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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정량 평가의 시대는 끝났다
얼마 전 편입학 서류를 검토할 기회가 있었다. 지원자들의 학점은 하나같이 4.5에 가까웠고, 지원 동기와 학업 계획서는 마치 같은 틀에서 찍어낸 듯 구성과 문체가 엇비슷했다. 어딘가 매끄럽지만, 어딘가 공허한 그 문장들 앞에서, 나는 우리가 사람을 평가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AI가 다듬어준 문서를 평가하고 있는 것인지 끝내 확신하지 못한 채 서류를 덮었다.
AI 기술이 일상과 업무 현장을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법률 문서 작성, 의학적 진단 보조, 코드 작성, 논문 초안까지 AI가 수행하는 시대에, 많은 직장인의 실질적인 업무는 AI가 생산한 결과물을 검토하고 판단하는 일로 옮겨가고 있다. 지적 노동의 무게중심이 ‘생산’에서 ‘판단’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 변화는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 우리가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은 과연 사람을 평가하고 있는가.
대학 현장은 이 질문의 현실성을 잘 보여준다. 지난해 서울 소재 어느 대학에서는 600명 규모 중간고사에서 AI를 활용한 대규모 부정행위 정황이 적발됐고, 수강생 익명 투표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AI로 시험을 쳤다’고 답했다. 대학생 대상 설문에서도 10명 중 7명이 AI를 활용한다고 답했으며, 일부는 “AI 탐지에 걸리지 않게 만들어 달라”고 지시한 뒤 과제를 제출한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그 결과물에 매긴 점수가 과연 학생의 무엇을 측정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정량의 세계에 깊이 발을 담그고 있다. 수능은 객관식 수치로 모든 것을 가르고, 취업 시장에서는 어학 성적과 학점이 서류 통과의 열쇠다. 교수의 역량은 논문 편수와 피인용 지수로, 교사의 역량은 학생 성취도 수치로 환산된다. 정성 평가를 도입했다는 대학기관평가나 교원업적평가조차 실상은 항목별 배점과 등급 기준표로 정교하게 수치화 된다. 형식은 바뀌었지만, 평가의 철학은 바뀌지 않은 셈이다.
그렇다면 정성 평가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오랫동안 하나의 준거가 되어 왔다. 단순히 주관식이라는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이 하나의 철학적 명제 앞에서 스스로 사유하고 논증하는 과정 자체를 평가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최근 주목받는 포트폴리오 평가나 프로젝트 기반 학습도 같은 맥락이다. 정해진 답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내는가가 아니라, 불확실한 문제 앞에서 어떻게 사고하고, 협력하고, 의미를 만들어내는가를 본다. 이것이야말로 AI가 대신할 수 없는, 그리고 AI 시대에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인간의 역량이다.
여기서 한 가지 역설이 생긴다. 정성 평가의 필요성을 가장 강하게 제기하는 것이 바로 AI라는 사실이다. AI가 점수를 만들어내는 시대에 점수는 더 이상 사람의 것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AI의 등장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이제 인간을 인간답게 평가하라는 요청일 수 있다.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것, 즉 맥락을 읽는 감각,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공감, 윤리적 판단의 무게를 감당하는 책임감, 그것을 평가의 중심에 놓아야 할 때가 왔다.
정성 평가가 뿌리내리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전문가 집단과 제도적 기관에 대한 신뢰, 즉 사회적 자본을 충분히 축적하지 못했다. 입시 비리, 채용 청탁, 논문 표절. 공정해야 할 평가의 자리에서 반복된 이 사건들은 “사람이 개입하면 부정이 생긴다”는 집단적 학습을 사회 깊숙이 새겨 놓았고, 그 불신이 우리를 정량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 왔다. 수능이 바칼로레아식 논술 체제로 전환되지 못하는 것도 이 구조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정성 평가로의 전환은 평가 방식만의 문제가 아니라, 무너진 신뢰를 복원하는 사회적 과제와 맞닿아 있다. 그 첫걸음은 외부에서 강제될 수 없다. 교수, 교사, 의사, 법조인 등 전문가 집단 스스로가 엄격한 윤리 기준을 세우고 자정의 선례를 쌓아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평가자가 신뢰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정성 평가는 공정성의 대안이 아니라 또 다른 특권의 통로로 전락할 뿐이다.
AI가 점수를 대신 만들어주는 시대에, 점수로 사람을 가르는 일은 이미 시효를 다했다. 정량 평가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우리가 묻지 않으면 안 될 질문은 단 하나다. 그 이후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2026-05-06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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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방선거, 선거보도의 패러다임 전환할 때
6월 3일 실시되는 지방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지역의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지만, 역설적으로 대선이나 총선에 비해 유권자의 관심도가 낮고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각하다. 이 지점에서 언론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하지만 언론의 선거보도가 의제 설정, 유권자의 알 권리 충족, 권력 감시, 정치 참여 유도 같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이를 통해서 유권자에게 민주주의의 나침반이 되고 있는지를 묻는다면 선뜻 긍정하기 어렵다.
선거 국면에서 언론은 단순한 정보 전달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미디어 선거 시대에 유권자는 언론이 설정한 의제를 통해 후보자를 인식하고 정치적 우선순위를 판단한다. 이렇게 언론은 유권자가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인지적 지도를 그려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지역 밀착형 공약이 중요한 지방선거에서 언론의 보도는 부적격 후보를 걸러내는 필수적인 여과 장치로 기능한다.
하지만 우리 언론 선거보도의 현주소를 보면 여전히 구태의연한 관행으로 여러 면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여론조사 결과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마식 보도 경향이다. 후보자의 공약보다는 지지율의 미세한 등락에 천착한 승리지상주의식 보도가 지면과 화면을 가득 채운다.
여기에 후보자의 정치적 수사를 직접 받아 그대로 옮겨 적는 따옴표 보도도 성행한다. 후보들 간의 비방과 폭로를 검증 없이 받아쓰는 행태는 정치를 불신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유권자의 확증 편향을 심화시켜서 결과적으로 정당과 후보자의 정책은 실종되고 진영 논리만 남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6·3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언론이 관행에서 벗어나 선거보도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한 세 가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이슈 중심 보도로의 전환이다. 지역의 현안과 난제가 무엇인지 언론이 먼저 발굴하는 의제 설정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예컨대 지역 10대 의제를 제시하고, 후보들에게 해법을 묻는 방식의 선거보도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 언론이 유권자들을 대신하여 4년 후 지역의 청사진을 먼저 그려 제시해야 한다. 후보들 간의 단순한 지지율 비교 보도가 아니라 후보별 공약을 비교하여 현실성과 예산 확보 가능성을 데이터로 증명하는 분석 보도가 우선되어야 한다.
둘째, 후보자 자질과 공약의 검증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언론은 선거 국면에서 허무맹랑한 주장이나 흑색선전이 유권자를 현혹하지 않도록 후보자의 자질을 이력 분석을 통해 다각도로 검증하여야 한다. 후보자의 주장과 발언은 직접 인용을 지양하고, 사실 확인 과정을 거친 후 중립적인 표현으로 보도해야 한다. 공약 검증은 단순 팩트체크를 넘어 근거를 제시하는 해석적 보도를 통해서 공익에 부합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유권자가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를 위해 해당분야 취재원을 적극 발굴하여 각계 각층의 전문가의 견해가 반영되도록 하여야 한다.
셋째, 사후 검증의 상설화다. 선거 시기에만 집중하는 반짝 보도 관행을 버려야 한다. 선거 이후 당선인의 공약 이행 여부나 당선인의 행보를 추적하는 연속적 감시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선거 공약이 실제 예산 편성과 조례 제정으로 이어지는지 지속적인 추적 보도를 통해서 선거보도의 시계를 선거 당일 이후로 확장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유권자가 투표의 효능감을 느끼고 선거 참여 의욕을 가질 수 있도록 언론이 노력해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이자 학습의 장이다. 선거를 대하는 언론의 태도가 단순한 관찰자나 메신저에 머문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유권자에게 돌아간다. 언론이 선거보도의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서 대의민주주의의 나침반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2026-05-03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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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이 낳은 평화교육 선구자, 이경태를 기억하다
1911년 지금의 부산 구포에서 태어난 이경태(李慶泰). 가정형편이 어려워 서울로 이주하던 가운데 8살 때 눈앞에서 3·1운동을 목격했고, 중학생 때는 원산항에서 일본으로 실려 가는 수많은 소 떼를 보며 조선이 힘을 기르려면 교육밖에 없다고 다짐했던 소년은 이후 오사카에서 재일동포 교육의 큰 등대가 되었다.
고베에서 해방을 맞이한 조규훈(曺圭訓)은 성공한 실업가였다. 그는 언젠가는 꼭 돌아갈 고국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일본에 남게 된 조선인을 위한 학교 설립을 위해 교육전문가를 수소문하여 이경태를 찾아낸다.
두 사람은 징용되어 온 조선인 젊은이들과 함께 백두동지회(白頭同志會)를 정식으로 설립하고 1946년 3월 조선건국공업학교와 조선건국고등여학교을 창학한다. “해방 직후에 학생 200명, 교직원 16명을 수용할 수 있는 본 학원을 만들었다는 것도 그야말로 참말로 36년간 일제 압박하에 있다가 해방의 선물로 된 거지.” 법학을 전공하고 일본에서 정규학교 교사 경험이 있던 그는 처음부터 일본 정부의 정식 인가를 목표로 했다. 후대를 우리 손으로, 일본인보다 나은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일본학교와 동등한 자격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 결과 1948년 일본 문부성의 조선인 학교 폐쇄라는 부당한 과정에서도 1949년 정규사립학교로 인가받는다. 1985년 금강학원이 인가받기까지 40년간 백두학원은 조선학교와 재일한국학교를 아울러 유일하게 대학 진학이 가능한 학교였다. 졸업생 중 1기부터 20기까지만 해도 박사학위 취득자가 23명에 달한다.
이경태는 새로운 시대에 맞춰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담아 어떠한 인재를 육성할 것인가에 대한 교육 이념을 교훈으로 만들었다. 자주(自主), 상애(相愛), 근검(勤儉), 정상(精詳), 강건(剛健)은 놀랍게도 한국의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인간상과 일치한다. 80년이 지난 지금도 미래 교육의 방향으로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이경태의 진정한 위대함은 평화교육에 있다. 1948년 남북 각각의 정부 수립, 1950년 한국전쟁으로 재일동포 사회마저 갈라섰을 때도 백두학원은 유일한 남북공학이었다. “조국은 남이고 북이고 내 조국이며, 장래 통일이 될 것을 어찌하여 우리가 두 동강으로 나눌 수 있는가!” 분단 이후 태극기를 다시 올리지 않은 것은 조국 통일을 염원하는 증거였다. 만약 조국이 통일되었다면 그 어느 곳보다도 높이 국기를 게양하고 그 누구보다도 크게 국가를 불렀을 것이다. 한국에서 멸공, 반공을 외치던 시절, 이경태는 자주·평화·통일교육을 실천했다. 한국에서 통일교육이 시작된 것은 1972년이다.
2015년 부산MBC는 백두학원 전통예술부의 활동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이바라키의 여름’을 제작, 호평을 받았다. 최근 나라(奈良)에서의 한일정상회담 중 재일동포 간담 행사에서 백두학원 전통예술부가 문화 공연을 펼쳤다. 이경태가 창학한 백두학원은 지금도 한일 문화 교류의 주역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경태는 조총련계로 왜곡됐다. 필자의 학술 연구를 통해 그는 자주·평화·통일이라는 명확한 국가관 아래 교육의 자주성과 학원의 자율성에 근거해 평화교육을 실천했음이 밝혀졌다. 이러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학중앙연구원도 관련 기록을 수정했다.
이제 우리는 바로잡는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그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2026년 백두학원 건학 80주년을 앞두고 부산이 먼저 나서야 한다. 부산 출신 평화교육 선구자 자이니치 이경태를 기억하고 그가 남긴 숭고한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미래세대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이자 평화의 시작이다.
2026-04-2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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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낙동강 녹조 주범 가축분뇨, 처리에서 차단으로
낙동강의 녹조는 더 이상 이례적인 사건이 아니다. 폭염이 오면 반복되고, 갈수가 길어지면 심화되며, 장마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그 과정에서 수돗물 불안, 어류 폐사 등 지역 갈등이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낙동강 수계 녹조 발생의 중요한 원인으로 수계의 구조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여름철 고수온 상태가 장기간 유지되고, 하천의 체류 시간이 길어지며, 갈수기 유속이 저하되는 환경은 오염이 녹조로 전환되는 과정을 가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기후와 수문 조건은 가속하는 요인일 뿐이다. 문제의 본질은 오염원 관리에 있다. 오염원을 차단하지 못 하면 녹조는 구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낙동강 오염원 관리는 ‘처리’가 중심이었다. 이는 사후 관리에 가깝다. 이제는 사전 대응, 즉 ‘차단’ 중심으로 유역환경관리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낙동강 상류와 중류 지역에는 대규모 축산단지가 밀집해 있다. 특히 막대한 양의 돈분뇨가 가장 큰 문제였다. 2023년 정부 통계에 따르면 가축분뇨 중 돼지분뇨가 약 39%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공식 통계상 가축분뇨 처리율은 90% 이상으로 집계되나, 이 통계는 ‘질소·인이 실제 환경계로 유입되는 것을 얼마나 차단했는지’와 같은 질문에는 답하지 못 한다.
낙동강 본류의 수질 자료를 보면, 여름철 녹조 발생 시기 총질소(T-N) 농도는 평상시 대비 약 2~4배까지 높아지는 경향이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이 시기는 퇴비·액비 살포가 집중되는 시기와도 상당 부분 겹친다. 즉, 행정적으로는 ‘처리 완료’로 분류된 분뇨가 실제 환경적으로는 시간차를 두고 하천으로 재유입되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해외 주요 국가들은 녹조와 수질 악화를 구조적으로 완화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유럽연합(EU)은 1991년 ‘질산염 지침’(Nitrates Directive)을 통해 가축분뇨 유래 질소 살포 상한을 170kg N/ha/년으로 설정했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관리 성과를 처리량이 아니라 ‘질소 수지’(N balance)로 평가한다. 투입 질소에서 작물 흡수를 제외한 잔존 질소가 기준을 넘을 경우, 농가·시설 단위에서 즉각적인 조정과 제재가 이뤄진다. 해외 사례의 공통점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보다 ‘환경계로 얼마나 배출해도 되는가’를 먼저 정했다는 것이다.
낙동강 수계 상·중류 축산밀집 권역에 질소·인 살포 절대 상한을 설정하고, 권역·유역 단위 중앙집중관리와 질소 수지 기반 집행·검증 체계를 단계적으로 도입할 경우 실질적인 개선 효과가 기대된다. 보수적으로 보더라도 하천 총질소(T-N)·총인(T-P) 농도는 약 15~30% 감소하고, 여름철 녹조 경보 발생 빈도는 약 30% 내외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녹조의 최초 발생 시점은 1~3주 늦춰지고, 지속 기간도 평균 2~4주 단축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금까지 낙동강 녹조 대응 예산은 주로 응급 조류 제거, 차단막·약품 투입, 정수장 고도처리 강화 등 사후 처리 중심으로 투입돼 왔다. 이 같은 방식은 단기적 완화에는 일정 부분 효과가 있지만, 녹조 발생 구조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그 결과 유사한 대응 예산이 매년 반복적으로 투입되고 있다.
반대로 오염원 차단을 중심으로 예산을 투입할 경우, 녹조 대응과 정수 처리 관련 비용을 중장기적으로 20~40%가량 절감할 수 있다. 또한 반복되는 민원 대응과 사회적 갈등에 소요되는 비용도 함께 줄일 수 있으며, 수질 개선 효과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
낙동강 녹조는 기후 탓도 특정 시설의 처리 공정의 문제만도 아니다. 차단 없는 처리 중심 관리 구조가 유역 단위로 누적된 결과다. 해외 사례가 보여주는 교훈은 단순하지만 분명하다. 녹조를 줄인 것은 기술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선과 관리 체계였다.
지금처럼 처리에 예산을 쓰는 구조를 유지한다면 녹조 대응 비용은 해마다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차단을 우선하는 관리 구조로 전환한다면 낙동강 수질과 재정 부담은 동시에 개선될 수 있다. 지금 바꾸면 덜 아프다. 미루면 미래 세대 부담은 더욱 커진다.
2026-04-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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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 앞바다서 빛난 이순신 정신은 국가 발전의 원천
1592년 10월 5일(음력 9월 1일), 부산 앞바다는 조선의 운명을 가른 결전의 장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 100여 척은 가덕도, 다대포, 서평포, 영도를 거쳐 500척이 넘는 왜선이 주둔하고 있는 왜군의 본거지인 부산포(현재 북항)까지 거침없이 진격하여 왜선 100여 척을 격파하였다.
이 부산대첩은 단순한 승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장군 스스로 왕에게 올린 장계에 “전후 네 차례, 열 번의 접전에서 번번이 승첩을 거두었으나, 장수들의 공로를 논한다면 이번 부산 싸움보다 더 큰 것이 없었습니다”, “비록 적의 머리를 베지는 못 했을지라도 힘써 싸운 공로는 지난 번보다 훨씬 컸습니다”라고 했을 만큼 가장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했고 이후 왜군의 호남 진출은 저지되었다.
필자는 여해재단이 설립한 이순신학교에서 장군의 정신을 배운 후 현재 여해재단과 부산대첩기념사업회의 감사로 활동하면서 이순신 정신을 실천하려고 노력 중이다. △동료와 백성을 향한 무한한 사랑의 정신 △미리 준비하고 최고의 노력을 다하는 정성의 정신 △불의에 결코 굴하지 않는 정의의 정신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역경을 극복해 나가는 자력(自力)의 정신, 이것이 이순신 정신의 진면목이라 할 수 있다.
이순신 정신은 430여 년 전의 역사 속에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첨단 기술 산업의 현장에서도 그 맥은 면면히 흐르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세계 반도체 역사를 새로 쓴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의 ‘반도체 신화’이다.
황 사장은 저서 <THE BIG CONVERSATION>(빅 컨버세이션)을 통해,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이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신판 :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에서 밝힌 ‘이순신 정신’이 자신을 성공으로 이끈 정신적 뿌리였음을 고백했다. 황 사장이 인텔의 ‘무어의 법칙’에 도전하며 ‘황의 법칙’을 선포하는 데 이순신 정신이 그 원천이 되어, 기술의 세계라는 혹독한 경쟁의 전장 한복판을 한 치의 주저함이 없이 앞으로 나아가 마침내 세계를 바꾸는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갔던 것이다.
오는 28일은 충무공 탄신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경제적 불확실성과 거대한 기술적 변곡점 앞에 서 있다. 1592년의 부산포에서, 그리고 21세기 반도체 생산 라인에서 증명된 이순신 정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여해재단은 김종대 재판관의 저술처럼 이순신 정신을 알리는 활동을 통해, 각계각층에서 제2, 제3의 황창규와 같은 ‘작은 이순신’을 배출하려고 꿈꾸고 노력하고 있다. 독자들께서도 이순신 정신을 공부하여 나만의 ‘부산대첩’을 준비할 용기를 얻으시길 바란다. 우리가 한마음으로 이순신의 사랑과 정성, 정의와 자력의 정신을 실천할 때, 대한민국의 미래는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할 신화를 써 내려갈 것이다.
2026-04-26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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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울경이 아닌 대한민국의 가덕신공항 추진하자
중동 전쟁 이후 요즘 부쩍 항공에 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중동을 지나는 비행기는 안전하냐, 유가가 많이 오르면 비행기값도 올라 여행하기 어려운 거 아니냐, 지방공항 장거리 직항노선은 언제쯤 생기느냐 등이다. 그중에는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 가덕도신공항공단을 합치는 것이 좋은 지에 대한 질문도 적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면 3개 공항건설·운영기관의 통합으로 ‘K항공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부울경 지역민의 항공교통 편의와 지역 내 외국인 관광객 500만 명 시대, 그리고 대한민국의 지역균형발전과 글로벌 항공강국 도약을 위해서다.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지만, 수도권 사람들과 외국인들에게는 아직도 ‘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특히 김해공항에 가면 이러한 현실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국제공항이라는 이름과 달리 터미널은 늘 좁고 붐빈다.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는 장거리 직항노선이 없어 해외 출장이라도 가려면 인천을 들러 목적지까지 가는 데 꼬박 이틀이 걸린다. 불편함을 겪어보지 못한 수도권 사람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지역의 웃픈 현실이다.
대한민국의 관문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은 개항 이후 25년간 ‘전략적 허브공항’이라는 정책적 지원을 받아 왔다. 그 결과 우리나라 국제선 수요의 약 80%가 인천공항에 집중됐다. 이 과정에서 지역민의 항공교통 소외문제는 점점 심화됐다. 특히 김해공항의 국제수요를 인천공항으로 실어 나르는 환승내항기는 오히려 외항사의 지역공항 직항 취항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는 인천공항 쏠림 현상을 더욱 강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문제는 현재의 공항 운영 체계와 국가 재정 여건만으로는 가덕신공항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가재정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항공물류를 중심으로 한 가덕신공항 글로벌 경제권 조성을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공항자원 배분과 지원 등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하다. 더구나 현 단계의 가덕신공항건설공단은 과도기적 조직에 머물러 있어 자체적으로 예산을 편성·집행할 수 없는 구조다. 애초 재정 자립이 어렵기 때문에 사업 추진 과정 전반에 걸쳐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를 지우기 어렵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무엇보다 공항 건설∙운영 전반에 대한 통합적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 현재 공단이 안고 있는 한계를 해소하고 향후 성공적으로 공사 체제로 전환하려면 인천공항과 지방공항을 각각 운영하는 양 공사가 경쟁하듯 중복 투자하고 있는 공항 개발(R&D)과 관리기능을 통합 정리해야 한다. 실제 공항을 이용하는 이용객 중심의 서비스 체계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정부 역할도 분명해져야 한다. 전국 공항의 안전과 공공 기능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로서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건설∙운영될 가덕신공항, 제주2공항, TK공항 등에 최고 수준의 안전과 최첨단 기술이 투입되도록 지휘·감독해야 한다. 지난 국가관광전략회의에서 논의된 지방공항의 연결성 강화와 지역관광 활성화 역시 실행 주체와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인천공항과 지방공항 통합 운영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그러나 이는 공항의 공공성과 국가균형발전이라는 가치보다 수도권 중심 논리에 치우친 시각에 가깝다. 인천공항만을 세계적 허브로 키우는 전략은 국토균형발전이라는 국가적 과제와도 맞지 않고, 결국 수도권 밖 지역민들에게는 14개 지방공항을 계속 불편하게 사용하라는 말과도 같다.
가덕신공항이 인천공항과 같은 글로벌 관문공항으로 성장하려면 인천공항과 전국 지방공항 운영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역량을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동시에 김해공항에서는 다양한 국제노선 운영 경험을 지금부터 축적해 나가는 것 역시 필요하다.
가덕신공항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관문공항이자 미래 항공산업의 성장 거점이 될 국가적 프로젝트다. 공항의 통합된 안전관리와 서비스 체계, 항공 네트워크의 유기적 활용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공항을 새로운 K항공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인식하고 공항건설·운영기관의 거버넌스 통합을 모색하는 정부 정책은 긍정적이다. 이제는 지역 논리를 넘어 국가 전략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가덕신공항은 결코 부울경만의 지방공항이 아닌 대한민국의 미래 공항이다.
2026-04-2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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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성실납부가 존중받는 사회로…사회보험료 징수체계의 전환 필요하다
사회보험은 질병, 실업, 노령, 산업재해 등 국민이 일상에서 직면하는 다양한 사회적 위험을 함께 나누는 제도이다.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으로 이어지는 4대 사회보험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적인 안전망이다. 제도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공정한 부담과 성실한 납부라는 원칙이 현장에서 충분히 구현돼야 하며, 부담과 납부의 균형을 살펴봐야 한다.
다수의 국민과 사업자가 성실하게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영역에서는 제도의 사각지대나 납부 회피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존재한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단순한 제도 운영상의 이슈를 넘어, 성실납부에 따른 이점이 국민에게 충분히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회보험 제도 전반에 대한 점검과 보완이 필요하다.
이러한 구조는 몇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우선, 소득 파악 체계는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으나 경제 환경 변화 속도를 충분히 반영하기에는 여전히 보완의 여지가 있다. 근로소득은 비교적 투명하게 반영되지만, 사업소득이나 플랫폼 기반 소득 등 다양한 소득 형태에 대해서는 보다 정교한 반영 체계가 요구된다. 또한 체납 관리 역시 사후 대응 중심의 성격이 강해 예방적 관리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여기에 성실납부에 대한 체감 가능한 유인이 충분히 크지 않다는 점도 함께 작용하면서, 납부가 ‘의무’에 머무르고 ‘합리적인 선택’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이제는 이러한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정책의 초점을 한 단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징수 강화에 머무르기보다 납부 행태를 개선하는 접근이 병행되어야 한다. 핵심은 성실하게 납부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첫째, 소득 기반 부과체계를 더욱 정교화해야 한다. 관계기관 간 협력을 통해 다양한 소득 정보를 합리적으로 연계하고, 변화하는 경제 환경을 반영한 부과 기준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는 공정한 부담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출발점이다.
둘째, 체납 관리의 방향을 예방 중심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데이터 기반 분석을 활용하되 개인정보 보호 원칙을 전제로, 체납 가능성이 있는 경우 사전 안내와 분할납부 지원 등 맞춤형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제재 중심이 아닌 지원 중심의 관리 방식이다.
셋째, 성실납부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확산될 수 있도록 정책적 유인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보완이 필요하다. 성실납부 이력이 사회 전반적인 영역에서 신뢰를 보여주는 참고 요소로 활용되거나, 행정절차 간소화, 금융·신용 측면의 우대 등 실질적으로 체감 가능한 지원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 이는 특정 집단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실한 참여를 장려하는 방향의 제도적 보완이다.
넷째,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 혁신도 중요하다. 모바일 기반의 간편 조회와 납부, 맞춤형 안내, 디지털 상담 기능 강화 등을 통해 납부 과정의 불편을 줄이고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사회보험 수급권은 개인의 권리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책임을 전제로 한다. 성실납부는 이러한 권리와 책임을 연결하는 가장 기본적인 참여다. 공정한 부담과 성실한 납부가 함께 작동할 때 제도에 대한 신뢰는 유지된다. 따라서 성실납부가 존중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사회보험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다.
이러한 지속 가능성의 문제는 최근의 환경 변화 속에서 더욱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고령화의 가속화, 의료 이용 증가, 경제 구조의 변화는 사회보험 재정에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존의 방식만으로는 제도의 안정성을 충분히 담보하기 어렵다. 지금이야말로 징수 체계의 정교화와 납부문화 개선을 균형 있게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성실납부가 당연한 사회를 넘어, 성실납부가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성실함이 신뢰로 이어지고, 그 신뢰가 사회 전반에서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때 사회보험 제도는 더욱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 이제 그 변화를 차분하지만 분명하게 시작해야 한다.
2026-04-1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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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금정산의 아틀라스
피지컬 AI(인공지능)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던진 충격은 과거 산업혁명 때와 결이 다르다. 산업혁명은 기계가 인간의 근육을 대체했다. 기계는 더 빠르고 강했지만 판단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었다. AI는 스스로 판단하고 학습하고 결정한다.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수준을 넘어 노동으로 소득을 얻는 사회의 기본 구조 자체를 흔든다. 이것이 ‘아틀라스 충격’의 본질이다. 물론 피지컬 AI 기반 휴머노이드로봇 아틀라스에게서 아뢰야식(阿賴耶識)을 찾는 일은 가망이 없다.
특별하게 바위들로 설계되어 가득 채워진 듯한 돌무더기의 그 한가운데 자리한 금정산의 금샘은 어떤가. 불끈 솟구친 바위덩어리가 영하의 칼바람 속에서 끄떡도 하지 않고 억겁의 시간을 잘 견디고 있다. 허공을 어깨로 턱하니 떠받쳐 치켜든 신화의 아틀라스가 바로 이곳에 그 모습을 나투어 보이신 것임에랴. 그래서 금샘은 작지만 바로 신(神)이다. 예전엔 신은 ᄀᆞᆷ 곰 금 등으로 표기되곤 했던 경우를 보면 더 그렇다. 금정산의 이름, 범어사의 이름을 생성해낸다. 금샘이 없는 금정산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일찌감치 아틀라스가 이렇게 여기에 와 계셨음을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한 채로 살아왔다. 이제야 알았으니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이다. 허공을 받쳐든 채로 기꺼이 임무를 완수해 내고 있는 장면에서 바야흐로 피지컬 AI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강림하신 것을 감지한다.
그렇다면 이는 국립공원 금정산이 어떻게 설계, 운영되어야 하는가의 총론을 고스란히 밝혀준 길잡이로 오신 것임을. 시작부터 애당초 AI 기반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일하도록 설계되고 운영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이렇게 또렷하고 명확하게 말해 주고 있음을 그래도 모르겠단 말인가. 물론 이 일이 단지 몇 줄의 문장으로 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닐 것이다. 얼마나 야심차게 그리고 분투하면서 해야 할 일인가는 몇 마디 말로 될 일도 아닐 것이다. 기본적으로 준비하고 또 갖춰야 할 설비나 건조물 등등 과제가 산적, 산적 또 산적해 있다. 진행의 시작점에서부터 잘 준비해서 차근차근 해 나가야 할 것은 두 말이 필요 없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언제나 시작이 있었기에 과정이 있고 그리고 진전과 변화가 있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너무 망설이고 지체하면 날씨도 변화무쌍하고 산속의 길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듯 그렇게 길을 잃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결단코 피해갈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자 금정산 금샘의 엄숙한 명령이다. 이러한 요구를 과감하게 반영해서 국립공원 금정산이 그야말로 AI 기반 피지컬 아틀라스들의 일자리로 새롭게 나야 한다는 말이다. 새롭고도 획기적인 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를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인력들, 즉 두뇌들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산학협력의 시스템을 구축해서 우수한 두뇌들이 모여 연구하고 토론하고 그리고 설계하도록 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일 수 있다. 우리가 최초이기에 준비단계에서부터 세밀하고 정교하게 설계해서 현장을 바꿔 나간다면 세계는 곧 이곳에 관심을 집중하게 될 것이다. 이제 출발선에 선 금정산이야 말로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힘차게 끌고 갈 수 있는 역동적 현장이다.
금정산은 도심에 자리해 있고 강과 바다로 마주해 있다. 많은 인재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뛰어난 교육기관이 금정산 자락에 포진해 있다. 반도체와 전력 산업 등이 이미 잘 준비된 곳이다. 주저할 게 없다. 세계의 국립공원을 우리 방식대로 운영체계나 방식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새롭고도 야심찬 출발점에서 우리의 시도가 곧 성공임을 믿어도 괜찮을 것 같다. 금정산의 아틀라스는 부산의 근대화 여명과 함께했다. 부마항쟁의 우렁찬 젊은 피가 새 역사의 길을 향한 대장정을 시작했을 그때의 시작점에서 웅혼한 기백과 기세를 나눠주었던 그 성스러움의 장소다. 우리가 못 한다면 세계의 그 어떤 나라도 할 수 없는 시대가 열려가고 있음을 이곳에서 깨닫게 된다.
2026-04-1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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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에너지 위기, ‘슬기로운 전기생활’로 일상 속 해답을 찾다
“중동 아닌 한국서 전쟁?” 중동 전쟁으로 인해 한국이 주요국 중 가장 큰 경제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미국 연구기관의 분석을 빗댄 말이다. 분석보고서에서는 에너지와 산업용 원자재 등 우리나라의 자원 대부분을 특히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 배경으로 지목되었다.
세계 지도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찾아보면 부산에서 약 7000㎞ 이상 떨어져 있어 지리적으로 매우 먼 지역이지만, 우리 시민의 일상과 기업 활동에 직결되어 경제적으로는 가까운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아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급 안정과 비용 부담에 대한 우려도 함께 커지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이에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 2일 자원안보위기 ‘경계’ 단계를 발령하며 국가적 대응을 강화하는 가운데, 공공기관 차량 2부제와 같은 에너지 절약 정책을 통해 수요 관리에 나서고 있다. 이는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동시에 위기 대응에 필요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참여를 이끌어낸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조치라 할 수 있다.
다만 에너지 위기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에너지 절약 정책을 준수하는 것과 더불어, 국민과 기업이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식이 함께 마련되어야 그 효과가 배가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올해 3월 한국전력(한전)이 새롭게 오픈한 에너지 절약 플랫폼 ‘슬기로운 전기생활’은 유용한 보완 수단이 될 수 있다. ‘슬기로운 전기생활’은 한전, 한국에너지공단, 전력거래소 등 7개 기관에 분산된 39종의 에너지 절약 정보와 다양한 지원제도를 한 곳에 모아 제공함으로써, 국민 누구나 합리적으로 전기를 사용하여 전기요금 절감 혜택을 체감하는 동시에 재생에너지 확산에 동참할 수 있도록 구축되었다. 그간 에너지 서비스 정보 확인을 위해 각 기관 홈페이지를 일일이 방문해야 했던 번거로움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플랫폼 내 “내 혜택 찾기” 기능에 가구원 수 등 조건만 간단히 입력하면, 놓치고 있던 에너지 복지 혜택을 한눈에 확인하여 신청 페이지로 바로 연결해 준다. 또한, ‘전기요금 시뮬레이션’ 기능을 활용하면 전력 사용 시간대를 이전했을 때의 요금 절감 효과를 미리 계산해 볼 수 있다. 나아가 태양광 발전 등으로 전력공급이 많은 시기에 자발적으로 전기를 더 사용하면 인센티브를 받는 ‘플러스 DR' 제도와 예상 수익 정보 역시 상세하게 안내한다.
에너지 절약의 측면에서 차량 5부제와 같은 방식이 사회 전체의 이해와 양보를 기반으로 하는 정책적 접근이라면, 슬기로운 전기생활은 개인과 기업의 자발적 선택과 참여를 기반으로 한 지속 가능한 접근으로써, 두 방식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할 때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시민과 기업이 일상 속에서 정부의 절약 정책을 성실히 이행하는 동시에, 전기 사용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고 다양한 제도에 참여하려는 노력이 병행될 때 보다 안정적인 에너지 체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현재의 에너지 위기 극복은 결코 거창한 구호나 획기적인 신기술만으로 이뤄지지 않으며, 가장 강력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는 다름 아닌 ‘절약을 향한 시민의 자발적 참여’다. 시민 모두가 ‘슬기로운 전기생활’ 접속을 통해 에너지 절약의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는 경험을 하실 수 있길 제안해 본다.
2026-04-15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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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중국 양회를 이해하고 발전 기회를 포착하자
중국의 전국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는 국제사회가 중국의 발전과 정책 방향을 관찰하는 중요한 창구이다. 올해 중국 양회는 얼마 전 베이징에서 성공적으로 개최되었으며, 주요 성과 중 하나인 ‘제15차 5개년 계획(국민경제 및 사회발전 제15차 5개년 계획)’ 요강이 심의 통과되었다. 이 5개년 계획은 향후 5년간 중국의 발전 청사진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이 세계에 발전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전달하는 것이기도 하다.
첫째, 중국 경제 발전은 안정 속에서 전진을 추구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중국 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은 5.4%였으며, 세계 경제 성장 기여율은 약 30% 수준을 유지해 서방 7개국(G7) 전체를 넘어섰다. 지난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5% 성장해 총규모가 140조 1900억 위안(약 19.63조 달러)에 달했으며, 증가분은 5조 위안을 넘어 중진국의 경제 규모에 맞먹는다.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 목표는 4.5~5%로 제시되었으며, 향후 5년간 중국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발전 흐름을 유지할 것이다. 이는 중국이 앞으로도 세계 경제 성장의 중요한 기여자이자 안정판 역할을 할 것임을 의미한다.
둘째, 과학기술 혁신이 질적 향상과 효율 증대를 견인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중국은 고품질 발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며 혁신 투자를 꾸준히 확대해 왔고, 전기차, 휴머노이드 로봇, AI 등 첨단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제15차 5개년 계획은 연평균 7% 이상의 R&D(연구개발) 투자 증가 등의 목표를 명확히 제시하고, 집적회로, 항공우주, 바이오 의약품, 저고도 경제 등 신흥 주력 산업을 집중 육성하며, 미래에너지, 양자 과학기술, 피지컬AI,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6G 등 미래 산업을 중점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수조 위안, 나아가 그 이상의 시장을 형성하고, 글로벌 혁신 지형에 중국의 지혜를 더할 것으로 본다.
셋째, 대외 개방이 계속해서 추진되고 있다. 현재 중국은 150여 개국의 주요 무역 파트너이며, 17년 연속 세계 2위의 수입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제15차 5개년 계획 기간 중국은 협력과 상생을 지속하며 대외 개방을 한층 확대할 것이다.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시장 진입과 개방 분야를 확대하고, 부가가치 통신 서비스, 생명공학, 외자 단독투자 병원 등 분야에서 개방 시범을 한층 확대하며, 디지털 분야의 개방도 질서 있게 확대해 나갈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의 거대 시장을 세계와 공유하고, 개방의 성과가 각국 국민에게 더 잘 돌아가도록 할 것이다.
중국을 선택하는 것은 곧 기회를 선택하는 것이며, 중국에 투자하는 것은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다. 제15차 5개년 계획 요강은 향후 5년간 중국의 발전 청사진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 기회와 투자 방향을 제시하는 지침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시진핑 주석과 이재명 대통령은 불과 두 달 사이에 상호 방문을 실현하며 중한 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최근 들어 필자는 관할 지역 각계가 중국과의 교류를 강화하려는 의지가 뚜렷이 높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25년 중한 교역액은 3312억 4000만 달러에 달했으며, 인적 교류는 약 900만 명에 이르는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미래를 내다볼 때, 중국 측은 한국과 함께 제15차 5개년 계획이 제공하는 새로운 기회를 충분히 발굴하고 적극 활용해, 각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지속적으로 심화하고 중국식 현대화 발전의 혜택을 함께 나누며 상호 성취와 공동 발전을 이루고자 한다. 필자는 관할 지역의 대중국 협력 전망에 대해 큰 확신을 가지고 있다.
2026-04-1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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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모두의 창업, 부산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성장의 방식
창업은 더 이상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는 누구나 자신의 아이디어와 기술,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성장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시대다. 정부가 추진하는 ‘모두의 창업’은 바로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담은 프로젝트다. 창업을 일부 전문가의 영역에 가두지 않고, 전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개방형 창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중요한 것은 창업의 문을 넓히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디어가 실제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전 과정을 연결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부산은 이 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다.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는 ‘모두의 창업’ 부산지역 대표 운영기관으로서 지역의 다양한 창업 주체를 연결하고, 실질적인 성장 경로를 만드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는 단순히 창업기업 몇 곳을 선발해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 기술을 가진 사람, 경영 역량을 가진 사람, 자본과 네트워크를 가진 사람이 함께 팀을 이루고 서로의 강점을 연결해 혼자가 아닌 함께 성장하는 창업 모델을 만드는 일이다.
특히 ‘모두의 창업’이 중요한 이유는 창업의 출발점을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창업을 망설이는 이유는 아이디어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사업으로 연결할 사람과 자원, 실행 기반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는 발굴 단계부터 아이디어·기술 제공자를 중심으로 자본가, 경영가, 마케터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팀 빌딩을 추진하고, 이를 통해 비즈니스모델과 기술의 고도화를 지원하고자 한다. 창업은 더 이상 혼자 버티는 도전이 아니라, 각자의 역량이 모여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는 협업의 과정이어야 한다.
초기 단계에서는 촘촘한 성장 지원이 중요하다.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는 예비·초기 창업패키지, 청년창업사관학교, 창업중심대학 등 정부 지원사업과 연계하는 한편, 자체 플랫폼인 ‘프리-바운스’를 통해 지역 전략산업과 초격차 기술 기반 스타트업을 지속 발굴·육성하고 있다. 상시 멘토링, 월간 프로그램, 후속 연계 지원을 통해 유망 스타트업이 시장 검증과 성장 기반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초기 기업이 반드시 넘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는 투자다.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는 직접 투자와 투자 연계, 프리-팁스(TIPS)와 팁스 추천까지 이어지는 단계별 지원체계를 통해 스타트업의 기업가치 제고를 지원하고 있다. 특히 ‘B.스타트업 PIE’ 프로그램은 지역 초기 스타트업의 투자 활성화와 스케일업을 위한 대표 프로그램으로, 유망 기업이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되고 있다.
성장 단계에서는 시장과 연결되는 실증 기회가 절실하다.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는 대·중견기업과 스타트업을 연결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제품과 서비스의 현장 검증(PoC)을 지원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만남에 그치지 않고, 공급계약, 후속 투자유치, 공동연구, 조인트벤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실질적인 성장 경로를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스타트업의 성장은 국내 시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는 글로벌 진출 프로그램인 ‘플러그 인 부산’을 통해 일본, 베트남, 싱가포르 등 아시아 주요 시장과의 연결을 강화하며 스타트업의 해외 확장을 지원하고 있다. 부산이 가진 지리적·산업적 강점을 바탕으로 지역 스타트업이 부산에서 시작해 아시아 시장으로 뻗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우리의 중요한 역할이다.
결국 ‘모두의 창업’이 지향하는 것은 단순히 창업기업 수를 늘리는 일이 아니다. 창업의 문턱을 낮추고 실패의 부담을 줄이며,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아이디어를 가진 누구나 도전할 수 있고, 그 도전이 대학·기업·투자자·지원기관과 만나 하나의 팀이 되고, 다시 지역 산업과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창업은 한 사람의 도전이 아니라 지역의 성장 전략이 된다.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는 앞으로도 ‘모두의 창업’ 부산지역 대표 운영기관으로서 아이디어 발굴, 비즈니스 모델 확립, 성장 지원, 투자, 오픈이노베이션, 글로벌 진출, 후속 투자에 이르는 전 주기 지원체계를 더욱 촘촘히 구축해 나가겠다. 창업이 일부의 도전이 아니라 모두의 가능성이 되는 길, 그 길을 부산이 가장 먼저 실현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겠다.
2026-04-1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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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청사 내 일회용품 반입 금지도 못 할 후보는 출마 말아야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곳곳에서 후보자들의 출마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 도시를 바꾸겠다는 비전,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는 선언까지 공약도 화려하다. 그러나 필자는 출마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공공청사 내 일회용품 반입 금지를 공약할 수 있는가?” 이 작은 실천조차 확답하지 못하는 후보가 우리 지역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호언장담이 과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지구는 지금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폭염과 홍수, 해수면 상승은 더 이상 먼 미래에 일어날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일상이 된 재난이다. 과학자들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이 1.5도를 넘어서면 기후위기가 돌이킬 수 없는 단계(Tipping Point)에 진입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런 시대에 정치와 행정이 보여줄 리더십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생활 속 실천이다. 그 출발점이 바로 공공기관 청사 내 일회용품 반입 금지다.
ESG 시대는 단순한 환경 보호의 차원을 넘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사회 질서를 의미한다. 지방정부 역시 단순한 행정기관을 넘어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를 설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변화는 거대 담론이 아니라 청사 안의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행정이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서 시민의 동참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부산광역시는 ‘ESG 시민운동 지원 조례’를 제정하며 시민과 행정이 함께 실천할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는 지방정부 차원에서 ESG 시민운동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의미 있는 시도다. 그러나 제도만으로 변화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생활 속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최근 부산의 일부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전 직원 ESG 교육과 다회용 컵 사용 캠페인을 벌이는 등 자발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특정 기관에 머물지 않고 모든 공공영역으로 확산되는 것이 중요하다. 공공이 먼저 변할 때 시민의 행동 변화도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사실 공공청사 내 일회용품 반입 금지는 막대한 예산이나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 정책적 의지와 조직의 결단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시행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많은 기관이 ‘불편함’이나 ‘민원인 예외’를 이유로 시행을 주저한다. 말로만 ESG를 외치고 실제 행동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만적인 ‘ESG 워싱’에 불과하다.
이제 행정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청사에서 일회용품을 퇴출하는 일은 단순한 규칙을 넘어선 상징적 정책이다. 이는 행정이 기후위기를 엄중히 인식하고 있으며 시민에게 요구하기에 앞서 스스로 실천하고 있다는 메시지다. 실제로 정부 국무회의에서는 다회용 컵 사용이 정착되고 있지만 이러한 변화가 지자체 전반으로 확산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청사 하나 바꾸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도시 전체를 바꿀 수 있겠는가.
이는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의 문제이기도 하다. 일회용품 남용과 기후위기의 비용은 결국 다음 세대가 짊어질 몫이다. 지금의 편의를 위해 환경 부채를 떠넘기는 것은 행정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 의식의 문제다.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정당의 공천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의 후보자 평가에는 ESG 실천 의지가 포함돼야 한다. 청사 내 일회용품 금지를 약속하고 실행할 의지가 있는 후보에게 공천을 주는 것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치 기준이다. 후보자 토론회에서도 “당선 시 청사 내 일회용품 반입 금지를 시행하겠는가?”라는 질문이 반드시 등장해야 한다. 이는 후보의 환경 인식과 행정 철학을 검증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이제 유권자도 후보들에게 물어야 한다. “당신은 말로만 ESG를 하는가, 행동으로 보여주는가.” 작은 실천이 도시의 문화를 바꾸고 지역의 미래를 결정한다. 공공청사 내 일회용품조차 금지하지 못 할 후보라면 출마를 고민하기 전에 자신의 주변과 일상부터 돌아보는 것이 순서다.
2026-04-0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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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필연 기술로 부산 ‘고용의 봄’ 꿈꾸다
벚꽃이 만개하는 요즈음, 부산 경제에도 반가운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지난달 27일 자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부산의 고용 지표는 그간의 침체를 벗어나 잠재력이 결실을 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부산의 30대 고용률이 최근 5년 사이 무려 10%P나 상승하며 전국 최고의 증가 폭을 기록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실업률 또한 7대 특·광역시 중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단순히 수치상의 개선을 넘어 구인·구직 간의 고질적인 ‘미스매치’가 해소되면서 혼인율과 출생아 수 또한 전국 평균을 상회하며 반등하고 있다.
이는 부산이 ‘청년이 떠나는 도시’에서 ‘사람이 머물고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로 성공적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희망의 증거다.
이러한 소중한 성과는 그간 지역 사회가 합심하여 구축해 온 지·산·학 협력 체계와 산업 혁신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대규모 투자 유치와 청년 맞춤형 고용 정책이 실질적인 지표의 변화를 끌어낸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 기분 좋은 반등의 기세를 몰아, 부산을 명실상부한 ‘글로벌 과학기술 허브’로 안착시키는 일이다. 청년의 지역 유출 속도는 완화되고 있지만, 인재들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딥테크 기업’ 육성과 이를 통한 역외 인재의 유입 가속화는 여전히 시급한 과제다.
현재 글로벌 혁신 클러스터 95위권에 머물고 있는 부산의 순위를 국가 혁신 위상에 걸맞게 끌어올려야 한다. 훌륭하게 갖춰진 도시 인프라가 단순한 거주 기능을 넘어 양질의 일자리와 혁신 창업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더 단단히 다져야 할 때다.
그 도약의 핵심 열쇠는 부산이 가장 잘할 수 있고,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필연 기술(Inevitable Tech)’에 있다. 필연 기술이란 단순히 유행을 좇는 기술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도시의 산업과 일자리가 유지될 수 없는, 부산의 미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반드시 주도권을 쥐어야 할 핵심 기술 영역을 의미한다.
첫째, 부산의 뿌리인 제조업에 ‘AI 전환(AX, AI Transformation)’의 새 옷을 입혀야 한다. 산업 맞춤형 AI와 로봇이 결합한 첨단 제조 현장은 청년들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스마트하고 매력적인 일터가 될 것이다.
둘째, 최근 착공한 센텀2지구 도시첨단산업단지(도심융합특구)를 중심으로 ‘글로벌 양자 특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양자 분야는 부산의 기존 주력 산업과 융합할 지점이 무궁무진하다. 특히 세계적인 항만 인프라에 양자센싱과 컴퓨팅 기술을 접목한 ‘양자항만 테스트베드’를 구축한다면, 부산은 북극항로 거점도시의 심장을 넘어 기술의 메카로 격상될 수 있다.
셋째, 고령화라는 시대적 과제를 역설적으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 의료 데이터와 실용화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복지 모델은 부산을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미래형 초고령사회 대응 모델 도시로 만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양 유래 바이오 소재와 에너지 안보를 결합한 ‘블루 이코노미’의 확장은 부산을 바다를 통해 에너지와 데이터를 연결하는 초연결 도시로 진화시킬 것이다. 이 거대한 희망의 여정에서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은 든든한 ‘성장판’이자 ‘혁신 파트너’가 될 것이다.
지금 부산이 맞이한 ‘고용의 봄’은 끝이 아닌 위대한 시작이다. 지난 5년간 정성껏 뿌린 씨앗이 이제 막 싹을 틔웠을 뿐이다.
이제 ‘필연 기술’이라는 따뜻한 햇살과 ‘혁신 생태계’라는 풍요로운 토양을 더해, 부산의 미래를 활짝 꽃피워야 한다. 대한민국 혁신의 중심축으로서, 부산이 그려갈 ‘과학기술로 시민이 행복한 도시’의 미래를 시민들과 함께 확신과 설렘으로 준비해 나가고자 한다.
부산의 혁신은 선택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존이자 가장 큰 도약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2026-04-05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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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AI도 할 수 없는 일, 이순신 전적지 탐사
학승이자 대강백인 종범 스님의 법문을 우연히 듣다가 벼락을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법문의 요지는 이렇다. “공부는 하면 할수록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진다. 가장 고집이 센 사람은 학자들이다. 식당에 와서 혼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주인이 다가가, 단체 손님이 온다고 자리를 옮겨 달라고 하면 대부분은 옮기는데 학자들은 절대 말을 안 듣는다. 그리고 학자들은 자기 주장이 최고인 줄 알고 남과 타협하는 일이 없다.”
그러나 이런 학자들의 고집과 권위가 ‘빛의 속도’로 무너지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AI) 때문이다. 질문만 잘 하면 AI는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한 해답을 내놓는다.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AI 열풍 앞에 학자들의 입지는 위협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역사학자는 통역가와 번역가 다음으로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을 직업이라는 분석 결과가 있다.
명확한 답이 있고 실험으로 증명할 수 있는 자연과학 분야는 비교적 논란이 덜한 편이지만 인문학 분야는 학자들 간에 주장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역사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서로 다투면서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환단고기가 위서인가 여부를 놓고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사료가 풍부하지 못한 상고사는 학자들 간의 논쟁이 치열한 분야 중 하나다.
임진왜란 역사와 이순신 장군을 연구하는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최초 삼도수군통제영이 여수인가 아니면 한산도인가를 놓고 편을 갈라 다툼을 벌이고 있다. 양측의 지역 정치인들까지 가세하여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어 민망할 뿐이다. 합포해전지가 마산 합포인가 진해 학개인가를 놓고도 해묵은 논쟁이 종식되지 않고 있으며,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하러 갔던 합천의 권율 원수진이 어느 동네인가도 연구자들 사이에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렸다.
이순신 장군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는 유독 자기 주장만 내세우며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에게 공개적인 인신공격이나 비방도 예사로 한다. 지식 카르텔을 형성하여 횡포를 부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행태는 모두 충무공의 영전에 부끄러운 일이다.
필자는 이순신 장군의 행적을 따라 20년 이상 바다를 누비고 다니면서 스스로 학자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냥 이순신 장군을 좋아하는 해전 현장 전문가라고 하는 것이 편하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출판사 사장은 필자를 두고 발로 뛰는 ‘바다의 고산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고산자는 대동여지도를 그린 김정호의 호다. 서재에서 문헌만 연구하는 것은 나의 자유분방한 성정과도 맞지 않다. 역사기행 수필가나 시인이 내게는 더 잘 어울리는 타이틀이다.
그동안 350회 이상 이순신 전적지를 답사하면서 태풍에 갇혀 섬에 고립된 적도 있었고, 날이 저물어 외딴 암자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전국의 섬은 거의 다 섭렵했고 결국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있는 오곡도라는 작은 섬에 내 영혼의 짐을 내려놓았다. 섬마을 토담집을 수리하여 이순신 전적지 답사를 위한 베이스캠프를 하나 마련했다.
종범 스님의 법문은 AI 시대에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AI가 역사학자들을 능가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역사학은 기본적으로 문헌학이기 때문에 그 어떤 분야보다 먼저 AI에게 자리를 넘겨줘야 할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AI가 잘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배낭 하나 메고 이순신 장군의 해전 현장을 다니면서 역사의 진실을 캐고 구전설화를 채록하며, 별빛 쏟아지는 밤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을 다시 만나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확신한다.
2026-04-05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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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천마산에 심은 미래, 부산에서 시작된 청소년적십자(RCY)
피란수도 부산. 6·25전쟁의 한복판에서 전국의 산야는 황폐해졌고, 삶의 터전을 잃은 국민들은 마지막 희망을 안고 부산으로 모여들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피란지와 같았던 그 시절, 절망 속에서도 미래를 향한 움직임은 이어졌다.
1953년 4월 5일 식목일, 대한적십자사 서영훈 청소년과장(훗날 대한적십자사 총재 역임)의 인솔 아래 청소년적십자(RCY) 간부 단원들은 부산 서구 암남동 천마산에 1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전쟁으로 헐벗은 산을 되살리기 위한 이 식목 활동은 단순한 환경 복원이 아니라 상처 입은 공동체를 다시 세우겠다는 다짐이었다. 이날이 청소년적십자(RCY)의 창립일이 되었다.
RCY는 1953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출범하였다. 1917년 미국에서 RCY가 창설될 당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미국적십자사 명예총재)이 특별 선언문을 통해 RCY의 출범을 격려한 사례와 같이,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적십자사 명예총재 자격으로 우리나라 RCY 조직을 재가한 것은 청소년적십자 운동이 국가적·사회적·교육적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음을 보여준다.
전쟁 직후 RCY 활동은 우리 사회가 상처를 회복하고 다시 일어서는 원동력이 되었다. 캐나다 적십자사에서 지원한 원조금 3만 5000달러를 재원으로 서울과 부산의 여자고등학교 학생 5000여 명이 전장에서 부상을 입고 후송된 국군 장병을 위한 환자복 1만여 벌을 제작했다. 또한 민둥산에 나무를 심는 활동을 전개했고, 방학 기간에는 농어촌 봉사활동을 통해 낮에는 농사를 돕고 밤에는 농어민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문맹 퇴치에 기여했다. 배움과 봉사를 결합한 이러한 활동은 초창기 RCY 정신의 기틀이 됐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호주·캐나다 청소년들이 보내온 ‘우정의 선물상자(각종 학용품 등)’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 큰 위로가 됐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제공하는 나라로 성장했다. 현재 RCY 단원들은 우정의 선물상자를 제작해 우크라이나 등 세계 각지의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전달하고 있으며, 해외 봉사활동을 통해 국제적 인도주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부산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도시로, 시민들은 자긍심을 가질 만하다. 적십자 인도주의 활동의 흔적인 태종대 ‘유엔 의료 지원단 참전 기념비’, 서면 일대 ‘스웨덴 적십자병원 터’, 대신동 ‘독일 적십자병원 터’ 등은 전쟁 속에서도 생명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국제사회의 발자취를 보여준다. 이는 부산이 단지 피란의 도시가 아니라 인도주의의 현장이었음을 상징한다.
160여 년 전 전쟁터에서 부상자를 차별 없이 돕고자 한 열망에서 출발한 국제적십자운동은 현재 192개국이 참여하는 범세계적 인도주의 운동으로 성장했다. RCY는 그 정신을 이어갈 미래 세대의 주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는 배움의 과정에서 학생들은 배려와 봉사, 사랑의 가치를 체득하며 공동체 구성원으로 성장하고 있다.
RCY 1953년 전쟁 이후 새로운 희망을 심는 마음으로 시작됐다. 나무를 심으며 출발한 그 정신은 세대를 거쳐 이어지고 있다. 4월 5일 창립의 의미를 되새기며, 부산에서 시작된 청소년적십자 운동이 앞으로도 인도주의의 미래를 이끌어갈 것으로 기대된다.
2026-04-01 [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