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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예고된 파국
싱크대 배수구에 물 내려가는 게 좀 시원찮다 싶었는데 한동안 집안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방치해 두었더니 어느 순간 꽉 막혀 버렸다. 난감하고 당황스러웠다. 계속 그렇게 방치해두면 언젠가 문제가 터질 거란 예상을 못한 건 아니었지만 그 순간이 그렇게 빨리 닥쳐올 줄은 몰랐다. 주말이어서 배관업체에 연락이 어려울 것 같기도 했고 일단은 하는 데까지 해보자 싶어서 뜨거운 물도 부어보고 집에 있던 플라스틱 와이어로 이물질을 빼내려고도 해보았지만 도무지 진전이 없었다. 아무래도 아래쪽 배관이 막힌 것 같아 싱크대 아래 가림판을 열고 배관 연결 부위를 풀어 호스의 끝을 대야에 갖다 댔다. 호스의 중간 부분이 잔뜩 막힌 건지 싱크대에 고인 물은 여전히 흘러나오지 않았다. 한참동안 막막한 마음으로 배관 호스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는데 호스 끝에서 갑자기 왈칵 하고 갈색 덩어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싱크대에 고여 있던 물이 호스를 통해 주르륵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받쳐둔 대야는 너무 작았고, 뭘 어찌해볼 틈도 없이 대야 밖으로 흘러넘친 더러운 물로 바닥이 흥건하게 젖어버렸다. 얼른 수습해 보았지만 오랫동안 축적되어 있다가 한 순간에 밖으로 분출된 이물질의 악취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작은 이물질들이 쌓이고 쌓여 커다란 덩어리로 굳어버린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사건이 터진 이후에야 비로소 원인을 살핀다. 파국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데 우리가 그 암시들을 민감하게 감지하지 못하고 놓칠 뿐이다. 그러니까 진짜 문제는 배수구가 막혀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는 결과론적인 사건 하나가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축적되었던, 매우 사소하고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이다.
얼마 전에 장 뤽 고다르의 영화 〈경멸〉을 보았다. 극작가인 폴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시나리오 각본 일을 맡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자본가인 제작자의 요구에 따라 조금씩 타협해가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 중 하나로, 폴이 자신의 아내 카미유를 제작자의 자동차에 태워 보내는 장면이 있는데 그 이후로 카미유는 폴을 ‘경멸’한다고 말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과연 카미유가 그 일 하나만으로 폴을 경멸하게 되었을까. 관계의 파국은 단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 한 번의 실망으로 누군가를 경멸하게 되지는 않는다. 누적된 사건들, 침전된 감정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였다가 어느 순간 터져버린다. 싱크대가 완전히 막혀버렸던 이유가, 커다란 음식물 하나를 갑자기 버려서가 아니라 매일매일 조금씩 흘려보냈던 작은 이물질들이 뭉쳐졌기 때문이었던 것처럼.
그렇지만 우리는 대체로 파국의 마지막 순간만을 기억한다. 막혔다가 터져버린 물이 바닥을 흥건히 적셔 난장판이 되어버린 장면만을 선명하게 기억할 뿐, 수백 번의 설거지 속에서 무심코 흘려보낸 기름 한 방울들과 작은 음식물 찌꺼기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폴이 카미유를 제작자의 차에 태워 보낸 일은 ‘경멸’의 단 한 가지 원인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진행되고 있던 마음의 균열이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에 불과하다.
막힌 배관을 뚫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지만 그보다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은, 배관이 완전히 막히기 전에 평소와 달라진 사소한 변화들을 알아채는 일일 것이다. 싱크대 배수구의 물이 예전보다 조금씩 느리게 내려갈 때, 누군가와의 대화 사이에 침묵이 조금 길어질 때, 상대의 눈빛에 작은 슬픔이 담겨 있을 때, 파국은 그런 미세한 신호 속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배관에 하나둘 쌓인 이물질은 언젠가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그런 덩어리가 싱크대 아래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26-07-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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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우리는 은유 안에 산다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내 마음은 호수’라는 표현으로 은유법을 배웠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으로 마음을 호수에 비유하는 법을 배우고, 직유와의 차이를 익히며 은유가 그저 언어의 수사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문득 내 마음이 호수라면 누군가는 노를 저어 내게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과서에서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자, 물살을 가르며 다가오는 배가 보이는 것 같았다. 은유가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도 늘 은유를 쓰며 산다. 어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생각하며 아침에 일어나 ‘마음이 무겁다’거나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하지만 마음에는 무게가 없고, 시간은 물처럼 흐를 수 없다. 그 느낌을 달리 전할 길이 없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은유를 선택한다. 은유는 단지 언어의 장식이 아니라, 언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닿으려는 인간의 오래된 길이자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 오래된 길의 어원을 찾아가면 그리스어 ‘메타포라(metaphora)’, 즉 ‘옮김’이나 ‘전이’라는 뜻과 만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은유를 뛰어난 언어 기법으로 보았지만, 철학자 한스 블루멘베르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은유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 자체라고 보았다. 그는 어떤 개념으로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절대적 은유’가 인간 사유의 깊은 층에 자리한다고 설명했다. 개념이 닿지 못하는 자리에서, 은유는 먼저 길을 낸다.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마크 존슨과의 공저 〈삶으로서의 은유〉에서 인간의 개념 체계가 근본적으로 은유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폴리티컬 마인드〉에서 특정 은유를 반복해 접하면 그것이 신경 경로를 활성화해 강력한 ‘프레임’으로 자리 잡는다고 주장한다. 언어로 프레임을 선점하는 정치가가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듯, 우리가 어떤 언어 환경에 노출되느냐는 사고방식의 형성에도 깊이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토론은 전쟁이다’라는 은유 안에 사는 사람은 상대를 이기고 무너뜨리려 하지만, ‘토론은 춤이다’라는 은유를 선택하면 서로의 생각을 조율하며 어우러진다.
이러한 은유의 힘은 개인의 사고를 바꾼 뒤, 필연적으로 집단의 인식과 사회 정책의 방향까지 바꾸어 놓는다. ‘범죄는 맹수다’라는 은유가 자리 잡은 사회는 색출과 검거를 최우선으로 삼고, ‘범죄는 바이러스다’라는 은유가 자리 잡은 사회는 빈곤 등 근본 원인 제거와 예방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은유는 현실을 비추는 거울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현실에 개입하는 방식을 바꾸어 놓는다. 결국 어떤 은유를 받아들이느냐는, 어떤 세계를 선택하느냐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러한 변화를 한 개인의 차원에서 보여주는 작품이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의 영화 〈일 포스티노〉다. 직접적인 언어에 머물렀던 우편배달부 마리오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은유를 배우며 세상을 다르게 인식하기 시작한다. 은유를 배우기 전과 후, 섬도 바다도 짝사랑하는 여인도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대상이 아니라, 그것들을 엮어 의미로 만드는 방식이었다. 은유를 얻기 전의 마리오는 세계에 압도되었고, 은유를 얻은 후의 마리오는 세계와 대화했다. 세계에 압도되는 삶과 세계와 대화하는 삶, 그 차이를 블루멘베르크는 은유가 만든다고 했다.
어떤 은유 안에 있는지를 의식하지 못하면, 그 은유가 우리의 사고를 조용히 이끈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 속에서 여유로운 오후는 낭비가 되고, ‘인생은 전쟁터다’라는 말 속에서 일상은 생존의 싸움이 된다. 이 은유들이 공기처럼 퍼질 때, 우리는 그것을 선택했다기보다 어느새 그 안에서 생각하고 판단한다. 그래서 쉬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고, 타인을 물리쳐야 할 적으로 받아들인다. 은유는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조건이다. 우리는 은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2026-06-28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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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빙글빙글 옥상 아마존
어느 날, 소설가 두 마리가 만나 같이 살게 되었다. 소설가 한 마리가 시집오면서 늙은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다. 다른 소설가 한 마리도 장가오면서 늙은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그리하여, 소설가 두 마리와 늙은 고양이 두 마리가 같이 살게 되었다.
몇 해 지나, 그 네 마리는 아파트 생활을 접고 산 아래 주택으로 이사했다. 주택으로 이사 온 기념으로 옥상에 밭을 만들었다. 물탱크 잘라 만들고 시멘트 벽돌 쌓아 만들고 자잘한 화분을 모아 만들었다. 소설가 한 마리는 태생이 시골이라, 풀 키우는 흉내는 얼추 낼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만만치 않았다. 첫해에 마사토에 배양토를 섞어 만든 밭은 도통 땅심이 없었다. 부랴부랴 시골 사는 지인 밭에 가서 흙 몇 부대 파오고, 한적한 국도변의 빈 땅에서 몇 부대 퍼와서 섞었다. 음식 찌꺼기와 쌀뜨물도 계속 넣었다. 한 해 지나, 흙 따라온 지렁이가 많이 늘고 흙에 찰기가 생겼다. 찰기가 생기자 풀이 잘 자라기 시작했다.
그해 봄부터 볕 드는 자리 따라 모종을 심었다. 꽃샘추위를 견디는 감자, 상추, 케일, 쑥갓, 방풍 심고, 보름 지나 청명(淸明) 즈음에 토마토와 고추, 들깨, 가지 심었다. 다시 보름 지나 곡우(穀雨)쯤에 오이와 호박 바질 방아 심고, 입하(立夏) 즈음 수박 심으면 옥상이 가득 찼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게 사실이지만, 가끔은 안 심어도 났다. 흙 따라 바람 따라 굴러온 결명자가 자라고 댑싸리가 자랐다. 도마뱀이 자라고 박각시나방 호랑나비 애벌레가 자랐다. 자라면 자라게 두었다.
풀들이 잘 자라기 시작하자, 식구가 늘었다. 옥상 댁이라고, 동네에서 인기가 채털리 부인(1928년 작 소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주인공) 급이었던 암컷 고양이가 있었다. 그 옥상 댁이 두 해에 걸쳐 옥상 밭에 새끼를 심어 놓고 사라졌다. 새끼들은 밭에서 똥 누고 오줌 누다가 자리 잡았다. 첫해에 거둔 놈들이 세 놈이다. 둘째 해에 거둔 놈들이 두 놈이다. 그리하여, 소설가 두 마리와 늙고 젊은 고양이 일곱 마리가 같이 살게 되었다. 그 아홉 마리가 같이 살게 되자, 바람 잘 날이 없기 시작했다.
젊은 고양이 다섯 마리가 무럭무럭 자라나자, 사냥이 시작되었다. 뒷산 가서 개구리 들쥐 새 도마뱀 매미 나비 나방 풍뎅이 잠자리 잡아 왔다. 죽여서 잡아 오고 살려서도 잡아 왔다. 완전 아마존이다. 다리 떼어낸 메뚜기같이, 꼬리 떼어낸 잠자리같이, 함부로 먹고 함부로 먹혔다. 생명을 먹고 가지고 놀고 선물도 했다.
그때마다 소설가 두 마리는 난감했다. 산 것들은 뒷산으로 돌려보내고, 죽은 것들은 옥상 밭에 심었다. 그냥 심기 미안해서 제문처럼 웅얼웅얼 읊으며 심었다. 너는 토마토가 되어라. 너는 오디가, 대추가, 호박이, 다래가, 살구나무가, 복숭아나무가, 유자나무가 되어라. 그러면 신기하게도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흙이 그렇게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은, 소설가 두 마리가 먹었다. 토마토를 따 먹으며, 오디를 대추를 호박을 다래를 먹으며 생각했다. 언젠가 우리도 아마존이 되겠지. 다리 떨어진 메뚜기같이 꼬리 떨어진 도마뱀같이 좋은 거름 되어야지. 봄에는 보리가 되어야지, 연초록 들판으로 바람 따라 흔들거려야지. 오월에는 잘 생긴 오동나무 되어야지. 보라색 꽃도 피워야지. 여름엔 수박이 되어야지. 자외선 듬뿍 먹고 달달하게 익어야지. 가을엔 감나무 되어야지. 가지 끝에 달린 빨간 홍시 되어야지. 그 홍시 먹은 까치 되어 깍깍거리며 가을 하늘 날아 봐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지구가 빙글빙글 돌아 다음 계절로 간다. 매년 간다. 뽀글뽀글 파마에 동그란 선글라스 쓰고 빙글빙글 노래하던 나미(1967년부터 1992년까지 활동한 대중가요 가수) 누님처럼 간다.
2026-06-1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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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소중함과 불안함 사이
예능계의 인류학자로 일컬어지는 코미디언 이수지의 유튜브 영상을 가끔 본다. 그녀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디테일에 빠져들어 피식피식 웃다보면 어느 순간 현실의 희비극이 겹쳐진다. 최근에는 유치원 교사의 고된 현실에 대한 영상이 이슈였다. 물론 대사나 연기에 극적 과장이 섞여 있긴 하지만 상황 자체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유치원 교사로 분한 그녀가 야외 수업 중 아이들에게 달리기를 시키는데, 도착점에 가장 먼저 들어온 아이에게도 “1등!”, 두 번째로 들어온 아이에게도 “1등!”, 마지막으로 들어온 아이에게도 “1등!”, 결국 “모두가 1등!”이라며 아이들에게 칭찬 세례를 퍼붓다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원에서는요, 학부모님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게 정서 돌봄이에요. 그래서 정서 보호 차원에서, 승패를 나누지 않고 모두가 우승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실제로 요즘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의 운동회에서 경기의 승패를 가르지 않는 추세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점수나 등수를 드러내는 것을 지양하고 경쟁을 최소화하며 모두가 잘했다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과거의 지나친 경쟁적 분위기와 서열적 평가로 인한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안겨 주지 않고 모두의 자존감을 높여주겠다는 의도 자체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런 운동 경기에서 패배를 경험하지 않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아이들의 정서를 위한 일인지는 의구심이 든다. 달리기에서 등수를 감추고 모두가 1등이라고 말해주면 순간적인 속상함이나 좌절감은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아이들은 자신의 부족함이나 실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경험도, 부정적 감정을 견뎌내며 건강하게 털어내는 경험도 하지 못하게 된다.
심리학에서 회복탄력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인생에서 커다란 역경이나 비극적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상황 자체에 압도되어 무너져 내리지 않고, 오히려 배우고 성장하며 결국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회복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회복탄력성은 개인이 타고난 부분도 있겠지만, 성장 과정에서 적절한 좌절을 겪어가며 이를 극복하는 경험을 통해 키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작은 실패나 패배의 경험 없이 무균실 같은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이라면? 그들이 처음으로 마주하는 좌절이 입시나 취업, 혹은 중요한 인간관계에서의 문제 등 중대한 일들이라면 아이들은 그것을 감당하고 극복하는 힘을 기르기도 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아이들의 정서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운동 경기에서의 패배 같은 작은 좌절의 경험마저 회피하게 한다면 아이들은 회복탄력성을 기를 기회도 잃어버리게 된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처럼 공교육에서는 비교 자체를 터부시하면서 사교육에서는 정반대의 논리가 펼쳐진다는 점이다. 학원에서 아이들은 레벨 테스트로 반이 나뉘고, 점수에 따라 끊임없이 평가받는다. 학부모들은 이와 같은 구조를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경쟁적 분위기에 대해 전혀 불만이 없다. 이는 위선이라기보다는 불안에 가깝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내 아이가 밀려날까봐 두려운 것이고, 그 밀려남으로 상처를 받을까봐 걱정스러운 것이다. 아이의 마음을 보호해 주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시장 경쟁에서는 살아남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한국의 부모들에게 이중 잣대를 가지게 만든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가 1등이다.’라는 현실 부정도, 미래의 경쟁에서 어떻게든 패배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물밑 작전도 아니다. 앞으로 펼쳐질 수많은 경쟁과 실패 경험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 그리고 승패와 무관하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식하는 능력, 그런 내면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야말로 달리기에서 등수를 지우는 일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2026-06-0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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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
연구실 책장을 정리했다. 은퇴가 머지않으니 조금씩 책을 솎아 낼 요량이었다. 오랜 세월 쌓인 책들이 한때의 기억을 머금은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구석구석 꽂혀 있었다. 버릴 책들을 정리하다가, 〈책 읽는 소리〉에서 손길이 멈추었다. 먼지 쌓인 책장 구석에서 24년 전 내가 밑줄 그으며 읽었던 정민 교수의 책을 만난 것이다. 버릴 책으로 분류해 상자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 들었다.
그 자리에 서서 오래전 읽었던 문장들을 다시 더듬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밑줄 친 부분이 보인다. 밑줄의 길이만큼 애정도 깊었던 듯하다. 유독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라는 글에 오래 머물렀다. 고전소설 연구 과정에서의 소회를 담은 글이었다. 고전소설은 대부분 필사 형태로 전해진다. 필사본은 필사자에 따라 내용이 보태지고 다르게 고쳐지는데, 이를 이본(異本)이라 부르며, 필사본에 따라 놀부 심보 가짓수가 스무 개 남짓에서 일흔 가지를 넘기기도 한다. 소설책을 필사하는 과정은 무척 고단하여, 으레 끄트머리에 필사자의 감회를 적바림하는데, 이를 필사기(筆寫記)라 한다.
이 글에서 정민 교수는 〈임경업전〉의 뒤에 적힌 필사기를 다룬다. 아우 혼인을 맞이하여 어렵사리 친정에 든 딸이 집에 있는 소설책을 필사하여 시댁으로 가져가려 한다. 당시 소설 필사본은 혼수 품목일 만큼 인기가 많았다. 소설은 길었고, 반도 쓰지 못한 채 딸이 돌아갈 날이 닥쳤다. 조바심 내는 딸이 안쓰러웠는지, 아버지는 딸의 사촌까지 동원하여 필사하다 결국 직접 붓을 든다. 마침내 필사가 끝나고, 아버지는 책의 끝에 짧은 글을 남긴다. “노부(老父)도 아픈 중 간신히 서너 장 등서(謄書)하였으니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 이제 시댁으로 떠나면 언제 다시 친정에 들지 모를 딸, 그 딸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딸은 시댁으로 돌아가 아버지가 남긴 필사기를 보며, 얼마나 울었을까. 병들고 나이 든 아버지가 딸을 위해 소설책을 필사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여, 책 먼지가 머리 위로 내려앉는지도 모르고,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내 딸도 어느덧 자라 작년 봄 혼인했다.
난산 끝에 첫딸이 태어난 날이 떠오른다. 초저녁에 시작한 아내의 산통이 새벽까지 이어졌다. 긴 기다림 끝에 아이가 세상에 나왔고, 병원 창밖으로 희붐하게 밝아오던 여명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생의 기쁨은 컸으나, 동시에 아버지가 되었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새벽 서리처럼 내려앉던 날이었다. 딸이 자랄 때, 길 가다 넘어지면 “아빠!”하고 울어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고 한다. 주말 소파에 누워 낮잠을 자면, 내 배 위에서 들숨과 날숨의 물결을 타며 딸도 같이 잠이 들었다. 거실에서 기타를 연주하면, 어느새 분홍색 장난감 기타를 들고나와 불협화음의 합주를 서슴지 않았다. 그 나날을 새겨놓은 사진을 우연히 발견하는 날이면, 나는 하릴없이 눈물이 났다.
얼마 전 딸이 늦은 밤 아내에게 전화했다. 남편과의 심한 다툼에 울면서 전화한 딸 때문에 아내는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한다. 나는 야간 수업을 마친 고단함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후에 아내로부터 그 밤의 일을 전해 들었다. 딸이 “아빠는 이 사실을 몰랐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힘들 때 엄마를 찾으면서도 그 고단함이 아빠에게 닿지 않기를 바라는 딸의 배려가 내게 서운함으로 다가왔다. 그 밤 나는 쉬이 잠들지 못했다.
오래된 책은 이제 그만 버리자며 시작한 책장 정리를 멈추었다. 〈임경업전〉을 필사했던 아버지는 딸을 향한 사랑을 차마 직접 말하지 못하고, 아비 그리운 때 보라며 마음을 접어 소설책에 동봉했다. 혼인 이후 야근이 잦다는 딸의 소식을 아내에게 건너 들었다. 바쁜 딸에게 혹여 부담이 될까 싶어 보고 싶어도 먼저 전화기를 들지 못했다. 이 글로 딸을 향한 아비의 마음을 적바림한다.
2026-05-3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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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세상은 딱 두 가지뿐
구급차 한 대가 출근길을 가른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에 심장이 요동친다. 분명 남경 씨도 인큐베이터 속 신생아를 태운 구급차 속에 있을 시간이다. 출산한 종합병원에서 이십여 일 만에 다른 대학병원으로 작은 생명을 옮긴단다. 빌딩 숲을 헤쳐 나간 구급차는 어느새 기차역 쪽으로 머리를 틀었으니, 아마도 저 차 역시 터널을 거쳐 지금 남경 씨가 가고 있다는 병원과 같은 방향인 듯하다. 환자도 가족도 모두 컴컴한 터널 속에서 숨죽인 채 출구를 더듬고 있을 것이다.
남경 씨의 임신 소식을 들은 것은 지난해 단풍 고운 계절이었다. 요즈음 혼사가 그렇듯이 서른 중반의 신부에게 자연임신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 결혼 3년 만에 시험관시술이 성공했다는 낭보는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기에 충분했다. 남경 씨도 여느 임산부들처럼 분홍색 키링을 가방에 걸고 다녔으며 성별이 나온 날은 저희 부부끼리 푸른 풍선을 걸어두고 세리머니를 한 동영상도 휴대전화 메인 화면에 올려두었다. 태명을 짓고 젊은 부부들의 유행이라는 태교 여행도 다녀오고 몇 달간 직장생활도 씩씩하게 잘 견뎌 냈다. 이후 남들이 다 찍는다는, 중장년 세대에게는 여전히 낯간지러운 만삭 사진도 당당히 보내왔다.
그즈음이었을까. 다니던 병원에서 더 큰 병원으로 전원을 통보했다. 태아가 크지 않는단다. 심장도 뛰고 발가락도 꼼지락거리지만 병원 모니터상의 숫자는 쉽게 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신생아 평균 몸무게의 절반이 되지 않은 채로 남들보다 일찍 세상에 나온 사내아이는 신체 장기 곳곳이 미성숙한 상태이다. 그동안 기계 속에서 사투를 벌이다가 여러 이유로 또 병원을 옮긴다.
남경 씨가 초보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를 단 애달픈 엄마가 되었다.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렇겠지만, 엄마들의 세상은 딱 두 가지뿐이다. 엄마가 되기 전의 세상과 엄마가 되고 난 후의 세상만 존재한다. 엄마라는 존재는 한 아이의 탄생과 함께 다시 태어나는 사람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따뜻하면서도 누구보다 강인한 전사가 된다. 아이의 고통을 제 몸으로 옮겨올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내어줄 수 있는 자가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살아가는 것이다.
인큐베이터의 투명한 벽 하나가 아이와 엄마를 갈라놓았다. 안고 싶은 것은 고사하고 손가락 발가락 하나도 만지지 못한다. 초보 산모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모유를 유축하여 부지런히 병원에 갖다주는 일밖에 없다. 그래서 남경 씨는 울 시간이 없다. 삼시세끼 열심히 먹고 부지런히 모유를 모은다. 반면 그것을 지켜보는 남경 씨의 늙은 어미는 잘 먹지 못하고 몰래몰래 숨어서 운다.
극한 상황에서도 핸드폰을 켜는 세대답게 구급차 안의 상황을 짧은 동영상으로 보내온다. 흔들리는 영상 속의 급한 사이렌 소리가 귀를 메우는데, 인큐베이터 속 아이를 호위하는 간호사 선생님의 목소리 사이로 남경 씨의 중얼거림이 반복된다.
“귀여워, 너무 귀여워.”
아무렴. 세상에 돋은 생명들은 너무 귀엽고 너무 예쁜 것. 하물며 자신의 품에서 숨을 틔운 새끼니 오죽하랴. 최근 인기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힘 있는 엄마’가 될 거라는 비장한 대사를 읊었듯이, 남경 씨 또한 어떤 난관 앞에서도 중심을 잡는 든든한 어미가 되리라고 믿는다.
나는 요즈음,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다리로 거실 벽을 오르는 실거미도, 베란다 커피나무 화분에 꼬물거리는 공벌레 한 마리도, 심지어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작은 날벌레 하나까지 함부로 쫓아내지 못한다. 그 작은 생명들이 제 몫의 생을 살아내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친다는 사실만으로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저 기적이라는 숭고한 단어가 가장 연약한 생명들 앞에서 빛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2026-05-2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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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안경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안경을 썼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더듬어 찾는 것이 안경이었고,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내려놓는 것도 안경이었다. 그래서인지 세상을 맨눈으로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늘 마주하는 컴퓨터 화면, 창밖의 나무, 길 건너의 풍경도 얇은 렌즈를 통과한 뒤에야 내게 닿았다. 불편한 안경이었지만, 한편으로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가장 익숙한 통로였다.
그런데 바로 작년에 내 눈에 급성백내장이 찾아왔다. 부랴부랴 수술을 받았다. 뜻밖에도 그 덕분에 맨눈으로 사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시계의 숫자가 보였고, 창밖 간판의 글씨도 읽혔다. 그런데 느낌이 묘했다. 햇살은 지나치게 눈부셨고, 눈앞의 현실은 어딘가 위태로웠다. 다시 안경을 착용했다. 유해한 빛을 차단해 시력을 보호한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어쩌면 나는 여전히 뭔가를 한 겹 거쳐 세상을 보려 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모두가 그렇게 보고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본다고 믿지만, 사실은 모두 자신의 안경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있지 않은가. 경험과 기억이라는 안경, 욕망이라는 안경, 분노와 피해의식이라는 안경. 어떤 안경은 심하게 왜곡되어 전혀 다른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의심의 안경을 쓴 사람은 모든 일을 음모처럼 보고, 상처 난 안경을 쓴 사람에겐 모든 말이 공격처럼 들린다. 세상이 자신을 속이고 있고, 사람들이 자신을 밀어내고 있으며, 모든 결과가 누군가의 조작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곁에서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다. 그들의 눈에는 정말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안경을 쓴 본인은 잘 모른다는 데 있다. 남의 안경은 쉽게 보인다. 저 사람은 늘 색안경을 끼고 본다. 저 사람은 너무 단편적으로 본다, 저 사람은 세상을 비관적으로 본다. 이렇게 말하기는 쉽다. 이런 말을 하는 나 역시 어떤 안경을 쓰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나 또한 내 경험과 상처와 편견으로 세상을 재단한다. 내가 본 것이 전부라고 믿고, 내가 느낀 것이 곧 진실이라고 착각한다. 남의 안경을 탓하면서 정작 내 얼굴에 걸린 안경의 무게는 느끼지 못한다.
더구나 나는 안경을 벗는다고 해서 완전히 맨눈이 되는 사람도 아니다. 백내장 수술을 받으며 눈 깊숙한 곳에 인공수정체가 자리 잡았다. 안경은 벗을 수 있지만, 눈 안쪽에 들어온 렌즈는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어쩌면 부단한 삶에 생겨난 상처 속에 심어진 기억 같은 렌즈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통해 세상을 보고, 그것이 나의 시야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도 한다.
그런데, 완전한 맨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나로서는 도저히 그 ‘맨눈’의 경지를 확신할 수가 없다. 오히려, 노안에는 돋보기를 맞추고 근시에는 오목렌즈를 쓰듯이, 자신의 안경 상태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안경을 다시 맞추는 게 더 현명한 판단이 아닐까? 렌즈의 먼지를 닦고 도수를 바꾸어 보거나, 새로운 렌즈를 덧대어 보는 일 말이다.
가끔 안경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눈을 비비기도 한다. 물론, 내가 안경을 벗었다는 것은 여러 개의 안경 중의 하나일 뿐이다. 나는 나의 모든 안경을 벗겨낼 능력은 없다. 그러나 의심은 할 수 있다. 내가 지금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 혹시 내 눈앞의 흐림은 안경의 얼룩 때문은 아닐까. 안경을 쓴 지 너무 오래되어 내가 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가끔이라도 내가 안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보는 초점이 보정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순간, 지금껏 손끝도 닿지 않아 허우적대던 세상이 얼마라도 더 따스하게 만져지지 않을까 싶다. 안경은 나를 세상과 갈라놓는 동시에, 세상으로 다시 이어주는 신기한 물건이다.
2026-05-1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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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무가치하지 않다
책이나 영화에 비해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드라마는 멀리하는 편인데 최근 화제작인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정주행을 시작해 버렸다. 제목에서부터 사람을 훅 끌어당기는 강렬함,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등 작가의 전작에 대한 기억, 그리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 결국 1화를 클릭하고 말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드라마 속 세계에 안착하고 나면 인물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끝까지 가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영화판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선후배들과는 달리, 주인공 황동만은 20년 째 데뷔하지 못한 채 열등감과 질투심에 휩싸여 있는 인물이다. 그가 느끼는 좌절의 감정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으로 보인다. 성공가도를 달리는 주변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서 더욱 깊어지는 실패의 감각. 물론 자신의 시나리오가 영화화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과 슬픔도 당연하긴 하지만 그런 마음이 언제나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결과와 상관없이 과정에서 충만한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남들의 눈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하루하루가 실은 중요한 의미들로 가득 차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자신의 가치를 눈에 보이는 결과물로 증명해 보이기를 강요하는 세상에서, 소박한 하루치의 진심이나 좋아하는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과정 같은 것은 쉽게 폄하된다. 주인공 황동만은 비록 형의 집에 얹혀사는 처지이지만, 그 작은 공간에서 빔 프로젝터로 좋아하는 영화를 볼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형이 보기엔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는 일에 20년째 매달리고 있는 그의 모습이 한심하기만 할 뿐이다. 노트북을 앞에 둔 채 멍하니 앉아 있는 황동만에게 형은 소리친다. “언제까지 집구석에서 놀 건데?” 그 말에 황동만의 억울함이 북받친다. “노는 거 아니라고! 다 생각하는 거야! 글이 그렇게 쉽게 나오는 줄 알아?” 황동만의 그 목소리에 어쩐지 나도 같이 억울해졌고, 함께 소리쳐주고 싶었다. “가만히 있다고 쉬는 거 아니고요, 머릿속은 엄청나게 움직이고 있고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고 안 중요한 일이 아니고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무가치한 일이 아니거든요!”
모든 일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거나 눈에 보이는 성과만으로 판단하게 되면 다양한 삶의 방식과 존재의 형태들이 일직선상에 놓이게 된다. 서로 다른 속도와 방향을 가진 개별적인 삶들이 마치 동일한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이런 가치관이 일반화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고유한 삶을 타인의 삶의 궤적과 나란히 놓고 끊임없이 비교 점검하게 된다. 황동만이 느끼는 무가치함은 이러한 비교의 장에서 발생하고, 그 지점이 바로 이 드라마의 공감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경쟁의 늪은 SNS의 확산으로 인해 비교 대상의 범위가 더욱 넓어졌다. 우리는 수많은 온라인 친구들의 사진에 하트를 누르고 박수를 보내면서도 타인의 가장 빛나는 순간과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은연중에 비교하고 내심 상대적 박탈감이나 좌절감에 휩싸이곤 한다. 나만 정체되어 있는 것 같고 나만 무가치한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삶의 대부분은 눈에 띄는 성취나 타인의 인정 같은 결과물 이외의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남에게 딱히 자랑할 것 없는 평범한 하루를 반복하는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외부의 보상과 무관하게 지속하는 일들은 우리 자신을 가장 성실하게 증명하는 방식이다. 매일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은 마치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 하루하루의 작은 축적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변화의 과정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고유한 속도와 방향을 가지고 성실하게 나아가는 삶, 그런 삶은 결코 무가치하지 않다.
2026-05-1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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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행복은 우리를 초기화한다
어릴 적 단팥죽을 무척 먹고 싶어 했다. 그 시절 팥은 귀한 것이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부엌장 깊숙이 숨겨둔 팥을 찾아내어 혼자 단팥죽을 끓여 먹다가 된통 혼이 났다. 그때 처음 맛본, 뜨겁고 달콤한 단팥죽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지금도 생생하다. 어른이 되어도 가끔 단팥죽을 먹지만, 그때의 맛은 다시 느낄 수 없다. 그 맛의 절반은 팥에서 왔지만, 절반은 ‘처음’에서 왔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숟가락부터 달콤함이 조금씩 옅어지듯, 변한 것은 팥도 단팥죽도 아니었다. 변한 것은 오직 나의 기준선이었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 부른다. 같은 것을 반복해서 경험할수록 처음의 만족감은 줄어든다. 첫 월급의 감격이 몇 달 후 당연해지고, 오랫동안 갖고 싶던 물건을 손에 넣은 기쁨이 이내 시들해지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처음과 같은 감흥이 오지 않는다.
심리학에서도 비슷한 설명이 있다. 앨런 파르두치의 범위 빈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자극을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비교 속에서 판단한다. 강렬한 경험은 곧 기준이 되고, 그보다 약한 것들은 작아 보인다. 브릭먼과 캠벨이 말한 ‘쾌락의 쳇바퀴’도 같은 맥락이다. 인간은 높아진 기준에 금세 익숙해지고, 일상의 기쁨은 희미해진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이후 일상에서 행복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행복은 내가 가진 것의 크기가 아니라, 경험과의 비교 속에서 결정된다. 그래서 충분히 좋은 순간도 더 강한 경험 앞에서는 빛을 잃는다. 우리는 이 단순한 사실을 자주 놓친다.
나는 이것을 책이 아니라 교실에서 배웠다. 20여 년 전, 현대문학을 가르치던 시절의 일이다. 학생들과 문학 작품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수업이었는데, 그해만큼은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출석을 부르지 않아도 빈자리가 없었고, 수업 종료 시각이 지났을 때 아무도 시계를 보지 않았다. 서로의 해석이 존중되고 새로운 의미가 피어오르는 교실이었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나는 그해 최우수 강의 교수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걸림돌이 되었다.
이듬해 수업은 출석을 부르지 않자, 빈자리가 점점 늘었고, 작품을 읽어오지 않은 학생들이 생기며 토론의 흐름이 자주 끊겼다. 나는 조바심이 났고, 수업을 마칠 때마다 실망을 안고 교실을 나왔다. 그러나 문제는 학생들에게만 있지 않았다. 절정의 수업이 하나의 기준이 된 뒤로, 나는 그보다 낮은 순간들을 결핍으로만 읽고 있었다. 내가 시계를 보는 만큼 학생들도 나를 따라 시계를 보았다. 깨달음은 뜻밖의 곳에서 왔다. 어느 날 복도에서 동료 교수가 학생들이 내 현대문학 수업을 정말 좋아한다며, 부러움을 전했다. 분명 올해 수업에도 빛나는 해석이 있었고 진지한 눈빛이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충분히 보지 못하고 있었다. 최우수 강의 교수라는 성취의 그림자 속에서, 나는 여전히 살아 있는 순간들을 놓치고 있었다.
결국 내 기준선은 높아진 채로 머물러 있었고, 그만큼 현재의 기쁨은 희미해져 있었다. 서은국은 〈행복의 기원〉에서 말한다. 쾌락은 생존을 위해 설계된 경험이며, 그것이 제 기능을 하려면 본래 값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진화는 우리에게 항구적인 행복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리 찬란한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기준선은 제자리로 돌아오고, 그래야 다시 작은 것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은 높은 곳에 저장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초기화는 포기가 아니라, 다시 처음의 감각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혼자 몰래 끓여 먹던 그 단팥죽을, 이제는 아내와 손을 잡고 동네 시장에 가서 함께 먹는다. 늘 처음처럼은 아니지만, 그렇게 먹으려 천천히 음미한다.
2026-05-0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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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소금밭이 있던 자리
소금밭의 자리다. 한때 조선의 소금을 구워냈던 모래펄, 부산의 가장 큰 염전이 수백 년 이상 버티고 있었던 곳, 바닷물을 담는 넓은 그릇 모양의 염전 갯벌이니 분개라 불렸던 땅이다. 분개의 ‘분(盆)’이 화분을 가리키니 소금을 굽는 가마라는 뜻이겠고 ‘개’는 갯가, 개펄, 갯바위, 갯낚시에서 알 수 있듯이 포구의 순우리말이므로 염전이 있는 갯벌이라는 의미를 담았겠다.
분개소금이 맛있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 소금밭을 상상하려고 포구 주변을 어슬렁거려본다. 소금 마을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말소리와 짭조름한 염전 바람 풍경까지 그려지는 곳이다. 염전마을 아낙들은 소금 광주리를 이고 동래장과 구포장으로 소금을 팔러 다녔고, 장정들은 하루 삯이 쌀 한 되 반 정도인 일급제 염전 일을 하였으며 판매가 부진할 때는 소금을 품삯 대신 받아 각자 팔아 생활했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온다. 그러나 옛 염부들의 터전 너머 광안대교가 바다를 가로지르고 반대편 아파트 군락지의 위상이 하늘을 찌른다.
부산 가장 큰 염전, 분개소금 마을
맛으로 유명, 동래·구포장서 판매
매립 후 아파트, 상가 등 번화가로
부산 소금밭 아는 이 드문 요즘
내가 수필집을 내었을 때, 신안이 고향인 문우가 친정에서 농사지었다던 천일염 한 포대를 선물로 부쳐왔다. 난생처음 소금을 선물로 받았다는 사실이 특별했고, 문우의 늙은 어머니 손길이 닿은 것이라 과분하였으며, 내가 평생 먹어도 남을 양에 깜짝 놀랐다. 간수를 뺀 소금은 달콤 짭조름하여 입에 착착 감겼다. 내 솜씨 없는 나물 맛도 이 소금만 넣으면 딱딱 간이 맞고, 생선을 구울 때도 뱃살에 칼집을 내어 툭툭 왕소금 몇 가닥 뿌리면 탱글하고 고소한 구이가 된다.
그러고 보니 소금 맛을 좀 아는 자들이 음식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김치와 젓갈과 장아찌류 등의 염장 식품은 제외하고라도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핫한 카페에 가 보시라. 소금커피와 소금빵이 대세라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아직도 감히 커피에 소금을 넣어? 라고 한다면 당신은 꼰대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나 한입 소금커피 맛을 본 사람은 커피와 소금이 찰떡궁합이라는 사실을 재빠르게 수긍하게 될 터이다. 소금빵 역시 빵의 표면에 소금을 발라 버터의 고소한 풍미를 간간짭짤하게 돋우었다. 아마 동남아 여행 중 수박이나 멜론을 소금에 찍어 먹는 것을 경험했다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일이다.
하지만 음식도 유행을 타듯 영원한 것은 없다. 깨금깨금 염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소금이 온다”고 외치던 염부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인부 구하기도 어렵게 되고 여름 태풍까지 남녘의 소금밭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후 갯골은 매축이 되면서 넘실대던 바닷물과 반짝이던 소금밭을 밀어내고 말았다. 소금땅 위에 콘크리트가 뒤덮이고 매립 주택이 지어지고 학교와 아파트가 생겼으며 먼지 나던 황톳길 대신 반듯한 신작로가 만들어졌다. 포구 끝 쪽 염전 자리에는 소금꽃 대신 밤마다 상가 불빛이 반짝인다.
지나간 것은 모두 그립다. 민가도 없는 바닷가 갯벌에 소금 굽는 동이만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옛 풍경을 상상해본다. 이스라엘의 사해 소금호수와 미국의 그레이트 솔트레이크와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이 여행지로서 인기가 있고, 우리나라에도 신안 소금밭과 곰소염전 등이 유명하지만, 부산의 분개소금 마을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다.
하기야 어찌 처음부터 염전이었을까. 갯벌이었고 바다였고 섬이었고 또 아득한 옛날에는 무성한 원시림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인간이 만들고 또 인간이 무너뜨려 소멸되는 것을. 그때의 소금밭이 지금의 번화가가 되었듯이 먼 훗날 이곳 포구에 다시 소금 마을이 생겨날지도 모르는 법. 그러니 우뚝한 빌딩 숲을 올려다보다가도 인간이 허물어버린 소금밭도 종종 기억할 일이다.
2026-04-2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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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우아한 위선
얼마 전 TV에서 들었던 말이 있다.
“우아한 위선의 시대가 끝나고 야만의 시대가 도래했다.”
광고나 드라마의 대사가 아니다. 세계의 흐름을 진단하는 어느 출연자의 말이었다. ‘야만의 시대’는 요즘 뉴스를 보면 저절로 공감되는 말이다. 최근 강대국이 벌이는 전쟁이나, 일방적으로 선포되는 무역 정책들도 그렇다. 심지어 강대국의 고위직이라는 사람은 대놓고 인터뷰한다.
세상은 원래 힘의 논리로 굴러가지 않았었나? 그러니 제발 약육강식의 현실을 직시하라고. 그는 현실을 외면하는 당신들이 오히려 어리석다는 식으로 몰아붙인다.
이제 강대국들의 메시지는 간결해졌다.
“우리는 우리 이익만을 위해 움직일 것이다.”
그들의 메시지 끝에 모두가 알아듣는 문장이 풍선처럼 떠오른다.
“그래서, 너희가 어쩔 건데?”
생각해보면, 그간 강대국들은 ‘우아한 말’로 세계를 움직여 왔다. 정의와 평화, 자유와 평등, 인간애와 지구환경 같은 명분들을 내세워서 결국 그들 이익에 부합하는 세계 질서를 구축했었다. 어떤 이는 그런 이익추구를 ‘우아한 위선’이라 하며 비꼬았다.
강대국은 이제 세계를 설득하려 애쓰지 않는다. 설득 대신 통보하고, 명분 대신 효율을 강조하고, 체면 대신 폭력을 선택한다. 위선이 우아함을 잃는 순간, 남는 것은 약탈이 난무하는 야만의 민낯이다.
그래서 나는 이 우아한 위선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다. 다만, 이 위선이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민족 간 갈등을 부추기거나, 자원 수탈을 설계하고 전쟁을 일으키려는 음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위선이 아니라 그저 추악한 폭력이며 약탈일 뿐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우아한 위선’은 숨겨진 나의 욕망을 위해 보편적 가치를 따라가는 척하는 거짓된 선량함을 말한다. 국제적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분쟁지역의 평화를 도모하거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재난 국가에 원조를 제공하는 식의, 그러니까 실제로는 다른 속내가 있는 행위였지만, 그로 인해 누군가는 고통을 덜게 되거나 혹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위선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위선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나의 욕망을 인정한다면 모든 사람의 욕망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누구도 그 욕망을 온전히 성취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마음속엔 온갖 욕망이 들끓고 있었더라도, 그것을 평생 억누르고 살았다면, 우리는 그 삶을 위선적이라 부를 수 있을까.
어떤 이는 미워하면서도 거짓 웃음을 짓는다. 어떤 이는 손해 보기 싫어서 진실을 털어놓고, 어떤 이는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얻으려 선행을 한다. 그런 마음의 이중성을 우리는 무엇이라 부를까.
우리는 위선이라는 단어를 일방적으로 사용해왔다. 마치 사람의 마음을 해부대 위에 눕혀, 가장 어두운 장기만 꺼내 보여주면 진실이 규명되었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그러나 ‘사실확인’은 모든 가치의 독점물이 아니다. 인간이 욕망을 가졌다는 건 자연법칙이지만, 그 욕망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쓰는 것은 문명이다.
많은 사람이 욕망을 위해 선을 연습한다. 마음속에서 수없이 많은 문이 열리고 닫힌다. 누군가를 밀쳐내고 싶은 문, 거짓말로 빠져나가고 싶은 문, 내가 전부 가지고 싶다는 문. 그런데 우리는 그 문 앞에서 자주 멈춘다. 그 짧은 욕망의 위선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그래서 이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현실적인 힘은, 약육강식이 아니라 욕망의 균형을 깨지 않으려 애쓰는 우아한 위선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못나고 사나운 욕망이라면 부디 본색을 드러내지 말자. 가능하다면 죽을 때까지.
2026-04-1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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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되돌아오는 이야기
봄에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꽃들이 피고 지는 걸 보려면 넋을 놓고 지내서는 안 된다. 휑하던 가지에 꽃봉오리가 맺히는 것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연분홍 꽃잎들이 만개했다가 바람에 흩날린다. 꽃이 피어나는 순간에 나는 무얼 하고 있었는지, 문득 고개를 들어보고 나서야 ‘벌써 이렇게 가득 피었네’ 하고 놀랄 때가 많다. 하지만 개화라는 것이 그렇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미 나무 안에서 진행되고 있던 일이 그제야 내 눈에 보였을 뿐. 그러니까 봄은 없던 것들이 생겨나는 계절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자취를 감췄던 색채들이 다시 나타나는 시간이고, 무언가가 사라지지 않고 되돌아온다는 증거이며, 그 풍성한 꽃잎들의 향연 속에서 내 정신의 나태함을 일깨우게 되는 계절이다.
이처럼 계절은 다시 돌아오고, 꽃들도 돌아오고, 우리를 둘러싼 이야기와 기억들도 되돌아온다.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통증의 감각으로, 때로는 불현듯 스쳐 가는 어떤 냄새나 소리로, 때로는 누군가가 공들여 만든 예술 작품을 통해서. 그 이야기와 기억들은 내가 보거나 겪은 일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어떤 일들은 직접 겪지 않았어도 내 눈앞에 되살아나 또 하나의 기억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제주 4·3 때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당시의 상황에 대해 정규 교육과정에서 제대로 배운 세대도 아니지만, 어떤 경로로든 그때의 이야기들이 내 앞에 당도해 있을 때가 있고 그런 순간마다 이야기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가 된다. 이미 끝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다시 피어나는 장면이 된다.
얼마 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등장하는 주인공 경하와 인선은 제주의 비극을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게 당도한 그날의 고통을 각자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그 기억들과 ‘작별하지 않’기로 한다. 지난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던 정지영 감독의 신작 영화 ‘내 이름은’에서는 제주 4·3을 직접 겪어낸 인물이 등장하는데, 지우고 싶으면서도 끝내 지켜내야 할 기억을 아프게 소환한다. 예술 작품 속 허구의 인물들이지만 그들이 느끼는 고통은 허구로 보이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반복되었던 폭력의 트라우마가 독자와 관객들의 몸과 마음에 겹겹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제30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김홍 작가의 소설 <말뚝들>에서는 사회적 참사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이들이 말뚝이 되어 도심지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 말뚝을 마주한 이들은 속절없이 눈물을 흘리는데,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울기 시작하자 국가는 이를 비상사태로 규정한다. 함께 슬퍼하고 함께 고통스러워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위협이 된다. 그래서 애도를 폄하하고 분열을 조장하기도 한다. 노란 리본에 담긴 작은 애도의 표시에도 지겹다고, 그만 좀 하라고, 불편한 시선을 쏘아대는 걸 보면 소설 속 상황이 결코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은 언젠가 되돌아온다. 지금 이 지구상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폭력, 고통과 죽음의 기억들도 그러할 것이다. 물리적으로 먼 곳의 사건들이기에 때때로 우리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자꾸만 반복되는 상황이 빚어내는 피로감에 전부 다 외면하고 싶어지기도 하겠지만, 무관심과 침묵 속에 잠시 가려졌다 해도 진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우리 눈앞에 드러난다.
4월, 한낮의 봄볕에 몸과 마음이 노곤히 풀어지기도 하고 온갖 꽃들의 향연에 도취하기도 하는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참혹하고 잔인한 계절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매번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순간순간 되살아나는 이야기들을 제대로 바라보아야 할 시간 앞에 우리는 서 있다.
2026-04-1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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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르상티망'이라는 이름의 그림자
타인의 성공 앞에 서면 우리 안에서 불편하게 꿈틀거리는 것이 있다. 이를 흔히 질투라 부르지만, 질투와 시기는 다르다. 질투(jealousy)는 내가 가진 것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고, 시기(envy)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타인이 누린다는 자각이다. 시기에도 결이 있다. 상대를 보며 자신을 키우는 시기가 있고, 상대가 그것을 잃기 바라는 시기가 있다. 후자가 입 밖에 나오지 못할 때, 그것은 안으로 가라앉아 어느 순간 도덕의 얼굴로 나타난다.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왔다. “저 사람, 부모 찬스 아니면 절대 못 갔을 자리인데 왜 다들 축하해줘?” 댓글 대부분은 공감이었다. 우리는 정의의 이름으로 말하지만, 그 뿌리가 늘 정의인 것은 아니다. 페스팅거의 ‘사회비교이론’이 증명하듯 인간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산다. 그 비교가 “나는 저렇게 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만날 때 시기는 자신을 서서히 무너뜨린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쌓여 굳고, 굳은 것은 원한이 되어 도덕의 언어를 빌려 밖으로 나온다.
니체는 이것을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 불렀다. 그는 〈도덕의 계보〉에서 이를 노예도덕의 심리적 뿌리로 분석했다. 맞설 수 없는 자가 상대를 ‘악’으로 규정해 자신을 ‘선’에 세우는 것, 타자의 규정에 기대는 반응적 존재 방식이다. 억눌린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시기하는 대상의 가치 자체를 허무는 방식으로 돌아온다. “저 사람의 성공은 어차피 편법의 결과”라는 식으로. 현대 심리학은 타인의 실패 앞에서 느끼는 은밀한 안도감인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가 그 보상 구조임을 확인했다. 정의를 말하면서 타인의 불행에서 위안을 찾는 것, 그것이 르상티망의 속내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이 감정이 자라기 좋은 토양 위에 있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 통로는 좁다.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불평등이 공존할 때 그 간극은 원한을 키운다. 노력은 미덕으로 강조되지만, 결과는 점점 세습을 닮아간다. SNS는 비교를 일상으로 만들고 알고리즘은 분노를 먹고 자란다. 비판이 혐오로 미끄러질 때 르상티망은 개인의 감정을 넘어 사회의 언어가 된다.
르상티망은 변화를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변화를 막는다. 상대를 끌어내리는 데 힘을 쓰는 동안 자신을 향한 힘은 빠져나간다. “어차피 안 된다”는 말은 소리 없이 행동을 멈춘다. 허무가 자리를 잡으면 대화는 사라지고 비난이 남는다. 그 자리에 냉소가 따라온다. 냉소는 때로 유효하다. 허위를 꿰뚫고 과장된 낙관을 경계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냉소는 세상을 비추는 데는 쓸모가 있어도 세상을 바꾸는 데는 무력하다. 냉소가 깊어질수록 자기 삶과의 거리도 멀어진다. 결국 르상티망이 앗아가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출구는 두 방향에서 함께 열려야 한다. 사회는 노력이 보상으로 이어진다는 신뢰를 되살려야 한다. 개인으로서는 억눌렀던 욕망을 먼저 들여다볼 일이다. 타인과의 비교가 결핍을 낳는 것과 달리, 어제와 오늘의 나를 견주는 일은 다른 긴장을 만든다. 그렇게 자신을 향한 시선이 깊어질 때, 니체가 르상티망의 반대편에 놓은 귀족도덕, 곧 능동적 자기 긍정의 길이 열린다. 그 긍정이 삶의 고통과 한계까지 기꺼이 껴안는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에 닿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시선에서 놓여나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르상티망은 일상의 말과 표정 속에 드리운 그림자다. 타인의 불행 앞에서 스치는 안도감 속에서 자란다. 그림자를 걷어내는 일은 거창하지 않다. 타인을 향하던 시선을 자신에게로 돌리는 것, 거기서 시작된다.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일과 자기 삶을 긍정하는 일이 함께 갈 때 그림자는 옅어진다. 제 삶을 사는 사람에게 르상티망은 결국 힘을 잃는다.
2026-04-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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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소리를 듣다
‘작은 거인’으로 불려온 대중가수가 최근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가 텔레비전에 등장한 건 반세기 전이었다. 더벅머리 청년이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쓰고 쌀자루만 한 기타를 들고나와 무대 위에서 펄쩍펄쩍 뛰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노래를 불렀다. 당시의 텔레비전 무대는 대체로 단정했다. 가수들은 마이크 앞에 서서 몸을 크게 움직이지 않은 채 목청을 돋우며, 멜로디 중심의 발라드나 사색적인 포크송 같은 노래로 대중의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런 무대 위로 불꽃 튀듯 작은 체구가 자꾸만 위로 솟구치면서 샤먼의 몸짓 같은 야생의 춤을 추었는데, 마치 다른 세계에서 막 건너온 사람처럼 보였다. 관중들은 그 낯선 광경이 어리둥절했으나 곧 묘한 흥미에 사로잡혀 환호를 질렀다.
'작은 거인'으로 불리던 대중가수
최근 첫 개인전 '소리그림' 열어
소리의 파동을 그림으로 표현
미처 알지 못했던 소리 찾는 재미
물론 그를 자세히 본 것은 음악 무대가 아닌 스크린이다. 내 청춘의 인생 영화인 시대로부터의 탈출극 ‘고래사냥’에서였다. 짝사랑에 실패하여 가출한 소심한 철학과생 병태라는 인물로 요즈음 젊은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찰떡 캐스팅’이었다. 감독이 원하는 ‘키 작고 어리바리한 청년’에 딱 당첨(?)되어서 캐스팅됐다는 웃픈 일화가 있지만 참으로 반가웠다. 화면 속의 병태는 주변에도 한둘씩 존재하던 우리의 친애하는 동무로서 가엾고 측은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런데 그 어리바리한 청년이 실제로 전통 소리인 국악 공부를 하고 있었고, 출연한 영화의 음악까지 맡았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러나 그것은 훗날 ‘작은 거장’이 될 한 예술가의 시작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그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음악과 병행하여 삼십 년 동안 천여 점의 그림을 그려 왔었다. 생애 처음 연 전시회에는 ‘소리그림’이라는 재미있는 타이틀이 붙었다. 소제목으로도 ‘소리 탄생’, ‘소리 너머 소리’, 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수철소리’ 등으로 표현했다. 화폭에서 푸른 물결이 번져 나가 끝을 알 수 없는 깊이를 보이고, 붉은빛은 들끓는 용암처럼 비집고 솟구치며, 회색 덩어리들은 느리게 흘러내리거나 부딪치고 갈라진다.
작가는 그것을 소리의 파동이라 말했다. 캔버스라는 음표 위에 그림으로 옮겨 놓았다고도 했다. 나는 적잖이 놀랐다. 세상의 소리가 음악이 된다는 생각은 해 보았으나 만물의 소리가 그림이 된다는 발상은 한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다. 그러고 보니 굽이치고 튀어 오르고 돌진하는 그 선들은 음악의 리듬처럼 흔들리며 살아 움직이고 있다. 어느 선은 알레그로처럼 빠르고 활기차게 화면을 가로지르고, 어느 덩어리는 아다지오가 되어 느리고 깊은 음처럼 묵직하게 가라앉는다.
그때였다. 인터뷰를 듣다가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는 사람의 소리, 지구촌의 소리를 넘어 우주의 소리, 행성의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아니, 별들의 소리가 들린다고? 그동안 많은 시인과 수필가가 숲이 흔들리는 기척을 느낀다거나, 저녁 종이 울리면 하루가 접히는 소리가 난다고도 했다. 때로는 나도 그들을 흉내 내어 우리 동네 제뢰등대가 등불을 끄고 입을 닫았다고도 했으며, 빗방울 화석지를 찾아가서는 석종 소리가 들린다고 떠들었고, 내 몸속의 뼈를 두고 골관 악기 소리가 난다며 과장법을 많이도 썼었다.
어쩔 것인가, 행성의 소리가 들린다는데. 놀란 것은 그의 광대무변한 세계관과 상상력의 스케일과 예술적 직관의 깊이였다. 현실의 틀 안에서는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들이 예술의 세계로 건너가면 비로소 형체를 얻게 되는 것이다. 단지 우리가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에는 미처 알아채지 못하는 소리가 참 많다. 그러니 이 봄날,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글을 쓰지 않더라도 세상의 소리를 찾아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볼 일이다.
2026-03-2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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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내 곁에 있어 줘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부터 꽤 많은 동물을 길렀던 것 같다. 첫 경험은 병아리였다. 아마 내 또래 유년의 공통된 경험일 것이다. 초봄의 하굣길, 학교 앞 양지바른 담벼락 아래에서 삐악거리는 소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기어코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집으로 왔었다.
병아리가 담긴 종이상자는 따뜻한 아랫목에 자리 잡는다. 경험상 병아리는 무조건 따뜻하게 해주면 되었다. 배추 잎을 연필 칼로 잘게 썰어주고, 파리채로 파리를 잡아줬다. 벌레를 잡아 톡톡 신호를 주면 저만치서 놀다가도 솜털 날개를 파닥이며 달려왔다. 보름쯤 지나면 솜털 끝에 하얀 깃털이 나온다. 이제부터 확연히 달라진다. 화단 흙을 헤집어 지렁이를 잡아내고, 장에 가두려 쫓으면 쏜살같이 도망친다. 병아리는 어느새 벼슬이 늠름한 닭이 되어 있다.
하굣길 문방구에서 뽑기를 하고 돌아온 어느 날, 마당 어디에도 닭이 없음을 알게 된다. 할머니께 닭의 행방을 물으면 대뜸 이런 지청구가 나온다. “꽃이고 이파리고 다 쪼아대서 화초가 남아나길 하나. 온 마당에 똥은 싸놓지.”
그렇다고 저녁 밥상에 닭고기가 올라오는 일은 없었다. 할머니는 어느 맘씨 좋은 할아버지께 닭을 줬다고 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었다. 다른 집으로 간 닭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건 그보다 한참 뒤였다.
토끼도 키웠었다. 털이 부드러워 소위 밍크 토끼라 불리던 렉스 토끼 한 쌍을 삼촌께 얻었다. 나는 틈만 나면 시장에 가서 배추 겉잎이나 자투리 푸성귀를 잔뜩 주워왔다. 토끼 사료도 있었지만, 배추 잎을 입에 물고 아삭아삭 갉아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참 좋았었다.
추운 겨울밤, 토끼는 새끼를 5마리 낳았고, 나는 다음 날 아침, 차갑게 굳은 5마리 새끼를 발견했다. 털 하나 없는 벌거숭이였다. 아기 손가락 같은 것을 편지봉투에 담아 사철나무 아래에 묻었다. 나는 어미 토끼가 새끼를 밴지도 몰랐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뭔가 예쁘고 귀엽다면 내 곁에 두려는 마음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다. 잉꼬, 십자매 같은 애완조류를 길렀고, 수족관을 마련해 열대어를 길렀다.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돌봄의 노동, 그리고 죽음에 대한 자책이 요구되었지만, 그들과 함께함으로 행복을 느꼈다. 함께하는 기쁨이란 건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먹이를 먹는 모습, 조금씩 자라는 모습, 그리고 새끼를 낳아 생명이 이어지는 광경을 보는 것. 어쩌면 어린 마음이 가장 먼저 접한 생명에 대한 순수한 감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생명은 책 안의 개념이 아니라, 눈앞에서 숨 쉬고, 자라나며, 어느 날 예고 없이 아파지는 존재였다. 그때 나는 사랑이란 것은 사실, 바라보고 기다리고 아파하는 행위라는 것을 배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 사람은 사랑한다는 자체에서 큰 위안을 얻는다. 그래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애정이 얼마나 평화로운지도 안다. 그래서 그저 내 곁에 있어 달라고만 한다.
하지만, 내가 기르던 동물의 죽음은 단지 자연의 이치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들의 죽음은 늘 나의 책임과 죄책감을 일깨운다. 설사 내 잘못이 아니었더라도, 애초부터 내 곁에 두고 싶다는 이유로 자유로웠어야 했을 생명을 소유했으니 말이다.
한때, 애완동물이라 불리던 존재가 반려동물이라 불리고, 더 나아가 가족의 자리에까지 올라섰다. 이것은 생명을 소유물로 여기던 시대에서 벗어나는 진전일지 모른다. 그러나 동시에 동물에게 사람의 결핍까지 대신 메워주기를 기대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동물에 대한 사랑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동물이라는 존재를 인간으로 취급하는 게 아니라, 그 존재를 그 존재답게 사랑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2026-03-22 [1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