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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한때 뜨거웠던 기억
푸른 트럭이 굽은 오르막을 달린다. 용달차 한쪽에 상호도 없이 휴대전화 번호만 큼직하게 적혀 있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기우뚱거리는 삼륜차는 아니지만 시커먼 숯검정을 묻힌 낡은 트럭이 낯설지 않다.
아직도 연탄을 때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린다. 산자락 철거민 동네에서 한파를 견디는 노인들과 비싼 기름값을 감당 못 해 다시 연탄보일러를 놓았다는 독거 어르신의 슬픈 소식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수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동네에 부산 유일의 연탄 공장이 가동되고 있었다. 그곳은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어느 방송국의 극한 직업 세계에도 소개되었지만, 경영난에 결국 폐업 절차를 밟고 말았다. 이제 전국의 연탄 공장도 몇 개 남지 않았다고 하니 아마 다음 세대들에게 연탄 같은 것은 옛이야기와 박물관에서나 만날 수 있겠다.
연탄 싣고 오르막 달리는 트럭
연탄이 필수재였던 시절 떠올라
자신을 태워 온기 나누는 연탄
목숨 걸고 하면 실패 두렵지 않아
저 트럭은 어디서 연탄을 싣고 오는 것일까. 트럭에 적힌 번호로 연락을 해보니 뜻밖에도 인근 화훼단지 옆에 연탄 하치장이 있단다. 고물상 한 귀퉁이 땅에 비닐을 덮은 연탄 상자들이 즐빗이 늘어섰다. 배달용 연탄을 옮기는 남자의 손등에 숯검정이 범벅이다. 오전에 한바탕 출고 작업을 했다는 표시다. 번듯한 창고를 얻기에는 타산이 맞지 않으니 임대료가 싼 야적장에 부려놓을 수밖에.
연탄의 시절이 있었다. 들판 깡시골 부엌에도 검정 구멍탄 위로 검붉은 불길이 솟구쳤다. 아궁이 속으로 추수가 끝난 짚 더미나 말린 북데기와 삭정이 같은 것을 때서 밥을 짓는 것이 아니었다. 매운 불꽃 앞에서 불쏘시개를 계속 밀어 넣지 않아도 되는 연탄불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그 알싸한 불향이 밴 하얀 쌀밥과 벌겋게 달궈진 석쇠에 노릇하게 구워진 갈치구이 맛을 잊지 못한다.
연탄값이야 들었겠지만, 창고나 부엌 귀퉁이나 재래식 화장실 한쪽에 컴컴한 검은 성을 쌓아 올린 어른들은 포만감에 든든했고, 산으로 들로 겨울 땔감을 구해와야 했던 아이들도 걱정을 덜게 되었다. 무쇠 연탄 덮개와 커다란 고무 물통을 호수로 연결하면 물이 따뜻해졌으니 쇠죽솥에 물을 데우는 번거로움도 줄게 되었다. 그러나 누구네 집 아무개가 연탄가스를 마셔 쓰러졌다는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오금이 저리도록 아찔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타버린 연탄재는 길 웅덩이나 얼음 언 마당에 던져 미끄럼을 막았는데, 개구진 사내아이들은 눈 뭉치를 던지듯 연탄재 싸움을 하며 놀이를 대신했다. 어느 시인은 ‘소신공양한 부처 몇 분이 골목 어귀에 나앉아 있다’라고 했으니 물상을 읽는 힘이 놀랍기만 하다. 온몸을 깡그리 태우는 일, 그렇게 소신공양한다면 불(佛)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
한때 뜨거웠던, 심장에 피돌기를 일으키던 그 무엇을 기억한다. 뜨거워질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가를 세월이 지나고서야 깨닫는다. 광부들의 목숨이 담겨 있는 연탄 한 장으로 냉골이 데워지고, 괄하게 불을 지핀 장작이 언 손을 녹이듯, 내가 뜨거워지지 않고서는 온기를 나눌 수가 없다. 하루해가 불덩이를 안고 스러져야 별들도 빛을 내고, 겨울나무가 혹한의 계절을 껴안아야 화르르 봄꽃을 피워올릴 것이며,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오체투지의 글쓰기가 걸작을 길어 올릴 수 있다. 자신을 데운다는 것, 그리고 뜨거워진다는 것, 마침내 태워버린다는 것은 희생과 열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 목숨 걸고 해보리라는 집념을 가지면 실패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어기적거리는 일이 있다면 매운 연기만 내지 말고 결단과 용기의 불꽃을 댕겨볼 일이다.
2025-11-3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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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야생의 본능
초등학교 시절에 〈로빈슨 크루소〉를 참 재미있게 읽었었다.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며 상상에 잠기곤 했다. 아무도 없는 섬에서 나뭇가지를 비벼 불 피우고, 나뭇잎 집을 짓고, 해변을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구하는 상상. 그 모든 것이 신나고 짜릿했었다. 그런 모험에 열광했던 아이는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분별없는 꼬맹이들이라 그런 모험을 동경했을까? 과학자 말을 빌리자면 오래된 야생 본능이 남아있기 때문이라 한다. 인간의 뇌는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랜 세월 다듬어졌다 했다. 낯선 영역 탐색에 성공하면 아무도 손대지 않은 새로운 먹거리를 보상으로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그 못지않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낯선 길을 선택하는 용기, 위험을 감수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간 발걸음이 결국 인간이 번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의 삶은 야생과는 거리가 멀다. 스마트폰의 지도 앱은 길을 찾아주고, 음식은 몇 번의 배달 앱 클릭으로 해결된다. 그리고 우린 정해진 시간에 학교, 회사와 집을 왕복한다. 맨손으로 식물 뿌리를 파헤칠 일도, 밤하늘 별자리를 보고 방향을 잡을 일도 없다.
그렇다고 수렵 행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수렵은 어느새 ‘성과’와 ‘실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를 몰아붙인다. 더 많은 매출, 더 높은 고과점수, 더 많은 팔로워를 얻기 위해 우리는 경쟁의 숲을 누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깨알 같은 숫자를 노려보는 누군가는, 사실 눈앞의 차트를 향해 창을 겨누고 있는 오늘날의 사냥꾼이다.
채취 역시 남아있다. 이제는 열매 대신 정보와 기회를 모은다. 세일 정보, 부동산 시세, 투자 종목, 자기계발의 팁들까지,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열매를 따 모은다. 광주리 대신 하드디스크와 클라우드가 무거워진다.
탐색도 이뤄지고 있다. 해변이나 정글을 뒤지는 대신에 손바닥만 한 작은 화면으로 새로운 맛집과 멋진 카페를 찾아 꼼꼼히 후기를 읽는다. 낯선 나라의 동영상과 브이로그를 보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를 속속들이 안다고 느낀다.
실제로 문명을 떠나 야생으로 들어가는 모험은 극히 어려운 선택이다. 직장, 가족, 대출, 계약서 같은 것들이 우리를 이 도시와 단단히 묶는다. ‘다 버리고 자연에 들어가고 싶다’라는 푸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전기요금 고지서 한 장에 우리는 다시 현실로 끌려 나온다.
머릿속엔 야생의 회로가 남아있지만, 우린 문명 속에서 살아간다. 문제는 주체할 수 없는 공허에 모든 것이 지겨워지고, 이유 없이 떠나고 싶어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싶고, 도시를 벗어나고 싶고, 아예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것은 오래된 본능이 “너, 너무 오래 한 자리에 서 있지 않았냐”고, 속삭이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 시대의 야생은 정글이나 무인도가 아니다. 우리의 야생은 우리가 수없이 구획해놓은 영역 너머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익숙함 너머의 그곳. 두려움을 무릅쓰고 한 걸음 내디딘 그곳이 바로 문명 속 야생이 아닐까.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새벽 시간, 책을 펼쳐놓고 낯선 생각의 숲을 헤매는 것. 혹은, 정답이 없는 선을 그어 넣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색을 올리는 순간, 우린 잠시 체계의 공허에서 벗어난다.
희미하게 남은 야생의 본능은 사실, 우리 안에서 조용히 다음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한 사냥이 아니라, 더 깊은 삶을 위한 모험으로, 어쩌면 효율과 편리함만 추구하는 인공시스템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 장치일지도 모른다.
2025-11-2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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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충만하게 존재하기
지금 나는 공유 오피스의 커다랗고 단단한 책상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창밖으로는 투명하게 푸른 가을 하늘과 그 사이를 돛단배처럼 느리게 유영하는 흰 구름이 보이고, 천장 스피커에서는 귀에 익은 경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앉아 있는 낯선 이들의 키보드 소리가 듣기 좋다. 공간의 호사스러움과 창작의 결과물은 별개의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공공도서관에서 글쓰기 적당한 자리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고 집의 어수선한 식탁도 흔들거리는 좌식 테이블도 일시적으로나마 안녕이다. 공유란 좋은 것이구나 생각하다가, 세상의 좋은 모든 것들을 다 같이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정말 그럴 수 있을까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공유’란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뜻인데, 사실 근래의 공유 경제 관점에서 쓰이는 ‘공유’라는 말은 공동 소유의 개념에서 많이 멀어진 것 같다. 공유 숙소, 공유 차량, 공유 자전거, 공유 오피스…. 대체로 개인이 소유한 자원을 불특정 다수에게 단기간 빌려주는 대여업이라고 해야 할까. 공급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가진 자원으로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수 있으니 좋고, 수요자 입장에서는 개개인이 구매하거나 장기간 계약을 하기에 부담스러운 자원을 일시적으로 빌려 쓸 수 있으니 좋은 일 같다. 게다가 기존의 자원을 돌려쓰는 일이니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용자가 지급해야 하는 비용이 생각보다 저렴하지는 않다. 단어의 의미를 늘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상황의 ‘공유’라는 말은 좀 기만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듣기 좋은 말을 하면서 결국은 자본을 가진 사람이 그 자본을 이용해 돈을 벌어보겠다는 거 아닌지, 정말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무료로 나누거나 혹은 최소한의 관리비만 받아야 되는 거 아닌지, 다소 삐딱한 생각.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정당한 방법으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일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팬데믹 이후로 이용자 수가 급격히 줄긴 했지만 그 이전까지만 해도 여행자들 사이에서 꽤 활성화되었던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었다. 세계 각지의 여행자들이 서로의 집을 공유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사이트인데, 여기에서의 공유는 꽤 순수한 의미에서의 나눔이었다. 내 집의 작은 여유 공간을 여행객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서로의 문화과 경험을 교류하는 것이다. 물론 그 공간을 청하는 여행자는 자신이 왜 그 집에 머물고 싶은지, 어떤 교류를 하고 싶은지 정성껏 메시지를 남겨야 한다. 그 메시지와 자기소개 글, 그리고 과거 교류했던 이들 간의 댓글 등을 보고 신뢰도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한때 그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다. 부산에 여행 온 외국인에게 누추하나마 잠자리를 제공하고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고 우리나라의 문화를 소개했다. 내가 속한 풍물패 연습에도 데려가고 범어사나 동래읍성에도 같이 가고 자갈치 시장에 가서 산낙지에 소주를 함께 먹기도 했다. 아무런 경제적 이익도 없고 오히려 내 시간과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해야 하는 일인데 왜 그런 걸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명확한 이유는 말하기 어려웠지만, 물질이 아닌 감정과 경험을 나눈다는 것, 그 시간 자체에 감동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사실이 좋았던 것 같다. 물론 내가 타국에 여행을 갔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그 커뮤니티에서 만난 친구들의 도움으로 현지인들의 삶을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 작은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대단한 물적 자본은 없을지라도, 우리에게는 어떤 물질과도 바꿀 수 없는 진심이 있고, 그 진심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짧고도 아름다운 이 계절, 매 순간 흘러가는 가을의 시간을 붙들어 둘 수도 소유할 수도 없지만 우리는 충만함으로 함께 존재할 수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2025-11-1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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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철학자이자 문학을 사랑한 작가였다. 그는 1964년 문학에 등급을 매기고 제도화하는 것에 반대하며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했고,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계약결혼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의 출처로 알려진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을 읽었다. 웹툰, 드라마 등 동명 제목으로 유명세를 치른 이 말은 마치 타인에 대한 혐오 발언처럼 사용되고 있으나, 이는 애초 사르트르가 전하려는 뜻과 다르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사르트르의 유년 시절부터 살펴야 한다.
사르트르는 태어난 이듬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외가에서 성장했다. 어릴 때부터 작은 키에 야윈 몸피로, 허약한 데다 눈은 사시였다.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놀림 받던 사르트르의 도피처는 외할아버지의 서재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의 계기가 된 〈말〉은 사르트르가 어린 시절을 회고하는 자서전으로, 그가 처음 외할아버지의 서재에 들어섰을 때 감흥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자서전에서 그는 외할아버지 서재에 가득한 책을 ‘영원한 존재’라고 표현했다.
외할아버지의 서재는 그를 구원했고, 외할아버지의 기대는 그를 속박했다. 사르트르는 훗날 어린 시절 자신의 말과 행동이 결국 외할아버지를 기쁘게 하기 위한 연극이었음을 고백했다. 부르주아 계급의 교양을 중시했던 외할아버지의 기대에 맞추어 어휘와 어투까지 연출했던 손주의 유년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어린 사르트르에게 외할아버지의 시선과 평가는 너무 가혹했다.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은 사후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창도 문도 없는 그곳에 안내된 세 명의 인물은 서로를 지켜보며 끊임없이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타인의 시선과 평판에 갇힌 이곳이 바로 지옥이라고. 세 인물 중 한 명인 가르생은 비명처럼 외친다. “아! 정말 웃기는군. 석쇠도 필요 없어,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 두 명뿐인 타인의 시선과 평판을 감당하는 것만으로 지옥 같은 상황이 되는 까닭은, 그곳이 숨거나 피할 데가 없는 닫힌 공간이기 때문이다.
‘닫힌 방’에는 무엇보다 책이 없었다. 이를 두고 〈닫힌 방〉의 번역자는 각주에서 “지옥에는 책이 없다. 책이란 타자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타인이 지옥이 아니라, 눈앞에 전시된 타인의 삶을 볼 수밖에 없고,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닫힌 세계가 바로 지옥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숨을 곳이 있다면 우리는 견딜 수 있다. 사르트르에게 책이 그러했듯, 누구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숨을 피난처가 필요하다.
업무 용도로만 사용하던 휴대전화 문자 앱이 어느 날부터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저장된 사람들의 일상이 전시되었고, 타인의 전시는 곧 나를 향한 시선이 되었다. 액자에 담겨 전시된 타인의 일상을 관람하며, 전시하는 이는 스스로 타인의 시선 속에 자신을 가두고, 전시를 보는 이는 타인의 삶을 엿보다 자기 시선에 갇힌다.
레바논 속담에 “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 된다”라는 말이 있다. ‘타인 없는 나’야말로 지옥이라고 말한 〈단순한 기쁨〉의 저자 피에르 신부의 말처럼, 행복이 결국 타인과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행복 관련 연구자들이 대부분 동의하는 내용이다. 다만, 사르트르가 말했듯, “우리는 타인이 우리를 판단하는 잣대로 우리 자신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은 지옥이라며 접촉을 회피하기도 하지만, 결국 접속된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며 우리는 지옥에 살고 있지 않은지.
타인의 칭찬과 비판, 동경과 비하, 선망과 멸시, 호의와 적의, 그 어느 시선과 평가에도 동요하지 않는 삶, 타인의 인정에 안도하기보다 다정한 무관심을 벗 삼아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갔으면 한다. 그렇게 자유 의지를 지닌 이들이 모인 공동체라면, 타인은 지옥이 될 수 없다.
2025-11-0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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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남의 영화세상] 생존과 돌봄의 무게
나는 작은 영화들을 좋아한다. 여기서 ‘작다’는 말은 단순히 제작 규모를 뜻하지 않는다. 제작비도 관객들의 관심도 상대적으로 낮은 작품들을 뜻한다. 10월 말부터 부산에서는 작은 영화들로 채워진 영화 축제들이 연이어 개최되었다. 부산평화영화제와 부산여성영화제는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다루는 주제의 깊이와 절실함은 결코 작지 않다. 오히려 인파가 덜 붐비는 곳에서 오롯이 영화의 메시지와 마주하는 내밀하고 소중한 발견의 기회를 선사한다.
부산 여성영화제에서 만난 ‘홍이’ 역시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영화이나 진정성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모두에게 선한 미소를 건네지만, 그 미소 뒤편에 불안과 빚의 그림자를 숨긴 채 살아가는 ‘이홍’. 서른을 훌쩍 넘긴 그녀는 불안정한 노동을 전전하며 고군분투하지만,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영화는 치매 초기 증세를 앓는 엄마 ‘서희’를 집으로 모셔 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녀가 서희를 데려오는 동기는 따뜻한 혈육의 정이 아니다. 자신의 경제적 위기를 해소해 줄 금전 때문이었다. 간병을 쉽게 여겼던 홍이는 아픈 이를 보살피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곧 깨닫는다. 게다가 서희의 증세가 갈수록 심해지면서 본래 평탄하지 않았던 모녀의 관계는 더욱 냉랭해진다.
황슬기 감독의 ‘홍이’는 생존과 돌봄의 문제를 홍이를 통해 바라보고 있다. 이때 감독은 홍이의 상황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으며, 한국 사회 여성들이 짊어진 무게를 서늘하게 새겨 넣는다. 결국 영화는 미혼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과연 간병을 감당할 수 있는지 묻고 있다. 한글을 가르치는 강사 일과 거친 건설 현장 노동을 오가는 홍이는 언제든 해고될 수 있는 불안정한 처지에 놓여 있다. 여유가 생기면 이력서를 쓰며 불안을 지우고자 애쓰고, 또 남들처럼 연애를 꿈꿔보기도 하지만 서희를 돌보기 시작한 이후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 것도 사치가 되었다.
홍이는 일과 연애, 간병을 함께 꾸려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서희가 집으로 온 뒤 홍이의 삶은 막다른 길에 이른다. 그녀는 분명 엄마를 보살피려 했다. 하지만 간병의 책임은 이내 그녀의 삶을 짓누르는 압력으로 바뀐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오직 오늘을 살아내는 절박함뿐이다. 엄마의 돈을 훔치고 썸남에게 거짓말을 하는 홍이의 행동은 분명 비도덕적이다. 그러나 이는 그녀가 궁지에서 필사적으로 생존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처럼 보일 정도다.
영화는 핏줄만으로는 돌봄 문제를 감당할 수 없다는 진실을 고한다. 전통적인 가족 서사처럼 고난 끝에 사랑과 희생으로 갈등이 봉합되는 신파는 없다. 물론 엄마와 홍이가 한강에서 치킨을 나누고, 복잡한 애증 속에서도 서툰 이해를 나누던 찰나의 따스한 순간은 있다. 이는 모녀에게 잠재되어 있던 서로를 향한 연민을 확인시켜 준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벽 앞에 서자 연민은 끝내 힘을 쓰지 못한다. 서희의 치매는 멈추지 않고, 홍이의 빚과 불안 역시 그대로 남아있다. 마침내 홍이는 서희와 자신을 위해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린다.
영화는 관객에게 어설픈 위안을 건네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너의 고립과 절망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감독의 서늘하지만 다정한 시선이 존재한다. 물론 홍이의 삶은 여전히 불안할 것이고, 짊어져야 할 빚 또한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전의 자신과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홍이는 엄마가 그토록 바르고 싶어 했던 붉은색 페디큐어를 자신의 발톱에 칠해 본다. 엄마를 다시 시설로 보낸 후의 죄책감과 자유로움이 뒤섞인 붉은 발톱은 그녀가 자신의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했음을 상징한다. 그렇기에 이 작은 영화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수많은 ‘홍이들’에게 짙고 깊은 울림을 남길 것이다.
2025-11-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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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포구, 그리고 부네치아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아무 이유가 없더라도 하루쯤 사라져 버리고 싶은 순간을 느껴 보았는가. 이러한 심리를 꿰뚫은 듯 토요일 딱 하루의 짧은 여행기를 다룬 드라마도 있었다. 큰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냥 낯선 곳을 걷고 쉬며 예상치 못한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고 또 헤어져 일상으로 되돌아오는 서사다. 그것이 휴식이고 치유며 유랑이고 충전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
포구가 등장하는 책을 끼고 다녔던 적이 있다. 저자가 찾아간 불빛 깜박이는 작은 포구 마을들을 잊지 못한다. 소의 눈빛을 닮은 갈매기가 있는 구룡포, 푸른빛의 어족들이 모여 사는 어청도, 등대의 몸에 사랑의 낙서가 새겨진 늑도, 싱싱한 사투리가 출렁이는 상족포구, 변산반도 왕포, 고창의 구시포 등을 읽고 또 그곳을 찾아 걸었다. ‘조금 외로운 것은 충분히 자유롭기 때문’이라는 말에 가슴 저미던 날들이었다.
문득 떠난 여행은 휴식이자 충전
부산 내 해안 걷는 것도 좋은 힐링
특유의 색 가진 장림포구 매력적
포구 저마다 색과 역사 있어
하지만 멀리 떠나야 여행인가. 대문을 박차고 바깥바람을 맞는다면 모두 여행이 되는 것을. 무엇보다 나는 바다의 도시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해안선을 따라 걷노라면 머릿속에 생쪽같이 묶여 있던 매듭 몇 가닥쯤은 저절로 해풍 속에 녹게 된다. 집 근처만 하더라도 오륙도 바다가 보이는 백운포가 버티고 있으며, 좀 더 내려가면 부산 최초의 제뢰등대가 있는 감만동 부두도 볼 수 있다. 물론 해운대나 기장을 잇는 미포와 청사포 그리고 송정을 지나 공수마을 포구와 기장 대변항을 거슬러 월전과 일광과 칠암 등이 발길을 잡지만 오늘은 남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펄펄 생선이 뛰는 자갈치를 휘둘러보고 송도와 다대포를 거쳐 장림포구에 가 보기로 한다.
장림포구는 낙동강과 다대포의 두 갈래 바다가 만나는 아우라지 물목이다. 원래의 명칭은 장림항이지만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무라노섬을 베껴 놓았다. 평범한 포구 풍경에 색을 입혀 어디에서도 멋진 사진을 남기기 좋은 그런 곳. 파란색, 핫핑크, 노란색, 초록색, 분홍색, 민트 등의 작은 가게들이 배경이 되어준다. 그런데 알록달록한 색들이 이국적이라기보다 왠지 낯이 익다. 어릴 때 입은 때때옷과 절과 궁궐과 전통 한옥의 단청, 민화와 불화, 심지어 김밥이나 비빔밥 또는 면 위의 고명에도 올려진 한국의 전통색 오방색 풍경으로 되비친다.
지금은 부네치아라고 불리는 장림포도 한때는 부산 최고의 어장이었다. 강 하구를 둑으로 가로막기 전까지 김 생산지였고, 시도 때도 없이 걸망으로 숭어를 건져 올렸으며, 만조가 빠지는 급물살에는 밤새도록 멸치를 잡았다. 펄펄 끓인 소금물에 급히 삶아 건조하던 멸치 염포는 하룻밤에 십수 포가량씩 어시장 경매에 넘겼으며, 물살이 약할 때는 물밑 끌망으로 도다리와 홍대라 불리던 큰 새우도 쉽게 잡은 곳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이전,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장림포해전이라는 전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충무공 일기에 “장림포 해전에서 어선 6척을 침몰시켰다”라는 기록이 생생히 새겨졌다. 포구가 저마다의 색들을 가지고 있는 것도 바다의 역사가 켜켜이 밑그림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일 터.
육지가 끝나는 곳. 그러므로 모든 포구는 땅끝에 닿아 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 물과 뭍이 연결되고 해풍과 뭍바람이 섞이며 사람과 파도와 물고기가 드나드는 곳, 끝이라고 절망하는 자들을 시퍼런 물너울이 일으켜 세워주는 곳, 밀려서 막바지에 다다랐다고 여겼다가 어느새 땅과 바다의 중심에 서 있음을 깨치게 하는 곳이다. 그러니 이 계절에 포구를 걸어보시라. 걸음을 옮기면 다시 길이 열리고 길을 따라 걸으면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니까.
2025-11-0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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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그림 한 점
얼마 전 연극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아내의 지인이 출연한다고 해서 함께 보러 간 것이다. 구실이야 어쨌든 간에 간만의 데이트라 제법 들떠있었고, 주말에 번잡할지 모른다며 설레발을 쳤다. 그러다 보니 너무 일찍 도착해버렸다. 공연시간까지 문화센터 여기저기를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문화센터 한쪽에서 지역 미술작가의 개인전이 개최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행운이 있나. 당연히 관람해야지. 우린 전시회를 보려고 일부러 방문한 사람처럼 품위 있게 작품을 감상했다. 꽃이 있고 별이 있고, 색채만 가득한 무정형의 그림도 있었다.
그림은 잘 모르지만, 왠지 포근하고 아름답다는 느낌이었다. 달력만 걸려 있는 우리 집에도 이런 그림 하나쯤 걸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미처 가다듬기도 전에 덜컥 그림 한 점을 구매하고 말았다.
그림을 사 놓고 하루가 지나서야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자각했다. 그 돈이면 한우가 몇 근이며, 가족과 몇 번의 외식을 할 수 있을까. 거실에 두었으면 좋겠다고 아내가 몇 번이나 중얼거리던 공기청정기도 생각났다. 그때는 왜 아내의 흔들리는 눈빛을 감지하지 못했을까.
내가 뭔가에 홀려버린 것이다.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뭔가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 게 분명하다. 나 같은 문외한들은 그런 묘한 힘이 깃든 그림이나, 음악, 혹은 유무형의 작품을 ‘예술작품’이라 부르고, 이런 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을 ‘예술가’라 여겼다.
사실, ‘아름다움’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름답다고 탄복하며 사들인 장식품도 집에 몇 년간 뒹굴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익숙한 물건으로 취급받기 마련이다.
무엇이 진정 아름다운 것인가? 꼭 예술가가 아니어도 한 번쯤은 던져봤을 물음이다. 아름다움을 유발하는 이론적 조건을 써 놓은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 대칭과 균형, 비율과 질서라는 알쏭달쏭한 말들이 기억난다. 어떤 이는 대자연의 모습이 궁극의 아름다움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예술가들은 아름다움이 창작의 목적이 아님을 진작 깨달은 듯하다. 일전에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독특한 사진 하나가 눈에 띄었다. 현대미술의 출발점이 된 작품이라 했는데, 사진 속 작품은 바로 남자의 소변기였다.
이게 뭔가 싶어서 설명 글을 읽어봤다. 소변기는 ‘마르셀 뒤샹’이라는 프랑스 미술가가 출품한 작품이었다. 그것도 작가가 직접 만든 게 아니라 시중에 판매되는 소변기에 ‘R. Mutt’라는 서명을 넣고 예술품이라 내놓은 것이었다. 대뜸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무슨 예술품이지? 도대체 왜?”
본격적으로 읽어봤다. 그러니까 작가의 깊은 뜻을 나 같은 문외한이 이해하기 쉽도록 잘 설명해 놓은 해설을 읽어봤다. 우습게도, 작가의 의도는 바로 나처럼 도대체 왜?라는 질문이 나오게 하는 것이었다. 말인즉슨, 그 작가로 인해 예술가가 “무엇을 그렸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게 했나”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내가 산 그림의 작가도 내가 무엇을 아름답게 여기는지 묻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 또한 아름다움이 뭐고 예술이 뭔지 되묻는 글 한 줄을 쓰게 된 셈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생각에 잠기게 하고, 그 내면을 자극하는 작품을 창작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지만,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꼭 그림이 아니어도 될 것이다. 소변기든, 카텔란의 바나나든, 혹은 일상의 짧은 글이라도 상관없을 것이다. 분에 넘치는 그림 한 점으로 이런 글 한 줄 남기게 된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된다.
2025-10-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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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우리는 왜 싸움을 멈출 수 없는가?
우리는 언제쯤 이 싸움을 끝낼 수 있을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이 질문에 직접 답하는 대신, 우리가 ‘왜’ 계속 싸우는지 근원적인 이유를 묻는다. 영화 제목이 암시하듯 하나의 전투가 끝나면 또 다른 전투가 이어지는 반복의 서사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불안과 사회적 분열의 고리를 장엄한 은유로 담아낸다. 이 단순한 문장은 분열된 현대 사회 특히 미국 내부의 첨예한 갈등과 분노가 일상화된 세계의 초상처럼 보인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폭발과 추격, 총격전이 이어지는 블록버스터의 외형을 띠지만 이면에는 이념과 인종, 계급의 갈등으로 무너진 사회의 심층이 새겨져 있다. 물리적인 ‘전투’는 오락적 장치가 아니다. 불신과 증오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이념 간의 충돌, 증오가 낳은 사회적 폭력의 일상화를 상징한다. 이때 감독은 스펙터클을 통해 현실의 폭력성을 가리기보다 오히려 이면을 들춰낸다. 그로 인해 스크린 위의 끝없는 폭력은 어쩐지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이는 영화가 가상의 미국이 배경임을 밝히지만, 동시대 미국 내부의 갈등 양상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정치적 작품이라는 명백한 증거이다.
영화는 반체제 단체 ‘프렌치 75’ 소속의 급진 활동가였던 ‘팻’(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이 혁명의 실패와 조직의 와해 이후, 술에 찌들어 은둔하는 ‘밥’으로 살아가는 현재를 조명한다. 과거 자유를 위해 폭탄을 만들었던 그는 이제 16살 딸 ‘윌라’의 안전만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그에게 16년 전 인물이 찾아오면서 전쟁이 시작된다. 과거 이념적인 투쟁이 이제는 부성애라는 사적인 감정으로 치환된다. 밥의 싸움은 신념과 공포, 사랑과 책임이 뒤엉킨 내면의 투쟁이며,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려는 몸부림이다. 사실 밥에게 자유란 거창한 정치적 구호가 아닌,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이다. 감독은 밥을 통해 혁명가로서의 정당성이 아닌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다하는 윤리적 실천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헌신적인 사랑은 동시에 고립을 낳는 역설을 품고 있다. 밥은 외부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딸을 보호하고자, 세상과 딸을 분리하며 숨어 살았다. 하지만 그가 구축한 안전망은 사실상 외부와 단절된 감옥이다. 그는 자신이 딸을 위해 싸운다고 믿지만 그 방식이야말로 폭력의 논리일 뿐이다. 밥 또한 폭력은 폭력을 낳고 두려움은 또 다른 두려움을 부르는 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권력에 눈이 먼 인물들은 지난한 관계를 후대로까지 이어가며 싸움을 만드는데, 이는 혁명의 완결은 없다는 감독의 시각을 대변한다.
결국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아버지 세대의 싸움이 지닌 폭력적 한계와 그 절망적인 계승을 고백하는 영화이다. 그럼에도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희망의 열쇠는 다음 세대인 ‘윌라’에게 있다. 윌라는 아버지 세대가 물리적 전투를 통해 지키려 했던 ‘자유’를 물려받지만, 그 방식을 답습하지 않는다. 윌라는 배타적인 고립 대신 연대와 공존을 통해 세상을 바꿔나가는 새로운 방식의 투쟁을 선택한다. 감독은 이 과정을 마지막 장면에서 절제된 방식으로 제시한다. 윌라가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 밥은 과거의 폭력이나 은둔 대신 오직 ‘조심하라’는 당부를 건넬 뿐이다. 이 고요한 순간 영화는 블록버스터의 소음을 넘어 우리가 해내야 할 싸움의 본질을 암시한다.
결국 영화는 폭력과 갈등이 만연한 세계를 비관적이면서도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그려내지만, 그 핵심에는 ‘우리가 왜 싸우는지’ 근원을 파악하게 하는 통찰을 담는다. 혁명에는 완결이 없지만, ‘사랑’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강렬하면서도 희망적인 메시지가 오래도록 남는 영화가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이다.
2025-10-2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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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베개는 죄가 없다
여느 때처럼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목 뒤쪽에 심한 통증이 느껴져 고개를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그 상태로는 하루 종일 일상생활을 제대로 못 하겠다 싶어 부랴부랴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 통증의학과로 향했다. 바닥이 고르지 못한 길을 지날 때마다 자전거의 덜컹거림이 목까지 전달되어 고통스러웠고, 차라리 걸어갈 걸 그랬다는 후회가 뒤늦게 들었으나 이미 절반 이상 와버린 상황이었다. 평소 신경 쓸 일이 없었던 우리 동네의 도로 사정이, 즉각적인 목의 통증으로 명확하게 인지되었다.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세상 모든 일들은 ‘나’와 관련이 있을 때 입체적으로 솟구친다.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자기 중심성이랄까. 그런 인간의 한계를 고려해 보면 사회적으로 영향력이나 파급력이 큰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경우, 다양한 상황에서 불편을 겪어보았거나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타인의 불편에 대해 자신의 일처럼 민감하고 세심하게 반응할 수 있는 감수성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큰 불편이나 어려움 없이 살아오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별로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의 천진한 얼굴이 나는 때때로 무섭다. 분노로 가득 찬 발길질보다 해맑은 표정으로 가하는 린치가 더 굴욕적이다. 어쨌거나 맞는 사람은 둘 다 아프겠지만, 전자의 경우 가해자 스스로 폭력적 행위를 인식하고 있기에 갈등을 해결하고 분노를 해소함으로써 발길질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은 존재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 가해자가 자신의 주먹질을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때려놓고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이게 아파? 그냥 장난인데? 왜 이렇게 예민해?” 그런 종류의 천진한 폭력을 행하는 이들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종종 보게 되고, 나는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커다란 힘을 갖게 될까 봐 언제나 두렵다.
통증에서 파생된 무거운 생각들을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굴리면서 병원 문을 열었다. 대기 시간 동안 인간 존엄에 대한 책을 읽고 있으니 그 바위를 들고 스쿼트와 데드리프트를 연달아 하는 기분이었다. 힘들고 그만두고 싶고, 한편으론 도파민이 샘솟고 내 한계를 넘어보고 싶고…. 목도 아프고 머리도 아프고 책을 들고 있던 팔도 아파올 무렵 진료실에서 내 이름을 불렀다. 내원 이유를 묻는 의사에게, 잠을 잘못 잤는지 베개가 문제인지 자고 일어나니 목이 너무 아프고 잘 움직이지를 못하겠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베개는 죄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자고 일어나서 목 아프다고 베개만 자꾸 바꾸고 그러는데, 베개 바꾼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동안 쌓여온 몸의 문제들이 마침내 표면에 드러났을 뿐이며, 어떤 베개를 베고 잤든 오늘의 이 사태는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평상시의 스트레스, 근육 긴장, 잘못된 자세나 생활 습관 등이 문제인데, 그것은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오랜 시간 누적되어 왔다는 이야기였다. 치료를 받으며 나는 또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가끔 어떤 일들은 내 인생 전체에 대한 은유로서 벌어지는 사건 같기도 하고, 그 통찰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 혹은 문장 하나에서 촉발되곤 한다. 설령 발화자가 그러한 통찰을 목적에 두고 한 말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지금 내가 겪는 아픔이나 괴로움의 문제, 더 크게는 내가 속한 세계의 수많은 고통과 절망이라는 문제의 원인을 ‘베개’ 같은 피상적인 데에서 찾아선 안 되는 것이었다. 단일한 하나의 원인으로 쉽게 귀결해서도 안 될 일이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고민해 보고 다양한 측면에서 원인을 찾아보며 잘못된 점이 있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수정해 나갈 때 비로소 고통은 멎을 수 있을 것이다. 아픔이 내게 주는 깨달음을 생각해 보면, 베개는 대체로 죄가 없고 통증은 때때로 유익한 것 같다.
2025-10-19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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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예민함, 차이를 아는 고통과 기쁨
잎새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 윤동주는 HSP(Highly Sensitive Person), 즉 매우 예민한 사람이었다. 흔히 ‘초민감자’라 명명하는 이들은 민감한 기질을 타고났기에 주변 자극이나 타인의 감정에 깊이 반응한다. 초민감자의 비율은 열에 한둘 정도라고 알려져 있으나, 꼭 초민감자가 아니어도 우리 주변에 예민한 사람이 많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잠 깨고, 식당에서 다른 이들이 시끄럽게 떠들면 소화가 되지 않을 만큼 힘들어하며,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를 보면 즐거움보다 고통을 느끼는 사람들, 이들은 모임을 꺼리고 어쩌다 모임에 참석해도 침대에서 상대와 자신의 언행을 곱씹으며 뒤척인다.
이들에게 돌아오는 말,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는 반응은 핀잔에 가까워, 자연스레 사회생활을 하며 스스로 부정적인 인식을 지니게 된다. 특히 치열한 생존 경쟁과 성과 압박에 시달리는 직장인에게 예민함은 사회적 약점이다. 직장 상사의 쓴소리나 까탈스러운 고객의 갑질 정도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툴툴 털고, 다시 출근길에 나서야 생존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한때 일본에서 ‘둔감력’이라는 단어가 올해의 유행어로 선정될 만큼 인기를 끌었던 이유다.
예민함은 사회적 약점으로 인식
'둔감력'이 유행어로 선정되기도
각자 결 존중하며 공존하길 기대
예민함, 자신과 타인 향한 배려
〈둔감력〉은 일본 소설가이자 의사인 와타나베 준이치의 책으로, 국내에는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실낙원〉이라는 소설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와타나베 준이치는 여성 인물의 탁월한 심리묘사에서 알 수 있듯, 무척 예민한 사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어쩌면 작가 자신을 위해 쓴 책이 아닐까 싶었다. 너무 예민해서 둔감해지려 애쓰는, 그래서 저자는 둔감한 마음이 신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너무 작은 것에 연연하지 말라는 저자의 조언에 끄덕이다, 그것이 잘 된다면 예민한 사람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청각이 예민하여 케이블 하나 교체하고도, 작은 소리의 변화에 기뻐하며 좋아하는 음반을 늘어놓고 음악 감상에 빠지곤 한다. 곡의 음역과 악기 위치를 귀로 그리고, 소리의 해상도, 보컬의 들숨과 날숨을 느끼는 음악 감상은 내게 큰 기쁨이었다. 소설을 읽으면 인물에 공감하여 즐겁게 몰입하고, 타인의 감정에 깊이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예민해서 사람을 잘 만나지 못하고, 소음에 민감하여 휴대전화는 종일 무음이며, 식당이나 카페 등 사람이 많은 장소를 힘들어한다. 예민함은 나에게 작은 차이를 느끼는 기쁨과 고통을 함께 주었다.
세상 만물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물은 물결이 나무는 나뭇결이 있듯 사람에게도 저마다 결이 있다. 예민한 사람일수록 사람에게 쉽게 상처받는다. 둔감한 사람은 악의 없이 예민한 이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이 상대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며, 혹시 알아도 그저 상대를 유별나다고 여긴다. 학교, 직장, 모임 등에서 둔감과 예민함이 만나면, 그 경계에 관계의 상처가 가시처럼 돋는다. 공간의 결이 길이고, 말의 결은 이야기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그곳에 길이 난다. 그 길 따라 서로 결을 존중하며 공존했으면 한다.
예민함이 너무 힘들어 무디어지려 애쓴 적이 있다. 슬픔의 범람을 둔감의 둑으로 막아보고자 한 적도, 모임에 자주 나가 관계의 상처에 굳은살이 박이길 기대한 적도 있다. 하지만 맞지 않는 신을 종일 신은 것처럼 불편했다. 생애 어느 순간, 결대로 살자 결심한 이후 마음이 편했다.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예민함이 나를 너무 괴롭히지 않고, 타인을 향한 세심함, 차이를 아는 섬세함으로 승화되고자 노력했다. 예민하여 작은 차이를 감지하는 것은, 때론 고통이고 때론 기쁨이다. 남은 생도 내 결을 거스르지 않고, 예민함, 차이를 아는 고통과 기쁨을 모두 누리며 살아가고자 한다.
2025-10-12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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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카니발의 시간은 지나가고
러시아 인문학자 미하일 바흐친은 카니발에서 문학과 인간의 연결고리를 찾아냈다. 사육제라고도 번역되는 카니발은 중세 유럽에서 실제로 열렸던 축제였다. 부활 대축일 이전 금욕적인 삶을 앞에 두고 40일 동안 질펀하게 놀면서 에너지를 비축하였다.
축제 기간에는 금기와 구속이 일시적으로 사라지고 우스꽝스러운 인물이 등장하며 위계질서와 예절과 지위도 무시된다. 왕이 거지가 되고 거지는 왕이 되며 성직자는 모독당하고 광대는 추앙받는 거꾸로 된 논리가 상식을 제압한다. 위와 아래, 공포와 웃음, 죽음과 탄생 등이 자리를 바꾸며 권위는 추락하고 조롱당한다. 해학과 풍자가 만들어내는 이 집단적 해방 속에서 인간은 자기 존재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용기를 얻는다.
나는 그 카니발이 가을이면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와 맞닿아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제라는 또 다른 축제 속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목소리들이 스크린 위에서 살아 움직이고 경계와 위계가 흐릿해진 채 모두가 예술이라는 언어로 소통한다. 낯선 이야기들이 웃음과 감동과 조롱과 성찰을 불러일으키며 억압된 현실을 잠시나마 잊게 만든다.
그러므로 나는 ‘시민평론단’이라는 배지를 십 년 넘게 목에 걸고 올해도 영화의 카니발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때는 평소의 일정 대부분이 정지된다. 전화도 잘 받지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으며 밥도 하지 않고 마트도 가지 않는다.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도 영화제에 간다고 표를 제시하면 출석을 과제로 대체해준다. 열흘 동안 하루에 서너 편의 영화를 보고 평론단의 의무인 상영작 리뷰도 세 편 이상 써야 한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비전부문 심사까지 맡게 된다.
그뿐인가. 아침마다 티켓 온라인 예매 시간이 되면 초를 다투느라 모니터를 뚫어지게 응시하며 키보드 위를 미친 듯이 누른다. 단 몇 초 차이로 봐야 할 영화를 놓쳤을 때의 허탈함과 운 좋게 자리를 확보했을 때의 짜릿함은 그 자체로도 축제의 일부가 된다. 상영 시간에 맞춰 영화관을 이동하고 호평과 혹평에 따라 급조정된 티켓 교환을 시도하며 관객과의 소통 무대도 참가하느라 제때 식사하기도 어렵다. 그러기에 일주일만 지나면 평론단 동지들은 마치 전쟁이라도 치른 듯 눈자위가 움푹 꺼지고 몰골이 초췌해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피로 속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낮에는 영화를 보고 밤에는 글을 쓰고 다음 날의 스케줄을 고민하면서도, 그 시간을 포기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올해도 역시 개봉이 예상되는 인기작보다는 배급사에서 외면할 것 같은 비주류 영화를 많이 보았다. 전쟁 다큐멘터리와 신화나 전설이 등장하는 영상물과 아프리카나 아시아 빈민국이 배경인 작품들이 매력적이다. 완성도나 서사의 밀도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어딘가 거칠고 낯설지만 그래서 더욱 진실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체제와 규범에 들지 않는 인물들의 어눌하지만 강렬한 언어와 때때로 세상의 구석에 놓인 낮고 거친 목소리들을 들었다. 이제는 폐광이 된 강원 태백의 ‘장성광업소’를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이슬이 온다’처럼, 잊힌 사람들과 버려진 장소에 대한 진혼곡 같은 영화가 강한 울림으로 남았다. 숨이 턱턱 막히는 열기를 이겨내며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막장 앞에서도 탄가루를 훌훌 불어 밥을 삼켜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이 검은 막장에서 검은 울음을 토하면서 채탄 광부로 버텨낸 이유는 오직 가족이었다. “나 혼자 참으면 가족들이 즐겁다”는 대사가 아직도 가슴을 때린다.
그렇게 올해도 내게 허락된 짧지만 농도 짙은 현대판 카니발의 시간이 모두 지나갔다.
2025-09-2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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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메아리
온종일 통기타만 끼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학업보다 동아리 방의 먼지가 더 친숙했고, 세상에 음악이 없으면 공허뿐이라 떠벌이며, 대단한 음악가가 된 양 노래를 불렀었다. 나름 기억에 남는 공연도 있었다.
유행하는 노래만 따라 불러서 되겠냐며 창작곡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했고, 우리 통기타 동아리는 부산에서 처음으로 창작곡으로 발표회를 열기도 했다. 요즘으로 치면 신곡발표회인 셈이다.
수많은 관객과 눈부신 조명 아래에서의 공연은 쉽게 접할 경험이 아니다. 게다가 공연을 끝내고 나면 허탈과 희열이 교차하는 묘한 잔향을 음미할 수 있다.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사실, 졸업 후, 학업에 열중하지 않았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현실은 냉혹했고, 사회생활은 만만찮았다. 하지만 사회 초년생으로 어설픈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학창시절 경험은 나름의 자랑이자 자긍이었다.
학창시절 음악 동아리 활동
노래 만들고 불렀던 기억 소중
최근 동아리 없어진 소식 충격
함께 공유하며 전통 이어가야
졸업 후에도 후배들에게서 연락이 오곤 했다. 정기 공연을 개최하니 선배로서 참석해 달라는 초대였다. 대부분 참석하지 못했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해부터 후배들의 연락이 끊겼다. 워낙에 참석하지 않았으니, 아예 연락 명단에서 뺐거니 짐작했다. 뭐,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비록, 연락은 닿지 않더라도 후배들은 여전히 노래 부르고, 낭만을 즐기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가끔은 무대의 먼 끝자리에서 후배들의 공연을 구경하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었다.
얼마 전에, 유일하게 연락이 닿는 동아리 선배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선배가 전해준 소식은 당혹스러웠다. 우리 동아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요즘 신입생은 취업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고, 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활동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고 했다. 좀 더 알아보니 내가 알던 몇몇 통기타 동아리는 여전히 활동하고 있었다. 대학가요제 수상자나 유명 가수를 배출한 동아리는 그나마 신입 회원을 유지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묘한 상실감에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소중한 뿌리 하나가 썩둑 잘려나간 느낌이었다. 모교가 폐교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에 학교를 되살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는 졸업생들의 심정이 그제야 이해되었다.
우리는 저마다의 역사를 쌓아가고 있다. 기타 반주에 다 함께 목청을 포개며 느낀 충만감, 공연장 뒤편의 퀴퀴한 커튼 냄새, 허름한 술집 막걸릿잔에 오르내리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이런 개인의 역사는 나를 구성하는 재료가 되었다. 그리고 언제든 문을 열면 학우들을 만날 수 있었던 좁은 동아리방은 바로 나의 유물이다.
유물의 상실은 곧 내 역사의 소실이다. 실체와 연결되는 정체성의 손잡이 하나를 잃어버린 격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의 잘못도 있다. 만약 선배들이 사회에 나와서도 후배들을 응원하고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을 줬다면… 음악에 흠뻑 빠졌던 선배가 ‘사회’라는 무대에서도 멋지게 춤을 추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세계인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세계인이 관심을 두는 우리의 전통과 유적이 자랑스러운 만큼, 그런 전통을 아름답게 이어준 옛 선인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전통과 문화는 단순히 기억만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함께 일어서고, 함께 부르고, 함께 손을 잡았기에 다음 사람에게 공감되는 기억을 건넬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함께하지 못해 잃어버린 내 유물이 몹시 애달프다. 그 유물은 ‘메아리’라는 이름의 동아리였다.
2025-09-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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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좋아한다는 말
꽃피는 계절은 아니지만 목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봄날. 그 시기의 나는 마치 세상의 짐을 다 짊어진 것처럼 어깨가 축 처지고 늘 시무룩해 있었다.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었지만 특별히 신날 것도 없었다. 단체 활동을 즐기는 편도 아니었고, 동생을 혼자 두고 집을 비우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게다가 장거리 버스 여행에 수반되는 멀미까지. 다른 아이들이 버스 안에서 잔뜩 들뜬 채 시끄럽게 웃고 떠들 때 나는 눈을 감고 있거나 창밖 먼 곳을 응시했다. 그러다 마이크가 돌기 시작했고 버스 안은 순식간에 노래방 분위기가 되었다. 서태지, 노이즈, 듀스의 노래가 생기발랄한 여중생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려왔다. 나는 더욱 이방인이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한껏 흥이 오른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샘도 노래 하나 하세요!” 나는 당연히 선생님이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다. 제안을 한 아이도 함께 부추기던 아이들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년 여성이던 담임 선생님은 늘 무표정하거나 조금 화난 얼굴로 진지하게 수업만 하던 국사 교사였고, 아이들에게 전혀 인기가 없었으며, 노래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어보였기 때문이다.
꽃이 지고 초록 잎이 빛나고
바람에 흔들리고 추위를 견디는,
한 존재가 품은 모든 계절
그런데 버스 맨 앞좌석에 앉아 있던 선생님이 일어나더니 마이크를 받았다. “노래를 잘 못하는데… 그래도 오늘은 수학여행 가는 날이니까 한 번 해볼게. 제목은 하얀 목련.” 그런 모습이 의외였기에 아이들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그러나 선생님이 막상 노래를 시작하자 아이들은 키득거리기 시작했고 곧이어 장난을 치거나 딴청을 부렸다. 선생님이 미리 말했던 것처럼 가창 실력도 별로였고, 그때까지 아이들이 잔뜩 띄워놓았던 신나는 분위기를 완전히 가라앉히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노래가 모두 끝나자 아이들은 형식적인 환호성과 박수를 보낸 후 다시 댄스곡을 이어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는 선생님이 아무런 기교도 없이 불렀던 그 노래에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고, ‘하얀 목련이 진다’라는 마지막 구절을 읊조리듯 내뱉을 때의 선생님 표정이 좋았다. 평소 수업 시간에는 볼 수 없었던 수줍은 미소, 아련한 눈빛.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에 나는 교정에 핀 목련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고, 그 하얗고 우아한 꽃이 마냥 좋아져서 화단을 자주 서성거렸다.
얼마 후 나는 전학을 갔기 때문에 선생님을 다시 볼 수는 없었는데, 그 후로도 하얀 목련을 보면 선생님의 그 표정이 떠오르곤 했다.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표정. 혹은, 언제든 볼 수 있었는데 보려고 하지 않았던 표정. 영원히 못 보고 지나칠 뻔했던 어떤 순간.
지금도 나는 목련을 좋아해서, 봄에 목련이 피면 넋을 놓고 바라볼 때가 많다. 낮에는 파란 하늘에 박힌 진주처럼, 밤에는 까만 하늘을 밝히는 알전구처럼, 화사하되 소란하지 않게 빛나는 꽃송이. 그 하얀 꽃송이가 툭툭 떨어져 버리면 괜히 서글프고 아쉽다. 그런데 얼마 전 SNS에서 목련 잎을 찍은 짧은 영상을 보게 되었다. 햇살을 받은 목련 잎이 반짝거리며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영상이었다. 목련 잎이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하고 감탄하다가, 문득 내가 잎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있던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목련을 그렇게 좋아한다면서 꽃이 지고 나면 나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꽃이 진 자리의 흔적, 넓고 둥그런 초록 잎이 뜨거운 햇살 아래 빛나는 시간, 그 잎들의 색이 바래가며 가을바람에 흔들리다 한 장씩 낙하하는 장면, 그리고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견디는 모습. 그런 순간이 모두 목련의 생을 이루는 장면들이었는데, 목련을 좋아한다면서 꽃만 봤다. 좋아한다는 말이 그렇게 가벼운 거였나 싶어, 잎에게도 가지에게도 뿌리에게도 미안했다. 꽃이 없는 이 계절의 목련 나무를 바라보면서, 꽃이 보이지 않아도 여전히 너를 좋아한다고, 이제는 말해야 할 것 같다.
2025-09-1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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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동네책방과 독서모임의 가치
제주 구좌읍 종달리에 ‘소심한책방’이란 이름의 동네책방이 있다. 그곳에 독서모임이 있는데 모임 이름이 ‘구좌 당근껍질파이 북클럽’이다. 오래전 나는 연구년을 맞아 제주에서 일 년을 보냈다. 도서관 옆에 집을 구해 오전은 제주 바닷가를 걷고 오후엔 도서관에서 책 읽고 글을 쓰며, 저녁이면 노을 속을 걸어 아내와 집으로 돌아오는 행복한 나날이었다.
독서모임 이름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제주 종달리를 떠올렸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 중에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 있다. 워싱턴 포스트가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달콤하고 정감 넘치는 찬가”라고 했던 책, 나는 이 책을 너무 사랑하여 주위에 권하고, 이 책을 제재로 책으로 만나는 인연을 뜻하는 ‘책연(冊緣)’이란 글을 쓰기도 했다. 영국 채널 제도 건지섬의 감자껍질파이가 제주 구좌읍에서 당근껍질파이가 되었으니, 책 인연이 바다를 사뿐히 건넜다.
같은 책 사랑은 생각·감정 공유
전국 각지 동네책방 존재 가치
위로·인연 주고 받는 독서 모임
내가 사랑하는 책을 사랑하는 이는 소중한 ‘책연’이다. 독서모임은 이러한 책연을 전제로 한다. 같은 책을 사랑한다는 건 생각과 감정을 깊이 공유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공독(共讀)은 나이와 성별, 직업의 경계를 넘어 사람 사이의 벽을 허물고 정서적 공동체를 형성한다. 종달리 ‘소심한책방’이 시, 소설, 수필로 나누어 문학 창작 프로그램도 진행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듣기와 말하기가 일련의 행위이듯 읽기와 쓰기도 마찬가지다. 독서는 저자와 독자의 대화이며 대화는 응답을 전제하기에, 쓰기로 나아가지 않고서는 독서의 여정이 마무리될 수 없다.
소심한책방의 소개말을 보면, 이 책방은 두 주인장의 편애로 골라둔 책들이 주를 이룰지 모르며, “우리 취향을 이해해 줄 분들이 꼭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책방을 운영한다고 한다. 사랑의 속성은 편애에 가깝다. 사랑은 결국 특정 대상을 향해 치우치고 기우는 마음이니, 편애가 아닌 사랑은 신의 영역에 속할 듯하다. 편애와 취향이야말로 거대 자본이 장악한 이 시대에 동네책방의 존재 가치일 것이다. 전국 각지에 동네책방이 자리 잡고 있어 저마다 취향의 공동체를 꾸려간다면, 우리 삶은 지금보다 다채롭고 풍요롭지 않을까.
근래 무카이 가즈미의 〈다정한 나의 30년 친구, 독서회〉를 읽었다. 학교 도서관 사서이자 번역가인 저자가 30여 년 독서모임에 참여한 경험을 담았는데, 책에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책이 책을 부르고, 호명된 책을 반갑게 마중하며 독서의 길은 이어진다. 독서모임의 가치는 혼자서는 선택하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책을 공독할 때 빛난다. 책 속 모임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무려 1년 반 동안 함께 읽었다는 말에 수긍하였다. 나는 이 책을 읽다 포기했는데, 아마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었다면 완독하지 않았을까 싶다.
연구년 때 제주 도서관에 앉아 읽으며 쓴 글을 중심으로 책을 출간했다. 운 좋게도 책은 독자의 사랑을 넘치게 받았고, 여러 기관과 매체에 추천도서로 소개된 덕분에 동네책방의 초대를 받았다. 일 년 동안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성인이 다수라는 통계에도, 어둠 속 반딧불처럼 강릉, 인천, 홍성, 익산, 전주, 김해, 통영 등지에서 만난 독자들은 동네책방에 소담하게 모여 책으로 소통하고 있었다. 부산에서도 연산동 ‘카프카의밤’, 용호동 ‘미우서재’ 등 동네책방에서 독자와 함께한 기억이 선연하다.
기술의 발달로 세상은 갈수록 편리하지만, 우리 마음은 점점 각박하기만 하다. 책은 인류 가장 오랜 미디어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가장 적합한 매체이다. ‘비블리오테라피(Bibliotheraphy)’라는 용어처럼 책으로 우리는 위로받는다. 위로는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손님처럼 찾아오기도 한다. 나를 위로해 주는 책이 있고 그 책을 인연으로 모인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다. 동네책방과 독서모임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2025-09-0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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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밥심에서 커피심으로
오늘도 아침밥 대신 커피로 하루를 연다. 비단 나만 그럴까. 요즈음은 밥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커피심으로 견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는 ‘밥’으로 통하는 인사말을 주고받았다면, 지금은 “언제 커피나 한잔합시다”라는 대화까지 일상화되었다. 나 또한 이다음에 죽으면 어동육서로 줄지은 제사음식 대신 좋아하는 커피 한 잔만 올려 달라고 일러두었으니 커피의 위력은 사후까지 발휘될 태세이다.
내친김에 커피박물관에 가보기로 한다. 가는 길 내내 다방, 커피숍, 카페, 커피하우스 등 커피 전문점 간판이 숱하게 내걸렸다. 가히 커피숍 전성시대이다. 현대인은 커피 소비로도 자신을 나타낸다. 어디서 커피를 마시는지, 어떤 커피를 애호하는지, 누구와 함께 마시는지…. 커피가 개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커피는 분위기다. 밖에서 보더라도 감성 넘치는 카페에 더 오래 눈길이 간다. 도착지인 커피박물관도 폐역이 된 부산진역을 탈바꿈시켰으니 의미로운 장소가 되겠다.
이십 년 전만 하더라도 여객열차가 정차하던 곳이라 저 멀리서부터 기적 소리라도 울려 퍼지는 듯하다. 커피에 조예가 깊은 한 시민이 전 세계에서 수집한 이천여 점의 커피 기구를 기증했다는데 대단한 안목이다. 향미에 따라 적절히 섞어 재창조하는 블렌딩과 생콩에 열을 가하는 로스팅을 거쳐 분쇄 커피를 물과 함께 끓이는 달임식, 여과 장치에 넣고 거르는 여과식, 뜨거운 물에 담가 우리는 우림식, 압력을 가하는 가압식 등의 추출 방식이 시대별로 전시되었다. 추출 기구도 터키쉬, 보일링, 비긴, 사이펀, 네오폴리탄, 퍼컬레이터 등 생경한 것이 많고, 생김새도 램프를 닮은 것, 오르골 모양, 양동이를 본뜬 것, 기차 형태 등 다양한데, 에티오피아에서 가져온 절구통 분쇄기 앞에서 발길이 멈추었다.
콩팥 이식 수술을 한 그녀의 집은 단출했다. 가족이 떨어져 혼자 지낸 세월도 오래되었지만, 당뇨환자라는 상황이 주변을 더욱 간소하게 만들었다. 그 외로운 사람에게 찾아갔으니 얼마나 반가웠을까. 대뜸 커피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선물 받은 원두 콩이 있다고 하였다. 아무렴, 한더위를 식혀줄 아이스커피 한 잔이면 된다고 무심코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식이요법을 하는 그녀의 집에 커피머신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녀가 선택한 방법은 마늘 찧는 절구통이었다. 나는 아연하였으나 그날 열서너 평의 작은 아파트를 가득 채운 헤이즐넛 향기는 어느 과일 향과 꽃 향보다도 향긋했다. 십여 분간 절구통에 찧은 커피 가루를 체에 걸러 내려 얼음을 띄운 냉커피 한 잔, 어찌 그 맛을 짧은 혀의 감각으로만 평가할 수 있으랴.
에티오피아의 고원인 카파 지방에서 어느 목동 소년이 처음으로 커피를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천 년도 훨씬 넘은 설화가 사실이든 아니든, 첫 커피 열매를 발견한 자에게 경의를 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 밥은 굶어도 커피는 마시게 된다는 젊은이들과, 오로지 나만의 공간을 찾아 앉을 수 있는 것도 커피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절차가 복잡한 차와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술은 일과 함께하기 힘들지만, 커피는 정신을 깨어있게 만드니 일할 때도 잘 어울린다. 심지어 ‘워킹 커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걸어 다니면서도 마실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왜 이렇게 커피에 열광하는가. 맛은 물론이거니와 커피를 마실 때를 생각해보라. 신분이나 지위나 나이도 잊을 수 있을 만큼 경계를 허물고 여유를 주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직원이 방금 내린 한 잔의 커피를 건넨다.
2025-08-31 [1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