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난공불락 요새 금고
한국예탁결제원은 1974년 한국증권거래소 자회사 한국증권대체결제 주식회사로 설립됐다가 1994년 증권예탁원이라는 특수법인으로 전환한 뒤 2009년 현재의 명칭으로 확정됐다. 주식회사들이 장부상으로만 주식을 관리하며 사고 팔 수 있도록 주식 실물을 맡아두는 업무를 하는 기관이다. 이 기관이 없다면 주식 거래자들은 주식 거래 때마다 주주명부 명의 개서를 위해 일일이 실물 주식을 들고 뛰어다녀야 한다. 이 기관이 금을 보유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부터다. 한국거래소가 금 현물시장(KRX 금시장)을 그해 3월 개장하면서 거래 대상이 되는 골드바가 예탁결제원에 처음으로 입고됐다. 처음 입고된 분량은 순도 99.99% 1kg들이 골드바 17개. 당시엔 KRX 금시장이 활성화할 경우 하루 평균 최대 7000개의 골드바가 거래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7000개에 이르는 골드바를 일일이 인출해서 들고 다니며 거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주식의 경우처럼 예탁결제원에 금 실물을 맡겨두고 장부상 거래를 하도록 한 것이 예탁결제원 보관 금의 시초였던 것이다. 예탁결제원이 이처럼 금을 보관할 수 있었던 것은 경기도 일산에 있는 예탁결제원 건물 지하의 금고 덕분이다. 금 보관 이전에는 이 금고에 100조 원이 넘는 가치의 주식과 채권 등 실물 유가증권이 보관돼 있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고 설비 기준을 충족한 국내 첫 번째 금고인 이 금고는 규모와 자동화 설비 기준으로는 스위스 증권예탁기관의 금고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안정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8년 당시 33억 원이라는 거액을 투입해 만들어진 이 금고는 205평 가량의 넓이에 아파트 3층 높이 정도의 내부 공간이 마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께가 1m를 넘는 특수문을 비롯해 미세 진동감지기 등 각종 특수장비로 중무장된 이 금고를 두고 예탁결제원은 ‘난공불락의 요새’라 불렀다. 이 난공불락의 요새가 최근 금값이 치솟으며 KRX 금시장의 한 달 거래 규모가 4조 원에 육박하자 금 보관량 폭증으로 미어터지기 직전이라는 소식이다. 예탁결제원은 금 보관시설을 서울에 새로 만들려다 부산지역 여론이 악화하자 갈피를 못잡고 오락가락하는 중이다. 예탁결제원은 본사 부산 이전 11년이 지난 이 시점에도 왜 ‘서울 바라기’를 비판하는 지역 여론이 들끓는지를 돌아보고 슬기롭게 새 공간 확보 방안을 찾길 바란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
2025-11-09 [17:59]
[밀물썰물] 선물 상호주의
외교를 할 때 국가 간에 동등한 조건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을 ‘상호주의’라고 한다. A 나라가 B 나라 국민에 대해 무비자 체류를 허용하면, B 나라도 A 나라 국민을 무비자로 받아준다. 외교관을 추방시키면, 상대국도 똑같이 외교관 추방으로 맞선다. 관세나 시장 개방, 범죄인 협정 등에서도 똑같이 반영되는 현대 외교의 기본 원리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는 상호주의가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때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에게 금 190돈(712.5g·약 1억 4000만 원)이 들어간 ‘무궁화 대훈장’과 금박을 두른 ‘신라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했다. 트럼프는 “우리나라가 다시 존중받고 있다”고 만족해 했지만 답례품만 놓고 보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 트럼프는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선수인 딜런 크루스의 사인이 새겨진 야구방망이와 자신의 인장이 찍힌 야구공을 주고 갔다. 대통령실은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야구를 전한 역사와 한미 문화적 유대를 상징한다”고 설명했지만 “선물의 격이 안 맞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사인의 주인공이 미국 야구를 대표하는 상징성 있는 인물이나 스타 플레이어가 아닌 평범한 프로 2년 차 선수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만 그런 건 아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트럼프에게 황금 골프공과 아베 신조 전 총리(2022년 사망)가 사용했던 골프채를 선물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요원들을 제거하는 데 썼던 원격 폭탄이 탑재된 ‘삐삐’(무선호출기) 모형에 금을 입혀 선물했다. 하비에르 밀레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 추천서를 황금 액자에 넣어 전달했다. 트럼프는 황금 삐삐를 선물한 네타냐후 총리에겐 함께 찍은 사진에 자신의 사인을 해줬고, 밀레이 대통령에겐 자신의 책 〈거래의 기술〉에 사인을 해 선물했다. 다카이치 총리에게 뭘 줬는지는 아예 공개되지도 않았다. 이쯤 되면 트럼프와의 선물 교환은 상호주의는 커녕 ‘조공 외교’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다들 참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 안에서 동맹국으로서 누리는 안보·경제적 혜택이 황금 선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집권 2기에서는 선물의 의미가 국가 간 우호의 상징에서 힘을 과시하거나 이미지를 연출하는 도구로 변질되고 있다. 외교의 기본인 상호주의가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힘을 잃고 있다.
2025-11-06 [18:08]
[밀물썰물] 깐부 효과
2010년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일곱 개의 시선’ 특집에서 하하가 구슬치기 관련 이야기를 하며 “나랑 깐부 먹자”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어린 시절 딱지치기나 구슬치기 등을 할 때 서로 동맹을 맺는 것을 깐부라고 표현한 것이다. 당시에는 깐부라는 단어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2021년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시즌 1을 통해 깐부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오일남이 성기훈과 구슬치기를 하며 “우리는 깐부잖아. 깐부끼리는 네 거, 내 거가 없는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 때문이다. 게임 참가자들이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서로를 깐부라 부르며 동맹을 맺는 장면을 통해 깊은 우정과 동료애를 나타내는 말로 자리 잡았다. 깐부치킨 홈페이지에서도 ‘깐부’를 어린 시절, 새끼손가락 마주 걸어 편을 함께 했던 내팀, 짝꿍, 동지로 설명한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가장 강렬했던 장면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깐부치킨 치맥 회동이었다. AI(인공지능) 깐부 세 사람이 치킨과 소맥으로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펼쳐 대중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깐부치킨 매장에서 열린 세 사람의 ‘깐부 회동’은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AI 기술 동맹의 상징이 됐다. 이튿날 젠슨 황은 정부와 삼성전자·SK그룹·현대차그룹·네이버클라우드에 최대 14조 원에 달하는 26만 장의 그래픽처리장치(GPU) 공급 계획을 밝혔다. 한국이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 AI 깐부 회동의 효과는 일상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깐부치킨은 세 사람이 먹었던 메뉴를 한데 모아 ‘AI 깐부’라는 세트로 공식 출시했다. ‘바삭한 식스팩’ ‘크리스피 순살치킨’ ‘치즈스틱’으로 구성한 이 세트는 치맥 회동 테이블에 올랐던 메뉴다. 해당 깐부치킨 매장 출입문에는 ‘젠슨 황 CEO 테이블 좌석은 모두를 위해서 이용 시간을 1시간으로 제한한다’는 안내문까지 붙었다고 한다. 엔비디아와의 ‘깐부 효과’가 이어지려면 대한민국이 AI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속에서 AI와 반도체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생존 과제다. 이익 추구를 우선시하는 냉혹한 글로벌 무역전쟁의 한복판에서 ‘AI 깐부동맹’이 굳건하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드라마 속 깐부처럼.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2025-11-0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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