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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의 쏘울앤더시티] 날자, 부산
다시 봄이다. 코로나의 긴 터널 끝에서 다시 마주하는 봄은 새삼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바이러스가 지배했던 3년, 우리는 서로의 민낯을 가린 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일상을 견뎌야 했다. 우리 곁의 누군가는 소중한 가족을 잃었고, 또 누군가는 소중한 삶을 잃었다. 그 아픔을 딛고 이제 우리는 하나둘 일상을 되찾고 있다. 바이러스 공포가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희망 속에 다시 맞이하는 봄이다.
일상 회복이 가장 반가운 곳 중 하나가 항공업계다. 코로나 시작과 함께 직격탄을 맞았던 곳이다. 굳게 닫혔던 하늘길도 다시 열리고 집으로 돌아갔던 승무원들도 일터로 복귀했다. 김해국제공항이 모항인 지역 거점 항공사 에어부산도 날갯짓을 시작했다. 마침 올해는 2030월드엑스포 개최 도시 최종 선정이 있고 이에 맞춰 가덕신공항 개항 준비도 착착 진행될 것이다. 엑스포의 꿈이 이뤄지면 가장 먼저 비상할 곳이 에어부산이다.
그러나 마음껏 날갯짓을 할 수 없는 것이 지금 에어부산이 처한 상황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작업에 발목이 잡혀 있는 까닭이다. 2020년 11월 정부의 통합 발표 당시만 해도 지역에서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오히려 기대가 높았다. 국토교통부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결합한 통합 FSC(Full service carrier)는 인천공항을 중심으로 운항하고 지방 공항을 에어부산, 에어서울, 진에어의 통합 LCC(Low-cost carrier) 허브로 육성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산업은행도 ‘지역 경제 활성화’를 내세우며 국토부를 거들었다.
통합 작업이 진행된 2년여 기간 ‘항공 마피아’들은 슬슬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대한항공은 애초에는 말을 아꼈지만 지난해부터 LCC 허브공항을 인천공항으로 하겠다는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형제의 난’ 와중에 KCGI·반도건설·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3자 연합)은 산업은행이 ‘조원태 경영권 지킴이’ 역할을 한다고 공격했다. 이때 정부, 대한항공, 산업은행이 내세웠던 명분이 지방 공항 LCC 허브 육성이었다. 그러나 올해 최종 통합 승인을 앞두고 이들이 입장을 바꾸면서 가덕신공항 LCC 허브의 꿈이 물 건너가고 있다. 마침내 국토부는 최근 LCC 허브와 관련해 ‘기업 자율’이라는 말로 대한항공과 한패임을 커밍아웃했다. ‘먹튀’도 이런 ‘먹튀’가 없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은 연내 최종 승인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지금대로라면 합병 승인과 함께 가덕신공항 LCC 허브의 꿈은 물론이고 지역 항공사도 흔적 없이 사라질 공산이 크다. 대한항공은 합병과 함께 경제 논리를 내세워 인천공항 LCC 허브를 밀어붙일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지역 반발을 의식해 에어부산, 에어서울, 진에어 3사 체제를 한동안 유지하더라도 에어부산이 고사되고 진에어에 흡수되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 지금만 해도 엔데믹에 따른 관광 수요 증가로 알짜 노선들이 쏟아져 LCC들이 중장거리노선 비행기를 도입하며 체급 늘리기에 들어갔는데 에어부산은 통합만 지켜봐야 하는 처지다.
통합 LCC 본사 이전이 안 되면 에어부산이라도 지역 항공사로 지켜야 하는데 부산시와 지역 기업들의 동상이몽으로 좀처럼 동력이 생기지 않는다. 시가 정부를 강하게 밀어붙여야 하는데 제대로 된 대응 전략도 없어 보인다. 어떻게 만든 에어부산인가. 지역 기반의 항공사가 필요하다는 절박감으로 시와 상공계, 시민사회가 백방으로 뛰어 만든 결실이었다. 당시 부산 상공계의 도움 요청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죽하면 대만과 호주 항공사까지 접촉했겠는가. 결국 영호남 화합 등 갖은 명분을 내세워 삼고초려 끝에 아시아나항공과 손을 잡고 에어부산을 출범시킬 수 있었다. 어쨌든 에어부산은 이후 항공 수요 폭발과 부산 지역사회의 전폭적 지지에 힘입어 급성장했다. 당시 에어부산 홍보팀이 내걸었던 카피가 ‘날자, 부산’이었다. 위기감을 느낀 대한항공이 뒤늦게 진에어를 출범시키는 등 부산이 항공업계의 LCC 바람을 주도했다. 남부권 관문공항 가덕신공항의 가능성을 확인시켜 준 것도 에어부산의 눈부신 성장이었다.
지역의 힘으로 힘겹게 일으킨 항공사를 공중분해시키고 있는 것이 지금의 국토부다. 국토부의 기만적 태도는 정부의 균형발전에 대한 진정성도 희화화시킨다. 항공사를 만들어 주지는 못할망정 있던 것도 빼앗아 간다. 엑스포와 가덕신공항, LCC 허브가 따로 가는 것이 아니다. 시도 한가하게 지켜만 보고 있을 일이 아니다. 엑스포도 결과적으로는 에어부산과 같은 좋은 기업을 만들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있는 좋은 기업도 뺏기면서 엑스포로 얻을 게 뭐란 말인가.
2023-02-2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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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의 쏘울앤더시티] 대학이 많아 좋은 도시 부산
부산시는 2006년 옛 하얄리아 터에 조성될 공원의 이름을 짓기 위해 시민 공모전을 진행했다. 1500건의 응모작 중 마음에 드는 이름을 찾기 힘들었다. 시의원, 시민단체 대표, 국어·역사·공원 전문가로 ‘공원명칭심사위원회’를 꾸려 마라톤 회의를 거듭했지만 결정이 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미군 부대 이름이었던 ‘하얄리아’를 공원 이름으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터의 상징성이 있고 초대 사령관이었던 장군이 고향 플로리다주 도시 이름을 따 부대 이름을 정했다는 역사성도 있었다. 인디언어로 ‘아름다운 초원’이라는 뜻도 울림이 있고 공원과 잘 어울렸다. 하얄리아도 심사 대상에 올랐으나 미군 잔재를 공원 이름에 남길 수 없다는 일부 위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배제됐다. 결국 ‘부산시민공원’ ‘부산대공원’ ‘너울공원’ ‘부산공원’ ‘부산가온공원’을 놓고 시민 선호도 조사를 벌이는 우여곡절을 거쳐 2011년에야 부산시민공원으로 이름을 확정했다.
도시의 공원 이름 하나 정하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도시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좌우할 브랜드 슬로건을 정하는 일이야 오죽하겠는가. 네이밍이나 브랜딩만큼 주관적 영역도 없다. 500명이 모이면 의견이 500개다. 합의된 결론을 도출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정해도 여러 뒷말이 따른다. 부산의 도시 브랜드로 ‘Busan is Good(부산이라 좋다)’이 선정됐다. 역시나 부산의 특성과 독창성을 담지 못하고 밋밋하다는 의견과 기존 ‘다이내믹 부산’이 좋다는 부정적 반응이 뒤따르고 있다.
그러나 4월로 예정된 2030엑스포 현장 실사 일정을 감안하면 속도감 있는 진행이 필요했을 것이고 부산이 처한 상황에서 나쁘게만 볼 일도 아니다. 부산의 대전환을 내건 이 시점에 브랜드 슬로건을 바꿔 분위기를 새롭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왕에 정했으니 앞으로 디자인과 마케팅, 그리고 시민 공감 확산이 중요할 것이다. ‘I♥NY’을 넘어서는 브랜드가 되길 희망해 본다. 시의 설명대로 ‘Busan is Good’이 갖는 확장성과 개방성이 큰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엑스포 하기 좋은 도시 부산’ ‘창업하기 좋은 도시 부산’ 등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다.
이 대목에서 ‘대학이 많아 좋은 도시 부산’에 대한 기대를 해 본다. 부산은 4년제 14개, 2·3년제 8개로 22개 대학을 갖춘 명실공히 대학 도시다. 그러나 지금 부산의 현실은 ‘대학이 많아 좋은 도시’가 아니고 ‘대학이 많아 버거운 도시’다. 올해 부산지역 대학에서 지원자가 한 명도 없는 학과가 나왔다. 대학의 위기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제2 도시 부산에서 지원자 0인 학과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다. 대학은 도시 혁신의 심장이 되지 못하고 도시는 대학을 품지 못하는 도시가 부산이다. 대학이 문을 닫는 도시에 희망이 있을 수 없다.
윤석열 정부가 교육 개혁의 중심에 지방대 살리기를 둔 것은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이다. 교육부는 지역 대학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를 마련해 지자체의 대학 지원 권한을 늘리고 규제 완화와 집중적 재정 투자로 지역과 대학을 모두 살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우선 5개 시범 지역을 정하고 2025년부터 전면 시행한다. 정부 움직임을 보면 부산이 그 중심에 설 공산이 크다. 시범 도시와 함께 교육특구로 지정돼 사업을 끌고 갈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파견 인력을 포함해 지자체에 RISE 전담 조직을 만들고 교육 기금에서 예산도 전폭 지원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대체적 얼개다.
물론 RISE가 지역 대학의 경쟁력 강화로 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반도체학과 증설에서 보듯 수도권 대학 규제 완화라는 이율배반적 정책을 언제든 들고 나올 수 있는 게 지금 정부다. 균형발전을 생각한다면 수도권 대학의 정원 감축부터 진행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다. 역대 정부의 지역 대학 육성책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지방대혁신역량강화사업(NURI)과 문재인 정부의 지역혁신플랫폼 사업도 지방대를 살리지는 못했다.
정부는 근본적 해결책으로 지자체 권한 대폭 이양을 내놓았다. 이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잘하면 지역 혁신으로 대학도 살고 지역도 살 수 있지만 제대로 못하면 대학도 망하고 지역도 망하고 그 책임도 오롯이 지역이 덮어쓰게 된다. 지금부터라도 시와 대학들이 똘똘 뭉쳐 돌파구를 찾는 게 시급하다. 다 망하게 생겼는데 지역 대학끼리의 경쟁도 무의미하다. 서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학령인구 감소 타령만 할 게 아니다. 수도권 젊은이든, 세계의 젊은이든 부산으로 불러들일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 ‘벚꽃 엔딩’이 울려퍼지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진짜 ‘대학이 많아 좋은 도시 부산’이 되면 부산은 산다.
2023-01-1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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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의 쏘울앤더시티] 원전 마피아, 태양광 마적단
한전법 개정 논란이 뜨겁다.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기존 2배에서 5배까지 올리는 내용의 ‘한국전력공사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다. 더불어민주당이 대거 반대표를 던져 여야가 상임위에서 합의한 법안이 이례적으로 통과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전의 회사채 발행 한도를 늘리지 않으면 내년에는 전기 요금을 올해 인상분의 3배 이상 올려야 한다.
국회 본회의에서는 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이 “한전의 회사채 발행에 따른 이자비용은 결국 전기 요금 인상을 통해 국민이 떠안아야 한다. 회사채 돌려 막기로는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며 반대를 주도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은 한전 적자가 문재인 정권의 탈원전 정책 탓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반하장도 유분수라며 민주당을 비난하고 있다. 이 같은 한전법 개정 논란이 주목되는 것은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한 우리의 근시안적 에너지 정책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점에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 위기로 세계 각국은 국가 경제와 안보 차원에서 에너지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정권의 부침에 따라 에너지 정책이 극단적으로 쏠린다. 과학은 없고 정치적 구호와 수치에 좌우된다. 5년마다 원전 확대와 폐기를 반복하는 동안 정책 일관성은 사라지고 에너지 전환과 에너지 산업 육성, 탄소 중립의 목표는 점점 멀어져 왔다.
원전을 녹색 에너지 반열에 올린 것은 이명박 정부다. 현대건설 대표 시절 고리1호기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진 이 대통령은 특유의 ‘내가 해봐서 아는데’ 정신으로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추가 건설해 원자력 발전 비중을 59%까지 끌어올리는 원전 르네상스를 이루겠다고 했다. 그러나 깨끗하고 지속가능하고 경제적이라던 이 대통령의 원전 신화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무너졌다. 이 대통령은 원전을 앞세워 2020년까지 온실가스 30%를 감축하겠다고 호언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국제사회로부터 기후 악당이라는 오명까지 들어야 했다.
원전 위주 에너지 정책을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한 것이 문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문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 또한 초라한 결과로 끝났다. 집권 초기 4.4%이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집권 기간 7% 안팎으로 상승하는데 그쳤다.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30%까지 올리겠다고 한 약속은 허구로 드러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의 간헐성과 토지 이용의 한계 등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결과다. 국가 정책은 선한 의도만 중요한 게 아니고 선한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 목표 수치만 제시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 실행 계획은 없었다. 환경단체 구호로는 상관없지만 국정 운영에서는 안 될 일이다. 정권이 바뀌자 윤석열 정부의 국무조정실은 전력산업기반기금 운영의 위법 사례가 적발됐다며 수사 의뢰했고 검찰은 국가재정범죄 합동수사단의 1호 사건으로 문 정부 시절 태양광 비리 의혹 수사에 나섰다. 이 즈음 ‘원전 마피아’에 빗대 ‘태양광 마적단’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윤 정부의 친원전, 탈탈원전 정책 또한 일방적 폭주로 이어지고 있다. 문 정부가 멈춰 세웠던 원전을 재가동하고 폐쇄 수순을 밟던 노후 원전 10기에 대해 운영 기간 연장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안전은 뒷전으로 밀리고 안전성 평가와 주민 공청회 과정에서 마찰만 일고 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에 대한 근본적 대책 없이 기존 원전을 핵폐기장화하는 정책을 밀어붙여 원전 밀집지역 주민들의 인내를 시험한다. 원전은 미래 에너지 전환으로 가는 과정에 한시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에너지원이라는 것이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대체적 공감대다. 원전의 불가피성과 산업 생태계, 기술적 진화 등을 받아들이면서도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 에너지 전환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산업 기술 투자와 산업 생태계 조성을 동시에 진행하는 에너지 믹서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전채 발행 논란에서 보듯 에너지 전환의 핵심은 탈원전이냐 친원전이냐가 아니라 전기 요금의 탈정치화다. 정치권이 전기 요금을 정치화하면서 신산업 창출과 기술 개발을 막고 전기 절약을 끌어내지 못하는 게 진짜 에너지 위기라는 말이다.
문 정부 시절 신고리 5, 6호기 사업에 대한 시민들의 공론화 과정이 있었다. 문 정부는 당시 이미 시작된 5, 6호기 사업을 중단하고 싶었지만 시민참여단은 숙의 과정을 통해 건설 재개를 지지하면서 동시에 향후 원전을 축소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정치인의 선동보다 시민들의 숙의를 통한 합리적 결과 도출이 훨씬 과학적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미래 세대를 위해 정권에 따라 휘둘리지 않을 백년대계의 에너지 정책이 필요한 때다.
2022-12-1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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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의 쏘울앤더시티] 파워 반도체 클러스터 키우자
지난달 26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동남권 방사선의·과학산업단지에서 파워 반도체 제조기업 제엠제코㈜ 준공식이 열렸다. 부산 이전 1호 반도체 기업 제엠제코는 본사와 연구소, 공장을 경기도 부천에서 모두 옮겨 왔다. 연 매출 100억 원대 중소기업이지만 파워 반도체 분야에서 탄탄한 기술력을 갖춘 강소기업이다. 무엇보다 이 작은 기업에 주목하는 것은 파워 반도체 클러스터로서 부산의 성장 가능성 때문이다.
부산시가 파워 반도체(전력 반도체) 산업에 뛰어든 것은 2012년의 일이다. 반도체 하면 삼성이었고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국내 시장에서 전력 반도체라는 용어 자체도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시는 당시 기장군 장안읍에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중입자가속기, 연구용원자로를 유치하고 생명공학을 미래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동남권 의·과학산업단지를 조성 중이었다. 이 과정에서 파워 반도체 공정이 연구용원자로와 연계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관련 산업을 클러스터화 하기로 계획한 것이다. 전문가를 수소문한 끝에 차세대 파워 반도체 R&D를 진행 중이던 한국전기연구원과 손잡고 정부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몇 년에 걸친 도전 끝에 2016년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고 2017년부터 국비를 확보해 ‘SiC 파워 반도체 연구플랫폼 구축사업’과 ‘SiC 파워 반도체 R&D 사업’을 시작했다. 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부산테크노파크와 파워 반도체 상용화센터를 구축해 실제 제품을 생산하는 단계에까지 왔다. 이러한 R&D와 생산 시설을 기반으로 파워 반도체 전문 기업 집적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 10년 세월 전기차와 드론 등 e-모빌리티(e-mobility) 시장이 성장하면서 파워 반도체가 미래산업으로 급부상했다. 반도체 산업은 크게 보면 메모리 반도체와 비메모리 분야인 시스템 반도체, 그리고 모든 전기의 전력 변환 장치에 들어가는 파워 반도체로 구분된다. 삼성은 초창기 메모리와 파워 반도체를 했지만 IMF 외환 위기 당시 국내 반도체 시장 빅딜 과정에서 파워 반도체를 포기했다. 하지만 e-모빌리티 시장이 급팽창하며 파워 반도체 비중이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부산이 10년에 걸쳐 산업 기반을 다져 온 파워 반도체가 세계적으로 가장 뜨거운 산업 분야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전기차뿐만 아니라 친환경산업이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전력을 기반으로 한 모든 산업 분야에서 파워 반도체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시장에서 독일과 일본이 앞서고 있지만 파워 반도체 소재가 기존 실리콘에서 전력 제어 능력이 600배 뛰어난 탄화규소(SiC·실리콘카바이드)로 넘어가고 있는데 부산의 상용화센터에서 SiC 기반으로 R&D와 생산을 진행하고 있어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집중적 투자가 이뤄지면 글로벌시장에서 충분히 경쟁이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부산의 위기는 곧 산업의 위기다. 전통산업이 몰락하면서 지역 경제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젊은이들은 지역을 떠나고 있다. 젊은이들이 없으니 혁신의 동력이 떨어지고 새로운 산업을 만들지 못하는 악순환 구조다. 지역의 최대 현안인 2030월드엑스포와 가덕신공항도 결국은 지역의 산업을 일으키는 것이 궁극적 지향이다. 옛 삼성자동차 유치 범시민운동과 같이 대기업 유치에 목을 매던 시절도 지나고 있다. 지역 스스로 산업생태계를 혁신하고 미래 동력을 키워야 하는데 파워 반도체가 그런 영역이 될 수 있다. 대학과 연계해 인력을 양성하고 R&D 역량 축적을 통해 산업을 키울 수 있는 지산학(지자체·산업·대학)의 이상적인 모델로도 가능한 분야다. 또 동남권은 기존에도 파워 반도체 소재를 만드는 삼성전기, 불량 유무를 확인하는 리노공업, 모터와 인버터를 만드는 코렌스이엠, 전기차를 만드는 현대차와 르노차 등 거대한 파워 반도체 밸류체인이 가능한 경제권으로 가능성이 높다.
결국은 지역의 관심과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 관건이다. 정부의 K반도체 정책은 여전히 수도권 중심의 메모리와 일부 비메모리 투자에 집중돼 있다. 정부도 미래 전략산업으로 파워 반도체의 중요성을 알고 있고 대통령 공약사업에도 들어 있는 만큼 전체 반도체 산업의 작은 한 부분이 아니라 부산을 중심으로 클러스터를 키우기 위한 집중 지원을 이끌어 내야 한다. 반도체 산업의 미래도 대규모 위탁 생산보다 파워 반도체와 같이 다품종 소량 생산으로 가고 있다. 설계와 웨이퍼 제조, 부품 등 관련 업체들을 클러스터화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견 기업들이 모이고 R&D가 활발하게 이뤄지다 보면 새로운 혁신도 일어날 수 있다. 기장 장안읍에서 삼성전자나 테슬라 같은 기업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2022-11-0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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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의 쏘울앤더시티] '열여덟 어른'의 안부를 묻는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이 예삿일은 아니다. 직접 겪어 보지 않고는 그 심정을 가늠하는 일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 감당할 수 없는 고통, 도움을 청하고 기댈 곳 하나 없다는 고립감 등으로 추정할 뿐이다. 세상에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없지만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청년들의 소식은 늘 마음 한구석을 먹먹하게 한다. 최근 보육원을 퇴소해 자립에 나선 만 18세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 두 명이 며칠 간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회복지사를 꿈꿨던 대학 새내기 A 군은 기숙사 책상 위에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라는 짧은 문장을 남겼다. 대학 중퇴 후 장애인 아버지와 함께 살던 B 양은 ‘그간의 삶이 고달팠다’는 말로 자신의 죽음을 설명했다.
이들의 죽음과 관련해 27세 자립준비청년은 한때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자신의 과거를 들려준다. 2015년 보육원을 퇴소하고 1년이 지났을 무렵 같은 보육원에서 자랐던 친구 두 명이 두 달 간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친구를 다시 볼 수 없게 됐는데 이상하게도 첫 번째 감정이 슬픔이 아니라 안도였다는 것이다. ‘친구야 지옥 같은 삶을 너는 용기 있게 끊어 냈구나. 이젠 편안하겠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이제까지 고생한 친구를 꼭 안아 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잘못된 생각임을 알지만 열여덟에 사회로부터 어른임을 강요당한 이들이 매일매일 새로운 자립을 견디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하게 한다.
자립준비청년은 아동양육시설(보육원), 공동생활 가정, 가정위탁의 보호를 받다 만 18세 이후 보호가 종료돼 홀로서기에 나서는 청년을 이른다. 지자체에 따라 500만 원~1500만 원의 자립 정착금과 5년간 매달 40만 원의 자립 수당이 지원된다. 아동보호법이 개정돼 보호기간도 원하면 만 18세에서 만 24세로 연장할 수 있다.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은 조금씩 늘고 있다. 보호종료아동이라는 용어도 당사자들을 불쌍한 존재로 대상화한다는 지적에 따라 자립준비청년으로 바꿨다. 이번에도 두 청년의 죽음은 자립준비청년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관계 부처에 “국가가 전적인 책임을 지고 자립준비청년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부모의 심정으로 챙겨 달라”고 지시했을 정도다. 보건복지부가 자립 수당 인상 등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5만 원~10만 원 올린다고 자립준비청년 문제가 해결될까.
자립준비청년 홀로서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아름다운재단은 자립준비청년을 북극에 살던 북극곰이 사막에 가서 살게 되는 것에 비유했다. 그만큼 힘겹다는 것인데 심지어 한국은 부모 도움 없이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대학생은 물론이고 사회 초년생들도 주거와 고용 불안으로 서른이 넘어도 부모의 집에서 캥거루족으로 사는 게 현실이다. ‘부모와 자녀로 이뤄져야 정상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공고한 한국 사회에서 부모 없는 10대가 제대로 성장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미디어에 등장하는 ‘고아’는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웃으며 이겨 내는 ‘캔디’거나 이유 없이 악행을 일삼는 ‘악인’ 캐릭터로 묘사된다.
무엇보다 세심한 정책이 요구되는 것은 이들이 심리적으로 더 취약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보호아동의 발생 원인은 학대가 가장 높고 부모의 질병, 사망, 이혼, 빈곤, 유기 등인데 최근에는 학대의 비율이 더 커지는 추세다. 이 같은 환경적 영향으로 보호아동의 약 70%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학습장애 등 치료가 필요한 심리·정서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경계선 지능장애가 자립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사례가 많이 관찰된다. 자립준비청년 둘 중 한 명은 자살 생각 경험이 있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전문가들은 보호아동의 생애주기적 관점에서 자립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동복지법 개정으로 정부가 전국 15곳에 설치한 자립지원전담기관의 수와 전문 인력을 대폭 늘려 자립준비청년 맞춤형 솔루션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립준비청년들은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어른,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 보육시설에서 자란 사실을 털어놓아도 아무렇지 않게 대해 줄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들을 고립으로부터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 줄 당사자 커뮤니티가 더 많아져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호아동을 만들어 낸 건 바로 우리 어른들이다. 이들의 사회 진출이 더 이상 고립이 아니라 진정한 자립이 되고 홀로서기가 아니라 함께 사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온 사회가 온 힘을 다해 도와야 한다.
2022-09-27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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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의 쏘울앤더시티] 문제는 원수(原水)다
10년 만에 재연된 낙동강 ‘녹조라테’
‘강이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 충격 현장
어민들 조업 포기, 물에서 악취 진동
원수 엉망인데 정부 식수 안전만 강조
취수원 다변화 지자체간 물 싸움 조짐
깨끗한 원수 공급 정부가 책임져야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일상이 되고 있는 요즘이다. 유럽과 미국이 폭염과 가뭄으로 몸살을 앓는 동안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인 남반구의 안데스 산맥에는 기록적 폭설이 내렸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재앙은 한반도도 비켜갈 수 없어 입추도 지난 때늦은 장마에 수도권은 물에 잠기고 남부지방은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뭄과 폭염으로 낙동강에는 녹조가 창궐해 강이 풀밭처럼 변했다. ‘녹조라테’의 귀환이다. 4대강 사업을 끝낸 2012년 여름, 낙동강은 녹조로 뒤덮이고 현장 조사에 나선 환경단체가 조류로 걸쭉해진 강물을 컵에 담아 보이면서 녹차라테에 빗댄 녹조라테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정부와 환경단체가 원인을 놓고 공방을 벌였지만 강은 흘러야 한다는 기본 상식을 생각하면 4대강 사업으로 8개의 보를 만들면서 가속화됐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였다.
낙동강 녹조와 수질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4대강 사업 후 더 심각해진 것이다. 기후변화는 이 환경 재앙을 녹조라테라는 은유로 드라마틱하게 환기시켰을 뿐이다. 낙동강네트워크와 대한하천학회는 지난 4일 현장 조사에 나서 ‘강이 아프면, 사람이 아프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증언했다. 물고기는 썩어가고 녹조로 걸쭉해진 물에서는 악취가 진동했다. 해당 단체가 앞서 지난 6월과 7월 낙동강 31개 지점 수질을 분석한 결과 녹조 독소인 마이크로시스틴이 미국 환경보호청 물놀이 기준의 최고 1075배 검출됐다.
문제는 이 물을 고도정수처리한 수돗물을 부산 시민들이 마시고 산다는 것이다. 말이 고도정수처리지 원수가 고도의 기술로 정화해야 마실 수 있을 만큼 고도로 나쁘다는 말이다. 낙동강 원수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환경부는 수돗물 검사 결과 먹는물 기준을 충족해 안전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 10년 전 녹조라테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원수에 대한 언급은 없다. 미국과 프랑스가 녹조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인간의 안전에 미칠 수 있는 기준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수도권 원수에 녹조라테와 같은 문제가 생겼으면 벌써 난리가 났을 것이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주 상수원인 팔당호는 BOD(생화학적산소요구량) 기준 1ppm 안팎의 1급수 수준을 유지한다. 2급수만 넘어서도 난리가 난다. 낙동강 원수는 기본이 2~3급수고 녹조가 창궐하는 여름이면 4급수로 전락한다. 올 여름 낙동강에서는 4급수 지표종인 깔따구 유충이 발견됐다. 현장 답사에 나선 교수들은 지금 낙동강 수질은 4급수보다 더 나쁜 6급수로 보인다고 말했다. 환경정책기본법은 정수해 식수로 사용하는 원수 기준을 1~2등급으로 규정하고 3등급은 고도정수처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의 근본 취지는 사람이 먹는물의 원수 수질은 1~2등급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부산 시민들은 법이 정한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원수가 안 좋은데 고도정수처리한들 인간의 몸에 좋을 리 없다. 정부가 먹는물 기준에 부합한다고 하지만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위해 물질이 한둘이 아니다. 부산 시민들이 전국 평균에 비해 암 발병률이 높고 기대수명이 낮은 이유가 물 때문이라는 말까지 있다. 넓게 보면 낙동강에 기대 사는 영남의 1300만 주민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 낙동강 녹조 사태로 대구의 수돗물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돼 시끄럽다. 낙동강 주변 벼와 채소에서도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되고 있다. 낙동강 물 문제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온 것은 정부 책임이다. 정부가 수자원을 공공재로 정해 놓고 정작 원수 확보와 관리 책임은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겼다. 부산처럼 자체적으로 깨끗한 원수를 확보할 수 없는 지자체는 경남 등에 손을 벌려야 한다. 부산시가 수 십 년에 걸쳐 진주 남강댐 물을 공급받기 위해 노력했으나 경남도와 진주시의 반대로 무산됐고 갈등과 반목만 심해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물관리가 환경부로 일원화되고 지난해 6월 환경부장관과 영남 5개 시도지사가 낙동강통합물관리방안에 합의해 물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됐다. 이 방안은 합천의 황강 복류수와 창녕의 강변여과수로 부산의 취수원을 다변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미 정부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는 등 행정 절차가 진행되고 있으나 핵심은 역시 지자체 간 갈등 조정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로 출범한 창녕군 의회와 합천군 의회가 최근 반대 입장을 공식화하고 나서 물 싸움이 재연될 조짐이다. 이제는 더 이상 물 문제를 지자체에 떠넘길 게 아니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해당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고 환경 보전 노력에 따른 보상을 실시하는 등 해결에 나서야 한다. 우리나라 어디에 살든 깨끗한 물을 공급받는 것은 기본적 권리다. 그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것은 정부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2022-08-11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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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경찰대를 어쩌나
행정안전부 경찰국 신설을 둘러싼 정부와 일선 경찰 간 충돌의 불똥이 경찰대로 튀고 있다. 총경급 간부들이 전국경찰서장회의를 주도하며 집단행동에 나서는 초유의 경란 사태 와중에 행안부가 경찰대 개혁 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총경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국기 문란, 하나회의 12·12 쿠데타 등 거친 표현으로 몰아세우며 이를 주동한 세력으로 경찰 내 경찰대 출신들을 겨냥했다. 쿠데타 표현에 등장한 하나회가 바로 경찰대를 비유한다는 것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2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업무보고에서 “경찰대를 졸업했다는 사실만으로 자동으로 경위부터 출발하는 건 불공정하다”며 경찰대 개혁 추진을 공식화했다.
∎ 경찰대 출신 경찰 수뇌부 장악
경찰대학은 역량 있는 경찰 간부 육성을 목표로 1979년 제정된 경찰대학 설치법에 근거해 설립된 4년제 특수대학이다. 1981년 개교해 2021년 37기가 졸업했다. 행안부에 따르면 지난 5월 말 기준 전국 13만 1394명의 경찰 중 경찰대 출신은 3272명으로 전체의 2.4%다. 그러나 최근 4년간 고위직에 해당하는 경무관 승진자 중 경찰대 출신이 68.8%를 차지하고 일반 출신은 4%에 불과하다. 전국의 현직 총경 630여 명 중 경찰대 출신이 60%에 이른다. 경찰 수뇌부를 경찰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 경찰대 출신들이 승진 가도를 달리며 1기에서 처음으로 이강덕 현 포항시장이 경찰 최고 계급인 치안총감에 올라 해양경찰청장을 지냈다. 첫 경찰청장은 2기 출신 강신명 전 청장이며 직전 김창룡 경찰청장이 4기다. 윤희근 경찰청장 내정자는 7기다. 전국경찰서장회의를 주도했다 대기 발령된 류삼영 총경이 4기다.
∎ 경찰대 특혜 경찰 내부 위화감
경찰대는 역량 있는 경찰 간부 육성이라는 설립 취지와 달리 시대가 흐르며 폐지 논란이 이어졌다. 이제 4년제 대학 출신들이 높은 경쟁률을 뚫고 순경으로 입문한다. 순경으로 시작한 경찰관이 승진 시험을 치르지 않고 근속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순경→경장 4년, 경장→경사 5년, 경사→경위 6년 6개월 해서 15년이 넘게 걸린다. 수능 성적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별도의 절차 없이 경위를 주는 것은 특혜라는 주장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찰 내부 위화감과 현장 경찰의 사기 저하 등 문제점이 생겨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경찰대 졸업자들이 경찰에 투신하기 보다 로스쿨을 선택해 진로를 바꾸는 비율도 갈수록 늘어나 경찰대 무용론의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다. 경찰대 개혁 논의는 앞선 정부에서도 제기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경찰의 날 기념식에서 경찰 내에 특정 집단의 독주 체제가 조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경찰대 개혁 필요성을 역설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후보 시절 경찰대 존속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후 대통령 재임 당시인 2018년 경찰대학 개혁 추진위원회를 통해 16개 개혁 과제를 발표하기도 했다.
∎경찰 장악 위한 조직 갈라치기
행안부의 경찰대 개혁 추진을 경찰 장악을 위한 조직 갈리치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만만찮다. 경찰대 개혁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온 문제지만 경란 사태의 와중에 경찰대 문제를 정면 제기함으로써 내부 분열과 갈라치기를 통해 개혁의 명분을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공무원이 되기도 힘든데 7급 공무원으로 자동 보임된다는 게 요즘 말하는 불공정의 시작이 아니냐며 공정 문제까지 거론한 것도 경찰대 폐지를 위한 명분 쌓기라는 지적이다. 정권을 쥔 검찰 권력이 경찰 장악을 위해 핵심인 경찰대에 칼끝을 겨누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수사권 분리를 주도한 세력도 경찰대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현 정부가 경찰대를 눈엣가시로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첫 경찰 고위직 인사에서 주축인 경찰대 4~5기를 배제하고 경찰대 수사 라인의 상당수를 승진에서 제외하며 경찰대 힘빼기를 본격했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경찰의 전반적 수준과 자질 향상 등 경찰대가 경찰 발전을 위해 기여한 점은 무시하고 특혜만 부각하는 것은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입장이다. 경찰대가 불공정하다는 장관의 발언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해도 이등병부터 시작해야 하느냐 등의 이야기가 떠도는 등 정권의 경찰 장악 의도를 희화화하는 움직임도 있다.
∎ 경찰대학 폐지 수순으로 가나
정부가 경찰대 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임으로써 앞으로 경찰대는 어떤 방향으로든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경찰대는 당초 120명이던 정원을 100명으로, 그나마 고졸 시험 전형은 50명으로 줄이고 편입학 제도 도입 등 나름의 개혁 과제를 진행해 왔다. 행안부는 경찰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8월 중 국무총리 산하에 민관합동 경찰제도발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6개월 내 개혁 방향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행안부는 이 위원회에서 경찰대 개혁과 사법·행정 경찰 구분, 국가경찰위원회·자치경찰제 개선 등을 논의할 계획인데 경찰대 개혁이 핵심 의제로 부상할 전망이다. 현 정부의 의지를 감안하면 경찰대는 향후 세무대처럼 폐지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세무대는 2년제 국립대학으로 경찰대와 같은 시기인 1981년 개교했는데 2001년 폐교됐다. 수사권 분리 등에 따라 전문적인 수사 인력 양성의 필요성 등을 감안하면 전문대학원 형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어쨌든 향후 수사와 기소의 분리로 방향이 잡혀가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의 수사 능력 제고와 전문화가 큰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에선 경찰대를 폐지하고 경위 임용제도를 손보려면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현재의 상황으로는 야당이 동의할 가능성이 크지 않아 경찰대 개혁 추진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쨌든 향후 ‘검수완박’ 법률 시행 등 정국과 맞물려 당분간 경찰대 문제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2022-07-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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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의 쏘울앤더시티] 부울경 메가시티는 '생존 연대'다
부울경 메가시티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6·1 지방선거 과정에서 제기됐던 우려가 민선 8기 출범과 함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메가시티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던 울산과 경남의 새 단체장이 취임 후 재검토와 속도 조절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메가시티를 이끌어 갈 특별자치단체인 부울경특별연합이 예정된 내년 1월 1일부터 사무에 들어갈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수도권에 맞설 새로운 경제공동체 건설의 꿈이 점점 멀어져 우려가 크다.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부울경특별연합을 민선 8기 도정 과제에서 제외하고 방향 재설정을 위한 별도 용역에 들어갔다. 경남의 부정적 입장 이면에는 진주를 중심으로 한 서부 경남의 소외론이 자리하고 있다. 김두겸 울산시장의 입장은 한층 강경하다. 부산으로 모든 상권이 흡수될 수밖에 없다는 이른바 ‘빨대 효과’에 대한 우려다. 경주, 포항과 함께 해오름동맹을 강화해 주도권을 확보한 후 부울경 메가시티에 참여하겠다며 거리를 두고 있다. 울산은 부울경이 아닌 신라권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내년 1월 특별연합 가동 앞두고 암초
울산·경남 ‘빨대 효과’ 우려 미온적
선도 사업 예산 7조 확보 발등의 불
디지털 전환 메가시티 중요성 높아
혁신 생태계 구축 뭉쳐야 가능해
상생 위한 부산시장의 리더십 필요
지난 4월 특별연합이 공식 출범했지만 내년 1월 1일 본격 사무 시작까지 실무적 난제가 산적해 있다. 특별연합 의회를 구성해야 하고 특별연합장도 선출해야 하며 아직도 3개 시도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청사 문제도 풀어야 한다. 무엇보다 내년부터 사업을 진행하려면 하반기 예산 확보가 필수적이다. 부울경 3개 시도는 특별연합이 내년부터 30개 선도 사업에 대해 우선 예산을 확보해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들 사업에 필요한 예산만 7조 원 규모로 올 하반기에 예산을 확보해야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사업 진행이 가능하다. 2단계 사업 40개를 합하면 전체 예산 규모가 35조 원에 이른다. 부울경을 1시간 생활권으로 묶는 기반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부울경 메가시티의 궁극적 지향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확보에 있는 건 아니다. 메가시티는 단순히 큰 도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재와 자본, 혁신과 생산 및 소비가 집중되는 공간이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경제로의 전환이 새로운 흐름이 되면서 그 중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UN 조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40개가량 메가시티가 형성되고 있는데 전 세계 경제활동의 약 66%와 특허를 받은 혁신의 86%가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국내에서는 수도권 정도가 메가시티에 포함된다. 부울경을 SOC 확충을 통해 1시간 생활권으로 묶는다고 메가시티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산업 간 융복합과 인적·지적 집적이 이뤄지고 창의적 젊은 인재가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글로벌 경쟁력이 가능한 수준의 혁신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는데 부울경이 힘을 합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는 부울경이 스스로 메가시티 전략을 수립해 정부에 건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윤석열 정부가 지역균형발전 전략으로 메가시티에 대한 전폭적 지원과 부울경을 남부권 제2 수도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기대를 모았다. 지역이 주도적으로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은 세계적으로도 메가시티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지방 소멸을 막을 마지막 희망이 될 부울경 메가시티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부울경 3개 시도 연구원이 ‘동남권 발전전략 수립 공동연구’에서 메가시티는 지방이 죽어 가는 상황에서 마지막 돌파구를 위한 ‘생존의 연대’라고 의미를 부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부울경 통합을 가로막는 것은 결국 신뢰의 문제다. 부산은 1963년 경남으로부터 분리됐고 울산은 1997년 떨어져 나왔다. 부울경은 원래 하나의 역사와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행정 구역 분화 이후 부울경은 협력과 상생의 역사보다 갈등과 앙금의 역사를 쌓아 왔다. 부산 독립에 대한 경남의 배신감은 트라우마에 가깝다. 산업적 기반이 탄탄한 울산은 홀로서기를 원했다. 결국 부울경은 지역 현안을 두고 사사건건 대립했고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다. 부산과 경남은 신항 명칭과 경마장 유치를 둘러싸고 소모적 갈등을 빚어 왔고 가덕신공항은 오랜 세월 표류했다.
결국 결자해지라고 부산의 역할과 부산시장의 리더십이 중요한 시점이다. 경남과 울산에 진정성을 갖고 다가가 메가시티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 개별 사업을 놓고 이해가 엇갈리면 경남과 울산의 입장을 전향적으로 수용해서라도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다. 수도권 블랙홀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내 것 네 것 따지는 자체가 무의미하다. 부울경 메가시티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서로 득실만 따지며 머뭇거리는 이 순간에도 지방 소멸의 시계는 가고 있다.
2022-07-19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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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시선] 부산 해양 우주산업 키우자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역사적 발사 성공으로 국내에서도 우주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누리호에 실려 우주로 향한 성능검증위성은 목표 궤도에 정확히 도달했고 지상국과의 양방향 교신에 성공하며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성능검증위성에 실린 큐브위성 4개도 29일부터 이틀 간격으로 차례로 사출돼 백두산, 해양 플랑크톤, 미세먼지 관측 업무에 들어간다.
세계는 지금 우주전쟁 시대다. 국가 주도의 ‘올드 스페이스’를 넘어 ‘뉴 스페이스’ 시대에 접어들어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우주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우리도 누리호 발사 성공을 계기로 우주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부산시도 지자체 최초로 해양나노위성 발사를 진행 중인데 해양 우주산업 도시 부산의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제프 베이조스 ‘블루 오리진’
미 우주 산업·인프라 구축 주도
위성 활용·재사용 발사체 개발
블루 오션으로 각광·폭발적 성장
아직 걸음마 단계 국내 우주산업세계
시장 비중 0.8%로 미미
정부, 적극적 생태계 조성 중요
컨트롤타워 우주청 설립도 필요
부산시, 해양나노위성 발사 추진
전국 지자체 중 첫 프로젝트 주목
해양수도 특성 살려 특화 개발을
올드 스페이스 넘어 뉴 스페이스
우주개발은 국가 주도로 이뤄지던 ‘올드 스페이스’(old space)에서 민간이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과거에는 정치·군사적 목적에 의해 정부 주도로 이뤄졌지만 이제 민간투자에 의한 우주개발이 본격화하고 있다. 달에 사람을 보내고 우주정거장을 건설하는 것이 국력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국익을 위해 우주산업을 키우는 일이 중요해졌다.
우주 강국 미국에서는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 오리진이 우주 산업을 이끌고 있다. 영국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의 버진 갤럭틱도 우주 경쟁에 가세했다. 스페이스X는 세계 최초로 상업용 우주선을 발사해 국제우주정거장에 도킹시켰고 로켓 재사용 기술과 인공위성 발사로 뉴 스페이스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2050년에 화성에 8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도시를 건설한다는 야심 찬 계획도 내놓았다. 블루 오리진은 우주 관광용으로 개발된 재사용 발사체 사업을 벌이고 있고 달에 우주 산업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버진 갤럭틱도 우주 관광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세계 우주산업 시장 폭발적 성장
우주산업은 발사체(로켓)와 위성 개발부터 지구 관측, 우주 인터넷, 우주여행, 우주 광물 탐사, 우주정거장 등으로 거대한 블루 오션이 형성되고 있다. 기업이 우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눈독 들이는 분야는 다양하다. 그중 위성 활용 서비스는 가장 돈 되는 분야로 꼽힌다. 미국 스타트업 카펠라스페이스와 핀란드의 스타트업 아이스아이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위성으로 러시아군의 이동 정보를 제공해 시장의 관심을 끌었다. 현재 위성 데이터 분석 시장은 정부 자원 관리나 재해 대응 등 공공 부문에서 각국의 원유 재고 파악을 통한 유가 정보 등 민간에게 상업적으로 다양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스페이스X의 재사용 발사체 개발은 기존 로켓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춰 우주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글로벌 대기업과 다양한 우주 스타트업들이 서로 경쟁하고 플랫폼을 공유함으로써 우주산업 생태계가 폭발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우주산업 시장 규모가 2017년 3240억 달러(약 378조 원)에서 2040년 1조 1000억 달러(약 1286조 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제 발사대에 선 국내 우주산업
순수 국내 기술로 이뤄진 누리호 발사에는 들어간 부품만 37만 개,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300여 개 업체가 참여했다.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한국형 발사체 고도화 사업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2027년까지 6874억 원을 들여 누리호를 네 차례 더 발사한다. 8월에는 달 탐사선 다누리호를 미국 스페이스X의 발사체 팰컨9에 실어 쏜다. 2031년 달 착륙선을 자체 발사체로 발사하는 게 목표다.
우리의 우주산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정부 주도의 우주개발 예산과 R&D 과제로 이뤄지고 있고 뉴 스페이스 시대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우리의 우주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0.8%로 미미하다. 출발은 늦었지만 우주산업은 고부가가치 미래산업으로 청년 실업과 저성장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이 다시 도약할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민간 주도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국내 우주산업의 현주소를 감안하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생태계를 만들어 가고 민간 참여를 유도해 시장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래서 이를 총괄할 우주청 설립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해양 우주 스타트업 클러스터 만들자
우주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부산시가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추진하는 해양나노위성 발사 프로젝트가 주목받고 있다. 2019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공모사업인 ‘미래 해양도시 부산의 신산업 혁신성장 생태계 조성(182억 원)’의 일환인데 해양 미세먼지와 해양 탐사를 위한 해양나노위성 ‘부산샛’ A·B 2기 개발이 진행 중이다. 부산테크노파크가 주도하는 이 사업에는 초소형 인공위성 종합 솔루션 스타트업인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와 인공위성용 초정밀 전자광학시스템 개발 스타트업인 텔레픽스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프로젝트 참여를 위해 2019년 영도의 부산테크노파크 해양물류산업센터로 본사를 이전했다.
급성장하는 위성 산업을 감안하면 이들 기업이 부산을 기반으로 글로벌 우주 기업으로 성장할 수도 있다. 특히 해양수도 부산의 특성을 살려 해양을 기반으로 한 우주산업을 특화 개발하면 새로운 우주산업 생태계를 만들어 갈 수도 있다. 이들 기업이 입지한 영도 동삼혁신지구에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과 국립해양조사원이 국가해양위성센터를 운영해 우주 스타트업들을 불러 모으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경기도 평택에 본사를 둔 해양위성통신 안테나 분야 글로벌 1위 기업인 인텔리안테크놀로지스도 부산에 연구소 설립을 진행 중이다. 부산테크노파크 스마트해양기술단 서효진 해양물류산업센터장은 “부산의 해양과 우주산업을 결합하면 해양 위성은 물론이고 해양 위성 데이터를 활용한 해양 생태계·자원 모니터링, 해상 재난 예측, 최적 항로 네비게이션 서비스, 선박 자율 운항 등 다양한 산업 분야로 확대할 수 있다”며 “해양에 특화해 우주산업을 잘 키우면 부산의 새로운 산업생태계가 조성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2022-06-29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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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정상에서 멈춰 선 BTS… K팝의 미래는
세계적 K팝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단체 활동 중단 선언으로 K팝 시스템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BTS가 정상에서 활동을 멈추면서 세계 대중문화계에 충격을 안긴 것은 물론이고 세계적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K팝의 미래에도 상당한 영항을 미칠 전망이다. BTS가 던진 음악과 메시지에 전 세계가 공감하고 열광했으며 K팝은 세계 음악시장의 중심에 우뚝 섰다. 이들의 번아웃 선언으로 K팝 시스템에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BTS는 단체 활동 중단 선언이 그룹 해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는데 이들의 향후 행보를 세계 대중문화계가 주목하고 있다.
∎ 쉼 없이 달렸지만 방향성 잃었다
BTS는 14일 공식 유튜브 채널 ‘방탄티비’에 ‘찐 방탄회식’ 영상을 올려 지난 9년간 쉼 없이 달려온 소회를 전하며 단체 활동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그룹 해체는 아니라고 못 박았다. 리더 RM은 “K팝 아이돌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숙성하게 놔두지 않는다”며 “계속 뭔가를 찍어야 하고 해야 하니까 내가 성장할 시간이 없고 랩 번안하는 기계가 됐다”고 말했다. 쉼 없이 활동만 이어 갔는데 이제는 우리가 어떤 팀인지 잘 모르겠고 정체성을 잃은 것 같다고 털어놨다. 슈가 역시 “가사가, 할 말이 나오지 않았다”며 “항상 괴롭게 곡 작업을 해 왔지만 과거에는 스킬이 부족해서 쥐어 짜내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진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반복되는 일상으로 담아낼 메시지가 없다는 것이다. ‘찐 방탄회식’은 BTS가 바이든 미 대통령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한 지난 31일 이전에 녹화됐다. 돌출 행동이 아니라 고민을 통해 사전에 합의되고 준비된 발표라는 것이다.
∎ 공장식 K팝 시스템 한계
계속해서 뭔가를 찍어 내야 하고 성장을 위한 충분한 시간과 휴식이 주어지지 않는 K팝 시스템의 고질적 병폐는 BTS도 비켜 가지 못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의 일상이 멈췄을 때도 BTS는 쉼 없이 달려야 했다. 2020년부터 올해 6월까지 ‘다이너마이트’ 등 7개의 신작을 발표했다. 2013년 데뷔 후 9년간 싱글을 포함해 모두 24개의 앨범을 쏟아 냈다. K팝 시장이 세계적 조명을 받고 있는 지금도 열악한 창작 환경은 여전하다는 이야기다. K팝 시스템이 연습생을 단기간에 실력 있는 아티스트로 성장시키는 데 기여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내면이 함께 성장하지 못하면 오래가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보여 줬다. 이제는 세계가 주목하는 K팝이다. 아이돌을 ‘기획 상품’이 아닌 ‘아티스트’ 차원에서 봐야 한다. 청년들에게 연대를 통해 함께 성장해 가자는 메시지를 던졌던 BTS의 일곱 청년들이 K팝 시스템에 발목이 잡혀 성장을 멈추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공장식 시스템을 극복하지 않고 K팝의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없다.
∎대중 문화계 병역 면제 논란
BTS의 단체 활동 중단의 배경에는 병역 문제도 자리하고 있다. BTS가 세계 정상의 기록을 갈아치울 때마다 병역 면제 논의가 뜨거웠지만 진전되지 않았다. 이미 30세인 맏형 진은 올해 안에 입대해야 한다. BTS의 단체 활동 중단이 병역 상황에 따라 향후 5년가량 불가피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있다. 현행 병역법은 국위 선양과 문화 창달에 기여한 순수 예술인과 체육인들만 특례 대상으로 인정한다. 대중 예술인은 포함되지 않는다. 윤석열 당선인 시절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BTS 소속사 하이브를 방문해 병역 논란이 수면 위로 오르기도 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2590억 원의 경제 유발효과가 나오는데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면 1조 7000억 원 정도 효과가 있다는 분석 자료로 병역 특례 필요성을 뒷받침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공식 요청과 국회의 병역특례법 개정안 처리 움직임으로 어느 때보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찮아 사회적 합의가 쉽게 이뤄질지 미지수다.
∎ BTS는 세계 대중음악계에 새 역사
BTS는 2013년 데뷔한 후 2014년 미국 할리우드 한복판 길거리에서 직접 만든 전단지를 나눠 주며 해외 활동을 시작했다. 대형 기획사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금수저 아이돌이 아니라 흙수저 아이돌로 시작해 맨손으로 세계적 팬덤을 일군 것이다. 유튜브와 SNS 같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열정적이고 응집력 높은 ‘밀레니얼 세대’와 소통하며 세계적 팬덤(아미)을 형성해 정상에 올랐다. 2017년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K팝 그룹 최초로 ‘톱 소셜 아티스트’를 차지했다. 2018년 5월에는 아시아 가수 최초로 빌보드 앨범 차트 ‘빌보드 200’ 정상을 차지하며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을 기점으로 BTS 천하가 됐다. 그해 9월 빌보드 메인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 K팝 가수 최초로 1위에 올랐다. 이후 ‘핫 100’에서 정상을 열 여섯 번이나 차지했다. 비틀즈 이후 최고의 뮤지션이라는 평가가 따랐다. 이들의 행보는 대중음악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2018년과 2020년, 2021년 세 차례 유엔 총회에서 연설했으며 최근에는 미 바이든 대통령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하기도 했다.
∎ 앞으로 활동 어떻게 되나
BTS 활동 중단 충격이 확산되자 멤버들이 진화에 나섰다. 부산 출신의 정국은 “자고 일어나니 BTS가 활동 중단하고 해체한다고 난리가 났다”며 “앞으로 개인 활동을 한다는 말이지 BTS를 안 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소속사 하이브 박지원 대표가 직접 나서 BTS 해체설을 단호하게 부인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팀 활동과 개인 활동을 조화롭게 진행할 예정이어서 활동 범위는 오히려 더 다채롭게 확장돼 나갈 것이고 아티스트로서 한 번 더 성장하고 도약할 수 있는 계기들이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챕터 2’는 따로가 우선인 ‘따로 또 같이’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제이홉을 필두로 멤버들이 차례로 정식 솔로 앨범을 내고 슈가는 가요 프로듀서로 활동 폭을 넓힐 것으로 보인다. 오랜 합숙 생활은 끝낸다고 했다. BTS의 단체 활동 중단 선언으로 ‘챕터 1’의 마지막 앨범이 될 ‘프루프’는 처음부터 현재까지를 돌아보는 앤솔러지 앨범이다. 타이틀 곡 ‘옛 투 컴’에는 ‘최고란 말은 아직까지 낯간지러워/ 난 난 말야 걍 음악이 좋은 것/ 여전히 그때와 다른 게 별로 없는 걸/ 아직도 배울 게 많고/ 나의 인생 채울 게 많아’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BTS가 새로운 충전을 통해 더 성장한 모습으로 팬들에게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
2022-06-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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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의 쏘울앤더시티]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부산이 되려면
6·1 지방선거에서 부산 시민들은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를 부산시장으로 선택했다. 예상됐던 결과로 반전은 없었다. 시민들은 지난해 4·7 보궐선거에 이어 이번에도 박 후보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벼랑 끝에 선 부산의 운명을 그에게 맡긴 것이다. 박 시장은 이번 선거전에 나서며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도시 부산’을 전면에 내걸었다. 단순히 물질적 풍요만이 아니라 시민 행복을 추구하는 살아 있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다짐까지 덧붙였다. 정치는 말의 예술이고 한 줄 레토릭이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적 수사는 수사일 뿐 현실화하지 않는 레토릭은 희화화되기 십상이다.
부산 시민 박형준 시장 압도적 지지
대선 연장전 성격 지역 이슈 파묻혀
쪼그라드는 부산의 엄혹한 현실 여전
부울경 메가시티 통합의 리더십 요구
새로운 산업생태계 만들어 지역 혁신
널리 인재 구하고 새 바람 일으켜야
박 시장의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도시 부산은 그의 당선과 함께 이제 냉혹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지금 부산의 현실이 그렇다. 그의 당선이 지난 1년간 ‘박형준 시정’에 대한 평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번 지방선거는 대선의 연장전 성격으로 전개됐다. 지역 이슈는 묻혔고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와 견제 심리가 유권자의 표심을 갈랐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중앙 정치가 지방 정치를 집어삼켰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박 시장은 선거전에서 지난 1년간 글로벌 허브 도시 부산의 가능성을 자신의 리더십으로 보여 줬고 혁신의 싹을 틔워 도시에 희망을 불어넣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부산의 객관적 현실은 여전히 희망적이지 않다. 2020년 기준 336만 명이던 부산의 인구는 2050년에 251만 명으로 쪼그라들고 평균연령이 46.3세에서 60.1세로 크게 높아진다고 통계청은 내다봤다. 전국 8대 대도시 중 평균연령이 60세를 넘는 곳은 부산뿐인데 이게 객관적인 지표가 보여 주는 엄혹한 현실이다. 희망의 싹을 틔운다고 쉽게 키울 수 있는 토양이 아닌 것이다.
앞으로 박 시장이 걸어야 할 길이 꽃길이 아니라 가시밭길이라는 말이다. 당장 내년 1월 1일 공식 출항해야 하는 부울경 메가시티가 문제다. 메가시티에 미온적 입장을 보였던 국민의힘 박완수·김두겸 후보가 경남도지사와 울산시장에 당선됐다. 부울경이 똘똘 뭉쳐도 될까 말까한 메가시티다. 이명박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이었던 5+2 광역경제권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균형발전 정책의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며 수도권에 맞설 광역경제권으로 부울경 메가시티를 지원해 그 효과가 다른 지역으로 파급되게 하겠다고 했다. 부울경에는 더없는 기회다. 박 시장의 부울경을 아우르는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한 이유다. 부울경 메가시티를 완성하고 국가 지도자로 부상하는 부산시장의 모습을 기대할 수도 있다.
내년 말로 예정된 2030월드엑스포의 부산 유치 여부는 도시 발전의 새로운 모멘텀은 물론 박형준 시정이 탄력을 받을 수 있느냐를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선거 개입 논란에도 불구하고 윤 대통령이 선거일 하루 전 부산행을 강행하며 성공적 유치를 위해 국력을 집중하겠다고 공언한 마당이다. 올인한 상황이니 성공적인 유치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부산의 본질적 문제로 돌아오면 쇠락해 가는 산업생태계를 어떻게 혁신해 도시의 활력을 되살릴 것이냐는 질문에 닿는다. 지난 1년간 지산학(지자체·산업계·학계) 협력에 시정의 역량을 쏟은 것도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박 시장은 희망의 싹을 보았다고 했지만 동시에 두터운 벽도 느꼈을 것이다. 이미 돈과 인력이 수도권에 쏠려 있는 상황이다. 전임 시장들이 만든 창업센터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문을 닫는 것을 보며 현실을 절감했으리라 짐작된다. 전혀 새로운 접근과 충격이 요구되는 이유다. 4차 산업혁명과 기후변화 시대 수도권과 백지 상태에서 맞짱을 뜰 수 있는 새로운 산업생태계가 희망의 단서가 될 수도 있다. 블록체인 특구도 그렇고 수소 밸류체인도 그 중 하나일 수 있다. 15분 도시는 또 다른 측면에서 시민 행복을 위해 박 시장이 던지는 화두다. 이야말로 레토릭에 그칠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 부산의 삭막한 도심 모습은 박 시장이 그리는 15분 도시와는 거리가 멀다. 부전천이나 보수천 등 도심의 물길을 복원하고 숲길을 만드는 일부터 필요할지 모른다.
부산의 산적한 현안을 헤쳐 나가려면 결국 사람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새 출발을 해야 하는데 일할 사람이 없다는 말부터 나올 것이다. 당장 공무원 조직을 어떻게 신발 밑창이 닳도록 뛰게 하느냐가 관건인데 만만찮은 일이다. 1년간 시정을 이끌며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행정에 답답함을 많이 느꼈을 수도 있다. 여야를 가리지 말고 널리 인재를 구해야 한다. 외부 영입을 통한 자극도 필요하다.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사람을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사람이 모든 일의 출발이다.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도시 부산이 출발선에 섰다.
2022-06-0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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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경의 쏘울앤더시티] 부산시장의 경쟁력
6·1 지방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부산시장 선거가 국민의힘 박형준 현 시장과 더불어민주당 변성완 전 시장 권한대행, 김영진 정의당 부산시당위원장의 3파전으로 가닥이 잡혔다. 대한민국 제2 도시의 시장을 뽑는 선거 대진표가 정해졌는데도 분위기는 좀체 뜨지 않는다. 경기도지사 선거가 대선급 주자들이 뛰어들어 미니 대선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해 4·7 보궐선거로 시장에 당선돼 취임 1년을 갓 넘긴 박 시장이 국민의힘 단일 후보로 정해진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변 전 시장 권한대행이 단독으로 공천 신청하고 후보로 정해진 것은 변 후보의 자질과 위상 여부를 떠나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다. 지난 17일 부산시민공원에서 진행된 변 후보 출정식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주요 현역 국회의원이나 일부 지역위원장들이 빠진 채 썰렁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전도 없고 감동도 없는 맥 빠진 후보 선출 과정이 만든 결과다.
박형준 vs 변성완 대진표 나왔는데
시장 선거 분위기 좀체 뜨지 않아
경기지사 미니 대선 열기와 대조적
차기 정부 균형발전 강조 기대에도
부산의 도시 위상 추락 현재진행형
치열한 정책 대결로 반전 모색해야
이 같은 분위기는 지난해 4·7 보궐선거에서 박형준 후보가 62.67%의 압도적 표차로 승리를 거둔 데다 오거돈 시장의 불명예 퇴진과 대선 패배의 여파가 지속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박 시장은 취임 후 17개 광역단체장 업무수행평가에서도 꾸준히 3~4위로 상위권을 유지하며 하위권에 머물렀던 이전 시장들과 달리 시민들의 굳건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렇다고 더불어민주당의 분위기 침체가 오 시장 개인의 일탈이나 정치 지형의 변화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부산 시민들은 부산시장과 시의회는 물론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까지 더불어민주당을 화끈하게 밀어줬다. 1995년 민선 지방자치단체 출범 후 23년간 보수의 아성이었던 부산을 진보 진영으로 완전히 갈아 치운 것이다. 시민들은 지방 권력 교체를 통해 추락하는 부산의 반전 드라마를 기대했으나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전 보수 진영 시정의 정책 뒤집기에만 바빴을 뿐 새로운 비전이나 정책적 성과를 보여 주지 못했다. 오 시장이 내세운 도시 비전 ‘시민이 행복한 해양수도 부산’에서 시민들은 생활 속 행복도 해양수도 부산의 미래도 보지 못했다. 집권 여당의 힘으로 가덕신공항을 다시 살려 낸 정도가 성과라면 성과다.
진보 진영의 추락이나 박 시장의 1년 시정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여전히 절박한 부산의 현실을 감안하면 달아오르지 않는 부산시장 선거전은 침체된 부산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지방자치제도의 꽃이 지방선거다. 선거를 통해 후보들은 도시의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 경쟁을 통해 도시 발전의 새로운 계기를 만든다. 경쟁이 없는 도시가 발전할 리 만무하다. 부산은 지난해 9월 국내 7대 도시 중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일자리는 없고 젊은이들은 떠나는 암울한 현실에 대한 통계적 낙인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3월 고용지표에서도 코로나 이후 전국의 취업자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83만 1000명이 늘어나 고용 회복세가 뚜렷한데 부산의 취업자 증가는 1만 3000명에 그쳤다. 그나마 경제적으로 중요한 제조업 취업자는 오히려 줄었고 늘어난 취업자도 대부분 임시근로자로 불안정한 일자리였다. 부산의 추락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이야기다.
박 시장은 취임 후 ‘그린 스마트 도시 부산’을 비전으로 내걸고 2030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15분 도시를 기반으로 한 생활 속 시민 행복, 지·산·학을 통한 새로운 성장 동력과 일자리 창출 등에 나서고 있다. 또 윤석열 차기 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을 중요한 국정 목표로 내세우고 수도권에 맞설 국가 성장축으로 부울경 초광역경제권을 강조하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부산의 굵직한 현안들에 대해 박 시장과 코드를 맞춰 적극적 행보를 보이는 것도 지역으로서는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박 시장의 정책 행보가 시민들의 구체적 삶의 변화로 이어진다는 평가를 받기는 아직 이르다. 차기 정부의 균형발전 의지도 역대 정부의 사례에서 보듯 구체적 실행 단계에 접어들면 여러 암초를 만난다. 수도권의 조직적 저항도 만만찮을 것이다.
박 시장은 지난달 부산항 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진행된 ‘시민 초청 토크콘서트’에서 “70~80%의 부산 시민이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어하는 도시 부산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의 변 후보도 출마 선언문에서 자신의 도전이 부산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것이고 시민들의 일상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1 개월여 남은 선거기간 두 후보가 공통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 시민들의 행복을 위한 구체적 정책을 놓고 치열하게 선거전을 펼쳐 부산이라는 도시에 영혼을 불어넣기를 기대해 본다. 제2 도시의 위상이 끝 없이 추락하고 있는 마당에 보수와 진보의 승패가 무슨 대수란 말인가.
2022-04-21 [1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