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션 뷰] 지방 대학의 정해진 미래
2023년 지구 인구는 80억 명이다. 보고에 의하면 식량, 에너지, 자원 등을 고려할 때,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최적의 인구는 1960년대 초반의 30억 명가량이라고 한다. 세계는 그 이후부터 식량,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러 왔다고 볼 수 있다. 인류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정해진 미래’, 즉 오늘날의 ‘생존 경쟁 시대인 오징어 게임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지진 발생은 그 직전까지 누적된 에너지가 방출되며 일어나듯이,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 직전까지 누적된 인간 사회의 갈등 에너지의 순간적 방출로 발발하게 되었음에 비유될 수 있다. 이렇듯 세상의 모든 일들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원인이 연결되어 순차적으로 작동함으로써 지금의 순간에 이르게 되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대학의 위기 또한 이미 과거부터 지금까지 어떤 원인이 순차적으로 작동해서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철저하게 살펴야만 그 해법을 찾아낼 수 있다.
모든 위기는 여러 원인 누적돼 발생
‘수도권 집중’ 작동 연결 회로 파헤쳐야
일터, 삶터, 쉼터, 배움터 조성이 급선무
지방정부와 대학, 기업 머리 맞대야
지방 대학의 위기 원인을 크게 ‘수도권 집중’과 ‘학령 인구 급감’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이며 겉보기에 불과하다. 우리 모두는 찬찬하게 그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 봐야 한다. 수십년간 청년들이 왜 수도권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는지, 학령 인구가 왜 급감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작동 회로를 순차적으로 파헤쳐 하나씩 끊어 가야만 위기에 대한 정확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필자가 여러 가지 팩트를 고려해 수도권 집중 원인의 연결 고리를 하나하나 나열해 보니 500가지 이상이 나온다. 책 한 권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내용이어서, 좁은 지면에 모두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 오늘은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과 대안에 관련된 내용만 간략하게 풀어 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자기 자식이 수도권으로 가겠다고 하는 상황을 고려해 보자. 왜 아이들이 서울로 가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하면 쉽게 수긍되는 내용들이 많다. ‘4터’(일터, 삶터, 쉼터, 배움터)가 마련된 환경을 조성해야 지방을 빠져나가지 않게 된다는 얘기다. 바닷속 물고기들이 모이는 곳에는 반드시 먹거리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물때(일터), 어초(삶터)와 적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구조물(쉼터), 어미로부터 생존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공간(배움터)이 조성되어 있다.
1990년대 초 인터넷 상용화는 온갖 제품과 기술 정보들을 온라인에 쏟아지게 하였다. 이로 인해 개발도상국 제조 기업은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유사 제품들을 마구 베껴 내는 상황이 되었다. 그 결과 우리 기업들은 선진국과 개도국의 중간에 끼어 있게 되었고 더 이상 글로벌 가격 경쟁력 확보는 어렵게 되었다. 그 결과, 성장 엔진은 둔화되고, 고용 창출력은 갈수록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15년에 벤처 및 창업 기업에 5년간 소득세와 법인세를 절반으로 감면하는 정책을 단행한 바 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수도권에는 2배 이상의 기업 숫자가 증가했지만, 부산을 포함한 지방에는 기업 수 증가는 1.3배 미만으로 미미했다. 결국, 수도권에는 기업 생존 핵심 요인인 물류비와 인건비 절감에 유리한 환경이 이미 조성되어 있었으며, 기업들로 하여금 쉽게 둥지를 트게 하는 ‘일터’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기업의 수도권 집중 현상을 가속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고, 지방의 인재들은 일터를 찾아 수도권으로 대거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지방대학의 정해진 암울한 미래가 더 확고하게 되는 장면이 되었다. 이후, 2020년을 전후하여 지방에 살아남은 기업들은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해 하나둘씩 본사를 수도권으로 이전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또다시 인재를 수도권으로 유인하게 하는 가속 페달로 작용하게 되었다.
한편, 수도권 자치단체는 기업과 인재의 수도권 유입에 따라 증가된 세입 자금으로 ‘쉼터’와 ‘삶터’, 그리고 ‘배움터’ 조성 사업에 여유롭게 투자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젊은 인재들을 수도권으로 끌어모으기에는 충분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처럼 소득세·법인세 절반 감면 정책처럼 정부가 국가 전체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도입한 제도가 때로는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를 더 가속시키는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로 많다.
중앙정부로서는 국가 전체의 경쟁을 챙겨야 하고 지방과의 격차도 줄여야 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접할 수밖에 없다. 지방대학의 정해진 미래는 그래서 피할 수 없는 시나리오로 작성되고 있다. 지방정부와 지방대학, 그리고 지방 기업이 한 몸통이 되어 절박함과 시급함으로 ‘4터’ 마련을 위한 머리를 맞대어야만 정해진 미래를 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23-01-29 [17:57]
-
[오션 뷰] 해운·조선산업 한 몸 돼야
매출이 각각 최대 70조 원에 달하는 해운산업과 조선산업은 국민적인 관심의 대상이다. 해운산업은 2020년 후반에서 지금까지 예기치 않은 초호황을 누렸다. 운임이 5배 이상 올랐기 때문에 수익도 많아졌다. 정기선사들은 대출금을 갚거나 불황을 대비하여 상당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후반부터 긴축정책으로 금년은 선박은 많지만 실어 나를 화물은 적은 초과공급이 예상되어 정기선 운임도 대폭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적자가 예상되기에 각 해운선사는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 들어갈 것이다. 조선산업은 최근 수주량이 늘어났다. 대우조선해양도 한화의 인수로 안정되어 간다. 철판 가격도 안정을 찾으며 금년은 흑자 전환이 예상된다. 그렇지만 해운이 불경기 시 선주들은 발주한 선박의 인도를 늦추거나 건조를 취소한다. 10% 내외에 불과한 내수시장은 우리 조선산업을 불리하게 할 요소이다. 2016년부터 시작된 불황에 줄인 인력을 어떻게 확보할지도 관건이다. 인력 부족으로 선박 건조 납기를 어기게 되면 배상금을 물어야 하고 적자의 원인이 된다.
구조적으로 한국 해운은 부족한 자금으로 허덕였다. 배 한 척에 90%까지 빚을 내어 겨우 선박을 확보하여 운항하였다. 불경기가 와서 운임이 떨어지면 대출금을 갚지 못해서 집단 도산을 했다. 2년의 건조 기간 중 인도 시에 건조 대금을 주는 헤비테일(Heavy Tail) 방식의 건조 계약이 대부분이었다. 조선소는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아 건조한다. 1945년 신생 대한민국의 해운과 조선은 한 몸이었다. 선각자들은 한국해양대를 설립하면서 항해, 기관학과와 함께 조선학과를 설치했다. 하지만 수출 중심이 되면서 조선은 해운과 멀어졌다. 외국 선주에게 너무 의존하는 구조가 되었다.
1980년대부터 일본은 조선산업을 내수 비중 50%에 맞추어 오고 있다. 이마바리 조선소가 300척을 소유한 선주사를 설치했다. NYK와 같은 대형 해운사가 배를 빌려 사용한다. 불경기 시 자회사인 선주사가 신조 발주를 해서 일감을 주는 구조이다. 국토교통성에서 두 산업을 함께 관리하는 게 우리와 다른 점이다. 한국 해운은 현금의 여유뿐만 아니라 해양진흥공사라는 해운산업 전문 정책금융기관이 있다. 이런 호전된 조건들을 활용, 해운과 조선산업이 하나가 되어 상부상조하는 관계를 2023년에 복원시켜야 한다.
첫째, 300척 선박을 소유·관리하는 민간 선주사들을 부산에 만들어야 한다. 2021년과 2022년 선박이 부족하여 야단일 때 일본과 그리스의 선주사들은 높아진 선가를 이용해 매각차익을 얻거나 높은 임대료 수입을 올렸다. 우리는 오히려 이들 선박을 빌려 쓰느라 국부가 유출되었다. 현금 여유가 있는 해운선사, 물류회사, 부산항만공사, 부산시 등이 민간 선주사의 주주로 들어오면 된다. 배를 빌려서 사용할 해운선사도 이제 튼튼해졌다. 금년과 내년 선복 과잉이 되면 선가는 낮아진다. 선주사는 이때 선박을 사들일 수 있다. 금년은 민간 선주사 육성 시작의 적기인 것이다.
둘째, 우리 해운선사들이 건조 초기에 건조 대금을 많이 지급해 할인받도록 하자. 조선소는 헤비테일에서 오는 건조자금 대출의 위험을 줄여서 좋고, 선사는 선가를 낮춰 좋다. 우리 선사들은 화주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여 현재보다 더 많은 선박을 확보해야 한다. 일본과 우리가 수출입화물은 비슷한데 운항하는 선박 숫자는 일본이 우리보다 3배가 많고, 대만도 3배나 많은 컨테이너선박을 운항한다. 우리 해운선사들과 선주사들은 더 많은 선박을 우리 조선소에 발주해 조선소의 내수 비중을 30%로 높여 안전판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상법 해상 편에 선박 건조 시 대금은 공정에 맞추어 5번에 걸쳐 나누어서 지급되도록 임의규정을 둔다. 선주사는 화주와 운송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도록 입법화하고, 톤세제도의 적용 등 혜택이 부여되어 일본 및 그리스 선주사들과 경쟁이 되도록 해야 한다.
전제는 우리 해운선사가 튼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시적인 호황으로 해운선사 현금 보유가 많아졌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외국의 해운선사는 우리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렸다. 향후 2~3년은 선박 공급 과잉으로 치열한 국제 생존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제2의 한진해운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외국이 인정하는 톤세제도와 같은 국적 해운 선사보호 제도가 더 강력히 유지되어야 한다. 이렇게 우리나라 해운과 조선산업이 일체화로 안정화되어야 불경기가 와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안정된 해운·조선산업의 최대 수혜 지역은 조선소와 선주사들이 밀집한 부울경이 될 것이다.
2023-01-15 [17:50]
-
[오션 뷰] 에너지 안보 해법, ‘바다’에 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에너지 안보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면서 세계 각국은 재생에너지 생산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같은 해 4월 독일 정부는 오는 2035년까지 자국 내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목표를 담은 법안을 발표했다.
AP 등 외신들은 독일 에너지·물 산업협회(BDEW)가 지난해 1~2월 독일 전력 소비의 54%를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대체했다고 발표한 내용을 보도했다. ‘엠버 국제전력리뷰 2022’에 따르면 덴마크는 전체 전력의 52.8%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세계 최대의 화석에너지 생산국으로 꼽히지만, 2021년 10월까지 전체 발전량의 23%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석탄, 석유, 가스 등 에너지의 92%를 수입(2021년 기준 총수입액의 22.3%, 1372억 달러)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지난 20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재생 에너지 공급 비중이 7.5%에 불과하다. 앞으로 7년이 남은 2030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보급 목표인 21.6%를 달성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매우 크다.
세계가 ‘넷제로(Net Zero, 탄소 순 배출량 0)를 향한 각고의 노력을 펼치고 있긴 하나, 세계 인구 증가와 에너지 수요 급증으로 화석 연료의 생산은 더 많아지고 있다. 심해 석유 생산량의 경우 1990년 30만 배럴에서 2022년 1040만 배럴, 2020년대 말까지는 1700만 배럴까지 늘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석유 매장량은 갈수록 고갈되고 있다. 약 30년 전만 해도 해저 100m 정도에서 원유를 채굴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수심 1000m 이상 초심해가 되어야 가능하다. 그나마 셰일 가스의 개발로 에너지 공급이 증가했고, 유럽의 재생에너지 보급 증가로 현재 에너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중 패권 다툼으로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의 분쟁 가능성이 커지고, 중동 지역의 국제 정세가 불안해지면 화석에너지 수입이 막힐 수 있는 여지는 여전히 많다.
세계 해양 전문가들의 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Global Maritime Issues Monitor 2022’는 앞으로 해양산업의 가장 큰 이슈로 ‘해운의 탈탄소’와 이를 위한 ‘새로운 환경 규제’를 전망하고 있다. 더불어 앞으로 10년 후에는 ‘에너지 가격’과 ‘정치적 긴장’이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이는 에너지가 세계 경제와 정치적 관계를 형성하는 에너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 준다.
유럽은 탄소 중립을 새로운 무역 장벽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의 제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 국경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는 탄소 배출 등급에 따라 선박의 등급을 정하고, 규제를 충족하지 못하면 운항을 할 수 없는 조치까지 시행된다.
이러한 규제는 조선, 해운 등과 같은 해양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친환경 선박 개발을 통해 연료 소비의 측면에서 전통적인 경제효율 선박을 설계하는 것 외에도 선박에서 배출되는 선박 온실가스(Green House Gas)를 처리하기 위한 장치도 탑재하고 있다. 현재는 저탄소 연료를 활용한 다양한 선박 엔진 개발과 무탄소 선박 엔진에 이어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 추진 선박에 이르기까지 선박으로 인한 대기오염 물질과 탄소 저감을 위한 투자와 기술 변화가 엄청난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서 해양과 에너지 생산의 관계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재생 에너지 확대의 가장 큰 문제는 이를 위한 가용토지가 부족하다는 점인데, 해결책으로 바다가 떠오르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를 대규모로 생산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해양이 가장 유력하다. 해상풍력을 위해 북해와 발트해 국가 간 영역 확보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해양 신재생 에너지를 통해 생산된 전기에너지는 우리가 원하는 다양한 형태로 공급이 가능하다. 보건·안전·환경적인 관점과 경제적 측면에서 에너지의 생산과 보관을 비롯한 발전과 설비, 도시 등 육지의 인프라가 빠른 속도로 해상으로 옮겨 가고 있는 것도 해양 신재생 에너지의 다양한 장점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해양의 탈탄소 정책을 향한 기술과 환경, 경제적인 측면의 변화는 대규모 투자와 축적된 기술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과 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에너지 대전환의 시기를 맞아 거대한 도전에 직면한 우리나라는 어느 때보다 도전과 지혜 그리고 협치가 필요하다. 해양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의미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지금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2023-01-08 [18:09]
-
[미디어 비평] '재벌집 막내아들'
지난해 연말에는 모 종편채널에서 방영한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가 단연 화제였다. 드라마에서 흙수저 출신의 회사원 윤현우는 출세를 위해 총수 일가의 온갖 궂은일을 뒤처리하며 충성을 다하지만, 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는 1987년으로 회귀해 자신을 죽인 재벌집의 막내아들로 빙의한 뒤 복수를 하고 재벌 총수가 된다는 그런 내용이다.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는 현실성과 거리가 먼 황당무계한 판타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이 이 드라마는 순수한 허구이면서도 현실성의 요소도 갖고 있다.
이 드라마는 계층 간 갈등과 분노, 흙수저의 복수극을 소재로 다뤘다는 점에서 정치적 폭발성을 매우 강하게 안고 있다. 상당히 어두운 내용인데도 이례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을 보면 시청자들의 시대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뭔가 있었던 게 틀림없다. 이 정서는 안간힘을 써도 흙수저 신세를 벗어나기 어려운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욕망이나 좌절과 무관하지 않다. 드라마 역시 언뜻 복수극으로 마무리하는 듯하지만, 야망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 정서를 부추긴다.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1980년대 중반 화제작인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연상시킨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출세의 욕망을 판타지 형식으로나마 실현할 수 있도록 해 주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허구가 갖고 있는 일말의 진실성이다. 드라마와 만화에서는 주인공이 패자에서 승자로, 아니면 현실에서 환상의 세계로 도약할 수 있게 해 주는 극적인 계기가 존재한다. 〈공포의 외인구단〉에서는 어렵긴 하지만, 개연성이 전혀 없지는 않은 ‘지옥 훈련’이라는 시련의 단계가 그 계기 노릇을 한다. 반면에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현실성이 전혀 없는 회귀와 환생, 빙의라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주인공의 야망 달성이 가능했던 것은 막내 손자이긴 해도 재벌집에 태어났을 뿐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일까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흙수저가 비록 가상 세계에서나마 복수를 달성할 가능성은 1980년대에 비해 훨씬 더 어려워졌고 지금이 더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미래 희망이 보이지 않는 데도 무한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에게는 공포의 외인구단식 지옥 훈련조차도 환생만큼이나 성공의 수단으로서 그다지 현실성이 없을지도 모른다. 노력이라는 단어에 대해 ‘노오력’이라는 냉소적 표현이 존재하는 걸 보면 이 시대에는 젊은이들이 치열한 무한 경쟁에 뛰어드는 것 역시 성공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달리 대안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드라마는 이런 시대정서를 꿰뚫어 본다는 점에서 허구이면서도 완전히 허구인 것 같진 않다.
이 드라마의 호소력은 허구이면서도 끊임없이 실제 현실을 비추어 가면서 묘사한다는 점에도 있다. 드라마 속 인물이나 사건, 심지어 배경 묘사까지도 특정한 재벌가 사례를 연상시킨다. 전생의 주인공 윤현우가 겪은 상황은 극 중의 극단적 설정이 아니라 수많은 흙수저 출신의 직장인이 실제 겪고 있는 일상적 현실이니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드라마에서 순양그룹 가문의 갑질 행태나 봉건적 가신 관계라든지 정치인, 검사, 언론인들이 재벌과 결탁해 벌이는 추악한 행태는 일반 대중이 상상하는 0.1% 상위층의 세계와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드라마는 판타지 형식을 띠면서도 마치 다큐멘터리나 시사 보도처럼 대중이 궁금해하는 추악한 현실을 리얼하게 묘사한다. 이 드라마의 재미는 허구이면서도 현실보다 더 리얼한 허구라는 이중성에 있다.
드라마가 끝나고 채널을 돌리니 정치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한국 사회가 당면한 시급한 현안은 어디 가고 온통 ‘그들만의’ 말장난과 싸움질로 넘쳐 난다. 현실을 생생하게 고발하고 진단해 보도해야 할 뉴스는 재미만 추구하는 개그나 막장 드라마로 변질하고 있다. 아니면 첨예한 사회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대중의 관심사를 포착해 예리하게 파고들기보다는 부와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한 낯 뜨거운 용비어천가만 불러 대는 것을 보고 있자니 홍보자료인지 기사인지 종종 헷갈리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허구에 불과한 드라마가 이 시대의 모순투성이 현실과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더 잘 읽어 내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드라마는 현실의 변화를 빠르게 반영하면서 대중의 갈채를 받고, 뉴스는 보는 사람도 많지 않은 ‘삼류 소설이나 쓰는’ 이러한 역할 전도는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이러다가 언젠가 뉴스라는 형태가 사라진다고 해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릴 사람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우려된다.
2023-01-01 [18:08]
-
[오션 뷰] 기후위기 시대, 부산의 겨울 축제
부산에는 부산불꽃축제, 부산항 축제, 부산바다축제, 해맞이 부산 축제, 부산원도심골목길축제를 비롯한 다양한 축제가 있다. 마침 지난주에는 크리스마스 시즌과 더불어 해운대 북극곰 축제가 열렸다. 1997년에 조직된 부산문화관광축제조직위원회가 부산에서 거행되는 모든 축제를 주관한다. 부산의 축제는 대개 해양문화 관광도시를 지향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이루어진다. 축제는 지역사회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지역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부산에서 열리는 다양한 축제는 부산이 세계 속의 도시로 나아가는 데 일조한다.
한반도 최남단 제주도 서귀포에서는 매년 11월~12월에 방어축제가 열린다. 2001년부터 시작된 방어축제는 겨울철 백미로 여겨지는 대방어를 소재로 활용하는 해양문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주제는 ‘청정 바다의 흥과 멋과 맛의 향연’이다. 선명한 주제로 인해 2008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표적 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방어축제는 당연히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 방어가 많이 잡히는 시기에 맞추어 열릴 뿐만 아니라 낚시 체험과 같은 부대 행사와 병행하니 관광객이 몰려든다. 방어는 1990년대 말부터 어획량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방어축제는 제주의 대표적인 해양문화 축제가 된 것이다.
수온 변화의 영향으로 올해 동해안에서 가장 많이 잡힌 어종으로 방어가 꼽힌다. 기후변화로 동해안의 어종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머지않아 동해안에서는 대게나 오징어를 제치고 방어가 대표 어종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대표적 겨울 먹거리 축제인 영덕 대게 축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동해에서 명태가 사라진 것을 생각하면, 축제 역시 환경 변화를 비켜 갈 수 없다. 한편 겨울 먹거리 축제인 거제도의 대구축제는 환경 변화에 적응한 축제다. 대구는 기후변화, 무분별한 남획과 관리 소홀 등으로 한동안 거제도에서 많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지역민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 인공수정을 통한 치어 산란 등으로 성어가 된 대구가 거제도로 돌아오며 새로운 축제가 탄생한 것이다.
울산 태화강으로 회유해서 돌아오는 연어가 매년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높아진 수온의 영향으로 2014년 대비 10분의 1 정도만이 돌아온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동해안에서 명태가 사라진 것과 같은 수온 상승의 영향이다. 이상기후 시대에는 어종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삶의 양식도, 먹거리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의 특산품이 새로운 품종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상기후로 인해 결국 축제 자체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일본 삿포로는 매년 2월 첫째 주에 열리는 눈축제로 유명하다. 눈축제는 1950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73회째가 되었다. 필자가 우연히 경험한 삿포로 눈축제는 큰 감명을 주었다. 세계 각지에서 출품한 눈과 얼음으로 만든 거대 조각상을 보기 위해 찾은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킹크랩과 같은 풍부한 겨울 먹거리와 다채로운 눈축제로 인해 추위까지 잊을 수 있었다. 삿포로는 1972년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눈으로 유명한 겨울 도시로 세계인의 눈도장을 받았다. 눈축제는 눈이라는 삿포로의 소재와 먹거리를 잘 활용한 축제다.
세계에서 유명한 축제 중에 브라질의 삼바(samba)축제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축제는 1930년대에 거리 축제로 시작되어 오랜 세월 동안 진화했다. 이제는 수만 명의 외국인이 참여하는 가히 세계적 축제가 되었다. 보령 머드(mud) 축제는 지역의 특징을 잘 살려 낸 축제다. 바닷가 체험이나 영상체험을 통해 참여를 유도하고, 진흙을 소재로 한 산업 분야까지 확장하고 있다. 머드축제는 초대 가수 공연을 비롯한 불꽃놀이, 야시장까지 병행하고 있다. 한국에서 열리는 축제 중 외국인 참여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하니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17일 부산 불꽃축제나 지난 주말 부산 북극곰 축제는 혹한의 추위 속에서 열려 관심을 모았는데 솔직히 아쉬운 점도 있었다. 해양도시 부산을 대표하는 축제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북극곰 축제는 여러 부대 행사를 통해 완성도를 높이려고 노력했지만 높은 파도 탓에 축제의 핵심인 북극곰 수영은 할 수 없었다. 축제는 환경을 거스르고는 안 되는 것이다. 다다익선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많은 축제가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북극곰 축제와 불꽃축제를 병행하거나 먹거리 행사를 추가하는 등 축제를 환경에 맞게 변화시킬 필요가 있어 보인다. 부산을 대표하는 똘똘한 해양문화 축제 하나로 재탄생되면 좋겠다. 모두가 참여해서 즐기려고 기다리는 겨울 축제 말이다. 요즘 같은 이상기후엔 북극곰도 수영하기보다는 먹잇감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지 않는가.
2022-12-25 [17:59]
-
[오션 뷰] 수산식품산업은 신성장 원동력
예전부터 바다를 지배한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 사례는 많다. 과거 영국과 스페인 그리고 네덜란드가 해양을 발판으로 대국으로 주름잡았다. 최근엔 미국과 일본 그리고 호주가 과학기술 분야의 해양대국으로 우뚝 서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 해양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있고, 향후 해양 분야에서의 기술 개발도 더 도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해양 분야의 발전에 따라 수산식품 시장도 과거와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우리나라의 기존 수출 ‘효자’ 분야인 반도체는 글로벌 경기침체 영향으로 실적 악화가 심화하고 있지만, 국내 식품 수출 시장은 건강 기능식에 대한 수요와 한국 식문화에 관한 관심 증가로 인기가 더 높아지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산식품인 김, 굴, 어묵, 참치, 전복 등은 K시푸드를 견인하며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요즈음 들어 관심과 이슈가 더 집중되는 수산식품이 있다. 과거 수산식품을 대표하던 통조림, 레토르트 식품에 비해 가정간편식으로 불리는 ‘HMR(Home Meal Replacement)’과 밀키트 형태의 종류다. 요즈음 이러한 수산식품을 애용해 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다.
코로나19 이전에도 1인 가구와 고령 인구의 증가,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 등으로 꾸준한 성장세이던 가정간편식 HMR 시장과 밀키트 제품은 이제 수산물의 새 소비 트렌드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식품산업통계 정보에 따르면, 세계 가정간편식 HMR 시장 규모는 연평균 4%로 성장 중인데, 2018년 907억 달러에서 2023년엔 1102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가정 음식을 대체한다는 의미의 ‘가정대용식’ 또는 ‘가정간편식’으로 불리는 HMR은 완전 조리 식품이나 반조리 식품으로 집에서 간단히 데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일컫는다. 냄새 등 조리할 때 불편함을 해결한 생선구이 제품 등이 많다.
그런데 HMR과 밀키트는 조금 다르다. 밀키트는 재료 준비만 해 놓은 포장 상품으로, 조리는 첨부된 설명서를 보고 직접 해야 한다. 꾸준한 성장세인 HMR 시장과 함께 밀키트 역시 시장 규모가 커지는 추세다. 한 조사에 따르면 즉석조리 식품 가운데 밀키트의 비중이 66%로 가장 높고, 국이나 탕, 찌개 종류가 54.2%로 나타났다. 과거 밀키트 제품은 집에서 조리하기 힘든 음식의 구매 비율이 높았지만, 최근엔 집밥 수요 증가로 일상식 제품이 특히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고물가의 그림자는 피할 수가 없다. 현재는 3000원짜리 김밥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소비자원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외식 품목 가격은 김밥 3046원, 짜장면 6300원, 냉면 1만 5000원이다. 또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8.62(2020년 100 기준)로 전년보다 57.7% 올랐다. 이러한 비용 부담으로 외식을 자제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의 예측을 보면 HMR과 밀키트 시장 규모는 2022년에만 5조 원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대기업 식품회사는 물론 플랫폼 등 유통사와 외식 업계의 경쟁이 치열한 실정이다.
해양수산부와 각 지자체도 지역경제 활성화와 어민 소득 증대를 위해 수산물을 활용한 식품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소비의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한 HMR과 밀키트 상품의 개발, 시장 개척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한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품질과 안정성 강화, 포장기술 교육 등이 주요 포인트다.
해양수산부는 올해 수산식품산업 거점 단지의 역량강화 사업을 추진해 관련 업체의 매출 증대와 신제품 개발 등 구체적인 성과를 거뒀다. 부산시도 내년 6월 ‘수산식품 특화단지 기업 센터’를 개소해 다양한 가공품 생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국내 수산식품 제조 업체 대부분이 영세한 규모임을 고려하면 정부와 지자체의 이러한 정책적 도움은 우리 수산식품의 우수성을 세계 시장에 알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만큼 K시푸드의 인기와 위상도 고공행진 중이다. HMR과 밀키트로 대표되는 K시푸드의 수산식품 제조에 국산 수산물이 아닌 저가의 수입물을 이용해 어렵게 쌓아 올린 명성을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단기적인 이윤만을 꾀하는 일부 몰지각한 행위는 없어져야 한다. 우리의 푸른 바다가 내어 주는 소중한 자원으로 건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수산 식품의 개발에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해양 환경을 생각해 재활용할 수 있고, 친환경적인 포장재의 개발은 우리 수산식품의 발전과 함께 반드시 실행되어야 할 필수 과제이다.
2022-12-18 [18:04]
-
[오션 뷰] 부산시 새 슬로건의 충족 조건
부산시 슬로건과 상징 마크는 바꿔야 할까. 교체한다면 해양도시 정체성은 얼마나 더 강화될 수 있을까. 부산시가 슬로건과 상징 마크를 바꾼다고 공언한 지 한 달이 다 됐다. 부산시는 그동안 도시 브랜드 공식 플랫폼으로 ‘온라인 소통채널 상상 온’을 개설했고, 지난달 27일 시민 8192명으로부터 1만 3060개의 키워드를 접수했다고 발표했다. 예정대로라면 12일 슬로건에 대한 시민 공모 결과도 나온다. 어떤 후보작이 좋은 반응을 얻었는지 궁금하다.
부산시는 슬로건 후보작 선정에 이어 새해 1월 상징 마크 후보작을 뽑은 뒤 선호도 조사를 거치면 늦어도 3월에 도시 브랜드 리뉴얼 선포식을 가질 수 있단다. 국제박람회기구의 2030세계박람회 현지 실사 일정에 맞춘 듯하다.
부산시의 슬로건 교체 추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2018년 시장 취임에 앞서 새 슬로건에 대한 시민 공모부터 실시했고, 680여 건의 후보작을 접수했다. 하지만 ‘30여 년 만의 지방권력 교체’라는 나름대로 명확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존 ‘다이내믹 부산’이란 슬로건을 바꾸지 않았다. 이 슬로건은 2003년 안상영 전 시장 때 확정했는데, 당시 안 시장 구속으로 부시장이던 오 전 시장이 직무대행을 하면서 직접 승인했다. 그 스스로도 나중에 기자들 앞에서 “애착 때문에 바꿀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슬로건과 함께 개편 대상이 된 마름모꼴의 부산시 상징 마크는 이보다 훨씬 더 오래전인 1995년 3월 지정됐다. 갈매기와 오륙도, 산, 바다, 강이 기본 콘셉트다. 상징 마크는 부산시가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바뀐 게 제작 계기가 됐다.
상징 마크가 지정되고 석 달 뒤 부산시 마스코트 ‘부비’가 탄생했다. 이는 ‘부산 비전’의 줄임말로 요즘 부산시가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활용하고 있는 ‘부기’와는 다르다. 공식 마스코트 ‘부비’는 밝고 희망찬 태양과 출렁이는 바다 물결을 모티브로 삼은 반면 홍보용 캐릭터 ‘부기’는 갈매기를 형상화했다. 마스코트보다 홍보 캐릭터가 더 활용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것부터 교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공식 마스코트와 홍보 캐릭터를 따로 둘 필요가 없어서다.
문정수를 필두로 안상영, 허남식, 서병수, 오거돈으로 민선시장이 이어졌으나 부산은 그동안 아무도, 어느 것도 바꾸지 않았다. 바꿀 마음이 없었던 게 아니라 확실한 대안으로 시민을 설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다른 도시는 사정이 달랐다. 시장 교체가 곧 슬로건 변경이라고 할 정도로 부침이 심했다. 그럼에도 슬로건 교체 이유는 모두 ‘도시 브랜드 강화’였다. 서울시와 강원도는 각각 7차례나 바꿨다. 그럼에도 효과를 거뒀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예산만 수십억, 수백억 원을 쏟아부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교체 명분으로 삼는다. 부산시가 주도한 도시 브랜드 리뉴얼 조사에서 응답자 71%(710명)가 새로운 브랜드를 요구했다고 주장한다.
명분은 그렇다고 쳐도 아직 새 슬로건이 시민 동의를 얻은 것도 아닌데 기존의 ‘다이내믹 부산’은 부산시 홈페이지를 포함해 각종 홍보에서 벌써부터 사라지고 있다. 그 자리를 ‘부산 먼저 미래로’가 차지했다. 마치 시민 동의를 얻어 새로 선정한 슬로건처럼 보인다. ‘부산 먼저 미래로’는 지난해 4월 박 시장이 후보 때 인수위원회 격으로 설치한 ‘부산미래혁신위원회’의 출범 슬로건일 뿐이다.
부산미래혁신위원회에 대해 해양인들은 탐탁지 않게 여긴다. 참여한 인사 중 상당수가 박 시장 취임 직후 중용됐거나 예정되고 있지만, 전체 46명 중 해양수산계 인사는 한 명도 없다.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해양특보 신설 요구에 박 시장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그가 내세운 도시 비전 실현을 위한 6대 도시 목표 중 금융, 디지털, 친환경, 문화관광은 있어도 해양이란 단어는 포함되지 않았다. 비공식 슬로건 하나에도 해양인들이 예민해지는 이유다.
부산시 슬로건과 상징 마크는 두 가지를 충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오래된 것을 버릴 때 그 이상의 효과를 반드시 기대할 수 있어야 하고, 또 하나는 어떤 경우에도 해양도시란 정체성이 훼손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세계 도시 슬로건 중 성공한 사례로 미국 뉴욕의 ‘아이 러브 뉴욕’이 꼽힌다. 1975년 제1차 석유파동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에게 희망을 주자는 취지에서 뉴욕주가 기획했고, 뉴욕 출신 그래픽디자이너(밀턴 그레이저)가 제작했다. 취지부터 훌륭하고 시민 누구나 공감할 디자인으로 자리 잡은 것이 부럽다. 우리도 그럴 자격이 있다.
2022-12-11 [18:07]
-
[미디어 비평] 가짜뉴스 온상 디지털 플랫폼 혁신해야
지난달 28일 미국의 사전출판사 미리엄웹스터는 올해의 단어로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사전은 가스라이팅을 ‘장기간에 걸친 사람의 심리적 조작으로 희생자가 자기 생각, 현실 인식 또는 기억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하고 혼란, 자신감 및 자부심의 상실, 정서적 또는 정신적 안정의 불확실성, 가해자에 대한 의존성을 불러일으킨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심리학 용어인 가스라이팅의 올해 검색 건수가 전년 대비 1740%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지난 몇 년간 ‘오보의 시대’를 거치며 이 단어가 교묘한 거짓말과 선동, 기만행위 등으로 범용해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미리엄웹스터에 따르면 가스라이팅은 딥페이크와 가짜뉴스 등 허위 정보(misinformation)를 의미하는 단어들을 함께 압축해 보여 준다.
한국 사회도 올 한 해 여전히 가짜뉴스 공방으로 시끄러웠다. 가짜뉴스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내용을 어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퍼뜨리는 허위 정보’로 정의된다. 허위 정보의 확산은 정보이용자로 하여금 장기적으로 정보의 진위 여부에 대한 판단력을 떨어뜨리고, 집단 간 상호 불신과 갈등을 키워 높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허위 정보 확산을 막는 기준과 제도를 마련하는 일이 우리 사회의 시급한 과제 중 하나인 이유이다.
세계적으로 디지털 플랫폼은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각국 정부는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통해 가짜뉴스를 퇴치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유럽연합(EU)은 사업자들에게 불법 콘텐츠에 대한 강력한 책임을 부과할 목적으로 플랫폼 규제 법안인 ‘디지털서비스법’(Digital Service Act)을 제정하여 오는 2024년 시행 예정이다.
글로벌 플랫폼은 이 법에 따라 자사 플랫폼에서 허위 정보, 차별적 콘텐츠, 아동 학대, 테러 선전 등의 불법 유해 콘텐츠를 의무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이는 허위 정보와 혐오 발언들이 무차별 확대 재생산되는 부작용을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는 만큼 법안에 따라 구글, 메타, 아마존 등 거대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은 불법 콘텐츠 처리 절차를 신속하게 마련하여야 한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우리 대표팀이 16강 진출을 확정한 ‘도하의 기적’에 대한 진짜 뉴스가 우리를 즐겁게 해 주고 있다. 기술적 측면에서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주목을 받은 뉴스는 단연 ‘반자동 오프사이드 기술’의 도입일 것이다. 이제까지 축구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킨 오프사이드 판정을 둘러싼 시비 자체를 없애 버리겠다는 야심 찬 의도가 숨어 있는 이 인공지능(AI) 판독 기술이 기존 강팀들의 장점을 무력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가 사우디아라비아에 패배한 경기는 어쩌면 이 기술이 아니었더라면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경기의 최대 이변으로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르헨티나는 전반전에만 세 번이나 사우디의 골망을 갈랐지만, 노골이 선언되면서 AI 판독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인간의 눈으로는 구분하기 힘든 미세한 움직임으로 수비수와 심판을 교란하는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탁월한 능력도 AI 판독 앞에 힘을 쓰지 못했다.
반자동 오프사이드 기술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처음 접목한 ‘골라인 기술’,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 도입한 비디오 판독(VAR)과 함께 인간의 한계를 메워 줄 판정 기술로 평가되고 있다. FIFA의 이번 반자동 오프사이드 기술 도입은 미래 AI가 세상 구석구석 논란이 되는 사안의 진위 여부를 판단함으로써 인간 갈등의 해결사로 등장할 것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만약 허위 정보와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디지털 플랫폼 공간에도 AI나 빅테이터에 기반한 판독 기술이 도입되면 어떨까. 기술을 활용해 판정 시비를 줄여 나가려는 FIFA의 노력을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 노출을 두고 책임 소재 논란에 시달리는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들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2022년 마지막 달에도 우리 정치권은 여전히 가짜뉴스 공방으로 시끄럽다.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는 가짜뉴스 온상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디지털 플랫폼 혁신에 진지하게 임해야 할 것이다. 머지않아 로봇 심판이 월드컵 경기 판정을 담당하게 될지도 모르듯이 실시간 AI 가짜뉴스 판독 기술이 강제 적용되는 날이 온다면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아르헨티나 축구 천재 리오넬 메시는 AI 판독 결과에 대해 말없이 승복하였다.
2022-12-04 [18:11]
-
[오션 뷰] 세계 해양수산 기술패권 경쟁과 인재 육성
기술패권 경쟁이 세계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글로벌 시장에서 해양수산 분야도 이 같은 경쟁이 치열하다. 지금까지는 풍부한 인력이나 수산자원을 보유한 중국,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이 시장을 주도했다면, 이제는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자동화와 디지털·스마트화를 이룬 선진국을 중심으로 산업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국면을 맞았다. 단적인 예로 노르웨이가 지난해 처음으로 세계의 수산물 가공기지인 중국을 제치고 수산물 수출 세계 1위를 차지한 것을 들 수 있다.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는 어선, 양식장, 수산물 가공공장에서 높은 수준의 자동화와 스마트화를 달성했다.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는 인구가 각각 약 540만 명, 40만 명에 불과하고 인건비가 매우 높은 국가인데도 자동화를 달성해 품질 경쟁력뿐만 아니라 가격 경쟁력에서도 개발도상국을 앞서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두 나라는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주도해 나가고 있다. 산업의 미래를 이끄는 혁신적인 젊은 인재를 배출하고, 이들이 활발하게 산업계로 진출하는 게 수산 선진국이 된 원동력이다.
노르웨이 작년 수산물 수출 세계 1위
스마트화와 혁신 인재 유입이 원동력
국내 수산업 고령화·인력난에 허덕여
시설 첨단화·젊은 인력 유인책 요구돼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현재 해양수산업은 고령화와 인력 부족의 늪에 빠져 있다. 생산에서 유통, 가공, 무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 인력 부족이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인구가 적고 고령화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생산활동 자체가 어려운 기업까지 발생하고 있어 지자체 차원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대체 투입할 정도다. 이마저도 단기 고용으로 긴급 수혈에 그치는 실정이다.
해양수산업의 인력난은 오래전부터 예상됐던 문제다. 하지만 이에 대처할 자동·디지털·스마트화 같은 변화를 제때 이루지 못함으로써 전통적인 업태 속에서 고질적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고령화된 인력이 바닥에 앉아서 수산물의 내장을 제거하며 세척하는 등 옛 형태에 머물러 있는 수산물 가공이 그런 경우다.
현재 취업을 준비 중인 MZ세대는 해양수산 분야 진출에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올해 취업준비생 324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의 설문조사 결과, 수산업에 취업할 의향이 있는 응답자는 13.0%에 그치고 67.9%가 뜻이 없다고 대답했다. 해양수산 분야 전공자들마저 해당 산업 진출이 부진한 상태다. 해양수산 전문 인력 육성과 공급은 마이스터고와 국립대, 전문대를 중심으로 관련 전공과정 이수자가 해양수산 분야 각계로 진출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이들 교육기관의 졸업생은 물론 재학생마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입사, 공무원 시험에 관심을 쏟으며 해양수산 분야 진출을 주저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해양수산 전공자들조차 관련 기업과 비즈니스 기회에 대한 정보 획득이 어려운 점이 해양수산 인재 공급구조의 한계로 지적된다. 결국 해양수산업은 젊은 세대에게 발전과 희망이 있는 미래산업이 아니라, 낡고 오래되고 열악한 전통산업으로 인식되며 기피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반면 노르웨이 수산업은 젊은 인재 유치를 위해 수산기업들과의 연결을 통한 혁신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해 놓고 있다. 노르웨이는 수산혁신클러스터에 인재 탐색 프로그램을 만들어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기업과 연결시켜 학생들이 다양한 기업의 현안과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 100개가 넘는 수산기업이 참여하는 수산 인재 인턴십 프로그램은 수산업의 가치사슬뿐만 아니라 아이슬란드 등 해외 수산 강국에서 혁신 비즈니스 모델을 배우는 기회까지 준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수산기업이 마주한 현안을 직접 해결하면서 자신의 적성과 직업 만족도를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미래 인재를 해양수산 분야로 대거 끌어들일 수 있는 체계적인 전략 마련이 절실하다. 해양수산업계도 젊은 글로벌 인재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이상을 키울 수 있도록 적정하게 대우하며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부가가치가 낮은 저임금 구조에서 단기 성과나 하늘의 운에 기대는 곳은 젊은이들이 미래를 꿈꿀 수 없어 인재 유입은 요원하다.
해양수산 분야의 젊은 인재 유입을 위해선 기업과 인재들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MZ세대에 해양수산업의 미래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여 주고, 이들이 글로벌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는 산업적 혁신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해양수산부와 지자체들도 전문 인력 육성과 인재들의 해양수산업 진출이 선순환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해양수산업이 첨단기술 산업으로 거듭나고 인재 유입이 활발하지 않으면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서 낙오하는 산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걸 명심할 일이다.
2022-11-27 [18:29]
-
[오션 뷰] 한국과 일본, 얼마나 아십니까
국제통화기금(IMF)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추정치 발표에 한국 언론이 호들갑을 떨었다. 한국 1인당 GDP가 일본과 766달러밖에 차이가 나지 않고, 각국 물가 수준을 반영한 구매력 평가(PPP)는 오히려 한국이 일본을 능가했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물론 GDP에선 일본이 한국을 월등히 앞섰다. 한국은 그것이 무엇이든, 일본을 앞선 것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스포츠에서도 격한 반응을 보인다. 오죽하면 한국을 ‘일본을 얕보는 세계 유일의 나라’라고 했을까.
올해 출간된 한·일관계서 중에 〈당신은 한국을 아십니까〉라는 스즈키 다카히로의 신작이 있다. ‘또 하나의 한국론’이란 부제가 붙었는데, 혐한론과는 사뭇 다른 시각이라서 흥미롭다. 내용 중에 ‘한국을 차별하는 유일한 나라, 일본’이라는 대목은 ‘일본을 무시하는 유일한 나라, 한국’이라는 우리 처지와 묘한 대구를 이뤘다. 아무튼 세월은 흘러, 한류가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21세기 초엽임에도, 일본은 한국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차별하는 국가’라고 한다.
우리, 일본 얕보는 유일한 나라
일, 혐한론 다른 시각 출간 화제
편견 버리고 사실 받아들여야
새로운 역사 비로소 열릴 것
스즈키 다카히로는 올해 80세의 지한파 목사다. 혐한론을 부추기는 서적이 일본 서점가에 난무하는 상황에서 그의 책은 울림이 컸다. 재일 한국인의 영향으로 목사의 길을 걷게 된 그는 새로운 국제화 시대가 도래한 이때, 이상하리만큼 한국인을 경멸하는 일본 사회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국인이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고 강제징용 노동자 문제를 거듭 거론하는 이유를 일본인은 왜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을까, 라고 의문을 품으면서 글을 썼다고 한다.
그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대해서도 “일본은 한국에 도움의 손길을 준 것이 아니라, 상대가 곤란할 때 불평등 조약이라는 무거운 짐을 또 안기고 말았다”라고 했다. 한국의 경제 발전에 대해서는 “한국은 일본을 따라오기까지 무려 100년의 국가적 고난과 굴욕의 시대를 보냈다”라면서 “그 과정을 거쳐서 한국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국가가 됐음을 일본이 알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또 “경제적으로 강해졌다기보다는 국제사회 속에서 정신적으로 강해진 측면을 간과해선 안 된다”라는 말로 일본의 성찰을 압박했다.
그의 책 제목은 ‘당신은 일본을 아십니까?’로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시각 교정을 촉구했다면, 우리도 시선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래야 그의 지적처럼 ‘국제사회에서 정신적으로 강해진 대한민국’을 확인할 수 있을 테다. 일본과 일본인에 관한 탐구서는 사실 그동안 숱하게 출간됐다. 〈일본은 없다〉(전여옥·1997), 〈축소지향의 일본인〉(이어령·2008)은 한때 베스트셀러였다. 지금도 ‘일본 읽기’ 류의 책이 쏟아지고 있다.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들이 2018년 출간한 〈난감한 이웃 일본을 이해하는 여섯 가지 시선〉은 모순이란 키워드로 일본인을 분석했다. 우리 성질 같으면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하나의 기준을 세워야 할 것 같은데, 책은 불편해도 그렇게 보아야 일본을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단다.
코로나19 이후 출간된 책 중에는 〈선을 넘는 한국인, 선을 긋는 일본인〉(한민·2022)이 있다. 비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30년 넘게 일본을 오가며 수많은 일본인 사업가를 만난 경험을 토대로 할 때 칼로 무 베듯 한 국가와 국민을 진단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묘하게도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지점은 분명히 있었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하역 대응에서 그런 부분을 느꼈다. 한국은 무전으로 검역 상황이 확인되면 일단 화물 하역이 허용된다. 그러나 일본은 공무원이 직접 승선하고 승무원과 승객까지 모두 검사해야 하역이 가능해진다. 한국 관료가 확실히 유연하다. 그러나 합의가 이뤄지면 규정을 좀처럼 바꾸지 않는 일본이 사업가에게는 오히려 안정감을 줄 때가 더 많다. 그래서 설득에 주안점을 둔다.
코로나19 이후 오랜만에 한·일 간 뱃길이 다시 열리고 있다. 아직 화물 중심이기는 하지만 곧 배를 타고 두 나라를 오가는 관광객이 늘 것이다. 세상은 변했고, 앞으로 더 크게 바뀐다. 서로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새로운 길, 새로운 역사가 열릴 수 있다. 지금이 그 변화의 꿈을 함께 꿀 때다. 변화에 빠르고 능동적인 한국과 철저한 준비에 진심인 일본이 서로의 장점을 소통한다면 좋을 것 같다. 그 시작이 뱃길이라면 더 좋겠다.
2022-11-20 [19:04]
-
[오션 뷰] 부산항 널리 홍보한 BIPC
세계 7위의 컨테이너 물동량과 세계 2위의 환적 화물을 처리하는 글로벌 허브 항만을 가진 부산은 국제 해운·항만 행사가 많이 열린다. 매년 11월 부산항만공사(BPA)가 주최하는 BIPC(부산국제항만컨퍼런스)는 세계 해운·항만 관계자들이 모여 한 해를 돌아보고 향후 업계 변화를 전망하는 뜻깊은 행사다. 올해 제10회 BIPC가 이달 4일 동구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항만의 현재와 미래를 그리다’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이 행사는 2020년과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비대면 온라인 행사로 열렸지만, 올해는 오프라인 참석 규모가 크게 확대돼 성황을 이뤘다. 행사에 초청 연사들을 비롯, 400여 명의 국내외 해운·항만·물류 전문가와 종사자들이 참석해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남긴 교훈과 관련 산업의 과제에 대해 진지한 발표와 논의를 진행해 고무적이었다.
특히 BIPC 하루 전날 초청 연사와 전문가들에게 부산 신항 1부두와 6부두를 방문할 기회가 주어졌다. 이들은 BPA가 1차 구축한 디지털 트윈 플랫폼과 신항에 국내 최초로 도입한 원격 조종 안벽 크레인의 운영 상황을 시찰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디지털 트윈은 가상 세계에 실제와 동일한 환경을 구성해 다양한 외부 조건 변화에 따른 결과를 시뮬레이션을 통해 알아본 뒤 의사 결정을 지원하거나 필요시 신속한 사전 대책을 수립하는 시스템이다. 신규 자동화 터미널 건설을 계획하고 있는 이라크항만공사 관계자의 경우 수평 야드 레이아웃 자동화 터미널과 수직 야드 레이아웃 자동화 터미널이 동시에 운영되는 부산항을 살펴보면서 시설의 장단점을 질문하는 등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싱가포르항과 미국 롱비치·시애틀항, 독일 함부르크항 등 해외 선진 항만 관계자들도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신항 자동화 터미널을 개장하고 운영의 안정화를 이뤄 낸 부산항에 찬사와 격려를 보냈다. 이들은 하루 24시간 운영되고 휴일에도 가동되고 있는 부산항의 효율성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항을 중심으로 다양한 혁신과 실험이 추진되고 있는 부산항을 벤치마킹해 현지에 적합한 자동화 터미널 개발을 진행하겠다는 외국 해운·항만·물류 관계자들이 많았다. 부산항 운영 노하우와 관련 기술이 다양한 형태로 수출되고 국내 관련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좋은 기회가 생길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BIPC에서 제기된 것처럼 글로벌 해운·물류 환경은 코로나 엔데믹이라는 새로운 틀로 급속히 변하고 있다. 팬데믹에 힘입어 유례없는 특수를 누리던 선사들은 최근 폭락하는 운임에 따른 수익 구조 변화에 대응할 새 경영 전략이 필요해졌다. 이 때문에 선사들을 고객으로 하는 항만과 터미널 운영사들 역시 변화된 환경과 선사의 새로운 요구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방안 마련이 절실하다.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다.
북항과 신항으로 나뉜 부산항의 터미널 운영사들은 선사들이 가진 물동량을 자기 부두에 유치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관계다. 그런데 전체 부산항의 지속 성장이라는 대의를 위해서는 각 터미널 운영사들이 BPA를 중심으로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한 터미널이 계약한 선사의 모선을 선석이나 야드의 정체 현상 때문에 신속히 처리할 수 없을 때 가용한 옆 터미널로 보내는 방법(전배·Over flow)으로 선사들이 부산항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하는 게 좋은 사례다.
현재 부산항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 오는 16일 북항 신감만부두와 감만부두(1번 선석) 운영사 선정 입찰이 마감돼 다음 날 결과가 발표되는 것이다. 2024년 1월 업무를 개시할 운영사로 어느 업체가 선정되느냐에 따라 선사들의 향후 부산항 이용 계획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아무쪼록 선사들이 부산항을 모항이나 주요 환적항으로 충분히 활용하기를 기대한다. 부산항 각 터미널 운영사들은 선사들과 업계의 변화를 반영해 지속 성장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때다. 선사들이 부산항에서 더 많은 물동량을 처리할 수 있는 비용과 운영 효율성 개선 방안도 마련해 항만 경쟁력을 높이기 바란다.
이번 BIPC는 사전에 부산 시민을 대상으로 바다와 관련된 사진 공모전을 실시해 행사에 참석한 국내외 인사들에게 부산 바다와 항만의 다채롭고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들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BPA가 10년 동안 행사를 개최하면서 쌓은 경험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내년도 행사에 더 많은 국내외 전문가와 관계자들이 참석하도록 잘 준비하기를 희망한다. BIPC가 세계 해운·항만·물류산업의 새로운 도전을 주도하며 상생에 기여하는 굴지의 국제 행사로 성장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한국 수출입을 책임진 부산항의 무궁한 발전과 신항의 괄목할 만한 성장이 있기를 기원한다.
2022-11-13 [18:36]
-
[미디어 비평] 신문 뉴스가 제값을 받으려면
종이신문은 이제 사양산업이 됐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언론계와 학계에서도 그런 진단은 드물지 않다. 수치로 보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1년도 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1주 동안 한 번이라도 종이신문을 읽은 비율은 8.9%에 불과했다. 이 비율이 2000년에 81.4%, 2011년에는 44.6%였던 데 비하면 거의 폭락에 가까운 수치다. 시사 정보를 얻는 주 경로로 신문을 이용한다는 사람의 비율은 1.1%에 그쳤다. 이제 종이신문은 누가 보더라도 확연히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 신문이 살아남으려면 뭔가 획기적인 해법이 필요해 보인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종이신문 이용은 쇠퇴한 반면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신문 기사를 보는 비율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 세 가지 경로를 합산한 결합 열독률은 2017년 88.5%에서 2021년 89.6%로 큰 변화가 없었다. 종이 형태에 대한 수요만 줄었을 뿐 신문 뉴스에 대한 수요가 소멸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뉴스가 생산되는 방식은 이전과 비슷하지만, 적어도 유통되고 소비되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음은 분명하다.
이제 신문 뉴스는 종이로 인쇄될 뿐 아니라 포털이나 인터넷 사이트로도 읽히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되면서 확산한다. 신문은 100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가장 중요한 뉴스 생산자다. 그런데 그동안 모바일과 인터넷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플랫폼 기업은 신문사가 제공한 뉴스 덕분에 막대한 수익을 올렸지만, 정작 신문은 기여한 만큼 대가를 받지 못한 채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변화된 상황에 맞춰 신문의 실제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는 새로운 공식을 개발하는 일에 업계는 사활을 걸어야 한다.
그런데 일부 신문사들이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은 시대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신문은 한국ABC협회의 유료 구독부수 인증을 통해 광고 효과를 매기는데, 2021년 3월 이 수치의 신뢰성에 타격을 입히는 사건이 터졌다. 메이저 신문사들이 일선 지국의 인증부수를 조작했고, 한국ABC협회가 이에 공모한 정황이 드러났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수치를 신문의 광고 효과를 측정하는 공식 지표로 활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오랫동안 많은 신문사들은 부수가 곧 회사의 위상이라 여기면서 이 수치를 늘리기 위해 편법도 마다하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서 신문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새 제도와 척도를 마련하는 일은 시급한 업계 현안인데도 오히려 뒷전으로 밀려났다. 신문의 혁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는 내부에 있었다.
또 한 가지는 뉴스 개념 자체가 크게 바뀌었고 신문 역시 이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라인에 대체 정보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신문이 전달하는 정보는 더 이상 희귀한 재화가 아니다. 이제는 흔하다 못해 공해처럼 통하는 정보를 어떻게 가공해 가치 있는 정보로 만들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신문은 기본적으로 취재원의 간접 정보를 취재해 전달하는 방식으로 뉴스를 생산한다. 이 정보는 취재원이 교묘하게 조작한 가짜 정보이거나 일방적 주장일 수 있고, 그 자체로는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일 수도 있다. 온라인에서는 언론이 남보다 더 빨리 정보를 쏟아 낸다는 사실만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속보나 특종은 한때 언론의 대표적 직업문화였지만, 이제는 희화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온라인에는 그런 정보가 넘쳐 나며 대부분 공짜로 제공된다.
정보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법은 많다. 우선 철저한 팩트체킹을 통해 이 정보가 사실인지 확인하고 정보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맥락도 제공해야 한다. 그리해야 이용자들이 시간과 비용을 써 가며 신문을 읽을 가치가 있다고 여길 것이다. 둘째, 세상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잘 골라 제공하는 ‘선별성’도 언론만이 제공할 수 있는 부가가치다. 아무리 공짜 정보가 널렸다 해도 이를 모두 찾아서 읽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게 필요하다. 셋째로는 뉴스 전달 방식도 고민이 필요하다. 그냥 사실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스트레이트 기사 방식은 종이신문의 오랜 관행이지만, 온라인과 영상 매체에 익숙한 이용자의 갈증을 채워 주기 어렵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서도 읽는 뉴스를 선호한다는 비율은 30.9%에 그쳤다. 신문 뉴스 이용에서도 인터넷과 모바일이 주 이용 경로가 된 오늘날에는 종이신문 시절의 관행을 굳이 고집할 이유가 없다.
지금은 모두 위기를 이야기하고 있고 구체적인 해법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신문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 위기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고, 지금까지의 모든 관행까지도 원점에서 재검토할 수 있는 혁신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2022-11-06 [18:56]
-
[오션 뷰] 바다, 예측 가능성을 높여라
예측 가능성은 인간사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사람은 언젠가 사망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상속제도와 생명보험 제도를 만들었다. 분쟁이 발생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분쟁 해결 수단으로서 소송제도와 중재 제도가 나타났다. 상거래를 하는 상인들도 예측 가능하다면 더 많은 거래를 할 수 있게 된다. 콜럼버스의 대항해시대에는 출항한 범선이 돌아올지가 불확실했다. 항해술과 조선술이 발달하여 이제는 출항한 선박은 거의 예외 없이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한다. 이렇게 안전한 선박을 활용하여 한국의 수출자는 미국의 수입자에게 지정된 일자와 장소에 상품을 전달하게 된다. 세계 무역도 이런 예측 가능성을 바탕으로 한다. 이제 예측 가능성이란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지도이념이 되었다.
2020년 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는 예측 가능성에 큰 타격을 입혔다. 코로나에 걸린 근로자들이 일하지 못하게 되자 트럭 등 운송 수단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항구에서 내려진 수입품이 미국을 횡단하지 못하자 항구에는 수입품이 쌓이기 시작했다. 수입품을 내리지 못한 선박은 출항하지 못하고 항구에 묶였다. 한국에서 수출품을 싣고 태평양을 건넌 선박은 LA항에서 대기해야 했다. 수출품을 실어 나를 선박이 부족해졌다. 수출자는 납기일을 맞추지 못했다. 운임은 10배가량 뛰어올랐다. 더구나 경기 부양을 위해 미국은 현금을 살포했고 가수요가 늘어났다. 미국 수입품의 가격에는 10배나 오른 운송비가 가산되었고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이제 미국은 금리를 올려서 인플레를 막으려고 한다. 수요 부족이라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다. 운송 수요가 줄어들면서 선박 공급 초과 현상이 나타났다. 운임이 반 토막이 난 게 오늘의 모습이다.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가 불안하다. 전쟁이 발발하면 우리나라의 수송로도 큰 타격을 입는다. 중동에서 원유를 싣고 오는 우리 유조선은 믈라카해협, 남중국해, 대만 수역, 제주도 남단을 거치는 항로를 택한다. 미국으로 가는 선박들은 부산, 동해, 쓰가루 해협을 거쳐 태평양으로 나가는 항로를 택한다. 긴장이 고조되면 이 항로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대체항로는 어디인가? 인도네시아 발리섬 옆의 롬복해협, 필리핀 남동을 거쳐서 우리나라로 오는 항로가 있다. 전자보다 1300마일 긴 항해를 해야 해서 3~4일이 더 걸린다. 기존의 물동량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늘어난 항해일만큼 보충할 선박이 더 필요하다. 유휴 선박을 다 투입하고 나면 선박이 없다. 선박 건조에는 2년이 걸린다. 공급 부족 현상이 발생한다. 운임이 폭등한다.
코로나19 시절 10배나 인상된 운임은 미국의 물가상승에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은 반도체와 자동차 공장을 국내로 가져오는 리쇼어링을 강력하게 실시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컨테이너 정기선의 운항이 예측 불가하여 수출입의 안정화에 기여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가 긴축으로 들어가자 운임은 급락하고 있다. 앞으로 2~3년간은 해운과 조선에도 큰 혼란이 예상된다. 높은 가격에 장기 운송계약을 체결한 화주들은 낮은 시장가격을 적용해 달라고 운송인에게 요구할 것이다. 선박의 가격도 떨어지게 된다. 선주들은 건조계약의 진행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높은 가격을 지급하고 건조된 선박을 인도받으면 선박의 가격이 아주 낮아서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전쟁의 발발 등으로 인하여 해상운임이 폭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양곡의 경우 정부가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쌀농사가 너무 잘되면 쌀값이 떨어지므로 정부가 일정량의 양곡을 매입한다. 반대의 경우 정부는 양곡을 풀어서 쌀 가격을 낮추어 준다. 이를 해운산업에 활용해 보자. 공적 기관이 컨테이너 선박 몇 척을 소유하고 있다가 공급이 부족하면 임시로 선박을 투입하여 공급을 확대해 준다. 예비 선박에 발생할 비용을 얼마나 줄이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대만, 일본과 함께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안, 다목적 선박으로 활용하는 방안, 물류창고로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25~27일 부산에서 열리는 제16회 세계해양포럼의 대주제는 ‘초해양시대-협력과 공존으로 번영의 길을 찾아서’이다. 미래라는 불확실성을 예측 가능하게 만드는 토론의 장이 될 것이다. 우리는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여 해운, 무역, 조선산업에서 리더 국가가 되어야 한다. 부산에는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부산연구원 등 연구기관이 있고, 해운사, 조선소, 항구와 바다가 있다. 해양 관련 포럼도 해마다 열린다. 전 세계 해양 분야에서 예측 가능성을 확보 달성해야 부산이 진정한 세계 해양수도가 된다.
2022-10-23 [18:51]
-
[미디어 비평] 언론의 디지털 전환기, 신뢰 구축이 급선무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20년 사이 미국에서 무려 2200개의 지역신문이 문을 닫았다. 이는 미국 전체 지역신문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이다. 이에 따라 지역에서 원천적으로 신문이 공급되지 않는 ‘언론 사막화’(news desert)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커지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1년 언론 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종이신문 이용률이 2011년 44.6%에서 지난해 8.9%로 급락했다.
인류의 미디어 역사에 있어서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기술은 인쇄기술의 발명 이래 언론산업에 닥친 최대의 위기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라디오의 출현도, 텔레비전의 전파도 지금의 디지털 기술이 언론에 가한 충격만큼 크지는 않았다. 종이신문의 판매 부수가 급감하였고, 충성 독자들은 ‘디지털 유목민’의 삶을 찾아 활자매체를 속속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언론사들은 디지털 기술 도입, 콘텐츠 개발, 수익 모델 발굴 등의 노력을 통해 위기 돌파에 부심하고 있다. 이렇듯 디지털 전환기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언론 지형의 판도를 바꾸고 언론계를 재편하는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디지털 전환에 따른 언론산업의 위기는 아직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언론사들의 고민이 있다.
유료 구독제나 후원제와 같은 디지털 수익 모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언론사 브랜드에 대한 독자의 신뢰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설즈버거 뉴욕타임스컴퍼니 회장이 밝혔듯이 〈뉴욕타임스〉가 올 2월 디지털 유료 구독자 1000만 명을 돌파한 것도 디지털 부문에 대한 혁신적인 투자와 더불어 강력한 품질 저널리즘 구현 노력을 통해 브랜드 신뢰가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활자매체를 떠나 디지털 정글로 이주한 디지털 노마드들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무한 정보의 선택지에 노출되어 있으며, 이들은 신뢰하지 않는 정보를 즉각 외면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뉴스리포트 2022’에 따르면 한국의 뉴스 이용자 3명 중 2명은 의도적으로 뉴스를 회피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였는데, 특히 정치 보도의 편향성으로 인한 불신과 피로감을 그 이유로 지목하고 있었다.
당파로부터의 독립은 언론에 요구되는 중요한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이다. 한국 언론의 정파성의 정도와 방식을 분석한 김영욱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독자들은 한국 신문을 정당 정파적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신문의 이념성은 독자들보다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신문은 언론의 자유가 허용된 이후 일정 기간 동안 정파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성찰을 통해 정파성을 극복했다고 한다. 반면에 한국 신문은 민주화 이후 정파성과 상호 대립이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김 교수의 연구는 분석한다.
언론이 정파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며, 정파적 주장 역시 언론의 자유 범위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러나 기관 또는 제도로서 언론이 누리는 자유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가 위임된 것으로써 민주적 여론 형성에 기여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정파적 의견과 주장이 민주적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감정적으로 소비될 것이 아니라 공론장에서 이성적인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언론의 당파성이 사실의 통합과 검증 대신에 상황과 해석을 덧붙이는 경향의 오류를 수반한다는 점이다.
언론의 정파성은 그것이 나름의 합리적인 근거와 논리를 갖추지 못해 중요한 사안에 대해 자기 결정을 내리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 때 문제가 된다. 언론인 누구나 특정한 사물과 사상, 제안이 국가와 국민에 유익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며, 그 사실을 공언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이 특정한 정당, 개인 또는 당파에 충실해지는 것은 독자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는 것을 의미하며 언론의 불신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민주국가의 저널리즘 교과서로 통하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서 저자 코바치와 로젠스틸은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서 언론인들이 맨 먼저 할 일은 충성을 바칠 대상을 명확히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언론인이 충성을 바칠 대상은 특정 당파도, 정당도, 개인도 아니며, 오로지 독자라는 점을 강조한다. 언론이 진영논리에 매몰된 정파적 편향성을 경계하여 우리 사회의 소통과 민주주의의 성장을 견인해 나간다면 무너진 언론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언론과 브랜드의 신뢰 구축은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을 위한 시급한 과제라는 사실도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한다.
2022-10-09 [18:46]
-
[오션 뷰] 이목지신과 북항 재개발의 성공 조건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에 상앙(商앙)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그는 법치주의를 바탕으로 강력한 부국강병책을 추진해 훗날 진시황이 최초로 중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든 사람이다. 상앙은 법치주의자답게 법의 제정이나 집행에 있어서 백성들이 나라를 믿고 잘 따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한 번은 상앙이 법을 제정해 놓고 공포를 하지 않았다. 백성들의 불신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상앙은 불신을 없애기 위한 계책을 세웠다. 3장(三丈) 높이의 나무를 남문 저잣거리에 세우고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금화 10개를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옮기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상앙은 다시 금화 50개를 주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옮기는 사람이 있었다. 상앙은 즉시 금화 50개를 주어 나라가 백성을 속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했다. 여기서 유래된 고사가 바로 ‘이목지신’(移木之信)이다. 무릇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나라와 백성 간에도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시민들이 주거시설 도입 반대해 온
랜드마크 부지 개발업자 공모 시작
친수공간·먹거리 확보 가능하려면
지역사회 신뢰 속에 추진해야 마땅
부산 북항 1단계 재개발사업의 핵심 구역인 랜드마크 부지 개발을 위한 민간사업자 공모가 시작됐다. 사업지의 면적은 11.3만㎡(약 3만 3000평)로 지구단위계획상 건폐율 40%, 용적률 600%이며, 높이 제한은 없다. 사업 주관기관인 부산항만공사(BPA)는 11월 초까지 사전참가 신청을, 내년 1월 20일까지 사업참가 신청을 각각 받은 뒤 2월 중 우선협상 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유·무형의 콘텐츠를 활용한 복합용도의 글로벌 어트랙션 및 문화공간’을 조성하도록 공모 지침도 제시했다. 숙박시설 중 생활형 숙박시설(레지던스)은 불가하며, 업무시설 중 오피스텔의 시설면적은 지상층 연면적의 15% 이하로 제한한다는 방침이다.
북항 재개발사업은 부산항 개항 후 140여 년간 시민들과 단절됐던 북항 일원을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한국 최초의 항만 재개발사업이다. 이는 부산의 친수공간 조성과 미래 먹거리 발굴이라는 측면 외에도 향후 국내 여타 항만 재개발사업의 본보기가 된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국가사업이다. 특히 랜드마크 부지는 북항 1단계 사업부지의 노른자위로 향후 오페라하우스와 함께 북항을 상징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당초 해양문화관광지구로 지정됐던 랜드마크 부지의 활용 방안을 둘러싸고 그동안 관계기관과 시민단체 간 의견이 분분했다. BPA의 용역 결과는 해양관광 및 국제비즈니스 거점화를 주장했다. 부산시는 2030월드엑스포 유치를 위해 내년 상반기로 예정된 엑스포 실사단의 현장 방문에 맞춰 가시적 성과를 보여 주고자 랜드마크 개발사업자 선정을 서둘러 왔다. 또한 지역 산업 성장 모멘텀을 마련하기 위해 랜드마크 부지에 글로벌 콘텐츠 기반시설을 조성할 것을 수차례 요청했다.
이에 대해 각계 전문가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부산항북항통합개발추진협의회는 수차례 논의를 거쳐 주거시설 도입 불가, 민간사업자 선정의 공정성 확보 및 사업자 선정 후 사업 내용의 변경을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 마련 등을 요구했다. 시민사회가 랜드마크 부지에 주거시설을 강력히 반대하는 이유는 북항 1단계 상업업무지구에 이미 생활형 숙박시설이 대규모로 들어서 공급과잉 상태이고, 초고층 빌딩들이 들어설 경우 조망권 침해 등 해양경관이 사유화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모든 시민이 함께 누려야 할 공간인 해안가에 고층 아파트 건축 허가가 잦았던 부산시의 도시건축 행정에 대한 깊은 불신이 한몫했을 터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항만 재개발사업들은 무엇보다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를 고려한 점진적이고 균형 잡힌 방식으로 추진된 게 특징이다. 독일 함부르크 하펜시티 프로젝트는 1997년 사업 개시 이후 2030년 완공이라는 장기 계획 아래 수차례의 마스터플랜 수정과 다수의 건축 및 조경 공모전을 통해 사업의 완성도를 높여 왔다. 2017년 개관한 엘베 필하모닉 콘서트홀은 옛 창고 건물에 철제 구조물을 올려 새로운 복합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고, 전위적인 건축미와 다양한 공연으로 하펜시티의 랜드마크가 됐다. 항만 재개발사업의 성공 요건은 도시와 항만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고려한 추진, 상업성과 공공성의 조화, 접근성 제고를 통한 원도심 재생과의 연계, 친수공간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뛰어난 디자인, 자연재난 예방대책 수립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역사회와의 신뢰 관계 속에 시민들의 협조를 끌어내는 것이 정책 추진력을 확보하는 데 최우선이다. 이목지신이 주는 교훈처럼…. 아무리 작은 권력이라도 견제를 받지 않으면 폭주하며, 감시받지 않으면 부패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에 따른 폐해는 오로지 우리 시민들의 몫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2022-10-02 [18: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