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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산항의 국가적 평가와 글로벌 리더십 정립 시급하다
부산항 150년 역사는 언제나 국가 경제의 전환점과 함께 움직였다. 개항은 근대 경제의 시작이었고, 전쟁은 생존의 통로였으며, 산업화는 국가성장의 엔진이었고, 세계 시장 진출의 발판이 됐다.
이제 부산항은 또 다른 질문 앞에 서 있다. 앞으로 50년 동안 단순한 물류 거점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해운·물류·금융·기술·비즈니스가 결합된 세계적 종합 해양산업 플랫폼으로 진화할 것인가. 150년 전 열린 바다의 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그리고 그 문이 향할 다음 방향은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부산 해양 이니셔티브의 변곡점인 부산항 개항 150주년은 단순한 기념의 시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다음 100년을 설계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세계 해운 환경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친환경 연료와 디지털 항만, 새로운 항로까지 변화의 속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부산항 역시 그 변화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아야 한다.
세계 해양항만질서 재편의 시대, 새로운 실천 방안 제시가 시급하다. 북극항로와의 연계, 수출입 물류기지와 글로벌 해양수산허브를 지향하는 부산항만의 체질 개선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지금까지 부산은 역사적으로 흐름을 통과시킨 도시였다. 이제는 그 흐름을 축적하고 활용하는 도시로 전환해야 한다. 부산항이 대한민국 남단에 있는 하나의 항만이 아닌 전 세계의 공급망과 세계 해양산업을 이끌 수 있는 중심 역할을 하는 항만, 국가 항만을 넘어 세계 해상공급망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 기능해야 한다.
동북아 물류의 교차점에 있는 지리적 이점과 축적된 항만 운영 경험은 부산항의 중요한 국제경쟁력이다. 부산항은 단순한 물류항이 아니라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 고도성장을 견인한 역사적 항만이다. 흔히 ‘한강의 기적’을 말하지만 그 뒤엔 ‘부산항의 기적’이 있었다. 1960~1980년대 한국 수출 대부분이 부산항을 통해 이뤄졌고 한때 전체 수출의 약 80%가 이곳에서 처리됐다.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부산항이 사실상 엔진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국가적 평가와 정책적 위상은 충분히 정립되지 못했다.
근대의 문턱에서 실패한 국가로 전락했던 조선이 세계 10대 교역국인 대한민국으로 변신한 것은 기적이다. 근대화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조선에서 출발해 근대 국가의 총아인 대한민국으로 변신하는 과정, 그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이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일군 기적이다. 치열했고 드라마틱했던 그 역사를 탐구하면서 이 기적을 이어나갈 지혜를 모색하는 것이 개항 150주년을 맞는 우리의 도리이자 역사적 사명이다.
싱가포르항이 지리적 이점만으로 지금의 경쟁력을 갖춘 것은 아니다. 이를 전략적으로 어떻게 활용했는지에 더 주목해야 한다. 싱가포르항은 단순한 물류 시설이 아니라 해양산업의 중심 플랫폼으로 발전해 왔다. 항만 주변에는 금융선박관리 해사법률 해양보험 등 다양한 해양서비스산업이 집적하고, 글로벌 선사와 해양 관련 기업들이 한곳에 모여 항만을 중심으로 한 산업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부산항도 싱가포르 같이 항만·산업·금융정책을 통합적으로 설계하고, 일관되게 실행하며, 항만 개발과 산업 육성, 인재 양성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장기 전략이 안정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특히 산업 생태계와의 정책통합성이 중요하다.
부산항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하는지, 싱가포르항의 사례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글로벌 항만 경쟁은 더 이상 단순한 물류 경쟁에 머물지 않는다. 부산항의 글로벌 리더십 정립이 시급하다. 부산항의 지난 150년이 대한민국 근대화, 산업화, 고도성장 견인의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부산항은 신해양질서를 선도하는 세계전략항만으로 발전해야 한다.
2026-07-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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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피지컬 인터넷 시대, 부산 해양물류의 대전환 전략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이 산업 전반을 재편하면서 물류의 패러다임 또한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과거 물류가 단순히 화물을 운송하고 보관하는 ‘지원 산업’에 머물렀다면, 오늘날 물류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 사물인터넷(IoT)이 결합된 ‘고부가가치 플랫폼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글로벌 물류계를 이끄는 핵심 개념이 바로 피지컬 인터넷(Physical Internet)이다.
피지컬 인터넷은 디지털 인터넷의 작동 원리를 현실 물류 체계에 적용한 혁신 모델이다. 인터넷이 데이터를 패킷 단위로 표준화해 최적의 경로로 전송하듯, 화물 또한 표준 모듈 단위로 분해·공유·재조합해 전 세계 운송망을 가장 효율적인 경로로 이동시키는 방식이다. 기업이나 운송수단이 각각 따로 운영되던 기존 ‘폐쇄형 물류’에서 벗어나, 창고·트럭·철도·선박·항공 등 모든 물류 자원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해 공동 활용하는 ‘개방형 공유 물류’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이 구현되면 공차 운행과 중복 투자, 불필요한 대기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물류비 절감은 물론, 배송 시간 단축과 탄소 배출 감소까지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단순한 효율 개선을 넘어 경제성과 친환경성,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해결하는 차세대 물류 해법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유럽연합(EU)은 ‘PI 프로젝트’를 통해 공동 물류 네트워크 실증사업을 추진 중이며, 미국은 스마트 풀필먼트센터와 자율주행 트럭을 연계한 통합 물류 플랫폼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 또한 자동화 항만과 무인 물류단지를 기반으로 초대형 디지털 공급망을 구축하며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물류 경쟁력은 더 이상 항만 규모나 물동량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얼마나 연결되어 있고, 얼마나 스마트하게 운영되는가가 국가와 도시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부산이 갖는 전략적 의미는 매우 크다. 부산항은 대한민국 수출입 물동량의 대부분을 처리하는 국가 핵심 인프라이자, 동북아 환적 중심항만이다. 지리적 조건과 항만 인프라 측면에서는 이미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경쟁은 ‘하드웨어 확장’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혁신’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부산이 글로벌 해양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피지컬 인터넷 기반의 스마트 물류 생태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항만 자동화 터미널 확대, AI 기반 선석 배정 시스템, 무인 야드트랙터, 로봇 피킹 스마트창고, 디지털 트윈 항만 운영, 실시간 통합 관제 플랫폼 등 전 과정의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항만·철도·공항·도심 물류센터가 하나의 데이터 네트워크로 연결될 때 비로소 ‘끊김 없는 물류’가 실현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운영할 전문 인력 양성이다. 앞으로 물류 현장은 단순 작업 인력이 아닌 기술 융합형 인재를 요구한다. 물류 자동화 엔지니어, 로봇 운영 매니저, 스마트창고 관리자, AI 물류 데이터 분석가 등 이른바 ‘피지컬 AI 인력’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게 된다. 지역 대학과 직업교육기관이 산업 수요에 맞춘 실습 중심 교육과 자격 체계를 구축하고, 기업과 연계한 현장형 인턴십과 산학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특히 해양수산부 부산 시대 부산은 해양수도권 조성과 북극항로 개척 본격화, 항만과 대학·연구기관·기업이 밀집한 도시라는 강점을 갖고 있다. 이를 활용해 ‘스마트 해양물류 인재 특화 도시’ ‘글로벌 물류 테스트베드 도시’로 발전시킨다면, 단순한 항만 도시를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물류 혁신 모델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는 지역 청년 일자리 창출과 신산업 육성, 도시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이제 물류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후방 산업이 아니다. 도시 미래를 결정하는 핵심 성장 동력이다. 피지컬 인터넷은 부산이 물동량 경쟁을 넘어 기술 경쟁, 시스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적 해답이다.
항만을 더 많이 짓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더 똑똑하게 연결하는 도시가 살아남는다. 데이터처럼 흐르는 물류, 그 중심에 부산이 설 때 대한민국 해양산업의 새로운 100년이 시작될 것이다.
2026-07-0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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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제3 금융중심지 추진, '선택과 집중'의 원칙으로
정부는 최근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와 금융시장 선진화를 통한 국민경제 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전주를 제3 금융중심지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책이 과연 ‘금융중심지의 조성과 발전에 관한 법률’(이하 금융중심지법)의 본래 취지인 국제금융 기능 강화와 글로벌 금융허브 육성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금융중심지법에 따라 서울과 부산이 각각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지 이미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우리는 여전히 선진 금융중심지와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양·파생금융 특화라는 방향을 설정한 부산의 경우, 세계적 수준의 금융 클러스터로 성장했다고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글로벌 금융기관의 집적이나 자본시장 경쟁력 등 주요 지표에서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에서 또 하나의 금융중심지를 추가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선택인지 고찰해야 한다.
금융산업의 본질은 정보와 인재, 자본이 집중될수록 효율성이 강화되는 ‘집적’에 있으며, 뉴욕이나 싱가포르 등 세계 주요 금융도시들은 모두 강력한 집적 효과를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반면 우리나라의 정책은 집적보다는 분산의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미 서울과 부산으로 나뉘어진 구조 속에서도 충분한 시너지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는데, 여기에 전주까지 추가하는 것은 자원의 분산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금융기관과 전문인력, 정책적 지원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질 때 어느 한 곳도 경쟁력 있는 금융허브로 성장하기 어려워지며, 이는 결국 ‘모두가 약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현재 추진되는 전주의 제3 금융중심지 논의는 금융산업 발전 논리보다는 사실상 지역균형발전 논리가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금융공기업 이전과 공공기관 재배치를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구상은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의 취지에 가깝다. 즉, 명칭은 금융중심지이지만 실제 성격은 ‘지역개발 정책’인 셈이다.
금융중심지법은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함이고, 균형발전 특별법은 지역 간 격차 해소를 위함이기에 목적이 다른 두 정책을 혼용하면 설계의 기준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금융 발전을 목표로 한다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도시를 집중 육성해야 하고, 균형발전이 목표라면 산업 분산을 통해 지원하는 것이 맞다. 두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려 할 때 정책은 애매해지고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된다. 다소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지금의 논의는 목적과 수단이 뒤섞여 있어 정책 자체의 정당성과 실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부산은 금융중심지 지정 이후 10년이 넘도록 글로벌 금융기관 유치와 생태계 구축이라는 거의 불가능한 난제 앞에서 무기력했고, 정책적 일관성과 집중성이 부족해 관심이 분산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금융중심지를 만드는 것은 부산이 제대로 성장하기도 전에 경쟁력을 약화하는 정책적 자기부정과 다름없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정이 아니라 정책 목표의 명확한 재정립이다.
정부는 대한민국 금융정책의 최우선 목표가 국제금융 경쟁력 강화인지, 아니면 지역균형발전인지를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 전자라면 서울과 부산에 대한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며, 후자라면 금융중심지법이 아닌 균형발전 정책의 틀 안에서 접근해야 개념적 혼선을 막을 수 있다. 명확한 기준 없는 추진은 불필요한 지역 갈등을 유발하고 국가 전체의 효율성을 저하한다. 정부는 더 이상 두 목표를 혼합한 모호한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되며, 법의 목적에 충실할 것인지 방향을 전환할 것인지 결단해야 한다. 그 명확한 선택 위에서 법과 제도를 정교하게 설계할 때 비로소 지역 갈등을 최소화하고 실질적인 국민경제 발전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2026-06-2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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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베트남 '슈퍼시티'의 경고… 부울경 통합, 지체 안 돼
최근 필자는 2025년 한 해 동안 베트남 북부 하노이와 남부 호찌민 등 주요 경제권을 일곱 차례 방문했다. 비즈니스 현장과 NGO 활동, 그리고 KCS 포럼 콘퍼런스를 통해 마주한 베트남의 기세는 단순한 발전을 넘어 ‘국가적 구조 개편’에 가까웠다. 대한민국이 1%대 저성장의 늪에서 신음할 때, 베트남은 전년도 8% 성장에 이어 올해 두 자릿수(10%) 성장이라는 경이로운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다.
그 폭발적 에너지의 근원은 무엇인가. 현장에서 만난 정부 고위 관료와 기업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비결은 바로 ‘행정구역 대통합’이라는 결단이었다. 베트남은 2025년 기존 63개 성·시를 34개로 과감히 통폐합했다. 특히 경제 수도 호찌민과 인접 산업 거점인 빈즈엉성, 물류 허브인 바리아붕따우시를 하나로 묶어 구축한 ‘남부 슈퍼시티’는 우리에게 준엄한 경고를 던진다.
우리가 추진하는 부산·울산·경남(부울경) 행정 통합은 베트남의 이 모델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금융·서비스의 중심 부산, 세계적 제조 역량의 경남, 산업의 심장 울산의 결합은 호찌민권이 통합 시너지를 내는 방식과 판박이다. 과거 베트남 역시 성(省) 간 행정 장벽으로 인한 물류 지체와 중복 투자가 고질적 문제였다. 하지만 통합 이후 칸막이가 사라진 자리에 효율성과 속도가 들어찼다. 우리가 행정 경계에 막혀 예산을 낭비하고 금쪽같은 기회를 놓치는 사이, 베트남은 거대 광역 경제권을 앞세워 글로벌 자본을 무섭게 빨아들이고 있다.
부울경 통합은 단순히 영남권만의 생존 전략이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의 고질병인 수도권 일극 체제를 타파하고 국토 균형 발전을 이룰 실천적 해법이다. 부울경 통합의 필요성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첫째, 수도권 과밀화 해소의 유일한 대안이다. 서울에 필적하는 제2의 경제권이 남부에 형성된다면, 비정상적인 집값 폭등과 출퇴근 지옥에 시달리는 수도권의 과밀 압력은 자연스럽게 분산될 것이다.
둘째, 국가적 재앙인 저출산 문제의 돌파구다. 좁은 수도권에서 극한의 생존 경쟁에 내몰린 청년들에게 부울경 메가시티는 새로운 ‘성장의 사다리’이자 기회의 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부울경만의 지리적 특성을 살린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 구축이 시급하다. 언제까지 대기업 유치에만 목을 멜 것인가. 부산을 ‘홍가포르(홍콩+싱가포르)’를 능가하는 글로벌 허브로 만들겠다는 약속이 나온 지 오래다. 부산으로 이전한 해양수산부를 동남권 발전의 중추로 적극 활용하여, 수도권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해양·물류·금융 융합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베트남은 우리를 벤치마킹하던 나라”라는 안일한 인식은 이제 버려야 한다. 평균 연령 32세의 젊은 1억 인구가 행정 구조까지 날렵하게 개편하며 우리를 추월하고 있다. 멈춰버린 대한민국 경제 엔진을 다시 돌리기 위해서는 부울경 시·도민은 물론 정치권의 대결단이 절실하다.
베트남이 증명했듯, 행정의 벽을 허물어야 자원이 집중되고 시너지가 폭발한다. 성장의 사다리를 다시 세울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부울경 통합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한 숙명적 과제다.
2026-06-2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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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설렘과 긴장 사이, 부산을 찾는 외국인 환자들
부산의 푸른 바다는 많은 이들에게 설렘을 안겨준다. 그러나 치료를 위해 부산을 찾은 외국인 환자들에게 이 도시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기대와 긴장이 공존하는 낯선 공간이다. 병원의 긴 복도를 걸으며 마주하는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환경, 진료를 마친 뒤 병원 밖으로 나섰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망설이게 되는 순간들은 이방인으로서의 현실을 더욱 실감하게 만든다.
현장에서 만난 외국인 환자들은 부산의 의료 수준과 의료진의 전문성에 대해 높은 만족과 신뢰를 표현한다. 실제로 부산은 첨단 의료기술과 우수한 의료 인프라를 바탕으로 글로벌 의료관광 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환자들은 서울과 수도권에 비해 언어 지원이나 정보 접근성 측면에서 여전히 어려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치료 그 자체의 만족도와는 별개로, 치료 이후의 체류와 일상에 대한 지원은 여전히 보완이 필요한 영역으로 남아 있다.
‘치료’를 넘어 ‘머무름’이 즐거운 도시로 의료관광의 진정한 완성은 병원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환자가 도시에서 보내는 시간, 즉 ‘머무름’의 경험 속에서 비로소 의료관광의 가치는 완성된다. 부산에 체류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지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커지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환자와 가족이 이 도시에서 느끼는 심리적 안정과 편안함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병원과 관광지를 연결하는 수준을 넘어선 접근이 필요하다.
환자와 가족이 언어에 대한 부담 없이 식당을 이용하고, 해변을 산책하며, 도시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환경이 마련되어야 한다. 전문 의료통역사의 세심한 안내와 신뢰할 수 있는 다국어 정보 제공, 그리고 외국인 환자의 동선을 고려한 통합적인 지원 체계는 의료서비스의 연장선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소다.
부산이 이러한 기반을 갖추게 된다면, 이 도시는 단순히 치료를 받기 위해 방문하는 목적지를 넘어, 몸과 마음이 함께 회복되는 ‘체류형 의료관광 도시’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어느 한 의료기관이나 지자체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의료관광은 의료서비스를 넘어 관광, 교통, 통역, 숙박 등 다양한 분야가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복합적인 산업이기 때문이다. 민간과 공공이 긴밀히 협력하고, 현장의 경험과 정책적 지원이 조화를 이루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실질적인 협력 구조다. 외국인 환자를 직접 응대하는 의료진과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통역사 등 실무자들이 중심이 된 협의체를 통해 작은 불편함과 개선 과제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해결해 나가는 ‘살아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이러한 현장 중심의 협력은 형식적인 제도를 넘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또한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해 노력하는 의료기관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과 격려 역시 중요하다. 안정적인 통역 인력 지원, 행정 절차의 간소화, 그리고 국제 환자 진료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대한 정책적 뒷받침이 이루어진다면, 의료기관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글로벌 환자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부산 의료관광 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부산이라는 커다란 병동, 그리고 치유와 머무름의 공간 의료관광의 본질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쌓는 일이다. 언어의 장벽을 낮추고, 환자의 동선을 세심하게 배려하며, 낯선 도시에서의 시간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노력은 단순한 서비스를 넘어 신뢰를 형성하는 과정이 된다. 이러한 정성이 쌓일 때, 부산은 치료를 위해 찾는 도시를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의료관광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의료 현장의 최전선에서는 외국인 환자들을 맞이하는 수많은 실무자들의 헌신이 이어지고 있다. 그들의 노력과 지역사회의 관심이 함께 모일 때, 부산은 환자들에게 단순히 치료를 받은 도시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따뜻한 보살핌으로 머무는 ‘치유의 도시’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2026-06-2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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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언제부터 유아교사는 ‘보고하는 사람’이 되었나
“아침 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한때 아이들은 이 노래를 부르며 유치원에 갔다. 아침밥을 먹고, 이를 닦고, 작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는 아이의 하루는 단순한 등원이 아니라 세상으로 향하는 첫걸음이었다. 유치원은 친구를 만나고, 함께 웃고, 기다리고, 다투고, 화해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었다. 부모의 품을 잠시 떠난 아이가 처음으로 또 다른 사회를 경험하는 공간, 그곳에는 늘 아이들을 기다리는 교사가 있었다.
교사는 아이가 울면 등을 토닥여 주고, 혼자 남은 아이의 손을 먼저 잡아 주며, 서툰 말 한마디에도 귀 기울이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은 교사를 통해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웠고, 교사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함께 웃고 놀며 하루를 보냈다. 적어도 우리의 기억 속 유치원은 그런 공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묻게 된다. 언제부터 유아교사는 아이를 기다리는 사람보다, 학부모에게 끊임없이 설명하고 보고하는 사람이 되었는가.
얼마 전 희극배우 이수지의 유튜브 영상이 큰 화제를 모았다. 영상 속 ‘이민지 선생님’은 아이의 식사량과 낮잠 시간, 친구와의 다툼, 작은 얼룩 하나까지 세심하게 설명하며 연신 “죄송합니다”, “확인해 보겠습니다”를 반복한다. 과장된 코미디였지만 많은 유아교사들은 “웃다가 울었다”, “현실이라 더 불편했다”고 말했다.
특히 영상 속 교사는 아이보다 보호자의 감정을 먼저 살핀다. 교육보다 민원에 긴장하고, 하루 종일 휴대전화 알림과 부모의 요구에 반응한다. 웃음을 위한 풍자였지만 많은 교사들은 그 안에서 자신의 현실을 보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그 영상에 웃으면서도 씁쓸함을 느낀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몇몇 예민한 학부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느 순간부터 유치원을 교육의 공간보다 ‘실시간 돌봄 서비스’처럼 바라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실제 기사와 댓글에는 “트라우마처럼 심장이 뛴다”, “교사도 보호받고 싶다”는 현직·전직 교사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현장에서 예비유아교사를 길러내는 교수로서, 나는 그 반응들을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학생들에게 아이의 발달을 이해하고, 놀이를 통해 관계를 만들어가며, 아이의 마음을 기다려주는 교사의 역할을 가르쳐 왔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현장은 교사에게 또 다른 능력을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 교육적 전문성보다 설명과 기록, 민원 대응과 감정 관리 능력이 더 중요한 역량처럼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의 불안에도 이유는 있다. 맞벌이와 돌봄 공백 속에서 부모는 아이의 하루를 더 세밀하게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과정에서 유치원이 아이의 성장을 함께 만들어가는 교육 공간이 아니라, 부모 만족을 실시간으로 관리해야 하는 서비스 공간처럼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 변화 속에서 가장 조용히 무너지는 것은 유아교사의 전문성이다. 교사는 아이를 관찰하고 기다리는 사람이어야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학부모의 불안을 먼저 관리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교육은 관계의 과정이어야 하는데, 점점 설명과 증명의 노동으로 바뀌고 있다.
교권의 흔들림은 더 이상 일부 학교의 문제가 아니다. 유아교사에서 초중등 교사에 이르기까지 많은 교사들이 교육보다 설명과 방어에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현장에서는 이런 자조 섞인 말도 나온다.
“선생은 많은데 스승은 없고, 학생은 많은데 제자는 없다.”
웃으며 하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피로와 자괴감이 스며 있다. 교권의 추락은 단지 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자체의 흔들림이다. 교권은 권위가 아니다. 아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도록 교사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사회의 최소한의 약속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촘촘한 확인 시스템이 아니다. 교사를 끊임없이 증명하게 만드는 문화가 아니라, 교육의 전문성을 신뢰하려는 사회적 회복이다. 유아교사를 ‘부모 만족 서비스 제공자’로 바라보는 순간, 교육은 돌봄의 이름을 한 감정노동으로 변질된다.
아이는 교사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교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국 아이들에게도 신뢰를 가르칠 수 없다.
2026-06-1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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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해양수도 부산, '노인과 바다'를 넘어
올해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왔다. 많은 이들이 이를 두고 “이제 부산이 진짜 해양수도가 되는 것”처럼 말한다. 항만 물동량은 세계 상위권이고, 조선과 수산 산업은 여전히 경쟁력이 있다. 숫자로만 보면 부산은 이미 해양 강국의 전초기지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런 말도 들린다. “부산은 노인만 남고, 젊은 층은 떠나고, 바다만 있는 도시 아니냐.” 누군가는 이를 빗대어 ‘노인과 바다’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조 섞인 농담이지만, 그 안에는 씁쓸한 현실 인식이 담겨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우리는 과연 바다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부산 사람들은 바다를 매일 본다. 광안대교를 건너고, 영도를 지나고, 북항의 불빛을 바라본다. 그러나 그 바다가 우리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해 보라 하면 쉽게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 “배가 많이 다닌다”, “수출입이 활발하다”는 정도의 상식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바다는 자원이고, 관할권이며, 안보이고, 생존의 통로다. 동해와 남해의 질서가 흔들리면 물류가 흔들리고, 물류가 흔들리면 일자리가 흔들린다. 우리가 먹는 수산물,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 우리가 일하는 산업의 상당 부분이 바다와 직결되어 있다. 부산이 동북아 관문의 위치에 있다는 사실은 누가 바꿀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일본과의 해상 경계, 북항을 통과하는 국제 항로, 대륙과 해양을 잇는 지정학적 조건은 부산이 떠나지 않는 한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해양 전략을 논하는 목소리는 종종 수도권에서 먼저 나온다. 서울의 전문가가 해운대 바닷가에 발을 한 번 담그면 해양법 전문가가 되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부산은 현장이면서도 주변부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그러나 바다는 책상 위 지도로만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항로의 흐름, 파도의 방향, 물류의 시간표는 현장의 감각과 결합될 때 비로소 전략이 된다.
“그건 정부가 알아서 할 문제 아닌가요?”, “우리는 먹고 살기도 바쁜데요”. 이 말은 틀리지 않다. 당장의 삶이 급한 시민에게 해양 관할권은 멀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거리감이 도시의 약점이 된다. 바다를 산업의 통계로만 이해하면, 시민의 미래와 연결되지 못한다.
해양수도는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바다를 자신의 삶의 언어로 이해할 때 비로소 힘을 가진다. 부산이 ‘노인과 바다’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미래와 바다’로 나아갈 것인지는 시민의 인식에 달려 있다. 젊은 세대가 떠나는 이유가 단지 일자리 부족만은 아니다. 도시가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그 안에서 자신의 미래가 보이는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바다를 전략과 산업의 문제로만 둘 것이 아니라, 청년의 기회와 연결된 공간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거창한 정책보다 작은 질문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다. “왜 부산은 바다와 함께 살아야 할까?”, “동북아 항로의 중심이라는 말이 우리 삶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설명하려는 순간, 우리는 다시 공부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바다는 추상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정책은 선거에 따라 바뀔 수 있다. 조직도 바뀌고, 구호도 바뀐다. 그러나 시민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 번 이해하면 오래 남는다. 부산이 가진 지정학적 조건은 변하지 않는다. 바다는 떠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바다를 남의 전략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로 만드는 일이다.
해양수도 부산은 행정적 지위가 아니라 생활의 감각에서 시작된다. 광안의 저녁 바람 속에서, 북항의 컨테이너 불빛 속에서, 우리는 이미 바다 한가운데 서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질문은 하나다. “이 바다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려는 시민이 늘어날 때, 부산은 더 이상 ‘노인과 바다’가 아니라 미래와 함께 서 있는 도시가 될 것이다.
2026-06-1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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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세계 흐름 위에 선 동남권
지난 3월 경남 김해시 구산동 고인돌 유적지를 특별 허가를 받아 답사할 기회가 있었다. HiBA(Hidden Busan Adventures) 회원 34명이 함께 현장을 찾았다. 당시 유적은 일반 공개를 앞두고 정비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걸 어떻게 옮겼죠?” “이 시대에 이런 사회가 있었나요?” 외국인 참가자들은 3000년 전 거대한 상석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들은 단순히 유적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부강하고 조직된 고대 사회를 상상하고 있었다.
그 순간 중요한 질문이 떠올랐다. 이 유산을 부산과 동남권은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세계에 보여줄 것인가. 350t에 달하는 상석은 청동기 시대 높은 수준의 조직력과 권력을 보여주는 증거다. 특정 지역을 넘어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유산이기도 하다. 김해는 가야 건국 이후 약 500년 동안 동아시아 해양교류의 중심지였다.
여기에 또 하나의 축이 있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약 7000년 전 선사인들의 삶과 바다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암각화를 넘어 해양 문명의 기록으로 읽힌다. 김해의 고인돌이 조직과 권력을 보여준다면, 반구대 암각화는 삶과 교류, 그리고 확장을 보여준다.
부산은 지금도 바다를 통해 세계와 연결되는 도시다. 고인돌의 선사 문명, 반구대 암각화의 해양 문명, 가야의 국제성과 해양 교류, 그리고 오늘 부산이 가진 글로벌 도시의 위상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부산·울산·경남은 선사 문명에서 글로벌 도시로 이어지는 독특한 서사를 갖춘 셈이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포함한 ‘반구천의 암각화’는 2025년 7월 12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최종 등재되었다. 이는 동남권의 선사·해양 문명 자산이 세계적 보편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오는 7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동남권의 역사·문화 자산을 세계와 연결할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개별 유산보다 이를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하는 힘이다. 김해는 출발점이고, 울산은 확장의 증거이며, 부산은 현재의 플랫폼이다. 이 세 축이 연결될 때 동남권은 단순한 지역을 넘어 세계와 연결되는 역사·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제 부산은 단순히 국제회의를 개최하는 도시를 넘어, 세계유산과 문명 서사를 연결해 설명할 수 있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같은 질문을 던지는 순간, 관광은 단순한 관람이 아니라 함께 이해하고 상상하는 경험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부산과 동남권은 세계의 변방이 아니라, 이미 세계의 흐름 위에 서 있는 공간이다. 김해의 돌과 울산의 바위는 수천 년 전부터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제 그 의미를 읽고, 연결하고, 확장하는 일만 남았다.
2026-06-1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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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국제 유가 상승, 대중교통 출퇴근으로 극복해야
최근 국제 유가가 다시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동지역 군사적 긴장, 산유국 감산 정책 등이 겹치면서 국제 에너지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국제 유가 상승은 단순한 기름값 인상을 넘어 물가 상승, 물류비 증가, 기업 부담 확대, 서민경제 악화로 이어지는 심각한 문제다.
우리나라는 원유와 천연가스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는 에너지 수입국이다. 국제 유가 상승은 국가 경제 전체의 부담으로 직결된다. 부산 역시 예외가 아니다. 출퇴근 시간 반복되는 교통 정체는 연료비 증가뿐 아니라 시간 손실과 환경오염까지 초래하고 있다. 이제는 국제 유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생활문화와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그 핵심은 출퇴근 대중교통 이용 확대다.
대중교통은 승용차보다 훨씬 에너지 효율이 높다. 승용차 한 대가 한 사람을 태우고 이동하는 것보다 도시철도 한 편성이 수백 명을 동시에 수송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이다. 특히 부산 도시철도는 하루 평균 약 89만 명이 이용하는 부산시민의 핵심 교통수단이다. 출퇴근 시간만이라도 승용차 대신 도시철도와 버스를 이용한다면 교통 혼잡 완화는 물론 연료 소비 절감과 탄소배출 감소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교통정책이 아니다. 국가 에너지 위기 대응 전략이자 ESG 실천이다. 출퇴근 대중교통 이용은 시민 누구나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탄소중립 실천 방법이다. 필자 역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도시철도와 버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주유해도 생활에 큰 불편이 없다. 작은 생활습관의 변화가 에너지 절약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정부의 K-패스와 부산시 동백패스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은 교통비 부담을 줄일 수 있고, 도시는 승용차 이용 감소와 탄소배출 저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국제 유가 상승으로 서민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매우 실효성 높은 정책이다.
부산은 전국 최초로 ESG시민운동 조례를 제정한 도시다. 가까운 거리 걷기, 텀블러 사용하기, 대중교통 이용하기와 같은 생활 속 실천이 ESG시민운동의 출발점이다. 출퇴근 시간 승용차 한 대를 줄이는 일은 국가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실천이자 탄소중립을 앞당기는 행동이다.
다만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도시철도 무임수송 손실 문제다. 노인 무임승차 제도는 이동권 보장과 복지 향상을 위한 국가 정책이다. 그럼에도 비용 부담은 지방 도시철도 운영기관이 떠안고 있다.
부산교통공사는 매년 막대한 무임수송 손실을 부담하고 있으며, 고령화가 심화될수록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국가가 결정한 복지정책의 비용을 지방 공기업에만 부담시키는 현재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제 정부가 결단해야 한다. 도시철도 무임수송 손실에 대한 국비 지원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재정 지원이 아니라 시민 이동권 보장, 도시철도 지속 가능성 확보,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필수 정책이다.
국제 유가 상승 시대에는 에너지 절약형 교통체계 구축이 곧 국가 경쟁력이다. 시민은 대중교통 이용 확대를 통해 에너지 절약과 탄소중립에 동참하고, 정부는 무임수송 국비 지원을 통해 도시철도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 국제 유가 상승 위기를 생활 속 대중교통 이용 확대를 통해 극복해 나갈 때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의 미래도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2026-06-1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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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절반의 시간, 함께 뛰는 이유
오는 11일부터 다음 달 19일까지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이 열린다. 월드컵은 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마지막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명승부는 경기 막판에 만들어졌다. 전반전을 끌려가던 팀이 후반전에 흐름을 바꾸며 역전하기도 하고, 종료 직전 터진 한 골이 한 나라의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기억도 여전히 선명할 것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힘겨운 시간을 지나던 시절, 거리마다 붉은 물결이 이어졌고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이들과도 함께 응원하며 하나가 됐다. 함께 뛰고 함께 응원할 때 우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인했다.
축구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후반전 45분이 진짜 축구다.” 체력이 떨어지고 변수가 많아지는 후반전에 결국 팀의 조직력과 방향, 서로에 대한 신뢰가 승부를 결정한다는 의미다.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서로 연결되고 같은 방향으로 움직일 때 비로소 변화와 성장도 가능해진다.
다음 달이면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장으로 취임한 지도 어느덧 1년 6개월, 임기의 절반을 지나게 된다. 최근 들어 유난히 ‘후반전’이라는 말을 자주 떠올리게 된다. 지나온 시간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워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 역시 임기 반환점을 맞아 조직 체계를 다시 정비했다. 이달부터 시행된 이번 조직 개편을 통해 기존 2본부 4부 12과 체제를 2본부 1실 4부 14과 체제로 확대하고, 정원도 102명에서 110명으로 늘렸다. 특히 ‘혁신성장부’ 신설과 기업지원 체계 개편을 통해 기업의 투자 결정부터 성장, 후속 투자까지 보다 유기적으로 지원하는 현장 중심 행정을 강화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업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변화와 실행력을 만드는 일이다.
지난 시간은 현장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기업들의 이야기를 듣고 산업 현장의 변화를 살펴보면서 지금 지역에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현장에서 만나는 기업인들은 한결같이 ‘불확실성’을 이야기한다. 글로벌 공급망은 빠르게 재편되고 있고 산업 환경 역시 이전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이제 기업들은 단순히 공장 부지만 보고 투자하지 않는다. 물류와 인재, 정주환경, 행정 대응 속도까지 도시 전체의 경쟁력을 함께 본다.
세계는 이미 새로운 경쟁에 들어섰다. 미국과 유럽, 중국과 일본 모두 첨단산업과 공급망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산업 경쟁은 더 이상 기업만의 경쟁이 아니다. 물류와 기술, 인재, 행정이 함께 움직이는 종합 경쟁의 시대다.
지금 동남권 역시 중요한 전환점 위에 서 있다. 가덕신공항 건설과 진해신항 조성, 북극항로 가능성까지 거론되며 동북아 물류 환경 자체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흐름을 얼마나 먼저 읽고 준비하느냐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의 개발률은 이미 98%를 넘어섰다. 이제는 얼마나 넓게 개발하느냐보다 어떤 산업을 유치하고 어떤 기업과 함께 성장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 시점이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역시 단순한 산업단지를 넘어 산업과 물류, 기술과 사람이 연결되는 플랫폼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 자체보다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환경과 실행력을 만드는 일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수도권 집중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살아왔다. 많은 청년들이 기회를 찾아 지역을 떠났고, 지역은 인구 감소와 산업 침체라는 이중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지역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개발 논리가 아니라 산업과 일자리, 사람과 도시가 함께 연결되는 새로운 성장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축구가 전반전 점수만으로 끝나지 않듯 행정 역시 지금까지의 성과보다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느냐가 더 중요하다. 남은 시간 동안 기업과 산업, 청년과 지역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위해 다시 현장으로 뛰고자 한다.
2026-06-0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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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자지구, 인류의 양심이 시험받는 곳
지난달 22일 새벽 6시 24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에 한 여성이 나타났다. 활동명 ‘해초’, 김아현 씨였다. 그의 얼굴에는 그동안의 억류 흔적이 역력했지만, 눈빛은 꺼지지 않았다. “구타를 당해 한 쪽 귀가 잘 안 들립니다.” 그 말 한마디가 지금 가자지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온몸으로 증언하고 있었다.
가자지구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참혹한 인도주의 위기의 현장이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의 전면 군사 작전이 시작된 이후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4만 6000 명을 넘어섰고, 부상자는 10만 명을 훌쩍 넘었다. 인구 230만 명 가운데 대부분이 삶의 터전을 잃고 피난길에 올랐다. 병원과 학교, 주거지는 폭격 속에 무너졌고, 전력과 수도, 의약품 공급은 오랫동안 끊긴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가자지구 북부에서 실제 기근이 발생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어린아이들은 영양실조로 쓰러지고, 환자들은 마취제조차 부족한 수술대 위에 눕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한 전쟁의 부수 피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로 향하는 구호물자 트럭을 조직적으로 차단해 왔고, 공해상에서 구호 선박을 나포하며 인도주의 지원 자체를 봉쇄의 수단으로 삼아 왔다. 굶주림마저 전쟁의 무기로 사용되는 현실 앞에서 국제사회의 언어는 너무 느렸고, 너무 무력했다.
그 봉쇄의 벽 앞에서 세계 곳곳의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나섰다. 약 40개국 430여 명의 민간 구호 활동가들이 선박 50여 척에 나눠 타고 가자지구를 향했다. 직업도, 국적도, 언어도 달랐지만, 이들이 배를 탄 이유는 하나였다. 죽어가는 사람들 곁에 있겠다는 것, 그리고 국제사회가 외면하는 자리를 자신의 몸으로 채우겠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국가의 지원도, 조직의 보호도 없이 오직 인류애 하나로 망망대해에 몸을 실었다. 그 용기와 헌신은 아무리 치하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아현 씨는 그중에서도 남다른 사람이다. 그녀는 이미 지난해 10월에도 같은 길을 나섰다가 이스라엘군에 체포된 뒤 석방됐다. 외교부는 그 일을 계기로 그녀의 여권을 무효화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다시 배를 탔다. 막혀도, 잡혀도, 구타를 당해 귀가 들리지 않아도 그녀는 “가자가 해방될 때까지 언제나 다시 갈 계획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민간 구호 활동의 진정한 의미다. 국가가 외면할 때, 외교가 침묵할 때, 한 사람의 양심이 그 자리를 채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선의조차 짓밟았다. 지난달 19일, 키프로스 인근 공해상에서 이스라엘군은 함대를 강제 나포했다. 유엔해양법협약이 명백히 금지하는 행위였다. 이스라엘 국가안보 장관 ‘이타마르 벤그비르’는 수감 시설을 직접 찾아가 손이 묶인 채 무릎을 꿇은 활동가들을 향해 국기를 흔들며 조롱했고, 그 장면을 SNS에 올렸다. “우리가 바로 이 땅의 주인”이라는 말과 함께. 한 나라의 장관이 무장도 하지 않은 민간 구호 활동가를 무릎 꿇리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는 나라.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네타냐후 총리’에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국제사법재판소(ICJ)가 민간인 보호를 명령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가자지구의 하늘 아래에서 오늘도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빵 한 조각을 가져다주려다 구타당하고 돌아온 김아현 씨는 다시 떠날 채비를 한다. 그녀와 함께 배를 탔던 40개국의 활동가들, 가자지구 안에서 목숨을 걸고 수술칼을 쥔 국경없는의사회 의료진, 법정에서 팔레스타인의 편에 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변호사들. 이들이 있어 인류의 양심은 아직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국제사회가 해야 할 일을, 이름 없는 개인들이 자신의 몸으로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은 그들의 용기를 기억하고,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침묵은 곧 공모다.
2026-06-03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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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덕도신공항이 아닌 '부산국제공항'으로
24년간 조종석에 앉아 세계 수십 개 도시의 공항을 드나들었다. 도쿄, 상하이, 싱가포르, 런던, 빈, 뉴욕… 그 어느 공항도 자신이 위치한 섬 이름이나 행정 지명을 내걸고 국제 항공로에 등장하는 곳은 없었다. 관제사가 교신할 때, 항공사가 스케줄을 편성할 때, 여행객이 항공권을 검색할 때, 공항은 언제나 도시의 이름으로 불린다.
2035년 개항을 목표로 부산 가덕도에 새 공항이 건설되고 있다. 800만 부산·울산·경남 시민이 수십 년간 염원해 온 동남권 관문공항이 마침내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이 아직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다.
“이 공항의 이름을 무엇이라 부를 것인가?”
현재 통용되는 ‘가덕도신공항’은 건설사업의 행정적 명칭일 뿐, 개항 후 세계를 향해 내걸 간판이 아니다. 그 이름은 마땅히 부산국제공항(Busan International Airport)이어야 한다. 항공 현장을 누빈 전문가로서, 부산의 도시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항공 기업인으로서 강력히 주장한다.
공항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인천국제공항이다. 1992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된 명칭 공모에서 1위는 ‘세종공항’(101표), 2위는 ‘서울공항’(70표)이었으며, ‘인천공항’은 고작 8위(30표)에 머물렀다. 더 놀라운 것은 1995년 1월, 수도권신공항건설공단이 신공항의 이름을 ‘영종국제공항’으로 공식 결정해 버린 사실이다. 실제로 공항이 위치한 섬 영종도를 따른 것이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인천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같은 해 4월, 인천YMCA 등 시민단체들은 ‘인천국제공항 명칭제정추진위원회’를 창립했다. 이어진 서명운동에는 당시 인천 인구 235만 명 중 60만 명, 즉 시민 4명 중 1명가량이 동참했다. 결국 1996년 3월 21일, 건설교통부는 공단의 결정을 뒤집고 이름을 ‘인천국제공항’으로 최종 확정했다. 오늘날 전 세계 항공권에 ‘ICN’-인천(Incheon)의 알파벳이 새겨진 것은 그 4년의 시민 분투 덕분이다.
이 교훈을 부산이 되새겨야 한다. 지금부터 ‘가덕도(Gadeokdo)’가 아닌 ‘부산(Busan)’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
항공 현장에서 공항은 도시의 이름으로 통한다. 관제 교신, 비행계획서, 항공권 예약 시스템에서 공항을 인식하는 기본 단위는 섬이나 지형이 아니라 도시다. 현재 김해국제공항의 국제 도시 코드는 ‘BUSAN’, IATA 코드는 ‘PUS’(부산의 옛 로마자 표기 ‘Pusan’에서 유래)이다. 세계의 항공 시스템은 이미 이 공항을 ‘부산’의 공항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현판에는 ‘김해국제공항’이 찍혀 있고, 곧 들어설 신공항에는 자칫 ‘가덕도신공항’이 달릴 수 있다는 건 역설적이다.
전 세계 749개 공항 중 741개가 행정구역명을 공항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행정구역 개편 이전의 지명을 그대로 쓰는 공항은 전 세계에서 김해공항과 김포공항 두 곳뿐이다. ‘부산’ 브랜드 가치를 활용해 얻는 이득이 명칭 변경 비용보다 훨씬 크며, 부산항 브랜드 가치(1조 2500억 원)에 빗대면 지난 24년간 약 3조 원 이상의 브랜드 가치를 놓쳤다고 추정된다.
홍콩국제공항, 오스트리아 빈공항, 싱가포르 창이공항 등 세계 주요 국제공항을 살펴보면 이 원칙은 더욱 명확해진다.
공항을 찾는 세계 여행객들은 ‘가덕도’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이 아는 것은 ‘부산’이다. 세계 2위 환적항만의 도시, 영화제의 도시, 해양 문화 수도의 이름. 이 강력한 브랜드를 공항 이름에 새기지 않는 것은, 스스로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얼굴을 지우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는 ‘가덕도’가 아닌 ‘부산’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 공항이 개항하는 2035년보다 지금부터 10년간의 건설 과정이 더 중요한 홍보 기간이다. 세계 언론이 이 공항을 처음 보도하는 그 순간부터 ‘부산국제공항’이라는 이름이 쓰야 한다.
2026-05-3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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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노란봉투법 시행, 원청 인사노무팀이 당장해야 할 네 가지
지난 3월 10일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조선·물류·공공기관·금융 등 산업 전반에서 하청노조의 원청에 대한 교섭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전체 접수 사건 가운데 많은 건이 취하되었으나, 노동위원회의 사용자성 판단 결정이 내려진 사건에서는 4월 19일 기준 약 90%(23건 중 21건)가 인정됐다. 다만 지금까지 인정된 사용자성은 주로 안전보건·인력배치 등 원청의 실질적 지휘·관리권이 분명한 분야에 집중되어 있으며, 임금·복리후생 전반에 대해 원청의 사용자성이 일반적으로 인정된 것은 아니다. 노란봉투법에 따른 교섭요구 대상 인원이 14만 명을 넘는 것으로 집계된 가운데, 원·하청 모두 아래 네 가지 절차적 포인트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첫째, 교섭의제별로 창구 단일화 절차가 제대로 이행됐는지 확인하라.
하청노조가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려면 여러 하청노조 사이에서 대표를 정하는 창구 단일화 절차가 필요하다. 이 절차는 의제별로 달리 적용될 수 있다. 예컨대 안전 문제에서는 A조직이 대표가 되고, 복리후생 문제에서는 B조직이 대표가 될 수 있다.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요구한 경우 원청은 공문으로 의제 특정이나 절차 이행을 요청할 수 있다. 다만 노동위원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직권으로 절차 보완을 요구하고 사용자성 판단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으므로, 원·하청 모두 절차적 요건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둘째, 교섭의제를 구체적으로 특정하라.
의제가 불분명하면 분쟁이 길어지고 해석상 혼선이 생긴다. 원청은 의제가 구체적이지 않으면 서면으로 의제 특정을 요청하는 것이 안전하다. 임금·수당 등은 원칙적으로 하청 내부의 사안으로 본다는 것이 고용노동부의 현재 입장이다. 따라서 하청노조는 임금·수당이 아닌 안전·근로조건·학자금 지원 등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될 가능성이 큰 의제부터 교섭 의제로 제시하고, 단계적으로 요구 범위를 넓혀가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셋째, 공고와 사용자성 인정은 별개다.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고가 진행되는 시점부터 관련 절차가 본격화되므로, 원청은 교섭단위 분리 신청 가능성, 의제별 사용자성 쟁점, 기본 대응 방향을 미리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하청노조 역시 공고가 모든 의제에 대한 교섭 의무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실제로 교섭이 가능한 쟁점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노동위원회 결정 흐름을 계속 지켜봐야 한다. 현재 노사 양측은 노동위원회의 판단을 보며 대응 방향을 조정하고 있다. 원청은 불복과 소송을 검토하고, 하청노조는 신청 취하 후 보완해 다시 제기하는 방식으로 유리한 판단을 모색하는 경우가 있다. 일부 사건에서는 처리 지연도 나타나고 있어, 원·하청 모두 사건 진행 상황을 꾸준히 확인하고 유사 사례를 참고해 대응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
끝으로 정부의 원·하청 상생교섭 매뉴얼은 참고할 만한 기준이지만,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판단은 별도로 전개될 수 있다. 노동부 해석만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노동위원회와 법원의 판단 흐름을 함께 살피면서 충분한 법리 검토를 거쳐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
2026-05-3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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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유’를 멈추면 주권도 사라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선거 문자와 SNS의 자극적인 영상, 실현 가능성보다 눈길부터 끄는 공약들이 뉴스를 도배하고 있다. 정치가 우리 삶을 보듬는 대안의 장이 아니라, 마치 누가 더 자극적인가를 겨루는 쇼윈도가 된 듯한 기분이다. 소음에 지친 유권자들은 “정치는 다 똑같다”며 고개를 돌리지만, 정치를 외면하는 바로 그 순간 민주주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최근 선거판을 보면 클릭베이트(Clickbait) 공약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표를 얻기 위해 예산이나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일단 던지고 보는 공약들을 의미한다. 이런 공약들은 유권자의 깊은 고민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찰나의 순간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길을 사로잡고, 당장의 이득을 약속하며 유권자를 유혹한다. 당장은 입에 달콤하지만 공동체의 미래에 아무런 영양가가 없는 공약들이다. 정책이 국가의 백년대계가 아닌 ‘클릭 수’를 높이는 마케팅 도구가 될 때, 유권자의 주권은 미끼를 기다리는 물고기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정교한 AI 알고리즘은 이런 미끼에 쉽게 걸려들게 만든다. AI는 우리가 클릭한 혐오 콘텐츠나 특정 진영의 주장만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필터 버블 현상을 유발한다. 유권자가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에 약한지 데이터로 분석해, 딱 입맛에 맞는 선동적인 문자나 네거티브 정보를 보낸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는 환경 속에서, 유권자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보다 진영 논리에 갇힌 조건반사적 반응을 보이게 된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과거 끔찍한 학살을 저질렀던 이들은 괴물이 아니라,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일했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짚어냈다.
오늘날의 유권자에게 요구되는 윤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쏟아지는 문자 메시지와 SNS 공세 속에서 비판적인 사유를 멈추는 것, 네거티브 정보에 무작정 동조하거나 혹은 귀찮다고 투표를 포기하는 것은 현대판 사유의 정지라 할 수 있다. 생각을 멈추고 시스템이 던져주는 정보에만 몸을 맡길 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나쁜 정치를 돕는 방관자가 되고 만다.
“나 하나 투표 안 한다고 세상이 바뀌겠어?”라는 생각은 책임감을 분산시키고, 결국 정치를 선동가들의 놀이터로 만든다. 하지만 방관은 결코 중립이 아니다. 유권자가 눈을 감으면 정치는 더 자극적인 네거티브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이제 구경꾼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 때다. 미끼처럼 던져지는 공약 뒤에 숨은 실체를 따져 묻고, 알고리즘이 배달하는 증오의 언어를 이성의 힘으로 거부해야 한다. 내 주권을 알고리즘과 선동가들에게 약탈당하지 않겠다는 지적인 저항이 필요하다.
투표는 단순히 선거일에 도장을 찍는 행위가 아니다. 수많은 거짓과 비난 속에서 무엇이 진짜 우리를 위한 길인지 찾아내는 지적인 투쟁이라 할 수 있다. 청년 유권자부터 전 세대에 이르기까지 비난의 말들에 속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주인이 되어야 한다. 유권자가 정책을 따지고 진실을 찾으려 노력할 때, 비로소 정치는 시민을 두려워하고 시민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유하는 시민만이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지 않고 민주주의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
2026-05-2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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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공급망 파도, 친환경 선대 구축으로 넘어야
아침에 카페에 들러 향긋한 커피를 사고, 해외에서 마음에 드는 소파를 구매하며,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이처럼 평범한 일상이 바다 덕분이라는 것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가 인지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바다를 터전으로 살고 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해상 운송에 의존한다. 바닷길이 막히면 식료품 가격이 폭등하고 공장이 멈춘다. 이란 전쟁에 따른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 등 먼 나라의 해상 위기가 우리의 일상과 경제를 직접적으로 흔드는 셈이다.
많은 이들에게 바다는 휴식과 여유의 공간이겠지만, 한국해양진흥공사(KOBC)가 바라보는 바다는 국가 경제의 생존이 걸린 치열한 전장이다. 최근의 지정학적 갈등을 비롯해 보호무역주의, 탄소중립 규제 강화,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의 물류 대란은 우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극명하게 일깨워줬다. 바로 해상 공급망을 지배하는 국가가 미래 경제를 주도한다는 점이다.
중국이 세계 1위 해운국으로 등극하는 등 아시아로 해운 패권이 이동하는 격변기 속에서, 공급망은 단순한 물류 문제를 넘어 국가안보와 산업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전략 자산이 됐다. 대한민국은 글로벌 4위 해운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이러한 외형적 성과의 이면에는 구조적 한계에 따른 선대 경쟁력 저하라는 그늘이 짙다.
가장 큰 문제는 선대의 고령화다. 우리 선대의 평균 선령은 22.3년으로 일본(16.2년), 중국(14.6년) 등 경쟁국에 비해 노후화가 심각하다. 과거 해운 불황기 이후 선가(船價) 급등과 연료 전환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신조(신규 선박) 투자가 위축돼 미래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규모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현재보다 20% 이상의 선복을 확충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미 글로벌 화주들은 친환경·고효율 선박을 선호하고 있어, 탄소 배출 규제가 강화될수록 노후 선박의 시장 경쟁력은 전방위로 약화할 수밖에 없다.
결국 향후 해운 경쟁력은 ‘얼마나 신속하게 많은 친환경 신조선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중립 목표에 따라 글로벌 해운시장은 액화천연가스(LNG)·메탄올·암모니아 기반 선박 중심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세계 신조 발주의 절반가량이 친환경 연료 기반으로 전환됐으며, 유럽 주요국들은 미래 친환경 선복 확보 경쟁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스크러버 보급 등 일부 분야에서는 세계 최상위권 경쟁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차세대 연료 기반의 신조선 발주 비중은 경쟁국 대비 현저히 낮다. 우리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짚어보아야 한다. 한국은 현존선 기준 차세대 연료 추진선 비중이 적재용량(DWT) 기준 세계 5위 수준이다. 그러나 오더북(발주 잔량)을 포함한 미래 선복 기준으로는 11.3%에 그쳐 글로벌 평균인 17.8%를 밑돈다. 향후 한국의 차세대 연료 추진선 보유량은 프랑스·이탈리아 등 유럽 선진국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발주 잔량 내 친환경 선박의 비중이 낮다는 점은 향후 현재의 입지마저 위태롭게 만들 수 있는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다.
친환경 전환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기존 선박의 개조를 넘어 LNG, 메탄올, 암모니아 추진선 등 차세대 친환경 선박 확보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급변하는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국적선사들이 적기에 선박을 공급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수적이다. 특히 고가의 친환경 연료 선박 확대를 위해서는 해양진흥공사와 정책금융기관의 체계적인 친환경 금융 지원 프로그램이 긴밀하게 연계돼 공급돼야 한다.
공급망 위기라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는 지금, 바다는 단순한 수출입 통로가 아니다. 우리의 미래 생존과 성장동력을 좌우할 전략적 보루로 인식하고, 친환경 선대 전환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향해 원팀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2026-05-24 [1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