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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의대의 꿈과 의사라는 직업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들이 사직하고 병원을 떠나고 있다. 그들은 충분히 협의하지 않은 의료 개혁에 동의할 수 없다며, 진료 거부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정부는 그러한 의사들의 주장을 반박하며 각종 수치와 자료를 꺼내 들고 있다. 의사 증원이 필요한 이유와 절차를 충분히 제시했다며, 정당한 이유 없는 의료 중단은 불법 행위라고 공표하고 있다.
의사와 정부의 대치를 바라보는 대중들은 조마조마한 심정을 추스르고 있다. 혹시나 돌아올 의료 불이익을 걱정하면서, 두 진영의 충돌에 크게 유감을 표하고 있다. 언론은 두 진영의 대치 속에서 의사들의 파업과 사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편이며, 의대 증원과 의료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축이다. 특히 소외 지역의 의사 증원이나 의료 서비스의 균형 회복 측면에서 기존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의료 개혁이라는 사안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의사는 선호도 1위의 직업이다. 수능을 준비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성적순으로 학교를 지원하는 일이 잦은데, 현재로서는 그 어떤 학교도 의대의 입학 성적을 쉽게 능가하지 못하고 있다. 입시계에서는 전국 의대가 우선 충원되고, 그다음 대학 입시가 시작된다고 말할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의대에 들어간 이들은 자기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기 일쑤이고, 의사라는 직업을 근본적으로 차별화된 직업으로 간주하는 데에 익숙해진다. 이러한 의식은 그들의 영역을 성역처럼 보이도록 만들기까지 하는데, 이 특권 의식은 자기 자식을 의사로 소원하는 절대적 지지 위에서 정당화되고 있다. 그러니 작금의 사태에서 가장 근원적 책임은 의사를 특별한 이들로 만들어 버린 우리 자신에게 있다.
그렇다면 의료 개혁의 문제를 의대 증원이나 의사 확대 문제로만 국한해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만일 의사의 길이 타인을 위한 희생이라면, 의사가 되는 길을 이토록 강하게 제한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혹 진리에 대한 탐구라면, 더 많은 이들이 의학에 투신할 수 있도록 문호를 스스로 개방해야 합당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왜 우리는 의사가 되는 것을 선망하고 있는지를 다시 물어야 한다. 혹 우리는 안정된 직업으로서, 높은 수익으로서의 의사를 압도적으로 선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금의 의료 문제는 단순히 의사 수의 문제만도, 이를 휘어잡으려는 정부의 문제만도 아니다. 전 국민이 의사라는 직업에 목을 매고 자기 아들만은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기이하고도 절대적인 욕망에서 그 본질적 이유를 찾아야 한다. 너도나도 의대만 부르짖지 않고 필요한 이들이 꼭 필요한 이유로 의사가 되는 길을 걸을 수만 있었다면, 어쩌면 우리는 의대 증원을 굳이 추진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의사라는 소명을 다하기 위하여 소아과 의사가 되는 이도 자연스럽게 늘어났을 것이고, 지역이나 소외된 곳으로 내려가 자신의 의술을 기꺼이 다하려는 이도 충분히 확보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위하여 봉사하고 다른 이를 위하여 희생하는 소임 역시 자연스럽게 본분으로 포함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냉정하게 자문해 보자. 왜 우리는 의사라는 직업을 선망하고, 우리의 자식들이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지를. 혹여 더 많이 가질 수 있고, 더 높게 오를 수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는지를. 그렇다면 우리가 대면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았다고도 할 수 있다. 덜 가질 수 있는 곳에서도 기꺼이 일하고 더 낮은 곳의 이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이들을 만나는 일이 그 무엇보다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러한 이들을 충분히 만날 수 있을 때까지, 우리의 시선과 결의가 결코 거두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2024-03-1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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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그림자
어둠이 내려오자, 갑자기 어떤 따스함 - 하루종일 밖에서 뛰어놀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면, 어머니가 기다리는 따뜻한 집이 생각나듯 - 그런 따스함이 그리워졌다.
따뜻한 아내의 미소가 떠오르자, 아내와 같이 명절 때마다 다녀갔던 아내의 친정집이 생각났다. 처가가 생각난 것은 아마, 이제는 아내가 기다리는 집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상기 되어, 뼈저리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명절 때면, 나는 시골집에서 제사를 지내고 집안사람들의 방문이 끝날 때쯤에야 아내의 친정으로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오후 늦게야 아내의 친정에 갈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아내는 아이처럼 들떠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큰 처남과 작은 처남, 그리고 아내의 삼촌까지도 모두 가족들을 데리고 와 있었으므로, 처가 집의 명절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장모님이 뛰어나와 반기고, 장인어른은 얼른 방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우리는 밤늦도록 지난 세월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은 아래채 할아버지 방을 차지했다. 그런 기억은 나를 항상 따뜻하게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와 장모님, 그리고 장인어른께서 일찍 돌아가시자 아내의 친정집은 빈집이 되어, 버려져 있었다.
아내의 웃음과 처가 가족들의 따스한 눈길과 반가운 인사가 있던 곳, 온 가족들이 다 함께 있던 곳, 그때가 가슴 저릴 만큼 그리워졌다. 나는 차를 아내의 친정집이 있는 마을로 몰았다. 아내와 명절의 들뜸으로 가던 길, 정다운 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나러 간다는 즐거움에 설레던 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곳은 아무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빈집이며, 이제 나는 혼자였다. 그래도 나는 그 집이 보고 싶었고, 그 집은 외로울 때면 와서 보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낯익은 굽이를 하나 둘 지날 때마다, 그 세월의 기억들이 하나둘 정답게 다가왔다. 아내의 친정집 마을은 희미한 달빛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마을 앞 정자나무 아래에 차를 세웠다. 거대한 정자나무 그림자가 나와 차를 덮었다.
나는 폐가가 된 처가의 대문을 열고 마당에 섰다. 처연하게 달빛을 담고선 폐가가 나를 맞았고, 괴괴한 고요가 흘렀다. 아무것도 나를 아는 체하는 것이 없었다. “자네 왔는가!” 반기던 처가 식구 누구도 없었다. 그 따뜻한 세상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하얀 달빛 속에서 내 그림자를 밟으며 할 일 없이 마당을 서성거렸다.
내가 이곳에 올 때마다 나를 반갑게 맞아 주던 그 사람들을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아내가 투병을 시작할 때부터, 나는 습관적으로 아내가 뛰어놀았을 처가 동리의 들과 개울을 생각했다. 아직 어린 아내가 산과 개울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아마, 아내는 그때가 가장 행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투병하는 아내가 어린아이가 되어 햇살에 까맣게 그을려 개울에서 뛰어노는 꿈을 꾸기도 했다. 내 허전하고 허기진 마음이 찾은 것은, 내 마음이 빌 때마다 나를 불러 세우는 아내와 함께했던 그 기억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내가 붙잡아 둘 수 있는 그 정다움의 실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곳에 섰지만, 내가 붙잡아 둘 정다운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내와 함께했던 그 순간들은, 붙잡아 두고 싶어도 잡아 둘 수가 없는, 그리고 너무 아리고 아파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였다. 내가 찾은 것은, 아니 달빛에 젖은 나를 찾아온 것은, 더 지독한 그리움과 외로움이었다.
볼이 젖고 있는 것을 알고서야, 나는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2024-03-0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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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MBTI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딸아이가 다가와 지금부터 질문할 테니 잠시만 집중해 달라고 했다. 가족 모두가 거실 소파에 뒤엉켜 있어도 제각각 휴대폰을 보며 따로 노는 게 일상인지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대답하라는 협박이 오히려 반가웠다.
질문은 대략 이런 식이었다. 남의 감정에 쉽게 공감하는가, 혹은 새로운 일과 만남을 좋아하는가, 질문을 듣고 자신에 해당하는 정도를 다섯 등급으로 나누어 대답하시오. 딸은 수십여 개의 질문을 연이어 퍼붓고는 이윽고 그 결과에 탄성을 질렀다.
“우와, 아빤 나하고 비슷해요.”
“뭐가?”
“아빠는 내향적이며 상상력과 감정이 풍부하고 계획적인 사람이에요.”
어리둥절한 내 눈을 보며 딸이 부연 설명 해줬다. 성격 테스트한 거예요. 외향적인 E형이 있고 내향적인 I형이 있어요. I형이라고 해서 사람과 만나는 것조차 싫어하는 건 아니래요. 그렇게 설명하던 딸이 E형과 I형 차이를 내 수준으로 이해할 만한 예를 들어줬다.
친한 친구와 늦도록 술 먹고 놀았을 때, E형은 친구와의 만남 자체로 휴식이 되었지만, I형은 집으로 돌아와 이제 좀 쉬어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오호? 나와 비슷한데?
내가 관심을 보이자 딸은 아예 직접 읽어보라며 휴대폰을 건네줬다. 건네주며 요즘 MBTI 모르는 사람 없다. 심지어 입사 면접 때에도 MBTI 유형을 참고하는 세상이며, 소설가가 이런 걸 몰라서 되겠냐며 지청구까지 준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살펴보니 내 유형은 INFJ였다. 통찰력 있는 예언자 어쩌고저쩌고하는 내용을 읽어볼수록 내가 그 유형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그 참 신통하네.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나’를 질문에서 선택했으니, 내가 생각하는 ‘나’와 딱 맞아떨어질 수밖에. 그러니 이 MBTI라는 것은 본인이 의식하고 있는 ‘나’에 관한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도 있겠다. 물론, 진실로 그런 사람일지 아닐지는 별개의 문제다.
사실, ‘나’를 규정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이나 까다로웠으면 철학이라는 영역이 진작 생겼을까. 철학은 결국, 존재와 그 주체인 ‘나’에 관한 근원적 질문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많은 주장을 살펴볼 수 있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자아’를 말했고, 후설은 순수의식과 순수자아를 주장했다. 프로이트는 자아, 초자아, 이드라는 세 가지 정신적 영역을 소개했고, 하이데거는 존재는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될 뿐이며 인간은 스스로 자기 존재를 기획해서 선택한다고 강조했었다. 이런 말을 들을수록 더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자아와 의식을 따진다면 그 의식이 깃든 몸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니, 어쩌면 의식이 깃든 게 아니라 몸에서 의식이 발현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몸에 생명이 깃들어 존재 욕망을 얻게 된 건지, 생명이 몸을 갖추게 한 건지 헷갈리는 것과 비슷하다. 몸을 이루는 세포들도 결국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입자는 결국 에너지를 품은 파동에 불과하다는 이론을 떠올리면 ‘나’라는 것이 대체 뭔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다.
이렇듯, 파고들면 들수록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나’라는 존재이다. 하지만, MBTI 열풍을 보면 누구나 자기 자신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렇다고 자신의 내면과 본질을 명쾌히 말할 수 있는 자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만약, 소크라테스가 내 눈앞에 나타나 너 자신을 알고 있냐? 라고 다그친다면 나는 얼떨결에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네에? 저는 인프제(INFJ)라던뎁쇼?”
2024-02-2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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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매화 한 송이
며칠 전 길을 걷다가 올해의 첫 매화를 보았다. 봄이 되면 수많은 종의 꽃들이 피어나겠지만, 겨울이 채 가기 전에 찬바람을 견디며 고고하게 꽃을 피우는 매화는 언제나 경이롭다. 그런 특성 때문에 예로부터 많은 선비들이 매화를 예찬했을 것이다. 특히 퇴계 이황의 매화 사랑은 유명하다.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에게도 애절한 러브 스토리가 전해지는데, 그 이야기에도 매화가 중요한 매개로 등장한다. 퇴계가 단양 군수로 있던 시절, 두향이라는 관기(官妓)가 그를 흠모했고 두 사람은 시(詩), 서(書)에 대한 교감과 함께 서로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둘의 사랑이 시작된 지 9개월 만에 퇴계는 경상도 풍기 군수로 전근을 가야 했고, 규정상 관기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는 혼자 떠나게 된다. 그때 두향은 무너지는 마음을 견디어내며 퇴계에게 매화 화분을 선물했다고 한다. 이별 후 그들은 죽을 때까지 다시 만나지 못하고 서신만 주고받았는데, 퇴계가 두향에게 보낸 시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누렇게 바랜 옛 책 속에서 좋은 말씀을 보면서/ 비어 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 보니/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고 한탄을 말라.’ 나는 차가운 공기 속에 피어난 하얀 매화를 보면서, 어찌할 수 없는 이별 앞에서 그저 매화 화분을 건네야 했던 두향의 마음을, 그리고 그 매화 화분을 앞에 두고 공부를 이어나가는 퇴계의 마음을 떠올려 보게 된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요가 수련을 하고 있다. 사실 처음 한두 달 동안은 그저 선생님의 시범을 눈치껏 따라 하기에 급급했고, 몸의 중심을 잡기도 호흡을 고르기도 힘들었다. 요가를 하면 정신 수련이 된다는데, 정신 수련은커녕 내 몸뚱어리 하나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몇 달 동안 계속 보고 듣고 따라 하면서 육체적 고통을 견디다보니 동작이 몸에 익으면서 자연스레 배우게 되는 바가 있었다. 나의 요가 선생님은 잔소리가 심한 편인데, 힘들어도 참고 견뎌보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특히 화를 많이 낸다. 카운팅을 하다 말고 폭풍 잔소리를 한다. 그럴 때는 진심으로 절망스럽고 그냥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고 싶다. 선생님이 ‘열’까지 세어야 힘든 자세를 풀고 한숨 돌릴 수가 있는데 ‘아홉’에서 카운팅을 멈춘 채 갑자기 화를 내고 잔소리를 시작하면 어떻게 견디라는 것인가. 그런 원망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끝까지 참고 버티는 쪽이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다. 운동 신경이 별로여서 체육 점수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체력장을 할 때만큼은 늘 만점을 받는 종목이 있었다. 오래달리기와 오래 매달리기. 그냥 참고 견디면 되는 것 말이다. 심지어는 수업 시간에 단체 벌을 설 때 끝까지 바른 자세로 손을 잘 들고 있다고 칭찬을 받은 적도 있다. 다른 아이들이 몸을 배배 꼬고 팔을 은근슬쩍 내려서 머리에 걸치고 할 때, 나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양팔을 귀 옆에 딱 붙인 채 끝까지 버텼다. 그때 내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오기였는지 슬픔이었는지 희망이었는지. 다만 내가 확실히 알고 있었던 것은, 그렇게 참고 버티다보면 언젠가 끝은 온다는 사실이었다. 그 고통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을 회피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끝날 때까지 괴로움을 고스란히 체감하며 견디다 보면 몸에도 마음에도 근력이 붙는 것이 느껴졌다.
물리적으로 이 겨울이 끝나더라도, 누군가는 여전히 남아있는 지독한 한기를 고통스럽게 버텨내야 하는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우리는 마음의 근력을 단단하게 쌓아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는, 작고 하얀 매화 한 송이가 정갈하게 피어날 것이다.
2024-02-2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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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부산 연극과 전용 극장
연극 전용 극장 건립 논의가 수면 위로 부상하자, 부산 연극인들은 기대와 우려가 섞인 시선으로 잔뜩 긴장하고 있다. 부산 연극계의 숙원인 전용 극장이 드디어 건립되어 연극인의 품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직은 그 약속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지난 많은 공약(空約)처럼 공염불로 사라질 것을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공연 단체나 연극인에 비해, 극장과 무대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많은 연극인들은 자신들이 마음 놓고 연극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고, 기존 극장은 시설과 규모에서 적정하지 않다고 성토한다. 그러면서 부산 연극인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불편한 제약 없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극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연극인의 주장을 이해 못 할 바는 없다. 부산 연극계를 위해서도 시설과 규모, 편의도와 인지도를 두루 갖춘 극장이 생긴다면, 연극의 장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부산서 연극전용극장 건립 논의 활발
지역 연극제작 환경부터 살펴야
전용극장 운영방안·철학 숙고 필요
다만 부산 연극인들이 간과한 사실도 있다. 그것은 무대를 탓하기 이전에 그 무대 위에 올라야 할 연극과 그 연극을 만드는 제작자 그리고 그 제작 환경 역시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부산에 적지 않은 소극장이 있지만, 이러한 소극장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에는 사실 관심이 덜한 편이다. 기존의 극장을 나누어 쓰는 방식에 대해 상대적으로 둔감하며, 현재의 극장과 인프라를 보완 수리하는 데에는 인색하여, 새로운 시설과 지원을 바라는 마음이 지나치게 커졌기 때문이다. 각자의 공간을 바라는 마음과 기존의 시설을 함께 사용해야 한다는 마음이 제대로 융화되지 못하여, 새로운 극장의 건립만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크다고 할 수 있다.
부산 연극인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전용 극장을 반드시 얻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과거의 사례와 현재의 실책을 인정하면서도 일단 극장부터 받고 보자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에는, 부산시의 약속 남발도 단단히 한몫했다. 이전부터 전용 극장을 짓겠다는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그 논의가 번번이 무산되는 좋지 못한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에 부산 연극인들은 일단 지을 수 있을 때 지어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으며,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젓자’는 무리한 욕심도 숨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졸속으로 지은 공공건물이 때로는 짓지 않은 것만 같지 못한 상황을 초래하는 일을 우리는 숱하게 보아왔다. 극장을 지어야 한다면, 왜 지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 지어야 하는지, 짓고 난 이후에는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적자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때로는 그러한 극장이 지닌 진실한 이익이 무엇인지를 면밀하게 검토하는 일이 우선 이루어져야 하고 이에 대한 광범위한 동의 또한 뒤따라야 한다.
부산 연극인의 전용 극장 요구는 원칙적으로는 정당하다. 하지만 성급한 노 젓기나 선거용 떼쓰기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공공 전용 극장을 추진하는 당국도 이전처럼 헛된 공약이나 시의성 정책을 남발해서는 곤란하다. 과거의 역사가 말해주듯, 선심성 공약, 외골수 정책, 잘못 판단된 사업의 피해자는 그 공약과 정책과 사업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시민이고, 설립 이후에도 출혈과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관객이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부산 연극의 전용 극장이 하루속히 설립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하루속히’는 목적과 대상, 운영 방침과 극장 철학이 충분히 논의되고 면밀하게 준비된 이후부터의 ‘하루속히’이다. 그렇지 않다면, 겉만 그럴듯하게 지어진, 또 다른 고가의 건물 앞에서 인증 사진만 찍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날만 ‘하루속히’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4-02-1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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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G선상의 아리아
그날은 맨드라미꽃이 비를 맞고 선 어느 오후였고, K 시인은 사위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날이었다. K 시인은 담담히 그 딸과 사위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시인의 딸은 스무 살 때 운명적인 남자를 만났는데, 목발을 짚고서야 겨우 걸음을 옮기는 청년이었다. 청년은 열 살 때, 성난 어른들이 총을 들고 고함을 지르며 뛰어다니는 5·18 광주의 어느 거리에 서 있었다. 어떤 총알이 날아와 아이의 허리를 관통했다. 아이는 아무 의도도 없이, 다만 흥분과 증오로 가득 찬 미친 현장에 우연히 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날로 아이는 두 발로 뛰어다닐 수 없게 되었고, 누군가가 말을 걸어 주기만을 기다리는 수줍은 청년이 되었다.
시인의 딸은 이 우울한 청년에게 처음 친절한 말을 걸어 준 명랑한 아가씨였다. 그후 청년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 불행한 청년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늘 허리띠를 잡고 늘어지는 불행은, 청년의 허리 병을 악화시켜 기어이 그를 휠체어에 앉혀 버렸다. 이제 이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휠체어를 밀어주며, 그 잔인한 운명과 같이할 사람이었다. 하지만, 청년은 이미 사랑하는 여자와 육체적 사랑도 나눌 수 없었고 아이도 생산할 수 없는 몸이었다.
딸은, 이미 인생의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경험한 어머니에게 이 불행을 짊어진 청년과 혼인하겠다고 선언했다. 희생이 타락한 영혼을 수렁에서 구한다는 이야기는, 종교나 낭만주의 문학이 추구하는 비현실적 관념이다. 울면서 말리는 어머니에게, 딸은 이 외로운 청년을 사랑한다며 혼인을 강행했다. 그래서 이 사랑스러운 딸은 평생 시인의 아픈 가슴이 되었다. 살림도 가난하고 아이도 없었지만, 이 청년과 딸은 30여 년간을 한결같이 사랑하는 부부로 살았다.
맨드라미꽃이 막바지에 이를 때쯤, 시인의 딸을 평생 붙잡고 있던 청년이 세상을 떠났고, 이제 흰 머리카락이 잡히기 시작하는 딸은 혼자가 되었다. 이제 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이야기를 들을 때, 내 귀에는 저 솔베이지의 노래가 자꾸 되풀이 되어 맴돌았다. 한 남자만을 조건 없이 사랑했다는 사실에서, 두 여자는 동일했다. 젊은 여인이 사회적, 물질적 성취나 성적 욕망을 포기한다는 것은 현실적 삶을 포기한 것과 같을 것이다. 아찔하도록 설레고 감미로운 젊음과 고혹적인 쾌락을 휴지처럼 구겨서 버릴 수 있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백치(白癡) 같아 분별하거나 셈할 줄도 모르는, 지순(至純)함이라는 단 하나의 마음밖에 없을 것이다.
여러 개의 현으로 온갖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현란한 바이올린이, 단 하나의 현으로 오직 하나의 주제만 노래한다면 그것도 음악이 될까? G선상의 아리아는 가장 굵은 G선의 음율만으로 완성된, 장중하면서도 애조 띤 독창곡이다. G선이 울리면 바이올린은 전체가 진동한다. 시인의 딸은 그 지순이라는 마음의 가장 굵은 선 하나를 선택하여 어떤 삶 하나를 연주해 마쳤다. 듣는 내 삶의 바닥조차 진동시키는 장중한 연주였다. 온갖 조건이 따라붙는 시정의 사랑을 보며, 시인의 딸은 무슨 생각을 할까?
삶은 그 내용이 참으로 절실했다고 하더라도, 세월이 흐르면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해진다. 서글프게도 이 여인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2024-02-0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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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운명 바꾸기
학창 시절, 친구들과 배낭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기슭을 헤매다가 발견한 어느 계곡에서 야영할 때였다. 텐트를 설치하고 저녁 준비에 바쁜 우리 앞에 갑자기 백발의 할머니가 나타났다. 외딴 산중에 지팡이를 짚고 등장한 인물에 우린 깜짝 놀랐다. 할머니는 영험한 산에 은거하여 도를 닦는 중이었는데, 젊은이들 인물이 어찌나 출중한지 현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뜻밖의 상찬에 우린 말로만 듣던 도인을 실제로 보게 되었다며 탄복했고, 우리의 반응에 고무된 도인은 기꺼이 모두의 미래를 봐주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차례대로 할머니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첫 번째로 나선 친구는 장차 국회의원이 될 것이라 했다. 두 번째 친구는 판검사, 세 번째 친구는 사업가가 되어 큰 부자가 될 것이라 예언해줬다. 마지막으로 내 얼굴을 본 도사는 혀부터 쯧쯧 찼다. 굶지 않으려면 기술을 배워 피땀 흘려 일해야 하고 그래야 백 원짜리 동전 몇 낱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망연자실했고 도사는 친구가 사례로 내민 라면 두 봉지를 챙겨 홀연히 사라졌다.
상심에 빠진 내 주위로 친구들이 모여 위로의 말을 건넸다. 국회의원이 될 친구는 백 원짜리 동전 몇 개만 있어도 생계가 가능한 정책을 펼칠 것이며, 사업가가 될 친구는 자신의 공장 정문에 취업시켜 줄 것이며, 판검사가 될 친구는 내가 도둑질로 잡혀 오더라도 우리 어머니께 일러바치지 않겠다고 약속해줬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러 친구들은 각자의 직업을 가졌다. 판검사가 되리라 했던 친구는 프로그래머가 되었고, 사장님이 되리라 했던 이는 교수가 되었다. 국회의원이 될 것이라 했던 친구는 대기업 중역이 되었고, 백 원짜리 동전만 벌어먹는다는 나는 머리를 쥐어짜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왠지 나만 맞아떨어진 느낌이었다.
해프닝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 나는 그 예언이 꽤 신경 쓰였다. 나름 큰 포부를 가지고 그 꿈을 이루려 애를 쓰기도 했었다. 그런 내 행동은 정말로 사람의 운명이 정해져 있을까 하는 질문과도 연결되었다.
모든 일이 이미 정해졌다는 이론이 있기는 하다. 우주가 탄생하여 물질과 공간, 시간이라는 것이 생길 때부터 우주는 이미 확정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기억은 ‘과거’라 이름 붙인 데이터일 뿐이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상 속 우리의 삶도 필름으로 돌아가는 영화처럼 하나하나의 장면이 확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자각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현재뿐이다.
그렇다면 세상 모든 일이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걸까? 나는 이런 주장을 들을수록 인간과 생명의 가치에 무게를 더한다. 만약 생명체가 우연히 탄생하였다면, 그래서 우연히 탄생한 종족의 번성만을 위한 삶이라면 일정 수준 이상의 진화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명체는 더욱 진화했다. 지혜를 가지게 되었고, 본능 이상의 삶을 추구하는 ‘의지’라는 것을 지닌 인간이 등장하였다. 특히 인간은 마치 정해진 길을 걷듯 필연적으로 진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전혀 다른 해석을 고집한다. 인간은 필연을 극복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모순을 행하고 새로운 우연을 끊임없이 창조해 내는 것이 그 증거이다. 기적을 만들어내고, 또 그 기적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 되도록 노력한다. 그렇기에 실패는 인간이 감당해야 할 하나의 부산물이 되었다. 인간은 원래부터 필연을 극복하고 운명을 극복하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나에게 묻는다.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내 운명을 바꾸었을까?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교량(橋梁)이 되었을까?
2024-02-0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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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목격자
대학원 시절, 교직 이수를 위해 교육학 과목들을 수강했는데 그중에 아직까지 또렷이 떠오르는 수업이 있다. 그때 교수님은 우리에게 학창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상처받았던 일들을 이야기해 보라고 했다. 학생들은 처음에 머뭇거렸으나 누군가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하자 하나둘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놓았다. 모두의 이야기 속에서 오랫동안 상처로 남아 있는 일들은 대체로 학급의 모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모욕을 당한 일들이었다. 그날 이야기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한 남학생의 증언이었는데, 그는 수업 시간에 어떤 이유로 교실 앞으로 불려 나갔고,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폭언을 쏟아붓던 교사는 그 학생에게 수업이 끝날 때까지 교실 뒤에 있는 쓰레기통 안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너는 쓰레기 같은 존재이니 그래야 마땅하다면서. 학급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들어가 “나는 쓰레기다”를 외치고 한 시간 동안 그 안에 있어야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남학생은 오열했다.
나는 학창 시절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었으며 늘 고분고분하고 규칙을 어기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딱히 혼이 날 일은 없었는데, 어떤 오해로 인해 딱 한 번 선생님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수업 시간은 아니었고, 방학 중 청소 당번 일이 되어 학교에 갔을 때였다. 청소 당번인 아이들이 스무 명쯤 모였고 그날 당직인 선생님의 지시를 기다리며 교무실에서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줄을 서서 조용히 기다리라는 당직 선생님의 말에도 여전히 아이들이 떠들고 있자 선생님은 화가 나서 아이들을 세워놓고 야단을 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몇몇 아이들은 여전히 떠들며 킥킥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야단을 치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고성으로 폭주하더니, 나를 지목하며 앞으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갔다. 선생님은 오른팔을 높이 올려 내 뺨을 후려치더니 여전히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웃어? 어? 선생 말이 말 같지 않지?” 아이들은 순간 조용해졌다. 나는 벌게진 뺨을 부여잡고, 웃지 않았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이지 나는 웃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웃었든 웃지 않았든 그 사실 여부는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학생 하나를 본보기로 삼아야 했고 그게 나였던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자칫 교사 전체에 대한 일반화로 이어질까봐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물론 이것은 소수의 교사들 이야기이고 그것도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쯤의 일들이다. 지금은 학교에서 이런 일이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오히려 교사가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 상처받는 일이 허다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학교에서도 이런 일들이 드물지 않게 일어났다. 그리고 학교 밖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흔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 인격체를 무자비하게 무너뜨리는 일. 잘잘못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지기도 전에, 일단 본보기로 삼아 모욕을 주고 폭력을 행사하고 수많은 눈들이 그것을 목격하게 하는 일. 결국 그 시선들 속에서 수치심과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며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일.
우리는 최근에 그러한 일을 다 같이 목격했다. 목격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했나. 방관했을까, 쑥덕거렸을까, 연민했을까, 분노했을까. 결국 그는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버렸고, 우리는 ‘나의 아저씨’를 잃었다. 이번엔 목격자였으나 언젠가는 우리 역시 그가 섰던 자리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그때서야 우리는 그의 마음을 온전히 알게 될까. 그건 너무 늦은 일이 될 것만 같다.
2024-01-2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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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정과 상식,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보이는 것을 보인다고 하고 보이지 않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다. 사람들마다 각자 볼 수 있는 것이 다르다고 해서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상식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언젠가부터 그러한 비상식적인 세상을 보고 있었고, 그렇게 세상을 보도록 강요당하고 있었다.
작금의 현실을 우회적으로 진단했던 영화가 있었다. 영화 ‘올빼미’의 주인공은 세상을 볼 수 없는 봉사이다. 인조 시대의 말로는 소경 혹은 맹인이고, 현재 말로 하면 시각 장애인이다. ‘올빼미’의 주인공 천 봉사는 비록 앞을 보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능력을 지닌 의생이기도 했다. 그는 의학적으로 다른 의생이 알지 못하는 병을 볼 수 있었고 그 병을 낫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는 인간 그 자체를 보는 데에는 한계를 지녔지만 대신 인간의 문제와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지닌 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천 봉사는 다른 사람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또 하나의 특이한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보이는 것을 보인다고 말하지 않는 능력이다. 그 이상한 능력은 그가 살아남기 위하여 체득한 능력이기도 했다. 특이하게도 천 봉사는 밤에는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하층민인 그는 그 사실을 감춤으로써 자신의 생명과 직업을 보존할 수 있었다.
영화상에서 천 봉사의 등장과 그의 능력이 드러나는 순간은, 보이는 것을 모두 보고 있다고 믿는 지금-여기의 우리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준다. 지난 2년 동안, 버젓이 알고 있는 사실을 못 본 척 살아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이들에게는 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누가 무엇을 표절하고, 누가 무엇을 변경하고, 누가 무엇을 갈취하고, 누가 무엇을 받았고, 누가 무엇을 꾸몄는지를 버젓이 보고 있으면서도, 우리들은 천 봉사처럼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러한 누구를 또 다른 누가 처벌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지를 버젓이 알면서도,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숨기는 능력을 키워야 했다. 처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은 여전히 무사한데, 그 사람을 말하는 이는 수모를 겪는 이상한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마냥 그리고 그냥 지켜보는 편이 안전한 세상이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어쩌면 천 봉사의 재능을, 그러니까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특수한 능력을 이미 본받아 실행하고 있었던 셈이다. 천 봉사처럼 더 좋은 자리와 더 안전한 자신을 위하여, 보고도 보지 않은 척하는 재주를 어느새 터득하고 있었던 셈이다. 생각하면 부끄럽다.
그런데 ‘올빼미’에서 이런 천 봉사도 변하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로 하면서, 그토록 못 본 척했던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방법을 찾고자 한다. 그 오래된 동기는 자신을 아끼던 이가 죽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어야 했던 죄책감이었지만, 그 마지막은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선 선각자들이 다시 권력에 빌붙어 타협하는 꼴 보기 싫은 세상에 대한 분노였다. 그러니 ‘올빼미’는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 세상을 살아야 하는 이들의 분노를 담은 영화였던 것이다. 각자 돌아보면 알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도 못 본 척하고 있고, 알아도 왜 분노하지 않고 있는지.
보이는 것을 본다고 하며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려고 하는 것이 ‘공정’이다. 뇌물을 받고도 문제없다고 버젓이 버티는 사람들, 타인의 죄는 먼지까지 찾아내면서도 자기 죄는 대범하게 넘어가는 권력들, 그들을 옹호하다 못해 성역화하는 최고 권력. 그들은 인조의 시대가 어떻게 끝나고 어떻게 비판받는지를 참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공정과 상식은 야만의 시대가 지나도 여전할 것이고, 최고 권력이 아무리 강성해도 끝내 꺾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24-01-1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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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나무는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정원의 나무가 갑자기 죽었다. 나이는 35살 정도이며, 우리와 한 뜰에서 산 지가 29년이 된 만리향이었다. 빌라 사람들은 이 나무가 더 이상 싹을 내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혀를 찼다. 만약, 그 옆의 나무도 같이 시들었거나 죽었다면 토양이나 배수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진단했을 것이지만, 그 옆의 키 작은 나무는 올해도 멀쩡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짐작을 말하기 시작했다. “102호네 대신 죽은 것일 거야!”. 그러자 이 만리향이 죽은 이유를 추론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다 같이 “그래 맞아! 102호네 대신 죽은 걸 거야!”라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빌라에서는 이 멀쩡하던 만리향이 죽은 이유가, 이 나무가 서 있는 화단 청소를 가장 열심히 했고, 그래서 얼굴을 가장 자주 대했던 102호네가 중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나무가 그 대신 죽은 것이므로, 이제 102호네는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고 예감했다.
102호 안주인은 이 만리향 나무를 가꾸었고, 항상 그 앞에서 사람들과 담소했으므로, 사람들은 ‘102호네’와 만리향을 같이 연상했을 것이다, 그래서 건강하던 102호네가 갑자기 병에 걸려 입원한 일과, 만리향이 갑자기 죽은 것을 연관 지어 생각했다. 만리향의 까닭 모를 죽음에 대한 마땅한 해석이 필요했고, 사람 좋은 102호네의 생환을 바라는 마음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달랐다. 우선 빌라 사람들이 이 만리향을 과연 정말 좋아했느냐는 것이었다. 우선 고백하지만, 나부터 이 만리향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의아해할 일이지만, 우선 만리향에는 미약한 분뇨 냄새 같은 것이 섞여 있었고, 너무 짙어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래서 만리향이 피는 계절이면 나는 창문을 닫고 지냈고, 나중에는 이 지독한 냄새에 독성은 없을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 나무가 성장함에 따라 창 앞을 점점 많이 가리게 되고, 따라서 창으로 투사되는 햇살이 점점 적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지 작업를 할 때마다, 나는 빌라 사람들 몰래 전지 작업자에게 부탁을 하곤 했다. “정원 나무가 너무 크면 문을 가려 안 좋지요! 만리향 가지를 좀 더 낮게 치세요.” 그러나 한 해가 지나면 나무는 더 크게 자라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재촉했다. “작년보다 더 낮게 치세요!” 나의 닦달에 작업자는 사다리 위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느 날 만리향 잎이 시들어 떨어졌고, 봄이 되어도 나무는 싹을 내지 않았다. 우리는 비로소 만리향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102호네 대신에 만리향이 죽었다고 했지만, 나는 그 나무가 죽은 진짜 이유를 안다. 사실은 아무도 그 존재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내가, 그 존재가 창문 앞 공간과 햇살을 가린다는 이유로 반기지 않았고, 심지어 그 나무가 일 년간 이슬과 햇살을 모은 힘으로 피워 올린, 그 존재의 빛인 꽃조차도 냄새가 심하다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서 나무는 아름다운 존재로 인정받지 못해서 창피함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더 낮게 자르라고 주문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나무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미안해요!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네요, 새처럼 날 수도 없고 지렁이처럼 기어 다닐 수도 없으니...,”
만리향이 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죽은 나무를 베는 것에 반대했다. 그 이유는 내가 너무 미안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무가 죽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알았다. 나무는 내가 평소 그에게 하는 말을 전부 듣고 있었다는 것을.
※약력 :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법률사무소 근무, 수필집 〈찔레〉
2024-01-1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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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해맞이
한 해가 지나갔다. 그리고 새 해가 떠올랐다. 새로운 해는 저마다의 각오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안고 희망찬 빛을 되쏘아준다. 빛은 생명의 근원이며 살아갈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일 년이 지났는데 새해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에, 이런 빛의 의미를 넣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모든 사람이 빛을 한껏 나눠 받기를 바란다. 그래서 모두가 빛의 특성을 이어받아 심장으로, 손끝으로 빛의 따스함을 나눠줄 수 있기를 소원한다. 부디, 온 누리에 고루고루 빛이 비쳐 모두가 따뜻해지는 새해가 되기를
어떤 이는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위해 어둑새벽부터 집을 나선다. 산맥 위로 먼동을 밝히는, 혹은 수평선을 물들이며 광휘를 드리우는 빛의 거룩한 본체를 보기 위해 시린 발을 동동거리며 기다린다. 그 기다림은 어쩌면, 빛이 세상 전부에 골고루 비추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해님의 빛은 온 세상을 골고루 데워준다. 고급 승용차의 코팅된 선루프, 배달 오토바이의 차가운 안장, 녹슨 손수레의 낡은 바퀴에도 빛살은 도달한다. 그렇다. 빛은 모두에게 공평하다. 그 빛을 가로막는 돌출물만 없다면 말이다.
돌출물은 각양각색이다. 우뚝 솟은 누군가의 기념탑일 수 있으며, 거대하게 확장된 건축물 탓일 수도 있다. 돌출물은 상상도 못할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심지어 햇볕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 두 팔을 벌리고 선, 바로 내가 될 수도 있다.
그런 것들로 그림자가 생긴다. 이 세상이 밋밋한 평면이 아니라면, 따라서 이 세상이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다면 그림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피치 못할 그림자라 하더라도 저마다의 삶은 너나없이 소중하다. 따라서 그 응달은 잠깐이어야 한다.
다행히 태양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여 준다. 지구가 움직인 탓이긴 하지만, 아무튼 덕분에, 잠깐이나마 음지를 양지로 만들어준다. 그런데도 충분히 빛을 받지 못하는 곳은 여전히 많다.
너무 튀어나오고 기형적으로 구부러진 돌출물은 음지가 양지로 바뀔 기회마저 앗아가 버린다. 오랜 그늘을 벗어나려 해도 뿌리가 깊어서, 이동할 방법이 없어서, 혹은 병약하여 양지로 옮길 여력조차 없다면 그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한데, 빛에는 특이한 성질이 참 많다. 그중에 ‘푸아송의 점’이라 불리는 현상은 아주 신기하다. ‘푸아송의 점’은 둥근 물체에 빛을 쏘아서 생긴 그림자 한가운데에 밝은 부분이 생기는 현상을 말한다. 그림자 한가운데에 밝은 부분이 생긴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마치, 어둠이 가장 깊은 곳에는 오히려 빛이 모여드는 것처럼 보인다. 이 오묘한 현상으로 빛이 참으로 위대하고 자애로운 힘이라고 여겨도 되지 않을까 싶다. ‘푸아송의 점’은 빛의 회절 특성 때문이라고 한다. 회절과 간섭은 빛이 파동성을 가졌다는 중요한 증거로 제시되는 특성이다.
즉, 빛은 직진하는 성질을 가졌지만, 방해물의 뒷면까지 돌아 들어가는 회절의 특성도 가졌다. 이는 대쪽같이 단호한 성격이지만, 보이지 않아 소외된 곳에도 잊지 않고 손길을 내미는 따스함도 가졌다는 의미이다.
모든 사람이 빛을 한껏 나눠 받기를 바란다. 그래서 모두가 빛의 특성을 이어받아 심장으로, 손끝으로 빛의 따스함을 나눠줄 수 있기를 소원한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빛의 피조물이 아니었던가. 기왕 돌출되어 있다면 때때로 몸을 옮겨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틀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때때로 활짝 벌린 두 팔을 오므리고 몸을 동그랗게 말아, 그림자의 가장 깊은 곳에 밝은 점을 만들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부디, 온 누리에 고루고루 빛이 비쳐 모두가 따뜻해지는 새해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4-01-04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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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모두가 축복받는 겨울
마트에 갔다가 ‘보조개 사과’라고 적힌 사과 한 봉지를 사 온 적이 있다. 우박을 맞아 작은 상처가 생긴 사과들에게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그 이름을 보면서, 주류에 속하지 않는 존재들에 대해, 그리고 세상이 그 존재를 명명하는 방식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물론 매대에 놓여있던 그 사과는 소비되어야 하는 상품이고, 따라서 ‘보조개 사과’라는 예쁜 이름 역시 마케팅 전략에 의한 상업적 네이밍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어떤 존재가 세상에서 규정한 범주로부터 벗어났다는 이유로 배제해 버리지 않고, 혹은 못난이 사과라든지 흠집 사과라든지 그런 식의 부정적인 이름을 갖다 붙이지 않고, 그가 가진 상처에서 보조개를 발견해낸 누군가에게 참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정상이라는 말에는 얼마나 많은 차별과 폭력성이 내재해 있는가. 다수라는 이유로, 혹은 사회에서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정상성을 부여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나는 대상에 대해서는 비정상이라는 말로 쉽게 규정짓고 배제해 버리는 것. 비하하고 혐오하며 말과 눈빛으로 상처 주는 것. 우리 스스로가 어느 순간 소수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다수의 편에 서서 무책임한 폭력을 저질러버리는 것.
지금은 그런 단어를 쓰지 않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을 일컬어 ‘결손 가정’이라고 명명했었다. 학기 초 제출해야 하는 가정환경조사서를 통해 나는 결손 가정 학생으로 분류되었는데, 그 말은 곧 요주의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이 아이의 가정은 정상 가정이 아니고, 따라서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며, 학업 적응력이 떨어지거나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므로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것. 그러한 분류의 기저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라는 의도도 일부 있었겠지만, ‘어느 부분이 없거나 잘못되어서 완전하지 못함’을 뜻하는 ‘결손’이라는 어휘는 어린 나를 어쩐지 주눅 들게 만들었다. 내가 속한 가정은 결손된 가정인가, 잘못된 형태인가, 완전하지 못한가, 비정상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은 외딴섬처럼 고립되었다. 그리고 묻고 싶었다. 정상성을 표방하는 여러분의 가정은 완전합니까, 아름답습니까, 행복합니까.
최근 OTT를 통해 방영되어 인기를 끈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주인공 다은이 한 말 중에 이런 대사가 있었다. “우리 모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서 있는 경계인들이다.” 꼭 정신병동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로 모든 것을 구분 짓지 않고, 두 개념의 사이를 바라볼 수 있는 세심한 눈으로 경계의 영역을 넓혀 나갈 때 우리는 더 다양한 삶의 방식을 만나고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지난 18일, 가톨릭 교황청에서는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을 공식 승인했다. 신의 사랑과 자비를 구하는 데 있어서 인간의 ‘도덕적 분석’이 전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 도덕과 비도덕, 주류와 비주류, 다수와 소수. 이와 같은 분류는 언제나 뒤바뀔 수 있으며, 이분법적 사고에서 비롯되는 명명은 다분히 폭력적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선언이 단순히 동성 커플에 대한 언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소수자로 살아가며 수많은 배제와 차별 속에 놓여있는 이들에 대한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라는 생각을 했다.
입김마저 금세 얼어붙는 이 겨울, 세상 모든 이에게 축복이 있기를. 그 축복은 누구도 비켜 가지 않기를. 모두가 인정하는 다수에게 또 한 번 박수 치는 것이 아니라, 쉽게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우리가 되기를. 우박을 맞고도 붉고 단단하게 잘 여물어 내게로 왔던, 참으로 달디단 보조개 사과처럼.
2023-12-28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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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건축공감
나는 ‘공감’이란 이름이 붙여진 지면의 한 공간에 꽤 오랫동안 글을 써 왔다. 매번 그 공간의 이름인 ‘공감’에 대하여 생각하게 됨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글의 주제로 삼고 있는 도시와 그것을 이루는 건축에 독자들을 얼마나 공감하고 있었을까?
건축이 공감해야 할 대상이란 개인인가 대중인가? 사용자인가 건축주인가? 그 모든 것들이 모여서 이루어 가는 사회나 문화에까지 범위를 넓혀가야 하는 것이 공감하는 태도인가? 아니면, 애당초 건축이 필연적으로 공감해야 했던 자연. 더 정확하게는 환경과의 공감을 말하는가? 라는 질문이 늘 내 글 주변을 맴돌았다.
어쩌면 내가 말해온 건축이란 단어 속에는 늘 공감이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두 단어를 붙여서 읽어 본다. 건축공감, 참 아름다운 명제이며, 소리내어 읽어도 어색하지 않다.
고대 로마의 건축가 마르쿠스 비투르비우스 폴리오 (Marcus Vitruvius Pollio)가 건축의 본질을 견고함(firmitas), 유용성(utilitas), 아름다움(venustas)이라 정의해 놓은 후로, 건축가와 건축학도들은 구조, 기능, 미를 건축의 3대 요소라 일컫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주변 환경으로부터의 보호라는 원초적 기능의 요구로 건축의 필요성이 생겼다면, 그 결과물이 점점 완벽한 모양으로 완성되면서 사람들은 그 물체 자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였으니 이른바 건축미라는 것이 탄생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건축은 아름다워야 하는 물건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기능과 아름다움은 건축 공감의 중요한 뼈대다. 건축이 개인의 셀터(shelter)로부터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더 큰 물건으로 발전함으로써 공감의 필요성이 생겼다면, 더 아름답게 꾸밈으로써 시각적 대상이 되고부터 건축미는 공감의 최종 목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 등장하는 구조라는 말은 어떤 공감의 의미를 내포하는가? 구조란 건축을 이루는 뼈대를 말하는 것이며, 건축이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견뎌야 생명력을 지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공감은 여기로부터 발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환경, 처음부터 그것은 극복이라기보다는 타협에 가까운 것이었으리라. 그 아름다운 타협이 또 다른 조화를 만들어 낸다면 그것이 진정한 공감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우리의 건축이 공감을 위해 어떻게 흘러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매우 비관적이다. 이른바 ‘절름발이 건축의 시대’를 말한다. 개발론자들의 이름으로 시행된 무수한 사업은 표면적으로는 시민과의 공감을 내세웠지만, 대체로 비문화적 건축을 양산하였다. 공감 주체들의 대화는 실종되고 강요된 건축이 도시를 채우고, 이제 그 괴물들이 만들어 낼 후유증에 시달릴 차례이다.
다행인 것은 건축공감의 필요성에 대한 시민의식의 진보이다. 건축공감은 지나간 것이거나 남의 것이 아닌, 지금 이루어 가고 있는 주변의 건축 행위에 있음을 시민 스스로 깨달았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한때 건축 관계자들의 잔치에 머물러 있던, 건축문화제와 건축상의 시상이 시민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음은 얼마나 고무적인가. 하나의 건축을 앞에 두고 말을 주고받으니, 건축에 공감하려는 것이다.
건축문화제를 보고 나오면서 문화적 풍요를 상상한다. 거리를 거닐다 건축가와 건축주가 무던히 대화했음 직한 건물을 우연히 만나 잠시 서게 된다면. 그리고 어떤 행복에 잠긴다면 새로운 건축문화가 이루어지려는 것이다. 더하여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면, 우리의 도시에도 건축공감의 시대가 시작된다는 말이다.
2023-12-14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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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라스트 모히칸’
얼마 전, 어떤 모임이 있어, 술자리까지 함께하게 되었다. 나름 점잖은 자리라 점잖은 말을 주고받으며, 점잖게 허허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술이 들어갈수록 대화도 다양해졌다. 올곧은 삶을 살았다는 어떤 인물을 이야기하고, 어려운 경제를 걱정하더니, 양극화된 사회문제까지 거론하기 시작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을 한탄하고, 다양한 생각들을 서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침을 튀기기도 했다. 술잔이 자꾸 비워지고 대화는 점점 열기를 더했다.
테이블에 흘린 술이 흥건해지고 두 번째로 드나드는 화장실에 걸린 거울을 무심코 보고서야 문득 내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상기된 얼굴에 할 말을 다 못해 불만인 듯한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은 내 언성을 높이게 했던, 대화하는 내내 마주 보았던 상대의 얼굴과 똑같았다. 그랬다. 우리는 서로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내 생각이 옳고, 당신 주장은 잘못되었다고 서로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손을 씻으며 잠깐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 언쟁에서 무슨 만족을 얻고자 그렇게 핏대를 세웠을까. 그러고 보니 상대방이 뱉은 어떤 단어에 내가 울컥했고, 그때부터 목청이 높아졌던 것 같다.
하긴, 주장하는 방식이 다를 수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위치에서 자신만의 땅을 딛고 서 있다. 당연히, 그 위치의 반대편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각자의 주장이 없을 수가 없다. 따지고 보면 모든 사물에는 음과 양의 전자가 흐르고, 인체는 좌우 대칭이며, 내가 딛고 사는 지구도 남극과 북극이 있다. 개인마다 가치가 다르고 삶이 다른 게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테이블에 앉은 저들이 어떤 사람인가. 저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서로를 경험하여 그 느낌을 공유할 것이고, 때로는 나의 인맥이 될 수도 있는, 내 사회생활의 일부가 아니었던가. 지금이라도 적당히 마무리하면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술 깨면 조금 민망하겠지만, 입장이야 서로 같다.
그런 합리적인 생각을 떠올리며 얼굴에 찬물을 끼얹었다. 마치 전사가 전투에 임하기 전에 얼굴에 바르는 붉은 물감처럼 비장하게 찬물을 발랐다. 정해진 대로 행동하면 그게 로봇이지 사람이겠냐며 입술을 깨물기도 했다.
한때 화젯거리였던 초전도체라는 물질이 있다. 임계온도 이하에서 나타난다는 마이스너 효과로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본 적도 있다. 신기하긴 했지만, 나라는 존재가 그렇게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건 절대 사양이다.
그렇게 정리를 끝낸 나는 모히칸족 전사처럼 머리칼을 비쭉 세우고 옷매무시를 고쳤다. 그리고 화장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나는 한 위치에 성실히 자리 잡은, 그러나 모나지 않게 둥글둥글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려 했다.
그길로 다시 불붙은 2차전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했던 말을 반복하는 억지의 화살이 날아왔고, 어이가 없어 말문 막히게 만드는 무논리의 말 폭탄도 코앞에서 터졌다. 물론, 나도 안전핀을 뽑아 던지고 쏘아댔다. 데굴데굴 구르며 상대를 공략했지만, 내가 공략한 위치의 대척점은 계속해서 생겨났었다. 나는 내가 누군가의 대척점이 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날, 자신이 디딘 자리만을 옹호하던 전사는 장렬히 전사했다. 그러나 상대도 성치는 않았으리라. 대척점이라는 것은, 마주 볼 수는 있겠지만, 점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2023-12-0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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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마지막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초등 졸업반인 아이가 얼마 전 수학여행을 갔다. 평소 학교 가는 시각보다 일찍 출발해야 했기 때문에 새벽녘에 일어나 아침밥을 챙겨주고 평소보다 뚱뚱해진 가방을 등에 메어준 다음 현관문 앞에서 안아주며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했다. 아이는 마냥 들떠 있기만 했는데 나는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수학여행에 대해 전 국민이 갖게 되어버린 트라우마 때문이 아니더라도, 좋아하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볼 때면 언제나 그런 막연한 슬픔과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곧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그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 곧 다시 보자고 했지만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런 내 마음을 누가 알았다면 불길하게 별생각을 다 한다고 핀잔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번씩 전화도 하고 인증샷도 보내겠다던 아이는 연락 한 통이 없다가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전화를 걸어왔다. 도서관에 있었던 터라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나가서 전화를 받았는데 내 기대와는 달리 안부 전화를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체크카드에 넣어준 용돈을 이미 다 써버렸는데 꼭 사고 싶은 인형이 있다고 했다. 이건 여기서밖에 살 수가 없고 이걸 사지 않으면 평생 아쉬울 것 같고 어쩌고 하면서 제발 용돈을 조금만 더 넣어주면 안 되냐는 이야기였다. 용돈에 대해서는 이미 약속한 바가 있었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려다가, 혹시나 이 통화가 우리의 마지막이면 어떡하나, 그럼 아이와 나 사이의 마지막 기억은 이런 하찮은 실랑이로 남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에 허락을 해주고 말았다.
언제나 마지막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이들에게 진심을 말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미루지 말아야겠다
마음을 다해 성실히 써나가야겠다
나의 태도가 교육적으로 좋지 않은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식으로 허용을 해주기 시작하면 아이의 버릇은 나빠질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먼 곳에서 걸려온 전화였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변명했다. 나와 그 애의 거리 사이에는 한 시간 안에도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나는 어떤 긴급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단숨에 그 애에게 달려갈 수 없으며, 내일 보자고 평범한 인사를 했지만 내일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거였으니까. 물론 아이는 다음 날 무사히 돌아왔다. 나에게 줄 선물을 꼭 사오겠다고 했던 말은 까맣게 잊었는지 자기 기념품만 잔뜩 사 가지고 해맑은 얼굴로 돌아왔다. 결과적으로 나는 아이 버릇만 나쁘게 만든 일관성 없는 엄마가 되었지만, 다시 그 순간이 돌아온다고 해도 아마 여전히 그럴 것 같다.
그러고 나서 며칠이 지난 후에는 길을 가다가 꽤 무서운 경험을 했다. 어떤 건물 옆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내 왼쪽 옆 바닥으로 백팩만한 크기의 쇳덩어리가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진 것이다. 간판의 일부였는지 건물의 부속물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그 순간, 삶이 어떤 식으로든 갑작스럽게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을 관념이 아닌 실제적 가능성으로 체감했다. 내가 지나가는 위치가 30cm만 더 왼쪽이었더라면 나는 그 쇳덩어리를 머리에 맞았을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자 아찔했는데, 그러면서 동시에 든 생각은 나에게 다가오는 매 순간을 정말 잘 살아내야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는데 그런 식으로 끝이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면, 내가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준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고 되짚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정말 좋은 기억이면 좋겠다는 바람도.
언제나 마지막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이들에게 진심을 말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지금 내가 쓰는 글이 어쩌면 내 삶의 마지막 문장일 수도 있다는 절실함 속에서, 안이하거나 진부한 태도에 빠지지 않도록 애쓰며, 마음을 다해 성실히 써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이번 연말의 작은 다짐으로 삼아 본다.
2023-11-30 [1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