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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2025년 해운·조선산업의 기회와 도전
개인이나 조직은 목표를 세워 앞으로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예측 가능성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25년은 불확실성 속에서 시작됐다. 정치·경제적으로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트럼프 정부는 미국 우선주의를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각국은 자국 내 혹은 자국 근처에서 제품을 생산하려는 경향이 강해졌고, 이로 인해 국제무역은 줄어들었다. 각국의 수출이 줄어들면 선박을 통한 운송 수요도 감소하고 이는 결국 선박 건조 수요의 감소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 해운과 조선업은 상황이 다르다. 상품의 수요와 공급 외적 요소들이 우리를 도와준다. 조선업은 LNG 혹은 메탄올 추진선 건조와 같은 탈탄소화 관련 신조선 수요가 발생하면서 3년 치 건조량을 확보했다. 또한 자율운항선박이라는 미래의 새로운 분야도 있어 조선업은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미국이 해양력 강화를 위한 정책을 지난해 추진키로 하면서 우리 조선소는 미국 군함의 수리보수와 건조를 맡을 기회를 얻게 됐다. 지난해 12월 미국 의회는 미국 내 조선소를 부활시키고 미국 소유 상선대를 보강하는 법안(조선해운 인프라법)을 제출했다. 미국은 향후 10년간 전략상선대를 250척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탈탄소화 관련 신조선 수요 발생
미국 해양력 강화에 기회 확장
선박 공급 과잉… 운임 급락 전망
선원 육성 등 국가적 지원 필요
전략상선대는 평시에는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되다가 전시에는 물자 수송에 동원되는 선박을 말한다. 미국 선주들이 이 선박들을 전략상선대에 편입하려면, 미국에서 건조되고 미국 선원이 승선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미국 조선소는 상선 건조 능력이 부족해 외국에서 건조한 선박도 임시 선박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이는 우리 조선소에 기회다. 특히 중국에서 건조된 선박은 제외되기에 실질적으로 일본과 우리나라만이 경쟁을 하게 된다. 100여 척의 건조 수요가 기다리고 있는데, 척당 건조가를 2000억으로 보면 총 20조 원의 매출이 예상된다. 올해부터 수주가 시작될 전망이다. 다양한 선종과 크기의 선박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돼 부산, 울산, 경남 지역 대형 및 중형 조선소와 기자재 업체들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2024년에는 수에즈운하가 막혀 선박들이 남아프리카로 우회해야 했고, 이로 인해 선박 수요가 약 15% 증가하며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해 운임이 크게 상승했다. 그러나 올해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이 성사되면서 후티 반군의 상선 공격이 중단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회하던 선박들이 다시 수에즈운하를 이용하게 돼 유럽으로 가는 항해 거리가 단축되고, 상품 수요에 비해 선박 공급이 많아져 운임은 급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 인해 정기선사들 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며, 경쟁력이 없는 회사들은 도산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따라서 화주와의 장기계약 체결을 통해 안정적인 화주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며, 적자를 견딜 수 있는 재력도 필요하다. 다행히 우리나라 외항 해운선사들은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코로나19와 홍해 사태를 겪으면서 운임이 상승하고 수익이 증가했다. 해운사들은 한 척당 70~90%까지 대출을 받아 선박을 건조해왔고, 벌어들인 현금으로 부채를 많이 갚아 재무구조가 튼튼해졌다. 특히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은 비축된 유보금으로 불경기를 견딜 수 있는 상태여서 안심이 된다. 게다가 미국의 전략상선대는 임시선박을 허용하기 때문에 우리 선주들이 미국의 선주들에게 선박을 빌려주거나 매각할 수 있다. 250척 중 상당 부분이 이런 형태일 것이다. 중국 회사가 소유하거나 운항한 선박은 제외되므로 우리 선주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선박 운항에는 선원들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인구 감소와 선원직 기피 현상으로 선원을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우수한 해기사를 국가에서 양성하는 시스템이 잘 정착돼 있다. 미국은 전략상선대를 갖추기 위해 선원이 필요함을 인식했다. 이번 법률 개정의 3분의 1은 선박에서 근무할 해기사를 양성하는 내용일 정도로 인력 양성을 중요하게 다룬다. 늦은 감은 있지만, 미국은 연방상선대학(한국해양대 해사대학에 해당)과 4곳 주립해양대의 학생수를 늘리고 7년 이상 미국 선박에 근무하는 선원에게는 연방정부에 경쟁 없이 취업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이를 위해 독자적인 예산도 마련했다. 한국해양대와 목포해양대는 통합을 추진해 ‘글로컬 30’에 선정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미국의 조치가 이 과정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불확실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2025년, 조선과 해운은 긍정적 요소를 가지고 출발한다. 조선과 해운 강국이었던 미국이 현재의 열악한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 입법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해운과 조선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으로 선박 건조 능력, 해운회사 및 선원의 육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2025-01-2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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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바다의 도시, 부산의 바닷길을 열자
예전 가족과 함께 살았던 호주 시드니의 추억은 언제나 ‘수상버스’와 함께 떠오른다. 시드니 중심에 있는 세계 최대의 선착장 달링하버는 200년 역사의 항구를 재개발한 곳인데, 여기서 수상버스 페리를 타고 10여 분 달리면 하버 브리지를 지나 밀슨스 포인트 터미널에 닿는다. 박태환 선수가 훈련하던 노스올림픽수영장과 테마파크인 루나 파크가 있는 그곳은 오페라하우스를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이다. 황금빛으로 물든 하늘은 신만이 만들 수 있는 오묘함 그 자체였다.
‘오팔’ 교통카드 하나로 교통체증 없이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항구의 풍경에 빠져들곤 했다. 시드니는 남북을 잇는 교량과 터널이 부족해 출퇴근 때마다 인근 고속도로와 일반도로 모두 심한 정체를 겪는다. 반면 수상버스는 시간에 따라 정확히 움직이고 좌석도 넉넉하다. 시드니 시민에겐 수상버스가 완벽한 대중교통 수단이다.
유명 항만도시마다 수상버스 보유
부산, 예전 논의 불구 규제에 막혀
천혜의 조건 못 살린 현실 안타까워
수상버스를 타면서 한껏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골목을 걸으면서 단골 식당을 찾아가고, 테라스에 앉아서 음식과 함께 ‘바다와 햇살을 먹던’ 그 시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 밀슨스 포인트 터미널 인근은 다양한 레스토랑이 밀집해 현지인뿐만 아니라 관광객에게도 인기 있는 장소이다. 저녁 페리에 어떤 이는 관광객으로, 어떤 이는 퇴근하는 시민으로 한데 섞여 있다. 수상버스가 관광과 출퇴근의 좋은 교통수단이다. 또 도시 매력을 키우고 관광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 지역경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드니에서 수상버스를 탈 때마다 이렇게 매력적인 대중교통 수단이 왜 해양도시 부산에는 없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마침, 서울시가 한강에 ‘수상버스(River Bus)’를 띄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승객이 실신할 정도로 혼잡한 경전철인 김포골드라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 중 하나로 여겨진다. 행주대교 남단부터 잠실까지 약 30㎞ 구간에 급행과 완행 등 다양한 수상버스 노선을 짜고 있다고 한다. 시드니와 일본 도쿄, 미국 보스턴 등 해외의 수상버스와 페리를 벤치마킹해 국내에 적용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해양수도 부산에서도 2019년 해상택시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지방 규제혁신 토론회에서 부산시가 도선 운항 규제 개선을 건의했는데, 정부가 화답한 것이다. 행정안전부가 2해리(약 3.7㎞)로 제한된 만 해역의 도선사업 영업 가능 범위 규제를 풀도록 입법 예고하면서 부산에도 해상택시 시대가 열리는 듯했다. 당시 부산시 안에 따르면 기존 선착장인 암남항·남항·북항·영도·동백섬 등 8곳을 중심으로 48개의 코스가 계획됐다. 만약 곧바로 수상버스를 추진했다면 부산의 교통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었고, 나아가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효과도 거뒀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계획은 온갖 규제에 묶여 지금껏 감감무소식이다.
부산에서 수상버스의 도입과 안착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법과 행정의 협조가 절실하다. 해양수산부, 부산항만공사, 해양경찰 등 관련 기관 간 조속한 행정 처리와 도선법 규제 완화가 시급하다. 시와 정부,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풀어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개발되는 노선은 관광객과 시민이 원하고, 수익도 낼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 해운대 미포~동백섬~수영강~광안리~용호만 일대 등 관광객이 몰리는 곳과 시티투어버스나 대중버스 노선을 연계하는 방안도 바람직하다. 또 수상버스를 시내버스 공영제처럼 대중교통 체계에 포함하고 민간 투자를 끌어내는 방법까지 고려해야 한다. 노선이 지나는 자치구 간 협력도 필수적이다.
안정적인 사업 진행과 수익의 지역 환원을 위해서는 거버넌스도 중요하다. 부산시 등 공공 부문과 지역 기업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수상버스가 제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도 민간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필수적이다. 민간과 공공의 협업을 통해 지역 자본을 축적하고, 지속 가능한 ‘로컬리즘’을 창출하는 것이 성공의 전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매력적인 도시는 ‘가장 로컬다운 곳’이다. 로컬다운 공간은 로컬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가 있는 이들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다. 부산만의 정체성을 고민하면, 수상버스야말로 부산의 훌륭한 콘텐츠가 될 수 있다. 해운대~수영강~민락항~남천항~용호부두~오륙도~북항~한국해양대~몰운대~가덕도신공항을 연결하는 바닷길은 부산의 다양한 매력을 발산하고, 많은 사람을 부산으로 오게 하는 좋은 자원이 될 수 있다. 그런 매력적인 교통수단이 부산에도 조만간 등장하길 바란다. 언젠가 이기대와 오륙도 풍광을 감상하면서 바로 옆을 스치듯 지나가는 요트, 윈드서핑과 함께 출퇴근하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대한다. 그 시간은 바다의 도시 부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일 것이다. 수상버스는 해양도시 부산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관광상품 역할을 할 것이다.
2025-01-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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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저널리즘이 죽어 가고 있다
정치판이 혼란하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말 그대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형국이다. 작금의 정치 상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크지만 언론학자의 입장에서는 사실 언론이 더 우려스럽다. 저널리즘이 죽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환경 변화로 인해 언론이 위기에 처한 지금의 상황에서 기성 언론은 스스로 구시대의 유물이 되는 길을 자처하는 듯하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주류 언론이 신뢰를 잃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뢰도 하락으로 유능한 젊은 기자들이 언론계를 떠나고 있고, 기성 언론을 외면하는 이탈자의 증가는 가히 기하급수적이라 할 만하다.
복수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한국과 미국에서의 언론 신뢰도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추락하였다. 지난해 10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4 한국’에 따르면 한국의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도는 31%에 그쳤다. 이는 미국, 일본, 핀란드 등 조사 대상 47개국 중 38위에 그친 순위이다.
언론, 갈등 증폭·국가 불안정 심화 보도
정치와 국민 매개 역할 불신·외면 자초
사실·의견 분리 않으면 신뢰 회복 요원
미국 여론 조사업체 갤럽은 지난해 10월 미국인의 3분의 1 미만만이 언론을 신뢰한다고 발표하였다. 퓨리서치센터의 지난 12월 조사에 따르면 미국 국민 4명 가운데 3명이 미국 언론의 보도가 편향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응답자의 77%가 미국 언론사가 사회 문제와 정치 보도에서 공정한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과 미국인 대다수가 뉴스 매체를 불신하고 있어서 정치적 분열 속에서 언론의 신뢰 회복이 주요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언론 신뢰도 하락의 주요 원인은 주류 언론의 정치적 편향성에 있다. 실제로 미국의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를 포함한 주류 신문이나 ABC, NBC, CNN 등의 주요 방송 매체들이 친민주당 성향이라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며, 이들은 좌파 진영의 기관지가 되었다는 노골적인 비판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앞서 소개한 미국의 갤럽 조사는 정당별 언론 신뢰도를 발표하였는데, 공화당 지지층 중 언론을 신뢰한다는 비율이 12%에 그친 반면, 민주당 지지층의 54%가 언론을 신뢰한다고 답하여 양당 지지층 간 큰 차이를 보였다. 조사 결과는 미국의 불균형적 언론 지형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기성 언론의 정치적 편향성으로 인해 사람들은 다른 정보를 찾아 팟캐스트, 유튜브, 블로그, 틱톡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소셜 미디어를 통한 뉴스 이용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미 대선 기간 중 소셜 미디어 엑스(X)는 기성 언론이 다루지 않는 대안적 정보 취득 경로가 되면서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4 한국’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뉴스 이용에 있어서 유튜브의 점유율이 47개국 평균 31%를 훨씬 웃도는 51%로 기록됐다. 정치 이슈를 다루는 국내 유튜버들은 사회적인 파장이 큰 이슈가 터질 때마다 영향력을 넓혀 왔는데, 이는 여러 이유 중에서도 기성 언론의 편향성에 대한 이용자들의 반작용에 기인하기도 한다.
기성 언론들이 자기편만 바라보는 태도에서 변화하지 않으면서도 언론이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유튜버들을 극우나 극좌로 명명하는 프레임이 언젠가는 부메랑이 되어 자신들을 향할 수 있음을 잠시 멈추어 서서 돌아보아야 할 때다. 기성 언론이 회생하는 길은 무엇보다도 저널리즘 원칙을 사수하는 데에 있다. 그것의 핵심은 사실과 의견의 분리 원칙이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 사실의 전달이 보도의 출발점이어야 하며, 의견은 반드시 객관적 사실을 기반으로 개진되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할 때 기자나 언론사들이 추종 세력을 확보할 수는 있을지언정 기성 언론으로서의 신뢰를 회복하기는 요원하다.
편향되지 않고 공정하고 정확한 보도의 근간인 사실과 의견의 분리라는 저널리즘 원칙을 지키기 위해 계속 정진하는 게 언론 본연의 역할이다. 이를 외면하고 진영 추종적 편향을 보이는 언론들이 서로 상대 언론을 향하여 공정과 불공정을 논하며 대결하는 것은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다.
옛말에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던가. 최근 정치와 국민 사이를 매개하는 언론의 태도를 보면 흡사 ‘말리는 시누이’ 같아 씁쓸하다. 혹여 기성 언론이 국민의 갈등을 증폭시키고 국가의 불안정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난장판인 정치판 못지않게, 이를 매개하는 언론을 보며 국민은 망연자실해진다. 언론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저널리즘은 죽어 가고 있는가.
2025-01-0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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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연말연시에 즐기는 겨울 생굴의 맛
어려운 경제 상황과 예측할 수 없는 정치적 격변 속에 2024년도 이제 딱 하루를 남겨놓고 있다. 늘 그렇듯 12월은 각종 송년회로 분주한 달이다. 한 해를 뒤돌아보며 주변 사람들과 친목을 다지는 자리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맛있는 음식이다. 지금 이때 딱 어울리는 해산물이 바로 겨울 굴이다. 겨울은 굴의 계절이다.
우리나라에서 굴 양식이 본격화한 시기는 정부의 장려 정책이 시작된 1960년대다. 굴은 크기가 작은 개체를 한 줄에 500개씩 꿰어 바다 수심 30m 아래에서 키운다. 사계절 내내 청정함을 자랑하는 통영과 거제 인근의 다도해는 겨울이면 살이 오른 탱글탱글한 굴을 내놓는다. 통영 굴은 부드럽고 풍부한 맛이 일품이다.
추위가 매서운 지금 통영의 바다는 더 뜨거워진다. 겨울이 돼야 농익는 통영의 대표 먹거리 굴을 채취하기 위한 어민들의 열기 때문이다. 전국 굴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통영 굴은 어민들에게 1년을 책임지는 바다 농사나 다름없다. 채취된 굴은 뭍으로 나오는 즉시 굴을 까는 작업장인 박신장으로 옮겨진다. 박신장마다 인원 규모는 다르지만 적게는 25명 남짓, 많게는 60명 이상이 작업을 한다.
기계로는 할 수 없는 작업은 사람의 손이 도맡는다. 수십 년 경력의 ‘통영 아지매들’의 손길 끝에서 굴은 보드라운 속살을 드러낸다. 굴은 갓 짜낸 우유에 비견할 만한 부드러운 맛뿐 아니라 겨울철 움츠러드는 우리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천연 종합영양제로 ‘바다의 우유’라고 불린다.
국내의 굴은 양식 굴과 자연산 굴로 나뉜다. 굴은 주로 남해와 서해에서 수확하는데, 조류가 거친 곳에서는 잘 자라지 않는다. 일찍이 서해안에서 굴이 유명했던 것도 그런 이유다. 대규모 굴 양식은 조류가 거칠지 않은 내해의 만에서 이루어진다. 통영과 거제, 여수는 이런 점에서 최적의 양식 장소다.
바다에서 생산되는 양식 굴은 ‘참굴’, 서해안의 갯바위에 붙은 것을 채취하는 굴은 ‘갯굴’이라고 한다. 또 강 하구에서도 굴이 수확된다. ‘강굴’ 또는 ‘벚굴’로, 봄이 제철이다. 겨울이 제철인 남해안 굴은 경남 통영, 고성, 거제, 마산 그리고 전남 여수를 중심으로 매년 10월부터 늦게는 이듬해 4월 말까지 5만 톤 이상이 생산된다. 전국 생굴 생산량의 절대량이 이곳에서 나온다.
채취된 굴은 모두 통영에 있는 전국 유일의 굴수하식수협을 통해 전국으로 보내진다. ‘수하식 굴’은 양식 굴을 말하는데 굴을 바다에 늘어뜨려 양식하는 방식이다. 이전에는 조간대가 넓은 서해안에서 투석, 지주식으로 주로 키웠다. 수하식 방식이 도입되면서 굴 주산지도 서해에서 남해로 바뀌었다.
천북 굴 단지는 서해 굴의 대명사다. 천수만 일원은 서해안 최대의 굴 산지다. 특히 충남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 포구는 80여 곳의 굴 전문점이 성업 중으로, 겨우내 굴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천북 굴이 유명한 것은 천수만의 풍부한 미네랄 덕분이다. 이 일대는 해·담수가 고루 섞인 개펄이 발달해 굴 서식에 좋은 곳이다. 많은 일조량도 최고의 별미를 만들어 준다.
우리나라 굴 생산은 수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통영 생굴은 수출 품목으로 인기가 높다. 농식품수출정보(KATI)에 따르면 국내 굴 생산량은 2019년 32만 톤, 2023년 31만 톤이었으며, 2024년산(작년 9월~올해 2월)은 28만 톤으로 전년보다 10.4% 줄었다. 또한 2023년 기준 한국산 굴의 전 세계 수출실적은 5597만 달러로 이 중 일본 수출액이 43%로 가장 많았다. 이어 미국, 홍콩, 대만, 중국 순이다. 이들 상위 5개국의 수출 비중이 압도적이다. 유럽은 아직 비중이 낮은 편이지만 향후 가능성은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굴은 주요한 수출 수산물로서 지역경제에 크게 기여를 하고 있다. 앞으로 건강식품으로 가치가 높아 생굴뿐 아니라 가공식품으로도 상품화가 필요하다. 지난달 해양수산부는 굴을 포함한 4대 수산물을 선정하고 다양한 가공 조리법을 통해 굴 수출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조만간 한국산 굴이 세계인의 건강식품으로 도약할 미래를 기대해 본다.
굴은 영양 만점의 식품이지만 먹을 때는 다소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 좋다. 노로바이러스 감염 등으로 인해 식중독 위험이 있어 잘 골라야 하고 섭취 방법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채취 해역의 물이 오염됐거나 위생 관리가 문제가 있으면 식중독 위험이 있어 신뢰할 만한 공급처에서 구매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굴을 ‘꿀’이라고 한다. 겨울이 깊어지는 지금 굴에는 달짝지근한 단맛이 난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와인 한 잔에 달짝지근한 통영 굴로 연말연시를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024-12-2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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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국가는 어떻게 실패하는가
‘혹자는 조선이 반드시 망한다고 했다. 조선을 망하게 한 자는 처음에는 중국인이고, 이어서 러시아인, 그 끝에 일본인이 있다. 그러나 정작 조선을 망하게 한 것은 조선인 스스로다.’
100여 년 전, 중국 사회개혁가 량치차오(梁啓超)가 조선 망국의 원인을 분석해 당시 언론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그는 조선이 내부 교란으로 망국에 이르렀다는 결론을 내린 뒤 그 책임을 정치 갈등과 사회 분열을 획책한 군왕과 지배계층에 돌렸다.
‘12·3 계엄’ 후폭풍에 경제 전반 악영향
해양산업도 마찬가지… 동력 잃은 듯
뺄셈 정치로 시대 오판 땐 미래 비관적
한국 정치적 갈등 선 넘어… 관리 시급
그때의 조선이 지금의 대한민국과 같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두 상황이 묘하게 겹쳐 보이는 것은 기우일까. 나라가 망하는 순간까지 이전투구를 일삼으며 사회 분열을 조장한 조선의 정치를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지나친 비관론일까.
2024년 갑진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푸른 청룡의 해’라며 국운 상승을 한껏 기대하게 만든 용꿈은 세밑의 기습적인 ‘12·3 비상계엄’으로 인해 전국민적인 악몽이 됐다. 계엄 후폭풍은 경제 전반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혼란이 없다”는 정부의 공언과 달리 증시와 외환시장은 이미 출렁이기 시작했다.
비상계엄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탄핵 정국이라는 더 큰 뇌관의 폭발로 이어졌다. 경제는 한순간에 정치의 종속변수로 전락했고 경제 주체들은 방향을 잃은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특수는 고사하고 새해 경기도 낙관하기 어렵다. 자영업자들은 망연자실한 상태이며 기업들은 신년 투자계획보다 정국의 향방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정부는 존재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대통령 권한대행조차 국회로부터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호통을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해양산업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글로벌 해운동맹 재편과 미중 무역 갈등 등 당장 헤쳐 나가야 할 현안이 수두룩하지만 어디에서도 추동력을 찾기는 힘들다.
진해신항 건설과 같은 중장기 투자, 각종 시급한 수산 정책, 해양과학과 연동된 스타트업 지원사업 등이 모두 동력을 잃은 듯하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경고는 정치적 수사로 끝나지 않았다. 부산항만공사 사장을 포함한 공공기관장 인사는 중단됐고 이는 부산항의 컨트롤타워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모든 게 ‘불안’에서 빚어졌다. 구체적으로는 정치적 불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불안 상황은 국민이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갈지 모른다. 계엄이나 탄핵과 같은 사건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처럼 예측하지 못한 불안이 ‘상수’가 될 때, 그것은 집단적 공포로 돌변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
도대체 정치란 무엇인가? 독일 정치·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는 저서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인의 치명적인 죄악으로 객관성과 책임성의 결여를 꼽았다. 가장 객관적인 시각과 강한 책임성이 요구되는 직업인데도 정작 현실 정치에서는 그런 면모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객관성 결여로 대의 정치는 진영논리에 푹 빠졌고, 책임성 결여로 여야는 국가 경제가 파탄에 이를 상황에서도 서로 남 탓만 일삼고 있다. 지금의 한국 정치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경제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의 저자인 기 소르망은 한국어판 서문 ‘두 개의 한국, 살아 있는 경제의 교훈’에서 남북한 두 체제를 극명하게 비교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런 애쓰모글루도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남북한을 성공한 국가와 실패한 국가로 나눴다. 소수 엘리트에게 권력이 집중된 ‘착취적 국가’ 북한은 거듭된 경제 정책의 실패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가 되었지만, 자유경제와 민주주의로 ‘포용적 국가’가 된 대한민국은 같은 시기에 세계 10대 무역 강국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처럼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의 결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는 없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런데도 덧셈 정치가 아닌 뺄셈 정치로 시대를 오판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낙관적이지 않다. 국민을 둘로 나누는 정치적 갈등에 대한 관리가 시급하다. 〈극한 갈등〉의 저자 아만다 리플리는 “갈등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고 봤다. 우리의 정치적 갈등은 이미 선을 넘었다. 비상계엄과 탄핵은 이러한 갈등을 방치한 관리 부재의 결과다.
늘 그랬듯이, 상생의 정치는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상대를 탓하기보다는 서로를 인정하고 의견을 겸허히 듣는 것으로 새해를 준비하면 좋겠다. 100년 전 조선 망국론이 다시 거론되지 않도록 말이다.
2024-12-2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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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미국은 왜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가 없을까
전 세계에 컨테이너 선사는 약 100개가 있다. 하지만 세계 양대 기간항로인 아시아~북미, 아시아~유럽 정기노선을 운영하는 선사는 10개에 불과하고, 이를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라고 한다.
컨테이너 선박은 전 세계에 약 6300척이 있는데, 이는 전체 상선(약 10만 척)의 약 6%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공산품 운송 대부분을 담당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글로벌 해상 공급망 혼란도 컨테이너 해상 운송에서 발생한 문제다.
해운업 특성상 '장기적 성장' 불가피
주주 위한 '단기 실적' 압박 땐 못 버텨
유럽은 직원·지역사회 관계까지 감안
기업 문화 차이가 지속 가능성 갈라
HMM은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 중 유일한 한국 국적이다. 전체 선복량 중 비중은 2.9%를 차지해 세계 8위 규모다. 상위 10대 글로벌 선사가 전 세계 컨테이너 선복의 약 85%를 차지하고 있다.
메이저 선사들의 국적은 스위스(MSC), 덴마크(머스크), 프랑스(CMA CGM), 중국(COSCO), 독일(하파그로이드), 일본(ONE), 대만(에버그린, 양밍), 한국(HMM), 이스라엘(ZIM)로 모두 9개 나라다. 대만만 유일하게 글로벌 선사 두 곳을 보유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세계 최대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에 글로벌 선사가 전무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컨테이너를 이용한 해상 운송을 최초로 도입한 나라는 미국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군수 물자를 효율적으로 운송하기 위해 컨테이너를 활용한 것도 미국 기업이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컨테이너 화물을 수입하는 국가도 미국이다. 그러나 미국에 글로벌 선사가 없다는 점은 아이러니라고 할 수밖에 없다.
세계 최초의 컨테이너 선사이자 1990년대 최대 컨테이너 선사였던 미국 국적의 시랜드(Sea Land)는 1999년에 덴마크의 머스크에 인수되었으며, 그 이후 미국 국적의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미국의 해운 규제, 높은 운영비, 미국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 변화 등 다양한 이유가 거론된다. 그러나 필자는 미국의 독특한 기업 문화에서 그 이유를 찾는 견해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미국 기업은 주주 가치 극대화를 기업 운영의 핵심 목표로 삼는다. 주가 상승과 이익률 개선은 최고경영자(CEO) 평가의 주요 기준이며, 이에 따라 CEO들은 단기 성과에 집중하게 된다. CEO의 성과 기반 보상은 평균 연봉보다 주식과 옵션 비중이 매우 크며, 평균 CEO 연봉은 일반 직원 대비 200~300배에 달한다.
그러나 해운업계에서는 ‘단기 성과’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비현실적이다. 첫째, 자본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에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의 경우 발주 시 수조 원의 비용과 2~3년의 건조 기간이 소요된다. 둘째, 선박은 운항 후 10~20년 이상 운영을 전제로 하므로 수익 실현 시점이 매우 길어 단기 성과 압박과 맞지 않는다. 셋째, 시장의 수요·공급 변동성으로 인해 단기 성과 평가가 어렵다.
예를 들자면, 필자가 부산항만공사에 입사했던 2005년에는 글로벌 선사가 20개였지만,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선박 공급 과잉으로 해상 운임이 원가 이하로 떨어지면서 한진해운을 포함해 10개 선사가 시장에서 사라졌다. 이 시기에 미국 선사가 있었다면 매년 CEO가 교체되지 않았을까 싶다.
반면, 유럽의 기업 문화는 미국과 사뭇 다르다. 미국이 주주 중심주의(Shareholder Capitalism)를 고수하는 반면, 유럽은 이해관계자 중심주의(Stakeholder Capitalism)를 강조한다. 유럽 기업은 주주뿐만 아니라 직원, 지역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한다. CEO에 대한 평가는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 경영을 통해 장기적 성장을 목표로 하는 기업도 많다. 머스크는 가족이 소유를 유지하되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위임하는 방식을 통해 장기적 성장을 도모하는 대표적 사례다.
상위 10개 선사 중 유럽 선사는 4개에 불과하지만, 선복량 기준 1~3위(MSC, 머스크, CMA)와 5위(하파그로이드)를 포함하고 있어 합계 선복량이 전 세계의 54%(약 1685만TEU)에 달한다. 아시아 4개 국가(중국, 일본, 대만, 한국)는 5개 선사를 보유하고 있으나, 선복량 점유율은 28%(약 862만TEU)에 그친다.
기업 문화의 차이가 글로벌 해운 시장에서 뚜렷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핵심 요인이라면, 이는 우리 국적 선사의 지속 가능성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깊이 고려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2024-12-1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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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무례한 질문
지난 11월 7일 윤석열 대통령의 기자 회견은 여러모로 화제가 됐다. 대통령의 지지율을 까먹은 개인적 스캔들과 총선 패배, 정책 실패 등에 대한 사과 성격을 띨 것으로 예상됐으나, 오히려 정치권의 비판과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붓는 부메랑이 됐다. 대통령 측근인 홍철호 정무수석의 부적절한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사건의 전말은 대강 이렇다. 윤 대통령이 기자 회견에서 “모든 것이 제 불찰”이라며 머리를 숙이면서도 구체적인 사과 내용이나 이유를 밝히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기 변호와 정적 비난에만 몰두했다. 그러자 회견 말미에 〈부산일보〉 박석호 기자가 대통령의 사과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지 보충 설명을 해 줄 수 있는지 질문한 것이다. ‘맹탕 회견’의 정곡을 찌른 질문이었다. 홍 수석은 이에 대해 11월 19일 “대통령에 대한 무례”라며 열을 올렸는데, 사실상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를 대변한 발언이었다. 발언의 파장은 컸다. 여야 정치권과 지역기자단, 심지어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일간지들도 홍 수석의 발언을 비판하고 나섰다. 홍 수석이 발언 이틀 만에 사과하면서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관계자의 일탈성 해프닝에 그치지 않고, 오래된 사건의 기억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대통령에 ‘무엇을 사과했나’ 정곡 찔러
한국 권력과 언론 사이 오랜 관행 깬 것
날카로운 질문·능숙한 답변 주고받아야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 폐막식 기자 회견에서 있었던 일이다. 방한 중이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겠다고 말했다. 한국 기자들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고 결국 발언권은 중국 기자에게 돌아갔다. 질문을 할 줄 모르는 한국 기자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역대 대통령의 기자 회견은 대개 일방적 미사여구만 늘어놓는 의례적 행사에 그쳤고, 질문자와 내용을 미리 조율해 각본대로 진행됐다. 사전에 준비된 내용을 벗어난 질문도 없고, 답변이 겉돌아도 추가 질문은 나오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은 이런 식의 알맹이 없는 기자 회견의 전성기였다. 박 대통령 취임 1년 후 첫 기자 회견에서는 청와대 출입 기자단이 질문 내용을 사전에 취합해 홍보수석실에 전달한 사실이 폭로되어 한국 언론 전체가 조롱거리가 됐다. 박 대통령은 유난히 기자 회견을 기피해, 취임 후 2년 반 동안 단 두 차례 기자 회견을 여는 데 그쳤고, 그나마 기자 회견을 사전에 작성된 발표문을 읽는 낭독회로 바꿔 놓았다. 질문을 할 줄 모르는 기자가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대통령을 낳은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기자 회견과 질문 회피가 권위주의적인 대통령의 개인 성향과 관련이 있다는 반박도 가능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대국민 소통이 상대적으로 활발했던 문재인 대통령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2021년 5월 문 대통령은 미국 방문 중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합의 내용을 발표한 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는데, 이때도 11년 전처럼 한국 기자들은 침묵을 지켰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동맹국인 한국에 손해를 입히는 것이 타당하냐”라는 질문이나 미국의 청와대 도청처럼 한국 입장에서 제기할 법한 껄끄러운 질문도 미국 기자에게서 나왔다.
이쯤 되면 대통령 취재 기자들 사이에서는 질문을 하지 못하는 것이 체질화한 직업 습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 기자 회견 해프닝은 이 어처구니없는 직업 풍토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폭로한 사건인 셈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는 대통령의 발언을 일방적으로, 미사여구대로 옮겨 적을 뿐 사안의 허점을 찌르는 질문도, 비판적인 분석도 불가능하다. 홍 수석의 발언 역시 실수라기보다는 이처럼 오랜 불문율을 위반한 데 대한 대통령 측의 불만을 대변한 셈이다.
반대로 미국의 기자 사회에서 질문을 던지는 능력은 기본적인 직업적 자질로 여겨진다. 대통령 역시 기자들과 늘 대화하면서 예리한 질문에 능숙하게 대처하는 자질을 갖추어야 한다. 가령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중 연평균 20회 이상 기자 회견을 열었고, 기자 회견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서는 예상 밖의 질문이 튀어나올 수도 있고, 우리처럼 질문자와 내용을 미리 조정하는 식의 기자 회견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한 조율 시도 자체가 큰 정치적 스캔들이 되는 분위기다.
우리는 왜 그렇게 할 수 없을까? 최근 우리는 ‘6시간 비상계엄’ 사태를 경험하면서, 언론의 보호막 아래 감춰져 있던 권력자의 적나라한 면모를 목격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무능, 독선, 부패, 권력 남용의 징후들이 언론과 대통령 간의 협조나 예우라는 명분하에 무시되었을지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정치의 후진성은 정치 보도의 후진성과 동전의 양면과 같다. 언론이 대통령을 가까이에서 감시하고 날카로운 질문으로 늘 긴장하도록 하는 것만이 정치와 언론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는 해법이다. ‘무례한 발언’ 사건이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개혁으로 가는 작은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2024-12-0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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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해운사를 통해 본 HMM의 향방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는 해운이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생명선이나 다름없다. 이에 따라 역대 정부는 자국 화물 자국 선박 우선 적취제, 국기 차별, 계획 조선, 해기사 병역 특례 등 다양한 정책적 수단을 마련해 해운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해 왔다. 이러한 정책들의 시행 결과 1970년대에는 해운업이 급성장했다. 선박만 확보하면 수출입 화물을 먼저 선적할 수 있었기 때문에 화물과 상품을 수출입해야 하는 기업들은 앞다퉈 중고선을 들여와 해운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1980년대 초 제2차 오일 쇼크로 인해 해운 불황이 찾아오면서 해운업계뿐만 아니라 해운업계에 자금을 대출해 준 은행들까지 쓰러질지 모르는 연쇄적인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정부는 1980년대 중반 ‘해운산업 합리화 정책’을 시행해 업체 간 통폐합을 유도했고, 그 결과 115개에 달하던 외항해운업체가 34개 사로 재편되었다. 이러한 조치로 인해 집단 도산의 위기에서 벗어난 외항해운산업계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완만하게나마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우리나라 수출입 화물 98% 해상 운송
원양 컨테이너 국적 선사 보유할 필요
중요성 감안 HMM 완전 민영화보다는
정부·공기업 일정 지분 보유 더 바람직
1995년 무역자유화를 기치로 내건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으로 우리나라는 더 이상 정부 주도의 보호육성 정책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해운산업 보호 정책의 근간이었던 ‘해운산업육성법’마저 폐지됐다. 이후 1997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정부는 외환위기 원인 중 하나로 대기업의 과도한 부채를 지목하고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이에 따라 현대상선, SK해운, 한진해운, 조양상선 등 주요 해운사들이 보유 선박을 매각하고 자본을 증자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이 과정에서 2001년 조양상선이 파산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정부는 ‘제주선박등록제’, ‘선박투자회사제’, ‘톤세제도’ 등을 도입해 해운업계가 IMF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우리 해운기업들은 2003년 중반부터 이른바 ‘중국 효과’로 초호황을 누렸다. 2004년 1261만 총톤이던 우리 외항선박량은 2010년 2806만 총톤으로 2.2배 증가했고, 한국해운협회 회원사 수 또한 2004년 50개 사에서 2010년 181개 사로 3.6배 늘어났다. 이처럼 배만 확보하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기에 해운업계는 빌린 배를 다시 빌려주는 이른바 ‘다단계 용선’ 계약이 성행했다. 이에 해운선사와 해사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해운시장에 뛰어들었고, 급기야 시장에서 배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직접 배를 만들기 위해 조선업에도 진출하게 되었다.
그러나 베이징 올림픽과 상하이 엑스포를 대비한 중국의 경제 활황으로 촉발된 중국 효과가 끝이 나고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2008년 세계 경제는 침체로 급반전됐다. 초호황을 누렸던 해운업계는 다시 생존을 걱정해야 할 판이었고 이에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되었다. 정부는 외항해운업 등록 기준을 5000톤, 5억 원에서 1만 톤, 10억 원으로 상향하는 한편, 자산관리공사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을 통해 선사의 선박을 매입해 재용선하는 등의 지원책을 마련했다. 또한 해운회사별로 채권단의 신용위기 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지원 정책을 차별화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정책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대한해운과 STX팬오션은 법정 관리에 들어갔으며 2016년 한진해운이 파산했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모두 111개 해운회사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런 과정을 겪은 뒤 대한해운은 SM그룹, 팬오션은 하림그룹으로 경영권이 각각 넘어갔다.
현대상선은 자동차 선대, LNG 선대, 컨테이너 터미널 등의 자산을 매각하며 경영 정상화를 추진했으나, 결국 KDB산업은행에 주식의 40%를 매각하고 나서야 파산을 면할 수 있었다. 이후 2020년 사명을 HMM으로 변경하였으며, 현재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67%의 지분을 보유한 국영선사로 운영되고 있다. 2023년에는 KDB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HMM의 주식 매각을 시도했지만, 이는 무산된 바 있다.
수출입 화물의 98%를 해상으로 운송하는 우리나라로서는 원양 컨테이너 선사를 보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해운업에서 HMM이 차지하는 위상은 더욱 긴요하고 특별해졌다. 하지만 해운업은 변동성이 심해 미래를 전망하기 어렵고, 호황기보다 불황기가 더 길게 지속되는 경향이 있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계속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HMM을 완전 민영화하기보다는 대만의 양밍이나 독일의 하파그로이드 선사처럼 정부나 공공기관이 일정 지분을 보유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2024-12-0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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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부산항 터미널의 부익부 빈익빈
해마다 연말이면 항만 업계는 전년 대비 물동량 증감을 분석하며 다음 해 준비에 분주해진다. 터미널 간 집계 물량 통계에 따르면 올해 10월 말 누적 부산항의 총 처리 물량은 전년 대비 5.7% 증가했다. 부산항 신항은 9.8% 늘었다. 현재 추이가 지속된다면 올해 말 부산항은 총 처리 물량 2400만TEU를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부산항 개항 이래 최대 물량 기록을 앞두고 각 터미널 운영사들은 부익부 빈익빈으로 그 희비가 엇갈린다.
이는 우선 증가한 물량이 대부분 대형 원양 선사들의 추가 물량이기 때문이다. 대형 얼라이언스 선사와 장기 계약을 확보한 터미널들은 연중 시설 대비 초과 물량 처리를 고민하였다. 반면 후발 주자 터미널들은 신규 계약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고 인근 터미널의 초과 물량을 임시로 대리 작업해 오고 있다.
'제미니 협력' 출범 뒤 항만 요동 불가피
400만TEU 넘는 대형화 합종연횡 초래
협력·통합 요원, 무한 경쟁 반복 가능성
양적 성장 이어 서비스 구조 개선 필요
부산항에는 터미널이 계약한 선사의 선박을 선석 대기나 야드 정체 등의 사유로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인근 터미널과 계약을 체결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배(Overflow)가 있다. 이는 일시 물량 증대나 터미널 시설 보수가 필요한 경우 터미널 간 협력으로 선사에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배 물량이 과다해지거나 고정화되는 경우 터미널 운영사 간 주력 계약 터미널과 전배 터미널이라는 계급 차이가 야기될 수도 있다.
신규 터미널 입장에서는 선사가 기존 계약 터미널이 처리 능력을 초과하는 경우 신규 터미널을 확보해 계약하기를 기대하지만 선사 입장에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환적 물량을 서로 다른 터미널에서 처리하는 경우 각 터미널에서 타 부두 환적 물량에 대한 하역비가 증가하고 터미널 간 운송 비용이 추가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추가 비용 이외에도 추가 게이트 반출입과 장치에 소요되는 운영 비효율은 선사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기도 한다. 선사들은 최대한 충분한 처리 능력을 보유한 터미널과 계약을 체결하거나 기존 계약 터미널이 터미널 비용으로 일시 추가 물량을 처리하는 방안을 선호한다. 따라서 현재의 선사 얼라이언스 구조에서는 올해 터미널 이용 행태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관전 포인트는 내년 2월 출범하는 신규 ‘제미니 협력’(Gemini Cooperation)이 부산항의 이러한 터미널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변화를 야기할 것인가 여부이다.
제미니 협력의 회원사인 덴마크 머스크와 독일의 하파그로이드는 올해 각각 240만TEU, 170만TEU를 처리해 내년 합계 400만TEU 이상일 것으로 예상된다. 두 선사 모두 부산항에 지분을 보유한 자가 터미널이 없기 때문에 어느 터미널과도 계약이 가능하다.
하지만 연간 400만TEU 이상을 동일 터미널 시설 내에서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터미널 운영사는 많지 않다. 머스크와의 ‘2M 얼라이언스’ 해체를 선언한 스위스 MSC는 올해 부산항 처리 물량 400만TEU 수준을 예상하고 있다. MSC는 신항 1부두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어 자가 터미널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추가 터미널 계약 필요 여부를 검토할 것이다. MSC는 ‘프리미어 얼라이언스’(Premier Alliance)와의 선복 교환도 계획하고 있어 현재 ‘디얼라이언스’(The Alliance), 내년 ‘프리미어 얼라이언스’가 이용할 터미널과의 계약도 불가피하다. ‘프리미어 얼라이언스’에는 한국 HMM이 회원사로 소속되어 HMM의 자가 터미널인 신항 4부두 중심 터미널 계약 확정이 예상된다.
물론 이들 대형 얼라이언스 회원사들 이외 부산항을 이용하는 국적, 외국적 선사들이 있지만 부산항 총 처리 물량의 70% 수준을 얼라이언스 회원사가 처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높은 초기 투자비와 고정비를 감당해야 하는 신규 터미널 운영사가 얼라이언스 회원사를 계약 선사로 확보하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다.
글로벌 선사들과 선사 얼라이언스의 대형화로 단위 선사, 단위 얼라이언스의 연간 물량이 400만~500만TEU를 초과하게 됐다. 현재 대다수 터미널 운영사의 처리 능력이 300만TEU에 미치지 못하는 구조에서는 주력 터미널(선사의 자가 터미널 또는 글로벌 협력 터미널)과 전배 터미널 간 계급 차이나 잉여 시설 보유 터미널 간 무한 경쟁이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분 구조가 상이하고 경쟁하는 운영사 간 협력이나 통합은 쉽지 않다.
부산항을 관리하는 정부 부처나 업계 오피니언 리더들이 부산항의 물량 증대라는 양적 성장뿐 아니라 터미널 서비스 구조 개선 방안 강구를 통한 질적 성장에도 보다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호소한다. 이는 부산항이 향후 3000만TEU 수준의 항만으로 지속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동력 확보에도 주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2024-11-24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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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대한민국 미래는 해양력 강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한국과 조선업 협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이 중국의 해양굴기와 해양력 강화를 우려하며 자국의 해운·조선산업을 재건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의회는 ‘국가 해양전략을 위한 의회지침’을 발표하며, 미국의 해양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중국의 해양세력에 대응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지침은 미국의 해운·조선산업을 빠르게 강화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동맹국들과 협력하고 외국의 투자를 유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해 해양산업을 재건하고, 미국 선단을 늘리고 해양 수송 능력을 확장할 계획이다. 미국 국방부는 민간과 군용 조선 시설을 활성화하려는 전략을 추진하며, 한국과 일본 등의 동맹국에 조선업 투자를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향후 수십 년간 세계 해양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화그룹은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조선소를 인수했고, 한화오션이 미국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을 지난 8월에 이어 수주했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최근 한국 조선업과 협력을 공언한 상황이어서 관련 수주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중국 해양굴기 대비 동맹국 협력 시사
국가 경제·안보·외교·과학기술 발전과 직결
해양 관련 전문가 육성과 인식 제고 필요
해양력 키우기 위한 국가 관심과 지원 절실
해양 국가들은 다양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며 지속 가능한 해양 활용과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통해 해양 협력을 확대하고 있고 싱가포르는 첨단 물류 기술과 스마트 항만 구축을 통해 해운 허브 지위를 강화하고 있다. 노르웨이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해양 연료 및 친환경 선박 개발을 선도하고 있으며 러시아와 일본은 심해 자원 탐사와 수중 드론 기술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리스는 해운업 강화, 친환경 기술 도입, 국제 협력, 해양 관광 활성화 등을 통해 지속 가능하고 경쟁력 있는 해양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해양 국가들은 해양을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기반으로 활용하며, 글로벌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적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이 왜 해양력을 강화해야 하는지를 확인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해양력은 한 국가의 해양 관련 능력과 자원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국가의 경제·안보·외교·과학기술 발전에 직결된다. 첫째, 경제적 이유다. 전 세계 무역의 약 80%는 해상을 통해 이루어진다. 해양력은 주요 해상 교역로의 안정적 확보와 효율적 활용을 보장한다. 어업, 해저 자원(석유·천연가스·광물 등), 신재생 에너지(해상 풍력 등) 등 해양 자원은 경제적 가치를 제공한다. 이를 관리하려면 해양력이 필수이다. 해양 관광은 국가의 중요한 수입원이 될 수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해양 안전과 인프라가 필요하다.
둘째, 안보적 이유다. 해양 영토(배타적 경제수역 등)의 보호는 국가의 자원과 주권을 지키는 데 핵심이다. 이를 위해 해군과 해경 등의 해양 안보 능력이 필수이다. 주요 교역로를 위협하는 해적, 테러, 또는 분쟁 상황에 대응하려면 강력한 해양력이 필요하다. 해군력을 강화하면 해양에서의 전략적 억제력을 통해 국가의 안보를 한층 강화할 수 있다. 해양교육기관에서 양성하는 선원과 해기사는 국가의 비상사태 시 선박 운항을 통해 물자나 사람을 수송하는 제4군의 역할을 수행한다.
셋째, 외교적 이유다. 해양 영토와 관련된 국제 분쟁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강한 해양력이 필요하다. 해양 환경 보호, 구조 및 구호 활동, 해양 과학 연구 등에서 국제적 협력을 주도할 수 있다. 넷째, 과학기술 및 환경적 이유다. 해양 생태계와 기후 변화 연구는 전 지구적 과제로, 이를 위한 연구 역량을 확보하려면 해양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다섯째, 국가 위상 강화이다. 강력한 해양력을 보유한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국제적 역할을 확장할 수 있다.
해양력은 국가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다. 따라서 해양력 강화는 국가의 지속 가능성과 번영을 위한 필수 과제라는 것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해양산업 육성, 해양 인재 양성에 투자해야 할 것이다. 세계 해양 국가들의 공통적인 해양력 강화 방안으로 해양 관련 교육과 인식 제고를 중요시하고 있다. 해양 관련 대학과 연구소에서 글로벌 수준의 해양 전문가를 배출하고 해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캠페인과 교육을 통해 국민적 관심과 지원을 유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해양 영토 주권, 해양 경제, 해양 안보, 해양 외교, 해양 환경, 해양 과학기술 분야 등 해양력을 키우기 위해 국가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해양 인재 육성을 통한 해양력 강화에 있음을 명심하길 바란다.
2024-11-17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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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통일 보도의 저널리즘 품질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함에 따라 북한의 핵과 한반도 안보 문제가 다시 국제 사회의 주요 의제로 부각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번 대선 캠페인 기간에 트럼프는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함으로써 그의 향후 북핵 대응 태도에 한국 정부는 물론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들고 있다. 다가올 한반도 안보 상황은 다시 긴장의 국면을 맞을 수 있으며, 북핵 이슈는 국제적으로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써 한국 언론의 북한 및 통일 보도의 전문성과 저널리즘 품질도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재선, 한반도 안보 의제화 가능성 커
한국 언론 전문성·능력 검증 시험대 불가피
사회 통합·동질성 회복 기여 역할 입증해야
북한 및 통일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민감하고 복잡한 이슈 중 하나로, 언론 보도는 통일 여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론의 통일 보도는 민족적 차원에서 동질성을 회복하고, 사회 통합과 국민의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 기여해야 하는 저널리즘의 한 영역이다. 현시점에서 언론의 북한 및 통일 보도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언론의 정파성이 북한과 통일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문제의 핵심이라고 하겠다.
언론의 정파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북한 보도의 문제점은 대체로 두 가지 경향을 보인다. 하나는 북한을 위협적인 대상으로 묘사하는 보도 경향이다. 이는 북한을 적대적 국가로 인식하게 만들며, 국민들 사이에 불안감과 반북 감정을 확산시킨다. 또 다른 경향은 남북정상회담의 경우와 같은 특정 사안에 대한 무비판적인 접근 태도이다. 때에 따라 이러한 태도는 회담이 실질적인 진전이 없이 끝났을 때 비판적인 시각으로 변질되기 일쑤다.
이처럼 북한 문제를 보도할 때의 우리 언론은 극단적이고 선택적이며 편향된 시각으로 균형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언론의 정파성 탓이다. 정파성은 북한 및 통일 문제를 다룰 때, 객관적인 사실 전달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 내 통합적인 논의보다는 이념적인 갈등을 유발하여 국민들 사이에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
독일 언론의 통일 보도 사례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진다. 통일 이전이던 1980년대에 텔레비전을 보유한 동독 주민의 90%는 서독 방송을 시청하였는데, 이들은 서독 방송 시청을 통해서 자신들의 생활과 서독의 실상을 충분히 알고 비교할 수 있었다. 동독 주민들은 체제 선전에 몰두한 정파적인 동독 방송을 외면하고, 동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반면 객관적 보도를 지향한 서독의 방송을 시청하며 서독 기자들과 언론을 더 신뢰하였다.
서독의 언론은 통일 과정에서 객관성과 균형성에 입각한 보도 태도를 견지하며 동독과 서독 주민의 사회적 합의를 촉진하였다. 통일을 단기적 사건으로 다루지 않았고, 신뢰성 있는 정보를 지속성 있게 생산하여 제공하였다. 결과적으로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서독의 언론은 동독 주민만이 아니라 서독 주민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2024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의 비중이 36.9%로 나타나서 2007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하였다. 반면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의 비중은 35%에 달해서 조사 이래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하였다. 남북통일은 우리 사회에서 오랜 기간 민족적 당위로 자리매김해 왔지만, 분단 체제의 장기화와 고착 속에 규범적인 수사 이상의 실천적 의미를 갖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 언론의 북한 및 통일 보도는 더더욱 사회 통합과 민족 동질성 회복에 기여해야 한다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장기적 관점과 일관성 있는 보도 태도로 사회적 합의를 촉진해야 한다. 통일 보도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북한의 체제 위협적인 측면은 말할 것 없이 분단의 평화적 해결 가능성까지 종합적이고 균형 있게 다뤄야 한다. 또한 북한 인권 문제는 지속적인 보도를 통해 국제 사회와의 연대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에 기여해야 한다.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국가적으로 통일 친화적인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여기서 언론의 역할은 객관성에 기반한 정보를 제공하고, 국제 사회의 다양한 관점을 균형 있게 반영하여, 국민이 언론 보도를 토대로 스스로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합리적인 시각을 형성하도록 돕는 데에 있다. 이것이 바로 언론이 통일 보도를 통해 저널리즘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길이다.
2024-11-1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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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블루푸드테크 산업 선도를 위한 과제
‘블루푸드’는 수산물이 단순한 식량원이라는 점 외에 건강한 먹거리, 윤리적 가치 등 규범적 이슈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 여기에 3D 프린팅 대체육 등 첨단 기술과 결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을 포함하면 ‘블루푸드테크’라고 한다. 최근 수산물이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식량 자원으로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블루푸드테크 산업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금은 수산 관련 사업에서도 뭔가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기존 수산식품 산업에서 새로운 영역인 블루푸드테크 산업으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 푸드테크라는 개념을 우선 기후테크와 연결해 보자. 현재 우리는 기후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 먹는 문제와 함께 기후 문제의 해결은 물론 넓게는 수산의 가치를 젊은 세대에게 각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푸드테크다. 80억 명에 달하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먹는 문제는 기존 농수산 식품 분야와 다른 첨단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 해결을 모색할 수 있다.
수산식품에 디지털 첨단 기술 접목
식량·기후 문제 해결에 실마리 제공
강점 보유한 부산, 세계 선도 가능
여기서 부산은 우리나라의 중심이 될 수 있고, 나아가 세계를 주도할 수 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흑백대전’을 보면 외국의 셰프들은 “남과 경쟁하지 않는다.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가치 있는 것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블루테크 산업도 마찬가지다. 다른 지역이나 국가와의 경쟁을 처음부터 미리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서울은 서울의 역할이 있고 부산은 부산의 역할이 있다.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뉴진스라는 젊은 아티스트가 “각자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잘하자”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기 분야를 혁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인재를 키워야 한다. 수산식품 클러스터를 만드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지역 대학의 인재가 실제로 수산식품 클러스터에서 인정받고 또 개발한 결과물이 시장에서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 살펴볼 수 있는 생태계까지 조성돼야 한다. 공급망뿐만 아니라 유통이나 소비망도 함께 갖춰져야 한다.
이는 정부나 대학이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지금까지는 없었던,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는 솔루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저절로 시장 지배력이 생기게 된다.
지금 우리는 각 분야에서 뛰어난 소수 인재의 영향력이 지대한 사회에 살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져야 하는지는 고민해야 하지만 블루푸드테크 산업에도 이러한 인재는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시스템 환경에서 탄소 문제와 건강 문제, 식량 문제를 아울러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먹는 것으로부터 점점 다른 분야로 나아갈 수 있다. 반도체 산업 다음의 5차 산업은 바이오산업인데, 바이오산업의 관점을 활용하면 좀 더 영양학적인 식생활과 탄소 절감을 함께 이루면서 새로운 푸드 산업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첨단 디지털 기술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원하는 음식 재료를 주문해 어떤 요리법으로 조리해서 먹을지는 음성 AI(인공지능)가 선택해 알려 준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할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1인 가구가 갈수록 급증하는 추세다. 혼자서 밥을 해 먹기도 하지만 매번 그렇게 직접 하기는 어렵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간편식 시장이 더욱 번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으로 먹거리는 밀키트 형식이나 간편식이 주를 이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의 개입은 최소화될 가능성이 크다. AI 영양사가 요리법을 선택하고 이후 과정도 자동 공정에 따라 이뤄진다. 이미 우리나라 식품 대기업들은 이런 솔루션을 많이 개발해 놓은 상태다. 아마 가까운 미래에는 사람이 해주는 밥을 먹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처럼 푸드테크는 개인 맞춤형이기 때문에 콘텐츠가 중요하다. 음식 주문 단계에서부터 이미 생산 과정이 연동된다. 여기엔 디지털 전환이 핵심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바로 ‘테크’의 문제로 전환된다. 이미 테크를 활용해서 기존에 먹고 사는 방식은 바뀌고 있다. 온라인 업체인 쿠팡의 급성장이 이를 잘 보여준다.
블루푸드가 세계를 주도하려면 참여자들의 비전과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명확하고, 여기에 자본이 결합하면 된다. 이 지점에서 수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수산업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먹거리 확보와 탄소 감축의 과제와 직결된다. 당연히 삼면이 바다인 우리는 탄소 중립에 있어 유리한 측면이 많다. 블루푸드테크 산업의 미래 가치는 전 세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 분명한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 해양 수도인 부산이 블루푸드테크의 선도 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마련해 글로벌 수산 허브도시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2024-10-0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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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무역 전쟁 시대, 대한민국호의 리더십은…
해방 직후 우리나라에는 100톤 이상의 배가 한 척도 없었다. 그 작은 배조차 고장이 나면 일본으로 가져가서 수리해야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소가 대한조선공사란 이름으로 부산에 조성된 것은 1950년이었다. 1960년대 초에는 한국은행이 보유한 외화의 절반을 사용하면서 중고 어선을 수입하려는 계획의 실행을 두고 정부 부처 간 다툼이 있었다. 이는 참치를 잡아 통조림으로 만들어 수출하는 원양어업의 역사 속 일화다.
며칠 전 책 한 권을 선물받았다. 신태범 KCTC 회장의 회고록 〈청해, 푸른 바다를 넘어〉였다. 신 회장은 한국해양대학교 항해과 2기로 졸업한 후 선장으로 일하다가 기업인으로 변신했고, 한국항만협회장, 한국관세협회장 등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물류 산업을 이끈 ‘대한민국 해운사의 전설’이다. 특히 그는 대한민국의 계획 조선 필요성을 당시 정부에 건의해 1962년 우리 기술진이 해방 이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2600톤급 화물선(신양호)을 부산에서 건조하도록 한 주역이다. 당시 전 국민이 흥분하며 기적이라고 외치던 장면이 지금도 ‘대한늬우스’에 담겨 유튜브에 떠돌고 있다. 그런 경험과 시행착오가 켜켜이 쌓여 지금의 조선 강국 대한민국이 되었다.
미국 등 세계 권력 질서 재편되는 시점
국내 정치 국제 정세 변화 못 따라가
비효율적 행정 계속된다면 미래 암울
무역 전쟁 시대 ‘국가 리더십’ 회복 절실
1928년 경남 거창 출신의 신 회장은 “해방이 된 뒤 비로소 내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뒤늦게 회고했다. 그는 “일본이 설계해 놓은 식민지에서 태어난 20대 범부로서, 더 나은 미래의 선택지는 극히 제한적이었을 것이다”며 “해방된 나라에서 운 좋게 대학에 다니고, 자립 경제를 부르짖던 조국을 위해 헌신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회고록은 감동 그 자체였다. 해방된 조국에서 불모지인 해운과 조선산업의 태동과 시련, 성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내달린 해양 산업의 기린아이자 영웅들의 기적 같은 이야기에 단숨에 빠져들었다. 특히 해운과 조선, 제조업의 동반 성장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더 고민해야 하는지도 가늠할 수 있었다. 신 회장은 “회고록이 넘쳐나는 세상에 한 권을 더 추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면서도 “혹시 장래에 닥칠지 모를 국가 경제 위기 때 참고와 조언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그는 국가 발전의 핵심 요소로 종종 리더십을 첫손에 꼽았다. 정치와 경제는 리더십과 제도가 상호 작용해야 궤도에 오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촉즉발의 ‘무역 전쟁’ 시대에 그의 고언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그 결과에 따라 세계의 권력 질서가 재편되는 지금,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속적인 대일 무역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의 대(對) 달러 환율을 대폭 인상했고, 이후 일본의 수출 산업은 곤두박질쳤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그렇게 시작됐다. 중국에 대한 위안화 평가절상 압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공황과 글로벌 금융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관세를 매긴 스무트-할리 관세법은 지금 생각해도 세계를 향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냉전 시대를 종언하고 소련을 무너뜨린 전략 무기는 사실 핵이 아니라 코콤(COCOM·공산권 수출 통제)이라는 국제기구였다. 특정 기술과 물품의 무역 제한을 통해 기술 격차를 확대했고, 그것은 소련 경제와 정치 불안을 부추기면서 공산주의 연합 체제 붕괴를 촉발했다.
미국은 새 대통령을 곧 선출한다. 하지만 누가 되더라도 무역 전쟁이 중단될 가능성은 적다고 한다. 오히려 코콤에 버금가는 대중국 무역 규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미국과 중국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받을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국내 정치는 국제 정세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포퓰리즘이 남발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동일 임금 지급을 명시한 노동법은 국민 갈등의 정점에 있다. 행동경제학에서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기꺼이 지불할 최대 가격을 ‘지불 의사 가격’(WTP)이라고 하는데, ‘동일 임금’이 아무리 명분에 부합하더라도 현실과 유리된다면 시기상조다. 대한민국이 만든 경제적 토대에서 국수주의적이지 않으면서도 ‘국민의 몫’은 당연히 우선되어야 한다. 포항 지진 이후 전국 모든 건축 공사에 지반 검사를 의무화했지만, 정작 검사 기관이 두 곳밖에 되지 않아 모든 착공이 반년 이상 늦어졌다는 비효율의 극치 행정이 지속된다면 무역 전쟁 시대의 대한민국 미래는 담보하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여야 정쟁을 중단하고 국제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 리더십’의 회복이 절실하다. 온고지신(溫故知新), 과거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2024-09-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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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해운항만 용어, 너무 어려워요
20년 전쯤 선배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다. 당시 한국 전체 컨테이너부두를 관리하는 공공 기관이 있었는데, 그 기관은 현재 한국의 4개 항만공기업(Port Authority)의 전신이기도 하다. 그 명칭이 ‘한국콘테이너부두공단’이었는데 선배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절이니 1990년대 초로 추정이 된다. 어느 날 민원 전화가 와서 “콘테이너부두공단 아무개 대리입니다”라고 응대하니, “콘테이너 두부 공장이요?”라고 되묻더란다. ‘컨테이너’ 무역이 일반인들에게 많이 인지되지 않은 시점이라 그랬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는 ‘콘테이너’를 ‘컨테이너’라고 통일해서 쓰지만 당시에는 흔한 용어가 아니었다. 컨테이너라는 말은 이제 모두가 아는 일반적인 단어가 되었지만 여전히 해운항만 용어가 어렵다는 사람들이 많다.
부산항에서 처리되는 화물의 95%가 컨테이너 화물이다 보니 특히 정기선(컨테이너) 해운과 관련한 용어 설명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업무상 기자들에게 상세한 설명을 해야 할 때가 많은데, 기자들조차도 대부분 어렵다고 하니 일반인들은 말할 것도 없을 듯하다.
정기선 해운에서 가장 많은 오해를 유발하는 단어는 ‘서비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덤을 의미하는 ‘서비스’도 아니고, 가전제품 AS는 더더욱 아니다. 정기선 해운은 부정기선에 반대되는 말로 특정한 항로를 정해진 일정(주간 단위)으로 운항하기 때문에 정기 노선을 영어로 ‘weekly service’라고 한다. 업계에서 ‘남미 서비스 3개 신설되었습니다’는 식으로 말하면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도로에서 흔히 보이는 철제 컨테이너 박스는 ‘장비’ 혹은 ‘기기’로 부른다. “장비가 모자라 수출 화주들이 난리입니다”라는 말은 선사가 보유하고 있는 컨테이너 박스가 모자라서 수출 화주에게 빈 컨테이너 박스를 보낼 수 없는 상황이고, 따라서 수출 화물 예약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과거 팬데믹 물류대란 당시 흔한 장면이었다.
영어에서 컨테이너 박스를 ‘equipment’로 표현하는데, 과거에 이를 직역해서 사용하다 보니 ‘장비’(혹은 ‘기기’)라는 용어가 자리잡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 최대 컨테이너 선사였던 A사 출신 직원들은 모두 ‘장비’라고 하는 반면 B사 직원들은 ‘기기’라고 한다. 왜 그런지는 개인적으로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중 하나다. 지금은 ‘장비’가 ‘기기’보다 더 많이 쓰이고 있는 듯하다.
정기선 해운의 역사는 수천 년에 달하는 전체 해운의 역사에 비하면 극히 짧다. 특히 1980~1990년대부터 컨테이너를 통한 국제 무역이 급성장하였기에 우리가 체감하는 컨테이너 해운의 역사는 훨씬 더 짧으며, 여전히 진화하고 있는 산업이다. 원두커피, 차량, 가축, 의류 등 과거에는 컨테이너로 운송되지 않거나 운송할 수 없었던 화물들이 지금은 거의 컨테이너화(containerization)되었고,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 소비재는 90% 이상이 컨테이너를 통해 국제 운송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나 일반 대중들의 컨테이너 해운에 대한 이해도는 아주 낮다. 해외 항만과의 교류 경험에 비춰볼 때, 이는 해외도 마찬가지다.
컨테이너 해운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도가 낮은 이유는, 전형적인 B2B 산업이라는 점과 아직도 진화하고 있는 신생 산업이기 때문에 충분한 지식의 축적과 전파가 이뤄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 또 전문 용어를 순화하지 않은 채 그대로 사용해 온 탓도 크다.
과거 한진해운이 위태하던 시절,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다양한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당시 한진해운 측 임직원들을 통해 많은 서면 자료를 받았지만, 전문 용어가 너무 많아 쉽게 풀어 쓰는 재가공(?) 작업을 해야 했다. 일부는 기자 브리핑용으로도 사용했으나 여전히 많은 분들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였다.
특정 전문 분야의 용어를 외부인을 위해 쉬운 용어로 변환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전문가 집단이 ‘전문 용어’를 고수하면 일반인과 기자는 이해를 못하고 결국 그 분야는 점점 더 대중에서 멀어지게 된다. ‘기업이야 돈만 잘 벌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모든 기업은 공동체에 속해 있고 공동체를 설득해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실패한다면 기업의 존속도 위태로울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과거 사례를 통해 경험한 바 있다.
부산항만공사는 국내 최대 컨테이너항 부산항을 관리하는 공공 기관으로서 전문 용어를 순화하고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당장 내일부터 우리 직원들에게 ‘서비스’ 대신 ‘노선’으로 쓰자고 권유해 봐야겠다.
2024-09-2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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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세계해양사학회 부산대회, 그 성과와 한계
지난 8월 19일부터 24일까지 제9회 세계해양사대회가 부산에서 열렸다. 설립 40주년을 맞은 세계해양사학회(IMHA)는 1989년부터 4년마다 세계해양사대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모두 유럽권에서 개최했다. 역사적으로 유럽인들이 해양 활동을 주도해 온 만큼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이번 대회는 아시아권에서 처음으로 열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2022년 6월 포르투갈 포르토에서 열린 제8회 세계해양사대회(당초 2020년 개최였으나 코로나19로 순연돼 2022년 개최)에 참석한 필자는 부산 유치를 제안하면서 “유럽 중심적인 해양사 연구의 다양화와 세계화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역설한 바 있었다. 당시 유치전에는 핀란드와 에스토니아가 유치 제안서를 제출했다. 필자는 구두로 유치 의사만 피력했다. 한데 사무국에서는 필자의 구두 제안을 수용해 세계해양사대회 정기총회서 유치전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한국은 핀란드, 에스토니아와 유치 경쟁을 벌여 2차에 걸친 투표 끝에 아시아 권역 최초로 대회를 유치할 수 있었다. 당시 세계해양사학회 정기총회에 참가한 200여 명 중 한국인은 필자 한 명뿐이었다.
아시아권 첫 개최라는 점 큰 의미
8회 포르토대회보다 크게 성장
세계 해운 강국 대한민국 위상 높여
국내 해양사 분야 논문 적어 아쉬워
유치 확정 후, 대회 주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총회 참가자들로부터 설문을 실시했다. 그 결과 반수 이상이 ‘Mobility and Connectivity of Ocean(해양의 이동성과 연결성)’을 선택했다. 세계해양사대회 사무국에서는 이를 일부 수정해 ‘Oceans : Local Mobility, Global Connectivity(바다 : 지역 이동성, 세계 연결성)’를 부산대회 주제로 최종 선정했다. 이는 시간과 공간의 압축으로 상징되는 지구화 시대, 바다는 지구화의 걸림돌이 아니라 촉매제라는 것을 함축한다. 주제 확정 후 대회 포스터 등에 사용할 디자인으로 1402년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나침반의 방위판을 활용한 시안을 제안해 확정했다.
세계해양사대회를 유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해양사 관련 학회가 없었다. 이는 학계에서 보기에 매우 기이한 상황이었다. 이를 인식한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에서 “일부 재정적 지원을 해 줄 테니 해양사학회를 설립해 대회를 공동주관 해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이에 힘입어 해운 경제학자와 해양 사학자들이 뜻을 같이해 이를 바탕으로 2022년 12월 ‘해양사학회’가 창립돼 부산대회를 공동으로 주관했다.
필자도 연구년을 세계해양사학회 회장이 재직 중인 미국의 올드 도미니온대학교에서 보내며 부산대회 준비에 힘을 보탰다. 전체적인 진행은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가 맡았다. 그 결과 개인 발표 96편과 패널 45개 그룹(130여 편)을 포함해 총 280편의 논문이 접수됐다. 참가국은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캐나다, 중국, 일본 등 28개국에 달했다. 하버드대, 옥스퍼드대, 도쿄대, 교토대, 베이징대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대학이 대거 참여했다. 세계 각국 해양학자의 행사 참여 등록자 수가 291명으로, 현장 등록자까지 포함하면 300여 명에 이른다. 국내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개최된 대규모 국제학술대회였던 셈이다.
앞서 열린 제8회 세계해양사대회 발표 신청 논문이 180편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부산대회는 배 이상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9개 세션이 동시간대에 진행돼 참가자들이 상당히 분산되었음에도, 세션마다 많은 연구자들이 참석해 진지한 질문과 토론을 이어갔다. 특히 한국해양사학회와 국립해양박물관이 공동 주최한 발표회장에는 80여 명의 내외국인 학자들이 참석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세계해양사학회 전·현직 회장을 비롯해 많은 참석자가 “매우 성공적인 대회였고, 부산은 매우 인상적인 도시”라고 말했을 정도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선 우리 해양사 연구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연구자의 발표문은 60여 편이었다. 그나마 해양사 분야 신규 학술 논문은 채 10편도 되지 않았다. 해사법률, 항해안전, 선원 인권, 해양관광, 해양문화 등 비해양사 분야 발표문이 대다수였다. 이에 반해 일본, 중국, 대만 등의 주변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과 북미의 발표문은 예비 논문이거나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술 논문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비해양사 분야 한국 관련 발표장은 다소 썰렁한 느낌을 주었다.
아치섬(조도)과 영도, 그리고 부산 시내를 시끌벅적하게 했던 세계해양사대회는 이제 끝이 났다. 다음 2028년 대회는 에스토니아에서 개최된다. 이번 세계해양사대회는 아시아권에서 중국이나 일본보다 먼저 대회를 유치했다는 점에서 세계 해운 강국인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였다. 더불어 우리 해양사를 ‘세계해양사’에 편입시켜야 하는 과제도 함께 남겼다.
2024-09-01 [1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