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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우려는 저쪽'… 대장동 외압 실체적 진실 규명해야
사의를 표명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현 정권이 검찰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면서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검찰이 이재명 대통령이 관련된 대장동 사건에 대해 항소 포기 결정을 내린 것도 외압을 의식한 정무적 결정이었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풀이되면서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노 대행의 작심 발언을 둘러싸고 여야는 날선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국정조사와 특검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며 여권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대통령실이나 법무부가 실제로 외압을 행사했다면 이것은 중차대한 문제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외압 의혹에 대한 진실 규명이 시급하다.
노 대행은 지난 12일 기자들과 만나 “제가 한 일이 나름대로 검찰을 지키기 위해 한 행동”이라며 대장동 항소 포기 결정에 조직을 위한 정무적 판단이 작용했음을 시사했다. 그는 이어 “전 정권이 기소해놨던 게 전부 다 현 정권 문제가 돼버리고, 현 검찰청에서는 저쪽 요구사항을 받아주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저쪽에서 지우려고 하고 우리는 지울 수 없는 상황”이라며 “수시로 많이 부대껴왔다. 조율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고도 말했다. 말의 맥락을 따져볼 때 ‘저쪽’은 대통령실과 법무부를, ‘지우려는 것’은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인 것으로 각각 해석된다. 노 대행은 국민 앞에 나와 외압 등 자신이 겪은 일을 밝히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이 사태의 본질은 검찰이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르게 된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여당은 노 대행이 외압을 시사한 데 대해 격앙된 반응이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있지도 않는 외압의 가능성을 흘렸다”며 노 대행을 비난했다. 이어 “이 분 입장에서는 변명을 하는 것인데 자신이 결정을 하고, 여기저기에 책임을 미루는 비겁한 모습”이라고도 했다. 반면 외압 의혹 공세를 펼치고 있는 국힘 장동혁 대표는 “항소 포기 정점에 이재명 대통령이 있다”며 ‘탄핵’을 언급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파장은 더 커질 전망이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외압을 행사한 당사자에게 상응하는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노 대행 사퇴가 확정되면 검찰은 초유의 주요 지휘부 공백 사태를 맞는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은 항소 포기 결정에 집단 반발하는 검사들에 대해 “항명이자 명백한 국기 문란 사건”이라며 무더기 징계 운운하며 ‘진압’에 나서고 있다. 검사 파면을 위한 법 개정까지 언급한 상황이다. 다른 의견을 낸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겠다는 겁박과 다르지 않다. 대통령실도 노 대행 사의 표명에 대해 법무부 장관의 면직안이 제청되면 수리하겠다고 밝혔다. 벌써부터 ‘꼬리 자르기’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 이 사태의 유일한 해결책은 외압 의혹의 실체를 소상하게 밝혀 국민이 납득토록 하는 것뿐이다. 대통령실과 여권의 결단을 촉구한다.
2025-11-14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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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지역의사제 도입하고 지역 대학병원은 '빅5' 수준으로
붕괴 위기에 놓인 지역 필수의료를 강화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응급 대책이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응급 대책의 정체는 바로 지역의사제다. 응급실 뺑뺑이를 비롯해 필수의료 공백 우려가 심화하는 지역 의료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지역의사제 정책 도입을 공식화했다. 지역의사제는 의사 면허를 딴 뒤 일정 기간 특정 지역 의료기관에서 복무하는 것을 조건으로 대학 입학 전형에서 학생을 별도 선발하는 제도다. 이와 관련한 정부 법안은 모두 3건이 발의돼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까지 나서 정책 도입을 서두르는 모양새여서 관련 준비 작업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남은 것은 정책 도입에 반발하는 의료계 설득 문제다.
현재 지역의사제 도입과 관련해 국회에 발의돼 있는 법안은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 등 여야 의원 발의 법안 2건과 보건복지부가 발의한 정부 발의 법안 등 모두 3건이다. 의대 입학생 중 일정 비율을 별도 정원으로 선발해 등록금 등 학비를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 법안의 주요 내용이다. 이렇게 선발된 지역의사는 의사 면허 취득 후 지역의료원이나 보건소 등 공공의료기관을 위주로 일정 기간 의무 복무를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주거와 경력개발, 직무교육 지원을 비롯해 지역의사 의무 근무 완료 시 해당 의료기관 우선 채용이나 해외연수 우선 선발 등의 각종 인센티브도 추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의사 인력 수요 추계 연구 보고서들은 2050년께 동남권 모든 권역에서 의사 부족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결과를 공통적으로 내놓고 있다. 이 같은 현실에서 지역의사제는 단순 의대 증원만으로는 역부족인 지역 필수의료 공백 해결 방안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의료계의 반발이다. 의료계는 장기 의무복무 강제는 직업 선택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의무복무 직후 수도권으로 대량 이탈 가능성이 크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에 정부는 국립대병원 육성 소관 부처를 교육부에서 복지부로 이관하고 지원을 대폭 늘려 지역 대학병원을 ‘빅5’ 수준으로 격상하는 방안 등의 수정안을 준비중이지만 이마저도 반대에 직면해 있다.
지역의사제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은 의정 갈등 속 정부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한 측면이 크다. 국립대병원 소관 부처 이관조차 의료계가 간섭만 늘 뿐이라며 반대 입장부터 들고나오는 건 불신의 벽이 그만큼 높다는 방증이다. 불신을 자초한 정부가 결자해지의 마음으로 의료계에 대화를 요청하고 나서야 하는 건 당연하다. 지역 정주 여건과 적정 복무기간 등을 놓고 의료계가 주장하는 기본권 침해를 해소할 방안을 우선 모색해야 한다. 지역 필수의료 붕괴 현실은 의정 갈등을 빚은 의료개혁의 주요 출발점이었다. 의료계도 동시대 지역민들의 이 같은 아픔을 외면할 순 없으리라 본다. 정부와 본격 대화에 적극 임해 줄 것을 당부한다.
2025-11-14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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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진정한 지방자치 실현 위해서는 재정 분권 강화해야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린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수도권 일극 체제 개선과 지방 자치 확대를 공언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당장 내년도 예산안부터 ‘지방 우선, 지방 우대’ 원칙을 명확히 했다”고 강조했다. 수도권에서 거리가 멀수록 더 두텁게 지원하고 포괄적 보조 규모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지역균형발전특별회계의 지방 자율재정 예산 규모를 3조 8000억 원가량에서 약 10조 6000억 원으로 세 배 가까이 늘려 자율성을 대폭 강화한 것이 눈에 띈다. 올해 민선 지방자치 시행 30주년을 맞아 지방정부의 자치 역량이 강화된 만큼, 이에 걸맞게 재정 분권 권한을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가 사무의 지방 이양, 지방재정 분권 확대, 공공기관 지방 이전에도 박차를 가하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균형발전을 향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도 11일 열린 대통령실 지역기자단 간담회에서 2027년까지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하겠다는 로드맵을 공개했다. 올해 전수조사를 마치고 내년에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실행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공공기관 이전 속도를 강조하고 있어서 김 위원장은 최대한 빨리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했다. 지방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중앙과 지방정부가 머리를 맞대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지역균형발전과 자치분권의 핵심은 중앙의 재정권을 지방에 이양하는 것이다. 재정 분권 확립은 자치행정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갖추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자치분권의 핵심 요소인 재정권이 아직까지 중앙정부의 통제 아래 있다. 재정권이 중앙에 종속된 데에는 우리의 조세체계가 국세 위주로 지나치게 편향돼 있기 때문이다. 이날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중앙과 지방의 협치 강화 방안으로 지방소비세율 인상, 국세의 지방세 이양 등 세입 기반 강화, 국세 대비 19.24%로 19년째 고정된 지방교부세율 단계적 인상 등이 제안됐다고 한다. 이러한 논의가 재정 분권 강화를 앞당기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
이날 회의에서는 전국 시도지사들이 참여해 실질적인 재정 분권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지역 실정에 맞지 않는 사업에 포괄보조금이 집중 투입돼 지역이 자율적으로 편성하는 투자 사업 비율이 감소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중앙정부가 제시하는 사업목록을 폐지하고, ‘원칙적 허용, 예외적 금지’의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해 각 지역이 보유한 비교우위를 제대로 살릴 전략들을 추진해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고, 이 대통령도 공감했다고 한다. 지방재정 운영 패러다임을 전환해 ‘무늬만 지방자치’에서 탈피해야 할 것이다. 지방정부에 부여되는 책임만큼 재정 권한도 제대로 나뉘어야 진정한 지방자치를 이룰 수 있다.
2025-11-13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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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예산 미반영, 먹는 물 해결 하세월
낙동강은 부산 시민들이 먹는 물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취수원이다. 그 말은 낙동강 물이 오염될 경우 부산 시민들은 먹을 물이 없다는 뜻과 같다. 그런 낙동강의 수질은 1991년 구미 페놀 방류 사건 이후 음용 부적절 수준에 곧잘 다다랐고 이는 곧 일상이 돼 왔다. 이 때문에 낙동강 이외에 마실 물을 얻을 수 있는 취수원을 마련하는 것은 부산 시민들의 숙원 사업이 된 지 오래다. 그런 숙원이 모여 시작된 취수원 다변화 사업이 올해로 진행 5년째를 맞았지만 이와 관련한 내년 정부 예산마저 반영이 되지 않음으로써 미궁에 빠졌다. 공업 용수 수준이라는 말까지 듣는 낙동강 물만 쳐다보는 부산 시민들은 망연자실할 뿐이다.
부산 상수도 취수원 다변화 사업의 시작은 2021년 환경부 정책위원회에서 ‘낙동강통합물관리방안’이 통과하면서 본격화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최악의 낙동강 녹조 사태 등으로 낙동강 하류 지역의 식수 불안이 커지면서 신규 취수원을 개발해야 한다는 여론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2028년까지 연간 90t 규모의 신규 취수원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국민의힘 이성권 의원실에 따르면 정부는 이 같은 정책 추진을 위해 마련해야 할 기본설계비조차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하지 않았다. 정부는 낙동강 수질 개선 대책을 포함해 전반적인 정책을 더 살피겠다는 입장이지만 정책 추진 의지 박약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부산 취수원 다변화가 단숨에 해결이 가능한 정책이 아니라는 점은 동남권 지역민이라면 누구나 수긍하는 바다. 신규 취수 예정지로 부각되고 있는 경남지역 주민들의 반대만이 아니라 최근엔 대구 취수원 이전 이슈까지 겹치는 대표적인 복합 갈등 사안이어서 대안 마련이 쉽지만은 않다는 현실은 인정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이 정책 추진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 마시는 물이 정책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부산지역이 원자력발전소 인근의 공간적 위험을 무릅쓰고 취수원 확대를 위해 해수 담수화 시설까지 유치했던 절박함을 상기한다면 더 이상 미루고 있을 시간조차 얼마 남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취수원 다변화 정책 관련 정부 예산 미반영에 대한 비판이 들끓자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재정 당국과 협의를 하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부산시도 최근 개최한 국민의힘 부산시당과의 예산정책협의회에서 ‘낙동강 유역 안전한 먹는물 공급체계 구축’을 내년도 주요 국비 확보 사업 1순위로 채택했다. 정부와 국회가 적극 나선다면 예산 마련 가능성은 올라갈 듯하다. 하지만 예산 마련만큼 중요한 일은 또 있다. 여러 지역의 이해 관계가 충돌하는 복합 갈등 양상을 어떻게 풀 수 있느냐다. 정치가 개입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여기엔 여야도 진영도 있을 수 없다. 먹는 물 문제의 해결은 생존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25-11-13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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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산시 내년 예산 18조 원… 해양 허브도시 뒷받침 되나
17조 9330억 원 규모로 편성된 부산시 내년 예산안이 부산시의회에 제출됐다. 이 같은 예산 규모는 지난해 대비 7.5%가 증액된 것으로 정부 내년 예산안 증액 규모 8.1%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역대 부산시 예산 증액 규모로서는 이례적으로 큰 편이다. 부산시는 내년 예산안 편성 내용에 대해 민선 8기 도시 목표 ‘시민행복도시와 글로벌 허브도시’를 실현하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시는 내년 예산안에서 소위 복지·안전과 관련한 부분에 가장 중점을 뒀다. 시민행복도시라는 구호에 걸맞은 예산 편성이라 할 수 있다. 반면 글로벌 해양산업 허브도시 기반 구축과 관련한 예산은 기대를 밑돌았다는 평가다.
내년 예산안 가운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따뜻한 부산형 함께 돌봄체계 실현’ 분야다. 올해보다 4618억 원이 늘어난 6조 6111억 원이 편성됐다. 특히 부산형 통합돌봄 사업이라 불리는 함께돌봄 사업의 수혜자 범위를 대폭 늘리는 등 복지 분야의 지원 예산이 큰 폭으로 늘어났다. 화재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후 공동주택 취약계층에 대한 아크차단기 설치 비용 지원 신설 등 올해 잇따라 발생한 사고 대비책 마련에도 공을 들인 흔적이 돋보인다. 부산지역 외국인들을 이방인으로 밀어내는 현실에 대한 지적이 나오자 발빠르게 외국 국적 영유아에 대한 보육료 지원 예산을 마련한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같은 적극적 예산 편성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해양산업 허브도시 기반 구축’ 분야 예산 편성에 있어서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시가 해당 분야에 편성한 예산 규모는 1066억 원으로 규모만 놓고 보면 올해보다 309억 원이 늘어났다. 하지만 여기에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에 따른 직원 관사 지원 사업비 311억 원이 포함돼 있어 결과적으로는 다른 부분 예산이 줄어든 셈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해수부 부산 이전 원년을 맞아 내년부터 해양산업 허브도시 기반 구축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부산의 입장을 감안하면 예산 규모도 많이 부족한 느낌이다. 부산시 전체 예산의 1%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기에 그렇다.
부산시의 내년 예산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방안에 불과하다. 부산시의회에 예산안이 넘어간 만큼 시의회의 꼼꼼한 심사와 계수조정이 뒤따라야 한다. 해수부 부산 이전 관련 특별법마저 최근에야 확정된 만큼 해수부 이전 이후의 시의 정책 방향도 아직 정해지지 못한 한계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글로벌 허브도시가 부산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 미래라고 한다면 부산시는 예산 편성에서부터 이런 미래를 담보할 의지를 더 보였어야 한다. 정부 부처별 내년 예산배정 규모에서 해수부가 1% 수준에 불과하다며 비판한 게 지역 여론이었다. 글로벌 허브도시 기반 관련 시 예산이 1%에도 못 미친다면 낯뜨겁지 않겠는가.
2025-11-12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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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깜깜이 외주화' 방지할 '건설 이력 확인제' 의무화해야
9명의 사상·실종자를 낸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 붕괴 사고는 고질적인 ‘위험의 외주화’와 ‘주먹구구식 일용직 채용’이라는 후진적 관행이 결합해 빚은 참사라는 분석이다. 이번 공사는 발주처인 동서발전이 HJ중공업에 시공을 맡기고, HJ중공업이 이를 발파·철거 하청업체인 ‘코리아카코’에 하도급한 다단계 구조로 진행됐다. 붕괴 사고는 소량의 화약으로 약 60m 높이의 보일러 타워를 넘어뜨리기 위해 철골 기둥 일부를 잘라내는 ‘사전 취약화 작업’ 중 발생했다. 이 작업은 40년 넘은 구조물을 정교한 계산하에 해체하는 고도의 숙련도가 필요했다. 하지만 현장 투입 인력은 전문성과 거리가 멀어 사고 위험성을 키운 셈이다.
다단계 하청 구조는 고질적인 안전 사각지대를 만든다. 하청업체는 원가 절감 압박 속에서 숙련 인력 확보나 충분한 안전 교육을 하기 어렵다. 이번 사고로 매몰된 7명은 모두 코리아카코 소속으로 정규직은 1명뿐이고, 나머지 6명은 초보 일용직에 가까운 계약직이라고 한다. 이처럼 전문 현장에 비숙련 인력이 투입되는 배경에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 따른 비용 절감이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하청업체는 일당 35만 원짜리 작업에 25만~30만 원의 숙련공 대신, 18만 원짜리 초보 인력을 투입해 차액을 남긴다는 것이다. 이번 사고에 대해 비용 절감을 우선한 죽음의 외주화에 일용직 노동자들만 희생양이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으로 산업 현장에서 안전을 수없이 강조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인력 수급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위험한 작업을 다루는 현장에서 ‘깜깜이 채용’ 방식이 널리 퍼져 있다고 하니 충격적이다. 이력서도 없이 인력사무소를 통해 채용된 작업자들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현장에 투입된다. 건설 현장에서는 소장이나 반장이 이력서 검증 없이 인맥으로 사람을 뽑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심지어 개인적 친분이 있으면 기능이 없는 사람을 기능공으로 쓴다니 어이가 없다. 이처럼 전문성 없는 단기 인력에 위험한 작업을 맡기는 구조에서는 사고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깜깜이 외주화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건설 노동자 이력 확인제’를 도입해야 한다. 채용 때 4대 보험 득실 확인을 의무화해 실제 경력을 검증하는 것이다. 기능공, 조공 여부를 구분해 검증된 숙련공 투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투명한 고용정보 체계를 확립하고 근로자 숙련도를 판단할 수 있어야 산업 현장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호주의 제도를 참고해 2021년 5월부터 ‘건설근로자 기능등급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플랜트건설 현장 등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깜깜이 외주화를 해결하고, 일용직 노동자의 비극적 죽음을 막을 제도 마련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고가 날 때마다 인재라는 말만 반복될 것이다.
2025-11-12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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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검사장 집단 반발… 검란으로 비화하는 '대장동 항소 포기'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항소 포기 결정을 둘러싸고 검찰 내부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김창진 부산지검장을 비롯한 전국 검사장 18명은 연명으로 항소 포기에 대해 10일 검찰 내부망에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공동 입장문을 올렸다. 대검 수뇌부를 향한 집단 성명이다. 항소 의견을 낸 서울중앙지검장은 권한대행의 포기 지시에 사의를 표했고, 사건을 맡았던 일선 검사들도 “민간업자들에게 수천억 원대 범죄 수익을 안긴 꼴”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검찰 안팎에선 “이례적 사태가 아니라 전면적 내부 충돌”이란 말이 나온다. 이번 사태가 검란(檢亂)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이번 사태의 발단은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였다. 서울중앙지검은 분명 항소 의견을 냈지만, 대검이 이를 뒤집었다. 이로써 2심에서는 1심보다 형량을 높일 수 없게 됐다. 1심이 인정한 추징액 상한은 473억 원에 불과하다. 수천억 원대 부정 이익을 확인한 검찰로선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권한대행은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 했고, 법무부 장관은 “항소 안 해도 문제없다”며 “대검에 신중히 판단하라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관이 개별 사건에 의견을 낸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결국 최종 결정의 주체와 법리 근거가 불분명해 외압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는 이유가 되고 있다.
정치권의 공방도 거세다. 야당은 “국민 상식을 거스른 결정”이라며 연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반면 여당은 검찰의 반발을 “정치 검사들의 쿠데타”로 규정하며 검찰개혁 드라이브를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본질은 정치가 아니다. 핵심은 검찰이 외압 없이 법리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독립성이다. 검찰청 폐지 논의와 수사권 완전 박탈 등 제도 개편 논의가 병행되는 시점이어서 이번 사태의 휘발성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항소 포기가 정치적 판단이었다면 명백한 권한 남용이며, 직권 결정이라면 월권이다. 법무부 장관이 개입했다면 불법 지휘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검찰이 정치 권력의 영향 아래 놓이는 순간 법치의 근간은 무너진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명확하다. 검찰의 수사·공소권이 권력 의중에 따라 좌우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었기에 내부 반발이 터져 나온 것이다. 검찰총장 대행의 직권 남용 논란, 법무부의 어정쩡한 해명, 대통령실의 침묵은 오히려 사법 신뢰를 더 허물고 있다. 정부는 이 사태를 경각심을 갖고 엄중히 바라봐야 한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진실 규명만이 유일한 출구다. 누가, 어떤 이유로 항소 포기를 지시했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의 신뢰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또다시 정치적 판단이 수사에 개입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2025-11-11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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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해양과 미래 기술 대융합, 부산 산업생태계 혁신 주목한다
부산시가 10일 ‘부산 경제성장 혁신전략 핵심사업 보고회’를 열고 미래 신산업성장 육성을 통한 ‘글로벌 톱 5 해양도시’ 도약을 기치로 내걸었다. 시는 해양-미래 기술 대융합, 인공지능(AI) 기반 기술혁신 고도화, 소재·부품·장비 및 에너지산업 선도, 라이프산업 활성화 등 4대 전략과 71개 핵심사업을 추진한다. 이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육성 분야는 ‘해양-미래 기술 대융합’으로 1조 9270억 원이 투입된다. 핵심은 해양 항만 인공지능 전환(AX) 실증센터를 유치하고, 차세대 스마트 조선 기술을 선점해 해양 분야에 특화된 AI 허브를 신속히 구축하는 것이다.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과 맞물려서 해양 산업생태계 혁신이 주목된다.
해양과 미래 기술의 융합은 산업 대전환 시대에서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다. AI와 바다, 두 축이 교차하는 부산은 ‘해양 AI’에서 신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다. AI 기반의 지능형 물류 플랫폼과 스마트 자동화 터미널 구축, 자율 운항 선박, 북극항로 데이터 허브 등 확장할 영역이 무수히 많다. 부산시도 지난 9월 (재)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BISTEP)을 전담 기관으로 해 ‘부산형 해양신산업 선도전략 수립 정책연구’ 용역에 착수했다. 스마트 해양 모빌리티, 블루 파이낸싱, 저온 유통, 해양 바이오, 극지 연구개발(R&D) 등 분야를 망라해 연구한다. 부산형 해양신산업을 발굴·육성할 전략과 비전 제시가 필요하다.
미래 신성장산업 육성을 위한 시의 4대 전략 가운데 AI 기반 기술혁신 고도화는 중요하다. 총 7824억 원을 투입해 ‘한국형 그린데이터센터’ 선도 모델을 구축하는 등 AI 전환(AX) 거점을 조성하는 것이다. 산업 전반의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고 기술 모델을 개발·공급하는 데 주력한다고 한다. 미래 산업의 근간이 될 첨단 소부장 협력단지를 만들고, 에너지 신산업 경쟁력을 확보해 안정적인 공급망을 선도한다는 계획도 눈길을 끈다. 관광과 콘텐츠, 헬스케어 등 삶의 질과 직결된 라이프 산업도 미래 산업의 핵심 축이다. 이 산업들을 잘 아울러 부산의 미래 성장 잠재력을 폭발시킬 핵심 산업으로 육성해야 할 것이다.
부산이란 도시가 점점 쇠락하고 떠나는 청년이 많은 이유는 새로운 산업에 대한 혁신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미래 전략 산업을 어떻게 키워내고 산업 생태계를 어떻게 혁신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이런 가운데 부산의 강점인 항만·물류는 AI 기술로 성장이 유망한 분야여서 시의 해양-미래 기술 대융합 방향 설정은 시의적절하다. 특히 정부의 ‘피지컬 AI’ 육성 방안에 발맞춰 항만·물류·자율 운항 선박 분야 등 해양산업 부흥을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한다. 시가 장기적으로 4대 전략을 중심으로 71개 핵심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해 부산의 산업생태계를 반드시 혁신하길 바란다.
2025-11-11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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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위험 경고 무시… 인재로 밝혀지는 동서발전 붕괴 참사
지난 6일 오후 2시 2분 울산 남구 용잠동 한국동서발전 울산발전본부 울산화력발전소에서 해체 준비 작업 중이던 60m 높이의 보일러 타워 5호기가 무너져 9명의 사상·실종자가 발생했다. 9일 오후 현재까지 3명이 사망하고 4명이 매몰된 상태다. 특히 구조물에 팔이 끼인 상태로 발견된 생존자가 구조 도중 결국 숨지는 등 현장에서는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시공사가 위험한 작업임을 알고도 안전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강행한 것이 이번 참사의 원인이라는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번 참사도 결국 인재인 것이다. 유사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가려야 한다.
〈부산일보〉가 ‘울산 기력(보일러 타워) 4,5,6호기 해체공사 안전관리계획서’ 등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보일러 타워 위험성을 낮추는 개선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작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일러 타워 위험성 등급은 12점이었는데 이는 계획서상 해체공사 허용 불가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위험성을 9점 미만으로 낮추는 대책을 세운 뒤 작업을 재개하도록 했지만 지켜지지 않은 것이 이번 참사를 불렀다는 지적이다. 특히 기둥을 50% 이상 잘라내는 작업을 실시하면서도 구조기술사 검토조차 없었다는 점은 기가 막힐 노릇이다. 발파 해체 공법을 사용하는 고위험 작업을 이렇게 허술하게 진행한 것은 대형 참사를 예고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욱이 작업 현장에 대한 관리감독 수칙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안전관리계획서 등은 붕괴 매몰 위험 대책으로 관리감독자 없이 작업자만으로 작업을 진행하지 않도록 명시했다. 하지만 소방 관계자 등에 따르면 사고 당시 보일러 타워에는 하청업체 직원 9명만 있었다고 한다. 참사가 발생한 공사는 동서발전이 HJ중공업에 시공을 맡기고, HJ중공업이 이를 다시 발파·철거 하청업체인 ‘코리아카코’에 하도급한 다단계 구조에 의해 진행됐다.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인 것이다. 다단계 하청 구조로 인한 원가 절감 압박 때문에 공기 단축 시도와 안전조치 부실 등이 이뤄졌을 가능성에 대한 면밀한 수사가 필요하다.
현재 경찰이 대규모 수사팀을 투입한 데 이어 검찰과 노동부도 전담팀을 꾸렸다. 수사팀은 붕괴 원인과 과정을 규명하고 원·하청 작업 지시 체계, 작업 공법, 안전 관리 체계 등을 전방위로 확인해야 한다. 위험성이 매우 높은 작업을 적절한 안전 조치도 없이 누가, 왜 승인하고 강행했는지 철저하게 밝혀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도 제대로 가려야 한다. 더욱이 이번 참사는 인근에 자리한 SK에너지에서 폭발 사고로 2명의 하청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발생했다. 발주처는 물론 현장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철저한 원인 규명과 책임자 문책은 물론 강력한 재발 방지 대책이 절실하다.
2025-11-10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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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검찰 대장동 항소 포기, 수사 외압 여부 낱낱이 밝혀야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주요 피고인들에 대한 검찰의 항소 포기가 사법 신뢰를 둘러싼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등 민간업자 5명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검찰은 항소 기한 내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았다. 형사소송법상 항소가 없으면 1심보다 높은 형을 선고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사실상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이 사의를 표명하는 등 검찰 내부 갈등도 불거졌다. 특히 이 사건은 현재 심리가 중단된 이재명 대통령의 대장동 비리 관련 재판과도 맞닿아 있어 정치적 오해를 초래할 수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항소 포기 결정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일선 수사팀은 형량이 구형보다 낮고 배임 판단도 축소된 만큼 항소가 필요하다고 봤으나, 중앙지검과 대검 반부패부는 불가 입장을 고수했다. 서울중앙지검장 정진우가 사의를 표명하고 일부 검사들이 내부망에 항소를 막은 경위를 공개하며 반발했다. 정치권에도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실과 법무부 외압 가능성을 제기하고 수사와 국정조사를 촉구했지만, 민주당은 법리 판단에 따른 합리적 결정이라 반박했다. 하지만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서 항소를 포기한 것은 검찰의 독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킨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이례적으로 밝혔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법무부의 의중에 따라 항소 방침이 뒤집혔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는 내부망에 중앙지검이 항소 방침을 정하고 대검에 승인을 요청했으나, 대검 반부패부가 법무부 보고 후 불허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법무부는 “항소 실익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상 항소 여부는 검찰의 독자적 판단 영역이다. 항소 포기는 단순 절차가 아니라 검찰권의 핵심적 행사로, 이를 외부가 사실상 제어했다면 검찰 수사의 독립 원칙은 심각하게 훼손된 셈이다.
대장동 사건은 민간업자 비리를 넘어 공직자와 권력 간 유착 가능성, 사법 판단의 독립성과 검찰 권한 행사 문제까지 얽힌 복합적 사안이다. 특히 현직 대통령의 과거 의혹과도 맞닿아 있어 1심 판결문에는 ‘성남시 수뇌부’와 민간업자 간 유착 정황이 언급됐으나 대통령 연관성 판단은 유보됐다. 이런 상황에서 항소를 포기한 것은 정치적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크다. 만약 이번 결정이 법리 판단보다는 정치적 요인에 따른 것이라면, 권력 개입 의혹을 피하기 어렵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사건에서 일선 수사팀의 의견이 외압으로 묵살됐다면 사법 정의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검찰과 법무부는 항소 포기 경위와 수사 외압 여부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2025-11-10 [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