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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섭 칼럼] 한국 축구대표팀과 세계탁구선수권대회
64년 만에 우승을 노렸던 2023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망신당한 한국 축구대표팀을 둘러싼 논란이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다. 대표팀을 성원했던 국민들은 깊은 허탈감에 빠졌고, 이를 수습해야 할 대한축구협회가 보여준 일 처리 역시 실망감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선임 1년 만에 경질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자신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은 채 이를 선수들에게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이나 이런 감독을 두둔하는 듯하다가 마지못해 손절매하듯 자른 축구협회의 우렁잇속 같은 조처도 국민들의 불쾌지수를 높였다.
선수들도 예외는 아니다. 경기의 승패야 그렇다고 쳐도, 중요한 시합 전날 화합은커녕 선후배 간 서로 핏대를 올리며 대거리한 일이나 이후 감독에게 몰려가 특정 선수의 출전 제외를 요구한 것 모두 하나같이 하극상의 관점에선 다를 바가 없다. 한 마디로 대표팀이 복마전 같다고 느끼게 할 만하다. 대표팀 내부의 추태는 국민들에게 한국 축구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한국 축구대표팀의 이러한 추태는 대표팀에 쏟아지는 분에 넘치는 대접에 기인한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수십 개에 달하는 스포츠 종목의 대표팀 가운데 축구대표팀이 누리는 국민적인 인기와 대접은 다른 종목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른 종목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많이 획득하면 으레 ‘효자 종목’이라고 치켜세운다. 그런데 효자 종목의 의미가 묘하다.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하다가 올림픽 때만 되면 많은 메달을 국가에 안겨 주고 대회 이후엔 다시 예전처럼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종목을 효자 종목으로 부른다고 한다. 물론 실없는 사람의 우스갯소리에 지나지 않지만 뒷맛이 씁쓸함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축구는 그렇지 않다.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16강에만 진출하면 온 나라가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다. 대표팀 선수들은 ‘영웅’이 된다. 그로부터 축구계와 대표팀의 특권 의식은 싹트고 점점 이런 대접을 당연한 양 여긴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올림픽과 같은 종합 대회가 열릴 때마다 축구대표팀은 별도로 움직인다고 한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때 한국선수단은 대한체육회가 마련한 전세기로 움직이는데 여기에 유일한 예외가 축구대표팀이다. 현지에 도착해서도 다른 선수단과 함께 선수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내의 최고급 호텔을 숙소로 사용한다. 이는 대한축구협회의 재정이 넉넉하기 때문이다. 재정이 넉넉한 만큼 다른 종목보다 여유롭게 이동하고 지내는 것이 잘못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다른 종목의 선수라면 분명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터이다. 태극 마크라도 같은 태극 마크가 아니었던 것이다.
종목에 따라 이처럼 보이지 않는 차별을 완전히 없앨 수야 없겠으나 이를 대놓고 드러내는 방식은 이제 지양할 때도 됐다. 관심과 투자에 따라 인기가 들쭉날쭉하다고 해도 대표팀 선수들의 땀과 열정에 층차를 두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를 생각하면 현재 부산 벡스코에서 오는 25일까지 진행되는 2024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중복된다. 그런데 씁쓸하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다. 탁구로서는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이고 참여 선수도 40개국 2000명에 달한다. 관람객만도 5만 명에 이를 정도로 세계 탁구인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행사임에도 국내의 관심과 열기는 기대만큼 후끈하지 않다. 부산지역 외 다른 언론 매체에선 대회 소식조차 찾기 어렵다. 오히려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대표팀 일부 선수의 탁구 게임이 내분 폭발의 발단이 됐던 측면만 부각되면서 이번 탁구대회가 희화화의 소재가 되고 있으니 쓰린 입맛이 더 쓴 듯하다.
아무래도 축구가 아닌 탁구이다 보니 안팎에서 마이너 종목의 설움을 피할 수가 없다. 게다가 대회 개최지도 서울이 아닌 부산이어서 그런지 수도권 효과를 타지 못하는 측면도 있지 싶다. 어느 분야든지 한쪽 쏠림 현상이 유달리 심한 우리나라 특유의 고질이 스포츠 종목에서도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모습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단시간에 이런 고질이 사라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스포츠 종목이든 지역이든 그 분야에서 압도적인 인기나 비중을 누리는 쪽이 좀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를 지녀야 한다. 윤리의 측면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자기 생존을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 지금 스포츠에서는 축구가 그런 존재이고 국가적으로는 수도권이 이에 해당한다.
고대 그리스 윤리·종교 사상에 자만 또는 교만을 뜻하는 ‘휴브리스(hubris)’라는 말이 있다. 다양한 버전으로 인용되고 있지만 요즘에는 자기 과신이나 오만으로 인해 스스로를 망치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근래 우리나라 축구계나 수도권을 보고 있으면 이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때가 많다.
2024-02-2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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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섭의 플러그인] 깜깜이 사회
문명사회의 특징 중 하나를 들자면 다양한 정보의 공유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금은 개인용 기기를 통해 지구촌 곳곳의 생생한 정보를 거의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신기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놀랍기도 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는 생산된 정보가 유통되는 현상에만 주로 해당할 뿐이다. 정보를 생산할지 말지, 이어 생산된 정보를 공개할지 등은 여전히 생산자의 의중에 달려 있다. 일반인이 접하는 정보는 결국 가공되거나 통제된 정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 단계까지는 절대적으로 생산자가 ‘갑’이다. 정보 생산의 영역에 있고, 생산된 정보를 공유해야 할 주체가 이를 내팽개치면 그다음 단계는 깜깜이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국가 차원에서 벌어진다면 그 나라는 깜깜이 상태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 정치권이 바로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 내년 4월 10일 치러지는 국가적 대사인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아예 깜깜이 선거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미 12일부터 선거에 나설 예비후보자들의 등록이 시작되면서 4·10 총선은 막이 올랐다. 그동안 정치권 혁신을 바라는 열망이 높았던 만큼 국민의 관심도 매우 높다. 그런데 총선의 서막이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거구 획정이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뽑는 방식은 확정된 게 없다. 그저 설왕설래만 가득하다. 헌법 기관으로 4년간 국정 운영을 책임지는 국회의원을 뽑는 국가 중대사가 이렇게 뒤죽박죽이다.
지금 국회를 양분하고 있는 거대 양당이 선거구 획정과 비례대표 선출 방식을 둘러싼 이견 줄이기에 크게 신경을 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 기득권이 현역 의원들에게 있다 보니, 굳이 급하게 서두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른 안건에는 손톱만 한 이익을 두고도 싸우는 거대 양당이 여기에는 서로 이심전심이다.
정치 신인들은 죽을 맛이다. 한마디로 캄캄한 밤중에 등불도 없이 길을 나서는 것과 같은 꼴이지만, 억울해도 현역 의원들이 규칙을 정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무소불위의 기득권을 가진 이런 현역 의원들의 목에 아무도 방울을 달 수 없는 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정치 신인들은 이로 인해 선거사무소 설치는 물론 얼굴이나 이름이 적힌 홍보 현수막도 내걸 수가 없다. 유권자는 자기 지역에 누가 나오는지 알 수 없다. 정치의 계절, 유권자의 계절이 왔지만, 모두가 깜깜할 뿐이다.
온갖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은 거의 매번 총선 때마다 되풀이된다. 선거 때만 다가오면 여야의 기존 정치권력들은 총선 정국을 깜깜이 상태로 몰아넣는다. 선거일 1년 전까지 국회의원 지역구를 확정해야 한다는 공직선거법은 있으나 마나다. 여야 정당 어느 데서도 신경 쓰지 않는 유령의 법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는 동안 국민의 참정권과 피선거권은 깜깜이 상태에서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선거구 문제만 그런 게 아니다. 11일부터 시작된 임시국회 역시 깜깜이 상태를 벗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핵심인 내년도 예산안 처리부터 더불어민주당이 예고한 이른바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과 ‘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한 특검법안, 그리고 김 여사 일가 관련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을 포함한 3건의 국정조사 여부에 따라 이번 정기국회 역시 어디로 흘러갈지 오리무중이다. 안건 자체보다 이를 통한 내년 총선에서의 유불리 여부에만 거대 양당의 관심이 쏠려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행위에 국민의 생활이 영향을 받는데도, 국민은 정작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우리가 국가적인 중대사에 대해 얼마나 깜깜이 상태에서 살고 있는지는 지난 월드엑스포 유치 결과를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잘잘못 여부는 제쳐두고, 프랑스 파리에서 개표 결과가 발표되기 전까지는 국민 누구도 참담한 패배를 예상하지 않았다.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부산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몰라도, 대한민국에선 모두 끝까지 기대를 품었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가 그동안 깜깜이 상태에 있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이러한 집단 깜깜이는 당장 국가적 역량을 갉아먹는다. 국민은 자신감 상실과 실망감, 분노와 같은 후유증에 시달려야 한다. 그런데 어디서도 그런 마음을 위로받을 데가 없다. 몇 마디 건네는 말을 진정한 위로라고 하기에는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다. 진정한 위로는 다시는 유사한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인데, 지금 그런 일에 앞장서야 할 정치권은 스스로 국민을 깜깜이 상태로 몰아넣고 있으니, 국민은 어디서 마음을 풀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2023-12-12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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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섭의 플러그인] 서울 메가시티와 자가당착의 시대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불쑥 내던진 경기도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 추진을 놓고 목하 전국이 요란하다. 여야는 총선의 정략적 잇속 계산에 분주하고, 다른 대도시들은 이참에 ‘서울 메가시티’에 편승해 곁불이라도 조금 쬘 수 있을지 눈치를 보는 모습이다.
야권의 지적처럼 여당 대표가 국토 대개혁의 큰 틀에서 서울 메가시티 방안을 내놓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여기에 적극적으로 찬성 또는 반대 의견을 밝히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단박에 전국 이슈가 된 것은 그 대상이 다름 아닌 서울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같은 이슈가 제기됐다면 그냥 변방의 북소리로 묻혔을 것이다.
수도권과 양립하는 대칭축이자 지역 생존의 차원에서 추진한 동남권 메가시티가 무화되는 과정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던 부울경으로선 새삼 수도권의 공고한 위상에 입맛이 쓸 수밖에 없다. 기실 일이 이렇게 흘러가는 데는 우리나라 거대 양당의 자가당착적인 행태가 크게 한몫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여당이 총선을 염두에 두고 불붙인 서울 메가시티 방안에 대해 아직도 당 차원의 찬반 언급이 없다. 이낙연 전 대표가 최근 “서울 메가시티 구상은 국가를 가분수로 만드는 도박”이라며 “균형발전이라는 국가 목표를 흔들고 있다”라고 비판했고, 같은 당의 김두관 의원도 “서울 확장에 균형발전으로 맞서야 한다”며 이재명 대표에게 분명한 반대 입장을 요구했다. 국가균형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볼 때 시대 역행적인 행태라고 분명하게 못 박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묵묵부답이다.
사실 이 대표는 경기도지사 선거를 한 해 앞둔 2017년 남경필 당시 지사의 ‘경기도 포기’ 주장에 대해 “지방자치 분권 시대에 역행하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정치적으로 실현 불가능하고 효과도 없다”라며 일축했다. 서울 메가시티에 분명하게 반대한다고 밝힌 것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지금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어떻게 보면 민주당은 겉으로는 균형발전을 당의 기본 가치라고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에 줄곧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요즘에는 막바지 단계에 이른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위한 법 개정에 팔을 걷어붙이고 반대하는 모습에서 그 좌고우면하는 속내를 엿볼 수 있다. 부울경이 고대하는 우주항공청 특별법 처리 역시 이를 뻔히 알면서도 서울과 수도권 눈치를 보느라 계속 어깃장을 놓는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부터 국토균형발전을 추구해 왔다고 하면서도 각론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시점이 오면 오히려 주춤거리기 일쑤였다. 이런 어정쩡한 태도가 여당의 서울 메가시티 밀어붙이기에도 불구하고 당 차원의 명확한 입장조차 못 내놓는 자가당착의 늪에 빠지게 했다고 여겨진다.
국민의힘 역시 자가당착의 늪에 빠진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명실상부한 메가시티가 실현됐다면, 그 첫 지역은 당연히 부울경이여야 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올해 1월 1일 출범해 지방분권과 국토균형발전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국민의힘 출신 부울경 지자체장들이 취임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대안으로 ‘경제동맹’을 제시했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 이상은 아니었다.
당시 부울경 메가시티가 좌초될 위기에 처하자, 지역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국민의힘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을 강력히 촉구했다. 어떻게 해서든 메가시티의 불씨만은 살려놔야 한다는 절박감의 발로였다. 그러나 국민의힘 중앙당 차원의 조율과 개입 노력은 끝내 없었다. 오히려 사실상 이를 방기했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서울 메가시티 방안이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부울경 메가시티도 다시 추진하겠다고 한다. 더구나 서울 메가시티 구상을 처음 천명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구성된 당내 특별위원회 위원장도 모두 부울경 출신이다. 정말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할지, 어이가 없다고 해야 할지 어지러울 지경이다. 결국 메가시티도 서울이 먼저 시작해야만 다른 지역도 겨우 곁다리로 논의에 끼일 수 있다는 씁쓸한 사실만 재확인하게 됐다. 자가당착도 이쯤 되면 거의 고질이 됐다고 해야 할 판이다.
현재로서는 서울 메가시티 구상이 어떻게 결판날지 알 수 없다. 주민은 물론이고 이해관계가 걸린 지자체만 한둘이 아니다. 지금처럼 말만 요란하다가 총선 뒤 유야무야 될 공산도 충분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정치권의 자가당착적인 행태는 더욱 노골적으로 되풀이되리라는 점이다. 아직도 우리 정치권은 국민을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번에 다시 느꼈기 때문이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2023-11-0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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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섭의 플러그인] 존재감 미미한 부산관광
수도권을 제외한 거의 전국이 지역소멸의 벼랑 끝에서 마지막 희망 줄을 지역관광 활성화에 기대고 있다. 저마다 빼어난 자연환경을 내세우며 관광객 유입을 통한 지역의 생활인구 증가를 바라는 것이다. 부산 역시 이 대열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국내 어느 지역보다 풍부한 관광 자원을 갖추고 있는 곳이 부산이라고 시민들은 자부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민적인 자부심과는 거꾸로 부산관광은 갈수록 그 위상이 쪼그라들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따지고 보면 지역관광의 위상 하락은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의 다른 지역도 대체로 비슷하다. 큰 기대 속에 조성한 케이블카나 테마공원, 출렁다리 등을 무기로 관광객 유치에 나서 보지만, 사회·경제적 인프라가 집중된 서울의 파워에 밀려 활로를 찾지 못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향후 생존의 구명줄로 여기고 있는 관광객 유치에서마저 지역은 소멸의 그림자를 떨치지 못하는 형편이다.
수도권에 대응하는 국토의 양대 축을 지향하는 부산이 마땅히 여기에 균열을 내줘야 하는데, 부산관광은 여전히 안팎의 이런 기대에 많이 못 미친다. 여러 자료에서 보듯이 외국인들이 압도적으로 선호하는 대한민국의 최고 관광지는 서울이다.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지난달 7월 한 달간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은 약 26만 4000명이었지만, 이들의 국내 방문지는 대다수가 서울이었다. 외국인 관광객이 작년 같은 달보다 3배가량 늘어났어도, 서울 외 다른 지역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년 외래 관광객 조사를 보아도 서울 쏠림 현상은 뚜렷하다. 올해 1분기 입국한 관광객 157만 명 중 서울을 방문했다고 답한 경우는 81.8%에 달했다. 더욱이 외국인 관광객의 서울 집중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는 추세다. 2020, 2021년엔 60%대에 머물렀던 비율이 올해는 80%로 껑충 뛰었다.
부산은 두 번째로 많은 15.6%를 기록했지만, 서울과는 무려 5배 이상 차이가 난다. 더구나 한국관광문화연구원의 관광지식정보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부산의 주요 관광지 입장객 수는 629만 명으로, 2018년 863만 명에 비해 무려 27.1%나 줄었다. 전국 광역지자체 중 29.3%가 감소한 제주도를 제외하고는 가장 많이 줄었다. 부산이 관광지로서 여전히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최우선의 선택지는 아님을 보여 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부산의 국제관광도시 육성 사업이 그동안 알맹이 없이 겉돌면서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최근의 지적은 참으로 뼈아프다. 2020년 1월 부산이 인천을 제치고 국내 처음으로 국제관광도시로 지정됐을 당시 지역 관광업계는 기대감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5년간 총 1500억 원을 투입해 다양한 관광 자원의 발굴·개발로 국가 관광전략의 핵심 지역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넘쳤다.
그러나 국제관광도시 사업 기간의 절반이 훌쩍 지난 지금, 그 효과를 실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지역 업계는 관광객 유치에 별 도움이 안 된다며 대놓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고, 심지어 박형준 부산시장마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 상태다.
관련 사업만 69개나 될 만큼 부산관광의 전 분야를 아우르는 듯했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결국 백화점식의 보여 주기 행정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물론 그사이 코로나 사태가 있긴 했으나, ‘2024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유치’라는 턱도 없이 높게 잡았던 목표는 애당초 쳐다보지도 못할 나무였던 셈이다. 실제로 올 7월까지 부산을 방문한 관광객은 불과 89만 명이었다. 전형적인 행정 주도의 사업이 빚은 참사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국제관광도시 사업은 1년여 정도가 남았지만, 현재와 같은 상태라면 앞으로도 크게 기대할 게 없지 싶다. 국제관광도시로 가는 길이 무조건 거액의 예산만 투입하면 저절로 이뤄지는 일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가 돼야 한다. 처음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 꼼꼼히 따져 봐야 한다. 그동안 국비를 쥔 문체부에 휘둘려 부산시가 지나치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시민들이 큰 기대를 걸었던 이 사업이 아무런 성과도 없이 흐지부지 끝난다면 앞으로 부산의 국제관광도시 도약의 추동력을 어디에서 찾을지 막막하다. 만약 이 사업이 최종 실패로 귀결될 경우 국내 안팎에서 부산관광의 설 자리가 지금보다 더욱 위태로워질 것은 보지 않아도 명확하다. 사업 방향의 수정, 구체적인 콘텐츠 개발 등 무엇이라도 성과를 낼 수 있는 개선책이 나와야 한다. 흘려보낸 3년여의 세월을 탓하기에는 앞으로 남은 1년여의 사업 기간이 너무 무겁게 다가온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2023-10-1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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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섭의 플러그인] 빛바랜 ‘치안 한국’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지 않은 이유로 첫손에 꼽는 것이 ‘치안’이다. 개발도상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선진국이라고 하는 유럽, 미국 출신들도 대한민국의 치안에 대해선 기꺼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실제로 치안 상태가 평균 이상이라는 선진국이라고 해도, 성인이 한밤중에 대도시 골목을 혼자 활보하는 일은 삼갈 때가 많다고 한다. 대한민국처럼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 않고 한밤중에 별다른 거리낌 없이 도심을 거닐 수 있는 나라는 드물다는 말도 덧붙인다. 한국 사람으로 이런 말을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우쭐해진다.
사실 우리나라의 치안 상태는 세계적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외국인들에게는 직접 한 번 한국을 방문해 체험해 보고 싶은 아이템이 됐다. 안정된 치안이 관광 상품의 역할까지 하는 셈이다.
이처럼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의 안정된 치안이 요즘 빛이 바래고 있다. 최근 잇따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이상동기 범죄, 일명 ‘묻지 마 범죄’가 등산로, 지하철역, 길거리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면서 국민이 느끼는 치안 불안감이 매우 높아졌다. 한밤중 외출도 아무렇지 않게 여겼던 국민들이 이제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호신용품을 구매하는 일도 부쩍 늘었다고 하니, 불안감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치안 불안을 개탄하는 소리가 잇따르면서 경찰 책임론과 함께 치안 강화 여론이 들끓은 것은 예견된 일이다. 정부는 서둘러 대도시 중심가에 경찰 특공대와 장갑차를 배치하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흉악 범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국민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일회성의 보여 주기식 대책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만 확인했을 뿐이다. 결국은 일상에서 사각지대 없는 생활치안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가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정석은 주택가나 유동인구 밀집 지역 등 현장 순찰을 대폭 늘리는 방안이다. 대도시 중심가에 중무장한 경찰 특공대와 장갑차를 배치하는 일은 폼 나긴 하지만, 오래 할 수는 없다. 또 범죄 예방의 효율성 측면에서도 크게 기대하기가 어렵다. 이처럼 답은 뻔한데, 문제는 현장 인력이 태부족하다는 점이다.
정부와 경찰은 여기서 또 국민에게 실망감과 함께 한숨만 나오게 했다. 경찰의 현장 인력 부족을 의무경찰 재도입으로 해결하자는 발상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23일 담화문 발표를 통해 제시했다. 그러나 이틀 만에 바로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유야무야됐다.
현역병 복무 인력의 부족 때문에 얼마 전 폐지한 의경 제도를 재도입한다고 하면서 핵심 관련 부처인 국방부와는 숙의조차 없었다고 하니, 애초부터 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빗발치는 반대 여론에 정부의 정책 난맥상만 드러낸 꼴이 됐다. 정부가 이런 주먹구구식 대응으로 활개 치는 묻지 마 범죄로부터 과연 국민의 생활안전을 지킬 수 있을지 의구심만 더 커지게 했다.
시급한 현장 인력 보충은 지금으로선 우선 경찰 내부 조정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한 총리의 담화문 발표에 배석했던 윤희근 경찰청장은 최근 일련의 범죄나 테러 또는 사회적인 재난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대략 7500~8000명으로 추산했다.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경찰 내부에서 이 정도의 인력을 충당하기는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윤 청장의 말을 들어 보면 언뜻 수긍이 가는 듯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경찰의 내부 인력 운용에 비효율성이 많은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윤 청장은 “‘14만 경찰’이라고 흔히 얘기하지만, 길거리에서 (치안) 활동을 할 수 있는 인력은 3분의 1 수준인 3만 명 정도”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나머지 11만 명의 경찰은 현장에서 치안 활동을 할 수 없는 인력이라는 얘기인데, 현장에서 활동할 수 없는 경찰이라면 도대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법기관인 경찰 인력의 약 80%가 일상적인 치안과 동떨어진 업무를 하고 있다면 이는 경찰의 인력 구조와 운용에 매우 심각한 비효율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윤 청장은 당시 브리핑에서 왜 그렇게 됐는지 이유는 따로 설명하지 않았다.
일부에선 그동안 경찰의 인적 관리 실패가 기형적인 조직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경사 이하 하위직과 경위 이상 간부의 인력 비대칭 구조가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지금은 경찰 내부부터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스스로 현장 인력을 확보하는 노력을 먼저 국민에게 보여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시 국민의 든든한 보호막으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치안 한국의 기둥은 누가 뭐래도 경찰이고, 경찰의 현장 활동이 살아나야 그 명성도 유지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2023-08-2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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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섭의 플러그인] ‘이류 부산대병원’을 원하지 않는다
부산대병원 노조의 파업이 2주 차를 넘기고도 해결될 기미가 없다. 전국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은 벌써 막을 내렸지만, 부산·울산·경남의 최대 거점 병원인 부산대병원은 오히려 노사 갈등이 더 심화하는 양상이다. 환자들은 죽음의 문턱으로 내몰리고 있다.
최대 쟁점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노사 입장은 파업 초기에 비해선 다소 진전됐다고는 하나, 아직 합의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노조가 지난 25일 부산역 광장에서 폭로한 부산대병원의 불법 의료행위는 시민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예전 일부 병원에서 이런 일이 있다는 얘기가 돌기는 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부산대병원과 같은 거점 병원에 근무 중인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공개된 장소에서 직접 이를 증언한 사례는 보지 못했다. 부산대병원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금이 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너질 만한 수준이다.
간호사의 대리 처방은 약과에 속하고, 집도 의사를 대신해 환자에게 설명하고 대리 서명을 한 것은 물론 심지어 간호조무사가 암 진단까지 했다고 한다. 또 의사가 환자를 만나지도 않고 신체 사진만 보고 진료를 한 적도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정말 어디까지 사실이라고 믿어야 할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번 파업의 종료 여부와는 별개로 부산대병원의 불법 의료행위 폭로는 진료 불신은 물론 병원 위상에도 큰 타격이 될 가능성이 높다. 병원의 가장 큰 무형 자산이 바로 환자들의 신뢰인데, 여기에 치명상을 입는다면 그 자체가 곧 위기다. 부산대병원 노조는 31일에도 추가 폭로를 예고했다.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부산대병원은 안 그래도 비정규직 직원의 정규직 전환을 놓고 수년 동안 심각한 노사 갈등을 빚었다. 이 때문에 직원 간 내부 불신과 불협화음이 팽팽한 상태다. 이러한 어수선한 내부 상황 자체가 모두 부산대병원의 위상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지역 최대의 거점 병원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지역 의료계의 심각한 문제인 환자들의 역외 유출도 더 심화할 것은 뻔하다.
부산대병원은 대리 처방 등은 전국 병원 공통의 문제로, 개선 노력을 약속했다. 그렇다고 해도 불법 의료행위가 묻히지 않는다. 이것은 신뢰의 문제다. 무너지기는 쉽지만, 회복은 어려운 게 신뢰의 속성이다. 당장 본인이나 가족, 지인이 큰 수술을 받아야 할 경우 선뜻 부산대병원을 권유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도 서울행을 권하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현실을 냉정히 봐야 한다.
사실 부산대병원이 서울의 대형 병원보다 낫다고 믿는 지역민은 많지 않다고 봐야 한다. 여러 병원 평가가 있지만, 올해 초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사가 의료 전문가 추천과 환자 만족도 등을 종합해 공개한 ‘2023 세계 최고 병원’에서 부산대병원은 국내 병원 중에서 20위권 밖이었다. 그마저 갈수록 하락세다. 대구·경북, 호남, 충청의 대학병원에도 밀렸다.
부울경 지역 환자의 역외 유출 얘기가 나올 때마다 나오는 대답이 있다. 의료진과 진단 장비 등 측면에서 서울의 대형 병원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고, 후유증 관리나 재발 여부 관찰에는 지역 대형 병원이 훨씬 우수하다고 말한다. 서울의 대형 병원 선호는 단지 지역 환자들의 선입견 탓이라고 한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나, 그럼에도 지역 환자들의 서울행은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부산·경남만 해도 1년에 100만 명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왜 이런 일이 줄어들지 않는지, 특히 지역의 최고 병원인 부산대병원은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부산대병원에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얘기는 잘 듣지 못했다. 안 그래도 환자는 넘쳐나고, 예약은 밀려 있다. 지역 최고의 병원이라는 자만심과 넘치는 환자는 역설적으로 부산대병원을 친절과 정성을 가장 원하는 환자들로부터 더 멀어지게 한다.
게다가 이번에 드러난 부산대병원의 신뢰성 훼손은 지역 의료계 전체에도 큰 부담이 될 것이 분명하다. 부산대병원이 전국은 물론 지역에서도 ‘이류 병원’이라는 냉소를 받지 않으려면 시민들의 신뢰 회복을 위한 환골탈태 수준의 개선책을 내놔야 한다. 그동안 수 개월간의 원장 공석 상태와 뒤이은 장기 파업, 그 과정에서 드러난 불법 의료행위는 그 자체로 시민들의 등을 돌리게 하는 요인이다. 그동안 내부적으로 곪아 왔던 이런 일들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도 어렵게 했을 터이다.
어쨌든 부산대병원은 여전히 지역의 대들보 병원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태가 지속되고, 갈수록 시민들의 불신이 쌓인다면 이류 병원 취급의 수모를 당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하지 못한다. 이는 부산대병원이나 지역민이나 모두 바라는 일은 아닐 것이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2023-07-2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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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섭의 플러그인] 올 여름밤도 소음에 잠 못 이루나
이제 겨우 하지(夏至)인데 날씨는 벌써 한여름 폭염의 기세다. 낮뿐 아니라 밤에도 은근히 더운 게 올여름을 어떻게 견뎌 낼지 조금 걱정이 된다. 에어컨을 켜고 자기에는 아직 어색해 창문을 열어젖혀 보지만, 한여름 밤만 되면 더 기승인 도시의 소음을 벗어날 재간이 없다.
그중에도 특히 오토바이 소음은 짜증 유발이나 수면 방해 등 인간의 심리·생리적 요소에 부정적 영향이 크다. 안 그래도 숙면이 어려운 한여름 밤, 허공을 찢을 듯 울리는 굉음은 시민에게 ‘한밤의 테러’와 다름없다. 더욱이 해수욕장이 많은 부산은 매년 여름이면 오토바이 굉음과 폭주로 인한 고통이 가히 전국 최고다.
민원에 견디다 못한 부산 해운대구가 직접 국민청원으로 문제를 제기한 게 벌써 2년 전이다. 그사이 다른 지자체들도 뜻을 같이해 정부에 오토바이 소음 규제 강화를 요청했다. 전국적인 움직임에 전담 부처인 환경부도 작년 3월 이륜차 소음 규제 강화 발표로 화답했다. 이 사례는 지자체의 문제 제기에 정부가 호응한 좋은 본보기로 회자했다.
그러나 끝내 현실 정책으로 채택되는 데는 실패했다. 최근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위원회가 환경부의 소음 규제 강화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해 재검토 의견을 밝힌 것이다. 30년 만에 오토바이 배기소음 기준을 강화하려던 환경부의 계획은 규제개혁위에 막혀 무산되고 말았다. 부산의 선도적인 노력으로 정부의 30년 묵은 정책을 바꿀 기대에 부풀었던 시민으로서는 매우 아쉽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앞으로도 계속 오토바이 소음에 대책 없이 시달려야 하는 시민들로서는 규제개혁위의 이번 결정이 정말 서운하고 야속하게 느껴진다. 굉음의 고통이 도시 안전은 물론 시민 안녕까지 해치고 있는 지경임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규제개혁위가 단번에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싶다.
환경부가 1993년에 마련된 이륜차의 배기소음 기준 강화에 나선 것은 이 기준이 지금 현실과 맞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코로나 사태로 배달 용도 등 이륜차가 크게 늘면서 소음 민원이 급증했다. 정부로서도 더는 이런 상황을 놔둘 수 없게 된 것이다.
환경부는 현행 102~105㏈인 오토바이의 배기소음 허용 기준을 86~95㏈로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륜차가 정지 상태에서 출발하거나, 저속에서 고속으로 갑자기 속도를 높일 때 배기소음 피해가 가장 크다는 점을 고려했다. 강화된 기준을 이륜차 제작 단계부터 적용해 근본적으로 소음 피해를 줄인다는 방침이었다.
규제개혁위는 평온한 생활 환경을 조성하려는 명분은 인정하면서도 국제적인 흐름과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지자체가 이륜차 소음을 단속할 수 있는 다른 근거가 있는 상태에서 환경부의 추가 규제는 지나치다고 보았다. 소음 기준 강화에 따른 운전자들의 반발 요인도 감안했다.
규제개혁위의 이런 판단에 일면 수긍할 수 있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비춰 본다면 다소 한가한 결정이라는 비판을 면하지 못할 것 같다. 규제개혁위의 지적처럼 지금 지자체가 주거 지역에서 운행되는 이륜차를 단속할 근거가 있기는 하다. 환경부가 작년 10월 ‘이동소음 규제 지역’ 내에서 배기소음 95㏈을 넘는 이륜차를 단속 대상에 포함한 조치가 그것이다. 지자체가 자체 고시를 통해 단속 지역과 시간을 정하면 된다. 이 범위 안에서 소음이 큰 이륜차의 운행을 제한할 수 있고, 위반 대상엔 과태료를 물린다.
그러나 현재 지자체의 행정력으로 이를 실행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환경부 방침에도 지금까지 자체 고시를 마련한 지자체는 경기도 광명시가 유일하다. 고시 제정 절차를 시작한 곳도 충남 천안시와 충북 청주시 정도다. 고시를 이미 만든 광명시도 실제 단속은커녕 아직 구체적인 계획도 없다고 한다.
단속에 나설 인력과 장비 확보의 한계 등 행정력이 제한된 지자체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굉음의 오토바이를 단속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또 지자체 간이나 경찰, 한국교통안전공단 등과의 협조 체계 마련도 여전히 요원하다. 게다가 이륜차 운전자들은 이동소음 규제 지역 내 운행 제한·금지 조치에 대해 소송까지 할 태세다. 이런 마당에 환경부의 소음 기준 강화 계획까지 물거품이 됐다. 굉음의 이륜차 운전자들이 혹 정부와 지자체에는 자기들을 단속할 실질적인 수단이 없다고 여기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
시민으로서는 한여름 더위만큼 답답하고 짜증 나는 상황이다. 정부가 개선안을 더 찾아보겠다고는 했지만, 시민들이 올여름에도 오토바이 굉음에 잠 못 드는 밤을 면하기는 어렵겠다.
2023-06-20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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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섭의 플러그인] 도마뱀 꼬리 자르기와 탈당 행진곡
예전 동남아시아 국가의 한 숙소에서 벽에 붙어서 오르내리는 도마뱀 두 마리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창문을 열어 놓은 채 저절로 나가기를 기다렸지만, 아예 침대 밑으로 들어간 뒤 나오지 않았다.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직원의 말에도 밤새 잠을 설쳐야 했다. 사실 대부분의 도마뱀은 사람에게 해가 없다고 한다. 이전엔 우리나라 들판이나 집 마당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꼬리를 자르고 도망가는 특유의 모습을 보기 위해 일부러 도마뱀을 잡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권에 연일 도마뱀이 입길에 오르내린다. 도마뱀과 꼬리 자르기가 한 세트로 묶여 통째 유통된다. 최근 김남국 의원이 가상화폐 보유·거래 의혹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자, 국민의힘에서 도마뱀의 꼬리 자르기에 빗대 민주당의 도덕성과 진정성을 거세게 공격하고 있다.
김 의원이 자초한 의혹의 진실 여부야 관련 기관에 맡겨 두더라도, 또 국민의힘의 비난이 아니더라도, 국회의원의 탈당은 이제 완연히 하나의 ‘정치 일회용품’이 됐다. 여기에 무슨 정치적 견해차이나 지향 같은 것은 필요 없다. 소속 정당과 자신의 이해만 맞는다면 이런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다. 민주당은 김 의원 탈당으로 당과의 연계성을 차단할 수 있고, 김 의원은 당에 대해 일정 부분 책임을 진다는 모습만 연출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김 의원 스스로 “잠시 떠난다”라고 한 것처럼 복당은 암묵적으로 이미 탈당 속에 포함돼 있다. 이런 장면을 국민이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그러니 누굴 바보로 아느냐는 말이 안 나올 리가 없다.
도마뱀의 잘린 꼬리가 별 탈 없이 나중에 온전히 재생될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요란한 탈당의 행진곡은 응당 복당의 변주곡으로 바뀔 것이라고 여긴다. 이런 일은 민주당에 예삿일이 됐다. 탈당도 아무렇지 않고, 뒤의 복당은 더 아무렇지 않다. 이러다 탈·복당 무감각의 당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최근 사례를 보면 돈 봉투 의혹으로 탈당한 윤관석·이성만 의원과 송영길 전 대표가 있다. 모두 탈당은 했지만, 역시 복당의 실꾸리까지 자르고 나가지는 않았다. 헌법재판소의 위법 판결에도 꼼수 탈당 1년 만에 복당한 민형배 의원,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자진 탈당한 뒤 4개월 만에 복귀한 양이원영 의원도 모두 복당의 실꾸리를 동아줄처럼 품고 있다가 되돌아왔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최근 최고위원 문제로 국민의 눈총을 받고 있는 점은 야당과 별반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오십보백보 정도다. 그러나 헌법 근거를 바탕으로 온갖 제도적 혜택을 누리는 국회의원이 자기로 인해 벌어진 의혹 모면을 위해 탈·복당의 곡예를 부리고, 소속 당은 이를 무슨 큰 결단인 양 여기는 모습은 민주당 쪽이 더 많다. 여야가 이처럼 서로 뒤질세라 꼴불견의 행태만 벌이고 있으니, 모두 지지율이 바닥이다. 지지율만 보면 제1, 2당이 맞나 싶다. 국민들이 선거구제 개편을 통한 국회의원 정수 증가에 그토록 반대하는 심경을 알 만하다.
국회의원의 탈당을 빗대 도마뱀 꼬리 자르기라고 쉽게 얘기하지만, 사실을 알고 나면 적어도 우리 정치권은 함부로 이를 입에 올려선 안 될 것 같다. 도마뱀이 꼬리를 자르는 것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필살기라고 한다. 한 번 잘린 꼬리는 다시 생기더라도 원형처럼 재생되지 않고, 또다시 자를 수도 없다. 또 잘린 꼬리로 인한 몸의 전체 균형 상실로 운신에 많은 제한을 받아 오히려 천적의 위험에 더 잘 노출된다고 한다.
단 한 번의 위기 탈출을 위해 앞으로 예상되는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 결단할 수밖에 없는 처절함이 도마뱀의 꼬리 자르기에 있다. 당장의 곤경을 모면하기 위해 헌신짝 버리듯 쉽게 탈당했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복당을 되풀이하는 정치권의 행태와는 차원 자체가 다른 행위다.
여야 할 것 없이 국민의 속만 뒤집어 놓은 행태가 잇따르면서 국민들 사이에 정당과 국회의원의 특권적 위상에 대한 반감이 갈수록 강하게 이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까지 적잖은 설문에서 나타난 것처럼 정당과 국회의원에 대한 신뢰도는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수준이다. 이런 정치권에 현재와 같은 특권적인 위상과 혜택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의구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민의 신뢰도나 역할에 비해 과도한 대접을 손볼 때가 됐다는 공감대는 지금도 널리 퍼져 있다. 그런데도 정당과 의원들의 헛발질은 그치지 않는다. 마치 국민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한 모습이다.
정치권의 시계는 벌써 다음 4·10 총선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 시계 자체를 바꿀 태세다. 도마뱀의 필살기처럼 내년엔 국민의 대대적인 정치인 꼬리 자르기가 행해질지 모른다.
2023-05-1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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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명섭의 플러그인] 빚 앞에 장사 없다
‘가을 빚에 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갚을 형편이 되지 않는 데도 일단 다가오는 가을에 있을 수확물을 염두에 두고 빚부터 내고 본다는 뜻이다. 또는 추수철인 가을에는 빚을 내기가 쉬우므로 빚부터 얻어서 분수에 맞지 않게 흥청망청 쓴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어쨌든 자기 분수나 앞으로 예상되는 여러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빚에 의지하는 것으로, 지금 당장의 안일함에 취해 미래의 부담을 헤아리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꼬집는 의미가 강하다.
빚에 관한 속담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자기 분수를 넘는 빚은 경계의 대상으로 치부한다. 나라를 운영하든, 가정을 꾸리든, 큰 차이가 없다. 물론 국가를 운영하는 경우에는 일부러 빚을 내야 할 때도 있고, 또 빚이 없는 상태가 꼭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빚 앞에 장사가 있을 수 없는 것은 국가나 가정이나 다르지 않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2022년 국가결산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나랏빚에 대한 걱정이 많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순채무(중앙정부에 대한 채무는 제외)가 사상 처음 1067조 원으로, 1000조 원을 넘었다는 소식에 많은 국민이 놀랐다. 1000조 원은 보통 사람의 수치 감각으로는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규모다. 국가채무가 2018년 680조 원에서 4년 만에 1000조 원을 돌파하면서 정치권에선 또 책임 공방이 불거졌다.
대략적으로는 코로나19를 겪었던 지난 3년간 내수 진작과 전 국민 대상의 지원금 확보를 위해 수차례의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확장재정 영향으로 나랏빚이 많이 늘어난 탓이다. 코로나 시기 기댈 곳 없었던 소상공인 지원과 내수 활성화를 위한 확장재정의 필요성은 당시 세계적인 추세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어느 정부라도 코로나와 같은 비상시국에는 비상한 정책을 동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1000조 원의 국가채무가 비록 놀라운 규모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재정 정책이 계속 이어질 수는 없다. 비상한 국면이 지나면 다시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와야 한다. 더구나 중장기적인 관점을 놓쳐서는 안 되는 국가재정에 관한 문제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사실 지난해 국가채무가 1000조 원을 넘었다는 것보다 더 우려되는 점은 채무의 증가 속도다. 지난해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9.6%였는데, 이는 처음 40%를 넘어선 2020년(43.8%) 이후 불과 2년 만의 일이다. 작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현재처럼 조세·재정개혁이 없으면 최악의 경우 국가채무 비율은 2060년께 GDP 대비 230.9%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금보다 나랏빚이 약 5배가 더 많아지는 것이다. 빠른 채무 증가를 경고하는 목소리는 국제신용평가사들은 물론 국내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나랏빚 1000조 원을 넘어선 우리나라는 지금도 분당 1억여 원씩 빚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하루에 1800억 원가량으로 올해만 60조 원이 증가할 예정이다. 향후 4년간 이자만 1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국가채무 제어 장치의 필요성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제도적으로는 재정준칙 마련이 첫손에 꼽힌다. 그런데 현재 재정준칙 법제화 내용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8개월째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아무런 진전이 없다. 재정건전성을 판단하는 지표인 정부의 관리재정수지(통합재정수지에서 4대 사회보장성 기금 수지를 제외한 것)에서 적자 한도를 GDP의 -3%로 제한하고, 부채 비율이 GDP 대비 60%를 넘기면 적자 비율을 -2%까지 낮추는 게 핵심이다. 여야 모두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정치적 이해에 얽혀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가파른 국가채무 증가 속도를 고려하고, 또 대부분의 선진국이 재정준칙 아래 엄격하게 재정을 운용하고 있는 현실에 비춰 보면 이 제도의 도입을 더는 미룰 수 없다. 더구나 내년 총선 등 정치 상황에 재정이 휘둘리지 않으려면 실효성과 구속력을 갖춘 제도 도입은 불가피하다.
일부의 우려처럼 재정준칙의 도입이 경기 침체 국면에서 정부의 확대재정 요구와 꼭 상충하는 것은 아니다. 경기 부양 수단으로 국가재정의 활용은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급속한 나랏빚 증가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어떠한 제도적 제어 장치도 없이 운용되는 국가재정은 필연적으로 방만하게 흐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 많은 나라에서 그 사례를 충분히 찾을 수 있다. 돈을 마음껏 쓰는 일은 일견 즐겁고 폼 나는 일이지만, 언제나 그 후폭풍이 가혹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세상에 빚 앞에 장사 없고, 더더욱 공짜는 없다.
2023-04-11 [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