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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2028년 부산 세계 디자인 수도’ 지정의 과제
지난 7월 영국 런던 바비칸센터에서 열린 제34회 세계 디자인 총회에서 부산이 인구 1300만 명의 중국 대도시 항저우를 제치고 2028년 세계 디자인 수도(WDC)에 선정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 부산은 토리노, 서울, 헬싱키, 케이프타운, 멕시코시티, 발렌시아 등에 이어 전 세계 11번째 WDC가 되었다. 당시 부산시는 “WDC 지정은 도시 브랜드의 품격을 높이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정체성과 미래 비전을 새롭게 설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말은 곧 디자인을 통해 도시재생은 물론 사회 통합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시민들 삶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선 부산의 도시환경에 대한 점검부터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도시 정비 차원에서 그동안 쌓여 왔던 도시환경을 저해해 온 문제부터 풀어 나아가야할 것이다. 결국 쉽게 생각하면 큰 덩어리 중 하나는 반드시 없애야 하는 것들과 있어야만 하는 것들을 잘 구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마도 전자에 해당하는 것들은 원도심에 산재해 있는데, 중형 도시 건물들 안에 텅 빈 사무실을 생기 있는 도시환경을 위해 주어진 여건 하에서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게 잘 포장해 내느냐이며, 동시에 보기에도 흉칙스런 골목마다 반파되거나 완파된 옛집들을 정비하는 일이다. 어차피 처분해야 할 조건이라면 이번 기회가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하드웨어적인 정비가 구축되고 나면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은 사람을 위한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동안 반세기 이상 쌓여왔던 산업 시대의 갖가지 산물들은 이 기회에 과감하게 청산해야 한다. 큰 의미에서 본다면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서 세워진 각종 선전 광고들이라던지 누더기처럼 보기 흉하게 들죽날죽 크기의 간판 등 모두가 정비 대상이 되어야 한다. 부산의 고유 경관이나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들은 잘 살려내고 결국 도시 캐릭터를 잘 살려 도시의 얼굴부터 바꿔야 한다.
21세기의 디자인 문화란 그야말로 인간을 위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현대 디자인의 가치와 존재 이유는 몇몇 전문가 집단이나 소수의 의도로만 이루어지는 게 절대 아니다. 도시의 주인공인 주민들과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하고, 때로는 공론화를 반드시 거쳐서 실행되어야 한다. 이미 세워져 있는 대형 건물이나 고정된 조형물들은 어쩔 수 없이 최대한 소프트웨어적인 안목으로 얼마든지 감각적인 ‘리디자인’이 가능할 것이고 이에 따라 타 도시에 비해서 시민 쉼터 공간이나 문화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점 역시 부산의 취약점이 될 수 있으므로 최대한 확보할 수 있는 방안도 강구해야 할 부문이다.
타 도시에 비해 부산시 당국의 공공 부지가 절대 부족한 점은 앞으로 보완해야 할 시책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환경 부문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할 분야는 역시 대기 환경 개선과 수질 오염 개선 문제로 이번 기회에 과거 어느 때보다 부산시 당국과 기업체(산업 및 제조업)가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고 이외에도 시민들 삶의 질 문제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게 초점을 맞추어 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선진화된 국가의 도시 디자인 체계나 흐름의 시스템을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 결국 도시 환경을 정화해서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는 시 당국이나 몇몇 전문가 그룹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가능한 시간을 두고 범시민 운동으로 전개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청소년층에서부터 청장년 시니어들까지도 여러 분야에서 모니터 요원으로 참여하게 유도하고 정기적 또는 수시적 확인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해서 도시의 얼굴을 바꾸어 나가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 디자인 수도의 면목도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시그널이 될 것이다.
2025-12-02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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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동물원의 종말, 생명존중 공간의 시작
부산의 유일한 동물원 ‘삼정더파크’가 운영사와 부산시 간의 장기 소송으로 남겨진 동물들의 건강과 복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성지곡동물원 시절부터 시민들의 추억을 품어온 공간의 소멸은 단순히 한 도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더 이상 동물을 구경거리로만 여기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다. 오늘날 전국의 많은 동물원들은 만성적인 적자와 시설 노후화라는 굴레에 갇혀 있다. 반면 동물권과 동물복지에 대한 시민들의 눈높이는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낡은 철창과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갇힌 동물들의 정형행동은 더 이상 아이들의 웃음으로 가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서 묻어나는 깊은 고통과 외로움이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거기에 더해 지자체의 재정부담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도시의 또 다른 그늘, 바로 유기동물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해마다 수만 마리의 반려동물이 거리로 내몰리고 지자체 보호소는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섰다. 넘쳐나는 동물을 감당하지 못해 반복되는 안락사와 그로 인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은 우리 모두가 떠안고 있는 무거운 고통이다. 이제는 이 두 문제를 따로 떼어놓고 볼 것이 아니라 하나의 해법으로 연결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그 해답은 바로 동물원을 생명존중 공원(Animal Welfare Park)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 동물과 사람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공존하는 도시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생명존중 공원의 핵심은 유기동물을 위한 전문 입양 및 교육센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의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 바로 동물복지 선진국 독일의 티어하임(Tierheim)이다. 티어하임은 단순히 유기동물을 임시 수용하는 장소를 넘어 ‘안락사 없는 보호’를 대원칙으로 삼는 거대한 생명존중의 요람이다. 이곳에서는 수의사와 훈련사, 행동교정 전문가 등 동물전문가가 상주하며 상처받은 동물들의 신체적, 정신적 재활을 체계적으로 돕는다. 정부와 지자체의 재원과 함께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투명한 참여로 운영되는 이 시스템은 우리에게 나아갈 길을 명확히 보여준다.
만약 부산에 생명존중 공원이 조성된다면 바로 이 티어하임 모델을 우리나라의 현실에 맞게 구현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기존의 좁고 열악한 보호소를 넘어 동물이 존엄을 지키며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희망의 공간이자 시민들이 언제든 찾아와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고 교감하는 열린 교육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입양을 희망하는 시민들에게 의무교육을 시행해 ‘사지 않고 입양하는 문화’를 뿌리내리게 하고 책임있는 반려문화를 확산시키는 중심축 역할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기존 동물원 동물들을 위한 배려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이들을 위한 생츄어리(Sanctuary) 공간 역시 필요하다. 더 이상 전시와 오락의 대상이 아닌 보호받아야 할 생명으로 존중받으며 평온한 여생을 누릴 수 있는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 동물을 희생시켜온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는 길이며 동시에 성숙한 도시의 품격을 보여주는 선택이다.
이러한 전환에는 비용과 노력이 뒤따른다. 그러나 외면받는 낡은 시설을 억지로 유지하는 것과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새로운 철학을 실현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 투자인지는 분명하다. 동물원이 사라진 자리는 단순한 공터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동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새롭게 정립하는 시험대이다. 부산시의 결단과 시민들의 공감이 더해진다면 동물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 공간은 머지않아 도시 전체를 밝히는 희망의 빛이 될 것이다. 이제는 결단해야 한다. 동물의 눈물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그 눈물을 닦아주는 길을 함께 열 것인가. 역사는 우리가 내리는 이 선택을 기억할 것이다. 생명의 존엄을 존중하는 길만이 인간다움으로 가는 길이다.
2025-11-3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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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의 ‘실버 라운드’, 스마트 스윙으로 시작하자
부산은 전국 특별·광역시 가운데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지난해 기준 부산의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약 23%다. 거의 4명 중 1명이 노인이다. 특히 영도구와 서구 등 원도심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돼 도시 활력이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 단순한 복지 확대를 넘어 노년층 건강과 삶의 질을 함께 높이는 전략적 복지 설계가 시급하다.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발상을 전환하면 기회로 바꿀 수 있다. 어르신 건강을 지키면서 사회적 연결을 강화하는 스마트 복지 모델을 구축하면 부산은 전국이 주목하는 고령친화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핵심은 파크골프다. 저렴하고 접근성 좋은 생활체육인 파크골프는 60대 이상이 주로 즐기며 건강 복지의 새로운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부산은 지형과 날씨 때문에 야외 운동시설 접근성이 낮다. 이를 해결할 전천후 실내 스포츠, 스크린 파크골프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유휴 공간을 활용해 설치가 경제적이고, 세대 간 교류와 디지털 학습까지 가능하다.
이미 변화는 시작됐다. 부산시는 올해 사회복지시설 유휴 공간 활용 공모사업을 통해 몰운대·해운대 종합사회복지관과 남구장애인복지관 3곳을 선정했다. 이들 시설은 이미 스크린파크골프장을 열고 주민 대상 교육·동아리, 건강관리 프로그램, 장애인 친화형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해운대종합사회복지관은 지난달 21일 '해운대 스크린파크골프센터'(3타석)를, 남구장애인복지관은 지난달 17일 장애인 친화형 골프장(2타석)을 열었다.
다른 지방 사례도 찾을 수 있다. 경남 하동군은 전통시장 빈 점포를 스크린 파크골프장으로 바꿔 방문객을 30% 이상 늘렸고, 충북 제천시는 공실을 생활체육 거점으로 전환해 하루 100명이 찾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강원 화천군은 파크골프 인프라 하나로 연간 30만 명 방문객을 유치하며 지역경제를 활성화했다. 복지와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사례다.
부산 원도심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공실 점포, 복지관과 주민센터의 유휴 공간을 활용하면 적은 예산으로 어르신 건강, 지역 상권 회복, 커뮤니티 재생까지 기대할 수 있다. 일석삼조 효과다. 부산시는 '언제나 편안하고 활기찬 노인 행복도시 부산'을 비전으로 설정했다. 민·관 협력을 통해 세대 통합형 고령친화 도시 조성에 나섰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노인 인식 개선과 세대 간 화합을 위해 민·관이 함께 힘을 모은다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스크린 파크골프와 같은 스마트 체육 인프라를 결합하면 행정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어르신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부산이 만들어야 할 것은 단순한 체육 프로그램이 아니다. 세대와 세대가 교차하며 활력을 나누는 부산형 실버 라운드가 필요하다. 유휴 공간을 활용한 스크린 파크골프 보급은 그 출발점이며, 부산이 준비해야 할 스마트 스윙, 미래 복지의 첫 티샷이다. '다시 태어나도 살고 싶은 도시, 부산'. 이 문장은 어르신의 행복한 한 번의 스윙에서 완성될 것이다.
2025-11-2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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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진정한 해양수도 부산, 세계의 해양수산부로 가는 길
정부 부처 이전이 끝이 아니다. 해양수산부의 물리적 이동만으로 부산은 진정한 해양수도가 될 수 없다. 그리스 ‘피레우스’의 70년 역사는 1954년 해양도서정책부의 이전은 출발점이었을 뿐, 진정한 성공은 행정·산업·금융·법률·교육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완결형 해양 생태계를 구축했기 때문이었다. 부산의 선택이 국가 해양의 미래를 결정한다. 부산의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올해로 동북아 해양수도 부산 선포 25년, 내년이 해수부 설립 30년, 부산항 개항 150년을 앞두고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북극항로, HMM본사 이전 등 오랜만에 부산이 기대와 희망에 가득차 있다. 새 정부 새 부산시대의 개막인 동시에 부산 지혜의 시험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구호뿐인 ‘해양수도’를 진짜로 만드는 기회다.
해수부는 1996년 김영삼 대통령 때 만들고 폐지된 해수부를 부산 시민의 주도로 2013년 어렵게 부활시켰다. 그러나 시민의 기대가 실망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와 부산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첫째, 해양수산부 및 직원 이주가 차질없이 연내 부산 연착륙이 먼저다. 그들이 만족하여야 한다. 해양 관련 공공기관도 빠른시일에 부산 이전이 마무리 되어야 한다. 특히 해수부 2차관제와 이번 기회에 해양산업의 강력한 국가육성지원정책이 발표되어야 한다. 또한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공약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이고도 강력한 실천의지와 국회에서의 법적조치가 시급하다.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한다. 내년 지자체 선거를 위한 단순한 정치공약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해수부 기능 확대와 역할 통합’과 관련한 조항은 특별법에서 빠져서는 안 된다. 특히 해수부 이전 등 공약을 약속했던 대통령의 해양에 관한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없이는 해수부 부산 이전 효과가 반감이 되거나 시민의 실망으로 변할 수 있다.
둘째, 서울, 수도권 집중에 의한 제일 큰 피해지역이 부산, 남부권이다. 지금도 지속적으로 부산의 수도권으로의 청년, 자원, 기업이 유출 되고 있다. ‘균형발전’이라는 구호성 정책으로는 막을 수 없다. 부산해양특별시 지정과 논의되었던 정부의 ‘균형발전부 설치’ 등 파격적인 지방정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지방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셋째, 현재 1%(국가예산 대비)의 해수부로는 일할 수가 없다. 예산이 대폭 증액되어야 한다. 그동안 논의되었던 타 부처에 있는 해양 분야 즉 해양플랜트, 조선·선박수리 분야, 해양물류, 해양레져 관광 분야, 도서(섬) 분야(현재 무인도만 해수부), 해양기후 분야 등이 해수부가 관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이 바다국가, 해양강국인데 해양수산부의 현재 약체 소부처로서는 해양강국 건설은 물론 부산 이전의 정당성이 없다.
넷째, 미국 등 선진해양국가들은 해양전략이 국가전략으로 치밀히 대응하고 있다. 국가의 다양한 해양정책을 통할하며 조율할 힘있는 조직인 대통령 직속 국가해양위원회(가칭) 신설의 필요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해수부의 한계를 극복하고 각종 정책 간 엇박자를 방지하려면 국가의 모든 해양업무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며 효과적으로 조율하는 강력한 컨트롤타워 설립이 시급하다.
다섯째, 이재명 정부의 지상과제로 떠오른 북극항로 개척은 정책이 일관돼야만 하는 데다 전 부처의 적극적인 공조가 절실한 사안이 아닌가. 러시아를 비롯한 북극해 연안국들과의 협력, 북극 기후 데이터 축적, 국제 해양법 검토 같은 북극항로 준비에는 해양산업은 물론 외교·안보·법무·과학기술·환경 분야까지 총력전이 요구된다. 부산을 ‘극지관문도시’로, 부산항을 ‘북극거점항만’으로 지정이 시급하다. 또한 부산에 제2극지연구소 설치, 아라온호 부산항 취항 등도 필요하다.
여섯째, HMM 부산 이전을 위해서는 톤세 등 HMM에 대한 강력한 인센티브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의 본사 부산 이전은 단순히 본사 주소지 변경을 넘어, 세계 2위의 환적항(세계 7위의 컨테이너 항만)인 부산이 물류현장성 뿐만 아니라 해운경영과 해운비즈니스의 중심이 되는 가장 실효적인 해양수도 정책 과제라 할 수 있다.
끝으로, 부산 시민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혜가 필요하다. 부산시, 시의회, 부산 정치권, 부산 상공계, 학·연구계, 시민단체 등의 상호 협력적인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양수산부도 지역사회와 함께 교류하는 열린 자세로 변해야 한다.
2025-11-2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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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영화 속의 재난, 현실이 되지 않도록”
2026년 지방선거가 6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예년과 다름없이 후보들은 도시계획, 교통, 지역개발 등을 주요 의제로 삼겠지만, 필자는 오늘 ‘재난안전’이야말로 가장 시급하고 미래지향적인 공약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왜 재난인가. 우리는 지금 기후위기의 한복판에 있다. 2022년 태풍 ‘힌남노’가 부산을 강타했을 때 기장군 정관은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었고, 해운대의 일부 해안도로는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해 가을, 해운대 엘시티 공사장 인근에서는 낙석 사고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그 이전에도 산사태와 도로 침하, 지하주차장 침수는 해마다 반복되었다.
이처럼 부산, 특히 해운대와 기장은 도시의 브랜드와는 달리 재난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바다와 산이 인접하고 고층 건물과 밀집 주거지가 혼재하며 관광객까지 집중되는 이 지역은 자연재해와 도시재난이 한꺼번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의 재난 대응은 아직도 사고 후 복구 중심이다. 더 늦기 전에, 예방 중심의 정책과 기술로 ‘프레임 전환’을 해야 한다.
첫째, 부산형 재난관리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중앙정부 중심의 획일적 매뉴얼을 벗어나 지역 지형에 맞는 재난지도와 생활권 중심의 대응계획이 필요하다. 예컨대 침수 위험지역(좌동천, 온천천), 산사태 위험지역(반송, 일광), 해일 위험지역(송정, 연화리) 등을 유형별로 구분하고, ‘재난관리 생활권 구역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와 함께 재난관리 시민협의체(가칭 ‘위기 설계단’)를 만들어 주민, 소방, 경찰, 전문가가 함께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재난은 공무원이 혼자 막을 수 없다.
둘째, AI 기반 예측·경보 시스템을 지역 현장에 시범 적용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단지 산업에만 쓰여야 하는 것이 아니다. 기장 정관 하천이나 해운대 좌동천에 AI 기반 침수 예측 시스템을 도입하면, 실시간 기상·하수관거·해수면 정보를 분석해 자동 경보를 울릴 수 있다. 드론, CCTV, IoT 센서를 연결하면 낙석, 균열, 산사태 징후까지 사전에 포착할 수 있다. 여기에 사용자 위치 기반 AI 경보 앱까지 더하면, 고령자나 관광객을 대상으로도 즉시 알림과 대피 유도가 가능하다.
셋째, 재난데이터 통합 플랫폼을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 부서마다 따로 관리되던 정보를 통합하고, 시민과 공유해야 한다. 부산시와 해운대구·기장군의 모든 위험요소와 사고 이력, 예방시설 상태, 기상자료 등을 한눈에 보여주는 AI 대시보드를 도입하고, 이를 웹 기반 플랫폼으로 연동시켜야 한다. 이 시스템은 단지 예보와 경보만이 아니라, 선거 이후 실행력 있는 재난 행정 평가 도구로도 작동할 것이다.
넷째, 시민참여형 예방 훈련을 제도화해야 한다. 지금처럼 상징적 대피 훈련만으로는 실제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없다. 시민이 직접 앱 경보를 받고, 상황을 판단하고, 이웃을 구조해 보는 시나리오 기반 훈련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동(洞) 단위로 재난 자율대 조직을 꾸리고, 이들을 AI 안전통신망과 연계하면 대피명령 전달, 고령자 확인, 구조 요청까지 연결될 수 있다.
다섯째, ‘회복도시 해운대·기장’이라는 새로운 도시브랜드를 만들자. 부산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해운대가 단지 영화의 도시를 넘어, 재난을 이겨내는 도시로 세계에 알려질 수 있다. ‘재난·기후위기 대응영화 특별전’을 개최하고, UN재난위험경감국(UNDRR)이나 록펠러 재난 회복도시 네트워크 등과 협력해 국제도시와 교류한다면, 부산은 아시아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2026년 지방선거는 기후위기에 맞서는 첫 번째 선거가 되어야 한다. 공공의 안전은 정치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더 이상 영화 속 해운대처럼 ‘뒤늦은 후회’로 기억될 수 없다. 정치가 진심을 갖고, 시민과 기술이 함께 설계할 때, 우리는 재난을 이기는 도시를 만들 수 있다.
2025-11-2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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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 가덕신공항과 비전
2000년, 뉴밀레니엄으로 들어섰을 때, 부산은 ‘부산의 꿈’이라는 이름 아래 두 가지 큰 비전을 품었다. 첫째는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한 가덕신공항 건설의 꿈이었고, 둘째는 산업 기반을 넘어 문화·창조의 도시로 성장하고자 하는 새로운 미래상이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약속이 어떤 현실로 다가왔는지 돌아보는 시간 앞에 서있다. 올해 APEC의 장면들은 이러한 성찰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이번 APEC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세계 AI 혁신의 아이콘인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우리나라 기업인들과 치맥을 나누며 '깐부'를 외친 자리였다. 그는 한국을 ‘기술 동맹의 중심’이라 치켜세웠고, 치열한 세계 정치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지닌 가능성과 신뢰를 재확인시키는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우리나라의 미래뿐 아니라 부산이 걸어가야 할 길도 다시 떠올렸다. 바로 협력·연대·상생의 철학을 바탕으로 도시의 체질을 바꾸는 일이다.
가덕신공항은 단순한 건설 사업이 아니다. 그 자체가 연대의 도시 철학을 담은 상징적 공간이다. 부산·울산·경남이 각각의 이해를 넘어 하나로 연결되는 초광역 협력의 중심이며, 항만·물류·도시·관광이 한 흐름으로 움직이는 미래 행정의 ‘통합 플랫폼’이다. 지금 부산이 해야 할 일은 가덕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협업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산업·문화·환경·관광이 함께 움직이는 연결의 행정 패러다임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가덕신공항이 완공되는 날, 부산은 단지 하늘길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에게 꿈꾸는 힘을 되돌려주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부산은 오랫동안 제조·항만 중심 산업구조 위에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세계경제는 이미 AI·디지털·친환경 산업 중심 구조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으며, 이번 APEC에서 강조된 '기술을 통한 국가 간 협력' 흐름은 부산 경제에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가덕신공항과 북항 재개발 사업은 AI 기반 스마트 물류, 자율 운항 선박, 디지털 해양 산업 등 부산 경제가 도약할 수 있는 미래 산업의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 부산이 글로벌 기술 기업, 연구기관, 스타트업과 연대하여 ‘연결 기반 경제도시’로 전환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부산은 더 이상 제조업 중심 도시의 정체성에 머물 수 없다. 청년 인재·창업 생태계·국제 기업 네트워크를 품을 수 있는 도시형 첨단 경제 허브가 되어야 한다. 도시의 품격은 문화에서 완성된다. 부산은 국제영화제, 바다·도시의 독특한 경관, 다층적 역사 등을 갖춘 가장 문화 잠재력이 큰 도시 중 하나다. 이런 지점에서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 건립 논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부에서는 예산 문제나 지역 예술 생태계와의 관계를 우려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논의가 ‘찬성·반대’의 이분법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부산 예술이 세계로 뻗어가는 기회로 삼을 수 있는가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퐁피두는 부산 예술을 대체하는 기관이 아니라 부산 예술을 세계와 연결하는 문화 확장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연착륙 후 부산 작가들이 참여하는 공동 기획전, 청년 예술가 국제 교류 프로그램, 부산 작가 해외 연계 등의 '상생 구조'를 함께 설계해 나가야 한다. 부산의 미래는 단순히 시설과 예산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철학이다. 그 철학은 지금 부산이 직면한 모든 영역에서 하나의 방향으로 모여야 한다.
가덕은 공항이자 협력의 상징이다. 북항은 혁신경제의 시작점이며, 퐁피두는 부산 예술의 확장 플랫폼이다. APEC에서 확인된 대한민국의 가능성처럼 부산의 미래도 연대·협력·상생의 철학에서 더욱 크게 펼쳐져야 하며 부산이 지향하고 있는 도시 철학과 닮아 있다. 부산의 꿈은 과거를 기념하는 꿈이 아니라, 미래세대에서 건네는 희망의 꿈이 돼야 하며, 부산다움과 세계를 연결해 도시문화가 생동감이 넘쳐나는 부산으로 만들어져 나가야 할 것이다.
2025-11-1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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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외교의 맛과 향, 황남빵과 오감차가 빚은 K브랜드
2025년 APEC 정상회의는 경북 경주와 부산을 세계 외교의 무대로 끌어올린 역사적인 행사였다. 그 기간 세계의 시선은 영남권으로 향했고, 예상치 못한 주인공들이 등장했다. 경주의 ‘황남빵’과 부산의 ‘비비비당 오감차’다. 하나는 맛으로, 하나는 향으로 외교의 순간을 완성한 ‘두 개의 K브랜드’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선물을 받은 뒤 ‘맛있다’라고 언급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황남빵은 순식간에 외교의 상징이 되었다. 짧은 한마디가 지역의 전통빵을 세계적 브랜드로 바꿔 놓았다. 그 이후 황남빵 본점엔 긴 줄이 이어졌고, SNS에서는 ‘정상빵’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전통의 맛이 외교의 언어가 된 순간이었다.
또 부산의 대표 찻집 브랜드 비비비당은 지난 7월 경주 힐튼호텔에 입점하며 APEC 정상회의의 향기를 더한 또 하나의 주인공이 되었다.
지난달 29일, 미국 대통령의 객실에는 비비비당 경주 힐튼점이 준비한 오감차(五感茶)가 웰컴 티로 올랐다. 그는 “향이 깊고 부드럽다”고 평했다. 짧은 멘트 하나가 다시 한 번 한국의 다도 문화를 세계의 뉴스로 만들었다. 부산에서 태어난 브랜드가 경주 무대에서 한국의 향을 전한 것이다. 비비비당은 이후 ‘트럼프 찻상 세트’를 출시해, 그 외교의 순간을 관광 상품으로 확장했다. 외교의 찻잔이 관광의 체험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10월 24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주에서 관광 프로그램 운영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면서, 현장에서 느낀 건 단 하나였다. 외교의 장면은 사라지지만, 그 기억은 관광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황리단길과 불국사, 경주엑스포공원에 이어 부산의 누리마루 APEC하우스, 김해공항 내 미·중 정상회담장 ‘나래마루’까지. 영남권 전체가 ‘외교의 기억을 품은 관광지도’가 되고 있다. 이 공간들을 하나의 APEC 외교 루트로 연계한다면 ‘기억의 회의장’은 ‘체험의 관광길’로 새롭게 살아날 수 있다. 행사 기간 약 25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통역·교통·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서 헌신했다. 그들의 참여와 시민들의 협력이 있었기에 이번 APEC은 단순한 정상회담이 아니라 ‘경북과 부산이 함께 만든 문화외교의 장’이 될 수 있었다.
외교의 순간이 시민의 손끝에서 완성되었고, 그 경험은 앞으로 지역 관광의 품격을 높이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황남빵과 오감차, 맛과 향으로 전한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전통의 현대화’다. 두 브랜드 모두 지역의 문화와 미학, 환대를 담아 세계가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재해석했다. 이는 부산과 경북이 함께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관광 협력의 모델이기도 하다.
‘APEC맛과 향 시리즈’ 같은 공동 브랜딩을 추진한다면 영남권은 ‘외교의 도시이자, 미각의 도시’로 세계에 각인될 것이다. 2025년 APEC은 경북의 외교 무대이자 부산의 환대 무대였다. 황남빵의 맛과 오감차의 향이 만난 이 여정은 이제 ‘영남 관광의 이야기’로 다시 쓰이고 있다. 기억을 유산으로, 유산을 미래로, 그 여정의 시작은 여전히 따뜻한 황남빵의 달콤함과 비비비당 오감차의 향기 속에서 피어나고 있다.
2025-11-1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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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반복된 수산업 홀대, 더 이상은 안 된다
지난 6월 3일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 중 하나가 바로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이다. 취임 후 6월 5일 첫 국무회의에서는 해양수산부를 신속히 이전할 것을 지시하였으며 부산 3선 국회의원인 전재수 의원이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발탁되며 대한민국의 해운과 물류, 수산업 거점도시인 부산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해양수산부와 함께 산하 공공기관도 동반 이전한다는 계획으로 일부 지자체와의 지역 갈등과 정치적 논란이 불거졌지만, 대한민국의 글로벌 해양강국과 지방 소멸 대응을 위해서는 이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압도적으로 커서 부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40여 년간 수산업을 영위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적극 환영한다.
그러나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정부에서 계획하고 홍보하고 있는 정책들을 들여다보면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북극항로 개척, 해운산업 위기대응 펀드 확대 등 해운 관련 정책이 대부분이어서 수산업과 관련된 정책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랜 시간 동안 수산인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계속해서 전달했지만 그 목소리가 정책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해운업에 집중되어 있는 정책으로 수산업이 홀대받고 있다는 것은 해양수산부가 존폐를 반복하는 기간 내내 나왔던 전국 100만 수산인들의 하나된 목소리였지만, 이재명 정부의 조직 개편을 살펴보면 수산업은 여전히 홀대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수산업은 1차 산업으로써 농업과 더불어 우리 국민들의 식량을 책임지는 풀뿌리 산업이며 30억 달러 이상의 수출로 나라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 수산인들은 수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오래전부터 수산 전담 차관 신설을 요청하였고, 신임 해양수산부 장관 역시도 청문회에서 수산 전담 차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이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7월 25일 부경대학교에서 개최된 이재명 대통령과 전재수 장관이 참석한 타운홀 미팅에서조차도 수산업 발전과 관련된 어떠한 설명도 없었으며, 필자 역시도 시간 관계상이라는 이유로 미팅이 형식적으로 끝이 나며 준비한 건의사항을 직접 전달하지 못하고 아쉽게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수산업은 현재 유례없는 위기로 어려움에 처해있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어족 자원이 급감하였고 동해에서 잡히던 오징어가 이제는 서해에서, 흑산도에서 잡히던 홍어가 이제는 군산에서, 제주도에서 잡히던 방어가 이제는 동해에서 어획되는 등 어종들의 서식지가 바뀌자 어선들의 조업지 역시도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끝없이 상승하는 어업 경비와 현실과 맞지 않는 수산 정책들은 어업인들이 더 이상은 업무에 종사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현실에 맞는 법 개정 등으로 수산업의 활성화를 지원해야 하는 정부이지만, 1953년 제정된, 70년도 넘은 수산업법은 오히려 규제에 규제를 더해 가면서 지금은 우리 수산인들을 옥죄고 있다. 현재 수산업법에서 규제하고 있는 어선의 조업구역, 선박 톤수 제한 등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만든 규제를 그대로 수산업법에 적용시킨 아주 낡은 법이기에 하루빨리 개정할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지금 수산업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산재해 있는 상황이다.
제21대 정부에서는 위기에 처해있는 수산업을 반드시 살려야 할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 막중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우리 수산인들의 협조도 필수라는 것을 항상 인지하고 언제라도 적극 협조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해운과 수산업의 균형있고 공정한 정책으로 수십년간 이어져 내려온 수산업 홀대론을 이제는 꼭 종식시켜서 대한민국 수산인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모습을 기대한다.
2025-11-1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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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덕신공항 건설과 국가계약제도
가덕신공항은 부산 가덕도에 새로 조성되는 국제공항으로 기존 김해공항의 용량 한계를 극복하고 부산 및 주변 지역의 교통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해 건설이 준비되고 있는 대형 프로젝트이다. 김해공항 국제선 이용 현황을 보면 2023년 648만 명, 2024년 895만 명, 국제선 화물은 출발 기준으로 2022년(6784t) 대비 2024년(5만 98t)에 약 7배 증가해 여객 이용은 물론 항공 화물도 동반 성장하고 있다.
가덕신공항 입지 결정 시 많이 비교 검토된 간사이국제공항도 기존의 오사카 이타미공항이 포화상태가 되어 확장해야 했으나 시가지 내에 위치하여 소음 민원, 주변 산악 지형으로 인한 비행안전문제, 토지 취득의 어려움 등으로 오사카에서 남서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인공섬을 조성하여 20m의 연약지반을 개량하고 30m 높이의 상부토를 매립하여 해상 공항으로 건설하게 되었다. 준공 후 50년간 8m 침하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건설하였으나 개항 당시 이미 8m가 침하하였고 현재도 매년 7cm씩 침하하고 있다. 2018년 9월에는 태풍 제비로 인해 공항 전체가 침수되며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1987년 1단계 공사를 착공하여 1994년 개항할 때까지 8년의 공사기간 동안 30조 원 공사비가 40조 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우리나라 대형 공사 입찰 방식은 종합평가낙찰제, 일반경쟁입찰, 우선 협상에 의한 계약 등의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가격, 일정, 품질 등의 계약조건 확정방식으로 계약되기에 단기간에 계획된 미흡한 기본계획이나 기본설계를 기초로 건설사가 실시설계하여 계약한다는 것은 건설사가 많은 리스크를 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전-마산간 복선 전철 건설사인 A사는 턴키방식계약으로 공사를 진행하다 낙동강 연약지반 통과 구간에서 연약지반 파괴 현상이 나타나 복구공사에 1조 원 이상의 추가공사비를 부담하고 5년 이상의 준공기한이 미루어져 국민 불편과 함께 기업의 손실 또한 클 수밖에 없었다. 종합평가낙찰제는 참여 시공사가 짧은 시간에 조사 설계하여 소수의 평가위원들이 밀실에서 평가하여 낙찰자를 선정함으로 설계 도면의 적정성, 공법의 타당성, 시공성이 기술자문회의를 통하여 제대로 검증되지 않고 계약조건이 확정되기에 국내 굴지의 건설사가 여러 가지 사유로 계약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간사이공항, 홍콩 첵랍콕 국제공항, 싱가포르 창이공항 등 대부분 해상공항은 설계기간 제외하고 7~8년간 공사기간이 소요되었다. 연약지반 공사의 현실은 시공 중에 현장사고 발생 또는 공사 후 하자발생이 다반사적으로 일어나 설계자, 시행자, 도급자 간의 분쟁과 공사사고, 부실공사, 국고낭비, 노동력낭비, 하자분쟁, 민원 발생 등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첫째, 연약지반 공사에 따른 설계 품질의 불량, 둘째, 현장지반 조사 시험자료의 불비, 셋째, 비전문가의 설계 수행, 넷째, 설계심의위원의 검토 불비, 다섯째, 계획시행자의 소홀한 계획 추진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공사 계약 전에 실시설계를 충분히 검증하고 부산신항 건설, 거가대교 건설 과정에서 연약지반에 대한 경험을 축적한 다수의 지역 전문가 자문을 거치는 것이 사업비와 공사기간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제언한다.
2025-11-1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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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선원 조세체계, 실질적 조세형평 실현해야
요즘 내항 선원들 사이에서 ‘같은 바다, 다른 세금’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현재 외항 선원은 월 500만 원까지 근로소득이 비과세되지만, 내항 선원은 월 20만 원의 승선 수당만 비과세되어 무려 25배의 차이가 난다. 바다 위에서, 선박에서, 같은 위험을 감수하며 동종 동질의 일을 하지만 세금은 전혀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규정하고, 제59조는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조세법은 법률주의와 평등원칙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그런데 내항 선원은 단지 ‘항로의 구분’이라는 행정적 기준에 따라 외항 선원과 다른 세제 적용을 받고 있다. 이는 조세 법률주의가 보장해야 할 실질적 형평을 훼손하는 것이다.
외항 선원에 대한 비과세 확대는 과거 수출입 중심 해운정책의 산물로,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외항에 세제 혜택을 집중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내항 해운은 더 이상 부차적인 산업이 아니라 전국 480여 유인 도서를 연결하며 국민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국가 해상 교통체계의 마지막 연결 고리이자 생명선이다.
내항 선박들은 ‘비상 대비에 관한 법률’ 제11조에 따라 비상사태 시 전략물자 수송의 핵심 자원으로 동원된다. 이는 국가 해상물류와 안보를 지탱하는 최후의 인프라라는 뜻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이처럼 공공성과 국가의존도가 높은 산업이 세제 형평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는 것은 정책의 역진성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내항 해운 현장의 현실은 심각하다. 내항 선원 중 60세 이상이 60%를 넘어섰고, 젊은 인력은 불공정한 처우와 낮은 실수령액 탓에 바다를 떠나고 있다. 결국 내항 해운은 노후 선박과 고령 인력에 의존하며, 이 악순환의 근저에는 바로 ‘같은 바다 다른 세금’이라는 제도적 차별이 있다. 내항 선원 비과세 한도를 월 300만 원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헌법적 형평 회복의 문제이며, 산업정책 측면에서는 인력 유입과 세대 교체를 유도하는 구조개선 장치다. 공정한 조세제도 없이는 해운산업의 지속 가능성도, 국가 해양력의 기반도 유지되기 어렵다.
여야는 이미 제21대 대선 당시 ‘선원 소득 비과세 범위 확대’를 공약했고, 해양수산부 장관 역시 국회 청문회에서 그 약속을 재확인했다. 물론 조세 당국에서 볼 때는 외항선원의 경우 국외 소득에 대한 비과세 혜택이고 내항 선원의 경우 국내 근로에 해당하기 때문에 선원이라는 명목만으로는 내항 선원에게 동일한 비과세 혜택을 주기가 어려운 면도 있다. 그러나 선원 근로에 대한 이해와 실질적 조세 형평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동종 동질의 근로에 대해서 비과세 혜택도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은 균형과 형평을 지향할 의무가 있다. 내항 선원 비과세 확대는 공정을 바로 세우는 법의 책무이며, 내항의 바다를 다시 움직이게 할 정의의 출발점이다. 공정한 세제 개선을 통해 대한민국의 내항 해운이 다시 숨을 쉬기를 바란다.
2025-11-0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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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천안문 망루 정상회담의 의미…반미·반서방 전선
시진핑은 지난 9월 3일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천안문 망루정상회담을 꾸몄다. 여기에 그는 북·중·러 정상을 중앙석에 위치시켜 66년 만에 반미 전선을 굳건히 했다. 이로서 김정은은 시진핑, 푸틴과 동등한 지위를 얻은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북한은 반미·반서방전선을 구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고, 세 지도자 간 중요한 행위자의 지위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서 김정은이 마치 개선장군처럼 귀국했다.
북·중·러는 힘을 역전시켜 새로운 3자동맹의 성격을 띠울 수 있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는 동북아에서 새로운 세력균형을 형성할 전망이다. 시진핑은 반미·반서방 세계에 도전하기 위해 이 같은 힘의 급격한 변화를 필요했다. 이 변화에 김정은과 푸틴을 중심부에 세운 것은 전략적인 배려인 동시에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시진핑은 베이징 망루의 짧은 연설에서 “인류는 다시 평화냐, 전쟁이냐의 선택에 직면했다”는 매우 도전적인 발언을 했다. 또한 “중국인민은 역사적으로 올바른 편에, 인류문명의 진보의 편에서 평화 발전의 길을 추구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80년 전의 2차세계대전을 회고하면서 “정의와 악, 빛과 어둠, 진보와 반동의 생사를 가르는 결투에 직면한 중국은 적과 맞서 싸웠다”고 선언했다.
세인들이 그의 이러한 선언을 들을 때 중국이 진보주의 외피를 쓰고 평화를 지향하는 것처럼 느낄지 모른다. 그래서 트럼프가 비개입주의 길을 걷고 있다는 인상을 그들에게 풍길지 모른다. 그러나 시진핑 중국은 평화와 안정을 위해 법에 기초한 국제질서 건설·수호할 능력이 본질적으로 없다. 중국은 자유주의와 그 가치들을 체질적으로 지킬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반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천안문 망루의 세 지도자들을 트럼프가 어떻게 비개입주의를 통해 저지하고 대항할지 서방세계는 심히 의심스러운 입장에 처해 있다.
이번 망루 정상회담은 정상 간 단순한 우의를 다지는 수준을 크게 넘어 분명히 반미·반서방 연대를 구축한 것으로 보여 새로운 냉전 시대를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북한과 러시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열병식에 중국은 세계 전역 사정권을 갖는 DF-61 미사일, 항모킬러 양지-21, 초대형무인잠수정 AJX-002 등 첨단무기를 과시한 것은 바로 새로운 세력균형을 구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대한민국의 안보와 외교는 새로운 기로에 섰다. 트럼프는 한미동맹 관계를 경시하면서 무자비한 관세를 부과하는 하는 한편, 새로운 투자도 요구하고 있다. 그는 세계 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한 희생을 더 이상하지 않겠다는 비개입주의로 전환하고 있다. 비개입주의로 인해 나토 세력이 약화되는 동시에, 한미동맹도 이완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현대-LG 합작으로 주지아주에서 자동차 배터리 공장을 그들의 전액 투자로서 건설하고 있었는데, 미국의 서투른 비자 발급으로 빚어진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은 전문 기술자들을 초청하고도 불법이란 죄목을 씌어 수감을 채운 채 감금하는 유치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72년의 혈맹 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 처한 한국은 대미 외교를 강화하여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적극적 동맹 파트너십을 재형성하고, 동북아 지역 평화 역할과 인도·태평양의 평화를 위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 또 국제관계가 더 다원화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6월 헤이그 정상회담에 불참한 것은 서방외교에 대한 마이너로 작용한다. 따라서 미국과 역할 분담을 스스로 하겠다는 적극적 의지의 표명, 즉 스마트파워외교(smart power diplomacy)를 전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이러한 외교 자세로 신냉전이라 불리는 북·중·러의 새로운 전선에 지혜롭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윈스턴 처칠 총리의 국제정치에 대한 ‘현실주의 감각’(sense of realism)이 새삼 떠오른다.
2025-11-06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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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책은 현장에서 자란다…어촌이 수산의 미래다
한국 수산업은 더 이상 섬처럼 고립된 1차산업의 틀에 머물 수 없다. 기술은 일정 수준 개발되었고, 제도와 예산도 어느 정도 마련되고 있다. 그럼에도 산업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속도보다 방향, 성과보다 구조의 문제이다. 기술과 제도, 현장이 따로 움직이는 방식으로는 변화의 파고를 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수산업 운영 체계의 전면 재설계이다. 실험실에서 완성된 기술이 현장으로 옮겨오지 못하고, 현장에서 드러난 문제는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다. 기술은 바다에서 뿌리를 내려야 하고, 제도는 성과를 되돌아보며 진화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해양수산부와 산하 공공기관의 부산 이전은 단순한 행정 주소 변경이 아니다. 중앙 집중 체계를 풀고 지역 중심 거버넌스로 전환하는 제도 실험이자 정책 전환의 기회이다. 부산에는 국립수산과학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한국수산자원공단 등이 자리하고 있다. 정책 수립과 집행, 기술 개발과 실증이 한 생활권 안에서 맞물릴 때 실행력은 배가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보다 ‘어떻게 연결해 움직이느냐’이다. 정책은 중앙에서 설계되더라도 성과는 현장에서 만들어진다. 우리 수산업에서 그 현장은 바로 어촌과 섬이다. 이곳은 단순한 지원 대상이 아니라, 정책을 시험하고 검증하는 살아 있는 곳이다. 실험실이 아니라 바다에서, 회의실이 아니라 어업 현장에서 구현된 정책만이 현장에 반응하며 변화의 동력이 된다.
전남 신안, 경북 포항, 강원 양양 등에서 조성 중인 스마트양식 클러스터는 첨단기술을 실증하고 표준화하는 거점이 될 수 있다. 반면 욕지도, 거문도 같은 섬은 정책 실험의 효과와 파급력을 세밀하게 확인할 수 있는 최적의 현장이다. 거점과 도서의 기능을 나누면서도 전략적으로 연결하면 기술 확산성과 정책 효과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첫째, 정책·연구·실증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긴밀히 연결하는 운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은 기관 간 기능이 겹치고 협업이 원활하지 않아 현장 중심 행정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해양환경, 수산자원, 양식기술 등 데이터가 분산돼 있어 통합 의사결정이 어렵다. 설계부터 집행, 평가, 환류까지 하나로 이어지는 정책 플랫폼 구축이 요구된다.
둘째, 데이터 기반 정책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수온, 해양오염, 자원량, 어류 폐사율 같은 주요 지표를 실시간 분석해 기후위기에 따른 피해를 미리 예측하고 대응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정보 축적이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하는 실증–분석–설계–평가의 선순환 구조이다.
셋째, 제도는 지역의 특성과 변화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전국에 하나의 잣대만 들이대는 방식으로는 어촌 현실을 반영할 수 없다. 시범지구, 규제 특례, 단계적 제도 적용 등 유연한 접근을 통해 지역 맞춤형 정책 실험이 가능해져야 한다.
넷째, 실행력을 높일 인재와 조직이 뒷받침돼야 한다. 기술은 제도를 만나야 현실이 되고, 제도는 사람을 통해 움직인다. 실무 역량, 데이터 분석능력, 정책 추진력, 지역과의 소통 역량을 갖춘 인재가 현장에 있어야 한다. 특히 청년 인재 유입과 지역 조직의 강화는 수산행정의 지속성을 좌우한다.
수산업은 이제 단순한 생산 산업이 아니다. 식량안보, 기후위기 대응, 해양바이오, 스마트양식, 지역 공동체, 정책 실험이 어우러진 복합 산업으로 변해야 한다. 바다의 작은 변화들이 지역 전체의 산업구조를 뒤흔드는 시대인 만큼, 더욱 섬세한 정책 감각이 요구된다. 결국,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와 현장 흐름을 아우르는 구조적 설계가 있어야 미래를 열 수 있다.
정책은 현장에서 자란다. 진정한 수산강국은 바다의 실험과 어촌의 경험에서 시작된다. 종이에만 머무는 정책은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 수산의 미래는 ‘어디로 갈 것인가’보다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2025-11-0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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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시군구, 공공기관 청사 일회용품 반입 금지해야
기후위기 대응은 우리의 삶과 관련하여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다가왔다. 우리 일상에 지구온난화의 실체가 본격적으로 침투한 것이다. 이제는 실천할 때다. 시군구 및 공공기관 청사 일회용품 반입을 금지하는 작은 실천이 그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기관들은 주민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만큼, 탄소저감과 환경보호에 솔선수범해야 할 책무가 있다. 행정관서가 친환경을 따르지 않으면, 국가의 기후정책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많이 개선되었지만, 현실은 어떤가? 회의실, 접견실, 구내식당에는 아직도 종이컵과 페트병, 포장 용기들이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시민에 대한 계도와 규제를 시행하는 행정관서의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특히 시군구청은 주민 생활환경과 밀접하여 모범을 보이지 못하면, 일회용품 규제는 호응을 얻기가 어렵다.
우리나라는 2020년 12월 ‘탈 플라스틱 사회’를 선언하고 일회용품 사용 규제 정책을 강화해 왔다. 커피전문점 내 종이컵 및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금지, 대형마트 비닐봉투 사용금지, 일회용 광고 선전물 사용금지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실제 추진력은 지자체에 달려 있다.
행정안전부는 공공기관 청사의 자원순환 실태조사 권고만 할 뿐, 법적인 강제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다. 시군구 단위의 환경조례는 있지만 ‘청사 내 일회용품 반입 금지’까지 명문화된 사례는 드물다. 물론 공공기관 내부의 일회용품 전면 금지나 갑작스러운 제도 전환은 직원들의 혼란을 초래하고 업무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선도적으로 시행하는 지자체도 있다. 서울시, 광주시 등에서는 청사 내 일회용 컵 사용 제한을 자발적으로 실천 중이며, 외부 용역 계약 시 친환경 조건을 명시하기 시작했다. 부산 영도구에서도 지난 9월 1일 전 직원 대상 ‘ESG시민운동’ 교육 실시 후 올해부터 청사 내 일회용품 반입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이런 사례를 볼 때, 여타 지자체에서도 충분한 홍보를 통해 실현 가능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실천은 단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시민에게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교육적 효과도 지닌다.
외국에서도 공공부문이 먼저 솔선하는 사례가 확산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1년 ‘일회용 플라스틱 지침’(SUP Directive)을 통해 플라스틱 컵, 빨대, 식기류 사용을 금지했고, 일본 도쿄도청은 회의실에서 플라스틱 생수병 반입을 제한하며 다회용 컵과 정수 시스템을 운영한다. 미국 뉴욕시도 시청사를 포함한 공공시설 행사에서 일회용 플라스틱을 금지했다. 세계 주요 도시가 공공부문부터 변화를 주도하자 시민들의 의식도 빠르게 따라가고 있다. 우리 지자체도 이 흐름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
이러한 변화는 환경을 넘어 지역경제 활성화와도 연결된다. 다회용기 세척·공급 산업의 성장으로 일자리가 생기고, 지역 소상공인과 협력 모델도 만들어진다. 서울시는 다회용컵 회수·세척을 사회적 기업과 연계해 운영하며 일자리 창출 효과를 보고 있다. 시군구가 이를 제도화하면 지역 내 순환경제의 토대가 마련된다.
무엇보다 시민참여형 접근이 병행될 때 효과가 크다. 주민센터에서 다회용 텀블러 대여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지역 기업이 청사 내 친환경 물품 공급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학교와 연계해 학생들이 청사 내 친환경 모니터링을 진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행정과 시민, 기업이 함께 할 때 일회용품 줄이기는 생활문화로 정착될 수 있다.
이제는 기초자치단체가 결단할 때다. 시군구청부터 먼저 일회용품 사용 중단과 청사 내에서 다회용 컵 사용 등의 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청사 내 일회용품 반입 금지를 조례에 반영하고, 다회용기 순환 시스템 도입을 예산에 반영하며, 직원 교육과 시민 캠페인을 병행해야 한다. 공공기관의 작은 변화는 시민사회의 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변화는 늘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런 변화가 대한민국의 녹색 전환을 앞당기고,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2025-10-3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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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의 도시철도, 디지털자격시험센터를 품다
부산은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다. 2024년 영국의 유력 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부산을 아시아에서 오사카, 홍콩 등 유수의 도시 다음인 6번째로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했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도시 인프라를 보면 왜 부산이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지 충분히 공감된다.
많은 장점 중 부산이 높은 순위를 받은 데는 편리한 도시철도도 한몫했다. 그렇다면 부산 대중교통의 중심축이자 도시의 성장과 균형발전을 이끄는 핵심 인프라인 도시철도는 부산 시민과 어떤 밀접한 관계가 있을까? 부산에서 최초로 도시철도가 개통되었을 때는 1985년 7월 19일이다. 도시철도 개통 이후 정시성과 빠른 이동 속도, 대용량 수송 능력, 도시 공간 활용과 확장성 등으로 이용객 수는 빠르게 증가하여 지금은 하루 약 90만 명이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단순히 이동 수단을 넘어 부산의 경제, 사회, 문화 여가생활을 영위하는 구성 요소로서 도시철도를 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이런 의미를 가진 도시철도 주요역(동래역, 광안역) 내에 부산디지털시험센터(Digital Test Center, 이하 DTC)를 개소함으로써, 국민과 밀접한 공공서비스인 국가자격시험이 325만 부산 시민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국가기술자격 및 전문자격의 현장성 강화, 산업전환, AI 활용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여 CBT(Computer Based Test)로 시험을 시행하는 전용시험장으로써 2019년부터 전국에 순차적으로 설치해오고 있다. 이번 부산시에 전국 14번째로 문을 열지만, 지하철 역사에 설치하는 것은 전국 최초이다.
공단이 시행하는 국자자격시험에는 연간 440여 만 명이나 되는 국민이 응시한다. 그 중에 학생, 취준생, 근로자 등 부산 시민이 약 32만 명이나 된다. 부산에는 DTC와 같은 전용시험장이 부족하여 균일하지 않은 서비스, 원거리 이동, 주차 부족 등 그 간 양질의 서비스에 갈증을 느꼈을 시민들에게 도시철도 중심의 대중교통을 이용한 편리한 접근과 전력, 소방안전, 보안 등 지하철 역사 내 안정된 인프라 등 기본적인 수험의 질 향상을 누릴 뿐만 아니라 역사 내 상권, 편의시설 나아가 다른 지역에서 유입된 수험자에게는 부산 관광의 기회까지 덤으로 최상의 환경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한국산업인력공단과 함께 협약을 맺고 DTC 설치를 추진하게 된 부산교통공사 역시 도시철도 이용객은 물론 상권, 편의시설의 이용률이 높아져 도시경제에도 긍정적 파급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된다.
부산 DTC 개소는 단순히 시험장 확대 의미뿐만 아니라, 기존 아날로그 테스트 방식의 디지털 전환이라는 큰 흐름에 부산의 대중교통이라는 요소를 가미하여 시험에 응시하는 시민의 편의성 증대와 더불어 환경을 생각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며 나아가 부산의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여 부산이 더욱 살기 좋은 도시가 되기를 기대한다.
2025-10-29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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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의인 이수현 기념관’ 제의
2001년 1월 26일 일본 신오쿠보역에서 한국인 유학생 고 이수현 씨가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그 숭고한 희생은 그 당시 경색되었던 한일 관계를 넘어서 국경을 초월한 인간애와 용기의 상징이 되었고, 양국 국민에게 깊은 감동과 화해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 사건 이후 일본 내 한국인 유학생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개선되었고, 한일 민간 교류가 활성화되는 긍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의인 이수현 씨의 어머님은 아들의 뜻을 이어받아 이수현 기념 장학회를 설립했고, 양국의 젊은이들에게 진정한 한일 우호의 가교 역할을 했다. 고 이수현 씨의 의로운 정신을 영원히 기리고, 그 숭고한 희생이 지닌 인류애적 가치를 미래세대에 교육하며, 나아가 한일 우호 증진의 거점 구실을 하는 ‘의인 이수현 기념관’을 그의 고향인 부산에 건립할 것을 제의한다. 부산은 한일 교류의 관문이자 6·25전쟁 당시 피란민에게 인류애를 보여준 역사적인 장소로서 고 이수현 씨의 의인 정신을 기념하기 좋은 도시이기도 하다. 20여 년이 지난 그의 숭고한 정신과 희생의 이미지가 차츰 잊혀 가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기념관 설립의 목적에는 여러 가지 다중적인 목적을 추구한다. 기억과 교육 그리고 미래를 향한 연결이다.
첫째, 의인 이수현 씨의 숭고한 정신을 영구보존하고 계승해야 한다.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타인을 구한 의로운 행동을 영원히 기억하고 추모하며, 그 희생이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를 지속해서 되새기는 것이다. 둘째,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인간애, 용기, 희생의 확산 거점을 마련해야 한다. 국적과 인종을 초월하여 모든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를 알리고, 그 가치들이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교육과 영감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
셋째, 한일 우호 증진 및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의인 이수현 씨의 희생이 양 국민 간에 준 감동을 바탕으로 상호 이해와 협력을 증진하고, 미래세대에게 과거의 갈등을 넘어선 공존과 화합의 중요성을 교육하여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의 기반을 다져야 한다. 여기에 부산이 가진 한일 교류의 역사적 지리적 중요성을 활용한다.
넷째, 시민의 안전의식 및 공동체 의식을 함양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의 시민 의식, 타인에 관한 관심, 그리고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실질적인 교육 효과를 도모하여 안전하고 상호 배려하는 공동체 문화 조성에 이바지해야 한다. 다섯째, 글로벌 시민 의식 함양 및 국제적 협력의 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고 이수현 씨의 희생이 전 세계에 던진 메시지를 기억해야 한다. 국경과 문화를 넘어 인류애를 실천하는 의인 정신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하여, 세계인에게 영감을 제공하고 국제사회의 인류애적 협력을 촉진한다.
따라서 고 이수현 의인의 희생은 단순한 비극을 넘어 국경을 초월한 인류애와 용기의 위대한 증거이다. 그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다양한 갈등과 분열 속에서 화합과 연대의 희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고 이수현 의인의 고향인 부산에 그의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은 그의 숭고한 정신을 영원히 기리고 그가 보여준 인류애와 용기가 미래 세대에 지속해서 영감을 줄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을 만드는 것이다.
또 기념관의 설립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전 세계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화합과 이해의 상징이며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는 중요한 공간이 될 것이다. 이는 부산을 한일 관계의 긍정적인 미래를 만들어가는 중심지로 나아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는 도시로 자리매김하게 할 것이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부산광역시와 한국 정부 그리고 일본 관계 기관과 시민 여러분의 깊은 이해와 적극적인 동참을 기대한다. 의인 이수현 기념관은 의인의 삶과 정신을 깊이 이해하고 인류애의 가치를 체험하며 한일 교류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반드시 부산에 의인 고 이수현 기념관이 건립되기를 빌어본다.
2025-10-22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