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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파편의 시선-다다의 포토몽타주와 브레히트의 생소화 효과
전쟁의 소식이 끊이지 않는 겨울의 초입, 인간의 이성은 여전히 시험대 위에 있다. 2025년 끝자락에서 우리는 기술의 속도에 비해 감정의 성숙이 더디고, 혐오와 폭력이 일상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럴 때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다이스트들은 한 세기 전, 비슷한 질문 앞에 섰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 속에서 태어난 그들은 아름다움보다 진실을 택했다. 세상과 문명의 파괴에 직면해, 그들은 그 파편들을 붙잡아 새로운 예술로 만들었다.
다다의 포토몽타주는 그런 절망의 시대가 낳은 급진적 시각 언어였다. 몽타주는 오려서 편집하는 기법이다. 신문과 잡지에서 잘라낸 얼굴과 문장, 병사의 팔다리, 광고 문구, 기계 부품 같은 조각들이 서로의 경계를 찢으며 낯선 충돌을 일으킨다. 이 이미지들은 조화로운 구성보다 균열과 단절의 리듬으로 세계의 불합리를 폭로했다. 한 장의 포토몽타주 안에는 파편화된 인간, 산업화된 전쟁, 그리고 언론의 선전이 뒤엉켜 있었다. 예술이 아름다움의 언어로는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다다는 해체를 통해 진실을 말하려 했다.
브레히트의 ‘생소화 효과’(Verfremdungseffekt)는 이러한 다다의 실험을 연극의 언어로 옮긴 철학적 장치였다. 그는 관객이 무대 속 인물에 감정이입해 현실을 잊어버리는 것을 경계했다. 극에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되면, 비판적 사고를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는 자신이 연기하는 인물로 완전히 변신하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인물을 ‘보여준다’. 관객은 몰입 대신 사유하도록, 감동 대신 판단하도록 요구받는다. 무대는 현실을 재현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 구조를 드러내는 공간이 된다.
다다의 포토몽타주와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모두 감정의 이완 대신 인식의 긴장을 불러오는 예술이다. 하나는 이미지의 병치를 통해, 다른 하나는 서사의 단절을 통해 세계의 이면을 드러낸다. 다다의 예술가가 신문과 광고의 파편을 붙여 현실의 위선을 폭로했다면, 브레히트는 연극의 장면과 장면 사이에 틈을 내어 그 속의 사회적 모순을 드러냈다. 둘 다 예술의 목적을 감동이 아니라 각성에 두었다.
오늘, 다시 불안과 분열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들의 예술은 묻는다. “당신은 지금 보고 있는 세계를 얼마나 낯설게 바라보고 있는가?” 다다가 현실을 해체함으로써 세계의 불합리를 드러냈듯, 브레히트는 무대의 환상을 해체함으로써 인간의 이성을 일깨웠다. 그들의 예술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불편함을 통해 진실에 다가간다. 낯섦을 견디는 순간, 우리는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예술이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오래된 혁명이다.
2025-12-0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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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균열의 미학 - 루이스 부르주아의 거미와 인간의 불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 하순, 겨울의 문턱에서 세상은 더 불안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불안 속에서 인간은 자기 안의 균열을 느낀다.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는 바로 그 균열의 깊이를 직시한 인물이다. 그에게 예술은 상처와 불안을 봉합하려는 생의 행위였다.
대표작 ‘Maman’은 높이 10m가 넘는 거대한 거미 조각이다. 차가운 강철로 만들어졌지만, 그 속에는 놀라우리만치 따뜻한 감정이 흐른다. 그에게 거미는 어머니의 초상이었다. 실을 잇고 알을 품는 존재, 부드럽지만 단단한 생명의 상징. 어린 시절 부르주아는 아버지가 가정교사와 오랜 시간 동안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모습을 지켜보며 깊은 상처를 입었다. 병약한 어머니는 그런 상황을 묵묵히 견디며 침묵으로 일생을 버텼다. 불안정한 가족 관계 속에서 부르주아에게 ‘실을 잇는 행위’는 단순한 손노동이 아니라, 배신과 상실로 찢긴 마음을 꿰매는 치유의 의식이었다.
거미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무너진 세계를 다시 엮는 존재다. 부르주아의 예술은 단단한 구조 속에 내면의 흔들림을 새겼다. 그 균열은 곧 인간의 존엄을 지탱하는 틈이 된다. 우리는 완벽한 상태에서가 아니라, 부서진 자리에서 진실을 배운다.
‘Maman’은 단순한 거미가 아니다. 그 육중한 다리들은 강철로 만들어졌지만, 마치 바람에 흔들리듯 유기적인 곡선을 그린다. 부르주아는 그 안에 인간의 모순된 감정을 함께 새겼다. 보호와 위협, 부드러움과 냉혹함, 사랑과 공포가 한 몸 안에 얽혀 있다. 바로 인간 존재의 내면 구조가 그렇듯 말이다.
부르주아는 “예술은 내 어머니의 직업, 즉 복원의 일이다”라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직물 복원가였다. 낡은 천의 찢어진 부분을 실로 꿰매 복원하는 일. 예술은 이처럼 상처를 덮는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봉합하는 행위였다. 그래서 그의 조각은 균열과 흔들림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아름다움의 한 부분으로 끌어안는다.
오늘의 사회 역시 불안을 내포한 시대다. 전쟁과 혐오, 과도한 경쟁과 가파르게 질주하는 기술 사이에서 인간은 더욱 연약해지고 흔들린다. 그러나 부르주아가 보여준 것은 바로 그 취약함의 미학이다. 실을 잇듯, 상처를 드러내며 타인과 관계를 회복하는 것, 그것이 예술의 윤리적 실천이다.
불안은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서로를 잇는 보이지 않는 실이다. 부르주아의 거미가 찬 하늘 아래 묵묵히 실을 잇듯, 우리 또한 자신의 균열을 꿰매며 하루를 견딘다. 세상을 다시 엮는 일은 언제나 불안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불안 속에서, 인간은 다시 인간이 된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5-11-1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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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안개달'에 다시 보는 모네의 루앙 대성당 연작과 니체의 관점주의
11월 초,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에도 안개가 피어오르는 계절이다. 프랑스 혁명력에서 브뤼메르(Brumaire)는 ‘안개달’을 말하는데, 현재의 그레고리력으로 10월 22일부터 11월 20일경에 해당한다. 아침의 차가운 공기와 밤사이 응결된 습기는 도시와 들판 위로 옅거나 짙은 안개를 드리운다. 사물은 또렷한 윤곽을 잃고, 빛과 그림자는 흐릿한 장막 속에서 서로 스며든다. 이때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고정된 실체라기보다는, 순간마다 다른 얼굴을 드러내는 다층적인 장면이다.
프랑스 노르망디의 루앙 역시 이 계절이면 강변을 따라 자욱한 안개가 피어오른다. 모네가 루앙 대성당을 수십 차례 반복해 그렸던 것도, 바로 이런 시간과 날씨, 빛의 변화가 건물의 표정을 끊임없이 바꾸었기 때문이다. 같은 대성당이지만, 아침과 저녁, 맑은 날과 흐린 날, 해가 비치는 순간과 안개가 덮인 순간은 전혀 다른 풍경을 만들어낸다.
니체는 말한다. 세상에 단 하나의 절대적이며 본질적인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에 따르면, 우리의 관점을 벗어나면 어떠한 단일한 물리적 실재도 존재도 없다. 오직 해석하는 다양한 관점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것이 니체의 ‘관점주의’다. 물론 니체가 프랑스 예술, 특히 문학(몰리에르, 라신), 음악(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높이 평가했음에도 모네가 니체를 직접 읽었거나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 또한 니체가 프랑스 회화를 직접 접한 시기는 인상파가 막 부상하던 시기였기에 니체가 인상파 미술가들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한 사례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모네의 대성당 연작은 니체의 관점주의를 시각적으로 증언한다.
전통적인 본질주의자라면 루앙 대성당이라는 거대한 석조 건물은 우리 눈에 비치는 주관적 인상과 무관하게 그 배후에 변치 않는 본질적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언제나 빛과 안개, 시간의 층위가 얽힌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소설가 모파상은 모네를 가리켜 “특정한 때와 장소에서 순간순간 변하는 빛과 색의 조화를 한꺼번에 다섯 개의 캔버스 위에 포착하는 포수”였다고 말한다. 모네가 그린 30장의 ‘루앙 대성당’ 정면 그림은 형태적으로는 거의 같아 보이지만, 아침 무렵, 햇빛이 가장 강렬한 정오, 해 질 녘, 밝은 날과 흐린 날, 눈·비가 내릴 때, 안개가 낄 때의 빛과 색상은 항상 달랐다. 바로 그 차이가 대성당의 실체라기보다는 관점들의 집합이 세계를 구성한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단일한 목소리나 절대적 진리보다 서로 다른 관점들이 빚어내는 다양성, 이것이 현대 사회가 지켜야 할 미학적이자 민주적 가치가 아닐까?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5-11-0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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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2025 제1회 부마미술제 '기억하는 산'
부산민예총 시각위원회는 지난 9월 6일부터 10월 10일까지 부산민주공원 기획실에서 2025 제1회 부마미술제 ‘기억하는 산’을 전시했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에서 박정희 정권의 18년 장기 집권과 유신독재에 저항해서 일어난 시민항쟁이자 민중항쟁이었다. 부마민주항쟁은 이후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 종식의 시발점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부마민주항쟁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이정표이다.
‘기억하는 산’은 부마민주항쟁을 주제로 처음 이루어진 전시였다. 부산민예총 시각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기획전의 목적은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오늘날 우리가 지켜야 할 민주주의 방향을 함께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부산·경남에서는 부마민주항쟁을 주제로 한 독립적인 미술 전시가 없었다. 주최 측은 ‘부마미술제’가 광주의 ‘오월미술제’나 제주의 ‘4·3미술제’처럼 부산·경남 지역 진보 미술의 상징적인 전시로 자리 잡고, 나아가 한국 진보 미술운동의 지형을 완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21명의 참여 작가는 작품을 통해 ‘유신 철폐, 독재 타도’의 구호로 부산과 마산의 거리를 뒤덮은 1979년 당시의 함성이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을 거쳐, 2016년의 촛불 항쟁, 그리고 작년의 12·3 불법 비상계엄 사태를 종식한 ‘빛의 혁명’으로 이어지는 민주주의의 가치임을 감각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자 한다. 또한 그 속에서 사회 변화를 촉발하는 강력한 매개체로서 예술의 역할을 웅변하고자 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곽영화의 ‘부마민주항쟁부활도’이다. 이것은 천막 천에 아크릴로 그린 걸개그림으로, 작가가 전체 밑그림을 그리고, 시민 180명이 제작에 참여한 그림이다. 부마항쟁의 여러 장면을, 실사를 바탕으로 상상으로 재구성했다. 선언문을 든 학생들, 김경숙 열사로 대표되는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 시위 군중, 경찰·군대, 도시 풍경, 신발·동백꽃 등 지역 상징물의 이미지들이 병치되어 있다.
이 작품은 사진이나 조각을 물리적으로 붙여 넣는 재료적 콜라주는 아니다. 오히려 이질적 이미지를 병치·조합해 하나의 집합적 서사를 만드는 방식을 취한 회화적 콜라주, 또는 내러티브 콜라주라 부를 수 있다. 더 나아가 실제 역사 사진, 현장 자료에 기반한 이미지를 재구성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콜라주’라는 표현도 가능하다. 이 그림을 통해 작가는 부마민주항쟁의 역사적 장면과 지역 상징을 집단적 회화로 재구성했으며, 민주주의 투쟁의 기억을 시민의 참여 속에 되살리고 있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5-10-2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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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개천절에 다시 읽는 박수근 환대의 미학
10월 3일 개천절. 단군신화에서 개천은 그저 새로운 나라의 출발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길이 열렸음을 뜻한다.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를 염원한 이야기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다른 삶의 가능성’을 얻어 새롭게 세계에 들어오는 서사다. 신화에서 곰의 인간됨은 타자의 얼굴을 맞이하는 환대의 가능성을 신화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개천절은 민족적 기원일 뿐 아니라, 타자에게 열린 세계라는 보편적 의미를 담고 있다.
레비나스는 서양 철학이란 존재론 중심의 이성주의 철학으로서 모든 존재자의 타자성을 제거하여 동일자로 환원하는 것이라고 포착한다. 그런데 이러한 동일성 중심의 사고는 그 극단에서 타자에 대한 폭력으로서 파시즘으로 귀결되었고, 그 극단적 현상 형태가 아우슈비츠와 같은 집단수용소였다. 레비나스는 이러한 동일성 사고, 동일성 철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환대’를 내세운다. 레비나스에게 환대란 타자를 주체의 동일성 속에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타자 또는 타인은 우리에게 얼굴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사람이다.
얼굴은 숨김없이 드러나며 위협 앞에 노출되어 있다. 얼굴은 우리가 대면하여 마주 보고 경험하는 얼굴이다. 이렇게 숨김없이 드러나는 얼굴, 살갗인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이 ‘벌거벗은 얼굴’이다. 벌거벗었다는 것은 이 타인이 모든 상황과 맥락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말한다. 이 벌거벗음 상태의 타인은 고통과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자이며, 이러한 타인을 환대하는 주체는 상처받을 수 있는 타인, 고통을 받는 타인을 책임지는 주체, 타인을 대신해서 고통받는 윤리적 주체이다.
박수근은 전후의 격변기 속에서 노점상, 애 보는 소녀, 실직자 등 다양한 타자를 시각적으로 포착한다. 인물들은 가난하고 고단한 서민들이지만, 그는 이들을 단순한 연민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는다. 대신 나에게 벌거벗은 얼굴로 다가오고, 그래서 내가 표상하지 못했던 타자를 마주하여 나를 윤리적으로 각성할 수 있게 해 준다. 이것은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의 얼굴을 맞이하는 윤리적 순간”과 맥을 같이 한다. 그의 화폭은 이웃과 서민을 통해 ‘예술 속 환대의 장’을 열어준다.
개천절의 ‘하늘 열림’은 민족의 기원을 넘어, 타자에게 열린 세계로도 해석될 수 있다. 박수근의 하늘은 모든 이에게 공평히 열린 하늘이다. 그 하늘 아래, 우리는 서로를 환대하는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다. 박수근의 그림은 소박한 숭고일 뿐 아니라, 소박한 환대이기도 하다. 그의 화면은 타자를 밀어내지 않고, 그 평범한 얼굴들을 통해 관람자를 부드럽게 맞이한다. 이는 레비나스적 의미에서 “타자에게 열린 환대의 공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5-10-0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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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불타는 대지의 숭고-안젤름 키퍼와 기후위기 시대의 미학
9월 중순, 폭염의 끝자락에서 올해 대한민국을 집어삼킨 산불 산태를 떠올린다. 전 세계적으로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대규모 산불과 홍수, 녹아내리는 빙하와 사라지는 섬들의 뉴스는 기후위기가 우리 삶 한가운데 들어와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기후위기는 인류가 통제할 수 없는 압도적인 자연의 힘을 드러낸다. 이는 고전적 ‘숭고’에서 언급되던 ‘자연의 위력’이 인류세(Anthropocene)에서 다시 현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포착할 수 있는 ‘숭고’는 단순한 자연의 힘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초래한 파국이라는 점에서 비극적이고 자기모순적이다. 그렇다면 예술은 이러한 시대적 위기 앞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그에 대한 하나의 응답으로 ‘숭고’라는 미학적 개념과 현대 미술가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를 함께 떠올려볼 수 있다. 키퍼는 주로 전쟁과 역사, 신화를 주제로 삼고, 환경과 생태의 메시지를 직접 표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보여주는 파국과 압도, 폐허와 재생의 이미지는 오늘날 기후위기와 공명한다.
키퍼는 1945년 전후 독일에서 태어나, 전쟁의 폐허와 나치의 역사적 트라우마 속에서 성장했다. 그는 대형 캔버스에서 납, 흙, 재, 짚 등 ‘불에 그을리고 파괴된 재료들’을 사용해, 낡은 건축 잔해, 황폐한 대지와 불타는 숲과 같은 풍경을 그려 왔다. ‘마르가레테’와 ‘슐라미트’ 같은 작품에서 그는 나치 시대의 기억을 불타버린 역사적 폐허로 재현했으며, 이후에도 ‘폐허의 미학’을 끊임없이 탐구했다. 키퍼는 독일 역사와 집단적 죄의식을 탐구하면서, 문명이 초래한 파국을 시각화한다. 그의 그림에서 우리는 불길이 휩쓸고 간 잿더미 같은 풍경 속에서 인간 문명의 어두운 얼굴을 목격한다. 그런데 이러한 맥락은 인류가 초래한 기후위기의 풍경과 겹쳐진다. 캘리포니아와 그리스, 캐나다, 한국 등에서 산불로 불타버린 숲, 해수면 상승으로 잠겨가는 해안 도시, 쓰나미가 집어삼킨 마을의 잔해 등은 모두 키퍼의 화면과 기묘하게 닮아 있다. 기후위기의 ‘숭고’는 더 이상 인간을 초월한 자연의 힘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키퍼의 캔버스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파괴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동시에, 윤리적·실천적 응답을 촉구하는 ‘숭고’로 읽을 수 있다.
9월의 하늘 아래, 우리는 키퍼의 그림을 통해 ‘불타는 대지의 숭고’를 본다. 그것은 단순한 경외나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가 미래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각성하게 만드는 강렬한 감정이다. 기후위기 앞에서 ‘숭고’는 더 이상 관조의 미학이 아니라, 실천의 미학이 된다. 키퍼의 그림은 묻고 있다. “이 폐허 위에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세울 것인가?”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5-09-1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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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황혼의 기도-밀레의 '만종'과 개와 늑대의 시간
기후 위기의 시대, 뜨거운 여름 햇빛 속에서도 저녁이 되면 서늘한 가을의 바람이 스며든다. 이 시기 해 질 녘, 빛과 어둠이 뒤섞이는 황혼의 순간을 프랑스에서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불렀다. 멀리 있는 짐승이 집에서 기르는 개인지, 야생의 늑대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시간대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정치적 은유로 말하자면 이 시간은 피아의 구분, 적과 아군의 구분이 어려운 순간이기도 하다.
이 순간에는 안전과 위험,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한다. 계절로 치면 늦여름에서 초가을, 수확을 마친 들판은 고요 속에 잠기고 고도가 낮아진 해는 빠르게 기운다. 밀레의 ‘만종’(1857~1959)은 이 시간대의 공기와 빛을 품고 있다.
이 그림이 완성되기 약 10년 전, 프랑스는 1848년 2월 혁명을 겪었다. 자유·평등·박애의 구호 아래 ‘7월 왕정’을 무너뜨린 제2공화국의 출범은 빛처럼 보였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농민과 노동자에게 약속된 평등은 미완으로 남았고, 같은 해 6월 봉기는 무력 진압으로 끝났다. 이후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와 제2 제정으로 혁명은 빛이 바랬고, 해방의 낮은 저물며 억압의 밤이 시작되었다. 이후 급격히 자본주의화로 발전하는 도시, 심화하는 사회적 불평등, 도시 생활의 비인간화를 목격하면서 젊은 예술가들은 퐁텐블로의 시골, 바르비종에서 자연과 그 속의 농민을 그린다.
당시 비평가 일부는 밀레의 그림을 사회주의적 선동으로 의심했고, 제2 제정 관료들 역시 ‘불온할 수 있는 주제’라고 경계했다. 그러나 밀레 자신은 단지 인간과 노동의 존엄을 그리고자 했다고 밝혔다. ‘만종’을 ‘경건한 기도’로 보는 통상적 해석, 전경에 있는 감자 바구니를 아기의 관으로 본 달리의 정신분석학적 해석과 무관하게 밀레의 회화적 언어는 이 황혼의 감각을 한층 강화한다.
그는 절제된 붓 터치로, 거친 흙과 해가 진 하늘의 질감을 살렸다. 화면의 2/3 지점을 가르는 지평선은 두 인물의 상반신 2/3 지점에 걸쳐 있다. 이러한 안정된 구도와 달리, 두 인물을 감싸고 있는 전경 대지의 황토색, 원경 하늘의 청회색 색채 대비는 따뜻함과 서늘함이 동시에 감도는 모호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러한 경계의 색감이야말로 ‘개와 늑대의 시간’이 지닌 이중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한다.
황혼은, 낮의 익숙함과 안전에서 밤의 위협과 낯섦으로 넘어가는 문턱이다. 그러나 밤은 숨을 고르며 새벽을 준비하는 시간일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둠 속 사물과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패배의 기억을 ‘침묵’이 아닌 ‘증언’으로 전환해야 한다. 다가올 밤이 우리를 삼키기 전에, 우리는 어떤 빛을 안고 그 밤을 건널 것인가?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5-09-0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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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고요 속의 사색, 어머니의 피에타-케테 콜비츠와 광복 80주년의 기억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면서 케테 콜비츠를 떠올린다.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는 비탄의 절규보다 더 깊은 사색의 침묵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콜비츠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외아들 페터를 잃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37년 10월 22일, 그녀는 아들의 전사일을 떠올리며 일기에 이렇게 적는다.
“그날 밤, 페터가 전사했다. [……] 어머니가 앉아 있고, 죽은 아들이 무릎 사이, 어머니의 품에 누워 있다. 그것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사색이다.”
이 작품은 기독교 도상의 ‘피에타’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콜비츠는 여러 차례 이 조각이 종교적 작품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어머니는 무릎 사이로 아들의 시신을 감싸고, 그의 머리는 고요히 젖혀져 어머니의 가슴에 기대어 있다. 어머니는 오른손으로 입가를 감싸 쥔 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이 모티프는 카르포의 ‘우골리노와 그 아들들’ 속 우골리노,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 속 죽은 아들을 붙잡고 있는 남자 등,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고뇌에 빠진 사람의 형상과 함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모티프로도 연결된다. 콜비츠 ‘피에타’의 어머니도 단순한 슬픔을 넘어, 삶과 죽음에 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어머니의 왼손은 아들의 손끝을 섬세하게 감싸고 있으나 더 이상 무언가를 움켜쥐거나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아들과 하나가 되어 있다. 어머니와 아들,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의 실루엣으로 응축된다.
역사는 콜비츠의 사적인 작품을 공적 기억의 중심으로 가져왔다. 1993년, 독일 정부는 이 조각을 네 배 크기로 확대 제작해 베를린 ‘노이에 바허’(Neue Wache)에 설치했다. 건물 지붕 중앙 오큘러스를 통해 조각 위로 햇빛, 비, 눈이 직접 떨어진다. 이는 한 어머니의 깊은 슬픔이 국가의 추모 형식으로 승화된 드문 예라 할 수 있다. 광복 80주년, 우리가 기억하는 얼굴은 어떤가? 이름 없이 사라진 독립투사들, 고문 끝에 쓰러진 민주주의 투사들, 그리고 가족을 떠나 싸웠던 수많은 어머니의 아들들. 이들의 죽음을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담아내고 있는가? 우리에게도 전쟁과 권력, 이념의 이데올로기를 넘어, 그 죽음들을 ‘사유’할 수 있는 예술의 형식은 있는가?
콜비츠의 ‘피에타’는 죽은 이를 ‘기억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고요히 앉아, 아무것도 붙잡지 않은 채, 슬픔을 안은 어머니의 형상으로 존재할 뿐이다. 광복 80년의 오늘, 우리는 여전히 어딘가의 ‘피에타’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눈물의 조각이 아니라, 사색의 자세로서, 이 땅의 오래된 어머니들이 잃은 것들을 기억하고 사유하는 자리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5-08-2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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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기억의 가장자리-도미야마 다에코의 미학
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 8월 15일 해방. 일본에는 ‘피해의 기억’이, 한국에는 ‘해방의 기념’이 겹치는 이 열흘 남짓의 시간은 아시아 현대사의 어긋난 기억 구조가 드러난다. 잊히고 침묵을 강요당한 이들이 그 사이에 있다. 강제징용 노동자, 일본군 위안부,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기억하는 것을 예술의 책임으로 여긴 작가, 도미야마 다에코(1921~2021)가 있다.
그는 일본 전후 미술사에서 드물게 윤리적 시선을 지닌 작가였다. 일본 사회가 ‘피해자’로만 자신을 기억하는 방식, 그 속에서 제국주의 가해의 역사마저 덮어버리는 망각의 정치를 날카롭게 응시했다. 그의 작업은 그런 구조에 균열을 내는 예술적 증언이자 저항의 행위였다.
도미야마는 1980년대 중반 ‘바다의 기억’ 연작을 발표했다. 이 연작은 아시아 여성이 겪은 전쟁과 폭력의 기억을 민속 신화, 샤머니즘 이미지, 자연의 형상과 결합해 시각화한 작업이다. 그중 하나인 ‘남태평양 해저에서’는 남태평양 오지 섬에 끌려와 성노예로 수난을 겪다 숨진 뒤 바닷속에 버려져 수중고혼으로 해양생물과 하나 된 위안부의 백골을 상상하며 그린 작품이다. 도미야마는 이 연작에서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과 아시아 여성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그리고 그 고통이 어떻게 국가의 침묵 속에 방치됐는가를 조형적으로 풀어냈다.
한편 일본 사회에서 ‘히바쿠샤(被爆者)의 미학’은 오랫동안 ‘원폭 피해자의 말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서사로 재생산됐다. 그것은 중요하고 잊혀서는 안 될 기억이다. 하지만 도미야마는 그것이 국가 폭력의 구조적 비판 없이, 오히려 일본을 도덕적 피해자 위치에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면, 그 역시 또 다른 침묵의 공모라고 보았다. 그는 원폭의 ‘연기 너머’를 보려 했다. 피폭으로 사라진 조선인 강제노동자의 그림자, 일본 제국의 확장에서 짓밟힌 여성들의 목소리, 그리고 그것을 감춰온 전후 일본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이 바로 그것이다.
도미야마는 가장자리를 떠도는 형상들, 잊힌 존재들의 침묵, 민속적 기호를 통해 말해지지 않은 것의 무게를 드러낸다. 그것은 ‘미’의 실현이 아니라, 윤리의 환기, 기억의 소환이다. 그는 국가가 말하지 않는 것을 기억해 내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믿었다. 그는 ‘예술가’ 이전에, 역사에 책임지는 ‘인간’이었다.
매해 8월이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또 잊는가? 일본이 피해자의 언어로 원폭을 말할 때, 우리는 지워진 존재를 함께 말할 수 있는가? 도미야마는 이 질문을 끝까지 붙들었던 작가였다. 그의 작품 앞에서, 예술은 단지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일이 아니라, 망각에 저항하는 실천이 되어야 함을 깨닫는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5-08-0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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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고요를 삼킨 폭풍 - 터너의 눈보라와 칸트의 숭고 미학
J.M.W. 터너(1775~1851)의 많은 작품에서 인간은 자연 앞에서 거의 사라질 듯한 존재로 등장한다. ‘눈보라: 항구 앞바다의 증기선’(1842)은 폭풍우에 휩쓸리면서 겨우 버티는 작은 증기선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예술사 전체를 통틀어 폭풍을 묘사한 가장 위대한 그림이라 할 만하다. 캔버스는 눈보라와 폭풍우가 만들어내는 흰 소용돌이로 가득하다. 거센 눈과 바람이 뒤섞여 화면을 휩쓸고, 화면의 중심에는 폭풍우에 곧 삼켜질 듯한 증기선이 보인다. 이 배는 거의 가라앉기 직전의 흔적에 가깝다. 여기서 터너는 자연의 무지막지한 에너지 앞에 노출된 인간 문명의 무력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터너는 이 작품을 위해 직접 밧줄에 묶여 폭풍우 속 갑판에 서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말의 진위와 관계없이 이 그림이 격변하는 폭풍의 중심에 있다는 체험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터너의 능력만큼은 의심할 여지없이 진실되다.
이는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다. 이 그림은 인간의 감각을 초과하는 세계를 마주했을 때의 심리적 체험, 곧 ‘숭고’를 그린 것이다. 이처럼 터너는 자연을 ‘장엄함’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과 감정 능력을 초과하는 대상으로, 숭고의 대상으로 제시한다. 칸트에 따르면 숭고란 감각의 무능력(구상력의 실패)과 이성의 초월적 능력(정신의 승리)이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주관이 느끼는 감정이다. 다시 말해 숭고는 말로 묘사하거나 그림으로 재현할 수 없는 대상에 마주해서, 우리는 한없이 왜소하지만 우리의 이성이 그 무한성, 그 위력을 자각할 때 생기는 주관적 감정이다.
터너의 그림에서 우리는 자연을 인식하지 못한다. 눈과 안개, 바람과 파도는 어떤 구체적 형상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압도된다. 그러나 바로 그 감각의 실패 속에서, 우리 안의 이성은 자연을 뛰어넘는 인간 정신의 위엄을 느끼게 된다. 형상이 지워질 듯한 색의 소용돌이, 불안정한 지점과 공간 구성, 사물과 배경의 경계 붕괴 등 터너 그림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형식적 특징은 “무엇을 보는가”보다 “무엇이 나를 덮치는가”를 경험하게 만든다. 이것은 압도-불가해-승화로 이어지는 미학적 흐름을 실현한다. ‘눈보라’는 바로 그 지점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회화다. 칸트의 말처럼 셀 수 없이 수많은 별로 뒤덮인 하늘, 온통 파괴력을 자랑하는 화산, 파도가 치솟는 끝없는 대양 등 자연은 우리의 구상력을 뛰어넘을 정도로 거대하고 위력적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위대함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다. 우리의 이러한 깨달음이야말로 숭고의 본질이다. 인간의 무력함을 응시하면서도, 그 응시 자체가 인간만의 능력임을 깨닫게 하는 회화. 이것이 터너가 우리에게 건네는 미학적 체험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5-07-2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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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이루지 못한 사랑, 천상의 승화
녹색 망토에 붉은 모자를 쓴 젊은 남자는 자신 쪽으로 걸어오는 여인 중에 가운데 여인을 응시하고 있다. 그러나 여인은 시선을 돌린 채 그를 지나친다. 오른쪽 여인은 고개를 돌려 남자를 쳐다보며 뒤따르는 여인은 안타까운 눈길을 보낸다. 이 짧은 순간의 응시와 외면, 이 단절의 순간이 한 편의 시가 되고 한 권의 책이 되고, 마침내 천상의 서사로 승화된다. 이것은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이야기이며, 헨리 홀리데이의 1883년 작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포착한 결정적 순간이다.
이 그림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가 보이는 곳에서 단테가 베아트리체와 스치듯 마주치는 장면을 묘사한다. 베아트리체는 그를 본체만체 지나가고, 단테는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움직이지 않는다. 단 한 번의 응시, 단 한 번의 침묵이 평생의 사랑을 결정짓는다. 단테는 이 짧은 만남을 바탕으로 〈신생〉과 〈신곡〉이라는 거대한 서사를 창조한다. 단절은 종말이 아니라 출발이었다.
현실의 베아트리체는 24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단테는 정치적 동맹을 위해 제마 도마티라는 여성과 결혼했지만, 마음속에서 베아트리체는 단 한 번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시인이 되는 이유였고, 그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존재였다. 그에게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었고, 그리움은 결핍이 아니라 영적 비상(飛翔)의 바탕이 되었다.
홀리데이는 이 장면을 라파엘 전파의 감수성으로 섬세하게 풀어낸다. 베아트리체는 황금빛 옷을 입고, 두 명의 여인과 함께 고요하게 걷는다. 단테는 붉은 신발과 어두운 망토를 걸치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그녀를 바라본다. 두 사람의 거리는 불과 몇 걸음이지만, 침묵의 깊이는 우주의 거리만큼 멀다. 이 거리를 넘어 둘을 연결한 것은 사랑의 사후적 형상, 즉 문학과 예술이다.
예술이란 소유할 수 없는 것, 가닿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가장 섬세한 응답이지 않을까? 단테는 사랑하는 이와 하나 되고자 하는 욕망, 현실에서 이룰 수 없었던 욕망, 그 사랑을 언어로, 구조로, 신학적 질서로 재현했다. 사랑은 영혼의 지형을 변화시키고, 예술은 그 지형의 지도를 그린다. 그래서 단테의 베아트리체는 한 여인의 초상을 넘어, 잃어버린 것들을 견디고 기억하는 방식, 즉 예술의 존재 이유 그 자체가 된다.
홀리데이의 이 그림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다. 이것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어떻게 미학적 승화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시각적 철학이다. 그리움이 없었다면 단테는 시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술은 상실로부터 탄생한다. 그리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상실이야말로, 인간을 각성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5-07-0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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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지워진 얼굴들, 흔들리는 몸짓
이응노의 ‘군상’ 연작을 처음 마주한 사람들은 그 이미지가 환희인지 절망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수백 또는 수천 명의 인간 군상이 밀집해 있다. 팔을 들거나, 몸을 휘며 전진하는 듯한 동세는 어떤 점에서 저항의 몸짓처럼 보이기도 하며, 또 어떤 순간에는 몰려드는 공포 속에서 도망치는 군중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1980년대에 시작된 ‘군상’ 연작은 후반부로 갈수록 더 장대하고 극적으로 변한다. 격렬한 동세는 5·18 광주의 저항과도 닿아 있다. 또한 숱한 인물 형상이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반복되는 이 연작은 단순한 집단 표현처럼 보이지만, 그 속의 개개인 형상은 각자가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존엄한 존재자이다.
이렇게 우리는 이응노의 ‘군상’을 보고 광주의 시민들을 떠올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응노의 ‘군상’은 특정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집단적 폭력과 주체의 말소, 말해지지 못한 존재들의 형상적 윤리를 구현한다. 그림 속 인물은 모두 익명적이며, 간결한 동작의 형상으로 축약돼 있다. 언뜻 보면 ‘군상’의 형상은 이름 없는 군중의 장대한 저항의 몸짓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군중이 표출하는 저항의 몸짓 이면에서 아감벤이 말한 ‘호모 사케르’(Homo sacer) 또는 ‘벌거벗은 생명’, 즉 법과 기록 속에서 지워진 존재자들을 읽을 수 있다.
이들은 6·25전쟁 전후 보도연맹 학살이나 ‘금정굴’ 사건처럼, 국가에 의해 ‘제거’된 수많은 민간인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들은 죽음조차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못한 채 잊혔다. 그들은 말해지지 않는 자들이었다. 또한 억압과 저항이 이미지 속에서 중첩된다. 다시 말해, 이응노의 ‘군상’은 인권과 국가 폭력이라는 두 장면 사이에서 진동한다.
그림 속 인물은 모두 앞으로 이동하는 듯하지만, 또한 방향을 잃고 밀집돼 있다. 각자는 존재하지만, 누구도 ‘나’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6·25의 민간인 피해자일 수도 있고, 5·18의 시민군일 수도 있다. 이 두 시기는 모두 예외 상태에서의 ‘주권 권력’이 시민을 제거한 역사, 즉 ‘국민이 벌거벗은 생명으로 추락한 시간’이었다. 더 나아가 그 시간은 동학에서 시작해서 지난해 12·3 계엄 사태까지 이어진다.
예술은 ‘벌거벗은 생명’의 시간을 복원하지 않는다. 대신 그 부재의 시간을 비춘다. 이응노의 ‘군상’은 단지 군중을 그린 것이 아니라, 국가 폭력이 만든 비인간화의 풍경이며, 동시에 우리에게 되묻는 윤리적 거울이다. “이 얼굴 없는 자들 속에서, 나 또는 우리는 누구였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5-06-2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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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김수자-몸으로 수놓는 수행의 미학
한 여자가 서 있다.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길에서 그녀는 말없이 서 있다. 이 세상은 그녀에게 무엇인가? 마치 그녀는 면벽한 수도승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라캉은 말한다. 나는 나의 눈(시선)을 통해 대상을 보지만, 나는 사방에서 타자들에 의해 ‘응시’된다. 수없이 많은 사람이 오고 가는 거리, 서울, 도쿄, 상파울루, 하노이, 예루살렘, 카이로, 나이로비, 멕시코시티(1999~2001 ‘바늘 여인’ 제1차 연작). 하바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보고타, 라파스, 카라카스, 카트만두, 이스탄불(2005년 이후 ‘바늘 여인’ 제2차 연작). 이 연작은 김수자가 여러 나라의 가장 번화한 거리 한복판에서 말없이 정지된 자세로 서 있는 영상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이곳은 전쟁의 흔적 또는 근대화의 불균질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도시들이다. 또한 이곳은 분단이나 이념적 충돌의 현장이다. 또는 제국주의의 흔적이 남은 도시이며, 이주와 디아스포라, 폭력, 사회적 균열이 층층이 얽힌 장소다. 김수자는 자신의 몸을 매체로 삼아 ‘바늘 여인’(A Needle Woman) 연작을 구성했다. 김수자는 직접 거리 한복판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어떤 표정이나 제스처도 없이, 군중의 흐름 속에 잠긴 채, 침묵하고 관찰하고 감각하고 또 감내한다.
김수자의 몸은 바늘이다. 그녀의 정지된 몸은 분열된 세계를 꿰매는 바늘이다. 도시의 상처, 인간의 고통, 이주의 기억, 여성의 몸, 그것을 연결하는 실존적 매개체로서 몸이다. 1957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수자는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한때는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던 화가였다. 그러나 1990년대 초, 거리에서 수집한 보자기, 이불보, 헌 옷 등을 꿰매고 천으로 오브제를 감싸는 설치 작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녀가 처음 주운 보자기는 이사 가는 사람의 삶과 무게, 여성의 수고와 침묵을 담은 천이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회화를 떠나 천으로, 보자기로, 몸으로, 그리고 멈춤의 수행으로 예술의 언어를 바꾸어 나갔다. 그 순간부터 김수자의 예술은 단순한 조형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온 몸의 기억과, 지나온 장소의 서사, 그리고 타인의 존재를 감싸는 윤리의 문제가 되었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를 시작으로, 뉴욕 MoMA, 독일 카셀 도큐멘타, 리옹 비엔날레, 구겐하임 미술관까지, 김수자는 전통적 미술의 권위보다 선불교와 같은 수행의 고요함을 택했고, 침묵하는 몸 하나로 세계를 응시했다.
그녀의 기억, 그녀가 자란 도시의 기억, 그리고 타자들의 기억, 타자들이 살아가고 있는 도시의 기억이 서로 소통한다. 흐르는 군중 속에서 정지되어 서 있는 그녀의 몸은, 시위가 아니라 수행이며 연민이고, 존재의 감각이다. 김수자의 몸, 그녀의 바늘은 예술의 도구이자, 사회의 상처를 짚는 감각기관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5-06-1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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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진실은 어떻게 침묵 당하는가
진실은 존재하는가, 아니면 그렇게 보이도록 구성된 말인가? 그리고 그 진실을 누가 말할 수 있으며, 누가 침묵해야 하는가? 우리는 흔히 ‘진실을 밝히는 일’을 정의와 연결하지만, 실제 정치 현실에서 진실은 종종 말할 수 없고, 말해서도 안 되는 것으로 남는다. 말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정치의 본질이다.
한국 현대사의 특정 장면은 이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가보안법은 오랫동안 ‘사상의 자유’를 억압해 왔다. 노동운동이나 민주화운동 기록물은 전태일의 〈일기〉나 5·18 증언록, 노동 현장을 담은 영화들처럼, ‘이적표현물’로 규정되어 검열되고 금지되었다. 이렇게 지워진 진실은 더 이상 감각될 수도 없게 되었다. 랑시에르는 이를 “감각(적인) 것의 분할”이라 부른다. 누가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감각의 배치가 곧 정치라는 것이다. 이 질서를 전복하는 행위가 곧 미학적 정치가 된다.
임흥순의 영화는 바로 그 감각의 전복을 시도한다. 그는 말할 수 없는 자들의 침묵을 대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침묵이 지닌 감각의 울림을 고요하게 화면에 담는다. 대표작 ‘비념’(2012)은 제주 4·3 항쟁의 기억을 다룬다. 학살의 풍경, 바닷가의 유골, 끊어지는 생존자의 목소리. 해설은 없다. 그러나 설명보다 더 깊은 ‘감각의 진실’이 다가온다.
‘위로공단’(2014/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은 산업화 속에서 버려진 여성 노동자들의 얼굴을 응시한다. 화면은 조용하고, 카메라는 울지 않는다. 말해지지 못한 진실은 침묵과 응시 속에서 감각의 틈으로 끌어올려진다.
임흥순은 묻는다. 진실은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감각되지 못한 것인가? 지금 우리가 마주한 정치 현실은 그 감각 자체를 봉쇄하는 구조가 아닌가? 어떤 이들은 권력에 의해 모든 말과 행위가 철저히 조사되고 자의적으로 해석되어 법정에 서고, 또 어떤 이들은 그것에 기대어 기득권을 유지한다. 진실을 내용이 아니라 형식에서 찾고, 사람들로 하여금 “말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를 묻지 않는 사회, 그것이 오늘날 감각의 분할이다.
따라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진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왜 그 진실은 말해질 수 없었는가, 왜 보이지 않았는가이다. 그리고 예술은 바로 그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 임흥순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예술이란 ‘기억’이라는 형식을 통해 ‘말하지 못한 자’의 자리를 다시 열어주는 일이라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의 복원이 아니라, 진실을 ‘감각’할 수 있는 구조의 전환이다. 보지 못했던 자가 볼 수 있게, 듣지 못했던 자가 들을 수 있게, 말할 수 없었던 자가 말할 수 있게, 기존의 감각 질서를 다시 짜는 것, 그것이 예술의 정치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5-05-28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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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망각과 지배 서사에 저항하는 기억 투쟁
현대사에서 비상계엄은 ‘비상시 국가권력의 조치’가 아니라, 시민의 자유와 생명을 유린해 온 반복된 국가 폭력의 서사였다. 1948년 10월 21일 여순사건(10·19) 진압, 한국전쟁, 5·16 군사쿠데타, 1972년 10월 18일 유신체제 수립, 1979년 박정희 사망 다음날 10월 27일과 1980년 5월 17일 신군부의 비상계엄 전국 확대까지 ‘계엄’은 늘 국민의 저항을 짓누르는 장치였다. 이 모든 것이 많은 희생과 비극으로 점철된 사건이라면,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 이후 국민이 보여준 전국적 저항과 연대는 민주화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장면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은 신군부의 계엄령 확대와 헌정질서 파괴에 저항했다. 오늘날 되새겨야 할, 5·18 민주화운동의 보편적 가치이자 핵심은 ‘민주주의 보루로서의 국민 저항권’ ‘국가 폭력에 대한 시민들의 연대와 윤리의식’ ‘왜곡된 역사 정의와 진실 규명’이라 할 것이다. 5·18 광주를 다룬 많은 미술가 가운데, 1958년생 광주 출신 화가 이준석의 작품을 언급해 보자. 대표적인 오월 화가 홍성담처럼 이준석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직접 전남도청에서 시위대에 참여해 계엄군을 향해 돌을 던졌고, 총탄이 날아다니던 살육 현장을 목도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붓과 조각칼로 현장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현대 미술 역사에서 1980년대 민중미술은 실제로 5·18 광주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한다 할 수 있다. 이 민중미술은 단지 시대적 양식이 아니라, 삶과 현장에서 분출된 예술의 실천 그 자체였다. 순수미술의 울타리를 넘어 현실에 개입하고, 사회의 감각 구조를 뒤흔드는 새로운 예술운동이었다. 또한 민중미술은 페터 뷔르거의 관점에서 삶과 예술을 결합하고 예술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아방가르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민중미술은 민주화 이후 1990년대 초반부터 과거의 투쟁 현장 중심의 미술을 벗어나 다양한 장르적 실험과 도시, 환경, 젠더, 이주민 등 다양한 주제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준석은 그 가운데 우리의 역사 문화를 되돌아보면서 그 속에서 광주의 정신을 찾아내 접목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천개의 불상과 천개의 불탑을 만들면 새 세상이 온다는 전남 화순 운주사의 전설을 바탕으로 ‘화엄광주’ 연작을 제작한 바 있다. 그는 운주사의 불상과 불탑을 마치 사진 액자 모양의 프레임으로 그려 넣고, 그 속에 제주 4·3을 상징하는 한라산 봉우리 위에 5·18 민주화운동과 6월 민주항쟁까지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사에 등장하는 투쟁과 저항 장면을 콜라주적 방식으로 병렬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그 이미지들은 또한 4·19혁명과 부마민주항쟁으로도 겹쳐진다.
이준석의 캔버스는 말한다. ‘기억’이란 바로 망각과 지배 서사에 저항하는 ‘투쟁’이라는 것을. 미술평론가·철학박사
2025-05-14 [17: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