로 길을 찾아다녔고, 나이가 든 사람들은 여전히 종이지도를 보며 행선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제대로 길을 찾지 못해도 문제가 되는 것은 없었다. 가고 싶은 곳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실수하고 확인하는 과정이 즐겁고 행복한 여행의 일부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현지에서 부닥치는 모든 일이 다 기쁜 것은 아니었다. 물가는 상당히 올라 다소 부담을 줄 정도였다. 항공권 가격 및 호텔 숙박비도 껑충 뛰어 해외여행을 기대하는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탓에 항공기가 러시아 영공을 피해 남쪽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비행시간이 1~2시간 늘어나기도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3년 가까이 이어진 코로나19 탓에 관광기념품 가게 등 많은 관련업체가 문을 닫았다.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행의 기쁨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자금 사정이 문제가 된다면 조금 덜 쓰고 아껴 쓰면 된다. 한 가족은 빈 호프부르크 왕궁 인근의 계단에 앉아 샌드위치에 음료수를 나눠 마시면서도 깔깔, 껄껄 웃고 있었다. 체코 체스키크룸로프의 중앙광장 벤치에 앉은 노부부는 파란 하늘을 쳐다보면서 크래커를 함께 먹으며 지난 세월을 추억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제는 여행을 떠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2-10-27 [1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