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미는 기본, 교훈은 덤…보석 같은 도시 ‘진주’ [겨울방학 추천 여행지]
겨울방학이 눈앞에 다가왔다. 부모가 어린 초중학생 자녀와 함께 가볼 만한 경남 진주시 실내외 공간 세 곳을 소개한다. 재미와 교훈을 동시에 줄 수 있는 이색적인 장소다. 대기업 창업주 3명의 고향인 승산부자마을과 K기업가정신센터, 진주유등전시관 그리고 토지주택박물관이다.
■승산부자마을과 K기업가정신센터
승산부자마을과 K기업가정신센터는 남해고속도로 지수IC에서 내리면 1~2분 만에 도착하는 곳이다. 두 곳 모두 주차장이 잘 갖춰져 자동차로 가기에 편리하다.
승산부자마을은 김해 허씨와 능성 구씨가 300년 이상 사이좋게 살아 온 한적한 시골이다. 럭키금성(현재 LG, GS그룹) 창업주 구인회, 삼성 창업주 이병철 씨가 함께 다녔던 지수초등학교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효성 창업주 조홍제 씨는 이들과 깊이 교류했던 사이였다. 그래서 이 마을은 ‘세 대기업을 일군 고장’으로 불린다.
승산부자마을에는 역사적 유물, 유적이나 아름다운 풍광은 없지만 각 창업주의 생가나 창업주의 후손 및 친척의 고택이 즐비하다. 각 고택은 문을 꼭 닫아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그래도 이곳을 찾아오는 방문객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면면히 흐르는 ‘부자의 기운’을 느껴 보려는 것이다.
K기업가정신센터는 승산마을의 역사와 한국 경제 발전사를 정리해 놓은 공간이다. 지수초등학교 역대 졸업생 명단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한국 기업사를 장식한 기업인 50여 명의 이름이 나열됐다. 엄청난 콘텐츠가 담긴 곳은 아니지만 초중학생에게 동기 부여의 기회를 주기에는 충분한 곳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은 고 구자경 전 LG그룹 명예회장이 기증한 경제전문도서관인 상남관이다. 모든 서적이 경제 관련이어서 이색적인 데다 도서관 내부가 매우 넓고 세련돼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기게 한다.
■진주남강유등전시관
진주남강유등전시관은 지난 10월 개관한 국내 최초의 유등 전문 전시관이다. 해마다 10월 말에 열리는 진주유등축제를 1년 내내 보고 싶다는 아쉬움이 남았다면 평소에는 이곳을 찾아가면 된다. 유등축제에 등장한 모든 유등을 전시하는 것은 아니어서 규모 면에서 다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곳곳에 마련된 시설은 한 번쯤 둘러볼 만하다.
전시관 로비에는 대한민국 등 공모대전 역대 수상작이 전시됐다.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각 수상작은 유등축제 기간 중에 야외에서 보던 등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수상작 전시장 뒤에는 유등터널이 이어진다. 수백 개의 등불로 구성된 곳이어서 기념사진을 찍기에 딱 좋은 장소다.
유등터널이 끝나면 ‘유등전시1’이라는 영상 공간이 등장한다. ‘희망의 강, 빛을 띄우다’를 주제로 삼아 화려한 유등 영상을 보여 준다. 그동안 유등축제에 등장했던 각종 유등을 미디어아트로 소개하는 환상적인 공간이다. 이어지는 ‘유등전시2’에서는 ‘유등의 연원’을 주제로 유등의 유래와 의미를 알려 주는 애니메이션 영상을 볼 수 있다. 이 밖에 실내공간에서는 박선기 작가의 ‘물 위를 걷다’, 정진경 작가의 ‘나빌레라’, 박봉기 작가의 ‘호흡’ 같은 유등 주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진주남강유등전시관 옥상에는 유등카페와 유등공원이 마련돼 있다. 유등공원에는 유등축제에 등장했던 각종 유등이 전시됐다. 만화영화의 주인공 로봇태권V에서부터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을 이끈 김시민 장군, 미국 액션영화 ‘어벤져스’의 주인공들과 ‘곤충들의 숲속 음악회’ 등이 공원 곳곳을 장식했다. 밤에는 유등에 불이 켜지기 때문에 낮보다는 저녁에 둘러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토지주택박물관
토지주택박물관은 진주혁신도시의 한국토지주택공사에 있는 시설물이다. 1997년 개관했으며 자료 5만여 점을 소장한 곳이다. 사실 처음에 이곳을 골랐을 때에는 효용성, 만족도에 반신반의했지만 직접 둘러본 뒤에는 초중학생뿐만 아니라 나이가 든 성인도 가볼 만한 가치를 가진 곳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토지주택박물관은 주택토지역사관, 기획전시실로 이뤄졌다. 주택토지역사관은 사진과 포스터, 실내 자재 등 각종 자료를 통해 토지주택공사가 서울 마포아파트를 시작으로 70여 년간 일궈온 성과를 기억하는 공간이다. 영단주택과 한강맨션아파트 재현 공간에서는 1960~70년대 아파트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새로운 삶을 닮다’라는 주제로 우리나라 아파트 역사를 보여 준다. 아파트의 탄생에서 진화와 발전 및 각종 생활문화를 사진, 영상, 자료를 통해 살필 수 있다. 지금은 보기 힘든 석유곤로, 연탄보일러, 관리실 인터폰, 분양 계약서 등이다. 가수 윤수일의 노래 ‘아파트’도 들을 수 있다.
‘집을 닮은 삶, 삶을 담은 집’이라는 제목으로 황헌만 기증 사진전도 열린다. 1970년대 주거문화가 급변하는 시기의 농촌, 어촌, 산촌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다. 당시의 여러 집과 소중한 삶을 보여 주는 소중한 작품들이다.
2023-12-28 [06:50]
-
차 막히고 인파 몰리는 해맞이…2024년 신상 ‘일출 맛집’은?
해가 바뀐다. 나흘 뒤면 2024년의 첫 태양이 떠오른다. 매일매일 새로 마주하는 해이지만, 새해 첫날의 해는 의미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한 해를 시작하는 기대와 다짐이 있기에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서 이날만큼은 수평선을 뚫고 올라오는 해를 직접 맞으러 집을 나서는 이들이 적지 않다. 혼잡하지 않으면서도 특별한 새해맞이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을 소개한다.
부산의 관문, 북항 친수공원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과 울산, 경남의 일출 명소에는 대개 새벽부터 차량이 몰려든다. 자칫 잘못하 주차할 곳을 찾느라 해맞이 전부터 진이 빠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곳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더군다나 인파 걱정까지 덜 수 있다면 금상첨화. 미리 둘러본 부산 북항 친수공원이 딱 그런 곳이었다.
최적의 교통수단은 도시철도 1호선이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도 좋다. 부산역에 내려 역사 2층 뒤쪽으로 연결된 하늘공원에 들어서면 태평양으로 열린 북항 친수공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과 공사 중인 오페라하우스 사이 정면으로 부산항대교가 우뚝 솟아 있다. 해는 부산항대교 뒤편의 신선대부두와 한국해양대(조도) 사이로 떠오른다. 신선대부두의 컨테이너 전용 크레인을 배경으로 고개를 내미는 해를 만나는 건 분명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해를 좀 더 가까이에서 보려면 오페라하우스 앞 수변 산책로까지 접근하면 된다. 부산역 하늘공원 육교를 통해 충장로를 건너면 친수공원 입구가 나온다. 경관 수로를 따라 이동하다 보도교 4나 5를 건너면 오페라하우스 앞으로 이어진 수변 산책로가 나오는데, 이곳이 최적 포인트다. 바다를 향해 돌출형 나무 덱 전망대까지 마련돼 있어 사진 촬영에도 제격이다. 부산항대교 주변을 수시로 오가는 선박까지 프레임 속에 같이 담는다면 다른 곳에서 접할 수 없는 ‘부산표 일출’ 작품이 된다. 북항 친수공원은 오전 5시부터 출입이 가능하다.
바다 위를 거닐며 즐기는 일출
하늘 높은 곳에서 일출을 맞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다. 눈 아래 펼쳐지는 일출 광경을 즐기는 방법은 우선 산을 찾는 것이다. 운동을 겸해 새해 새 각오를 다지는 의미에서 산 정상을 향하는 것은 꽤 좋은 선택이다. 하지만 평소 등산을 꾸준히 하지 않는다면 새해 첫날부터 적지 않은 수고로움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이럴 때 케이블카를 이용한다면 큰 힘 들이지 않고 오래 기억할 해맞이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다. 부산에서는 서구 암남동의 송도해상케이블카가 별도의 해맞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송도해상케이블카는 송도해수욕장 동쪽 송림공원에서 서쪽 암남공원까지 1.6km 길이를 운행한다.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캐빈에 앉아 부산 앞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일출을 맞는 건 분명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통상 오전 9시부터 운행하는 송도해상케이블카는 1월 1일 단 하루 해맞이객을 위해 오전 6시 30분 조기 개장한다. 탑승객에게는 음료와 핫팩, 무릎담요(선착순)를 증정하는 이벤트도 진행한다. 이달 31일까지 온라인 예매도 가능하다.
경남지역 케이블카 운영사도 일제히 해맞이객들을 위한 조기 운행 계획을 세웠다.
거제시 파노라마케이블카는 1월 1일 오전 5시 30분부터 7시까지 선착순 1000명에게 50% 할인 요금을 적용한다. 일출 관람 후에는 떡국을 제공할 계획이다. 사천바다케이블카와 통영케이블카도 오전 6시부터 운행한다. 케이블카는 기상 상황의 영향을 받는 만큼 사전에 운행 여부를 확인하는 것도 잊지 말자.
한국천문연구원 예측 2024년 1월 1일 지역별 일출 시간은 다음과 같다. ▲부산·울산 7시 32분 ▲김해·거제 7시 33분 ▲창원·통영 7시 34분 ▲남해·사천 7시 36분.
포항 스페이스워크 일몰·호미곶 일출
부산 기장군을 비롯해 울산 울주군 간절곶과 포항 남구 호미곶 등 동해안을 따라 일출 명소들이 이어진다. 이 중 호미곶과 간절곶은 울산 대왕암공원과 함께 한반도(독도·울릉도 제외)에서 해가 제일 빨리 뜨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새해 첫해의 기운을 제일 빨리 받으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든다.
‘철의 도시’로 불리는 포항 호미곶으로 일출 여행을 떠난다면 인근에 있는 ‘신상’ 일몰 명소 스페이스워크를 놓치지 말자. 둥그런 구조물 사이로 해가 넘어가는 광경을 찍을 수 있어 SNS 사진 욕심이 있다면 특히 빼놓을 수 없는 스폿이다.
롤러코스터를 빼닮은 스페이스워크는 포항의 대표기업 포스코가 설계·시공해 무료로 개방한 체험형 철재 조형물이다. 영일만을 두고 호미곶과 마주하고 있는 환호공원에 우뚝 서 있는데, 333m 길이의 트랙에 놓인 700여 개의 계단을 직접 오르며 동해안을 조망할 수 있다.
동절기(11~3월) 주말에는 오후 6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이곳에서 2023년 마지막 일몰(오후 5시 11분 예상)을 보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2023-12-28 [07:40]
-
딱 3주만 열리는 얼음왕국, 즐길 준비 됐나요?
축제의 주무대가 될 화천천 얼음은 서서히 두꺼워지고, 행사를 빛낼 얼음 조각은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얼음낚시로 유명한 강원도 화천군 산천어축제는 100만 관람객을 맞을 준비를 하나둘씩 마치는 중이다.
내년 1월 6~28일 화천천 일대에서 열리는 2024년 산천어축제 준비 상황을 살펴보고 왔다. 축제와 함께 즐겨볼 만한 화천군의 관광 명소도 함께 둘러봤다.
■산천어축제 내년에도 ‘대박’
화천군은 산천어축제 개막을 3주 남겨두고 행사 채비에 분주한 모습이다.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주행사장인 화천천에 얼음을 얼리는 것이다. 놀랍게도 화천천에서는 꽤 두꺼운 얼음이 생성되고 있었다. 지구 온난화 속 날씨의 심술을 딛고 얼음을 손쉽게 얼리는 ‘요령’을 터득한 덕분이다. 핵심은 화천천 상류 쪽에 임시 흙댐을 쌓아 물의 흐름을 막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행사장 구역에서 물이 정체되는데, 물이 흐르지 않으면 얼음이 잘 언다고 한다.
산천어축제가 안전하게 진행되려면 얼음 두께가 30cm 이상이어야 한다. 지금은 5~10cm 정도 언 것으로 보인다. 화천군은 “현재 상태가 유지된다면 목표 두께는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얼음 얼리기와 함께 눈썰매장, 얼음썰매장, 아이스봅슬레이장 설치 작업은 물론 집라인, 얼음축구‧컬링장, 얼곰이성 미끄럼틀, 겨울문화촌 설치 작업도 진행된다. 본격 공사를 앞두고 화천천 주변에는 각종 장비와 임시시설로 사용될 컨테이너가 옮겨지는 중이다.
화천군청을 중심으로 시내에는 한 달간 축제 분위기를 자아낼 화려한 거리 조명 시설 설치 작업이 진행 중이다. 거리 조명은 어느 축제보다 예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내얼음조각광장에서는 얼음 조각 작업이 한창이다. 올해는 세계적 얼음축제인 중국 하얼빈 빙등제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얼음 조각가 8명을 초청해 얼음 조각을 만든다.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실내 공간인 조각광장에서 한국인, 중국인 작업자들은 추위를 무릅쓰고 화려한 얼음 조각을 다양하게 만드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산타우체국 등 5대 관광 명물
산천어축제를 즐기러 화천군에 간다면 ‘반드시 들러야 할 5대 관광 명물’이 있다. 산타클로스우체국 대한민국 본점과 산천어커피박물관, 북한강 파크골프장 그리고 백암산 케이블카와 파로호 유람선이다.
시내에 있는 산타클로스우체국은 한마디로 아이디어가 빛나는 환상적인 장소다. 공간은 좁지만 내부를 꽤 잘 꾸며놓았다. 사진을 찍거나 지역민이 만든 각종 수공예품을 비싸지 않게 살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특히 ‘산타에게 보내는 편지’로 유명하다. 여기서 편지를 써서 접수시키면 핀란드의 ‘공인 산타 마을’인 로바니에니 마을의 산타클로스에게 전달된다. 편지를 받은 산타클로스는 반드시 편지를 쓴 사람에게 답장을 해 준다.
산천어축제 기간인 내년 1월 15일에는 로바니에니 마을의 산타클로스가 화천군을 방문한다. 혼자 오는 게 아니라 요정인 산타 엘프도 함께 온다. 두 사람은 산타클로스우체국은 물론 화천 곳곳에서 사인회, 사진 함께 찍기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산타클로스우체국 인근의 커피박물관은 커피 전문가인 제임스 리가 평생 수집한 커피 관련 기구와 자료를 기증한 덕분에 만들어졌다. 넓은 곳은 아니지만 아주 흥미로운 기구가 다양하게 널린 데다 스페셜티 커피 맛도 일품이어서 꼭 들러볼 만한 장소다.
파크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화천만 한 곳이 없다. 북한강을 따라 파크골프장이 3곳이나 조성됐다. 서울, 경기도는 물론 멀리 대구와 경남 창원에서도 이곳까지 파크골프를 즐기러 온다. 밤에도 운동할 수 있게 조명 시설까지 갖춰져 하루종일 공을 칠 수 있다. 특히 산천어파크골프장의 수령 300년 된 느티나무를 배경으로 해 질 녘에 찍는 사진은 정말 환상적이어서 SNS에서 인기 포토존으로 유명하다.
백암산 케이블카는 군사시설을 지나 해발 1170m의 산꼭대기 전망대에 올라 휴전선 너머 북한 땅을 조망할 수 있는 시설이다. 강원도 전문인 새영남해외여행사 정경해 대표는 “지금은 겨울이어서 온통 갈색 세상이지만 여름에는 초록이 우거지고 가을에는 단풍이 물들어 감탄을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난 경치가 일품”이라고 말했다. 아쉬운 점은 지정된 장소 두 곳만 제외하고는 북한 땅은 물론 백암산 전경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파로호는 일제 강점기이던 1939년 일본이 화천댐을 건설한 덕분에 생겨났다. 동아시아 침략 전쟁 수행을 지원하는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었다.
최고 수심 50m라는 호수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화천 사람들은 이곳을 ‘바다의 호수’라고 부른다. 푸른 산과 맑은 하늘 외에는 볼 게 따로 없는 파로호 뱃놀이는 너무 차분하고 담백해서 지겹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복잡한 도시의 먼지를 털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1시간가량 호수 수면이나 주변 산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를 할 수 있다. 이곳이 아니면 즐길 수 없는 탁월한 장점이다.
2023-12-14 [07:00]
-
도시에서 단풍 여행하기…임금님도 반한 ‘다섯 궁궐’ 속으로
더웠다 쌀쌀했다 오락가락 날씨지만 자연은 완연한 가을옷을 입었다. 북에서 남으로 단풍이 세상을 알록달록 물들이고 있다. 산꾼들은 단풍 산행에 나서겠지만, 도시에서도 단풍을 즐길 기회는 많다. 특히 서울 한복판에서 오색찬란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수백 년의 시간을 품은 조선시대 고궁들이다.
■기쁨이 넘치고 빛나는 ‘서궐’
고궁을 만나기 위해 옛 한양도성 일대로 향했다. 서울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경희궁이 자리한다. 정문 격인 홍화문으로 들어서자 빌딩 숲속 비밀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숭정전 입구인 숭정문까지 이어진 길 양옆으로 아늑한 정원과 잔디밭이 방문객을 맞는다.
정원과 화단에는 크고 작은 나무 수백 그루가 푸르렀던 잎을 벗어던지는 중이다. 나무 밑동 주변과 산책로 곳곳에 따스한 노랑·빨강·갈색 빛깔 낙엽이 수북이 쌓였다. 누군가 낭만을 떠올렸는지, 길 한편에 낙엽을 모아 하트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산책하는 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경희궁(慶熙宮)은 도성의 서쪽에 있어 ‘서궐(西闕)’로도 불렸다. 이름처럼 기쁨이 넘치고 빛나는 궁이었지만 고종 때 경복궁 중건을 위해 전각을 헐어 자재로 썼고, 일제강점기엔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건물 대부분이 사라졌다. 면적도 절반으로 줄어 옛 위용은 ‘서궐도(西闕圖)’ 그림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규모는 쪼그라들었지만 주변 지형과 조화를 이룬 형태는 그대로다. 기괴한 자태의 느티나무도 400년 가까이 한자리에서 궁의 역사를 전한다.
경희궁은 올 9월부터 보수 공사를 시작해 연말까지 숭정전만 관람이 가능하다. 발걸음을 돌리기 아쉽다면 잔디밭과 정원 일대를 가로지르는 산책로를 천천히 거닐어 볼 만하다. 사각사각, 발아래 바스러지는 낙엽 소리가 도시의 묵은때를 씻겨 낸다. 특히 이맘때쯤 숭정문 앞은 낙엽 주단이 깔려 콘크리트 바닥의 삭막함을 덮는다.
경희궁 서쪽에는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조성돼 있다. 마을 안쪽 돈의문역사관에서는 조선시대와 개항 이후 돈의문 일대 역사, 새문안 동네가 돈의문박물관마을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돼 있다. 특히 옛 식당 ‘아지오’와 ‘한정’ 건물을 활용한 역사관 자체도 마을의 역사를 간직해 인상적이다.
아지오 2층 네모 창 너머로는 앞서 거닐었던 경희궁 정원이 그림처럼 바라다보인다. 역사관 안팎에는 옛 화장실과 경희궁 담장의 흔적이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전시 중이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도시재생의 현장. 미래 세대를 위한 고민이 엿보인다.
■왕의 효심과 아픈 역사 서린 ‘동궐’
서궐 주변 탐방을 마치고, 동궐로 발걸음을 옮긴다. 서울에는 경복궁·창덕궁·창경궁·덕수궁·경희궁 등 조선시대 다섯 궁궐이 있다. 이 중 동쪽에 위치한 창덕궁·창경궁 일대를 ‘동궐(東闕)’이라 불렀다.
경복궁에 이어 건립된 창덕궁은 후원 등이 잘 보전돼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하루 방문객 수가 제한돼 후원을 둘러보려면 온라인 예약을 하거나 당일 현장 예매를 해야 한다. 인터넷 예약에 실패해 아침 일찍 창덕궁 돈화문을 찾았지만 현장 표도 구하지 못했다.
매표소 옆에 우뚝 선 은행나무로 아쉬움을 달랜 뒤 창덕궁과 동쪽으로 맞닿은 창경궁으로 향했다. 창경궁은 성종의 효심으로 탄생한 궁궐로, 창덕궁의 생활공간이 좁아지자 정희왕후(세조 비), 안순왕후(예종 비), 소혜왕후(덕종 비) 등 대비들이 편히 지낼 수 있도록 마련한 곳이다.
창경궁은 입구인 홍화문부터 여느 궁궐과 다르다. 남쪽이 아닌 동쪽으로 나 있는데, 남·서·북쪽은 구릉지이고 동쪽은 평지인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터를 잡았기 때문이다. 입구로 들어서면 보물 옥천교를 지나 명정문으로 이어진다. 옥천교의 무지개 아치 사이에는 나쁜 기운을 막는 도깨비 얼굴 문양이 새겨져 있다. 다리 아래 옥천의 물길은 춘당지에서 시작해 청계천을 지나 한강으로 이어진다.
창경궁 북쪽에 위치한 춘당지는 도시에서 보기 힘든 대규모 연못이다. 둘레를 따라 산책로가 조성돼 느린 걸음으로 가을 정취를 만끽하기 좋다. 물은 맑은 편이 아니지만, 다채로운 빛깔이 수면 위를 은은하게 물들이고 있다. 연못 위로 잎을 드리운 각양각색 나무들의 반영이다. 수면을 떠다니는 낙엽 사이로 크고 시커먼 물체가 유영한다. 수십 년은 묵은 것처럼 보이는 잉어들이다. 단풍·낙엽·연못, 어느 배경이건 담는 족족 그림이 된다.
창경궁은 일제강점기 때 특히 시련을 겪은 궁궐이다. 궁내 건물 대부분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지은 뒤 ‘창경원’으로 격하시켜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지금의 춘당지도 원래는 왕이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이려 직접 농사를 짓던 논(내농포)이 있던 자리인데, 일제가 논을 파헤쳐 큰 연못을 만들었다. 1983년 동물원을 이전하면서 시작된 창경궁 복원 작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조선 으뜸 ‘경복궁’과 단풍 으뜸 ‘덕수궁’
고궁 단풍 여행에서 조선 으뜸 궁궐인 ‘경복궁(景福宮)’을 빼놓을 수 없다. 궁궐 주변에서부터 단풍이 눈길을 끈다. 경복궁 북쪽 담장과 청와대 사이를 지나는 ‘청와대로’는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가로수 탓에 눈이 부시다. 경복궁은 청와대 주변을 거닐다 북쪽 신무문으로 입장해도 좋고, 동문 입구 주차장을 통해 남쪽 흥례문으로 들어가도 된다.
경복궁을 대표하는 근정전을 향해 근정문으로 들어서자 단풍 못지않은 화려한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외국인들이다. 색색의 치마·저고리가 궐내 가을 풍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경복궁 내 수많은 문화재 건물 중에서 특히 경회루에 오랫동안 발길이 머문다. 연못에 비친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가을 정취를 물씬 뿜어낸다. 경회루는 외국 사신이나 신하들을 맞이해 왕이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누각에 올라 조선 왕실의 흥과 풍류를 짐작해 본다.
길에서 만나는 단풍으로는 덕수궁 돌담길만 한 곳이 없다. 가을단풍길이란 이름이 붙을 정도로 단풍 명소가 된 지 오래다.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가로수뿐만 아니라 담장 안쪽 나무들도 눈에 들어온다. 덕수궁의 단풍이다. 특히 궁내에서 보면, 서양 건축 양식의 석조전과 어우러진 단풍이 이국적인 풍광을 그려낸다.
석조전 뒤편 돈덕전은 붉은 벽돌과 초록색 창틀 외관부터 이채롭다. 대한제국 시절 영빈관으로, 일제강점기 때 헐렸다가 최근 재건돼 일반인에게 개방됐다. 바로 앞에 힘겨운 자세로 버티고 선 노거수가 돈덕전의 수난을 말하는 듯하다. 덕수궁 동쪽에는 연지가 자리한다. 수면 전체가 녹색 연잎으로 뒤덮였다. 그 위로 낙엽이 떨어져, 점점이 물감을 찍은 듯 점묘화처럼 보인다.
조선의 다섯 궁궐은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단풍 구경을 하면서 궁궐의 역사도 살펴볼 수 있다. 이야기를 품은 고궁의 단풍은 한층 다채롭게 다가온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2023-11-09 [06:30]
-
찬란한 가을 두 발로 느껴 볼까… 부울경 ‘명품 숲길’ 나들이
쾌청한 날씨가 이어지고 산들산들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은 여러 모로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걷기에 최적인 계절이다. 무더위와 혹한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과 겨울은 내버려두더라도, 적당한 기온이 유지되는 봄에도 잦은 비와 미세먼지, 황사 때문에 걸으러 나서기가 망설여진다. 걷기 좋은 계절, 가을을 보낸 뒤 후회해 봤자 만시지탄일 뿐. 때마침 산림청에서 국토 녹화 50주년을 기념해 ‘걷기 좋은 명품 숲길’ 50곳을 선정했다. 가까운 명품 숲길을 찾아 자연이 선물하는 생명의 기운을 담아오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부산과 울산, 경남 지역 명품 숲길 중 접근성이 좋고, 코스 길이가 길지 않아 걷기에 부담이 없는 숲길들을 다녀왔다.
■부산 구포무장애숲길·대천천 누리길
부산 북구 구포동에 있는 ‘구포무장애숲길’은 오직 나무 덱으로만 이어지는 길로, 이름처럼 노약자·장애인·임신부·어린이까지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숲길이다. 계단이 없어 유모차와 휠체어도 이용할 수 있다. 부산도시철도 2호선 구명역 2번 출구로 나와 15분 정도 낙동북로를 따라 부산시교육청학생예술문화회관 입구 방면으로 걸어 올라가면 오른쪽에 구포무장애숲길 안내판과 함께 그 뒤로 산을 오르는 덱길이 나타난다. 주차장도 갖췄다. 구포무장애숲길의 길이는 덱길이 끝나는 범방산 중허리 해발 210m 지점 범방산전망대(하늘바람전망대)까지 2km다. 전망대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까지 감안하면 총 4km다. 덱길은 범방산전망대까지 굽이돌아 이어진다. 누구나 숲길을 누릴 수 있도록 경사를 완만하게 하기 위해서다.
덱길 양옆으로는 소나무와 왕벚나무, 단풍나무 등이 나란히 서서 반갑게 맞아준다. 범방산전망대에 닿기 전 전망대 두 곳을 만난다. 휴식은 물론, 낙동강과 맞닿은 서부산 지역 일대와 저 멀리 경남 김해와 양산 지역까지 탁 트인 조망이 펼쳐진다. 덱길을 오르는 동안 거북이 엎드려 알을 품은 듯한 거북바위(황제바위)와 충정 어린 정승의 모습을 한 정승바위(옛 맷돌바위) 등 절묘한 기암괴석을 찾아 보는 재미도 있다. 덱길 중간중간 지금까지 걸어온 거리를 알려주는 표지가 붙어 있어 체력 배분을 할 수 있다. 범방산전망대에 도착해 전망 덱에 오르면 이전에 거쳤던 전망대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어서 그런지 조망이 더 뚜렷하고 시원하다. 범방산전망대에서 다시 내려오는 길은 완만한 내리막이라 숲길을 둘러보며 여유롭고 수월하게 걸을 수 있다.
부산 북구 화명동 금정산 자락에 있는 ‘대천천 누리길’은 조성된 지 3년여밖에 되지 않은 데다, 산자락에 있어 아직 그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막상 찾아본 이들은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과 금정산 자락의 장대하고 시원한 경치를 잊지 못해 다시 찾고 싶어하는 곳이다. 대천천 누리길은 산성로 보행로를 따라 화명수목원 쪽으로 걸어 올라가다 보면 만날 수 있다. 산자락 길쭉한 지형에 전망대와 쉼터, 잔디 광장, 유아체험숲, 주차장을 갖춰 숲길이라기보다는 공원처럼 느껴진다.
산림청은 대천천 누리길의 길이를 8km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대천천 누리길의 길이는 400m 정도다. 산림청은 대천천 누리길을 중심으로 인근에 있는 대천천, 화명수목원과 이어지는 길, 화명수목원 내 산책로, 그리고 금정산 산성마을까지 이어지는 갈맷길을 포함했다.
대천천 누리길은 산책로를 따라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다. 특히 수국이 많이 식재돼 있어 개화 시기인 여름철엔 수국을 보러 찾는 이들이 많다. 전망대는 경사를 따라 3곳 설치돼 있다. 특히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누리전망대(전망대A)에서 금정산을 바라보면, 부산의 명산이 주는 정기가 온몸으로 스며든다.
누리전망대는 화명수목원과 덱길로 연결돼 있다. 화명수목원은 생태연못, 미로원, 침엽수원, 활엽수원 등 사이사이로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어 걷기 좋다. 대천천 누리길에서 산성로 덱길은 따라 걸어 내려가면 물놀이 명소인 대천천 계곡과 애기소를 만난다.
■울산 솔마루길 2코스·큰마을저수지 둘레길
솔마루길 2코스(울산대공원 구간)와 큰마을저수지 둘레길은 울산을 대표하는 명품 숲길이다. 두 숲길 모두 도심 속에 있어 접근성이 좋고, 걷는 데 1~2시간 정도면 충분해 당일치기 나들이 장소로 제격이다.
솔마루길 2코스는 솔마루다리~울산대공원 현충탑 입구~솔마루하늘길 5.2km 구간으로, 울산대공원 속 산 능선을 따라 걷는 숲길이다. 솔마루길은 울산의 도심 속 숲길로, ‘소나무가 울창한 산등성이를 연결하는 산책로’라는 뜻을 담고 있다. 4개 코스(총 24km)로 구성돼 있으며, 선암호수공원과 신선산, 울산대공원, 삼호산, 남산, 태화강 둔치를 잇는다. 솔마루길 2코스는 숲이 가장 울창해 4개 코스 중 가장 인기 있다.
숲길 걷기는 솔마루하늘길에서 시작해도 되고, 반대로 솔마루다리를 출발점으로 잡아도 된다. 주차를 해야 한다면, 솔마루하늘길과 가까운 울산과학관이나 울산시보건환경연구원, 솔마루다리 인근 공터에 하면 된다.
솔마루하늘길을 출발점으로 잡고 울산과학관에 주차한 뒤 울산시보건환경연구원 출입구 쪽으로 빠져나오면 차가 쌩쌩 달리는 대로(문수로)가 나온다. 횡단보도가 없어 주변을 둘러보니 일반 육교와는 생김새가 다른 육교가 있는데, 바로 솔마루하늘길이다. 솔마루하늘길은 솔마루길 2코스와 3코스의 숲길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솔마루하늘길을 건너면 본격적으로 숲길이 시작된다. 산 능선을 따라 완만한 경사 길이 이어져 가벼운 차림으로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야간 안전을 위해 돌고래 형상의 가로등도 띄엄띄엄 설치돼 있다. 짧지 않은 숲길이다 보니 ‘내가 제대로 걷고 있나’ 의구심이 수시로 생기지만, 그럴 때마다 친절한 이정표가 나타나 길을 헤맬 염려도 없다. 울산대공원이나 선암호수공원, 현충탑 쪽을 가리키는 방향으로만 걸으면 된다.
솔마루길 2코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종일관 변치 않는 풍경은 길 양옆으로 늘어선 소나무들이다. 수령이 꽤나 돼 보이는 소나무들이 둘레가 아름드리 크기부터 어른 손바닥만 한 것까지 다양하다. 하늘로 우뚝 솟은 소나무도 있고 등이 굽은 소나무도 있고 그 모습도 인간 군상처럼 각양이다. 솔마루길 2코스는 솔마루다리에서 끝난다. 솔마루다리 역시 육교처럼 생겼다. 숲길의 연속성을 위해 찻길을 건너 솔마루길 1코스를 이어준다. 솔마루하늘길에서 솔마루다리까지는 약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무료하지 않다.
큰마을저수지 둘레길은 울산 동구 서부동에 있다. 염포산 자락에 위치한 큰마을저수지는 원래 바로 앞에 자리한 현대중공업의 공업용수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저수지 둘레 숲길을 걸으며 휴식을 취하고 다양한 식물들을 만날 수 있는 친환경 수변공원으로 변모했다. 숲길은 저수지 가장자리를 일주한다. 반시계 방향으로 걷든, 시계 방향으로 걷든 상관 없다. 길이는 2km가 조금 넘는다. 산자락에 있는 숲길이어서 오르락내리락 걸어야 하지만 비탈이 심하진 않아 가볍게 걸을 수 있다. 벤치와 정자가 곳곳에 설치돼 있어 저수지와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쉬어갈 수 있다. 특히 일주로 중간쯤에 있는 팔각정인 송백정에서는 저수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장 제대로, 그리고 다양한 각도에서 즐길 수 있다. 송백정에서 맞은편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면,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수지 풍경과 고층 아파트 단지의 도회적인 분위기가 매우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롭다.
큰마을저수지 둘레길은 구간별로 자연학습지구, 경관지구, 치유지구, 숲테마·습지지구 등의 테마가 있다. 자연학습지구는 저수지 바로 옆 녹수초등학교 학생 등 어린이들을 위한 야외 교실, 체험 텃밭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송백정이 있는 경관지구에서는 저수지 일대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치유지구는 다양한 나무가 식재된 산림욕 공간이다. 숲테마·습지지구에는 습지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수변 관찰 덱과 편백나무 숲 산책 공간이 있다. 아담한 숲속 놀이터도 있어 아이들과 함께 찾기 좋다.
2023-11-02 [06:35]
-
한가위 가족 나들이, ‘놀이터 천국’ 밀양으로 가 볼까!
여행을 하다 보면 ‘여기에 이런 게 있었어?’라며 으레 눈이 휘둥그레지는 곳이 있다. 경남 밀양시가 딱 그런 곳이다. 밀양의 명소 몇 곳을 찾았다가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대형 놀이터를 발견하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역 대표 관광지에 놀이터가 있다니. 그것도 규모만 큰 게 아니라 시설 수준까지 높은 놀이터가 세 곳이나…. 아이를 둔 가족 단위 여행객이나 나들이객들에게 알음알음으로 알려지며 지역 명소가 된 놀이터 세 곳은 ‘밀양의 3대 놀이터’로 불린다. 아이들의 놀이와 체험만 할 수 있다면 아쉬울 수 있다. 놀이터 옆에는 밀양의 유명 유적지와 공원, 사찰이 있다. 놀이터를 찾았다가 역사 공부와 사찰 탐방을 하고, 산책과 물놀이까지 겸할 수 있어 밀양의 3대 놀이터가 더 유명한 것이 아닌가 한다. 긴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도록 가족들과 넉넉한 정을 나눈 뒤 밀양으로 가족 여행이나 나들이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사명대사 유적지와 연꽃타워 놀이터
연꽃타워 놀이터는 경남 밀양시 무안면 고라리 사명대사 유적지 안에 있다. 밀양을 얘기할 때 사명대사를 빼놓을 수 없다. 밀양 출신의 승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일으켜 평양성 탈환 작전에 참가해 혁혁한 공을 세웠고, 국방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부국강병에 힘썼던 호국 불교의 상징으로 추앙받고 있다.
연꽃타워 놀이터 역시 그런 사명대사의 호국 정신과 애민 애족의 숭고한 얼을 기리기 위해 조성됐다. 사명대사 유적지 입구로 들어가면 왼쪽에 연분홍 색깔의 연꽃 모양 원형 조합놀이대가 나타난다. 4층짜리 이 타워형 놀이 기구는 높이가 15m나 돼 가까이에서 보면 웅장하다. 마치 우주로 날아갈 준비를 한 로켓처럼 보이기도 한다. 연못 아래에서 솟아난 연꽃처럼 주변 바닥이 움푹 패어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얽히고설킨 로프를 타고 층을 오르내리거나, 층마다 놓인 구불구불한 그물을 밟고 이동하며 놀 수도 있다. 그물 사다리와 11.7m, 8.7m 높이의 미끄럼틀도 설치돼 있어 스릴도 만끽할 수 있다.
놀이터 주변에는 정자와 벤치가 곳곳에 설치돼 있어 쉼도 배려했다. 사명대사 유적지 왼쪽으로는 중촌소류지라는 못이 있고, 못 주변으로 나무 덱길이 설치돼 있어 산책도 가능하다. 일부 나무 덱길 구간은 대나무 숲이 감싸고 있는데, ‘사명대사 수행의 길’이라 불린다. 사명대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명상을 할 수 있는 대나무 숲길이다. 중촌소류지 전망 덱에서는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고요하고 아늑한 풍경 속의 주인공이 돼 사색에 잠겨 봐도 좋다. 전망 덱에는 기념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사명대사 조형물 포토존도 있다.
사명대사 기념관과 추모광장을 함께 둘러봐도 좋다. 사명대사 기념관(무료)에서는 그가 남긴 장삼(스님이 평소에 입는 웃옷)과 친필 글씨, 서책 등 유물과 사명대사의 어린 시절, 출가 과정, 승려 의병장으로서 업적, 뛰어난 외교 능력 등 그의 삶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추모광장과 상징광장에는 사명대사 동상과 일대기를 그린 부조벽화가 있다. 사명대사 유적지 입구로 다시 돌아 나오면 바로 옆에 사명대사 생가터와 사당도 있으니 들러보자. 풍전등화였던 나라를 구할 생각에만 몰두했던 사명대사의 절절한 마음이 잠시나마 전해온다.
■밀양아리랑대공원 어린이놀이터
밀양아리랑대공원 어린이놀이터는 밀양시 교동 밀양아리랑대공원 내에 있는 어린이놀이터다. 밀양아리랑대공원은 밀양의 대표적인 도심 속 공원으로 남녀노소 찾기 좋은 곳이다. 밀양아리랑 아트센터와 광장, 연못, 어린이 놀이터, 산책로, 월남참전비 등 다양한 시설을 갖췄다.
어린이놀이터는 공원 입구 있는 광장을 지나면 나온다. 어린이놀이터에는 도토리타워라 불리는 대형 조합놀이대를 중심으로 원형 그네, 회전 놀이 기구, 코끼리 미끄럼틀 등 다양한 놀이 기구가 있다. 그물 사다리를 밟고 도토리타워 꼭대기로 올라가 그물을 밟고 이동하며 대형 미끄럼틀을 타고 다시 내려오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으로 가득하다. 바로 옆에는 유아용 놀이 기구들이 모여 있는 유아 놀이터(만 2~5세)와 통나무와 모래 등 자연 재료로 만들어진 생태 놀이터도 있다. 아이들의 나이대나 취향도 배려했다. 특히 잔디로 된 사면에 줄을 잡고 올라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사면 미끄럼틀은 아이들에게 인기다.
밀양아리랑대공원은 커다란 연못인 교동구못을 가로지르는 수변 덱은 물론이고, 못 둘레에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어 산책을 하기에 그만인 곳이다. 교동구못은 운치가 있어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교동구못 옆 경사진 언덕에 널찍이 자리한 ‘쓰리랑 숲’도 빼놓을 수 없는 산책 코스다. 숲의 이름도 재밌지만, 숲의 조성 경위도 흥미롭다. ‘출향인의 숲: 고향이 그리운 출향인의 아리랑 숲’이라는 부제가 달린 쓰리랑 숲은 2017년 조성을 시작한 곳으로, 밀양에서 태어났지만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출향인들이 기증한 나무로 만든 정원이다. 매화나무와 층층나무, 잣나무, 편백나무, 산수유, 산사나무 등 다양한 수목이 정원을 싱그러운 녹음과 향기로 가득 메운다. 나무마다 기증한 사람의 이름을 팻말에 담아 쓰리랑 숲의 존재 의미를 되새기게 해 준다. 숲 사이사이로 난 산책로도 걷기 좋다. 경사가 심하지 않아 아이들이나 고령자도 걷기에 큰 무리가 없다.
밀양아리랑대공원 주변에는 밀양시립박물관과 밀양아리랑아트센터, 밀양아리랑우주천문대, 국립밀양기상과학관 등 밀양을 대표하는 전시·공연·교육 공간이 몰려 있다. 볼거리와 즐길 거리, 배울 거리가 다양한 만큼 함께 찾아본다면 하루가 금방 간다.
■표충사와 우리아이마음숲놀이터
표충사 계곡에 있어 ‘표충사 계곡 놀이터’로 불리기도 하는 우리아이마음숲놀이터는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에 있다. 밀양 3대 놀이터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더블돔 플레이, 스파이더 네트 타워, 스카이워크-우디, 나무집 놀이터, 개미 타워, 무지개 그네 등 6개 대형 놀이 기구가 있다. 더블돔 플레이와 스파이더 네트 타워는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한다. 그물망을 밟거나 몸을 비집고 들어가 정상까지 올라간 뒤 높고 기다란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놀이 기구로 아이들에게 짜릿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스카이워크-우디는 나무 계단으로 올라가 긴 그물망 다리를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기구다. 유아들은 나무집 놀이터에서 놀면 된다.
밀양은 가을에도 한낮엔 더위가 여전하다. 우리아이마음숲놀이터 곳곳엔 쿨링 포그가 설치돼 있어 한낮 더위와 놀이로 흘린 땀을 시원하게 식혀 준다. 놀이터 옆 계곡에 흐르는 청량한 물소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사이로 졸졸 흐른다. 2019년 문을 연 우리아이마음숲놀이터는 표충사 관광지와 연계한 자연 친화적 놀이터로 이듬해 행정안전부가 인증한 전국 우수 놀이터로 선정되기도 했다.
놀이터 주변에는 맑은 계곡과 시전마을 산책로, 표충사가 있어 함께 여행하기 좋다. 시전마을 산책로는 놀이터 도로 건너편에 입구가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로 표충사까지 2km 정도 이어진다. 길을 걷다 보면, 상사화 꽃길과 표충사에서 입적하신 스님의 장례를 치르는 표충사 다비장, 다정한 부부의 모습을 닮은 부부나무 등과 만날 수 있다. 산책로를 걷다 보면 주변의 빼어난 경치에 지루할 틈이 없다.
재약산 기슭에 있는 표충사는 놀이터에서 자동차로 2~3분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표충사는 통도사에 딸린 절로, 사명대사의 충훈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표충사당이 있는 절이다. 고즈넉한 사찰의 풍경에 가을 내음이 물씬 풍기고, 사찰 경내 뒤편으로는 영남 알프스 8봉에 속하는 웅장하고 험준한 재약산과 천황산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수려한 산색을 뽐낸다. 가을 표충사는 단풍이 아름다운 단풍 명소다.
2023-09-28 [07:00]
-
[욜로 갈맷길]⑧ 청량한 산길에서 치유를 선물받다
부산에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욜로 갈맷길’이다. 기존 갈맷길(9개 코스 23개 구간 278.8km) 중에 ‘부산 사람이라면, 부산에 오면 꼭 한 번 걸어 봐야 할 길’ 콘셉트로 10개 코스(총 100km)를 추리고 코스별 테마도 입혔다. 갈맷길의 축소판이다. 이번엔 8코스 ‘낙동정맥 끝자락 순례’를 소개한다. 8코스는 욜로 갈맷길 10개 코스 중 유일하게 등산길로만 구성된 코스다. 낙동정맥(강원 태백시 구봉산에서 부산 사하구 다대포 몰운대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의 끝자락에 솟구친 구덕산, 그리고 구덕산과 마주하며 억새군락지와 철쭉 단지로 봄가을 특히 더 아름다움을 뽐내는 부산의 명산 승학산의 등산로를 걷는 길이다. 산길이지만 오르막이 비교적 완만한 데다 오르막보다는 내리막 구간이 길고 전체적으로 등산로도 잘 정비돼 있어 그리 어렵지 않은 산행이다. 걷다가 이따금씩 만나는 전망대와 쉼터에서 조망하는 풍경은 무미건조한 일상의 힐링 포인트다.
■완만한 오르막 임도 ‘시작이 반’
욜로 갈맷길 8코스는 서구 서대신동 구덕문화공원(꽃마을)에서 사하구 당리동 제석골 동원베네스트 아파트에 이르는 6.7km 구간이다. 구덕문화공원까지는 부산도시철도 1호선 서대신역에서 내려 4번 출구 앞에서 마을버스(서구 1번)를 타면 된다. 꽃마을에 도착하면 구덕문화공원으로 가는 길을 알려 주는 이정표가 있고, 그 아래에는 욜로 갈맷길 8코스의 주요 경로를 표시한 안내판이 8코스의 시작을 알린다. 경사진 길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구덕문화공원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온다.
구덕문화공원은 구덕산(565m) 자락에 자리한 공원이다. 전통문화체험관, 교육역사관, 민속생활관, 목석원예관, 숲속놀이터, 유아 숲체험원 등 전시관과 놀이·체험 공간을 비롯해 폭포, 연못, 산책길 등을 갖춘 자연생태문화공간이다. 여유가 있다면 본격적인 산행에 앞서 한번 둘러봐도 좋다. 월요일은 휴관이니 참고하자. 공원 왼쪽으로는 ‘편백숲 명상의 길’이 있다.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편백숲이다. 가슴을 열고 피톤치드 향을 한껏 들이마시며 산림욕을 하고 명상을 즐길 수 있는 길이다.
구덕문화공원의 맨 위쪽에 있는 구덕산 유아숲 체험원에 다다르면, 2시 방향으로 폭이 꽤 넒은 임도가 보인다. 구덕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산지 관리와 산불 예방을 위해 만든 도로(일반 차량 출입 금지)이자, 등산객들의 등산로이기도 하다. 임도 왼쪽으로 쭉 이어진 시멘트 벽면은 이끼가 가득 꼈는데, 온통 재밌는 낙서들이다. 임도를 따라 오르는 길은 산길 치고는 많이 가파른 편은 아니다. 구덕산 중턱에서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저 멀리 사상공단과 낙동강, 낙동강 너머 강서구 일대가 보인다. 오르막을 계속 걷다 숨이 헉헉 찰 때쯤이면 재넘이마루터에 닿는다. 재넘이마루터에서는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는데, 깔딱고개를 거쳐 승학산 정상으로 가는 오르막길, 구덕산 기상레이더 관측소와 구덕산 정상으로 가는 오르막길, 승학문화마루터로 가는 내리막길이다. 이 중 유일한 내리막길인 승학문화마루로 가야 한다. 바리케이드가 턱 하니 길을 막고 있어 있는데, 차량 진입을 막기 위한 용도이니 바리케이드를 둘러 걸어 내려가면 된다. 깔딱고개로 가도 다음 경유지인 승학마루전망대까지 닿긴 한다. 깔딱고개는 숨이 매우 찬다는 뜻의 ‘깔딱’이 붙은 가파른 고갯길이다. 구간이 길진 않지만 숨이 차는 길이다. 힘들이지 않고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욜로 갈맷길의 취지에 따라 깔딱고개 대신 내리막길로 걷는다. 구덕산 기상레이더 관측소와 구덕산 정상도 재넘이마루터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여유가 있으면 들러 봐도 좋다. 걸어 왔던 오르막 임도를 따라 계속 걸으면 두 곳에 차례로 이른다.
■봄 분홍 철쭉, 가을 은빛 억새 ‘장관’
재넘이마루터부터는 대부분 내리막길이다. 8코스는 서구 구덕산과 사하구 승학산, 두 산의 등성이를 타고 걷는 길이다. 내리막 임도를 따라가다 보면 서구와 사하구 경계를 지나 어느새 승학산 능선을 타고 있다. 내리막을 걷다 보면 나무 덱으로 된 아담한 낙조전망쉼터, 너럭바위전망대와 잇따라 만난다. 잠시 쉬어 가도 좋고, 아름다운 풍경을 즐겨도 좋다. 너럭바위전망대에 서면 구덕산과 시약산, 승학산 산줄기가 마치 파도처럼 차례로 밀려오는 듯하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면 승학산 정상 부근의 사면에 펼쳐진 억새평원이 보인다. 가을이면 은빛 억새가 파도처럼 일렁일 곳이다.
승학문화마루에 다다른다. 승학문화마루에도 여러 갈래로 길이 나뉜다. ‘승학산 치유의 숲길’을 걸으며 구덕터널과 학장중학교 쪽으로 가는 길이 있고, 승학산 정상으로 가는 길, 제석골 쉼터로 가는 길, 억새밭·철쭉단지로 가는 길 등 대여섯 갈래나 된다. 헷갈릴 수 있지만 억새밭·철쭉단지 쪽으로 발길을 잡으면 된다. 이정표에는 ‘욜로 갈맷길 8코스’라는 친절한 설명도 붙어 있다. 승학문화마루를 지나고 얼마 안 돼 두 갈랫길이 나오는데, 보행매트가 깔린 오르막으로 걷는다. ‘욜로 갈맷길’이라고 적힌 이정표가 있으니 잘 살펴보고 걸음을 옮기면 된다. 폭신폭신한 보행 매트를 밟으며 승학산 철쭉단지와 억새군락지, 억새노을 전망대를 거친다. 승학산은 봄에는 분홍 철쭉이, 가을에는 은빛 억새군락이 장관을 연출한다. 철쭉과 억새가 만개하는 시기에 걷는다면 더 좋은 길이다. 억새군락은 완만한 능선 사면에 넓게 펼쳐져 있다. 울산 영남알프스 간월재, 경남 합천군 황매산, 강원 정선군 민둥산 등과 함께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억새 명소로 꼽힌다. 철쭉 단지는 2020년 조성됐다. 사하구청은 억새군락지 중 억새가 잘 자리지 못하는 환경이 된 곳에 철쭉을 심었다. 그렇게 자리 잡은 철쭉은 억새와 함께 승학산을 찾는 이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선물한다. 철쭉 단지와 억새군락지 사이로 난 등산로를 따라 억새노을전망대에 오르면 눈앞이 확 트인다. 발밑으로는 학이 날아오르는 듯 고운 능선의 승학산 자락과 억새평원이 내려다보인다. 시선을 올리면 산봉우리 사이사이로 높이 솟아오른 건물들, 더 멀리에는 감천항과 긴 물줄기를 굽이쳐 내려온 낙동강, 낙동강과 만나는 남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삼나무 숲길에선 피톤치드 ‘뿜뿜’
억새노을전망대에서 철쭉 단지와 억새군락지를 거쳐 다시 임도로 접어들면 지그재그 숲길이 이어진다. 본격적인 하산길이다. 하늘을 찌를 듯 위로 쭉 뻗은 삼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숲길 구간에 들어서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 폐부 깊숙이 청량함이 스며든다. 삼나무 숲길 안쪽에는 산책로와 너른 덱 쉼터도 조성돼 있다. 삼나무는 편백나무와 꼭 닮았는데, 뿜어내는 피톤치드도 편백나무 못지 않다. 삼나무 숲길은 8코스의 멋진 피날레를 장식해 준다.
구불구불 길을 걸어 내려오다 길 왼쪽으로 부산일과학고 건물이 보이고, 학교 인근 넓은 공터에는 공사가 한창이다. 전국 최초의 도심 숲속 치유의 숲인 ‘국립 부산 승학산 치유의 숲’으로, 지난해 7월 착공해 내년 초 개장할 예정이다. 전국에 13곳의 국립 치유의 숲이 있지만, 대도시권 도심에 위치한 치유의 숲은 처음이라고 한다. 산림치유센터, 숲속 산책길, 야외 족욕장, 유아숲놀이터, 숲속 쉼터 등이 들어서고, 승학산의 자랑인 삼나무와 억새군락 등의 산림 자원을 활용한 산림 치유 프로그램도 운영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치유의 숲 조성 부지를 지나면 임도 한쪽 옆에 나무 덱길이 이어진다. 덱길 아래엔 계곡이 흐르고 나무 다리가 놓여 있다. 제석골 산림공원이다. 이팝나무와 수국, 산수유나무, 대나무 등이 식재돼 있어 다양한 식물을 볼 수 있고, 계곡을 따라 산책로와 쉼터도 조성돼 있다. 잠시 내려가 물소리와 새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덱길로 다시 돌아와 걸어 내려가면 8코스의 종착점인 동원베네스트 아파트에 도착한다. 동원베네스트 아파트 앞에서 마을버스(사하구 2번)를 타면 부산도시철도 1호선 당리역이나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갈 수 있다. 걷기 앱으로 측정한 8코스 완보 시간은 2시간 31분, 걸음 수는 1만 4037걸음, 거리는 9.55km였다.
2023-07-26 [06:20]
-
15만 장 '푸른 기와' 아래서 무얼 섬겼을까…개방 1년 ‘청와대 탐방’
청와대가 국민 품으로 돌아온 지 1년이 지났다. 지난해 5월 10일 전면 개방된 이래 지난달까지 360만 명이 발걸음을 했다. 70여 년간 대통령 집무·생활공간이었던 청와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와 조선시대까지 다다른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이란 상징은 내려놓았지만, ‘푸른 기와’에는 우리나라의 굴곡진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서렸다.
■ 반짝이는 ‘청기와’
청와대를 관람하려면 먼저 홈페이지(‘청와대, 국민 품으로’)에서 날짜와 시간대를 예약하는 게 좋다. 입구는 ‘정문’과 춘추문을 통해 들어가는 헬기장 옆 ‘37문’ 두 곳이다. 청와대의 중심인 ‘본관’부터 만나고 싶다면 정문을 택하는 게 낫다. 평소 대통령과 각국 정상만 이용할 수 있었던 정문은 들어가는 느낌부터 남다르다. 입구에서 모바일 예약 바코드를 찍고 입장하면, 종합안내소 너머로 푸른 빛깔의 웅장한 팔작지붕이 관람객을 맞는다.
지붕은 작은 햇빛에도 반짝인다. 한 장 한 장 유약을 발라 도자기처럼 구워 낸 기와 덕분이다. 100년을 견딘다는 청기와는 본관 지붕에만 15만여 장이 얹혔다. 푸른 기와에 담긴 정성은 이곳에서 이뤄진 국정의 무게감을 짐작게 한다. 본관 앞 게양대는 2개인데, 하나에만 태극기가 나부낀다. 나머지 하나엔 대통령 존재를 알리는 ‘푸른 봉황기’가 걸렸지만, 대통령실 이전으로 함께 옮겨졌다.
본관 입구로 들어서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화려한 레드카펫이 펼쳐진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들이 방문객과 함께 종종 기념사진을 촬영한 장소여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계단이다. 2층에는 대통령 집무실과 접견실이 온전히 남아 있다.
본관의 서쪽 별채 ‘세종실’과 동쪽 ‘인왕실’에선 청와대 개방 1주년 기념전시(‘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가 한창이다. 청와대를 거쳐간 대통령 12명의 소품을 전시 중이다. 연탄난로·조깅화·원예가위 등 대통령마다 대표 물건이 흥미롭다. 대통령에 앞서 한 개인으로서 생활상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청와대 하면 누구나 본관을 먼저 떠올리지만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노태우 대통령이 1991년 신축하기 전까진 인근 수궁터에 옛 본관이 자리했다. 과거 청와대 일대는 1865년 경복궁 중건과 함께 후원 역할을 하며 ‘경무대’라 불렸다. 일제는 1939년 경무대에 본관 건물을 짓고 조선총독 관사로 썼다. 광복 이후엔 3년 동안 미군정 사령관 관저였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면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했다.
본관 신축으로 쓰임을 다한 옛 본관 건물은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1993년 철거됐다. 반세기 만에 사라진 경무대 건물 자리엔 당시 기와 장식물인 ‘절병통’만 덩그러니 남아 옛 위치를 전한다.
관저는 아쉽게도 내부를 둘러볼 수 없다. 창문을 통해 실내 모습이 조금 들여다 보이는 정도다. 대신 춘추관 2층 브리핑룸에 전시 중인 청와대 식기·가구를 보며, 관저 생활을 짐작해 볼 수 있다.
■ ‘경무대’의 기억
청와대란 이름은 윤보선 대통령의 작품이다. 그는 1960년 4·19혁명으로 제2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일제와 자유당 독재의 잔재를 씻는다는 취지로 기존 경무대 명칭을 ‘푸른 기와집’이란 의미의 청와대로 바꿨다.
개명 이후 60여 년이 흐른 현재에도 청와대 경내엔 몇몇 유적이 남아 옛 경복궁 후원이자 경무대 시절 이야기를 전한다. 관저 인근 ‘침류각’은 1900년 전후 건립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전통가옥 양식의 누각이다.1989년 관저를 신축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뜻의 침류각은 경복궁 후원에서 연회를 베푸는 용도였다.
‘오운정’은 침류각과 함께 서울시 유형문화재이자 비슷한 연대에 건립된 정자다. 관저 입구에서 뒷산 방향으로 가파른 산책로를 10분 정도 오르면 이름대로 ‘5색 구름’처럼 반가운 정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역시 관저 신축으로 옮겨온 자리다. 침류각과 달리 오운정은 현판이 남아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다.
청와대 경내 문화재 3개 중 으뜸은 오운정에서 3분 거리인 ‘불상’(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이다. 멀리 경주에 있던 석불이 어떻게 청와대 뒷산에 위치하게 됐을까. 뜻하지 않은 여정엔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서려 있다. 9세기 통일신라시대 경주의 한 사찰에 자리를 잡은 이 불상은 1913년께 서울 남산 왜성대 조선총독 관저로 옮겨오게 된다. 이후 1939년 경무대 총독 관저 시절 다시 이사를 한 뒤 1989년 대통령 관저를 새로 지으면서 지금의 자리에 마지막 터를 잡았다.
불상의 표정은 온화하기 그지없다. 석굴암 본존불의 양식을 계승해 얼굴과 몸, 의복과 손 모양까지 닮았다. 특히 청와대 불상은 고대 석불 가운데 드물게 외양이 온전한 형태로 보전돼, 2018년 보물로 승격됐다.
통일신라시대 왕족과 귀족,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 해방 이후엔 대한민국 대통령들까지. 속세와 상관없이 두루 섬김을 받아 온 불상의 세월은 어떠했을까. 1000년이 훌쩍 넘는 질곡의 시간을 묵묵히 품었다고 생각하니 불상의 자태가 더욱 자비로워 보인다.
■ 자연 속을 거닐며
북악산 자락에 위치한 청와대는 주변 자연도 매력적이다. 경내에는 3개 정원이 있는데 그중 ‘녹지원’은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꼽힌다. 120여 종의 나무와 함께 역대 대통령의 기념식수가 자란다. 녹지원 한가운데 버티고 선 ‘반송’은 청와대 내 천연기념물 노거수 6그루 중에서도 으뜸이다. 이름처럼 둥근소반을 닮은 모습은 웅장미와 단아미를 동시에 지녔다.
1968년 1000평 부지에 잔디를 심으면서 조성된 녹지원은 어린이날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국민들에게도 익숙하다. 김영삼·문재인 대통령 때는 인근 주민들을 초청해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녹지원에서 본관으로 걷다 보면 ‘소정원’을 만난다. 이름처럼 아기자기한데, 본관쪽 정원 입구에 돌로 세운 ‘불로문’이 있다. 문을 지나면 무병장수한다는 속설이 있어 관람객들에게 인기다. 2014년엔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2017년엔 김정숙 여사가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와 함께 불로문을 지나며 소정원을 거닐기도 했다.
경내 곳곳엔 작은 개울과 연못도 있다. 북악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은 물고기의 몸짓마저 평화롭게 만든다. 드문드문 야생화를 구경하다 보면 의외의 장소에서 대통령 기념수를 만나는 재미도 있다.
여유가 있다면 청와대 뒤편 백악정과 청와대 전망대에 올라 볼 만하다. ‘북악산 한양도성 탐방로’ 구간 중 하나로, 지난해 청와대를 개방하면서 ‘청와대~북악산’ 구간도 함께 열렸다. 등산로 출입구 3곳 중 춘추관 쪽에서 출발해, 백악정을 지나 청와대 전망대를 찍고 반대편 칠궁 뒷길 쪽으로 내려오는 데 1시간 정도면 넉넉하다. 청와대 경계 성벽을 따라 이어진 등산로 곁에는 삼엄한 철조망과 함께 간간이 초소·진지도 눈에 띈다. 청와대가 최근까지 국가보안시설이었음을 보여 주는 흔적이다.
‘청와대 전망대’에 오르면 가까이 본관 청기와 지붕부터 멀리 광화문광장과 남산, 관악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궂은 날씨에도 왼쪽으로 롯데월드타워, 오른쪽에는 여의도 63빌딩까지 두루 내다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국민을 굽어살피기 알맞은 장소다. 74년 동안 청와대를 거쳐 간 대통령은 모두 12명. 이들은 청와대 뒷산에 올라 무엇을 생각했을까.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2023-06-29 [06:20]
-
[욜로 갈맷길] ⑦ 다대포 선셋 피크닉-태양의 종점 향해 낙동강 하구를 걷다
부산에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바로 ‘욜로 갈맷길’이다. 기존 갈맷길(9개 코스 23개 구간 278.8km) 중에 ‘부산 사람이라면, 부산에 오면 꼭 한 번 걸어 봐야 할 길’ 콘셉트로 10개 코스(총 100km)를 추리고 코스별 테마도 입혔다. 갈맷길의 축소판이다. 이번엔 7코스 ‘다대포 선셋 피크닉’을 걸었다. 낙동강 강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어귀를 걸으면, 매립 위기를 딛고 서부산을 대표하는 시민 친수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다대포해변공원과 뭇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고우니생태길에 이른다. 낙동강 하구의 자연, 아름다운 풍광을 벗 삼아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드넓은 다대포해수욕장 백사장을 마주하면, 동부산 해수욕장에서 느낄 수 없었던 한갓짐과 색다른 매력에 빠져든다. 낙동강 하구와 다대포해수욕장에서 볼 수 있는 붉게 타오르는 낙조는 7코스의 절정이다.
■강변길 걷다 ‘부네치아’와 조우
욜로 갈맷길 7코스는 사하구 신평동교차로에서 다대포해수욕장까지 7km 구간이다. 낙동강 하구를 따라 평탄하게 뻗은 산책로를 걷는 길이어서 걷기에 부담 없는 코스다. 출발점인 신평동교차로 강변덱까지는 부산도시철도 1호선 신평역에서 내려 9번 출구로 나와 강변 쪽으로 6~7분 정도 걸으면 된다.
강변덱에서 강물이 바닷물을 만나러 가는 방향을 따라 걷는다. 제방 사면에 조성된 산책로는 다대포 방면으로 쭉 뻗어 있다. 깔끔하게 조성돼 걷기 좋다. 이 길은 ‘노을나루길’이라는 예쁜 이름을 갖고 있다. 사상구 엄궁동에서 다대포해수욕장까지 12km의 산책로로, 해 질 무렵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할 수 있어 붙은 이름이다. 산책로를 느긋하게 걷다 보면 을숙도대교의 웅장한 골격에 금세 다가선다. 을숙도대교 램프 아래 구간을 지나다 보면, 길(강변대로) 건너편에 작은 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조경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건널목을 건넌다. 을숙도대교 램프 구간 하부 일대에 조성된 ‘66호 광장’이라는 도시숲이다. 사하구청이 도심 속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조성했다. 공원 내에 산책로가 이어져 있고 정자도 보인다. 무궁화와 곰솔, 단풍나무, 이팝나무, 팽나무, 회화나무, 왕벚나무, 가시나무 등이 무리 지어 자란다. 공원 가장자리에는 은행나무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들이 늘어서 있다. 공장 지대와 대로변의 삭막한 공간에 조성돼 우거진 녹음이 더욱 청초하게 느껴진다.
낙동강변 쪽으로 건널목을 다시 건너지 말고 그길로 쭉 걸어 내려간다. 강변환경공원 파크골프장을 지나면, 장림포구가 나온다. 장림포구는 ‘장림포구 명소화 사업’을 통해 관광 명소로 탈바꿈 중이다. 어항이 정비됐고, 해양보호구역 홍보관, 문화촌, 놀이촌, 맛술촌, 도시숲 등이 들어섰다. 물 위에 떠 있는 작고 아기자기한 배들과 예쁜 물감을 풀어 놓은 듯한 형형색색 점포들(한지·도기 공방, 드론 촬영, 카페 등)의 풍경이 이탈리아 베네치아 무라노섬과 닮았다고 해서 ‘부네치아’(부산의 베네치아)로 불린다. 문화촌 공간에는 물결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조각배 조형물 등이 반긴다. 한쪽에서는 공사가 진행 중인데, ‘레인보우 브릿지’라는 이름의 다리를 놓는 공사다. 장림포구는 U자 형태로, 건너편으로 가기 위해서는 포구 첫머리나 끝으로 가야 한다. 관광객들의 이동 편의를 위해 포구 가운데에 20m 높이의 아치형 보행교를 놓고 있다. 무지개 색상으로 꾸며지며, 야간에도 무지개 경관 조명을 밝힌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장림포구를 돌아 나오며 마지막 지점에 있는 부네치아 선셋 전망대에 잠시 들른다. 3층 옥상전망대까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거나,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완만한 계단을 오르면 된다. 전망대에 오르면 ‘BUNEZIA’ 일곱 글자에 무지개 일곱 빛깔을 입힌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낙동강 쪽을 조망하면 낙동강 하구 모래톱 중 하나인 맹금머리등이 눈에 들어온다.
부네치아 선셋 전망대에서 내려온 뒤에는 가장 먼저 만나는 건널목에서 낙동강변 쪽으로 건너야 한다. 다음 경유지인 고니나루쉼터로 가기 위해서다. 건널목이 드문드문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니나루쉼터에는 낙동강 하구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도록 넓은 나무 덱이 설치돼 있고, 조경이 잘 가꾸어져 있다. 겨울철새 큰고니 두 마리가 마주 보며 하트 모양을 하고 있는 조형물은 고니나루쉼터가 자랑하는 포토존이다. 큰고니는 같은 오리과에 속한 고니와 함께 흔히 백조로 불린다. 부부의 연을 맺으면 평생 사랑을 나누며 살아간다고 한다.
■‘게 구멍 숭숭’ 생명 살아 숨 쉬는 갯벌
고니나루쉼터에서 낙동강 하구를 바라보면 섬처럼 보이는 모래톱들이 가까이 보인다. 쉼터를 지나 다대포해수욕장 쪽에 가까워질수록 모래톱들이 더 가까이 보인다. 낙동강 하구에는 일곱 개의 모래톱이 있다. 진우도, 대마도, 장자도, 신자도와 백합등, 도요등, 맹금머리등이다. 지적도에 등재되면 ‘도’, 안 되면 ‘등’인데, 등은 수위에 따라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한다. 이들 모래톱의 지형은 낙동강으로부터 유입된 퇴적물이 바다의 밀물, 썰물과 만나 이동하고 쌓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지금도 살아 움직이듯 변화하고 있다. 7코스를 걸으면, 가까이에는 맹금머리등과 백합등이, 시정이 좋을 땐 도요등과 장자도, 신자도까지도 눈에 들어온다. 모래톱 위에는 많은 철새들을 볼 수 있는데, 이들 모래톱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섞이는 기수 지역에 있어 생물 다양성이 풍부해 철새들의 훌륭한 보금자리다.
고니나루쉼터를 지나 강변길을 걷다가 지칠 만한 순간, 길(다대로) 건너 언덕에 낙동강 하구 아미산전망대가 보인다. 아미산전망대까지는 아주 가파른 덱 계단을 올라야 한다. 아미산전망대는 7코스의 경유 코스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거치지 않아도 되지만, 전망대에 오르면 낙동강 하구의 모래톱들을 모두 조망할 수 있어 욕심을 내 덱 계단을 오른다. 아미산전망대에 오르면 3층 실내 전망대에서, 또는 건물 옥상에서 낙동강 하구를 확 트인 시야로 조망할 수 있다. 낙동강 하구의 광활한 모래톱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낙조를 보기 위해 찾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아미산전망대에서 내려와 다대포해수욕장 쪽으로 걸으면 노을정휴게소가 나온다. 노을정은 고우니생태길 끄트머리에 설치된 작은 정자다. 노을정휴게소를 지나면 바로 고우니생태길이다. 사하구의 마스코트인 ‘고니’에서 따온 이름이다. 넓은 갯벌과 갈대숲 사이에 나무 덱이 설치돼 있고, 덱 곳곳에 전망대와 쉼터가 있다. 덱 아래를 내려다보면, 갯벌이 살아 숨 쉰다. 작은 구멍에서 기어 나온 게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집게 다리를 모았다 펼쳤다를 반복하는 모습이 단체로 춤을 추듯 우스꽝스럽지만 깜찍하다. 바닷물이 고인 곳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떼 지어 다닌다.
고우니생태길과 다대포해변공원은 서로 연결돼 있으며, 다대포해수욕장의 넓은 백사장 뒤쪽에 나란히 자리한다. 다대포해변공원은 소나무가 많아 사계절 푸름을 잃지 않는다. 많은 시민들이 소나무 아래에서 돗자리를 깔아 놓고 소풍을 즐기고 있다. 공원 가운데로는 해수천이 흐른다. 공원 한편엔 ‘다대포 매립 백지화 기념비’가 굳건히 서 있다. ‘개발의 미명하에 훼손될 다대포 매립을 주민들이 저지했다’ 기념비 건립 취지가 쓰여 있다. 다대포 매립이 진행됐다면 고우니생태길과 갯벌이 남아 있지 않았을 것 같아 기념비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다대포해변공원에는 세계 최대 바닥 분수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다대포 꿈의 낙조 분수’가 있다. 공원 입구 광장에 있는 음악분수대는 밤이면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음악과 함께 장관을 연출한다.
낙동강 하구와 고우니생태길을 배경으로 한 낙조는 예술 작품 같다. 일몰 시간대에 맞춰 걸으면 좋은 이유다. 걷기 앱으로 측정한 7코스 완보 시간은 2시간 17분, 걸음 수는 1만 6129걸음, 거리는 11.29km였다. 아미산전망대에 들르고, 고우니생태길과 다대포해변공원을 두루 걸었더니 거리와 시간이 꽤 늘었다.
2023-06-28 [06:37]
-
유네스코도 인정한 ‘한국의 서원’, 어떤 가르침이 스몄을까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치기 전인 2019년 여름, 우리나라엔 큰 경사가 있었다. ‘한국의 서원’이 국내 14번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이다. 조선시대 지방 유림들이 세운 교육기관 정도로만 알았던 서원이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 받은 순간이다.
서원 하면 대개 도산서원을 먼저 떠올리지만, 맏이는 건립연대가 가장 빠른 경북 영주 ‘소수서원’(1543)이다. 이와 함께 경남 함양 ‘남계서원’(1552), 경북 경주 ‘옥산서원’(1572), 경북 안동 ‘도산서원’(1574)과 ‘병산서원’(1613), 전남 장성 ‘필암서원’(1590), 대구 달성 ‘도동서원’(1605), 전북 정읍 ‘무성서원’(1615), 충남 논산 ‘돈암서원’(1634) 등 9곳이 세계유산목록에 올랐다.
4년이 흘러 코로나 빗장이 풀린 지금, 뒤늦게나마 서원의 가치를 찾아나섰다. 건립연대 순으로 소수·남계·옥산·도산서원을 방문했다. 하나같이 자연 속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이들 서원은 오랜 역사만큼 넓고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 영주 소수서원
소수서원이 있는 경북 영주시 순흥면 일대는 선비문화를 알리는 각종 시설이 들어서 있다. 매표소부터 소수서원 입구까지 100여m는 울창한 솔밭이다. 때마침 정문(지도문) 안 강학당에서 경전을 읽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강학당 처마에 내걸린 현판엔 소수서원의 옛 이름 ‘白雲洞(백운동)’이란 글자가 선명하다. 소수서원은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시대 유학자 안향을 기리기 위해 사당과 함께 백운동서원(1543)을 건립한 것이 시초다. 이어 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의 청원으로 1550년 명종이 소수서원이란 친필 현판을 하사하며 최초 ‘사액서원’이 됐다. 요즘으로 치면 첫 국가공인 사립대학인 셈이다.
무릇 공부란 글을 통한 배움이 다가 아니듯, 서원의 궁극적인 목적도 성인(聖人)을 길러 내는 데 있었다. 이에 따라 서원의 내부도 학문을 닦는 ‘강학 공간’, 존경하는 스승의 신위를 모시고 제를 올리는 ‘제향 공간’, 유생들이 휴식하며 교류하는 ‘유식 공간’으로 나뉜다.
소수서원 역시 공간적 구분은 있지만, 유생들의 기숙사나 장서각(도서관) 등 주요 건물의 배치는 자유롭다. 마당 곳곳에 놓인 정료대(조명시설), 관세대(대야 받침대), 일영대(해시계) 등의 유물을 통해 당시 유생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유식 공간인 경렴정과 취한대는 담장 밖에 있다. 이들 정자는 죽계천을 사이로 서로에게 그림이 되어 준다.
인근 소수박물관에선 안향 초상을 비롯해 여러 유물을 만나 볼 수 있는데, 리모델링 공사로 아쉽게도 연말까지 휴관이다. 대신 별관에서 ‘현판’을 주제로 특별기획전을 열고 있다.
■ 함양 남계서원
조선시대 세 번째(남한에선 두 번째)로 건립된 남계서원은 이름처럼 경남 함양군 수동면을 따라 흐르는 ‘남계(남강의 옛 이름)’ 곁에 들어섰다. 홍살문을 지나면 대문격인 2층 누각(풍영루)이 웅장한 모습으로 맞이한다. 누각 위에 오르면 앞쪽으로 탁 트인 들판과 지리산자락, 뒤편으로 서원 내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남계서원은 강학·제향·유식 공간이란 한국 서원의 기본 구조를 정착시켰다. 출입문을 들어서면 강당(명성당)을 중심으로 좌우에 유생들이 생활하며 공부하는 동재·서재, 뒤편에는 사당이 자리한다.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 배치인데, 이후 건립된 서원은 대부분 같은 형식을 따랐다.
예부터 함양은 ‘좌안동 우함양’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인재가 많이 배출됐다. 특히 조선조 5현 가운데 하나인 일두 정여창은 ‘우함양’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힌다. 그래서일까. 선생을 모신 사당은 명성당 뒤쪽 한참 높은 경사지에 위치한다. 가파른 층층계단 수십 개를 올라야 비로소 선생의 위패와 영정을 만날 수 있다.
사당 입구 내삼문에서 굽어보는 풍광은 또 다른 감흥으로 다가온다. 들판과 남강 너머로 겹겹이 포개진 봉우리의 자태는 자연의 이치와 호연지기를 일깨운다.
남계서원은 정유재란 때 소실됐다가 1605년 정여창 선생의 생가 주변에 복원됐고, 1612년 옛터인 지금의 자리로 다시 옮겼다. 선생의 기운을 좀 더 느껴보고 싶다면 인근 하동 정씨 집성촌인 개평마을에 있는 ‘일두고택’에 들러보길 권한다.
■ 경주 옥산서원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주차장에서 정문(역락문)까지 오솔길로 이어지는데, 길 바로 옆을 따라 흐르는 자계 물소리에 걷는 동안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정문으로 들어서기 전 자계천 한가운데 있는 너럭바위와 주변 풍경이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머물던 이언적은 이 바위를 ‘세심대(洗心臺)’라 이름 붙였다. 바위에 새긴 글씨는 퇴계 이황이 썼다고 한다.
물길은 서원 내부로도 이어진다. 정문 안으로 들어서자 작은 도랑이 발 앞을 가로지른다. 한두 걸음이면 족한 작은 돌다리를 건너면 2층 누각(무변루)이 맞이한다. 유생들의 휴식 공간인 무변루에선 세심대를 타고 흐르는 폭포 소리가 유난히 가깝게 들린다.
마당을 가로질러 서원의 중심엔 ‘옥산서원’ 현판이 걸린 구인당이 자리한다. 그 옛날 유생들은 구인당에서 열띤 강의와 토론을 벌인 뒤, 맞은편 무변루로 자리를 옮겨 자연을 벗삼았으리라. 무변루·구인당 현판은 한석봉, 옥산서원은 추사 김정희가 썼다.
옥산서원은 내부를 둘러보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주차장 인근 유물관은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다. 발걸음을 돌리기 아쉽다면 700m쯤 떨어진 이언적의 별장 ‘독락당’에도 가 볼 만하다. 서원 북쪽으로 물길을 거슬러 10분쯤 오솔길을 걸으면 자계천 맞은편으로 고택이 모습을 드러낸다. 옥산정사로도 불리는 독락당은 특히, 나무 살창을 내어 계곡을 내다볼 수 있도록 한 담장이 인상적이다.
■ 안동 도산서원
한국 서원의 역사에서 퇴계 이황은 상징적인 인물이다. 16세기 중후반 서원 건립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소수서원이 배출한 퇴계의 문인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면서 전국적으로 서원 수가 급격히 늘어났다. 경북 안동시 도산면에 자리한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이 지은 도산서당에서 출발했고, 선생을 기리는 서원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도산서원은 주변 풍광부터 남다르다. 드넓은 낙동강 물줄기를 마주하고, 수백 년 된 왕버들·느티나무가 서원 입구를 지킨다. 강 건너엔 ‘시사단’이 버티고 섰다. 1792년 정조는 퇴계 선생을 기리기 위해 도산서원 앞 지금의 시사단 자리에서 특별 과거시험(별시)을 열어 영남지역 인재를 선발했다. 이를 기념한 시사단은 1975년 안동댐 건설로 수위가 높아지자 10m 높이의 석축을 쌓아 그 위로 옮겼다.
도산서원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도산서당이 나온다. 퇴계는 1561년 서당을 지어 머물면서 만년에 제자들을 가르쳤다. 제자들이 늘어나자 서당 마루를 확장했는데, 그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바로 앞 네모반듯한 작은 연못(정우당)엔 군자를 닮은 연꽃이 자란다.
서당 뒤편으로는 퇴계 사후 건립한 전교당(강당)과 동재·서재, 광명실(서재) 등 서원의 주요 건물들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서원 왼쪽 유물전시관(옥진각)에는 퇴계 선생의 일대기와 함께 벼루·빗자루·지팡이·방석 등 다양한 유품을 살펴볼 수 있다.
느린 걸음으로 만난 한국의 서원, 사람됨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2023-06-15 [06:19]
-
[욜로 갈맷길]⑥‘피란 수도 부산’ 발자취 따라 걷는 원도심 해안길
부산에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바로 ‘욜로 갈맷길’이다. 기존 갈맷길(9개 코스 23개 구간 278.8km) 중에 ‘부산 사람이라면, 부산에 오면 꼭 한 번 걸어 봐야 할 길’ 콘셉트로 10개 코스(총 100km)를 추리고 코스별 테마도 입혔다. 갈맷길의 축소판이다. 6코스 ‘영도 흰여울 한 바퀴’를 소개하는 차례다. 6코스는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와 문화가 공존한다. 영도대교와 흰여울 문화마을에서는 한국전쟁과 피란 시절의 애잔한 역사와 문화를, 깡깡이 예술마을에서는 우리나라 조선업과 수리조선업의 발상지로서 그 흔적을 따라가 볼 수 있다. 중리로 가는 해안길은 자갈을 밟으며, 때론 철제·나무덱 계단을 오르내리며 아름다운 바다 풍광을 벗 삼아 걸을 수 있다. 아미르공원과 국립해양박물관이 있는 동삼혁신도시 일대에서는 해양 수도 부산의 진면목과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다.
■‘깡깡’ 수리조선 1번지를 걷다
욜로 갈맷길 6코스는 영도구 대교동 영도대교에서 동삼동 아미르공원·국립해양박물관까지 10.9km 구간이다. 욜로 갈맷길 10개 코스 중 2코스(16km)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출발점인 영도대교까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거나, 부산도시철도 1호선 남포역에서 내려 6번 출구로 나와 잠깐 걸으면 된다. 영도대교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완공된 연륙교로, 다리 상판 일부를 들어 올려 배가 다닐 수 있도록 한 국내 최초의 도개교다. 6·25전쟁 시기에는 피란민들이 이산가족을 찾기 위해 만남의 장소로 이용됐던 곳으로 아픈 역사와 애환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영도대교 끝자락엔 가수 현인의 동상과 노래비가 있다. ‘굳세어라 금순아’ ‘신라의 달밤’ 등 주옥같은 곡들을 남긴 현인은 영도가 고향이다. 영도경찰서를 지나 오른쪽으로 길모퉁이를 돌아가면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는 작은 물양장이 나온다. 물양장 일대는 ‘대풍포 매축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매축권을 얻어 포구를 메워 시가지로 만든 곳이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영도는 조선업, 도기산업, 제염업 등 근대 산업의 중심지였다. 또 부산에서 가장 매출 규모가 컸던 목도시장이 있었고 전차가 다니고 극장이 있었으며, 유곽이 성업했던 상업의 중심지였다.
물양장 주변으로는 선박 수리·부품업체들이 가득하다. 200여 곳에 달한다고 한다. 수리조선소 10여 곳도 여전히 운영 중이다. 근대 조선산업 발상지, 수리조선 1번지로서 명성을 실감한다. 이 일대는 ‘깡깡이 예술마을’로도 불린다. 수리조선소에서 녹슨 배의 표면을 망치로 두드리며 벗겨 낼 때 ‘깡깡’ 소리가 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문화예술마을로 거듭났다. 마을 곳곳에 페인팅 아트, 키네틱 아트, 라이트 프로젝트 등 예술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깡깡이마을 거리박물관에서 삼화조선, 현광산업, 선진조선, 마스텍중공업을 잇따라 지난다. 대동아파트와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부산지사를 거쳐 물양장을 돌아 부산항국제선용품유통센터 쪽으로 걷는다. 센터 앞 횡단보도를 건넌 뒤 대평초등학교 방향으로 걸어간다. 아파트와 빌라, 식당이 모여 있는 곳 사이사이로 난 길로 걷다 영도고가대교 횡단보도를 건너 반도보라아파트에 다다른다. 반도보라아파트를 오른쪽으로 끼고 해안산책로 방향 이정표를 따라 아랫길로 조금만 걸으면 절영해안산책로가 있고, 윗길로 부산보건고등학교를 지나 절영로를 따라 잠시 걸으면 흰여울 문화마을과 만난다. 마을 초입의 하얀색 건물이 마을 안내센터다.
흰여울 문화마을을 본격적으로 걷기 전, 흰여울 문화마을과 절영해안산책로를 멀리서 함께 사진으로 담는다. 절영해안산책로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방파제와 호안 위로 걸어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오르면 흰여울 문화마을과 절영해안산책로를 한 장의 사진에 모두 담을 수 있다.
■바다 맞닿은 피란촌에 꽃핀 문화예술
가파른 해안 절벽 위에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흰여울 문화마을. 피란민들의 애잔한 삶이 녹아나 있는 곳이다. ‘흰여울’이라는 이름은 영도구 봉래산 기슭에서 굽이쳐 내려오는 물줄기가 마치 흰 눈이 내리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졌다. 낡은 집을 리모델링하고 골목과 담벼락 곳곳에 문화와 예술을 입혀 독창적인 문화예술 마을로 거듭났다. 골목골목에 아기자기한 카페와 공방, 독립서점, 아이스크림 가게 등이 자리한다. 느릿느릿 걷는 골목마다 파스텔 계통의 은은한 색상을 입은 건물, 벽화들과 마주한다. 골목 사이 푸른빛 바다가 배경이 되면 장관을 이룬다. 바다를 직접 조망할 수 있는 카페나 집 주변에는 예쁜 꽃들도 피어 화사함을 더한다. 지나치기엔 아쉬운 포토존도 많다. 꼬막 계단, 영화 변호인 촬영지, 이송도전망대 등이 손꼽히지만, 걷다가 찍는 사진 하나하나가 예술이다.
마을 아래엔 산책로가 해안가를 따라 이어진다. 절영해안산책로다. 마을과 산책로를 잇는 계단은 모두 4개다. 맏머리 계단, 꼬막 계단, 무지개 계단, 피아노 계단이다. 마을 속에 들어가 골목길을 누비다, 바다와 더 가까이 맞닿은 곳을 걷고 싶다면 산책로로 내려가 걸어도 좋다. 계단이 매우 가팔라 오를 땐 숨이 차지만, 마을의 골목길과 해안산책로를 함께 걸을 수 있다는 보람이 크다. 절영해안산책로는 마을 아래에서 시작해 중리 해변까지 이어진다. 3km 거리다. 마을과 벼랑 아래 맞닿은 산책로는 흰여울 해안터널 앞까지 약 900m 정도다. 파도 소리를 벗 삼아 평탄하게 뻗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시선은 어느새 바다에 머문다. 부산항을 오가는 선박들이 닻을 내리고 머무르는, 영도에서만 볼 수 있는 묘박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현재 꼬막 계단~무지개 계단 구간 산책로는 재포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해당 구간은 걸을 수 없어 꼬막 계단을 이용해 마을로 올라가야 한다. 마을 끝 지점 이송도전망대에서 피아노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흰여울 해안터널 앞이다. 흰여울 해안터널은 마을 아래 산책로를 중리 해변까지 이어주기 위해 암벽을 뚫어 2018년 개통했다.
■파도 소리 벗 삼아 걷는 해안길
흰여울 해안터널을 지나면 자갈이 깔린 해안길이 이어진다. 바닷물과 먼 쪽 돌일수록 뾰족뽀족해 걷기가 편안하진 않다. 하지만 자연과 더욱 가까워지는 길이다. 해녀촌을 지나면 나무덱으로 된 365계단이 나온다. 365계단을 오르면 차가 다니는 절영로가 나오기 때문에 오르지 말고 해안을 따라 계속 걸으면 된다. 365계단 앞을 지나면 시멘트길, 돌계단 등 포장된 산책로가 이어진다. 걷다 보면 하늘전망대와 75광장, 85광장 이정표가 차례로 나온다. 계단을 오르면 절영로에 다다르는 곳들이다. 절영로를 따라 걸어도 되지만, 해안산책로의 참맛을 계속 느끼고 싶다면 해안길 걷기를 추천한다. 하늘전망대와 75광장 이정표 사이 해안길에선 대마도 전망대와 빨간색 출렁다리를 만난다. 대마도 전망대에서는 날씨가 좋거나 미세 먼지가 적은 날 대마도를 볼 수 있다.
75광장 이정표 이후로는 산책로의 난도가 높아진다. 가파른 철제 계단과 나무덱 계단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반복한다. 발을 헛디딜까 조바심이 날 정도로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숨도 많이 찬다. 85광장 이정표를 지나 잠깐 걸으면 중리 해변이다. 중리노을전망대를 지나면 중리선착장이 나온다. 중리선착장에서 절영로를 따라 걸으며 조양비취맨션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돌아 걷는다. 롯데캐슬블루오션 아파트 가장자리를 따라 걷다 동삼교회 앞 삼거리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 한국해양대와 하리 방면으로 쭉 걸어 내려간다. 해양대삼거리에서 동삼동패총전시관과 한국해양대 입구를 거쳐 해양로를 따라 6코스 종착점인 아미르공원과 국립해양박물관 쪽으로 걷는다. 국립부산해사고와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을 지나면 아미르공원 표지석이 보인다. 공원 벤치에 앉아 우거진 녹음을 바라보고 있으면, 긴 여정으로 생긴 피로가 싹 가신다. 공원 옆 국립해양박물관으로 향한다. 6코스 종착점이다.
걷기 앱으로 측정한 6코스 완보 시간은 3시간 9분, 걸음 수는 2만 521걸음, 거리는 13.96km였다. 역사와 문화·예술의 향기를 따라 마을 골목골목을 꼼꼼히 둘러보다 보니 거리가 꽤 늘었다.
2023-05-31 [07:00]
-
우리 품으로 돌아온 ‘담장 너머 그 집’…부산·경남 관사 여행
지난해 말 방영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주요 촬영지가 옛 부산시장 관사인 ‘열린행사장’으로 알려지면서, 옛 부산시장 관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부산시장 관사는 현재 야외 공간만 시민들에게 개방돼 있다. 전국의 숱한 관사들이 민선 단체장 시대를 맞아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 잔재라는 지적 속에 문화 공간, 어린이 도서관, 역사자료관, 어린이집 등으로 시민 품으로 돌아갔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부산시도 본관 건물의 리모델링을 거쳐 옛 부산시장 관사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완전 개방하겠다고 밝혀 기대감이 크다. 경남도는 앞서 도지사 공관을 개방한 데 이어 지난해 9월 관사까지 개방하며 시민 환원 작업을 마무리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경남도지사 관사와 변신을 준비하는 부산시장 관사를 찾아 떠났다.
■경남도지사 관사, 복합문화공간 변신 성공
경남도지사 공관이었던 ‘경남도민의집’과 지난해 9월 개방된 경남도지사 관사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와 카페·맛집으로 유명한 창원 용호동 가로수길의 중심부에 있다. 경남도민의집에는 입구 앞쪽에 주차 공간이 있지만 주차 면수가 많지는 않다. 자가용을 이용해 방문하려면 인근 용지어울림동산 주차장, 용지동 행정복지센터 주차장, 용남초등학교 옆 공영주차장 등을 이용하면 된다.
1983년 7월 경남도청이 부산에서 경남 창원으로 신축 이전하면서 이듬해 4월부터 경남도지사가 이곳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접견, 회의 주재 등 도지사의 집무실로 사용됐던 공관은 2009년 ‘경남도민의집’으로 개방됐다. 경남도민의집 본관 건물은 경남도의 과거와 현재를 알리는 도정 역사실·도정 홍보실 등으로 쓰이다, 최근에는 추가 개방된 도지사 관사와 함께 각종 공연·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남도민의집 입구에서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면 왼쪽엔 정원과 산책로가 있고, 오른쪽엔 2층 건물인 경남도민의집 본관이 자리한다. 정원엔 역대 도지사들의 기념식수들이 있다. 본관 입구 현수막은 오는 7월 22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본관 앞뜰에서 ‘관사 음악회’가 열린다고 안내한다. 본관 로비 작은 탁자 위에는 ‘듣고 싶은 곡을 적어 주세요’라고 적힌 노트가 올려져 있고, 노트엔 방문객들의 신청곡들이 적혀 있다. 이달 말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7~8시 작은 음악회가 진행 중이다.
본관 로비와 앞뜰이 음악으로 물들고 있다면, 내부는 미술 작품들로 채워졌다. 경남도는 도지사 관사를 개방한 뒤 약 5만 명이 방문했다며 이를 기념해 ‘경남도 소장 미술품 특별전-고향의 봄’을 이달 말까지 진행 중이다. 경남도민의집 본관과 경남도지사 관사 내부에는 경남도립미술관 소장 작품들과 미공개 작품, 아마추어 작가 입상 작품이 전시돼 있다. 1960년대부터 지난해 작품까지 서양화, 동양화, 서예, 사진 등 86점이다. 연회장이었던 본관 1층 환주당에는 특별전의 주제 작품인 김창락 작가의 ‘고향의 봄’을 비롯해 저명 작가의 작품들(9개)이 전시돼 있다.
홍미옥 전시해설사는 “작품 ‘고향의 봄’은 홍난파가 작곡하고, 이원수 작가가 가사를 쓴 국민 동요 ‘고향의 봄’의 노랫말을 떠올리며 그린 그림으로, 1985년 경남도청을 건립한 금강개발이 경남도에 기증한 작품”이라며 “경남도지사 공관에 걸려 있다가 2013년부터 경남도립미술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본관 1층 도지사 집무실과 회의실에는 역대 도지사들이 사용했던 책상·의자 등 집기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벽면엔 특별전 미술 작품들이 걸려 있다. 집무실에는 도지사가 사용했던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1·2층 집무실과 회의실, 접견실을 잇는 복도 벽면과 2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의 한쪽 벽면에도 미술 작품들이 가득하다.
경남도민의집 본관을 나서 비탈진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청량한 대나무 숲과 대나무를 겹겹이 이어 붙인 대나무 쪽문에 다다른다. 쪽문 안쪽에 도지사가 거주했던 관사가 있다. 관사는 2층짜리 단독 주택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일반 가정집에 온 느낌이다. 도지사가 머물렀을 당시의 가구와 집기가 그대로 남아 있고, 곳곳에 미술 작품이 전시돼 있다.
경남도민의집 본관과 도지사 관사는 다양한 전시회와 공연, 교육 프로그램으로 끊임없이 채워지는 중이다. 토·일요일에는 프리마켓이 열린다. 오는 7월 8일까지 매주 토요일 ‘주말 예술 소풍’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예술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단순히 휴식과 산책을 위한 공간에 머물지 않고, 문화와 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경남도민의집과 도지사 관사 개방 시간은 실내는 오전 9시~오후 8시, 야외는 오전 9시~오후 9시다. 월요일은 쉰다. 공연·전시, 교육 프로그램 일정을 미리 확인하고 방문한다면 더욱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부산시장 관사, 내년 초 완전한 시민 환원
부산 수영구 남천동에 있는 부산시장 관사는 현재 ‘열린행사장’이라는 이름으로 야외 공간만 개방돼 있다. 얼마 전 부산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5명이 관사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했고, 7명은 관사의 위치를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나이가 지긋한 시민 중에는 직접 가본 경험은 없더라도 ‘KBS 뒤쪽 전두환 별장’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꽤 있다.
열린행사장으로 가려면, 부산도시철도 2호선 남천역에서 내려 KBS부산방송총국 입구에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뒤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 열린행사장 방문자를 위한 별도의 주차 공간은 없다. 열린행사장 안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에 작은 주차 공간이 있는데, 도서관을 이용하는 경우에만 주차가 가능하다.
열린행사장 입구에 닿으면 하늘색 철문에 눈길이 머문다. 단절의 이미지가 강하고, 위엄이 느껴진다. 열린행사장은 관사 본관과 관리동, 산책로, 잔디정원, 전망덱, 쉼터, 연못 등으로 이뤄져 있다.
둘러보기 전, 열린행사장의 어제를 미리 알아보고 간다면 공간에 대한 이해가 쉽다. 열린행사장은 부산시장 관사로 쓰였던 곳이고, 그전에는 대통령 숙소였다. 1985년 전두환 전 대통령 지시로 대통령 별장 용도로 지어졌다. 20세기 우리나라 현대 건축을 대표한 고 김중업 건축가가 설계했다. 입구의 하늘색 철문은 물론이고, 아직 남아 있는 주변의 높은 담장, 철책만 봐도 보안이 얼마나 철저하고 엄격했을지 짐작이 간다. 1988년부터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2020년 5월 사퇴하기 전까지 역대 시장들이 거주했다. 이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형준 현 시장이 시민 환원을 약속하며 빈집으로 남아 있다. 전국 시·도지사 관사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수목과 초본 식물 수만 본이 잘 관리되고 있어 조경도 뛰어나다.
열린행사장 입구로 들어서면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가면 어린이 도서관인 ‘숲속체험도서관’이 있고, 오른쪽은 본관 건물로 가는 오르막 산책로다. 2~3분 정도만 걸어가면 빨간 벽돌로 된 2층짜리 본관 건물이 나온다. 본관 앞으로는 널찍한 잔디정원이 펼쳐져 있다. 돗자리 사용과 음식물 섭취는 금지돼 있다. 잔디정원의 가장자리로는 역대 부산시장들의 기념식수들이 자라고 있다. 잔디정원 양쪽 끝에는 전망덱과 연못이 있다. 하얀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는 전망덱에 올라서면, 해운대 일대 마천루들과 광안대교 일부가 눈에 들어온다. 지대가 높은 편이 아니어서 시야가 시원한 편은 아니다. 연못은 돌담과 수수한 조경으로 운치가 있다.
부산시는 내년 초 본관 내부도 시민들에게 개방한다. 열린행사장이 다양한 전시·공연과 문화·예술 프로그램으로 채워지며 부산을 대표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열린행사장 야외 공간은 동절기(11~5월) 오전 9시~오후 5시, 하절기(6~10월) 오전 9시~오후 6시 개방한다. 평일만 개방하고 토·일요일, 공휴일엔 문을 닫는다.
2023-05-25 [0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