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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의 크로노토프] 부산콘서트홀, 새로운 소리의 좌표
6월 20일, 오늘은 부산의 오랜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되는 날이다. 시민의 염원이 깃든, 부산 최초의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이 그 문을 활짝 연다. 포도밭 형태의 2000석 규모 콘서트홀과 400석의 챔버홀이 함께 들어섰다. 정교한 음향 설계와 자동화 무대 시스템을 갖춘 클래식 음악에 최적화된 독립 공간이다. 콘서트홀 정중앙에는 4423개의 파이프와 64개의 스톱을 갖춘 대형 파이프 오르간이 자리했다. 비수도권 최초로 설치된 이 오르간은 ‘공연장의 심장’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아름다운 건축물의 탄생을 넘어, 부산이라는 도시의 문화적 자존감과 예술계의 미래를 밝히는 등대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 박래품인 피아노가 처음 들어온 도시 부산은 140년 만에 비로소 클래식 전용 극장을 갖게 되었다. 부산콘서트홀이 들어선 부산시민공원 일대는, 조선 시대에 연못과 저수지가 있던 풍요로운 땅이었다. 〈동래부지〉(1740년)에는 지금의 연지초등학교 뒤편에 ‘신지언(新池堰)’이라는 제방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당시 동래부에서 두 번째로 큰 저수지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터는 대한민국 근대사의 어두운 그림자도 품고 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일제의 경제 침투가 본격화되면서 부산은 토지 수탈과 군사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일대는 경마장과 군사시설로 바뀌었다. 광복 후에는 주한미군기지 캠프 하야리아로 전용되며 시민의 발걸음은 오랜 시간 차단되었다. 2014년, 부산시는 이 땅을 ‘시민공원’으로 조성해 과거를 치유하고자 했다. 그러나 미군이 남긴 폐기물과 오염 문제는 많은 논란을 낳아 ‘시민에게 온전히 돌아온 땅’이라고 단언하기에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시민 염원 깃든 첫 클래식 전용 공간
지역 예술 지속 가능 성장 이정표로
운영 전략·제도 구축 공공성 높여야
이 역사적인 땅 위에 음악이 울리는 새로운 랜드마크가 세워졌다. 개관 공연 시리즈는 스타 연주자 중심의 화려한 라인업으로 꾸려졌고, 정명훈 예술감독이 이끄는 아시아필하모닉오케스트라(APO)가 그 중심에 섰다. 환갑을 훌쩍 넘긴 부산시립교향악단은 개관 한 달여 전 단 한차례 시범 공연에 참여했을 뿐, 정작 공식 개관 무대의 주역이 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이후 이어지는 공연 시리즈 또한 스타 연주자와 대형 기획사 중심으로 대부분 편성되었다. 상징적인 인물의 등장은 부산콘서트홀의 국제적 위상 제고에 분명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 화려한 울림은 개관의 흥분을 넘어, 이 공간의 구조와 운영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예술감독이 지닌 상징성은 강력한 에너지로 큰 기대를 모은다. 다만, 이 공간이 세계적인 스타 연주자나 유명 오케스트라만을 위한 전용 무대로 고정된다면, 결국 시민의 세금으로 지어진 공연장이 지역 예술가들에게는 점점 낯선 장소가 될지도 모른다. ‘예술은 특권이 아니라 권리’라는 명제 앞에서, 이 공간의 ‘공공성’과 ‘누구를 위한 무대인가’라는 질문은 결코 피할 수 없다. 공공성이 약해진 공간은 특정 권력이 좌우하는 전시형 무대로 전락할 위험이 있고, 동시에 특정 인물과 대형 기획사에 의해 독점되는 또 하나의 임대형 플랫폼으로 굳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러한 구조는 레퍼토리 구성과 운영 철학 전반에도 영향을 미쳐, 결국 지역 예술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다. 세계적 스타를 불러 모으는 일회성 흥행에는 유리할지 모르지만, 지역 기반 예술이 뿌리내리는 장기적인 역할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시작이다. 부산콘서트홀은 여전히 ‘비어 있는 가마솥’이다. 새로운 예술의 시간에 이제 막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단순한 대관 시스템을 넘어, 공공성과 지역 예술생태계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정표로 삼을 운영 전략과 제도 설계가 절실하다. 새로 취임한 대통령도 지역 우선 정책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기획 단계부터 지역 기반 예술가의 창작을 중심에 두고, 예술과 행정이 함께 참여하는 협력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일회성 기념 공연의 찬란함보다, 지역 예술계의 예술적 내공이 깊이 뿌리내릴 때 그 반향은 훨씬 더 오래, 더욱 깊게 울려 퍼질 것이다. 니체는 “위대한 것은 언제나 천천히 자란다”라고 했다. 진정한 개관은 건물이나 시설이 아니라, 예술적 관계와 신뢰가 쌓이는 순간에 비로소 완성된다. 그 울림의 주체 또한 지역 예술 생태계 안에서 천천히, 그리고 단단하게 성장해야 한다.
부산 최초의 클래식 전용 공연장, 부산콘서트홀의 개관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곳이 예술을 사랑하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예술가와 시민이 함께 숨 쉬며, 권위가 아닌 수평적 관계로, 경쟁보다 공존으로 채워지길 바란다. 더불어 부산만의 리듬과 감각이 깃든 무대가 시민의 예술적 삶이 중심이 되는 ‘공연예술의 진짜 좌표’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 이제 이곳에서 써 내려갈 새로운 부산 예술의 기억을 마음 깊이 응원한다.
2025-06-1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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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파의 생각+] 열람실 없는 도서관
최근 도서관이 바뀌고 있다. 과거 책을 빌리고 공부만 하던 공간에서 복합 문화 공간으로 새로 태어나고 있다. 새로 개관하거나 리모델링하는 도서관들은 칸막이가 없는 자료실, 계단형 열람석, 휴게 공간을 넓게 배치해 개방적인 공간에서 독서와 휴식,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문화 강좌 및 동아리 활동을 위한 다목적실을 마련해 시민들의 문화 활동을 지원하기도 하며 도서관에 따라서는 영화 감상실과 같은 특화된 문화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처럼 도서관이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바뀌면 다양한 사람들이 더 많이 도서관을 찾게 되고 다채로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게 돼 시민의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장점이 있다. 나아가 특색 있는 도서관을 지으면 다른 지역 사람들까지 불러 모아 지역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일례로 2023년 개관한 강원도 인제 기적의 도서관은 복합 문화 공간의 명소로 이름을 알리면서 인제군 인구의 6배가 넘는 18만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실제로 요즘 도서관에 가 보면 멋진 인테리어와 밝은 분위기가 마치 카페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 연인과 친구들이 계단형 열람석에 모여 앉아 오손도손 담소를 나누며 책을 읽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행복한 미소가 지어진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르게 차분히 앉아 책을 읽자니 적잖이 불편하다. 계단형 열람석은 의자와 달리 허리 받침이 없고 바닥이 딱딱해 긴 시간 앉아서 독서하기가 어렵다. 또 여러 자료를 펼쳐 살펴보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구조다. 개방형 로비 소파에 앉아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인테리어 효과에 초점을 맞춰서인지 소파의 높이와 등받이 간격, 탁자와의 높이 등이 독서 및 공부에 적합하지 않다.
아무래도 익숙한 열람실에서 책을 읽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열람실을 찾아보지만, 열람실은 다목적실과 전시실, 영화 감상실과 같은 문화 공간으로 대체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문득 트렌드를 좇느라 도서관의 본질을 등한시한다는 우려가 든다.
도서관법 3조 1항에 따르면 ‘도서관이란 국민에게 필요한 도서관 자료를 수집·정리·보존·제공함으로써 정보이용·교양습득·학습활동·조사연구·평생학습·독서문화진흥 등에 기여하는 시설’로 정의된다. 그런데 독서와 학습을 위한 장소인 열람실을 아예 없애는 것은 도서관 본연의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으로 읽힌다.
공공도서관에서 열람실이 사라지며 도서관에서 학습하고자 하는 많은 사람이 사설 독서실이나 스터디 카페 등으로 쫓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독서실이나 스터디 카페 한 달 이용 비용이 적게는 10만 원에서, 많게는 20만 원까지 들어 저소득층 청소년이나 청년 취업 준비생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교육부와 몇몇 지자체는 비어 있는 공공시설에 공공 스터디 카페를 만들거나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스터디 카페 이용 비용 일부를 지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열람실이 원래 있어야 할 도서관에서는 열람실을 없애고, 설립 목적이 다른 엉뚱한 공공시설에 열람실을 새롭게 만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문화 공간으로서의 도서관과 학습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도서관 문화 공간의 이용 실태를 자세히 파악해 이용이 저조하거나 비효율적인 공간을 열람실로 조성한다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것으로 생각된다.
가령 2021년 재개관한 부산 북구 만덕 도서관은 기존 열람실을 없애고 그 자리에 작은 영화관을 만들었다. 그러나 만덕 도서관 홈페이지 작은 영화관 예약 현황에 따르면 2025년 1월에서 5월까지의 이용객은 월평균 45.8명으로 하루 2명도 이용하고 있지 않다. 또 지난 8일 국회부산도서관 전시실의 경우 필자가 2시간 동안 이용객을 관찰한 결과, 화장실을 잘못 찾아 들어온 어린이 한 명과 전화를 하러 들어온 아저씨 한 명 외 관람객은 아무도 없었다. 이처럼 이용이 저조한 공간은 열람실로 조성하고 문화 프로그램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공간은 현재처럼 문화 공간으로 잘 활용한다면 모두가 만족하는 도서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국회부산도서관 벽에는 ‘인류의 삶을 바꾸는 사람은 도서관에서 나온다’는 문구가 있다. 비록 인류의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서관 열람실에서 자신의 꿈과 목표를 위해 인내하고 노력하여 마침내 그들의 인생을 스스로 바꾼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요즘 유행과 추세에 맞지 않는다며 무조건 열람실을 없애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열람실을 적극적으로 지켜내야 할 의무가 강조된다.
2025-06-1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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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버려야 할 때 버리지 않으면 찾아오는 것
올해부터 마음먹은 게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책에 관한 것이다. 진작에 사서 읽지 않고 쌓아둔 책을 한 권씩 꺼내어 완독하고자 결심했다. 그래서 책장에 꽂혀 있거나 쌓여 있는 책의 목록을 훑어볼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러한 결심은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책은 드물었고, 기껏해야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거나 앞부분만 읽다가 그만둔 책들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짬이 날 때마다 앞으로 읽거나 들춰볼 일이 없을 것 같은 책부터 정리를 하자, 마음먹지만 매번 생각에만 그친다. 사방을 가득 채운 서재를 꿈꾸었던 젊은 날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그런 로망이 부질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책이란 것도 알고 보면 공간만 차지하는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물건과 다른 점이 있다면 두고두고 소비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사실뿐이다. ‘기억저장소’라 할만치 내가 기억하고 떠올린 사실을 대차 대조할 수 있는 요긴한 물건임과 동시에, 평생 마음에 담아두고 살아야 할 정보와 지혜의 화수분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는 책이 사람에게 안기는 선(善) 기능이다. ‘4차산업혁명 시대’라는 요즘 종이책보다는 전자문서나 스마트폰을 비롯한 인터넷 활용도가 높아서 독서 같은 아날로그 형의 지식 공유가 시들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책의 유용성과 상징성은 무시할 수 없다. 젊은 날 지적 호기심에 여기저기 사다 모았던 책들이 몇 번의 이사로 그 부피가 줄어들다가도 어느새 차곡히 공간을 메운다. 책장에 꽂힌 책을 하릴없이 뽑아 든 채 낱장을 스르륵 넘기면 오래 묵은 종이 냄새가 밀봉된 병뚜껑을 따면 흘러나오는 향처럼 코끝을 간지럽힌다.
하지만 언젠가는 작정하고 버려야 할 책이다. 언제까지 데리고 다닐 수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애지중지하는 물건이지만 버려야 할 때 버리지 않으면 결국 화살이 되어 나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이치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간 쌓아둔 책을 정리하면서 버리는 일은 단순한 물건 정리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좀 더 나은 자신을 가꾸기 위한 단장(丹粧)이자 준비 작업이기도 한 것이다.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기존의 지식과 이론 및 정보가 일종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되어 녹슬고 이끼가 낄 때 사람은 낡아 간다.
낡은 세계는 늙은 세계이고, 이 늙은 세계는 우리를 우매하고 병들고 시들게 한다. 이 세계에 오랫동안 빠져 있는 사람은 기존의 인식에 갇혀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흔히 보수(保守)를 진보와 대립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따지고 보면 보수의 가치를 지키는 자만이 진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현실에서 한 발짝 나아가려는 진보의 의식은 지금까지 쌓인 전통의 순기능이 지니는 가치를 진지하게 되씹는 자리에서 생겨난다.
‘보수주의의 아버지’란 칭호를 받는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1729~1797)는 계몽주의 시대 여느 철학자들이 주창한 개인의 이성과 자유의 중요성보다는 공동체의 전통과 역사의 가치를 중요하게 바라보면서 기존의 질서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그는 귀족계급의 환심을 샀는데, 상류층은 자신이 지닌 기득권을 빼앗기는 사상의 물결을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보수’는 300년 전의 영국 사회에 들이닥쳤던 거대한 사회변동과 무관하게 기득권의 이익과 주장에 찬성하는 무리나 목소리로 전락했다. 그 기득권의 이익이나 주장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가치를 둘러싼 의미보다는 몰상식과 몰이해에 바탕을 둔 엉뚱한 궤변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논리가 허술할뿐더러 자기주장을 자신의 논리로 깨뜨리거나 뒤집는 역설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도 이런 맥락에서라면 비껴가지 못한다. 새로운 사회현상이나 구조를 앞당기자고 외치면서도 정작 구태에 젖어 있는 인식과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수든 진보든 스스로 자신의 이념이나 사상을 굳이 옭매거나 규정지어 세계를 바라볼 필요가 없다. 자신에게 좋은 것이 모든 공동체의 일원에게도 좋으면 추구해야 한다. 여기에 보수나 진보가 끼어들 틈이 없다. 책을 버리지 못하고 주저하는 마음은 책을 더 쌓아두기 위해 벽면 하나를 허무는 일만큼이나 어처구니가 없을 수가 있다. 역사적으로 증명이 된 안 좋은 습성이나 인식을 버리지 못해 찾아오는 것은 비단 자멸뿐만은 아니다. 자멸한 자리에 세워야 하는 땀과 노력이 뒤따르게 되는 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2025-06-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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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호의 오픈 스페이스] Come Together!
대선후보들이 제시한 10대 정책 공약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후보자의 국가관, 사람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축이다. 경제, 민생, 사회복지, 외교, 국방, 안보, 지역 균형발전 등 주요 정책이 망라된다. 그런데 이번 대선에서는 문화정책 이슈를 찾아볼 수가 없다. 지자체 선거 때에도 문화정책은 ‘단골 메뉴’인데 하물며 나라의 대통령을 뽑는데 어느 정당 하나 제대로 된 공약을 제시한 바가 없다. 내란의 내상이 심해서인가! 그렇다면 문화정책을 더욱 강화해 혼돈의 사회에서 국민의 치유와 회복에 더욱 절실히 나서야 하는 시기인데 말이다.
1948년 유엔 총회에서 제정한 세계인권선언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기본적 인권, 경제, 사회적 권리 외에 제27조항에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2001년 유네스코는 문화다양성을 ‘사회 혹은 사회적 집단의 지적, 감성적, 윤리적, 정신적 생활의 총체’로 정의했다. 문화다양성이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 독창성을 유지함으로써 현재와 미래를 견인하는 중요한 전제임을 확인하고, 시민 사회와 민주주의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문화다원주의 정책을 강조한다. 올해는 문화다양성 유네스코 선언 20주년을 맞이한다. 문화체육관광부도 매년 5월 21일(세계 문화다양성의 날)부터 1주일간 문화 다양성 주간을 설정해 대국민 캠페인을 11년째 진행하고 있다. 2025년에는 부산, 전북, 전남문화재단이 지역 중심으로 협력해 진행한다. 타 시도와 비교한다면 부산문화재단은 평소 문화다양성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다문화를 넘어 예술 치유와 포용적 실천, 그리고 장애·비장애 구분 없는 예술적 시도는 앞서가고 있다. 다만, 일련의 활동들이 시민 사회 속으로 스며들며 온도를 같이하는지는 의문이다. 현장의 힘을 믿고 민간 영역과 협력해야 하는데, 기관과 관계자 중심의 행사에 치중해 시민들의 인식과 참여가 부족한 실정이다.
주지하다시피 오늘날의 문화는 단순히 국가가 주도하는 하달식의 지원 정책을 넘어서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도하는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전문 예술가의 계승 발전에 머물 것이 아니라 시민 사회가 주도하는 자율성, 문화 다양성, 포용성 그리고 차별 없는 시선과 관점으로 재정립되고, 단순 복지의 개념에서 더 확장되어야 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화정책의 방향과 시대적 요구는 창의적 창제작의 환경을 넘어 예술가·비예술가 구분 없는 예술로 치유하고 예술로 소통하는 정책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아동, 초고령, 장애, 복지, 의료, 돌봄 등은 앞으로의 사회가 동행해야 할 분야다. 그 가운데 돌봄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부산은 ‘노인과 바다’라는 수식어가 붙는 초고령사회의 대표적 도시이다. 사실 아이들부터 고령인구까지 많은 사람은 이미 예술로 ‘돌봄’을 하고 있다. 이를 좀 더 체계화해 어떻게 ‘돌봄의 문화’를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고립’과 ‘고독’이라는 현실 앞에 문화적 안전망을 만들 수 있다. 언제까지 복지에만 맡길 것인가. 예술에 대한 존중과 예술가와의 동반 성장 또한 놓쳐서는 안 된다. 그간 예술인을 대상으로 수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예술가의 여건은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힘들고 공공 의존도만 높을 뿐이다. 이를 어떻게 풀지가 숙제다.
‘다시 현장에 다가가는 정책’을 통해 기후 위기, 불평등, 인구 및 지역 소멸, AI 발전, 젠더·세대 갈등과 혐오, 미디어 환경 변화 등 급변하고 앞으로 마주하게 될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후 위기는 극한 강도로 찾아오고, 한반도를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땅으로 만들고 있다.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21곳이 소멸 위험 지역이다. 대한민국 공동체가 지구상에서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지방 도시의 소멸은 대한민국 소멸의 바로미터다.
며칠 뒤면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한다.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급하게 대선을 준비하느라 공약은 그랬다고 칩시다. 함께 나은 세상으로 갈 때는 단디 챙겨 보입시다.” 문화! 대단하게 우아하거나 세계적일 필요는 없다. 두 정부가 후퇴시킨 문화정책을 반드시 다시 돌려놓는 게 먼저다. 적재적소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그 무엇보다 옳다. 그것이 시작이다.
비틀스 노래 ‘Come Together’가 떠오른다. ‘그가 말했어./난 너를 알고, 넌 나를 알지. /내가 네게 말해줄 수 있는 건 네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거야./함께 모여! 지금 당장, 나를 넘어서…’ 이 노래는 196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캠페인 노래로 만들어졌다가, 비틀스의 히트곡이 되었다. 비틀스가 해체되기 직전에 만들어진 곡으로 그들의 음악적 진화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분열된 사회에 대한 통합’의 메시지와 멤버 간의 갈등이 교차 되는 아이러니한 곡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에 꼭 어울린다.
2025-05-2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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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학수의 문화풍경] 행복의 철학, 목표 추구의 여정
우리는 흔히 “행복은 ○○를 소유하는 것” “행복은 △△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치 행복이 욕망이나 소망의 달성 여부에 달려있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물론 원하는 것을 얻는 기쁨이 순간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과연 행복의 본질이 그 찰나의 만족감에만 머무는 것일까? 많은 이들이 행복을 소망이 충족되는 상태라고 믿지만, 김영랑의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이러한 통념과는 다른 깊은 통찰을 우리에게 전한다.
시에는 활짝 핀 모란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는 없다. 시인은 모란이 피는 짧은 시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순간을 간절히 기다리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희망과 설렘, 그리고 기다림 자체의 가치를 노래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라는 구절은, 아직 모란이 피지 않은 현재를 단순한 ‘기다림’의 시간이 아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아직’의 시간으로 인식하게 한다. 드디어 5월 초 모란은 활짝 핀다. 그러나 ‘드디어’의 시간은 얼마 가지 못한다.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모란은 이내 떨어져 시들어 버리고, 만개의 환희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라는 허무함으로 변모한다.
시인은 ‘모란이 뚝뚝 떠러져 버린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흰 서름에 잠길테요’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허무함은 모란이 피는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욕망이 충족된 순간의 기쁨은 찰나에 불과하며, 감각 적응 현상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강도가 점점 더 약해지기 때문이다. 감각 적응은 냄새나는 방에 들어가도 좀 시간이 지나면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감각이 지속적인 자극에 둔감해지는 현상을 말한다. 모란은 피는 순간 이미 지고 있는 것이다. “찬란한 슬픔”이라는 모순적 시어는 목표 달성에 수반하는 양면성, 즉 즐거움과 동시에 허무함이라는 이중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김영랑의 시에서 모란이 피어나기까지의 기다림은 평온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다. 그것은 혹독한 겨울의 추위와 눈바람을 맞으며 인내하는 고통의 시간 같은 것이다. 우리는 흔히 행복을 고통 없는 안락한 상태라고 상상한다. 마치 따뜻한 햇볕 아래 모든 어려움이 사라진 듯 편안한 곳에 머무르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곳으로 나아가는 여정에는 필연적으로 난관이 수반된다. 많은 이들이 고통을 회피하며 안락한 영역에 머무르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자세로는 진정한 행복에 결코 다다를 수 없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행복의 패러독스이다. 어떤 사람들은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행복 자체를 포기하고 컴포트 존에 머무르고자 한다. 컴포트 존이란 친숙하고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심리적 상태이다. 우리는 늘 다니는 길로만 다니며, 이전에 했던 일만 하고, 친구들하고만 만나는 등 컴포트 존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 위험과 불안, 그리고 도전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많은 이들은 컴포트 존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마음을 비운다면서 목표를 낮추거나 목표를 세우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컴포트 존 안에서 체류하고자 하는 자세이다. 그러나 이런 마음가짐으로는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진정한 행복은 마치 험준한 산을 오르는 등반과 같다. 숨이 차고 다리가 아픈 고통의 순간들 덕택에, 사방으로 툭 트인 정상의 전망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행복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하나는 ‘소유 지향적인 삶’이고, 다른 하나는 ‘존재 지향적인 삶’이다. 소유 지향적인 삶에서는 물질적 풍요와 성공을 통해 행복을 얻으려 한다. 더 좋은 집, 더 비싼 차, 더 높은 지위를 갈망하며 끊임없이 소유를 늘리는 삶에서 행복은 불안정하고 일시적이다. 반면, 존재 지향적인 삶에서는 자기 자신의 성장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 자신을 창조하고 타인과의 발전적 교류 속에서 환희를 경험하는 사람은 잘 나가는 타인을 질투하지 않는다. 우리가 소유 모드의 삶으로부터 존재 모드의 삶으로 전환한다면, 대중의 시기를 득표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현대 민주정치의 선거 전략에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안락함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변화와 성장에 집중하며, 목표를 향해 용감하게 나아가야 한다. 김영랑의 시처럼, 모란이 피기까지의 인내와 기다림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행복의 깊이를 깨닫게 될 것이다. 고통을 회피하는 안락함 속에서는 결코 피어날 수 없는, 값진 행복의 꽃을 말이다.
2025-05-2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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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지역균형발전이 곧 국가의 미래다
세종시의 아파트값이 뛰고 거래량이 급증하고 있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실과 국회의 세종시 이전 공약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을 부추긴다고 한다. 선거 때가 되면 정치 공약보다 더 들썩이는 건 정치 테마주와 부동산이다. 가뜩이나 살기가 팍팍한 서민들은 그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수도권을 보며 지방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도 마찬가지다. 행정수도는 세종시로 옮기겠다고 하지만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이야기는 구체적이지 않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2005년부터 추진된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과 혁신도시 사업은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관련 산업과 일자리 증가, 그리고 인구의 지방 분산 효과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정주 여건 향상과 지식기반산업의 고용 효과가 함께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주 여건을 향상시키고 고용효과를 위해서는 핵심 기능이 함께 옮겨 와야 하는데 핵심 기능은 아직 서울에 있다.
부산에는 동삼혁신도시(영도구 동삼동 일원), 문현혁신도시(남구 문현, 대연동 일원), 센텀혁신도시(해운대구 우동 일원) 등 3곳의 혁신도시가 지정됐다. 부산도시공사는 부산에 이전하는 13개 공공기관 직원을 대상으로 지역의 노른자위 땅에 짓는 아파트를 특별공급 분양했다. 이러한 조치는 부산이 전국 혁신도시 중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을 완료한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했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이전된 공공기관의 직원들이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이주하지 않고, 주말마다 수도권으로 돌아가는 현상이 지속되었다. 그 결과, 공기업 직원들을 대상으로 특별분양된 대연동 아파트는 실거주 목적을 상실하고 매매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은 공공기관 이전이 단순한 물리적 이동에 그쳐서는 안 되며, 지역의 교육, 문화, 생활 인프라 등 전반적인 정주 여건 개선이 병행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도시의 기능은 단순한 기관의 집합체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공기관 이전만으로는 지역균형발전을 달성할 수는 없다.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대한민국의 수도권 일극주의에 있다. 수도권은 인구, 자본, 인재, 문화, 정보 등 모든 자원이 집중된 공간이다. 반면 지방은 행정 기능의 일부를 ‘나눠 받는’ 대상으로만 취급되었다는 것이다. 핵심 기능이 빠진 공공기관 이전만으로는 지역이 독립적인 발전 동력을 갖지 못한다.
수도권은 이미 포화 상태다. 서울의 주거 문제, 교통 혼잡, 과도한 교육 경쟁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기회는 여전히 수도권에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또 서울로 모인다. 이는 수도권과 지방 모두에게 불행한 구조다. 수도권 일극주의는 수도권 자체를 병들게 하며, 지방을 공동화시킨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도시는 땅 위에 세워진 건물의 집합체가 아니다. 기억이며, 서사이고, 그 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유기체다. 부산은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 관문이었고, 해방 후에는 가장 먼저 세계와 맞닿았던 곳이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피란수도라는 말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이 도시가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에서 감당해 온 무게를 말해준다. 중심이 아닌 듯 중심에 있었던 부산은 이제 ‘중심’이라는 단어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수도권 일극주의는 단순한 인구 쏠림 현상이 아니라 국가 구조의 기형적 균형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기형적 구조를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해양수산부와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진행되어야 한다. 부산은 해양과 접한 도시라는 지리적 이점을 넘어, 오랜 시간 항만과 해운, 조선, 물류 등 해양산업 전반의 중심이었다. 이 정체성을 바탕으로, 부산은 수도권에 종속되지 않는 고유한 도시 서사를 구축할 수 있는 드문 도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조치가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이다. 그리고 부산문현 국제금융단지가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지 15년이 넘었지만, 금융 기능과 인프라 문제는 여전히 서울에 치우쳐 있다. 이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으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지역균형발전은 단지 행정적인 문제나 선거공약의 항목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핵심 질문이 되어야 한다. 지역을 중앙의 분화로만 보는 시각을 넘어서, 자율성과 독립성을 가진 동등한 발전 주체로 인식하는 국가적 구조 전환이 필요하다. 지역균형발전은 곧 도시의 재구성이며, 도시의 재구성은 우리 삶의 구조를 다시 짜는 일이다. 이제는 지역균형발전과 관련한 정치인들의 달콤한 말에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 이번 조기 대선은 장미대선이라는 말 그대로 믿을 수 있는 실천의 시대를 열기를 바란다.
2025-05-15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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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의 크로노토프] 예술가의 상상력과 첨단 기술
벚꽃 망울이 터지기 시작하던 어느 봄날, 음대 출신이지만 이제는 공대 교수가 다 되어버린 벗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그는 마침 출시도 안 된 앱을 테스트 중이었다. 반가운 얼굴은 잠시였고, 생전 처음 보는 고가의 VR(가상현실) 기기를 바로 착용시켜 주었다. 순간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상은 단순한 기술 체험이 아니라, 공간을 가르며 살아 움직이는 듯한 기적 같았다. 지금껏 경험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음악을 ‘보았다’. 이는 단순히 신기한 경험을 넘어 공연예술의 패러다임이 흔들리는 전환의 순간이었다. 악기 사이를 거닐면서 감각 그 자체로 음악을 느끼는 새로운 형태의 무대였다. VR 현장에서 느낀 진동, 위치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음향의 밀도, 연주자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긴장감은 전통적인 콘서트홀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던 입체적인 몰입을 선사했다.
포스텍 AI·확장현실 콘텐츠 수업 활용
부산 대학 예술과 기술 접목 교육 절실
과감한 실험으로 혁신적 미래 만들어야
클래식 음악은 기술 도입에 있어 가장 보수적인 예술 분야 중 하나다. 시각예술이나 다른 공연예술이 첨단 IT 기술을 통해 새로운 형식을 빠르게 실험하는 동안, 클래식 음악은 오랫동안 기존의 창작·재현 방식을 주로 선호했다. 시각예술에서는 미디어파사드가 이미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클래식 장르도 더 이상 수동적인 음악 감상 형식이라는 전통적인 공연 방식에만 머무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몰입형 체험은 그 가능성을 여실히 증명했다. 관객이 객석에 앉아 공연을 경험하는 수동적인 감상자가 아니라, 공연 내부로 직접 들어가 자신만의 시선과 위치에 따라 감각을 재구성하는 상호작용의 주체가 되게 하였다.
공간 음향 시스템은 연주자의 위치에 따라 음향의 밀도를 조정하여, 실제 공연장에서 연주자 바로 옆에 있는 듯한 감각을 제공한다. 관객은 공연 중에 인터랙티브 컨트롤을 통해 다양한 시점과 지점으로 이동하며, 각 악기의 음향을 360도로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시각적 몰입을 넘어 청각적 요소까지 공연의 일부로 만드는 혁신적 기술이다. 2019년부터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협업한 도이칠란트의 사운드 디자이너 헨리크 오퍼만은 해당 프로젝트에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었다. 기존 VR 공연과는 차별화하여 관객이 능동적으로 공연을 감상할 수 있게 설계했다.
이 콘텐츠는 예술가의 상상력에서 나왔다. 바이올리니스트 팀 서머스가 자신이 연주할 때 느끼는 몰입감을 관객도 연주자처럼 직접 듣고 경험할 수 있게 신박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포스텍은 이러한 몰입형 체험을 교양 음악 수업에 도입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음악대학도 없는 공과대학에서 양은영 교수가 AI와 XR(확장현실) 기술을 활용한 교육콘텐츠를 4년 전부터 직접 제작해 강의에 활용하고 있었다. 메타버시티 교육추진단장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포스텍의 과감하고 전폭적인 지원 덕분이라고 한다.
김석준 교육감은 다수의 언론 인터뷰에서 AI를 활용한 교육을 강조했다. 예술교육에도 AI를 도입한다면 학생 수준에 맞게 상호작용이 가능한 창의적인 음악 감상, 연주, 창작 교육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이 감각을 다듬는 일이라면, 기술은 그 감각을 새로운 방향으로 확장하는 언어가 된다. 부산이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일상과 공교육으로 끌어들여 실현하는 첫걸음을 내딛는다면, 그 가능성을 가장 먼저 창조하는 풍요로운 도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해양수도 부산은 새로운 클래식 전용극장을 갖춰가고 있다. 하지만 첨단 기술을 이해하고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융합형 전문가 양성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이제는 교육과 예술 그리고 기술을 연결하는 중간 지대가 절실하다. 지금이라도 지역 예술대학이 학과 간 협력으로 아트 & 테크놀로지 과정을 운영한다면, 대학 교육도 창의적 감각 중심으로 재편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관련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다. 예술 관련 학과 교육이 AI 기반 교육 시스템과 연계되어야 한다. 실감형 콘텐츠의 제작과 실습을 위한 제도적 지원이 여느 때보다 절실하다.
창의적인 생각이 예술을 만든다. 창의적인 기술도 예술이 걸어갈 다음 차원을 뒷받침하는 문을 열어준다. 기술은 이제 단순한 도구를 넘어 감각의 경계를 확장하고 인식을 바꾸는 새로운 언어다. 그 언어를 가장 먼저 익히고 구현하는 예술 도시야말로 내일의 문화 중심지가 될 것이다. 미래는 ‘모방의 시대’를 벗어나 먼저 경험하고 과감히 실험하는 도시만이 창조적인 흐름에서 앞장설 수 있다. 아울러 지속적이고 혁신적인 지원은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새로운 감각의 장이 될 것이다. ‘21세기 크로노토프’는 이미 시작되었다. 이제 그 문을 누군가 먼저 열고 당당히 나가는 일만 남았다.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2025-05-08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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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파의 생각+] 토픽(TOPIK)을 네이버에 팔면 안 되는 이유
외국인의 중국어 능력을 평가하는 중국의 HSK, 일본어 능력을 평가하는 일본의 JLPT처럼, 우리나라에도 외국인의 한국어 능력을 평가하는 한국어능력시험이 있다. 바로 ‘토픽’(TOPIK, Test of Proficiency in Korean)이다. 토픽은 교육부 산하 국립국제교육원이 시행하고 있는 국가 주도 어학 시험으로서 외국인 유학생의 입학과 졸업, 외국인 노동자 및 이민자의 비자 발급과 취업 등에서 중요하게 활용된다. 그 때문에 많은 외국인이 토픽을 보는데 2024년 한 해에만 49만 명 이상이 응시할 만큼 규모가 크고 공신력을 담보한 한국어능력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국어능력시험 토픽이 네이버에 팔린다고 한다. 그 내용인즉슨 공공분야 소프트웨어(SW) 사업을 민간에 개방하는 민간투자형 SW 사업이 있는데, 네이버 컨소시엄(네이버·엔에스데블·대교)의 ‘한국어능력시험 디지털 전환 사업’이 수익형 사업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이다. 계획에 따르면 네이버 컨소시엄이 3500억 상당을 투자하고 토픽 문항 출제에서 채점, 시험 시행에 대한 모든 권한과 토픽 운영에 따른 수익을 가져간다고 한다. 말 그대로 돈으로 토픽을 산 것이다.
정부는 AI를 활용한 토픽 디지털 평가 체계를 구축하면 출제와 채점 등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급증하는 시험 응시 수요에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민관협력을 통해 한국어 산업이 활성화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대효과는 득보다 실이 많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금까지 어렵게 조성해 온 한국어 교육 생태계를 단번에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AI 활용 자동 문항 생성과 자동 채점, IBT(인터넷 시험) 전면 도입을 통한 응시 기회 확대를 살펴보자. 물론 AI로 시험 문제를 만들고 학습자의 작문, 말하기를 채점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이 시험을 시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AI가 출제한 문항이 타당도를 확보할 수 있을지, AI 채점 결과가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까지 한국어 교육 학계에서 논문과 같은 객관적 방법으로 네이버 컨소시엄에서 도입하고자 하는 AI 활용 토픽 문항 생성과 자동 채점의 타당도, 신뢰도에 대한 검증이 단 한 차례도 이루어진 바 없어 이러한 우려가 더욱 커진다.
현재 토픽 문항 출제와 채점은 한국어 교육 전문가 집단의 교차 검증을 통해 문항 타당도와 채점 신뢰도를 확보하고 있다. 따라서 문항 출제와 채점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지만 그만큼 국제적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다. 경제적 논리만을 앞세워 검증되지 않은 디지털 평가 체계를 도입한다면 지금까지 어렵게 쌓아 온 국가시험으로서의 공신력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토픽이 민영화되면 응시료 수익 확대를 위해 PBT(종이 시험)를 폐지하고 PBT보다 두 배 비싼 IBT 방식으로만 토픽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학습자들은 익숙하지 않은 한글 자판으로 쓰기 시험 등을 봐야 하고, 이는 토픽 시험에 대한 접근성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또 인터넷 및 컴퓨터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에서는 시험 자체가 실시될 수 없고, 응시료가 비싸져 저소득 국가의 학습자들은 상대적으로 응시 기회를 박탈당할 수 있다. 결국 이는 국가 차원의 한국어능력시험이 가지는 ‘공공성’을 훼손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어 산업 활성화 문제를 살펴보자. 국립국제교육원의 민간투자형 SW 사업 제안요청서를 검토해 보면 민간기업은 토픽 운영 수익 외 부대사업을 통해 수익을 높일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즉, 토픽 시험 문제를 출제하고 채점하는 기업에서 토픽 관련 학습 사업을 운영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과연 이것이 공정한 것일까.
네이버 컨소시엄은 수천만 학습자의 개인정보 및 시험 관련 정보를 독점하고 자신들이 만든 알고리즘을 통해 문제를 출제하고 채점한다. 그리고 이 정보를 활용해 토픽 시험 점수를 쉽고 빠르게 올릴 수 있는 학습 시스템을 구축한 후 학습자를 모집해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이는 국가시험이 공익이 아닌 민간기업의 사익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함을 의미한다. 또 기존의 한국어 교육 산업체 및 교육 기관은 경쟁력을 잃고 사라져 지금까지 힘겹게 가꿔온 한국어 교육 생태계는 멸종되고 말 것이다.
이와 같은 시험의 공신력, 공공성, 공정성, 공익성을 이유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국가를 대표하는 어학 시험을 민간기업에 맡기지 않는다. 국립국제교육원은 조속히 토픽 민영화 시도를 철회해야 할 것이다.
2025-05-01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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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비 내리는 봄날의 편지
어제는 지인과 함께 부산 자갈치 시장 어귀 양곱창 가게에서 소주를 마셨습니다. 남해가 고향이라던 주인은 요새 손님이 없다며 누굴 향해서인지 모를 지청구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비단 최근만의 일일까요. 술집에 앉아 한산한 골목을 우두커니 바라보니 십여 분 간격으로 사람 한둘 지나갈까, 오래전 북적이던 골목이 아니었습니다. 어디선가 공기를 가르며 쇳소리의 고함소리가 나서 유심히 지켜보니 중년의 취객이 누구한테 퍼붓는지 모를 험한 소리를 내뱉으면서 비틀거리며 지나갔습니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4월의 한복판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1990년대 중후반까지 이곳 남포동과 광복동을 비롯한 원도심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유명한 햄버거 프랜차이즈 가게는 원도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약속 장소 중 하나였습니다. 워낙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며 물결처럼 지나다 보니 약속 장소에 각자 도착했으면서도 서로를 찾지 못해 두리번거렸던 때가 종종 있었겠지요. 지금 비프광장 일대입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상권의 극심한 침체로 울상을 지었던 원도심도 점점 회복이 되어가나 싶다가도 더러 한숨을 내쉬는 상인을 보곤 합니다. 요즘 부평깡통시장이나 비프광장에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인구가 줄어들고, 청년 일자리 해소는 오랫동안 나아질 낌새가 보이지 않고, 이런 현상과 맞물려 비혼, 비자녀와 독거세대가 급증하는 오늘날 ‘인간답게’ 살아가는 의미가 무엇인지 종종 생각하게 됩니다. 상인들은 입만 열면 경기가 안 좋다고 말합니다. 소비자는 비싸서 먹을 곳이나 살 거리가 없다고 말합니다. 1990년대 부산 원도심 장면을 유튜브로 보면 그때가 그립다는 댓글이 많이 달립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수구지심(首丘之心)이 있습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인데, 행복했든 그렇지 못했든 지난 시간의 단면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물큰 생기지요. 물론 마음이 그렇다는 얘기지, 막상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는 장치가 있다면 섣불리 탑승하려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해를 넘기면서 수상한 시절을 겪다 보니 저뿐만 아니라 사람들 대부분이 어딘가 뒤숭숭한 느낌 가시지 않습니다. 정국이 비상계엄으로 요동을 치다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요즘 저마다 묵혀두거나 미뤄두었던 일과 계획을 차근차근히 정리하면서 착수하기도 합니다.
벚꽃도 만개하여 이제 땅바닥을 어지럽게 할 때가 되었나 봅니다. 인터넷이나 유튜브에서 끊임없이 쏟아지고 지껄이는 말을 가만히 듣노라면 이 세상이 참으로 복잡하고 어렵다는 생각, 아니 사는 일이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빠집니다.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그러는 중에 안타까운 사건·사고 소식에 한동안 멍한 날도 찾아오곤 합니다. 누구처럼 돈주머니나 낯짝이 두꺼워서 나라야 어찌 되건 자신과 식솔만 평안하면 된다는 철학을 지닌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 같은 서민들은 평생 일해도 만져보지도 못할 액수의 재산을 신고하고 출마하면서 가난하고 어려운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입버릇처럼 외칩니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대선일이 지정되었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국민은 급격하게 떨어진 경제 지표뿐만 아니라 ‘내일’에 대한 고민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먼 데 있는 듯한 희망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퇴근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복권을 사는 사람도, 취직이 어려워 한숨을 내쉬는 청년도, 장사가 안돼 멍하니 골목만 바라보는 가게 주인도, 비록 이룬 것 하나 없이 ‘연명’ 수준에 가까운 나날을 보내는 모든 사람에게도 오늘은 지나고 내일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우리가 이렇게라도 이 땅에서 무언가를 하면서 다른 사람 해코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 자체가 기적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톰 소여의 모험’을 쓴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상에는 무언가를 이루는 사람과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주장하는 사람, 이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 그룹이 훨씬 적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숱한 유명인을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 보면서 스스로를 되짚으며 박탈감에 빠질 때가 더러 있습니다.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사람이 ‘간증’처럼 말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의 삶과 인격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세상은 몇몇 엘리트들이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 같은 상식 정도만 지니면서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이 천천히 이룩해 나갑니다. 봄날이 지나고 무더위가 기습하면서 향기를 뿜었던 꽃은 모조리 떨어지겠지만, 여름 내내 가을 겨울이 지난 동토에서 새근새근 움트는 소리가 새로운 땅을 일군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2025-04-2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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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호의 오픈 스페이스] "이번에 내리실 역은 옳은 쪽입니다"
비상계엄 선포부터 탄핵 선고가 나오기까지 122일 동안 시민들은 광장으로 모였다. 그 시간을 돌이켜 볼 때 특히 눈에 띈 것은 MZ세대들의 등장이다. 이들은 기존의 시위 형식에서 볼 수 없었던 자신들만의 문화를 집회에 녹여냈다. 이들이 참여한 집회 현장은 K팝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에스파의 ‘위플래시’,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 등을 부르며 친숙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었다. MZ세대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수제 응원봉을 들고나왔다. 당시 이같은 K집회 현장을 지켜본 외신 반응은 뜨거웠다. 로이터통신은 “시민들이 시위에 들고나온 응원봉이 기존의 촛불을 대체하며 비폭력과 세대 간 연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차세대형 민주주의의 모습”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런 분위기는 젊은 세대의 정치적 무관심을 일깨웠으며, 적극적인 시민 참여를 끌어냈다.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문화적 코드와 정치적 의사 표현을 절묘하게 접목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강국이다. 분단의 악조건에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상식적일 때 국가 위상이 서고 그 안에서 기본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의 수준과 위상도 반영된다. 1987년 민주주의의 근간을 보여준 민주항쟁, 1998년 IMF를 이겨낸 국민의 저력, 2002년 월드컵의 함성, 2010년 촛불로 이뤄낸 민주주의 등을 보면 그러하다. 특히 탄핵 정국에서 MZ세대들이 응원봉으로 이뤄낸 ‘빛의 혁명’은 386세대와 MZ세대가 공유하는 감동을 전했다. 우리 국민의 커먼센스(Common Sense)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켜내는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 현장에는 기득권자가 아닌 시민이 있었다. 도망가지 않았다. 시민이 하나가 되어 지금의 대한민국을 지켜내고 있다. 이제 이 나라의 미래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공동의 것을 공동의 것으로 만드는 사회인 민주공화국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세계사 최초로 무혈 시민혁명을 이룬 민족이자 민주주의 선도 국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이미 전 세계는 존경의 시선으로 K컬처, K푸드를 넘어 K민주주의를 부러워하고 있다.
탄핵 정국을 돌이켜 보면 이미 경기는 끝났는데, VCR 판독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누가 봐도 아웃인데 심판들의 이견으로 주심은 판정을 못 하고 관중들은 귀가하지 못하는 꼴이었다. 그 시간은 역대급으로 비현실적이었다. 관중은 야유와 함성으로 경기장을 박살 낼 기세여서 혼란스러웠다. 결정이 나야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본연의 일을 한다. 그렇게 122일 동안 헌재의 결정을 기다렸다. 마지막까지 온갖 낭설들과 소위 정치 1단이라는 자들의 예측 아닌 추측들은 우리의 삶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202504041122’라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시간을 맞이했다.
“탄핵 사건이므로 선고 시간을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22분입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22분 동안 지난했던 겨울의 시간에서 나오는 순간이었다. ‘한국의 마그나 카르타’라며 결정문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다. 결정문 중에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으므로, 이는 피청구인의 법 위반에 대한 중대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란 문장과 ‘국가 안전보장과 국토방위를 사명으로 하여 나라를 위해 봉사하여 온 군인들이 일반 시민들과 대치하도록 만들었습니다’란 문장이 필자의 마음속으로 녹아 들어왔다. 장기간의 평의와 숙고를 통해 그 결정문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쉽고 유연한 논리로 작성함으로써 당일 투입된 군인들이 지고 있을 마음의 짐을 그나마 내려 주었다. 이런 것이 법의 힘이다. 국민 대부분은 그토록 장고의 시간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이 결정문을 통해 다시 봄을 기대하게 되었고 그렇게 대한민국은 2025년 봄을 맞이했다. 2025년 4월 4일 청명(淸明)은 세상을 맑고(淸) 밝게(明) 만들기에 좋은 날인 것이다.
지인한테서 들은 이야기다. 탄핵 현장에서는 매주 토요일, 때로는 예정 없이 긴급하게 집회가 열렸다. 대형 스피커, 무대 설비, 행진 트럭 등을 동원해 한 번 집회를 열 때마다 2억 원 이상의 돈이 지출된다고 한다. 1700여 시민단체가 연대 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 비용은 또다시 시민의 모금과 후원으로 충당해 낸다고 한다. 모든 부채와 책임은 국민의 몫이다. 서글프다. 생활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른 채 오르고, 서민들의 지갑은 갈수록 얇아진다.
이제 시대가 부여한 시간이다. 구조적 모순은 반드시 바로 잡고 좌우로 구분 짓는 극단적 대립, 양비론적 시선들은 이번 참에 하차하시기를!
마침 지하철에서 안내 방송이 나온다. “이번에 내리실 역은 옳은 쪽입니다.”
2025-04-1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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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학수의 문화풍경] 비관주의와 냉소주의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
현대 한국 사회는 급속한 경제적 성공과 사회적 발전 덕택에 세계에서 명성이 자자하지만, 비관주의와 냉소주의로 채색된 문화적 풍경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진보와 성장의 약속에 대한 집단적 환멸을 반영하는데, 사회 구조적 압박, 정치적 격동, 지도층의 위선 때문에 촉진되고 있다. 비관적, 냉소적 태도는 헬조선, 삼포세대 같은 대중 담론과 청소년 문화, 심지어 기생충이나 오징어 게임 같은 인기 창작물에도 스며들어 불신과 좌절에 시달리는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런데 그런 태도는 개인의 삶을 웅크리게 할 뿐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조장한다.
비관주의는 부정적 결과를 예견하거나 최악의 상황에 시선을 집중하는 경향이다. 비관주의자는 일이 잘못될 것이고, 난관은 불가피하며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사고 방식의 바닥에는 인생이란 불가피하게 힘들고, 예측 불가능하거나, 사회 제도가 불공정하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직장 면접을 앞두고 비관주의자는 자신은 지방대 출신이니 어차피 떨어질 것이라고 포기한다. 비관주의는 실망과 좌절로부터 개인의 감정을 보호하는 방어 기제로 작동하지만, 늘 불편한 결과를 바라보기 때문에 쉽게 우울한 기분에 빠지며, 성취 동기를 줄여버리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
심리적 내전에 조롱·불신 확산
개인 삶 위축 인간 관계도 단절
사유하는 낙관주의적 자세 필요
냉소주의(cynicism)란 용어는 개(kynikos)라는 그리스 말에서 유래했다. 고대 그리스의 냉소주의 학파는 사회적 규범과 제도를 부정하고 마음대로 방랑하는 개의 자세를 추종하는 태도로 묘사되었다. 반면 현대의 냉소주의는 사람이나 기관의 동기가 순수하지 않고, 이기심이나 탐욕, 그리고 음모로 얼룩져 있다는 회의적 태도이다. 이를테면 냉소주의자는 정치인들이 가난한 사람을 진심으로 돕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표를 얻기 위해 벌이는 술책이라고 여긴다. 혹은 친구의 친절을 진정한 선의가 아니라, 미래에 호의적 보답을 얻기 위해 꾸미는 작전이라고 본다.
비관주의와 냉소주의는 서로 다르다. 비관주의는 부정적 결과에 초점을 두는 반면, 냉소주의는 의도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동기 지향적 자세이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근본을 고려하면 비관주의가 냉소주의의 뿌리이다. 비관주의가 냉소주의를 낳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실패한다고 예상하는 상황에서, 실패의 원인을 관련 기관이나 인사들의 불순한 의도에서 찾을 때 냉소주의는 생기는 것이다.
비관주의는 스토아주의로부터 이론적 지원을 받았다. 스토아주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리 예상하는 비관주의적 자세를 사람들에게 권유하여 실패에 대비하게 하면서, 부와 성공, 명예처럼 대중이 추구하는 것들의 가치를 부정하여, 그것을 얻지 못하여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려고 한다. 그러나 스토아주의의 전략은 종종 이점보다 훨씬 더 해악이 크다. 비관주의적 자세를 취하면 세상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므로 삶이 우울하고 지루하며, 타인의 동기를 불신하기 때문에 인간 관계를 형성하기 힘들다.
미국의 심리학자 엘런 랭어는 신간 〈사유하는 신체〉에서 비관주의의 대안으로 ‘사유하는 낙관주의’(mindful optimism)를 제안한다. 결과를 낙관해도 결과는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리부터 나쁜 결과를 예상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낙관적 기분으로 지내다가 실패를 목격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단순한 낙관주의는 그냥 일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게으르게 살기 쉽다. 반면 사유하는 낙관주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길이 있는지를 사유하고 그것을 실행하면서 결과를 낙관하는 자세이다.
더 나아가 사유하는 낙관주의는 실패와 성공을 가르는 기준마저 사유한다. 대개 우리는 사유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시험에 합격하고, 돈을 벌고, 선거에 승리하고, 인기를 얻는 것을 성공이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기준을 바꾸면 그것은 성공이 아니며, 오히려 실패일 수 있다. 경쟁이 최고로 치열한 대학 학과에 합격하여 자신의 취향이나 소질과 어울리지 않는 전공을 공부한 사람에게는 차라리 불합격이 성공이다. 어떤 교수는 국회의원에 당선하였기 때문에 연구 분야에서 업적을 이룰 기회를 상실했다. 깊이 생각한다면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사유하는 낙관주의자에게는 실패마저도 성공이라고 규정될 수 있다.
최근 몇 달 동안 심리적 내전으로 묘사될 정도로 한국 사회는 양분되어 조롱과 불신, 비난과 자조(自嘲)의 담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문화 풍토 속에서는 개인의 삶은 위축되고, 인간 관계는 단절된다. 사유하는 낙관주의의 자세는 비관주의와 냉소주의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의 질환을 치유하는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25-04-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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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철도 지하화 사업에 대한 바람
도시에서의 고민은 항상 보존과 개발 사이의 갈등에 있다.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성장동력 사이에서 역사를 보존하고 개발의 해법을 찾는 것, 공공성을 지키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 이는 건축가에게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과제다. 건물 하나를 짓더라도 건축주와 수많은 협의 과정을 거치는데 하물며 도시 공간 구조를 변화시키는 사업에 있어서는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다. 지리적, 역사적 조건 외에도 개발과 확장은 때때로 공간을 단절시킨다. 그로 인해 도심은 파편화된다. 부산은 그러한 단절과 재구성이 반복된 도시다.
부산의 철도 노선은 일제강점기 이후 도시 구조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철도역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전했고 사람들이 도시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도시가 성장한 이후 철도는 도시 공간을 단절시키는 요소로 작용했다. 철도가 도심을 가로지르면서 생긴 물리적·사회적 단절은 도시 내 이동을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의 개발을 막고 있다.
부산역~부산진역 2.8km 구간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선도사업
원도심 회복의 중요한 계기 마련
도시 구조 재편하는 시발점 돼야
북항재개발만 해도 그렇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항재개발 1·2단계 사업은 원도심 통합재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북항재개발 지구와 산복도로를 연결해 단절된 도심을 이어야 하는데 부산역 조차장이 부산역과 원도심, 그리고 북항 사이를 가로막고 있어 연계 개발이 어려웠다. 지난 2월, 부산은 ‘철도지하화 통합개발 선도사업’에 선정되어 원도심 연결사업의 길이 열렸다. 선도사업 구간은 부산역에서 부산진역까지 2.8km 구간이다. 이 사업은 철도로 단절된 도시 공간을 연결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부산 원도심은 과거 부산의 중심지였다. 남포동과 중앙동, 부산역, 초량 일대는 물류와 상업의 중심이었고, 사람과 문화가 뒤섞이는 공간이었다. 그러나 산업구조의 변화와 신도시 개발로 인해 원도심은 점차 쇠퇴했다. 도시의 핵심 기능이 이전하면서 활력이 넘쳤던 원도심은 빈 점포와 노후 건물이 증가하면서 공동화 현상이 심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철도 지하화는 원도심 회복의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번 사업은 단순히 철도를 지하로 옮기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철도 부지의 상부를 인공지반(데크)으로 덮어 복합적으로 개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산시는 인공지반 위는 공공주택과 공원, 문화시설 등 복합 용도로 활용하고 부산진 CY는 부산신항으로 이전시킨 후, 그 부지에 상업·업무지구를 복합해서 첨단산업지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사업부지가 국공유지와 철도공단 소유지기 때문에 사업 추진 리스크가 적다 해도 유휴부지의 상업성이 얼마나 보장될지가 관건이다.
해외에서도 철도 부지의 상부를 인공지반(데크)으로 덮어 복합적으로 개발한 사례가 있다. 철도차량기지 위에 인공지반을 덮고 상업, 업무, 주거, 공원을 조성한 미국 뉴욕의 허드슨야드와 철도 부지를 덮어 인공지반을 형성해 그 위에 업무지구와 공공시설을 조성하여 도심 내 공간 활용도를 높인 프랑스 파리의 리브고슈, 그리고 철도 부지를 입체적으로 활용하여 상업, 업무, 주거, 공공시설이 혼합된 공간으로 개발한 일본 신주쿠 복합터미널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는 도시 공간을 효율적으로 재구성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유럽 교통망 연결을 효율적으로 재정비하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21 프로젝트’는 환경문제 관련 시위, 예산 초과 및 투명성 논란, 정치적 논란 등으로 1994년 공식 발표된 이후 예산 초과와 지연을 반복했다. 부동산 수익을 올리는 목적과 함께 유서 깊은 중앙역을 모두 철거하고 수백 년 된 나무들을 자르는 문제가 원인이었다. 2010년 착공 이후 공사 일정이 여러 차례 조정되어 2026년 12월 완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슈투트가르트 21’은 공공의 참여와 투명성, 그리고 개발과 보존 간의 균형을 위해 참고할 사례로 볼 수 있다.
철도 지하화 사업은 국토교통부, 국가철도공단, 부산시가 함께 추진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하지만 부산역 조차장 일원이 북항 2단계 개발사업과 맞물려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관련 부처 간 논의가 필요하다. 북항 2단계 개발사업은 해양수산부의 관할이기 때문에, 철도 지하화와 별개로 추진될 경우 공간 활용의 비효율성과 사업 진행의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관 부처 간 긴밀한 협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 중심 역할은 부산시가 해야 한다. 쇠퇴한 원도심 통합재생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고,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지리적 단절은 해소됐는데 자칫 사회적 단절을 가져올까 걱정이다.
철도 지하화는 도시 구조를 재편하는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길을 찾고, 파편화된 도심을 다시 통합해 잊힌 공간에 새로운 생명과 도시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2025-04-0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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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의 크로노토프] 위기의 부산, 문화도시로 대전환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동북아를 대표하는 환적항을 보유한 국제물류 중심지다. 하지만 부산은 지금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도시임은 물론이고, 지속적인 청년층 유출로 인해 인구 감소가 가속화되고 있다. 인구 330만 명은 이미 무너졌고, 2024년 12월 기준 부산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3.9%로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한때 부산 경제를 떠받쳤던 제조업이 약화된 지 오래고, 양질의 일자리도 줄어들었다. 현재 부산의 고용률은 전국 평균보다 낮으며, 남아있는 일자리마저 대다수는 자영업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존 산업 중심 경제 전략에서 벗어난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문화·예술·관광’을 핵심으로 한 새로운 성장 전략 구축을 강조한다. 하지만 지금도 보여주기식 개발과 단기적인 성과를 노리는 일밖에 보이지 않는다. 도시 경쟁력은 단순한 인프라 건설이 아니라 제대로 된 문화 정체성과 브랜드 구축에서 나온다.
부산과 같이 환적항을 가진 싱가포르는 중국 상하이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한다. 물류 허브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도시 경쟁을 극대화한 대표적인 사례다. 물류와 금융 중심도시에서 문화 콘텐츠와 관광을 강화해 ‘아시아 문화 허브’로 자리 잡은 싱가포르는 중요한 메시지를 알려준다. 특히 싱가포르 예술의 중심지인 ‘에스플러네이드’는 지역 및 국제 예술가들에게 창작과 공연의 기회를 제공하고, 관광객들에게도 큰 매력을 발산한다. 싱가포르 최초의 공연예술 전문도서관을 비롯해 1600석의 콘서트홀과 2000석 규모의 극장에서는 음악, 무용, 연극 등 세계적인 수준의 공연은 물론이고, 다양한 무료 행사도 정기적으로 열린다. 공연 전후로 식사와 쇼핑을 즐길 수 있는 부대시설은 방문객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며, 건축물의 역사와 음향 시설 탐방을 위한 가이드 투어도 마련되어 있다. 도시의 문화 콘텐츠에 관광을 결합해 도시 경쟁력을 높인 성공적인 모델이다. 적극적인 정부 주도 예술정책으로 싱가포르의 문화적 자부심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제는 단순한 물류도시가 아니라 누구나 ‘살고 싶은 도시’로 탈바꿈한 것이다.
부산이 환적항으로 위상을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95년에 발생한 고베 대지진이다. 당시 일본의 대표 무역항이 지진 피해로 그 기능을 상실하면서 부산항이 고베항을 대체하게 되었고, 대한민국 핵심 항만일 뿐만 아니라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 행운은 노력 없이 유지되지 않는다. 더욱이 중국의 상하이항, 닝보항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부산항 환적물량이 줄어들고 있다. 환적항이라는 물류 허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싱가포르처럼 문화·관광을 융합하는 도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부산시는 부산의 위기를 제대로 보고 있는지 의문이다. 문화예술계 예산 또한 정치적 홍보나 이벤트성 행사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엑스포 유치 실패로 6000억 원에 가까운 시민 혈세를 낭비했고, 가덕도 신공항, 북항 재개발, 부울경 메가시티 등 대규모 프로젝트는 부산 시민의 삶을 위해 어떻게 운영할지 그 실행 계획을 제대로 알 수조차 없다. 산업은행 본사 이전의 실질적 경제 유발 효과도 꼼꼼하게 따져 검토해야 한다.
부산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에 예산을 쏟아붓기보다 지속 가능한 문화예술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개관을 준비하고 있는 클래식 전용홀이나 오페라하우스는 지역 문화예술회관과 유기적으로 결합해 독자적 공연 콘텐츠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전문 인력인 예술단을 부산시가 직접 고용하는 체계를 갖추어야 가능해진다. 이런 것이 제작극장이다. 실기 중심 교육에 머물러 있는 지역 대학의 교육도 콘텐츠 중심의 커리큘럼으로 개편해야 한다. 문화예술이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전문적으로 길러내고, 지역 내 공연장과 연계한 현장 중심의 실무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 나아가 투자 대비 수입이 극도로 적은 예술가들이 경제적으로 안정적 삶을 꾸릴 수 있는 주거 지원 정책과 자녀 교육 환경 개선도 필요하다. 지역의 많은 예술가나 예술단체는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 생존을 고민하고 있고, 우수한 예술가들조차 예술 활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더 이상 수도권이나 해외 공연예술 단체에 의존하는 일회성 문화 소비도시에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시설물만 넓히고 짓는 것은 근본 해결책이 아니다. 예술가들을 직접 고용하는 데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위기에 직면한 ‘부산 살리기’는 더 이상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시민의 삶과 도시의 미래를 살리기 위한 실질적인 행동이어야 한다.
2025-03-27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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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파의 생각+] '잭팟'은 없다
지난 13일 부산상공회의소는 부산형 복합리조트 유치를 위한 전문가 라운드 테이블을 개최했다. 부산상의 회장은 인사말에서 “오픈 카지노(내국인 출입 가능 카지노)로 인한 부작용은 적절히 규제하고 복합리조트로 인한 경제적 부가가치를 극대화할 방안을 전문가들과 함께 모색하겠다”고 했는데, 이를 통해 부산상의에서 추진하는 복합리조트는 오픈 카지노를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산상의는 2017년 북항 재개발을 계기로 복합리조트 유치를 추진했으나 오픈 카지노 도입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발로 추진이 중단된 바 있다. 이후 간헐적으로 복합리조트의 필요성을 주장해 오다 가덕도 신공항 개항과 연계해 8년 만에 다시 본격적으로 오픈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 유치를 언급한 것이다.
복합리조트 유치에 찬성하는 이들은 글로벌 허브 도시를 표방하는 부산이 아시아 주요 도시들과 경쟁하기 위해 하루빨리 복합리조트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인천은 벌써 복합리조트를 운영 중이며 태국과 일본 오사카는 가덕도 신공항이 개항할 2030년경 복합리조트를 개장할 예정이어서 부산도 시급히 복합리조트를 만들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복합리조트를 조성하게 된다면 세수 증대를 포함해 엄청난 경제 효과가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2017년 샌즈그룹은 북항 복합리조트 조성에 6조 원 이상을 투자한다고 했으며 이때 부산상의에서 발주한 연구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복합리조트 조성에 따른 경제 효과가 4년간 23조 원의 생산 유발 효과, 1만 6000여 명의 고용 유발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카지노 사업을 사행산업으로 규정해 덮어놓고 반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내국인 출입에 있어서 도박 중독자 출입 금지, 출입 가능 일수 제한 등의 규제 방안을 마련한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지나칠 정도의 장밋빛 전망이다. 부산의 경쟁 도시 인천의 예를 통해 살펴보자. 2023년 12월 인천에는 미국 인디언 모히건 부족의 카지노 회사인 모히건이 약 2조 원을 투자해 축구장 64개 넓이의 부지에 5성급 호텔, 1만 5000석 규모의 공연장, 외국인 전용 카지노 등을 포함한 복합리조트 인스파이어가 문을 열었다.
인스파이어는 개장 전 향후 30년간 약 167조 원의 생산 효과, 60조 원의 부가가치 효과 등 230조 원 규모의 경제 효과를 창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개장 1년 만에 1500억 적자를 내고 결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탈에 경영권을 넘겼다. 업계에서는 베인캐피탈이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을 감축하거나 일부 시설 운영을 축소할 가능성이 있으며, 2046년까지 6조 원을 투자한다는 처음 모히건의 계획도 불투명해졌다고 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인스파이어 건설 시 지역업체 참여와 고용 창출, 낙수효과 등을 기대했으나 지역업체는 전체 공사 금액 1조 2000억 원의 1.34%인 163억 정도만 하도급을 받았다고 한다. 또 공사에 투입된 인력 중 지역 인력은 8%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카지노가 세금을 많이 내 세수 확대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 국세여서 지자체가 가져갈 세수도 많지 않다고 한다.
이처럼 카지노 산업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매우 미미하다. 그런데 내국인 입장이 가능한 오픈 카지노를 열게 된다면 오히려 지역에 독이 될 가능성도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오픈 카지노를 운영하게 되면 지역 주민의 돈이 카지노에 들어가고, 그 돈이 해외로 유출되게 된다. 내국인 입장이 가능한 강원랜드 카지노의 매출이 연간 1조 2000억 원 수준으로 강원랜드 외 16개 카지노 전체 매출 합과 비슷한 규모임을 감안할 때 얼마나 많은 국부가 해외로 유출될지는 굳이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아도 자명하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도박 산업과 함께 공존하는 성매매와 마약 산업의 활개, 개인의 도박 중독과 그로 인한 가정 파탄 등 무수히 많은 사회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국무총리실 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도박 중독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연간 78조 원에 달한다고 해 그 문제의 심각성을 가늠할 수 있다.
오픈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로 침체한 지역 경제를 단번에 활성화하겠다는 꿈은 좀처럼 터지지 않는 잭팟과 같다. 느리더라도 우리 지역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지역 대학과 함께 육성해 수도권 기업 못지않게 좋은 대우를 해 줌으로써, 이들이 부산에 정주하며 산업에 기여하는 선순환적 구조를 만들 때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
2025-03-2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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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의 생각의 빛] 부산항 북항 문학 르네상스를 꿈꾸며
올해 5월 7일은 1985년 ‘5·7문학협의회’가 결성된 지 40주년을 맞는 날이다. 군사독재와 반민주주의의 폭거가 횡행하던 때, 요산 김정한(1908~1996) 선생을 비롯한 소설가와 시인 및 문학평론가 등 일군의 문인들이 문학인의 결속과 협의체의 필요에 따라 중구 동광동의 한 식당에 모여 5·7문학협의회를 결성하게 된 것이다. 이 협의회는 1987년 11월 ‘부산민족문학인협의회’로 확대 재편되어 지금의 (사)한국작가회의 부산지회, 즉 ‘부산작가회의’의 전신이 되었다.
부산작가회의는 그간 부산민예총 등 타 기관의 공간 일부를 빌려 오랜 시간 더부살이를 해오다 지난해 연말 동광동 인쇄 골목 쪽 비어있던 사무실을 임대받아 독립적인 공간을 마련하게 되었다. 지역의 문학단체를 대표하는 부산작가회의의 독립적인 공간이 5·7문학협의회가 결성되고 무려 40년이 지난 시점에야 안착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불러온다. 단체의 공간 마련이 비용이나 예산이 비로소 확보되어 이루어졌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40년 전 중구 한복판에서 결성된 문학인의 뜻과 의지가 시간이 흘러 구성원이 확대되고 다양한 창작 세계를 펼쳐왔던 이력의 공간적 구심점이 다시 원도심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중구 일대는 작가 모인 작품 집필 공간
부산작가회의·소설가협회도 둥지 틀어
새 시대 이끄는 ‘원도심 창작 산실’ 기대
최근에는 부산소설가협회 사무실도 중앙동 부산우체국 뒤편 골목에 자리 잡은 건물에 들어서기도 했다. 인쇄소와 출판사가 즐비해 1980~1990년대 당시 문학인의 교류가 활발했지만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문화공간과 구성원 및 단체의 이전과 분산의 흐름에 따라 침체의 늪에 빠졌던 ‘원도심 문학’이 이제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는 형국이다. 아울러 그동안 숱한 예술인들의 ‘문화사랑방’ 구실을 했던 ‘양산박’이나 ‘강나루’ 등의 주점이 사라지면서 오갈 데 마땅치 않은 작가들이 각종 창작프로그램이나 북콘서트를 비롯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는 장소가 확장됨에 따라 삼삼오오 이곳 중구 일원으로 모여들고 있다.
부산 중구, 특히 동광동과 중앙동 일대는 한국 근·현대사의 오욕과 영광을 아우르는 장소였다. 동광동은 1678년부터 1876년 부산포 개항까지 지금의 용두산 일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초량왜관의 동관(東館)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동관’과 인근 ‘광복동’의 첫 글자를 따 지은 행정구역이다. 중앙동은 1900년대 초부터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북항 매축공사에 따라 바다를 매립, 지금의 중앙대로와 충장로 일대가 새롭게 형성되면서 기존의 일부 지역에 편입된 곳이기도 하다. 일제의 식민지 경영과 대륙 침탈을 위한 발판으로 건설한 1부두와 부산역 등의 육·해상 교통 플랫폼을 끼고 있어서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과 문화가 유입된 곳이기도 하다.
한때 한국 패션 1번가로 명성이 높았던 광복동, 한국에서 가장 큰 어패류처리조합인 자갈치시장이 있는 남포동, 한국 최초로 조성된 공설시장인 부평깡통시장이 있는 부평동, 한국 최대 규모의 책방골목이 있는 보수동 등 이곳 중구는 부산에 한정되지 않고 한국 전체로 봐도 손색없는 근·현대사와 문화의 ‘성지(聖地)’ 중 하나이다. 여기에 부산항 북항을 끼고 있는 동광동과 중앙동 일대에 속속 둥지를 틀면서 자리를 잡고 있는 문학단체와 작가들이 가세해 바야흐로 부산 문학이 제2의 르네상스를 꿈꾸기 위한 기반과 여건이 얼추 마련되었다. 2017년경에는 다른 구(區)보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중구 일원에 터를 둔 문학인들의 조직인 부산중구문인협회가 조직되어 지난해 제1회 용두산문학상을 제정하여 한평생 중구민으로서 창작 활동을 했던 아동문학가 강기홍 선생을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하였다.
1979년 10월 부마항쟁의 함성이 1987년 6월의 항쟁으로 되살아나 광복동과 남포동 그리고 중앙동의 거리에서 불꽃처럼 피어올랐던 땅이기도 하다. 비록 17세기 초량왜관 조성으로 근대적인 의미의 시가(市街)가 형성되었지만, 이후 세계사적인 격동과 전쟁 및 산업화·근대화를 지나면서 이 나라 산업과 문화의 조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곳이다. 자갈치시장과 공동어시장을 중심으로 한 남항 일대와 임시수도기념관이 자리한 서구 부민동의 독특한 역사·문화적인 공간, 그리고 부산근현대역사관과 백산기념관을 품은 대청로를 가로지르면서 웅크리고 있는 형형색색의 글감들이 작가의 펜이 스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부산항 북항 일대에 오래전부터 작가들이 살면서 작품을 생산해 냈다. 삶의 터전으로서 주거 공간의 시간을 지나 지금은 ‘기획된’ 행위로써 작가들이 속속 모이는 공간의 시간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어두운 시간 속에서 운명처럼 글을 써야 했던 지난 세대의 작가정신을 망각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예술 형식과 내용을 불러내는 작업이 북항 일대에 번지기를 기대한다.
2025-03-13 [1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