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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착한 신호등
어느 날부터인가 동해남부선 옛 해운대역 앞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빨간색 신호등 위로 빨간색 숫자가 나타난다. 신기하다 싶어 쳐다보니 초록색으로 바뀌기까지 남은 시간을 초 단위로 표시한 것이다. 기다리는 답답함도 없애 주고 무단횡단 예방도 되겠거니 하다 성질 급한 부산사람들을 위한 배려인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부산경찰청에 알아보니 지난해 말부터 부산지역 31곳 80개 신호등에 설치됐거나 설치 중이다. 경찰청이 2022년 초 ‘적색 잔여시간표시 신호등’ 지침을 만들면서 8월 경기도 의정부시에 처음 등장했다. 각 시군구별로 예산 사정에 따라 단계적으로 설치 중이라는 설명이다.
신호등은 교통량 증가와 함께 진화를 거듭해 왔다. 첫 등장은 1868년 영국에서다. 자동차보다 마차가 많던 시절, 마차 운행을 통제하기 위해 런던의 의회의사당 앞에 설치됐다. 기둥 위에 빨간색과 초록색 유리판을 끼우고 가스램프를 얹는 형태의 이 신호등은 교통경찰이 직접 조작했다. 전자식 신호등은 1914년 미국 클리블랜드에 처음 등장했는데 붉은색 신호만 있어 불이 켜지면 정지하고 꺼지면 출발하는 식이었다. 1918년 미국 뉴욕에 오늘날과 비슷한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의 세 가지 색상 신호등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40년대 처음 생겼다. 서울 종로와 을지로에 설치된 당시 신호등은 경찰이 세 가지 색의 날개를 번갈아 튀어나오게 수동 조작하는 방식이었다. 해방 이후 미군에 의해 오늘날과 같은 점등식 신호등이 도입됐다. 기술 발전과 함께 신호등은 더 똑똑해지고 더 편리해지고 있다. 이는 보행자 안전 면에서도 반가운 일이다. 2000년대 초록색에 먼저 적용된 숫자 표시등도 전자부품업체 대표가 자신의 초등학생 딸이 보행신호에서 건너다 빨간불로 바뀌는 바람에 교통사고를 당한 걸 계기로 개발하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스몸비(스마트폰+좀비)족들을 겨냥한 바닥 신호등 설치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제 신호등은 교통 흐름과 안전을 위한 약속의 의미를 넘어 도시의 풍경을 바꾸는 상징물로까지 받아들여진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첨단화는 물론이고 디자인 측면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신호등 안에 톡톡 튀는 디자인을 새겨 넣은 세계 곳곳의 이색 신호등들은 해당 도시의 메시지를 전하는 플랫폼으로 활용되고 있다. 신호등의 유쾌한 진화를 도시 곳곳에서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23-02-0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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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구멍 난 양말
양말은 고대인이 거친 자연환경으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기 시작했다. 따뜻한 지역에서는 주로 마찰 완화를 위해, 추운 지역에서는 하체 보온을 위한 필수 품목이었다. BC200~100년 청동기 시대부터 인류의 의복과 함께 많은 변화를 겪었고, 발에 밀착되는 니트 형태로 발전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고대 이집트 안티노폴리스 무덤에서 발견된 AD300~500년경에 제작된 매듭 없는 샌들용 짧은 양말이다. 양말은 중세 이후에는 옷과 함께 인간의 패션 욕구를 표현하는 형태로 기능이 점차 확대됐다.
우리나라에 니트 양말이 전해진 것은 조선 후기 고종 7~8년경이다. 선교사들이 양말 짜는 기술을 도입한 데서 비롯됐다. 일제 강점기에 양장 차림이 선호되면서, 버선에 비해 간편하고 실용적인 양말이 급속히 대중화됐다. 1919년에는 미국 감리교선교회가 운영하던 개성 송도고등보통학교 실습실에 미국제 최첨단 자동 양말기계 16대가 설치돼 수공업에서 기계 산업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양말은 소설이나 시, 영화에서 신분의 상징으로도 활용된다.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는 고아 흙수저 출신 미혼모 여직공 팡틴의 처량함을 ‘헝겊모자와 무명으로 기운 코르셋, 뒤꿈치가 구멍 난 양말을 착용한 모습’으로 묘사됐다. 한국에서도 힘든 시절, 양말 구멍 사이로 삐져나온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던 기억, 전구에 끼워 바느질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일상적이었다.
구멍 난 양말이 한국 정치판에 뜬금없이 소환됐다. 국민의힘 당 대표 선출을 앞두고 안철수 의원이 토크 콘서트에서 해진 양말을 보여 준 데 대해 김기현 의원이 “구멍 난 양말을 신어야 할 만큼 가난한지 모르겠다. 저와 아내는 흙수저이지만, 구멍 난 양말을 신을 정도로 어렵지는 않았다”고 공격하면서부터다.
집권 여당 대표 후보가 걱정할 숭숭 구멍 뚫린 것이 양말뿐일까. 난방비와 고물가 등 민생 위기와 지방 소멸, 안보 위협 등 심상찮은 국내외 상황에서 다양한 정책 경쟁이 사라진 정당 민주주의의 구멍부터 메꿀 걱정은 급하지 않을까. ‘제때의 한 땀이 나중의 아홉 땀을 덜어 준다’는 속담이 있다. 양말에 난 구멍이 너무 커지기 전에 미리미리 고쳐야 수월하다는 교훈이다. 세상 물정을 아는 정당과 정치인이라면 살림살이가 나아진 요즘에는 구멍 난 양말은 쉽게 버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듯하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2023-02-0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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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온기 나눔
한국인은 불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용하는 민족이었다. 온돌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초의 기록이 중국 고대 역사서 〈구당서(舊唐書)〉에 나온다. ‘고구려인들은 겨울에 긴 구들(長坑) 아래 불을 지펴 방을 덥힌다.’ 지금도 경남 하동 칠불사에 가면 온돌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한 번 불을 때면 49일 동안 따뜻하고 90일간 온기가 남았다고 전해지는 아자방(亞字房)이 거기 있다. 온돌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가장 이상적인 온방 시스템이다. 세계적인 옥스퍼드 사전에 ‘ONDOL’이 한글 이름 그대로 올라 있다.
서구화 물결 속에서도 온돌은 살아남았다. 뜨끈한 구들의 전통은 사라졌지만 최신식 아파트조차도 온돌 난방 시설은 필수다. 바닥에 불을 피우는 대신 별도의 가정용 보일러를 이용해 난방수 온도를 조절하는 간접 난방 방식이라는 게 다를 뿐이다. 전통 구들과 연탄이 혼합된 방식에서 현재 주류를 이루는 가스보일러 난방까지, 연료의 특성에 따라 구조와 형식은 다양하다. 온돌의 미래는 적은 연료로 열효율을 얼마나 극대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파가 몰아칠수록 온돌의 기술적 진화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치솟는 가스값 때문에 난방비가 밥상머리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도시가스 요금은 액화천연가스 수입 가격과 연동되는데 이 가격의 급등 탓이 크다. 가뜩이나 힘든 서민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겨울나기 노하우에 몸부림친다. 이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근래 일본에서는 ‘웜 셰어(warm-share)’ 운동이 펼쳐져 눈길을 끈다. 집안에서는 한정된 공간에 모여 난방비를 아끼고, 밖에서는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가서 따뜻한 시간을 보내자는 캠페인이다. 사람들은 온기와 휴식 장소를 얻고 쇼핑센터 등은 소비자를 모을 수 있어서 서로 윈-윈이다. 영국은 아예 무료로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나라 곳곳에 마련했다. 시민을 위한 ‘웜 뱅크’, 그러니까 ‘온기 은행’쯤으로 불리는데 도서관, 교회, 커뮤니티 센터 등에 3000여 곳이 있다.
이런 모습에서 온기를 골고루, 오랫동안 나누는 ‘온돌의 정신’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나라는 온돌의 종주국이다. 추위에 취약한 사람들의 고통을 분담하고 온기를 함께 누리려는 공동체 의식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어쨌거나 코로나가 물러간 자리에 보이는 것은 정반대의 풍경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다시 이런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세상은 새삼, 아이러니하다.
2023-01-3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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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간병살인
“저는 나쁜 엄마입니다.” 수십 년간 돌본 중증 장애인 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인천의 60대 여성이 결심 공판이 열린 법정에서 울음을 쏟아 내면서 한 이야기다. 딸은 난치성 뇌전증에 좌측 편마비가 있었고 지적장애까지 앓는 뇌병변 1급 중증 장애인이었다. 엄마는 의사소통조차 힘든 딸의 대소변을 매일 받아내면서 38년 동안 극진하게 돌보았다. 하지만 지난해 1월 딸이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자 엄마의 지극정성은 결정적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여기서 끝내자는 극단적인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엄마는 지난해 5월 딸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자신도 수면제를 먹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가 아들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아들은 “누나도 불쌍하고 엄마도 불쌍하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이때까지 고생하고 망가진 몸을 치료해 주고 싶다”고 선처를 부탁했다.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하지만 인천지법은 지난 19일 선고 공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양형기준상 권고형인 징역 4∼6년보다 낮은 징역형을 선고한 것이다. 결심 공판에서 징역 12년을 구형했던 검찰도 이례적으로 항소를 포기했다.
오랜 간병생활에 지친 간병인이 피간병인을 살해하는 것을 간병살인이라고 한다. 부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19년 7월 거동이 불편한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80대 남성이 재판에 넘겨진 것이다. 가장으로서 평생 가족들을 부양한 그는 20년 넘게 투병하던 아내를 홀로 간병했다. 그러다 아내가 담낭암 말기 시한부 선고를 받자 고통받는 배우자를 위하고 자식들의 부담을 덜어 주려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부산지법도 그해 살인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형을 내렸다.
엄마라고 해서 딸의 생명을 결정할 권리가 없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인천지법은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들이 국가나 사회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오롯이 자신들의 책임만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번 사건도 피고인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고 선처 이유를 밝혔다. 2018년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이란 기획기사로 국제앰네스티언론상을 수상한 〈서울신문〉 탐사기획부 기자들은 “이 전쟁은 누군가가 죽어야만 끝난다. 한국 사회가 우군이 되어 주지 않는다면 가족 간 살인이라는 비극적인 이야기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 이어질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경고대로 간병 가족들의 극단적 선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2023-01-3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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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탈모 치료비 지원
요즘처럼 신체에 대한 관심이 높은 때 연령대를 막론하고 가장 피하고 싶은 외모의 변화로는 아마도 탈모가 첫손에 꼽히지 않을까 싶다. 풍성한 머리숱은 자신감의 원천이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듬성듬성한 머리숱은 한탄의 소리를 절로 나오게 한다. 탈모 기피는 지금만 그런 게 아니라 수천 년 전에도 그랬던 모양이다.
이미 기원전 1550년 무렵 고대 이집트의 의학 문서인 ‘에베르스 파피루스’에도 탈모 치료의 처방이 있는데, 하마 악어 수고양이 등의 지방을 섞어 머리에 바를 것을 권했다고 한다. 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염소 오줌을 사용했고, 고대 로마 때부터 대머리를 대표하는 인물로 알려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탈모 해결을 위해 시쳇말로 안 해 본 것이 없었다고 한다.
탈모와의 싸움에 무력감과 허망함을 수없이 느꼈을 옛 선인들의 눈물겨운 역사는 21세기라고 해서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다. 많은 연구로 새로운 치료제가 꾸준히 나오고는 있지만, 아직 근본적인 해결에 이르지는 못한 것을 보면 그렇다.
게다가 현대의 복잡한 사회 구조와 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점점 탈모 인구를 늘게 하고 있다. 장년층만이 아니라 청년들에도 탈모가 흔해지면서 이제 우리 사회의 관심사로까지 부상했다. 한창 일할 나이의 청년들이 탈모 때문에 자존감과 의욕을 잃고 심리적인 상실감에 빠진다면 참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포퓰리즘 논란으로 설왕설래했지만, 지난 대선 때 탈모 치료비 지원 얘기가 나온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치는 않다.
그런데 최근 들어 지자체 차원에서 탈모 치료비를 지원하는 곳이 늘고 있어 주목된다. 며칠 전에는 충남 보령시가 지역에 1년 이상 거주하는 만 49세 이하 시민에게 1인당 최대 200만 원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대구시의회도 지난해 12월 탈모 진단을 받은 19세~ 39세의 시민에게 치료 바우처를 제공하는 내용의 지원 조례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서울 성동구는 이미 작년 5월 전국 최초로 탈모 치료비 지원 조례를 제정해 명문화했다.
여기에 형평성과 의료자원 왜곡을 우려하는 지적도 나오지만, 시민 삶의 만족을 위한 지자체의 시도를 긍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평가야 어떻든, 탈모로 괴로워하는 이들이 자존감을 회복해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제 역할을 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 일단 다행이라 하겠다.
2023-01-2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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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초음속 여객기의 부활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전신인 미국항공자문위(NACA)가 1947년 ‘벨 X-1’이라는 항공기를 초속 360m로 비행시키는 데 성공했다. 인류 최초의 초음속 비행이었다. 바통을 영국 정부가 이어받았다. 1954년 초음속 여객기 계획을 발표했다. 프랑스를 끌어들여 1976년 마침내 ‘콩코드’라는 이름으로 상업 운항에 돌입했다.
콩코드는 경이로웠다. 음속의 2배로 날았다. 일반 여객기로 7시간 걸리는 파리-뉴욕 구간을 3시간 만에 주파했다. 당시 홍보 슬로건이 ‘떠나기 전에 도착하라’였다. 지구 자전 속도보다 빨라, 해가 져 깜깜할 때 파리에서 출발했는데 뉴욕에 도착하니 아직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콩코드는 단명했다. 2003년 폐기됐다. 연비와 소음이 문제였다. 초음속의 비행에는 부작용이 잇따랐다. 엄청난 연료가 필요했고, 소닉붐(sonic boom) 현상에 따른 굉음으로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기체 손상도 심해 유지·보수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콩코드의 실패 이후 초음속 여객기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 듯했다.
아니었다. 근래 다시 초음속 여객기 개발 열기가 뜨겁다. NASA는 지금 ‘퀘스트(QueSST) 미션’을 수행 중이다. ‘QueSST’는 ‘조용한 초음속 기술’(Quiet SuperSonic Technology)을 줄인 말. 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인 여객기를 내년 초 선보일 계획이다. 미국의 벤처기업 붐테크놀로지도 2025년 상용화를 목표로 초음속 여객기를 개발 중인데, 일본항공이 벌써 20대를 선주문해 놓은 상태다. 미국의 또 다른 기업 에어리언슈퍼소닉도 2026년 초음속 여객기 사업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0년 전 콩코드의 한계를 넘어설까. 엔진이나 기체 소재 등 기술적 부분은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된다. 차별과 소외의 문제다. 과거 콩코드 탑승권은 일반 여객기의 최고가인 일등석보다 훨씬 비쌌다. 초간단 입국 심사를 위한 전용 게이트는 물론 공항에서 목적지까지 헬리콥터 서비스도 제공됐다. ‘콩코드’(Concorde·화합)라는 말이 무색하게 차별적이었다. 새로 개발되는 초음속 여객기라고 해서 다르지는 않을 테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환경에 해를 끼치는 엄청난 양의 탄소 배출이다. 극소수 부유층의 욕망을 채워 주는 대가를 대다수 가난한 사람들이 치러야 할 판이다. 초음속 여객기의 부활이 반갑기보다 씁쓸한 이유다.
2023-01-26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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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진화하는 컨테이너
지난달 6일, 2022 카타르 월드컵의 한국·브라질 16강전이 열린 스타디움974는 경기 외적인 측면에서도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다. 이 경기장은 카타르의 국제전화 국가번호인 974에 맞춰 재활용 컨테이너 박스 974개를 조립해 지은 임시 구장이어서다. 모두 13경기를 치른 뒤 철거된 컨테이너들은 아프리카 등지에 기증돼 새 용도로 쓰이게 된다. 컨테이너의 변신인 게다.
이 같은 사례는 숱하다. 컨테이너가 주택과 사무실로 사용된 지 오래다. 최근엔 소규모 실내 작물 재배용으로 개조돼 비닐하우스를 대신하기도 한다.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컨테이너 활용은 유명하다. 영화제 때마다 컨테이너로 ‘비프 빌리지’ 같은 복합 문화공간을 만들어 야외무대 인사, 토크쇼, 핸드프린팅 등 부대행사를 진행한다.
1956년 미국에서 첫선을 보인 컨테이너는 화물 운송용으로 제작된 기물. 폭 8피트, 높이 8.5피트에 길이 20피트(약 6m)와 40피트짜리가 있다. 현재 전 세계 컨테이너의 90% 이상이 CIMC, 둥펑, CXIC, FUWA 등 중국 기업에서 생산된다. 1990년대 국내 컨테이너 제조업계가 세계 점유율 1위를 차지했지만,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밀려 2000년대 들어 사실상 생산을 포기했다.
컨테이너가 이젠 우리나라 기술에 힘입어 변신을 넘어 똑똑한 물류 용기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 17일 해양수산부는 2년간 추진해 온 ‘컨테이너 IoT(사물인터넷) 보급’ 시범사업을 완료했다. 이로써 선사와 화주는 컨테이너에 부착된 IoT 장비를 통해 컨테이너 위치와 내·외부 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해수부는 또 동아대 스마트물류연구센터와 IoT, AI(인공지능),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컨테이너’ 개발에 나서 실용화 단계에 있다. 이는 실시간 화물 모니터링과 위치 추적, 컨테이너 내 온도와 습도 원격 제어도 가능한 최첨단 시스템이다.
이에 앞서 농촌진흥청은 지난해 11월 온·습도는 물론 산소·이산화탄소 농도를 조절해 농산물 신선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CA 컨테이너’ 개발에 성공해 신선 농산물의 선박 수출길을 열었다. 그간 대부분 농산물 수출은 선도 유지를 위해 운임이 비싸고 빠른 항공기를 이용해야만 했다. 해수부와 농진청의 컨테이너 신기술은 화물 수송의 안전성과 신뢰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전망이다. 글로벌 기술 패권전쟁 시대에 한국 해운·물류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수출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초격차 기술이다. 상용화가 빨리 이뤄져 세계 시장을 주도하길 기대한다.
2023-01-2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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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3만 원권 지폐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의미의 지폐가 발행된 것은 1950년의 일이다. 1950년에 설립된 한국은행이 7월 22일 1000원권과 100원권을 처음 발행했다. 1000원권에는 이승만, 100원권에는 광화문이 새겨졌다. 1953년 한국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혼란 타개를 위해 긴급통화조치를 단행, 화폐 단위를 원에서 환으로 변경하고 100·500·1000환권 지폐를 발행했다. 당시 지폐에는 모두 이승만 초상이 들어갔는데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물러난 뒤 세종대왕으로 바뀌었다.
현재의 액면 체계가 갖춰진 것은 1970년대 들어서다. 1962년 화폐개혁으로 환에서 원으로 복귀 후 이순신과 거북선을 새긴 500원권이 고액권 지폐 역할을 했다. 고액권 필요성으로 1972년 5000원권, 73년 만 원권이 발행된데 이어 75년에는 1000원권도 나왔다. 500원권 지폐는 1982년 500원 짜리 동전 등장으로 사라졌다. 만 원권 도안은 애초 석굴암과 불국사였는데 종교계 등 반발로 세종대왕으로 바꿔 발행했다.
‘세종대왕’ ‘배춧잎’이란 별칭으로 36년간 고액권 지위를 누렸던 만 원권은 2009년 5만 원권에게 지위를 내줘야 했다. 한은은 만 원권 발행 후 물가는 12배, 국민소득은 150배 상승했는데 최고액권 만 원 유지로 경제 주체들이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물가상승과 ‘차떼기’(뇌물수수), 위조 범죄를 부추긴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찮았다. 지하경제 주범이라는 의혹도 여전하다. 2011년 불법 인터넷 도박업자가 마늘밭에 묻어 둔 5만 원권 110억 원이 굴삭기 작업 중 발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5만 원권 발행 당시 김구 선생과 대동여지도를 새긴 10만 원권이 준비됐다 무기한 보류되기도 했다.
이번 설 연휴 3만 원권 발행이 화제가 됐다. 가수 이적이 인스타그램에 “만 원에서 5만 원은 점프 폭이 너무 크다”며 “조카 세뱃돈으로 호기롭게 5만 원권을 쥐어 주고 돌아서 후회로 몸부림친 수많은 이들이 3만 원권 발행을 열렬히 환영하지 않겠느냐”는 글을 올린 후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으면서다. 만 원권 세 장을 세어 줄 수도 있겠지만 우리 정서상 좀스럽다는 이야기다. 5만 원권 등장 후 씀씀이가 커졌고 경조사비 부담도 늘었다는 이야기도 뒤따랐다. 하태경 의원은 국회 결의안을 추진하겠다고 받았다. 가뜩이나 고물가와 경제난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데 세뱃돈 걱정까지 해야 하는 서민들의 삶이 고달프다.
2023-01-24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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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설캉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없는 첫 설이 다가왔다. 지난해 말 각국이 코로나 봉쇄 조치를 완화하면서 공항을 열고 해외 입국을 허용하기 시작하고, 정부도 설 직후 실내 마스크 해제를 검토하면서 오랜만에 설다운 설을 맞게 됐다. 지난해 설을 앞두고 국무총리가 “안전과 건강을 위해 고향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대국민 담화를 통해 수차례 부탁했던 것과는 딴판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는 온 가족이 다 함께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 모여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 홍동백서(紅東白西) 차례상을 차리고, 성묘하러 가는 풍경이 일상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3년간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가족 전체가 모이지 않고 각자 소규모로 명절을 보내던 풍습이 엔데믹에도 오히려 자리를 잡고 있다. 게다가, 설 연휴를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로 삼으려는 사람들이 늘면서 민족 대이동과 고향 찾기라는 설 풍속도를 바꿔 놓고 있다. 이런 새로운 설 풍속을 빗대 ‘설캉스(설+바캉스)’란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다. 실제로 이번 설 연휴 기간에 기획 여행 상품 예약이 전년 설 연휴보다 4배 이상 증가했다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와 일본에 해외 여행이 집중되고 있고, 해운대와 제주도 등 국내 호텔에서도 설캉스를 즐기려는 관광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2000년간 이어진 관성으로 설이면 가족과 친척부터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집에서 강정까지 직접 만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정구지전을 얇게 펴서 노릿하게 굽는 어머니의 손맛은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그 음식은 차례상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온 식구들이 모여 앉아 함께 행복했던 시간을 확인하는 타임머신이기 때문이다.
이해인 수녀는 시 ‘설날 아침’에서 “일 년 내내 꼬까옷 입고 살 줄 알았던/ 어린 시절 그 집으로 다시 가고 싶네요/ 식구들 모두 패랭이꽃처럼 환히 웃던/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고 싶네요”라고 설날 풍경을 되새겼다. 갈수록 개인화되면서 가족이 함께할 시간이 줄고 있지만, 탕국에 생선, 나물 반찬으로 함께 먹고, 어른들께 세배하고 덕담을 나누는 설 풍경이 여전히 그립다. 세상이 변하더라도 사랑하는 가족과 시간을 함께하면서, 먼저 간 가족을 추억하는 설의 풍습과 정신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 설에는 우리 모두 가족과 함께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2023-01-1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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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한우가 먹고 싶을 뿐!
조선 임금 연산군은 소고기라면 사족을 못 썼다. 날마다 소 10마리를 잡아 요리로 올리게 했다. 대단한 미식가라 소의 태(胎)를 유달리 좋아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이야기다. 사대부들의 소고기 애착도 엄청났다. 중종의 외척 김계우는 한 달에 잡아먹은 소가 6마리였다고 한다. 광해군 때 실학자 이수광은 “(선조 때 판중추부사를 지낸) 원혼이 93세까지 살아 신선이라 불렸는데 평생 소고기를 즐겼기 때문”이라며 소고기를 예찬했다.
고개를 갸웃하는 이가 많을 테다. 조선은 소고기 먹는 것을 국법으로 엄격히 제한했던 것이다. 소는 제사에 올렸던 신성한 희생이면서 동시에 농사에 없어서는 안 될 동물이었다. 한 해 농사를 망치는 원인으로 한재(旱災)보다 소 마릿수 감소를 더 위험하게 여겼을 정도였다. 우금령(牛禁令)이 그래서 나왔다. 지금으로 치면 소 도축 금지령인데, 고려시대부터 간헐적으로 내려졌다. 조선시대엔, 평균으로 치면 거의 20년에 한 번 꼴로 내려졌는데, 태형에서 파직, 유배까지 형벌이 다양했다.
하지만 유명무실했다. 우금령에도 “소가 다쳐서 일을 못해 잡을 수밖에 없다”는 식의 핑계로 소 탐식을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혹 적발되더라도 돈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았다. 숙종이 그런 세태를 한탄하며 한 말이 있다. “우역(牛疫)으로 살아 남은 소가 없다. 그런데도 소고기 맛을 으뜸으로 쳐서 먹지 않으면 못 살 것처럼 여기니 어찌해야 좋은가.”
그렇게 보면 수년 전 한 역사저술가의 “조선시대 1인당 소고기 섭취량이 현대 한국인보다 많았다”는 주장이 엉뚱하게만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대부 같은 지배층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하층민이라고 그 감미(甘味)를 왜 몰랐겠냐만 하루살이조차 겨운 그들에게 소고기는 언감생심이었을 테니까.
근래 사육 농민의 근심이 크다. 산지 한우 가격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비해 30% 이상 떨어졌다고 한다. 희한하게도, 산지 한우 가격은 폭락했는데 시장이나 음식점에서의 한우 고깃값은 이전과 별반 차이가 없다. 유통 과정의 문제라고는 하는데, 여하튼 조선의 ‘소’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한우’(그 유전자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는 여전히 서민이 가벼운 마음으로 접할 수 있는 식재료가 아니다. 없는 이도 한우가 먹고 싶은 건 가진 자와 매일반인데, 솟값과 고깃값이 따로 노는 이런 모순이 새삼 얄궂고 야속하다.
2023-01-1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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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새해 여는 들놀음
정월 대보름달이 휘영청 뜨면 사람들은 들판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능청스런 탈바가지를 덮어쓴 이들의 난장 마당이 거기서 펼쳐졌다. “우리 영감 못 봤소?” 집 나간 지 오래된 영감을 찾아 나선 할미의 초라한 몰골. 그을린 얼굴에 두 눈은 아래로 축 처지고 볼때기는 비뚤어졌는데 입은 왼편에 붙었다. 그래도 입담만은 사뭇 장중하기 그지없다. 극에 몰입한 관객들은 질펀히 울고 웃더니, 한숨짓다가 폭소한다. 막판에는 아예 탈꾼과 관객이 같이 섞여 한바탕 춤을 춘다. 그 표정들이 훤한 보름달마냥 그리 밝을 수가 없다. 우리 조상들이 새해를 맞는 모습은 이렇게 신명 났다. ‘수영야류’ 이야기다.
야류(野遊)라는 말에서 짐작되듯, 이는 ‘들놀음’ 혹은 ‘들놀이’를 가리킨다. 들로 길로 나가 길놀이도 하고 함께 춤도 추고 탈놀음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원래는 경남 내륙 지방의 오광대놀이가 전해진 거라는데 수영에는 수영야류가, 동래에는 동래야류가 전승됐다. 오광대놀이는 전문적인 광대 패들이 펼친 연희다. 수영야류나 동래야류는 가무와 풍류를 즐기던 우리 지역 토박이들이 이를 받아들여 토착화한 것이다. 정월 대보름날 오전에 고사를 지내고 달 밝은 밤 넓은 마당에 횃불을 밝히면서 밤을 도와 놀았던 그 신명의 역사가 200년 이상이다.
야류의 핵심은 탈놀음인데, 악사의 굿거리장단에 춤과 재담이 곁들여진다. 수영야류는 양반, 영노(사자를 닮은 괴수), 할미·영감, 사자춤이 나오는 네 마당 구성이다. 양반의 위선을 꼬집는 말뚝이의 해학, 할미의 질투와 실수로 빚어지는 불행을 승화시킨 익살, 그것을 껴안은 흥과 멋이 통렬했다. 1930년대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된 수영야류는 1960년대 지역민들을 중심으로 대사·가면·춤사위·가락 등의 원형이 정비된 뒤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됐다.
수영야류 전승에 이바지해 온 조홍복 선생이 얼마 전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수자로 보유자로, 40년 이상 수영야류의 보존과 전승에 헌신한 생이었다. 지난해 11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한국의 탈춤 18개 속에는 수영야류와 동래야류도 포함된다. 우리 탈춤이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은 데에는 고인을 비롯한 전승자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야류는 새해 정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는 열린 놀이, 종합예술이다. 우리 전통예술이 공동체의 가치를 일깨우고 새로운 문화 브랜드로 비상하는 올 한 해를 꿈꿔 본다.
2023-01-1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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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꼬리 자르기
도마뱀은 사람에게 붙잡히거나 천적의 습격을 받으면 재빨리 꼬리를 자른다. 안전하게 도망치기 위해서다. 절체절명의 위험에서 벗어나려고 스스로 신체 일부를 자르는 것을 ‘자절 행동’이라고 한다. 여치와 게, 가재도 위기의 순간에 다리를 떼놓고 달아난다.
도마뱀의 자절 행동에서 연유한 말이 ‘꼬리 자르기’다. 이는 가진 계층이나 기관·단체가 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전가하거나 희생양을 만들어 처벌을 피하면서 기득권과 조직을 유지하는 수법이다. 국립국어원의 개방형 한국어 지식대사전인 ‘우리말샘’에 올라 있을 만큼 만연한 풍조다. 우리말샘은 꼬리 자르기를 ‘구성원의 잘못으로 집단의 이미지가 실추되거나 집단이 감춘 잘못 따위가 드러나 전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해당 구성원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고 내쫓아 위기를 모면하는 일’로 설명한다.
거악(巨惡)이 연루된 부정부패와 권력형 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 하위 실무자나 중간 간부 같은 이른바 ‘깃털’만 단죄하는 수준에서 봉합돼 의혹이 명쾌하게 해소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핵심 세력에 근접하지 못한 수사 결과에 국민들은 꼬리 자르기라며 분개하기 일쑤였다. 이생진 시인은 그 심정을 ‘욕지거리-도마뱀’이란 시에서 읊었다. ‘내 손에 남은 도마뱀의 꼬리/그 꼬리에 남은 몇 마디 욕지거리/흙 속에 묻어도 기어나오는 욕지거리/도마뱀은 다른 꼬리가 생겨서 잊고 있을 때도/나는 그 욕지거리가 마음에 걸렸다.’
지난해 1월부터 시행 중인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 현장의 꼬리 자르기 폐단을 없앨 목적으로 도입됐다. 사망 1명 이상 등의 중대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의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안전조치 소홀 책임을 물어 징역 1년 이상 중형을 내리도록 한 게다. 최고위층을 엄벌해야 증가하는 산재를 막을 수 있다는 여론이 작용했다.
MZ세대가 상식·공정·정의를 부르짖는 지금도 꼬리 자르기 행태는 여전하다. 159명이 숨진 이태원 참사에 대한 경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결과를 보면 그렇다. 지난 13일 용산구청장과 경찰서장 정도의 선에서 죄를 묻고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청장 등 윗선은 무혐의로 종결한다는 경찰 발표가 나오자 꼬리 자르기 논란이 거세다. 유가족은 물론 국민 다수가 납득하기 힘든 결과인 까닭이다. 봐주기 수사로는 사고 재발 방지대책 마련과 경각심 고취는 요원하다. 이어질 검찰 수사에선 확실한 책임을 규명해 나라의 근본을 바로 세우겠다는 사명감이 필요하다.
2023-01-1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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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한국인의 명품 사랑
지난해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과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매출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호황을 주도한 것은 명품 매장 매출 증가라는 것이 백화점 측 설명이다. 3대 명품 브랜드 ‘에루샤(에르메스·루이 비통·샤넬)’ 매장에 개장 전부터 대기 줄을 서는 ‘오픈 런’은 이제 국내에서는 낯익은 풍경이다. 지난해 10월 수도권 한 백화점 에르메스 매장에서는 8년 만에 국내에 신규 매장을 오픈한다는 소식에 개장 이틀 전부터 대기 줄이 생기기도 했다. 대기 줄을 대신 서 주는 아르바이트까지 등장할 정도다. 한정판이라는 이유로, 보복 소비라는 이름으로, 또는 플렉스를 위한 한국인들의 명품 사랑은 유별나다.
그 중심에 떠오른 2030 MZ세대들의 ‘플렉스 문화’는 결혼 풍속까지 바꿔 놓았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청혼할 때 남성이 여성에게 명품 백을 선물하는 ‘프러포즈 백’이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았다. 청혼할 때 ‘다이아몬드 반지’는 옛날 이야기가 됐다. 여자 친구에게 샤넬 백을 선물하기 위한 ‘명품 계’까지 생겼다고 하니 격세지감이다.
명품이 명품이 된 것은 원래 품질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치품화하면서 거품이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 줄까지 서니 콧대가 높아진 업체들은 계속 가격을 올리고 ‘오늘이 제일 싸다’는 심리는 또 대기 줄로 이어지는 것이다. 과시적 소비로 가격이 높아질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베블린 효과까지 가세한다. 이쯤 되니 명품 좋아하는 한국인을 글로벌 호구라고 비꼬는 말까지 나온다. 해가 바뀌자 에르메스가 10% 안팎으로 가격을 올렸다. 지난해 글로벌 복합 위기에도 샤넬과 프라다는 네 번이나 가격을 인상했다.
지난해 한국인이 세계에서 명품 소비를 가장 많이 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모건스탠리는 한국인의 2022년 명품 소비를 전년보다 24% 늘어난 168억 달러(약 20조 9000억 원)로 추산했다. 1인당 325달러(약 40만 4000원)로 중국 55달러와 미국 280달러보다 많다. 이를 놓고 한국인의 과시욕 등 다양한 분석과 반응이 있지만 어쨌든 명품 소비도 하나의 구매력 지표라 생각하면 한국의 경제적 위상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집값 급등으로 결코 집을 살 수 없다는 상실감에 빠진 MZ세대들이 집을 포기하는 대신 명품을 사는 데 저축했던 돈을 쏟아붓고 있다는 일부의 분석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2023-01-15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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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조지문(弔紙文)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기자(記者) 모씨(某氏)는 두어 자 글로써 지자(紙者)에게 고(告)하노니, 인간의 볼 것 가운데 종요로운 것이 전단(傳單)이로대, 세상 사람이 귀히 아니 여기는 것은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바이로다. 이 전단지는 한낱 작은 물건(物件)이나, 이렇듯이 슬퍼함은 나의 정회(情懷)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아깝고 불쌍하다. 눈물을 잠깐 거두고 심신(心神)을 겨우 진정하여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노라.’
조선 순조 때 유씨부인(兪氏夫人)이 지은 국문체 고전 수필 ‘조침문(弔針文)’의 형식과 내용을 따라 ‘전단지의 종언(終焉)’을 위로해 보았다. 조침문은 부러진 바늘을 의인화하여 쓴 제문(祭文)으로 교과서에도 실렸다. 롯데마트가 1998년부터 25년 가까이 써 온 종이 전단지를 모바일 전단으로 전면 대체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만감이 교차했다. 롯데마트는 친환경 경영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종이 전단지를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덕분에 연간 150t의 종이 사용을 줄일 수 있게 됐으니 어쩌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유통업계를 비롯해 다른 분야에서도 연쇄적으로 종이 전단지가 줄어들 것을 생각하면 인쇄업계가 받는 충격은 적지 않을 것 같다.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전단지는 종이 신문과는 떼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신문 배달은 보급소에서 전단지를 넣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신문을 펼치면 그 안에 두터운 전단지 뭉치가 들어 신문이 묵직하게 느껴지던 호시절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전단지 광고는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고 한다. 일본은 신문과 전단지의 역사가 우리보다 훨씬 빠르다. 일본 최초의 일간지는 1870년부터 발간된 〈요코하마마이니치 신문〉이고, 1872년 〈동경일일신문〉에서 전단지 광고 배포가 시행되었다고 한다. 일본에 비하면 우리는 참으로 변화무쌍하다고 하겠다.
신문을 비하해서 ‘찌라시’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찌라시는 일본어로 전단지를 부르는 이름으로 ‘뿌리는 것’이란 뜻이다.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전 머니투데이 기자) 씨가 언론사 간부에 이어 기자 수십 명과도 금전 거래를 했다는 정황이 나왔다. 사실이라면 짜라시에 기레기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숨이 넘어가는 종이 전단지는 정신 차리고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다음 차례는 신문이라고 지목하고 있다.
2023-01-1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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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은행원 희망퇴직
1960, 70년대 우리나라의 고도 경제성장과 함께 주목받기 시작한 대표적인 업종으로 건설업과 은행업을 꼽을 수 있다. 본격적인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대기업 직원과 은행원은 유망 직종이자 당시 결혼 상대자 1순위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은행원은 화이트칼라의 대명사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에어컨이 흔치 않던 시절, 은행 점포는 넓고 깨끗한데다 선풍기 바람과는 차원이 다른 시원한 냉기가 흘러나왔다. 은행원들은 깔끔하게 다려진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갖춰 맨 정장 차림으로 근무했다. 급여에도 한 치 어김이 없었으니, 일반인의 평가가 높았다.
세월이 흐르며 선호가 변하기는 했지만, 은행원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급여에 안정적인 직장의 매력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젊은이가 은행의 신입 직원 공채에 도전장을 내민다.
최근에는 코로나 시기 이전으로 은행 영업시간 정상화 논란과 맞물려 역대급의 ‘희망퇴직 러시’로 이목을 끌고 있다. 은행권은 우리 사회가 거의 코로나 이전으로 복귀하는 상황에서 아직도 오전 9시 30분~오후 3시 30분인 영업시간 단축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불편을 호소하는 여론에도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이런 때에 은행권이 역대급의 좋은 조건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자, 지원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사실 말이 번듯해 ‘희망퇴직’이지, 조직을 떠나는 사람에게는 일말의 회한이 남을 수밖에 없는 게 일반적인 풍경이다. 그런데 은행권의 이번 희망퇴직에는 수억 원에 이르는 위로금에 오히려 희망자가 줄을 잇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조건 좋을 때 떠나자는 것인데, 은행권에선 3000명 이상이 떠날 예정이라고 한다.
코로나 시기 은행권의 엄청난 실적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이를 바탕으로 떠나는 직원을 후하게 대하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은행의 역대급 실적이 자체 노력이 아니라 금리 정책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이다. 높은 대출 금리와 낮은 예금 금리 기조인데, 바로 국민의 경제적 희생에 다름 아니다. 희망퇴직 러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경에 부러움과 함께 씁쓸함이 감도는 배경이다.
코로나만 넘기면 좀 나을 줄 알았는데, 곧바로 또 경기 침체가 덮쳤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국민의 일상이다. 우리 국민들에도 한 번쯤 ‘희망퇴직 대박’이 터졌으면 좋겠다.
2023-01-11 [1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