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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후쿠시마 오염수와 수산물 안전
봄이 왔다. 코로나19로 중단됐던 전국 지자체의 봄꽃 축제도 방역 지침 완화로 4년 만에 다시 개최되는 분위기다. 마스크 없이 만끽할 수 있는 축제인 만큼 기대감으로 설렌다.
바다에도 봄이 왔다. 바다의 향기를 가득 품은 특유의 맛과 선명한 붉은색으로 꽃을 피운 멍게, 향긋한 해쑥과 어우러지는 봄철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도다리, 투명하고 맑은 알을 품은 주꾸미, 조개 중 가장 시원한 맛을 내는 바지락, 된장찌개에 들어가는 미더덕, 꼬들꼬들 씹히는 맛이 일품인 소라, 산란을 위해 알이 꽉 찬 꽃게가 바다에도 봄이 왔음을 알려 준다.
하지만 올해 봄 바다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로 시끄럽다. 일본 정부는 2021년 4월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오염수의 방사성 물질 농도를 법정 기준치 이하로 낮춘 다음 약 30년에 걸쳐 바다로 방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2년간 준비를 거쳐 방류 시점이 오는 6월로 다가오면서 우리 국민의 불안이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 국민의 건강과 수산업의 미래는 지켜질 것인가. 작년 11월 제주연구원이 우리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83.4%는 후쿠시마 오염수가 방류되면 수산물 소비를 줄이겠다고 답했다. 오염수가 방류되면 당연히 수산물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이는 곧바로 소비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것임은 누가 봐도 분명하다.
우려와 불안감은 우리 국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일본 현지 어민들과 단체들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반대한다. 오염수 방류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일본 어민들은 수산물의 수출 길이 막히는 것을 가장 우려한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국, 중국, 대만 등 15개 국가와 지역은 일본 수산물의 수입을 규제하고 있는데,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면 그 규제 강도를 더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2013년 9월부터 일본의 8개 현에서 생산된 식품 수입을 금지했다. 일본 정부는 이 조치가 부당하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지만, 한국 정부가 최종 승소했다.
그런데 일본 수산물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매우 불안해하고 있음에도 오히려 일본산 활어의 수입은 2008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8년엔 4992톤, 2019년 5337톤, 2020년엔 6793톤으로 매년 증가세다. 특히 우리 국민이 즐기는 방어와 대방어의 경우 원산지가 대부분 일본임에도 이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게다가 일본산 활어의 수입이 많이 늘어난 것과 달리 우리 정부의 검역은 크게 완화됐다. 그동안 정밀검사를 통해 불합격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2018년부터 일본 수입 물량의 4%에 대해서만 검사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시민단체 등의 분석은 이와 달라 보인다. 2019년부터 일본 후생노동성의 농·수·축산물 방사능 검사를 분석·발표하고 있는 환경운동연합과 시민방사능감시센터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10여 년이 지났지만, 수산물의 8.9%, 농산물의 16.7%, 야생육의 41.4%에서 여전히 방사성 물질과 세슘이 검출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니 국민들은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막을 수 없다면 일단 우리 식탁에 오르는 수산물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모든 노력을 쏟는 것이 최선이다. 한국연구재단(NRF) 공공기술단이 최근 펴낸 ‘방사능 오염수 방류에 따른 수산물 안전성 확보 기술 보고서’는 ‘방사능 물질은 먹이사슬을 통해 해양생물에 축적되며 인간의 식탁에 올라 신체에 축적된다’라며 ‘원전 오염수의 인체 위험성에 대해서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문제’라고 밝혔다.
이처럼 안팎의 비판 여론이 계속되자 일본 정부는 최근 여러 해양환경 문제를 감안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닷물과 섞어 환경 기준에 맞춘 이후 방류할 방침임을 밝혔다. 이중에선 정화할 방법이 없는 삼중수소(트리튬)가 가장 문제로 꼽힌다. 삼중수소는 신체에 축적될 경우 DNA 변형을 일으키거나 생식 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일본은 다핵종제거설비(ALPS)라는 장비를 활용해 오염수를 정화했다고 주장하지만, 삼중수소는 제거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앞둔 미묘한 시기에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한·일 관계의 유연화 정책을 내놨다. 우리 국민은 여전히 오염수 방류 문제를 충분히 신뢰할 수 없는 일본 정부에 대해 우리 정부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일본 정부에만 기대지 말고 오염수 방출량과 시점, 농도 등 정확한 정보를 파악해 어민 등 업계에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국민 건강을 위해 안전한 수산자원 소비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2023-03-2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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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챗GPT와 해양수산 비즈니스의 혁신
AI(인공지능)가 우리 일상을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최근 오픈AI가 개발한 챗GPT가 세계적인 관심을 끈다. 챗GPT는 강화학습을 통해 얻은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획기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챗봇으로, AI를 기반으로 한 산업 혁신의 새로운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대학과 기업, 공공기관, 정부, 지자체 등은 새 비즈니스 모델 정립과 서비스 향상을 위해 챗GPT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 빠져 있다. AI가 불러일으킨 혁신의 톱니바퀴가 빠르게 돌아가면서 지식의 빠른 확산과 시장의 대변화를 만들게 될 것이다.
해양수산 분야에서도 AI는 변화를 불러올 게 분명하다. 최근 중국에서 살균제로 세척한 해삼, 전복 등 먹거리 사건이 문제가 됐다. 지금까지 소비자들은 판매자가 주는 정보에 의존해 구매했다. 하지만 앞으로 AI는 생산자들의 비위생적인 생산과 부정행위를 전부 기억해 소비자에게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된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소비자는 AI가 제시하는 정보지식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합리적, 윤리적, 가치 중심적 소비를 추구하면서 시장의 리더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해양수산 분야도 AI 시대에 맞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수산업은 품질 좋고 신선한 수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기업 내부적으로는 양적 생산을 목표로 한다. 연근해 어업의 경우 연안 및 근해 어선이 어장으로 나가 한 번에 많은 양의 수산물을 어획하고, 빠르게 어항으로 돌아와 이를 양륙하는 사이클에 집중된 구조다. 여전히 국내 수산업은 선망, 저인망, 자망 등 양적 생산이 가능한 어법의 비중이 높다. 이러한 어법들은 그물을 사용한 대량 생산에 초점이 맞춰져 어획 과정에서 육질이 손상되거나 멍이 들어 상품성이 낮아지게 된다. 양식업 역시 최대한 많은 종묘를 양식장에 투입해 많은 양의 생산을 지향한다. 이를 위해 어가들은 항생제, 화학처리제, 불법 시설물 설치, 밀식 등 다양한 형태의 공격적인 양적 생산에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양적 비즈니스 모델은 품질 저하, 어장환경 악화, 질병 발생 증가, 높은 폐사율, 생산성 저하, 비효율적인 생산 등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향후 AI는 연근해 어업, 양식업의 생산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자원관리 측면에서 재생산 가능 어획량을 샘플에 의존하는 자원조사와 추정치 공식에 의해 산정하고, 이를 굳건히 믿고 따른다. 하지만 앞으로 AI는 해양수산 자원의 이용 방식에 대해서도 경고를 보낼 것이다. 양식업 또한 AI에 의한 불법 밀식 감시체계 구축과 예측 가능한 친환경적 양식 생산 시스템 구축을 촉진하게 될 것이다. AI는 비위생적이고 지속 가능하지 못한 생산방식과 공개되지 않은 많은 관련 문제를 소비자에게 알리고, 양적보다는 질적 생산으로의 변화를 촉진할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AI를 활용한 질적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하는 노력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수산물 수출국인 노르웨이는 AI 기반 어획도구인 어류인식 탐지기(Deep Vision)를 개발해 수중에서 어획물을 식별하고 측정하는 시스템을 통해 혼·남획을 방지하는 기술을 적용 중이다. 이 나라 양식장에서도 어류의 상태와 관련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할 수 있는 AI 기반 솔루션이 개발돼 어류 복지를 고려한 친환경적 생산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이와 함께 노르웨이 정부는 해저의 고품질 대구를 생산 시점에서부터 선별해 낚시로 생산하는 방식을 택하는 경우 쿼터 할당 보너스를 분배해 어업인들을 질적 생산으로 이끌고 있다. 어업인은 살아 있는 대구를 연안에 저장하는 방식(대구호텔)을 활용하는데, 이때도 AI 기반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대구를 관리하고 출하 시기를 조정한다. 결과적으로 어체 손상이 거의 없고 살아 있는 상태로 생산·관리할 수 있는 고품질 가치사슬 시스템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고품질 생산·관리 방식은 시장에서 프리미엄 제품으로 인식돼 30~40% 더 높은 가격을 인정받으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향후 글로벌 시장에서는 유기농, 친환경, 윤리적 생산, 지속가능성, 고품질 수산물에 대한 요구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기업 차원의 기술 개발과 첨단 장비 구축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해양수산 분야도 첨단 기술 개발을 위한 프로젝트 중심의 실질적 산학연 협력을 추진하고, 정부도 실사구시적 지원 체계를 갖추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 해양수산업이 AI를 활용하는 전략적인 첨단 혁신 비즈니스 모델이 돼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3-03-1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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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부산 러시’ 치밀한 서사가 만든다
싱가포르의 국제학교가 밀려드는 홍콩 이민자와 다국적 기업의 주재원 자녀들 입학 신청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문전성시를 넘어서 입학 허가를 받는 것 자체가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처럼 어렵다고 한다. 이는 학령인구가 2000년 80만 명에서 40만 명으로 반토막이 나면서 신입생 유치에 곤란을 겪고 있는 우리 대학들의 아우성과 크게 대비된다. 싱가포르를 무작정 부러워하기에는 우리가 당면한 사정이 너무 안타깝고 딱하다. 특히 부산은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속에서 갈 길을 못 찾고 있다. 방향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언론이 연일 ‘지방소멸’을 의제 삼아서 문제를 제기하고 정치권도 관련 법 정비를 한다고 떠들고 있으나 정작 위기감 조장에만 그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중 정부 압박에 홍콩 엑소더스
싱가포르 국제학교는 문전성시
엑스포·신공항으로 전기 마련
찾아오는 도시 전략 준비할 때
시민들은 어느새 지쳐 가고 있다. 가덕신공항 건설조차 여전히 갈팡질팡한 상황이니 당장 가시화되지 않은 지방소멸 문제가 눈에 들어올까 싶다. 홍콩 엑소더스와 싱가포르 러시는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부산이 어디로 나아가고,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홍콩은 중국 정부의 탄압과 압박으로 글로벌 경제 도시의 자격을 서서히 잃어 가고 있다. 그동안 홍콩에 아시아 거점을 두었던 다국적 기업들이 앞다퉈 떠나고 있고, 그 대안 도시로 싱가포르를 찾고 있다.
자유무역과 자유시장은 환상이 아니다. 철저히 계산되고 준비된 도시만이 그런 자격과 부를 누릴 수 있다. 부산은 그런 준비를 하고 있을까. 부산도 ‘부산 러시’를 주장할 수 있을까. 부산은 지금 2030세계박람회 유치에 목을 매고 있다. 세계박람회가 유치되면 부산은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성장할 것이다. 부산시민들이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던 가덕신공항도 세계박람회 유치와 함께 급물살을 탈 것은 명약관화다.
그런 점에서 ‘부산 러시’를 강력히 주장하고 싶다. 부산을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도시로 만들고 싶다. 부산에 와서 해양금융, 해운, 조선 문제를 거론할 수 있는 도시가 돼야 한다. ‘부러우면 진다’고 했다. 싱가포르를 부러워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부산만의, 부산을 위한 전략이 절실하다. 부산의 역사성과 개방성을 더욱 부각하고, 무엇이 세계인을 부산으로 끌어들일지를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부산 러시’를 위한 치밀한 내러티브가 필요하다. 역사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다져진 서사가 절실하다는 얘기다.
글로벌 도시의 첫 자격은 언어다. 외국인이 소통하기 쉽지 않은 도시는 글로벌 도시로의 성장이 어렵다는 것은 홍콩과 싱가포르 사례에서 충분히 확인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이를 위해 영어상용도시를 제안했다. 그러나 외국인 자녀를 위한 국제학교가 110개를 웃도는 싱가포르에 비하면 부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모색해야 한다. 해양금융, 해운, 조선, 해양과학 등에서 부산이 강점을 지닌 도시라고 해도 이들이 살고 싶은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그 자녀들을 위한 교육 인프라 구축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이동성 확보도 중요하다. 국내외를 쉽게 오갈 수 있는 교통 인프라는 글로벌 도시의 기본에 해당한다. 가덕신공항은 글로벌 소통을 위한 핵심 인프라로 세계박람회 개최 전까지는 개장해야 한다. 이 밖에 미래 도시로서 기능성이 탁월해야 한다. 에너지 효율화 도시, 우수한 인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도시, 산업의 시너지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도시 등 부산이 준비해야 하는 목표는 수없이 많다. 어쩌면 ‘부산 러시’는 이런 크고 작은 목표가 달성될 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금광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중앙정부 설득은 중요하다. 부산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산다는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
부산시는 부산의 새로운 도시브랜드로 ‘부산이라 좋다(Busan is good)’를 최종 선정했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 집단을 광범위하게 운용하고 시민위원회도 운영했다. ‘부산 러시’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되면 좋겠다. 시민위원회를 구성해서 아이디어를 모으고 전문가 그룹을 통해서 기획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다. 세계박람회 유치라는 공통의 목표 덕분에 부산은 오랜만에 하나로 뭉치고 있다. 노동자, 경영자, 학생, 주부, 언론, 정치인이 따로 없다. 한탄이 아니고 희망을, 자괴감이 아니라 자부심으로 ‘부산 러시’를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부산은 항만뿐 아니라 해운과 해양금융, 조선 분야의 글로벌 거점도 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청년인구가 더 이상 부산을 등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2023-03-1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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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메타버스와 마을버스
한동안 메타버스 열풍이 불었다. 컴퓨터가 제공하는 가상 세계에서 아이돌과 대화하고 쇼핑하며 서핑도 할 수 있게 해 주는 이 마법의 장치는 판타지 영화 ‘아바타’의 현실판으로 통한다. IT업체뿐 아니라 지자체, 공기업, 교육기관까지도 잇따라 이 유행에 동참을 선언했다. 언론도 메타버스 띄우기에 나섰다. 언론 보도는 장밋빛 전망이 대세를 이룬다. ‘초실감형 메타버스 세상이 열린다’, ‘K팝에 옮겨붙은 메타버스 열풍’ 같은 제목의 기사를 보면 업체 홍보자료가 아닌지 종종 헷갈릴 정도다.
최근에는 메타버스와 더불어 챗GPT도 화젯거리다. 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구글처럼 이용자가 원하는 검색 결과를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 질문에 맞춰 스스로 방대한 자료를 학습하고 판단한 후 논리적 해답을 작성해 제공한다. 이미 챗GPT는 변호사와 의사 자격시험을 통과할 정도의 역량을 입증했다. 뉴스 매체도 챗GPT가 취재해서 기사를 작성하고 메타버스를 통해 현실 세계처럼 생생한 입체적 스토리로 구성해 제공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장기적인 쇠퇴기에 접어든 전통적 언론 매체가 새로운 기술에서 미래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최근의 열기를 보면서 문득 1990년대 인터넷이 등장했을 무렵 언론사들의 대응 양상이 떠올랐다. 당시 기사를 온라인으로 전하고 읽는다는 혁신적인 구상은 주요 신문사들이 가장 먼저 실행에 옮겼다. 그렇지만 얼마 가지 않아 신생 업체이던 네이버가 전통 매체를 누르고 온라인 뉴스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신문사들이 실패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이들은 대개 인터넷이 컴퓨터 기술을 활용하는 신기한 사업이라고만 여겼고, 편집국의 주요 업무는 이전처럼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지속됐다. 네이버가 카페와 토론방 등 새로운 이용자 참여 모델로 저변을 넓혀 가는 동안 신문의 온라인 서비스는 종이 기사를 퍼나르는 식의 구색 맞추기에 그쳤다. 이후 모바일과 플랫폼 기반의 환경으로 옮아가고 나서도 뉴스 업계 종사자의 사고방식은 크게 바뀐 것 같지 않다. 새 부대에는 새 술을 담아야 한다는 오랜 상식은 무시됐다.
메타버스와 챗GPT가 언론사 운영에 일부가 될 무렵 언론은 어떻게 바뀔까? 혹 인터넷 도입기의 교훈을 잊은 채 과거의 공식을 되풀이하지는 않을까? 구글과 네이버 같은 공룡 IT기업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전통적인 미디어 기업이 기술로만 승부해서는 승산이 없다. 결국 아무리 편리하고 경이로운 테크놀로지라도 결국 그에 걸맞는 콘텐츠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관광객처럼 신기한 경험을 위해 지속적으로 돈과 시간을 지출할 이용자는 많지 않다.
전통적 뉴스 매체는 눈부신 속도로 변해 가는 테크놀로지에는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정작 주변 세상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사실은 잘 간파하지 못하는 듯하다. 테크놀로지 변화의 속도가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인 것과 마찬가지로, 미디어가 다루어야 할 사회 환경도 빠르게 변화한다.
급속한 변화가 대세인 세상에서 보이는 것은 대부분 암울한 조짐뿐이다. 일반 시민에게 고물가와 고용 불안은 삶의 일부가 되었다. 갓 사회에 뛰어든 젊은이에게는 저임금의 비정규직조차도 힘겨운 쟁취 대상이 됐다. 인구는 빠르게 줄어들고 노령화하고 있다. 젊은 남녀가 취업해서 아이를 키우며 사는 평범한 가족 형태는 소수에게만 허락된 사치로 통한다. 최근 경로 무임승차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책임 공방을 넘어 세대 간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각자도생의 험악한 경쟁 사회가 도래한 것이다. 다가올 멋진 신기술의 세상에서도 노령화, 출산율 추락, 고용, 연금, 대중교통, 물가 등 구시대의 낯익은 문제는 여전히 언론이 다루어야 할 내용이다. 언론 역시 이러한 추세를 추적하면서, 그에 적합한 주제 선정과 정보 전달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물론 새로운 기술은 새 구상을 실행하는 데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요즘 언론이 평범한 시민들의 관심사를 제대로 대변하고 있는가? 언론의 뉴스 가치 기준이나 주제, 기사 양식 등은 변화된 환경에 어울리지 않는 허점을 너무나 많이 드러내고 있고, 자기 혁신 노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언론의 감각은 30년 전의 세상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언론이 메타버스와 챗GPT가 가져올 아바타의 세계에 흥분할 때, 나는 쇠락한 구도심 주택가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주름진 노인의 얼굴이 우리 미래상으로 떠오른다. 지금은 메타버스가 아니라 마을버스가 우리 삶에 더 절실한 문제다. 언론 역시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면 떠나가는 이용자를 붙잡을 방도가 없다.
2023-03-0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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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일본 화물이 부산항에 의존하는 이유
유튜브에서 ‘일본 환적’으로 검색하면 KBS가 지난달 26일 보도한 ‘한국을 견제했던 일본, 부산항에 푹 빠진 이유’라는 뉴스가 맨 앞에 뜬다. 일본 수출입 화물의 약 10%가 부산항에서 환적을 한 번 거치고 있는 이유를 진단했다. 환적은 항공의 환승과 유사하다. 화물이 운송 도중에 목적지가 아닌 항구에서 다른 배로 갈아타서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는 개념이다.
일본 화물은 왜 부산항에서 환적될까? 유동인구가 많아 시내버스 노선도 많은 A정류장이 있다고 가정하자. A정류장 인근 사람은 부산 내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버스를 한 번만 타고도 갈 수 있다. 반면 버스 노선이 적은 변두리 지역 시민은 십중팔구 도심의 A정류장에서 환승해야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아 유동인구가 적은 곳은 버스 노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대신 작은 마을버스 노선에 만족해야 한다. 이같이 일본의 대부분 항만은 마을버스처럼 구간이 짧은 중소형 피더 선박이 운영되므로 일본 수출입 화물은 동북아시아 물류 허브인 부산항에서 환적해야 하는 구조다.
일본의 항만에 피더선이 많이 들어가는 이유는 컨테이너항이 많은 탓에 화물이 각 항만에 분산돼 물동량이 적기 때문이다. 일본에는 컨테이너 화물 취급 항만이 65개에 달한다. 1·2위인 도쿄항과 요코하마항의 화물 처리비중은 각각 25%, 15%에 불과하다. 한국의 경우 부산·인천·광양·울산 4개 항만에서 컨테이너 화물의 90%가 처리되고, 부산항에서만 약 60%가 처리된다. 부산항은 도쿄항 수출입 물동량의 2배 이상을 처리하고 있다. 부산항 수출입 물동량이 일본 3대 항만(도쿄·요코하마·나고야)을 합친 것보다 많다.
일본은 내수시장이 발달해 무역이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 정도에 그치는 것도 항만들에 피더선 투입이 많은 이유다. 일본은 GDP가 약 6000조 원으로 한국(약 2200조 원)의 2.7배나 되는 세계 3대 경제대국이다. 하지만 2021년 일본의 전체 해상 수출입 컨테이너 물동량은 1790만TEU로 한국(1720만TEU)과 별 차이가 없다. 이는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 GDP의 80%가 일본과 달리 무역에서 나오는 까닭이다.
이 같은 경제 환경 속에서 부산항은 수출입을 위해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운항하는 중장거리 원양 항로가 많이 개설됐다. 이에 따라 부산항을 이용하는 컨테이너 물동량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연간 수출입 화물이 1000만TEU가 넘는 항만은 ‘세계의 공장’인 중국의 항만을 제외하고는 부산항이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
바다의 정기 컨테이너선 항로는 해운 선사들이 개설한다. 특히 동서양을 오가는 장거리 간선 항로는 막대한 자본이 소요돼 대부분 글로벌 선사에 의해 운영된다. 부산항이 글로벌 선사 입장에서 반드시 기항해야 하는 허브 항만이 된 것은 부산항에서 처리되는 기본적인 수출입 화물의 절대량이 풍부해서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의 버스정류소에 노선이 많이 개설되는 것처럼 부산항에 충분한 화물이 집하되다 보니 세계 주요 항만들과 연결된 정기 노선이 많다. 지난해 말 기준 부산항의 유럽 직항 정기 노선은 주당 15개다. 도쿄항은 1개뿐이고 요코하마항은 전혀 없다. 이처럼 일본은 큰 항만조차 유럽 직항 노선이 부족해 피더선으로 부산항과 연결한 뒤 환승할 수밖에 없다. 부산항의 북미 직항 노선도 주당 37개인 반면 도쿄항은 8개, 요코하마항은 7개에 불과하다. 일본은 오사카·고베를 포함한 5대 항만을 빼고는 60개 지방항에 유럽·북미 노선이 아예 없다.
결국 일본의 주요 항만에서 멀리 떨어진 서안 지역의 화주나 수출입 기업들은 직항 노선이 없는 유럽과 북미로의 수출입을 위해 부산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항의 일본 환적 화물 처리량이 늘어남에 따라 전체적인 환적 물량도 증가했다. 지난해 부산항은 세계 2위 규모인 1200만TEU가량의 국제 환적 화물을 처리했다. 세계에서 수출입 화물과 환적 화물 처리량이 각각 1000만TEU를 넘긴 곳도 부산항이 유일하다.
늘어난 환적 물동량만큼 부산에는 항만·물류 연관 산업의 매출이 늘고 있다. 20피트짜리 환적 컨테이너 1개(1TEU)당 연관 산업의 매출은 약 15만 원 발생한다. 이를 부산항 연간 환적 화물로 계산하면 1조 8000억 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셈이다. 글로벌 선사들이 부산항의 유리한 위치와 연결성, 안전성 등 다양한 장점을 활용해 환적 물동량을 늘리고 있어 고무적이다. 이는 부산항 관리 당국과 해운·항만·물류업계의 선사 및 물동량 유치 노력의 결과다. 우리 기업의 수출입 경쟁력 제고에 기여하고 환적 화물 유치로 막대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부산항이 자랑스럽다.
2023-02-2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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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선사 과징금 부과의 역사적 부당성
지난해 6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외 15개 선사에 총 1763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들 선사들이 2003년 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운임을 담합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해당 선사들은 해운업계의 공동행위는 해운법(29조)에 ‘합법 행위’로 법정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과징금 부과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현재 총 11개 소송이 제기된 상태여서 향후 양측 간에 치열한 법정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을 접하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공정거래위원회를 비롯한 정부 전반의 해운에 대한 몰이해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쟁행위가 소비자를 위한 최고의 선이고, ‘공동행위는 이에 반하는 악’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쟁이 언제나 소비자들에게 유리한지를 사례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2008년 10월 EU는 ‘운임 및 선복량 통제 목적의 해운동맹’을 금지시켰다. 이후 원양 컨테이너 해운시장은 초대형 선사들의 과점시장으로 전락했다. 2022년 현재 선복량 기준으로 머스크, MSC, CMA-CGM, COSCO 등 4개 거대 선사가 컨테이너 선복량의 57.8%를 과점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2021~22년 컨테이너 운임은 공급망 문제까지 겹쳐 사상 최고로 치달아 컨테이너 운임이 4배 이상으로 폭등했다. 화물을 운송해야만 하는 화주 입장에서는 폭등한 운임 이상을 지불하고서라도 화물을 운송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즉, 해운시장을 자유경쟁 체제하에 방치할 경우 강한 선사만이 살아남아 독과점시장으로 전락해 결국 소비자들이 손해를 보게 된다는 사실이 입증된 최근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해운업계조차도 해운 관련 법률, 계약, 관행 등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선사들의 협의체에서 최저운임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때 해운법에 합법으로 명시된 공동행위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정거래법에 문제가 될 소지가 없는지를 확인하고자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해운 관련 관행이나 법률은 고대부터 현재까지 역사적으로 이어져 온 상관행과 계약관습이 집적되어 국제협약으로 체계화되고, 이것이 다시 국내법으로 채택된 것들이다. 이러한 해상법률과 상관행들은 과거 이른바 ‘바다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던 시대에 선주가 일방적으로 제시한 계약조건을 화주가 받아들여 계약이 되고 관행이 되어 입법화된 것들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선주의 항해과실 면책’이다.
이를테면 택배기사가 물건을 분실했을 때 그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우리들은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힘들 것이다. 그러나 해운에서는 ‘항해 중 선원의 과실로 인한 화물의 손해에 대해서는 선주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 국제협약(헤이그-비스비규칙)과 우리 상법(795조 제2항)에서 확립된 원칙이다. 이것이 선주의 이익에만 부합되는 불공정한 거래로 보일 수 있겠지만, 화주에게도 이익이 되었기 때문에 국제협약과 국내법으로 입법화된 것이다. 왜냐하면 선주가 위험하거나 돈벌이가 되지 않아 특정 항로에 선박을 배선하지 않는다면 화주는 화물을 운송할 방법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선사들의 공동행위도 이와 비슷하다. 선사들이 협의체를 결성하게 된 것은 공동행위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1980년대 해운산업 합리화 계획의 시행으로 해운선사 간 통폐합을 경험한 선사들이 향후 과당경쟁을 막아 공동의 파멸을 막아 보자는 데서 출발했다. 자유경쟁 체제하에서는 항로에 선박들이 수요 이상으로 취항하게 되어 과당경쟁으로 이어지면 일부 선사들은 파산하게 되고, 살아남은 소수의 선사들이 항로를 과점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소수의 선사들이 운임을 자기 의지대로 올릴 수 있는 ‘독과점 해운시장’으로 전락한다. 2008년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진 원양컨테이너선 시장의 상황이 이를 입증한다.
근해항로의 공동행위가 불법화된다면 선사 간 치열한 집화 경쟁으로 일시적으로 운임이 하락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경쟁열위에 있는 선사들이 도태되고 경쟁력 있는 선사들만 살아남게 된다면 운임은 다시 급상승하게 될 것이다. 경쟁체제하에 있을 때 손실을 본 생존 선사들이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운임을 올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해운시장의 속성이다. 공정거래를 위해 동종업자들이 담합하지 말고 경쟁하라는 것은 상식이고 바른 방향이다. 그러나 해운시장에서는 일반 경쟁이론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독과점 시장이 출현하기 때문이다. 한진해운 파산의 교훈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2023-02-1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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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해운동맹 '2M' 해체에 대비하자
지난 4일(음력 1월 14일)은 절기상 계절이 봄으로 접어든다는 입춘(立春)이었다. 한지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고 적은 입춘첩을 대문에 붙이면서 한 해의 복과 안녕을 기원하는 날이다. 필자도 지난해 붙인 낡은 입춘첩을 떼어 내고 새로운 입춘첩을 써 붙이며 올 초 계획한 일들이 순조롭게 잘 이뤄지기를 소망하였다. 개인적으로 봄이 오면 어린 시절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밤을 새워 읽으면서 영웅호걸의 무용담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소설책 첫 페이지에 그려져 있던 복숭아나무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 아래에서 유비·관우·장비가 형제의 의를 맺고 대의를 도모하는 결의에 찬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의 나라 촉과 위·오나라 등 3국의 패권 다툼을 둘러싼 흥망성쇠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진진했다.
글로벌 해운시장에도 〈삼국지〉의 3국과 같은 3개의 주요 동맹(얼라이언스·Alliance)이 있다. 2M, 디 얼라이언스(TA·The Alliance), 오션(Ocean) 얼라이언스다. 3개 해운동맹은 전 세계 항로를 각각 40%, 35%, 25%씩 점유하고 있어 ‘해운의 삼국’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 중 가장 규모가 큰 해운동맹은 2015년 결성된 2M이다. 지난달 25일 2M은 2년 후인 2025년 1월 동맹을 해체한다고 밝혀 세계 해운·항만 업계에 파문을 던졌다. 2M은 세계 1·2위 해운사인 스위스 엠에스시(MSC)와 덴마크 머스크(Maersk)로 구성돼 있다. 두 회사의 중장기 발전에 대한 입장 차이와 글로벌 시장의 반독점법 강화 등으로 2M 동맹의 해체가 어느 정도 예견돼 왔지만, 10년 만의 해체를 공식화하면서 세계 해운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선복량 기준 세계 8위 선사인 우리나라 에이치엠엠(HMM·옛 현대상선)은 디 얼라이언스에 가입돼 있다. 독일 하팍로이드(Hapag-Lloyd)와 대만 양밍(Yangming), 싱가포르 오엔이(ONE)가 이 동맹의 회원사이다. 오션 얼라이언스에는 프랑스 씨엠에이씨지엠(CMA-CGM), 중국 코스코(COSCO), 홍콩 오오씨엘(OOCL), 대만 에버그린(Evergreen)이 소속돼 있다. 이런 가운데 MSC와 머스크가 2년 뒤 2M을 해체하고 각각 독자 노선을 걸을 경우 세계 해운동맹 체제는 3개에서 4개로 나뉘게 된다. 또 두 선사가 다른 파트너 선사를 찾아 새로운 동맹을 맺을 가능성도 있다.
주의 깊게 지켜볼 것은 3개 해운동맹 모두 부산항을 기항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해운동맹은 지난해 부산항 전체 물동량의 무려 67%를 처리했다. 그리고 3개 동맹의 10개 회원사는 부산항 총 수출입 물량의 55%를, 전체 환적화물의 77%를 각각 처리했다. 이 때문에 부산항 항만 당국과 터미널운영사들은 항만 운영전략과 물동량 계획 등을 위해 2M 해체를 비롯한 해운동맹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3개 해운동맹은 현재 동맹별로 부산항에 주력 터미널운영사를 선정하고 중장기 계약을 체결해 이용하고 있다. 2M은 부산항 신항 2부두를, 디 얼라이언스는 신항 3부두와 4부두를, 오션 얼라이언스는 신항 5부두를 주력 터미널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2M 동맹의 해체 이후 MSC와 머스크, 디 얼라이언스와 오션 얼라이언스의 주력 기항 터미널 계약에도 변화가 생길지, 변화의 규모는 어느 정도가 될지가 부산항을 포함한 국내 항만 업계의 중요한 관심사로 떠올랐다.
앞으로 다가올 3개 해운동맹의 구조와 체제 변화는 글로벌 해운 노선과 연결된 아시아 역내 노선, 한국·중국·일본 피더(Feeder) 노선 체제에도 연쇄적인 변화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2M 동맹의 해체를 전후해 아시아 역내 선사와 피더 선사들이 이용하는 터미널 계약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부산항의 경우 올해와 내년에 신항 서컨테이너부두의 터미널 개장, 북항 자성대부두 운영 중단을 앞둔 터미널운영사의 신감만부두 이전이 예정되어 있다. 선사와 터미널 간 짝짓기(페어링·Pairing)에 현재의 이해관계는 물론 향후 전망 등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한 득실 계산이 필요한 것이다.
세계 최대 해운동맹인 2M의 예정된 해체는 글로벌 해운시장과 항만·물류 업계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변화 속에서 선사와 터미널운영사들은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2025년 1월 이후 또는 그 이전에 닥칠 것으로 보이는 세계 해운동맹의 변화가 국내 해운·항만·물류 업계에 새로운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막 시작된 변화의 바람을 순조롭게, 우리에게 이로운 쪽으로 잘 타야만 할 것이다. 부산항 관계 기업들과 국적 선사 HMM이 MSC와 머스크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잘 대비할 때다.
2023-02-1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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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언론의 신뢰 위기와 얀테라겐
유엔(UN)이 2002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행복지수 조사에서 1위부터 상위권을 차지하는 북유럽 국가들의 행복 비결은 높은 수준의 신뢰와 사회통합이다. 타인을 자신만큼 존중한다는 평등주의와 합의주의 사고는 북유럽 국가들의 오랜 문화이자 전통이다. 그 배경에는 북유럽 사회에서 수 세기에 걸쳐 불문율처럼 통용된 강력한 생활 규범인 ‘얀테라겐’(Jantelagen)이 자리하고 있다.
영어로 ‘얀테의 법칙’(Law of Jante)으로 번역되는 얀테라겐은 덴마크 태생의 노르웨이 작가인 악셀 산데모세가 1933년에 발표한 풍자소설 ‘도망자’에서 처음 등장한다. 소설 속 ‘규칙을 잘 지키는’ 마을 얀테에서는 소위 ‘잘난 사람’이 대우받지 못한다. 아니 ‘잘난 체하는 사람’은 공동체 안에서 인정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비판의 대상이 된다. 주민들이 따라야 하는 열 가지 법칙은 사람들이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거나, 더 낫다거나, 더 많이 안다거나, 더 위대하다거나, 남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금하기 때문이다.
북유럽 국가에서 언론 신뢰도 높아
타인 존중하는 평등·합의주의 영향
국내 언론, 북유럽식 사고 주목해야
신뢰 회복 위해 편향성 탈피할 필요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압축적으로 표현해 주는 얀테라겐은 이들이 스스로 겸손함을 바탕으로 타인에 대한 존중과 상호 평등 및 합의의 생활관을 형성하게 한 생활 규범으로서, 북유럽 사회 구석구석에 깊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예를 들어 스웨덴은 세계 가치관 조사에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나라로 분류되는데, 이 역시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용을 모르는 이기주의나 개인의 이익을 국가나 사회집단보다 우선시하는 부정적인 의미의 개인주의와는 다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오히려 스웨덴의 개인주의는 권리의 주체이면서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갖는 ‘강한 개인’이라는 긍정적 의미로 해석되는데, 타인 존중을 바탕으로 한 평등주의와 합의주의 사고는 스웨덴의 오랜 문화이자 전통으로서 얀테라겐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행복지수 조사에서 늘 상위권을 지키는 북유럽 국가들은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도 역시 높게 평가된다. 영국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매년 뉴스 이용자를 대상으로 실시하여 발표하는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 따르면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뉴스 신뢰도 부문에서 지속적으로 상위권을 지켜 오고 있다. 2015년부터 이 조사에 참여한 한국은 2022년 조사에서 뉴스 신뢰도가 46개국 가운데 40위로 최하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 언론에 북유럽 국가는 부러움과 벤치마킹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북유럽 국가에서 언론의 신뢰가 높은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으며, 우리 언론은 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는가. 우리 언론 불신의 주요 요인으로 진영논리에 갇힌 정파적 편향성의 문제가 지적된다.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2〉에서도 3명 중 2명이 뉴스의 편향성으로 인해 뉴스를 회피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하고 있다. 편향성이란 객관성과 공정성이 결여된 불균형적 태도로서,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의 생각보다 옳다는 인식이나 다른 사람보다 나를 더 존중하는 지나친 자의식과 우월의식은 편향적인 태도를 유발할 개연성을 높인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언론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언론인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자들은 자신의 직업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어서’(42.7%)와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서’(32.2%)라고 답변하고 있다. 뉴스와 관련한 문제점들에 대한 심각성을 묻는 질문에서는 ‘뉴스의 편파성 문제’에 대해 응답자의 70.5%가 그 심각성에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언론인은 언론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하락하고, 언론의 사회적 영향력이 축소하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으며, 이것이 사기 저하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우리 언론이 처한 총체적 위기 속에서 언론은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북유럽식 삶의 규범인 얀테라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혹시 우리 언론이 개인으로서건 집단으로서건 알게 모르게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거나, 더 낫다거나, 더 많이 안다거나, 더 위대하다거나, 남에게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진 않은지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타인을 자신만큼 존중한다는 평등주의와 합의주의 사고를 형성한 얀테라겐이 높은 수준의 신뢰와 사회통합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언론산업 전반에 닥친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신뢰 회복이 절실한 지금이 언론에는 자기성찰을 위한 최적의 기회이다.
2023-02-0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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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지방 대학의 정해진 미래
2023년 지구 인구는 80억 명이다. 보고에 의하면 식량, 에너지, 자원 등을 고려할 때, 지구가 수용할 수 있는 최적의 인구는 1960년대 초반의 30억 명가량이라고 한다. 세계는 그 이후부터 식량,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러 왔다고 볼 수 있다. 인류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정해진 미래’, 즉 오늘날의 ‘생존 경쟁 시대인 오징어 게임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지진 발생은 그 직전까지 누적된 에너지가 방출되며 일어나듯이, 우크라이나 전쟁도 그 직전까지 누적된 인간 사회의 갈등 에너지의 순간적 방출로 발발하게 되었음에 비유될 수 있다. 이렇듯 세상의 모든 일들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원인이 연결되어 순차적으로 작동함으로써 지금의 순간에 이르게 되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대학의 위기 또한 이미 과거부터 지금까지 어떤 원인이 순차적으로 작동해서 발생하게 되었는지를 철저하게 살펴야만 그 해법을 찾아낼 수 있다.
모든 위기는 여러 원인 누적돼 발생
‘수도권 집중’ 작동 연결 회로 파헤쳐야
일터, 삶터, 쉼터, 배움터 조성이 급선무
지방정부와 대학, 기업 머리 맞대야
지방 대학의 위기 원인을 크게 ‘수도권 집중’과 ‘학령 인구 급감’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이며 겉보기에 불과하다. 우리 모두는 찬찬하게 그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 봐야 한다. 수십년간 청년들이 왜 수도권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었는지, 학령 인구가 왜 급감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작동 회로를 순차적으로 파헤쳐 하나씩 끊어 가야만 위기에 대한 정확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필자가 여러 가지 팩트를 고려해 수도권 집중 원인의 연결 고리를 하나하나 나열해 보니 500가지 이상이 나온다. 책 한 권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내용이어서, 좁은 지면에 모두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 오늘은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과 대안에 관련된 내용만 간략하게 풀어 보고자 한다.
무엇보다 자기 자식이 수도권으로 가겠다고 하는 상황을 고려해 보자. 왜 아이들이 서울로 가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하면 쉽게 수긍되는 내용들이 많다. ‘4터’(일터, 삶터, 쉼터, 배움터)가 마련된 환경을 조성해야 지방을 빠져나가지 않게 된다는 얘기다. 바닷속 물고기들이 모이는 곳에는 반드시 먹거리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물때(일터), 어초(삶터)와 적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구조물(쉼터), 어미로부터 생존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공간(배움터)이 조성되어 있다.
1990년대 초 인터넷 상용화는 온갖 제품과 기술 정보들을 온라인에 쏟아지게 하였다. 이로 인해 개발도상국 제조 기업은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유사 제품들을 마구 베껴 내는 상황이 되었다. 그 결과 우리 기업들은 선진국과 개도국의 중간에 끼어 있게 되었고 더 이상 글로벌 가격 경쟁력 확보는 어렵게 되었다. 그 결과, 성장 엔진은 둔화되고, 고용 창출력은 갈수록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2015년에 벤처 및 창업 기업에 5년간 소득세와 법인세를 절반으로 감면하는 정책을 단행한 바 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수도권에는 2배 이상의 기업 숫자가 증가했지만, 부산을 포함한 지방에는 기업 수 증가는 1.3배 미만으로 미미했다. 결국, 수도권에는 기업 생존 핵심 요인인 물류비와 인건비 절감에 유리한 환경이 이미 조성되어 있었으며, 기업들로 하여금 쉽게 둥지를 트게 하는 ‘일터’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기업의 수도권 집중 현상을 가속화하는 데 영향을 미쳤고, 지방의 인재들은 일터를 찾아 수도권으로 대거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지방대학의 정해진 암울한 미래가 더 확고하게 되는 장면이 되었다. 이후, 2020년을 전후하여 지방에 살아남은 기업들은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해 하나둘씩 본사를 수도권으로 이전하기 시작하였고, 이는 또다시 인재를 수도권으로 유인하게 하는 가속 페달로 작용하게 되었다.
한편, 수도권 자치단체는 기업과 인재의 수도권 유입에 따라 증가된 세입 자금으로 ‘쉼터’와 ‘삶터’, 그리고 ‘배움터’ 조성 사업에 여유롭게 투자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젊은 인재들을 수도권으로 끌어모으기에는 충분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처럼 소득세·법인세 절반 감면 정책처럼 정부가 국가 전체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도입한 제도가 때로는 지방과 수도권의 격차를 더 가속시키는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로 많다.
중앙정부로서는 국가 전체의 경쟁을 챙겨야 하고 지방과의 격차도 줄여야 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접할 수밖에 없다. 지방대학의 정해진 미래는 그래서 피할 수 없는 시나리오로 작성되고 있다. 지방정부와 지방대학, 그리고 지방 기업이 한 몸통이 되어 절박함과 시급함으로 ‘4터’ 마련을 위한 머리를 맞대어야만 정해진 미래를 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23-01-2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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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해운·조선산업 한 몸 돼야
매출이 각각 최대 70조 원에 달하는 해운산업과 조선산업은 국민적인 관심의 대상이다. 해운산업은 2020년 후반에서 지금까지 예기치 않은 초호황을 누렸다. 운임이 5배 이상 올랐기 때문에 수익도 많아졌다. 정기선사들은 대출금을 갚거나 불황을 대비하여 상당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후반부터 긴축정책으로 금년은 선박은 많지만 실어 나를 화물은 적은 초과공급이 예상되어 정기선 운임도 대폭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적자가 예상되기에 각 해운선사는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 들어갈 것이다. 조선산업은 최근 수주량이 늘어났다. 대우조선해양도 한화의 인수로 안정되어 간다. 철판 가격도 안정을 찾으며 금년은 흑자 전환이 예상된다. 그렇지만 해운이 불경기 시 선주들은 발주한 선박의 인도를 늦추거나 건조를 취소한다. 10% 내외에 불과한 내수시장은 우리 조선산업을 불리하게 할 요소이다. 2016년부터 시작된 불황에 줄인 인력을 어떻게 확보할지도 관건이다. 인력 부족으로 선박 건조 납기를 어기게 되면 배상금을 물어야 하고 적자의 원인이 된다.
구조적으로 한국 해운은 부족한 자금으로 허덕였다. 배 한 척에 90%까지 빚을 내어 겨우 선박을 확보하여 운항하였다. 불경기가 와서 운임이 떨어지면 대출금을 갚지 못해서 집단 도산을 했다. 2년의 건조 기간 중 인도 시에 건조 대금을 주는 헤비테일(Heavy Tail) 방식의 건조 계약이 대부분이었다. 조선소는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아 건조한다. 1945년 신생 대한민국의 해운과 조선은 한 몸이었다. 선각자들은 한국해양대를 설립하면서 항해, 기관학과와 함께 조선학과를 설치했다. 하지만 수출 중심이 되면서 조선은 해운과 멀어졌다. 외국 선주에게 너무 의존하는 구조가 되었다.
1980년대부터 일본은 조선산업을 내수 비중 50%에 맞추어 오고 있다. 이마바리 조선소가 300척을 소유한 선주사를 설치했다. NYK와 같은 대형 해운사가 배를 빌려 사용한다. 불경기 시 자회사인 선주사가 신조 발주를 해서 일감을 주는 구조이다. 국토교통성에서 두 산업을 함께 관리하는 게 우리와 다른 점이다. 한국 해운은 현금의 여유뿐만 아니라 해양진흥공사라는 해운산업 전문 정책금융기관이 있다. 이런 호전된 조건들을 활용, 해운과 조선산업이 하나가 되어 상부상조하는 관계를 2023년에 복원시켜야 한다.
첫째, 300척 선박을 소유·관리하는 민간 선주사들을 부산에 만들어야 한다. 2021년과 2022년 선박이 부족하여 야단일 때 일본과 그리스의 선주사들은 높아진 선가를 이용해 매각차익을 얻거나 높은 임대료 수입을 올렸다. 우리는 오히려 이들 선박을 빌려 쓰느라 국부가 유출되었다. 현금 여유가 있는 해운선사, 물류회사, 부산항만공사, 부산시 등이 민간 선주사의 주주로 들어오면 된다. 배를 빌려서 사용할 해운선사도 이제 튼튼해졌다. 금년과 내년 선복 과잉이 되면 선가는 낮아진다. 선주사는 이때 선박을 사들일 수 있다. 금년은 민간 선주사 육성 시작의 적기인 것이다.
둘째, 우리 해운선사들이 건조 초기에 건조 대금을 많이 지급해 할인받도록 하자. 조선소는 헤비테일에서 오는 건조자금 대출의 위험을 줄여서 좋고, 선사는 선가를 낮춰 좋다. 우리 선사들은 화주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여 현재보다 더 많은 선박을 확보해야 한다. 일본과 우리가 수출입화물은 비슷한데 운항하는 선박 숫자는 일본이 우리보다 3배가 많고, 대만도 3배나 많은 컨테이너선박을 운항한다. 우리 해운선사들과 선주사들은 더 많은 선박을 우리 조선소에 발주해 조선소의 내수 비중을 30%로 높여 안전판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상법 해상 편에 선박 건조 시 대금은 공정에 맞추어 5번에 걸쳐 나누어서 지급되도록 임의규정을 둔다. 선주사는 화주와 운송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도록 입법화하고, 톤세제도의 적용 등 혜택이 부여되어 일본 및 그리스 선주사들과 경쟁이 되도록 해야 한다.
전제는 우리 해운선사가 튼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시적인 호황으로 해운선사 현금 보유가 많아졌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외국의 해운선사는 우리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렸다. 향후 2~3년은 선박 공급 과잉으로 치열한 국제 생존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제2의 한진해운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외국이 인정하는 톤세제도와 같은 국적 해운 선사보호 제도가 더 강력히 유지되어야 한다. 이렇게 우리나라 해운과 조선산업이 일체화로 안정화되어야 불경기가 와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안정된 해운·조선산업의 최대 수혜 지역은 조선소와 선주사들이 밀집한 부울경이 될 것이다.
2023-01-1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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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에너지 안보 해법, ‘바다’에 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에너지 안보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면서 세계 각국은 재생에너지 생산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같은 해 4월 독일 정부는 오는 2035년까지 자국 내에서 소비되는 에너지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목표를 담은 법안을 발표했다.
AP 등 외신들은 독일 에너지·물 산업협회(BDEW)가 지난해 1~2월 독일 전력 소비의 54%를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대체했다고 발표한 내용을 보도했다. ‘엠버 국제전력리뷰 2022’에 따르면 덴마크는 전체 전력의 52.8%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세계 최대의 화석에너지 생산국으로 꼽히지만, 2021년 10월까지 전체 발전량의 23%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석탄, 석유, 가스 등 에너지의 92%를 수입(2021년 기준 총수입액의 22.3%, 1372억 달러)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지난 20년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재생 에너지 공급 비중이 7.5%에 불과하다. 앞으로 7년이 남은 2030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보급 목표인 21.6%를 달성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매우 크다.
세계가 ‘넷제로(Net Zero, 탄소 순 배출량 0)를 향한 각고의 노력을 펼치고 있긴 하나, 세계 인구 증가와 에너지 수요 급증으로 화석 연료의 생산은 더 많아지고 있다. 심해 석유 생산량의 경우 1990년 30만 배럴에서 2022년 1040만 배럴, 2020년대 말까지는 1700만 배럴까지 늘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석유 매장량은 갈수록 고갈되고 있다. 약 30년 전만 해도 해저 100m 정도에서 원유를 채굴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수심 1000m 이상 초심해가 되어야 가능하다. 그나마 셰일 가스의 개발로 에너지 공급이 증가했고, 유럽의 재생에너지 보급 증가로 현재 에너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중 패권 다툼으로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의 분쟁 가능성이 커지고, 중동 지역의 국제 정세가 불안해지면 화석에너지 수입이 막힐 수 있는 여지는 여전히 많다.
세계 해양 전문가들의 연구를 기반으로 하는 ‘Global Maritime Issues Monitor 2022’는 앞으로 해양산업의 가장 큰 이슈로 ‘해운의 탈탄소’와 이를 위한 ‘새로운 환경 규제’를 전망하고 있다. 더불어 앞으로 10년 후에는 ‘에너지 가격’과 ‘정치적 긴장’이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될 것으로 예측한다. 이는 에너지가 세계 경제와 정치적 관계를 형성하는 에너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 준다.
유럽은 탄소 중립을 새로운 무역 장벽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의 제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 국경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는 탄소 배출 등급에 따라 선박의 등급을 정하고, 규제를 충족하지 못하면 운항을 할 수 없는 조치까지 시행된다.
이러한 규제는 조선, 해운 등과 같은 해양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친환경 선박 개발을 통해 연료 소비의 측면에서 전통적인 경제효율 선박을 설계하는 것 외에도 선박에서 배출되는 선박 온실가스(Green House Gas)를 처리하기 위한 장치도 탑재하고 있다. 현재는 저탄소 연료를 활용한 다양한 선박 엔진 개발과 무탄소 선박 엔진에 이어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 추진 선박에 이르기까지 선박으로 인한 대기오염 물질과 탄소 저감을 위한 투자와 기술 변화가 엄청난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서 해양과 에너지 생산의 관계를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재생 에너지 확대의 가장 큰 문제는 이를 위한 가용토지가 부족하다는 점인데, 해결책으로 바다가 떠오르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를 대규모로 생산할 수 있는 공간으로 해양이 가장 유력하다. 해상풍력을 위해 북해와 발트해 국가 간 영역 확보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해양 신재생 에너지를 통해 생산된 전기에너지는 우리가 원하는 다양한 형태로 공급이 가능하다. 보건·안전·환경적인 관점과 경제적 측면에서 에너지의 생산과 보관을 비롯한 발전과 설비, 도시 등 육지의 인프라가 빠른 속도로 해상으로 옮겨 가고 있는 것도 해양 신재생 에너지의 다양한 장점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해양의 탈탄소 정책을 향한 기술과 환경, 경제적인 측면의 변화는 대규모 투자와 축적된 기술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과 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에너지 대전환의 시기를 맞아 거대한 도전에 직면한 우리나라는 어느 때보다 도전과 지혜 그리고 협치가 필요하다. 해양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의미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지금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2023-01-0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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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비평] '재벌집 막내아들'
지난해 연말에는 모 종편채널에서 방영한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가 단연 화제였다. 드라마에서 흙수저 출신의 회사원 윤현우는 출세를 위해 총수 일가의 온갖 궂은일을 뒤처리하며 충성을 다하지만, 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는 1987년으로 회귀해 자신을 죽인 재벌집의 막내아들로 빙의한 뒤 복수를 하고 재벌 총수가 된다는 그런 내용이다.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는 현실성과 거리가 먼 황당무계한 판타지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이 이 드라마는 순수한 허구이면서도 현실성의 요소도 갖고 있다.
이 드라마는 계층 간 갈등과 분노, 흙수저의 복수극을 소재로 다뤘다는 점에서 정치적 폭발성을 매우 강하게 안고 있다. 상당히 어두운 내용인데도 이례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을 보면 시청자들의 시대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뭔가 있었던 게 틀림없다. 이 정서는 안간힘을 써도 흙수저 신세를 벗어나기 어려운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욕망이나 좌절과 무관하지 않다. 드라마 역시 언뜻 복수극으로 마무리하는 듯하지만, 야망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 정서를 부추긴다.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1980년대 중반 화제작인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연상시킨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출세의 욕망을 판타지 형식으로나마 실현할 수 있도록 해 주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허구가 갖고 있는 일말의 진실성이다. 드라마와 만화에서는 주인공이 패자에서 승자로, 아니면 현실에서 환상의 세계로 도약할 수 있게 해 주는 극적인 계기가 존재한다. 〈공포의 외인구단〉에서는 어렵긴 하지만, 개연성이 전혀 없지는 않은 ‘지옥 훈련’이라는 시련의 단계가 그 계기 노릇을 한다. 반면에 ‘재벌집 막내아들’에서는 현실성이 전혀 없는 회귀와 환생, 빙의라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주인공의 야망 달성이 가능했던 것은 막내 손자이긴 해도 재벌집에 태어났을 뿐 아니라 미래에 일어날 일까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흙수저가 비록 가상 세계에서나마 복수를 달성할 가능성은 1980년대에 비해 훨씬 더 어려워졌고 지금이 더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미래 희망이 보이지 않는 데도 무한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에게는 공포의 외인구단식 지옥 훈련조차도 환생만큼이나 성공의 수단으로서 그다지 현실성이 없을지도 모른다. 노력이라는 단어에 대해 ‘노오력’이라는 냉소적 표현이 존재하는 걸 보면 이 시대에는 젊은이들이 치열한 무한 경쟁에 뛰어드는 것 역시 성공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달리 대안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드라마는 이런 시대정서를 꿰뚫어 본다는 점에서 허구이면서도 완전히 허구인 것 같진 않다.
이 드라마의 호소력은 허구이면서도 끊임없이 실제 현실을 비추어 가면서 묘사한다는 점에도 있다. 드라마 속 인물이나 사건, 심지어 배경 묘사까지도 특정한 재벌가 사례를 연상시킨다. 전생의 주인공 윤현우가 겪은 상황은 극 중의 극단적 설정이 아니라 수많은 흙수저 출신의 직장인이 실제 겪고 있는 일상적 현실이니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드라마에서 순양그룹 가문의 갑질 행태나 봉건적 가신 관계라든지 정치인, 검사, 언론인들이 재벌과 결탁해 벌이는 추악한 행태는 일반 대중이 상상하는 0.1% 상위층의 세계와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 이 점에서 드라마는 판타지 형식을 띠면서도 마치 다큐멘터리나 시사 보도처럼 대중이 궁금해하는 추악한 현실을 리얼하게 묘사한다. 이 드라마의 재미는 허구이면서도 현실보다 더 리얼한 허구라는 이중성에 있다.
드라마가 끝나고 채널을 돌리니 정치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한국 사회가 당면한 시급한 현안은 어디 가고 온통 ‘그들만의’ 말장난과 싸움질로 넘쳐 난다. 현실을 생생하게 고발하고 진단해 보도해야 할 뉴스는 재미만 추구하는 개그나 막장 드라마로 변질하고 있다. 아니면 첨예한 사회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대중의 관심사를 포착해 예리하게 파고들기보다는 부와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한 낯 뜨거운 용비어천가만 불러 대는 것을 보고 있자니 홍보자료인지 기사인지 종종 헷갈리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허구에 불과한 드라마가 이 시대의 모순투성이 현실과 보통 사람들의 정서를 더 잘 읽어 내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드라마는 현실의 변화를 빠르게 반영하면서 대중의 갈채를 받고, 뉴스는 보는 사람도 많지 않은 ‘삼류 소설이나 쓰는’ 이러한 역할 전도는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이러다가 언젠가 뉴스라는 형태가 사라진다고 해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릴 사람이 얼마나 남아 있을지 우려된다.
2023-01-0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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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기후위기 시대, 부산의 겨울 축제
부산에는 부산불꽃축제, 부산항 축제, 부산바다축제, 해맞이 부산 축제, 부산원도심골목길축제를 비롯한 다양한 축제가 있다. 마침 지난주에는 크리스마스 시즌과 더불어 해운대 북극곰 축제가 열렸다. 1997년에 조직된 부산문화관광축제조직위원회가 부산에서 거행되는 모든 축제를 주관한다. 부산의 축제는 대개 해양문화 관광도시를 지향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이루어진다. 축제는 지역사회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지역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부산에서 열리는 다양한 축제는 부산이 세계 속의 도시로 나아가는 데 일조한다.
한반도 최남단 제주도 서귀포에서는 매년 11월~12월에 방어축제가 열린다. 2001년부터 시작된 방어축제는 겨울철 백미로 여겨지는 대방어를 소재로 활용하는 해양문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주제는 ‘청정 바다의 흥과 멋과 맛의 향연’이다. 선명한 주제로 인해 2008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표적 축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방어축제는 당연히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 방어가 많이 잡히는 시기에 맞추어 열릴 뿐만 아니라 낚시 체험과 같은 부대 행사와 병행하니 관광객이 몰려든다. 방어는 1990년대 말부터 어획량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방어축제는 제주의 대표적인 해양문화 축제가 된 것이다.
수온 변화의 영향으로 올해 동해안에서 가장 많이 잡힌 어종으로 방어가 꼽힌다. 기후변화로 동해안의 어종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머지않아 동해안에서는 대게나 오징어를 제치고 방어가 대표 어종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대표적 겨울 먹거리 축제인 영덕 대게 축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동해에서 명태가 사라진 것을 생각하면, 축제 역시 환경 변화를 비켜 갈 수 없다. 한편 겨울 먹거리 축제인 거제도의 대구축제는 환경 변화에 적응한 축제다. 대구는 기후변화, 무분별한 남획과 관리 소홀 등으로 한동안 거제도에서 많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지역민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다. 인공수정을 통한 치어 산란 등으로 성어가 된 대구가 거제도로 돌아오며 새로운 축제가 탄생한 것이다.
울산 태화강으로 회유해서 돌아오는 연어가 매년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높아진 수온의 영향으로 2014년 대비 10분의 1 정도만이 돌아온다니 답답한 노릇이다. 동해안에서 명태가 사라진 것과 같은 수온 상승의 영향이다. 이상기후 시대에는 어종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삶의 양식도, 먹거리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의 특산품이 새로운 품종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상기후로 인해 결국 축제 자체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일본 삿포로는 매년 2월 첫째 주에 열리는 눈축제로 유명하다. 눈축제는 1950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73회째가 되었다. 필자가 우연히 경험한 삿포로 눈축제는 큰 감명을 주었다. 세계 각지에서 출품한 눈과 얼음으로 만든 거대 조각상을 보기 위해 찾은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킹크랩과 같은 풍부한 겨울 먹거리와 다채로운 눈축제로 인해 추위까지 잊을 수 있었다. 삿포로는 1972년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눈으로 유명한 겨울 도시로 세계인의 눈도장을 받았다. 눈축제는 눈이라는 삿포로의 소재와 먹거리를 잘 활용한 축제다.
세계에서 유명한 축제 중에 브라질의 삼바(samba)축제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축제는 1930년대에 거리 축제로 시작되어 오랜 세월 동안 진화했다. 이제는 수만 명의 외국인이 참여하는 가히 세계적 축제가 되었다. 보령 머드(mud) 축제는 지역의 특징을 잘 살려 낸 축제다. 바닷가 체험이나 영상체험을 통해 참여를 유도하고, 진흙을 소재로 한 산업 분야까지 확장하고 있다. 머드축제는 초대 가수 공연을 비롯한 불꽃놀이, 야시장까지 병행하고 있다. 한국에서 열리는 축제 중 외국인 참여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하니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17일 부산 불꽃축제나 지난 주말 부산 북극곰 축제는 혹한의 추위 속에서 열려 관심을 모았는데 솔직히 아쉬운 점도 있었다. 해양도시 부산을 대표하는 축제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북극곰 축제는 여러 부대 행사를 통해 완성도를 높이려고 노력했지만 높은 파도 탓에 축제의 핵심인 북극곰 수영은 할 수 없었다. 축제는 환경을 거스르고는 안 되는 것이다. 다다익선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많은 축제가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북극곰 축제와 불꽃축제를 병행하거나 먹거리 행사를 추가하는 등 축제를 환경에 맞게 변화시킬 필요가 있어 보인다. 부산을 대표하는 똘똘한 해양문화 축제 하나로 재탄생되면 좋겠다. 모두가 참여해서 즐기려고 기다리는 겨울 축제 말이다. 요즘 같은 이상기후엔 북극곰도 수영하기보다는 먹잇감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지 않는가.
2022-12-25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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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수산식품산업은 신성장 원동력
예전부터 바다를 지배한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 사례는 많다. 과거 영국과 스페인 그리고 네덜란드가 해양을 발판으로 대국으로 주름잡았다. 최근엔 미국과 일본 그리고 호주가 과학기술 분야의 해양대국으로 우뚝 서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 해양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있고, 향후 해양 분야에서의 기술 개발도 더 도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해양 분야의 발전에 따라 수산식품 시장도 과거와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우리나라의 기존 수출 ‘효자’ 분야인 반도체는 글로벌 경기침체 영향으로 실적 악화가 심화하고 있지만, 국내 식품 수출 시장은 건강 기능식에 대한 수요와 한국 식문화에 관한 관심 증가로 인기가 더 높아지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산식품인 김, 굴, 어묵, 참치, 전복 등은 K시푸드를 견인하며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요즈음 들어 관심과 이슈가 더 집중되는 수산식품이 있다. 과거 수산식품을 대표하던 통조림, 레토르트 식품에 비해 가정간편식으로 불리는 ‘HMR(Home Meal Replacement)’과 밀키트 형태의 종류다. 요즈음 이러한 수산식품을 애용해 보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다.
코로나19 이전에도 1인 가구와 고령 인구의 증가, 여성의 경제활동 확대 등으로 꾸준한 성장세이던 가정간편식 HMR 시장과 밀키트 제품은 이제 수산물의 새 소비 트렌드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식품산업통계 정보에 따르면, 세계 가정간편식 HMR 시장 규모는 연평균 4%로 성장 중인데, 2018년 907억 달러에서 2023년엔 1102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가정 음식을 대체한다는 의미의 ‘가정대용식’ 또는 ‘가정간편식’으로 불리는 HMR은 완전 조리 식품이나 반조리 식품으로 집에서 간단히 데워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일컫는다. 냄새 등 조리할 때 불편함을 해결한 생선구이 제품 등이 많다.
그런데 HMR과 밀키트는 조금 다르다. 밀키트는 재료 준비만 해 놓은 포장 상품으로, 조리는 첨부된 설명서를 보고 직접 해야 한다. 꾸준한 성장세인 HMR 시장과 함께 밀키트 역시 시장 규모가 커지는 추세다. 한 조사에 따르면 즉석조리 식품 가운데 밀키트의 비중이 66%로 가장 높고, 국이나 탕, 찌개 종류가 54.2%로 나타났다. 과거 밀키트 제품은 집에서 조리하기 힘든 음식의 구매 비율이 높았지만, 최근엔 집밥 수요 증가로 일상식 제품이 특히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고물가의 그림자는 피할 수가 없다. 현재는 3000원짜리 김밥도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소비자원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외식 품목 가격은 김밥 3046원, 짜장면 6300원, 냉면 1만 5000원이다. 또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8.62(2020년 100 기준)로 전년보다 57.7% 올랐다. 이러한 비용 부담으로 외식을 자제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의 예측을 보면 HMR과 밀키트 시장 규모는 2022년에만 5조 원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대기업 식품회사는 물론 플랫폼 등 유통사와 외식 업계의 경쟁이 치열한 실정이다.
해양수산부와 각 지자체도 지역경제 활성화와 어민 소득 증대를 위해 수산물을 활용한 식품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소비의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한 HMR과 밀키트 상품의 개발, 시장 개척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한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품질과 안정성 강화, 포장기술 교육 등이 주요 포인트다.
해양수산부는 올해 수산식품산업 거점 단지의 역량강화 사업을 추진해 관련 업체의 매출 증대와 신제품 개발 등 구체적인 성과를 거뒀다. 부산시도 내년 6월 ‘수산식품 특화단지 기업 센터’를 개소해 다양한 가공품 생산을 지원할 계획이다. 국내 수산식품 제조 업체 대부분이 영세한 규모임을 고려하면 정부와 지자체의 이러한 정책적 도움은 우리 수산식품의 우수성을 세계 시장에 알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의 대중문화가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만큼 K시푸드의 인기와 위상도 고공행진 중이다. HMR과 밀키트로 대표되는 K시푸드의 수산식품 제조에 국산 수산물이 아닌 저가의 수입물을 이용해 어렵게 쌓아 올린 명성을 훼손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단기적인 이윤만을 꾀하는 일부 몰지각한 행위는 없어져야 한다. 우리의 푸른 바다가 내어 주는 소중한 자원으로 건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수산 식품의 개발에 더 노력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해양 환경을 생각해 재활용할 수 있고, 친환경적인 포장재의 개발은 우리 수산식품의 발전과 함께 반드시 실행되어야 할 필수 과제이다.
2022-12-1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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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 뷰] 부산시 새 슬로건의 충족 조건
부산시 슬로건과 상징 마크는 바꿔야 할까. 교체한다면 해양도시 정체성은 얼마나 더 강화될 수 있을까. 부산시가 슬로건과 상징 마크를 바꾼다고 공언한 지 한 달이 다 됐다. 부산시는 그동안 도시 브랜드 공식 플랫폼으로 ‘온라인 소통채널 상상 온’을 개설했고, 지난달 27일 시민 8192명으로부터 1만 3060개의 키워드를 접수했다고 발표했다. 예정대로라면 12일 슬로건에 대한 시민 공모 결과도 나온다. 어떤 후보작이 좋은 반응을 얻었는지 궁금하다.
부산시는 슬로건 후보작 선정에 이어 새해 1월 상징 마크 후보작을 뽑은 뒤 선호도 조사를 거치면 늦어도 3월에 도시 브랜드 리뉴얼 선포식을 가질 수 있단다. 국제박람회기구의 2030세계박람회 현지 실사 일정에 맞춘 듯하다.
부산시의 슬로건 교체 추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2018년 시장 취임에 앞서 새 슬로건에 대한 시민 공모부터 실시했고, 680여 건의 후보작을 접수했다. 하지만 ‘30여 년 만의 지방권력 교체’라는 나름대로 명확한 이유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존 ‘다이내믹 부산’이란 슬로건을 바꾸지 않았다. 이 슬로건은 2003년 안상영 전 시장 때 확정했는데, 당시 안 시장 구속으로 부시장이던 오 전 시장이 직무대행을 하면서 직접 승인했다. 그 스스로도 나중에 기자들 앞에서 “애착 때문에 바꿀 수 없었다”고 술회했다.
슬로건과 함께 개편 대상이 된 마름모꼴의 부산시 상징 마크는 이보다 훨씬 더 오래전인 1995년 3월 지정됐다. 갈매기와 오륙도, 산, 바다, 강이 기본 콘셉트다. 상징 마크는 부산시가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바뀐 게 제작 계기가 됐다.
상징 마크가 지정되고 석 달 뒤 부산시 마스코트 ‘부비’가 탄생했다. 이는 ‘부산 비전’의 줄임말로 요즘 부산시가 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활용하고 있는 ‘부기’와는 다르다. 공식 마스코트 ‘부비’는 밝고 희망찬 태양과 출렁이는 바다 물결을 모티브로 삼은 반면 홍보용 캐릭터 ‘부기’는 갈매기를 형상화했다. 마스코트보다 홍보 캐릭터가 더 활용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것부터 교체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공식 마스코트와 홍보 캐릭터를 따로 둘 필요가 없어서다.
문정수를 필두로 안상영, 허남식, 서병수, 오거돈으로 민선시장이 이어졌으나 부산은 그동안 아무도, 어느 것도 바꾸지 않았다. 바꿀 마음이 없었던 게 아니라 확실한 대안으로 시민을 설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다른 도시는 사정이 달랐다. 시장 교체가 곧 슬로건 변경이라고 할 정도로 부침이 심했다. 그럼에도 슬로건 교체 이유는 모두 ‘도시 브랜드 강화’였다. 서울시와 강원도는 각각 7차례나 바꿨다. 그럼에도 효과를 거뒀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예산만 수십억, 수백억 원을 쏟아부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교체 명분으로 삼는다. 부산시가 주도한 도시 브랜드 리뉴얼 조사에서 응답자 71%(710명)가 새로운 브랜드를 요구했다고 주장한다.
명분은 그렇다고 쳐도 아직 새 슬로건이 시민 동의를 얻은 것도 아닌데 기존의 ‘다이내믹 부산’은 부산시 홈페이지를 포함해 각종 홍보에서 벌써부터 사라지고 있다. 그 자리를 ‘부산 먼저 미래로’가 차지했다. 마치 시민 동의를 얻어 새로 선정한 슬로건처럼 보인다. ‘부산 먼저 미래로’는 지난해 4월 박 시장이 후보 때 인수위원회 격으로 설치한 ‘부산미래혁신위원회’의 출범 슬로건일 뿐이다.
부산미래혁신위원회에 대해 해양인들은 탐탁지 않게 여긴다. 참여한 인사 중 상당수가 박 시장 취임 직후 중용됐거나 예정되고 있지만, 전체 46명 중 해양수산계 인사는 한 명도 없다.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해양특보 신설 요구에 박 시장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그가 내세운 도시 비전 실현을 위한 6대 도시 목표 중 금융, 디지털, 친환경, 문화관광은 있어도 해양이란 단어는 포함되지 않았다. 비공식 슬로건 하나에도 해양인들이 예민해지는 이유다.
부산시 슬로건과 상징 마크는 두 가지를 충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오래된 것을 버릴 때 그 이상의 효과를 반드시 기대할 수 있어야 하고, 또 하나는 어떤 경우에도 해양도시란 정체성이 훼손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세계 도시 슬로건 중 성공한 사례로 미국 뉴욕의 ‘아이 러브 뉴욕’이 꼽힌다. 1975년 제1차 석유파동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에게 희망을 주자는 취지에서 뉴욕주가 기획했고, 뉴욕 출신 그래픽디자이너(밀턴 그레이저)가 제작했다. 취지부터 훌륭하고 시민 누구나 공감할 디자인으로 자리 잡은 것이 부럽다. 우리도 그럴 자격이 있다.
2022-12-11 [1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