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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블루푸드테크 산업 선도를 위한 과제
‘블루푸드’는 수산물이 단순한 식량원이라는 점 외에 건강한 먹거리, 윤리적 가치 등 규범적 이슈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 여기에 3D 프린팅 대체육 등 첨단 기술과 결합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을 포함하면 ‘블루푸드테크’라고 한다. 최근 수산물이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식량 자원으로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블루푸드테크 산업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금은 수산 관련 사업에서도 뭔가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기존 수산식품 산업에서 새로운 영역인 블루푸드테크 산업으로의 전환은 피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 푸드테크라는 개념을 우선 기후테크와 연결해 보자. 현재 우리는 기후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 먹는 문제와 함께 기후 문제의 해결은 물론 넓게는 수산의 가치를 젊은 세대에게 각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푸드테크다. 80억 명에 달하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먹는 문제는 기존 농수산 식품 분야와 다른 첨단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 해결을 모색할 수 있다.
수산식품에 디지털 첨단 기술 접목
식량·기후 문제 해결에 실마리 제공
강점 보유한 부산, 세계 선도 가능
여기서 부산은 우리나라의 중심이 될 수 있고, 나아가 세계를 주도할 수 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흑백대전’을 보면 외국의 셰프들은 “남과 경쟁하지 않는다.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가치 있는 것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블루테크 산업도 마찬가지다. 다른 지역이나 국가와의 경쟁을 처음부터 미리 염두에 둘 필요는 없다. 서울은 서울의 역할이 있고 부산은 부산의 역할이 있다.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뉴진스라는 젊은 아티스트가 “각자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잘하자”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기 분야를 혁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인재를 키워야 한다. 수산식품 클러스터를 만드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지역 대학의 인재가 실제로 수산식품 클러스터에서 인정받고 또 개발한 결과물이 시장에서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 살펴볼 수 있는 생태계까지 조성돼야 한다. 공급망뿐만 아니라 유통이나 소비망도 함께 갖춰져야 한다.
이는 정부나 대학이 선도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지금까지는 없었던, 다른 사람이 대체할 수 없는 솔루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되면 저절로 시장 지배력이 생기게 된다.
지금 우리는 각 분야에서 뛰어난 소수 인재의 영향력이 지대한 사회에 살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져야 하는지는 고민해야 하지만 블루푸드테크 산업에도 이러한 인재는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시스템 환경에서 탄소 문제와 건강 문제, 식량 문제를 아울러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선 먹는 것으로부터 점점 다른 분야로 나아갈 수 있다. 반도체 산업 다음의 5차 산업은 바이오산업인데, 바이오산업의 관점을 활용하면 좀 더 영양학적인 식생활과 탄소 절감을 함께 이루면서 새로운 푸드 산업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첨단 디지털 기술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원하는 음식 재료를 주문해 어떤 요리법으로 조리해서 먹을지는 음성 AI(인공지능)가 선택해 알려 준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할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1인 가구가 갈수록 급증하는 추세다. 혼자서 밥을 해 먹기도 하지만 매번 그렇게 직접 하기는 어렵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간편식 시장이 더욱 번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으로 먹거리는 밀키트 형식이나 간편식이 주를 이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의 개입은 최소화될 가능성이 크다. AI 영양사가 요리법을 선택하고 이후 과정도 자동 공정에 따라 이뤄진다. 이미 우리나라 식품 대기업들은 이런 솔루션을 많이 개발해 놓은 상태다. 아마 가까운 미래에는 사람이 해주는 밥을 먹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처럼 푸드테크는 개인 맞춤형이기 때문에 콘텐츠가 중요하다. 음식 주문 단계에서부터 이미 생산 과정이 연동된다. 여기엔 디지털 전환이 핵심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바로 ‘테크’의 문제로 전환된다. 이미 테크를 활용해서 기존에 먹고 사는 방식은 바뀌고 있다. 온라인 업체인 쿠팡의 급성장이 이를 잘 보여준다.
블루푸드가 세계를 주도하려면 참여자들의 비전과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명확하고, 여기에 자본이 결합하면 된다. 이 지점에서 수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수산업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먹거리 확보와 탄소 감축의 과제와 직결된다. 당연히 삼면이 바다인 우리는 탄소 중립에 있어 유리한 측면이 많다. 블루푸드테크 산업의 미래 가치는 전 세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 분명한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 해양 수도인 부산이 블루푸드테크의 선도 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마련해 글로벌 수산 허브도시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
2024-10-06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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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무역 전쟁 시대, 대한민국호의 리더십은…
해방 직후 우리나라에는 100톤 이상의 배가 한 척도 없었다. 그 작은 배조차 고장이 나면 일본으로 가져가서 수리해야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조선소가 대한조선공사란 이름으로 부산에 조성된 것은 1950년이었다. 1960년대 초에는 한국은행이 보유한 외화의 절반을 사용하면서 중고 어선을 수입하려는 계획의 실행을 두고 정부 부처 간 다툼이 있었다. 이는 참치를 잡아 통조림으로 만들어 수출하는 원양어업의 역사 속 일화다.
며칠 전 책 한 권을 선물받았다. 신태범 KCTC 회장의 회고록 〈청해, 푸른 바다를 넘어〉였다. 신 회장은 한국해양대학교 항해과 2기로 졸업한 후 선장으로 일하다가 기업인으로 변신했고, 한국항만협회장, 한국관세협회장 등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물류 산업을 이끈 ‘대한민국 해운사의 전설’이다. 특히 그는 대한민국의 계획 조선 필요성을 당시 정부에 건의해 1962년 우리 기술진이 해방 이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2600톤급 화물선(신양호)을 부산에서 건조하도록 한 주역이다. 당시 전 국민이 흥분하며 기적이라고 외치던 장면이 지금도 ‘대한늬우스’에 담겨 유튜브에 떠돌고 있다. 그런 경험과 시행착오가 켜켜이 쌓여 지금의 조선 강국 대한민국이 되었다.
미국 등 세계 권력 질서 재편되는 시점
국내 정치 국제 정세 변화 못 따라가
비효율적 행정 계속된다면 미래 암울
무역 전쟁 시대 ‘국가 리더십’ 회복 절실
1928년 경남 거창 출신의 신 회장은 “해방이 된 뒤 비로소 내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뒤늦게 회고했다. 그는 “일본이 설계해 놓은 식민지에서 태어난 20대 범부로서, 더 나은 미래의 선택지는 극히 제한적이었을 것이다”며 “해방된 나라에서 운 좋게 대학에 다니고, 자립 경제를 부르짖던 조국을 위해 헌신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회고록은 감동 그 자체였다. 해방된 조국에서 불모지인 해운과 조선산업의 태동과 시련, 성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내달린 해양 산업의 기린아이자 영웅들의 기적 같은 이야기에 단숨에 빠져들었다. 특히 해운과 조선, 제조업의 동반 성장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더 고민해야 하는지도 가늠할 수 있었다. 신 회장은 “회고록이 넘쳐나는 세상에 한 권을 더 추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면서도 “혹시 장래에 닥칠지 모를 국가 경제 위기 때 참고와 조언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그는 국가 발전의 핵심 요소로 종종 리더십을 첫손에 꼽았다. 정치와 경제는 리더십과 제도가 상호 작용해야 궤도에 오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촉즉발의 ‘무역 전쟁’ 시대에 그의 고언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다.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그 결과에 따라 세계의 권력 질서가 재편되는 지금,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속적인 대일 무역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의 대(對) 달러 환율을 대폭 인상했고, 이후 일본의 수출 산업은 곤두박질쳤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그렇게 시작됐다. 중국에 대한 위안화 평가절상 압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공황과 글로벌 금융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 역사상 가장 높은 관세를 매긴 스무트-할리 관세법은 지금 생각해도 세계를 향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냉전 시대를 종언하고 소련을 무너뜨린 전략 무기는 사실 핵이 아니라 코콤(COCOM·공산권 수출 통제)이라는 국제기구였다. 특정 기술과 물품의 무역 제한을 통해 기술 격차를 확대했고, 그것은 소련 경제와 정치 불안을 부추기면서 공산주의 연합 체제 붕괴를 촉발했다.
미국은 새 대통령을 곧 선출한다. 하지만 누가 되더라도 무역 전쟁이 중단될 가능성은 적다고 한다. 오히려 코콤에 버금가는 대중국 무역 규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미국과 중국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받을 타격은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국내 정치는 국제 정세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포퓰리즘이 남발하고 갈등을 부추기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동일 임금 지급을 명시한 노동법은 국민 갈등의 정점에 있다. 행동경제학에서 고객이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기꺼이 지불할 최대 가격을 ‘지불 의사 가격’(WTP)이라고 하는데, ‘동일 임금’이 아무리 명분에 부합하더라도 현실과 유리된다면 시기상조다. 대한민국이 만든 경제적 토대에서 국수주의적이지 않으면서도 ‘국민의 몫’은 당연히 우선되어야 한다. 포항 지진 이후 전국 모든 건축 공사에 지반 검사를 의무화했지만, 정작 검사 기관이 두 곳밖에 되지 않아 모든 착공이 반년 이상 늦어졌다는 비효율의 극치 행정이 지속된다면 무역 전쟁 시대의 대한민국 미래는 담보하기 어렵다. 지금이라도 여야 정쟁을 중단하고 국제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국가 리더십’의 회복이 절실하다. 온고지신(溫故知新), 과거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2024-09-2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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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해운항만 용어, 너무 어려워요
20년 전쯤 선배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다. 당시 한국 전체 컨테이너부두를 관리하는 공공 기관이 있었는데, 그 기관은 현재 한국의 4개 항만공기업(Port Authority)의 전신이기도 하다. 그 명칭이 ‘한국콘테이너부두공단’이었는데 선배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절이니 1990년대 초로 추정이 된다. 어느 날 민원 전화가 와서 “콘테이너부두공단 아무개 대리입니다”라고 응대하니, “콘테이너 두부 공장이요?”라고 되묻더란다. ‘컨테이너’ 무역이 일반인들에게 많이 인지되지 않은 시점이라 그랬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는 ‘콘테이너’를 ‘컨테이너’라고 통일해서 쓰지만 당시에는 흔한 용어가 아니었다. 컨테이너라는 말은 이제 모두가 아는 일반적인 단어가 되었지만 여전히 해운항만 용어가 어렵다는 사람들이 많다.
부산항에서 처리되는 화물의 95%가 컨테이너 화물이다 보니 특히 정기선(컨테이너) 해운과 관련한 용어 설명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업무상 기자들에게 상세한 설명을 해야 할 때가 많은데, 기자들조차도 대부분 어렵다고 하니 일반인들은 말할 것도 없을 듯하다.
정기선 해운에서 가장 많은 오해를 유발하는 단어는 ‘서비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덤을 의미하는 ‘서비스’도 아니고, 가전제품 AS는 더더욱 아니다. 정기선 해운은 부정기선에 반대되는 말로 특정한 항로를 정해진 일정(주간 단위)으로 운항하기 때문에 정기 노선을 영어로 ‘weekly service’라고 한다. 업계에서 ‘남미 서비스 3개 신설되었습니다’는 식으로 말하면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도로에서 흔히 보이는 철제 컨테이너 박스는 ‘장비’ 혹은 ‘기기’로 부른다. “장비가 모자라 수출 화주들이 난리입니다”라는 말은 선사가 보유하고 있는 컨테이너 박스가 모자라서 수출 화주에게 빈 컨테이너 박스를 보낼 수 없는 상황이고, 따라서 수출 화물 예약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과거 팬데믹 물류대란 당시 흔한 장면이었다.
영어에서 컨테이너 박스를 ‘equipment’로 표현하는데, 과거에 이를 직역해서 사용하다 보니 ‘장비’(혹은 ‘기기’)라는 용어가 자리잡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 최대 컨테이너 선사였던 A사 출신 직원들은 모두 ‘장비’라고 하는 반면 B사 직원들은 ‘기기’라고 한다. 왜 그런지는 개인적으로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중 하나다. 지금은 ‘장비’가 ‘기기’보다 더 많이 쓰이고 있는 듯하다.
정기선 해운의 역사는 수천 년에 달하는 전체 해운의 역사에 비하면 극히 짧다. 특히 1980~1990년대부터 컨테이너를 통한 국제 무역이 급성장하였기에 우리가 체감하는 컨테이너 해운의 역사는 훨씬 더 짧으며, 여전히 진화하고 있는 산업이다. 원두커피, 차량, 가축, 의류 등 과거에는 컨테이너로 운송되지 않거나 운송할 수 없었던 화물들이 지금은 거의 컨테이너화(containerization)되었고,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 소비재는 90% 이상이 컨테이너를 통해 국제 운송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나 일반 대중들의 컨테이너 해운에 대한 이해도는 아주 낮다. 해외 항만과의 교류 경험에 비춰볼 때, 이는 해외도 마찬가지다.
컨테이너 해운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도가 낮은 이유는, 전형적인 B2B 산업이라는 점과 아직도 진화하고 있는 신생 산업이기 때문에 충분한 지식의 축적과 전파가 이뤄지지 않은 측면이 있다. 또 전문 용어를 순화하지 않은 채 그대로 사용해 온 탓도 크다.
과거 한진해운이 위태하던 시절, 한진해운을 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다양한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당시 한진해운 측 임직원들을 통해 많은 서면 자료를 받았지만, 전문 용어가 너무 많아 쉽게 풀어 쓰는 재가공(?) 작업을 해야 했다. 일부는 기자 브리핑용으로도 사용했으나 여전히 많은 분들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였다.
특정 전문 분야의 용어를 외부인을 위해 쉬운 용어로 변환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전문가 집단이 ‘전문 용어’를 고수하면 일반인과 기자는 이해를 못하고 결국 그 분야는 점점 더 대중에서 멀어지게 된다. ‘기업이야 돈만 잘 벌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모든 기업은 공동체에 속해 있고 공동체를 설득해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실패한다면 기업의 존속도 위태로울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과거 사례를 통해 경험한 바 있다.
부산항만공사는 국내 최대 컨테이너항 부산항을 관리하는 공공 기관으로서 전문 용어를 순화하고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당장 내일부터 우리 직원들에게 ‘서비스’ 대신 ‘노선’으로 쓰자고 권유해 봐야겠다.
2024-09-2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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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세계해양사학회 부산대회, 그 성과와 한계
지난 8월 19일부터 24일까지 제9회 세계해양사대회가 부산에서 열렸다. 설립 40주년을 맞은 세계해양사학회(IMHA)는 1989년부터 4년마다 세계해양사대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모두 유럽권에서 개최했다. 역사적으로 유럽인들이 해양 활동을 주도해 온 만큼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 이번 대회는 아시아권에서 처음으로 열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2022년 6월 포르투갈 포르토에서 열린 제8회 세계해양사대회(당초 2020년 개최였으나 코로나19로 순연돼 2022년 개최)에 참석한 필자는 부산 유치를 제안하면서 “유럽 중심적인 해양사 연구의 다양화와 세계화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역설한 바 있었다. 당시 유치전에는 핀란드와 에스토니아가 유치 제안서를 제출했다. 필자는 구두로 유치 의사만 피력했다. 한데 사무국에서는 필자의 구두 제안을 수용해 세계해양사대회 정기총회서 유치전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한국은 핀란드, 에스토니아와 유치 경쟁을 벌여 2차에 걸친 투표 끝에 아시아 권역 최초로 대회를 유치할 수 있었다. 당시 세계해양사학회 정기총회에 참가한 200여 명 중 한국인은 필자 한 명뿐이었다.
아시아권 첫 개최라는 점 큰 의미
8회 포르토대회보다 크게 성장
세계 해운 강국 대한민국 위상 높여
국내 해양사 분야 논문 적어 아쉬워
유치 확정 후, 대회 주제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총회 참가자들로부터 설문을 실시했다. 그 결과 반수 이상이 ‘Mobility and Connectivity of Ocean(해양의 이동성과 연결성)’을 선택했다. 세계해양사대회 사무국에서는 이를 일부 수정해 ‘Oceans : Local Mobility, Global Connectivity(바다 : 지역 이동성, 세계 연결성)’를 부산대회 주제로 최종 선정했다. 이는 시간과 공간의 압축으로 상징되는 지구화 시대, 바다는 지구화의 걸림돌이 아니라 촉매제라는 것을 함축한다. 주제 확정 후 대회 포스터 등에 사용할 디자인으로 1402년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와 나침반의 방위판을 활용한 시안을 제안해 확정했다.
세계해양사대회를 유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해양사 관련 학회가 없었다. 이는 학계에서 보기에 매우 기이한 상황이었다. 이를 인식한 한국해운항만학술단체협의회에서 “일부 재정적 지원을 해 줄 테니 해양사학회를 설립해 대회를 공동주관 해보라”고 조언해 주었다. 이에 힘입어 해운 경제학자와 해양 사학자들이 뜻을 같이해 이를 바탕으로 2022년 12월 ‘해양사학회’가 창립돼 부산대회를 공동으로 주관했다.
필자도 연구년을 세계해양사학회 회장이 재직 중인 미국의 올드 도미니온대학교에서 보내며 부산대회 준비에 힘을 보탰다. 전체적인 진행은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가 맡았다. 그 결과 개인 발표 96편과 패널 45개 그룹(130여 편)을 포함해 총 280편의 논문이 접수됐다. 참가국은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캐나다, 중국, 일본 등 28개국에 달했다. 하버드대, 옥스퍼드대, 도쿄대, 교토대, 베이징대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대학이 대거 참여했다. 세계 각국 해양학자의 행사 참여 등록자 수가 291명으로, 현장 등록자까지 포함하면 300여 명에 이른다. 국내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개최된 대규모 국제학술대회였던 셈이다.
앞서 열린 제8회 세계해양사대회 발표 신청 논문이 180편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부산대회는 배 이상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9개 세션이 동시간대에 진행돼 참가자들이 상당히 분산되었음에도, 세션마다 많은 연구자들이 참석해 진지한 질문과 토론을 이어갔다. 특히 한국해양사학회와 국립해양박물관이 공동 주최한 발표회장에는 80여 명의 내외국인 학자들이 참석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세계해양사학회 전·현직 회장을 비롯해 많은 참석자가 “매우 성공적인 대회였고, 부산은 매우 인상적인 도시”라고 말했을 정도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선 우리 해양사 연구의 현실이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연구자의 발표문은 60여 편이었다. 그나마 해양사 분야 신규 학술 논문은 채 10편도 되지 않았다. 해사법률, 항해안전, 선원 인권, 해양관광, 해양문화 등 비해양사 분야 발표문이 대다수였다. 이에 반해 일본, 중국, 대만 등의 주변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과 북미의 발표문은 예비 논문이거나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술 논문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비해양사 분야 한국 관련 발표장은 다소 썰렁한 느낌을 주었다.
아치섬(조도)과 영도, 그리고 부산 시내를 시끌벅적하게 했던 세계해양사대회는 이제 끝이 났다. 다음 2028년 대회는 에스토니아에서 개최된다. 이번 세계해양사대회는 아시아권에서 중국이나 일본보다 먼저 대회를 유치했다는 점에서 세계 해운 강국인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였다. 더불어 우리 해양사를 ‘세계해양사’에 편입시켜야 하는 과제도 함께 남겼다.
2024-09-01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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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제미니 협력'과 부산항의 변화
다음 주면 9월로 올해도 이제 4개월을 남겨 두고 있다. 사사분기를 준비하며 올 한 해 결과를 돌아보고 내년 사업 계획을 수립하는 시기다. 그런데 올해와 내년은 글로벌 해운항만업계에 변수가 많아 추가 계획 수립이 쉽지 않다.
우선 올해 초 업계를 뒤흔들었던 이슈는 세계 2위 선사인 덴마크 머스크와 5위인 독일 하팍로이드가 체결한 글로벌 해운동맹 ‘제미니 협력’(Gemini Cooperation)의 출범이었다. ‘제미니 협력’은 당초 7월 15일 법적 효력이 발생될 예정이었으나, 7월 12일 미국 연방해상위원회(FMC)가 선사들에게 추가 정보 제출을 요구하며 협력의 시행에 제동을 거는 바람에 시장에 예측 불허성을 가중시켰다.
미국, 머스크·하팍로이드 동맹에 제동
글로벌 해운항만업계 예측 불허성 가중
부산항 9개 터미널 물량 구조 변화 변수
선사, 파트너 터미널 확보 '선택의 시간'
FMC의 조치로 내년 2월로 예정된 ‘제미니 협력’이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의견은 많지 않다. 두 선사가 필요한 상세를 해명하여 곧 추가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문제는 선사 얼라이언스 변화가 6개월 앞으로 다가오며 부산항 9개 터미널들의 중장기 사업 계획 시나리오가 보다 복잡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상반기 업계의 관심은 두 가지로 집중됐다. 우선 세계 1위 선사 얼라이언스 ‘2M’(머스크+MSC)이 ‘제미니 협력’으로 변화하면 부산항 전체 물동량의 증가와 감소, 어느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이다. 이어 하팍로이드의 탈퇴가 우리나라 HMM이 소속된 ‘디얼라이언스’(The Alliance)의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주목된다.
하반기에 들어 업계의 관심은 새로운 ‘협력’의 탄생이 현재 9개 터미널 간 계약 물량 구조에 어떠한 변화를 야기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변화는 위기와 기회를 양면으로 제공하기 때문이다.
업계의 주된 관심사는 다음 네 가지다. 소속이 변경되는 하팍로이드가 현재 ‘디얼라이언스’ 멤버로 이용하고 있는 신항 3·4부두를 떠나 머스크가 이용 중인 2부두로 이전할 것인지가 주목된다. 만약 이전한다면 물량을 유실할 3·4부두는 대안이 있을까. 또 스위스 MSC는 ‘2M’ 해체 후 2부두를 떠나 지분을 보유한 1부두로 이전할 것인지도 관심사다. 만약 MSC가 이전한다면 1부두는 연간 400만TEU 규모로 예상되는 MSC의 물량을 모두 처리할 수 있는지로 논의가 이어진다.
이러한 논의가 신항 몇몇 터미널에 기항하는 대형 선사들에 한정된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원양 노선들은 중소 규모 국적, 외국적 선사들의 아주역내, 한중일 피더 노선들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어 대형 원양 선사들의 터미널 재편은 중소형 근해 선사들의 기항 터미널 결정에도 많은 영향을 초래한다. 특히 하반기에는 북항 자성대부두 운영사가 신감만부두로 이전할 예정이다. 기존 3개 터미널에서 현재 2개 터미널로 축소된 북항을 이용 중인 선사들이 신항으로 이전을 계획하는 경우 신항 동향 변화는 의사 결정에 주요 검토 요소이다.
기존 터미널 계약 갱신 또는 신규 터미널 계약 때 선사들의 우선 순위는 분명하다. 예를 들어 기존 얼라이언스들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그 시작을 알린 ‘제미니 협력’은 90% 정시성을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는 파트너 터미널을 찾을 것이다. 부산항 터미널에 지분을 투자한 MSC, 국적 HMM, 프랑스 CMACGM은 추가 터미널이 필요하다면 자가 터미널과 최대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파트너 터미널 검토에 집중할 것이다.
문제는 얼라이언스나 선사가 요청하는 물량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단일 터미널을 찾지 못할 경우다. 복수의 터미널과 계약을 체결해야 할 때 서비스 수준과 비용 측면의 최적 터미널 조합을 찾아야 한다. 터미널 이전 시기와 필요 시점이 맞아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일반 가정이 이사를 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사 경험이 많은 이들은 이사의 목적이 근무지 변경, 생활비 절감, 아이들 교육 개선 등 어느 쪽에 우선 순위가 있는지를 따져 조정이 가능한 항목은 빨리 조정하여 이사처를 확정할 것을 권한다. 이상적인 조합을 고집하다 보면 다른 이에게 이사처가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사 시기 역시 이사 들어갈 일정을 우선 정하고 이사 나오는 일정을 정할 것을 권한다. 예상하지 못한 이사 일정에 맞추다 보면 선택의 폭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올해 또는 내년 터미널 이전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는 선사에 올해와 내년은 선택의 시기다. 앞으로 중장기 파트너 터미널을 잘 확보한 사례와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했던 사례로 회자될 것이다.
2024-08-2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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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한-아세안 해양교육·연구센터' 설립을
한반도 주변 강대국 4강 외교를 제외하고 외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상대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이다. 한국 물동량의 30%, 수입 원유의 90%가 아세안 국가의 바다를 지날 정도로 해상 수송로의 요충지에 위치한 아세안은 글로벌 중추 국가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으로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파트너이다. 한국으로서는 두 번째 교역 대상에 이를 정도다. 외교적 관계도 최근까지 경제·문화협력에서 이제는 안보협력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특히, 아세안 인구 6억 7000만 명의 평균 나이가 30.9세로 생산 및 소비 인구가 엄청나다. 이런 젊은 세대를 통한 향후 성장 잠재력도 막대한 수준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43.4세, 일본은 48.4세다. 한국 사회의 인구 절벽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처가 아세안이기도 하다. 최근 미중 경쟁이 격화되면서 글로벌 기업과 공장이 중국에서 탈출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세안으로 몰려들고 있다.
오는 10월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제25차 한·아세안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이번 회의에서는 미중 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적 분쟁으로 인한 다양한 의제가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아세안 국가와의 협력과 함께 대한민국의 해양외교 강화, 해양영토 확대, 국내 해양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 ‘한-아세안 해양교육·연구센터’를 핵심 의제로 채택할 것을 제안한다. 부산의 글로벌 해양허브도시 구축을 위해서도 절실한 과제이다. 특히 부산에는 영도에 해양클러스터가 구축돼 있어 ‘한-아세안 해양교육·연구센터’의 최적지이다.
오는 10월 라오스 정상회담 의제 제안
영도 해양클러스터가 중추 역할 수행
교육 프로그램, 기술 공동 연구 진행
아세안 국가 간 협력 강화 이정표 되길
아세안 국가들은 역내 경제 통합을 강화함과 동시에 증가하는 무역량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단일 해운시장(ASSM)을 완성한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2016년부터 시행된 ‘2016-2025 아세안 운송전략플랜’에는 신규 항로 구축과 항만 역량 및 내륙 수송 네트워크 강화를 위한 프로젝트가 포함돼 있다. 해상물류 연계성 강화를 위해 47개 항만의 수용 능력 향상, 항만 효율성 제고, 해상운송비용 절감 등을 목표로 인프라를 개발하고 있다. 중국, 일본 등의 기업이 아세안에 활발히 진출하면서 해상교통 인프라 시장 경쟁력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해운 인프라 시장 규모는 연평균 8.5%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인프라 개발은 자연스럽게 보다 많은 우리나라 기업의 아세안 진출로 이어진다.
해양 산업은 한국과 아세안 국가의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무역, 교통 및 전체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해상물류, 항만개발·운영, 조선·해양과학기술 등에 노하우를 가진 한국 기업들은 아세안과 연계되는 사업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이 지역 해양 활동의 전략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 해양 교육·훈련 및 연구에서 협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아세안 해양교육·연구센터’ 설립은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전문 지식을 공유하며, 해양 문제에 대한 혁신적인 해결책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이다.
오는 10월 라오스의 한-아세안 정상회담에서 ‘한-아세안 해양교육·연구센터’가 핵심 의제로 채택된다면 센터는 향후 아세안 회원국의 해양 교육, 훈련 및 연구의 중심 역할을 맡게 된다. 이를 통해 회원국 간의 지식 교류와 역량 강화를 촉진할 수 있다. 특히 센터는 해상운송학, 해양공학 및 해양과학 분야에서 공동연구, 기술 이전, 학위 및 인증 과정 등을 통해서 선원, 해운, 항만, 조선 및 해양과학기술 전문가 등을 위한 고급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 제공할 수 있다. 아세안 국가는 급증하는 해양 전문가 인력 훈련 수요를 한국에서 충족할 수 있는 셈이다. 한국도 근대화와 수출, 해운의 경험을 아세안 국가와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특히, 한국은 실증 연구와 전문가 참여를 통해 효과적인 해양 정책 및 전략 수립을 지원하는 등 정책 및 전략 개발의 핵심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이는 아세안 국가의 해양 산업 효율성과 경쟁력을 개선하여 아세안 국가의 경제 성장을 지원하는 역할까지 확대된다. 무엇보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첨단 스마트·친환경 해양과학기술, 안전·환경 보호 및 지속 가능한 발전에 관한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부산이 해운·해양 관련 연구 개발의 중추가 될 수 있다.
물론, 센터는 한국과 아세안 회원국 간의 협력을 통해 운영되며, 공평한 참여와 의사 결정을 보장하는 거버넌스 구조를 가져야 한다. 센터 설립을 통해 한국과 아세안 국가 간의 유대감을 강화하여 이 지역의 번영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길을 열어줄 것이다. 오는 10월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한-아세안 해양교육·연구센터’를 의제로 채택해 한국과 아세안 국가의 파트너십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2024-08-18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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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전직 언론인의 '변절'
올림픽 열기에 다소 가려졌긴 하지만, 최근 가장 화제가 된 인물은 단연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다. 이진숙은 여러모로 극단적인 행보를 보여준 인물이다. 언론사 사장 출신이면서도 퇴직 후에는 보수단체에서 활동하면서 강성 발언으로 주목받은 전력이 있다. 방통위원장으로서는 임명 당일 위원회 구성도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공영방송 이사진을 임명하는 파격적 행태로 하루 만에 탄핵 대상에 올랐다. 명색이 장관급인 위원장의 역할은 현 정권의 ‘공영방송 탈환’을 위한 정치 게임에서 일회성 행동대원에 불과했다.
이처럼 극우 유튜버 출신에게나 어울릴 법한 행태에도 불구하고, 이진숙에게는 전혀 다른 모습의 과거가 있다. 이진숙은 MBC 기자 시절 보도국장 추천제를 무력화하려는 회사 측에 맞서 노조 파업에 앞장선 강성파였고, ‘최초의 여성 종군 기자’로 한때는 젊은이들의 역할 모델이었다. 이 시절의 이진숙에게서 ‘좌파에 장악당한 공영방송 탈환’을 위해 진흙탕 싸움에 뛰어든 보수 전사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후의 상반된 행보를 단지 언론인의 예외적인 ‘변절’로만 보기도 어렵다. 언론인 중에는 유사한 전향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비슷하게 악명을 떨친 이동관 전 방통위원장이나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역시 기자 출신이다.
언론인 변절 사례에서는 몇 가지 흥미로운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한 인물의 상반된 이력 사이에는 표면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유사성이 존재한다. 기자들은 초년 시절부터 사회 최상층과 상대하면서 엘리트 의식과 특권 의식을 습득하게 되고, 이는 권력 지향성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늘 대우만 받다 보니, 이 대우가 언론에 대한 도덕적 기대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대단한 신분이라서 그렇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래서 퇴직 후 느끼는 사회적 박탈감은 기자 직군에서 유독 강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변절 언론인의 상반된 모습을 이어주는 고리는 바로 이 엘리트 의식과 권력 지향성이다.
이진숙 기자 역시 이명박 정권 때는 한직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가 발탁되어 파격적인 고속 승진의 출세길을 걸어 지역 MBC 사장에까지 올랐다. 이 선택으로 기자 시절의 엘리트적 자존심은 살리게 되었지만, 그 선택의 대가는 ‘변절’이었다. 덜 극적이긴 하지만 기자가 출입처에서 쌓은 인맥을 활용해 정치권, 관계, 대기업에 진출하는 경로는 일상적인 패턴이 되었다. 평기자 때는 권력과 자본에 당당한 언론인을 꿈꾸다가도, 중견 간부쯤 되면 취재원과 원만한 관계 관리에 신경쓰면서 사실상 재취업 준비에 들어간다.
외부의 차가운 시선과 달리 이진숙은 이 선택을 자신의 지위에 걸맞는 자리 이동쯤으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평생 비판적 지식인으로 살았던 언론인 이영희 선생은 기자에게는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이 필수 덕목이라고 말했다. 언론인이 특별 대우와 화려한 생활에 익숙해지면 결국 초심을 벗어나는 선택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꿰뚫어 본 지적이다.
언론인의 변절 사례에서는 기자 직업 경로 자체의 구조적 문제점도 엿볼 수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민주화된 사회에는 서로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정치, 종교, 언론 등의 ‘장’(場)이 존재한다고 보았다. 가령 언론의 ‘장’에서 성공이란 직업 가치에 비추어 뛰어난 업적 성취를 뜻하는데, 이 업적은 정치나 경제의 ‘장’처럼 감투나 돈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 언론의 ‘장’에서 성공한 언론인은 얼마나 있을까? 최근 모든 조사에서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해답은 자명하다.
이러한 비극적 실태 이면에는 기자 직업 구조의 왜곡이란 원인이 있다. 한국 언론사에는 아무 업무나 잘 처리하는 고만고만한 기자만 넘쳐날 뿐 ‘전문가’가 드물다. 이들은 경력이 쌓이면 부장이나 국장 등 보직을 맡게 되지만, 이들의 경험이 젊은 기자로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전문성을 띠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점차 조직에서 퇴진 압박을 느끼면서 외부에서 돌파구를 모색하게 된다. 설혹 그 선택이 직업적 가치를 위협하는 악역일지라도 그렇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종사자들이 내부적 가치보다는 외부에서 삶의 목적을 찾게 되어 언론이 독립된 ‘장’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기자들의 그릇된 ‘재취업’을 금기시하는 직업 규범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상황을 악화시킨다. 과거에는 그나마 윤리적 비난을 피해 조용히 이직하던 것이 관행이었지만, 이제는 ‘영전’과 ‘출세’를 드러내 놓고 축하하는 분위기라는 점은 더욱 우려스럽다. 부끄러움조차 사라진 직업 사회에서 높은 직업 윤리와 신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2024-08-1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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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정통 크루즈 산업을 육성하자
크루즈 산업 육성은 우리 해운산업의 마지막 숙원사업이다. 이렇게 말하면 의아해할 분들이 많다. 여기서 말하는 크루즈는 한중, 한일 간 카페리를 이용한 여객 운송이 아니라 2000여 명의 여객에 1000명 정도의 승무원을 싣고 해외 각지를 순항하는 정통 크루즈를 말한다. 부산항 제주항에는 거의 매일 정통 크루즈선이 입항하지만, 이것만으로는 크루즈 산업의 육성이 충분하지 않다.
크루즈 산업은 크루즈 관광, 크루즈 해운항만, 크루즈 건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연구 결과에 의하면 크루즈 관광객 24명이 정규직 1명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1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면 대략 4160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크루즈 관광객 1명이 방문 도시의 1기항지에 약 20만 원을 지출한다. 부산항에 여객 2000명의 크루즈선 한 척이 입항하면 4억 원의 매출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해운항만 분야는 크루즈 산업의 핵심이다. 크루즈 선박을 소유하는 선주사, 크루즈를 이용해 여객을 운송하는 여객 운송인, 크루즈 선박에 선용품을 제공하는 업체, 크루즈선이 입항해 부두를 사용할 때 수입을 얻는 국제여객터미널을 운영하는 항만공사 등은 모두 크루즈와 관련된 해운항만 사업자들이다. 전 세계에는 446척의 크루즈선이 있으며, 이들은 연간 약 70조 원의 매출을 기록한다. 한 척당 연간 약 1560억 원의 수입을 올리는 셈이다. 열 척을 운항하면 1조 6000억 원 상당의 매출이 발생하게 된다. 크루즈선 건조도 중요한 산업이다. 통계에 따르면, 8000억 원 규모의 크루즈선 다섯 척을 건조하면 약 4조 원의 매출이 발생하고, 2만 5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현재 한국 조선소는 크루즈 선박 건조 경험이 없지만, 정통 크루즈와 카페리의 중간 단계인 크루즈 페리를 한국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것은 긍정적이다.
우리 정부의 크루즈 정책은 주로 해외 크루즈선 관광객 유치에 집중돼 있었다. 부산항과 인천항에 크루즈선이 입항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든 것이 좋은 예다. 그러나 크루즈 선주사와 운송인 육성, 연안 크루즈 여건 조성, 크루즈 조선 및 기자재 산업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부족했다. 만약 부산과 경남에 있는 조선소가 열 척의 크루즈선을 건조하고 이를 운송인으로 영업한다면, 선박 건조에서 4조 원, 운항 수입에서 1조 6000억 원 등 모두 5조 6000억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선박은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선박 소유자는 선박을 임대해 용선료를 벌고, 화주와 운송계약을 체결한 운송인은 운임 수입을 얻는다. 이 두 가지가 해운업의 핵심 축을 이루지만, 국내 크루즈 산업에서는 이러한 영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정통 크루즈선을 소유한 회사도, 크루즈를 통한 여객 운송업체도 없다.
우리나라에서 정통 크루즈 산업이 활성화되려면 무엇보다 크루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야 한다. 수요가 적다는 것은 영업 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의미이므로 해운기업들이 크루즈 영업에 나서지 않게 된다. 따라서 정부와 해운업계는 크루즈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크루즈의 장점을 부각하고 크루즈 관광의 매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상품과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최근 팬스타와 같은 카페리 여객선사, 롯데관광과 같은 여행사들이 정통 크루즈를 1주일 정도 임대해 운송인 역할을 하는 차터 크루즈를 확대하고 있다. 2024년에는 14회의 국내 크루즈 출항이 예정되어 있는데, 이는 정통 크루즈 운송인이 되기 위한 전 단계의 경험이 카페리 여객선사에 쌓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정통 크루즈 선주업과 여객운송업은 성장 잠재력은 크지만 경쟁력은 낮은 유치산업에 해당한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출발이 늦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특별한 지원도 필요하다. 크루즈선은 한 척당 건조가가 5000억 원 정도다. 한데 우리나라는 아직 크루즈선에 대해 선박금융이 일어난 적이 없다. 통상 2000억 원 정도의 자기자본이 있어야 한다. 한 회사만으로는 선박을 건조하고 소유하기 어려워 조선소, 항만공사, 해운회사 등이 지분을 나눠 가지는 방식으로 참여한다. 콘도처럼 여객실 하나하나를 구분해 소유권을 가지거나 사용권을 가지도록 해 펀딩하는 방안도 논의될 수 있다. 크루즈 산업 지원 및 육성에 관한 법을 강화해 외국의 선진 업자들과 경쟁할 수 있도록 우리 크루즈 사업 진입자들을 보호해야 한다. 이를테면 제한이 없는 외국 크루즈선과의 경쟁을 위해 국적 크루즈선에도 내국인이 공해에서 카지노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한중, 한일 카페리 여객운송을 중간 단계로 잘 활용할 필요도 있다. 이들 카페리를 이용하는 여객들은 정통 크루즈를 이용할 잠재고객이기 때문이다.
2024-08-0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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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뉴스, Z세대에 '소셜 퍼스트'로 다가가야
Z세대는 유년기부터 디지털 매체의 영향을 받고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들이다. 성장기부터 스마트폰을 가까이한 첫 세대로서, 웹툰, 게임 등 디지털 콘텐츠와 플랫폼의 유료 구독 비용 지불에 거부감이 없다.
자신에게 유용한 것과 스스로 흥미를 느끼는 것을 소비하는 경향을 보이는 Z세대는 신뢰하는 브랜드나 인플루언서의 콘텐츠를 더 믿는다. 반면 뉴스 콘텐츠에 대한 지불 의향은 낮다. Z세대는 언론에 아직 낯선 대상이며, Z세대에 다가가는 해법을 찾는 일은 언론의 시급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Z세대는 종이신문 구독은 물론이고 TV 뉴스 시청과도 거리가 먼 세대이다. 신문과 방송이 기성세대에게 뉴스 수용을 위한 주 매체였던 반면, Z세대에게는 숏폼 동영상이 뉴스와 정보 취득 미디어로서 주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Z세대는 뉴스 이용을 위해 뉴스 사이트가 아닌 SNS에 접속하며, 지인이나 주변 사람의 이야기나 쇼츠로 관심을 가지게 된 뉴스를 유튜브 검색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확인하고 이용한다.
Z세대 10명 중 8명(81%)이 숏폼 영상을 이용하고 있고, 이용 시간은 1일 평균 81.6분에 달한다는 국내 연구도 있다.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18~29세의 43%가 틱톡을 이용하여 정기적으로 뉴스를 소비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Z세대와 기성세대의 뉴스에 대한 다른 인식이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컨설팅 조직인 FT 스트레티지스(FT Strategies)가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의 저널리즘 스쿨과 협력하여 수행한 연구 보고서 ‘2030 오디언스의 이해’는 Z세대가 뉴스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먼저, Z세대는 자신이 알고 신뢰하는 소스, 즉 친밀감과 유대감을 느끼는 인물로부터의 정보를 원한다. 정보와 뉴스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아서 언론사 기자의 기사보다는 신뢰하는 인플루언서가 전달하는 정보에 더 관심이 많다.
둘째, Z세대는 자신에게 중요하고 유용한 정보 위주로 뉴스를 소비하는데, 사회 전체에 중요한 이슈보다 자신에게 관심 있고, 스스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뉴스를 선호한다.
셋째, Z세대는 자신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정보가 전달되기를 원한다. 쉬운 언어를 사용하고, 소비하기가 쉽고 간단해야 하며, 별도의 노력이 요구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만약 언론이 Z세대들도 나이를 먹으면 기존 매체를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큰 오산이라고 FT 스트레티지스 보고서는 경고한다. 오히려 언론이 Z세대와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하여 신속하게 대처할 것을 보고서는 주문하고 있다.
21세기 미디어 세상은 과거 ‘콘텐츠가 왕’이었던 시대에서 ‘유저(이용자)가 왕’인 시대로 변화하였다. 콘텐츠 제작이 아니라 오디언스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끝없이 탐구하는 알고리즘으로 콘텐츠 세계의 규칙을 완전히 바꾼 유튜브의 성공이 이를 증명해 준다.
이에 상응하여 언론사는 Z세대 뉴스 이용자의 특성과 사고, 감정, 행동 방식 등을 반영하고, 그들의 다양한 요구에 맞는 뉴스 경험을 제공하도록 세대 맞춤형 서비스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인기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존재하는 형식과 이용자 경험의 트렌드를 반영하여, Z세대의 소셜미디어 경험과 결합된 뉴스 콘텐츠를 만들어가야 한다. Z세대에게서 달라진 뉴스 가치에 대한 인식도 반영하여야 할 것이다. 저널리즘에서 일반적으로 통용해 온 뉴스 가치 기준인 시의성, 근접성, 저명성 등을 유연하게 적용하면서 친밀감, 흥미성, 관계성 등을 주요 뉴스 가치로 고려하는 변화도 필요하다.
Z세대는 신문과 방송 뉴스에 무관심하다. 언론은 생산한 뉴스가 Z세대에 도달할 모든 창구를 열어 그들과 공감대를 넓혀 친근감을 형성해 가야 한다. Z세대 소비자들은 유대감을 느끼는 브랜드나 크리에이터를 찾아 나선다. Z세대가 전 세계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지금 전통 뉴스 매체의 지속가능성은 심각하게 위협을 받고 있다.
뉴스 기획의 첫 단계부터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우선으로 하는 ‘소셜 퍼스트 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이를 위해서는 내부적으로 인력 부족과 수익성을 이유로 경영진이 서비스를 중단하는 악순환을 극복해야 한다. 데스크급과 경영진의 미래 지향적 인식 변화도 수반되어야 한다.
2024-07-1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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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부산 수돗물을 신뢰하나요
지난 주말은 여름 더위의 시작으로 24절기 중 열한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인 소서였다. 소서는 ‘작은 더위’인데 이때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 무더위엔 가장 생각나는 것이 시원한 물 한 잔이다.
물은 모든 생물에게 필수 자원으로 사람의 몸은 약 70%가 수분이라고 한다. 혈액의 92%가 물로 구성돼 있으며 뇌도 85%가 물로 돼 있다. 인체에 물이 충분하지 않으면 탈수로 인해 여러 질병이 생긴다. 사람이 물을 마시지 않으면 혈액의 94%를 이루는 혈장에 수분 공급 부족으로 농도가 짙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혈전(피떡)’이 잘 생겨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이 일어나기 쉽다. 위생적인 물을 마시는 것이 우리의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먹는 물의 질이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 먹는 물의 질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은 마시는 양도 중요하지만 질도 매우 중요하다.
무더위가 일찍 시작된 올해 여름에는 전국 지자체는 물론 부산, 경남 일부 지역의 식수원으로 사용되는 낙동강의 녹조에 대한 우려가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지난해에는 낙동강에 유독 물질이 검출되고 깔따구 등 유충이 발견돼 먹는 물의 안전성이 크게 위협받았다. 많은 시민은 1일 1식 정도만 정수기 물로 가정에서 요리하고 나머지는 거의 식당에서 먹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량으로 음식을 조리하는 식당은 거의 수돗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불신을 살 수 있는 수돗물에 시민들이 노출돼 있다.
수돗물 섭취는 특히 부산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산 시민이 중상류에 오염원이 많은 낙동강 물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부산 시민은 물론 경남 일대의 많은 주민들도 잘 모를 것이다. 낙동강 물이 발원지로부터 경북, 대구를 거쳐 510㎞를 흘러 내려오는 유역에는 무려 1만 7000여 개의 기업체와 수많은 축산 농가가 있다. 광주광역시 공공지원단이 서울시 등 전국 8개 특별·광역시 주민의 건강 수준을 비교·분석해 2021년 3월에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부산은 암 환자 발생이 1위였고 대구가 2위였다. 이는 낙동강 유역에 있는 주민들이 원수 수질이 좋지 않은 낙동강 물을 먹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한다.
통계청이 2021년 11월 1일 공표한 ‘2020년 신생아 기대수명’을 보면 서울은 84.1세, 부산은 82.7세로 서울보다 1.4년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은 바다를 끼고 있어 수도권에 비해 공장 수도 적고 공기 질도 좋은데 악성 질환자는 부산이 가장 많다고 한다. 서울 등 수도권 거주자 2800만 명의 경우 팔당댐의 깨끗한 물을 식수로 공급받고 있다. 강원도와 충청북도 상류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을 공급받는데, 공단 하나 없고 축산 농가도 없다. 반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생활용수와 공장 폐수를 아무리 정수한다고 해도 낙동강 물은 수도권의 맑은 물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지난달 전국 취수원 중 최악의 수질 상태인 낙동강 유역에 맑고 안전한 상수원을 신속하게 확보하기 위한 ‘낙동강 유역 취수원 다변화 특별법(낙동강 특별법)’이 여야 공동으로 발의됐다. 특별법 제정을 통해 부산과 동부 경남 지역 주민들에게 각종 지원 사업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상생 기반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국제법상 인간의 기본권 중 하나가 안전하고 깨끗한 물을 마실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유엔은 안전한 물이 인종과 빈부를 넘어 모든 사람에게 적정 가격에 충분히 공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매년 3월 22일을 ‘세계 물의 날’로 정했다. 유엔은 전 세계 22억 명이 안전한 식수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라고 했다.
세계의 대도시 중 맑은 물로 유명한 곳을 꼽자면 미국 뉴욕을 들 수 있다. 수돗물을 정수기 없이 마셔도 탈이 나지 않는다. 더 놀라운 사실은 뉴욕 시민들은 수돗물값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일부 기업이나 저택 등엔 수도 요금을 받기는 하나 대부분의 가정은 하수도 정화 요금은 내도 상수도 요금을 내지 않는다. 이는 록펠러 덕택이다.
‘석유왕’ 록펠러는 반독점법으로 인해 그룹이 해체되었을 만큼 무자비한 방식의 경영으로 유명하지만 인생 후반부에는 자선 사업가로서 여생을 보냈다. 록펠러의 자선 활동 중 하나가 뉴욕의 상수도 건설이다. 록펠러는 가난하든 부자든 누구나 물을 마실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관련 시설을 뉴욕시에 기부했다. 고도로 산업화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오늘도 쓰고 버리는 물이 환경을 얼마나 오염시키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맑은 물을 위한 생활 속의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 바다로 흘러드는 낙동강 물이 오염되는 게 안타까워 필자의 시선을 강으로 돌려봤다.
2024-07-0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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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유튜브와 뉴욕타임스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심상치 않다. 여당의 총선 참패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일부 여론 조사에 의하면 20퍼센트 언저리에 머물 정도로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그간 대통령과 여당에 비교적 호의적이던 ‘조중동’ 등 보수 언론들조차도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 불통, 무능에 대한 불만을 표하는 듯, 대통령 때리기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중앙일보의 김현기 논설위원은 ‘차기 대통령의 조건’이라는 칼럼으로 화제가 됐다. 차기 대통령으로는 첫째, 이른바 ‘갑튀 후보’, 즉 오랜 검증을 거치지 않고 갑자기 튀어나온 후보는 뽑지 말자. 둘째, 건들건들하지도 말고, 거들먹거리지도 말고, 국민을 얕잡아 보지도 않는 ‘올바른 태도’를 지닌 인물을 뽑자. 셋째, 지지층의 결집을 촉구하는 지도자 말고 확장을 호소하는 지도자를 뽑자. 극단적인 유튜브의 확증 편향적 정신세계에 갇혀 있지 않고, 유튜브가 아니라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를 보는 지도자를 뽑자. 그리고 기왕이면 배우자 관리도 잘한 지도자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여야 지도자를 모두 겨냥했지만, 특히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비판이라는 사실은 누구든 쉽게 간파할 수 있는 내용이다.
검증 취재 없이 막말·주장·의혹 중계
유튜버 등장 전부터 정치 뉴스 퇴행
보도 관행 맞춰 정치인 행태도 타락
타성에 갇힌 언론, 후진적 정치 ‘원죄’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은 현재의 정치적 난맥상의 한 요인으로 정치 지도자가 접하는 언론 매체를 지목했다는 점이다. 바로 유튜브 정보가 갖고 있는 편협성, 정파성, 무책임성이 정치인의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이러한 양상이 현재의 정치 지도자상에도 투영된다는 인식이다. 과연 그럴까?
유튜브와 뉴욕타임스는 여러모로 저널리즘에서 서로 대척점에 있는 정보 매체들이다. 뉴욕타임스는 뉴스 선정에서 인기와 무관하게 중요도와 파급 효과가 큰 기사를 고수한다. 아무리 고위직의 발언이라 해도 다양한 출처를 통해 철저하게 교차 확인, 검증하지 않고 내보내는 일은 드물다. 심지어 의견 기사인 칼럼에서도 방대하고 철저한 취재에 경탄을 금할 수 없을 정도다. 기사를 쓸 때에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단어 선택에서도 신중을 기한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특별하고 예외적인 언론이라기보다는 다만 저널리즘의 직업 규범을 좀 더 철저하게 준수하는 권위지의 한 사례일 뿐이다.
반면에 유튜브는 저널리즘의 이 모든 규범을 무시하고 사실 규명보다는 의혹, 분노, 공감, 상상 등의 정서적 반응을 유발해 이용자의 화제와 관여를 최대한 끌어내는 데 주력한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사실이나 진실 규명이 아니라 화제성의 극대화이기에 뉴스의 근거와 윤리적 규범은 아예 무시한다. 오늘날 파워 유튜버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근거 없고 무책임한 정보 확산이 정파적 균열과 갈등을 초래할 위험성도 덩달아 증가했다.
그렇다면 한국 언론의 정치 뉴스는 이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유감스럽게도 현재의 정치 보도는 뉴욕타임스보다는 유튜브에 훨씬 더 가깝다. 정치 뉴스는 정치인의 막말, 허위 주장, 신변잡기, 의혹 제기 등 서구의 타블로이드 신문에나 적합할 만한 온갖 내용으로 채워지는데, 흥미롭게도 이러한 갈등이나 의혹은 늘 반복해서 등장할 뿐 실제로 취재를 통해 규명되는 일은 드물다. 유튜버가 등장하기 오래전에도 정치 뉴스에서는 ‘타블로이드화’, ‘유튜브화’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미디어 환경 변화와 더불어, 다른 부문에서는 혁신의 시도가 계속 나오는 가운데서도 정치 보도는 오래전의 낡은 관행을 꿋꿋하게 되풀이하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신생 매체인 유튜브가 이런 식의 작업을 훨씬 더 잘 수행하면서 정치 보도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 뉴스는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한국 언론에서도 가장 낙후된 공룡 같은 존재다.
언론 보도는 정치인과 정치 관행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유튜브식의 퇴행적 정치 보도는 정치인들의 행태까지 타락시킨다. 정치 보도가 국가의 미래 비전이나 정책에는 관심이 없고 정치인의 신변잡기, 자극적 막말이나 일방적 주장 중계에만 주력하는 바람에, 어느새 정치인의 행태 역시 이에 맞게 진화했다. 심지어 신인 정치인들조차 기성 정치를 모방해 허언이나 막말로 주목 끌기에 앞장서는 것이 현재의 한심한 현실이다. 만약 주류 보수 언론들이 윤석열이라는 아마추어 대통령의 탄생에 개탄하는 게 진심이라면, 이들 역시 기존의 타성에 갇혀 제 역할을 소홀히 했다는 정치적 원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현재의 정치 보도 관행이 획기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제2의 윤석열 대통령이 배출된다고 해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앞서 한국 정치인의 후진성을 비판한 언론인에게는 오래전 어느 영화에 나온 대사를 들려주고 싶다. “너나 잘 하세요.”
2024-06-1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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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선원의 날, 선원을 기념하는 두 가지 방법
근로자의 날로 시작된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석가탄신일을 축하한 뒤, 바다의 날로 막을 내렸다. 이에 비해 6월은 현충일과 6·25전쟁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있어 엄숙한 느낌마저 드는 달이다. 이런 6월에 새로운 법정기념일로 ‘한국 선원의 날’이 지정된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2010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선원의 훈련과 자격 증명 및 당직 근무의 기준에 관한 국제 협약(STCW) 개정을 위한 외교 회의에선 6월 25일을 ‘세계 선원의 날’로 정하고 UN으로부터 국제기념일로 승인받았다. 지정결의서에는 선원들이 ‘국제 해상무역, 세계 경제와 시민사회에 끼치는 특별한 공헌’을 인식할 목적으로 세계 선원의 날을 지정함과 아울러, ‘각국 정부, 해사 단체, 해운기업, 선주와 해사 관련 당사자들이 적절하게 기념하고, 의미 있게 축하하려고 조처할 것’을 장려했다. 우리나라 대표단은 이 회의에 참석해 6월 25일이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임을 상기시켰지만, 결의서가 채택된 이날이 세계 선원의 날로 지정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해양수산부로서도 6·25전쟁 발발일에 선원의 날을 기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후 10여 년, 세계 선원의 날은 있는 듯 없는 듯 지낼 수밖에 없었다.
2024년은 선원 해외 취업 60주년
자료 소실되고 작고한 선원도 많아
역사 수집·정리하는 일 늦춰선 안 돼
부산 북항에 기념관·역사관 지어야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5월 선원법이 개정되면서 ‘6월 셋째 주 금요일’을 법정기념일인 ‘한국 선원의 날’로 지정했다. 지난해에는 6월 23일 첫 기념행사를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성대하게 개최한 바 있다. 올해는 오는 21일 국립한국해양대학교 대강당에서 ‘새로운 시작, 당신의 위대한 항해’를 주제로 기념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이 행사 외에도 15일부터 21일까지를 선원 주간으로 지정해 승선 체험, 걷기 대회, EBS 다큐멘터리 방송, 제1회 선원 페스티벌 등이 펼쳐진다. 지난해 기념행사만 치러진 것과 비교하면 좀 더 풍성해지고 다양해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선원의 날을 제정한 것이 단순히 기념행사를 여는 데 있는 것이 아님을 생각하면 다소 아쉬운 감이 있다. 선원들이 사회와 국가에 기여한 바를 온 국민이 기억하고 기리자는 데 기념일을 제정한 본래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선원을 기념하기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선원들이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에서 이바지한 바를 기록하고 정리하는 일이다. 한국 선원 사회와 국립한국해양대학교의 발전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해외 선박 취업이었다. 1964년 2월 10일, 2700톤급 일본 교세이(協成) 기선의 선박 관리 회사인 홍콩의 퐁씽선무(豊誠船務)의 룽화(Loong Wha)호에 김기현 선장과 이상래 기관장 등 28명의 선원이 승선한 것이 해외 취업의 시발점이었다. 이후 한국 선원의 저렴한 인건비와 근면·성실함을 확인한 일본의 산꼬기센과 K라인, 미국의 라스코와 MOC 등의 선사들이 우리 선원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천경해운과 대한해운 등이 창업 초기 선원 송출 사업으로 기틀을 다질 수 있었고, 수많은 선원 송출 회사와 부산항이 호황을 누렸으며, 그로 인해 조선산업, 선박수리업, 급유업과 선식 공급업 등이 연쇄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2024년은 우리나라 선원의 해외 취업 6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제1회 선원의 날 기념행사보다는 선원 해외 취업 60주년이 훨씬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일이라는 데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해외 취업선과 관련한 자료들이 소실되고 있고, 초기 해외 취업선에 승선했던 많은 선원이 작고한 상태다. 다행히도 제1호 해외 취업선인 룽화호에 기관장과 항해사로 승선했던 선원들이 여전히 생존해 있다. 해외 취업 선박에 승선했던 분들의 역사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선원을 기념하기 위해 해야 할 두 번째 일은 우리나라 산업화 과정에 그들이 우리 사회와 국가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전시관이나 기념관을 만드는 일이다. 파독 근로자를 기념하는 전시관은 서울과 동해, 그리고 남해에 각각 조성돼 있다. 광부와 간호사, 간호조무사의 파독 취업은 15년(1963~1977) 정도 이어졌지만, 선원의 해외 취업은 오늘날까지 60년(1964~현재) 이상 지속되고 있다. 부산항은 우리나라 최대 무역항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선원들의 모항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현재 부산 북항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여기에 선원 기념관이나 역사관이 지어져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선원과 직간접으로 관계된 한국해기사협회, 한국선박관리산업협회,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한국해운협회, 해양수산부는 의례적인 행사로 선원을 기념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선원을 기념하는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2024-06-0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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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젊은 기자들은 왜 떠나는가
젊은 기자들이 언론사를 떠나고 있다. 언론 고시라는 높은 벽을 뚫고 기성 언론사에 입사한 우수하고 유능한 인재들이다. 기자 지망생도 감소하고 있다. 한때 선망의 대상이던 언론인이라는 직종이 채용 시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이들은 왜 언론을 떠나는가?
중앙일보·JTBC 노보에 따르면 3월 현재 올해 퇴사를 결심한 기자가 8명이다. 이들의 평균 근속 연수는 5년에 불과했다. 조선일보 노보는 지난 10년 사이 조선일보에 입사한 기자 106명 중 40명이 퇴사했다고 밝혔다. 저연차 젊은 기자들의 40%가 다른 길을 찾아 언론사를 떠난 것이다. 언론사가 ‘이직 사관학교’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언론계에서 나올 정도이다. 한겨레신문 2019년 1월 노보는 지난 1년 사이 10명이 퇴사했다고 밝혔다.(월간 〈신문과 방송〉 5월 호)
최근 젊은 기자들의 퇴사 러시는 위기의 언론계에 다시 한번 경종을 울리고 있다. 언론의 위기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 언론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평판, 그리고 언론 조직 내부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언론 위기의 원인은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젊은 층 퇴사 러시 언론사 위기 가중
시대 뒤처진 조직 문화·취재 관행 탓
새 경영 트렌드 '직원 경험' 도입해야
성장 체험 축적·역량 향상 기회 필요
디지털 전환이 가져온 경쟁 매체의 증가와 다양화는 위기의 외부 요인으로 작용한다. 네이버, 카카오 등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이 뉴스 유통의 강자로 자리매김한 외부 환경 변화가 대표적이다.
언론이 직면한 불신의 굴레는 언론의 영향력과 위상의 추락뿐만 아니라 기자들의 사회적 평판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조직 문화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취재 관행들은 뿌리 깊은 언론사 내부적 문제로서 위기를 심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는 특히 최근 젊은 인재들의 퇴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어 세심한 관찰과 대응책 마련이 요구된다.
언론계를 막론하고 직장인들은 직장에서 겪는 경험이 누적되어 퇴사를 결정짓는다. 다수의 조사는 연봉보다는 근무 환경이나 직장 내 인간관계가 퇴사 결정에 더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한 직원이 입사 지원 순간부터 퇴사 시까지 겪는 모든 경험을 말하는 직원 경험이라는 개념이 새로운 경영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직원 경험이 긍정적인 직원들은 그렇지 못한 직원들에 비해 직장 만족도와 참여도가 높으며, 직원 참여도가 높은 기업은 수익성과 생산성이 최소 20% 이상 더 높다. 긍정적인 직원 경험이 직원 유지와 비즈니스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조기 퇴사의 흐름에 맞서기 위하여 언론 기업의 리더들이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어떻게 하면 기자들의 긍정적인 성장을 위한 탁월한 직원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언론사에서, 특히 저연차 기자들은 취재 업무 성격상 소모품처럼 쓰이며 심각한 스트레스와 번아웃에 빠진다. 이들은 언론 본연의 비판과 감시라는 사명과 역할을 채 배우기도 전에 탈진 상태에 좌절한다.
언론 기업은 기자들에게 유연하고 적응 가능한 업무 환경을 조성해 줄 수 있도록 그들의 감정과 생각을 파악하는 정례 미팅과 같은 시스템 도입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언론사는 연차 단계별 교육 기능을 체계화하고 재설계하여야 한다. 데스크 담당자 이상 직급자에 대한 교육 체계 구축을 통해 관리자로서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이들이 리더십 기술 향상이나 팀원과 소통하는 방법 팁 등 평기자들에 대한 동기 부여와 회사의 지침 전달에 능통할 수 있도록 적절한 교육을 제공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서 저연차 기자들이 긍정적인 직무 경험을 축적하고, 업무 역량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디어 환경 변화, 사회적 평판, 내부적 요인이라는 삼중고에 처한 언론이 젊은 기자들의 퇴사를 막기 위한 첫걸음은 조직 내부적 요인의 점검에서 출발해야 한다. 저연차의 젊은 기자들이 퇴사하는 이유가 소속 언론사가 배움과 성장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은 아닌지 언론 기업의 리더들은 성찰해 봐야 한다. 기업의 성공 지향이 아니라 성장 지향의 직원 경험이 우선시되는 조직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긍정적인 직원 경험이 직원 유지와 비즈니스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2024-05-1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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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광고가 미디어를 집어삼키나
최근 SBS 드라마 ‘모범택시2’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 대상에 올랐다. 드라마 내에서 특정 건설사 이름과 홍보 내용을 지나치게 부각해 ‘간접광고’ 금지 조항을 위반했다는 점이 사유였다. 드라마에 등장한 이 건설사는 남자 주인공이 광고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는 회사라는 점에서 더욱 큰 논란이 됐다. 또한 특정 건강 제품의 효능을 홍보하는 내용이 버젓이 출연자들의 대사로 나왔다는 점도 제재 사유로 지목됐다. 간접광고는 이른바 PPL이라는 이름으로 이 드라마뿐 아니라 최근 텔레비전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이는 드라마 내용과 광고 간의 구분을 흐린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한 추세다.
드라마에 특정 상품을 슬쩍 노출하는 수준을 넘어 대놓고 강조하는 바람에 드라마의 흐름을 깨뜨리고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있다. 몇 해 전 어느 인기 드라마에서는 특정 자동차 회사 브랜드가 과도하게 자주 나와 빈축을 사기도 했다. 주인공이 특정 자동차를 모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래도 애교로 봐줄 만한 수준이다. 아예 드라마 속의 남녀 커플이 뜬금없이 자동차 전시장을 방문하는 장면까지 나오는데, 이는 오직 광고를 위해 스토리와 무관하게 억지로 끼워 넣은 에피소드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유명 배우까지 대거 출현한 대작으로 큰 기대를 모았으나 지나친 간접광고로 스토리가 엉망이 되어 흥행을 망친 작품도 있었다.
드라마 속 PPL 수위 지나쳐 제재
기사 형식 ‘신제품 소개’도 증가세
보도·콘텐츠와 광고 간 경계 소멸
매체 존립 기반 무너뜨리는 행위
광고와 콘텐츠 간의 구분 소멸은 드라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뉴스 부문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기사형 광고’나 ‘광고성 기사’인데, 이는 기사 형식으로 위장한 사실상의 광고라고 할 수 있다. ‘신제품 출시’나 ‘기술 혁신형 상품’ 관련 정보가 기사형 광고의 전형적인 소재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순수한 광고보다는 기사가 독자의 신뢰를 얻기에 유리하기 때문에, 당연히 광고의 기사화를 선호한다. 이 기사 게재의 조건으로 억대의 대가가 오가기도 하기에 재정이 취약한 회사일수록 돈의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러한 형식의 기사는 검증되지 않은 사실과 일방적 주장에 입각해 작성된 것으로, 독자를 기만하고 판단을 흐리게 할 우려가 있어 심각한 직업 윤리 위반에 해당한다.
광고형 기사 실태에 관해서는 아직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 폐해의 정도를 판단하긴 어렵다. 그런데 2019년 뉴스타파는 광고자율심의기구의 제재 내용을 근거로 일간신문사의 기사형 광고 게재 실태를 조사했다. 소규모의 조사였지만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조사 결과 예상과 달리 조중동과 경제지 등 이른바 ‘메이저’ 신문사들이 상위권을 차지해 기사형 광고 범람의 주범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조선일보, 한국경제, 매일경제의 순으로 기사형 광고로 제재를 많이 받았고, 메이저 회사들의 게재 건수를 합산하면 전체 건수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조사 시점 기준으로 기사형 광고의 제재 건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심의기구 관계자에 의하면 아주 극단적이고 명백한 위반 사례만 집계했기 때문에, 실제 위반 건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한다.
드라마의 간접광고나 신문의 기사형 광고는 광고와 콘텐츠의 경계 허물기라는 점에서 비슷한 윤리 위반 형태다. 하지만 이러한 위반 행위가 초래하는 해악은 기사형 광고에서 더욱 크다. 드라마는 현실을 모사하긴 해도 어차피 허구의 세계를 다룬다. 간접광고는 드라마의 작품성을 훼손하고 시청자의 몰입을 해칠 뿐이다. 반면에 기사는 현실을 정확하고 균형 있게 보도해야 하는 책임을 진다. 그래서 허구나 과장에 불과한 광고를 현실의 반영인 기사로 위장하는 것은 체계적인 속임수라는 점에서 윤리적으로 더욱 큰 문제가 된다.
유형을 막론하고 미디어에게 광고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물론 시청자나 독자가 유익하고 흥미로운 드라마와 뉴스를 공짜로 누릴 수 있게 된 데는 광고의 공이 매우 크다. 하지만 광고는 남용하면 미디어의 건강에 치명적인 마약이 될 수도 있다. 방송심의규정이나 언론계 윤리규정이 광고와 기사·콘텐츠의 엄격한 구분을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최근 일종의 유행병처럼 광고와 기사, 광고와 콘텐츠 간의 구분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것은 미디어 시장이 일종의 ‘머니 게임’으로 변질하면서 그만큼 경영 환경이 열악해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광고와 기사의 엄격한 구분은 미디어의 근간인 신뢰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미디어가 눈앞의 이익을 위해 손쉬운 돈벌이의 유혹에 빠져든다면, 이는 곧 자신의 존립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2024-04-21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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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고등어는 수산업의 희망!
봄이 되면 입맛이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게 봄과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봄이 되면 생리적인 피로감, 춘곤증으로 입맛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럴 때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식재료가 있다. 달콤쌉싸름하면서도 향긋한 각종 봄나물과 고소하면서도 짭조름한 고등어구이는 떨어진 입맛을 되돌리는 데 환상의 궁합을 이룬다.
무엇보다 고등어는 보리처럼 영양가가 뛰어난 데다 쉽게 구할 수 있고 값도 저렴해 서민들에게 매우 익숙한 어종이다. 우리 민족이 고등어를 즐겨 먹은 역사는 길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황해도, 함경도 지방의 토산물로 기록돼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경상도, 전라도, 함경도 지방의 토산물이라고 했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우리 선조들의 밥상에 오른 고등어는 지금은 우리나라 제주 인근 해역에서 많이 잡힌다. 주로 대형선망 어업으로 잡는데, 선망은 어군(魚群)의 존재를 확인한 뒤 이를 포위해 잡는 어망을 총칭하는 말이다. 본선과 2척의 등선, 3척의 운반선까지 모두 6척이 선단을 이루는데, 본선은 고등어를 찾는 역할을 하고 등선은 불을 밝혀 고등어 떼를 모은다. 어군에 그물을 던져 잡은 고등어는 운반선을 통해 항구의 위판장으로 간다. 주로 제주도 인근 해역에서 잡은 고등어의 90% 이상은 부산공동어시장으로 향한다. 고등어는 다른 어종에 비해 붉은 살이 많고 지방질도 풍부해 쉽게 부패하는 특성이 있어 이동 시간을 줄이는 것이 선도 유지의 관건이다.
대형선망들은 다음 주부터 두 달간의 휴어기를 갖는다. 해양수산부는 산란기의 어미 물고기와 성장기의 어린 물고기 보호를 위해 총 44종에 대해 금어기를 규정하고 있다. 고등어의 올해 금어기는 이달 23일부터 다음 달 22일까지로 돼 있지만 대형선망들은 기간을 조금 더 보태 6월 22일까지 휴어기로 정했다.
연근해의 어획 고등어 대부분이 모이는 부산은 우리나라에서 고등어로 가장 유명한 도시다. 2011년부터는 고등어가 부산을 대표하는 시어(市魚)로 지정됐다. 어획 고등어의 90% 이상이 부산공동어시장을 거쳐 전국으로 유통되고 있고 접근성도 좋다 보니 고등어 가공 업체도 50여 곳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국산 고등어 맛을 쉽게 볼 수 없다. 식당과 마트는 이미 노르웨이산 고등어에 의해 점령된 지 오래다. 노르웨이 수산물위원회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노르웨이 고등어의 한국 수입량은 1만 6867톤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6% 증가했다. 노르웨이 고등어의 국내 점유율은 매년 늘고 있다. 노르웨이가 고등어 수출 강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차갑고 청정한 바다 환경을 비롯한 기술력, 젊은 어업인 육성 등 국가적 차원의 연구와 지원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반면 국내 수산물 유통의 허브인 부산공동어시장은 시설 노후화와 비위생적인 유통 환경으로 점차 경쟁력을 잃고 있다. 1963년 개장한 공동어시장 시설은 곳곳이 낡았고 경매 시스템도 60년 전의 방식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다.
이러한 열악한 상황은 대형선망 소속 선단들이 부산을 이탈해 다른 위판장으로 가도록 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제주 한림, 경남 남해와 삼천포, 통영, 전남 진도 등 5~6곳의 위판장으로 선단이 옮겨갔다. 지자체들도 다양한 지원을 약속하며 대대적인 유치 노력을 벌이는 중이다. 전남 장흥군은 136억 원의 위판시설투자와 콜드체인 물류시스템 구축 등을 약속하며 대형선망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부산 수산업계는 이를 우려하고 있다. 수협중앙회 수협경제연구원 등에 따르면 부산공동어시장은 직접 생산 유발액 4580억 원, 유통가공이나 기자재 등 후방산업까지 포함하면 연간 최대 1조 원의 산업가치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공동어시장의 경매량이 위축되면 지역에 미치는 경제적 악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아프리카 시장에서 국산 고등어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산 수입 제재와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로 인한 외부효과 때문이다. 게다가 가격이 저렴하고 풍부한 단백질 등 맛도 좋은 국산 고등어의 인기도 한몫했다.
이처럼 새로운 해외 시장의 개척은 국내 수산업계의 발전과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고등어 도시’인 부산은 이런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공동어시장의 현대화 사업을 서둘러 시작해 위판·물류 자동화시스템과 전자거래 도입, 비대면 경매체계 구축 등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고등어를 대하는 방식을 전통적인 시각에서 탈피해 부산 수산업의 미래가 달린 성장 산업으로도 키울 수 있음을 유념해 볼 때가 됐다.
2024-04-14 [1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