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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디지털 광장] 지역 뉴스에 기부할 수 있다면
한국의 뉴스 트래픽은 검색 플랫폼(네이버와 다음)에 쏠려 있다. 문제는 포털 주도의 디지털 공론장이 중앙 집권적이라는 점이다.
대다수 지역 매체는 ‘콘텐츠 제휴(CP)’의 문턱을 넘지 못해 뉴스 유통에 제약을 받고 있다. 지역 목소리가 과소 반영되는 디지털 공론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일뿐이다. 그 결과 중앙 집권은 공고화되고 지역 균형 발전의 구호는 공염불에 그치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지역 뉴스 생태계 붕괴가 초래하는 부작용은 미국이 반면교사다. 구글과 유튜브 등속의 외부 플랫폼에 광고와 뉴스 트래픽을 빼앗긴 미국 지역 신문과 방송은 줄줄이 파산했다. 전국에 걸쳐 ‘지역 뉴스의 사막화’가 나타났다.
동네 뉴스가 사라지고 중앙 뉴스만 득세한 데 따른 후유증은 혹독했다.
소도시에 유사 언론이 횡행했다. 소고기 맛 식품 첨가물에 빗댄 핑크 슬라임(Pink-slime) 저널리즘, 즉, 가짜 언론이 지역 여론을 참칭했다. 다양성이 사라지고 편견과 증오를 부르는 콘텐츠가 만연한 결과, 여론의 양극화와 극단적 진영 갈등으로 번졌다. 대선 결과에 불복한 시위대가 의회에 난입한 탓에 당선자 발표까지 지연된 사태는 미국 민주주의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
지역사회, 언론학계, 정치권까지 나서 대책 마련에 나섰으나 만시지탄이었다. 지역 언론에 세금을 감면하는 ‘지속가능한 지역 언론 법안(Local Journalism Sustainability Act)’도 결국 좌초했다.
뉴욕타임스 같은 극소수 전국구 매체가 독자 1000만의 경이적인 성과를 얻은 이면에 대다수 지역 언론은 독자와 광고주를 잃고 감원, 합병, 폐업으로 내몰렸다. 이 지경에 이르자 뉴스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시도가 등장했다.
솔트레이크트리뷴은 탐사 보도로 유명한 유타주 지역 신문인데 2019년 비영리로 전환하면서 신문업계에 비상한 주목을 받았다. 뉴스 생산과 배포에 있어 이윤 추구를 포기하고 비영리 법인으로 전환한 것이다.
신문사 경영은 더 이상 영리 모델이 아니다. 대신 공공재인 뉴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기부 금품을 모집한다. 구독료 혹은 기부금에 세액 공제를 제공하는 공공 자선 단체가 된 것이다.
미 연방 국세청(IRS)은 까다로운 심사를 거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신속하게 자선 단체 지위를 승인했다. 미국 레거시 미디어 중 최초다. 2022년 1월 시카고선타임스가 6100만 달러(우리 돈 750억 원)의 기부금을 모아 자선 단체 지위를 획득하는 등 비영리 전환 시도가 이어졌다.
“기존 지역 신문 비즈니스 모델은 붕괴됐고 회복될 수 없습니다.”
솔트레이크트리뷴 소유주이자 발행인인 폴 헌츠맨은 언론사가 지역 자산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그는 한 걸음 나아가 “신문의 사명과 목적은 본질적으로 자선(charitable in nature)이었다”고 정의한 뒤 저널리즘에 충실한 보도를 이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영국의 진보 매체 가디언처럼 후원 회원을 모집하는 경우와 달리 세법상의 비영리 단체를 추구한 건 전례 없는 시도다. 레거시 미디어가 디지털 온리 환경에서 저널리즘에 자선을 접목하는 새로운 실험을 선택한 것이다.
일본 지역 신문도 기부를 매개로 한 확장 전략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의 ‘고향납세’는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 도입됐다. 세금처럼 보이지만 실은 기부 제도다. 도시민이 지역의 지자체에 기부하면 세액 공제와 함께 해당 지자체가 제공하는 답례품을 받는다.
눈여겨볼 대목은 ‘고향납세’가 지역 신문에 구독자 확장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고향납세’에 등록된 답례품은 통상 특산품인데, 이중 신문 구독권을 제공한 전국의 지역 신문은 모두 113곳에 이른다.
배달 권역 밖이라 구독이 불가능했던 출향인도 고향에 기부하고 답례품으로 유료 지면보기 앱 혹은 지면 구독권을 받아 고향 소식을 알게 되는 방식이다. 지역 신문은 구독 권역을 전국으로 확장해서 좋고, 출향 인사는 전국지나 포털이 알려주지 않는 지역 소식을 접할 수 있어 상호 이익이다. 공공적 기부 제도가 낳은 지역 뉴스의 선순환 구조다.
올해 한국에서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됐다. 일본의 ‘고향납세’와 같은 취지다. 기부금의 30%까지 재화와 서비스로 돌려받는 구조가 동일하다.
한국의 지역 신문도 기부를 매개로 수도권 독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지역민 눈높이에 맞춘 보도, 저널리즘에 충실한 보도로 지역의 신뢰 자산으로 존재감이 굳건한 지역 매체라면 가능할 것이다.
고향사랑기부제를 계기로 기부하고 싶은 지역 신문이 많이 발굴됐으면 좋겠다. 지속 가능한 지역 언론을 유지하고, 지역의 목소리를 전국에 전할 수 있게!
2023-01-1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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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디지털 광장] 부산과 후쿠오카, 지역에서의 빅뱅
하카타(일본 후쿠오카의 별칭)는 언제나처럼 밝았다. 지난 10월 후쿠오카에 발을 내디뎠을 때 새삼 느꼈다. 하카타가 한국어 ‘밝았다’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긴 한데, 진위를 차치하고 ‘하카타’의 울림에는 왠지 모를 밝은 기운이 있다.
이번이 첫 방문인 동행자는 서울~부산보다 부산~후쿠오카 하늘길이 더 가깝다고 신기해했다. 비자 면제가 시행되자마자 찾은 하카타, 정말 가깝고도 멀다는 걸 실감했다.
행선지는 부산일보의 자매지 서일본신문사. 지난 2002년 기자 교류가 시작될 때 1호로 서일본신문사에 파견되어 특파원으로 취재 활동을 벌였으니 소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특히 그해는 2002 한·일 공동 주최 월드컵으로 양 국민 사이 호감도가 상승했을 때다. 후쿠오카 주재 한국 총영사관 마당에 구름같이 몰려든 후쿠오카 시민들이 월드컵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모습을 취재한 건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서로 비호감 1위 국가 아니었던가!
‘오메데토우(축하합니다)!’ ‘간코쿠 간바레(한국 힘내라)!’
한국이 세계 강호를 격파할 때마다 함께 기뻐하던 후쿠오카 시민들의 얼굴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서일본신문사 본사가 있는 교통과 쇼핑의 중심지 텐진에 들어서면서 내 눈을 의심했다. 관광 명소 이무즈 건물이 해체되고 푸른 하늘이 드러나 있는가 하면 단골 서점 준쿠도가 있던 자리는 공사장 차단 벽이 마천루를 이루고 있다. 서일본신문사 주변 도심의 대개조! 이른바 ‘텐진 빅뱅’ 프로젝트의 규모는 거대했다. 상전벽해란 바로 이런 광경을 두고 나온 말일 것이다.
외형만 바뀐 게 아니다.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관광지 캐널시티 안에 BTS 등 K-컬처 굿즈만을 다루는 대형 매장을 보고 격세지감을 느꼈다. 한국에 진출하지 않은 일본 브랜드가 즐비해서 한국 관광객 방문 필수 코스였던 곳이다.
후쿠오카의 매력을 요약하면 아시아를 향해 열린 개방성, 살기 좋은 쾌적함이다. 코로나로 발길이 끊긴 사이 진행된 텐진 빅뱅이 그려 낼 미래상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대한해협 건너 자매 도시 부산도 대역사가 진행 중이다. 부산 동구의 부산일보 본사 지척인 북항 주변 옛 부두와 철도 시설 자리에 오페라하우스와 공원 등의 친수문화 공간과 미래지향적인 업무 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텐진에 비견되는 ‘북항 빅뱅’으로 부를 수 있겠다.
서일본신문사는 부산일보 사옥에 중앙대로를 넘어 북항을 조망하는 CCTV를 설치해 영상을 송출 중이다. 북항 대개조 현장이 서일본신문 웹 사이트에서 생중계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로 왕래가 끊기자 부산의 소식이 궁금한 독자들에게 영상으로나마 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그만큼 후쿠오카 시민들의 부산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는 의미다.
부산일보 사옥은 수년 뒤 ‘북항 빅뱅’의 심장부, 오페라하우스 인근으로 이전하여 지역 정론지의 새 역사를 써내려 간다.
이처럼 자매 도시 부산과 후쿠오카는 미래를 향한 활력으로 약동한다. 그 중심에 두 지역 신문이 있다.
두 신문은 지난 2006년 두 도시의 협력과 상생을 도모하는 부산-후쿠오카 포럼의 결성에 앞장섰다. 한·일 관계 악화 등의 부침에도 불구하고 각계 민간 대표가 참여하는 포럼은 꾸준한 만남을 이어 갔고 교육, 기업 협력 등의 성과를 냈다. 코로나 유행에도 불구하고 올해 11월 포럼이 재개됐다.
올해로 부산일보와 서일본신문은 기자 상호 파견 교류 20주년을 맞이했다. 한국 언론사에서 전무후무한 사례이고, 민간 교류에서도 드문 경우다. 과거사로 인한 곡절과 코로나 유행병 와중에서도 기자들이 상호 파견되어 상대편 편집국에서 취재 활동을 이어 갔다.
사직구장에서 열린 이대호 선수 은퇴 경기를 취재한 서일본신문 기사가 일본 포털 야후재팬에 실시간 배포되어 큰 인기를 얻을 정도로 서로 가깝다. 두 신문은 지역민의 시선에 맞춘 보도로 두 지역을 잇는 가교 역할에 충실했다.
지난달 퀸비틀호가 부산항~하카타항에 취항해서 끊겼던 뱃길까지 열렸다. 부산에 오고 싶어도 교통편이 끊겨 애태웠던 일본 관광객들도 다시 부산을 찾을 것이다. 코로나 단절 이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북항 재개발지의 위용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도시 빅뱅의 중심에 지역 신문의 역할이 있다. 두 도시의 빅뱅이 양국의 밝은 미래를 추동하는 에너지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국경을 넘은 두 신문의 노력은 중단 없이 이어질 것이고 양 도시의 발전과 우정을 굳건히 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2022-12-01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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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디지털 광장] 미디어 바우처와 지역 신문
“일본 신문의 신뢰가 추락하면서 ‘마스고미’라는 조롱까지 생겨났습니다.”
‘마스고미’는 매스컴의 일본식 표현 ‘마스코미’와 ‘고미’(쓰레기)의 합성어. 한국의 ‘기레기’와 같은 맥락의 신조어다. 지난 20일 일본 후쿠오카 자매지 서일본신문사와 디지털 혁신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에서 듣기 거북한 이 표현과 다시 마주쳤다.
“신문과 독자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신문의 신뢰가 추락했습니다. 온라인에서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없는 기사를 접한 결과, 불신이 커졌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신문업계의 진단은 오히려 한국에서 울림이 더 크다. 언론사 외부의 거대 플랫폼으로 뉴스 소비가 쏠린 탓에 뉴스의 가치가 떨어져서다.
한국은 뉴스 이용 경로 기준 ‘정문’(언론사 웹 사이트와 모바일 앱) 비율은 전 세계에서 꼴찌, ‘옆문’(검색 서비스, 뉴스 수집 서비스, 소셜 미디어)은 거꾸로 전 세계 으뜸이다. 사용자들은 언론사 브랜드를 가리지 않고 포털과 SNS에서 무료로 무한정 뉴스를 소비한다. 언론사 브랜드가 실종되었으니 매체와 독자 사이에 선호나 충성의 관계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다시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지금의 독자는 이미 다양한 플랫폼에 둘러싸여 있어 쉽지 않습니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두 지역 신문사의 만남은 “독자 신뢰를 되찾기 위해 다시 독자 곁으로 다가가자”는 다짐으로 마무리됐다.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려면 언론사는 탈포털의 경쟁력을 갖추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일회성 뉴스 사이트 방문자가 관심과 니즈(필요)를 갖게 되어 회원에 가입하고 뉴스레터 구독자로 전환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국에 디지털 독자 맞춤으로 준비된 레거시 미디어는 없다. 냉혹한 모바일 미디어 환경에 정면으로 부딪혀 가며 독자와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데 노력하지 않은 탓이다. 신문 부수 부풀리기를 통해 정부 광고를 수주하는 등의 편법 수익원에 안주한 탓에 디지털 혁신을 외면한 것도 한 이유다.
디지털 시대에 지면은 사라져도 뉴스는 필수적인 공공재로 남을 것이다. 저널리즘은 사회를 통합하고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뉴스가 ‘쓰레기’ 취급을 받는 상황이 이어지면 그 최대 피해자는 뉴스 소비자다. 그 결과 공론장이 형해화되면 공동체의 위기가 온다. 저널리즘 육성을 위한 논의와 법제화 추진이 계속되는 까닭이다.
공론에 부쳐진 육성책 중 미디어 바우처 제도가 있다. 연간 1조 원에 달하는 정부 보조금과 공익 광고 등의 재원을 불투명한 신문 부수 기준이 아닌 온 국민의 온라인 평가로 선택된 매체에 분배하는 제도다.
그러나 정부의 입김이 작용해서 언론 길들이기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익부 빈익빈식으로 서울의 거대 매체가 독식하고 영세한 지역 신문이 들러리만 설 우려도 제기된다.
하나, 온 국민이 각자의 바우처를 온라인 구독료나 광고료로 지불하는 바우처 제도의 취지를 잘 살리면 저널리즘의 신뢰와 디지털 혁신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우선, 온라인 독자의 선택이 수익으로 직결되니 멀어졌던 매체와 독자의 관계가 재설정되는 효과가 기대된다. 냉정한 모바일 독자들의 구독 선택, 즉 바우처 지불을 얻으려면 언론사는 디지털 콘텐츠와 서비스를 환골탈태할 수밖에 없다. 독자 니즈에 맞춘 콘텐츠를 내놓고, 혁신적 서비스로 무장한 매체만 성공할 것이다.
따라서 언론사들은 뜨내기 방문자를 회원으로 가입시키려 노력할 테고 나아가 콘텐츠 구독자로 전환하는 데 매진할 것이다. 저널리즘의 품질과 독자 신뢰 관계가 새 국면을 맞을 것이다.
전면 실시에 앞서 필요한 시범 실시는 지역 신문사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미 지역신문발전지원법에 의거한 까다로운 심사를 거친 ‘우선 지원 대상’ 신문사가 전국에 골고루 존재한다. 지역 신문 진흥에 대한 사회적 합의까지 전제되어 있어서 진영 논리나 퍼주기 따위 불필요한 논란도 피할 수 있다.
미디어 바우처에 참가한 지역 매체를 시대적 추세에 맞게 메타버스 환경의 플랫폼에 묶으면 구독과 뉴스 발신이 용이하다. 지역 신문들은 각자 지역의 소식과 축제 행사 등을 전국구로 서비스하는 한편 전국의 독자들은 선호 지역 매체와 기자에 바우처를 사용하면 된다.
성공적으로 운영되면 지역 뉴스 포털, 지역 생활경제 포털로까지 성장할 수 있다. 새 플랫폼이 중앙집권적 디지털 공론장에 파열구를 내고 지역균형발전의 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면 지나친 환상일까? 미디어 바우처 제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2022-10-25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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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디지털 광장] 언어의 타락, 망국의 그림자
펜이 칼보다 강했던 시대가 끝나자 말이 최고 존엄의 자리에 올랐다. 과잉 정치화된 유튜브가 위세를 떨치자 정치권까지 거친 말 경쟁에 편승했다. 정론(正論)은 잦아들고 센 목소리만 널리 퍼지는 꼴이다. 문제는 추락하는 말의 품격에 날개가 없다는 점이다.
2017년 버지니아주 샬롯츠빌에서 있었던 극우 폭력 사태를 들여다보자.
대명천지 미국 도심에서 노예제와 나치 깃발이 나부꼈다. 주류 보수보다 한술 더 뜨는 ‘대안 우파(Alternative Right)’ 주최 ‘우파여 단결하라(Unite the Right)’ 집회. 이 인종 차별 집회에 진보 진영이 맞불 시위를 하자 우파 측이 차량 돌진 테러를 벌이고 연이은 폭동으로 3명이 숨지고 35명이 다치는 유혈극으로 비화됐다.
유튜브 거친 말 온 사회 번져
정치 화법까지 조롱, 무례 득세
언어 품격, 날개 없이 추락 중
민주주의, 설득과 참여로 작동
진정성 있는 대화만이 해결책
악담 그만, 말의 신뢰 회복을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원인과 대책 논의가 무성했는데, 그중 이 사건과 관련한 양대 진영의 유튜브 언어 비교 연구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시사점을 준다.
〈온라인 영향력, 오프라인 폭력: ‘우파여 단결하라’ 집회를 둘러싼 유튜브 언어 사용〉(컴퓨테이셔널 사회과학 저널 2020년 9월). 이 연구는 유혈 사태 직후 우파와 진보 유튜브 채널 7142곳에서 등장한 단어를 분석했다.
단어 빈도 조사 결과 양 진영 채널 모두 상대를 비난하는 표현이 급증했다.
진보 채널에서는 ‘백인 우월주의자’ ‘나치’ 같은 경멸적 단어를 빈번하게 사용했다. 우파 쪽은 스스로를 ‘백인 민족주의자’로 미화했다.
연구진은 동일한 상황에 대한 상반된 인식과 명명, 상호 경멸이 강화됐다고 지적한다. 진영 간 양극화가 언어로 드러난 것이다. 대화로 접점을 찾기는커녕 끼리끼리 통하는 상징 체계로 소통하며 뭉친다는 의미다.
온라인에서 극단에 치우치는 경향이 심화되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다.
연구진은 “흥미로운 것은 우파 채널에서 욕설이 만연했다”고 분석했다. 욕설의 쓰임새는 특정 그룹 소속감, 정체성을 확인하는 의례라는 분석이다.
이 대목에서 기시감을 느낀다. 경남 양산의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벌어지는 욕설 시위가 겹쳐 떠올라서다. 지면에 차마 담기 어려운 모욕과 저주를 내뱉고 이를 유튜브로 생중계하는 식이다.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왜곡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확인 중이다.
말의 하향 평준화는 전방위적이다. 급기야 근엄한 정치권까지 오염시켰다.
요즘 정치 언설에서 칼과 독을 만나는 건 일상사가 됐고, 말맛을 곱씹게 만드는 여운은 좀체 만나기 어렵다.
예컨대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의 자당 대선 후보 개고기 비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국회에서 벌이는 말꼬리 잡기식 설전은 한마디로 꼴불견이다. 오늘날 정치 화법이 ‘누가 더 무례한지 겨루기’로 전락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게 정치 화술이 조롱과 경멸을 앞세워 내 편을 뭉치게 만드는 기술로 전락한 결과는 참담하다. 가벼운 혀 놀림이 기승을 부리면서 숙성되고 정제된 화법은 퇴출 신세로 전락했다.
공론장에서 말이 왜 중요하냐고? 왕정과 신정 시대에는 ‘말의 교환’, 즉 대화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여론에 귀 기울일 필요 없이 짐과 신의 뜻만 관철되면 되니까. 근대 민주국가가 성립되면서 국민의 의사표현이 중요해진 이유다.
민주공화국은 말의 네트워크를 딛고 서 있다.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는 만인의 관계에서 접착제 역할을 하는 것이 언어의 신뢰라는 의미다.
의견과 주장이 자유롭게 발화되고, 참과 거짓이 판별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다. 만약 서로의 말을 믿지 않고, 듣지 않으려 한다면 공동체는 모래알처럼 부서질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는 말의 길이 끊어지고 있다. 말의 가치가 떨어져 헌신짝 취급이다. 서로의 말을 더 이상 믿지도 않고, 듣지도 않게 되는 언어도단의 끝에는 공동체의 자멸이 기다리고 있다.
국민 통합은 끊어진 말의 길을 잇는 데서 시작한다. 그 책임의 꼭짓점에는 단연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 ‘내부 총질 체리 따봉’은 통합 메시지와 거리가 멀다. 유승민 전 의원의 “이러니까 당도, 대통령도, 나라도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을 새겨야 한다.
강요나 무력 대신 설득과 참여를 통해 통합되는 질서 체계가 민주정이다. 진정성이 담긴 한마디 한마디가 공동체를 굳건하게 만든다.
권력 핵심부터 거칠고 상스러운 악담 경쟁을 멈추라. 언어의 타락으로 이득을 보려는 세력은 민주 사회의 적이다.
2022-09-2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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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디지털 광장] 포털 뉴스와 뉴스 포털을 넘어서
포털 뉴스 폐해 사회적 공감 이어
공공 뉴스 포털 필요성까지 제기
한국 언론 최대 맹점은 포털 종속
자체 온라인 독자 눈높이 맞춰야
혁신하지 않으면 공공 포털이라도
뜨내기 독자 상대 저품질 악순환
지역 화폐 혜택이 8월부터 줄어든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땐 무덤덤했다. 정부의 예산 축소로 인센티브가 줄어든다니 어쩌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나마 부산은 인센티브가 줄었지만 광주, 제주는 아예 중단됐으니 말이다.
그런데 정부가 대형 마트 영업 규제 해제를 추진한다는 뉴스가 겹치면서 착잡해졌다. 국가 예산에서 지역 화폐 지원을 줄이고 동시에 대형 마트 영업 규제를 푼다면? 지역 내 선순환 소비 구조에 균열이 생길 것은 뻔하다. 코로나19 사태로 가뜩이나 힘겨운 지역 소상공인들에 달갑지 않은 상황이 초래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역 경제에 미칠 부작용과 대안 마련은 공론에 부쳐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온라인 뉴스 유통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 검색 플랫폼(포털)에서 그런 문제 제기 보도는 극소수 지역 매체에 국한된다. 이는 양대 포털 네이버와 다음의 콘텐츠 제휴사(CP)가 서울에 본사를 둔 곳 일색인 사정과 무관치 않다. 디지털 뉴스 생태계는 수도권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상황이다.
수도권 여론 쏠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지역 원전에 저장하는 방침에 지역민이 반발해도,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메가시티 계획이 차질을 빚어도 디지털 공론장에서 반향이 일어나고 국가 정책이 바뀌는 것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수도권 중심의 여론 지형 때문이다.
여론 불균형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포털에 작은 변화가 있었다. 올해 전국 9개 권역에서 1곳씩 특별 심사를 거쳐 지역 CP 8곳이 포털에 입점했다. 부산일보 등 3곳은 특별 심사 전부터 CP여서 지역 CP는 11곳으로 늘었다. 중앙지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이긴 하나 지역 매체의 존재감은 있다.
“올해 지자체 선거에서 지역 매체 입점 효과를 확인했다. 지자체 선거 뉴스에서 지역 CP 역할이 돋보였다. 중앙지가 다룰 수 없는 지역 뉴스 영역이 있다는 걸 보여 줬다.”
최근 만난 네이버 관계자는 디지털 공론장에서 지역 목소리가 왜 필요한지 확인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부산일보가 〈산복 빨래방〉 같은 좋은 기획을 보여 주셔서 감사하다.”
네이버가 지역 매체 중 유일하게 부산일보의 〈산복 빨래방〉을 호평한 까닭이 있다. 포털에서 트래픽을 노린 변칙이 횡행하는데 일부 지역 CP가 동조하고 있어서다. 지역 목소리를 강조하는 지역 언론이 포털에 들어와서는 수도권 뉴스와 흥미 위주 뉴스를 앞세워 클릭을 얻는 것에 급급하는 모순적인 행태를 보인다. 그러니 저널리즘에 충실한 〈산복 빨래방〉 같은 뉴스는 모범 사례다.
포털 알고리즘으로 인한 폐해, 흥미 본위의 뉴스 과다로 인한 저널리즘의 하향 평준화와 함께 지역 뉴스의 왜소화는 지역 CP 등장 이후에도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는다. 이 때문에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가 잇따른다.
지난달 한국지역언론학회 세미나에서 ‘지역 공공 뉴스 포털 구축’이 제안됐다. 동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김대경 교수는 “포털에서 지역 신문의 존재감은 미미할 수 밖에 없다”고 전제하고 “부울경 등 광역권 별로 공공 포털을 구축하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앞서 한국언론진흥재단도 ‘디지털 뉴스 유통구조 개선을 위한 포럼’을 통해 세미나를 개최하고 공적 기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뉴스 포털 구축의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포털 뉴스의 폐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그리고 새로운 공공적 뉴스 포털의 필요성 담론이 제기되는 것은 다행스럽다. 여전히 뉴스가 필수적인 공공재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대감에 대해 언론인들의 어깨는 한층 무거워져야 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지역 언론은 분발해야 한다.
한국 언론의 최대 맹점은 포털의 기술과 집객력에 종속된 채로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는 데 있다. 포털 사용자 정보(user data)를 얻지 못한 채 뜨내기 독자를 상대하다 보니 저품질로 추락하고 신뢰마저 잃었다.
따라서 외부 플랫폼이 아닌 자사 뉴스 사이트에서 온라인 독자와 만날 준비를 해야만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 웹3.0(블록체인·NFT)과 메타버스(AR·VR·XR) 시대에 살고 있는 뉴스 사용자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는가 자문해 보면 된다.
만약 충성 독자를 상대로 한 퀄리티 뉴스 서비스 체제로 혁신하지 못 한다면? 기존 포털 뉴스에 얹히든, 새로운 공공적 뉴스 포털에 참가하든 영원히 뜨내기 독자를 상대해야 한다. 그곳에는 저품질 뉴스, 하향 평준화의 외길이 기다리고 있다.
2022-08-09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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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디지털 광장] 탈포털 시대, 지역 언론의 경쟁력
한국에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가 있다면 일본엔 ‘마스고미’가 있다. 마스코미(매스컴)와 고미(쓰레기)가 합쳐진 말이다. 번듯한 언론사가 돈을 받고 홍보 자료를 기사로 위장하거나 페이지 뷰를 노린 저급한 기사를 쏟아 내는 바람에 생겨난 조롱이다.
미국도 가짜 언론이 골칫거리다. 소고기 부산물에 암모니아수를 섞어 만든 식품 첨가물 핑크 슬라임(Pink-slime)을 빗댄 신조어 ‘핑크 슬라임 저널리즘’까지 등장했다. 가짜 소고기처럼 가짜 언론이라는 비유다. 대체로 지역 신문이 폐간된 곳에 새로 생긴 인터넷 매체다. 극우 성향을 띠고 인종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는 선동에 골몰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포털 뉴스 유통 독과점만큼
수도권 여론 독과점도 나빠
저널리즘 위한 포털 규제와
지역 언론의 경쟁력 강화
균형 잡힌 언론 정책 필요
인터넷에서 진지한 뉴스, 즉 저널리즘의 퇴조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소수의 검색 플랫폼(포털)이 뉴스 트래픽을 압도하는 한국은 그 폐해가 단연 최악이다.
한국은 전 세계 주요 46개국 중 언론사 뉴스 사이트 이용 비율은 꼴찌, 포털과 SNS 이용은 반대로 1위다. 외부의 거대 플랫폼이 디지털 공론장 기능을 수행하고 뉴스 생태계를 좌지우지하는 사이 뉴스를 원천 생산한 언론사 사이트는 위축되고 지체를 거듭한다.
흥미 기반의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 포털과 SNS에서 심층적이고 긴 호흡의 콘텐츠는 추천 순위에서 밀린다. 자극적인 단타 기사들이 득세하는 온라인에서 언론은 사용자(user)로부터의 신뢰를 잃고 기레기 프레임에 갇힌다. 동시에 사용자들은 사회의 중요한 이슈에 접근할 기회를 잃는다. 뉴스 사용자들은 저널리즘 약화의 가장 큰 피해자다. 문제는 그 과정과 결과가 부지불식간에 이뤄진다는 점이다. 포털 알고리즘이 사회적 통제 밖에 있어서다.
알고리즘으로 인한 저널리즘의 쇠퇴는 공론장을 왜곡하고 건전한 여론 형성을 저해한다. 급기야 알고리즘 규제가 정치 의제로 떠올랐다.
지난 4월 국회에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포털의 기사 추천과 배치를 금지하고, 기사를 선택하면 해당 언론사 사이트로 이동하는 아웃링크를 강제하는 내용이다. 또 포털 뉴스 유통을 모든 언론사에 개방하고 검색 서비스 위주로 운영되게 한다는 것이다.
이 법안에 민주당 의원 전원이 이름을 올렸다. 윤석열 정부도 인수위 시절부터 점진적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으나 대체로 같은 입장이다. 포털의 뉴스 독점 폐해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보기 드문 여야 공감대다.
한데, 시민단체나 학계, 언론계 반응은 조심스럽다. 개정안의 문제 의식에 수긍하면서도 환영의 목소리는 작다. 신문법을 통한 진흥 대신에 정보통신망법을 앞세운 규제가 초래할 부작용, 저품질 기사의 난립, 검색 서비스만 남겼을 때 뉴스 유통 위축을 내심 우려한다.
지역 언론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걱정이 앞선다. 포털에 입점하는 언론사를 심사하고 규제하던 기존의 규칙이 없어지고 무한 경쟁 체제로 바뀌면 대형 매체만 승승장구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예컨대 올해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온라인 유료 회원의 증가로 1000만 독자를 돌파했다. 일본의 닛케이(일본경제신문)는 올해 온라인 유료 회원 80만을 확보했다.
이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는 수많은 지역 신문의 폐간, 감원, 경영 악화가 있다. 자본과 기술력에서 뒤처지는 지역 언론이 경쟁에서 밀려 도태되는 사이 거대 중앙 언론사만 몸집을 불린 것이다. 소수의 언론사가 얻은 경이적인 수치가 빛이라면 대다수 독자들에게 주어진 ‘핑크 슬라임’과 ‘마스고미’는 어둠인 셈이다.
한국에서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뉴스 유통이 무한 경쟁 상태로 바뀔 경우 정보와 인력, 자본과 기술 모두 우위인 소수의 서울 대형 매체에 유리한 상황이 될 것이다.
서울의 대형 언론사는 탈포털에 대비해 왔다. 콘텐츠 브랜드화와 구독 모델에 공을 들였다. 반대로 대다수 지역 매체들은 온라인 뉴스 플랫폼으로서의 경쟁력이 취약하다. 유료 회원과 뉴스 트래픽이 소수의 중앙 매체에 쏠릴 것을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 결과 힘없는 지역 매체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수도권 시각의 주장만 크게 울려 퍼지는 중앙 집권적인 여론 지형이 공고화될 것이다. 포털의 뉴스 유통 독과점만큼 수도권으로 기울어진 여론 독과점도 나쁘다.
뉴스 유통에서 탈포털은 시대적 과제다. 저널리즘을 회복하려면 불가피하다. 다만 규제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초래해서는 안되는데, 그중에 지역 언론의 위축은 피해야 한다.
저널리즘을 회복하기 위한 포털 규제와 지역 언론 진흥에 균형 잡힌 접근법이 필요하다.
2022-06-3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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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디지털 광장] 뉴스레터를 읽는 그대
주변에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이가 은근히 늘었다. 젊은 층을 겨냥한 ‘뉴닉’과 ‘어피티’의 성공은 ‘스팸의 온상’으로 비치던 전자 메일의 부정적 인식을 바꿔 놓았다. 뉴스레터가 뭔가 요긴하고 재밌는 정보를 담은 것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 언론사들도 앞다퉈 뉴스레터를 내놓고 있다. 뉴욕타임스(NYT)가 뉴스레터를 앞세운 구독 모델 전략으로 성공한 것이 자극제가 됐다. NYT는 무려 80개가 넘는 뉴스레터를 운영하고 있고, 이 중 일부를 유료로 전환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뉴스레터 부상하는 까닭은
온라인 하향평준화된 뉴스 대신
정제된 진지한 뉴스 수요 존재
한국 언론은 포털 탓만 말고
단골 독자에 고품질 뉴스 제공해야
저널리즘 미래는 신뢰 회복에 달려
포털이 뉴스 유통을 장악하고 있는 한국에서 언론사들은 뉴스레터를 탈포털로 가는 탈출구로 받아들이고 있다.
뉴스 사이트에 구독 모델을 구현하는 데 필수 요소인 '충성 독자'를 뉴스레터 수신자를 통해 얻으려는 전략이다. 다루는 주제도 시사 현안에 한정되지 않고 레시피나 주식 정보 등 전방위적이다.
언론사가 뉴스레터에 ‘제품(product)’ 개념을 적용해 출시 전 기획과 차별화된 서비스 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낯설지 않게 됐다.
뉴스레터 서비스란 구독자가 선택한 주제와 형식의 뉴스를 큐레이션해서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언론사는 그날 발행한 수백 가지의 뉴스 중 간추린 것을 다시 한번 더 압축해서 메일을 띄운다.
그러다 보니 뉴스의 폭이 좁아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뉴스의 다양성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메일함 열어 보는 시간에 차라리 해당 언론사의 뉴스 사이트에 가서 둘러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포털과 SNS에서 제공되는 뉴스 서비스에는 조회 수와 댓글, 좋아요 따위의 반응이 넘쳐 난다. 이러한 쌍방향성은 부정적 기능에도 불구하고 공론장 기능을 수행한다.
그런데, 뉴스레터로는 실시간 댓글이 불가능하다. 발행된 이메일 형태로 배달되기 때문에 일방향인 것이다.
포털과 SNS, 동영상 공유 플랫폼에서는 실시간으로 여러 언론사를 옮겨 다닐 수 있지만 전자 메일의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뉴스레터는 구식에다 불편한 서비스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전자 메일은 인터넷의 태동과 함께 시작된 것이니 지금까지 감춰져 있던 매력이 새로 나타났을 리 없다. 스마트폰과 SNS로 실시간 검색, 정보 교환이 가능한데 굳이 PC를 켜서 메일함을 여는 게 구닥다리로 여겨질 법도 하다. 그런데도 한물간 것처럼 여겨지던 뉴스레터가 새삼 주목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뉴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뉴스레터 구독은 시간과 공이 많이 드는 행위다. 해당 뉴스레터를 수신하려면 뉴스 사이트에 개인정보를 내놓고 로그인해야 한다. 선호하는 주제를 선택해야 하고, 정기적으로 메일함을 열어 보는 수고가 동반된다. 상당히 목적의식적인 행동인 것이다.
이러한 번거로움을 감수하게 만드는 이유를 뉴스에 대한 신뢰에서 찾고 싶다. 숙련된 저널리스트에 의해 선별된 뉴스는 읽어 볼 가치가 있다는 관념이 작동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온라인에 넘쳐 나는 공짜 뉴스로는 채워지지 않는 ‘진지한 뉴스에 대한 허기’가 존재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 포털이나 SNS에서 뜨내기 독자가 되어 접하는 하향평준화된 뉴스 대신 저널리스트가 공들여 정제한 뉴스를 원하는 독자층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 대목에서 언론사는 저널리즘의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난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뉴스레터를 선택할 자세가 되어 있는 독자층이 존재하는 것이 확인됐고, 이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을 찾을 수 있어서다.
한국 언론은 검색 플랫폼(네이버, 다음)에 무임승차해 뉴스 트래픽을 얻었지만 독자와의 접점은 놓치는 실수를 범했다. 포털에서 뉴스가 소비되면 그 이용자는 포털 이용자일 뿐 뉴스를 생산한 해당 언론사의 독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포털은 언론사에 이용자 정보(user data)를 공유하지 않아서 포털 뉴스 소비자는 영원한 뜨내기 독자일 뿐이다.
뜨내기 독자가 범람하는 포털 뉴스 생태계는, 문자 그대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 언론은 뉴스레터 독자의 부상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단골 독자를 찾아내고 고품질의 뉴스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독자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독자와의 접점을 찾는 것에 저널리즘의 미래가 있다.
2022-05-24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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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디지털 광장] 웹3.0과 뉴스의 미래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TV 채널이 CNN에 멈추는 일이 잦아졌다. 현대사의 주요 현장에 CNN 카메라가 있다는 오랜 관념이 작동한 까닭이다. 아비규환의 현장을 가감 없이 24시간 생중계한다! 그간 CNN이 내세운 강점이다. 걸프전 때도 그랬고, 9·11 뉴욕 테러와 이라크 전쟁도 마찬가지.
그런 고정관념이 낡았고, 케이블방송도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CNN이 지난달 29일 출시한 뉴스 스트리밍 서비스 CNN플러스의 맥락을 곱씹으면서다. 디지털 전환의 물결에 떠밀려 내놓은 고육책이리라. 뉴스 미디어로서의 동병상련까지 느꼈다.
케이블 퇴조 CNN까지 OTT
미디어 패러다임 격변 중
AI·메타버스 뉴스 시대 성큼
전 세계 언론사 도전적 실험
뉴스의 미래는 신뢰와 기술
한국 언론 이중고 풀어야
케이블 뉴스의 대명사 CNN. 케이블 뉴스 네트워크의 머리글자를 딴 사명에서 알 수 있듯이 태생이 유선 방송이다. 공중파 뉴스 독점을 깨고 케이블 전성시대를 열어젖힌 주역이다. 그런데, 요즘 시청자들은 유선(케이블)을 떠나 무선(모바일)의 세계로 옮겨갔으니!
한국에서도 시작된 현상인데, 미국에서는 유선 방송을 끊고 모바일 기기나 스마트TV만을 이용해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즐기는 코드 커터(Cord Cutter·탈케이블)족이 급증했다. 2021년 CNN 시청자 중위 연령이 64세라는 통계에서 이탈 현상이 읽힌다. 경쟁자인 폭스뉴스와 MSNBC가 68세인 것에 비해 “아직 네 살 젊다”고 안도할 처지가 아니다. 그래서 CNN플러스는 과감하게 선을 넘었다. 케이블 밖으로 나간 젊은 시청자를 찾아 나선 것이다.
레거시 미디어(신문·방송과 같은 전통 매체)를 위협했던 케이블TV마저 디지털 전환의 급물살에 떠내려가고 있다. SNS와 유튜브, 틱톡뿐만 아니라 수많은 OTT(Over the Top·인터넷을 통한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다.
디즈니까지 TV와 영화관을 패싱한 채 시청자에 직접 애니메이션을 전송하는 디즈니플러스를 내놓은 참이다. 미디어 경계가 허물어지는 데 그치지 않고 콘텐츠와 플랫폼까지 혼종되는, 그야말로 패러다임이 격변하는 중이다.
구독 경제·모바일 온리· OTT…. CNN플러스, 혹은 디즈니플러스의 OTT 진출에 디지털 전환 시대 미디어의 고민이 오롯이 담겨 있다. 뉴스 미디어의 곤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웹3.0(블록체인·NFT)과 메타버스(AR·VR·XR)라는 험산이 버티고 있어서다.
구글과 애플이 구축한 중앙 제국(웹2.0)에 종속되지 않고 분산·암호화에 의해 사용자들이 해방된다는 웹3.0의 이상은 거룩하다. 하나, 웹3.0을 장밋빛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분산의 명분으로 시작했어도 권력은 종국에 중앙 집중으로 흐르기 십상이어서다. 핵심은 이들 기술이 이미 우리 생활과 경제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일 미국 텍사스대에서 열린 온라인 저널리즘 국제 심포지엄(2022 ISOJ)에 화상으로 참가했다. “웹3.0과 메타버스가 언제, 어떤 영향을 저널리즘에 미칠 것인가”라는 주제 발표에 눈길이 갔다.
이날 핀란드 뉴스 매체 〈일(Yle)〉이 소개한 자신들의 인공지능(AI) 뉴스 추천 앱 보이토(Voitto)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조깅에 나서려는데 잠금 화면 상태였던 휴대폰 스피커가 스스로 켜진다. “흥미로운 뉴스가 있어요. 신경과학자들이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답니다!” “고마워. 재밌겠네. 뛰면서 들을게.” 신발 끈을 묶고 헤드폰을 끼자마자 보이토는 음성으로 뉴스를 읽는다.
보이토 앱은 개인 관심 뉴스를 자동 추천하는 것에서 나아가 뛰는 상태를 인지하고 영상이나 긴 뉴스는 빼고 짧은 뉴스만 음성으로 들려주는 고도화된 기능을 갖추고 있다. 머신러닝과 저널리즘이 통합된 조직이 뉴스 서비스를 기획한 결과다.
USA투데이는 인터랙티브, 몰입형, 3D 콘텐츠가 뉴스의 미래라는 전제하에 뉴스 콘텐츠에 메타버스를 접목하고 있다. 증강현실(AR)을 적용한 코로나 뉴스는 마치 게임 속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살렸다. 1961년 흑인 민권 운동을 재조명하는 기사는 반응형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제작되어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에서 주목을 받았다.
미래지향적인 뉴스 실험을 접하면서, 한국의 현실이 겹쳐 떠올랐다. 한국 뉴스 매체는 웹3.0과 메타버스의 파고를 뚫어 낼 수 있을까? 그에 앞서 포털 종속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일〉 뉴스랩의 자르노 코포넨 국장 발표의 결론부에서 인용하면 이렇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다. 저널리즘이다.” 첨단 기술은 대응하면 되나 저널리즘의 신뢰는 잃으면 회복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신뢰와 기술. 이중고에 처한 한국 언론이 풀어야 할 숙제다.
2022-04-1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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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디지털 광장] 나는 구독한다, 고로 존재한다
목하 방송 중인 KBS2 드라마 〈신사와 아가씨〉. 이제 시청자들은 정규 방송을 놓친다 해도 걱정하지 않는다. 웨이브(wavve)에서 다시보기가 가능해서다.
JTBC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은 티빙(TVING)에서 VOD(다시보기)뿐만 아니라 실시간으로도 볼 수 있다.
물론 이들 다시보기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월정 요금을 내고 구독해야 한다.
콘텐츠, 소비재, 서비스 등
‘구독 모델’ 생활 경제 확산
웹3.0, 메타버스도 구독 기반
미래는 ‘구독 경제’가 대세
인류는 ‘구독하는 인간’
‘호모 서브스크립토’ 진화 중
한데, 웨이브에 가면 〈기상청 사람들〉을 볼 수 없고 티빙은 〈신사와 아가씨〉를 제공하지 않는다. 웨이브가 SK와 지상파 3사, 즉 통신-방송 연합체인 반면 티빙이 CJ ENM-네이버-JTBC 합작이라는 경쟁 구도여서 그렇다.
하지만 왓차플레이, 쿠팡플레이, KT의 시즌, LGU+의 U+모바일에 가면 웨이브와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가 전방위적으로 서비스된다. 해외 콘텐츠에 강점이 있는 넷플릭스조차 일찌감치 유통 파트너십을 체결해 국내 콘텐츠를 서비스하고 있다. 여기에 유튜브 프리미엄, 애플tv, 디즈니 플러스까지 가세했다.
이른바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한 TV 서비스) 전성시대다. 통신과 콘텐츠를 모두 집어삼킨 OTT는 대체 불가한 생활필수품이 되고 말았다.
OTT 홍수 사태는 현명한 콘텐츠 소비자가 스스로를 진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어떤 OTT 조합을 선택할 것인가! 대체로 복수의 OTT를 선택하기 마련인데, 취향에 맞으면서 가장 경제적인 구독 조합을 찾는다. 취향에 맞는 서비스를 돈을 지불하고 이용하기 때문에 비용과 만족이라는 경제학적 효용 이론이 적용되는 대목이다. 수동에서 능동 소비로 전환되는 점에서는 콘텐츠 소비자의 진화로 해석할 수 있다.
무제한 스트리밍을 앞세워 OTT 시장을 개척한 넷플릭스로부터 시작된 ‘정기 구독’의 습관이 모든 생활 경제 영역으로 확장됐다는 것에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 때문에 현생 인류는 구독 플랫폼 중에 선택하는 훈련을 통해 진화하고 있다.
예컨대 신간 오디오북이나 신곡 음원을 월정 구독해서 듣거나, 면도기를 구매한 뒤 면도날을 정기 배달 받는 것이 낯설지 않은 세상이다. 생수나 전통주, 꽃, 영양제 등 소소한 생필품을 정기적으로 배달 받는 것은 흔해졌다.
심지어 자동차 판매에까지 구독 서비스가 차용되고 있다. 헬스클럽이나 카페, 주점에서 월정 구독 마케팅을 도입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구독 모델의 원조인 신문도 온라인 플랫폼에서 막강한 구독층을 거느린다. 예컨대 네이버 뉴스 채널에서 〈부산일보〉 구독자는 200만에 육박한다. 뉴스사이트 부산닷컴(busan.com)과 뉴스 앱, 페이스북, 유튜브 채널에는 각각 서로 다른 충성 독자가 부산일보 뉴스를 구독하고 있다.
뉴스레터 구독의 부상도 특징적이다. 모바일 화면에서 손쉽게 읽히는 유통의 편리함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무려 81개의 뉴스레터를 운용하고 있고 고정 독자가 충분히 확보되면 유료로 전환하고 있다.
비용과 만족의 관점에서 유료 뉴스레터에 지갑을 여는 정기 구독자층이 형성됐다는 의미다. 국내 언론사들이 앞다퉈 뉴스레터 독자 확보에 힘을 쏟고 있는 까닭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언론사가 아닌 곳에서 다양한 주제의 뉴스레터가 생산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구독 서비스를 통해 일상이 영위되고 만족까지 얻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른바 ‘구독 경제’다. 웹3.0(블록체인/NFT)과 메타버스(AR/VR/XR)가 주도할 미래의 일상도 구독 기반으로 움직일 것은 자명하다. 구독 경제가 한층 확장되어 지배적인 경제 모델이 될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이제 구독 행위는 단순한 소비 활동에 그치지 않는다. 구독하는 행위에 정체성이 입혀지기 때문이다.
음식 관련 격언에서 음식 대신 ‘구독’을 넣어, ‘무엇을 구독하는지 알려 주면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 주겠다’로 요약할 수 있겠다. 구독 리스트가 정체성에 직결되고, 존재론적 의미로 확장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인류는 스스로를 동물과 구별짓는 특징으로 ‘직립(호모 에렉투스)’이나 ‘도구(호모 파베르)’에 이어 ‘생각’(호모 사피엔스)과 ‘유희(호모 루덴스)’를 사용했다.
이 리스트에 하나를 추가하고자 한다. 호모 서브스크립토(Homo Subscripto), 즉 구독인(購讀人)이다.
현생 인류는 구독하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 구독 선택에 따라 퇴보와 진보가 엇갈리는 세상이 다가온다.
2022-03-15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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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디지털 광장] 뉴스 서비스가 '제품'이 되는 시대
‘저널리즘이 제품이란 말인가?’
연전에 홍콩의 영자 신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본사를 방문했을 때 뉴스 서비스를 ‘제품(Product)’으로 호칭하는 것을 보고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SCMP는 창간 120년이 다 된 관록의 신문. 한데, 2015년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인수한 뒤 극적인 디지털 혁신을 단행해 전 세계 신문업계의 주목을 받은 터였다. 그 성과를 둘러보러 간 자리에서 귀를 의심했던 대목이 새 뉴스 서비스를 ‘신제품’으로 부를 때였다.
온라인 독자 요구 수집·분석
뉴스에도 ‘제품 기획’ 개념 도입
뉴욕타임스 1000만 독자 견인
포털 탓만 하며 기술 혁신 방기
한국 언론 디지털 경쟁력 퇴행
새로운 발상으로 새 독자 만나야
SCMP는 당시 ‘아바쿠스(주판)’ ‘잉크스톤(벼루)’ ‘골드트레드(금실)’를 론칭한 참이었다. ‘아바쿠스’는 중국 기술 산업 전문 매체, ‘잉크스톤’은 중국 뉴스 큐레이션 앱, ‘골드트레드’는 중국 문화 소개 영상 서비스였다.
“뉴스 사이트 독자 외에 새로운 독자층을 개척하기 위해…소규모의 팀을 만들어서…새로운 뉴스 제품(News Products)을 출시하는데…성과가 미미하면 바로 접습니다.”
4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SCMP의 알짜 콘텐츠가 되어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소비자의 니즈(요구)에 맞춘 출시 전략이 적중해 시장 안착에 성공한 셈이다.
기업이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때는 타깃 소비자를 정하고 경쟁 제품과의 비교 우위를 따진다. 이 개념이 뉴스 서비스에 차용됐다고 보면 되겠다. 저널리즘도 사용자(User)의 반응, 다르게 말하면 충성 사용자를 거느려야 존립하고 나아가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미국 하버드대 저널리즘 연구기관인 니먼랩이 발표한 〈2022년 저널리즘 전망〉 서두에는 “저널리즘을 재정적으로 지탱할 비즈니스 모델은 없다”면서 “사람들이 비용을 지불할 만한 저널리즘 제품(Journalism Products)을 지원하고 효율성을 개선하는 비즈니스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중점을 두라”고 되어 있다.
뉴스 서비스에 ‘제품적인 발상(Product Thinking)’을 접목하려는 언론사가 늘어나 ‘제품 관리자(Product Manager)’도 생겨났다. ‘제품 접근법이 저널리즘을 지킬 수 있다’는 공감대를 가진 이들이 ‘뉴스 제품 연합(News Product Alliance)’을 결성하고 노하우를 공유, 전파하고 있다. 미국 대학에는 ‘미디어 제품 관리(Media Product Management)’가 커리큘럼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뉴스가 제품이 된 시대의 의미를 곱씹게 된 계기는 뉴욕타임스(NYT)의 유료 독자 1000만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NYT는 지난 2일 지면 80만 외 온라인 독자의 증가로 합계 1000만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압도적인 수치를 짐짓 무시하고 기사를 읽다 성공의 비결이 숨은 대목에서 무릎을 쳤다.
“지난해 4분기에 신규 온라인 구독자가 37만 5000명 늘었는데, 이 중 17만 1000명이 핵심 뉴스 제품(Core News Product)에서 나왔다.”
여기서 ‘뉴스 제품’이란 ‘쿠킹(레시피)’ ‘크로스워드(낱말 맞히기 퍼즐)’ ‘와이어커터(신제품 후기)’ 그리고 신문 기사를 읽어 주는 ‘Audm’ 등 NYT의 자매 유료 플랫폼이다.
NYT는 뉴스 사이트 밖 독자 확장을 위해 ‘신제품’을 꾸준히 늘렸고, 이를 ‘제품 담당 부사장’이 진두지휘한다. 이런 점에서 NYT는 신문사라는 정체성을 벗고 ICT(정보통신기술) 기업으로 전환했다고 보는 것이 마땅하겠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현기증이 일었다. 검색 플랫폼(포털)과 소셜 플랫폼(페이스북 등)이 뉴스 트래픽을 독점하는 국내 환경이 겹쳐 떠올라서다.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전 세계 46개국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언론사 사이트 이용 비율은 꼴찌, 포털과 SNS 이용은 거꾸로 1위다. 이는 뉴스를 생산한 언론사 홈페이지는 왜소화되는 한편 외부 플랫폼 종속이 심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언론사가 포털에 입점해 뉴스 구독자 1000만 명을 얻어도 이는 포털의 사용자일 뿐 언론사가 가질 수 있는 사용자 정보(User Data)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 보면 한국 언론사는 압도적인 트래픽을 가진 포털에 얹혀 노출 효과를 누리기만 하고 정작 자체 뉴스 사이트의 경쟁력 강화를 외면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한국 언론이 스스로의 플랫폼으로 유료 독자 확보와 유지에 한계에 달했다는 것은 자명해졌다. 새로운 사용자들은 지면 밖 모바일 세상으로 옮겨 갔기 때문이다. 그 모바일 온리 환경은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한 ‘주목 경쟁’이 벌어지는 곳이다.
저널리즘의 본령은 지켜져야 한다. 그 가치를 바꾸고 싶지 않다면, 신제품을 내놓고 새 독자와 만나는 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본령을 바꾸고 싶지 않기 때문에, 방편을 바꾼다는 자세로.
2022-02-08 [18: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