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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도시에 대한 동물적 상상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서 주인공 게오르그는 어느 날 제 몸이 거대한 벌레로 바뀌었음을 알아채고 비로소 자신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방 밖의 식구들은 아무 관심이 없으니 철저하게 홀로이다.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모든 궁리와 방안은 오로지 자신만의 몫이며, 울이 되었던 타인과의 관계란 무척 허무한 것임을 알게 된다.
‘엘리펀트 인 더 룸(elephant in the room)’. 코끼리가 방에 들어가는 엉뚱한 상상 또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거대한 코끼리가 좁은 방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우선 둔한 걸음걸이로 인하여 방안의 가재도구들이 박살 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러한 상상은 영화 쥬만지에서 한 장면으로 연출되었다. 마술 가방에서 나온 야생동물들이 집을 향하여 돌진하고, 관객들은 숨을 죽여야만 했다. 갇힌 코끼리의 답답함은 또 어떠할까?
코끼리를 방에 넣는 상상에서 사람들은 생각한다. 집과 방이란 사람들의 물건과 코끼리의 언발란스를. 그러한 생각이 코끼리를 다시 들과 숲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데에 미친다면 영화의 교훈은 성공이다. 반면, 좁은 방 안에서 점점 몸집이 커져 몇 시간이 지나면 마침내 방 안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할 것을 상상하는 게오르그의 실존적 허무는 어떠했을까? 방 안의 코끼리가 육체적 괴로움에 어쩔 줄 몰랐다면, 카프카의 게오르그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명절을 맞아 부모님 산소로 향하는 길. 부산의 동쪽 끝에서 서쪽으로 향하면서 문득 카프카의 벌레와 쥬만지의 코끼리를 생각하였다. 이 도시가 산을 등지고 바다를 안고 있기에 유유히 차 안에서 도시 전체를 관망할 수 있다. 마치 방 안의 코끼리를 방 관찰하듯이.
장산, 백양산, 황령산이 아니더라도 영주동, 수정동 산복도로에만 올라도 수많은 구릉과 골로 연속된 도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의 나처럼 차를 타고 해안도로, 광안대교, 부산항대교, 남항대교, 을숙도대교를 지나다 보면, 마치 연의 꼬리와 같이 길고 독특한 도시가 한눈에 든다. 사는 곳을 이처럼 직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도시가 또 있을까?
도시 풍경은 시민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건축가와 도시계획가가 먼저 안목을 가져야 함은 물론이지만 오랜 도시의 역사에서 보았듯이 도시계획만이 도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건물 하나하나가 모여 도시가 이루어지듯 결국 시민들의 안목은 중요하다. 도시 사랑. 그것은 참된 시민의 의무이며 역할이다.
시민들이여! 질식할 정도로 꽉 차 버린 이 도시를 관찰해 보시라. 구릉과 골의 구분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 구릉은 깎이고, 골은 모두 콘크리트로 덮였다. 천혜의 해변은 50~60층 건물의 앞마당에 불과하며, 육지의 끝마다 건물이 들어차 시민들은 길을 잃었다. 천편일률적으로 길기만 한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특성을 잃고, 샌프란시스코의 아름다운 언덕과 코파카바나 해변이 겹쳐보곤 하던 나의 환상은 기억의 저편에 있다.
나는 산과 바다에서 이 도시를 바라볼 때마다 카프카의 벌레와 쥬만지의 코끼리를 발견하게 된다. 질식할 만큼 꽉 차버린 집들과 줄어드는 도시의 인구.
용적의 욕심에 건물은 도로에 큰 그늘을 만들고, 좁은 틈으로 건물 사이 바람은 드세어졌다. 사람들은 높은 집과 좁은 방에 갇혀 버렸고, 밖으로 나오면 길을 잃는다. 재개발 열풍이 도시의 질서와 사람의 삶을 흐트려 놓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하물며, 집이 늘어나자 사람들이 다른 도시로 떠나버리고, 욕망의 찌꺼기가 쌓인 곳에 점점 불빛이 사라지고 있으니 더 큰일이 아닌가.
2023-02-02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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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어바웃 타임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큰 아이는 방학에도 학원 다니기에 바쁘다. 최근 우리는 아이와 대학 입시에 대해 말한다. 아이는 몇 달 전과 달리 진지해졌다. 그 태도만 봐도 아이에게 한 살을 더 먹는 일의 무게가 유난히 큰 한 해 같다.
나는 가끔 큰 가방을 메고 학원 앞에 내리는 아이가 부러울 때가 있다. 누구나 그렇게 말하겠지만 나는 열일곱 살이 좋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예쁜 숫자다. 열일곱은 무언가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나이, 실수해도 되는 나이, 실패가 너무 당연한 나이, 실연을 당할 수 있는 나이, 아무것도 늦지 않은 나이라고 아이에게 말한다. 아이는 공부해야 되는 나이이잖아요, 라고 떨떠름하게 대답한다. 아이의 스트레스가 느껴진다. 나는 그런 아이의 스트레스마저 부럽다. 아이처럼 누군가 학원 앞에 나를 내려다 주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해줬으면 좋겠다. 그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학원을 마치고 친구들과 먹던 떡볶이, 함께 보던 영화, 서로 주고받던 편지 같은 좋은 것들만 떠오른다. 내 말에 아이는 그게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럼 엄마도 학원 다녀요, 라고 말하고 학원으로 쌩하니 들어가 버린다. 학원이 아니라 그 나이 때만 할 수 있는 일들이 부러운 거였는데 아이에게는 놀리는 것처럼 들렸나 보다.
올해는 만 나이가 도입된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모두 젊어진다는 슬로건이 눈에 띈다. 인터넷에서 만 나이 계산 프로그램에 들어가 내 나이를 확인했다. 두 살이 어려졌다. 열일곱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았다.
만 나이 도입을 두고 호칭의 문제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생일이 지나면 친구가 아니라 형이 되는 일이 애매해질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친구 사이의 호칭은 같은 해에 학교에 들어왔는냐에 따라 많이 결정되므로 크게 영향을 끼칠 것 같지는 않다고 한다. 또 만 나이 도입에 예외는 있다. 정년이나 국민연금 수령에도 변화가 없다고 한다. 청소년 보호법과 병역법 그리고 초 중등 교육법은 기존 연 나이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한다. 술이나 담배를 사는 나이와 입대를 하는 나이, 초 중등학교에 입학하는 나이는 연 나이로 한다고 한다.
내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 나이를 반긴다. 나도 내 나이가 변함없음을 말하고 기뻐한다. 한두 살 어려지는 일이 가능한 이런 일은 다시없을 일이지 않는가. 나는 지난해 나이를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 그건 선물 같다. 비록 변하는 건 숫자일 뿐이고 내 신체 나이와 기억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시간 여행자가 된 것처럼 두 번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자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다. 그는 과거로 돌아가 놓친 사랑과 재회하고 잘못된 일들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영화는 우리 인생이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시 돌아간 과거에서는 다른 변수와 결과가 발생한다. 다시 살아봐도 우리가 예상치 못한 전혀 다른 곳으로 인생은 우리를 데려놓는다.
“이제 난 더 이상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다. 하루를 위해서라도 나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이 멋진 여행을 즐길 뿐이다.”
영화는 시간을 되돌릴 필요가 없는 우리의 삶이 소중한 이유를 알려준다.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열일곱을 지나지 않고 자신의 나이에 이르지 않는다. 모두에게 그 나이가 있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모여 인생이 여행이 되는 것 같다. 열일곱 아이의 시간도 나의 시간도 그래서 다 좋은 나이라고 생각된다.
2023-01-26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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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귤 한 박스
결혼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사 외에도 조상의 산소에 가서 지내는 묘사(墓祀)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먼 친척들이 산소에 모여 제단에 상을 차리고 절을 하는 일은 텔레비전에서나 보여주는 옛 풍습인 줄로만 알았었다. 이를테면 ‘○○ 고택의 종갓집을 찾아서’ 하는 식의 별 인기 없는 프로그램 말이다. 친정집에서는 제사를 지내지 않았고, 어쩌다 마음이 내키면 명절날 작은 상에 평범한 음식 몇 가지와 조부모가 생전에 좋아하셨다던 초콜릿, 담배 등을 올려두고 절을 하는 게 전부였다. 가진 경험이 그뿐이었으므로, 나는 그런 방식이 일반적인 거라고 생각했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것처럼 이것저것 갖추어 제사를 지내는 집은 요즘 드물 것이다, 라고. 그런데 세상에, 결혼을 하고 첫 제삿날이 되니 어디선가 병풍과 제기(祭器)가 나왔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이 차려지고 홍동백서 어쩌고 하는 말이 들렸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웠는데 묘사에 따라갔더니 문중의 어른들이 도포를 입고 유건까지 쓰고서 제사상 앞에서 축문을 낭독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마치 관광지의 체험 행사에 온 것처럼 신나게 사진을 찍어댔다. 문중 어른들은 그런 나를 보며 속으로 혀를 찼을지도 모르겠다. 일을 하러 온 거냐, 놀러 온 거냐, 하고.
묘사에 쓸 음식은 집안마다 순서를 정해 돌아가면서 준비를 했다. 당연히 우리 차례도 돌아왔다. 묘사 하루 전날 음식 준비를 도우러 시가에 갔더니 시어머니가 나에게 근처 마트에 함께 다녀오자고 하셨다. 장을 좀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함께 따라나서면서 평소와 좀 다르시네, 하고 생각했다. 시어머니는 웬만해선 내게 일을 잘 시키지 않는 분이었다. 평소에 부엌일을 돕겠다고 옆에서 서성이면 언제나 “할 거 없다.”는 말이 전부였다. 내가 가사 일에 그다지 소질이 없음을 일찍이 간파하신 것일 수도 있지만, 나를 딸처럼 아끼는 마음이 더 큰 거라고 나는 혼자 속으로 생각해왔다. 왜냐하면 소질과는 딱히 상관없는 단순한 심부름 같은 것도 잘 시키지 않으셨고, 장을 볼 때도 “무거운 건 배달시키면 되고, 별로 살 것도 없다.”며 혼자서 총총 다녀오시곤 했으니까. 그랬기 때문에 마트에 함께 가자는 건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고, 나는 그것이 추후에 묘사 음식 준비를 나에게 물려줄 것이니 장을 보는 일부터 보고 배우라는 암시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마트에서 시어머니는 사야할 품목들이 인쇄된 종이를 한 장 꺼냈다. 문중의 총무가 보내준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중 대부분은 이미 샀다고 줄이 쳐져 있었고, 남은 것은 정말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욱 의아스러웠다. 아예 처음부터 하나하나 같이 장을 보는 것이라면 몰라도, 미리 다 준비해놓은 상태에서 얼마 안 되는 품목을 마저 구매하는 데 굳이 나를 데려올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그때 시어머니가 내게 물으셨다. “귤은 얼마나 사야 되겠노?” 나는 품목이 인쇄된 종이를 다시 한 번 내려다보고는 그제서야 모든 것을 이해했다. 엑셀로 정리된 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귤 1 box’.
나는 그 순간 좀 울컥했다. 그래서 시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아무 귤이나 가리키며 말했다. “저걸로 한 박스 사면 될 것 같아요.” 우리는 그 귤을 카트에 싣고 계산대로 갔다. 나는 ‘박스’를 굳이 ‘box’라고 표기한 그 사람이 미웠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자신이 읽을 수 없는 어떤 글자들을 마주치는 이들의 당혹스러움에 대해 생각했고, 혼자의 힘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나 형식을 맞닥뜨린 이들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내게는 낯설고 어려워지는 순간이. 나는 미래의 나에게 꼭 붙어 팔짱을 꼈다. 시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 환히 웃어주었다.
2023-01-1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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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인류의 새로운 시작
〈신의 지문〉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그레이엄 핸콕은 맹렬하게 학술 탐사와 저술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전공은 고고학으로, 그중에서도 그는 1만 2000년 전에 사라졌다는 초고대 문명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사하고 보도하는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는 1만 2000년 이전에 이미 고도로 발달한 문명을 형성한 바 있었는데, 그 문명은 외형적으로는 사멸되었지만 그 흔적은 세계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 문명의 흔적은 주류 고고학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증거들이기도 한데, 1만 2000년 전에 수렵 생활에 하던 인류로서는 도저히 건설할 수 없고 흉내 낼 수도 없는 건축물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레이엄 핸콕은 유사 고고학자 혹은 사이비 학자로 비난받기도 한다. 그의 주장은 인류가 신석기를 거쳐 진화했다는 주류의 발전론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 많은 관련 학자들이 그의 주장을 허구적 창작으로 치부하거나, 상징적 해석에 대한 오해로 간주하기도 한다. 솔직히 나에게는 1만 2000년 이전 초거대 문명이 있었다는 주장의 진위를 가늠할 학문적 역량은 없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의 이면이 존재할 수 있고 어쩌면 그렇게 숨어 있는 진리가 세상의 모습을 더 올곧게 보여 줄 수 있다는 기대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그러한 존재 가능성을 탐색하고 그 기대를 함부로 버리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레이엄 핸콕의 이야기를 한 것은 그가 했던 이야기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남아 있는 불가사의한 거석 문명의 흔적이, 대부분 그날, 그러니까 지구가 멸망 직전까지 간 그날의 참상을 후대가 기억하도록 만든 기념물이거나 그날의 공포를 재현하지 않기 위한 방어책 중 하나라고 말한다. 고대의 문명은 초거대 문명을 이룬 자신들조차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던 그날의 피해를 기억하고 그 피해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일종의 조치를 수립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레이엄 핸콕은 현대 인류는 그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고고학이 과거의 유물과 인류의 유산을 통해 인간의 삶과 정신 궤적을 추적하는 학문이라면, 그들이 기억하고 남겼을 ‘그날의 기억’을 회복하고 그들의 주장대로 대비하는 자세는 중요하다고 말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인류는 집단으로 기억 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그날의 기억을 잊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레이엄 핸콕과 같은 고고학자들은 인류의 과거를 낱낱이 캐내어야 한다고 믿는 눈치이지만, 그날의 공포를 체험했던 인류로서는 어쩌면 그날의 기억을 가급적 잊고 싶어 했기 때문은 아닐까.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 모두는 과거 기억과 결별하고 새롭게 출발하고 싶어 하지 않는가. 만일 망각이 없고, 새로운 시작이 없다면, 인류는 더 큰 위기에 봉착해야 할지도 모른다.
1년이라는 새로운 시간은 이를 현실적으로 대변한다. 우리는 1년이 지나면, 묵은 것을 버리자고 말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 새로운 1년을 맞이하면, 안 좋은 것은 잊고 다가오는 것에 집중하자는 덕담을 건네기도 한다. 수많은 시간을 통째로 없앨 수야 없겠지만, 우리를 처참하게 했던 기억을 망각의 그늘 밑에 놓아두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1년을, 다시 시작한다. 우리는 모든 기억을 통째로 잊은 것처럼 행동할 수야 없지만, 지난 1년을 그리고 그 이전의 수많은 ‘1년들’을 뒤로 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1년을 건설한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시간이 온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다시 충실한 무언가가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
2023-01-12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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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새해 그리고 영산암
스케치 여행을 다녀오자는 동료의 말에 또 마음이 설렌다. 몇 해 전, 2박 3일의 건축 기행과 올 초에 가족여행을 하였음에도 안동 기행은 늘 가슴 두근거리게 한다. 선비 문화와 건축 유산이 섞여 있는 도시의 매력 때문일 것이다. 일정의 첫 순서를 봉정사로 잡았음은 물론이다. 오래전부터 내 마음의 안동 제 일경은 봉정사이다. 겨울 산을 향하는 마음이 바쁘다.
사찰을 기행하고 감격하는 것은 대체로 지금과 같은 때이다. 고즈넉하고 호젓한 느낌, 계절로는 만추의 가을이나 삭풍의 겨울 사찰이 인상 깊다. 봄 화엄사의 화려함이나 여름 송광사의 분주함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의 봉정사. 나는 지금 그걸 보러 왔나 보다.
마음속 ‘안동 제1경’ 봉정사
40대의 필자 고개 숙이게 한
만세루 등 경내 곳곳 복원 공사
건축가들 추앙하는 최고의 공간
영산암 마루에서 풍경 스케치
옛사람 솜씨에 단련되는 마음
이전에도 그랬는데, 오늘도 경내의 곳곳이 수리 중이다. 하지만 사찰의 완벽한 전경을 내 스케치북에 다 담지 못한다 하여 무엇이 문제가 될까? 복원 후의 말끔한 모습을 상상하며, 곳곳에 둘러쳐 있는 공사용 차단막 또한 아름답게 보기로 한다. 설령 복원이 원형에서 조금 빗나간들 어쩌랴. 사찰은 창건의 역사와 관계없이 엄연히 종교가 이루어지는 현세의 도량이니 현대적이고 실용적이어도 무방할 것이다.
한때 문화재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편견이 있었다. 폐허가 된 파르테논이나 피라미드의 장엄을 기대하듯 단청이 벗겨지고 솔이끼가 앉은 고전을 느끼려는 건축 문화적 욕심을 어쩌겠는가? 하지만 전통 사찰이 가지는 보존과 사용 사이의 혼돈과 고민을 이해하고부터 생각을 바꾸기로 하였다. 세월이 흐르니 사고의 독단도 허물어지나 보다. 이제는 그 변화마저 아름답게 보이니, 원형을 똑같이 보존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던 시절이 아련하다.
40대의 나를 고개 숙이게 하였던 만세루 또한 복원 공사 중이다. 거기에 서서 들판의 노란색을 바라보던 때를 기억한다. 그것들은 익은 벼와 소국(小菊)의 물결이었다. 사찰을 등지고 인간의 세상을 바라보았다. 산의 골을 타고 올라오던 곡물과 거름의 냄새가 향긋한 차 향기와 다름없이 상쾌하다는 것을 알았다. 주변 마을의 농가 수익을 올려주는 소국이 결실의 들판에 가을빛을 더욱 보태고 있었으니, 그것이 곧 인간 세계의 향기이며, 어쩌면 극락정토의 궁극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만세루 아래의 통로가 복원공사로 막히니, 요사채를 오른쪽으로 돌아 산을 더 오른다. 왼쪽의 경내는 뒤로 미루고 더 오르면 마침내 영산암. 뭇 건축가들로부터 우리나라 최고의 공간이라 추앙받는 곳이다. 마당을 가운데에 두고 ㅁ자 모양을 하고 앉은 건축이 마치 중부지방의 양반집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노송과 툇마루, 건물 모서리의 틈으로 보이는 산의 풍경. 뛰어난 건축가의 솜씨임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많은 건축가가 이곳의 공간감을 바탕으로 자신의 건물을 재창조하곤 하였다. 명실상부 한국 최고의 건축적 장소임이 분명하다.
영산암 마루에 한참을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이루지 못한 건축에의 열망, 내 가족의 소사. 스케치북을 꺼내어 잠시 마당과 나무의 풍경을 스케치하였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기웃거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시간이 지나면 또 언제 여기에 올까? 뜬금없이 옛 스님들이 부러워진다.
늘 자신감으로 오르지만, 매번 수가 죽어 내려간다. 건축, 그림, 글. 오늘도 어느 것 하나 온전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내려가야 할까 보다. 하지만 훗날 다시 오르리라. 40대의 호기는 없어도, 능인, 의상과 같은 고승들의 체취와 빼어난 옛 건축가의 솜씨가 여전히 무지렁이인 나를 시험하고 단련시켜 주시니 나이가 무슨 문제일까?
2023-01-0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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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여름의 커튼
새벽에 잠이 깼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인지 비교적 일찍 잠이 들었다. 침대 옆 창에는 얇은 여름 커튼이 달려 있다. 커튼을 교체하는 일에 좀처럼 마음이 가지 않는다. 올해가 가기 전에 할 수 있을까? 이런 사소한 일에도 결심이 필요한 나이 듦과 게으름을 누가 알까 봐 부끄럽다. 커튼을 통과해 날이 서서히 밝아오는 것을 보는 일이 새삼 신기하다. 아침이 온다고 말한다. 간다고 말하지 않는다. 겨울 새벽의 한기를 느끼며 아이를 안아본다. 아이는 금방 몸을 뒤척이며 자기 방으로 가버린다. 어릴 때는 한시도 품에서 떠나지 않아서 오히려 내 쪽에서 밀어내곤 했는데 그런 시간이 이제는 지나갔다는 생각이 든다. 깨어있지만 오랜만에 불안하지 않다. 언젠가 본 영화에서 주인공은 똑같은 매일이 반복되는 하루를 살았다. 내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이런 날이 계속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여전히 뼈 아픈 충고가 있고 겹겹이 실패가 있고 이유 없이 흘려보낸 과거가 있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아침이 오고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다. 하지만 일과를 시작하기까지 아직 여유는 있다.
나는 한 해를 보내는 방법에 대해 생각한다. 조용히 혼자 보내는 방법도 있겠고 여럿이 함께 보내는 방법도 있다. 여행을 갈 수도, 쓰고 있던 소설을 마무리할 수도 있다. 내년의 계획을 적어볼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이든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감사하는 일이 새삼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건 내게 지나온 시간이 있고 앞으로의 시간이 있기에 가능한 일 같다. 올해를 살아냈고 내년을 살 것이라는 확신에 찬 마음.
지난주 나는 송년 모임에 대한 전화를 받았다. 코로나로 지난 이 년 동안 내게 연말 모임은 없었다. 꼭 필요한 모임도 대부분 취소됐다. 아쉬운 마음에 지난해 온라인으로 비대면 송년 모임을 했다. 줌을 켜 놓고 화면으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는 자주 엉켰고 고정된 배경과 얼굴이 중심이 된 화면은 범죄자의 머그샷처럼 보였다. 그날 나는 친구들 집의 벽지 모양을 알았다. 분위기는 금방 식었다. 직접적인 온기가 없어서인 것 같았다. 한 시간 남짓 얘기를 나누다 우리는 농담처럼 살아남아서 다시 만나자, 라고 말했다.
내가 속한 작은 모임에서 올해는 좀 다른 방법의 모임을 해보자고 했다. 고기와 술이 중심이 되는 먹고 마시는 것이 다인 풍경을 좀 바꿔보자는 의견이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망년회의 망에 대해 수다를 좀 떨었다. 망년회의 망이 망할 망(亡)인지 바랄 망(望)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둘 다 아니었다. 한 해 동안 일어난 온갖 괴로운 일을 잊자는 잊을 망(忘)이었다. 망한 절망의 한 해도 아닌, 뭔가를 애타게 바라야 할 마음도 아닌, 그저 잊으며 비우는 것이라는 뜻이 단순해서 오히려 깨끗하고 편안했다.
어떻게 비울까? 누군가 집게를 들고 계속해서 고기를 굽는 일, 돌아가며 형식적인 인사를 하고 건배사를 나누는 일, 이차로 노래방에 가는 일, 숙취로 깨어나는 다음 날. 대신에 다 같이 흑백 사진을 찍으러 가는 일, 옛날 영화를 함께 보는 일, 한 권의 책을 정해 좋았던 구절을 함께 읽으며 한 해를 보내는 일, 불멍을 하며 캠핑장에서 밤을 새우는 일, 야간등산을 하며 별을 보는 일.
그렇게 모여 우리가 죽는다면?
날이 완전히 밝았다. 왜 그곳에 놀러 갔냐고 묻는 폭력이 떠오르고 왠지 그런 이야기들이 무서운 꿈처럼 느껴진다. 살아남아서 우리는 그런 얘기들을 한다.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제는 없는 내일의 확신에 대해, 살아있지만 매일 그날을 반복해서 사는 지옥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올해 일어났던 누군가의 어이없는 죽음과 진행 중인 싸움에 대해, 생의 안전에 대해서 나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여름의 커튼을 아직은 바꾸고 싶지 않다. 살아남아서 그 일을 하고 싶지 않다.
2022-12-29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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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세상의 모든 열아홉
수능이 끝난 지 한 달이 조금 더 지났다. 그 사이 수능 성적이 발표되고 대입 전형이 진행되고 있다. 수능 성적표가 나오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만점자에 대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만점 비결부터 시작해서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지원했는지, 초중고 시절은 어떠했는지, 사교육은 어느 정도 받았으며 스트레스 관리는 어떻게 했는지, 심지어는 부모의 직업까지 인터뷰 기사에 모두 나와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대학 입시란 ‘자신의 관심 분야에 대해 더 배우기 위하여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것’을 넘어서 훨씬 복잡하고 거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그러한 매스컴의 호들갑과 대중의 관심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비록 만점자가 아니라 해도 수능을 친 학생들에 대해 어른들은 평소보다 관대하고 포용적이다. 그동안 시간을 쪼개 쓰고 잠을 줄여 가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보아왔기 때문에, 또 앞으로 그들이 살아갈 세상은 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짧은 시간만큼이라도 실컷 놀고 쉬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최대한 많은 것을 베푼다. 놀이공원이나 외식업체, 여행?레저 시설 같은 곳에서는 수험표를 가지고 오면 할인해주는 이벤트도 한창이다.
나 또한 고3 수험생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공부를 아주 잘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치열하고 힘들게 그 시기를 보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그동안 고생했던 아이들에게 어깨를 토닥이며 지금 이 시간을 마음껏 누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수능과 대학 입시에서 소외된 아이들이 마음에 걸린다. 수험표 지참 할인 이벤트 같은 것을 볼 때 마냥 훈훈하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전문계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몇 년을 일했었는데, 그곳에서는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하는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이유는 다양했다. 단순히 공부에 대한 재능이나 의지가 없어서인 경우도 있었지만, 진로 결정에 대한 명확한 줏대를 가진 아이들도 있었고, 가정 형편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경우도 있었다. 몇몇 아이들은 국어를 가르치던 내게, 취업 지원 서류로 낼 자기소개서를 봐달라고 가져왔다. 시작과 마무리가 매우 어설펐으며 문장은 비문투성이였지만, 그래도 진솔하고 절실했다. 나는 아이들이 써온 자기소개서를 보고 몰래 조금 울기도 했다. 순탄치 않은 성장 과정을 서툰 문장으로 가감 없이 나열해놓고 “선생님, 틀린 글자 없어요?”라며 말똥말똥한 눈으로 내 대답을 기다리던 그 아이들에게는, 평범한 고3 수험 생활도, 수능이 끝난 겨울의 해방감도, 수험생에 대한 세상의 관대함도 누릴 기회가 없었다.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한 아이일수록 빠르게 취업이 되어 2학기에는 이미 듬성듬성 빈자리가 보였다. 자기소개서에 조손가정임을 밝히며, ‘귀사에 취업하게 되면 열심히 돈을 벌어 할머니께 효도하고 싶다’고 썼던 아이는 한 대기업의 반도체 생산직 노동자가 되어 먼 도시로 떠났고 졸업식에도 오지 못했다. 그래도 그 아이는 자기가 원하던 기업체에 취직이 되어 기쁘게 떠났지만, 어떤 아이들은 취업이 잘 되지 않아 불안정한 아르바이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기도 했다. 여러 이유로 일찌감치 학교를 떠난 채 소속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삶의 형태는 생각보다 다양하다. 다수가 걷는 길로 가지 않는 것은 자신의 선택일 수도 있고, 외부적 요인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일 수도 있다. 밤을 새워 공부를 했든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밤샘 작업을 했든 혹은 위태롭게 흔들리며 밤거리를 쏘다녔든, 세상의 모든 열아홉들은 치열하게 자신의 마지막 청소년기를 살아냈을 것이다. 그러니 수험생이 아니었던 아이들의 어깨도 따뜻하게 토닥여주는 어른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수고했다고, 우리가 책임지고 지켜주지 못한 세상에 너희 스스로의 힘으로 버티고 존재해준 것만으로도 그저 고맙다고.
2022-12-22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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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천천히 걷는다는 것의 의미
요즘은 길에서 일부러 걷고 있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0년 전 올레가 유행하면서 전국 곳곳에 걸을 수 있는 길이 만들어지면서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늘어났다. 일상에서 걷고자 하는 이들이 늘자, 그들의 걷는 속도에 맞추어 관광 방식마저 변화하였고, 관광지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까지 걷기 좋은 길이 확산되기에 이른 것이다. 지금은 길들의 명칭도 다양해서 둘레길, 해파랑길, 소리길, 해안길 등 지역의 특색과 개성을 살린 이름이 곳곳에 붙어 있다.
20년 이전의 세상과 비교하면, 현재 상황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차를 갖기 위하여 집중할 때가 있었다.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 자가용은 부의 척도이지만, 어느 한때는 스스로 중산층에 들기 위하여 집집마다 차를 구입하고 그 차를 세상에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그때는 관광과 여행의 중심을 차가 차지하고 있었다. 차를 타고 세상을 돌고자 했고, 차도를 따라 관광지를 찾는 데에 열중했다.
지금도 여전히 자동차 보급이 늘고 있고 여행을 떠날 때 차를 이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차는 중장거리 이동용이고 정밀한 관광은 눈으로 하고자 하는 이들도 역시 늘었다. 그러한 이들은 오래된 골목길을 걷고, 자연과 어우러진 길을 일부러 탐험한다. 먼 길을 걷기 위하여 혹은 산길을 타기 위하여 며칠에 걸쳐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인생의 목표 중 하나로 이러한 길들을 연속적으로 방문하는 일을 수립하기도 한다. 느리게 움직이고 천천히 보게 하는 걷기가, 삶의 다른 차원을 열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된 삶에 맞게 다른 것들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가령 공원을 만들어 운동과 산책을 장려하는 도시 정책이 우대받고 있고, 반려견과 함께 걸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자 그 길과 공원의 곳곳에서 정자와 쉼터가 지어지고 있다. 본래 그 자리에 토성이 있거나 읍성이 있으며 그곳은 성곽의 길이 될 것이고, 그 도중에 오래된 누정이 있었으면 새로운 관망지를 얻은 조망의 길이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길과 여행과 사람과 자연을 전체로 묶는 인식의 새로운 지평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이처럼 2000년대 우리는 천천히 걷거나 자기 힘으로 움직이면서 주위를 다른 눈으로 보는 방식에 제대로 터득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움직이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빠르고 효율적인 삶의 이면에 숨어 있는 느릿한 정취도 찾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더 신속하게 모든 것을 시행해야 하는 업무 시간과 노동의 직분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무엇이 먼저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삶의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에 대한 사색과 무관하지 않다. 현실에서 우리는 여전히 바쁘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쪼개 써야 하지만, 그렇게 간직된 시간을 자신만의 길 위에 온전히 쏟아붓는 가치와 기쁨과 자기 확인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가 작은 정자를 발견하고 그 이름에 놀란 기억이 난다. “**노을정” 그곳은 노을이 아마도 예쁜 곳일 거다. 아직 그곳에서 노을을 볼 여유는 만들지 못했지만, 해당 지명에 한글 ‘노을’을 결합하여 이러한 이름을 만든 변화는 저절로 생각을 멈추게 한다. 앞으로도 그곳에서 노을을 보기 위해서 적지 않은 시간을 모아야 하겠지만, 1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우리가 걷고 있는 길 위에서 노을을 한 번쯤 보아도 좋지 않을까 싶다. 자기의 길을 걸어 1년을 마무리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시간이 길이라면 그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시간이 될 것이다. 2022년 한해도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2022-12-1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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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사라져 가는 것을 그리다
내가 물었다. “아주머니! 여기에 오래 사셨어요? 저기 있었던 그 집은 어디로 옮겨 갔습니까?”, “글쎄요? 다 떠나고 나만 남았네요.” 아주머니의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나는 세상을 떠난 Y와 함께하던 골목의 냄새와 해장국집의 불그레한 국물과 아침까지 가시지 않던 술 냄새를 기억해 내고 있다. 그날도 겨울비가 내렸을 테고, 우리는 또 그 몇 해 전의 추억을 나누고 있었을 테다. 동네의 집들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용케도 살아남았구나.”
언젠가부터 그것들을 그려 두기로 하였다. 속절없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었지만, 겉으로는 건축가의 책무의 하나라 말하곤 하였다. 그리하여 여러 장의 그림이 화첩에 남았다. 정지된 시간의 비애 때문일까? 색채가 아무리 화려하여도 그려진 집은 쓸쓸하기만 하다. 시간에 대하여 생각한다. 그것은 어디에 존재할까? 내 마음속일까? 아니면 마음을 비운 후, 빈 가슴의 밖에 있는가.
매축지마을·대청동·동광동…
오래된 마을 탐사하며 ‘질문’
‘건축은 무엇, 집은 어떤 곳인가’
“삶·장소 어울려 만들어진 기쁨
쌓여가는 추억 같은 곳이 집”
매축지 마을 / 여기에 오면 특별한 감정이 생긴다. 숙연의 예고? 훗날, 그림 앞에 섰을 때. 마치 오래된 사람의 무덤 곁에서의 느낌과 같으리라. 사라지는 것들 앞에서 태연히 그림을 그리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의 감정 정도는 꼭 남겨 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려 둔다.
대청동 / 몇 번을 더 와야겠다. 올 때마다 새로운 곳이 보인다. 이곳이 언덕 지대인 것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람에 따라서 생각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내겐 참 다행스러운 것이 아닌가? 아직은 재개발의 열풍에 휩싸이지 않았음이다.
해운대 재개발 현장 /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떠난 자리가 그리 삭막하지만은 않다. 그 와중에 나무와 풀은 잎을 피우고, 또 떨어뜨려 가며 시간을 읽어낸다. 무채색으로 변해가는 것들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는 맑은 색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이 떠난 자리에서 그것들은 왜 이다지 천진하게 꽃을 피우는가?
중앙동 그리고 동광동 /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그곳을 오랜만에 걸었다. 야외 스케치 중이지만 뜻하지 않게 몽롱하고 아련한 시간 속이다. 더러는 저세상으로 가신 오래된 사람들의 그때는 미처 몰랐던 온기와 사십 년 전의 음식 냄새, 그리고 퇴근 무렵에 느끼던 낡은 외투 속의 체온과 어슴푸레하고 약간 푸르렀던 거리의 색깔. 모든 것을 생생하게 기억해 내었다.
오래된 마을을 탐사하면서 던진 질문이다. ‘건축은 무엇이고, 집이란 어떤 곳인가?’. 그러고 보니 내 삶은 늘 멋지고 새로운 것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과 그로 인한 일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태도가 변했다고나 할까? 새로운 것만이 아름답다는 내 생각에 균열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건축가가 없는 건축이 더 많음을 알게 된다. 도시의 곳곳에 홀로 혹은 집단으로 남아있는 그것들에 대하여 연민을 느끼는 오늘, 나는 그것들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건축 평론가 데이비드_리틀필드는 그의 저서 ‘건축이 말을 걸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래된 건축은 당신 자신을 과거와 동일시 하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닥칠 과거의 일부이다. 그리고 미래 세대의 시선으로 당신 자신을 그려보는 과정이며, 건축물의 연대 속에 당신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과정이다. 진품은 도면이나 컴퓨터 모형의 정밀성 안에 살지 않으며, 완성된 구조물에 살지 않는다. 진품 건물은 삶을 지속적으로 받아들이는 어떤 것이다.’
평론가의 말에 동의한다. 집이란 형태와 크기가 지니는 물리적 느낌이 아니라, 삶이 장소와 버무려져서 만들어내는 기쁨과 그것들이 쌓여가는 이른바 추억과 같은 것이 아닐까? 나이든 건축가가 고층 아파트의 방에서 비로소 생각해 보는 것이다.
2022-12-0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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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당신의 기록
12월이다. 일 년의 마지막 달에는 늘 조급한 마음이 된다. 올해 하고 싶었던 일과 이루고 싶었던 것들이 죽은 물고기처럼 떠오른다. 지켜지지 못한 약속과 마무리하지 못한 계획들 앞에서 서성이게 된다. 그런 마음을 아는 것처럼 인터넷 서점에서는 연말이면 당신의 기록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지난 일 년간의 독서기록을 보여준다. 올해 초 나는 다시 성실한 독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좋은 작가는 좋은 독자이기도 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새겼다.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서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기. 그래서 다시 내 목표는 많이 읽기였다. 공을 많이 던져본 투수가 되어 마운드에 서고 싶었다. 그러나 실천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몰라서 못 하는 일보다 알아도 못하는 일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다.
올해 나는 인터넷 서점에서 34권의 책을 구입했다. 몇 권은 아이들 책이었고 또 몇 권은 선물을 위한 구입이었다. 34권은 8704페이지, 책장 1.6칸, 야구공 7개를 쌓는 높이라고 한다. 계획에 비해 아쉽다. 나는 심지어 그 책들을 다 읽지도 못했다.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마치 결승선을 앞두고 마지막 힘을 끌어모으는 운동선수처럼 나는 책장 앞을 서성거렸다. 지난 게으름을 상쇄할 만한 책. 한 권만으로 충분한 올해의 책을 찾아 읽고 싶었다. 나는 그런 책을 ‘절대 책’이라고 부른다. 다른 말로는 인생 책.
그런 책이 있다. 이 책을 읽어서 나의 올해가 좋았다는 느낌이 드는 책. 좀 과장을 더하면 이 책을 읽지 못하고 죽었더라면 정말 안타까울 뻔했다는 생각이 드는 책. 왜 이제 내 앞에 나타났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책. 내 첫 인생 책은 〈열네 살 영심이〉였다. 같은 반 친구들과 돌려 읽었던 만화책이었다. 예쁘지 않은 영심이가, 짝사랑만 하는 영심이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영심이가 좋았다. 늘 꿈을 꾸는 영심이가 좋았다. 무엇보다 또래의 영심이가 너무 나 같아서 놀랐다. 책이 내 얘기를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
물론 지금 그 책은 내 인생 책이 아니다. 이후로 인생 책의 자리를 다른 책들이 채우고 또 내주기도 하면서 나는 읽는 사람이 됐다. 대학 때는 오정희의 〈유년의 뜰〉 〈중국인 거리〉가 인생 책이었다. 가방 안에 기형도의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늘 들어있던 시절도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갈 때 이상하게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이 들면 이성복 시인의 시를 읽었다. 몇 년 전에는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이 내 인생 책이었다. 이탈로 칼비노와 줌파 라히리, 앤드루 포터, 이후로도 계속해서 작가와 책들이 내게로 왔다. 올해 초 시몬 드 보부아르의 〈아주 편안한 죽음〉을 아주 느리게 읽었다. 최근에 읽은 모하메드 음부가르 샤르의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도 좋았다. 이렇게 보니 모두가 다 내 인생 책 같다.
책을 읽는 일에는 매번 도전과 기대가 필요하다. 그 책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독자의 입장에서 되도록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에 갈등하게 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책을 읽기 전 상태다. 의심은 대부분 첫 문장을 읽고 나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직 책의 문장과 내용들이 그것들을 다 무용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이 매혹이든 절망이든지 말이다. 하지만 인생 책들이 없었다면, 그 책들에서 맛보았을 빛나는 환희가 없었다면 나의 도전은 어려웠을 것 같다. 그렇게 지나온 내 인생 책들이 앞으로의 인생 책들을 마중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책들이 욕심을 부린다고 한꺼번에 내게 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겠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아야겠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 인생의 기록에는 다양한 시도와 실패, 후회가 더 많을 것 같다. 마음처럼 되는 일은 없지만 늘 꿈을 꾸는 열네 살 영심이처럼.
2022-12-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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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담
김윤아의 노래를 좋아한다. 그녀의 음색이 워낙 매혹적이고 곡의 선율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사를 자꾸 곱씹게 된다. 그런 노래 중 하나가 첫 번째 솔로 앨범의 타이틀곡인 ‘담’이다. 가사의 시작은 이렇다. ‘우리 사이엔 낮은 담이 있어 내가 하는 말이 당신에게 가닿지 않아요.’ 옆에 누가 있어도 외로워지는 순간에 이 노래를 들으면 폭풍 오열하기 십상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애초에 담이 놓여 있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처음부터 무방비 상태로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줬다가는 상처받기 일쑤일 테니까. 우리는 스스로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미리 세워둔 담 너머로 상대를 탐색하고 차츰 마음을 열며 조금씩 담을 허물어가게 된다.
그러나 오랜 시간 함께했다고 해서 언제나 그 담이 모두 허물어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와 나 사이에 더 높은 벽이 생기기도 하고, 때로는 더 이상 허물 수 없는 어떤 지점에서 멈추게 되기도 한다. 그 담 너머에 있는 상대가 오랜 친구이거나 연인이거나 혹은 가족일 때,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사랑했던 사람일 때, 우리는 견딜 수 없이 쓸쓸해지고 슬퍼진다. 노래의 가사처럼 ‘부서진 내 마음도 당신에겐 보이지 않’고 ‘서로의 진실을 안을 수가 없’다는 사실에 마냥 외로워져서 충동적으로 자신과 타인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최근 다시 읽은 이기호의 단편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를 보면 그런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이른 나이에 떠밀리듯 결혼을 한 주인공 김숙희는 남편의 지원으로 대학 공부도 하고 유치원 교사라는 직업도 갖게 된다. 남편은 착하고 성실하며 늘 그녀를 위해주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남편에게 아무 말도 못하는 자신의 삶이 그녀로서는 서글프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김숙희는 처음으로 주체적인 선택을 하고(비록 부도덕한 일이었지만) 그것을 남편에게 고백하는데, 남편은 그녀의 고백을 외면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자꾸만 대화를 회피한다. 그러한 남편의 태도에 수치심을 느낀 김숙희는 마침내 그를 살해하게 되는데, 이야기 전개가 충격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대화 단절과 소통 부재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얼마나 악화시킬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소설적 상징으로서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와 같은 단절과 불통이 당사자들의 삶을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까지 끌고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비록 이것은 소설 속 이야기이지만, 현실에서의 상처와 파국도 결코 만만치 않으니까 말이다.
대통령의 출근길 약식 회견(도어스테핑) 공간에 돌연 가벽이 설치되고 약식 회견도 일방적으로 중단되었다. “최근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태와 관련해 근본적인 재발 방지 방안 마련 없이는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이유에서다. 그 ‘불미스러운 사태’라는 것은 아마도 지난 18일 도어스테핑 상황을 의미할 것이다. 그날 대통령은 특정 언론사가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는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했다고 말했고, 그 언론사의 기자가 “무엇이 악의적이었냐”고 묻자 대답 없이 자리를 떠났다. 그 후 대통령실 참모와 기자 사이에서 언쟁이 벌어졌고, 그 사건을 계기로 가벽이 설치된 것이다.
벽을 세운 그 사람이 나의 오랜 친구도, 연인도, 가족도 아니고, 사랑하거나 사랑했던 사람도 아니어서 다행이다. 내 마음이 외로워지고 쓸쓸해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자신을 향해 쓴소리를 던지는 이들을 배제하며 담을 쌓는 국가지도자의 모습이 걱정스럽기는 하다. 국정 운영 책임자와 국민 사이의 단절과 불통은 너무 많은 사람들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니까 말이다.
2022-11-2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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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두 도시를 잇는 마음
2021년 12월 동해선은 부산과 울산을 잇는 복선 전철로 개통되었다. 2016년에 부전역~일광역 노선이 먼저 개통된 후, 2021년에 일광역~태화광역이 추가 개통되면서, 두 도시는 광역 전철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렇게 두 도시는 다시금 이어졌고, 두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도 한결 밀착될 수 있었다.
두 도시를 잇는 동해선의 개통은 2021년이 처음은 아니었다. 사실 두 도시는 오래전부터 서로를 필요로 했지만 주로 배를 통해 소통하는 불편을 감수하던 어느 날, 두 도시를 잇는 동해남부선 철도가 개통되었다. 그 시점은 1935년 12월 16일이었다. 그러니까 최초 개통 시점으로부터 거의 86년이 되는 시점에 다시 동해선(광역 전철)이 개통된 셈이었다. 이렇게 세월의 무게를 되짚어 보면, 동해선의 재개통은 감격스러울 정도로 깊은 두 도시의 인연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부산·울산 동해선 복선 재개통
두 도시 거주민 마음 밀착시켜
메가시티 합의했지만 시행 난항
“편협한 이익이나 경제 논리보다
전체 주민 누릴 공익 우선해야”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일찍부터 울산은 중요한 도시였다. 울산은 신라 서라벌의 관문 역할을 하는 해항이었고, 조선 시대에는 병영이 마련된 군사 요충지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중공업 도시로의 변혁을 도모하는 계획이 수립되었고, 어업의 전진기지로도 그 중요성을 일찍부터 인정받은 바 있었다. 하지만 부산과 울산을 잇는 물길에 비해 철길은 그 개통이 더뎠고, 그만큼 두 도시의 왕래는 생각보다 수월하지 않았다.
부산과 울산을 잇는 철도가 다시 개통하면서 두 도시가 정말 가까운 도시라는 사실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두 도시를 오가는 사람들이 이미 상당하다는 사실에 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놀라움에 비해 아직은 미흡한 점도 적지 않아 보인다. 운행 간격은 30여 분에 달했고, 운행 전동차 수는 생각보다 적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대규모로 타고 내리는 시간대의 혼잡도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더 큰 어려움은 따로 있는 듯했다. 부산·울산·경남은 이른바 ‘메가시티’ 건설에 원칙적으로 합의한 상태였지만, 최근 그 진행이 난항을 겪으면서 실제적인 사업 시행에 어려움이 파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전철과 마음은 이어질 수 있었지만, 지역 이기주의는 주민의 편의와 도시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반드시 대규모 도시화만이 해답은 아니겠지만, 부산과 울산을 잇는 광역 전철처럼 경남을 포함한 부산·울산 지역 주민들 사이에 더 원활한 왕래와 교류가 증진될 수 있다면, 이를 위해 해당 지역의 이익을 접어두어야 하지 않나 싶다.
모든 사업은 다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도권의 복잡했던 전철망은 광역 철도망과 결합하면서 인근 지역으로의 이동과 교류를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도시의 무분별한 팽창만 경계할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살아가고 움직여야 하는 이들에게는 큰 혜택이 아닐 수 없다.
정책의 효율성을 비전문가가 일일이 따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편중으로 상대적인 소외를 유발하는 정책이나 지역 이기주의로 인해 거주민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실수는, 오래전부터 두 도시(나아가서 경남 일대)를 잇고자 했던 염원을 다시 멀어지게 할 수 있다. 실제로 동해선 개통 전에는 두 도시를 잇는 철도가 낭비라는 시각도 존재했고, 이미 존재하는 도로를 활용할 수 있다는 이견도 무성했다. 하지만 철도는 생각보다 주민들에게 요긴했고, 차량 운행과 거리가 있는 이들에게는 단비와 같은 역할을 했다. 지난 1년의 시간과 경험은 각 도시만의 편협한 이익이나 함부로 계산된 경제성보다, 지역을 아우르는 전체 거주민이 함께 누릴 수 있는 공익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확인시켰다. 정책 담당자나 시정 운영자는 이 점을 기억하면 좋겠다. 중요한 것은 소통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이 철도든, 정책이든, 마음이든 간에.
2022-11-1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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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민들레 되고, 나비 되어
민들레
마음이 비어 헐렁할 땐, 차라리 꽃 그림을 그립시다. 민들레, 너는 하필이면 모서리에 섰느냐? 아무래도 바람이 드셀 텐데..... 아니~ 아니야. 내가 미처 몰랐구나. 그래야 빨리 씨를 날린다는 것을. 쓸쓸한 너에게서 배운다. 바람을 향해 외롭게 서는 것의 아름다움을. 그러해야 또 새로이 키워진다는 것을.
- 허탈의 강을 건너고 계시는 모든 분께.
이태원 참사 충격 속에서
재난과 도시에 대해 생각
건축·도로에서 오는 재난
“안개 속에 공룡 숨긴 도시”
희생자 유족 비통한 마음
슬픔만 느끼기도 벅찬데
관계자 변명에 분노 느껴
일주일이 훌쩍 지나갔고, 나는 무심히 텔레비전 속 시민들을 본다. 안경 너머에 눈꼬리가 올라간 여자, 눈길을 아래로 떨군 중년의 남자, 마스크 속에 울분을 감춘 청년. 모두 화가 나 있고 침울하다. 표정 그리기 연습하던 나는 그만 무색하여 그림 그리기를 멈추고 아들의 SNS를 기웃거렸다. 흘러나온 피아노 선율은 느리고 우울하다. ‘Adagio Doloroso(느리고 슬프게)’ 나는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곡 아래에는 ‘20221103 만듦, 안타까움에’라고 사족이 달려 있다. 가슴 쓸어내린 며칠 후에 다가온 슬픔과 미안한 마음을 곡으로 만들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었다.
2022년 10월 30일 새벽. 행사 관계로 경주행을 준비하던 나는 우연히 켠 텔레비전의 화면을 보고 눈과 귀를 의심하였다. 다급한 목소리와 어지러운 장면. 아나운서는 핼러윈 데이에 이태원에서 벌어진 참사를 전하고 있었다. 놀라 아내를 깨우고 다급히 말하였다. “얼른 전화해 봐.” “전화가 안 되는데요.” 연주, 콘서트, 페스티벌.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 아들을 생각하며 우리 부부의 혼이 점점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경주행 차에 올랐다. 그리고 울려 온 아내로부터의 전화. “조금 전에 전화 받았어요. 그런데, 어제 저녁에 거기에 갔었데요. 그리고 집으로 오는 길에 저도 사고 소식을 들었다 하고….” 아내의 말꼬리가 흐려지고, 나도 전화를 끊었다. 모골이 송연하고 숨이 가빠졌다.
뉴스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음을 알린다. 하지만 내게 더 놀라운 사실은 이 큰 재난 앞에 우리 가족이 잠시 서 있었던 것과 나의 속수무책을 알아차린 것이다. 혼란스럽다. 잠시 후 온 나라는 슬픔의 도가니가 될 것이다. 아들이 무사히 인천의 제집으로 돌아간 것을, 어찌 다행이란 말과 불행이란 단어로 재단할까?
어느 날, 인천에 있는 아들의 집에서 안개 낀 거대 도시를 바라본 적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도시가 안개 속에 커다란 공룡들을 숨겨 놓았군.”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재난과 도시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큰 재난은 자연으로부터 오지만, 어떤 재난은 도시·건축·도로와 같은 물리적인 것들로부터 온다. 거기엔 반드시 사람이 관여되어 있다. 그러니 이런 소식이 들릴 때마다, 일종의 트라우마에 휩싸인다. 우리의 작업과 관점은 그것에 얼마나 충실한가? 이번 사건 이후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반성 될 것이다. 불법 건축, 소방도로, 도로의 통제 시스템.
하지만 오늘은 그것들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온전히 슬픔만 받아들이기에도 이미 벅차다. 아스팔트 위의 때 묻고 구겨진 운동화의 도열이 나를 또 울컥하게 한다. 변명에 급급한 관계자들의 마스크 속에 숨겨진 가벼운 입은 나를 화나게 한다. 이어질 희생자 유가족들의 원망. 그것들은 과연 시간 속에 감추어질까? 아~ 그리고 젊은 영혼에 시 한 편을 올린다.
노란 나비
그날로부터 그대 날아라. 싸늘한 가을바람과 함께 가시던 날. 거기 땅에 우리 함께 마음 묻고 허기에 가슴 비던 날. 동공 아래로 돌부리만 채이던 그날로부터 당신은 날아라. 그리고 훗날 한결 가벼우신 날갯짓으로 오시라. 멀리 또 가까이, 머리 위로 또 발아래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침내 우리 함께, 웃으며, 늘.
2022-11-1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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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진부하지 않은 인간 되기
내가 사는 곳에는 알프스 시네마라는 영화관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무료로 영화를 상영한다. 오랜만에 극장을 찾기로 마음먹고 아이들에게 외출하겠다고 알리니 좋아한다. 내가 없으면 우리 집은 피시방이 된다. 큰아이가 관심도 없으면서 무슨 영화를 보러 가냐고 묻는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그게 뭐예요? 아이가 짜증을 낸다. 내가 독립 영화 제목이라고 알려주자 아이는 그건 너무 당연한 말 아니냐고 어이없어한다. 그리고 진짜 재미없겠어요, 라고 덧붙인다. 아이와 달리 나는 제목 때문에 오랜만에 영화를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뻔한 말이 너무 와닿아서였다.
영화는 실직 상태의 부부, 영태와 정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밀린 대출금 이자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쉽지 않다. 대리운전, 대타 강사, 배달 일을 해보지만 그들 앞의 구멍을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자주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들 부부는 불화하지 않는다. 함께 밥을 먹고 새우깡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자신들이 마주한 현실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다. 아이의 말처럼 재미없는데 그건 영화가 재미없는 게 아니라 그들이 마주한 현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재미가 없어서라는 게 분명해 보인다.
소설을 쓰면 종종 진부한 표현이라는 평을 들을 때가 있다. 진부라는 단어는 생각이나 표현, 행동이 낡아서 새롭지 못한 것을 말한다. 과장해서 들으면 소설가 자질을 의심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소설은 새로운 인간성을 개척하고 우리가 익히 아는 것들을 낯설게 하고 다르게 보는 일이어야 하고 그것은 독자에게 재미와 감동을 준다. 반대로 우리는 뻔한 것을 보는 것에는 지루함을 넘어 피곤을 느낀다.
영화는 현실의 지루함을 묘하게 끌고 간다. 이상하게 이 지루함은 상당한 긴장을 일으킨다.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을 관객에게 주입시킨다. 그것이 이 평범한 영화의 진부하지 않은 첫 번째 지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의 태도다. 뻔한 상황에 대해 뻔하게 대응하지 않는다. 영태는 돈에 관련된 일들에 대해 자주 중요한 게 아니라는 태도를 보인다. 사채를 쓴 정희에게 나한테 말은 하지, 라고 말하고 친정엄마가 갚아주셨다는 말에 놀라기보다는 덤덤하게 반응한다. 정희도 이 사태의 책임을 남편인 영태에게 떠넘기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것이 학습된 무기력과 체념으로 보이지만 영화의 끝에 이르러서는 돈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단순한 사실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과 태도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빌려준 카메라 대신 받은 돈이 그들의 카메라 값보다 많다는 것에 괴로워하던 영태는 다시 돈을 돌려준다. 자신에게 사기를 친 사람에게 영태는 똑같이 돈으로 벌하지 않는다. 그것은 돈에 휘둘리지 않는 인간 되기이다. 하지만 다시 부모님 용돈을 그들 부부만 드리지 못해 형제들과 비교되는 상황에서는 돈으로 할 수 있는 인간 되기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 어찌할 수 없는 계절처럼 우리의 선택도 늘 그 어디에 있는 것 같다. 영화 마지막에 주인공 영태는 우리의 질문에 답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인간적이어야 할까.
수전 손택의 책 〈타인의 고통〉에는 “전쟁의 희생자들을 찍은 사진들 자체도 일종의 수사학적 장치다. 이 사진들은 그녀의 주장을 여러 번 되풀이해 들려주고, 평이하게 설명해 주며,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라는 말이 나온다. 반대로 이 영화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의 반복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어떤 장치도 없이 보여줌으로써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나를 사람으로 대해주지 않는 사람을 인간적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 되기의 진부함을 가장 특별하고 고귀하게 보여준다.
2022-11-03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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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닫힌 문과 열린 문
며칠 전 저녁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현관문 쪽에서 덜커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한 층에 아홉 가구가 살고 있어 다른 입주민들과 배달 기사들이 하루에도 여러 번 복도를 지나다니곤 하니까 누군가 실수로 문을 쳤나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소리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나는 가스렌지의 불을 끄고 현관문 앞으로 다가갔다. 문에서 나는 소리는 약간의 간격을 두고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현관문으로 가서 손톱만한 렌즈 구멍에 눈을 갖다댔다. 어떤 소설 속의 한 장면처럼 문밖의 누군가도 렌즈를 통해 안을 보고 있을까봐 살짝 소름이 돋았는데, 렌즈의 시야에서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먼 산과 고층건물들만 작은 동그라미 속에 갇혀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식사 준비를 하려는데 또 문에서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인터폰 화면을 눌러보았다. 화면 속에 낯선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나는 의심과 두려움에 휩싸여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경찰에 신고를 했다. 하지만 경찰관 두 명이 도착했을 때 그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중에 마음이 진정되고 나니 좀 미안하고 민망했다. 내가 괜히 그 낯선 이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여기고 의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장소를 잘못 찾아왔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일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대인신뢰도는 매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대인신뢰도란 친밀하지 않은 타인들을 얼마나 신뢰하는지에 대한 척도인데, 대인신뢰도가 낮은 사회에서는 타인에 대한 불신이 디폴트 값이므로 사회적 유대감은 낮고 갈등은 높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기회도 의심과 불신의 높은 담에 자주 가로막힌다.
스무 살 때의 일이 생각난다. 울타리와 바깥 대문이 없는 집에 살고 있었다. 집에 혼자 있던 오전 시간이었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다. “내 걸뱅인데, 부탁 좀 합시다.” 문을 열었더니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라면 두 개를 내게 내밀었다. 배가 고픈데 조리할 곳이 없다며 라면을 좀 끓여달라는 것이었다. “밖에서 먹을 테니 끓여만 주시오.”라고 덧붙이면서. 나는 그에게서 받아든 라면을 정성껏 끓였다. 완성된 라면을 김치와 물과 함께 쟁반에 얹어 내어주자 그는 감사 인사를 하고 가져갔고 나는 안도하며 문을 닫았다. 그런데 잠시 후 그가 다시 와서 문을 두드렸다. ‘뭐지? 맛이 없다고 항의하려는 건가?’ 조금 겁을 먹은 채로 문을 열었더니 그가 말했다. “친구가 와서 말인데… 젓가락 하나만 더 얻읍시다.” 그는 내가 내민 젓가락을 받은 후 곧 시야에서 사라졌고, 한참 후 문을 열어보았더니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들이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렇게 사라진 후로 그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는데 그때를 떠올려보면 좀 비현실적인 느낌이어서 혹시 신이 잠시 다녀간 게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때의 나는 지금만큼 남을 의심하지는 않았고, 쉽게 문을 열어주었고, 그래서 홈리스 아저씨에게 라면을 끓여줄 수 있었다. 어쩌면 잠시 지상으로 내려온 신이었을지도 모르는 그에게 말이다.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예전에는 많은 이들이 지금보다 타인에 대한 경계심을 적게 품었을 것이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훨씬 많은 문들이 열려 있었겠지. 하지만 이제 우리는 나쁜 뉴스들을 너무도 많이 접해버렸고 낯선 사람의 선의를 쉽사리 믿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이중 삼중의 보안장치로 모든 가능성을 차단한 채 살아간다. 위험에 빠질 가능성도, 홈리스로 변장한 신을 만날 가능성도 모두. ‘어쩔 수 없잖아.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렇게 변명도 해보지만, 타인에 대한 의심과 선입견을 모두 내려놓고 문을 활짝 열어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었던 그때의 내 마음을 조금쯤은 되가져오고 싶다.
2022-10-27 [1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