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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기후 변화와 미래 식량 산업 블루푸드
해양 생태계가 급변하고 있다. 동해에서 오징어가 사라지고 있고, 제주 바다에 열대어가 늘고 있다. 해외에서는 투발루가 물에 잠기고 있는 등 지구가 위기에 처한 지 오래됐다. 환경 전문가들은 연간 350억t에 달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제로(0)가 되지 않으면 지구는 회생될 수 없다고 진단한다.
세계 각국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지구온난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20% 정도를 차지하는 식량 공급 산업 측면에서도 지금의 생산 체계로는 탄소중립은 물론 현재 80억 명에서 2050년 100억 명으로 늘어날 세계 인구의 식량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식량 위기는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는 푸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져 우리의 식탁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블루푸드(Blue Food)는 친환경적 식량 공급 개념으로 해양과 내수면에서 생산된 지속 가능한 수산물을 일컫는 용어다. 이는 수산물을 기존의 단순한 식량 공급원의 하나가 아니라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인류에게 건강한 영양분을 풍부하게 제공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식품 공급원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개념이다. 블루푸드는 지구 환경의 회복력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식품 공급원으로서 점차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블루푸드는 육상 농·축산물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생산에 필요한 토지와 물 사용이 적으며, 특별한 사료 없이도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해조류, 어패류 등 다양한 단백질 공급원을 길러 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탄소를 흡수하는 해조류의 블루카본(Carbon)의 중요성은 최근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선진국에서 해조류는 바다에서 나는 환경친화적인 채소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다시마 등 해조류를 직접 양식한 뒤 스낵으로 가공해 판매하는 스타트업 기업도 다수 등장했다. 이들의 비전은 해양 환경을 치유하고, 지구를 회복시킬 수 있는 식품을 만드는 것이다.
블루푸드는 영양학적으로도 인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잠재성이 있다. 세계적으로 건강한 식품 공급원에 대한 관심도는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블루푸드는 결핍되기 쉬운 오메가-3, 아연, 철분, 비타민 A·D·B12 등 필수 미량 영양소가 풍부하며, 칼로리가 낮고 단백질 함량이 높다. 그러므로 육류보다 건강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인류에게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 될 수 있다. 블루푸드의 소비 증가는 국민 건강 수준의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디저트, 스낵, 라면, 육류와 육류 가공식품 등에 기인한 지방의 맛과 ‘단짠’으로 대표되는 자극적인 식품에 입맛이 길들여져 건강과 영양 상태에 적신호가 켜졌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국내 19세 이상 남성의 비만율은 2011년 35.1%에서 2021년 46.3%로 증가했다. 중·고등학생의 비만율도 남녀 모두 10년 전보다 2배가량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20~30대의 당뇨 유병률이 늘고 있으며, 특히 20대 당뇨 환자는 지난 5년간 73% 증가했다. 향후 블루푸드 소비를 늘리는 것은 우리 국민의 건강 수준을 높이고, 젊은 세대가 건강한 식품을 섭취하게 하는 중요한 대안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해외의 경우 블루푸드와 블루 이코노미(지속 가능 해양경제)의 중요성을 알리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호주는 자연 친화적인 바다와 해양 자원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세계 최대 규모의 수중 관측소를 건립하고 있다. 블루푸드와 블루 이코노미의 가치를 알리는 랜드마크 시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 시설은 파노라마 유리창을 통해 바닷속을 유영하는 고래를 포함해 해조류, 산호 등 다양한 해양 생물의 모습을 보여 주게 된다. 또 해양연구센터를 통해 깨끗한 바다를 장려하고, 사람들에게 기후 변화에 대해 교육하는 기능을 수행할 예정이다.
향후 우리나라가 블루푸드 산업의 주도국이 돼 세계의 블루 이코노미를 이끌기 위해서는 블루푸드에 친숙한 환경을 만들고, 국내외에 블루푸드의 중요성을 알리는 노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의 대표적 친환경 양식 수산물인 김, 미역, 다시마, 굴 등 해조류와 어패류의 가치를 국민과 전 세계인들에게 적극 홍보해야 한다. 또한 사람들이 블루푸드가 바닷속에서 길러지는 모습을 보며 먹고 체험하는 등 통합적인 경험이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블루푸드는 사회·경제·환경적 가치가 높은데도 지금까지 제대로 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블루푸드가 새로운 우수 식품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블루푸드 시대의 중심에 한국과 부산이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
2023-09-2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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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환경보도, 솔루션 저널리즘 지향해야
언론계는 스스로를 위기라고 말하지만, 지구의 기후 위기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없을 것이다. 연일 이상 기후로 인한 대형 환경 재난 소식들이 외신과 국내 언론을 통해 전해 온다.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 화재부터 중국 북경과 그리스의 폭우, 모로코 지진, 리비아 항구도시 데르나의 폭풍과 홍수에 이르기까지 최근 전 세계에서 잇따라 들려오는 대형 재난 소식들은 인명 및 재산 피해 규모 면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막대해 충격적이다.
이상 기후로 인하여 환경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에 있어서 과거의 공식이 깨지고 있다. 이제는 재난 발생 후 대처가 아니라 시나리오에 따른 사전 예측과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식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언론도 환경 이슈에 대한 대응 방식과 보도 체제를 전면 재점검할 때이다. 언론은 기후 위기, 기상 이변 등의 이슈를 담당하는 환경 저널리즘을 신문사 편집국과 방송사 보도국의 독자적이고 전문화한 필수 보도 영역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 이슈는 환경 보도에 대한 국내 언론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전형이었다. 언론사들이 과학적 사실과 데이터에 기반한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심층 분석보다는 정치 지형에 편승한 정쟁적 이슈몰이에 치중했다는 비판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가뜩이나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양극화 문제로 중병을 앓고 있는 정치 영역의 주장들이 환경 보도의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 원전 오염수의 위해성 여부 논의라는 이슈의 본질은 묻히고 만다. 이에 따른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지만, 언론 역시 정치 지형의 대변인이라는 오명과 불신의 굴레를 피해 갈 수 없다.
환경 보도에서 과학적 본질이 왜곡되는 현상은 분명 국내 언론의 모습만은 아니다. 한국과학기자협회 자료에 따르면, 세계적인 대표 공영 방송사인 영국 BBC는 2018년 환경을 포함한 과학 보도의 오류를 고백하였다. 그것은 불편부당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기후 변화를 노골적으로 부인하는 사람을 뉴스에 등장시켜 온 관행을 반성한다는 내용이었다. 기후 위기가 사실이며, 과학자들이 검증하고 동의한 사안이기 때문에 향후 기후 보도에 있어서 기계적인 균형을 추구하는 기조를 버리겠다는 결정이었다.
미국의 경우, 주류 언론들이 기후 위기에 대한 적은 보도량으로 인하여 시청률을 위해 공익을 포기한다는 비난까지 받아 왔다. 기후 뉴스가 언론사 입장에서는 오랜 기간 시청률 저하 요인으로 부정적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8년 미국 몬태나주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산불은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고, 이는 언론사 기후 보도의 양이 증가하는 전환점으로 작용하였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2021년에 80명 이상의 기후 이슈 담당 기자를 채용하였고, 그해 보도한 기사량이 4000건으로 증가하는 변화를 불러왔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WP)의 경우 환경 기사를 빈번하게 1면에 배치해 관심을 높이고 있으며, 다수의 신문사와 방송사들이 기후 이슈를 심층적으로 다루기 위하여 전문기자를 채용하고 있다. 미국 언론사들이 기후와 환경 분야에 대해 집중 투자를 하고 있는 배경에는 기성세대에 비해 기후에 더욱 민감한 젊은 세대를 미래 독자층으로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
기후 변화라는 주제는 특정 국가들만의 문제가 아닌 전 지구적인 문제이다. 기후 변화가 가져온 지구 온난화를 포함한 기후 위기에 대한 언론의 역할에는 국내외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물론 한국 언론의 현실이 미국이나 영국의 현실과는 다른 점이 많지만, 해외 사례는 우리 언론이 환경 보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잘 보여 준다.
환경 보도에 있어서 언론은 과학적인 사실과 데이터에 근거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시해야 한다. 전문성을 가진 기자의 채용과 전문기자제의 제도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이를 토대로 언론은 전문적이고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문제 해결의 과정을 추적하여 보도하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또한 경고와 갈등 중심에서 해결 중심으로 보도의 프레임을 변화시켜야 하고, 문제 해결의 결정권을 가진 정치권이나 기업의 소극적인 대응을 압박해 실천을 촉구하는 감시자와 촉진자의 역할도 적극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언론이 내부 점검을 통해 전문성과 지속 가능성을 가진 환경 보도 체제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진지하게 고민해야 마땅하다. 미래의 기후 위기에 못지않은 더 심각한 언론 위기가 닥치기 전에 말이다.
이화행 동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23-09-1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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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오모테나시’를 기다리며
일본의 손님맞이 용어 중에 ‘오모테나시’라는 게 있다. 진심으로 상대방을 섬겨서 감동할 수 있도록 접대한다는 의미다. 일본을 이웃처럼 다니며 일본 사람들을 만난 필자도 오모테나시를 많이 받았지만 최근 수년 동안에는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한국인이 오모테나시에서 배제된 느낌을 받았다. 아마 이제는 고인이 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두 번째 총리 취임과 우경화, 그리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등이 맞물려 한일관계가 급속도로 어긋나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일본 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 설치 등이 겹치면서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두 나라 정치인들은 외교 문제를 국내 정치로 가져가면서 그 간극을 더 벌여 놓았다. 일본은 ‘혐한’의 불쏘시개로, 한국은 ‘죽창가’로 맞불을 놓았다.
한일관계는 2019년 7월 일본 정부가 한국을 콕 찍어 화이트리스트 배제라는 수출 규제로 나서면서 외교 전쟁이 경제 분야로 옮겨붙었다. 양국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수교 이후 첫 인적 교류 중단을 맞았다. 사실상 단교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한일관계에서 정치가 경제로 전선을 확대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그동안에도 다양한 의제로 정치적 갈등이 있었지만 경제 문제는 예외적으로 처리했다. 그만큼 두 나라 경제는 상호보완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 정치 영역으로 유입된 역사는 ‘반일’과 ‘혐한’이라는 폭탄을 터뜨리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양국 정치가 극단으로 내달리면서 양국 경제인들의 외침은 공허해졌다. 아무리 예민한 기폭제라도 안전핀만 제대로 꽂혀 있으면 충분히 관리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관계가 가장 예민한 시점에 방호복도 입지 않고 안전핀을 다시 꽂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정치적 손실을 각오하지 않으면 시도할 수 없는 용기였다. 다행히 그의 통 큰 결단에 일본이 서서히 화답하고 있다. 지난 7일 서울에서는 무려 7년 만에 한일 관세청장 회의가 열렸다. 앞서 지난 6월에는 한일 재무장관 회담이 개최됐고, 그 후속 조치로 한일 통화 스와프 복원, 외평채 발행 등의 결실이 이어지고 있다.
부산-일본 뱃길에도 훈풍이 불었다. 코로나19 종료로 두 나라 여객선 운항이 순차적으로 재개됐고 여객도 늘어나는 추세다. 일본 항만 분야 고위 공무원의 부산 예방도 주목할 만하다. 마루야마 준야 일본 오사카 항만국장은 지난 7일 팬스타드림호를 타고 부산에 왔다. 항만 관련 공무원들을 대동한 그는 부산항과 평택항을 둘러보고 귀국했다. 일본 고위 공무원이 항공이 아니라 상대국 선박을 이용해서 부산을 찾았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그는 만찬에서 한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가 격의 없이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는 장면을 보면서 새로운 미래를 서둘러 설계하고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부산과 부산항의 성장에도 감탄사를 연발했다. 특히 북항에 새로 지어진 부산국제여객터미널을 직접 이용하면서 오사카의 더딘 변화와 비교된다고 덧붙였다. 그의 인상평을 곧이곧대로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지만 부산의 경쟁력을 해양에서 찾아야 한다는 확신이 다시 든 것은 분명하다. 윤 대통령의 결단이 얼어붙은 한일관계를 해빙시킨 것은 맞지만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많다. 특히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 방류에 따른 수산물 안전 문제는 정치와 경제, 과학의 지혜를 모두 모아서 함께 풀어야 한다. 그래서 더 ‘솔직한’ 대화와 이해가 필요하다. 정치적 입장보다 과학적 지혜에서 찾아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달 초 국내에도 출간된 스티븐 로치 미국 예일대 교수의 신간 〈우발적 충돌〉은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로치 교수는 책에서 ‘거짓 서사’란 용어를 언급했는데, 미중 관계에 대한 왜곡된 정치 논리를 비판했다. 즉, 거짓임을 애초부터 잘 알면서도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설정한 서사라는 의미로 ‘거짓 서사’를 끌어들였다. 미국은 중국 때문에 무역적자가 증가하고 자국민 일자리를 뺏겼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중국은 미국이 자국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는 논리만을 앞세웠다는 것이다. 정치 실패에 따른 자국민 시선을 돌리기 위해 이런 거짓 서사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책의 요지다. 양국 갈등이 고조될 때 어떤 피해가 나타나는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리고 있다. 한일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양국 관계를 위험에 빠뜨리면 누가 이익을 보는지, 쉽게 폭발할 수 있는 양국 감정선의 안전핀을 누가 뽑으려 하는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는 존중과 이해가 절실하다. 오모테나시한 그들의 환대가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김현겸 팬스타 그룹 회장·세계해양포럼 기획위원장
2023-09-10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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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컨테이너선 대형화, 한계는 어디인가
해운·항만업계에는 컨테이너 선박이 어느 수준까지 커질 것이냐에 대한 논쟁이 있다. 한쪽은 규모의 경제를 통한 해상운송 비용의 절감을 위해 대형화가 계속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한쪽은 이제 대형화는 진정한 한계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과거에도 많은 전문가가 “더 이상의 대형화는 힘들다”고 주장한 이후 더 큰 선박이 출현했기 때문에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기가 쉽지 않다. 선사 입장에서는 수송 단가를 줄이기 위한 방법 중 선박 대형화만큼 효율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의 컨테이너 박스 탑재 용량은 80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였다. 17노트 속도로 항해 시 하루 약 80t의 연료를 소모하고 20여 명의 선원이 탑승한다. 수송 용량이 3배로 커진 2023년 현재 최대 선박인 2만 4000TEU급의 하루 연료 소모량은 8000TEU급과 큰 차이가 없는 약 100t이고 탑승자 수도 비슷하다. 당연히 컨테이너 박스 1개당 수송 단가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대형화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주장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가장 큰 이유는 대형 선박을 통한 비용절감 효과가 더 이상 향상되지 않고 있어서다. 영국 해운조사분석기관 조사에 따르면, 선박 대형화로 인한 해상수송 비용절감 효과가 25%인데 반해 대형화에 따른 항만 적체 등의 비효율 탓에 선사가 얻을 수 있는 실제 대형화의 효용은 5%밖에 되지 않는다.
컨테이너선의 대형화는 유조선, 벌크선 등 다른 종류의 선박에 비해 역사상 유례가 없는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선박 건조에 3년이 걸리지 않는 것과는 달리 항만 인프라는 10여 년에 달하는 긴 시간에 걸쳐 조성된다. 부산신항 개발계획이 1995년 시작됐는데, 2006년에야 먼저 조성된 3개 선석의 운영을 시작했다. 11년이 걸린 셈이다. 부산신항은 이후 다시 17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개발돼 현재 26개 선석이 운영된다. 현재 운영 중인 대부분의 항만 인프라는 초대형 선박(2만 4000TEU)이 등장하기 약 25년 전에 계획된 것이다. 따라서 선박과 항만 인프라의 ‘미스매치’는 어느 정도 비효율을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고 본다.
부산신항의 선박당 평균 하역(양하·적하)량은 약 5000TEU, 평균 하역작업 시간은 1.3일이다. 하지만 초대형 선박은 많을 경우 2만TEU를 하역하면서 4일이나 소요된다. 한꺼번에 엄청난 물량이 하역될 경우 부두 내 컨테이너 야적장의 혼란으로 심각한 적체가 발생한다. 이는 부산항뿐 아니라 전 세계 주요 항만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부두 수심도 문제가 된다. 부산신항의 당초 개발계획 수심은 15m였으나 선박 대형화 추세 때문에 17m로 수정됐다. 안벽크레인 역시 높이와 폭이 초대형 선박 하역에 부적합한 경우 기당 100억 원을 호가하는 신규 크레인을 설치하거나 기존 크레인 능력을 개선해야 한다. 수심을 키우기 위한 준설과 크레인 구입에 막대한 자금이 소요돼 초대형 선박에 맞춰 자원을 투입하지 않는 항만도 많다. 사실 연간 입항하는 선박 수에 비해 초대형 선박의 기항 횟수는 많지 않은 까닭이다. 세계 굴지의 허브항인 부산항조차 2만TEU급 이상 초대형 선박의 입항 비중은 연 2%에 불과하다.
2015년 컨테이너선 초대형화로 세계 항만에서 갖가지 비효율이 발생하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초대형 선박의 부정적 영향을 다룬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세계 주요 허브항 CEO들이 연대해 선사의 초대형 선박 발주에 제동을 걸자는 다소 과격한 주장도 나왔다. ‘필요 이상’의 초대형화는 항만 입장에선 달갑지 않다. “더 이상 대형화되지 않을 것”이란 주장은 필자와 같은 항만업계 종사자들의 작은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대형화에 비관적인 또 다른 이유는 선사들도 이제 초대형화의 단점을 자각하기 시작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통상 북미 노선에 1만TEU, 유럽 노선에 2만TEU급 선박이 투입되는데, 운송 수요 변화로 선박 배선을 변경할 때 2만TEU급은 큰 크기로 인해 기항할 수 있는 허브항의 수가 제한돼 선박 운용의 유연성이 떨어진다. 초대형 항공기인 에어버스 A380이 항공사들 사이에 인기가 줄어들어 2021년 생산 중단에 들어간 것도 대형화로 인한 유연성 저하를 보여 주는 사례다.
공급망은 말 그대로 ‘체인’(chain)으로 엮여 있다. 하나의 체인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곧 전체 문제가 된다. 선박이 과도하게 대형화돼 ‘항만’이라는 체인에 문제가 발생하면, 글로벌 공급망 전체의 문제가 된다. “더 이상의 대형화는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앞으로는 거짓말(?)로 드러나지 않기를 바란다.
2023-09-0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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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해양박물관에 보존 선박 한 척 없어서야
연구년을 맞아 미국 버지니아주 노퍽에 머물고 있다. 버지니아는 1584년 영국의 정치가이자 탐험가 월터 롤리가 추진한 식민 사업에서 지명이 유래했다. 롤리는 이곳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투자하기를 바랐지만, 여왕은 스페인과의 정치적 관계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이에 롤리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정치적으로 후원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투자자를 모으기 위해 ‘처녀지(Virginia)’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버지니아는 여왕이 이를 승인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사업 착수에 앞서 롤리를 ‘버지니아의 기사, 로드(경) 겸 총독’으로 임명해 버지니아 식민 사업이 국가 차원에서 추진된다는 사실을 내비쳤다. 내가 머물고 있는 노퍽 인근에는 제임스타운, 윌리엄스벅, 요크타운 등 초기 영국인 정착촌 세 곳이 삼각형 모양으로 자리 잡아 백인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노퍽은 대서양 연안에 위치해 미국 동부 최대의 해군 기지이자 뉴욕·뉴저지항과 서배너항 다음으로 바쁜 항만 도시이기도 하다.
세계의 어느 도시를 가든 먼저 박물관을 찾는 게 습관이 된 나는 노퍽의 대표 관광지를 찾았다. 노퍽에는 1988년 개장한 ‘너티커스(Nauticus)’라는 국립해양과학센터 및 박물관이 있다. 너티커스는 배나 뱃사람을 뜻하는 라틴어 ‘Nauticus’를 그대로 사용했다. 말 그대로 배와 뱃사람과 관계있는 것을 모두 아우르는 곳 정도의 의미로 명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너티커스는 햄프턴로즈 해군박물관과 전함 위스컨신호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햄프턴로즈 해군박물관은 독립전쟁부터, 남북전쟁, 2차대전, 그리고 베트남전쟁 때까지 미국 해군의 활동상을 보여 주고 있다. 위스컨신호는 1944년에 취역해 태평양전쟁 말기 오키나와 전투와 일본 본토 포격전에 참여한 바 있다. 6·25전쟁, 1991년 사막의 폭풍작전 등에 참전한 뒤 퇴역해 2010년에 노퍽시로 소유권이 이양되어 박물관 선박(museum ship)으로 전시되고 있다. 전함 위스컨신호는 길이 270m, 너비 33m, 만재흘수 11.5m, 만재배수량 5만 8134t의 제원을 갖추고 총 2000여 명의 승무원이 탑승할 수 있다. 위스컨신호는 마지막 세대 포함(砲艦)으로 주갑판에 설치된 3문의 16인치(40.6cm) 주포 아래에서 보면 그 거대함에 완전히 압도당하게 된다. 전체 10개 갑판 중 6개 갑판까지 내부를 완전히 공개하고 있다.
지금까지 다녀 본 세계의 주요 항만 도시에는 어김없이 해양박물관이 자리 잡았고, 각 해양박물관의 핵심 전시물은 단연 보존 선박이었다. 영국의 그리니치 해사박물관 인근에는 유명한 차 운반선 커티샥호와 1967년 세계 일주 요트인 집시 모스 IV 정이 전시되고 있다. 영국 포츠머스에는 넬슨의 기함 빅토리호와 발굴선 메리 로즈호, 장갑함 워리어호, 기타 중소형 전함들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독일의 브레머하벤 해사박물관에는 베제르 코그(cog) 발굴선이 보존 전시되고 있다. 이들 박물관은 전시관과 보존선이 결합되어 있는 형태지만, 보존선이나 발굴선 자체가 박물관을 구성한 곳도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바사박물관, 노르웨이 오슬로의 바이킹박물관, 덴마크의 로스킬데 바이킹박물관, 일본 요코하마 해양박물관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국립해양박물관에는 통신사선을 20분의 1 크기로 제작한 모형선이 전시되어 있을 뿐 보존선이라고는 잠수정 한 척, 요트 두 척이 전시되어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내부를 관람할 수 없게 되어 있다. 2006년에 완료된 연구용역에서도 보존 선박을 확보해 선박박물관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 바 있지만,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세 차례에 걸친 타당성 검토를 거친 뒤에야 어렵게 건립된 국립해양박물관으로서는 다소 아쉬운 점이다. 현재 국립해양박물관은 매년 유물을 구입해 전시물을 확충해 가고 있지만, 언제까지 구입한 유물만을 전시자료로 활용할 수는 없다.
사라져 가는 다양한 어선과 역사성 있는 선박을 확보해 보존 전시할 장기적 계획을 한시라도 빨리 수립해 추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어선은 어종에 따라 다양한 선종이 있는데, 오래전부터 감척사업으로 해마다 많은 어선들이 사라지고 있다. 다음 세대에 이르면 이와 같은 어선들이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또한 해양계 교육기관의 실습선들과 해군 함정들도 속속 퇴역하고 있다. 이제 사라져 가는 어선들을 보존하고, 수많은 해양인들을 양성해 낸 실습선들과 해군 함정을 퇴역시키지 말고 국립해양박물관의 박물관 선박으로 활용해 많은 국민들이 선박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23-08-2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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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국회부산도서관에서의 피서
지난 8일 입추, 10일 말복을 지나면서 많은 사람이 피서를 다녀왔을 것이다. 여름 성수기가 아직 보름가량 남은 이달 중 휴가를 계획한 이들도 많지 싶다. 극심한 무더위를 피하기 위한 장소로는 바다나 계곡 또는 깊은 삼림의 휴양지가 인기일 게 분명하다. 어떤 이들은 휴가 기간에 냉방이 잘 되는 카페나 서점에서 독서로 시공간을 뛰어넘는 여행을 했거나 이러한 계획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부산 강서구 명지동에 피서하기에 좋은 도서관이 있다. 지난해 3월 국내 최초의 국회 지역 분관 도서관으로 개관한 국회부산도서관이 그곳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가까이 있는 국회도서관은 1952년 의정활동 지원기관으로 문을 열어 입법과 정책 관련 정보를 효과적으로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국회가 대국민 지식정보 지원과 지역균형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한 시설이 국회부산도서관이다. 이곳은 최고 수준의 복합 문화공간과 ‘지식 리조트’ 역할을 천명하고 있어 인접한 부산신항 터미널에서 근무하는 필자도 즐겨 찾는다. 국회부산도서관에서는 부산 시민 누구나 회원으로 가입해 소장 도서와 각종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직접 도서관을 방문하지 않아도 모바일이나 PC에서 E북을 대출받아 읽을 수 있다.
국회부산도서관이 휴가철을 맞아 ‘여름 바다’를 주제로 각 분야 좋은 책들을 추천해 관심을 끈다. 이 중 필자가 감명받은 세 권을 추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인문·철학서 〈모든 삶은 흐른다〉이다. 프랑스 철학자 로랑스 드빌레르가 지난해 출간해 현지에서 극찬을 받았다. 책에서는 낯선 ‘인생’을 제대로 ‘항해’하려면 바다를 이해하라고 강조한다. 누구나 처음인 이번 생에서 삶이 곡예를 하는 것 같거나 내 의지와 무관하게 떠밀려 가는 걸 느낄 때 바다의 밀물과 썰물, 무인도, 섬, 등대, 방파제 등이 가진 철학적 사유를 따라갈 것을 권한다. 타인을 조종하려는 사람들을 떨쳐 내고 자신이 추구하는 걸 찾아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용기를 내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태풍이 몰아칠 때, 바람이 잦아들어 잠잠해졌을 때도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 물결치는 바다처럼 우리 삶도 물결치며 흐를 뿐이니 인생에 내던져지지 말고 인생이 나로부터 비롯될 수 있도록 항해의 키를 잡는 방법을 생각하도록 만드는 좋은 책이다.
두 번째 책은 역사·문화 부문의 〈처음 읽는 바다 세계사〉이다. 국사와 세계사를 연결해 국가별 글로벌 역학 관계를 헤아리는 수준의 ‘역사 덕후’라면 바다와 세계사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한 이 책이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저명 해양 연구가인 헬린 M 로즈와도스키 미국 코네티컷대 교수는 바다가 어떻게 인류 문명을 꽃피우고 발전시켰는지 또 때로는 삼켜 버렸는지를 잘 보여 준다. 반대로 인류가 바다를 이용하거나 정복하고 향유하면서 현재에 이른 과정도 서술했다. 결국 바다는 기록 보관소이자 역사라는 게 책의 주장이다.
마지막은 과학·공학 부문 〈바다 생물 콘서트〉이다. 필자가 아쿠아리움과 해양박물관 견학 후 끝도 없는 질문을 던지는 조카와의 대화를 위해 읽은 책이다. 플랑크톤에서부터 바다거북, 해달, 펭귄, 대왕고래, 심해 문어, 산호와 해조류에 이르기까지 해양 생태계를 이루는 수많은 생물에 대한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는 세계적인 해양생물학자 프라우케 바구쉐 박사로 서문에 “내가 느낀 바다에 대한 사랑과 이 유일무이한 세계를 보호하려는 소망을 독자들에게 일깨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썼다. 이 책은 해양 보호를 호소하는 대신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바다의 가치와 중요성을 총체적으로 느끼게 하는 매력이 있다. 플랑크톤과 산호초를 통한 지구의 생명과 역사에 대해 깔끔하게 서술한 부분이 그렇다. 책을 읽은 후 조카에게 얘기해 주니 반응이 좋다.
부산 시민들이 국회부산도서관에 관심을 갖고 ‘지식 리조트’로 자주 이용할 만하다. 기원전 300년께 고대 이집트에는 당대 최대 수출항으로 번영을 누린 도시 알렉산드리아가 있다. 나일강 하구에 위치해 지중해와 아프리카, 아라비아, 인도를 연결하며 대단히 번성했다. 이 항만도시는 무역으로 벌어들인 많은 돈으로 동쪽 해안에 100만여 권의 장서를 소장한 큰 도서관을 지었는데,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도서관의 하나인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훗날 대화재로 소실됐다고 전해졌지만, 사실은 도시의 쇠락과 시민의 무관심으로 영세화된 탓에 사라졌다는 분석도 있다.
개항 147년의 역사 속에 동북아시아 물류의 거점 항만으로 성장한 부산항을 가진 부산의 국회부산도서관이 올해 운영 2년 차를 맞았다. 이 도서관이 부산, 부산항, 해양문화와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애용과 사랑이 필요하다.
2023-08-1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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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다르지만 같은 뿌리
“엄마 ㅠㅠ 너무 힘들어”라고 엄마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지난달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유명을 달리한 일이 있다. 이 사건은 교육 현장을 나타내기도 하고 있지만 사회 전반에 깔린 경쟁 의식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봐야 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공교육 선생보다 방과 후 학원에서 배우는 사교육 선생을 더 중시하는 현상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 되었다. 치열한 사교육 경쟁에서 인성 교육보다는 실력으로 무장된 내 아이를 중시하는 현상이 이번 ‘연필 사건’의 형태로 나타난 결과로 봐야 한다. 내 자식은 이겨야 하며 조금이라도 손해를 본다면 절대 용서 못 하는 의식의 뿌리가 어린 교사의 가슴에 박혀버린 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학생의 공감 능력 부족으로 발생한 결과에 대한 엄한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교육 현장은 학교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의 문제로 봐야 한다. 우리 모두가 내 자식만이 더 소중하다고 하는 의식의 뿌리를 가지고 있지 않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 그 어린 교사가 우리의 딸일 수도 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 온다.
서이초, 송파구 세 모녀, 정인이 사건 등
복지 사각지대 드러났지만, 현실 여전해
주변 힘든 사람 있는지 살피고 보듬어야
사회 구성원, 관심과 공감 노력 기울이길
“주인아주머니께…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를 남기고 떠난 세 모녀가 생각난다. 서울 송파구 세 모녀 사건(2014)이다. 어머니는 퇴근길 빙판길에 넘어져 팔을 다친 뒤 일자리를 잃었고, 큰딸은 고혈압과 당뇨로 건강이 좋지 못한 데다 작은딸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지만 결국 생활고를 이겨 낼 수 없었다. 집세 38만 원과 매달 공과금 20만 원가량을 한 번도 밀린 적이 없었던 세 모녀의 마지막 메모로부터 사회 구성원으로서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다는 그들의 메시지가 아직도 눈에 걸린다. 어머니가 일자리를 잃었지만, 제도적 제약으로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대상이 못 됐고 부양의무제가 버티고 있는 기초생활보장제에서도 비켜감으로써 하루아침에 수입원이 사라져, 더 이상 도움의 손길을 잡을 수 없었던 절망적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던 탓 일게다. 당시에 사회 고용안전망 및 복지 사각지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으로 크게 부각되어 공무원 사회에 경종을 울렸지만, 여전히 근본적 뿌리가 바뀌지 않은 채 가슴 아픈 일들이 이어져 왔다.
“세상 살기 너무 힘듭니다”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집주인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일(2022)도 그렇다. 어머니는 암 치료 중이었고 두 딸 역시 각각 희귀 난치병 등을 앓아 일상생활이 어려웠던 가족의 일이다. 이들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생활고의 한계로 세상을 떠났다. 이 사건들은 우리 사회가 ‘관심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밭이 없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
관심의 뿌리가 더욱 필요했던 일이 기억난다. 정인이 사건(2020)이다.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입양한 8개월의 여자아이를 입양 부모가 장기간 심하게 학대하여 16개월이 되었을 때 죽음에 이르게 한 일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된 CCTV 화면에 비추어진 정인이의 마지막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퇴소 시간까지 마지막 남은 정인이를 어린이집 교사가 불렀을 때, 넋을 놓은 채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던 어린 아이의 모습에 왠지 죄인처럼 느껴졌다. 더 이상 어른들에게 기댈 수 있는 희망을 정인이는 더 이상 바라지 않는 것처럼 느꼈다.
서이초등학교, 송파구 세 모녀, 수원 세 모녀, 정인이 사건들은 서로 다르지만 같은 뿌리가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책임져야 할 관심의 뿌리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너무도 서로를 눈치 보는 사회로 되어버렸다. 조금만 실수를 하면 사회적 비난 대상이 되어 버리는 풍조로 인해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공공기관의 구성원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원이나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공무원이 나름의 방안을 마련하지만, 제도적 한계는 여전히 존재한다. 사회적 비난은 공조직의 시스템을 흔들고, 이로 인해 공무원의 조그만 실수는 바로 승진 누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조그만 실수를 포용하기 위한 적극 행정 면책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지금의 승진 경쟁 시스템에서는 개선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모든 것이 치열한 경쟁 사회의 뒷면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정의 유연성을 인정해 주는 사회적 공감의 뿌리가 필요한 때이다.
국가는 국민이 인정하는 사회적 공감이 없이는 어떠한 정책도 추진하기 어렵다. 따라서 사회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국가를 비난하기에 앞서서 우리 스스로 관심의 뿌리를 잘 내리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날씨가 무덥다. 날씨로 여러 모로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시기이다. 힘들지만 가까운 주변에 더 힘든 사람이 있는지 관심의 뿌리를 내려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2023-08-0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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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탈탄소와 디지털화라는 기회
탈탄소와 디지털화(2D)라는 두 가지 큰 변화가 바다 관련 산업을 강타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려는 여러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 선박에 사용되는 연료를 기존의 화석연료에서 LNG,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 등으로 변경해야 한다. 탈탄소화는 다양한 새로운 산업의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통상 선박의 생애는 25년이다. 그런데 탈탄소의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예정보다 더 빨리, 예컨대 15년 만에 선박이 교체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조선소는 건조 물량의 증가로 호황이 온다. 또한 기존의 엔진을 친환경 엔진으로 변경하는 엔진 개조가 필요하다.
현재 전혀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수소나 암모니아 연료를 사용할 수는 없다. 탄소배출이 여전한 LNG 등을 사용하는 과도기를 거쳐야 한다. 선박이나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 액화시킨 다음 이를 운송하여 바다 깊숙한 곳에 묻는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US)’이 각광을 받고 있다. 액화된 이산화탄소의 운송을 위한 특수선박의 건조가 벌써 활발하다. 조선업에서 세계 1위를 점하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큰 기회이다.
무엇보다 친환경 연료의 생산·공급 분야에서 큰 시장이 열린다. 메탄올을 차세대 연료로 선정한 머스크사는 세계 각국에 메탄올 제조공급처와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제조자는 또 해운사와 운송 계약을 체결한다. 선박은 전 세계 어느 항구에 입항하더라도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메탄올 등 연료를 제조하거나 공급지가 된다면 외국 선박의 기항이 잦아지면서 큰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다.
디지털화는 사람의 손으로 하던 작업을 로봇, 인공지능 등을 이용, 대량으로 반복적이자 전자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조선소의 설계나 용접의 일부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이미 처리하고 있다. 그 상징은 자율운항 선박이다. 사람이 타지 않은 채로 바다를 항해, 상품을 실어 나른다는 구상이다. 3단계 자율운항 선박은 사람은 승선하지 않고 완전 디지털화된 각종 장비와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인다. 육상에서 원격조종자가 선박의 이동을 감시하고 언제나 운항에 개입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마치 선장이 육상에서 선박을 조종하는 것과 같다.
그동안 선원이 딸린 채로 선박을 빌렸다면 장차에는 원격조종장치와 조종자를 빌리는 것으로 대체된다. 현재까지는 선원과 선박의 관리를 선박 관리회사가 담당해 왔다. 우리의 경우 이들은 해운회사의 자회사들이 대부분이다. 이제 원격조종장치와 조종자를 조선소가 처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조선소가 그 선박에 대한 데이터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원격조종자는 선박의 항해와 기관 등 선박에 관해서는 물론이고 데이터 과학에 대한 전문가라야 한다. 앞으로의 선박 관리는 조선소와 기존의 선박 관리회사 간의 경쟁이 될 것이다. 우리 선박 관리회사가 대형조선소와 손을 잡고 경쟁력을 갖추어 세계 시장을 장악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탈탄소화와 디지털화는 우리 외항 상선 1200척이 모두 변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조선소는 호황이면서 해운사는 울상이 되는 흐름이다. 미리 폐선하고 신조를 한다는 의미는 선주인 해운사의 재산권이 국제적인 조약과 법의 강제규정의 실시에 의해 침해를 당한다는 것이다. 전 바다 산업생태계 보호 차원에서 정부를 비롯한 관련자들이 기금 확보를 통해 해운사들의 친환경선박 도입에 대한 제작비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영세한 해운사는 신조선을 건조할 자금이 부족하다. 선박을 소유만 하고 임대하는 선주사를 육성하여 선주사가 선박을 건조하여 운항자에게 임대하는 사업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자율운항 선박의 육상 원격조종자는 다양한 교육을 받아야 할 대상이다. 기존의 선원 교육과 다른 교육제도도 완비되어야 한다. 법과 제도의 정비도 물론 뒤따라야 한다.
대형조선소는 모두 부울경에 소재한다. 수많은 기자재부품 공급업체도 부울경에 있다. 부산항은 지정학적으로 유럽과 미주로 항해하는 선박의 중간지점이라서 선박 연료유 공급(벙커링)의 수요가 많은 곳이다. 선박관리 업체들도 부산에 집중되어 있다. 탈탄소화에 맞춘 신조선 수요, 개조 수요, 새로운 연료의 제조와 공급, 자율운항 선박의 건조, 제3단계에서의 원격조종장치와 조종자를 제공하는 일은 5년 이내에 부울경에 큰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바다산업에서 2D로 제공되는 신산업분야에 대한 기회를 잡기 위해 미래를 잘 대비하자.
2023-07-3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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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네이버, 뉴스 생태계 복원에 힘써야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인공지능(AI) 기반의 포털 뉴스 검색 순위 알고리즘을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네이버에 대해 실태 점검에 들어갔다. 의혹이 공론화되자 네이버는 ‘3차 알고리즘 검토위원회’를 구성하였고, 홈페이지에 알고리즘을 공개하는 코너를 신설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하지만 네이버의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네이버는 지난 몇 개월 사이 뉴스제휴평가위원회(제평위) 운영과 뉴스 콘텐츠 제휴 약관 개정, 아웃링크 방식 도입 등 뉴스 서비스 정책 결정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뉴스 서비스를 둘러싼 여러 논란의 중심에 서 왔다. 그 대부분의 논란은 현재도 진행형이어서 네이버 측의 선택과 결정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먼저, 지난달 네이버는 카카오와 함께 언론사의 입점과 퇴출 관리 목적으로 운영해 온 제평위의 활동을 잠정 중단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제평위의 회의록이나 심사 과정이 공개되지 않고 평가위원들의 정치적 성향이 편향됐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기사형 광고를 노출한 연합뉴스에 대해 퇴출 조치를 한 제평위의 결정은 제평위가 언론사의 입점·퇴출을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구조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던지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언론의 윤리적 책임을 묻고 문책하는 일은 포털의 권한이 아니기 때문에 제평위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다음으로 지난 3월 말 네이버는 뉴스 서비스를 통해 제공되는 언론사 콘텐츠에 다른 사이트로 연결되는 주소(URL)나 큐알(QR)코드를 넣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뉴스 콘텐츠 제휴 약관 개정안’을 제휴 언론사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였다. 개정 조항이 네이버에 뜬 뉴스 콘텐츠가 사실상 개별 언론사의 사이트로 연결되는 것을 막는 것으로, 언론의 편집권과 독자의 정보 접근권을 침해한다는 언론계의 반발과 갑질 논란에 휩싸이자 네이버는 결국 개정안 시행을 취소하였다. 독과점적 지위를 확보해 뉴스 유통의 권력자로 등장한 거대 플랫폼 기업이 언론사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가 허용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또 지난 3월 네이버는 4월 1일 자로 시범 적용하기로 한 아웃링크 방식 도입을 돌연 무기한 연기하였다. 이는 뉴스 소비자가 검색한 정보의 결과를 클릭하면 해당 웹 페이지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네이버의 연기 조치는 가이드라인에 제시한 제재가 과도하고 의견 수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일부 언론사들의 반발이 있기도 했지만, 네이버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과 불신만 키운 결과를 가져왔다.
뉴스 저작권자인 언론사 사이트에 뉴스를 노출하게 하는 아웃링크는 뉴스 제작자가 트래픽과 광고 효과라는 정당한 보상을 받게 하는 공정한 시스템으로, 구글 등이 시행하고 있는 글로벌 표준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언론사는 아웃링크를 통해 이용자 데이터를 축적할 수 있어 3D, 애니메이션, 상호 작용 뉴스 활성화 등 디지털 저널리즘의 질적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인링크만을 고집하며 이용자의 체류 시간과 수익 극대화에 몰입하는 탐닉적 태도는 미래 저널리즘의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참여자 간 상생을 거부하는 처사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아웃링크 방식의 도입은 제휴 언론사들과의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이다.
이런 논란의 와중에 2017년 80%에 근접하던 네이버의 국내 검색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63%까지 하락하였다. 같은 기간 구글의 시장 점유율이 9%에서 31%로 급성장세를 보였고, 챗GPT의 등장과 유튜브의 성장세 역시 검색 시장의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검색 점유율 하락은 네이버의 경쟁력 측면에서 치명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네이버가 사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뉴스 서비스와 관련하여 내리는 판단과 결정 하나하나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포털 뉴스 이용자의 89.7%가 이용하는 네이버에 뉴스 유통 시장을 내준 한국 언론계는 불공정한 생태계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네이버가 언론의 발을 묶어 둔 채 여러 방식으로 뉴스 서비스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 왜곡된 생태계가 변화하지 않는 한 뉴스 소비의 획일화와 여론 양극화와 같은 공론장의 황폐화는 숙명처럼 한국 저널리즘을 퇴행시킬 것이다.
여론의 다양성과 자유로운 공론장 형성에 기여하는 사회 시스템인 저널리즘은 직업윤리와 가치의 영역이지 상행위의 영역이 아니다. 국내 언론 생태계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고 상생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길에는 포털의 상식과 공정에 기반한 현명한 판단과 결정이 꼭 필요하다. 뉴스 생태계의 복원을 위해 네이버의 결단을 기대한다.
2023-07-23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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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온 국민이 ‘만세 부를 일’
1973년 6월 9일 경북 포항 영일만의 포항제철소 고로에서 쇳물이 처음 흘러나오자,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듬해 4월 열린 포항제철소 착공식에서 박태준 사장은 “민족의 숙원인 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이는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니 죽을 각오로 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용광로를 직접 본 적도 없는 기술자들이 불굴의 희생정신으로 헌신한 결과, 포항제철소는 성공적으로 준공될 수 있었다.
조선 사업은 꿈도 꾸지 못하던 1970년대, 현대중공업의 정주영 회장은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로 영국에서 차관을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2년 뒤 3월 울산 미포에서 열린 공장 기공식에서 정 회장은 “세계 조선사상 전례가 없는 최단 공기, 최소 비용으로 최첨단 초대형 조선소와 2척의 유조선을 동시에 건설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다시 2년이 흐른 1974년 6월 28일, 이곳에선 울산조선소 준공식 겸 초대형 선박 1, 2호 명명식이 거행됐다.
1970~80년대 산업화 시대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이뤄 내며 ‘만세 부를 일’이 많을 때였다. 이는 6·25전쟁 후 빈곤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국민의 염원과 정치 지도자의 비전이 어우러져 함께 달성한 결과였다.
우리 경제는 올해 들어 1.4%의 저성장이 예견된다. 이를 벗어나려면 사고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예전처럼 만세를 부를 만한 숙원 사업의 집중과 성공이 요구된다. 최근 만세 부를 만한 일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작년 7월 KF-21 전투기의 비행 성공과 올해 5월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KSLV-Ⅱ)의 발사 성공이 손꼽힌다. 두 프로젝트 모두 개발자와 기관의 노력이 있었음은 자명하다. 다만, 예전 포항제철이나 현대중공업의 성공처럼 국민 단합을 끌어내고, 국가경제에 획기적 전환점이 되었는지에 대해선 다소 다른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국제 정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패권 갈등의 심화 등으로 더욱 복잡해지면서 신냉전 시대가 도래하는 듯하다. 우리나라로서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가 높아지는 계기가 된다. 여기에 더해 반도체, 배터리 등 4차 산업혁명기를 맞아 ‘경제 지정학적’ 이점도 우리에겐 기회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국내 제조업 부활의 도약대가 되어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 5만 달러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먼저 4차 산업혁명 기술로 산업 현장을 자동화하여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고, 중간재를 넘어 최종 브랜드 명품을 만들어 세계 시장점유율을 높여야 한다. 또 우주항공산업을 과감히 육성하고, 해상풍력을 적극적으로 개발해 새로운 해양경제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주항공산업은 고부가가치 종합 산업으로, 그 파급 효과는 기계, 전기·전자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장된다. 우주항공산업 선도국인 미국과 기술 협력의 폭을 넓히고, 이를 통해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해상풍력의 개발은 단순히 에너지 수입의 국산화에만 그 효과가 그치지 않는다. 미래 해양 도시개발의 인프라를 확보하는 중요한 산업이다. 또한 먼바다에서 양식·양어를 가능하게 하여 미래 먹거리 확보의 중요한 매개가 된다.
농업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해 네덜란드와 같은 농업 강국을 지향하는 것도 좋다. 전 세계 채소·화훼 수출 세계 1위(2015년 네덜란드 경제부 발표)인 네덜란드는 적은 국토 면적과 간척지라는 열악한 조건을 기술력으로 극복하며 농업 강국이 됐다. 수산업은 1인당 GDP가 7만 달러가 넘는 노르웨이가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다. 고급 양식 기술뿐 아니라 지속 가능한 어업을 위한 기술과 동물권 보호에도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우주항공산업, 해상풍력, 고도화된 농·수산업 등에서 세계에 도전할 준비가 되었는가. 모두 정치지도자의 비전, 대규모 재정 투자, 그리고 국민의 결집된 열의가 필요한 분야다.
과거 포항제철과 현대중공업의 성공 신화는 예산·기술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굳센 의지가 만들었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기술과 자본은 있는데, 국민의 에너지를 모을 수 있는 숙원 사업이 등장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만세 부를 일을 국민과 함께 만들어야 한다. 1%의 저성장에 직면한 한국 경제를 되돌릴 시간이 우리에게 많지 않다. 지금 과감히 도전하지 않으면, 다음 세대의 장래는 밝지 않을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되돌아가 현대중공업 정주영 회장에게 문제 해결을 위한 조언을 구한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마시오. 우리 한국인은 작심만 하면 어떤 난관도 돌파할 수 있는 민족이오”라고 말이다.
2023-07-1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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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오늘은 세계 일회용 비닐봉지 없는 날
오늘은 ‘세계 일회용 비닐봉지 없는 날’이다. 2008년 스페인의 국제환경단체 ‘가이아’가 제안해 만들어진 날이다. 2021년부터 전 세계 40여 개국의 시민단체가 동시에 이날을 기념하고 있는데,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한 환경보호 캠페인의 일환이다.
요즘 들어선 환경 오염 중 해양 오염 이슈가 크게 부각되고 있다. 특히 비닐봉지 문제가 심각하다. 비닐봉지는 바다로 흘러가 시간이 지나면서 분해되고, 이때부터 2차 미세 플라스틱이 발생한다. 플라스틱 제조 과정에서 첨가된 독성 물질이 바닷물을 오염시킨다. 미세 플라스틱은 해양 생물을 통해 우리 몸에 다시 들어오게 된다.
그린피스 보고서에 의하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연간 일 인당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량은 9.2㎏이다. 국가 전체적으론 약 47만 톤에 달한다. 종량제 봉지 20L로 한반도의 70%를 덮을 수 있는 분량이다.
비닐봉지는 플라스틱 재질로 자연 분해되려면 500년 이상이 걸린다. 매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플라스틱 쓰레기 800만 톤이 바다로 흘러간다.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는 플라스틱은 잘게 부서진 미세 플라스틱으로 변형돼 생선과 조개 등에 스며들고, 우리 밥상에 오른다. 큰 플라스틱은 그나마 수거할 수 있지만, 5㎜ 미만은 어렵다.
올해 3월 말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이 시행됐다. 일회용품 사용을 제한하고, 재활용 가능 원료의 사용 비율을 표시하는 게 핵심이다. 또 지자체가 재생용품의 구매를 우선 검토하도록 해 재생용품의 수요처를 넓혔다. 재생용품을 사려고 해도 관련 정보가 부족하고, 재생용품 생산자 역시 판로 개척에 어려움이 큰 점을 개선했다.
한국환경공단도 작년 재활용의무 대상 제품과 포장재의 출고·수입 성적서 제출을 안내하며 법정기간 내 이를 제출하지 않으면 과태료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력과 자원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은 바뀐 규제에 맞춰 능동적으로 대비하기가 어렵다.
재활용의무 대상 품목은 4개의 포장재군인 종이 팩, 금속 캔, 유리병, 합성수지 포장재를 비롯해 윤활유, 전지류, 타이어, 형광등 등 8개 포장재군이다. 이 제도는 생산자만이 아니라 지자체, 정부도 노력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세계 일회용 비닐봉지 없는 날인 오늘 하루만이라도 일회용품 사용 금지와 철저한 분리수거 등 노력이 필요하다.
환경 측면으로 지속 가능하고 재사용이 가능한 포장재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2022년에 발간된 〈미국 포장산업 트렌드 보고서〉는 자연에서 완전히 분해되는 생분해성 재료 등 친환경 원료를 사용한 포장재가 플라스틱을 빠르게 대체할 것으로 전망했다. 가장 대표적인 물질은 옥수수 전분이다. 또 대나무, 쌀겨, 사탕수수 등의 개발도 활발하다. 주로 옥수수와 사탕수수 등으로 만드는 생분해성 수지인 ‘PLA(polylactic acid)’는 도시락 용기, 빨대, 컵 등 친환경 제품으로 활용된다.
일본의 한 식품 포장기업은 이러한 신소재로 용기를 출시했다. 옥수수 전분을 원료로 하는 바이오 플라스틱의 일종으로 일반 PLA와 달리 110도의 고온에서도 견딜 수 있어 전자레인지에도 사용할 수 있다. 일본의 다른 한 기업은 자사 생산 제품에 사탕수수로 만든 친환경(바이오매스) 포장재를 출시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해양 오염의 심각성이 알려지고, 플라스틱 폐기물에 대한 사용 규제가 증가하면서 포장재 사용 절감, 재활용 등이 강화되는 추세다. 특히 플라스틱 사용의 규제 강화는 식품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기업들은 기존 플라스틱 포장재를 대체하는 친환경 소재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해양 오염과 미세 플라스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마저 초읽기에 들어갔다. 일본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공개한 보고서에서 특별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으면 올여름에 오염수 방류를 시작할 것이라고 한다. 오염수 방류 저지를 위한 정치인들의 단식 농성, 소금 사재기, 어업인들의 해상 시위, 수산물 소비 감소 등 국민의 불안 심리도 덩달아 증폭되고 있다.
그럼에도 3년 4개월 만의 코로나19 엔데믹 선언 이후 전국 해수욕장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들고 있다. 전국 해수욕장은 문화, 음악, 연극 등 축제의 장이다. 올여름 휴가철에 가족들과 해수욕장에서 즐길 것을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설렌다.
다양한 해양 생물들과 공생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청정 수역은 긴 세월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우리의 공통 자산이다. 해수의 오염을 막아 바닷물을 자연 그대로 깨끗하게 보존하는 것은 우리의 과제다.
2023-07-0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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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국익 보도와 기자의 처신
통념과 달리 뉴스는 대부분 현장이 아니라 기자의 출입처에서 나온다. 출입처에서는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사가 나오도록 관리하고, 기자는 출입처의 언론플레이와 거리를 두고 비판적 시각에서 보도하려고 애쓴다. 뉴스는 이러한 줄다리기의 산물이다. 기자들은 초년병 시절 경찰서 같은 험한 출입처에서 노련한 취재원을 상대하면서 취재원의 발언을 늘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훈련을 받는다.
대통령 역시 권력의 기반을 여론의 지지에 두기 때문에 언론 관리라는 숙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드물지만 이러한 양자 관계에서 대통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보도가 전개되는 사안도 있는데, 해외 순방이나 정상회담이 그렇다. 기자들은 대통령실에서 제공하는 한정된 정보와 제한된 취재 여건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어 완곡하고 세련된 외교적 수사에 숨겨진 이슈를 들춰내서 취재하기란 쉽지 않다. 지난번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이처럼 일반적인 경향에서 벗어난 상당히 이례적인 일화를 여럿 남겼다.
첫째는 〈워싱턴 포스트〉가 윤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진행한 인터뷰에서 발언의 ‘팩트’를 둘러싼 논란이었다. 이때 대통령이 “나는 (중략) 일본이 100년 전 역사 때문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말한 내용이 보도돼 비판적 여론이 높아졌다. 그러자 대통령실에서는 논란이 된 문장에서 주어(‘저는’)를 뺀 해명을 내놓으며 발언의 취지가 왜곡됐다고 주장했고, 여당에서도 발언 원문이 오역됐다며 반박했다. 자칫 제2의 ‘바이든-날리면’ 사태로 번질 법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 기자가 녹음 파일로 검증한 결과, 기사가 대통령 발언을 글자 그대로 보도한 것이라고 못 박으면서 반발은 유야무야됐다.
두 번째는 한미 정상 공동 기자회견에서 국익과 관련된 민감한 질문이 제기되면서 대통령실의 자화자찬식 성과 발표가 무색해진 사건이다. 미국의 반도체 규제가 자국 이익만 극대화하면서 동맹국인 한국에는 피해만 입혔다는 비판이 무성했는데, 정상회담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은 이 이슈가 기자의 질문에서 튀어나왔다. 미국 정부가 동맹국 대통령실을 도청한 사안에 대해 바이든 미국 대통령 측의 사과나 재발 방지 약속이 있었는가 하는 날카로운 질문도 나왔다. 방미 성과를 통해 지지율 상승을 기대한 윤 대통령에게는 모두 껄끄러운 질문이었다. 한국 기자들은 모두 침묵을 지켰고, 문제를 제기한 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ABC방송 등의 미국 기자들이었다.
앞서 언급한 두 일화는 대통령 관련 보도에서 일어난 새로운 변화의 추이를 보여 준다. 우선 대통령의 해외 방문이 더 이상 국내 정치와 언론플레이에 유리하게만 활용되기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한국 대통령의 발언이 해외 언론의 검증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한국의 높아진 국제 위상을 보여 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충분히 문제 제기가 예상되는 상황이었고 미국 기자들까지 질문을 던진 이슈에 대해 정작 한국 기자들만 한결같이 입을 닫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정상회담 직후 채택된 ‘워싱턴 선언’은 ‘사실상의 핵 공유’ 합의를 의미한다는 우리 측 발표가 미국 국장급 관리에 의해 바로 부인된 사실은 대통령실의 홍보가 팩트 측면에서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는 그동안 대통령실이 국내 언론의 받아쓰기식 보도와 허술한 팩트체킹에 익숙해진 바람에 나온 해프닝이기도 하다. 이번 방미는 여러모로 한국 언론의 취재 관행의 문제점을 드러낸 셈이다.
물론 언론의 이처럼 ‘자발적인’ 협조는 ‘국익’을 묵시적 명분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미국 기자들은 왜 자국보다 한국의 이익에 더 부합하는 질문을 던졌을까? 이들은 기자의 본분에 충실해 취재원에게 해야 할 질문을 던졌을 뿐이다. 국가의 수반이지만 정파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인이기도 한 대통령이 주장하는 국익과 기자가 추구하는 국익이 같을 수는 없으며 일치해서도 안 된다. 언론은 국익을 빌미로 대통령과 마치 한 몸처럼 처신하기보다는 대통령이 국익을 제대로 지키는지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대통령 해외 방문 취재에 참가한 기자들은 모두 나름대로 언론계에서 인정받은 인재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벌어진 일화들은 순방 취재 관행의 제도적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정파적 입장이나 취재원과 무관하게 의심하고 팩트를 검증하고 질문을 던지지 못하는 기자는 더 이상 기자라 할 수 없다. 설혹 이번 사건이 해묵은 취재 관행을 단번에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수습기자 시절 훈련받은 기자의 책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023-06-2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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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대통령 직속 해양위’ 설치하자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실용급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는 세계 7번째 국가가 됐다. 이를 주도한 숨은 주체가 ‘국가우주위원회’다. 2005년 우주개발진흥법이 발효되며 설립된 대통령 직속 정부 자문 기구다. 윤석열 대통령은 우주항공산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우주와 해양은 전혀 다른 분야처럼 보인다. 그러나 첨단기술이 우주와 해양산업에서 공유되고 있다. 우주비행사들이 가장 비슷한 환경으로 활용하는 훈련 공간도 역시 심해다. 우주만큼 해양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도 커지기를 기대하며 ‘대통령 직속 해양위원회’ 설치를 감히 제안한다. 해양산업의 급격한 환경 변화에 주목하고, 이에 맞춰서 국가 해양 정책을 새롭게 짤 필요가 있다.
해양산업은 그 범주와 정의부터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해운, 항만, 수산으로의 구획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해양경계, 해양과학, 해양자원, 해양관광, 해양환경과 기후 문제 등에 대한 대응도 해양수산부의 핵심 업무가 됐다. 해양공간에서 각종 정책을 개발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정부 부처가 크게 늘어난 것도 해양위원회 설치를 당부하는 이유다.
예를 들자면 풍력·조력 발전을 위한 해양 재생에너지 공간 설치 등이 있다. 해운·항만·수산이 종전까지 해양공간에서 일어나는 전부였다면, 이제는 해상풍력·해양환경·해저 건설 등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산업이 경쟁하면서 부처 간 갈등과 마찰이 커지고 있다. 해양공간 활용에서 국가 자원의 비효율성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곧 ‘정책 실패’로 귀결될 우려를 낳는다.
해양산업에 대한 ‘관점’이 바뀐 것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해야 한다. 해양산업은 외교, 군사, 환경, 에너지 등 국가의 주요 의제와 직접 연결되는 추세다. 특히 일본 후쿠시마 ‘원전발 처리 오염수’ 방류, 독도를 둘러싼 갈등, 중국과 일본에 걸친 대륙붕 문제 등은 외교 수단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해양과 해양과학에 대한 전문 식견과 새로운 시각의 창의적인 해법이 필요하고, 그만큼 다양한 부처의 협력과 조율이 절실해졌다.
해양 행정은 나라마다 크게 다르다. 해양 강국은 비전과 목표에 따라 다른 형태의 정부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해운 선진국들도 대한민국의 해양수산부를 벤치마킹한다. 해운 선진국들이 최근 통합행정과 조정 기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미국은 일찍부터 해운을 교통수단의 하나로 보고 통합 교통행정을 지향해 왔지만, 해양 관련 업무를 통합하고 조정하는 위원회를 따로 두고 있다. 2010년 이후 오바마·트럼프·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면서도 해양정책의 중요 근간은 확고히 유지되고 있다.
프랑스는 우리의 해양수산부와 비슷한 중앙부처를 설치했다. 이에 앞서 통합행정과 이해관계자의 갈등 조정을 위한 해양위원회를 진즉부터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 해양위원회는 특히 각 부처 관료와 기업, 노조, 시민단체 대표까지 참여하는 개방형 거버넌스다. 일본은 내각부 산하에 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각부 대신이 위원으로 참여하는 ‘해양정책본부’를 설치해서 운영하고 있다. 그 본부장을 총리가 직접 맡을 정도로 해양정책 기획과 설계, 타 부처와의 갈등 조정을 중시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2026년에 창립 30년을 맞는다. 비록 굴곡의 시련을 겪었지만 해양수산 통합행정의 효과는 컸다. 해양보호구역이 배 이상 늘었고, 빅데이터를 활용한 해양공간 효율화 정책도 성과를 냈다. 극지 개발과 극지 해양영토 확보, 쇄빙선을 통한 극지 통항 항로 개설도 해양수산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자체 법률안 제출’이 가능하고 중장기 해양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것도 해양수산부가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후변화와 에너지 대전환의 시대에 해양수산부만의 노력으로 해양 현안을 다 해결할 수 없다. 바다로 이어진 이웃 국가는 물론이고 해양 관련 국제기구와의 협력 사업도 크게 늘었다. 특히 동북아는 국가 갈등이 세계에서 가장 첨예한 지역 중 하나다. 외교, 국방, 자원 갈등이 해양 분야에서 더욱 많이 일어날 우려가 크다. 다부처 협력 체계, 즉 대통령 직속 해양위원회 설치가 절실한 이유다. 대통령이 중심이 되어 해양수산부를 중심으로 해양과 관련된 외교부, 국방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련 부처의 수장과 전문가들을 모아서 해양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국가위원회’가 필요하다.
2023-06-1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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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가짜 뉴스 판별력이 필요한 시대
뉴스가 나의 삶을 지배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아니, 나의 일상이 뉴스에 의해 지배당하는 느낌을 받아 본 적은 없는가? 프랑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2014년 펴낸 저서 〈뉴스의 시대〉에서 “인류의 절반이 매일 뉴스에 넋 나가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가 뉴스를 통해 결코 접할 수 없는 뉴스이다”라고 강조했다. 뉴스 이용의 아이러니를 피력한 표현이다. 뉴스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공기와 같은 존재라고는 하지만, 이제는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뉴스 과소비로부터 벗어나 현명한 뉴스 소비 방법을 찾는 현대인의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대이다.
급속한 속도로 발전해 온 디지털 기술은 뉴스의 생산에서부터 유통과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에 영향을 미치며 정보 과잉의 시대를 불러왔다. 뉴스 산업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정보 생산자의 수가 급속히 증가하였고, 디지털화된 정보는 다양한 언론 매체와 소비 플랫폼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시공을 초월하여 빠르게 유통되고 있다. 뉴스 이용자들은 높아진 소비 편의성에 힘입어 정보 욕구를 무제한으로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 말 미국 오픈AI가 ‘챗GPT’를 출시하면서 촉발된 AI(인공지능)를 이용한 가짜 뉴스 생성의 가능성까지 추가되면서, 정보 과잉의 시대에 뉴스의 진위 여부를 스스로 판단하고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이용자의 뉴스 리터러시(Literacy) 역량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지난 22일(현지 시간) 오전 미국 펜타곤 건물에 불이 났다는 소식이 사진과 함께 트위터에 올라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히 확산하면서 미국 주식시장이 출렁이는 대소동이 일어났다. 러시아와 인도의 언론이 이 소식을 긴급 뉴스로 인용 보도하는 등 일파만파의 파장을 몰고 왔다. 관할 버지니아주 알링턴 소방서에서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공식 발표가 나오고서야 이 소란은 겨우 진정될 수 있었다. 또 시꺼먼 연기가 치솟는 해당 뉴스의 사진은 AI가 생성한 가짜 이미지인 것으로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에 의해 밝혀졌다. 이번 소동은 AI발 가짜 뉴스가 현실 사회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 첫 사례로 세계 언론사에 기록될 것이다.
지난 3월 서울 도심에서 자동차들 사이를 달리는 한 얼룩말의 영상이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다. 이 영상이 SNS를 통해 전 세계로 확산되자 세계 주요 언론들도 앞다퉈 해외토픽으로 보도하였다. 처음 이 영상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작된 거짓 영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세로’라는 이름을 가진 얼룩말이 어린이대공원을 탈출했다는 사실이 동물원 관계자를 통해 알려지면서 가짜가 아닌 진짜 뉴스였음이 드러났다. 골목길에서 오토바이를 탄 남자와 세로가 마주친 사진이나 골목길에서 놀라 달아나는 남성 뒤로 세로가 달려오는 영상은 조작된 이미지와 영상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생경한 장면이었지만, 결국은 가짜 뉴스 같은 진짜 뉴스였다.
올 3월 개최된 202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낸 한국 야구 국가대표팀은 국내 언론과 국민의 혹독한 질타를 견뎌 내야만 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도쿄 참사’라고 불리는 한·일전 패배를 포함하여 한국팀 부진의 최대 요인으로 투수진 문제를 꼽았다. ‘국민감독’으로 불리는 김성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한 방송에 출연하여 한국 야구의 투수진 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지적을 했다. “빠르게 던지면 뭐 하나. 제구력 없이는 타자가 기다리면 걸어서 나간다. 투수는 제구력을 키워야 한다. 캠프에서 하루에 2000개씩 던지면 된다. 그러면 제구력이 생긴다.”
야구에서 타자의 선구안은 타석에서 투수가 던지는 공의 구질과 스트라이크 여부를 판단하는 능력을 말한다. 타자에게 요구되는 매우 중요한 역량이다. 투수가 공의 속도나 방향을 조절해 던지는 제구력을 키워야 한다면, 타자는 선구안을 키워야 한다. 선구안이 좋으면 개인 타격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출루율이 높아져 팀 승리에도 기여하게 된다.
정보 과잉 시대에 가짜 뉴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뉴스 이용자들이 정보의 진위를 빠르게 판별해 내는 선구안을 필요로 한다. 뉴스 이용자의 선구안은 뉴스의 신뢰도와 품질을 기준으로 삼아 언론 기능을 훼손하거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방기하는 가짜 뉴스 등 각종 나쁜 뉴스들을 걸러 내는 안목이다. 즉, 뉴스 리터러시 역량이다. 이러한 능력을 갖춘 현명하고 합리적인 뉴스 소비자들이 많아지고 모여야 한국 저널리즘의 품질과 신뢰도를 높은 수준으로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 무분별한 뉴스 유통에 앞서 정확한 진단이 요구된다.
2023-05-2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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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역사로 본 부산항의 미래
항만은 배를 대는 ‘항(港)’과 육지 쪽으로 움푹 들어간 ‘만(灣)’의 결합어로, 말 그대로 인공 구조물과 자연 형성물이 조화를 이룬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만을 영어로 표기해야 할 경우 ‘port’로 써야 할지 ‘harbour’로 써야 할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 부산항 주변의 도로나 이정표를 보면, Busan Port와 Busan Harbour가 병용되어 있다. port는 문을 뜻하는 라틴어 ‘porta’에서 유래한 말로, 로마인들이 성벽을 지을 곳에 줄을 그어 넘나들지 못하게 하고, 성문 예정지로만 드나들게 했던 데서 유래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portal’(관문)이라는 말도 같은 어원에서 유래했다. harbour는 게르만어의 ‘heriberga’(숙영지, 피난항)에서 유래한 말로 군대가 숙영하거나 배가 피난할 수 있는 천혜의 포구를 의미했다. 따라서 항만은 port와 harbour가 결합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부산항을 영어로 표기할 때 천연성이 주목적일 때는 Busan Harbour, 인공성이 주목적일 때는 Busan Port로 쓰는 게 맞겠다.
역사적으로 부산은 동래 외곽의 자그마한 포구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 시대 전 시기에 걸쳐 부산은 용당포나 다대포와 같이 부산포였다. 왜와 가까운 부산포에는 부산진이 설치되었고, 왜인들이 쌀을 반출하는 왜관이 있었으니 배를 대고 물건을 싣고 내리는 인공축조물도 설치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공축조물이 천연의 포구 기능과 목적을 넘어서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부산포가 ‘항’으로 첫걸음을 뗀 것은 개항이 이루어지고 난 뒤 30여 년이 지난 뒤였다. 선박 입출항이 증가하고, 선박 크기가 커져감에 따라 부산항 매립지 조성, 철도 잔교 축조 공사가 1906년부터 1910년에 걸쳐 시행되었다. 본격적인 부산항 축항공사는 1911년부터 시작되었는데, 1년여 간의 공사 끝에 부산항 제1잔교(1부두)가 1912년 3월에 완공되었다. 그 후속 조치로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1912년 6월 8일 조선총독부 제1호 부령으로 부산세관 잔교 사용규칙이 제정 및 시행되었다. 항만 발전 단계로 본다면, 이 시점에 이르러 부산포가 부산항으로 변모했다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통칭 2부두(1919), 3부두(1941), 4부두(1943)가 각각 완공되었다. 중앙부두는 해방 당시 미완공 상태에 있었다.
부산항이 질적 변화를 이루게 된 것은 1979년 컨테이너 전용부두로 5부두(자성대부두)가 준공되면서였다. 1960년대 말부터 컨테이너화가 빠르게 진전되었다. 우리나라 선사들도 컨테이너선 운항에 크게 뒤처져 있지는 않았으나 컨테이너 전용부두는 추세에 비해 늦게 개장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예산 부족으로 세계은행으로부터 차관을 빌려와 건설할 수 있었다. 1979년 이후 부산항은 비로소 현대적인 컨테이너항만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컨테이너전용항만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1991년 신선대부두, 1997년 감만부두가 개장해 북항을 구성했다. 2006년에는 부산신항이 개장되어 계속 확장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부산항 개발의 역사는 부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발전, 해양사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역사적 발전 단계 끝에 부산항의 시점이었던 북항은 무역항의 역할을 끝내고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재개발 중이다. 그러나 2030엑스포의 유치전이 진행 중이어서인지 북항에 어떤 시설이 들어서는지에 대한 청사진은 제시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재개발 중인 북항은 단순히 시민을 위한 친수공간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데는 전문가들과 시민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북항에는 오페라하우스를 건설하고 이런저런 시설이 옮겨올 것이다. 하지만 고층 빌딩만이 즐비한, 기성세대를 위한 재개발에 그쳐서는 안 된다. 개항 이후 150여 년 동안 부산항이 겪어 왔고, 부산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바와 그 속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해냈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젊은이들이 ‘부산’과 ‘바다’라는 플랫폼을 통해 미래를 꿈꾸고 설계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과거를 기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시설은 박물관이다. 영도에 국립해양박물관이 있지만, 접근성이 좋지 않고 시설이 협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래를 설계하는 핵심 분야는 과학일 것이다. 부산에는 해양과학기술원이 있지만, 해양과학관은 없다. 현재 국립해양과학관은 경북 울진에 소재하고 있어 접근성이 좋지 않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접근성이 좋은 북항에 국립해양박물관과 국립해양과학관의 기획전시관(또는 분관)을 설치해, 시민들이 부산항의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꿈꾸는 곳이 되도록 하는 것이 기성세대의 의무가 아닐까.
2023-05-21 [1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