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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김상용(1902~1951)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꾄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시집 〈망향〉(1939) 중에서
행복한 삶은 풍요로우면서 평화로운 상태일 것이다. 양식이 풍성한 상황에서 ‘나’와 이 세계가 무르익어가는, 여유롭고 안온한 상태가 그런 경우일 것이다. 그것을 무릉도원, 혹은 유토피아라 부를 수 있다. 누구나 지친 영혼을 쉬게 하고 굶주린 욕망을 채워 더 이상 걱정이나 근심이 없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상태. 유년의 어머니 품속과 유사한 절대적 안전 상태가 그런 이데아의 세계다.
일제강점기하 암담한 현실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김상용 시인도 그런 꿈을 꾸었던 것일까? 그가 그리고 있는 전원, 즉 ‘밭이 한참갈이’로 평화롭고, ‘강냉이가 익’어가는 황금 들판은 아무 걱정 근심 없는 세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기에 그곳을 모르는 사람이 ‘왜 사냐’고 물어보아도 마음 한가로워 씩 ‘웃고’ 말 수 있다. 굳이 대답할 필요가 없는 까닭은 자신이 이미 무릉도원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마음 한가로움이야말로 현실에 나타난 꿈의 촉수다. 김경복 평론가
2023-09-1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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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구절초(九節草) / 박용래(1925~1980)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달여서 약으로도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
여름 모자 차양이 숨었는 꽃
단춧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여우가 우는 추분 도깨비불이 스러진 자리에 피는 사랑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아.
- 시집 〈백발의 꽃대궁〉(1979) 중에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끈다’. 이 말은 괴테의 〈파우스트〉의 마지막 구절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파우스트의 영혼을 여성적인 것이 구원한다는 내용이다. 박용래 시인이 간절히 부르는 ‘누이야’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스산해지는 가을의 길목에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줄 수 있는 존재는 ‘누이’일 수밖에 없다. 환하게 눈부셔 자신의 어둑한 눈을 밝게 하고, 차가워지는 마음에 불을 지펴 삶의 활기를 북돋아 주는 구원의 여신!
구절초가 그런 꽃이다. 들국화로 불리기도 하는 구절초는 추워지는 계절에 환한 낯빛으로 ‘도깨비불이 스러지는’ 무덤가나 산자락에 피어 고운 자태를 자랑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여린 몸짓은 하얀 세일러복의 ‘여학생’ 같다. 세월을 이기지 못한 사람에게 그것은 ‘매디매디 눈물 비친 사랑’으로 영원한 청초함이 된다.
김경복 평론가
2023-09-1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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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한 잎의 여자/오규원(1941~2007)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 같은 여자, 시집 같은 여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시집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 중에서
추억의 갈피에 맺혀있는 연인의 모습은 아련하다. 그래서 늘 ‘쬐그만’ 모습이거나, 가냘픈 모습으로 등장해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애틋함을 남긴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이 충족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결핍과 회한으로 채워지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말로 영원한 그리움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모습은 ‘물푸레나무 한 잎’ 같은 여림으로, 나아가 ‘한 잎의 솜털’, ‘한 잎의 눈’ 등의 감각으로 도드라진다. 심혼에 응결된 사랑의 모습은 그 사람과 나눴던 감각적 형상 그 자체에 있다. 그리움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어서 감각만 떠오르면 그 시간과 장소를 ‘영원히 나 혼자 가질’ 수밖에 없게 한다. 그때 사랑은 쓸쓸함과 기쁨의 현(絃)을 다 울려주는 역설이 된다. 김경복 평론가
2023-09-0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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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눈물/김현승(1913~1975)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 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 시집 〈김현승 시초(詩抄)〉(1957) 중에서
결정(結晶)은 순수다. 순수는 강하고 단단한 것을 지향한다. 상상력의 측면에서 순수의 상징인 결정체는 지고의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영롱하고, 영원불멸의 특성을 가졌기 때문에 신비롭다. 김현승 시인은 순수의 대표적인 사물인 ‘눈물’을 견고한 결정의 이미지로 제시한다. 사람이 흘리는 눈물이야말로 신에게 바치는 순정한 제물이자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순수한 사랑이란 점에서 가장 아름답고 영원한 보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는 어린 아들을 병으로 잃고 그 슬픔을 달래기 위해 쓴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슬픔의 실체인 눈물을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결정체에 비유하고, 나아가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 즉 ‘씨앗’에 비유하여 죽은 자식과 동일시한다. 그리고 이를 신에게 바치는 봉헌물로 상상함으로써 자식에게 주어진 죽음을 영원한 구원의 의미로 승화시킨다. 하나의 죽음을 슬픔의 정수인 눈물 속에서 천상의 보석으로 태어나게 하는 신비를 보여주고 있다. 김경복 평론가
2023-08-2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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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민들레꽃 / 조지훈(1920~1968)
까닭 없이 마음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 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 시집 〈풀잎단장〉(1952)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에서는 꽃향기가 난다. 그런 사랑의 사람이 부재하게 될 때, 외로움은 존재론적 고독이 된다. 천지가 공허한 심연이 된다. 그래서 시인 조지훈은 잃어버린 사랑을, 꽃과 같기만 했던 사랑의 실체를 ‘민들레꽃’으로 소환한다. 현신(現身)해서야 겨우 풀리는 가슴의 멍울!
‘사랑한다는 말 이 한 마디’는 화자가 생전에 하지 못했던 말일 것이다. 그 말은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미처 해주지 못했던 말일 터이다. 그런 점에서 ‘민들레꽃’은 때늦은 회한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말의 흔들림이다. 서로 마음의 상처에 ‘위로’가 될 수 있게 ‘맑은 눈을 들어 지켜보자’는 약속의 증표다. ‘아득한 거리’를 넘어 찾아올 수 있는 사랑이야말로 이런 신비를 재현할 수 있다.
김경복 평론가
2023-08-22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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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더 조그만 사랑 노래 / 황동규(1938 ~ )
아직 멎지 않은
몇 편(篇)의 바람
저녁 한 끼에 내리는
젖은 눈, 혹은 채 내리지 않고
공중에서 녹아 한없이 달려오는
물방울, 그대 문득 손을 펼칠 때
한 바람에서 다른 바람으로 끌려가며
그대를 스치는 물방울
- 시집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 (1978) 중에서
응결되는 것은 단단하면서 아름답다. 금강석이 그러하고 수정이 그러하다. ‘조그맣게, 더 조그맣게’ 응축되는 것은 안에 강력한 힘을 끌어안고 있어 아슬아슬하고 위태롭지만 그 힘의 내뿜는 빛살로 인해 영롱하다.
인연이라는 ‘바람’에 정처 없이 떠돌다 내리는 ‘젖은 눈’은 ‘그대 문득 손을 펼치’는 것을 보고 가닿고 싶음에 ‘물방울’이 된다. 운명이 부르는 모습에 ‘젖은 눈’은 제 자신을 좀 더 단단히 하고자 몸을 말고, 공중에 더 머무르고자 방울이 된다. 젖은 채로 땅에 떨어져 그냥 흘러가버린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엇갈림일 것인가. 그대에게 닿기 위해, 좀 더 공중에 떠 있기 위해 물방울이 되고자 하는 젖은 눈의 안간힘! 그러므로 ‘그대를 스치는 물방울’은 삼생을 넘어 달려오는 운명의 얼굴이다. 덧없이 아름답게 피었다 지는 인연의 꽃망울이다.
김경복 평론가
2023-08-1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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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그리움 / 유치환(1908~1967)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 시집 〈청마시초〉(1939) 중에서
그리움은 늙지 않는다. 생각할수록 생생하게 느껴져 감각은 예민해지다 못해 아파 온다. 시의 표현처럼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펄럭여 잠들지 못하므로, 쓸쓸함에 고통스러울 뿐이다. 헛헛한 그리움에 한밤을 꼴딱 새워야만 하는 그 낭패감, 그 처량함.
경험해본 사람은 알리라, 그리움은 ‘아무리 찾으려 해도 없는 얼굴’을 찾아 천지사방 헤매는 형벌이라는 것을. 잃어버리지나 않았을까 하는 두려움에 가슴 죄는 고통을 내내 견디어야 한다는 것을. 그때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라는 믿음은 구원일까, 환상일까? 그 믿음조차 없으면 어떻게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그래서 그리움은 등불이 된다. 운명으로 다가온 사랑에 미쳐 시인 유치환은 ‘그대인가, 그대인가’라고 생의 구원을 얻기 위해 노래한다. 구원받지 못한 사랑의 노래는 천지간을 맴돌고 사람들 마음에 녹아들어 정한의 눈물이 된다.
김경복 평론가
2023-08-0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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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엄마 걱정/기형도(1960~1989)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시집 〈입 속의 검은 잎〉(1989) 중에서
그리운 것은 그때일까, 그 사람일까? 부모님과 소꿉친구를 포함한 유년은 그리운 사람과 그 시절이 분리되지 않는다. 거기에 내 존재성의 근원이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유년에 대한 그리움은 추억을 넘어 회한으로 뻗어간다.
시 속의 아이는 조금이라도 엄마의 ‘배추잎 같은 발소리’를 빨리 들으려 문 가까이 앉아 있을 것이다. 오지 않는 엄마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아이의 심정은 선득한 쓸쓸함, 그래서 슬프고도 애틋한 ‘내 유년의 윗목’이 된다. 그런데 ‘엄마 걱정’은 누구의 걱정일까? 시장에서 지쳐 돌아와야만 했던 엄마에 대한 ‘아이의 걱정’인가, 빈방에 ‘찬밥’처럼 담겨 어둠에 떨고 있을 아이에 대한 ‘엄마의 걱정’인가? ‘걱정’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게 한다. 요절 시인 기형도는 ‘엄마 걱정’을 통해 시인은 그립고 아픈 사람을 걱정하는 사람임을 알려준다.
김경복 평론가
2023-08-0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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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사랑가(歌) · 1/이경록(1948~1977)
그대 며칠 전 팔백 리 밖 아화(阿火) 안말에서 띄워보낸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오늘 아침 동남풍과 함께 닿아 내 몸의 숨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오다. 흘러 들어와 그 말의 숨결이 내 심장의 피 덥히며 온몸을 흐르다. 팔백 리 밖 사람아, 그대 사랑한다는 말의 하늘길로 또 내 말을 보낸다.
오늘밤 금강(錦江)이나 추풍령 상공에서 내 말은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소리치며 떠 헤매 가리라.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이 나라의 사랑하는 마음들아, 한 마디씩 씨 받아 팔 괴고 잠들어라.
-사화집 〈자유시 8인 동인 시집〉(1977) 중에서
아, 하늘길로 전하고 받는 사랑의 말은 도대체 어떤 빛깔과 향기를 지녔으려나? 얼마나 사랑이 지극하고 사무쳤으면 ‘팔백 리’ 너머에서 ‘내 몸의 숨구멍’으로 그 소리는 흘러들어 내 심장을 뛰게 하고, 내 영혼을 하늘로 뜨게 하나?
간절하고 간절하여라. 요절 시인 이경록은 죽음에 임박하여 세상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애처로움에 영적 존재가 되어 ‘금강이나 추풍령 상공’에 떠서 부르짖는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 열렬하고 절실한 마음을 지상의 독자들도 한 마디씩 씨 받아 잠드나니, 세상은 참으로 깊고도 깊은 심연이다. 심연 속에 한 줄기 사랑의 말들이 피어올라 외롭게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 김경복 평론가
2023-07-2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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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묵화(墨畵)/김종삼(1921-1984)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시집 〈십이음계〉(1969) 중에서
우리의 영혼은 어디에서 쉴 수 있는가. 각박하고 번잡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잠시 마음을 내려놓고 청량한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영혼의 쉼터 하나씩은 있기를 바란다. 잠깐일지라도 삶의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숨구멍 하나 열려 있기를 바란다.
김종삼 시인의 ‘묵화’가 바로 그런 영혼의 쉼터이자 생명의 숨구멍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시적 분위기는 매우 담백하고 담담하다. 수묵화처럼 펼쳐지는 할머니와 소 사이의 유대감은 우리의 마음을 적신다. 잔잔하게 파고드는 그들의 교감과 연민이 우리의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크게 울리게 한다’. 그것이 이 시가 보여주는 여백의 아름다움이다. 고요의 손 건넴, 그 기이한 감응이 영혼의 숨구멍이다. 김경복 평론가
2023-07-1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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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저녁에 / 김광섭(1905~1977)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시집 〈겨울날〉(1975) 중에서
운명은 하늘로부터 뻗어오는가? 별 하나와 내가 눈이 마주친다는 것은 인연이 맺어진다는 뜻일 것이다. 운명의 여신이 잣는 실에 이끌려 마주친 두 눈길 속엔 놀람, 기쁨, 운명의 인력에 끝없이 당겨져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두 사람은 비로소 이 세상의 빛나는 별들이 된다.
그러나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으로’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인연의 쓸쓸한 결말이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노래한다. 운명은 반드시 이 우주를 가르고, 삼생을 넘어 다시 찾아온다는 것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도 운명의 끈은 곧장 이어지고 팽팽해져 한 생애의 의미로 살아난다는 것을. 참으로 애틋하고 아련한 신비다. 김경복 평론가
2023-07-1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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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갈대 / 신경림(1935~ )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시집 〈농무〉(1975) 중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표지일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깨어있다는 뜻. 다시 말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깨어있다는 것으로서 존재의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삶과 죽음을 궁리하고 숙고할수록 터져나오는 슬픔. 아, 우리는 소멸해가는 존재들이구나! 몸을 흔드는 ‘조용한 울음’은 제 존재에 대한 처연한 연민이자 이 우주 속에서 깨어있어 아름다운 존재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표현이다. 신경림 시인은 의식을 가진 인간존재의 궁극적 관심을 ‘갈대’라는 대상을 통해 이렇게 안타깝고 선연하게 그려내고 있다. 김경복 평론가
약력: 1991년 〈부산일보〉 평론 등단
평론집 〈연민의 시학〉 등 8권
현재 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시전문계간지 〈신생〉 편집주간
2023-07-0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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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상실의 기술 / 정성환(1967~ )
팔월의 유일한 결말이 구월이라도
누군가의 팔월이 되었다 돌아가는 팔월의 등을 봅니다
추억은 얼마나 구체적이든가요
민어회 떠주던 광안리 횟집에서 술 취해 사랑한다던 말
여름밤 덩굴지던 능소화의 환한 미소
밑줄 치듯 손가락 가리키며 읽어주던 시 한 줄
깊어갈수록 더 외로워진다는 고백
하나씩 온 길 되짚어 어디로 돌아갈까요
뜨거운 맹세도
헤어짐도 없이 어찌 구월이 올까요
- 시집 〈남천2동 주민센터 앞〉(2023) 중에서
유월 말인데도 한낮은 벌써 뜨겁다. 곧 장마가 지나가면 뜨거운 여름이 시작될 것이다. 여름은 바다의 계절. 해운대와 광안리 바다가 북적대겠다. 시인은 ‘팔월의 유일한 결말이 구월’이라도 팔월의 등을 타고 흐르는 구체적인 추억을 상기시킨다. 그 추억엔 횟집, 사랑, 능소화, 시 한 줄이 있다. 그리고 ‘뜨거운 맹세’도 ‘헤어짐도 없이’ 어떻게 구월이 오겠냐며 눙친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오는 계절이지만, 계절 속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만남과 헤어짐에 있다. 올여름도 폭염이 이어지겠지만, 여름은 여름다워야 한다는 옛 어른들의 여름나기 지혜를 찾아 시민 모두가 낭만과 열정의 계절을 즐기시길 바란다. 성윤석 시인
2023-06-2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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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두 개의 토르소가 있는 방/문저온(1973~ )
가슴에 손이 돋기를
악수를 하고 네 뺨을 치기를
가까이 가까이서 너를 만지기를
볼을 쓸고 목을 조르기를
다리라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러니 네가 오기를
없는 다리로 굴러오기를
없는 손발로 차렷하기를
네 가슴을 가르고 손을 꺼내기를
꺼낸 손을 가슴팍에 붙여 주기를
실수失手를 부디 만회하기를
피 묻은 악수를 하고 손을 뽑아 던지기를
- 문예지 〈문학과의식〉 2020 여름호 중에서
토르소는 이탈리아어로 ‘몸통’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리스 로마의 고대 유적지에서 처음 발견됐다. 당시 미술계가 이 훼손된 조각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머리와 팔다리가 없지만, 토르소만이 가진 아름다움을 발견해냈다. 19세기에 와서는 조각의 한 형태로, 토르소라는 용어가 자리매김되었다. 시인은 두 개의 토르소가 있는 방에서 시적 아름다움을 뽑아내고 있다. ‘그러니 네가 오기를/없는 다리로 굴러오기를 /없는 손발로 차렷하기를’에서처럼 토르소에서 얻은 그로테스크한 문장들엔 이 몸통의 형태처럼 서술 문장들이 생략돼 있다. 좋은 시는 생략에서 오는 것. 시를 기다리는 일 또한 ‘없는 손발로 차렷하기’ 아닌가. 성윤석 시인
2023-06-2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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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여는 시] 마음의 지옥 / 정성욱(1963~ )
여름 한철 부처 되려고 구름 위에 앉은 선방(禪房), 화두 들고 가부좌를 튼다. 길고양이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 돌리다 입승(入繩)의 죽비가 사정없이 어깨를 내리친다. 몸뚱이가 움찔하고 세상이 움찔하는 사이 귀를 때리는 큰스님의 할(喝). 습(習)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느냐 지옥에 가고 싶으냐. 지옥이 따로 있나요 여기가 바로 지옥인데요. 엉덩이에 달라붙은 물집 다 아물면 부처가 되나요 여름꽃이 다 지면 어디 부처가 되나요. 온종일 목구멍 속으로 반문하다가 서산 붉은 햇살이 문지방을 적시도록 끓어오르는 번뇌의 불길, 마음이 곧 부처라는 소리를 수천 번도 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도로아미타불. 끝내 화두를 놓고 선방 문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 웹진 문예지 〈같이가는 기분〉 2023년 여름호 중에서
사찰에선 여름에 템플스테이를 연다. 지친 현대인들이 속세를 잠시 벗어나 화두를 잡고 명상의 시간을 가지는 프로그램인데 시인도 ‘여름 한 철 부처 되려고’ 선방에 앉았나 보다. 지난 수 십 년간을 살아온 이들에겐 누구나 마음의 지옥이 하나쯤은 있지 않겠는가. 템플스테이가 아무리 현대인들에게 맞춘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속가의 사람들이 견디기엔 어렵다. 시인도 그만 선방문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그러나 입승의 죽비를 맞았고 큰스님의 할도 들었으니, 도로아미타불은 아닐 것이다. 마음에 있는 지옥을 부술 수 있는 건 오로지 자신 뿐. 사찰에 가진 못하더라도 올여름엔 마음에 지옥 대신 선방을 한 채 지어보자.
성윤석 시인
2023-06-13 [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