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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얼룩말 '세로'와 동물원
최근 동물원의 우리를 부수고 탈출해 도심을 누빈 얼룩말 한 마리가 세인의 입에 오르내린다. 지난 23일 서울 어린이대공원을 뛰쳐나와 주변 차도와 주택가를 돌아다니다 3시간 만에 붙잡혀 다시 동물원으로 돌아간 4살짜리 수컷 얼룩말 ‘세로’ 이야기다. 아프리카 초원을 누벼야 할 얼룩말이 1000만 명이 복작거리는 대도시 한복판을 달리는 흔치 않은 장면에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이목이 쏠렸다. 세로의 모습을 패러디한 게시물이 나오는가 하면, 인스타그램에선 세로를 주제로 한 노래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그 이후 국내에는 세로가 동물원에서 탈출한 이유를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지금까지 나온 이유는 대체로 무리 생활의 습성이 있는 얼룩말 세로가 부모를 잃고 홀로 지내면서 쌓인 외로움이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급격히 외로움을 타기 시작하면서 옆 우리의 캥거루와 싸우기 일쑤였고, 또 밥도 잘 먹지 않았다는 그간의 정황을 근거로 내놓는다. 명확한 이유야 세로만이 알 뿐이겠지만, 어쨌든 이후 세로에 대한 대접은 확연히 달라졌다. 암컷 얼룩말과의 합사 예정은 물론 심리 상태까지 관리받는다고 하니, 세로가 벌인 사고의 결과물이 꽤 쏠쏠한(?) 것 같다.
세로로 인해 촉발된 관심은 동물원 존폐 논란으로도 옮겨붙는 모양새다. 동물원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동물권과 생명권을 옹호하는 단체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온 주제인데, 이번 사고를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반면, 동물원의 동물을 섣불리 자연으로 돌려보내거나 없애면 오히려 더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동물원의 교육적·정서적 측면도 아울러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다시 불거진 논쟁을 보면서 부산의 유일한 동물원이었던 더파크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폐업한 지 만 3년이 된 더파크는 재개장 여부는 고사하고 아직 부산시와 운영 업체 간 소송전이 진행 중이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그 안에 있는 동물들이 처한 사정이야 얼추 짐작이 간다. 실제로 동물 수는 폐업 전인 2019년 158종 950마리에서 2021년 말 기준 134종 516마리로 급감했다.
폐업한 더파크의 동물들에게 사고 이후 얼룩말 세로 수준의 대접은 언감생심이겠으나, 그래도 시민의 사랑을 받았던 만큼 지금 상태가 어떤지 마음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재개장 여부와 관계없이 지내는 데 불편이 없도록 끝까지 당국이 신경을 써야 하겠다.
2023-03-2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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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편의점 생맥주
생맥주와 병맥주는 제조 과정 중 마지막 열처리 여부에 따라 구분된다. 살균 처리를 하지 않은 생맥주에는 효모가 남아 신선하고 독특한 고유의 맛과 향을 갖는다. 대신 생맥주는 냉장 보관을 해야 하고 2~3일 지나면 변질될 우려가 있다. 맥주의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살균한 맥주가 병맥주(저장맥주)이다. 병맥주는 열처리로 효모가 대부분 죽기 때문에 6개월까지 보관할 수 있다. 요즘에는 병에 넣은 생맥주도 나오고 살균이나 여과 방법이 발달해 병맥주의 풍미도 생맥주에 근접해 간다. 같은 종류의 생맥주와 병맥주를 나란히 놓고 번갈아 마시면 그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가 있다.
정부는 편의점 등 주류 소매업자가 맥주 제조 키트에서 생산한 맥주를 소분(작게 나눔)해 판매할 수 있는지 묻는 세법 질의에 대해 ‘판매할 수 없다’고 최근 회신했다. 주류 소분 판매는 음식점 등에서만 제한적으로 가능하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사실 주류 소분 판매도 2019년 7월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이 주세법 기본통칙을 개정해 생맥주 판매 규제를 완화한 결과였다. 그 덕분에 집에서 음식과 함께 생맥주를 배달시켜 먹거나, 음식점에서 원하는 대로 생맥주를 따라 마실 수 있게 됐다.
정부 관계자는 “소분 판매를 하면 모든 편의점이 맥주 가게가 되는 셈이다. 기존 음식점들과의 형평성이나 관리·감독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위생이나 과세 관리가 상대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JR동일본 그룹에서 운영하는 편의점 뉴데이즈가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 점포 위주로 이미 생맥주를 판매하고 있다. 특히 신칸센 이용객 가운데 역사 편의점에서 신선한 생맥주를 사서 열차 안에서 가볍게 한잔하는 수요가 꽤 있다고 한다. 일본의 세븐일레븐도 생맥주 판매를 시도했으나 한꺼번에 수요가 몰리거나 편의점의 다른 손님 대응 문제로 판매를 중지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1989년 국내 첫 편의점이 문을 연 뒤 30여 년 만에 편의점 수 5만 개 시대가 되었다. 이 같은 숫자는 일본보다 조금 적은 편이라니 국토의 크기나 인구수 차이를 고려하면 한국에 편의점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편의점의 취급 품목이 생필품 외에 신선식품·와인·명품으로 늘고, 서비스도 세탁·펫케어·배달·택배·보험 가입 등으로 영역 제한 없이 확대되고 있다. 맥주 제조 키트를 생산하는 소규모 업체들은 편의점을 통해 판로를 찾으려 했으나 이번에도 규제에 가로막혔다.
2023-03-2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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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스마트폰 뱅크런
1997년. ‘IMF 국가 부도 사태’로 온 나라가 파산과 실직으로 어려움을 겪고, 동남은행과 종금사 등 지역 금융업계도 속속 문을 닫았다. 그 틈을 비집고 파이낸스 회사가 독버섯처럼 생겨났다. 파이낸스 회사는 유명 배우와 가수, 축구단까지 내세워 ‘확정배당률 연 30~40%, 목표수익률 연 120%, 위험률 0%’를 약속했다. 불과 2년도 지나지 않은 1999년 9월 삼부파이낸스, 청구파이낸스가 영업을 중단하면서 예금자들이 파이낸스 회사 앞에 줄을 서는 뱅크런(Bank Run·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이 터졌다. 2조 6000억 원가량을 맡긴 7만 5000여 명이 8200여억 원을 날렸다. 지역 최대의 금융 사기극이었다.
그 후 10여 년 만인 2011년 부산저축은행 등에 뱅크런이 벌어졌다. 영업정지처분이 내려질 것을 미리 안 예금채권자들이 급히 거액의 예금을 인출하면서 저축은행 30여 곳이 파산했다. 부동산 경기 호황 속에서 부동산PF 대출에 뛰어들었던 저축은행이 금융위기로 인해 건설업체들이 부도가 나면서 파국을 맞은 것이다.
이런 뱅크런 사태가 최근 미국에서 벌어졌다. 미국 내 자산 기준 16위 규모의 40년 된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기까지 단 36시간이 걸렸다. 유동성 위기로 증자 계획을 발표하는 순간, 공포 심리가 전염되면서 예금주들이 스마트폰으로 예금을 대거 인출했다. 은행으로 뛰어가 줄을 서는 모습은 없었지만,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돈줄로 불리던 SVB에선 하루 만에 56조 원(420억 달러)이 빠져나갔다. ‘스마트폰 뱅크런’의 시작이었다.
스마트폰 뱅킹과 SNS 사용의 대중화가 은행 파산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지만 은행 폐쇄에 이르는 속도를 경이적으로 증가시킨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작은 불안감과 루머, 집단 공포심리가 SNS를 통한 초연결사회에서 빛의 속도로 증폭되고, 스마트폰의 모바일앱 클릭 몇 번으로 실시간 ‘원격 뱅크런’이 가능하게 됐다. 대형은행도 단 몇 시간 만에 파산 위기에 처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금융 전문가들마저 “이렇게까지 빨리 망할 줄 몰랐다”라고 놀라워할 정도다.
스마트폰 사용률 세계 1위로 은행 업무의 90%가 모바일로 이뤄지는 한국에서도 금융회사의 스마트폰 뱅크런 불안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한다.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금융기관이 고객의 수익성과 함께 경영 건전성, 고객의 신뢰 확보에 보다 더 민감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된 셈이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견고함이다.
2023-03-26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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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분양원가 공개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의 일이다. 2003년 2월 서울 건설업체 W사가 부산 연제구 거제동에서 1100가구가 넘는 아파트 분양에 나섰다. 도시철도역이 걸어서 5분 이내인, 도심의 노른자위 땅이었는데, 분양가가 700만 원(이하 3.3㎡ 기준) 대였다. 부산 사람들은 놀랐다. 그때까지 부산에서 아파트 분양가는 높아야 500만 원 대였던 것이다.
실제로, 2002년 1월 서울 건설업체 P사가 해운대 센텀시티에 공급한 3600가구 아파트의 분양가가 500만 원 안팎이었다. 폭리라는 비판이 일자 W사 대표는 말했다. “부산도 금방 분양가 1000만 원 시대를 맞을 것이다.”
그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이듬해 부산에 분양가 1000만 원이 넘는 아파트가 나타나더니 이후 분양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해 2월 부산의 민간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1911만 원이었다.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고, 목 좋은 곳의 유명 브랜드 아파트는 서울의 평균 분양가(3060만 원)를 웃도는 경우도 많다. 이런 집값, 옳은 것인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공급한 아파트의 분양원가(부지조성비+건축비)를 최근 공개했다. 1291만 3000원! 평당 1300만 원이면 아파트 한 채를 지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것도 무려 서울에서다. 요즘 아파트 값을 생각하면 뭔가 속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파트 사업자들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수익을 가져 가는가.
SH공사의 이 같은 행보에다 국회에서 공공주택 분양원가 공개를 명시한 법안이 더불어민주당 김두관 의원 주도로 발의되는 등, 근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압력이 거세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민간 건설업체는 반발한다. 영업비밀 침해 소지가 있고, 아파트 값은 분양원가보다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원리에 좌우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의 논리가 옳다 그르다 단정하긴 어렵다. 다만 지금 아파트 값이 서민의 눈에는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것만은 분명하다. 재건축이 추진 중인 부산 수영구 남천동 삼익비치타운(남천2구역)의 정비사업조합이 최근 제시한 일반 분양가가 4900만 원이다. 어떻게 해서 그런 분양가가 산출된 걸까. 어떤 사람들이 그런 아파트를 사는 걸까.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가구 평균 가처분소득은 월 363만 원이었다.
2023-03-2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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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손 없는 윤이월
‘윤이월(閏二月) 제사냐’라는 속담이 있다. 해야 할 일을 자꾸 빼먹거나 거르는 바람에 윤이월에 지내는 제사처럼 보기가 어려울 때 핀잔하는 말이다. 윤달인 2월이 매우 드물게 돌아오는 사실에 빗대 꼬집는 표현이다.
윤달은 평년의 12개월보다 1개월이 더해진 달을 일컫는다. 이는 달력과 실제 계절 간 차이를 조절하기 위한 것이다. 달을 기준으로 한 태음력에서는 1년 365일인 양력에 비해 약 11일이 부족한 일수를 모았다가 19년에 일곱 번 또는 5년에 두 번, 3년에 한 번꼴로 1개월을 추가해 윤달을 만든다. 그러지 않으면 달력상 연말연시에 더운 여름이 닥치고 5~6월은 한겨울이 돼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태양력도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365.2422일 중 0.2422일을 모아 4년마다 하루를 보태 차이를 조정한다. 바로 2월 29일, 윤일이다.
계묘년은 윤이월이 든 해다. 지난 21일 음력 2월이 끝나고 22일 윤 2월 1일이 됐다. 이날 시작된 윤이월은 4월 19일까지다. 올 윤달은 2020년 윤사월에 이어 3년 만에, 윤이월은 2004년 이후 무려 19년 만에 다시 찾아왔다.
우리나라 현대 사회에는 한 달 더 있는 윤달에 비어 있는 달, 썩은 달, 남은 달, 공달, 여벌달, 덤달이란 뜻으로 결혼과 출산을 피하는 풍조가 있었다. 젊은 층이 아예 결혼·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이 강한 요즘은 무의미해졌지만…. 이와 달리 조선 후기 문인 홍석모가 1849년 지은 세시풍속집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는 윤달에는 혼인하기가 좋은 등 만사에 꺼리는 것이 없다고 했다. 예부터 선조들은 윤달을 날짜를 따라 여기저기로 다니면서 사람이 하는 일을 방해한다는 귀신인 손(損)이나 부정을 타지 않는 달로 여겨서다.
속담에 ‘윤달에 송장을 거꾸로 세워도 아무 탈이 없다’란 말이 있을 정도다. 손 없는 달인 셈이다. 그래서 평소 불길하다고 미룬 묘 이장 같은 궂은일을 치르거나 이사와 집수리, 수의 마련에 나섰던 게 윤달 풍습이다. 최근 윤이월을 앞두고 전국 화장장에서 조상의 시신·유골을 화장해 찾기 쉬운 납골당이나 봉안 시설로 모시려는 수요가 몰려 치열한 예약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 글로벌 경기 둔화와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패권경쟁, 북핵 위협, 여야 간 정쟁, 여론 분열, 수출 부진, 무역수지 적자 누적, 고물가, 고금리 등 다양한 국내외 악재가 겹쳐 한국 경제와 국민의 삶을 짓누른다. 액운이 없다는 귀한 윤이월에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사라지고 해소되면 얼마나 좋을까.
2023-03-2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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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천원’의 아침밥
“아침밥 드셨습니까”, “점심 드셨습니까.” 여전히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인사말이다. 또 친구나 지인과 만나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질 때는 예사로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기도 한다.
그럼 아침밥을 먹지 않았다면, 말한 사람이 아침밥을 사주기라도 할 것인가. 작별 인사를 할 때도 밥 말고 다른 것을 먹기로 하면 안 되는가. 실없이 이렇게 되물을 수도 있겠으나, 보통은 거의 없다. 한국인이라면 ‘밥’이라는 한마디에 담긴 중층적 의미를 느낀다.
한국인에게 이처럼 밥은 그냥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다.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먹거리이면서 또 마음속을 내비치는 표현의 구실을 할 때도 있다.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말에는 상대를 염려하고, 배려하고, 기도하는 의미까지 들어 있다. 오랫동안 집을 떠나 타지로 향하는 자식에게 어머니가 빼놓지 않는 당부가 있다. “아침밥은 꼭 챙겨 먹어라.”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마음이 여기에 다 들어 있다.
먹거리가 넘쳐 나는 요즘에는 아침밥의 효용이 예전만 같지 않지만, 그래도 든든하게 챙겨 먹는 아침밥은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다. 그런데 최근 고물가 여파로 아침밥을 굶는 대학생들이 지난해보다 크게 늘었다고 한다. 정부 당국의 설명인데, 2021년 기준 20대의 아침 결식률은 53.0%로, 10년 전보다 10%포인트 늘었다. 대학생이 많이 포함된 20대의 결식률이 높은 것은 식습관의 변화 탓도 물론 있겠으나, 갈수록 오르기만 하는 식비 부담이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게 정부 당국의 분석이다.
정부가 올해 1000원에 아침밥을 제공하는 ‘천원의 아침밥’ 사업 대상을 전국 41개 대학으로 늘려 지원하기로 한 배경이다. 목표 지원 인원은 68만 4000명. 학생이 1000원, 정부가 1000원을 부담하는 이 사업은 2017년 10개 대학, 14만 4000명으로 시작된 뒤 갈수록 수요가 늘면서 규모가 크게 확대됐다. 올해 부산에서는 4개 대학에서 시행된다.
결식아동만이 아니라 결식 대학생까지 정부가 챙기는 셈인데, 주머니 사정이 뻔한 대학생들이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아침 식사까지 할 수 있다면 이 또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근래에는 광주 지역의 전통시장에도 어려운 서민들의 한 끼를 위해 ‘천원 밥집’, ‘천원 국시’ 가게가 생겼다고 한다. 앞으로 더 많은 저렴한 밥집이 생겨 최소한 식비 때문에 배를 곯는 사람은 없었으면 좋겠다.
2023-03-2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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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너구리 숙주설
20일부터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가 풀려 일상 속 노마스크가 현실이 됐다. 병원 등 일부 특수 시설에 착용 의무가 남아 있고 아직은 노마스크가 더 어색한 게 사회 전반의 분위기지만 길고 길었던 코로나 터널을 벗어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올해에는 코로나 비상사태를 해제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코로나 엔데믹에 접어들지만 전 세계를 팬데믹 공포로 몰아넣은 이 바이러스의 기원을 둘러싼 논쟁은 더 뜨겁다. 대체로 논쟁은 ‘자연 발생설’과 ‘실험실 기원설’이라는 두 범주에서 진행됐다. 발생 초기 중국 우한 실험실에서 유출됐다는 이야기가 미국을 중심으로 퍼졌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 염기서열이 자연 상태와 다르고 인체 세포와 쉽게 결합하도록 돼 있다는 과학적 설명까지 뒤따랐다. 그러나 WHO는 초기 현지 조사에서 실험실 유출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음모론 정도로 일축했다. 대신 박쥐에서 매개 동물을 거쳐 인간에게 전염됐을 것이라는 자연 발생설이 과학계에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다.
최근 미 연방수사국(FBI) 크리스토퍼 레이 국장이 “바이러스가 중국 정부가 통제하는 연구소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언급해 실험실 유출설에 다시 불을 당겼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도 실험실 유출을 트위터에 코멘트하며 논란에 가세했다. 미국 하원은 지난 10일 중국 우한 연구소와 코로나19의 잠재적 연결성 관련 정보의 기밀 해제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중국이 미 정보기관은 ‘조작과 거짓의 역사’로 점철돼 있다며 반박하고 나선 것은 예견된 일이다. 머스크에 대해서도 “밥솥 깨지 말라”고 경고했다. 미·중 갈등이 바이러스로 옮겨붙는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18일 WHO 과학자문그룹회의에서 국제 연구팀이 코로나 대유행이 중국 우한의 화난수산시장에서 불법 판매된 너구리에서 시작됐다는 연구 결과를 내놔 주목받았다. 중국이 2020년 1월부터 3월까지 이 시장에서 채취한 유전자 데이터를 지난 1월 공개했는데 재분석한 결과 코로나19 양성의 너구리 유전자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너구리를 숙주로 인간에 옮겨졌다는 설명이다. WHO는 중국이 알면서 은폐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코로나 기원에 대한 과학적 규명은 또 닥칠 팬데믹 대응을 위해서도 중요한데 패권 경쟁에 막힌 국제적 공조가 아쉽다.
2023-03-20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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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아버지의 무게
현대사를 장식한 독재자들의 끝은 대개 비극이었다. 그것은 자식들에게 대물림됐다.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는 세계 곳곳을 유랑하며 아버지의 망령을 떨치고자 했다. 소망은 사치였다. 망명도 자유를 주지 못했다. 그녀는 오로지 소련을 비난하는 서방세계의 도구였을 뿐이다. 오빠 야코프는 더 비극적이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를 죽음으로 간신히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카스트로와 무솔리니, 후세인, 프랑코, 피노체트, 차우셰스쿠 같은 독재자의 자식들도 파란의 삶을 살았다. 아버지라는 정치적 영혼을 벗는 것도, 대신 죗값을 치르지도 못했다. 대부분 침묵과 도피와 은둔에 몸을 맡겼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의 아들딸들은 아버지의 그늘을 걷는 대신 적극 옹호하는 방식을 택했다. 거대한 유산을 이어받은 이들은 2016년 이후 정치권력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여기에는 역사적 특수성이 있다. 아시아와 남미는 과거 미국과 소련의 지원을 받은 정치 후진국이었다. 독재자의 자식들은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정치판에서 스타로 군림하기도 했다. 아버지를 부정하든 이용하든, 어쨌든 이 모두가 과거의 업보와 연결돼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굳이 독재자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왕관의 무게’가 힘겨운 자식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는 둘째 아들 헌터 바이든이 ‘아픈 손가락’이다. 그는 바이든 부통령 시절 권력 남용 의혹에 이어 지금도 술과 마약 중독, 문란한 여성 관계 등으로 연일 매스컴을 탄다. 셰익스피어가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헨리 4세〉)고 썼던 대로 왕관의 무게를 버티는 일이란 실로 험난하다. 우리나라 정치인과 자식들이라고 비껴갈 길은 없다.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전두환 씨의 손자 전우원 씨가 최근 충격적 기행을 보여 주었다. 전 씨 일가의 불법 행위를 폭로한 것도 모자라 SNS 라이브 방송에서 마약을 복용하고 환각 상태에서 이상 행동을 노출했다. 속죄의 방식인지 자포자기인지 그 심정을 알 길은 없다. 한바탕 소동으로 끝날지 은닉 재산이 드러나는 계기가 될지 그것도 모른다. 다만, 과거의 무게에 짓눌렸음은 쉬이 짐작된다. 역사의 기록은 이렇다. ‘비극이 상연되는 무대에 있는 한 자식들은 불행했고, 무대에서 뛰어내리는 순간 그들은 정신의 자살 혹은 육신의 죽음을 맞았다.’ 역사는 예외를 허락하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다.
2023-03-1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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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백지신탁
백지신탁은 공직자가 자신이 보유한 주식이나 채권 가격에 영향을 주는 정책을 입안하거나 법을 집행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외국에서는 ‘블라인드 트러스트(Blind Trust)’로 불리며, 국내에는 지난 2005년 도입됐다. 백지신탁 대상자는 국회의원과 장·차관을 포함한 1급 이상 고위 공직자와 금융위원회 등 주식과 관련된 4급 이상이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해당 공직자는 자신과 직계존비속이 보유 중인 3000만 원 초과 주식을 임명일로부터 한 달 이내에 매각하거나 금융회사에 백지신탁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고위 공직자 16명 중 7명이 아직도 보유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주식을 매각 또는 백지신탁하지 않을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보유 주식이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생각하면 1개월 이내에 심사를 청구하여 매각·백지신탁 의무를 면제받을 수 있다. 백지신탁하지 않은 고위 공직자들이 직무 관련성 평가에서 면제받은 것인지, 그 구체적 심사 내용은 무엇인지는 공개할 필요가 있다. 경실련이 직무 관련성 심사 내역을 정보공개 청구했지만 인사혁신처가 기각했다고 한다. 오히려 인사혁신처는 백지신탁을 시대 변화에 맞게 수정할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는 중이다.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과 박성근 국무총리 비서실장이 배우자가 소유한 기업 주식을 백지신탁하라는 심사위 판단에 불복해 각각 행정소송과 행정심판을 제기했다고 한다. 집행정지 신청이 먼저 인용돼 백지신탁은 보류됐다. 행시 출신 유 총장과 검사 출신 박 실장은 둘 다 차관급인데 공직자윤리법을 몰랐던 것일까. 2010년에는 주식백지신탁심사위의 결정에 불복한 행정소송이 헌법재판소까지 올라가 합헌 결정을 받는 일도 있었다. 주식을 포기할 수 없으면 처음부터 공직을 맡지 않으면 된다.
정순신 변호사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 낙마한 사건은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켰다. 검사 아빠를 둔 아들은 학폭으로 강제 전학 조치를 받았지만 ‘행정가처분취소신청’을 통한 시간 끌기로 졸업할 때까지 학교폭력 사실이 생활기록부에 기록되지 않았다. 고위공직자들의 백지신탁 불복 소송도 마찬가지의 시간 끌기 수단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소송 기간 동안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취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고위공직자들의 불복이 이해충돌 방지라는 제도의 취지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대체 누구를 위한 법인가.
2023-03-16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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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오므라이스와 정상회담
“음식은 국제 관계 발전을 위한 가장 오래된 외교 도구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국가 요리사 임명장 수여식’에서 한 말이다. ‘한솥밥을 먹는다’는 표현처럼 음식을 나눔으로써 서로의 장벽을 뛰어넘어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기 때문에 음식은 국가 최고 지도자들의 만남에서 윤활유 역할을 한다. 그 메뉴는 정상회담의 연장으로, 미묘한 신경전과 배려, 정서적 소통과 회담 분위기를 전하는 상징이 된다. 영국 BBC 방송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메뉴에 담긴 외교: 음식은 어떻게 정치를 형성할 수 있나’라는 기사를 보도할 정도였다.
16일 일본을 방문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도쿄 긴자의 경양식집 ‘렌가테이(煉瓦亭)’로 자리를 옮겨 일본식 오므라이스를 먹으면서 대화를 이어 갈 계획이라고 한다. 오므라이스는 19세기 말 물밀듯이 밀려드는 서양음식을 일본인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현지화한 메뉴다. 일본이 서양의 문명을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문화적 가교 역할도 했다. 고슬고슬하게 볶은 밥을 보들보들하게 부쳐 낸 달걀로 덮은 뒤 진한 소스를 끼얹은, 서양식 달걀 요리인 오믈렛과 밥을 합쳐 놓은 형태다. 계란을 익히는 정도에 따라 모양과 맛이 갈려서 요리사의 실력을 판별할 수 있는 메뉴로도 알려져 있다.
묘하게도 원조 경양식집 렌가테이가 긴자 번화가에 문을 연 1895년과 한·일 정상회담을 하는 2023년의 국제 정세가 판박이인 듯하다. 19세기 말이 유럽에서 영국과 독일 두 제국을 중심으로 합종연횡해 세계 질서가 급변하는 때였다면, 현재는 미국과 중국으로 열강만 바뀌어 나머지 국가들이 연합하거나 대립하는 상황이다. 역사는 돌고 돌 듯 미·중 패권 경쟁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심화되면서 동아시아 질서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이다.
기시다 총리는 렌가테이 정상 만찬에서 오므라이스를 먹으면서 달걀에 덮여 있는 볶음밥의 감칠맛과 쓴맛, 짠맛, 단맛 하나하나를 애써 느껴 보기를 당부한다. 혹시나 일본 지도자들의 잠재의식에 자리 잡은 1930년대 제국주의 향수와 맛을 그리워한다면, 한국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지도자 국가로 부상하기 위한 도덕적 기반마저 잃게 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요리는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을 제각각 살려 내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기 바란다. 일본에 필요한 것은 향수가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려는 용기이기 때문이다.
2023-03-1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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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종묘제례악 지방 공연
세종 임금이 신하들에게 물었다. “우리나라 사람은 살아서는 향악(鄕樂)을 듣다가 죽으면 아악(雅樂)을 듣는다지요?” 신하들이 의아해하니, 다시 물었다. “우리는 본디 향악이 익숙한데 종묘제례에 당악(唐樂)을 먼저 연주하니…, 조상들이 평시 들으시던 음악을 쓰는 것이 어떻겠소?”
향악은 조선의 음악이고, 아악과 당악은 중국 음악을 일컫는다. 조선 초기 종묘제례는 고려의 형식을 따랐다. 고려 때 종묘제례에 쓰는 음악은 중국 송나라에서 들여온 아악이었다. 세종은 이를 향악으로 바꾸면 어떻겠냐고 물은 것이다.
거듭된 질문에도 신하들의 호응이 없자 세종은 아예 곡을 직접 만들어 보여 줬다.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이 그것이다. 보태평은 조선 선대 임금들의 문덕(文德)을, 정대업은 무공(武功)을 찬양하는 곡으로, 고려가요 같은 전래 음악 양식을 빌은 것이다. 그러나 신하들의 반대가 심했던지 세종 당대에 두 곡은 궁중 잔치 때나 쓰였을 뿐이다. 정대업과 보태평을 종묘제례악으로 사용케 한 이는 카리스마 넘치는 세조였다. 세조는 세종의 뜻은 그대로 잇되 곡에는 다소 변화를 주어 종묘제례악으로 쓰게 했다. 1464년의 일이었다.
국가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인 종묘제례악은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그 장엄한 감동을 온전히 느낄 기회는 극히 드물다. 지방 사람들은 특히 더 그렇다. 부분 공연은 간혹 열렸어도 전곡 공연은 대부분 큰 국가적 행사가 있을 때 서울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 기원, 2022년 청와대 개방 축하 등을 이유로 종묘제례악이 공연됐다.
국립국악원이 사상 처음으로 종묘제례악 지방 순회공연을 갖는다고 한다. 7월 7일 대전, 7월 15일 울산, 9월 1∼2일 대구에서다. 반가운 일이기는 하나, 한편으론 씁쓸하다. 국립국악원의 종묘제례악 공연은 오래전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등 해외 무대에서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에는 독일 베를린 등 4개 도시에서 순회공연을 치렀다. 그런데 국내 지방 순회공연은 처음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것도 어찌 된 셈인지 부산은 제외됐다. 부산에선 2014년 4월 국립국악원이 국립부산국악원에서 특별공연을 가진 적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무려 9년 전 일이다. 부산 사람들로선 서운할 수밖에 없다.
2023-03-14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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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두꺼비와의 공존
한국 근대문학에는 두꺼비를 소재로 한 작품이 적지 않다. ‘두껍아 두껍아 물 길어 오너라 너희 집 지어 줄게/두껍아 두껍아 너희 집에 불났다 쇠고랑 가지고 뚤레뚤레 오너라.’ 심훈의 소설 〈상록수〉(1935)에서 주인공 영신은 이렇게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 ‘두꺼비를 잡아먹은 능구렁이는 죽고, 그 죽은 마디마다 두꺼비 새끼가 난다는 이야기를 듣던 날 나는 첨으로 각혈이란 것을 했다.’ 김동리의 단편 ‘두꺼비’(1939)의 첫대목도 마찬가지다. 황순원 역시 ‘두꺼비’(1946)에서 처녀를 잡아가려는 구렁이에게 죽음으로 대항한 설화 내용을 작품 말미에 깔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두꺼비는 예로부터 ‘보은’과 ‘희생’의 메시지를 지닌 길한 동물로 통했다. 김동리나 황순원의 작품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온몸을 던지거나 수많은 새끼를 낳아 일제에 항거하는 상징물이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영수의 수필 ‘두꺼비’(1954)에서는 어머니가 손님 대접하듯 매번 마당에서 밥알이나 음식을 던져 주던 옛 풍경의 주인공이 된다. 외관이 다소 징그럽긴 해도 정겹고 친근한 두꺼비는 우리 민족의 집단무의식을 품은 대표적인 동물이다.
이즈음은 두꺼비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알을 낳는 산란기다. 부산 온천천에도 두꺼비들의 생태 둥지인 물웅덩이가 있다. 곧 온천천 산책로는 부화한 수만 마리에 달하는 새끼 두꺼비들의 대이동으로 새까맣게 뒤덮인다. 매년 펼쳐지는 숨 막힌 장관이되, 목숨을 건 비극의 광경이다. 대부분 사람들의 발길이나 자동차에 밟혀 죽기 때문이다. 이동하다가 뜨거운 햇볕에 말라죽기도 한다. 이른바 ‘로드 킬’로 전체의 3%가량만 살아남지만 두꺼비들의 악전고투는 늘 되풀이된다.
도심 속 두꺼비들의 처지가 올해는 더욱 고단해졌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지난해 시작된 온천천 오수관로 정비 공사로 연못 자체가 오염됐다는 것이다. 두꺼비들은 기름 범벅 속에서도 번식을 시도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모양이다. 그 맹렬한 본능이 숙연하다. 다행히 연제구가 온천천 연못 일대 생태환경을 파악하고 두꺼비 서식지 보존 방안을 찾기 위한 연구용역에 착수했다. 대표적 환경 지표종이요 기후변화 지표종인 두꺼비가 산다는 건 그만큼 온천천이 깨끗하다는 증거다. 사람과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찾아 도심 속 두꺼비 서식의 모범사례를 만들 순 없을까. 온천천의 행복은 어쩌면 여기에 답이 있는지 모른다.
2023-03-1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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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봄꽃 지도
‘봄이 왔나 봄.’ 요 며칠 포근한 날씨로 봄기운이 완연하더니 SNS에 산과 들로 봄맞이를 다녀온 이들이 봄소식을 전하는 글과 함께 올린 봄꽃 사진이 넘쳐 난다. 봄의 전령사로 불리는 매화와 산수유꽃 사진이 가장 많다. 꽃잎이 떨어지고 있는 하얀 목련과 연분홍 진달래, 노란 개나리 등 종류도 다양해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올해는 봄꽃이 하나 늘었다. 어린이집부터 대학까지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새 학기를 맞은 학생들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해맑은 아이들과 싱그러움이 생동하는 젊은이들의 환한 얼굴이 봄꽃이 아니면 무엇이랴.
올봄은 이처럼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몇 년 만에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의 방해 없이 온전하게 꽃구경에 나설 수 있어서다. 이미 11~12일 경남 양산 원동매화축제가 ‘원동매혹(梅惑)’을 주제로 4년 만에 개최돼 북새통을 이룬 행락객들이 매화의 유혹에 흠뻑 매혹됐다. 10~19일 전남 광양 매화마을에서도 축제가 열리고 있다. 11~19일 마련된 전남 구례 산수유축제는 코로나19로 이별했던 상춘의 마음과 노랗게 물든 꽃대궐을 다시 이어 준다. 축제가 세 번이나 취소된 아쉬움을 ‘영원불멸의 사랑’이란 주제에 담아 재개한 것이다. 지난주 남부지방에 만개한 매화와 산수유꽃은 이번 주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봄꽃의 대명사 격인 벚꽃의 개화는 이달 말께 남쪽을 시작으로 다음 달 중·하순까지 경기·강원도로 올라간다는 게 산림청의 예측이다.
부산시가 최근 국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지역 봄꽃놀이 명소와 봄축제, 개화 시기를 알려 주는 봄꽃 지도를 내놓아 관심을 끈다. 겹벚꽃 피는 부산민주공원, 황령산 벚꽃길, 매화 만개한 평화공원, 수선화와 유채꽃 가득한 오륙도 해맞이공원 등 23곳을 소개했다. 축제로는 금정구 윤산 벚꽃축제(26일), 강서구 낙동강 30리 벚꽃축제(31일~4월 2일), 사상구 삼락 벚꽃축제(4월 1일), 강서구 낙동강 유채꽃축제(4월 8~16일)가 대표적이다. 이 지도는 부산시 공식 SNS와 누리집에서 제공한다.
3~5월 내내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형형색색 온갖 꽃들이 나부끼며 그윽한 향기를 내뿜는 걸 만끽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 부산시가 추천한 장소나 가까운 야외로 나들이해 봄꽃의 성찬을 즐긴다면 고물가·고금리로 살기가 고달픈 마음에 위안이 되지 싶다. 함민복 시인은 ‘봄꽃’이란 시에서 ‘꽃에게로 다가가면/ 부드러움에 찔려/ 삐거나 부은 마음/ 금세/ 환해지고 선해지니/ 봄엔 아무 꽃침이라도/ 맞고 볼 일’이라고 노래했다.
2023-03-1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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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사라지는 녹차밭
차(茶) 이야기를 하면 당나라 때 사람 육우(陸羽)를 빼놓지 못한다. 평생 차를 연구하고 책을 저술해 ‘다도의 조상’, ‘다성(茶聖)’으로 일컬어진다. 770년께 쓴 〈다경(茶經)〉은 차의 교과서로 불리는데, 그는 여기서 “차는 지상 최고의 청순(淸純)을 상징한다”고 극찬하며 “차를 끓이고 마시는 기쁨은 도저히 속인들과 나눌 수 없다”고 말했다. 차의 오묘한 맛과 은은한 빛깔, 그리고 차를 달이는 사람의 청순한 마음을 아꼈다.
우리나라 선인들의 차 사랑도 이에 못지않았다. 고려 말의 문인인 정포(鄭誧, 1309~1345)는 “가득 채운 찻잔에 그윽한 맛이 짙으니, 마시자마자 상쾌하여 골수를 바꾸는 듯하다”고 노래했다. 이외에도 차를 사랑한 선인들을 거론하자면 끝도 없다. 그만큼 차는 오래전부터 선인들이 특별히 아낀 기호품이다. 이런 분위기는 지금도 면면히 이어진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뛰어난 품질을 인정받는 경남 하동이나 전남 보성의 녹차는 유구한 우리나라 차 문화의 높은 경지를 잘 보여 주는 농산물이다. 이런 연유로 이곳에서는 매년 녹차를 주제로 한 축제가 열려 많은 방문객이 우리의 전통 녹차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녹차 주산지인 하동의 녹차밭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녹차 재배는 잎을 직접 손으로 일일이 따야 하고, 제초 작업에도 손길이 많이 가는 대표적인 농사일인데, 갈수록 인력을 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생산을 포기하는 농가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민의 고령화와 함께 재배 비용도 더 들면서 최근 하동 곳곳에는 관리가 부실한 녹차밭이 예전에 비해 부쩍 늘었다고 한다. 하동군청의 집계에 따르면 2012년 1918가구에 달하던 녹차 재배 농가는 10년이 지난 2021년엔 1066가구로 거의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재배 면적 역시 30% 이상 줄었다.
전통 녹차의 위기는 생산뿐 아니라 소비 측면에도 닥쳤다. 사실상 ‘국민 음료’가 된 커피를 비롯해 다른 경쟁 음료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녹차의 영역은 갈수록 위축되는 모양새다. 요즘은 사찰에서도 점점 커피를 즐기는 추세라고 하니, 어떤 상황인지 알 만하다.
우리에게 전통 녹차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선 그 이상의 무엇이다. 만일 녹차밭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차와 차 문화 역시 사라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녹차밭 위기를 그냥 두고 볼 일 만은 아닌 것 같다.
2023-03-09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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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소방관의 기도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중략) 그리고/ 당신의 뜻에 따라/ 제 목숨이 다하게 되거든,/ 부디 은총의 손길로/ 제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아 주소서.”
‘소방관의 기도’라는 시의 일부다. 1958년 미국 소방관 스모키 린이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창문을 통해 어린이 3명을 확인했으나 건물 내 안전장치 때문에 구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자책감에 기도문 형태로 쓴 시다. 원작자 확인 전까지 작자 미상으로 전해져 왔는데 이제는 전 세계 소방관들의 복무 신조처럼 쓰인다.
국내에는 2001년 3월 4일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다세대주택 방화로 소방관 6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사를 계기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당시 순직한 김철홍 소방관의 책상 위에 이 시가 발견되면서다. “내 아들이 안에 있다”는 집주인의 한마디에 소방관 9명이 방화복이 아닌 방수복(비옷)을 입고 시뻘건 화마로 뒤덮인 건물에 진입했는데 건물이 무너져 화를 당했다. 대한민국 소방 역사상 최악의 참사다. 불과 사흘 뒤 부산 연제구 연산동 빌딩 화재 현장에서 김영명 소방관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이어졌다. 다단계판매 업체 사무실 방화였는데 사제 폭발물이 터져 화재 진압을 진두지휘했던 김 소방관이 숨지고 2명의 소방관이 부상을 당했다. 동래구 사직동 소방파출소 앞마당에서 진행된 영결식에서 김 씨의 부인이 열한 살 딸과 다섯 살 아들을 부둥켜 안고 오열해 영결식장이 눈물바다가 됐다.
김 소방관 순직 22주기 하루 전인 6일 전북 김제의 주택 화재 현장에서 인명 구조 작업을 벌이던 성공일 소방관이 목숨을 잃었다. 성 소방관은 4수 끝에 꿈을 이루고 임용된 지 10개월 남짓한 새내기 소방관이어서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소방관의 평균 수명은 70세로 공무원 중 가장 짧다.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다른 공무원보다 3배 가까이 많다. 강도 높은 야간 근무와 화재 진압 시 유해 물질 흡입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들의 희생에 우리가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국회의원이 된 오영환 소방관은 자신의 책 〈어느 소방관의 기도〉에서 “소방관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살아 있음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누구보다 절실하게 실감하는 일”이라고 했다. 오늘도 재난 현장에서 사투를 벌일 소방관들의 안녕을 빈다.
2023-03-08 [1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