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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조금은 이른 가을 편지
사상 최장 열대야 기록을 세운 폭염 기세가 한풀 꺾였습니다. 해가 갈수록 더 뜨거운 여름, 더 추운 겨울이 봄과 가을까지 잠식해 감을 느낍니다. 완충지대 없는 양극화는 현실 세계나 모바일 세상 모두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정치는 진영 논리의 극단을 달리고, 국제 정세도 패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미국과 이를 상대하는 ‘글로벌 사우스’의 대응이 점입가경입니다. 이 패권 경쟁 여파로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서는 오늘도 수많은 생명이 스러지고 있습니다. ‘20 대 80 사회’라던 자본주의 사회 계층은 ‘1 대 99 사회’로 바뀌는 중입니다.
유튜브를 비롯한 영상 플랫폼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특유의 알고리즘으로 사용자가 봤던 콘텐츠와 유사한 영상·피드를 추천하면서 사용자의 기존 인식을 강화합니다. 팬덤 정치, 진영 정치를 심화시키는 주범으로 알고리즘 시스템을 꼽는 전문가가 많습니다.
사회의 공론장 역할을 해야 할 언론도 양쪽 진영의 구심력에서 공정성·객관성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틈에 전통 미디어를 거치지 않고 뉴스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인플루언서 유튜버들의 영향력도 날로 커집니다. 인기 방송인이자 외식 사업가인 백종원 씨는 가맹점주들이 본사를 가맹사업법 등 위반 혐의가 있다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해명 영상을 직접 만들어 올렸습니다. 자신의 유튜브 계정 구독자가 633만 명, 해명 영상 조회수는 490만 회를 넘겼습니다.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 심사 중이던 그의 회사는 지난달 30일 한국거래소의 예비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전통적인 뉴스 사이트와 언론 기업이 설 자리는 이렇게 점점 줄어드는 중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만나 의견을 나누는 마당. 어느덧 상상 속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언론의 공론장 역할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 더 근원적으로는 생존을 위협해 오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부산일보사 모바일국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변화무쌍한 환경 속에, 지금 내놓을 수 있는 해답은 지역과 독창성이었습니다. 〈부산일보〉에서만 접할 수 있는 지역 콘텐츠에 집중하기로 한 것입니다. 올해 4월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세븐비치 어싱 챌린지’를 시작한 것도 이런 차원이었습니다. 시민 건강을 증진한다는 본래 목표에 더해, 지난 6월 광안리에서 4000명이 참여한 행사를 마무리 지으며 부산 관광의 새로운 콘텐츠로 내세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얻었습니다. 오는 28일 다대포해수욕장에선 1만 명이 참여하는 전국 최대 규모 맨발걷기 행사를 엽니다.
맨발걷기 자체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부산일보〉의 콘텐츠가 되었다는 점 또한 체감합니다. 맨발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하는 문화가 아직도 팽배하지만,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땅을 함께 밟는 순간 소통을 막는 장벽도 같이 허물어진다고 수많은 참가자가 증언합니다. 주로 장년층 이상이던 기존 맨발걷기 애호 연령대가 ‘세븐비치 어싱 챌린지’ 덕분에 어린이와 청년층까지 넓어지는 점도 세대 연결에 기여하는 점일 것입니다. 다대포 행사까지 끝나면 연인원 1만 6000명이 맨발걷기를 매개로 소통과 연결의 장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밖에 영화를 함께 관람하고 이야기 나누는 ‘부일시네마’, 내가 키우는 반려동물을 사진과 영상으로 자랑하고 응원 투표도 하는 ‘댕냥이 콘테스트’, 부산 연고 프로야구단 롯데 자이언츠의 가을 야구를 응원하는 ‘으라차차 롯데 자이언츠 응원 이벤트’ 등 부산일보사 모바일국은 시민이 관심 가질 만한 소재로 끊임없이 소통의 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10월에는 새로운 이벤트로 연결 고리를 또 하나 늘립니다.
이런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부산닷컴’ 회원으로 가입하는 이용자가 늘면 부산닷컴이 독자적인 콘텐츠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토대도 마련됩니다. 지난 10개월간 진행한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부산닷컴 회원은 약 67% 증가했습니다. 매일 아침 뉴스레터를 받아보는 구독자도 그만큼 늘었습니다. 부울경 지역민의 삶과 정서에 천착하는 지역 콘텐츠 플랫폼이 올곧게 자리 잡는다면 지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이용자의 한정된 관심을 얼마나 오래 잡아두느냐에 인터넷 서비스의 성패가 달린 ‘주목경제’ 시대, 말초적인 관심 끌기가 아니라 유익한 정보와 세대·계층 간 소통이 활발한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일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타전에 기꺼이 시간과 마음을 내어줄 당신을 기다립니다.
2024-09-0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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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티메프 사태'와 댓글팀의 닮은 점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염천, 서울 티몬 본사 앞에 온종일 장사진을 친 소비자들의 행렬이 TV 화면에 비쳤을 때 무척 낯설었습니다. 휴대폰 하나로 생활에 불가능이 없는 시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의 파장이 만만치 않습니다. 국내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시장 4·5위 업체인 ‘티메프’가 판매자에게 대금 정산을 제때 하지 못한 데 이어 소비자 결제액에 대한 취소·환불까지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진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사태의 근원은 무리한 사업 확장이었습니다. 인터파크 사내 벤처에서 시작한 지마켓을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킨 뒤 2009년 이베이에 5500억 원에 매각해 대박을 터뜨린 구영배 대표. 그는 2010년 이베이와 합작회사 큐텐을 설립하고, 2019년 큐텐의 물류자회사 큐익스프레스 한국법인을 설립한 뒤부터 또 한 번 나스닥 상장 꿈을 키우며 본격적인 몸집 불리기에 나섭니다.
적자가 누적된 티몬, 위메프를 주식 교환 형태로 인수한 데 이어, 인터파크커머스, 미국 쇼핑몰 위시를 사들입니다. AK몰은 빚을 떠안는 조건으로 단돈 5억 원에 인수하기도 합니다. 이들 쇼핑몰의 물류 일감을 큐익스프레스에 몰아 성장시킨 뒤 나스닥에 상장하려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박 꿈에는 잘못이 없지만 방법이 문제였습니다. 기업 인수 자금 확보를 위해 상품권 할인 판매와 정산 주기 연장 같은 방법이 동원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티몬은 통상 3%인 할인율의 배 이상인 7.5%로 상품권을 팔았고,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다른 상품권과 달리 한 달 뒤에야 쓸 수 있게 했습니다. 또 정산 주기는 업계에서 대체로 2~3일 내, 가장 긴 쿠팡도 40~50일인데, ‘티메프’는 2개월 이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매 취소나 환불에 대비해 일정 정산 기간을 둘 수 있지만, 두 달 이상 고객 돈을 플랫폼 업체가 내 돈처럼 활용하는 데 대해 규제는 없었습니다.
위메프에서 시작된 정산 지연이 티몬까지 퍼져 유동성 위기가 우려되자 온라인 결제 대행업체들은 지난 24일부터 거래를 중단했습니다. 이제는 소비자들의 결제, 환불까지 불가능해진 것입니다. 지난주 소비자들이 티몬 본사 앞으로 몰려갔던 이유입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의 대금 정산 피해를 구제하려고 정부가 5600억 원을 긴급 수혈한다고 밝혔지만, 일각에선 피해액이 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기도 합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앞날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지 걱정입니다.
앞서 정치권에서는 ‘댓글팀’ 논란이 벌어졌지요.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올 1월 당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명품 가방 수수 논란에 대한 사과 문자를 여러 차례 보냈는데, 그 중 “제가 댓글팀을 활용하여 위원장님과 주변에 대한 비방을 시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라는 부분이 발단이었습니다. 당대표 선거에 한 전 위원장이 출마하면서 6개월 전 김 여사 문자가 소환된 건데요. 문자를 읽고 답하지 않았다는 ‘읽씹’ 논란과 함께 댓글팀 이슈가 여야를 달군 것입니다.
우선 여권 내에서 장예찬 전 최고위원이 한 후보의 법무부 장관 시절 여론 조성팀이 운영됐고, 자신도 그 팀에 동참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양문석 의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취임 직후 활동하기 시작한 여론 조작 의심 계정과 댓글을 발견했다고 주장합니다. 조국혁신당 조국 의원은 댓글팀 의혹을 ‘한동훈 특검법’ 수사 대상에 추가하겠다고 밝힙니다. 논란에도 당대표에 무난히 당선된 한 후보는 “(댓글팀 논란은) 시민의 자발적 의사 표현을 모욕하는 명예 훼손 행위이며, 자신은 어떠한 형태의 여론 조성 작업에도 관여한 바 없다”고 반박합니다.
민주주의를 움직이는 힘은 여론입니다. 엄밀한 시스템과 관리 아래 시행하는 여론조사도 있지만, 시중 여론의 가늠자로 포털 댓글을 살피는 경우가 많다 보니 우리 정치에서는 잊힐 만하면 댓글팀 논란이 반복됩니다. 하지만 대다수 시민도 이제는 댓글에 크게 영향받지 않습니다. 여러 댓글팀 사례를 경험한 데다, 정보 출처가 유튜브 등으로 확장됐기 때문입니다.
경제도 정치도 신뢰에 기반하지 않고는 바로 설 수 없습니다. 무리한 사업 확장, 더 많은 지지층을 확보한 것처럼 부풀리고자 하는 욕심에 우리 사회의 근간인 신뢰가 무너집니다. 2500년 전 춘추시대나 디지털 세상이나, 신뢰가 생명입니다.
2024-07-3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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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다극화 세계에 미국·러시아 공감?
국제무대에서 한동안 관심 밖이던 한반도 기류가 이른 무더위처럼 뜨거워졌습니다.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칠 변화가 모바일 세상에서도 느껴집니다. 지난 19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24년 만에 북한을 찾아 동맹에 준하는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맺은 이후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협정을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고, 국가안보실장은 “러시아가 북한에 정밀 무기를 지원하면, 우리도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보낼 수 있다”고 반발했습니다.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론까지 나옵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군사 지원은 북이 침공당하는 경우로 한정된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습니다. 대북 전단, 대남 오물 풍선, 대북 확성기 방송, 비무장지대 대전차 방벽 등 긴장을 높여가던 터라, 한반도가 급속히 대치 상황으로 내닫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닐 수 있습니다. 진실에 접근하려면 시야를 한반도 주변 4강(미일중러)까지 넓혀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 국력을 소모하게 하려던 미국의 애초 목적과 정반대 결과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세계은행(WB)은 2022년 구매력(PPP) 기준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이 유럽 1위, 세계 5위라고 발표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 러시아의 올해 GDP 성장률 예상치를 2.6%에서 3.2%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유로 지역 0.7%, 미국 2.4%보다 높습니다.
지난 18일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실린 기고문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위한 외교정책’은 이런 현실을 인정합니다. 미국 오바마 전 대통령 연설비서관이던 벤 로즈는 이 글에서 “미국이 주도하려 했던 규칙 기반 질서는 무너졌고, 달라진 세계에 맞춰 리더십 개념을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미국 외교가 보편적 가치에 따라 추진된다는 도덕적 근거는 사라졌고, 달러 패권 무기화는 전 세계에 피로감을 초래했다고 그는 짚었습니다. 벤 로즈가 말하는 ‘달라져야 할 미국의 리더십’은 유일 패권국이 아니라, 다자주의·다극화의 한 축으로 물러서는 것입니다. 푸틴 대통령도 지난달 중국 시진핑 주석과 만난 뒤 다극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보다 보수적이고 기득권을 대변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과 푸틴이 같은 미래상을 그린다는 게 매우 이채롭습니다. 러시아는 중국이 미국 패권을 대체하거나 미국과 양극을 대표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미국도 대중 패권 경쟁에 엄청난 부담을 홀로 계속 지는 것보다는 과거의 적과도 연대하며 ‘우아한 후퇴’를 택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미 vs 중러’라는 기존 냉전적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변화입니다.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유리한 선거 판세를 위해 결국 북한과의 종전 선언과 수교 협상에 나설 것이란 희망 섞인 분석까지 나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더라도 북한과 종전 선언 직전까지 간 그였던 만큼, 관계 개선 기조엔 변화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합니다.
푸틴 방북에 대한 중국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우선은 북한에 대한 장악력이 약해지게 되었고, 푸틴이 이번에 연이어 방문한 북한과 베트남이 중국의 태평양 진출로를 접한 곳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러시아가 중국의 팽창주의를 견제하면서 미국에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궁지에 몰린 중국은 북한과 갈등을 고조시켜 온 한국 정부와 9년 만에 외교·국방부 2+2 협의를 재개하면서 남쪽을 통한 활로 모색에 나선 형국입니다.
미국과 궤를 같이하는 일본도 북한에 공을 들입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 4월 미일 정상회담 직후 북한과 정상회담을 위한 협의를 계속 진행하겠다고 말했고, 바이든 대통령도 북일 정상회담을 환영했습니다.
20세기 냉전의 산물인 마지막 분단국가가 평화롭게 교류함으로써 세계를 공동 번영의 시대로 이끌어 가자는 데 반대할 나라는 없습니다. 일극 패권의 국제사회 피로감과 퇴행을 해소할 실질적 기회이기도 합니다.
다극화 세계를 상상하다 보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했던 ‘동북아균형자론’이 떠오릅니다. “깜냥도 안 되는데 무슨 균형자냐”던 비판은 아직도 유효할까요? 20년 사이 우리 경제는 세계 10위권, 국방력은 5위권으로 강력해졌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아니 우리 민족에게 정말 소중한 기회가 왔습니다. 남북이 소통해 동아시아로부터 세계를 평화의 길로 인도할 비전은 이미 2년 전 ‘담대한 구상’으로 밝혔습니다. 한국전쟁 74주년과 호국보훈의 달 끄트머리를 지나며 실낱같은 희망 한 줄기 품어 봅니다.
이호진 모바일국장 jiny@busan.com
2024-06-2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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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라인을 틱톡처럼?
바야흐로 플랫폼 전쟁 시대입니다. 실생활 곳곳에 파고든 갖가지 모바일 플랫폼에서 수많은 데이터가 쌓이고, 인공지능(AI)은 이를 학습해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습니다. 생성형 AI를 다양한 서비스에 접목하려는 개발업체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런 데이터입니다.
네이버 라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압박 관련 뉴스가 연일 관심을 끌면서, 틱톡과 본사인 중국의 관계를 끊게 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연상되었습니다. 적대국 사이에서나 일어날 만한 일이 왜 군사 정보까지 교류하는 이웃 나라에서 벌어지는 걸까요.
지난 4월 23일 미국 상원은 270일 내(1회 90일 연장 가능) 틱톡 지분을 미국 기업에 매각하도록 하고, 기간 내 매각하지 않으면 미국 내 서비스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틱톡은 중국 기업인 바이트댄스가 개발한 숏폼 영상 공유 플랫폼입니다. 미국 내 틱톡 이용자 수는 약 1억 7000만 명에 이릅니다.
미국 정치권에선 2019년부터 틱톡에 남는 데이터가 중국 정부에 제공되면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논리로 틱톡을 미국 기업에 매각하도록 압박했고, 5년 만에 법안 통과까지 마무리한 것입니다. 바이트댄스 측은 지난 7일 연방순회항소법원에 법안의 시행 중단을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중국도 지난 3월 미 하원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자, 외교부 논평을 통해 “공평한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자 괴롭힘을 선택한 것”, “어지럽혀진 것은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고, 훼손된 것은 투자 환경에 대한 국제 투자자의 자신감이며, 파괴된 것은 정상적인 국제 경제·무역 질서”라고 비판했습니다.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절반씩 지분을 투자해 만든 A홀딩스가 대주주(지분율 64.5%)인 라인야후는 일본 메신저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태국과 대만, 인도네시아까지 진출해 아시아권 월간 활성 이용자가 1억 8000만 명에 이르는 인기 메신저입니다. 기술과 서비스 노하우 대부분을 네이버가 담당한, 성공적인 ‘K-플랫폼’ 진출 사례입니다. 일본 정부의 압박은 지난해 9월 51만 건의 이용자 정보가 유출된 사건이 빌미가 됐습니다. 서버는 일본에 뒀지만, 내부 사원 인증은 한국의 네이버 클라우드를 이용했는데, 해커가 네이버 클라우드를 통해 라인 이용자 정보를 가져갔다고 보는 것입니다. 3월 1차 행정지도 때는 사원 인증을 포함한 모든 사이버 보안 업무를 일본 내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분기별로 보고서를 받아보고 이행 조치를 점검한다던 일본 총무성은 한 달 뒤인 4월 2차 행정지도에 곧바로 나서 궁극적인 보안 강화 대책으로 모회사인 네이버와의 지분 정리(‘자본 관계 재검토’)까지 요구했습니다.
엄격한 보안 규제 강화로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지분 매각까지 압박하는 것은 미국이 틱톡 매각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을 적대국으로 대할 때나 가능한 일입니다. 만일 일본 요구대로 지분을 판다면 아시아권 라인 서비스의 주도권도 네이버는 잃을 우려가 큽니다. 플랫폼 하나를 만들고 서비스를 정착시키는 일, 그 서비스를 해외에서도 성공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감안하면 단순한 개별 기업의 문제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반대로 라인 지분 매입에 성공한다면 일본은 낙후된 자국 IT산업을 일으킬 새로운 계기를 손쉽게 마련하게 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플랫폼 기업 네이버가 해외 주요 시장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윤석열 정부는 명확한 입장을 갖고 신속히 대응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표방하는 대통령, ‘기업과 시장의 자유’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대통령실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4월 16일 2차 행정지도 이후 한국 정부의 첫 입장이 나온 것은 11일 뒤인 4월 27일 외교부였습니다. 이후 5월 13일 대통령실 입장 발표까지 대부분이 ‘우리 기업에 차별적 조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 입장이거나 ‘네이버의 진실하고 구체적 입장을 기대한다’는 식의 네이버를 향한 요구였습니다.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 조치가 부당하다는 항의 표시는 없었습니다. 국민 여론이 들끓자 지난 14일에야 대통령실은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어떠한 차별적 조치나 기업 의사에 반하는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면밀하고 강력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힙니다.
필요하면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가 부족해도 일본과 관계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경제를 안보에 종속시키는 신냉전 프레임에 정상적인 국제 무역 질서가 흐트러지는 시대, 자국 기업의 재산권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까지 처한다면 국민들은 심각한 의문에 빠질 것입니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jiny@busan.com
2024-05-1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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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정치인의 SNS
22대 총선이 불과 20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선거가 임박한 지난주 두 거대 정당이 지역구 후보 3명의 공천을 취소했습니다. 민심의 요동을 두 정당이 과거보다 훨씬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그만큼 치열한 승부가 펼쳐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공천이 취소된 후보 3명 모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겨진 발언이 주홍글씨처럼 남아 있다가 링에 오르려는 후보들의 발목을 잡고 말았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에 북한이 개입했다고 자신의 유튜브에서 발언한 국민의힘 대구 중·남구 도태우 후보, ‘난교’ 발언 외에도 페이스북에 동물 병원을 폭파하고 싶다거나 서울과 부산의 시민 의식 수준을 비하하는 글을 남긴 국민의힘 부산 수영구 장예찬 후보, 발목 지뢰 밟은 사람에게 목발을 경품으로 준다는 발언을 자신의 유튜브에서 했던 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북을 정봉주 후보.
유권자로서는 ‘거대 정당 공관위가 후보들의 과거 SNS 발언을 검증하는 것은 기본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본선에서 치열하게 득표전을 벌이다 보면 서로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 게 분명하니까요.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법 위반 이외에 후보자의 디지털 족적도 엄밀하게 살펴보는 것이 유권자에 대한 도리이자 자당 후보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일 텐데, 무성의든 무능이든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언론은 이번 공천 취소 사례를 대부분 ‘막말 파문’으로 보도했습니다. 생각은 그렇지 않은데 그저 실수로 잘못 뱉은 말일 뿐일까요?
국민의힘 공관위에 따르면 도태우 후보는 2차례 사과를 하고도 추가로 문제성 발언을 했고 공천 취소에 불복해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습니다. 장예찬 후보도 공천 취소 결정 1주일 전까지 자신의 SNS를 뒤져보라며 자신만만해했고, 역시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과거 발언이 드러난 이후 이들의 태도에서 실수를 인정하고 근신하는 모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정봉주 후보의 경우도 우리 장병이 피해를 당한 불행한 사건을 농담 소재로 삼은 것은 매우 부적절했습니다.
과거에도 인사청문회나 선거에서 SNS에 남겨진 말이 낙마와 패배, 탈락의 빌미가 된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공직 후보자의 SNS는 그 자체가 그의 세계관과 됨됨이를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해왔습니다.
말은 한 사람이 역사와 사회, 인간에 대해 갖고 있는 인식 체계의 산물입니다.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말을 넘어, 국민의 마음을 얻어 정치인이 되려는 이의 말은 그 무게가 더합니다.
‘권위주의자의 실패는 힘을 잘못 사용하는 데서 비롯되고, 민주주의자의 실패는 말을 잘못 사용하는 데서 비롯된다. 민주주의는 말의 힘과 설득의 방법이 우선인 체제이자 시민의 적극적 동의를 기반으로 삼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이자 정치발전소 학교장으로 일하는 박상훈 박사는 저서 〈정치적 말의 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민 동의를 얻는 방법도, 동료 정치인과 정부 기관을 설득하는 방법도 모두 말과 글에 기반하는 것이 민주주의인 것입니다.
현대 민주주의는 전반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기계적 균형이라도 지키는 전통 미디어보다, 봤던 뉴스(영상)와 비슷한 콘텐츠만 계속 띄워주는 알고리즘이 거의 모든 SNS와 플랫폼에 장착되었습니다. 진영 논리가 극심해지는 이면에 이런 기술이 작동하고, 전반적인 정치 혐오와 무관심이 커지면서 투표율이 낮아지자, 충성도 높은 소수의 지지층만 모아도 당선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올 11월 복수전을 벼르는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과거 성공시켰던 전략입니다.
정치가 국민의 삶과 나라의 안녕, 경제의 성쇠를 결정한다는 것을 체감한 덕분인지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들어 투표율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2000년(57.2%), 2004년(60.6%) 상승하던 투표율은 2008년(46.1%) 급감한 뒤 다시 서서히 올라 2020년에는 66.2%를 기록했습니다. 해외 일부 사례와 달리 국내에서는 극성 지지층만 모아서는 이기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SNS는 개인의 생각을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그만큼 후과도 큽니다. 어디론가 퍼 날라진 글을 모두 찾아내 지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민의의 대변자를 자처한다면 홀로 있을 때조차 전전긍긍하며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다는 <중용>의 군자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SNS에 남기는 글이 건전한 국민의 상식에 부합하는지 정도는 스스로 점검해야 하지 않을까요. 범부가 누리는 표현의 자유에도 언제나 책임은 따르니 말입니다.
모바일국장 jiny@busan.com
2024-03-1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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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정보 민주화와 신냉전
열흘 뒤 24일이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2년이 됩니다. 지난 2년 우리 삶은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곡물과 에너지에서 비롯된 공급망 변화는 팬데믹 시기 세계 각국이 정부 재정 지출을 늘린 영향과 맞물려 살인적인 물가 상승으로 다가왔습니다. 치솟는 물가를 잡으려는 고금리 기조가 이어져 빚진 서민들이 쓸 돈은 줄었습니다. 소득 대부분을 생활비로 소비할 수밖에 없는 서민층의 늘어난 이자 부담은 고스란히 자영업자들의 비명으로 이어지고, 지역 경제에도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지구촌 시대, 머나먼 유럽 한가운데에서 벌어진 국지전의 여파가 이렇게 우리 생활에 곧바로 영향을 미칩니다.
설 연휴 중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영상이 있습니다.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과 미국 방송사 폭스 출신 언론인 터커 칼슨의 단독 인터뷰인데, 개전 2년을 맞는 전쟁 당사국의 지도자 인터뷰라는 점을 비롯해 정보 유통 플랫폼 변화까지 여러 면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습니다.
우리가 국내 언론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외신 뉴스는 미국과 유럽, 일본 언론에서 제공됩니다. ‘신냉전’이 공공연한 현실이고 보면 과거 제1세계 언론이 주된 창구입니다. 러시아나 중국 등 제2세계나 인도를 비롯한 서·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 등 제3세계 신흥국 소식도 해당 국가 언론을 직접 접하기보다는 제1세계 언론의 필터를 거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골치 아파하는 전쟁 당사자인 푸틴을, 미국 언론인이 인터뷰해, 기존 방송 채널이 아닌 독립적인 플랫폼으로 유통한 것은 주목을 끌 만했습니다. 지난 9일 유튜브에 올라온 이 영상은 13일 현재 조회수 1550만 건, 댓글 27만 건을 넘겼습니다. 지루한 인터뷰 영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기록입니다. 뉴스거리를 제공하는 취재원(source)과 뉴스 수용자가 곧바로 만나는 장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튜브 등에서 활발히 펼쳐져 왔는데, 이런 뉴스 유통의 전통 미디어 대체 속도가 더 빨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푸틴 인터뷰에 대한 세계인의 높은 관심이 보여주는 듯합니다.
장장 2시간이 넘는 지루한 인터뷰 영상에 사람들은 왜 주목했을까요?
걸핏하면 사망설과 대역설이 떠도는 푸틴이 긴 인터뷰에 대본 없이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은 우리가 그에 대해 갖고 있던 인상과 이미지가 왜곡되었을 수 있다는 의구심을 갖게 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러시아의 소행이라고 믿고 있는 러시아~독일 해저 천연가스관(노르드스트림) 폭발 사고가 사실은 미국의 소행이었다는 그의 말도 단순한 주장으로 치부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1년 전 미국 탐사보도 언론인 세이무어 허쉬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미국의 노르드스트림 폭파 작전 내용을 아는 익명의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미 해군 잠수부들이 폭발 3개월 전 가스관에 원격 작동 폭탄을 설치했다”고 작전 내용을 매우 상세히 보도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사건 발생 1년 반이 되도록 범인을 지목하지 못하자 서방의 진상 조사 의지도 의심받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에서 접하지 못한 정보, 국제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낯선 제2세계 국가 지도자의 언행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인터뷰 영상의 조회수를 끌어 올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푸틴의 근원적 책임은 큽니다. 바그너 그룹 수장 프리고진 암살설, 반체제 인사 탄압 등 해명할 일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벌어지는 데에는 국제 사회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갈등·연대의 함수가 작용합니다. 미국을 비롯한 제1세계 언론의 렌즈를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봐서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이번 푸틴 인터뷰를 통해 서방 시민들도 조금은 느꼈을지 모릅니다.
지난 연말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미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목표를 ‘완전한 승리’에서 ‘협상 우위 확보’로 낮춰 잡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전황이 유리하지 않지만 올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까지는 전쟁을 멈출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우크라이나를 간접 지원한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패전의 멍에를 지는 것보다는 현상 유지를 택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전장에서 또 1년 가까이 아까운 청춘들이 목숨을 잃게 생겼습니다.
21세기 정보통신기술(ICT) 혁명은 개발도상국까지 퍼졌는데, 세계 정세는 패권국의 이익에 따라 양분·삼분되는 현실에서 현기증을 느낍니다. 희망이 하나 있다면 냉전 장벽을 쌓아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의 퇴행을 막는 데 가감 없는 정보의 차별 없는 유통이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전통 언론의 반성과 혁신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일 테지요.
2024-02-1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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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AI 기상도 보여주는 CES
‘All Together, All One.’
9일(현지 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소비자가전전시회(CES) 2024’의 슬로건입니다. 주관 단체인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는 이 슬로건에 대해 “모든 기술과 산업이 힘을 모아 세계가 직면한 큰 과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자는 의미”라고 소개합니다. CES는 익히 알려진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입니다. 특히 올해는 팬데믹 이후 주춤했던 중국 기업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미국과 중국이 호각지세를 보이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분위기입니다. 참가 기업 수로 보면 미국(1201개)과 중국(1115개)이 비슷하고, 그다음이 역대 최대 규모로 참가한 한국(784개)입니다. 더 뿌듯한 소식은 지난 7일까지 CTA로부터 ‘CES 2024 혁신상’ 수상 대상으로 선정된 313개 기업 379개 제품 가운데 한국이 기업은 42.8%(134개), 제품은 41.7%(158개)나 차지했다는 것입니다. 이 중 벤처·창업기업이 116곳이나 된다고 하니 더욱 반갑습니다. 부산시도 올해 처음으로 행사장 내에 ‘부산관’을 열어 스마트시티 시범도시인 에코델타시티를 알리고, 지역 강소기업들도 다수 참여해 기술 홍보와 동향 파악에 나선다고 합니다.
올해 CES의 화두는 모두의 예상대로 인공지능(AI)입니다. ‘오픈AI’의 챗GPT가 일반인에게 공개되기 시작한 ‘AI혁명 원년’ 2023년을 지나며 관련 업계는 자신들의 제품에 AI를 녹여 넣는 데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이번 CES에서는 AI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버나 클라우드에 접속하지 않고 기기 자체에 탑재한 AI시스템을 이용하는 ‘온디바이스 AI’가 대거 선보인다고 합니다. 다음 주 삼성전자가 갤럭시S24에 온디바이스 AI를 세계 최초로 장착해 출시한다니, 일상과 AI의 접점은 비약적으로 넓어질 전망입니다.
챗GPT의 파괴력은 일반 시민이 일상적인 대화로 AI의 유용성을 경험하게 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AI가 실험실 바깥으로 나온 데에는 인간이 구사하는 자연어를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지식과 정보를 학습한 초거대언어모델(LLM) 등장이 있었고, 오픈AI,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지금도 엄청난 투자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챗GPT 3.5의 매개변수(파라미터) 수가 1750억 개였는데, 1년도 되지 않아 내놓은 4.0 버전에서는 10배인 1조 7000억 개에 이른 것으로 업계는 추정합니다.
기술 수준도 수준이지만, 규모의 경제를 따라잡기 어려운 후발 주자들이 택한 전략은 특정 분야에 특화한 AI입니다. 의료, 법률, 주식 등 특정 분야에 한정된 정보만 충분히 학습시켜 해당 분야에서는 충분히 전문적인 조언을 내놓고, 투자 비용은 훨씬 절감할 수 있는 소규모언어모델(sLLM) 방식입니다. 국내 업계에서도 작게는 60억 개의 파라미터부터 학습시키는 sLLM을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어떤 전문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980년대까지 각국에서 소규모 핵 개발에 나섰던 상황과 sLLM 개발 열풍이 비슷하다고 지적합니다. 적정 수준만 투자해, 옮기기 쉽고 관리하기도 편한 소형 핵무기를 만드는 경쟁이 일어났던 일과 sLLM 개발 경쟁이 닮았다는 겁니다.
물리학과 전쟁의 기묘한 인연으로 태어난 핵무기를 평화적으로 이용하자며 방향을 돌린 것이 발전산업이었습니다. 에너지 생산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지만, 한 번 불붙으면 무엇으로도 끌 수 없고, 폐기물을 영원히 안전하게 처리할 방법도 찾지 못한 것이 핵입니다. AI도 결국, 그 기술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인류의 편리와 이익을 넘어 너무 급속히 발전하는 AI 기술이 일자리에서부터 인간을 대체하고, 언젠가는 인류를 지배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도 무리는 아닙니다. 기술 공유를 모토로 출범한 오픈AI를 이끄는 CEO 자리에서 해고됐다 돌아온 샘 올트먼이 인간 지능을 뛰어넘는 일반인공지능(AGI) 개발을 목표로 진행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올해 내놓을 거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AI가 인간과 같거나 그 수준을 넘어서는 ‘특이점’이 미래학자 커즈와일의 예상인 2045년보다 20년 이상 빨라지는 셈입니다. CES만큼이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기술, 인류의 불평등 해소에 기여하는 기술의 역할에 관한 진지한 공론을 모으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꼭 1년 전 미국핵과학자회보는 ‘지구 운명의 날 시계’가 자정까지 90초밖에 남지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이어 중동 화약고에도 불이 붙은 올해는 남은 시간이 더 줄어들지 않았을까요. 올해 CES 슬로건처럼 지구가 닥친 위기 앞에 모두가 하나가 되어 머리를 맞댈 기회는 지금 이 순간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2024-01-0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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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진의 디지털 광장] 웹 시장에서 더 중요한 '신뢰'
올해 마지막 달, 남은 달력 한 장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지는 나날입니다. 2년 가까이 2030세계박람회 유치를 응원했던 부울경 시민들의 마음은 이미 넘겨진 달력만큼이나 무겁기만 합니다.
전문 인력과 값비싼 장비를 보유한 미디어 기업이 정보소스를 독점하며 수용자에게 뉴스를 일방적으로 공급하던 ‘매스미디어 시대’도 이미 저물고 있습니다. 온종일 우리 손에서 떠날 줄 모르는 스마트폰이 ‘1인 미디어 시대’를 열었고, 정보의 흐름은 쌍방향에서 시작해 매우 다양한 창작자와 수용자 관계로 얽히고설킵니다. 거의 모든 데이터가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를 중심으로 유통·축적됩니다.
지난해 11월 30일 세상에 처음 선보인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대화형 서비스, 챗GPT는 1년 만에 세상에 큰 충격을 몰고 왔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장에 이은 제3의 혁명이라는 평가까지 나옵니다. 영상을 만들고, 자막과 내레이션을 입히는 일 전반에 생성형 AI가 적용되면서 콘텐츠 제작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줄이고 품질은 높일 수 있게 됐습니다. 콘텐츠를 만들어 영상 플랫폼으로 유통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개인을 크리에이터라 부르는데, 그들이 만드는 세계 시장 규모(325조 원)가 지난해 이미 세계 극장가 매출(32.8조 원)의 10배에 이르렀을 정도입니다. 이 시장 규모는 매년 10%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물론 급속히 발전하는 기술의 부작용도 있습니다.
올 5월 미국 국방부 건물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진과 글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퍼져 언론까지 인용 보도하면서, 미국 증시가 출렁인 사례가 있습니다. 폭발 후 연기가 피어오르는 사진과 펜타곤을 합성한 사진이었는데 오전 9시30분 개장하는 미국 증시의 S&P 500지수는 0.3%까지 떨어졌다가 버지니아주 소방당국이 ‘사실무근’을 확인해주고서야 회복했습니다. 수갑을 찬 채 경찰에 체포되는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 사진, 러시아에 항복 선언하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동영상처럼 AI가 생성한 콘텐츠에 잠시나마 속았던 시민들로서는 무엇이 진실이고,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는 형국입니다.
비대면 거래와 화상·음성·문자를 통한 소통이 일상화된 시대입니다. 진위를 의심할 여지없는 대면 소통이 대부분이던 과거에 비해 신뢰 확보는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뉴스를 다루는 미디어로서는 사실 확인을 엄밀하게 거쳐 정제된 콘텐츠를 제공해야 합니다. ‘받아쓰기·따옴표 저널리즘’의 편리함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콘텐츠 제작·유통에 스며들기 시작한 AI 기술을 어떻게, 어느 수준으로 활용할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내부 지침을 제정·시행해야 합니다. 아직은 국내 언론 가운데 AI 관련 지침을 제정한 곳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콘텐츠 이용자도 SNS나 특정 매체의 보도를 맹신하기보다는 다른 매체나 소식통의 발표·보도를 비교해가며 소화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급류에 휩쓸려 떠밀려가지 않으려면 무엇이든 붙잡고 팔다리를 힘껏 저어야 하듯, 정보 홍수 시대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가려는 시민에게는 비교·분석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2030세계박람회 유치 추진 과정을 보도한 국내 대다수 언론의 태도는 시민 신뢰를 얻기에 부족했다는 점을 뉘우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표 결과를 놓고 보면, 추진 주체인 대통령실·정부·부산시 관계자의 엄밀한 분석 없는, 희망 가득한 발언을 그대로 중계하는 데 그쳤던 것 아닌지 돌아봅니다. 우리 언론이 중립적인 해외 언론이나 경쟁국 동향을 냉철하게 교차 점검했었다면 어땠을까요. 추진 주체 측을 각성시켜 최소한 ‘졌잘싸’는 되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언론보도를 믿은 시민들에게 이런 참담한 낭패감을 안기진 않았을 것 아닌가 반성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내년 총선을 앞두고 또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의 발언이 큰 따옴표에 포장돼 여론 시장을 또 흩트릴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믿음 없이는 나라도 사회도 제대로 설 수 없다는 옛말처럼, 디지털 세상에서나 현실 세계에서나 신뢰는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세계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정치도 자기 진영만 바라보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런 풍토에서는 혐오와 배제를 내세워 자기편만 결집시키는 진영정치가 득세할 우려가 큽니다.
약 4개월 뒤면 총선입니다. 신뢰도 최하위의 국회를 바꾸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손해를 감수하며 포용과 화해를 앞세우고 갈등 조정에 나서는 정치, 국민과의 약속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정치는 결국 현명한 국민의 선택으로만 등장할 수 있습니다. 쉬운 욕지거리 대신, 보기 싫은 뉴스도 찾아 읽어가며 귀찮은 비교·분석을 기꺼이 해내는 여러분의 한 표로 말입니다.
2023-12-05 [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