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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좋은 일자리가 해양수도권의 미래다
HD현대마린솔루션이 부산을 떠난 건 지역으로서는 뼈아픈 일이었다. 부산 유일의 대기업 계열사로 시가총액에서 지역 1위 기업이었다.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선박 AS와 보증 서비스 부분 등을 분리해 현대글로벌서비스라는 독립 법인을 설립하고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에 둥지를 튼 게 2016년 11월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삼성자동차 이후 첫 대기업 유치 사례로 부산이 들썩였다.
법인 신설 당시 2000억 원 수준이던 연 매출은 선박 MRO(유지·보수·정비) 시장의 급성장과 함께 2021년 1조 원을 돌파했다. 2023년 사명을 HD현대마린솔루션으로 바꾸고 2024년 5월 코스피에 상장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현대마린솔루션은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대신 떠나는 길을 택했다. 2025년 3월 공시를 통해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있는 모기업 HD현대 글로벌리서치센터(GRC)로의 본사 이전 사실을 공식화했다. 본사를 옮긴 후 코스피200 기업에 편입하고 시가총액 8조 원을 돌파했다. 그렇게 부산은 배를 짓지 않고도 지속적으로 돈을 버는 회사, 연구개발과 글로벌 마케팅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알짜 해양 기업을 잃었다.
대기업 유치는커녕 있는 기업 하나 지키지 못한 부산시의 행정 실패는 차치하고라도 말로만 해양수도인 지역의 초라한 민낯을 드러낸 일대 사건이었다. 산학연 협력으로 지역혁신을 이루겠다며 공공기관 이전을 통해 해양 혁신클러스터까지 만들었는데 정작 해양 대기업은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며 서울로 떠나는 게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지역을 등진다는 비판에 이기동 대표는 “나도 부산대 출신이지만 지역에서는 고급 인력을 구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현대마린솔루션의 수도권행은 그렇게 판교가 청년들의 취업남방한계선이라는 씁쓸한 현실만 각인시킨 꼴이 됐다.
스타트업이라고 현실이 다르지 않다. 항공우주 유망 스타트업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는 2019년 서울에서 본사를 부산으로 옮겨 영도에 자리 잡았다. 부산시가 지자체 최초 초소형 해양관측 위성 ‘부산샛’ 발사를 계기로 유치한 기업이었다. 지역 이전 당시 7억 원이던 매출액은 2024년 43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유인 달 탐사선 ‘아르테미스Ⅱ’에 나라스페이스가 만든 위성이 탑재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벤처투자가 쏟아지며 급성장했다. 하지만 2025년 7월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서울로 돌아갔다. 80명의 직원도 모두 떠났다. 부산시가 부산기술창업투자원까지 설립하고 창업도시를 외쳤지만 정작 유망 스타트업은 지역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이런 씁쓸한 현실에서 대형 조선사들이 부산에 R&D센터를 설립하고 확장한다는 건 실낱같은 희망이나마 품게 하는 소식이다. 한화오션은 최근 136억 원을 투자해 부산진구 부전동에 2700평 규모의 엔지니어링센터를 추가로 조성하고 2028년까지 상선·해양플랜트 분야 설계 및 연구개발 전문 인력을 채용키로 했다. 앞서 삼성중공업도 86억 원을 투자해 기존 남구 문현금융단지 내 R&D센터를 1700평 규모로 확장해 새로운 통합 설계 거점을 조성하고 2028년까지 해양 설계 및 연구개발 분야 우수 인력을 대규모로 고용할 계획이다.
국내 대형 조선소가 경남과 울산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생산 현장은 물론이고 R&D와 기획, 영업, 금융 등 산업생태계가 부울경 경제권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 게 당연한 이치다. 그래야 말로만이 아닌 진정한 해양수도권이다.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의 부산 R&D센터 확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추적 R&D 기능과 전문 연구 인력은 판교에 집중돼 있다. 수도권 일극체제가 만들어낸 기현상이다.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이전한 후 HMM 등 해운 대기업 이전이 잇따르면서 부산의 기업 판도에도 긍정적 변화가 생기는 것도 지역이 바랐던 해수부 이전 효과다. 3일 부산상공회의소가 발표한 2025년 매출액 기준 전국 100대 기업에 부산 기업 HMM이 60위로 이름을 올렸고 1000대 기업에 포함된 부산 기업도 31곳으로 늘었으며 이들 기업의 총 매출액 합계도 처음으로 50조 원을 돌파했다.
부산시가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전재수 시장을 단장으로 하는 ‘해양수도 부산 세일즈단’ 발대식을 갖고 기업 유치 활동을 본격화했다. 이 자리에서 한국선급(KR)은 연구시설인 군산TCC(그린 기자재 시험·인증센터) 부산 이전 의사를 밝혔다. 이런 게 해양수도권 조성에 필요한 변화다. 전재수 시장은 불법이 아니라면 기업 유치에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며 결기를 보였다. 5극 3특이니 메가 특구니 정책들을 갖다 붙여 본들, 결국 해양수도권의 미래는 좋은 일자리로 결판난다.
2026-11-0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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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전재수의 낙동강 시대는
“서울 갈 때마다 부러운 게 한강이었다.”
전재수 부산시장은 취임과 함께 가진 7월 8일 시정 업무보고 자리에서 시민의 공간으로 사랑받는 한강처럼 낙동강도 시민에게 돌려드려야 한다며 낙동강 시대를 예고했다. 비만 오면 침수를 반복하는 낙동강 둔치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며 네덜란드처럼 제방을 쌓아 공간을 만들고 시민이 활용하게 하는 방안도 거론했다.
부산환경운동연합이 ‘부산이 선택해야 할 것은 제방이 아니라 철학’이라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지만, 전 시장은 의지를 꺾지 않았다. 8월 27일에는 이형섭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을 만난 후 SNS에 ‘낙동강, 시민의 일상과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낙동강은 우리가 잘 지켜야 할 부산의 소중한 자연임과 동시에 시민이 걷고 쉬고, 운동하고 문화를 즐기는 일상의 공간이라며 낙동강 대개조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지난 14일 주간정책회의에서는 낙동강 관련 부서의 기능을 한데 모아 서울시의 미래한강본부와 같이 기획과 사업, 관리까지 총괄하는 조직 신설을 공식화했다. 전재수의 낙동강 시대를 본격화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이는 낙동강이 가진 잠재력을 동서 격차 해소와 부산의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전략자산으로 삼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하니 전재수의 낙동강 시대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궁금하다.
낙동강과 한강은 똑같이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하지만, 물줄기의 방향만큼이나 지리적, 환경적, 역사적으로는 다른 길로 흘러왔다. 한강이 수도 서울을 관통하며 세계 유수의 도시와 같이 양안을 끼고 도시 문명 발달을 이끌었다면 낙동강은 오랜 세월 도심에서 벗어나 경계에 머물러 있었다. 산업화 시기 주변으로 공단이 형성되면서 농업과 공업,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기능적 역할이 더 부각됐다. 천연기념물 179호 낙동강 하류 철새도래지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개발과 보존을 둘러싼 환경 이슈가 첨예한 현장이기도 하다.
낙동강 시대 논의가 본격화한 계기는 강서 1000만 평 그린벨트 해제였다. 2008년 당시 허남식 부산시장은 이명박 정부에 요청해 낙동강과 서낙동강에 둘러싸인 강서 일대 33㎢(약 1000만 평) 그린벨트 해제를 공식 발표하고 부산 국제산업물류도시 조성을 추진했다. 그 중심에서 에코델타시티 개발이 본격화했다. 신 낙동강 시대에 대한 기대와 주문이 쏟아졌다.
신 낙동강 시대에 진심이었던 이가 서병수 시장이었다. 2015년 12월 ‘서부산 글로벌시티’ 플랜을 발표하고 위대한 낙동강 시대를 선포했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2030년대까지 소득 5만 달러, 글로벌도시 30위권에 진입시키겠다는 원대한 포부도 밝혔다. 서부산개발본부를 신설하고 서부산신청사 건립도 추진했다. 자신이 깃발을 들었던 2030월드엑스포 유치를 위한 주무대도 당시는 강서 맥도 일원이었다. 낙동강 하굿둑 개방을 통한 기수역 복원 등 개발과 보존의 조화도 고민했다.
오거돈 시장도 2019년 서부산권 4개 구청장과 함께 신 낙동강 시대를 위한 서부산 대개조 비전을 발표했다. 박형준 시장은 임기 말이던 지난 3월 ‘낙동오원(洛東五園)’이라는 서부산 미래 지도를 공개했다. 을숙도, 맥도생태공원, 대저생태공원, 삼락생태공원, 화명생태공원을 ‘5색 테마정원’으로 재편해 생태·관광·문화를 결합한 글로벌 허브로 만들겠다는 나름 아이디얼한 전략이었는데 낙선으로 동력을 잃었다.
전 시장의 낙동강 시대 또한 이 같은 시정 역사의 연장선에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 서부산 시대가 마스터플랜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가덕신공항 착공을 눈앞에 두고 있고 에코델타시티도 구체적 모습을 드러내는 시점이다. 연구개발특구와 공항도시 등 개발사업도 구체화하고 있다. 전 시장이 꿈꾸는 시민에게 사랑받는 낙동강 친수공간의 모습도 결국 이들 서부산 개발의 미래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낙동강 친수공간에 대한 구체적 고민과 함께 서부산 개발에 대한 비전을 담아내야 한다는 이야기일 텐데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2028년 준공을 앞둔 에코델타시티의 상업·산업·물류 용지 분양률이 20~30%대에 머물고 계약 해지가 이어져 자족도시 기능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게 서부산 시대의 현주소다. 부산만의 성장동력으로 서부산 시대의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성공적 낙동강 시대를 위해서는 부울경 메가시티의 비전을 담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이유다. 낙동강 물줄기가 지역을 아우르듯 낙동강 시대는 부울경 통합의 가치가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전재수의 낙동강 시대가 당연히 담고 있을 가치라고 기대한다.
2026-10-2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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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해수부 부산 이전 그 후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온 지도 벌써 1년이 다 돼 간다. 동구 수정동 임시청사에서 개청식을 하고 부산 시대 개막을 알린 게 2025년 12월 23일의 일이다. 그 사이 해수부 신청사 위치도 북항 1단계 재개발 부지로 정해졌고 2030년이면 북항 청사 시대가 열린다.
SK해운과 에이치라인해운, 흥아해운에 이어 국내 최대 해운기업 HMM도 부산으로 옮겼다. 팬스타 아크로호가 북극항로 개척에 나서 북극해의 유빙을 뚫고 유럽 노선 운항에 성공한 후 12일 부산항으로 돌아온다. 부산 지역 대학의 해양 관련 학과 입시 경쟁률이 크게 높아졌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해수부 이전 후 골목상권이 들썩인 것을 시작으로 부산에 불고 있는 긍정적 변화들이다.
정부 부처 이동은 그 자체로 낯선 일은 아니다. 1980년대 정부과천청사 이전이 있었고, 2010년대에는 정부세종청사 시대가 열렸다. 이에 비하면 해수부는 일개 부처 이동에 불과하지만, 정부 청사 집합적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의미를 갖는다. 부산으로서는 오랜 해양수도 꿈을 현실화하는 출발점이지만 국가적으로도 수도권 일극주의 성장 전략의 구조적 문제를 극복하고 해양 강국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다. 수도권에 비견될 남부 해양경제권 생태계를 만들어야 가능한 국가적 과제다.
6·3 지방선거를 앞둔 4월 청와대에서는 이재명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점검회를 통해 남부 해양수도권 육성 전략을 발표했다. 해수부는 북극항로를 선도하는, 산업이 대도약하는, 기업·사람·자본이 모이는, 살기 좋은 남부 해양수도권이라는 4대 전략을 중심으로 세부 과제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했다. 부산 시민은 해수부 이전을 주도한 전재수 후보를 시장으로 선택함으로써 해양수도 부산을 향한 열망을 표출했다.
하지만 선거 후 해양수도 부산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도 조금씩 식고 있다. 전 시장이 해수부를 부산으로 이전하고, 해운 대기업 본사를 유치하고, 동남권투자공사와 해사전문법원을 설립해 해양수도의 꿈을 이루겠다고 반복해도 크게 감흥이 없다는 반응들이다. 이들 사안은 전 시장 당선으로 선 반영됐다는 생각 때문인 듯하다. 기대치가 높아진 만큼 상대적으로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수부는 이전을 계기로 기능을 강화해 명실공히 대한민국 해양 컨트롤타워로 거듭나기를 기대했지만, 선거 후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지역에서는 조선·해양플랜트, 국제 물류, 해양레저·관광 등을 해수부로 옮겨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정부 부처를 육상부와 해수부로 나눌 정도의 해양에 대한 기능 집중이 있어야 해양경제권 조성을 이끌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2027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1% 안팎에 불과한 게 현재의 해수부 위상이다. 해수부 이전과 패키지로 약속한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한국어촌어항공단, 해양환경공단,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한국항로표지기술원, 한국해양조사협회 등 6대 공공기관 이전도 정부 2차 공공기관 이전에 물타기 돼 버렸다.
이런 가운데 지방선거 후 정부의 5극 3특 균형발전 전략으로 3대 메가프로젝트가 발표되면서 해양수도권은 상대적으로 묻혔다. 반도체와 피지컬AI, 데이터센터로 ‘남부권 반도체 혁신 벨트’를 조성하겠다는 것인데 호남은 반도체 팹을 중심으로 800조 원 이상 대규모 신규 투자를 집중하면서 부울경은 기존 수백억 원의 투자를 끼워넣는 수준에 그쳤다.
물론, 반도체 대기업의 호남 투자를 소지역주의 관점으로 시비 걸 일은 아니다. 문제는 호남 반도체 팹에 쏟는 정성이 해양수도 부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 광주 군 공항 이전 속도전을 강조하면서 해양수도권의 필수 인프라인 가덕신공항 적기 완공을 위한 공사비 증액은 특별법 개정까지 거론하며 발목을 잡는다. 같은 대기업인데 대한항공의 통합 LCC 부산 거점 약속은 내몰라라다.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이전 원칙을 생각하면 산업은행 부산행도 정부 여당이 결자해지해야 할 사안인데 묵묵부답이다.
지방선거 후 이재명 정부 국정지지율 하락 속에 부울경 민심이 상대적으로 더 싸늘해진 것은 이런 상황이 반영된 결과다. 집권 여당 지지율 하락에 놀란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3일에도 부산을 찾아 ‘2028년 총선 주전장은 한강이 아니라 낙동강’이라고 강조했지만 말로만 될 일은 아니다. 김 대표가 SNS에 ‘돔돔돔, 부캉이’라고 올리며 북항 돔 아레나 지지를 밝힌 것은 반길 일이지만 해양수도권을 위해서는 다방면의 전폭적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야 전재수 시장의 비수도권 맏형 역할에도 힘이 실린다. 그리고 해양수도권 조성은 지역 민원이 아니라 국가의 성장잠재력 회복을 위한 국정 과제다.
2026-10-06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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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모두의 대통령 되겠다"던 초심
“이번 대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크게 통합하라는 대통령의 또 다른 의미에 따라,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통합은 유능함의 지표이고 분열은 무능의 결과”라며 “국민의 삶을 바꿀 실력도 의지도 없는 정치 세력들이 권력 유지를 위해 편 가르고 혐오를 심는 것”이라고도 했다. 2025년 6월 4일 대통령 이재명의 취임 일성은 ‘모두의 대통령’이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광장이 둘로 갈라진 상황에서 팬덤 정치에 특화된 특정 진영의 수장 이미지가 강했던 이재명 대통령이 ‘통합’보다 ‘내란 청산’을 앞세울 경우 국론 분열이 가속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정쟁으로 날을 새기에는 국가적으로 헤쳐나가야 할 안팎의 위기 상황 또한 녹록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인사로 통합을 실천했다. 윤석열 정부 인사였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이례적으로 유임시켰다. 민주노총 출신 노동부 장관을 앉히면서도 대기업 출신 장관을 등용해 균형을 맞추고 외교 라인에도 ‘자주파’와 ‘동맹파’를 공존시켰다. 그러면서도 국민 눈높이나 야당, 우리 지지층 안의 기대에 못 미치는 측면이 있다며 몸을 낮췄다. 야당 대표와 식사도 하고 국회 시정연설에 꼬박꼬박 참석해 야당 의원들에게도 먼저 악수를 청했다. 취임 1년의 국정이 안정적으로 유지된 배경이다. 60%대의 높은 지지율이라는 숫자로도 뒷받침됐다.
그러던 지지율이 3개월 만에 반 토막 났다. 여당 내부에서도 지지율 하락의 속도와 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여론조사 결과가 지목하는 원인은 우선 부동산과 주식이었다. 수도권 집값을 잡겠다고 7차례나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는데 무주택자만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유능함’의 상징이던 주식시장도 하락 반전하며 지지율 추락과 궤를 같이했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고 자신의 호주머니가 가벼워지는데 좋아할 국민은 없다. 공소 취소와 연임 개헌, 보완수사권 폐지 논란도 여론을 악화시켰다.
지지율 하락이라는 게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이고 그래서 해법 찾기도 어렵지만 본질적으로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던 그 초심으로 돌아가 숙고할 수밖에 없다. 집권 초 안정적이던 국정이 흔들린다면 그 초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이재명을 지지하지 않았던 이들의 마음까지 얻은 그 초심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신뢰 추락의 트리거가 된 게 ‘공소 취소’가 아니었나 싶다.
6·3 지방선거를 앞둔 4월 더불어민주당 의원 31명 명의로 이른바 조작기소 특검법이 발의됐다. 그 배경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좋게 이야기해서 자신감, 달리 말하면 오만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본다. 이 지점에서 ‘모두의 대통령’이라는 진정성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사익을 쫓는 대통령’이라는 국민적 불신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 불신은 연임 개헌 의혹으로 확대되며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 결과는 ‘모두의 대통령’은커녕 진영 내에서조차 ‘반쪽 대통령’으로 전락하는 비극이었다.
지지율 반등을 꾀하며 단행한 집권 2년 차 개각이 인사 참사로 귀결되고 있는 것도 ‘사익을 쫓는 대통령’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공소 취소 모임 대표를 법무부 수장으로 내세운 것 자체가 그 프레임을 단단하게 만든 꼴이다. 대법관 제청과 보완수사권 폐지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의혹의 눈초리를 받기는 마찬가지다. 심각한 신뢰의 위기다.
이 대통령은 위기 돌파를 위해 90분간 굳은 표정으로 국민 앞에 섰다. ‘국민은 언제나 옳다’며 지지율 하락은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다시 몸을 낮췄다. 연임 생각은 없다며 선을 그었고 공소 취소 논란에 대해서도 특검의 권한 중 기존 기소 사건에 대한 처분을 삭제하고 진상 규명에만 집중해 줄 것을 국회에 요청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오직 국민만 믿고 국정에 임하겠다며 자신의 진정성을 호소했다. 하지만 여전히 공소 취소와 관련해서는 개운하지 않은 뒷맛을 남겼다. 정작 필요한 건 퇴임 후 재판받을 각오였을 텐데 말이다.
결국, 대통령의 진정성에 대한 수용 여부는 ‘언제나 옳다’는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추석 ‘차례상 민심’의 화두이기도 할 것이다. 어찌 됐든 추석 연휴가 대통령의 신뢰와 국정 동력 회복의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대통령의 실패는 개인 이재명의 실패가 아니라 국민의 실패이고 그 고통 또한 국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냥 지켜만 보기에는 국민이 그에게 맡겨 놓은 시간이 아직은 너무 많이 남았다.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2026-09-2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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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지역 경제 엉망인데 기준금리 인상이라니
2023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제1회 지역 경제 심포지엄을 개최하며 지역 간 불균형에 따른 통화정책의 어려움을 그 배경으로 들었다. 통화정책이라는 게 무딘 칼이어서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데 지역별 체감이 차별적이어서는 국민적 공감과 지지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지역 간 불균형을 완화하고 지역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도모하는 게 국민 경제의 중요한 이슈일 뿐만 아니라 물가와 금융 안정이라는 중앙은행 책무를 수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하며 심포지엄을 연례화했다. 수도권 집중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국가의 건강한 성장을 이뤄내기 어렵다는 생각에서였다.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서는 강남 학생의 서울대 진학을 제한해야 한다는 파격적 보고서를 냈다가 교육부 장관이냐는 비아냥까지 들었던 것도 이런 신념의 발로였다.
새삼스럽게 이 전 총재의 인사말을 떠올린 건 한국은행이 지난달 27일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인상해 3%로 상향 조정하는 걸 지켜보면서였다. 한은의 이번 기준금리 결정이 주목받았던 것은 2개월 연속해서 올리는 백투백(Back-to-Back) 인상을 단행했다는 점에서였다. 백투백 인상은 3년 7개월 만인데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역사상 이번까지 포함해 네 번에 불과할 정도로 이례적 일이다.
한은은 그 이유로 우선 물가 압박을 꼽았다. 근원물가지수가 7월에 2.6% 올라 2023년 12월(2.8%)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며 목표(2%)를 크게 웃돌았다는 것이다. 근원물가가 상향 조정돼 오름세가 광범위하고 장기간 유지될 것으로 우려된다는 설명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64주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서울 집값도 영향을 미쳤다.
그럼에도 백투백 인상 결행까지 가능하게 했던 것은 경기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더해진 때문이었다. 한은은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3%와 2.9%로, 5월 전망치(2.6%, 2.1%)에서 대폭 끌어올렸다. 신현송 한은 총재도 이례적 연속 인상에 따른 시장 충격 우려를 의식해 ‘호미론’을 꺼내 들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을 언급하며 집값과 가계 부채, 환율 안정에 ‘호미’로 선제 대응하겠다고 했다.
경기가 좋아지고 소득이 올라가 물가 상승세 확산이 우려되니 선제 대응한다는 것인데 지역민 입장에서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다. 물가가 올랐다는 건 알겠는데 경기가 좋아지고 소득이 올랐다니, 체감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자영업 기반이 무너지면서 빈 점포가 눈에 띄게 는 게 지금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중소기업 중심의 제조업 경기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감당 못 하는 업체들이 즐비하다.
한은 금리 인상 배경이 된 낙관적 경기 지표들은 반도체발 돈벼락에 힘입은 바가 크다. 총량적 거시지표는 어느 때보다 좋지만, 호황의 수혜는 일부에만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도체 기업과 소속 노동자, 그리고 반도체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 정도다. 지역적으로는 산업구조와 자본 분포상 수도권 중심이다. 비수도권에서는 호황의 온기를 체감하기 어렵다. 문제는 호황의 비용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가리지 않고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집값만 해도 그렇다. 서울에서는 집값을 잡겠다며 ‘닥치고 공급’을 외치면서도 땅을 찾지 못해 난리인데 지역에서는 아파트 미분양 물량이 쌓여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집값 잡겠다고 금리를 연속해서 올렸으니 가뜩이나 위축된 지역 부동산 시장은 더 얼어붙고 지역 경제에도 타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내년에 기준금리가 3.5%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는데 지역민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진다.
이 전 총재가 지적한 기준금리 정책의 딜레마인데,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해소를 위한 구조개혁 없이는 풀기 어려운 문제다. 정부 균형발전 정책 효과가 수도권 쏠림 가속도를 압도해야 가능한데 어느 정권도 해결 못 한 숙제다. 이재명 정부 또한 서울 집값의 늪에 빠진 형국이다. 당장은 정부 부처와 2차 공공기관 이전부터 전면적이고 속도감 있게 진행해야 할 일이다. 800조 원을 넘어선 내년도 역대급 슈퍼 예산도 수도권 쏠림 해소에 쏟아야 통화정책과의 엇박자 논란에서 비껴갈 수 있다. 한다고는 하는데 안 된다는 것은 방향이 잘못됐거나 총량이 부족해서다. 결국, 임계점을 넘어서는 균형발전 물량 공세가 답인데 수도권의 목소리에 점점 눌린다. 서울 집값의 수렁이 더 깊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26-09-0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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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사람을 살리는 은행, 지역을 살리는 금융
전재수 부산시장의 역점 사업인 북항 돔구장 복합개발에 지역 대표 금융기관인 BNK금융그룹이 적극 참여키로 했다고 한다. 사업이 본격화하면 금융 조달을 중심으로 그룹 차원의 투자를 위한 태스크포스(TF)팀 구성을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참여 방식은 직접 투자와 함께 시민 펀드 조성도 검토 대상이다. 토큰증권과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결제·운영시스템을 통해 시민 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북항 돔구장 복합개발은 단순히 야구장 건립을 넘어 호텔과 공연장, 상업시설 등을 결합한 사계절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북항재개발 활성화는 물론이고 원도심 부활을 위한 앵커 사업으로 기대를 모은다. 부산시와 해양수산부, 부산항만공사가 사업 구체화를 논의 중이지만 3조 원으로 추산되는 막대한 사업비가 최대 허들이라는 점에서 BNK금융의 참여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토큰증권 등을 활용한 시민 참여형 투자 방식은 블록체인특구 부산의 금융 산업생태계 혁신에도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지역 금융의 존재 이유와 역할을 환기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BNK금융에 대한 지역사회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디지털 금융 확산과 수도권 중심 산업구조, 지역 경기침체가 맞물리면서 지역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대한 견제 움직임도 커졌다.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의 공세로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고 영업 환경이 악화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특히 최근 반도체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성장세와 지역 경제의 상대적 침체는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과 5대 지방은행(부산·경남·광주·전북·제주) 간 양극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평균 연체율 등 영업 지표의 간극도 커졌다. 지방은행을 지역 경제의 거울로 비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방은행들은 이같이 기울어진 영업 환경에서도 지역의 어려운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들을 외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업의 자금난 심화와 자영업 기반 붕괴는 결국 지역 경제 악화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지방은행의 존재 이유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악화한 영업 환경의 틈새를 뚫고 주주 우선주의를 앞세운 행동주의펀드의 공세는 또 다른 위협이다.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요구에 주력했던 행동주의펀드들은 최근에는 경영체제 개편과 금융지주 간 합병으로 영역을 확대하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BNK금융과 JB금융의 합병을 제안하며 공개 주주 서한을 발송한 게 대표적이다.
문제는 단기적 주가 제고와 효율성에만 초점을 맞춘 이 같은 공격이 지역 금융의 공공성 훼손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 지역 금융기관의 지속 가능성마저 흔든다는 데 있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금과옥조로 여겨졌던 주주 자본주의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실패로 결론 난 마당이다. 주주 자본주의가 단기적 투자 수익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주주 가치 환원에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경고다. 지방은행의 가치도 연체율과 부실채권, 자기자본이익률(ROE) 등 단기적 영업 수치로만 평가되어지는 게 아니다.
지역 금융의 역할은 예금과 대출을 처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역민과 호흡하고 사회 공헌을 실천하는 것은 이제 지역 금융의 부수적 활동이 아니라 핵심적 책무에 속한다. 지방은행은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그나마 풍부한 자본 여력과 안정적 수익성을 기반으로 지역 경제의 혈맥을 유지하는 버팀목 역할을 해 왔다. 지역 기업과 지역민이 기댈 언덕인 것이다. 지방은행 또한 지역 기업과 지역민을 기반으로 함께 성장해 가야 하는 게 숙명이다. 지역 자본을 조성해 키우고 지역 산업과 일자리를 확대하며 사회 공헌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때 지역도 성장하고 지역 금융의 지속 가능한 성장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다. 눈앞의 수익에만 급급해 본질적 가치인 지역을 배제할 경우 결국 지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존재 이유도 사라진다.
금융당국의 지방은행에 대한 시각도 지역의 가치에 맞춰져야 하는 건 물론이다. 행동주의펀드들의 지방금융지주에 대한 공세가 금융당국이 이사회 독립성 강화와 CEO 승계 절차 개선 등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면서 힘을 받게 됐다는 점은 되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지역금융지주의 지배구조 투명성과 자본 건전성을 위한 감독 역할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무엇보다 지역을 위한 공공성과 지역 금융의 역할을 우선에 둬야 한다. 지역의 경제 여건이 어려워질수록 시중은행과는 차별화해 지방은행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게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균형발전과 생산적이고 포용적인 금융을 위한 취지에도 부합하는 길이다.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2026-08-25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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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왜 지역별로 전기요금을 차등화해야 하냐면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를 처음으로 사회 이슈화한 이는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부산진구갑에 출마해 석패한 후 고향 부산에서 야인 생활을 하던 때였다. 자신이 소장으로 있던 인본사회연구소 주관으로 2013년 11월 부산 비전 정책토론회를 갖고 ‘반값 전기료 운동’을 본격화한다.
위험천만한 원전을 머리맡에 이고 사는 부산과 울산 시민이 수도권과 같은 전기요금을 내는 게 말이 안 된다는 논리였다. 원전 반경 5, 10, 20, 30, 50km 이내로 구분한 후 주택용 전기료를 30~90%가량 지원해 반값 전기료를 실현하자는 구체적 방안도 제시했다. 2011년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밀양 송전탑 갈등도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화 주장의 배경이 됐다. 하지만 반값 전기료 이슈는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김 소장의 부산시장 출마 선언과 함께 정치적으로 소비되고 말았다. 물론 김 소장은 20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후 발전소 주변 지역 전기요금 인하를 골자로 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진정성을 보이기도 했다.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논의가 본격화한 것은 2022년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발의되면서였다. 전력 공급과 수요 지역의 불균형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에너지 분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차등 요금제 도입과 함께 기업들의 수도권 집중을 막아야 한다는 게 법안의 골자였다. 마침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시장원리에 입각한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도입 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하며 균형발전 차원의 도입 필요성에 힘을 실었다. 원전 주변 지역 지자체들의 목소리도 다시 분출했다.
2024년 6월 분산에너지 특별법이 발효되고 정부가 2026년부터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를 실시한다는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여전히 구체적 시행에는 미온적이었다. 2024년 당시 산업통상자원부는 전국을 수도권과 비수도권, 제주권으로 3분할하는 방안을 발표했다가 차등화 효과가 있겠느냐는 반발만 사기도 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4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 하반기 업무보고에서 8월 중 공청회를 갖고 조만간 구체적 방안을 확정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는 공론화 4년 만에 확정 수순을 밟게 됐다. 하지만 전국을 4개 권역으로 나누고 가정용이 아닌 산업용만 차등 적용하는 것으로 윤곽이 잡혀 실질적 효과가 있겠느냐는 의문은 여전한 상황이다.
전기요금은 그 자체로 강력한 정책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동안 국내 전기요금 체계는 원전 가동에 따른 주변 지역 주민의 고통과 장거리 송전에 따른 막대한 경제·사회적 비용을 무시한 채 전국을 단일 요금 체계로 묶음으로써 에너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왜곡하고 에너지 전환에도 장애물로 작용했다. 인공지능(AI) 시대 원전의 필요성은 강조하면서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이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에너지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이런 현실이 전기요금에 공정하게 반영돼야 에너지 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고 에너지 백년대계도 가능하다. 주택용 전기요금도 차등제가 적용돼야 마땅한 이유다.
영국 스웨덴 일본 호주 등 대부분의 나라가 송전 거리가 멀수록 높은 요금을 부과하는 거리 정산 요금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는 아예 발전한계비용, 송전혼잡비용, 송전손실비용을 다 고려해 노드별(발전기별)로 세분화한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한전의 만성적 적자 구조를 고려하면 원전 주변 지역 반값 전기료가 아니라 수도권 전기료를 인상해야 하는 게 국내 에너지 산업 생태계의 실상과 정의에 부합한다. 문제는 늘 이 대목에서 정치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제 시행이 늦어진 것도, 산업용에만 실시하기로 가닥을 잡는 것도 결국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선 수도권 주민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기후에너지부 장관도 균형발전을 공개 석상에서 수시로 이야기하지만, 구체적 정책 집행에 들어가면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끝을 낸다. 주택용 제외도 그렇지만 산업용 차등화로 기업들이 얼마나 지방으로 이전하고 투자할지도 의문이다.
이제 AI와 전기가 결합된 전기국가 패권전쟁이 시작됐다고들 한다. 석탄과 석유를 넘어, AI와 전기를 장악하는 국가가 세계 패권을 거머쥐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원전과 소형모듈원자로(SMR), 신재생에너지의 믹스를 어떻게 가져갈지에 대한 사회적 숙의와 공론화가 국가 안보와 미래를 가르는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됐다. 이를 위해서라도 에너지 문제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공감이 중요하다. 공정한 전기요금의 설계와 부과가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2026-08-1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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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가덕신공항 만시지탄
최근 몇 년 사이 부산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의 하나가 도심 어디를 가나 많은 외국인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이나 대만, 일본, 동남아 관광객, 심지어 미주나 유럽에서 온 서양인 관광객도 눈에 띄게 늘었다. 유명 관광지는 물론이고 도심 곳곳에서 시민의 일상과 함께하는 외국인이 정말 많다. 여름 시즌을 맞이한 광안리와 해운대해수욕장은 외국의 유명 휴양지를 연상케 할 정도다. 도심 풍경으로만 보면 부산은 이미 글로벌 도시다.
최근에는 부산 여행을 다녀간 후 “부산 앓이를 하고 있다”라며 ‘부산병’ 환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등 SNS를 타고 지독한 부산 앓이의 경험들이 확산하면서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부산병은 이제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됐다. 해운대 미포에서 청사포를 달리는 스카이캡슐을 잊지 못해 영상을 무한 반복하면서 틱톡 조회수가 대박났다는 식이다. 처음에는 아침 식사로 먹던 돼지국밥이 낯설었는데 부추를 팍팍 넣은 뜨끈한 돼지국밥 맛에 중독돼 소울푸드가 됐다는 고백도 등장한다. 대만 항공사가 돼지국밥 콘셉트의 기내식을 내놓았다고 하니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닌 모양이다. 광안리 드론 쇼와 함께 먹던 수변공원 치맥 중독도 자주 언급되는 증상이다. 부산관광공사가 ‘부산병 치유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올해 들어 지난 5월까지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200만 명에 육박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300만 명을 돌파했는데 올해에는 지난해에 비해서도 40%나 급증하며 500만 명 시대를 목전에 두게 됐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미국 80.1%, 프랑스 89.2%, 영국 44.7% 등 서양 관광객이 상대적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여 명실상부한 글로벌 관광도시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도심에서 서양 관광객이 자주 눈에 띄었던 게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부산의 외국인 관광객 증가를 두고 K문화, 환율, 느슨해진 한한령과 강화된 일한령, 엑스포 홍보 효과 등 다양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부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매력이 ‘부산병’까지 앓게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도 거대한 대도시와 광활한 바다가 공존하는 해양도시는 드물다. 세련된 초고층 빌딩 숲 옆으로 해운대와 광안리의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밤이면 광안대교의 야경이 빛난다. 근대의 역사와 감성을 간직한 감천문화마을, 흰여울마을, 비석마을은 ‘인스타그래머블’한 풍경을 쏟아낸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속도와 저렴한 물가, 다양한 먹거리, 투박한 정서가 부산 앓이의 배경이다.
이 대목에서 유독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는 게 가덕신공항 허송세월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김해국제공항은 미어터진다. 국제공항은 글로벌 관광도시의 필수 인프라다. 김해공항에 대만 직항이 개설된 후 대만 관광객이 점유율 1위로 올라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비수도권 공항 중 처음으로 국제선 이용객 1000만 명을 돌파한 후 올해는 12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인천공항을 통해 부산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KTX도 예매 전쟁이다. 김해공항 슬롯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심야 운항과 장거리 노선 제한 등 구조적 한계가 분명하다. 이 때문에 추진된 게 신공항이다. 2002년 돗대산 참사를 계기로 남부권신공항 논의가 시작됐으니, 지금이면 개항하고도 남았을 시간이고 부산 관광의 르네상스도 더 꽃을 피웠을 것이다.
남부권신공항 논의 당시에도 김해공항 수요의 폭발적 증가는 예견됐지만 국토부는 수요 전망을 애써 축소했고 서울 언론들은 ‘고추 말리는 공항’이라며 다른 지방공항과 도매금으로 비하했고, 지금까지도 안전 등 갖은 이유를 대며 딴지를 걸고 있다. 정부는 지역 간 갈등을 부채질하며 입지 선정과 취소, 개항 연장을 반복했고 그 결과가 2035년 개항 로드맵이다. 그 사이 부산은 많은 기회를 잃었다. 이재명 정부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 보이는 속도전을 생각하면 가덕신공항 허송세월은 그야말로 만시지탄이다. 국가의 미래가 반도체에만 있는 게 아니다. 관광 또한 국가의 미래 전략산업이다. 가덕신공항은 해양수도권의 핵심 인프라이기도 하다.
현재로서는 2035년 개항 로드맵도 어떤 시련과 도전에 봉착할지 모른다. 글로벌 도시 부산과 해양수도권 완성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앞당겨야 마땅한데 정부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 쏟는 정성의 반의반만큼이라도 쏟을지 미지수다. 해양수도, 글로벌 관광도시를 성장 전략으로 내세운 전재수 시정이 사활을 걸어야 할 일이다.
2026-07-2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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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신문 읽어주는 울산시장 김상욱
민선 9기 지방정부 출범과 함께 자치단체장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지역 소멸과 인공지능(AI) 대전환 시대를 맞아 지역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고 지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신발 끈을 동여매고 있는 것이다. 겉치레 취임식은 생략하고 ‘민생 100일 비상조치’에 들어가는가 하면 로봇이 등장해 취임 선언문을 전달하는 장면도 연출한다. 취임식 후 곧장 현장으로 달려가고, 업무보고를 생중계하며 시민과 소통의 문도 열었다. 민선 9기, 그 변화의 중심에 선 이가 김상욱 울산시장이다.
취임 전부터 파격적 인수위원회 구성과 회의 생중계로 화제를 모았던 그다. 인수위의 모든 회의를 생중계하고 주요 내용은 숏폼 영상으로 제작해 자신의 SNS에 올렸다. 게시물에는 “잘한다” “응원한다” “앞으로 기대된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이재명 대통령도 엑스(X)에 인수위 생중계를 언급한 더불어민주당 김태선 의원(울산 동구) 게시물을 공유하며 “요즘 김상욱 당선자의 공개회의 볼만합니다”라고 격려했다.
울산 트램 사업 중단 여부를 놓고 인수위에서 벌어진 김 당선인과 공무원 간 설전 영상은 167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사업 타당성에 대해 담당 과장이 “사업이 무산되면 확보한 국비 420억 원 등 2228억 원을 반납해야 하고, 이미 계약을 마친 상대와 분쟁도 예상된다”라고 답변하자 김 당선인이 “협박으로 들린다”라고 맞받는 영상이다. ‘울산의 참교육’이라고 회자되는 등 반응이 뜨거웠다. 우려의 목소리도 동시에 나왔다. 해당 영상에 “뇌물 받아먹고 계약 다 해놨는데 토해내야 하니까 당선인을 협박한다”와 같은 과도한 비난 댓글도 달렸다. 김 당선인도 인신공격 자제를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회의 공개에 대한 의지는 꺾지 않았다.
취임과 함께 ‘시민 주권’을 선언하고 소통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 ‘김상욱 TV’를 통해 ‘신문 읽어주는 시장’이라는 콘셉트로 매일 아침 라이브 방송으로 시민을 만난다. 주요 뉴스를 공유하고 울산 현안에 관해 이야기 나누는 식이다. 어느덧 구독자도 20만 명을 넘어섰다. 김 시장이 14~15일 서울 출장으로 기후에너지부와 삼성, 현대차, SK 등 기업 방문 일정을 소화 중이라는 사실도 라이브 방송을 통해 알 수 있다.
김 시장이 시민과의 직접 소통을 강화하고 나선 것은 국민의힘이 다수를 점한 시의회와 기초자치단체, 지역 기득권에 포위됐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시민의 힘을 등에 업고 자신의 정책을 관철하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전임 김두겸 시장의 치적 쌓기용 대규모 사업을 중단하고 대중교통과 의료 등 시민 삶의 실질적 개선을 도모하려면 여론의 지지가 필요하다. 자신의 정치 원칙인 대의(大義)와 공심(公心)을 지키면 뚫고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인 듯하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40대 젊은 시장’의 공격적 행보가 정치 쇼로 끝날지, 지역 혁신으로 빛날지는 그가 어떻게 지역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발휘하느냐에 달렸다. 복잡하게 얽힌 시정 현안들을 라이브 방송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트램 사업을 되돌리기에는 법적 장벽이 엄연히 존재하고 시내버스공영제에도 막대한 재정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추락하는 울산 경제를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우느냐가 그의 앞에 놓인 근본적 과제다. 한때 산업수도를 자부하던 울산도 자본의 하청기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대규모 자동차 공장과 조선소는 있지만 본사와 함께 자본과 R&D 인력은 수도권으로 떠나고 없다. 부산·경남과 갈라선 후 부자 동네를 자부하며 선을 그었지만, 그도 옛날이야기다. 청년들이 떠나고 지역 소멸의 벼랑 끝에 놓인 건 부산·경남의 처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시민 주권’이 정치적 레토릭일 수는 있지만 울산의 미래 비전일 수는 없다.
다행한 것은 김 시장이 AI 시대 산업 대전환을 위해서는 부울경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진취적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산업 대전환, 제조업 AX(AI 전환)와 피지컬 AI 혁신이 부울경의 제조업 기반으로 가능하다는 강한 신념도 밝힌다. 이를 위해 산학연과 지역 네트워킹에 앞장서고 부울경의 경계를 가리지 않고 광폭 행보를 보이는 것도 젊은 리더십에 거는 기대다. 망국적 수도권 일극 체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부울경이 힘을 합해야 한다는 게 너무나 자명한 일이기에 더 그렇다.
김 시장은 취임 후 지난 2일 부산시청을 방문해 전재수 부산시장을 만난 자리에서 울산과 부산이 이미 하나의 생활권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울산 울주군 서생면 나사리에서 부산 기장군 해안을 달리는 해안 마라톤 대회를 공동으로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부울경이 함께 뛰는 그날을 위해 김상욱 시장의 젊은 패기와 통합의 리더십이 꽃피길 응원한다.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2026-07-1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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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명청대전, 무엇을 위한 권력투쟁인가
이재명 대통령의 집권 2년 차가 위기 속에 출발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6·3 지방선거 결과는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 동반 급락을 초래했다.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진영 내 권력투쟁이 본격화하며 여론은 차갑게 식고 있다. 이 대통령 지지율은 국정 운영 ‘부정’ 평가가 ‘긍정’ 평가를 앞지르는 데드크로스를 기록했다.
민주당에서 부산시장과 울산시장을 배출한 PK 지역에서는 국정 운영 ‘부정’ 평가가 50%를 넘어서며 다른 지역에 비해서도 민심 이반 속도가 더 가파르다. 정부가 지난달 29일 발표한 ‘3대 메가 프로젝트’에 따라 호남에는 대규모 반도체 투자가 진행되는데 PK 지역은 들러리 세워 지역 민심은 더 싸늘해졌다. 1일 출범하는 민선 9기 부산과 울산 시정, 경남 도정에도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민심 이반에 청와대도 비상이다. 이 대통령은 1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한다. 청와대는 미리 잡힌 일정이라고 간단하게 브리핑했지만 정치적 함의는 간단하지 않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친명 대 친문’의 대리전으로 비칠 경우 국정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여름휴가도 가지 않기로 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만큼 현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대통령 지지율은 자체가 국정 동력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지율이 높으면 대통령 한마디에 무게가 실리고 정책도 힘을 받는다. 반면 지지율이 떨어지면 ‘영’이 서지 않고 정책도 겉돌기 마련이다. 지지율 하락세를 그냥 넋 놓고 바라만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낮은 지지율에 연연해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결국 정국 상황에 대한 인지부조화 속에 계엄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탄핵당했다.
문제는 지지율 반등을 위해서는 엄정한 원인 진단이 앞서야 하는데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갑자기 돌아선 민심이 당혹스러울 수도 있지만 집권 여당에 대한 비판 여론은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누적됐다고 봐야 한다.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공소취소 특검법’ 추진에 국민은 고개를 갸웃했다. 경기 평택을 재선거에서의 민주당 김용남 후보와 조국혁신당 조국 후보의 볼썽사나운 충돌이 진영 내 권력 다툼임을 모를 리 없었다.
유권자는 지방선거를 통해 지리멸렬하는 국민의힘을 심판하면서도 오만한 집권 여당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이미 탄핵당한 야당 심판보다 현 집권 세력에 대한 경고장이 더 큰 의미를 가졌을 수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여당은 그 의미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 정청래 대표는 선거 다음날 “전국적으로 큰 승리를 안겨주신 국민께 깊이 감사드린다”라고 했다. 대통령도 “국민이 정권에 보낸 경고”라고 머리를 숙이면서도 최대 악재였던 공소 취소는 언급하지 않았다. 국민은 더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권 내 집안싸움이 본격화했다. 정청래 대표가 당 대표 재도전에 나서자, 친명계를 중심으로 지방선거 책임론을 거론하며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자 친문 진영의 김어준·유시민 씨까지 가세해 이 대통령을 직격하고 김민석 국무총리와 송영길 전 대표가 재반격하면서 여권 전체가 둘로 나뉘어 사생결단을 벌이는 모양새다. 이름하여 ‘명청대전’이다.
대통령을 향해 “증축하랬더니 재건축하려 한다”고 공격하고 청와대는 다시 “재개발도 있다”고 겁박한다. ‘문조털래유’ ‘한강새똥돼주길’이라는 멸칭과 분열의 언어가 난무한다. ‘배신’과 ‘돈봉투’ 전력까지 소환하며 선을 넘는다. 동지가 아니라 원수도 이런 원수가 없다. 중도층의 마음이 떠나지 않는 게 이상하다. 핵심 코어 층 이탈 운운은 근거 없는 궤변에 가깝다.
국민을 더 분노케 하는 것은 국정을 책임진 저들이 뭐를 위해 저토록 죽기 살기로 싸우느냐는 거다. 집권 1년 차 이재명 대통령에 대해 걸었던 기대감도 이제 거품이 빠지고 있다. 물가 불안과 고환율에 따른 민생 문제가 목전의 위기다. 부동산 시장 불안과 2030의 상대적 박탈감을 잠재울 근본 대책도 시급하다. 하지만 저들의 권력투쟁 어디에도 이런 고민은 없다. 기껏해야 검찰에 보완수사권마저 줘서는 안 된다는 선명성 경쟁 정도다. 그것도 대다수 국민의 권익에 심대한 손해를 끼치는 방향이다.
지금 세계는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기술 패권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 생존 경쟁에서 필요한 건 국가적 상상력과 산업 전략을 총동원해 미래를 설계할 리더십이다. 국민은 민주당이 재건축하든 재개발하든 관심 없다. 청와대와 여당이 총선 공천권을 차지하기 위한 밥그릇 싸움에 정신이 팔려 국가를 위기에 빠트릴까, 그게 걱정인 것이다.
2026-06-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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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2030의 분노가 향하는 곳
2010년대 중반 우리 사회는 새로운 유형의 신입사원을 맞이하게 된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보다 워라밸을 추구하고 개인화된 신인류의 등장이었다. 회식, 야근,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를 거부하며 ‘칼퇴’를 일상화하고 개인의 시간과 행복이 존중받길 원했다. 회사 역시 월급을 주는 곳이 아니라 성장과 존중을 제공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었다. 기성세대에게 이들은 싸가지 없고, 끈기 없고 다루기 힘든 존재였다.
이즈음 등장한 책이 임홍택 작가의 〈90년생이 온다〉였다. ‘조직도 소비시장도 뒤흔든 90년대생의 코드 읽기’라는 카피에서 보듯 기존 세대와는 전혀 다른 생존 전략을 구사하는 이들은 연구와 분석을 통해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였다. 이들에게 꼰대로 찍히지 않기 위해서는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꼰대력을 테스트하는 리스트까지 나돌았다. 2019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면서 전했다는 메시지가 “새로운 세대를 알아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였다.
그 사이 90년대생을 넘어 2000년대생이 왔다. 기성세대는 이들을 위해 얼마나 미래를 준비해 왔을까. 이들이 기성세대를 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하고 분노를 키워온 결정적 시기가 문재인 정부 집권기와 맞물려 있다는 게 아이러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지만 이들에게 세상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았고 무한 경쟁을 강요하는 약육강식의 정글이었다.
‘아빠 찬스’를 이용한 입시 비리로 상징되는 조국 사태는 이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이들이 더 분개한 것은 기득권 세력의 위선이고 내로남불이었다.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사태도 이들의 분노 게이지를 높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국공을 방문한 후 아무런 정식 절차 없이 비정규직 1900명을 공사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들 눈에 과정의 공정은 온데간데없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우리 선수들 출전 시간을 빼앗은 것도 동포애가 아닌 공정의 문제로 인식했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이들의 분노에 답하고 사회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나서기보다는 정치적 이용 대상으로만 소비했다. 소위 민주화 세대라 자처하는 운동권 출신 586의 눈에 2030은 그저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보수화하고, 심지어는 극우화한 개념 없는 세대였다. 그러는 사이 이들의 분노는 더 자라고 조직화했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식의 청년 정책에 대한 실망감, 극우 프레임에 대한 모멸감이 청년 세대의 분노를 키웠다. 그게 정치적으로 세력화하고 표출되기 시작한 게 이번 6·3 지방선거다.
더불어민주당으로 기울었던 서울시장 선거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당선으로 결론 나자, 출구 조사 통계를 기반으로 2030 세대의 생존 투표라는 분석이 등장했다.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분노가 투표로 분출했다. 이들에게 기득권은 민주당이다. 자신들을 살인적 경쟁 환경에 몰아넣고 계층 사다리마저 걷어찬 책임을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된 민주당에 묻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국힘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의 언어로 풀이하자면 민주당은 재수 없고 위선적이며 국힘은 그냥 바보다.
이들의 눈에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기득권 세력의 무능과 위선이 드러난 상징적 사건이다. 참정권이야말로 절차적 공정이 구현되는 헌법적 과정으로 반드시 지켜져야 할 권리다. 말로는 민주주의를 앞세우면서 정작 가장 기본적 절차 하나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는 기득권 세력에 그동안 쌓여왔던 분노가 폭발했다. 스타벅스 커피의 비뚤어진 5·18 마케팅에 대통령부터 나서 분개하던 집권 세력이 선관위 사태에는 온도차를 보이는 것 자체가 위선이다. 스타벅스보다 못한 참정권이라는 자조가 그래서 나왔다.
따지고 보면 2030의 분노는 우리 사회만 겪고 있는 문제도 아니다. 경기 침체와 젊은 층 분노, 기성 정당 심판의 연쇄 작용은 세계적 트렌드다. 미국의 2030이 민주당에 반기를 들고 트럼프 지지로 돌아선 것도, 유럽 청년의 분노가 급진 정치 세력과 포퓰리즘 지지로 흐르는 것도 본질적 맥락에서 비슷한 흐름이다. 이를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으로 이해해선 답이 안 나온다.
청년들의 질문은 ‘나는 부모보다 더 잘 살 수 있을까’이다. 그 질문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순간 좌절은 분노로 바뀐다. 이런 청년의 분노를 외면하는 사회는 갈등과 분열을 겪고 청년들에게 기회를 열어 준 사회는 그 분노를 변화와 성장의 동력으로 바꿨다. 6·3 지선에서 나타난 2030의 표심 결집과 선관위에 대한 시위는 기성세대에 던지는 마지막 구조 신호이자 경고장일지 모른다.
2026-06-16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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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부산 시민은 지역 발전에 투표했다
6·3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로 꼽혔던 부산시장 선거전이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치열한 접전 끝에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를 2.6% 포인트 차로 따돌린 결과다. 이로써 지역의 명운이 걸린 지선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전재수, 박형준, 그리고 개혁신당 정이한 후보에게 축하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4일 새벽 접전 양상으로 이어지던 승부의 무게 추가 자신에게 기울자, 전재수 당선인은 “변화를 선택하신 부산 시민들의 뜻을 무겁게 받들고 열심히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하겠다는 다짐의 말씀을 드린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러면서 “기쁨보다 먼저 가슴 한편이 무너져 내린다”고 했다. 부산 유일의 민주당 국회의원 지역구 북갑이 한동훈 무소속 후보에게 넘어가고 많은 민주당 후보가 낙선한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당선 소감을 전하는 그의 표정 또한 들뜨거나 흥분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고 엄중함마저 느껴졌다. 참여정부 청와대 행정관으로 정치에 입문한 후 줄곧 부산에서 정치 이력을 쌓은 그에게 시장 당선은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2006년 북구청장에 처음 도전했을 당시 지역 정치의 벽을 실감해야 했다. “밤에 호프집을 돌며 선거운동을 하다 멱살 잡혀 이리저리 끌려다니기 일쑤였고 새벽에 집에 들어가면 어머님이 떨어진 셔츠 단추를 꿰매는 것이 일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그렇게 18대 19대 총선에서도 내리 낙선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바닥에서부터 꾸준히 지지율을 쌓아 올리며 20대 총선에서 현역 의원을 꺾고 국회에 입성했다. 그렇게 다진 내공으로 북갑에서 내리 3선을 하며 22대 총선에서는 부산에서 생존한 유일한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화제를 모았다. 주민들은 “국회의원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사람이다”며 지역 밀착형 정치인으로 그를 평가했다. 정치를 하려면 전재수처럼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회자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높은 국정 지지율과 국힘에 대한 실망으로 유리한 정치 환경이 조성된 탓도 있지만 막판 초접전 양상으로 전개된 선거전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이런 정치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서울시장에 오세훈, 경남도지사도 박완수 국힘 후보가 당선된 걸 생각하면 그의 승리가 갖는 의미와 무게감이 결코 가볍지 않다.
이런 전재수 개인의 경쟁력을 감안하더라도 부산시장 선거 결과는 지역의 변화와 발전을 바라는 시민의 간절한 열망이 반영된 결과라고 봐야 한다. 시민들은 지방자치 30년에도 불구하고 가속화하는 수도권 쏠림과 지역 소멸 위기 앞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가 내건 해양수도 부산이라는 비전에 희망을 걸었다. 무능이 아니라 유능, 말꾼이 아니라 일꾼이라는 그의 프레임에 설득당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재명 정부 초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해수부 부산 이전을 속도감 있게 해낸 추진력도 작용했다.
이제 그는 후보가 아니라 당선인으로 시민 앞에 서게 됐고 7월 1일 시장에 취임해 민선 9기 시정을 이끌어야 한다. 후보 시절 ‘전재수를 뽑으면 부산이 바뀐다’고 했던 약속을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 시작된다. 시민 기대를 생각하면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부산 몰락을 국힘 장기 집권 탓으로 돌렸지만, 스스로도 알다시피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구조적 불균형 해소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2018년 부산 시민들은 변화를 열망하며 지방 권력을 민주당에 통째로 내줬지만, 어떤 희망도 보여주지 못했다. 심지어 이번 지선 결과는 당시보다 더 악조건이다. 구청장, 군수의 절반 이상이 국힘이고 시의회도 국힘이 압도하는 여소야대다. 5극 3특에 기반한 해양수도권 완성을 위해서는 부울경 통합이 필요한데 경남도정은 국힘이 장악했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정치 지형을 뚫고 그가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 해양수도권의 꿈을 하나하나 현실화해 간다면 PK의 대표 주자로 우뚝 설 수도 있다.
그 첫 시험대가 시정 인수위원회일 것이다. 해양수도권의 비전을 현실화할 수 있는 구체적 실천 전략을 마련해 취임과 함께 시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그러려면 여야를 떠나 인재를 널리 구하고 관료조직을 역동적으로 움직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2018년처럼 논공행상과 편 가르기가 판치고 앞선 시정의 잘못을 파헤치는 일에 매몰될 경우 그 길로 끝이다.
부산 시민은 이번 선거에서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누가 쓰러져 가는 지역을 살릴 수 있느냐를 선택했다. 전재수 당선인이 든 북극항로와 해양수도권의 깃발이 부산의 마지막 희망이 되길 바라면서. 오로지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해서 그런 시민의 기대를 하나하나 현실로 만들어 주길.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2026-06-0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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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반도체 돈벼락과 분배의 정의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성 주위를 파서 만든 구덩이를 해자(垓字·moat)라고 한다. 효과적 방어를 위해 해자에 물을 채워 못으로 만드는 게 일반적이었다. 경주 월성이나 중국 자금성, 중세 유럽의 성곽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건축 양식이다. 중국 신화통신이 최근 베이징에서 진행된 미중 정상회담에 앞서 “이번에는 해자를 더 깊이 팠다”라며 “미국이 일방적으로 중국의 양보를 요구했던 9년 전 트럼프의 방중과는 다를 것”이라고 시진핑의 철통방어를 예고하기도 했다.
해자를 경제적 은유로 소환한 건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이사회 의장이었다. 1980년대 발표한 버크셔해서웨이 연례보고서에서 기업의 장기적 성장 가치 척도로 ‘경제적 해자’를 제시한 것이다. 경쟁사로부터 기업을 보호해 주는 높은 진입 장벽과 확고한 구조적 경쟁 우위를 일컫는다. 해자가 넓고 깊을수록 시장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 가치를 앞세운 그의 투자 철학이었다.
세계를 지배하는 글로벌 초격차 기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경제적 해자다. 단순히 성능 좋은 GPU를 만드는 것을 넘어서 CUDA라는 독점적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구축한 엔비디아, 프리미엄 하드웨어와 iOS 생태계로 고객들을 락인(Lock-in)시킨 애플, 닷컴 버블의 파도를 물류 제국으로 바꾼 아마존 같은 기업이 이에 해당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퍼스트 무버’가 되지 못해 ‘패스트 팔로어’ 전략으로 만년 2위에 머물렀던 우리 기업에도 기회가 왔다. 인공지능(AI) 호황에 따른 반도체 슈퍼 사이클 덕이다.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57조 2000억 원에 이르렀다. 애플과 엔비디아에 이어 글로벌 톱 3다. 올해 영업이익이 300조 원에 이르고 내년에는 세계 1위에 등극할 것이라는 들뜬 전망도 나온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을 공유하는 SK하이닉스의 1분기 영업이익도 37조 6000억 원을 기록했다. 한마디로 ‘돈벼락’이다.
반도체 돈벼락은 두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경제에도 다시 못 올 기회다. 중동전쟁에 따른 공급망 위기에도 국내 주식시장이 고공 행진을 이어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법인세를 포함해 각종 세금으로 나라의 곳간이 쌓이고 국민연금의 주식 평가이익까지 감안하면 ‘국가적 횡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의 높은 국정 지지도도 따지고 보면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기댄 측면이 적지 않다.
이제 우리에게 찾아온 이 국가적 횡재를 어떻게 구조적이고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 전환하느냐가 중요한데 돈벼락 분배를 놓고 싸움판부터 벌어졌다. 삼성전자 노조가 영업이익의 N% 성과급 제도화를 요구하며 파업 투쟁에 나선 것이다. 기업 이익에 따른 성과급 요구는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이고 절대적 액수를 따질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업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과 사회적 책임이 전제다. N%의 성과급을 제도화하려면 손실이 발생했을 때의 임금 삭감이나 해고의 제도화도 감수해야 한다. 국민은 더 이상 삼성 노조의 파업을 노동 약자의 생존권 투쟁으로 보지 않는다.
삼성전자가 1분기 엄청난 영업이익을 거뒀다고 하나 그 자체로 글로벌 초격차 기업에 올라섰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위기론이 비등했던 게 불과 1년 전이다. 냉정히 말하면 지금의 반전은 기술혁신의 결과물이라기보다 초호황에 따른 영향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실적의 초격차를 구조적 초격차로 만들어 내는 일이다. 돈 잔치를 벌일 때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반도체 사업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이 더 살벌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단순히 슈퍼 사이클의 수혜자가 아니라 업황과 무관하게 경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해자를 확보할 기회로 삼아야 마땅하다.
물론 반도체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 인재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적절한 성과 보상이 뒤따라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동안 잉여의 공정한 분배에 대한 사회적 숙의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단순히 현금 보상만이 아니라 회사의 성장과 노동자가 함께 갈 수 있는 주식 보상 등 다양한 방식의 성과 공유 시스템의 제도화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다만 이게 판을 엎으면서까지 할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오늘날의 삼성전자가 노사의 힘만으로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올라섰다고 할 수 없다. 국가의 정책적 지원이 있었고 수많은 하청업체와 노동자의 노력이 함께했다.
모처럼 찾아온 반도체 슈퍼 사이클로 삼성전자의 글로벌 초격차 기업 등극과 국가 경제 선순환에 대한 국민적 기대도 큰 상황이다. 노사가 사회적 책임과 연대의식을 갖고 미래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경제적 해자 확대에 힘을 쏟아야 가능한 일이다.
2026-05-1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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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6·3 지방선거와 부산의 대망
6·3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 부산이 뜨겁다. 1995년 첫 전국동시지방선거 이후 부산이 이렇게 뜨거웠던 적이 있었나 싶다. 선거일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지금까지 부산의 선거 판세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당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지난 총선에서 보듯 막판 보수 결집 가능성을 감안하면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후보가 맞붙은 부산시장 선거전은 이번 지선에서 여야의 명운을 가를 최대 승부처로 꼽힌다. 게다가 북갑 보궐선거에서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당대표와 하정우 전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의 ‘빅 매치’가 성사돼 부산이 전국적 지선 ‘핫플’로 떠올랐다.
지선 D-30일을 전후해 여야 지도부가 부산을 찾아 세몰이에 나선 것도 지역의 존재감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승부가 후보들로서는 피를 말리는 싸움이겠지만 유권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경쟁이 없는 도시에 혁신의 바람이 일어날 리 만무하다. 모처럼 불어닥친 여야 격전의 칼바람은 유권자 마음속 희망의 불씨를 살린다. 특히 부산이 전국적 주목을 받으면서 대선 주자급 정치인 탄생에 대한 기대도 한껏 부풀고 있다.
3선에 도전하는 박형준 후보에게는 이번 지선이 최대 위기이자 기회다. 전국적 정치 상황과 맞물린 탓이기도 하지만 현직 시장으로서 선거 초반 전재수 후보에게 지지율에서 크게 밀리며 위기감이 높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던 지지율이 최근 오차범위 안으로까지 좁혀지면서 역전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여전히 골든 크로스를 만들지는 못하고 있지만 선거 막판 반전의 서사를 완성한다면 보수를 벼랑에서 구한 차기 주자로 부상할 공산이 크다.
박 후보는 재임 5년 동안 부산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고 도시 지표도 개선되고 있다고 역설하지만, 그가 내세우는 세계도시 부산의 비전이 시민 체감과 여전히 거리가 있는 게 현실이다.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과 산업은행 이전이 민주당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듯 야당 시장으로서 리더십 한계에 봉착할 우려도 여전하다. 남은 선거기간 집권 여당의 벽을 뚫고 자신이 5년간 축적한 시정의 에너지를 어떻게 폭발시킬지 결기로서 증명해야 하는 게 그의 앞에 던져진 숙제다.
이재명 정부 첫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해수부 부산 시대를 이끌며 일찍이 여권 주자로 대세를 형성한 전재수 후보가 부산시장에 오를 경우 역시 진보 진영의 차기 주자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 보수 텃밭인 부산에서 민주당 시장이라는 존재 자체가 갖는 상징성이 크다. 특히나 민주당 유일의 부산 3선 국회의원이라는 서사가 해양수도권이라는 비전과 결합해 강력한 리더십을 형성할 경우 노무현과 문재인의 뒤를 잇는 정치인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
문제는 남은 선거기간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에 대한 문제 제기와 유권자들의 의구심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보수가 지방 권력을 장악하면서 부산 경제가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러려면 2018년 지방 권력이 민주당에 통째로 넘어갔을 때 어떤 희망을 보여줬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남은 선거기간 이 모든 의혹과 의구심을 뚫고 일 잘하는 시장으로서 해양수도 부산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그의 꿈도 현실이 된다.
한동훈 후보가 북갑에서 당선되면 보수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부활할 수도 있다. 북구에 뼈를 묻겠다는 그의 결행이 성공하면 낙동강 벨트는 차기 대권 도전을 위한 강력한 정치적 기반이 될 것이다. 그러나 국힘 후보로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이 결정된 가운데 삼자 구도의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면 낙동강 전선은 그의 정치적 무덤이 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손 털기’와 ‘오빠’ 논란으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는 정치 초년병 하정우 후보도 ‘북갑 대전’의 승자가 될 경우 부산의 새로운 지도자로 성장 가능하다. 서울 언론들이 국가 AI 백년대계를 팽개쳤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수도권 중심의 시각이다. 정치적 귀향을 계기로 부울경 제조업의 AI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끌면 미래 지향적 지도자 이미지를 확고히 할 수 있다.
6·3 지선이 수도권 일극체제라는 경로의존의 고리를 끊고 부산이 도약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마침, 전국적 관심 속에 부산의 판이 커졌다. 이 에너지를 지역 도약의 동력으로 만들 것인지, 정치적 이벤트로 소모할 것인지는 후보와 유권자의 선택에 달렸다. 전국적 정치 바람에 휘둘리지 말고, 누가 지역을 살릴 큰 정치인이 될 수 있을지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지역의 미래도 큰 정치인도 결국 유권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2026-05-0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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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 칼럼] 교육감이 안 보인다
6·3 지방선거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부울경 시도지사와 기초단체장 후보가 속속 확정되면서 여야 후보 간 치열한 공방전이 시작됐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전통적 보수 텃밭으로 꼽히는 PK 지역이 전국 최대 격전지로 떠올라 유권자들의 관심도 달아오르는 중이다.
하지만 지방선거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루는 교육감 선거는 좀체 분위기가 뜨지 않는다. 부산교육감의 경우 선거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다. 4선에 도전하는 진보 성향 김석준 현 교육감은 부자 몸조심하듯 예비후보 등록을 미루며 현직 인지도 프리미엄을 십분 활용하는 중이다. 이에 맞서 보수 성향 최윤홍 전 부산교육청 부교육감이 예비후보 등록 후 본격 선거 행보에 나서 진보와 보수의 1 대 1 대결 구도가 형성되는 양상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전호환 전 동명대 총장의 불출마 선언 후 ‘단일화를 통한 컨벤션 효과’ 필요성이 거론되며 후보 발굴을 시도하고 있지만 선뜻 나서는 이가 없다.
박종훈 현 교육감의 3선 제한으로 무주공산이 된 경남교육감 선거는 오히려 후보 난립이 골치다. 한때 20명을 웃돌던 후보군은 6명 정도로 압축되고 있다. 권순기 전 경상국립대 총장, 송영기 전 전교조 경남지부장, 김상권 전 경남교육청 교육국장, 김승오 전 청와대 교육행정관, 오인태 전 남정초등학교 교장, 김준식 전 지수중학교 교장이 여전히 진영별 합종연횡을 모색 중이다. 그러나 뜨거운 입후보 경쟁에도 불구하고 유권자 반응은 싸늘하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는 유권자의 71%가 ‘지지하는 사람이 없다’라거나 ‘모른다’고 답했다.
천창수 현 교육감 불출마로 역시 무주공산이 된 울산교육감 선거전은 보수 진영 김주홍 전 울산대 교수와 진보 진영 조용식 전 울산교육감 비서실장, 구광렬 울산대 명예교수의 3파전으로 정리되는 분위기인데 유권자 무관심은 마찬가지다. 전국적으로도 17개 시도의 교육감 선거 양상이 별반 다르지 않다.
교육감 직선제 역사는 1991년 교육자치제 도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육위원과 학교운영위원이 교육감을 선출하는 간선제로 출발했는데 비리와 담합으로 얼룩지자, 일반 유권자 전체로 확대됐다. 2006년 교육자치법 개정 후 실시된 직선제 첫 무대가 2007년 부산이었는데 투표율은 15.3%에 그쳤다. 2010년 전국동시지방선거와 함께 시행된 부산교육감 선거에서는 후보들의 난립과 낮은 인지도 속에 정책 대결이 아니라 누가 기호 1번을 뽑느냐에 관심이 집중됐고 실제 1번이 당선됐다. 이름하여 ‘로또 교육감’의 등장이었다.
이후 교호투표제가 도입됐지만 유권자의 무관심과 단일화를 둘러싼 이전투구가 교육감 선거의 주된 쟁점이었다. 하윤수 부산교육감 낙마로 치러진 지난해 4월 재선거에서도 단일화 이슈가 압도했고 투표율 또한 22.8%에 불과했다. 2007년 첫 직선제 후 27년 동안 유권자 무관심과 ‘후보들만의 단일화 게임’이라는 기형적 직선제 문제점은 고스란히 누적돼 온 것이다. ‘로또’가 ‘깜깜이’로 대체된 정도다.
그러는 사이 교육자치의 본질은 온데간데없고 교육 현장의 이념화와 교육의 질적 저하, 비리 교육감 양산이라는 부정적 결과로 이어졌다. 직선제 이후 선거 부정 등으로 수사받거나 법정에 선 직선 교육감만 20명이 넘는다. 교육 예산과 인사권을 움켜쥔 막대한 권력의 교육감을 ‘깜깜이 선거’로 뽑아온 결과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앞세우지만, 실상은 정당 선거보다 더 혼탁한 진영 선거의 양상을 띄는 게 지금의 교육감 직선제다. ‘인지도 깡패’라는 용어까지 생겼고 막대한 선거 비용은 참신하고 능력있는 교육 전문가에게 진입 장벽이 되고 있다. 더 이상 민주적이지도 교육적이지도 투명하지도 못한 교육감 직선제가 교육자치라는 명분으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소멸,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교육 혁신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데 지금의 기형적 제도로 시대적 요구와 미래 지향적 교육 발전을 이끌기 어렵다. 러닝메이트와 공동등록제, 정당 공천제, 임명제, 선거 연령 하향 등 다양한 내용의 지방교육자치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는데 이런저런 정치적 셈법으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치는 현재를, 교육은 미래를 바꾼다’라고 했는데 지금의 제도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까.
지난해 대통령 주재 대구 타운홀미팅에서 한 학부모가 “중학교 1학년 아들이 중학생부터 교육감 선거에 투표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대통령께 꼭 부탁하고 오라고 했다”라고 전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공부는 자기들이 하는데 왜 교육감 투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하느냐는 것이었다. 작금의 교육감 선거 현실을 생각하면 웃고 넘길 수만은 없는 이야기다.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2026-04-21 [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