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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의 문화시선] 시 '발레단' 보도자료 유감
“부산시는 오페라단도 없는데 발레단부터 창단하는 겁니까?” “부산오페라하우스 초대 예술감독 정명훈 씨와는 역할 구분이 어떻게 되죠?”
지난 4일 자 부산시 보도자료 ‘부산시, 2024 부산오페라하우스 발레단 단원 공개 모집’ 내용에 포함된 ‘발레단 예술감독으로 발레리나 김주원 위촉’을 보고 터져 나온 질문이다. 시가 이 보도자료를 낸 뒤 국내 언론 여기저기에 “부산오페라하우스 발레단 예술감독에 김주원 씨 위촉” 기사가 잇따랐다. 김주원 씨 소속사 EMK엔터테인먼트도 “발레리나 김주원이 ‘부산오페라하우스 발레단’의 예술감독으로 위촉돼 첫 번째 시즌을 이끈다”고 알렸다.
좋은 소식이긴 하지만, 적어도 보도자료라는 형식을 통해 시가 어떤 사실을 공표할 때는 정확해야 한다. 보도자료만 보면 시가 ‘발레단’을 만들면서 초대 예술감독을 결정한 듯하다.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을 담당하는 시 문화시설개관준비과 주무관에게 재차 확인했다. ‘발레단’ 창단 로드맵이 나온 건지, 예술감독은 어떤 선임 절차를 거쳤는지. 그 주무관은 “공식 발레단 창단은 아니다. 올해 시범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시즌 단원을 모집하면서 ‘2024 오페라하우스 발레단 예술감독’으로 지칭했고, 위촉(선임)위원회를 꾸린 적은 없다”고 밝혔다. 실은 영화의전당과 연계해 오는 11월 15~16일 선보일 ‘샤이닝 웨이브’ 작품 제작 총괄책임자로 김주원 발레리나를 초빙한 것이었다.
시는 오는 2027년 개관 예정인 오페라하우스를 제작 중심 극장으로 운영하기 위해 인력 육성 차원에서 2022년부터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모집, 선발해 운영해 왔는데 올해는 발레단으로 확대한다는 게 핵심이다. 지난 2년간 오케스트라 시즌 단원 훈련을 지도한 김봉미 지휘자나 합창단을 책임진 김강규 지휘자와 비슷한 입장이다.
이는 올해 책정한 예산에서도 잘 드러난다. 시는 ‘발레단’ 운영과 시즌 사업비(영화의전당분 포함) 명목으로 각각 1억 원 남짓을 정했다. 정식 ‘발레단’ 출범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참고로 서울시가 최근 ‘서울시발레단’ 창단을 공식화하면서 밝힌 예산은 제작과 인건비를 포함해 26억 원이다.
시는 호칭 하나 정하는 데도 신중해야 한다. ‘2024’ 숫자를 넣어서 ‘오페라하우스 발레단 예술감독 위촉’이라고 보도자료를 낸 것 자체가 여론을 호도할 우려가 크다. 더욱이 같은 작품을 이틀에 걸쳐 공연할 뿐이지만, ‘2024 부산발레시즌’으로 표현한 것도 전형적인 부풀리기다. 담당자의 과욕이 빚은 ‘과대 포장’이라고 하기엔 이를 제대로 거르지 못한 내부 시스템도 문제다. 거듭 말하지만, 보도자료는 팩트에 기반해 구성하고 발표해야 한다. 보도자료를 받아쓰는 언론 역시 확인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2024-03-0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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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의 집피지기] 무너지는 주거 사다리
오피스텔과 빌라는 죄가 없다. 지난해 전국을 발칵 뒤집은 전세사기 사태는 사기를 치밀하게 계획했거나 대책 없이 무분별한 투기를 일삼았던 일부 파렴치한 임대인이 책임을 져야 할 문제다.
화살이 오피스텔과 빌라 그 자체로 향해선 안 된다. 오피스텔과 빌라 등 비아파트 주택은 오랫동안 서민과 청년층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도맡았다. 아파트 전월세 보증금이 부담스러운 주거 취약계층은 오피스텔이나 빌라 등에서 차곡차곡 목돈을 모으며 ‘상급지’로 옮겼다. 2~3년 전처럼 아파트값이 폭등할 땐 사다리 역할이 더욱 빛을 발했다.
하지만 정부가 ‘투기꾼을 잡겠다’며 2020년 8월부터 주거용 오피스텔을 주택 수에 포함하면서 오피스텔의 공급이 급감하고 있다.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 오피스텔에 투자했다간 월세 수익보다 훨씬 많은 종합부동산세를 내야 할 판이다. 불과 5년 전 11만 실에 달했던 전국 오피스텔 신규 공급은 올해 6900실로 쪼그라들었다.
착공 물량이 줄어든 건설업계 걱정하자는 게 아니다. 수요는 일정한데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이 상승한다. 월세 위주로 임대되는 오피스텔이나 빌라의 신규 공급이 감소하면 월세와 보증금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임대료 증가분은 청년이나 서민 등 주거 취약계층이 오롯이 떠안게 된다.
올해부터 분양이나 착공 물량이 줄어들고 있으니 공급 부족이 현실화되는 2~3년 뒤 월세 상승은 사실상 예견된 상황이다. 벌써부터 수도권을 시작으로 월세가 치솟고 있다. 부동산 침체기임에도 전국 오피스텔 월세가격지수는 8개월째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올 1월 오피스텔 수익률은 5.27%로 2020년 6월 이후 3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찍었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있다. 국토부는 1·10 부동산 대책을 통해 소형 신축 오피스텔을 최초 구입할 경우 세제 산정 시 주택 수에서 제외하는 규제 완화책을 발표했다. 대책이 나온 지 두 달이 다 돼가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오피스텔 공급이 끊긴 상황에서 ‘신축’이라는 단서 조항을 달아 놓으니 효과가 있을 리 만무하다.
청년들이 건너갈 징검다리가 끊어지면, 이들이 체감하는 주거 진입장벽은 더욱 높아진다. 오피스텔과 빌라가 사라지면 결국 고시원이나 쪽방 정도의 선택지밖에 남지 않는다. 투기를 조장하지 않는 차원에서 규제부터 풀고, 공급자에게는 한시적으로라도 세제나 금융 등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전세사기 예방과 감시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지금은 무너져가는 주거 사다리를 다시 이어야 할 때다.
2024-02-2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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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철의 정가 뒷담화] 정치인의 민낯
중국 역사서 ‘십팔사략’(十八史略)에는 위왕이 백성들로부터 계란 2개씩을 거둔 적이 있는 한 장군을 파직시키려 하자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진언하면서 파면을 취소한 일화가 나온다. 자사는 “훌륭한 목수는 아름드리 큰 나무에 썩은 곳 몇 군데가 있다고 하여 나무 전체를 버리는 법이 없다. 이 난세에 계란 두 개 때문에 인재를 버리려 하나”고 말했다.
한국 현대 정치에서도 정치인 검증에 있어 윤리와 도덕 등과 같은 ‘수신’(修身)과 국가 경영 역량인 ‘치국’(治國) 중 어떤 것을 우선시해야 하느냐를 두고 말들이 많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두 가지 모두 최소한의 인품을 갖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한 개인의 인품이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말이다. 평소 ‘신사적’인 이미지로 잘 알려진 부산의 A 국회의원이 오전 7시 전화를 걸어왔다. 몇 분간 이어진 통화의 골자는 자신과 맞붙을 가능성이 높은 상대 후보와 자신에 대한 평가가 분량은 물론 내용적인 면에서도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4년간 치러진 4번의 선거 모두 정치부에서 지낸 만큼 선거가 임박해 조급해진 A 의원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이후다. 그는 “〈부산일보〉 경영진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러면 가만 안있어요”라고 말했다. 언론계 내에서도 금기시되는 ‘편집권 침해’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내놓으면서 기자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통화를 끊고 문자로 해당 발언에 대해 ‘당황스럽다’는 표현을 통해 우회적으로 지적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속상했다”면서 “균형은 잊지 말길 바란다”였다. 자신의 발언에 대한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며칠 지나지 않은 날에도 이러한 황당한 통화는 이어졌다. 늦은 저녁 시간 휴대전화 너머로 들리는 B 후보의 목소리는 한껏 흥분돼 있었다. 기사 중 경선 가능성을 제기한 대목을 문제 삼으며 자신이 전략 혹은 단수 공천 가능성이 있음에도 “무조건 경선이 치러지는 것처럼 읽힌다”는 것이다.
이어 ‘균형발전’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는 그의 입에서는 “이러면 내가 부산을 왜 오냐” “약속했던 것들 부산에서 안해도 되는가. 나는 수도권으로 가면 된다”라는 말이 나왔다. 자신의 고향에 대한 시혜적 시선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B 후보는 오늘도 유권자들에게 부산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두 사람과의 통화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지만 그들과 함께 일하거나 일하게될 보좌진, 직원들 걱정이 앞선다. 기자와 취재원 사이에서도 이같은 말을 하는 데 자신의 아랫사람에게는 어떨까.
2024-02-1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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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용의 '금알못' 탈출기] 뛰는 '정책' 위에 나는 'MZ'
월 납입 한도 50만 원. 만기까지 납입하면 1년 차 납입액의 2%, 2년 차 납입액의 4%만큼 저축장려금을 최대 36만 원까지 정부에서 지급하는 적금 상품이 있다. 이자 소득은 비과세다. 기한은 만기 2년의 자유 적립식 적금이다. 2년 만기 상품으로 가입했을 때 이자는 연 10% 수준에 이른다. 아무리 고금리 세상이라지만 이자 10%의 상품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 상품은 2022년 2월 정부가 청년 지원 목적으로 출시한 청년희망적금이다. 하지만 상품 출시 2년. 이 상품에 가입한 10명 중 3명이 적금을 중도 해지했다. 최초 가입자 수는 289만 5043명이었는데 지난해 12월 말 중도 해지자 수는 무려 86만 1309 명으로 중도 해지율이 29.8%에 달한다. 상품 출시 당시 가입했던 지인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진작에 해지했다”였다. 월세, 결혼 준비 자금 등 써야 할 돈은 해마다 늘어났고 2년은 길게 느껴졌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지난해 출시된 특례보금자리론을 두고도 MZ세대들의 반응은 차갑다. 젊은층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위해 저금리로 보금자리 마련을 돕겠다는 정책이지만 1년 만에 은행권의 저금리 경쟁 속에 고금리 딱지가 붙었다. 특례보금자리론을 신청했던 45만 명은 은행권의 3%대 주택담보대출 경쟁 속에 은행권으로 대환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정책 금융의 최대 화두인 신생아 특례대출. 대출신청일 기준 2년 내 출산·입양한 무주택 가구나 1주택 가구에 대해 주택 구입이나 전세 자금을 저금리에 대출해 주는 제도다. 대상 주택은 9억 원 이하, 전용 면적 85㎡ 이하여야 한다. 올해 대상은 2023년 1월1일 이후 출생아를 둔 출산 가구(입양 가구)다. 구입 자금 금리는 1.6~3.3%, 전세 자금은 1.1~3.0%가 적용된다. 대출 기간 중 자녀가 더 생기면 우대 금리도 적용된다. 지난달 29일 출시 첫날 최저 1.1% 금리에 접속 사이트에 신청자가 폭주했다. 출발은 좋았다. 하지만 실제 대출 신청자들은 ‘출산 장려라면서 면적 제한은 비현실적이다’는 뒷말이 나온다. 출산 2년 제한은 어떤 기준이냐는 비판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옛날에는 저런 것도 없었는데 젊은 세대들이 참…’하며 기성세대들은 혀를 찰 수도 있다. 하지만 MZ들의 금융은 호흡이 짧고 빠른 것만은 틀림없다. 자신이 주식, 코인 등 고위험 상품의 직접 투자에도 거리낌이 없다. 정책 금융 상품이 출시되면 각종 SNS에는 유불리를 따지는 글들이 넘쳐난다. 각박한 청년세대에게 2년은 길었고 특례보금자리론보다 더 저렴한 금리를 찾는 건 매우 쉬운 일이다. 더 이상 은행원의 권유에 돈을 묵혀두거나 주거래은행이니 낮은 이자라도 안주하는 시대는 지났다. MZ 눈높이에 맞는 금융 상품만이 살아남는 시대다. 뛰는 정책 위에 나는 MZ의 시대다.
2024-02-01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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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욱의 타임 아웃] ‘롯데의 가을’ 기대한다
경남 김해시 상동면에 위치한 롯데 자이언츠 상동야구장은 신인 캠프에 참가한 ‘자이언츠’들의 젊은 열정과 땀방울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상동야구장은 사직 무대에서 뛰는 꿈을 꾸는 2군, 신인, 재활 중이거나 군을 전역한 선수 등이 훈련하는 곳이다. 또 2군 퓨처스리그 경기를 치르는 곳이기도 하다. 부산 사람이면 사직이야 모르는 이가 없지만 상동은 다소 낯설다. 기자 역시 한 번도 찾아본 적이 없었다. 올해 〈부산일보〉 스포츠부로 발령이 나 2024시즌 한국프로야구(KBO) 취재를 담당하게 되면서 이달 중순 상동야구장을 직접 찾아봤다.
먼저, 상동야구장에 대해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김해시 상동면 대감리에 롯데의 전용 연습구장으로 2007년 세워졌다. 이후 편의시설 증축과 리모델링을 거쳐 주경기장, 경기운영관, 선수들이 먹고 자고 쉬면서 머무는 거인관, 자이언츠 돔 등으로 구성된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주경기장은 사직과 동일한 외야 펜스가 설치돼 있었다. 경기 관람이 가능한 관중석은 포수와 주심 뒤로 만들어져 있다. 2군 퓨처스리그 경기를 관람한 적은 없지만 한적하고 편안하게 경기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관람료는 무료다.
상동을 찾았던 날 간만의 추위가 찾아온 탓에 밖에서 러닝 중인 일부 선수들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자이언츠 돔에서 훈련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자이언츠 돔은 피칭을 하거나 타격 연습을 할 수 있는 실내 훈련실부터 트레이닝할 수 있는 운동 공간, 재활을 위한 치료센터, 트레이너실 등이 복합적으로 갖춰진 공간이다.
이날 롯데의 유망주이자 투타 겸업 ‘이도류’ 전미르, 최근 JTBC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에서 인기를 끈 정현수 등 고등학교,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프로로 온 신인 선수들을 만났다. 이번 겨울부터 합류한 새 얼굴의 선수가 상당수일텐데 풋풋한 모습으로 장난도 치면서 훈련하는 모습에서 이미 그들은 끈끈한 동료가 돼 있었다.
이들 각자의 출신과 포지션, 이전 성적들은 천차만별이다. 구단의 큰 기대를 안고 괌 전지훈련을 기다리는 ‘즉시 전력감’ 기대주도 있는 반면, 앞으로 차근차근 성장시켜야 할 미래 자원들도 있었다. 그들 모두의 꿈은 단 하나. 1군 무대 출전이다. 출발선은 동일하다. 이제부터 흘릴 땀의 양에 따라 올해, 혹은 내년쯤 사직에서 볼 수 있는 이도, 조용히 상동을 떠날 이도 있을 것이다.
올해는 김태형 롯데 자이언츠 감독의 합류로 그 어느 해보다 가을야구에 대한 부산 시민들의 열망이 크다. 길어져야 할 올 시즌을 끌어가려면 확실한 1군 외에도 뒤를 받쳐줄 든든한 백업 선수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상동에서 느껴진 젊은 패기와 뜨거운 땀방울들은 곧 롯데 자이언츠 팬들에게 증명될 것 같다. 사직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될 새 얼굴은 과연 누가 될지 궁금해진다.
2024-01-25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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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의 그림책방] 다름을 품다
못된 고양이, 배고픈 여우, 순진한 병아리와 새끼 오리가 가족이 된다면 어떨까. ‘포유류 부모와 조류 아기’ 색다른 가족의 탄생은 백희나 작가의 <삐약이 엄마>(책읽는곰)에서 만날 수 있다. 악명 높은 고양이 ‘니양이’는 닭장에 놓인 달걀을 꿀꺽한다. 그런데 이 달걀이 소화되는 대신 부화한다. “아이고 배야!”하며 화장실에 달려간 고양이. 힘을 주어 변을 봤는데 작고 노란 병아리가 튀어나왔다. 충격에 빠진 것도 잠시, 고양이는 품을 파고드는 병아리에 푹 빠진다. 자식 사랑 지극한 ‘삐약이 엄마’가 된 니양이의 변신이 미소를 부른다.
고양이가 병아리를 낳았다면 여우는 오리를 품었다. <여우가 오리를 낳았어요>(리틀브레인)는 대만 출신 순칭펑과 난쥔 작가가 만든 그림책이다. 먹을 것을 찾던 여우가 오리알을 발견했다. 군침을 흘리던 여우의 머리를 스친 생각. ‘오리알을 먹는 게 나을까, 오리를 먹는 게 나을까?’ 맛있는 오리고기를 먹기 위해 알 품기에 매진하는 여우의 모습이 재미난다. 애지중지 돌보던 알의 껍데기를 깨고 오리가 태어난 날. 여우는 먹잇감 대신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는, 좋은 친구 같은 아들을 얻게 됐다.(그림)
<상자 속으로 들어간 여우>(한울림어린이)에는 늙은 여우와 토끼들이 등장한다. 안트예 담 작가는 이웃 또는 친구의 모습으로 같이 어울리고 다름을 품는 관계를 보여준다. 토끼의 숲에 여우가 나타난다. 긴장했던 토끼들은 늙어서 고기를 먹지 못한다는 여우와 점점 친해진다. 토끼들은 여우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여우에게 소리 없이 움직이는 법도 배웠다. 여우가 죽음의 상자 속으로 들어간 뒤 토끼들은 진심으로 애도했다.
고양이와 여우는 병아리와 아기 오리를 만나며 달라졌다. 기존 생활 방식을 내려놓고, 누군가를 품는 삶의 의미를 알게 됐다. 토끼들은 늙은 여우와 어울리며 다른 동물의 존재 방식을 이해했다. 토끼의 숲 가운데 세워진 ‘여우 할아버지’ 묘비가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다름을 품는 마음에서 생각과 행동의 변화가 시작된다.
2024-01-1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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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의 문화시선] 기관장 인사 '+1'의 무게감
두어 달을 끌며 관계자 속을 태웠던 부산의 3개 문화기관장 인사가 10일 오후에야 겨우 결론이 났다. 11일로 2년 임기가 만료된 영화의전당 김진해 대표이사와 오는 16일로 2년 임기가 만료되는 부산문화재단 이미연 대표이사는 각각 ‘+1’(1년)을 통보받았고, 오는 25일로 임기가 만료되는 부산문화회관 이정필 대표이사에겐 ‘임기 완료’가 전달됐다. 이제 부산문화회관은 후속 절차를 밟아 새로운 대표를 찾아야 할 상황이다.
이미 결론이 난 인사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 지난한 과정에 대해선 지극히 유감이다. 지난 두어 달 동안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면 “빨리 결론(연임이든 아니든)이 좀 나면 좋겠다. 대표이사 거취가 안 정해지니 직원들도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도 좋지만 발표를 미루는 이유를 모르겠다. 산하 조직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 같다.” 등이다. 직속상관은 아니지만 유관 부서인 부산시 문화예술과에서조차 “인사는 재정혁신담당관실 소관이라 개입할 수 없지만 ‘결과’를 너무 오래 붙들고 있어서 답답했다”면서 “뭔가 개선 방향을 찾긴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다.
물론 대표이사의 연임이 아니라 ‘임기 완료’로 결론 날 경우, 해당 조직 분위기가 극도로 해이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시의 조치였다는 것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이미 지난해 하반기 경제산업 관련 부산시 출자·출연기관의 2년 임기가 속속 도래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한 기관장 인사여서 지난 연말에라도 결과를 공유하고 조직별로 그다음을 준비하는 시간을 갖도록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부산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선임 문제만 하더라도 부산문화회관 대표이사가 부산시립예술단 부단장으로 있으면서 본인의 거취 문제와 맞물려 발표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건 아닌가 하는 오해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연임이 확정된 두 문화기관장도 우여곡절 끝에 임기는 연장됐지만, 결코 낙관할 처지는 아닌 듯하다. 마지막까지 가슴 졸여야 할 만큼 이들은 인사권자에 신뢰를 주지 못했다. 이들 기관장은 지난해 성과 평가 결과에서 C등급을 받았다. 부산문화재단의 경우, 최근 반년 새 차장, 과장, 대리 등 중간 허리급 직원들 퇴사가 줄 잇는 등 조직 문화에도 상당한 허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의전당도 지난해 4월 직원의 국고보조금 횡령 의혹에 이어 부실 근무, 출장비 부정 지급 문제 등으로 종합감사를 받는 등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이번 인사가 심기일전의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늘 좋을 수는 없더라도, 부산 문화가 더 새롭게, 더 힘차게 도약하는 데 최소한의 도움이 되는 기관장 인사가 되어야 ‘+1’이라도 빛을 발하는 법이다.
2024-01-1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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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의 집피지기] 전세사기와 정보 비대칭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던 A는 전국 1만 명이 넘는 ‘전세사기 피해자’ 중 하나다. 계약 전에 등기부등본을 꼼꼼히 확인했지만 사기를 막을 순 없었다. 인자한 미소의 중년 임대인은 사실 체납 세금만 억대에 달하는 인물이었다. A는 전세 보증금 2억 5000만 원을 돌려받지 못했다. 그는 1년 넘게 8평 남짓한 서울의 한 원룸에서 비좁고 막막한 신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또 다른 지인인 B는 지난달 전세 계약을 맺었다. B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에 가입하기 위해 임대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임대인은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이냐. 뒷조사 당하는 게 싫다”며 으름장을 놨다. B가 세입자의 권리를 설명하자 그는 보증 상품에 가입하지 않는 조건으로 보증금 500만 원을 깎아주겠다고 했다. 찜찜했지만 B는 임대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전세사기의 핵심은 정보의 비대칭성에 있다. 전세계약이 체결되면 집주인은 채무자가 되고 세입자는 보증금을 받을 권리가 있는 채권자가 된다. 희한하게도 전세시장에서는 채권자가 채무자의 눈치를 본다. ‘집 없는 설움’이라는 이유로 권리는 저당잡히고 관계는 역전된다.
채권자가 채무자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등기부등본이나 공인중개사의 설명 정도가 전부다. 집주인이 체납한 세금이나 대출로 쌓인 빚 등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 관계는 그야말로 ‘깜깜이’다. 중간에 집을 팔아서 채무자가 바뀌는 경우에도 이를 알 방법이 묘연하다. 심지어 주택도시보증공사와 같은 보증기관도 임대인의 정보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임대인들의 주택·토지 관련 정보와 금융 정보, 세금 체납 현황, 파산·회생 여부 등을 연동해서 미리 파악할 수는 없을까. 업계에서는 이 같은 시스템 구축이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와 여러 유관 기관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통합하는 일은 번거로울 수는 있을지언정 의지만 있으면 언제든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선량한 임대인들의 재산권을 침해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임대인을 의식해서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너무도 많은 임차인들이 무고한 피해자가 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의 80% 이상이 우울증, 공황장애 같은 정신적 장애는 물론 신체적 질병까지 얻었다는 설문 조사도 있다.
사기 피해가 발생한 뒤 피해 금액을 보전해 주는 ‘사후약방문’식 대책은 한계가 명확하다.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전세 사기는 언제든 만연해질 수 있다. 사회적 재난을 막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절실한 때다.
2024-01-0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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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우의 맛있는 여행] 일본·중국인, 부산 왜 안 올까
한국관광공사의 ‘국가별 방한 여행’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이후인 지난 1~10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은 888만 명이었다. 이 중 80%인 708만 명이 관광객이었다. 코로나가 활개를 친 2020~2022년보다는 늘었지만 코로나 이전인 2019년 같은 기간(1458만여 명)과 비교하면 60.9%에 불과했다.
방한 외국인 수가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로 풀이된다. 먼저 외국 관광객의 한국 여행 심리가 완벽하게 회복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국 관광 주류인 일본인, 중국인의 방한이 준 것도 원인이다. 일본의 경우 ‘엔저’가 일본인에게는 거꾸로 ‘원고’로 작용하는 게 이유로 분석되고, 중국의 경우 한중 관계가 개선되지 못한 게 원인으로 풀이된다.
부산 상황은 더 심각하다. 외국인이 입국한 경로를 보면 인천공항 655만 명, 김포공항 63만 명, 김해공항 60만 명, 제주공항 41만 명, 부산항 30만 명 등의 순이었다. 김해공항 입국자는 2019년 114만 명의 52.6%에 그쳤다. 또 김해공항, 부산항을 합친 총 입국자(93만 명) 수는 2019년 154만 명의 58% 수준에 불과하다. 김해공항은 인천공항을 따라잡기는커녕 김포공항 아래로 처졌다. 김해공항 입국자 수가 김포공항보다 적은 것은 2017년 이후 6년 만이다.
김해공항, 부산항을 통해 부산을 찾은 외국인이 적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일본인, 중국인 여행객 감소다. 올해 방한한 일본인 188만 명 중에서 김해공항, 부산항으로 입국한 사람은 전체의 13%인 25만 명에 머물러 김포공항(39만 명)보다도 적었다. 올해 방한한 일본인 수는 2019년 같은 기간(277만)의 68%였는데, 그중 부산을 찾은 일본인 수는 2019년의 54%에 머물렀다. 부산의 비율이 전체 비율보다 14%포인트나 낮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인의 부산 방문은 일본인보다 더 적었다. 방한 중국인 154만 명 중에서 김해공항, 부산항으로 입국한 사람은 3만 6000명에 불과했다. 김포공항(11만 명)은 물론 제주공항(27만 명)보다도 적었다. 특히 한국을 찾은 전체 중국인 중에서 부산을 찾은 중국인의 비율은 2016년 7.1%, 2017년 5.4%, 2018년 4.29%, 2019년 3.8%에서 올해는 2.6%로 매년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중국인이 해를 거듭할수록 부산에 오기 싫어한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인이 한국의 다른 지역보다 부산에 덜 왔다는 것은 단순히 ‘엔저’만이 아니라 다른 이유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산을 찾는 중국인 숫자는 물론 비율까지 매년 준다는 것은 한중 갈등 이외에 다른 이유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과연 그 원인은 무엇일까. 부산시와 부산관광공사는 이를 파악하고 있는 것일까. leo@busan.com
2023-12-28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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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용 신발 신고 공차는 여자들 [골 때리는 기자]
K리그 관중 수가 올 시즌 처음으로 300만 명을 돌파했다. 주목할 점은 여성 관객의 비율의 절반 가까이 늘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직접 공을 차는 여성들도 늘었다. 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전국 여자축구 동호회 수는 총 148개로 2019년의 125개보다 18% 늘었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에 따른 축구 흥행과 함께,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도 한몫한 듯 보인다. 특히, 축구보다 비교적 접근성이 좋은 풋살을 즐기는 여성이 부쩍 늘었다.
우연한 기회에 벌써 공을 찬 지 1년이 다 돼 간다. 실력이 없을수록 장비 탓을 하기 마련. 초록 잔디, 유니폼과 잘 어우러지는 화려한 디자인의 풋살화를 사고 싶었다. 유명 스포츠 매장 5군데를 돌았지만, 맞는 신발은 없었다. 보통 구두나 운동화를 살 때 240~245mm 사이즈의 신발을 구매한다. 방문한 매장의 직원은 "여성들이 보통 240mm 사이즈를 가장 많이 찾지만, 여성들에게 맞는 풋살화가 잘 없어, 보통 아동용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같이 공을 차는 언니, 동생들도 모두 풋살화를 구하는 데 애를 먹는다고 했다.
아동용 가장 큰 사이즈는 240mm 정도다. 그렇다고 240mm을 신는 여성들에게 아동용 같은 사이즈는 작다. 성인 풋살화의 경우도 운이 좋으면 해당 사이즈를 구할 수 있지만, 없는 경우가 많고 같은 사이즈가 있는 브랜드라도 여성에겐 조금 큰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아동용 가장 큰 풋살화를 사서 신었다. 디자인이 단순했고, 발이 너무 꽉 끼었다. 남성들의 신발과 비교해 덜 프로(?)처럼 보이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어떤 아동용 풋살화는 밸크로, 일명 찍찍이인 경우도 있다. 다 큰 성인 여성이 찍찍이 운동화를 신고 피치에 서자니, 영 폼이 나지 않을 것 같아 찍찍이는 포기했다.
진짜 문제는 사이즈가 너무 작아 공을 찰 때마다 발가락이 아프다는 점이다. 발톱이 여러 번 빠지기도 했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우스갯소리로 축구를 하는 여성들 사이에선 아예 '왕발'이거나 '아기발'이어야 신발을 사기 편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게다가 한국에서 구하기 쉬운 서양 브랜드들의 풋살화는 발볼이 좁아 아시아 여성의 발에는 더욱더 맞기 어렵다. 아동용 풋살화를 신다가 최근에야 아시아인의 발에 잘 맞는 일본 브랜드의 상품을 직구를 통해 비싸게 구매해 신고 있다.
여성들이 '골 때리기' 어려운 이유는 신발만은 아니다. 풋살, 축구장에는 남·여 탈의실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는 곳이 많다. 어쩔 수 없이 화장실에서 갈아입거나, 운이 좋지 않으면 상의 탈의를 한 남성들과 마주치는 어색한 상황도 벌어진다.
스포츠 흥행은 손흥민과 같은 월드클래스 선수가 한두 명 나온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스포츠를 즐겨야 그 저변도 넓어지는 법이다. 지난해 한국 여자축구 전체 등록 선수는 1400여 명이다. 반면 일본은 80만 명이 넘어간다. 선수가 많은 만큼 팀 수도 압도적이다. 그래서 일본의 경우 풋살화의 선택지도 많은 편이다. 성별을 떠나 그 누구나 공을 찰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손흥민, 지소연 같은 선수도 더 자주 나오지 않을까. 여성에게도 축구를 허하라!
2023-12-1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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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진의 타임 아웃] 땀방울로 쓰는 드라마
최근 <부산일보> 인사 발령 이후, 축구 기자로서 첫 번째 경기를 취재하러 지난 26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을 찾았다. K리그2 부산 아이파크와 충북청주FC의 시즌 최종전. 부산 입장에선 승리하면 2부리그 우승과 1부리그 승격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중요한 경기였다. 1 대 0으로 앞선 후반 추가시간, 부산은 통한의 동점골을 허용해 다 잡은 ‘1부 직행 티켓’을 놓쳤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부산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거나 드러누웠고, 몇몇 관중은 눈물을 훔쳤다.
기자석에서도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날 승부가 얼마나 극적이고 안타까웠는지는 경기 직후 양 팀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나타났다. 부산 박진섭 감독은 “하늘이 오늘 우리 편이 아닌 것 같다”고 했고, 충북청주 최윤겸 감독은 “비기고도 죄송한 마음이다”며 고개를 숙였다. 특히 최 감독은 5년 전 부산의 지휘봉을 잡은 적이 있기에 더욱 복잡한 심경이었을 것이다.
며칠 뒤 찬찬히 그날 경기를 복기해 봤다. 몇 차례 완벽한 골 찬스가 골대를 맞거나 살짝 빗나가는 등 분명 부산에 운이 안 따랐다. 그런데 더 기억에 남는 건 충북청주 선수들이었다. 이기든 지든 상관없는 경기였지만 선수들은 결승전마냥 끈질기게 뛰었다. 현실 사회는 요행과 봐주기, 반칙과 특권이 난무하지만, 이날 그라운드만큼은 스포츠의 정정당당함이 살아 있었다.
부산은 2012년 K리그 승강제 도입 이후 7년을 2부 리그에서 전전하고 있지만, 과거에는 ‘축구 명가’로 군림했다. 기자가 중학생이던 1997년, K리그와 리그컵 우승 등 3관왕을 차지했던 대우 로얄즈(부산 아이파크의 전신)의 푸른색 유니폼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김주성·이민성·안정환 등 팀을 거쳐간 스타 선수도 여럿이었다. 명문 구단 시절 획득한 수많은 트로피는 지금 부산 아이파크 클럽하우스 한편에 옹색하게 자리하고 있다. 구단의 명성을 고려하면 번듯한 전시관이라도 지을 만하지만, 전용구장조차 없는 게 부산 프로축구의 현주소다.
명가 재건을 구단과 선수들에게만 맡겨선 안 된다. 팬들의 관심부터 끌어모아야 한다. 지난 26일 K리그2 최종전에서는 평소보다 배 가까이 많은 5764명의 관중이 찾았지만 드넓은 경기장을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서포터스의 거센 함성도 원정 응원단을 압도하진 못했다. 하루 전, K리그1 서울FC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3만 6007명이 입장했다. 서울FC는 올 시즌 경기당 2만 2633명 관중을 동원해, 2008년 롯데 자이언츠의 기록(2만 1901명)을 넘어서며 한국 프로 스포츠 역사를 새로 썼다. 부산은 오는 6일 홈, 9일에는 원정(K리그1 11위 연고지) 경기로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정정당당하게, 땀방울로 써 내려가는 드라마가 궁금하다면 두 경기 직관 기회를 놓치지 마시길.
2023-11-30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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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금아의 그림책방] 예술로 가는 길
“대체 예술가가 뭐예요?”
영국 그림책 작가 에드 비어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모두 예술가야>(주니어RHK)를 만들었다. 책에는 예술가의 길을 가는 꼬마 공룡이 나온다. 드높은 가을 하늘과 시원한 바람. 바쁜 현대인들이 놓치고 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공룡은 눈에 담는다. 머릿속에 일렁이는 상상과 실제 본 것이 뒤섞여 멋진 그림이 탄생한다. 공룡은 생각한다. ‘내가 그린 것을 세상과 나누고 싶어.’
예술가 공룡은 큰 도시로 간다. 그리고 밋밋한 회색 도시의 빈 곳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공룡은 신나게 더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그림). 어느 날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림을 그리던 공룡은 실수를 한다. 붓이 미끄러져 선 바깥에 색을 칠한 것이다. 낙담한 그에게 한 아이가 말한다. “중요한 건 마음이에요. 당신의 그림에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어요.”
마음이 담긴 그림에는 힘이 있다. 지난 주말 찾아간 KT&G 상상마당 부산 ‘오버 더 레인보우’ 전시도 그랬다. 올해로 6회를 맞이한 ‘오버 더 레인보우’는 장애예술인 창작 활동 지원 사업의 결과물을 시민과 나누는 전시이다. 장애예술인 작가 12명이 그려낸 세상을 마주하며 생각했다. 예술은 우리가 더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만드는구나.
<노란 길을 지켜 줘>(노란상상)는 시각장애인 유도 블록을 다룬 그림책이다. 시각장애인의 이동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유도 블록이 파손되거나 그 위에 물건이 적치된 경우를 가끔 본다. 박선영 작가는 아이들의 유도 블록 따라가기 놀이를 통해 현실 속 ‘노란 길’은 어떠한가를 질문한다. 책 속 노란 길을 장애인예술에 연결하면 어떨까. 예술이 주는 치유와 소통 그리고 창작의 기쁨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예술로 가는 노란 길, 장애예술인이 세상으로 나가는 길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예술로 함께 행복한 세상을 위해서.
2023-11-2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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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진의 여행 너머] 술 권하는 축제
얼마 전 일본술 ‘사케’를 취재하러 규슈를 방문했다. 후쿠오카현 남부 소도시 지쿠고의 사케 축제를 찾았을 때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는 행사 규모. 우리나라 지자체 축제에 비하면 행사장이 조촐했고, 방문객도 적당히 북적이는 정도였다. 두 번째는 술을 소개하는 방식. 9개 부스가 있었지만 양조장별 부스가 아니었다. 9개 양조장 술을 한데 모아 청주·소주·리큐르 등 주종별로 방문객들에게 선을 보였다. 양조장마다 자신의 술만 앞세우지 않고, 골고루 마셔 보길 권했다.
작은 규모지만 사이좋게 10년 가까이 행사를 이어 온 비결은 축제 탄생 배경에 있다. 철도 역사 인근에 현립 문화예술회관이 들어선 뒤 지역문화 재조명 사업의 하나로 축제가 추진됐다. 관의 제안에 업계도 호응했고, 양측이 머리를 맞대 행사를 기획했다고 한다. 지역에서 각개 전투하듯 명맥을 이어 가던 양조장 9곳은 술을 알릴 수 있는 기회라 여겨 힘을 합쳤다. 없는 술 곳간끼리 경쟁보다 협력을 택한 것이다.
일본 양조장은 길게는 300~400년, 짧아도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녔다. 교토 후시미, 효고현 나다, 히로시마현 사이조 등 사케 고장으로 알려진 지역만 여럿이다.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새 술 빚기를 시작하는 10월이나 새 술이 완성되는 이듬해 2~3월에 전국 곳곳에 사케 축제가 열린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규슈에서도 축제가 열린다는 건 알려진 것 이상으로 사케의 저변이 넓고 탄탄하다는 방증이다.
우리나라 전통주는 어떤가. 10여 년 전부터 전통주 붐이 일고, 지역특산주·소규모주류제조면허 같은 제도가 생기면서 전국적으로 신규 양조장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양적 팽창에 비해 시장의 성장세는 더디다. 청년들이 술도가를 창업하고, 온라인 매장을 통해 전통주를 접하는 2030세대도 늘고 있지만, 여전히 탁주·약주는 어르신 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꽤 괜찮은 술을 출시하더라도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 술과 대중 사이의 접점 늘리기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컨벤션 행사장에 전국 전통주를 모으는 ‘주류박람회’ 같은 일회성 행사로는 부족하다. 일본 사케 축제처럼 지역 양조장과 지역민이 중심이 되는 방식으로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부산만 해도 쌀·물·누룩 위주의 전통 방식으로 술을 빚는 양조장이 10여 군데 있다. 접근성이 좋은 광안리 해변이나 해운대 구남로에서 축제의 장을 펼쳐 보는 건 어떨까. 물론 그저 그런 술판이 돼선 안 된다. 민과 관이 힘을 합친다면, 전통주 교육·체험 프로그램, 특산 음식과의 페어링, 건전한 술 문화 캠페인 등 판 위에 깔 콘텐츠는 많다. 지역 활성화를 고민 중인 지자체라면, 우선 부산 술도가를 찾아 술 한 잔씩 드셔 보시라.
2023-11-1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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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의 월드 클래스] 우리는 전쟁에 책임이 있다
전쟁 기사는 역시 힘들다. 신문에 쓸 사진 한 장을 고르기 위해 수많은 잔혹한 사진을 거쳐야 하고, 한 개 지면에 핵심 뉴스를 담아내기 위해 인간 존엄성을 무너뜨리는 무수한 기사들을 읽어내야 한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자 전쟁 기사를 다루는 기자들의 트라우마 치료가 필요하단 얘기가 괜히 나왔던 게 아니다. 가슴에 구멍을 내는 사진과 기사들은 마감을 한 뒤로도 일상을 맴돈다. 종군기자를 향한 존경과 미안함은 폭격으로 인한 기자 사망 소식을 접할 때마다 더해진다.
그 중 잔상이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잿더미 속 아이들의 두려움 가득 찬 눈빛이다. 눈을 뜬 채 시신이 된 엄마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아기도 있다. 아이들 눈에 담긴 피눈물, 몸에 난 핏자국은 어른인 내게 “그래서 너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아이들은 부모가 죽어나가고 형제가 죽어나가고 저 또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당연히 살아남아 원수를 갚겠다고, 뼈 속 깊이 새기지 않을까.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유엔 팔레스타인 점령지 인권 상황 특별보고관인 프란체스카 알바네제는 지난 7일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의 공습과 지상전은 향후 더 극단적인 세력을 키우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이들에게는 그 작은 몸에 깊은 트라우마가 배어 있으며, 너무 많은 희망이 파괴됐기 때문에 아이들이 무장저항으로부터 멀어지기는 어렵다고 부모들은 걱정했다. 누군들 제 자식이 무장조직에 들어가길 바랄까.
알바네제 보고관은 국제사회에도 일침을 가했다. 이번 전쟁은 국제사회가 그동안 팔레스타인 인권에 대한 이스라엘의 억압을 무시한 결과라고. 그들이 평화적으로 저항하고 국제형사재판소 같은 국제법을 동원하면 국제사회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그래서 국제사회가 이번 전쟁에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지난 6일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은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잔학 행위 영상을 한국 언론에 공개하며 가자지구 인명 피해만 주로 다루는 국제적 언론 보도가 불공평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여론은 날이 갈수록 더 싸늘해지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소아 집중치료 의사이자 소셜 플랫폼 가자메딕 보이스 공동 창립자인 탄야 하즈-하산 박사는 BBC뉴스에 출연해 “가자 사람들은 지난 3주 동안 최소 2명의 가족 구성원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미국이 주장하는 ‘인도주의적 일시 중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말했다. “일시 중지는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을 죽이기 전에 미리 영양분을 공급하고 물을 공급하겠다고 일시 중지를 합니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당장 폭격을 멈춰야만 합니다.” 전쟁은 중단돼야 한다.
2023-11-0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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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다른 온도 [남형욱의 오오티티]
‘사랑’이란 단어의 어원은 명확하지 않다. 동사 ‘살다’에서 파생되었다는 말도, ‘살갗’의 ‘살-’에 접미사 ‘-앙’이 붙어 생겼다는 의견도 있다. 또 상대를 헤아린다는 뜻의 한자어 ‘사량(思量)’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사랑의 어원이 분분한 것은 왜일까. 그만큼 사랑의 모습과 방식이 저마다 다양하기 때문은 아닐까.
최근 넷플릭스 등 OTT플랫폼에 사랑이 넘치고 있다. 한국 드라마 ‘이두나!’와 일본 드라마 ‘퍼스트 러브-하츠코이’가 그 주인공. 두 작품 모두 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주제로 내세웠다. 그러나 플롯의 전개 방식이나 인물의 감정 표현은 완전히 극과 극을 달린다. 굳이 비유하자면 이두나는 여름, 퍼스트 러브는 겨울이다. 두 나라가 사랑을 다루는 방식은 두 계절의 온도처럼 확연히 다르다.
이두나!는 주인공들의 감정 표현에 거침이 없다. 드라마는 ‘나한테 반하지 마!’라고 원준을 도발하던 두나가, 결국 원준을 ‘인생의 변수’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고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시청자들은 두나와 함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사랑의 풋풋함과 발랄함을 떠올리게 된다. 퍼스트 러브는 조금 다르다. 고교 시절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헤어지게 되고, 세월이 흘러 운명처럼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어떤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두 사람은 결국 이어진다. 한겨울 눈 쌓인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쓸쓸함 가득한 화면 질감은 이별의 아픔과 사랑의 애절함을 더 부각한다.
두 드라마 모두 클리셰에 충실하다. 어디서 본 듯한 연출, 줄거리가 이어진다. 한 하숙집에 살며 불편한 사이였던 두 남녀가 결국 서로에게 끌린다는 이두나!와 기억을 잃은 여자와 첫사랑을 못 잊는 남자라는 설정의 퍼스트 러브는 뻔하지만 익숙하다. ‘아는 맛이 더 맛있다’고 했던가. 드라마 속 클리셰는 로맨스 장르의 강점을 극대화해 감정을 크게 자극한다.
두 드라마의 원형 또한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두나!는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어느새 국내 제작 콘텐츠에 붙은 ‘웹툰 원작’이라는 딱지는 흥행 보증 수표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이두나!는 현재 가장 시장성 높은 콘텐츠의 2차 창작물로, 대중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트렌디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유행을 잘 따랐다고 할까. 그에 반해 퍼스트 러브는 과거에서 드라마의 원형을 찾았다. 1999년 일본을 강타한 인기가수 ‘우타다 히카루’의 데뷔 앨범 ‘first love’와 2018년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발매된 ‘初恋(하츠코이 -첫사랑)'이 드라마의 기원이 됐다. 한때 ‘응답하라’ 시리즈가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얻은 것처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래나 드라마 속 소재는 사랑의 애절함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누구나 첫사랑은 있다. 그게 풋풋함이든 애절함이든. 메마른 감정을 다시 촉촉하게 적셔보는 건 어떨까.
2023-11-02 [1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