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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 않아도 뜻밖의 매력이 여운으로 남는 도시…대만 중부 타이중 여행
‘대만은 여러 번 가봤다’는 여행자에게도 타이중은 의외의 도시다. 버블티의 발상지이자 대만 최대 야시장 가운데 하나를 품고 있으면서도, 미쉐린 레스토랑과 자전거 문화, 현대적인 미술관, 가족이 함께 즐기는 아쿠아리움까지 모두 갖췄다. 화려한 관광지보다 도시의 일상을 여행으로 만드는 곳. 최근 타이중이 대만의 새로운 여행지로 주목받는 이유다.
도시의 첫인상은 요란하지 않았다. 대만 중부에 자리한 타이중은 화려한 랜드마크 하나로 여행객을 붙잡는 도시는 아니다. 대신 오래된 산업을 전시와 체험으로 바꾸고, 지역 음식을 미식 여행으로 풀어내며, 시민의 일상 공간을 관광객에게도 열어둔다.
■미쉐린부터 야시장까지
타이중 여행은 미식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산신’ 레스토랑은 대만 전통 요리를 현대적으로 풀어낸다. 랍스터 해산물 탕밥, 족발 대만식 짜조 튀김, 생선 소금구이, 아스파라거스와 땅콩싹 볶음, 자라·돼지위 닭 보양탕 등 낯설지만 막상 먹으면 부담스럽지 않게 따뜻한 감칠맛을 자아내는 요리가 특징이다.
2020년과 2021년 미쉐린 가이드 추천 식당에 오른 ‘전압방’도 타이중을 대표하는 중식 레스토랑이다. 대표 메뉴는 오렌지 리큐어 향을 입힌 광둥식 로스트덕이다. 요리사가 테이블 앞에서 불꽃과 오렌지 리큐어 술로 향을 더하고, 얇게 썬 오리를 밥 위에 얹어 초밥처럼 말아낸다. 오리를 요리하는 과정을 공연처럼 즐길 수 있다.
‘후서위웨이’도 정교한 딤섬 요리로 잘 알려진 타이중의 유명 중식당으로, 미쉐린 빕 구르망에 여러 해 연속 선정된 곳이다. 전통 중식의 맛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다양한 메뉴를 통해 타이중 특유의 다채롭고 개방적인 미식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 샤오롱바오와 바닥을 군만두처럼 구운 승젠바오, 서태후가 피부 미용을 위해 즐겨 먹었다는 백목이와 연꽃씨를 넣은 디저트까지 대만식 중식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다.
타이중의 맛은 레스토랑 밖에서도 이어진다. 밤이 깊어지면 펑지아 야시장으로 발길이 이어진다. 펑지아대학교 인근에 자리한 이곳은 먹거리와 쇼핑, 젊은 활기가 뒤섞인 타이중의 밤 풍경을 담고 있다. 찹쌀 소시지 같은 길거리 음식이 골목마다 이어지고 옷과 화장품을 파는 상점도 늦게까지 불을 밝힌다. 야시장은 타이중의 젊은 식탁이자 젊은 소비문화를 엿볼 수 있는 거리다.
혼자 여행하는 이들에게는 ‘우마이 샤부’도 좋은 선택지다. 타이중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1인 샤부샤부 브랜드로, 고급 식재료와 세련된 서비스로 최근 현지 젊은 층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타이중을 보고, 만들고, 느끼다
체험형 여행지도 많다. 타이중 해양관은 아이와 함께 찾기 좋은 공간이다. 전시는 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계곡과 습지, 하구를 지나 바다로 흘러가는 흐름을 따라 구성됐다. 상류 구역에서는 맑은 물속에서 수수한 색상의 물고기를 볼 수 있다. 하류로 갈수록 물고기 색이 화려해진다. 이는 애완용 물고기를 무분별하게 하천이나 바다에 방류하는 실태를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더 이상 키울 수 없는 관상어를 해양관으로 가져오면 대신 키워주기도 한다.
해파리관과 개방형 펭귄관도 인기다. 상어와 가오리를 비롯한 수많은 물고기가 춤을 추는 대형 수족관도 갖추고 있어 어린이들에게는 자연학습장이자 어른들에게는 포토존이 된다. 수족관이지만 타이중 해양관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강과 바다가 연결돼 있고 사람의 선택이 생태계를 바꾼다는 것이다.
가족 여행객이라면 낚시문화관도 들러볼 만하다. 실제 바다에서 낚시하는 듯한 가상 체험을 즐길 수 있고, 해양 쓰레기와 생태계보호의 중요성을 놀이처럼 배울 수 있도록 꾸며졌다. 아총스 토란문화관에서는 다자 지역 특산물인 토란으로 페이스트리를 직접 만들 수 있다. 지역 농산물과 오래된 제조 기술이 관광객의 손끝에서 여행의 기억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타이중 그린 뮤지엄브러리는 여행 중 잠시 도심 속 예술의 숨결을 느끼며 숨을 고르기 좋은 장소다. 미술관과 도서관이 결합한 복합 문화공간으로, 과거 공항이 있던 부지를 시민 공원과 문화시설로 바꿨다. 건물은 공원과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내부에는 책을 읽고 전시를 보는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머문다. 이는 여행지가 꼭 소비의 공간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산업도 관광자원으로 변신
자전거문화탐색관은 타이중이 산업을 어떻게 관광으로 바꾸는지 보여주는 공간이다. 세계적인 자전거 기업 자이언트 그룹이 운영하는 이곳에서는 자전거의 구조와 기술 발전 과정, 대만 자전거 산업의 성장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대만은 섬을 자전거로 일주하는 ‘환도’ 문화가 발달해 있고, 공유자전거도 시민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곳에서는 가상현실(VR) 자전거 경주 체험도 할 수 있어 일행과 가벼운 내기와 함께 추억을 쌓기에도 좋다.
ABAS 양조 스토리홀도 지역 양조 산업을 관광 콘텐츠로 발전시킨 대표 사례다. 방문객들은 다양한 전통주를 시음하며 제조 과정을 체험하고, 양조 부산물을 식품 원료로 재활용하는 친환경 생산 방식을 알아보며 구매도 할 수 있다. 대만 미소 문화관에서는 발효식품인 미소와 간장 제조 과정을 배우고 지역 산업과 관광자원이 어떻게 연계되고 있는지 직접 경험한다.
타이중은 첫눈에 반하기보다 가슴에 여운을 남기는 도시다. 점심에는 딤섬을 먹고, 오후에는 자전거 산업을 배우고, 저녁에는 야시장을 걷고, 다음 날에는 도서관과 미술관 사이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도시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산업과 문화, 미식 경험이 하루 일정 속에 자연스럽게 섞인다. 타이중에서는 도시의 일상이 그대로 여행이 된다.
부산에서 타이중으로 가는 길도 2시간 30분 남짓으로 가깝다. 김해국제공항에서 진에어 직항편으로 주 5회 운항한다. 진에어 항공권을 제시하면 할인이나 사은품을 받을 수 있는 식당과 관광지도 많다. 짧은 일정·적은 예산으로도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로 타이중을 추천하는 까닭이다.
2026-07-02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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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 우국의 혼 오늘날 표충비 땀으로 흘렀더라…경남 밀양시 표충비·만어사 탐방
올해는 유난히 무더위가 일찍 찾아왔다. 5월 중순부터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무더위가 연일 계속 됐다. 올 여름 더위가 ‘역대급’이란 기상 예보가 그리 달갑지 않다. ‘찜통 더위’ ‘가마솥 더위’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하면 생각나는 곳이 밀양 얼음골이다. 워낙 유명한 곳이라 이곳을 소개하는 것은 식상할 것 같다. 하지만 얼음골을 품은 밀양하면 얘기가 다르다. 경남 밀양은 얼음골뿐아니라 국란이 있을 때 땀을 흘린다는 표충비와 바위를 두드리면 종소리가 나는 만어사 경석 등 신비한 일들이 많은 지역이다.
■신비의 고장 밀양, 국란을 예견하는 ‘땀 흘리는 비석’
경남 동북부에 위치한 밀양(密陽)은 옛부터 신비로운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 때는 이곳을 미리벌이라 불렸다. 용의 옛말인 ‘미르가 사는 벌판’에서 지금의 지명이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밀양에는 용과 관련된 명소가 꽤 된다. 밀양강이 만들어낸 절벽지형인 ‘용두목’, 이무기가 용이 되어 잠들어 있다는 ‘호박소’, 용왕의 아들이 돌로 변했다는 만어사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양기(陽)가 밀집(密)돼 있는 곳, 더운 기운이 많아 한 여름엔 대구를 방불케할 정도로 더운 지역으로도 인식된다. 하지만 밀양의 밀(密)은 빽뺵하다는 뜻 보다는 소리만 빌려 쓴 음차로 기록된 것이다. 밀(密)은 고대 우리말로 물을 나타내는데, 물이 많은 지역이라 해서 밀양으로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신비의 도시 밀양의 대표적 명소 ‘땀 흘리는 비석’ 표충비를 찾았다. 표충비는 무안면에 있는 홍제사에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승병장인 사명대사의 표충사당과 표충비각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수호사찰이다. 표충비가 세워진 1742년(영조 18)에 사명대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땀 흘리는 비석’인 표충비는 홍제사와 돌담 하나를 두고 있다. 표충비를 보기 위해 절에 들어서니 마치 왕관과 같은 모양의 나무 한 그루가 떡하니 서 있다.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밀양 무안리 향나무’다. 1742년 이곳에 표충비가 세워질 당시 함께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데, 수령이 284년이나 됐다.
크기와 모양이 톡특하다. 원줄기 높이는 사람 가슴 높이(1.5m)밖에 되지 않고, 가슴 높이 둘레도 1.1m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산 모양으로 옆으로 퍼져나간 가지의 폭은 10m가 넘는다. 국내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향나무 20여 그루 중 이러한 모양을 한 향나무는 이곳이 유일하다. 향나무의 모습이 신기한 듯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어김없이 기념촬영을 한다.
향나무를 뒤로 하고 표충비각 앞에 섰다. 사명대사비로도 불리는 비석은 높이가 3.8m나 되는 거대한 대리석으로 이뤄져 있다. 표충비각 옆에는 비석이 땀을 흘린 역사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1894년 11월 19일 동학농민운동 7일전 3말 1되’를 시작으로 ‘1910년 7월 22일 국권피탈 17일전 4말 6되’, 1919년 2월 27일 기미년 3·1 독립만세운동 3일전 5말 7되’… .
1945년 광복과 1950년 한국전쟁, 4.19 혁명, 5.16 군사정변, 2009년 김수환 추기경 선종, 2010년 천안함 사태 등 한국 근대사의 국란을 앞두고 비석은 어김없이 ‘땀’을 흘렸다. 이를 두고 결로 현상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비석에 음각으로 표시된 글자 부분은 물기가 맺히지 않은 기이한 현상은 설명하기 어렵다.
국란을 예고하는 표충비가 땀을 흘리는 것은 사명대사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싶어 사명대사유적지로 향했다. 이곳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다. 무안면은 사명대사의 출생지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 2000여 명을 이끌고 전투에 참가해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전쟁이 끝난 뒤 사명대사는 일본으로 끌려간 우리 백성 3000여 명을 데리고 귀국하기도 했다. 정부와 밀양시는 사명대사 생가 인근에 부지 면적 5만여 ㎡에 사명대사 동상과 사명대사 기념관, 추모공원, 기념비 등을 조성해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유적지 입구로 들어서니 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곳에 넓은 공터가 반긴다. 마음이 편안했다. 좋은 곳에 터를 잡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입구 왼쪽에 연꽃 모양의 놀이터에 가족 단위 관람객들의 웃음 소리가 정겨웠다.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담은 부조 벽화가 인상적이다. 유적지 한가운데 사명대사의 동상과 추모 공간에서 잠시 묵념을 올렸다. 백성을 위해 칼을 들었던 실천적 종교인의 기개에 절로 머리가 숙여졌다. 사명대사 기념관에서는 사명대사가 생전 사용했던 장삼과 가사를 포함해 승병으로서의 활약상 등을 알 수 있다.
이곳에 전시된 표충비의 탁본을 보고 ‘땀 흘리는 비석’의 비밀을 짐작할 수 있다. 비석에는 사명대사의 승병 활동과 포로 구출 공적이 새겨져 있다. 백성과 나라를 걱정하는 사명대사의 충정이 비밀의 열쇠가 아닐까.
■종소리 나는 만어사 경석, 용궁의 왕자가 돌이 된 사연은
수만 마리 물고기가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만어사. 사진으로 볼 때마다 이곳을 꼭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만어사 계곡에 늘려져 있는 돌을 두드리면 종소리가 난다는 이야기도 확인해 보고 싶었다.
밀양의 3대 신비 중 하나인 만어사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일단 대웅전에 가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신고’부터 했다. 대웅전 앞이 삼층석탑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 석탑은 고려 명종 10년(1180년)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466호)이다. 삼층석탑 위쪽에는 거대한 바위에 정교하게 새겨진 마애불이 온화한 미소를 짓는다. 크지 않는 사찰이 고요하고 편안하다.
마애불을 뒤로 하고 보니 눈 앞에 끝없이 펼쳐진 계곡이 보인다. 계곡에 수많은 바위가 마치 강물을 연상케 한다. 너비 100m에 길이는 500m에 이른다. 이것이 만어사 경석이구나. 거대한 바위들이 마치 계곡에 뿌려져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이곳은 빙하기에 돌들이 풍화돼 쌓여 만들어진 지대로, 2011년 천연기념물 제528호로 지정됐다.
정말 종소리가 날까 싶어 바위를 두들겨 봤다. ‘딱, 딱, 딱…’ 그냥 돌소리가 났다. 종소리가 아닌데 하고 있는데, 내 모습을 지켜본 한 분이 다른 돌을 쳐 보란다. 쳐보니 정말 종소리가 났다. 맑은 쇠소리랄까. 일반 돌소리와는 분명 달랐다. 신기했다. 만어사 경석은 화강암인데, 화강암의 성분 차이에 따른 현상이라고 한다.
만어사 경석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진다. 목숨이 다한 용왕 아들이 육지로 나와 신통한 스님에게 새로 살 곳을 부탁했고, “길을 가다 쉬는 곳이 그곳”이란 말을 들은 왕자는 만어사에 멈춰 미륵바위가 됐다. 왕자를 따르던 수많은 고기떼는 크고 작은 돌로 변했다는 전설이다.
만어사 미륵전엔 부처상 대신 왕자가 변한 5m 높이의 미륵바위가 모셔져 있다. 미륵전에 잠시 앉아 눈을 감았다. 고요하고 편안했다. 내 모습을 본 꼬마 2명이 절을 하고는 내내 엎드려 있다. 귀엽다.
미륵전에서 나와 계곡에 깔린 경석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사람들의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소원석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냥 들어도 들릴 만한 작은 바위인데 소원이 이뤄지면 들리지 않는단다. 저마다 소원을 빌고 돌을 들어보지만 대부분 들린다. 미륵바위가된 용왕의 아들이 모든 사람의 걱정과 고통을 없애주고 저마다의 소원을 들어주면 좋겠다.
2026-06-0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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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봄 아쉬워 산 올랐더니 진홍빛 춘정 가슴에 사무치더라
매서운 열기가 봄을 밀어내고 있다. 5월 중순인데도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날씨가 연일 계속된다. 가는 봄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절기는 이를 허락치 않는다. 매화·산수유에서 시작한 봄꽃들이 찬란한 벚꽃을 지나 봄꽃의 마지막인 철쭉에게 봄을 맡긴다. 가는 봄이 아쉬워 철쭉 군락지인 지리산 바래봉을 찾았다.
■직접 걸어야 감동이 완성되는 바래봉
지리산 바래봉(1165m) 철쭉 군락지 산행은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됐다. 능선을 따라 철쭉으로 붉게 물든 바래봉의 모습에 넋을 잃었다. 여기저기 꽃구경을 다녀봤지만 산 전체를 철쭉이 장악한 곳은 없었다. 철쭉의 붉은 기운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급히 찾아보니 아직 늦지 않았다. 4월 하순 무렵 바래봉 산 아래쪽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지만 정상 부근은 이달 말까지 철쭉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급한 마음에 한걸음에 바래봉으로 달려갔다.
지리산 바래봉은 ‘발산(鉢山)’이라고도 한다. 봉우리 모양이 나무로 만든 승려들의 밥그릇인 바리와 비슷하게 생긴 데서 유래했다. ‘삿갓봉’이라고도 하는데, 승려들이 쓰고 다니던 삿갓 모양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래봉이 국내 최고의 철쭉 군락지로 떠오른 데는 재미난 사연이 있다. 지리산 서쪽에 위치한 바래봉 일대는 숲이 매우 울창했다. 1970년대 초 이곳에 한국·오스트레일리아의 시범 면양 목장을 조성하게 된다. 그런데 식성이 좋은 면양이 잎에 독성이 있는 철쭉만 제외하고 대부분의 식물을 먹어 치웠다. 사람이 철쭉을 먹으면 구토와 어지러움 등을 느끼고 사망에도 이를 수 있을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당시엔 이 지역이 출입금지 구역이어서 일반인들은 목장 철쭉꽃의 아름다움을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산악인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이후 사진작가들의 멋진 작품이 발표되면서 일반인들에게 큰 관심을 끌게 됐다.
바래봉 철쭉은 일반적인 산철쭉과 비교해 색이 훨씬 짙고 선명한 진홍빛을 띤다. 해발 고도가 높아 일교차가 크고 바람이 강해 꽃잎의 색이 더욱 선명한 것이다. 고도 차로 산 아래 꽃이 지더라도 정상부는 만개하는 경우가 많다. 늦은 봄까지도 화려한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이유다.
바래봉 철쭉의 또 다른 매력은 나무 모양에 있다. 양들이 철쭉 주위의 풀을 뜯으며 나무 아래쪽을 정리해준 덕에 둥글둥글한 모양이다. 다른 지역과는 달리 사람 키보다 큰 철쭉이 터널을 이루며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바래봉의 철쭉은 바래봉 정상에서 서쪽 아래까지 4km 이상 넓게 퍼져 있는데, 팔랑치에서 1.5km쯤에 가장 밀집돼 있다.
전북 남원시 운봉읍 용산리에서는 매년 4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바래봉 철쭉 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로 30년째다. 용산마을에 도착하니 철쭉 축제가 한창이다. 평일 오전이어서 관람객들은 많지 않았지만, 축제 관계자들의 움직임은 분주하다.
바래봉 철쭉 군락지까지는 3가지 루트가 있다. ‘지리산 허브밸리 주자장(용산마을)- 바래봉 삼거리-정상-바래봉 삼거리-허브밸리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는 코스로 잡았다. 왕복 9.6km 정도이고, 5~6시간 소요된다. 이 코스는 초반에 조금 가파른 길을 지나면 대체로 완만하지만 다소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가장 대중적이고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다.
등산로 입구 안내소 옆에 지리산 운봉 바래봉 유래를 적은 바위 조형물이 눈길을 끌었다. 이곳에서 바래봉 정상까지는 4.2km로 가는 내내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임도로 돼 있다. 임도를 따라 오르다 보면 곳곳에 등산객들을 위한 쉼터(정자)가 마련돼 있다. 산 아래쪽에서는 철쭉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봄을 아쉬워하다 시들어가는 철쭉의 모습만 간간이 눈에 띄었다.
1시간 여를 올랐을까. 철쭉의 모습은 없고, 지리한 임도만 계속됐다. 아상(我相)이 올라왔다. “너무 늦어 정상에도 꽃이 없는 거 아냐? 좀 더 일찍 올 걸 그랬나?” 등등 갖가지 짜증이 몰려왔다. 나 뿐아니었다. 앞서 가던 등산객 커플의 짜증스런 말투가 들려왔다. 등산과는 관계없는 이야기인데 짜증이 섞여 있다. 이들도 아상이 올라온 것일까. 철쭉만 보려고 했고, 보이지 않으니 짜증이 났다. 다른 사물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은 건 당연하다. 잠시 앉아서 호흡에 집중하고 나니 다른 것들이 보였다. 왕성한 푸른 기운을 간직한 나무와 풀들, 그리고 이들 사이로 날아다니는 나비와 벌레들. 정겨운 새소리들. 정말 경이로운 모습이다. 철쭉을 조금 내려놓으니 한결 가볍고 편안하다.
■팔랑치에서의 감동이 정상까지 이어지다
바래봉 중턱쯤 올라왔을까. 드디어 철쭉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활짝 핀 진홍빛 철쭉들이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며 반겼다. 바래봉 삼거리에 놓여 있는 물품보관대가 눈길을 끌었다. 이곳에서는 바래동 정상과 최고의 철쭉 군락지가 있는 팔랑치을 다녀올 수 있다.
정상에 오르기 전에 팔랑치로 발길을 옮겼다. 바래동 삼거리에서 팔랑치까지는 왕복 1.8km. 철쭉 최대 군락지의 모습이 궁금했다. 팔랑치에 접어들자 마자 등산로 양쪽으로 핀 철쭉이 반겼다. 그동안의 고생이 보상 받은 기분이었다. 평일인데도 많은 등산객들이 철쭉의 마지막을 담으려고 줄을 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진 촬영에 방해 되지 않게 걸음을 재촉하며 팔랑치 전망대로 향했다. 진홍빛 철쭉 사이에 간간이 모습을 드러낸 하얀철쭉은 백옥같이 선명했다. 팔랑치 전망대에 오르니 능선이 온갖 진홍빛으로 물들었다. 아직 만개하지 않는 꽃들이 있었지만 바래봉 최고의 철쭉 군락지다운 자태가 드러났다. 팔랑치 전망대에 오른 등산객들도 철쭉들의 향연에 넋을 잃은 모습이다.
바래봉 정상이 궁금했다. 오던 길을 되돌려 바래봉으로 향했다. 바래동 삼거리까지 되돌아가는 길은 또다른 매력이 있다. 팔랑치로 가는 길에 능선을 봤다면 되돌아가는 길엔 꽃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흰철쭉과 함께 있던 하얀꽃인 이팝나무도 눈에 들어왔다. 순백했다.
팔랑치의 감흥이 가시기 전에 바래봉 정상에 올랐다. 바래봉은 또다른 느낌이다. 철쭉이 능선을 타고 바래봉 정상까지 이어져 있다. 특히 진홍빛의 철쭉을 깔고 지리산 천왕봉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매력적이다. 바래봉에서는 천왕봉을 비롯해 중봉, 제석봉, 촛대봉, 형제봉, 토끼봉, 반야봉 등 지리산 주요 봉우리들을 감상할 수 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웅장한 지리산을 풍경을 바라보며 아주 작은 인간을 느꼈다.
바래봉 정상 부근 곳곳에서 철쭉을 배경으로 추억을 담으려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몸통은 없고 꽃들 사이에 등산객들의 얼굴만 가득하다.
바래봉 정상은 등산객들로 또 다른 줄이 생겼다. 정상석의 인증샷 때문이다. 자세히 보니 정상석을 배경으로 요즘 유행하는 미니미 사진(요정샷)을 찍으려 사람들로 장사진이다. 정상석 뒤 10여m에 사람이 서면 사람이 요정처럼 작게 보인다. 생각보다 재미있는 사진이다.
바래봉을 한걸음에 달려오게 만든 사진과 같은 장면은 아니었지만, 늦은 봄 진홍빛을 한껏 품은 철쭉을 볼 수 있었다는 게 행운이고, 감사하다.
하지만 하산하는 길은 그리 즐겁지 만은 않았다. “바래봉 철쭉이 옛날 같지 않아. 이렇게 듬성듬성하지 않았어, 얼마나 이뻤다고. 모든 게 기후 변화 때문이야” 바래봉 정상에서 만난 한 등산객의 말이 하산 내내 뇌리에 남았다.
2026-05-2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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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다? 다 생긴대로 쓰이는 법! 그러니 한바탕 웃는 게지요…광주 양림동 펭귄마을 탐방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가 없는 것이 어떤 때는 도리어 크게 쓰인다는 말이다. 장자의 인간세편(人間世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세상에는 쓸모없는 게 없다. 무용지용이란 말이 가장 잘 표현된 곳이 있다. 광주시 남구 양림동의 펭귄마을이다. 버려진 쓰레기만 가득했던 마을이 연간 20만 명이 찾을 정도로 핫플레이스로 변모한 곳. 지역 소멸 위기가 한창인 요즘, 정말 반가운 곳이다.
■뒤뚱뛰뚱 펭귄마을 핫플로 거듭나다
펭귄마을 입구에 광주 남구 평화의 소녀상이 눈에 띄었다. 소녀상 혼자가 아닌 할머니와 소녀가 함께 있는 소녀상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적인 인물인 이옥선 할머니의 소녀시절 모습과 90세가 넘은 이옥선 할머니 모습이 함께 있다. 과거와 현재는 서로 분리될 수 없고 서로 연결돼 있음을 암시하는 듯 했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펭귄마을과 많이 닮아 있다.
펭귄마을에 들어서자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를 패러디한 ‘펭귄 창조’가 반긴다. 아담 대신 펭귄이 전능하신 신과 연결돼 있는 모습이 익살스럽다. 벽화를 지나니 이번엔 실물이다. 한옥 마루에 천장에 닿을 듯 커다란 펭귄 조형물이 앉아 있다. 관람객마다 펭귄 조형물 옆에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포토존이다.
펭귄마을 골목을 들어서자 곳곳에 설치된 벽화와 고장 난 벽시계, 부엌에 있어야 할 찌그러진 양은냄비가 담벼락에 붙어 있다. 마치 1970~1980년대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심지어 당시 사용한 미용실 고데기 기계마저 전시돼 있어 당시 어머니와 이모들의 헤어스타일을 생각나게 했다.
정말 무용지용이었다. 쓰레기로 버려도 될 만한 것들을 모아 ‘전시’를 하니 어엿한 작품이 된다. 무엇보다 이들은 추억을 소환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관람객들의 걸음 속도를 저마다 다르게 하는 것은 추억 소환 때문이다. 1970년대 공중전화를 전시해 놓고는 그 위에다 ‘부모님께 안부 전화 하기’란 글을 붙여 놔 부모님 생각도 들게 한다.
물건뿐 아니다. 담장에 쓰여진 글귀도 시간 여행을 떠나기 충분하다. ‘유행 따라 살지 말고 형편 따라 살자’, ‘술과 밤이 있는 한 남녀 사이는 친구가 될 수 없다’. 참! 옛날 말이다. 세대를 초월한 주옥 같은 글귀도 여럿 있다. ‘걱정 마! 넌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으니까’ 1970년대 나무 대문에 적힌 글귀를 보면서 추운 겨울 언 귀를 녹여주시던 할머니의 따뜻한 품이 생각난다.
추억의 먹거리도 즐길 수 있다. 어릴 적 먹던 쫀드기와 달고나, 뽑기, 알사탕 등 추억의 과자를 판매하는 ‘펭귄 주막’이 성업 중이다. 인심 좋게 보이는 주인장이 한번 먹어보라고 슬쩍 권한다.
펭귄마을은 마을 촌장 김동균(72) 씨가 2013년부터 생활폐품을 활용해 펭귄마을을 꾸미면서 시작됐다. 시작은 미미했다. 갈수록 빈집이 늘어나고 노인들만 사는 마을에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촌장은 버려진 시계를 주워오기 시작했다. 벽시계, 탁상 시계, 손목 시계 등 닥치는 대로 시계를 모았고, 그것으로 골목 벽을 꾸몄다. 해보니 재미도 있고 썰렁한 마을 느낌도 사라지는 것 같아 오래된 주전자, 낡은 라디오, 전화기 등 온갖 버려진 물건들을 모아 전시했다. 김 촌장은 “처음엔 재미 삼아 시작했는데 동네 분들이 좋다고 하니까 점점 더 거리를 넓혀가면서 작업을 이어갔다. 하다 보니 손재주도 생기고 좋더라”고 말했다.
내내 궁금한 걸 물었다. “왜? 펭귄마을인데요?”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어느 날 우리 동네 어르신 한 분이 걸어가는 데 뒤에서 보니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꼭 펭귄 같아 그렇게 부르게 됐다”고 했다.
펭귄마을에 전시된 모든 작품은 촌장이 직접했다. 무려 13년 동안 버려진 폐품들을 모아 추억의 공간을 만든 것이다. 촌장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공간은 시계가 있는 곳이다. 그는 “요즘은 시계 자체를 잘 쓰지 않으니까 많이 버린다. 시계 자체가 추억이 되기도 하고, 펭귄마을을 만들 때 제일 처음 작업한 곳이라 많은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촌장의 노력으로 2016년부터 마을에 관람객들이 찾기 시작했고, 입소문이 타면서 한때 연간 20만 명이 찾을 정도로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방문객이 늘어나자 광주시와 남구청 등은 2019년 낡은 한옥을 리모델링해 ‘펭귄마을 공예거리’를 조성했다. 현재 10여 개의 공방이 입주해 있다. 도자기, 유리, 금속, 섬유 등 다양한 공예품을 전시·판매도 한다. 물론 체험도 가능하다.
김 촌장은 “동네 주민들이 워낙 고령이어서 20년 정도 지나면 이 마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내가 없어도 펭귄마을이 계속 유지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광주의 어머니, 소심당 조아라 기념관
펭귄마을이 있는 양림동은 광주의 대표적인 역사문화마을이다. 1904년 광주읍성 밖의 광주천 건너에 있는 양림동에 유진 벨, 오웬 등 서양인 선교사들이 모여 교회와 학교, 병원을 개설해 근대 문화가 일찍부터 받아들여졌다. 이 덕분에 양림동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문화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양림역사문화마을은 골목골목이 단아하고 고풍스럽다. 식당과 카페도 근대식 건물로 지어진 곳이 많아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다.
문화마을을 거닐다 ‘광주의 어머니’로 불리는 소심당 조아라 기념관을 찾았다. 조아라 선생은 1912년 3월 전남 나주군 반남면에서 태어나 평생을 여성운동과 민주화·인권 운동에 헌신한 선구자다. 일제강점기였던 1936년에는 신사참배와 창씨개명 거부 등으로 옥고를 치렀고,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하다 6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1980년대 가족법개정운동에 앞장섰고 광주어머니회, 걸스카웃, 광주여성단체협의회 등을 육성·발전시키며 여성들의 권익향상을 위해 평생을 바친 분이다.
기념관은 2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1층은 주로 조아라 선생의 유품이나 상패,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꽃을 든 조아라 선생의 입간판이 반긴다. 2층에는 선생의 독립운동 고난사와 생전 이룩한 각종 업적이 상세히 기록·전시돼 있다. 암울한 시대 사회복지사업의 선구자로, 여성 운동가로 민주화 운동의 대모로 불렸던 조아라 선생의 발자취가 숙연하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과 호랑이가시나무 언덕
양림역사문화마을은 3개의 코스로 이뤄져 있다. 선교여행길, 문화예술여행길, 전통문화여행길 등이다. 어느 코스를 선택하던 양림역사문화마을의 진면목을 모두 체험할 수 있다. 코스별로 걸어서 1시간~1시간 30분 거리여서 다니는데 별다른 무리가 없다.
조아라 기념관에서 10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우일선 선교사 사택이 있다. 광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이다. 1908년 선교활동을 한 미국인 선교사 우일선(Robert M. Willson)에 의해 1920년대에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고풍스러운 서양식 주택이다 보니 웨딩촬영지로도 많이 찾는다.
인근의 호랑이가시나무 언덕도 볼만하다. 이곳에는 수령 400년이 넘은 호랑가시나무(광주시 기념물 17호)가 자리하고 있다. 특히 2013년 언더우드 선교사 사택의 차고로 쓰였던 10여 평의 공간을 그대로 살린 호랑이가시나무 창작소를 비롯해 게스트하우스, 전시장인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등이 들어서 있어 다양한 볼거리를 경험할 수 있다.
글·사진=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
2026-04-0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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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군 천장호 출렁다리에 서면 몸도 마음도 출렁
칠갑산 얼음분수축제에서 ‘겨울왕국’을 맛봤다면 인근의 천장호 출렁다리도 볼 만하다. 알프스마을에서 걸어서 10~15분 정도다.
2009년 만들어진 천장호 출렁다리는 웅장하다. 높이 16m의 주탑에다 길이가 207m나 된다. 다리 중간에는 청양의 특산물인 구기자와 고추를 형상화한 주탑이 인상적이다. 주탑을 지나면 1.5m의 출렁다리가 시작되는데 조금만 걸어가면 다리가 상하 좌우로 흔들린다. 은근히 스릴 있다. 다리를 건너면 전망대와 칠갑산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이어진다. 산행이 아니더라도 황룡정까지 천장호변을 산책해도 좋다.
칠갑산 동쪽 끝자락에 있는 천장호는 청양 명승지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다. 천장호에는 황룡과 호랑이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곳에 살던 아이가 몸이 아파 의원을 찾아가야 하는데 냇물을 건널 수가 없게 되자 이곳에서 승천을 기다리던 황룡이 승천을 포기하고 자신의 몸으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게 해 한 아이의 생명을 구했다. 이를 본 칠갑산 호랑이가 감명을 받아 이곳 주민들을 보살펴 왔다는 전설이다. 천장호 주변 산책로에는 용과 호랑이 조형물이 있다.
천장호 출렁다리 부근의 각종 체험 시설도 눈길을 끈다. 천장호 입구에서 황룡정까지 네트(밧줄)를 소재로 구성된 에코워크 시설이 있다. 밧줄로 만든 다리 위를 지나는 체험인데, 마치 유격훈련을 연상케한다. 위험하지는 않다. 별도의 안전장비 없이도 체험 가능하다. 이 시설은 네트 워크 코스, 네트 브릿지 코스, 네트 타워 코스, 네트 어드벤처브릿지 코스 등 4가지 테마로 이뤄져 있다. 전체 길이 177m 구간에서 즐길 수 있고, 아름다운 천장호 자연경관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2026-01-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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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칠갑산 알프스마을의 ‘겨울왕국’
살을 에는 겨울 차가움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있다. 바로 빙벽이다. 얼음은 겨울의 또 다른 얼굴이다. 차디찬 겨울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얼음 창작물은 웅장함과 신비로움을 통해 소통한다. 충남 청양군 칠갑산 자락, 겨울철 특별한 공간이 올겨울에도 문을 열었다. 새해 첫날부터 청양 알프스마을에서는 칠갑산 얼음분수축제가 열렸다.
청양고추로 유명한 충남 청양군 정산면의 알프스마을에 들어서니 독특한 느낌이 먼저 전해졌다. 예년의 1월 중순 날씨답지 않게 영상권 기온을 보이고 있는데도 알프스 마을의 공기는 차가웠다. “이상기온으로 얼음이 녹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이곳은 예전부터 얼음골로 불리던 곳이다. 한여름에도 낮은 기온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겨울철이면 다른 곳보다 더 추운 이곳에 얼음을 이용한 축제를 열고 있는 지혜가 인상적이다.
매표소를 지나니 얼음조각으로 만든 겨울궁전이 반긴다. 터널 형태로 만들어진 겨울궁전 입구는 포토존이다. 너나 할 것 없이 사진 찍기에 분주하다. 겨울궁전을 지나니 오른편에 10m 이상 높이의 거대한 고드름 모양의 얼음기둥이 시선을 압도한다. “이것이구나!”
칠갑산 얼음분수축제의 얼음기둥은 한겨울의 낮은 기온을 활용해 물을 지속적으로 분사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얼음이 층층이 쌓이며 형성된 창작물은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비슷한 듯 보여도 어느 하나 같은 게 없다. 물을 분사할 당시의 기온과 바람의 세기 등이 달라서다. 거대한 얼음기둥은 눈 덮인 칠갑산 자락과 어우러지면서 겨울 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올린다.
칠갑산 계곡 쪽으로 가로수처럼 만들어진 수십 개의 얼음기둥이 버티고 서 있다. 든든한 마음이 든다. 얼음기둥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축제장으로 걸어 들어가면 마치 ‘겨울 왕국’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눈이 내려 쌓였지만 산책로가 평탄해 이동하는 데 무리가 없다. 얼음집 이글루도 인기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이글루의 내부는 크고, 생각보다 따듯하다. 그렇다고 여기서 살 생각은 없다.
얼음기둥과 함께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눈조각들이다. 병오년 새해를 맞아 말 모양의 눈조각상이 인기 포토존이다. 어린이들에게는 ‘티니핑’이다. 티니핑은 한국 애니메이션인 ‘캐치! 티니핑’의 캐릭터로, 티니핑 눈조각상에 사진을 찍으려는 아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얼음기둥은 낮과 밤의 두 얼굴로 관람객들을 반긴다. 얼음기둥에 햇살이 비치면 푸른빛과 은빛이 오가며 반짝인다. 보는 각도에 따라 얼음기둥은 표정을 바꾼다. 오후 1~3시쯤이 햇살과 어우러지는 얼음기둥의 다양한 모습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다. 어둠이 내리면 얼음기둥은 또 다른 얼굴을 한다. 특히 얼음기둥에 야간 LED 조명을 더해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다양하고 풍성한 체험 행사
칠갑산 얼음분수축제는 보는 것에 끝나지 않는다. 즐길거리가 다양하다.
얼음과 눈썰매가 대표적이다. 난도별 코스까지 마련된 눈썰매장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겨울 야외 체험 공간으로 그만이다. 평소 쉽게 접하기 어려운 얼음봅슬레이와 얼음썰매도 인기다. 얼음봅슬레이는 눈썰매보다 속도감을 느낄 수 있어 다양한 연령층이 찾고 있다. 전통 방식의 얼음썰매는 어린이에게는 색다른 경험을,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겨울왕국’ 상공을 가로지르며 나아가는 짚트랙은 특히 아이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하늘에 짚트랙이 있다면 땅에서는 깡통열차가 있다. 깡통열차는 바퀴가 달린 깡통모양의 열차인데, 농기구 일종인 트랙터가 깡통열차를 끌고 축제장을 오가며 정겨움을 준다.
동물 먹이주기 체험은 아이들에게 단연 인기다. 알프스마을엔 말과 염소, 토끼 등 30여 마리의 동물이 있다. 토끼와 염소에게 먹이를 주는 아이들이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이외에 축제장에는 빙어잡기, 달고나 만들기, 전통엿·가래떡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축제장에 먹을거리가 빠지면 아쉽다. 체험행사 중에는 축제장 앞에 마련된 모닥불에서 마을 주민들이 재배한 고구마와 군밤을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다. 모닥불에서 터지는 군밤 소리가 겨울밤을 재촉한다. 축제는 오는 2월 22일까지 열린다.
■알프스마을 어떻게 탄생했나
청양 알프스마을 얼음분수축제는 2008년부터 시작해 매년 20만 명이 넘게 찾는 지역 대표 축제로 자리 잡았다. 지역 소멸 위기를 관광자원으로 승화시킨 대표적 혁신사례로 꼽힌다. 시작은 재미있지만 쉽지 않았다. 마을 주민들이 겨울철 농한기 때 표고버섯을 재배하려고 물을 주다가 고드름이 이쁘게 생기는 것을 보고 착안했다. 얼음이 얼면 잘 녹지 않는 마을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재미 삼아 만든 작품들이 많아지면서 축제로 이어졌고, 얼음분수축제로 불려졌다.
얼음분수축제는 관공서의 지원 없이 마을 사람들이 직접 운영한다.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축제 기금을 마련하다 보니 시작은 너무 힘들었다. 외부에 알려지기 전까지 적자에 허덕였고, 축제를 포기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똘똘 뭉쳤다. 축제가 없어지면 마을도 없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80명도 채 되지 않는 마을 주민들의 노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이 났다. 얼음분수축제가 SNS를 타고 겨울 명소로 부각되면서 알프스마을에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연간 1만~1만 5000여 명의 외국인들이 다녀갈 정도다.
알프스마을은 올해 축제 테마를 ‘K팝’으로 잡았다. 눈조각상에 데몬헌터스와 티니핑이 설치된 이유다. 축제장 내 얼음기둥도 90개를 세웠다. 올해 마을 주민 수가 90명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축제장 곳곳엔 이처럼 마을 주민들의 꿈과 희망이 스며 있다. “우리 마을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는 그런 마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역소멸 위기를 맞은 지금, 알스프마을 황준환 운영위원장의 말이 뇌리에 남는다.
2026-01-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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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강 따라 절벽 잔도, 11월엔 황금빛 은행나무 금시당
푸른 강을 따라 산길을 걷는 트레킹을 다녀왔다. 꽃밭에서 시작해 소나무 숲을 지나 절벽에 매달린 아찔한 잔도를 걷고, 500년 된 고택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강을 따라 돌아오는 아름다운 코스였다. 가을이 무르익는 경남 밀양시 ‘용두산생태공원 힐링 산책길’ 5km 코스가 바로 그곳이다.
■삼문송림과 구절초
삼문동공설운동장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것으로 여행은 시작된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학교 대항 체육대회를 지켜보며 목청껏 ‘마음 약해서’를 외치며 응원전을 펼쳤던 추억을 떠올리며 운동장 소나무 숲길을 따라 걷는다. 50년 전에도 울창해 걷기에 좋았던 솔숲은 지금도 하늘을 뒤덮어 가을 나들이를 나온 많은 산책객을 따가운 햇살에서 보호해준다.
밀양강 제방 아래 하얀 눈꽃이 쌓인 듯 화사한 화원이 펼쳐진다. 많은 사람이 즐겁게 웃으며 카메라는 물론 휴대폰 버튼을 찰칵거린다. 화원 입구에 ‘구절초’라는 팻말이 붙었다. 국화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향기가 완전히 다른 꽃이다. 여행 초입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환한 꽃을 마음껏 구경하게 되다니 이번 일정도 행운에 행운이 겹칠 모양이다.
제방을 넘어가면 밀양 산책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삼문송림이 나타난다. 2002년 ‘제3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차지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수령 100년을 넘은 곰솔 6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밀양강을 따라 삼문송림을 걷는다. 소나무 사이에는 빽빽하게 심어진 푸른 식물이 보인다. 매년 9월 보라색 꽃이 활짝 피면 가슴이 쿵쿵 뛸 정도로 아름다운 맥문동이다.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부는데 이제는 가을이어서인지 시원한 걸 넘어 차갑게 느껴진다. 송림 사이를 걷는 사람도 적지 않고, 강 쪽을 향해 놓인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강물만 바라보며 ‘멍 때리기’에 몰입한 사람도 보인다.
삼문송림이 끝나는 부분은 여름에는 시원한 물놀이장으로 이용되는 곳이다. 이곳에는 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는 낮은 콘크리트다리가 놓였다. 이 다리를 건너면 비로소 절벽에 매달린 잔도로 갈 수 있게 된다.
■밀양강 잔도
다리를 건너 맞은편 용두산 산자락을 따라 돌아서면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린 수변산책로, 즉 잔도가 나타난다. 지난 7월에 개통한 곳이니 그야말로 ‘신상’이다. 경치가 아름답고 시원한 데다 사진 찍기에도 좋아 많은 사람이 찾는 인기 명소로 자리를 잡은 장소다.
잔도는 구간에 따라 용두산 10~20m 절벽에 매달렸다. 절벽 아래로는 까마득한 밀양강이 흐른다. 이곳에는 용두보, 밀양 사람들은 용두목이라고 부르는 시설물이 있는데 옛날부터 여름철 물놀이장으로 인기가 높던 곳이다. 이곳의 물 흐름을 잘 모르는 객지 청년들이 해마다 한두 명씩 익사하는 사고가 일어나 지역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용두목에는 물놀이 가지 말라’고 당부하곤 했다.
용두산 잔도 풍경은 듣던 대로 굉장했다. 푸른 숲으로 뒤덮인 용두산, 산 정상 부분에 자리 잡은 호젓한 절, 아래로는 절벽과 유유히 흐르는 강 그리고 절과 강 사이 절벽을 따라 이어진 아찔한 잔도.
개장 반년도 안 돼 SNS 핫플로 인기를 얻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잔도가 조금 짧아서 5분이면 끝난다는 점이다. 그래도 경치가 워낙 좋다 보니 짧다는 아쉬움을 덮고도 남을 만큼 찾을 가치는 충분하다.
잔도를 한 번만 걷고 끝내기는 아쉬워 두세 번을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한다. 잔도는 삼문공원 쪽에서 올라가는 것보다는 반대편, 즉 용궁사 쪽에서 내려오는 게 더 아름답다. 사진도 용궁사에서 삼문공원 방면으로 내려가면서 찍는 게 더 잘 나오고 풍경이 좋은 장소도 많다.
잔도가 끝나는 부분에서 여정을 끝내지 않고 나지막한 산길을 더 걸어가기로 한다. 깔끔하게 잘 정리된 산책로여서 걷기에 어려움은 전혀 없다. 흙길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에는 구불구불한 데크길이 나타난다. 길을 걷다 뒤를 돌아보니 숲 사이로 멀리 밀양시 왼쪽 부분인 가곡동과 전사포리 전경이 나타난다.
데크길의 마지막은 해발 129m 용두산 꼭대기에 설치된 달팽이전망대다. 꽈배기처럼 꼬인 모양으로 올라가는 전망대 모양이 달팽이 같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번 산책길에서 눈을 가장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장소가 여기여서 용두산을 찾는 사람은 꼭 이 전망대에 오른다.
소문대로 달팽이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기가 막힌다. 밀양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나왔지만 이렇게 훌륭한 전망을 가진 곳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달팽이전망대에서는 용두산 잔도와 밀양강, 그 너머 용평2교 다리와 경부선 철로 그리고 그 너머 밀양 시내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정말 아름답고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하고 황홀한 전망이고 경치가 아닐 수 없다. 이곳에 온 사람들이 왜 하나같이 극찬을 쏟아내는지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다. 마침 공기가 맑아 먼 곳까지 아주 깨끗하고 선명하게 잘 보이니 풍경은 더 훌륭하게 느껴진다.
■금시당 은행나무
달팽이전망대에서 돌아가는 대부분 산책객과 이별하고 다시 산성산 일자봉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오른다. 일정 목표는 등산이 아니라 트레킹이어서 목적지는 물론 일자봉이 아니다.
산길이라고 해도 사실상 평지나 다름없는 산책로여서 걷는 데에는 큰 어려움은 없다. 분위기는 차분하고 공기는 맑은 길이어서 혼자서 또는 서너 명이 조용히 걷는 데에 이보다 좋은 곳은 없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곳이 나온다. 그곳에서 왼쪽 길을 따라 간다. 조금 더 걸으면 정자가 나오고 다시 두 갈래길이 나타난다. 이번에도 ‘금시당’이라는 안내판이 붙은 왼쪽 아래로 내려가는 길을 고른다.
다소 험한 내리막길을 10분 정도 따라 가다 보니 역사가 깊은 고택이 나타난다. 16세기 사화를 겪고 권력과 정치에 환멸을 느낀 이광진이 관직을 내던지고 귀향해 만들어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별서인 금시당·백곡제다.
줄여서 단순히 금시당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특히 11월 늦가을에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유명한 곳이다.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집을 지을 때 함께 심었다는 수령 500년의 울창한 은행나무다. 가을이 되면 수만 장이나 되는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변해 온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아직 은행나무 잎은 노랗게 물들지 않았다. 여전히 한여름인 듯 파랗기만 하다. 환상적인 풍경이 연출되려면 다음 달 중순 이후까지 기다려야 할 모양이다.
5km 산책 코스를 사진까지 찍으면서 걷다 보니 2시간이나 걸렸다. 금시당 앞 벤치에서 잠시 앉아 간단한 샌드위치와 커피 한 잔으로 점심을 대신한다. 이광진이 이곳에 별서를 만든 이유는 강이다. 바로 앞으로 밀양강이 굽이굽이 흐르고 그 너머로는 너른 평야여서 경치가 좋기 때문이다. 벤치에 앉아 천천히 흐르는 밀양강을 내려다보니 이광진이 왜 여기를 택했는지 금세 수긍이 된다.
이제는 돌아갈 차례다. 귀환 코스는 아까와는 달리 산성산 산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옛 산책로 ‘아리랑길’이다. 올 때 길은 넓고 편했지만 가는 길은 좁고 다소 불편하다. 두 명이 동시에 걷기는 어렵고, 반대편에서 한 명이 오면 비켜줘야 한다. 하지만 윗길보다 더 조용하고 호젓해서 진짜 오솔길을 걷는 느낌을 느끼기에는 더 낫다.
돌아가는 길은 올 때 길보다 조금 짧다. 사진을 찍을 만한 감동적인 포토존도 없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이유도 없다. 그나마 인상적인 곳은 ‘무암(巫岩)’으로 불리는 ‘구단방우’다. 용두산에 신의 기운이 넘쳐 흐른다고 생각한 과거 무당들이 굿을 하며 치성을 드린 곳이다. 구단방우는 ‘굿을 한 바위’라는 표현이 사투리 발음 그대로 적힌 이름인 모양이다.
구단방우를 지나면 이번에는 용두보가 나타난다. 객지에서 물놀이하러 왔다 목숨을 잃은 많은 젊은이가 수장된 곳이다. 옛날 사람들은 물 아래에 귀신이나 신령이 있어 낯선 이들의 다리를 잡아끌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많은 곳이니 무서우면서 신령한 곳으로 여겨졌을수도 있다.
용두보를 지나면 다시 잔도가 나타난다. 산자락을 감싸 도는 길을 따라 걸어 삼문동공설운동장으로 향한다. 고향이지만 처음 걷는 길이다 보니 낯설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도 고향이니만큼 마음은 푸근했고 따뜻했다.
2025-10-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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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10월에는 꽃구경 다니다 세월 다 가겠네
경남의 10월은 ‘꽃구경 다니는 계절’이다. 곳곳에서는 코스모스, 핑크뮬리, 아스타국화 등 다양한 종류의 꽃이 아름다움을 경쟁하고 있다. 당연히 각 시군에서는 꽃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이미 끝난 축제도 있고 계속 진행 중인 곳도 있다. 꽃으로 화려하게 물든 경남의 가을로 들어가 본다.
■의령군 호국의병의숲
올가을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의령군 남강변 호국의병의숲 친수공원이다. 호국의병의숲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의병을 이끌고 나서 왜병과의 싸움에서 첫 승리를 거둔 기강 전투를 기리기 위해 꾸민 곳이다. 이곳에서는 지난 3~12일 ‘2025 의령 기강 리치꽃축제’가 열렸다. 지난해까지는 댑싸리 축제였지만 올해부터는 이름이 바뀌었다.
이곳에는 3만 평 규모 평지에 핑크뮬리를 필두로 아스타국화, 메밀꽃, 팜파스그라스, 맨드라미, 코스모스, 노랑코스모스, 댑싸리 등이 골고루 피어 있다. 남강을 따라 걸으면서 달콤한 꽃향기를 한 종류도 아니고 10종류 가까이 골고루 맡을 수 있으니 한마디로 ‘가을꽃 향수세트’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친수공원에 들어서면 이곳이 현실세계에서 걷는 것인지, 수채화 속 환상세계에서 꿈을 꾸는 것인지 헷갈릴지도 모른다. 코스모스와 노랑코스모스가 섞여 자라는 코스모스 정원의 풍경은 실재가 아니라 그림 같기 때문이다. 직접 가서 보면 과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핑크뮬리도 마찬가지다. 식물이 자라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핑크핑크한’ 강물이 출렁이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이 꽃밭 사이를 지나가면 온 몸이 핑크빛으로 물들어 마치 핑크빛 인형으로 변신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코스모스 정원과 핑크뮬리 사이에는 갈대와 비슷한 모습을 가진 팜파스그라스 그리고 땅에 바짝 붙은 맨드라미가 자란다. 한 부부가 우산으로 햇살을 가린 채 팜파스그라스 사이로 걷는 모습을 보니 그야말로 몽환적이다. 맨 앞에는 가을 분위기를 잔뜩 풍기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팜파스, 그 너머로는 노란색과 분홍색, 하얀색이 골고루 섞인 코스모스 꽃밭. 그 사이로 느긋하게 웃으며 산책을 즐기는 검은 우산. 두 사람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가을의 추억’이 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바람개비가 흔들리는 남강변을 따라 핑크뮬리 꽃밭을 산책하다 보면 눈부실 정도로 매혹스러운 공간이 등장한다. 4가지 색의 꽃이 4개의 층을 이뤄 마치 파스텔 그림을 그린 것 같은 신비한 장면을 연출한다. 맨 앞에는 핑크뮬리가 바람과 어울려 덩실거리고 그 너머로는 보라색과 주홍색 아스타국화가 차분하게 앉았다. 가장 뒤에는 온갖 색이 섞인 코스모스 꽃밭이 신나게 어깨춤을 춘다.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꽃 풍경을 경험했지만 이곳처럼 눈부시고 신기루 같은 장면은 처음이다.
호국의병의숲 꽃 여행의 마지막은 댑싸리다. 원래 이곳은 가을이면 갈색으로 변하는 댑싸리로 유명해 많은 블로거, 유뷰버가 찾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꽃들에 밀려나 인기를 잃은 탓인지 약간 의기소침해 보인다.
■하동코스모스·메밀꽃축제
의령군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의령 소바’로 배를 채운 뒤 이번에는 하동군으로 달려간다.
하동군 북천면 직전리에는 지역 주민들이 일군 꽃밭이 있다. 이곳에서 봄에는 꽃양귀비축제, 가을에는 코스모스·메밀꽃 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지난 2일 시작해 오는 19일 막을 내린다. 축제는 곧 마감되지만 아직 꽃 잔치는 끝난 게 아니다. 직전리 들판에는 여느 해보다 더 화사한 코스모스가 피어 축제 기간에 많은 관람객을 불러 모았고, 아직도 활짝 피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유혹의 미소를 보낸다.
축제단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화사한 코스모스가 밝은 얼굴로 두 팔을 활짝 벌려 환영 인사를 전한다. 꽃 색깔이 촌스러워 보이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관람객의 마음과 발길을 잡아당긴다.
어릴 때에는 이렇게 꽃밭을 조성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코스모스가 지천으로 흔했다. 가을이면 시골길을 따라 학교까지 함께 걸어주던 꽃이다. 바람에 따라 몸을 한들거리면서 가끔 얼굴을 간질이기도 하고, 거꾸로 때로는 걸음을 방해하기도 했다.
알록달록한 코스모스 단지를 지나면 이번에는 단색 세상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느끼게 된다. 바로 푸른 줄기와 하얀 꽃으로만 이뤄진 메밀꽃이다. 꽃밭 너머에 화사한 코스모스 단지가 없다면, 그리고 ‘플라워 뷰’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과 풍차가 없다면 이곳이 이승인지 천국인지 헷갈릴지도 모른다.
하얀 눈처럼 들판을 뒤덮은 메밀꽃밭 한가운데에는 꼬불꼬불한 소나무 두 그루가 떡하니 서 있다. 데이트를 즐기는 두 남녀가 너무 수줍어 손도 못 잡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걸어가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난다.
코스모스·메밀밭 축제장에서는 어디에서 사진을 찍어도 훌륭한 샷을 건질 수 있지만, 특히 그림이 잘 나오는 곳은 ‘플라워 뷰’라는 글자가 적힌 하얀 건물로 걸어가는 흙길이다. 왼쪽에서는 코스모스가 하느작거리고, 오른쪽에서는 메밀꽃이 바람에 흔들린다.
며칠째 흐리던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아주 맑게 개었다. 비어 있으면 허전할까 봐 하얀 뭉게구름이 하늘을 가득 메운다. 그 아래 하얀 건물과 그 뒤로 보이는 푸른 산은 알록달록한 색상의 코스모스, 하얀 메밀꽃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꽃 단지에서 1.5km 떨어진 곳에는 북천역-하동레일파크가 있다. 예전에는 경전선이 달리던 곳이었지만 북천역에서 양보역까지 철로 구간을 레일파크로 바꿔 레일바이크를 타는 곳으로 바뀌었다. 북천역-하동레일바이크는 꽃 단지 바로 앞에 있는 북천역과는 다른 곳이다. 레일바이크를 타면서 즐기는 꽃구경이 또 별미라서 많은 관람객이 이용한다. 유의할 점은 운행시간이 고정돼 있으니 미리 잘 알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경남 가을 꽃
호국의병의숲 인근인 함안군 악양생태공원에서도 활짝 핀 핑크뮬리를 즐길 수 있다. 생태공원에서 연결되는 악양 둑방길과 강변에서는 활짝 핀 코스모스 사이로 상큼한 산책을 만끽할 수 있다.
밀양시 초동면 반월리 연가길은 줄여서 초동연가길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는 ‘코스모스, 억새 맛집’이다. 느긋하게 꽤 오랫동안 가을 햇살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다. 총 길이가 무려 4km에 이른다.
거창군 감악산에서는 지난 12일까지 ‘제5회 감악산 아스타국화축제’가 열렸다. 축제가 끝났다고 해서 축제장이 문을 닫았거나 꽃이 모두 시든 것은 아니니 실망할 필요는 없다.
감악산 꼭대기 별바람언덕을 보라색으로 가득 메운 아스타국화의 색감은 이색적이고 환상적이다. 하얀색, 분홍색, 보라색 아스타국화 수만 송이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산 정상에는 풍력 발전기 여러 대가 돌아가는데, 꽃밭에 들어가 발전기를 배경으로 찍는 사진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가을꽃이라면 함양군 상림공원도 빼놓을 수 없다. 백일홍, 안젤로니아, 숙근사루비아 등 다양한 꽃이 온 세상을 화려하게 꾸민다. 수백 년 묵은 나무들이 무성한 잎을 자랑하는 상림 숲을 따라 끝도 없이 꽃이 이어진다. 상림 공원과 꽃 정원 사이의 산책로를 걷거나 뛰는 지역 주민들이 적지 않다. 꽃 정원을 둘러보고 대봉스카이랜드에서 모노레일과 집라인을 즐겨도 된다.
2025-10-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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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이 산이 가을 풍경 맛집이네
통영대전고속도로의 장수IC에서 빠져나와 새만금포항고속도로를 달린다. 평범한 여러 산 너머로 갑자기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 두 개가 나타난다. 주변의 산은 사이좋게 비슷한 높이로 솟아있는데, 유독 두 봉우리만 위로 튀어나왔다. 저렇게 희한하게 생긴 산은 도대체 무엇일까.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특이한 전설을 떠올릴지 모른다. 악마가 대형 바위 두 개를 들고 가다 떨어뜨렸다거나, 고대 거인이 인간과의 싸움에서 패한 뒤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일지도 모른다.
이 산은 전북 진안군의 명물 마이산이다. ‘말의 귀’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이름에서 유추해보면 알 수 있듯 위의 두 전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옛날 인간 사이에 섞여 살던 부부 신이 새벽에 하늘로 올라가려다 동네 주민에게 들키고 말았다. 부부는 등천하지 못하고 두 개의 봉우리로 변하고 말았다.
이번 여행은 마이산의 신기한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코스모스, 노랑(황하)코스모스, 해바라기가 피어난 진안농업기술센터에서 인생 샷을 찍는 게 목적이다. 이미 이곳은 가을 사진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어서 누가 가더라도 실패하거나 후회할 일은 없다.
■세 가지 꽃 세 가지 풍경
진안IC에서 내려 진안농업기술센터로 달린다. 가을이면 많은 블로거, 유튜버는 물론 프로, 아마 사진작가들이 인생 샷을 건지기 위해 출사하는 곳이다. 도대체 그곳에 무엇이 있기에 그들이 몰리는 것일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들판으로 향한다. 들판 너머로 마이산이 보인다. 직선거리로는 2km인 데다 앞을 가리는 건 하나도 없어 마이산은 바로 눈앞인 듯 시원하게 보인다. 다른 곳에서 보는 것과 다른 점은 딱 하나다. 봉우리 두 개가 겹쳐 하나만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색적인 산 모습에 반한 채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들판 위로 올라서는 순간 “야!”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들판은 온통 코스모스 천지다. 앞쪽은 약간 끝물인 것 같지만 다른쪽은 여전히 꽃이 한참 피었다. 코스모스 꽃밭 한가운데로 걸어가서 마이산을 바라본다. 왜 이곳에 가을 사진을 찍으러 오는지 이유가 금세 드러난다.
마침 대형 버스 두 대가 도착한다. 한 대에서는 부부, 연인, 친구, 동네사람 등 개별 관광객이 우루루 내리고, 다른 한 대에서는 값비싼 카메라를 손에 든 아마 사진작가들이 하차한다. 그들이 서둘러 달려오는 곳도 바로 코스모스 꽃밭이다.
블로거로 보이는 한 젊은 여성이 삼발이에 휴대폰을 설치하더니 꽃밭으로 들어가 맑은 공기를 온몸으로 마시려는 듯 두 팔을 쭉 벌린다. 친구 사이로 보이는 중년 여성 두 명도 ‘포토존’이라는 팻말이 세워진 꽃밭 안으로 들어가 밝은 표정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준다.
가만히 서서 코스모스 꽃밭과 그 너머 마이산을 바라본다. 가을을 대표하는 알록달록한 코스모스가 다양한 색으로 알록달록하게 핀 게 마치 동네 주민에 들켜 바위로 변해버린 부부 신이 올라가려던 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하늘나라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지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코스모스 꽃밭 하나만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오기에는 시간이 아까울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곳에는 코스모스 외에 다른 꽃밭도 마련돼 사진을 더 찍을 기회를 제공한다. 코스모스 꽃밭 바로 앞에는 노랑코스모스 꽃밭과 해바라기 꽃밭이 각각 마련됐다.
노랑코스모스는 사실 노랗다기보다는 주황색에 가깝다.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코스모스가 아니라 다른 꽃이라는 오해를 주기 쉽다. 좋은 사진을 찍는 데 꽃 이름을 오해하든 말든 상관은 없다. 이곳에서 마이산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의 느낌은 코스모스 꽃밭에서 찍은 사진과 완전히 다르다. 코스모스 꽃밭이 조금 친근하고 소박한 소녀 같다면 이곳은 다소 도도하고 근엄한 귀부인이라고나 할까. 물론 사람마다 날씨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으니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다른 건 당연지사다.
해바라기는 화사하게 피긴 했지만 아직 다 익지 않은 듯 약간 푸르고 싱싱하다는 느낌을 준다. 누렇게 익은 해바라기를 본 경험은 더러 있지만 이렇게 아직 어린 분위기를 주는 꽃은 처음이다. 마침 해가 마이산 반대편 쪽에 떠 있어 해바라기도 마이산을 바라보지 않고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 상태다. 마치 말다툼한 두 연인이 토라져 등을 돌린 형상이다. 그래도 사진 찍기에는 이런 모습이 나아 보인다. 해바라기가 마이산을 바라본다면 마이산 사진을 찍을 때 해바라기는 얼굴이 아니라 뒤통수만 보이기 때문이다.
마이산을 배경으로 세 가지 꽃의 세 가지 풍경을 찍다 보니 엉뚱한 생각이 든다. 센터 쪽에서는 어느 곳에 가더라도 마이산 두 봉우리가 겹쳐 하나로 보인다. 사진을 찍을 때 봉우리 하나보다는 두 개가 더 멋져 보일 텐데 아쉽다. 그래서 산 바닥에 바퀴를 달아 가을에는 두 봉우리를 센터 쪽으로 돌려 사진이 더 훌륭하게 나오도록 만들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허상이다.
세 가지 꽃의 세 가지 풍경을 눈과 카메라에 담았다면 이제 저수지를 보러 갈 때다. 센터에는 ‘반달’이라는 뜻의 반월제라는 저수지가 있는데 이곳에서 마이산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이 또 멋지기로 유명하다. 센터에서 볼 때 마이산은 서쪽이어서 해가 질 때 사진을 찍으면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지금은 한낮이어서 일몰 사진은 촬영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연잎이 둥둥 떠다니는 저수지와 마이산을 한 컷에 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마이정원과 탑사
진안농업기술센터에서 마이산을 배경으로 세 가지 꽃과 저수지를 구경했다면 이제는 직접 마이산으로 갈 차례다.
마이산에 올라가기 전에 두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사진을 찍으려면 마이산북부예술관광단지 제1주차장 쪽의 마이정원으로 가야 한다. 이곳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편안하고 느긋한 가을 산책을 즐기려면 마이산도립공원 제1주차장으로 달려가면 된다.
마이산도립공원 제1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면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진 숲길이 나타난다. 잎이 무성해서 한여름에도 충분한 그늘을 드리워준다. 아직 가을이 깊지 않아 잎이 완벽히 단풍으로 바뀌지는 않았지만 가을 향기가 서서히 퍼진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숲길 한가운데에 저수지 탑영제가 나타난다. 그 뒤로 마이산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진안농업기술센터나 마이정원 쪽에서 바라보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냥 큰 바위 덩어리처럼 보인다.
저수지 인근에는 돌탑이 보인다. 이곳에는 탑사로 올라가는 관람객이 돌을 쌓아 탑을 만들 수 있는 ‘돌탑체험장’이 있다. 관람객들이 쌓아올린 크고 작은 돌탑은 한두 개가 아니다. 탑 하나하나마다 모두의 정성과 기원이 담겼다.
숲길을 따라 개울도 흐른다. 나무덱이 만들어져 개울을 따라 걷기도 편하다.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시멘트를 발라놓은 산책로보다 훨씬 아름다운 길이다.
숲길의 끝은 오늘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탑사다. 마이산 두 봉우리 아래에 수많은 돌탑이 있다고 해서 탑사라고 불린다. 돌탑을 쌓은 사람은 19세기 이갑룡 처사였다. 원래 돌탑은 120개 정도였지만 지금은 80개만 남았다.
마이봉 아래에 파묻혀 따스한 가을햇살을 받는 탑사의 풍경은 특이하다. 사찰이 풍경의 핵심인지 돌탑이 이곳의 주인인지 단언하기 힘들 정도로 돌탑이 돋보인다.
2025-10-03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