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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그 많던 쓰레기는 어디로 갔을까
도시의 하루는 수많은 물건이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해 그것들이 버려지는 것으로 끝난다. 새벽 배송의 포장재, 배달 음식의 일회용 용기, 계절이 바뀔 때마다 버려지는 옷들, 그리고 폐자재까지 우리가 사는 동안 물건은 끊임없이 들어오고 그만큼의 쓰레기도 생겨난다. 하지만 그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는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깨끗하게 정돈된 거리와 쾌적한 실내는 그 뒤편에서 무엇인가가 끊임없이 치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게 한다. 그 많던 쓰레기는 어디로 갔을까.
쓰레기는 수거 차량에 실려 가고 재활용품은 분류된다. 다시 사용할 수 없는 폐기물은 소각하거나 매립하고 때로는 다른 지역으로 보내 처리한다. 도시의 청결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노동과 그 부담을 감당하는 장소가 있어 유지된다. 우리가 누리는 쾌적함은 쓰레기가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쓰레기를 보이지 않게 하는 방식도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2026년부터 수도권 생활폐기물의 직매립이 원칙적으로 금지되면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소각시설 확보가 중요한 과제가 됐다. 그러나 시설 확충은 쉽지 않다. 서울 마포구의 신규 광역자원회수시설 건립 역시 주민 반발과 소송으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산도 예외가 아니다. 부산시는 그동안 생곡마을 집단 이주와 연계해 새로운 자원순환 복합타운과 소각시설을 추진해 왔다. 입지 선정과 주민 이주, 도시관리계획 결정 등 여러 행정절차도 진행됐다. 그러나 사업을 둘러싼 지역사회의 갈등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여기에서 생곡소각장 문제를 단순히 ‘소각장을 지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생곡은 이미 오랫동안 부산의 쓰레기를 받아온 곳이다. 그렇다면 이곳에 다시 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과연 지역의 기존 부담을 고려한 결정인지, 반대로 사업을 중단했을 때 에코델타시티와 부산 전체의 폐기물 처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 어느 한 지역의 주민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행정절차가 있었다는 것과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입지를 결정하고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어떤 대안을 검토했는지, 주민들에게 어떤 정보가 제공됐는지, 제기된 우려는 계획에 어떻게 반영됐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주민의 반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필요한 시설의 건립을 무한정 미룰 수도 없다. 필요한 시설이라면 왜 필요한지, 왜 그곳이어야 하는지, 그 부담은 어떻게 나눌 것인지까지 시민에게 설명하는 것이 도시 행정의 책임이다.
물론 쓰레기를 줄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재사용과 재활용을 확대하며 생산 단계부터 폐기물을 덜 발생시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 살아가는 한 쓰레기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도시를 만들 수는 없다. 아무리 재활용을 확대해도 다시 자원으로 돌릴 수 없는 폐기물은 남는다. 그렇다면 발생량을 줄이는 노력과 함께 남은 쓰레기를 어떻게 안전하게 처리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건축과 도시계획의 관점에서 보면 폐기물 처리 시설은 도로와 상하수도, 전력 시설처럼 도시를 유지하는 필수 기반 시설이다. 하지만 다른 기반 시설과 달리 누구도 자신의 집 가까이에 들어오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소각장에는 환경과 건강에 대한 우려뿐 아니라 주변 지역의 이미지와 재산 가치, 오랫동안 누적된 지역의 부담이 함께 따라온다.
그렇다고 시설을 도시에서 멀리 떼어놓는 것만이 해답일 수는 없다. 거리를 둔다고 부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지역으로 옮기면 그곳의 누군가가 새로운 부담을 떠안는다. 소비의 편익은 챙기고 폐기물의 부담은 다른 곳으로 보내는 구조는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진국들은 많은 양의 쓰레기를 개발도상국으로 떠넘겨 환경오염뿐 아니라 인권 불평등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공간적으로 멀어졌다고 해서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폐기물 처리 시설도 도시의 일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건축은 보기 좋은 건물을 만드는 일만이 아니다. 그 건물이 도시의 다른 공간과 어떤 관계를 맺고 누구의 삶을 편리하게 하며 어떤 부담을 남기는지를 함께 생각하는 일이다. 소각장도 마찬가지다. 첨단 기술을 적용하고 안전성을 높이는 것은 기본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시설을 받아들이는 지역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그 지역이 감당해 온 부담을 어떻게 기억하고 보상할 것인지까지 공간의 계획에 담아야 한다. 깨끗한 도시는 쓰레기가 보이지 않는 도시가 아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고 그 처리의 부담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까지 고민하는 도시다.
2026-10-0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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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은의 은밀한 사색] 낮고 고요한 해인의 글방에서
부산근현대역사관에서 진행한 ‘개항 150주년 인문콘서트’의 사회를 맡아 15주에 걸쳐 각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해 부산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해서 고견을 청해 들었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한 손님이 바로 이해인 수녀님이었다. 나에게는 시인으로 먼저 기억되었던 이해인 수녀님은 광안동 올리베따노 성(聖) 베네딕도 수녀원의 상징적인 공간인 해인 글방으로 어린 소설가를 초대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수녀원이라는 낯선 장소이자 글방이라는 친숙한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그날을 회상하자니 씁쓸한 감정이 마음 한쪽을 먼저 채운다. 해인 글방은 올 10월경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질 예정으로 첫 번째 방문이 마지막이 되었다. 오래된 명패가 걸린 노후한 단층 건물은 세상의 소란에서 멀리 떨어진 것만 같이 차분했다. 수녀님은 언제나 이해인이라는 세 글자로 인식되어 한 번도 성을 빼놓고 불러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오래된 명패와 마주한 뒤 글방에 들어선 순간 해인(海仁)이라는 필명에 바다가 담겨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해인은 돌아온 탕아를 만난 듯이 어린 소설가를 반겨주었고, 그 인자한 미소 앞에 나는 이날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문 앞 벽면에는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그 위에 장식된 세월의 흔적들이 이곳을 찾는 손님들을 다정하게 맞아주고 있었다.
나는 수녀님의 손에 이끌려 나무 의자에 앉았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글방에 익숙해지려 애쓰니 땀이 솟기 시작했다. 마침 수녀님이 ‘냉커피 마실까요, 우리.’ 해서 얼른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랑을 받은 〈민들레의 영토〉가 세상에 나온 게 1976년이니 50년이 훌쩍 넘었다. 수녀님이 종신서원을 한 것도 그 해다. 신앙으로 시인으로 반평생을 지내오신 셈이다.
라디오에서 시를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해인의 시를 읽은 일이 몇 차례 있었다. 시대를 넘어서는 둥근 운율과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언어의 결로 온기를 내어주는 시적 실체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해인 글방은 많은 글 중에서도 편지들이 머무는 공간이었다. 독자들의 고해성사와도 같은 고백이 담긴 수많은 편지가 이곳으로 도착했다. 이런저런 편지를 소개하면서도 수녀님은 한 번씩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줄 것들을 찾아냈다. 말씀이 담긴 조개껍데기와 땀을 닦으라고 건넨 손수건, 부채, 에코백, 직접 쓴 학위 논문들, 옛 사진, 그리고 보자기에 소담하게 담긴 망고 두 알. 무얼 내주지 않았는지 살피고 살피면서도 우리의 대화는 조금도 끊기지 않았다.
창으로 희뿌연 햇살이 번져가고 있었다. 문득 새소리가 너무 가까이에서 들려와 눈길을 두자, 시간마다 새소리가 나는 시계라며 내 시선에 대한 궁금증도 사려 깊게 풀어주셨다. 순간 나는 그 앞에서 기쁨도 슬픔도 몽땅 다 내어놓을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박완서 선생님이 지내던 방에 가볼까요?’
내가 소설가라는 걸 상기하듯, 수녀님이 먼저 그 말을 꺼냈다. 박완서 소설가가 참척의 비통을 견디기 위해 수녀님을 찾아와 한동안 지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나는 그 방을 보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보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거기에는 내가 엿보아선 안 되는 어떤 슬픔들이 아직 부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였다. 그러나 수녀님은 나를 수녀원의 오르막길에 자리한 언덕방으로 이끌었다. 이름을 먼저 지어놓고 뒤에 뜻을 붙인 환대의 방이라 했다. 해는 아직 저만치 높이 떠 있었다.
‘섭섭하진 않으세요?’ 사라지는 공간에 대한 나의 물음이었다.
‘지금까지도 그랬듯 앞으로도 내가 해인으로, 움직이는 글방으로 살아가면 되겠지요.’
우리는 언덕방을 통과해서 수녀원으로 돌아왔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대선배 시인을 만난다고 하니 잔뜩 긴장한 채였고, 각진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게 내 이마에 땀방울을 맺히게 했다.
‘그런데 작가님.’ 수녀님이 나를 불렀다.
‘요맘때 하나 먹고 가면 안 될까?’
수녀님이 내게 건넨 그 한마디가 얼마나 둥글고 상쾌하고 명랑하던지. 내가 한사코 거절하자 수녀님은 글방 안으로 서둘러 들어가더니 나를 향해 달려오다시피 해서는 커다란 향초 하나를 건네주었다.
‘내가 종종 글 쓸 때 켜두던 거예요.’
해인이 내게 초를 건네주었다. 작고 조용한, 촛불 같은 글을 만들라는 뜻일까. 해인의 바다는 단 한 번의 멈춤도 없이 이리도 흐르고 계셨구나. 그 순간 나는 그 낮고 고요한 바다 같은 글방 앞에선 한 시인의 미소를 영영 잊을 수 없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2026-10-0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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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고전 공부로 알아가는 참다운 나
뜨거웠던 여름을 보냈던 시간이 언제였는지 가물가물하게 느껴지는 선선한 계절이다. 역시 가을이 되니 공기가 마냥 청량하기만 하다. 땀 흘리며 살갗을 찌르는 뜨거운 태양 빛을 식히느라 서둘러 에어컨이 돌아가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마음과 걸음걸이가 엊그제처럼 아득하다. 계절이 순환한다는 자명한 이치를 모를 리 없는 우리지만, 때로는 추위나 더위가 한정 없이 지속될 것처럼 ‘엄살’을 부리기도 한다. 이런 사실은 지난 사건과 시간을 돌이켜보면서 생겨나는 ‘사후적인’ 느낌과 겹치면서, 아직 오지 않은 새로운 시간과 사건을 은근히 염려하는 마음의 작용으로 흐르기도 한다는 점을 넌지시 던진다. 그러니까 하루하루 순간을 집중해서 살아가는 일과, 이미 지난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후회하거나 걱정하는 일이 얼마나 정신적인 성숙에 큰 차이를 주는지 생각한다.
그럴듯한 해설 난무하는 강연 범람
진정한 마음의 양식·가르침 구해야
삶의 본질 깨닫고 정신적 성장 이뤄
최근 몇 달 동안 하루 서너 시간 정도를 할애해서 듣는 유튜브가 있다. 고전 강좌다. ‘고전 강좌’란 말은 질릴 정도로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다. 동서양의 고전을 강의하는 매체나 공간은 허다하다. 하다못해 동네 주민센터나 복지관 같은 데만 가더라도 고전 커리큘럼이 게시판에 내걸려 있을 정도로 우리와 ‘고전’은 밀접하다. 아니, ‘그렇게’ 느껴진다. 고전을 읽는 일은 익히 아는 것처럼 우리에게 마음의 양식을 주고 정신을 풍요롭게 한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오래전부터 고전을 강요하고, 읽고, 인용하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고통과 폭력과 상처로 얼룩져 있음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치인들의 거짓과 속임수, 힘 있고 가진 자들의 횡포와 농락, ‘진보’나 ‘보수’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소수 의견에 대한 무시와 배제, 그리고 기술만능주의에 빠진 나머지 인문학에 무지하거나 오해와 편견에 사로잡혀 스타 저자나 강사의 번지르르한 말만을 숭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고전’은 범람하지만 정작 그 가르침은 망각되고 마는 현실이다.
최근 ‘너 자신을 알라‘는 유명한 말로부터 본격적으로 뻗쳐 나왔던 서양철학과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도리를 근간으로 하는 유교, 여기에 사랑과 자비를 구현해야 한다고 가르쳤던 기독교 및 불교 사상의 정수 등을 담은 고전의 말씀을 차례차례로 일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문학을 전공하고 비평 활동을 20년 넘게 해오면서 틈틈이 읽었던 다양한 장르의 독서 편력을 되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AI(인공지능)처럼, 주기적으로 유행하는 지적·문화적 트렌드를 나타내는 개념이나 키워드와 관련한 책 읽기는 한시적으로만 유용할 뿐 시간이 지나면 증발하는 아침이슬처럼 사라지고 마는 경향이 잦다. 전공 분야인 문학, 미학, 예술 방면은 글쓰기와 관계없이 꾸준하게 읽고 있는 편이지만, 정작 고전으로 분류되는 분야의 탐색은 게을렀던 게 사실이었다.
하는 일이 늘 책과 가까이하는 업이지만, 어느 순간 지금까지 읽고 궁리했던 사유를 재인식하는 과정에서 어딘가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범주와 영역을 발견한 차 다양한 철학과 종교 관련 유튜브를 일별하다 지금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고전 강좌를 찾은 것이다. 알고 보니 십수 년 전 띄엄띄엄 들었던 강좌였다. 그때는 강좌 대표의 남다른 ‘아우라’와 어떤 ‘자명한’ 식견을 몰라보고 내용만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다시금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강좌를 반가운 마음으로 구독하면서 일과 중 점심시간과 자기 전의 시간대를 할애하는 중이다. 동서양 철학과 경전을 일이관지로 꿰뚫는 강사의 지식과 혜안은 둘째로 치고, 고전을 단지 지식을 흡수해서 실천하는 수단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와 목적을 경전과 철학에 등장하는 수많은 성인·성자들의 말씀으로 뒷받침하는 구성으로 강의 주제마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강의에 빠지다 보면 얼핏 얼핏 ‘나’를 다시 생각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곤 한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만한, 한국에서 인문학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1세대 강사뿐만 아니라 불교나 기독교를 포함한 여러 종교와 철학 관련 고전 강좌가 홍수를 이루는 시대에 자명한 인식과 지혜를 솟구치게 하는 매체를 만나게 되어 한없이 기쁜 날이다. 4대 성인이라 일컫는 석가,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숱한 성자들이 강조했던 말씀의 내용과 원리가 어디에서 하나가 되고 어디에서 갈라지는지, 강사의 수련 체험과 개념의 일치를 통한 자명한 논리로 받아들이는 속에 내 정신의 양분도 새록새록 채워짐을 느낀다. 2000년이 넘는 세월에서 살아남은 말씀, 즉 고전이 고전일 수밖에 없는 이유와 함께 이 계절을 책을 넘기며 숙고하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다. 이런 속에 참다운 나를 더욱 알게 되지 않을까.
2026-09-1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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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호의 오픈 스페이스] 이름을 합친다고 예술이 합쳐지는가
정부는 지난 3일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18개 기관·조직을 7개 기관으로 통합·재편한다고 발표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공기관이 너무 많아 숫자를 다 세기 힘들 지경”이라며 유사·중복 기능에 대한 과감한 통폐합을 주문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효율, 절감, 시너지. 발표문에 등장하는 단어들은 반짝인다. 그러나 반짝이는 것이 빛이 아니다. 지금 문화예술계가 마주한 것은 빛이 아니라 칼이다. 그리고 그 어떠한 소통의 테이블도 없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국립박물관문화재단, 국립문화공간재단 등 4곳은 ‘한국문화예술산업진흥원(가칭)’으로 합쳐진다. 국악방송과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합쳐져 ‘국악문화산업진흥원(가칭)’으로 일원화되며, 지역문화진흥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한국문화정보원이 ‘한국문화진흥원(가칭)’으로 재편된다. 이름이 비슷하니 합쳤다. 기능이 겹치니 묶었다. 이것이 개편의 논리 전부다.
문체부 산하 18개 기관·조직 통합 추진
이름 비슷하고 기능 겹친다는 것이 논리
일괄적인 통폐합, 전문 분야 창작성 퇴색
예술경영지원센터와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유사한 일을 하는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과 국악방송이 같은 언어로 말하는가. 전자는 공연예술 유통과 해외 시장 진출을 지원하고, 후자는 전통 음악의 대중화와 방송 콘텐츠를 다룬다. 업무의 결이 다르고, 현장과의 관계 방식이 다르며, 지원 대상의 생리가 다르다. 그것을 이름 몇 글자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한 지붕 아래 밀어 넣는다. 외과 의사와 정형외과 의사가 같은 병원에 있다고 같은 의사가 되지 않는 것처럼, 공예 진흥과 공연 유통과 박물관 경영은 같은 일이 아니다. 이것은 야당의 주장이 아니다. 상식의 주장이다.
예술의 창작성은 행정의 효율과 전문성의 대상이 아니다. 각각의 예술 분야는 거기에 부합한 행정 지원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기계적이고 일괄적인 통폐합은 오히려 전문 분야의 창작성을 퇴색하게 할 뿐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이 통폐합의 논리는 문화예술을 산업으로만 본다는 점이다. ‘한국문화예술산업진흥원’이라는 가칭 이름을 보라. 예술 앞에 ‘산업’이 붙었다. 예술을 진흥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 산업을 진흥하겠다는 것이다. 이 한 글자의 차이가 모든 것을 바꾼다. 산업의 논리는 수익과 효율을 향한다. 예술의 논리는 창의성과 실패를 향한다. 팔리지 않는 시, 흥행에 실패한 실험 연극, 관객이 열 명도 안 되는 전통 음악 공연 그것들이 산업의 언어로는 실패지만, 예술의 언어로는 생존이다. 통폐합 이후 그 실패들을 누가 지킬 것인가.
기초 예술 생태계를 지탱해야 할 핵심 공공기관들이 전문성과 철학, 현장의 신뢰를 상실한 채 논공행상의 자리로 전락하는 현실, 이미 진행 중인 심각한 문제다. 기관을 줄인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큰 기관 하나가 탄생하면 그 기관의 수장 자리는 더 탐스러운 정치적 보상이 된다. 지금의 통폐합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더 큰 그릇에 담는 것에 불과하다.
이 모든 혼란의 뿌리에는 낡은 법이 있다. 문화예술진흥법은 1972년에 제정됐다. 유신 시대의 산물이다. 그 시대의 문화 정책은 ‘진흥’이었다. 국가가 위에서 아래로 문화를 내려보내고, 예술가는 그것을 받아 수행하는 구조. 54년이 지난 지금도 이 법의 뼈대는 그대로다. 문예진흥법을 예술지원법으로 분법화해 동법의 규율 범위를 예술 영역으로 명확화하고, 예술의 발전을 위한 핵심 법률로 그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번번이 묻혔다. 지금 이 통폐합 앞에서 그 논의를 먼저 꺼내야 한다.
‘진흥’과 ‘지원’은 다르다. 진흥은 국가가 방향을 정하고 예술을 그 방향으로 이끈다. 지원은 예술가가 방향을 정하고 국가가 그 뒤를 따른다. 블랙리스트가 가능했던 것은 이 법이 ‘진흥’의 언어로 쓰였기 때문이다. ‘예술지원법’으로의 전환은 단순한 이름 바꾸기가 아니다. 국가와 예술의 관계를 근본에서 뒤집는 일이다. 갑과 을의 관계를 의뢰인과 조력자의 관계로 바꾸는 일이다.
시대는 이미 변했다. 문화기본법이 제정되고, 예술인복지법과 문화예술교육지원법이 생겼다. 예술인이라는 위치를 법으로 제정하고 보호하는 시대다. 이제 예술은 그 이름만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예산을 절감하고 싶다면 방법은 있다. 중복 사업을 정리하고, 기관장 자리를 줄이고, 비대해진 직접 사업을 민간에 돌려주면 된다. 54년 묵은 ‘진흥’의 언어를 버리고 ‘지원’의 언어로 법을 다시 쓰는 것, 그것이 진짜 국뽕이 넘치는 K컬처의 진정한 내면이다.
이름을 합친다고 예술이 합쳐지지 않는다. 법을 바꾸지 않으면 행정도 바뀌지 않는다. 구조를 바꾸기 전에 철학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술가들과 먼저 대화했어야 했다.
2026-09-1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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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성의 개념 쌓기] 사이비의 시대, 비트겐슈타인의 불충분함
새삼스러운 진단이긴 하나, 음모론이나 괴담 혹은 사이비적 믿음들이 횡행하고 있다. 대검찰청 통계를 보면 사이비교와 엮인 사기, 폭행, 성범죄, 문서위조 등 범죄는 연간 5000건을 넘어선다고 한다. 또한 터무니없는 미망을 파는 주식리딩방 사기의 피해액도 1조 원을 훌쩍 넘어섰다. 그런데 통상 이와 같은 루머의 피해자에게 건네지는 것은 연민보다는, 그 개인에 대한 지적이다. 어떻게 그런 허무맹랑한 말에 속을 수 있느냐고, 어떻게 그 단순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려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이때 피해자는 경계선 지능장애 진단을 받기 일쑤이다. 다시 말해 비상식은 개인의 문제라는 것이다.
철학계에서 이런 세태와 조응하는 것은 비트겐슈타인의 유행이다. 영미권을 중심으로 맹위를 떨쳤던 분석철학은 세계로 뻗어나는 중이며, 최근에는 AI 언어모델과 엮이면서 그 인기가 마치 튤립버블 차트처럼 상승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매력적인 이유는 말할 수 있는 것을 사실상 자연과학으로 한정지었다는 데에 있다.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로서 논리적 구조를 갖는데, 이는 객관적인 검증이 가능한 영역으로 규정된다. 이때 심령주의? 이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물리적 세계에서는 검증할 방법도 없고, 그래서 뭐라 객관화하여 말하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그 유명한 처방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비트겐슈타인의 진단이 옳다고 가정하더라도, 여기엔 논의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이 대단한 분석철학적 논리력이라는 건 어떻게 활성화되는가? 허기가 질 때 밥을 안 먹고 가만히 있다보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인가?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비트겐슈타인적 주체에게 논리적인 세계를 논리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은 사실상 자연발생적이다. 논리력의 활성화 조건 같은 것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앞서 본 사이비교 문제에 대한 처방처럼, 개인이 자신의 논리력을 충분히, 잘, 적절히, 최선을 다해 발휘하면 될 문제인 것이다. 중점은 세계는 논리적이고, 그 논리의 파악을 방해하는 것들, 즉 이른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소거법에 있다. 이때 인간은 무슨 환경과 분리된 논리적 기계, 즉 튜링 머신처럼 취급된다.
이는 후기로 넘어가도 마찬가지이다. 잘 알려졌듯, 1930년대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적 대응 관계보다는 실천적 효과 쪽으로 사유의 중점을 옮겼다. 이를테면 앞서 본 심령주의를 다시 가져오자면, 이는 여전히 객관적 허구이지만, 그럼에도 심령주의적 언어 활용을 통해 위안이나 감사를 표현하는 효력은 발생한다. 심령주의는 이러한 삶 안에서 이뤄지는 소통과 실천의 기능을 갖는 언어놀이인 것이다. 이때 심령주의의 폐단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식 처방은 단순하다. 심령적 언어 규칙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점검해볼 것, 혹시나 교주가 자신의 사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교묘하게 단어의 쓰임새를 왜곡한 사기적 언어놀이가 아닌지 자문해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단어의 껍데기에 속지 말고, 그 단어가 실제로 행한 결과를 보라는 조언이다.
그러나 이 전회에서도 일종의 논리적 초인은 그대로 유지된다. 언어놀이의 규칙들을 이해하고 검증하는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의 책임이다. 논리성을 무시하고픈 오류에의 충동이 들 때는? “또 다시 발작이로구나”라며 스스로를 타이르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간단히 일축된다. 반문컨대 그러한가? 분석철학이 사랑하는 논리적 언어인 자연과학에서 온 결과에 따르자면, 가난한 환경의 높은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은 고위 인지를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의 뉴런 연결성을 약화시킨다. 또한 통계적으로도 사이비 종교의 유행과 사회적 세태의 불안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비례 관계이다. 그러니까 사회적 고립이 심화될 때 활성화되는 것은 지성이 아니라, 이로부터의 즉각적인 탈출 욕망이다. 자신들의 공동체를 가진 사이비교는 바로 이 틈을 파고들며 구원을 속삭인다.
다시 말해 사유가 적절히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불안이 완화되어야만 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걸 고려한다면, 이 완화 조건은 곧 최소한의 연대를 뜻한다. 이것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논리성의 활성화는 요원하다. 고야는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고 했다. 진실은 반대이다. 괴물이 깨어나면 이성이 잠드는 것이다. 그리고 인류 역사에서 이 괴물의 고전적인 이름은 가난과 고립이다. 이런 맥락에서 다시 비트겐슈타인을 생각하자면, 그것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소거법이건 언어놀이에 대한 기민함이건 간에, 중요한 건 그 사유를 활성화하기 위한 조건에 있을 것이다. 물론 비트겐슈타인 철학은 오류가 아니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실로 불충분하고도 불충분할 뿐이다.
2026-09-03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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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학수의 문화풍경] 영화 오디세이 너머, 귀향이라는 오래된 질문
이번 달 부산의 극장가를 집어삼킨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는 장엄한 화면으로 관객들을 신화의 세계로 몰입시키고 있다. IMAX 카메라로 담아낸 압도적인 스케일과 재치 있는 연출력은 오디세우스의 방랑을 숨 막히는 스펙터클로 탈바꿈시켰다. 그러나 영화가 선사하는 시각적 경이로움 너머에는 호메로스의 원전에서만 온전히 만날 수 있는 철학적 세계가 있다. 〈오디세이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짜릿함을 넘어, 작품을 관통하는 세 가지 지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모두는 바로 노스토스(nostos), 즉 귀향이라는 개념에 엮여 있다.
첫째, 노스토스는 고통을 통해 우리의 본모습을 시험하는 존재론적 탐구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노스토스는 단순히 지도상의 특정 장소에 물리적으로 도달하는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수많은 위협 속에서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잃지 않고, 마침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정체성의 여정이었다. 만약 어떤 신이 오디세우스를 트로이에서 이타카의 침실로 첫날에 공간 이동시켜 주었다면, 그는 아무런 고통도 겪지 않았겠지만, 자신의 왕국을 되찾을 역량을 갖춘 인물로 돌아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고통은 노스토스에 진정한 가치를 부여하는 시험대이다. 오디세우스의 선원들이 로토스 열매를 먹었을 때, 그들은 고통 없는 편안함을 얻었지만 고향을 잊고 자아를 상실했다. 만약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제안을 받아들여 비밀스러운 섬에서 영생과 고통 없는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기로 했다면, 그는 목숨은 건졌을지언정 이타카 사람의 남편이자 아버지, 그리고 왕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상실했을 것이다. 텔레마코스 역시 필로스와 스파르타로 향하는 거친 여정에 목숨을 걸어야만 했고, 그 시련을 통해 비로소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을 자격이 있음을 증명했다. 노스토스가 의미를 갖는 이유는, 여행자가 스스로 자아를 포기하지 않고 고통을 견뎌내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둘째, 메티스(mētis), 즉 지략은 노스토스를 완성하기 위해 갈고닦아야 하는 도구이다. 노스토스가 목표이고 고통이 시험이라면, 메티스는 그 여정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결정적 능력이다. 고대 그리스 사상에서 메티스는 비에(biē), 즉 물리적인 힘과 대비된다. 〈일리아스〉의 아킬레우스가 정면 승부에서 상대를 짓밟기 위해 비에에 의존했던 반면, 오디세우스는 순수한 힘만으로는 결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파악했다. 메티스는 예지력과 자제력, 그리고 탁월한 전략적 유연성을 통해 자신보다 훨씬 강한 상대를 압도할 수 있게 해준다. 메티스는 고정된 힘이 아니라, 변화하는 상황을 읽고 그에 맞추어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실천적 지혜이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오디세우스는 “내 이름은 ‘아무도 아닌 것(Outis)’이라고 속인다. 압도적인 거인의 신체적 힘에 비에로 맞서는 대신, 그는 전사로서의 혈기를 누르고 유연한 지략을 발휘해 괴물의 동굴에서 빠져나온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위기는 바로 그다음에 찾아온다. 안전하게 탈출한 오디세우스는 자존심을 이기지 못하고 폴리페모스에게 자신의 진짜 이름을 외친다. 결국 폴리페모스는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오디세우스를 저주해 달라고 기도하고, 그의 귀향길은 더욱 험난해진다. 메티스가 그를 구했지만 자만심은 다시 그를 위험에 빠뜨린 것이다. 지혜란 영리한 머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의 충동을 다스릴 줄 아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셋째, 노스토스는 운명과의 능동적 대화를 통해 완성된다. 고대 그리스 신화를 순전한 숙명론으로 치부하는 것은 흔한 오해다. 모이라(운명)는 정해진 대본이 아니라 역동적인 협상의 대상이며, 오디세우스는 이 협상을 두 가지 방식으로 수행한다. 하나는 저승까지 내려가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에게 조언을 구하는 적극적 접근이다. 다른 하나는 그 반대편에 있다. 파도에 휩쓸려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바다의 여신 레우코테아가 마법의 베일을 건네지만, 그는 “혹시 신이 나를 속이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며 스스로 판단을 유보한다. 신에게 다가갈 때도, 신이 다가올 때도 그는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세계의 위대한 힘들과 이렇게 소통함으로써, 호메로스의 영웅들은 운명이 테두리를 설정할지언정 그 안에서 집으로 돌아갈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선택임을 증명해 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우리에게 잊지 못할 영화적 쾌감을 선사했다. 그러나 영화의 스펙터클이 사라진 뒤에 우리의 질문은 남는다. 우리는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가. 우리의 귀향은 지도 위의 한 지점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 귀향은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지략을 벼리며, 세계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일이다.
2026-08-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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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기후 위기 시대의 도시 해법
폭염에 지친 뒤였다. 해갈에 대한 기대감으로 비가 내리기를 바랐다. 그러나 지난 주말, 기다리던 단비가 아니라 남부지방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짧은 시간에 쏟아진 비로 인해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했다.
올여름 날씨는 좀처럼 평범하지 않다. “올해가 가장 시원한 여름일 것”이라는 말이 진심으로 와닿았다. 대구의 ‘대프리카’에 이어 ‘양프리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부산도 예외가 아니다. 바다를 끼고 있어 비교적 시원하다는 말이 무색하게 서울보다 기온이 높은 날도 있었다. 그러다 폭우가 쏟아진 것이다. 비가 그치면 다시 더위가 시작된다. 이것이 기후 위기의 가장 선명한 얼굴인지 모른다. 기온이 조금씩 오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날씨’가 사라지는 것이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는 에어컨을 둘러싼 논쟁이 뜨거웠다. 폭염을 견디기 위해 냉방시설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유럽에서 에어컨은 오랫동안 환영받지 못했다. 에너지 소비와 탄소배출 때문이다. 오래된 건축물의 외관을 보존해야 하는 규정도 설치를 어렵게 했다.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에어컨 사용을 줄여야 하는데, 기후가 변할수록 에어컨 없이는 견디기 어려워지는 역설이다.
우리는 지금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만든 원칙과 기후 위기에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현실 사이에서 새로운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조금 더 근본적이어야 한다. 폭염에도 적응해야 하고, 폭우에도 적응해야 한다면 결국 적응해야 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도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자연재해를 만나면 시설을 보강하고 피해를 복구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폭우가 내리면 배수로를 정비하고 물을 빨리 도시 밖으로 흘려보내려 한다. 도시의 배수 능력을 높이는 것이 오랫동안 재해에 대응하는 가장 당연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시간당 100㎜를 훌쩍 넘는 비가 쏟아지는 시대에도 이 방식만으로 충분할까. 문제는 비가 많이 오는 것만이 아니다. 비가 오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데 있다.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지나치게 건조하고, 비가 오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쏟아진다. 그런데 우리의 도시는 여전히 과거의 비를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다.
땅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여 있다. 하천은 물을 빨리 흘려보내도록 정비됐다. 물이 흘러갈 곳은 많아졌지만, 비가 잠시 머물 곳은 줄어들었다. 폭우가 잦아진다면 물이 도시 밖으로 빨리 빠져나가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빗물이 스며들 수 있는 땅이 필요하다. 하천과 습지가 살아 있어야 한다. 공원과 녹지, 저류시설과 수변공간이 각각의 시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물순환 체계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것은 폭우만을 위한 도시가 아니다. 빗물이 스며드는 땅에는 나무가 자란다. 나무는 그늘을 만든다. 물을 머금은 녹지는 증발을 통해 주변의 열을 낮춘다. 흙과 나무가 있는 공간은 폭우가 내릴 때는 빗물을 받아들이고, 폭염이 찾아오면 도시의 열을 낮춘다. 결국 폭염과 폭우는 서로 다른 재난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닮았다. 뜨거워진 도시와 빗물을 받아내지 못하는 도시는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도시다. 자연의 흐름을 끊고 땅을 덮어버린 도시다.
기후 위기 시대의 건축은 비를 막고 더위를 피하는 건축을 넘어, 물과 열을 다루는 건축이어야 한다.
부산은 산과 바다가 만나는 도시다. 낙동강과 수영강이 흐르고, 수많은 골짜기와 하천이 바다로 이어진다. 바람이 있고 물이 있다. 자연의 힘을 가까이 가진 도시다. 그런데 우리는 도시를 개발하면서 자연이 가진 힘을 조금씩 밀어냈다. 산과 하천의 흐름을 끊고, 땅을 포장하고, 바람의 길을 건물로 막았다. 더워지면 에어컨을 켜고 비가 오면 배수시설을 늘렸다. 이렇게 도시는 오랫동안 사람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왔다. 하지만 기후 위기 앞에서는 이 방식이 한계에 부딪힌다. 그것은 새로운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건물의 성능을 에너지 효율만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폭염과 폭우에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 처마와 차양, 녹화와 물순환, 자연 환기와 일사 조절 같은 오래된 건축의 지혜를 다시 불러낼 필요도 있다.
바다를 바라보는 고층건물을 많이 짓는 것만으로 해양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도시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바다로 흘러가는 물의 길을 살리고, 폭우가 쏟아질 때 잠시 비를 받아낼 공간을 곳곳에 마련하는 것. 그것 역시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도시를 만드는 일이다. 이미 달라진 기후를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도시다. 기후 위기 시대의 좋은 도시는 자연을 이기는 도시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 인간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도시일 것이다.
2026-08-2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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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의 크로노토프] 오페라 옆 돔구장
해양수산부 신청사 터가 북항 1단계 복합항만지구로 확정됐다. 해양행정과 산업·사법 기능을 한데 모아 부산을 해양수도로 완성할 구상이 비로소 구체적인 공간을 얻은 셈이다. 이에 따라 인접한 해양문화지구의 쓰임은 그만큼 엄중해졌다. 도시의 공간은 시대의 비전을 담는 그릇이자 시민을 향한 행정의 약속이다.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을 세울 것인가보다 어디에 세울 것인가다. 이는 앞으로 백 년간 북항의 가치를 규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첫 단추가 되기 때문이다.
폭염과 집중호우가 반복되는 기후 환경에서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경기를 치를 수 있는 돔구장의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노후한 야구장을 대신할 체육 인프라와 대형 공연시설이 필요하다는 시민의 요구도 타당하다. 전재수 시장의 개폐식 돔구장 구상은 이러한 오랜 갈증을 해결하려는 결단이다. 스포츠와 공연·관광을 결합해 북항의 새 동력을 만들겠다는 방향과 관계 기관의 협력을 끌어내는 추진력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정책 목표의 타당성과 특정 입지의 적합성은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 법적·절차적으로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곳에 지어야 할 이유까지 증명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왜 완공을 앞둔 오페라하우스 바로 옆이어야 하는가다.
오페라하우스는 평범한 건물이 아니다. 오직 목소리와 악기 소리만으로 객석을 채워야 하는, 고도의 정밀함이 요구되는 하나의 거대한 악기다. 무대 상부의 막이나 조명을 매다는 플라이세트 배튼과 리프트, 무대 제어장치는 물론, 리허설 공간과 대형 무대 장치 반입을 위한 하역 동선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정밀한 제작시설이기도 하다. 이미 2019년 설계 재검증에서도 하역공간과 주차 대책 등 77건이 지적됐고, 850여 곳의 균열이 확인되는 진통을 겪은 만큼 개관 전 철저한 보완 검증이 필수적이다.
우주의 미세한 빛을 포착하는 초정밀 망원경을 갖춘 천문대 바로 옆에서 굉음과 폭발을 동반하는 대형 폭죽 축제를 상시 개최한다면, 관측 장비의 센서를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교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관객이 가득 찬 돔구장 내부의 순간 최대 소음은 110~130데시벨(dB)에 이르며 강한 저주파까지 동반한다. 오페라하우스라는 섬세한 악기에는 치명적이다. 게다가 부산오페라하우스의 무대를 통합 제어하는 바그너-비로의 CAT 시스템은 위험을 감지하면 즉시 멈추는 ‘세이프티 록’ 기능이 있다. 문제는 이 고도의 안전장치다. 외부에서 전해진 돌발 진동을 위험으로 오인, 센서가 작동해 공연 도중 무대가 멈춰 서는 대형 사고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글로벌 도시들이 대표 공연예술 시설과 대형 경기장을 서로 다른 권역에 배치해 각각의 운영환경을 철저히 보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24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 사태가 이를 증명한다. 무려 17억 6000만 유로를 들여 개폐형 돔형태의 복합시설로 개조했지만, 방음 보강에도 소음 규정을 충족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콘서트 일정이 전면 중단·변경되었으며, 약 24만 장에 달하는 티켓 환불 사태와 소음에 대한 주민들의 법적 대응이 잇따르며 도시의 신뢰가 송두리째 흔들렸다. ‘일단 짓고 보면 해결되겠지’라는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 가장 비싼 청구서로 돌아온 뼈아픈 교훈이다.
또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 공간적 모순 앞에서 목소리를 내야 할 문화계의 침묵이다. 현재 언론과 문화계 안팎에서는 100억 원대 라 스칼라 개관 공연을 두고 치열하게 찬반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는 어떤 작품으로 문을 여느냐는 논쟁보다 극장이 정상적으로 숨 쉬며 일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을 지키는 일이 먼저다. 특히 개관을 준비하는 전문경영인과 예술감독 등 관련 전문가들이 이 문제에 대해 손 놓고 있을 일이 아니다. 입지를 결정할 권한은 없더라도 필요한 조사와 보호 기준을 부산시에 적극적으로 요구할 책무가 있다. 언젠가 그들의 임기는 끝나겠지만, 지금의 침묵이 남길 결과는 부산이 오랫동안 온몸으로 감당해야 한다.
네모난 장부를 둥근 구멍에 억지로 끼우는 ‘방예원조(方枘圓鑿)’는 각각의 가치가 나빠서가 아니라 자리가 맞지 않아 둘 다 망가지는 어리석음을 경계한다. 오페라와 돔구장은 경쟁자가 아니다. 각자의 기능이 살아날 제자리에 놓일 때 문화적 자산과 스포츠 자산도 함께 커진다. 기존 체육 인프라의 현대화 계획과 제3의 대체 장소를 같은 기준으로 다시 비교하는 것은 공약의 후퇴가 아니라 공약을 제대로 완성하는 책임 행정이다. 체육 환경을 혁신하려는 의지가 오랜 세월 공들여온 문화 자산의 숨통을 끊는 자충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해수부 이전을 성사한 전재수 시장의 추진력이 두 랜드마크를 모두 살리는 정밀한 검증과 지혜로운 판단, 그리고 대승적 성찰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2026-08-1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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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지금-여기-나'를 잡아서 가는 길
며칠 전 집에서 버스를 타고 서너 코스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 도서관에 간 적이 있다. 이사 오고 1년 정도 지났지만 처음 들른 도서관이었다. 요즘 부산시와 교육청 산하 도서관이 예전에 비해 많이 생겨 주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내부 시설도 쾌적하고 맞춤형 학습과 도서 이용 코너가 효율적이고 기능적으로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인문·종교 서적 서가들이 입체적으로 놓여 있는 사이에 독서를 위한 소파형·테이블형 공간이 마련되어 자리를 잡아 들고 온 책을 읽었다. 방학 기간이라 그런지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중장년층들도 많이 보였다. 10대부터 70대까지 아우르는 생활 문화공간으로서 도서관이 차지하는 기능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매 순간 삶 모여 과거·현재 만들지만
현존하는 나에 대한 새삼스러운 자각
존재 만족 높이고 정신적 풍요 전해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각자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는 풍경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독서문화’란 말이 고풍스럽게 느껴질 만큼 요즘엔 그런 말조차 들리지 않는다. 책 읽는 습관이 문화로 자리 잡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 ‘교양’과 사람 사이의 괴리가 컸는지 생각한다. ‘책’이 가진 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문자 해독 능력을 갖춘 사람이 거의 없었을 때만 하더라도 책은 마치 보석이나 되는 것처럼 아무나 들춰볼 수 없었다. 지식인들은 책을 읽으며 자신의 사고와 가치관을 점검하고 정리하였다. 책과 거리가 멀었던 대부분은 어렵사리 구한 책을 돌려가며 세상의 이치와 지혜를 엿보곤 했다. 첨단 기술이 만연한 오늘날에는 종이책뿐만 아니라 전자책으로도 널리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지식이 넘쳐흘러 이제는 사실과 거짓의 경계마저 구분하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유익함은 단지 책을 읽게 하는 기능을 넘어선다. 책을 읽는 시간과, 이 시간을 부여해 주는 공간이 어우러져 책 속의 세계를 온전히 자신의 마음속으로 낚아채는 곳이다.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다양한 방면의 지식과 지혜가 종이에 글자로 기록되어 있는 도서관은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장소요, 오지 않은 미래가 현재 속으로 꿈틀거리며 손을 내미는 공간이다. 여기에 온전히 집중하는 ‘나’가 있다. 비단 책을 읽을 때만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는 ‘시간’이라는 흐름을 타고 ‘미래’를 향하여 항해하는 항해사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면 다시 붙잡아 둘 수 없는 시간(과거)과 아직 찾아오지 않은 시간(미래)을 걱정하거나 앞질러 고민하지 않아도 ‘여기’와 ‘지금 이 순간’과 ‘나’가 자명하게 현존한다는 자각만으로도 충분히 존재 만족을 누리는 길이 됨을 알 필요가 있어 보인다.
모처럼 고요한 산사의 명상처럼 책장 넘기는 서걱거림만이 비규칙적으로 들리는 종합열람실을 다시 둘러본다. 제각각 들여다보는 책들이 테이블 위에 드문드문 놓여 있다. 이용자들이 지나다니거나 앉아서 책장을 넘기는 풍경이 사뭇 낯설게 보인다. 그리고 나를 돌이켜 본다. 내가 있는 2층과 연결된 별관에 들러 시원한 커피를 사들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태양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7월 말의 산 중턱에 순간을 붙잡는 자명한 존재들이 모여 있다. 집중해서 읽는 글자들이 어떤 때는 기지개를 켜듯 선과 곡선이 꿈틀거리기도 한다. 혹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자음과 모음을 걸치거나 사이사이로 생겨났다 사라지기도 한다. 글자가 내미는 의미와 맥락을 정리하면서 시원하게 만들어 내는 진실들이 오늘 하루를 맞이하는 내게 일말의 소식을 전한다. 이 소식은 잊지 않고 늘 때때로 챙겨야 하는 정신의 알약이 될 것이다.
도서관을 나와 시내 방향으로 조금 걸어 내려오다 같은 성당을 다니며 평신도 모임에서 함께 활동했던 분이 운영하는 식당에 들렀다. 대여섯 평 남짓한 조그만 식당이지만 주메뉴인 시래깃국이 별미라 고정 단골이 여럿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주인은 지인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다. 오랜만에 내민 얼굴이라 정신없이 인사를 주고받고 자리에 앉으니 고등어찌개가 맛있게 되었다며 권한다. 평신도 모임을 열렬하게 다니면서 신앙심을 키웠던 주인은 지금은 교회에 다닌다고 했다. 그러고는 어쨌거나 믿는 존재는 한 분이니 별 상관이 없다는 말을 하였다. 나도 마땅히 주인의 의견에 동참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지금 순간’에 들어오는 명확한 사실만이 중요하다. 종교를 ‘갈아탄’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를 믿고 의지하든 명쾌하게 바로 이것이라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이 사실이야말로 ‘지금-여기-나’를 온전히 느끼면서 명백하게 현존을 실감하는 자리다. 책을 읽든, 말을 하든, 행동을 하든, 판단을 내리든 그러한 진실 하나쯤은 무더위를 이겨낼 시원한 부채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2026-08-0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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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호의 오픈 스페이스] 침묵을 깨는 여행자들, 그들의 귀환을 위하여
예술가는 끊임없는 생산과 창작을 통해 자신의 어법을 증명한다. 멈추면 예술가가 아니다. 침묵은 예술가의 언어가 아니다. 오히려 예술가는 침묵하는 세계를 소란스럽게 만드는 여행자들이다. 예술가들의 발걸음이 구석구석 세계를 누빌 때, 비로소 우리는 풍요롭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술이 없는 사회는 조용하다. 그러나 그 조용함은 평화가 아니다. 죽어가는 사회다.
예술가는 있는 세계를 재현하는 존재가 아니다. 변형하고 변주하여 다른 세계를 생성시키는 존재다. 현실을 해체하고 재조립하여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세계를 눈앞에 들이민다. 그것이 창작이며 예술의 본질이다. 이 위치는 권력이나 제도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산하는 자만이 그 자리에 서 있다.
여행은 일상의 바깥이면서 동시에 일상으로 회귀하는 과정이다. 그 왕복의 경험이 삶과 또 다른 세계 사이를 끊임없이 주시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의 삶은 여행과 다를 바 없다. 예술가는 언제나 낯선 경계, 탐험을 갈구한다. 바로 이 지점을 주목하자. 실질적으로 회귀할 목적지가 예술가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인이 여행에서 돌아올 집이 있다면, 예술가에게 그 집은 모호하다. 그래서 예술가들에게 실제적인 여행의 경험이 필요하다. 몸이 움직이는 여행, 낯선 땅을 밟는 여행, 이방인으로 서보는 경험. 그것이 예술가를 다시 예술가이게 만드는 힘이다.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예술가들에게 이 질문은 지극히 중요한 문제의식이다. 그것이 예술가 자의식의 지표이고 작업이 지니는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예술가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돌아가는지를 보면, 그 작업이 무엇을 말하는지가 보인다. 귀환의 지점이 작품이다. 그 되돌아오는 표현이 어디인지를 살핌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속악한 현실을 만져볼 수 있다.
지금도 예술가들은 여행길에 올라 그들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얼마나 많은 침묵들이 도처에서 신음을 내지르고 있는지를 상상해 보라. 무의미하게 소멸하거나 자리를 잃고 낡아지기만 하는 사물들이 제 존재감을 빠른 속도로 잃어가고 있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들, 이름조차 잊힌 것들, 시대의 변두리로 밀려난 것들이 매일 사라져간다. 여행자이자 예술가들은 이 침묵의 몸을 매만지기 위해 쉴 틈이 없다. 그들의 작업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최후의 증언이고, 잊히는 것들에 대한 가장 집요한 저항이다.
예술가들의 수다스러운 세계에 눈과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그들의 작업이 낯설고 불편하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예술은 언제나 시대보다 앞서 있고, 대중은 언제나 한발 늦게 도착한다. 그 간격을 좁히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예술가들은 귀환(歸還)하지 못한다. 돌아올 자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 사회는 예술을 소비하면서도 예술가를 홀대한다. 작품 앞에서 감동하면서도 작가의 생존에는 무관심하다. 지역 예술가들의 사정은 더욱 가혹하다. 지역이라는 지리적 변두리와 주류 미술시장이라는 제도적 변두리, 그 이중의 소외 속에서도 예술가들은 떠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세계를 소란스럽게 만드는 일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이 아픈 간격을 메우기 위한 귀중한 시도다. 예술가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이방인의 눈으로 세계를 다시 보게 하는 장치다. 국경을 넘어 다른 문화권의 예술가들이 한 공간에서 부대끼며 서로의 침묵을 들여다보는 경험, 그것이 부산다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확실한 방법이다. 외부에서 브랜드를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예술가들이 스스로 세계를 만들어가도록 돕는 것. 그것이 진짜 문화 행정이고, 도시를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다.
부산을 보라.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얼마나 유지되고 있는지 꼽아보아도 한 손안이다. 도시 곳곳에 공가와 유휴시설은 늘어만 가는데, 십수 년째 활성화만 명분으로 내세울 뿐 실천이 없다. 민간 예술단체들의 작은 실천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공공과 행정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그들을 환대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이를테면 예술가의 집에서 머물고 예술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신비로운 경험이 그 해답일 수 있다. 퐁피두 간판이 아니라 예술가의 숨결과 낡은 골목, 비린내 나는 새벽 항구의 향기가 부산의 본질일 것이다.
일단은, 그들이 비록 왕은 아니지만 귀환하고 있으니 최소한 환영이라도 해주는 작은 관심을 보이자. 손뼉을 치자마자 그들은 곧 떠나겠지만, 우선은 가볍게 포옹해 주는 일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예술가를 환영하는 도시가 살아 있는 도시다. 예술가를 외면하는 도시는 조용하다. 그 조용함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침묵을 소란으로 만드는 자들이 돌아오고 있다.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2026-07-30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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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성의 개념 쌓기] 손절 증후군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익숙한 말이 된 ‘손절’은 본래 주식 용어였다. 추가적인 주가 하락에 따른 더 큰 ‘손’실을 막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서 보유 주식을 매도하는 것, 즉 끊어내듯 ‘절’단한다는 의미였다. 이 말이 주식 거래를 넘어서 우리들의 일상까지 들어온 것은 2010년대 중반 무렵일 터이다. 물론 이는 대대적으로 보급된 스마트폰을 통한 모바일 거래가 대중화되던 흐름과 겹쳐진다. 쉽게 추측할 수 있듯이, 손절의 확산된 용례는 인간관계의 끊어 냄이다. 마음이 맞지 않는 친구나 민폐만 끼치는 이웃 등 손해만 주는 관계를 단호히 끊어 낸다는 의미인 것이다.
2020년대부터는 가히 ‘대손절의 시대’가 열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 방송이나 연애 프로그램에서 손절은 이미 익숙한 표현이 된 지 오래다. 특히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처방으로서 손절은 무슨 심리적 특효약처럼 취급받고 있기도 하다. 손절이 인간관계가 주는 피로감과 고통으로부터의 즉각적인 탈출 버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는 진화적으로 90년생 이후의 인류부터는, 손해되는 것에 단호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내면 근력이 튼튼해졌기 때문일까? 그럴 리가. 이미 한 세기 전 사회진화론이 사이비 과학으로 판명됐듯, 많은 경우 인간의 진화는 허상이다. 모든 인간은 한낱 인간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무리 동물적 속성에 집중하자면, 변화한 것은 관계의 조건이다. 옆집 이웃과 매일 얼굴을 보고 살아야만 하는 전근대의 시골에서 손절은 사실상 선택 불가능한 옵션이다. 또한 손절의 결과가 고립이라면, 그 홀로됨을 견딜 수 없어 하는 인간은 손절을 택할 수 없다. 이 말인즉 손절의 성립 조건은 절연한 공동체 외에도 대안이 될 다른 공동체들의 존재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른바 MZ라고 불리는 세대에서 손절이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된 건 그리 놀랍지 않다. 스마트폰을 통해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접근 가능한 온라인 커뮤니티 어딘가에서 나와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어지기 때문이다. 동시에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을 맴도는 프리터족들의 오프라인에서 잦은 이직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국내인구이동통계에 따를 때 청년 4명 중 1명은 매년 이사를 할 정도이다.
그렇다면 관계의 기술로 자리잡은 손절은 우리들의 삶을 얼마나 개선했을까? 쉽게 추측되듯, 손절은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관계를 정리함으로써 스트레스를 줄여 줬다. 또한 부당한 대우에 대한 단호한 거부가 부조리한 문화 타파에 이바지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한쪽에서 손절이 자존감의 참된 벗처럼 취급받을 때, 다른 쪽에서는 인간관계에서 상대방과 조금이라도 갈등이 형성되면 곧바로 잠적해버리는 것, 즉 이른바 ‘리셋’이 횡행하고 있다. 일본에서 먼저 포착된 이 리셋 증후군은 손절 문화의 형태로 한국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인데, 여기에 물든 주체들은 마치 게임 캐릭터를 손쉽게 삭제하거나 새롭게 만들 듯 인간관계 또한 이렇게 리셋을 반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문제는 인간이 게임 캐릭터가 아니라는 데 있다.
예수의 지적처럼 인간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잘 보지만, 정작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타자에게 이 들보를 지적받는 것은 전혀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불편함 자체를 곧 불필요한 감정 스트레스라고 취급하며 손절을 거듭하는 것은, 아집과 무지의 길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손절의 연쇄를 어떻게 해야 끊을 수 있을까? 물론 모범 답안은 내적 견고함이다. 단단히 자리 잡은 나무는 자신의 껍질이 약간 긁히는 데엔 개의치 않는다. 그것이 자신을 무너뜨릴 수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반대로 풍선은 조금의 균열도 허용할 수 없는데, 이는 자신의 속이 텅 비어 있기에 그 작은 갈라짐이 곧 존재의 소멸로 이어질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인간 역시 조금의 지적도 견딜 수 없다는 것은, 그 작은 균열로도 자기 자신이 무너질 만큼 존재의 기반이 얇다는 징후에 다름 아니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이 내적 건강함을 내적으로만 이해해선 곤란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관계 외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존재의 강도는 관계의 신뢰에 기반한다. 지금의 실수로 나를 판단치 않고 내가 개선되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봐 줄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 이들이 곧 내 자존감의 근원이다. 철학적 깨달음은 이 지점을 결코 대체할 수 없다. 되레 철학은 자신이 존재의 기반이 아님을 자각하기 위한 기술이다.
2026-07-2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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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학수의 문화풍경] 휴가, 삶의 방향을 다시 묻는 시간
매일 아침 눈을 떠 어제와 다름없이 일터로 향하는 지하철과 자동차에 몸을 싣는다. 치열하게 달려온 끝에 안정적 궤도에 올랐지만, 문득 고개를 들면 가슴을 짓누르는 지독한 권태와 마주하게 된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 그리고 오늘과 한 치도 다르지 않을 내일.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무수한 중년이 겪는 방황은 대개 이 지독한 삶의 정체 상태에서 비롯된다. 더 이상 올라갈 목표도, 나아갈 방향도 잃어버린 채 삶의 의미는 희미해지고, 그 빈자리에는 깊은 실존적 공허만이 들어앉는다.
설상가상, 이 위험한 정체 상태를 아름답게 포장하고 정당화하는 위안의 이데올로기들이 일상의 공기처럼 우리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왜곡된 에피쿠로스주의다. 에피쿠로스는 무한한 야망을 좇는 대신, 소박한 공동체 안에서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욕구만을 충족할 때 마음의 평정인 ‘아타락시아’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늘날 이 사상은 미디어가 앞다투어 부추기는 안락한 고립, 버림의 미학, 그리고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마케팅으로 변질된다. 물론 이것은 에피쿠로스 자신의 철학이라기보다 현대 소비사회가 그의 이름을 빌려 만들어낸 변형이다. 그러나 이 철학을 무비판적으로 삼키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에게 안이한 위안을 속삭인다. “방향을 잃고 정체되어도 마음만 편하면 그만”이라고 말이다. 진보를 향한 노력을 멈춤으로써 삶의 모든 마찰은 사라지지만, 동시에 우리 삶의 뜨거운 엔진도 꺼져버린다.
또 다른 강력한 마취제는 편협한 내세 사상이다. 많은 종교는 내세의 믿음을 교리에 포함한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현세의 노력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기독교 전통은 내세의 희망을 약속하면서도,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개인의 노력을 요구한다. 칼뱅주의 신학은 신의 절대적 선택이 인간에게 책임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믿음은 현실의 일터에서 맹렬하게 일하게 만드는 동력원이 된다고 가르친다. 정작 문제는 내세의 믿음이 이 땅에서의 삶을 그저 묵묵히 버텨내야 할 ‘임시 대기실’ 정도로 격하시키는 안일한 타협으로 변질될 때 발생한다. 내세만을 바라보며 현실의 안정과 안락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태도야말로 경계해야 할 진짜 아편이다.
이 두 변질된 이데올로기는 독약과 같아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내면의 개척 본능을 마비시킨다. 그러나 그 기만적 안도의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아무리 “지금 이대로 정체된 삶도 좋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아도, 가슴속 깊은 곳에서 문득문득 솟구치는 존재론적 텅 빔을 인간은 결코 속일 수 없다.
삶의 생생한 의미를 되찾고, 다시 한번 화산 같은 생명력의 에너지를 분출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중독적 위안의 철학들로부터 탈옥하는 것이다. 잘못된 사유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인간의 참된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좋은 철학을 배워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편안히 머무는 상태가 아니라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활동 속에서 완성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철학은 니체의 ‘초인’ 사상에 이르면 더욱 급진적 형태를 띤다. 그 사상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현재의 나를 초월하려는 처절한 투쟁이 없다면 인간의 삶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니체가 말한 초인은 TV 드라마에 나오는 초능력자나 영웅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초월’의 과정을 끊임없이 지속하는 존재, 즉 어제의 나에게 내일을 지배당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태도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번 달에 방정식을 탐구하고 다음 달에 도형의 성질을 공부하며 지적 지평을 넓혀가는 중학생의 하루하루, 단 0.1초의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매일 자신의 한계를 부수는 운동선수의 땀방울 속에 초인의 삶이 있다.
자기 극복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혼란을 수반한다. 낡은 껍질을 찢고 나오는 고통 없이 진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참된 행복이란 정지된 평온이 아니라, 고통을 관통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경험되는 역동성이다. 중년의 위기는 우리 삶의 에너지가 고갈되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안락이라는 이름의 타성과 편안한 루틴에 길들었기 때문에 찾아오는 경고음이다.
본격적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 많은 이들이 도심의 마찰을 피해 조용한 휴양지로 탈출을 감행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휴가는 안락한 선잠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드는 도피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타성에 젖어 돌아가던 일상의 트레드밀에서 잠시 내려와, 우리 영혼을 좀먹던 마취제를 털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어제의 나를 넘어설 용기를 충전하는 깨어 있는 쉼표가 되어야 한다.
2026-07-17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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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부산, 바다의 도시
부산의 모든 길은 바다로 향한다.
금정산과 백양산에서 흘러내린 물은 온천천과 동천을 지나 바다를 만난다. 낙동강은 삼각주를 이루며 남해로 스며들고, 산비탈을 따라 난 골목길은 어느새 항구와 시장으로 이어진다. 도시의 길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바다 앞에 닿는다. 그러나 바다는 길의 끝이 아니다.
부산항을 떠난 배는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으로 향하고, 남중국해를 지나 동남아시아와 인도양으로 이어진다. 조선통신사는 그 길을 오갔다. 개항 이후에는 새로운 문물과 사상이 그 항로를 따라 들어왔다. 한국전쟁 때는 수많은 피란민이 이 항구를 통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오늘도 컨테이너선은 세계의 항만과 부산을 잇는다. 부산의 길은 육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바다가 되고, 그 바다는 다시 세계로 이어진다.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은 〈지중해〉에서 역사의 무대를 왕조나 국가보다 바다에서 읽어냈다. 그에게 지중해는 하나의 바다가 아니라 수많은 도시를 잇는 거대한 공간이었다. 바다는 영토를 가르는 경계가 아니라 사람과 물자, 언어와 기술, 사상과 생활 방식이 오가는 길이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도시들은 오랜 시간을 두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저마다의 문명을 쌓아갔다.
얼마 전 발간한 인문무크지 〈아크〉의 주제를 ‘바다’로 정하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열여덟 명의 필자는 모두 바다를 이야기했지만, 어느 누구도 같은 바다를 바라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바다는 생업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유년의 기억이었다. 또 다른 이에게는 떠난 이를 기다리는 시간이었고, 생명의 기원을 사유하는 공간이었다. 같은 바다를 두고도 서로 다른 삶과 시간이 겹쳐 있었다.
도시도 그렇다. 같은 항구를 품고도 도시는 서로 다른 얼굴을 갖는다.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를 건너온 상인과 학자들이 모여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세웠고, 베네치아는 동방과 서방을 잇는 항로 위에서 유리와 직물, 건축 기술을 받아들이며 독자적인 도시 문화를 만들었다. 암스테르담은 운하를 도시의 기반시설이자 공공공간으로 발전시키며 상업과 금융의 중심이 되었다. 이 도시들이 남긴 것은 거대한 항만이 아니었다. 바다를 통해 축적된 시간이었다.
부산의 거리를 걸으면 도시의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광안리와 해운대만이 아니다. 초량의 골목과 영도의 흰여울, 기장의 해안 길, 가덕도의 작은 포구까지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필자의 사무실 근처인 자갈치시장에는 여행객과 상인이 뒤섞이고, 해 질 무렵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다양한 언어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거리에서 만나는 도시의 풍경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바다는 지금도 새로운 사람들을 부산으로 이끌고 있다.
해 질 무렵 가덕도에서 거가대교와 부산 앞바다를 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 본 바다는 하나의 거대한 항로가 되었다. 노을이 천천히 수평선 위로 번질 무렵 대만의 양밍해운 선박이 지나고, 프랑스 CMA CGM의 컨테이너선이 뒤를 이었다. 일본 ONE의 자주색 선박과 스위스 MSC의 초대형 선박도 같은 시간 같은 바다를 지나고 있었다. 국적도, 선사도 달랐지만 모두 부산 앞바다에서 만났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문득 부산의 미래는 이미 바다 위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그 풍경을 석양이 아름다운 관광지로 기억할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세계 물류가 교차하는 항로로 읽을 것이다. 건축을 하는 내게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하나의 공간에서 관광과 산업, 풍경과 경제, 시민의 일상과 세계의 흐름이 동시에 만나는 장면이었다. 좋은 건축은 건물을 드러내기보다 이런 풍경을 오래 머물게 한다. 자연과 사람이, 그리고 도시와 바다가 서로를 바라보도록 만드는 일이 건축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부산은 다시 바다를 중심에 놓기 시작했다. 새롭게 출범한 시정은 해양 관련 산업과 기관을 유치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북항 재개발과 해양관광을 중심으로 도시의 새로운 가능성도 모색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시장이 시정을 맡으면서 해양은 더 이상 여러 정책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도시의 핵심 의제로 자리 잡았다. 부산이 오랫동안 품어온 해양수도의 구상이 한층 속도를 낼 것이라 기대한다.
해양수도는 해양산업의 규모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세계의 사람들이 찾아와 머무는 공간, 시민이 일상 속에서 바다를 누리는 수변, 오래된 항만의 기억과 새로운 도시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 비로소 설득력을 얻는다. 해양도시는 바다를 가진 도시가 아니라, 바다를 삶 속으로 끌어안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부산은 오래전부터 바다를 통해 세계를 만났다. 그 바다는 오늘도 세계를 향해 열려 있다.
2026-07-09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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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의 크로노토프]당 태종의 거울, 새 부산시정의 사명
7월의 태양이 솟아오르며 새로운 부산시정의 출범을 알렸다. 격렬했던 선거의 소용돌이를 넘어, 시정을 이끌 전재수 시장은 이제 신중히 부산의 미래로 발걸음을 떼야 할 때다. 승리의 환호에서 한 걸음 물러나, 행정의 무게를 차분히 살피는 시간이 필요하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찬양의 목소리다. 시간이 언제나 승자 편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선거의 시간은 짧지만, 시정의 시간은 길다. 그리고 문화의 시간은 그보다 더 오래 남는다.
권력이 교체된 직후의 정치는 종종 자기도취의 거울 앞에 선다. 공약집의 매끄러운 문장, 개발 조감도의 화려한 색채, 대중의 기대와 박수는 도시가 벌써 새로워진 듯한 환상을 낳는다. 그러나 문화는 찬란한 청사진 위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대형 축제와 국제행사, 외부 브랜드 유치와 거대한 시설이 도시의 얼굴을 잠시 빛나게 할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 지역 예술인의 창작 환경이 개선되고 시민의 문화적 소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진짜 문화도시는 건물의 높이나 행사의 규모로 증명되지 않는다. 누군가의 삶을 기억하고, 배제되어 온 목소리를 제도 안으로 불러들이는 데서 시작된다.
조선 후기 문신 허목은 일찍이 〈악설〉에서 예술을 정치의 장식이 아니라, 잘 다스려진 세상의 질서를 비추는 거울로 보았다. 그에게 음악은 사회의 상태를 드러내는 가장 예민한 징후였다. 허목은 통치자가 오만에 빠져 민생을 돌보지 않으면 음악은 원망과 혼탁으로 기울고, 공동체의 질서 또한 무너진다고 경계했다. 이는 오늘의 문화정책에도 유효하다. 문화예술은 권력의 성과를 포장하는 장식품이 아니라, 도시가 어떤 삶을 존중하는지를 증명하는 윤리적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문화예술을 행사의 배경음악이나 정치적 치장의 수단으로만 소비한다면, 이전과 별 다를 바 없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정관의 치’라는 태평성대를 이룬 당 태종은 나라를 다스리며 세 가지 거울을 곁에 두었다. 첫 번째는 자기 매무새를 바로잡는 ‘구리거울’이다. 새 부산시정 역시 문화예술 정책의 겉모양보다 그 안의 질서부터 살펴야 한다. 눈에 띄는 전시성 사업을 서둘러 내세우기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화예술 생태계를 지탱하는 기초 행정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창작 지원의 기준, 예술인의 안전망, 공공 공연장의 운영 원칙, 문화기관의 전문성과 독립성, 시민의 생활문화 접근권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문화도시가 공허한 수사로 전락하지 않게 된다. 문화도시는 거창한 선언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절차의 공정성과 지속 가능한 구조 속에서 그 품격을 드러내는 것이다.
부산이 지나온 과오와 도시정책의 한계를 냉정히 분별하는 ‘역사의 거울’ 또한 필요하다. 건물 중심의 문화 인프라 구축, 눈앞의 성과에 집착하는 축제 행정, 중앙과 외부 브랜드의 이름값에 기대는 문화적 의존은 반복하지 말아야 할 과거의 그림자다. 인구 절벽과 지역 소멸, 청년 예술인의 이탈과 문화 소비의 양극화가 중첩된 지금, 부산의 문화정책은 더 이상 보여주기식 정책에 머물 수 없다.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는 것은 전임 시정을 비난하는 정쟁이 아니라, 도시가 축적하지 못한 시간을 정직하게 대면하는 성찰이다. 역사의 거울을 잃어버린 정치는 실패를 답습하고, 그 대가는 결국 도시의 ‘문화적 공동화’로 돌아올 뿐이다.
새 시정의 성패는 ‘사람의 거울’에도 달려있다. 당 태종은 고구려 원정에서 참패하자 “위징이 살아 있었다면 이번 출정을 막았을 것”이라 탄식했다. 위징은 군주의 실책을 서슴없이 간언하던 강직한 신하였다. 권력 곁에는 오랜 기간 주변을 맴돌았던 익숙한 인맥이 아니라, 현장의 언어를 알고 불편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진짜 전문가와 시민들이 있어야 한다. 시장은 이들의 비판적 조언을 형식적으로 듣는 데 그치지 말고, 정책 결정 구조 안에서 실제로 작동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권력의 품격은 박수보다 반론을 견디는 힘에서 드러난다. 진짜 쇄신은 단순히 사람을 바꾸는 데서 끝나지 않고, 건강한 목소리가 제도화되는 열린 구조를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역사적으로 부산은 중앙의 문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한 변방이 아니었다. 복천동의 독자적인 철기 문화가 그랬다. 피란수도 시절에는 전국의 예인들이 모여 한국 현대문화의 원형질을 발아시킨 도시였다. 바다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먼저 받아들이고, 부산의 방식으로 재창조했던 문화의 발원지이기도 했다. 새로 돛을 올린 전재수 시정은 바른 행정, 역사, 사람이라는 세 개의 거울 앞에 엄숙히 서야 한다. 새 부산시정이 감당해야 할 시대적 사명은 남의 이름을 빌린 위성도시가 아니라, 문화분권을 실현하고 스스로 문화를 생산하며 세계로 나아가는 도시를 여는 것이다. 진정한 해양 문화 수도의 원년을 열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26-07-02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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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부산항 북항을 바라보며
어김없이 ‘6·25’가 찾아왔다. 굳이 부연하지 않더라도 이날의 의미와 메시지는 우리 모두에게 비슷한 내용으로 다가온다.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와 이를 끝내기 위해 필요한 조건과 상황에는 역사를 훑어보면 수없이 다양하고 복잡한 함수가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도 국민의 의지나 소망과는 관계 없이 때로는 돌발적으로, 때로는 상상하지도 못할 여러 변수로써 진행되었다. 다행히 이곳 부산은 비극적인 전쟁터로 휩쓸려 들어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전세가 불리해지고 피란민들이 부산항을 통해 마구 유입되어 폭발적으로 늘어난 사람들이 저마다 살기 위해 항구 주변과 산등성이에 거처를 마련하였다.
중앙동을 비롯하여 영주동 및 영도와 국제시장 주변에 산재해 있었던 수많은 피란민들에게 부산은 삶의 마지막 희망을 제공해 준 공간이자 장소였다. 이들의 급박했던 생활 현장은 지금도 여기저기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다. 40계단이나 영도다리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부산항 북항이 있다. 북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으로 개항한 항구다. 부산항의 이미지는 전후 복구기를 거쳐 1960~1980년대 한창 진행된 근대화와 산업화의 열기에 발맞춘 무역과 수출 현장으로 떠올리기 십상이다. 여기에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곳을 소재로 창작된 수많은 대중가요가 지금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으며 아직도 많은 이들이 즐겨 부르곤 한다.
지금의 부산항 북항은 이전의 과포화 상태의 부두 기능을 신항으로 확장·이전하고 친수공간으로 탈바꿈 중이다. 숨 막힐 듯 밀집해 있었던 컨테이너 더미와 선박, 그리고 부산진 CY(컨테이너 야적장)와 부산역 일원의 철도시설 등이 새로운 북항 통합 개발사업 부지에 포함하게 되어 머지않은 미래 시민들의 여가 활동과 편의 및 각종 레저시설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업 진행 과정에서 여러 잡음과 사업 진척을 둘러싼 얄궂은 소문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2022년 연말, 개항 이후 146년 동안 막혀 있었던 부두 일대를 말끔히 단장한 풍경으로 개방된 뒤 매립지를 가로지르는 도로와 충장로의 지하차도도 완공되어 이제는 어엿한 원도심의 ‘신세계’의 꼴을 갖추고 있다.
부산역 2층 대합실에서 북항 쪽으로 빠져나오는 공간인 ‘부산역 하늘공원광장’에서 바다를 보면 예전의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최근 깨달았다. 물론 코앞에서 복합환승센터 공사가 진행되고 있기에 어딘가 어수선해 보이고, 재개발로 매립된 면적이 넓기 때문에 그만큼 바다를 ‘잘라 먹어서’ 이전과 다른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수많은 국내·외 여행객들이 부산역을 빠져나와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느라 붐비는 틈에도 어떤 여행객들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북항 일대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모습도 보인다. 이들에게 부산은 바다나 항구, 혹은 갈매기로 상징되는 시원한 이미지로 다가올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부산이 우리 근·현대사에서 행했던 역동적인 기능과 역할을 떠올리면서 지금의 북항을 바라보면 어딘가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기분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먹고살기 바쁜 때의 바다는 기회와 새로운 앞날을 예고하고 준비하는 발판이지만, 지금처럼 국가 경제의 규모가 커지고 생활 수준의 질이 놀라보게 달라지면서부터 바다는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더욱 위축된 이곳 부산의 실상을 반영하는 것처럼 우중충해 보인다. 해양수산부가 시민의 염원으로 부산으로 이전되었으며, 북극항로 시대를 여는 주요 거점으로서 부산항의 의미와 가치가 높아졌는데도 나는 북항을 바라보면서 엉뚱한 생각이 든다.
결국 사람과 도시와 경제만을 ‘위한’ 바다라고만 생각할 땐 ‘바다’는 언제든 쥐어 짜낼 수밖에 없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곁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공간으로서 인식하는 바다는 효용과 가치만을 만들어 내는 대상이 아니라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먼 시간과 공간을 여행하는 든든한 길잡이일 수밖에 없다. 한국전쟁이라는 난리 통에서 부산항은 지칠 줄 모르고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거나 이 땅 위에서 자행되는 온갖 살육과 폭력의 상처를 꿰매고 아물게 했던 품이었다. 그런 부산항이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친수공간으로 바뀌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쾌적하고 포근한 공간이 되기를 바라고 또한 그리되겠지만, 한편으로 야성적이면서도 본래적인 바다의 ‘숭고함’이 사람들에게 미지와 신비를 간직한 풍경으로 다가오지 않는 점에 대한 아쉬움이 비단 나만의 낭만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개발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고 싶다는 게 아니라 항구도시로서 부산의 역동성과 가능성까지 어우러진 부산항의 천진한 상태를 한번 생각해 본 것이다. 여기에 지금의 ‘살맛’과 미래의 ‘설렘’이 놓여 있다고 생각하기에 그렇다.
2026-06-25 [1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