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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을 생각한다
‘다른 도시에는 도시 속에 공원이 있지만, 싱가포르에는 공원 속에 도시가 있다.’ 이 말은 대체로 2010년까지만 유효했다. 지금은 아니다. 2010년 3월 매립한 해변 부지에 마리나베이샌즈호텔이 우뚝 솟은 이후 싱가포르의 스카이라인은 춤추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잘 가꿔진 공원과 첨단 항만으로만 승부를 겨루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최근 며칠간 싱가포르에 머물 기회가 있었다. 이전에는 하루 이틀 머물다가 오곤 해 싱가포르의 겉모습을 보았다면, 이번에 일주일 정도 머문 덕에 싱가포르의 겉과 속을 고루 체험했던 셈이다.
부산시는 글로벌 허브도시로의 도약을 꿈꾼다. 정부는 부산을 국제 자유 비즈니스 도시로 키우려는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제정으로 뒷받침할 계획이다. 싱가포르는 부산이 글로벌 허브도시로 가는 길목에서 반드시 벤치마킹해야 할 대상이다. 싱가포르는 항만이나 물류 분야에서는 부산과 경쟁 관계에 있고, 관광 등 마이스 산업에서도 우리가 배워야 할 게 많은 도시여서다. 더욱이 박형준 부산시장은 연초에 “2024년은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의 원년이 될 것”이라며 “한마디로 부산을 싱가포르에 비견되는 글로벌 허브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조용하게 보여도 치열하게 변신 중인 싱가포르의 몇 가지 특징을 소개한다.
우선 싱가포르의 건물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넘친다. 도심의 가로를 걸어가면 건물들이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하며 이방인의 옷소매를 끈다. 예컨대 마리나베이샌즈, 가든스바이더베이, 사이언스파크, 싱가포르 플라이어 등의 건물은 유명 건축가들의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이들 건물은 화려한 야경도 자랑한다. 비즈니스맨이든, 관광객이든 죄다 야한 빛으로 홀려놓겠다고 작심한 것일까? 야간 레이저쇼는 홍콩의 밤을 조명과 음악으로 장식하는 명물 이벤트 ‘심포니 오브 라이트’가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다음으로 대규모 관광 위락 시설과 항만 시설의 재배치를 소리 없이(?) 진행 중이다. 종전에는 관광지구가 센토사섬이나 서쪽 지역의 주롱 새 공원 등에 한정되었다면, 지금은 해안 매립을 통해 도시 기능을 재배치하고 교통 거점마다 복합 쇼핑몰을 배치하고 있다. 매립→신축→개장→투자비 회수→재투자로 선순환 되는 것이다. 참고로 싱가포르는 1965년 독립 이후 2022년까지 국토 면적(719㎢)의 20%(140㎢)가 해안 매립을 통해 확장되었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 있다. 자율보다 규제, 즉 행정 강제력을 적극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종 ‘잘 사는 북한’이란 국제적인 조롱을 듣는 이유다. 결과적으론 도시의 경쟁력과 쾌적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다. 그 덕에 항만뿐만 아니라 도시 인프라와 대중교통 네트워크도 효율적으로 작동된다. 이층 버스, 전철 등 대중교통 비용은 하루 2달러 이하로 저렴한 데다 그랩(grab) 택시까지 잘 운용되고 있다. 한편으론 자율보다는 규제 우위로 인해 어쩐지 또 한 편의 영화 ‘트루먼 쇼’에서 조연이 된 기분도 든다.
부산항은 언제쯤 글로벌 메가 허브항으로 갈 수 있을까? 싱가포르항은 세계 1위 항만이면서 항만 자동화 수준이 세계 최고다. 우리 속담에 ‘호랑이 가죽은 탐이 나고 호랑이는 무섭다’는 말이 있다. 호랑이 가죽을 얻으려면 사나운 호랑이를 잡을 방도부터 찾고 실행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IT기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항만 자동화율은 싱가포르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고 한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부산항이 글로벌 메가 허브항이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하지만 부산만의 강점부터 살려 나갈 일이다. 강과 바다, 산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삼포지향의 도시, 천연의 바다, 사철 변화무쌍한 금정산, 백양산 그리고 장산, 해안 따라 펼쳐진 갈맷길, 낙동강 변의 잘 가꿔진 자전거길, 광안대교에서 부산항·남항대교를 거쳐 가덕대교까지 이어진 해상 드라이브 길 등이 있다. 싱가포르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천혜의 조건이다. 아울러 부산만의 차별화된 요소인 영화의전당과 벡스코, 수리조선 산업 그리고 머지않아 열릴 북극 항로가 가장 큰 잠재력이다. 글로벌 허브항은 장기 목표로 하고, 시민이 행복한 도시 부산이 단기 목표가 돼야 한다. 글로벌 허브 이전에 싱가포르가 부럽지 않는 글로벌 행복 도시부터 만들 수 있다.
박원호 하우엔지니어링 부사장·기술사
2024-03-0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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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월대보름에 오곡밥과 나물을 먹는 이유
세상 만물은 시작이 중요하다. 한 해의 출발은 봄이다. 입춘 후 오는 상원(上元)인 정월대보름(올해 2월 24일)은 특별하다. 설날부터 정월대보름 사이에 많은 세시풍속이 몰려있다. 또한 시작을 알리는 정월대보름까지는 금기시되는 것을 하지 않고 매사에 조심하고 조심해야 하는 정초 십이지일(正初 十二支日)도 있다. 올해는 청룡의 해인 만큼 상서로운 용의 기운으로 건강과 풍년을 소망한다. 그리고 첫 용날인 상진일(上辰日·2월 22일)에 약수를 길어다 밥을 지어야겠다. 지금은 물맛 좋은 우물이 사라지고 없으므로 동네 뒷산 약수터 약수로 대신해 보자.
설날이 가족의 날이라면 정월대보름은 마을 공동체의 날이다. 조선 세시풍속을 적은 〈동국세시기〉는 정월대보름에 오곡으로 밥을 해 먹으며 이웃과도 나눈다고 했다. 공동체에서 음식은 매우 중요하다. 같은 음식이 같은 생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식사가 어떤 식으로 준비되는가에 따라 인체가 서로 다르게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정월대보름 풍습으로 백가반(百家飯)이 있다. 어린아이가 동네 백 군데 집을 돌면서 밥을 얻어다 섞어 먹으면 액운을 피하고 복을 받으며 봄을 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네를 누비는 과정에서 이웃사람들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좋은 점도 있다. 아파트가 즐비한 요즘엔 같은 동 앞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핵가족화가 진행된 지 반세기도 안 돼 1인 가구도 급증했다.
정월대보름날 전국 곳곳에서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갖가지 풍속을 즐긴다. 대표적인 게 마을 공동 제사와 달집태우기, 줄다리기, 연날리기 등이다. 모두 풍요와 다산을 빌고 단결력을 높이는 공동체의식이 깃든 놀이다. 특히 예부터 정월대보름에 다섯 가지 곡식이 들어간 오곡밥과 묵나물 반찬을 즐겨 먹었다. 오곡밥에는 보통 찹쌀, 멥쌀, 기장, 팥, 쥐눈이콩이 들어간다. 오곡밥은 신진대사를 촉진해 소화가 잘 되게 하며 혈압을 조정해 면역력을 키우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묵나물의 기원은 우리 조상이 채소를 먹기 시작할 때부터인 것으로 알려졌다. 묵나물은 제철에 채취해 말려 놓았다가 이듬해 먹는 것으로, 햇살과 바람이 만들어낸 식재료다. 볕에 말리는 나물은 그 성질이 따뜻하게 변한다. 말린 나물은 비타민, 무기질, 식이섬유의 보고다. 말린 나물의 식이섬유는 비만과 변비 등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묵나물이 제맛을 내는 시기가 바로 정월대보름 전후다. 묵나물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박, 버섯, 호박, 무, 무 시래기, 고사리, 취나물, 가지 등을 말린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나물은 삶아 햇빛에 천천히 말리면 어두운색으로 변한다. 그러면 검은색에 풍부한 색소인 안토시아닌이 생성된다. 안토시아닌은 동맥에 침전물이 생기는 것을 막아 피를 맑게 하고 심장 질환과 뇌졸중 위험을 줄여준다고 한다. 소염·살균 효과도 뛰어나다.
오곡밥과 묵나물은 색깔이 어둡다는 특징이 있다. 봄이 시작되는 시기에 검은색 음식은 겨우내 몸 안에 쌓인 습하고 건조한 기운을 부드럽게 하고 화기를 조절하는 조습연견(燥濕軟堅) 효능이 있다. 그리고 검은색은 인간의 지혜를 관장하는 색을 의미한다. 또 소생을 상징함과 동시에 만물의 흐름과 변화를 내포하고 있다. 정월대보름에 오곡밥과 묵나물을 먹는 이유다. 여기에는 행동을 조심하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이날 단단한 견과류로 부럼 깨물기를 하고 차가운 귀밝이술도 마신다. 액운이나 질병을 막고 좋은 일이 생기기를 원해서다.
정월대보름을 전후해 뚜렷해지는 봄의 기운은 추위에 움츠렸던 인체에도 서서히 밀려들기 시작한다. 몸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서는 충분한 양의 비타민이 필요하다. 비타민이 부족하면 몸이 나른해지고 졸음이 오며 식욕과 면역력이 떨어진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면서 양기가 점차적으로 많아지는 시기다. 이때 기름기 많은 음식을 적게 섭취해 양기가 몸 밖으로 새 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래야 체내의 간을 안정시켜 오장육부를 조화롭게 할 수 있다. 오는 24일 정월대보름에 오곡밥과 나물을 먹으며 심신 건강을 다지고 옅어진 가족애와 공동체의식도 되돌아보면서 삶의 희망을 키우자.
2024-02-2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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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에 부산 미래 달렸다
두 달 뒤인 4월 10일 제22대 총선이 실시된다. 하지만 정치는 국민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갈수록 퇴행하고 있다. 연초부터 발생한 제1야당 대표와 여당 국회의원에 대한 피습사건. 그리고 아직도 결정되지 않은 선거구 개편과 거대 양당의 끝 모를 대결 정치는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에 대해 많은 피로감을 느끼게 만든다. 여야 간 사생결단식 대결 정치와 상대를 향한 혐오와 적대가 난무하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이다. 이는 팬덤 정치 기반의 권력구조가 낳은 결과다. 거대 양당이 국민을 바라보는 정치가 아니라 자신의 기득권과 자당의 이익만을 좇는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 스스로가 대결과 혐오 정치의 근절에 발 벗고 나서야 하며 국민을 위한 정치를 추구해야 한다.
부산 정치의 가장 큰 폐해는 일당 쏠림 현상이다. 20대와 21대 국회를 거치면서 일정 부분 해소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일당 독점 현상이 강하다. 이로 인해 지역 발전은 더디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민에게 돌아간다. 유권자들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고, 또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일으키게 된다. 지역 발전과 미래를 내다본다면 일당 독점 체제에서 벗어나 더 균형적인 정치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적절한 견제와 긴장은 지역 발전을 위한 더 나은 정책과 공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까닭이다.
유권자와 언론에 비친 부산의 현역 국회의원들 모습은 어떨까? 중앙 정치에서의 존재감은 뒤로하고 과연 이분들이 부산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제대로 일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다지 긍정적인 답변을 얻지 못할 것이다. 2030월드엑스포 부산 유치, 산업은행 부산 이전, 반도체 특화단지 지정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다.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정치권의 역량과 관심, 의지를 묻고 싶다.
지역 정치의 케케묵은 과제 중 하나가 정책 부재와 인물난이다. 〈부산일보〉가 지난달에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2회에 걸쳐 부산 지역 현역 의원들의 ‘지역 개발’ 공약을 점검해 보도했다. 도시철도와 대규모 복합개발 사업까지 4년 전 유권자들의 표심을 흔들었던 총선 공약들의 현재 모습을 살펴본 것이다. 확 바꾸겠다던 공약은 ‘그대로’ 상태에 머물러 있고, 도시철도 사업은 실체화되고 있지 않다는 결론이었다. 정책과 공약에 대한 철학의 부재이자 철저한 준비 부족을 드러낸 것이다.
부산경실련이 작년 11월 지역 현역 의원들에 대한 자질 검증 결과를 발표했다. 의정활동(법안 발의 저조, 회의 결석률 등)과 도덕성(과다 부동산, 과다 주식, 사회적 물의 등)이 경실련의 검증 기준이다. 이 기준에 최소 1건 이상 걸린 부산 국회의원의 비중은 무려 83.3%(18명 중 15명)이다. 이 수치는 수도권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참고로 서울 41.2%, 인천 57.1%, 경기 49.2%이다. 경실련 기준으로 본다면 수도권에 비해 부산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들의 자질은 매우 낮은 것이다. 자질이 검증된 인물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거대 양당이 져야 하지만 유권자들도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할 대목이다.
다가오는 제22대 총선에서는 자질이 검증된 인물들이 등장하고 지역의 사회적 발전, 경제적 발전을 위한 좋은 정책들이 많이 제시되어야 한다. 부산은 2030월드엑스포 유치 실패 이후 미래 먹거리에 대한 현실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또한 초고령 사회, 저출산, 높은 청년 인구 유출 등도 우리 부산이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현실적인 답은 앵커 기업 유치를 통한 지역 산업 육성과 좋은 일자리 창출이다. 여기에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한다. 물론 부산시의 고민이 많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정치권 역시 많은 노력과 의지를 보태야 한다. 부산의 미래 먹거리를 위한 정치권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발전을 위한 올바른 정책을 갖고 있는 후보, 좀 더 자질 높은 인물들이 국회에 입성해야 한다. 결국 지역 유권자들의 현명한 선택에 부산의 미래가 달려 있는 셈이다. 앞으로 여야 총선 후보들의 면면과 자질, 능력을 철저히 따져보고 이들의 공약과 정책도 꼼꼼하게 살펴본 뒤 신중한 판단을 통해 반드시 한 표의 신성한 주권을 행사하길 바란다.
2024-02-0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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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방분권 위한 총선 공약이 필요하다
제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70여 일 남았다. 국회의원 출마 예비후보자, 여당과 야당, 신당을 창당하려는 정치인들 모두 총선 승리에 사활을 걸고 각종 공약을 발표하고 있으나,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관한 공약은 보이지 않는다. 지방분권 운동에 15년 넘게 활동해 온 필자로서는 매우 실망스럽다.
2020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국토 면적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살고 있다.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정한 적정 의석수를 보면 수도권이 128석으로 지역구 253석의 절반을 넘어섰다. 수도권의 급격한 인구 증가 때문이다. 이처럼 수도권은 인구와 국회의원 수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의료 등 전 분야에 걸쳐 모든 걸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으며, 지방은 소멸 위기에 허덕이고 있다. 이제 수도권 주민들을 제외한 비수도권 주민들은 수도권 일극 중심주의의 폐해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지방분권·지역균형발전, 시대적 요구
대통령 직속 위원회 추진 성과는 미흡
대안으로 ‘지역정당 허용’ 목소리 등장
총선 후보 자치분권 실현 공약 내놔야
시민단체·유권자, 여야에 촉구할 필요
그래서 노무현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5년 한시법으로 지방분권위원회 같은 위원회 조직을 만들어 지방분권 및 국토균형발전 정책을 실시해 왔으나, 공공기관 지방 이전 외에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도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으로 5년 한시 조직인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를 구성하여 지방분권 및 국토균형발전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하고 있다.
지방시대위원회라고 명칭만 달리한다고 하여 지방분권 및 국토균형발전 정책이 제대로 시행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과거 20년간 지방분권 및 국토균형발전의 역사에서 보듯이 대통령 직속 위원회 조직으로는 정책을 제대로 시행할 수 없다는 사실이 여실히 증명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방분권 운동가들은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부총리급의 국가균형발전부라는 행정 조직을 신설하라고 요구해 왔지만, 어느 정부에서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근래에는 직접 지역정당을 만들어 지방의회에 진출하고, 국회에도 진출하여 지방분권 및 국토균형발전 정책을 주체적으로 추진하겠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중앙 정치세력인 거대 양당의 공천을 받은 후보자들이 대부분 당선되면서 지방정치의 중앙 예속화가 고착화된 상황을 타파하고, 정치의 지방분권화를 도모하기 위해 지역정당 설립이 하나의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당법은 정당의 중앙당은 반드시 서울에만 두어야 하고, 5개 이상 시도 당을 가져야 하는 것으로 규정해 일정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지역정당의 설립을 원천봉쇄하고 있어 문제다. 그래서 지역정당 설립을 추진하던 단체가 지역정당 설립을 원천봉쇄한 정당법 조항에 대하여 헌법에서 보장한 ‘정당 설립의 자유’를 침해하여 위헌이라는 취지의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2023년 9월 26일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 9명 중 과반수가 넘는 5명은 위헌이라고 판단하였으나, 위헌 결정의 기준인 9명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6명에서 1명이 부족해 위헌 결정이 내려지지 않았다.
헌법재판관 5명이 위헌이라고 판단한 요지는 매우 시의적절하고 명쾌하다. “지역정당의 출현으로 인한 지역주의 심화 문제는 정당에 대한 규제가 아니라 정치문화적 접근으로 해결하여야 하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전국 어디에서든 정치 참여가 가능하고 지방자치가 확대되고 있는 현실에서 모든 정당이 전국 규모의 조직을 갖추고 전체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정당 활동을 수행할 필요는 없다. 전국정당 조항은 각 지역 현안에 대한 정치적 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정당의 출현을 배제하여 풀뿌리 민주주의를 차단할 위험이 있다. 지역정당 배제는 지방정치를 중앙정치에 종속시켜 지방정치의 활성화를 억지시키는 것이다.”
거대 양당은 지역정당을 허용하지 않는 정당법을 개정하지 않을 게 분명하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 비수도권 시민사회단체들은 여야의 출마자들과 각 당에서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 추진, 정당법 개정을 위한 정책을 공약으로 내놓도록 촉구하는 일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이에 부응하는 총선 후보와 정당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24-01-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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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HMM 매각, 한국 해운산업 명운이 달렸다
우리나라 최대 해운기업인 HMM의 매각을 둘러싸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다. 당초 기대와 달리 대기업은 불참한 채 자금 동원력이 떨어지는 중견그룹만 매각 경쟁에 뛰어들면서 ‘새우가 고래를 품는 격’이라는 지적에 이어 최근에는 노조까지 부실매각이라며 매각 중단을 요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이번 매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영난에 빠진 현대상선(현 HMM)에 자금을 지원해 준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지분 57.9%가 대상이다. 지난달 인수가격으로 6조 4000억 원을 제시한 하림그룹 계열사 팬오션과 사모펀드 운용사인 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현재 최종 인수조건을 놓고 협상이 진행 중이다.
HMM의 자산 규모는 작년 4월 기준 25조 7880억 원으로 재계 19위인 반면 하림그룹은 17조 910억 원으로 재계 27위에 불과하다. 하림이 HMM을 인수하게 되면 단숨에 자산 42조 8000억 원으로 재계 13위로 급부상하게 된다. 1976년 육계사업으로 시작해 사료, 식품가공, 유통 등 종합 식품기업으로 성장한 후 2015년 국내 최대 벌크선사 팬오션을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해운업에 뛰어든 하림이 HMM까지 품게 되면 종합 물류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
HMM은 국민 혈세로 살려낸 해운사
팬오션 보유 중견기업 하림 인수 나서
‘새우가 고래 품는 격’ 우려 시선 많아
투자금 회수 급급한 매각 추진은 안 돼
해운 경쟁력 강화 위한 국익 관점 필요
그럼에도 하림의 HMM 인수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선은 불안하다. 먼저 하림그룹의 자금조달 능력이다. 현재 하림은 본인들이 제시한 인수대금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향후 HMM 운영에 들어갈 막대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 의문이다. 하림 측은 인수대금의 절반가량을 인수금융으로 확보하고, 나머지는 재무적 투자자인 JKL파트너스로부터 5000억 원을 마련하며 부동산과 선박 매각 등 자산유동화를 추진한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다. 부족한 3조 원가량은 결국 팬오션을 통해 유상증자로 조달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한다. 이 경우 몸집이 작은 팬오션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될 위험이 크다.
이렇다 보니 하림은 HMM 주식배당으로 현금을 일부 조달하기 위해 영구채 주식 전환에 3년 유예를 요구했으나 동원그룹으로부터 공정성 위배라는 지적을 받고 철회한 바 있다. 더구나 매입에 성공하더라도 호황은 짧고 불황은 긴 해운경기의 특성과 미래 경쟁력 강화 때문에 친환경 선박 확보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점을 감안할 때 과연 자본 규모가 크지 않은 하림이 정상적으로 HMM을 운영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둘째, HMM이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벌어들인 10조 원 규모의 현금성 유보금의 전용 가능성이다. 자본조달 능력이 떨어지는 하림이 급한 대로 인수금융 조달 후 HMM이 보유한 현금성 유보금에 손대지 않겠냐는 우려이다. 이 경우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린 기업의 이익에 손을 댄다는 ‘먹튀’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행히 노조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하림 측은 해당 유보금을 HMM의 미래 경쟁력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 금융논리를 앞세워 한진해운 파산을 경험한 당국이 국민 혈세를 투입해 살려낸 국내 최대 선사를 자금력도 부족한 기업에 매각하여 국가 기간산업의 미래를 맡기는 게 과연 최선의 선택이냐는 것이다.
이번 매각의 초점은 수출입으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에게 생명선과 같은 해운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추진돼야 한다. 투자금 회수를 통해 재무건전성을 개선해야 하는 산업은행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나 시간에 쫓겨 졸속 매각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반드시 이번 매각을 성사시켜야 한다면 금융논리의 관점에서만 볼 게 아니라 국익 관점에서 해운산업의 전략적 중요성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 매각조건을 엄중히 고려해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하림 또한 HMM 인수가 ‘승자의 저주’가 아닌 ‘신의 한 수’가 되기 위해선 HMM 인수의 진정성을 입증할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국내 최대 선사 HMM 인수는 특정 기업의 몸집 불리기 수단이 아니라 한국해운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기회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한 의지와 역량이 있는 기업이 HMM을 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제2의 한진해운 사태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한진해운이 파산한 지 7년이 되는 다음 달 한국 해운산업의 명운이 결정될 것이다.
2024-01-10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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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새해를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 실현 원년으로
저물어가는 올해는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과정을 통해 국제도시 부산을 위한 시민과 각계각층의 열정적 노력과 단결된 힘을 확인한 의미 있는 한 해였다. 세계를 향해 제기한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 ‘자연과의 지속 가능한 삶’ ‘인류를 위한 기술’ ‘돌봄과 나눔의 장’이라는 부산이니셔티브는 부산이 글로벌 가치를 실천하고 확산하는 세계 속의 도시로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비록 엑스포 유치에는 실패했지만, 정부는 부산을 위해 가덕신공항 조기 개항, 북항 2단계 재개발, 한국산업은행 이전을 약속했다. 이들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부산이 글로벌 허브도시로 도약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약속이 흔들림 없이 성공적으로 추진돼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글로벌 허브도시가 성공하기 위한 핵심 요인에는 무엇이 있을까? 세계의 주목을 받는 싱가포르나 두바이의 사례는 세 가지 허브전략을 제시한다.
첫째, 핵심도시를 중심으로 한 초연결 광역경제권으로 그 지역의 자연, 사회, 문화 및 산업의 특성에 맞추어 구축하는 메가시티 허브전략이다. 둘째, 핵심 거점도시-인근 중소도시-국제도시 간 통합 물류클러스터의 구축과 동시에 자본시장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국제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금융물류 허브전략이다.
마지막은 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 기업들이 과감한 디지털?녹색 신산업 기술 및 원활한 금융 투자 지원을 통해 지역 앵커기업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혁신산업 허브전략이다. 메가시티 허브, 금융물류 허브, 혁신산업 허브전략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계되고 상호 시너지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할 중요한 요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경제, 도시 및 환경 분야에서의 중앙 집중적이고 획일적인 행?재정적 규제의 과감한 개선과 철폐, 세제의 혁신적 개선 그리고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정부의 일관된 지방시대 정책의 추진 의지이다.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은 부산을 글로벌 허브도시로 육성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과 이를 추진할 범정부 거버넌스의 조속한 구축을 시민들에게 약속했다. 이는 수도권 일극화의 폐해를 극복하고 부산을 남부권 경제, 산업, 교육, 관광 등의 혁신적 성장거점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부산이 국가 발전을 견인하는 새로운 성장축의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지켜보는 시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크다.
부산시는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가 성공하기 위한 네 가지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하였다. 첫째,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세계적인 경제허브 기능을 수행하는 국제자유비즈니스도시, 둘째, 디지털 신산업과 금융물류산업의 혁신적 육성을 위한 그린스마트 혁신도시, 셋째, 국제적인 관광지 조성 및 관광 혜택 지원 등을 통한 글로벌 관광허브도시, 넷째, 살기 좋은 정주환경 조성, 외국교육기관 설립의 자율화 및 영어교육 규제 개선 등을 통한 글로벌 정주환경도시이다.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첫걸음은 시작됐다. 이는 정부 지역균형개발 정책의 실천 의지를 측정할 수 있는 바로미터이다. 특별법 제정은 부산이 직면한 3대 위기, 즉 인구·기후·일자리 위기를 선도적으로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부산은 그동안 도시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과 사업을 적극 추진하면서 역량과 잠재력을 충분히 키워 왔다. 이제 기존 정책들을 글로벌 허브도시의 성공을 위해 효율적으로 재정비해 선택과 집중을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와 역량이다. 준비해 온 부산의 잠재력을 속도감 있게 전개하고 축적된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앞으로 범정부 협의체의 원활한 구성과 운영, 부산 핵심 특구 과제들의 발굴, 특별법을 지원하기 위한 기본구상 및 기본계획의 면밀한 수립, 법안 발의 및 통과를 위해선 부산시, 시의회, 시민이 하나가 되는 노력이 요구된다. 궁극적으로는 특별법이 부산의 발전만이 아닌 남부권, 나아가 대한민국 미래 발전의 견인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2024년을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 실현의 원년으로 삼자.
2023-12-2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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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해사법원은 부산으로!
‘제75조(분쟁의 해결) 본 계약으로부터 발생되는 모든 분쟁은 런던 해상중재인협회 규칙에 따라 런던에서 중재로 해결한다.’ 이는 국내 선사와 국내 선박 건조 회사 사이에 체결되는 선박건조계약에 일반적으로 명시되는 분쟁 해결에 관한 조항이다. 세계 제일의 조선 능력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조선업체들이 계약의 당사자가 된 경우에도 선박 제조와 관련한 대부분의 법적 분쟁은 영국이나 싱가포르, 중국을 해결지로 정하고 있다. 국내에는 해양 관련 분쟁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해사법원이 없기 때문이다.
해사법원의 부재는 국내 법원 해사사건 담당 재판부의 전문성 부족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사건 처리의 지연, 재판의 신뢰성 부족으로 귀결돼 결국 해사사건을 전문 법원이 있는 다른 나라에서 처리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국내 기업 간 분쟁조차 해외에서 해결하다 보니 우리나라가 영국 등 해외 소재 로펌에 지불하는 법률 서비스 비용만 연간 4000억 원이나 된다.
이 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국내에 해사법원이 하루빨리 설치되어야 한다. 한국은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 세계 1위이며, 세계 2위 환적항이자 세계 7위 컨테이너 항만인 부산항을 보유한 해양강국이다. 하지만 이러한 몸집에 걸맞는 해양지식 산업의 발전은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해양지식 산업 발전의 문을 열어줄 열쇠가 바로 해사법원 신설이다.
대법원이 2020년 9월 사법행정자문회의를 통해 해사법원 설립에 동의하는 의견을 밝힌 바 있어 다행스럽다. 윤석열 대통령도 2022년 대선 당시 해사법원 설치를 약속하였고, 현재 21대 국회에 각각 부산, 서울, 인천, 세종을 해사법원의 설립지로 하는 법안들이 발의되어 있다. 부산 설립안의 경우 안병길 의원(국민의힘)과 박재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각각 발의해 부산은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이 해사법원 설치는 대통령과 대법원, 국회의원들의 동의가 있었으나, 설치 지역에 대해서는 다른 목소리가 나오다 보니 지역 간 갈등과 정쟁의 문제로 비화되어 몇 년째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더욱 답답한 것은 해사법원 신설 문제는 결국 법원조직법 등 법률을 개정해야 되는 입법 사항인데, 여야 간 극심한 정쟁으로 이 문제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어 발의된 각 법안들이 곧 자동 폐기될 처지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연간 4000억 원의 법률 서비스 비용이 해외로 유출되는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특히 1984년부터 해사법원을 설립하여 운용하기 시작한 중국과의 해사 법률 분야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해사법원 설치 문제는 지역 간의 이익 조정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해사법원은 단순히 해사사건을 전문으로 처리하는 법원 정도의 의미만 가진 것이 아니다. 해사법원을 통해 선박금융, 선박보험, 선박중개업 등 고부가가치 해양지식 산업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해사법원 설치는 대한민국의 해양산업 경쟁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중요한 국가적 과제이다. 그리고 해사법원 설치는 해양지식 산업의 일자리 창출 효과도 매우 클 것으로 보이는 만큼 산업과 인력의 수도권 집중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정책의 하나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70% 이상의 해양산업 관련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고, 해양 관련 대학과 연구기관, 아태해사중재센터, 한국해양진흥공사 등 다양한 해양기관들이 몰려 있는 부산이 해사법원 설립의 최적지라고 하겠다. 게다가 부산은 글로벌 메가 허브 항만인 부산항이 있는 세계적인 해양도시인 데다 해양 실무 자격과 능력을 보유한 법조 인력이 많아 해사법원 설치 지역으로 제격이다.
우리나라의 해양산업 발전을 위해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해사법원 설치 지역을 반드시 부산으로 ‘선택’하여 대한민국 해양산업의 도약을 위해 부산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부산을 중심으로 울산과 경남까지 함께 뭉쳐 정치권에 조속한 입법을 촉구해야 한다. “해사법원은 부산으로”를 외치고 있는 부산·울산·경남 지역 변호사들의 목소리만으로는 국회에 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는 듯하다. 부울경 주민들의 단합된 목소리가 모아져야 한다.
2023-12-1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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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ESG 시민운동의 필요성
최근 환경(Environmental),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의미하는 ESG 경영이 최대의 화두다. 이미 정부는 관계 부처 합동으로 ‘K-ESG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2021년에 전국 226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ESG 등급을 평가해 발표하였고, 2022년에는 전국 370개 공공기관 ESG 평가를 실시하였다. 2025년부터는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의 ESG 공시가 의무화되고 2030년부터 모든 상장사로 확대된다. 중소기업도 글로벌 ESG 기준을 따르지 않으면 해외시장 거래가 어렵게 되고 대기업도 거래를 위한 ESG 기준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ESG 경영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편리하게 살아가게 되었지만, 그 대가로 기후 위기를 불러왔고 지구는 환경오염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ESG 경영을 도입한 근본적인 배경도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살려서 후손들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물려주자는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정부와 기업에서 ESG 경영을 도입한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지만, 현재 상태는 절반의 성공에 그치는 수준이다.
친환경·사회적 책임 중시하는 경영
지구를 지켜내기 위해 필요한 처방
개인과 가정에서도 적극 실천해야
전 국민 참여 운동으로 확산할 필요
정부·지자체의 관심과 지원 요구돼
남은 절반의 성공을 위해서는 ESG 시민운동이 필요하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현재 국내에서 한 해 동안 버려지는 플라스틱 배출량은 약 1000만 톤으로 세계 3위 정도다. 전국에는 235곳에 이르는 불법 매립 쓰레기 산이 있는데 악취 등으로 인근 주민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가 재활용 분리배출을 잘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통계상 재활용되는 비중은 27%에 불과하다. 미국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사이에 있는 북태평양 해역에는 우리나라 16배 크기의 ‘태평양 거대 쓰레기 지대’라고 불리는 쓰레기 섬이 있는데 그중 10%는 한반도에서 생산된 제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9년 미국 뉴욕주립대 연구팀은 “9개 국가 11개 유명 브랜드의 생수 260병을 조사했더니 93%의 생수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고 보고하였다. 2022년 네덜란드 자유대학 연구팀은 “건강한 22명의 성인 혈액 중 80%에 가까운 17명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하였으며, 2023년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과 중국 난카이대학, 벨기에 헨트대학 등의 국제연구팀은 생수 1㎖당 나노 플라스틱이 1억 6600만 개가 들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러한 심각성 탓에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대응, 안전 및 보건 등 다양한 ESG 이슈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인 만큼 ‘ESG 경영은 정부와 기업이 예산을 들여서 해야 하는 일이므로 나와는 관계없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ESG 경영이 강조하는 친환경을 위해 물, 전기 등의 자원을 절약하고 쓰레기를 줄이고 재사용하면서 불필요하거나 환경 부담이 큰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등의 실천은 개인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또 차별받거나 소외되는 이웃이 없도록 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사회적 책임 역시 가정에서 적극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중시되는 부패 방지, 원칙과 공정, 남에게 피해 주지 않기 등도 가정의 실천이 요구되는 일이다.
올해 진행된 ‘신라대 ESG 시민운동 전문강사 양성과정’의 워크숍에서 제기된 의견들을 바탕으로 5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ESG 시민운동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전폭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둘째, ESG 시민운동에 각 기업체의 적극적인 동참이 절실하다. 셋째, 지상파 방송과 유튜브 등에서 일회용품 사용 장면 방영을 절제해야 마땅하다. 청소년들의 모방심리를 자극하는 흡연 장면을 방영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넷째, 일회용품 사용이 많은 장례식장에서의 6찬 식판 사용의 권장이 필요하다. 일부 지자체는 장례식장에 다회용기를 세척해서 공급하는데 그보다는 6찬 식판을 사용하고 식기세척기를 설치해서 일회용품 사용을 근절했으면 한다. 앞으로 정부나 기업의 ESG 정책을 수립하는 담당자뿐 아니라 시민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일상생활에서 ESG를 실천하는 범국민적 운동이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2023-11-2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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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위험한 축제는 존재 의미 없다
18번째 불꽃축제를 무사히 마쳤다. 부산불꽃축제는 운영 노하우가 잘 축적된 행사라 다른 지역 기획자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정말 부산불꽃축제는 18년간 큰 사고 없이 몇몇 작은 사건만 있었을 뿐이다. 1회 행사 때 어떤 고위직 인사가 귀갓길 도로에 갇혀 생리현상에 쩔쩔맸던 일, 비+바람+파도 3종 세트가 동시에 들이닥쳐 바지선이 해변으로 떠밀려 온 사건, 그로 인해 하루를 연기했던 사건 정도가 있었다. 취객과 자원봉사자가 멱살 잡고 싸우다가 축제가 시작되자 사이좋게 같이 불꽃을 보는 일이 있었다. 불꽃 소리에 놀라 사산한 강아지 값을 물어내라는 사건도 있었다. 축제의 연속성을 고민해야 할 정도의 큰 사고는 없었다. 그렇다고 매번 편하게 행사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 한 번도 날씨 걱정을 하지 않은 해가 없었다.
올해는 10월 중순부터 청명한 가을 날씨가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부산불꽃축제는 쉽게 가는 법이 없다. 불꽃축제 당일인 11월 4일, 그날만 비가 온다는 예보였다. 그것도 행사 취소를 검토해야 할 정도의 비바람이 온다는 예보다. 행사 7일 전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을 때, 조직위 직원들은 태연하게 매뉴얼을 준비한다.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닌 것이다. 실시간 기상정보를 바탕으로 행사 개최, 취소, 연기를 결정할 수 있는 논의 프로세스를 설계한다. 매일 회의가 진행된다. 올해는 행정안전부에서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사무관, 차관, 장관에 이르기까지 광안리 현장을 방문했다. 사전 안전 점검 차원이었다. 우천과 강풍, 시민 안전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매일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지하철역 계단 미끄럼 방지 테이프까지 요구할 정도로 정부는 안전에 진심이었다. 우리는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통상 해왔던 다른 일을 내려놓아야 할 정도로 안전과 관련한 추가적 조치 상황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불꽃축제 당일이 되었을 때 우리는 종합상황실의 CCTV 모니터만 쳐다보며, 무전기 소리와 카톡방에 묻혀서 그날을 온전히 보냈다.
불꽃축제 준비가 한창일 때, 많은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다. 예전에는 행사의 내용, 주제, 출연자 등 축제의 흥미 요소가 주로 거론되었다. 언젠가부터는 밀집, 사고, 안전, 화재, 분산과 같은 위험 요소를 중심으로 질문과 답이 오간다. 사회적 참사, 팬데믹을 지나오며 우리는 사회 구석구석에 있는 위험 요소를 기어이 찾아내어 그 불씨를 빨리 꺼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적어도 119 신고 정도는 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축제에 대한 걱정은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코로나라는 터널을 지났고, 마스크를 벗고 모이기로 했으며, 함께 즐기기로 했다. 여러 사회적 참사를 돌아보며 규범과 절차를 강화하기로 했다. 더욱 강화된 규칙 안에서 조심스레 다시 축제를 해보기로 한 것이다. 이태원 참사 1주기에 우리는 불꽃축제를 준비했다. 수십만이 모이는 축제다. 위험해지도록 가만 놔두지 않는다. 정부, 경찰, 소방, 그리고 시민들이 매섭게 쳐다보고 있다. 이제 위험한 축제는 없다. 준비가 미흡해 취소된 축제가 있을 뿐이다. 축제에 있어서 안전은 선택이 아닌 기본이 되었다.
불꽃축제를 부산시 문화예술과에서 담당하던 때가 있었다. 민선 6기부터 축제의 관광 기능 강화를 목표로 불꽃축제, 바다축제, 록페스티벌 등이 담당 부서가 바뀌어 지금의 관광진흥과에서 담당을 하고 있다. 축제를 문화예술 콘텐츠로 바라보느냐, 관광요인으로 바라보느냐 하는 관점에 따른 배치일 것이다. 지금은 사회적 안전에 대한 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기 때문에 축제를 위협요인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축제 담당 부서를 안전정책과로 바꿀 수는 없다. 축제는 우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험하다고 해서 소극적으로 하거나 미루거나 해서는 안 된다. 강화된 안전매뉴얼을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창의적이고 매력적인 콘텐츠를 선보이면서 도시와 관광의 기능을 극대화해 나가야 한다. 안전한 축제에 대한 공동체의 반복적 경험이 축적되어 갈 때, 축제를 바라보는 걱정스러운 관점도 점차 회복될 것이다. 아니 필히 회복되어야 한다. 지상 최대의 축제인 부산월드엑스포가 우리 앞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2023-11-1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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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인류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국의 시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김춘수의 시 ‘꽃’은 지독한 인간 중심의 근대주의적 오만으로 재해석되었다. “너에게는 내가 불러 주기 전에도 충실한 너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1만 2000년 인간종의 영속은 유별한 인간의 특이한 능력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안정되고 변화가 예측되는 기후 특성에서 연유된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현존 지구의 지질학적 연대기를 인간과 자연이 서로 평화스러운 관계에 있다는 뜻을 가진 ‘홀로세(Holocene)’라고 부르고 있다. 2000년 화학자 파울 크루첸과 유진 스토머가 제안한 학설로서, 새로운 지질시대의 개념으로 ‘인류세(Anthropocene)’를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의 활동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운석 충돌과 같은 힘을 가진 것으로, 홀로세라는 지질학적 시대 구분은 이제 끝낼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중순부터 10월까지 도서출판 산지니에서 총 15회에 걸쳐 열린 독서아카데미 ‘기후위기와 문학의 대화’는 이러한 인류세 시대에 대응하는 문학예술의 처지를 담담히 진술하고 토론하는 귀한 자리였다. 독자로서 또는 생태시민으로서 또는 게으르고 둔감한 환경운동가에게도 이러한 기후위기 시대 문학적 상상력의 연찬은 생태주의적 존재의 연원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흔하지 않은 기회이기도 하였다.
앞머리 독회의 주제 도서는 클라이브 해밀턴의 〈인류세〉로 강의와 토론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기후시대적 대응으로서 인류는 이제 지구 행성에 대한 권리의 행사보다는 지구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인간 중심주의’의 요청으로서 인간 스스로가 자연의 거대한 힘들에 필적할 만한 지질시대 즉 인류세에 도래했기 때문에 비인간을 포함한 전체 행성의 미래가 이제 의식적인 힘의 결정에 달렸다고 보는 것이다.
인도 작가 아미타브 고시의 〈대혼란의 시대〉에서는 기후 변화는 그간 인간이 저질러 온 모든 행동이 집약된 종착역이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이를 추동해 온 근대의 정치이념인 ‘자유주의’는 실패한 것이 된다. 그는 문제의 해법으로서 종교적 지도력과 시민행동이 기후위기 시대의 주요한 힘이 될 수도 있다고 보았다.
프로젝트의 중심이랄 수 있는 작품 읽기는 아직은 드물지만 기후위기를 주요한 주제와 배경으로 한 시와 소설이 추천되고 우리 지역의 작가들이 참여한 작품에 대한 소개와 평가가 이어진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정광모의 소설 〈토스쿠〉였다. 도저한 물질의 파도에 표류하는 생명 파괴의 현대 문명 속에 ‘자아’를 찾아 고투하는 인간 군상을 그리고 있는 듯하였다. 인물들은 돌아오는 안개 속의 바다에서 ‘플라스틱 바다’라고 불러야 마땅한 곳에서 길을 잃는다. 갈 길을 잃어버린 작품 속의 인물들을 통해 인류세를 맞고 있는 인간의 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여 너무나 감감하였다.
작가 정영선의 평설로 진행된 김초엽 소설가의 〈지구 끝의 온실〉은 일종의 SF소설로서 기후위기 시대를 극복하는 것은 결코 과학기술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생존에 대한 간절한 연대라는 것을 대재앙 이후 살아남는 과정을 통해 그리고 있었다.
시인 최정란의 해설로 가졌던 시(詩)의 독해는 나희덕 시인의 산문집 〈문명의 바깥으로〉를 통해 백무산 시인, 고 허수경 시인, 김혜순 시인을 불러내어 생명과 평화를 넓게 읽는다. 특히 김혜순은 ‘피어라 돼지’라는 시에서 2011년 구제역 파동으로 300만 마리의 돼지들이 생매장되는 과정을 통해 그것이 곧 죽임의 구덩이에 빠진 인간들임을 보여 주는 듯하였다.
“인간 세계의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던 자연이 현실적으로 인간 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은 더 이상 폭력을 당하는 객체가 아니라 인간에게 반격을 가하는 주체가 된 것이다.” 이것이 인류세에 근원적인 인간 현상의 문제의식으로 떠오르면서 그렇다면 다시 기후위기 시대 인간 세계의 존재방식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어찌해야 하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무겁고 그리고 깊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2023-11-0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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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매체에 의해 기억되는 역사들
얼마 전에 TV 예능인 ‘벌거벗은 세계사’를 보면서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전쟁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선택한 방법 중 하나가 조선인을 잡아다가 해외 노예로 판 것이다. 그 숫자가 무려 10만이 넘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백성이 일본과 해외에서 노예 생활을 했을까?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 주인공인 ‘쿤타 킨테’ 의 치욕스러운 역사가 흑인만의 것인 줄 알았는데 우리 민족의 역사라니, 가슴이 저리고 분노가 일었다.
여러 매체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접하면서 하나의 진실에도 여러 개의 해석이 있으며 당시의 교육 방향성에 따라 은폐되는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런 깨달음은 언제부터인가 교육현장에서 대학 진학에 유리한 영어, 수학, 국어, 과학 등만을 중시하는 세대들의 역사의식은 어떨까 하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지식과 정보가 쏟아지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선택에 의한 지적인 편중은 어쩔 수 없지만 자신이 몸담아 있는 나라의 역사에 무관심한 것은 문제가 있다. 치매에 걸린 ‘나’가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없듯 내 나라의 역사를 모르는 것은 기억을 잃은 자와 다름이 없다.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기억하기란 주체의 깨달음이 침투해 있는 어떤 과정”이다. 매체라 할지라도 이를 통해 접하게 되는 한국사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깨닫게 하는 기억하기의 일종이다.
한국사 올바르게 기억하는 일
국민 정체성·주체성 깨닫게 해
다양한 매체 통한 역사 교육 유행
일부 예능서 오류·왜곡 발견되기도
역사적 시각의 객관화 필요한 때
‘매체를 통한 기억하기’는 역사를 흥미롭게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당시의 위정자에 의해 이미 왜곡되었을 수도 있지만 기초적인 역사 지식을 쌓고, 여러 시각이나 가치관으로 해석한 역사들을 접한다면 전후 맥락을 살펴 현실의 문제를 판단할 수 있는 혜안을 갖게 될 것이다. 사회적 텍스트로서 매체의 내용들은 교육현장을 통해서 고착화된 역사적 사고를 유연하게 할 뿐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혀 준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내용들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 등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각색하고, 역사 토크쇼 등의 예능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역사학자보다는 입담이 좋은 인기 강사를 선호하면서 문제가 생긴다. 역사적 진실보다는 시청률을 우선순위로 두는 방송의 특성으로 인해서 잘못된 사실의 전달이나 오류를 범할 때도 있다. 2020년 ‘벌거벗은 세계사’의 강연자인 설민석의 역사 왜곡 논란은 단편적 역사 해석이나 오류를 보여 준 대표적인 사건으로, 기초적인 역사 지식이 없는 이들에게 왜곡된 역사의식을 심어 준다.
매체에 의한 기억은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요즘 언론을 통해서 접하게 되는 위안부나 건국 시점의 논란은 원하지 않아도 기억되는 역사적 사실들이다. 식민지 시대를 근대화의 초석이라 보는 뉴라이트 계열의 사람들은 건국 시점을 광복절로 보고 있는 반면 항일 운동사를 대한민국 근간으로 보는 민족주의 계열의 사람들은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을 건국 시점으로 보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역사를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을 두고 잘못된 것이라 할 수는 없지만 문제는 이런 논란이 역사학자가 아니라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의해 주장된다는 점이다. 이분법의 논리로 양분화되어 있는 사회적 현실로 인해 우리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역사적 해석에 동조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에 처해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교과서가 개편되고, 나라의 정체성과 주체성이 양분화되어 있는 이런 현실은 미래의 주역인 세대들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혼란스럽게 할 것이다.
대중매체에 의해 역사가 기억되는 일은 이제 일상이다. 역사적 사실의 홍수 속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우리 국민의 몫이다. 다양성과 여러 가치관이 인정되는 글로벌 시대이지만 내 나라의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는 일만은 미루어서는 안 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역사적 시각의 객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3-10-18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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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산골책방의 슬픔
강화도 산골에 작은 책방이 있다. 서해 노을이 좋은 적석사 비탈 아래다. 이런 오지에 책방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인데, 그래서 책방 이름이 ‘우공(愚公)’이다.
북스테이를 겸하고 있는 우공책방에서 나는 가끔 책을 읽고 시를 쓴다. 책방이 자연스럽게 작업실로 바뀐다. 밤이면 일찌감치 소등을 하는 산중인지라 책상 등만 켠 뒤 어둠을 최대한 근접시켜서 창가에 내린 별이 등불이 될 수 있도록 한다. 아침은 자작나무에 앉길 좋아하는 물까치 소리가 자명종이 되어 눈을 뜬다. 주인 내외는 수익금의 일부로 산새들의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마당의 탁자 위에 올려놓은 식빵을 들기 위해 모여든 산새 소리는 양쪽 귀에 소리의 무지개를 걸어 준다.
강화도 오지에 있는 우공책방
풍요로운 책 생태계 형성 기여
지역 공동체 환대 문화의 현장
지역서점 지원하는 내년 예산
전액 삭감되었다는 우울한 소식
작년 가을에 낸 내 시집이 우공책방에서 무려 백 권 가까이 팔렸다는 후문이다. 인터넷 서점 마케팅이나 도서관 등과 연계된 북콘서트 같은 흔한 홍보 전략 한 번 써 본 적 없는 출판사로선 적이 경이로워하거나 당황스러워할 만한 일이라고 하겠다. 새 시집을 내면 영향력 있는 SNS 스타들과 서평을 써 줄 문예지 편집위원단 그리고 문학상 단골 심사위원들에게 인사 삼아 증정본을 보내는 것이 관례이건만 그마저 생략하였는데 어찌 된 일인가.
우공책방의 주인들은 동병상련의 유사한 처지에 있는 전국 지역 단위의 작은 책방 연합회를 통해 자신들이 사랑하는 작가들을 적극 홍보한다. 직접 찾아오는 독자들에겐 대형 도서 유통 시장에서 밀려난 작가들의 책을 은근히 강권하는 데서 보람을 찾기도 한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순위나 매대에서 일찌감치 잊힌 작가들을 기억할 때 책의 생태계가 훨씬 풍요로워지고 우리의 정신세계 역시 다양성을 갖게 된다고 역설하는 이 작은 책방엔 여느 서점들에선 볼 수 없는 그윽한 향기가 머문다. 일정 기간 주문량이 없으면 반품되거나 폐기될 운명의 책들이 이 작은 책방을 통해 생명을 이어 가고 있는 것이다.
문예지의 서평 하나 받지 못한 시집이 몇몇 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리다가 덜컥, 수상까지 하게 되자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며 우공책방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끼리라도 수상 기념 북콘서트를 열자는 것이었다. 지역서점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그간의 재능기부에 대한 인사가 되었으면 하는 뜻이 고마워 선뜻 길을 나섰다.
특강이 있는 날이면 은성한 마을 축제가 벌어진다. 읍내에서 시를 쓰며 ‘젓국갈비집’을 운영하는 여사장님이 뒤풀이를 준비하는 동안 누군가는 손수 빚은 막걸리를 들고 온다. 인근 섬에서 온 어부는 숭어회를 펼쳐 놓는다. 귀농을 한 마을 사람들의 옥수수와 고구마가 오르고, 가져올 것이 마땅찮아 집 앞에 핀 들꽃을 꺾어 만든 환영 화환까지 받게 되면 북콘서트는 세상의 모든 이야기들이 서로를 향해 귀를 열고 경청하는 환대의 자리가 된다. 여기서 강화의 대소사가 오가고, 저마다의 근황이 오간다. 강화를 고향으로 한 이들과 강화에 귀향을 한 이들, 우연히 들른 여행자들까지 함께하는 이 공간은 폐쇄적일 수 있는 지역 공동체의 망을 타자를 향해 열린 공공의 장소로 바꿔 준다.
나는 여기서 만난 독자들과 특별한 관계를 이어 가고 있다. ‘윤희와 동현’ 커플이 그들 중 하나다. 우공책방과의 인연으로 강화 이주 계획을 세운 그들은 최근 강화에 아예 땅까지 마련했다. 젊은이들을 보기가 힘든 지역으로선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중년에 접어든 뒤론 청년들과의 내밀한 유대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을 무렵 그들과의 만남은 내게도 새로운 감각과 사유를 벼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내 특강이 있을 때면 반차를 내고 섬을 찾는다. ‘윤희와 동현’처럼 수많은 시절인연들이 책을 매개로 우공책방의 교우록을 두툼하게 써내려 가고 있는 중이다.
우공책방에서 최근 우울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역서점을 지원하는 정부의 내년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다는 것이다. ‘우공’은 자신들의 살림보다 마을 사람들의 인문학 프로그램과 새들의 식빵 값이 더 걱정이다. 최근에 는 들고양이들의 먹이는 어떻게 하나. 근심을 나누는 내 이웃들이 불편을 감수하고 굳이 우공책방에 책 주문을 하는 사정이다.
2023-10-04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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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역언론이 살아남는 법
최근 급격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지역언론의 위기가 눈앞에 도래했다. 지역언론의 기반인 지역경제도 건설경기의 침체 등 하락세를 보이고 지자체의 지원도 줄어들고 독자들은 지역뉴스가 뜨지 않는 포털 사이트와 유튜브에 더 관심을 가지고 OTT 플랫폼 등 흥미로운 콘텐츠로 대거 이탈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의 세계에 풍덩 빠진 독자들이 종이신문에서 멀어지자 이용률과 매출이 감소한 지역언론은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웅상신문〉도 예외가 아니다. 2012년, 인구 10만의 웅상에서 창간한 이래 어렵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최근 들어 주 수입원인 광고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난 11년간 그럭저럭 광고 수익을 창출하고 구독률을 높인 것은 지역밀착 취재 덕분이었다. 기자들은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는 듯 절박한 심정으로 발로 뛰어다니면서 현장 취재하고 이슈 만들어 공론화하고 지역민의 문제해결에 적극적 대안을 제시하는 등 지역신문의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했고 직접 웅상 전역의 상가에 신문을 갖다주는 등 전력을 다했다. 처음에 긴가민가했던 지역민의 반응이 갈수록 나아졌고 광고가 저절로 따라왔다. 이제는 좀 안정권에 접어드나 했는데, 언론 생태계 변화로 광고주들이 눈에 띄게 몸을 사리기 시작한 것이다.
지역언론의 위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역언론 생존법에 대해 저마다 내놓은 해법은 다양하다. 디지털 혁신의 광풍으로 ‘뉴스 사막화’의 직격탄을 맞은 미국 텍사스의 경우, 돈이 안 된다면서 소유주가 130년 역사의 지역신문을 폐간하자 2주의 공백 끝에 〈830타임스〉란 새로운 신문사가 창간된다. 주민들은 직접 기자의 주급을 기부하고 신문을 배달하는 등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 즉 지역민들이 전국 언론 대신 지역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지역신문인 830을 선택한 것이다. 830의 생존 동인은 지역민과 밀착한 저널리즘에서 찾을 수 있다.
지역언론사는 아니지만 〈뉴욕타임스〉는 타임스의 가장 큰 문제는 인지도가 아니라 독자와의 연관성이다, 라고 파악하고 '서비스 저널리즘'을 표방한다. ‘독자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스토리’인 서비스 저널리즘은 행복한 인생을 사는 법, 여행용 짐 싸기 등의 주제를 깊이 조사해서 3000~4000자로 작성했고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가져왔다. 지역신문과 가장 연관성 있는 독자는 지역민이다. 지역언론은 지역민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도록 연관성 있는 뉴스와 글을 쓰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면 어떨까.
지역언론의 생존 밥줄은 광고 수익과 구독이다. 광고, 구독, 이벤트 행사 등을 통한 수익 창출은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달려 있다. 따라서 지역언론은 지자체의 지역 경제정책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사례를 만들고 지역경제를 진단,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데 정성을 다해야 한다. 아울러 지역의 문제가 무엇인지 지역민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해법을 제시하고 독자들이 원하는 콘텐츠와 광고를 정밀하게 분석해서 폭넓게 두껍게 구독자를 확보해야 한다. 홈페이지와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블로그 등 인터넷 환경을 적극 활용하여 전국화와 지역화를 동시에 실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웅상신문도 현재 다양한 방법의 자구책을 강구 중이다. 지역민의 관심을 붙잡으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 지역과 지역신문은 운명 공동체다. 지역이 살아남아야 지역언론도 살아남는다. 지역에 초집중하여 언론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광고주를 개발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독자 확보에 사활을 다하면 어느 정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
“지역언론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고 누가 묻는다면 필자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정치와 기업과 지역민이 있는 한 지역언론은 끝까지 생존할 것이다. 물론 지역언론의 위기는 더 심해질 것이고 생존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할 것이고 그러한 고민과 새로운 시도가 지역언론의 가치를 실현시켜 주고 생존을 가능하게 하리라고 본다.
2023-09-2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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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간절함이 부산을 국제금융허브로 만든다
부산금융중심지 조성이 내년이면 15년 차를 맞이하지만 성과는 아직 미미하다. 2021년 기준 부산 금융산업의 비중은 전국 대비 여전히 5.2%에 머무르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해결책은 사람에게 있다. 부산 사람이 얼마나 간절하게 달려드느냐 하는 문제다. 물론 올바른 전략 방향 설정과 실행 가능한 실천 지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첫 번째 전략 방향인 정책적 금융허브의 길은 현재 대한민국 중앙정부와 지방자치 관계로 볼 때, 중앙정부가 해결의 키를 쥐고 있다. 부산시만이 추진하려고 할 때는 말에만 그칠 수 있다. 그렇다면 부산 사람이 할 일이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결국 부산 사람, 부산시의 간절함이 성공의 원동력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 부산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국민과 중앙정부에 ‘부산 국제금융허브’가 대한민국의 프로젝트라고 설득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했지만 지속가능한 성장은 난관에 봉착했다. 지금까지는 선진국을 잘 따라 해 선진국이 되었지만 이제는 세계 경제를 선도해야만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이를 위해 수도권 일극 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국가 운영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국가 성장의 중심축을 다극화해야 한다. 그 첫 번째 축이 바로 부산이다. 부산이 살면 대한민국이 산다.
다음으로, 부산 국제금융허브의 조성을 전담할 행정기구 설치를 요구해야 한다. 부산금융특구청(가칭)을 만들어 각종 내·외국계 금융회사가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며 제도 마련과 행정력을 갖추어 국제금융허브를 지휘할 종합적 추진기구의 기능도 탑재해야 한다.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은 거의 확정적이다. 이어 수출입은행과 한국투자공사도 부산에 유치해야 한다. 특히 한국투자공사의 세계적인 네트워크는 국제금융허브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정책적 지원은 부산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성장 축의 다극화를 위해서 필요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해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정책적 지원을 이루기 위해 내년 총선에서 부산의 여야 정치권이 노력하여 주요 정당의 공식적인 공약으로 채택되어야 한다고 본다.
두 번째 전략 방향은 부산 국제금융허브는 ‘디지털 금융혁신중심지’를 목표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9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부산금융중심지의 목표인 ‘해양·파생특화 금융중심지’라는 기존의 틀을 뛰어넘어 세계 경제를 주도할 디지털 금융혁신중심지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일단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으로 디지털 ABCD(AI, Blockchain, Cloud, Data)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최근 샌프란시스코, 두바이 사례 등을 벤치마킹하여 차별화된 서비스의 제공이 요구된다. 걸림돌이 되는 규제는 역시 국회와 중앙정부, 정치권이 협력하여 처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부산 내의 여러 주체가 순수한 열정으로 창의적인 일 처리에 나설 것을 권유하고 싶다. 부산시 디지털 전략의 핵심인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의 출범이 지연되고 있다. 운영 주체를 고민하다 보니 출범이 지연되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디지털자산거래소인지, 가상화폐거래소인지 등의 구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민간에서 역량을 가진 기업은 관이 나서 과감히 돕고, 추후 생길 미래 시장은 또 보완하면 될 것이다.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 소재한 10여 개의 금융 공기업은 중앙정부의 지휘·감독을 받는 공공기관이지만 이를 활용하는 디테일은 부산 사람이 마련해야 한다.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사업을 예로 들어 보자. PF, 구조조정 대상기업, 선박 등에서 직간접 지원 금융이 다양하게 실행되고 있다. 이런 펀드 운용에 지역의 자산운용사를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한다면 지역 금융산업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공기업의 고유사업도 정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디지털 전환의 속도를 볼 때, 지금이 늦은 것이 아니라 가장 빠른 시점이다. 지금부터 부산 사람들이 부산 국제금융허브로의 비상을 위해 어떻게 임할 것인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경윤호 한국자산관리공사 감사
2023-09-06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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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역동성 그 이상이 부산엔 필요하다
부산이 위기를 맞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도시의 동력은 떨어지고 젊은이가 떠나고 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금 부산의 온 시민들이 2030 세계 엑스포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면 2030 세계 박람회는 부산을 살릴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다’이다. 굳이 ‘충분하지 않다’라고 첨언하는 이유는 부산의 역동성을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도시의 발전은 외생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 추진하는 내적인 역량과 외생적 요인을 활용하여 발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정신이나 문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 박람회가 발전을 위한 외생적 요인이라면 부산의 역동성은 내재적 요인인 것이다.
부산의 역동성은 항구도시의 개방성을 바탕으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정신적 특성인 개방성, 포용성과 함께 형성되어 부산의 발전을 견인한 원동력이다. 처음 부산에서 업무를 시작했을 때 많은 시민이 부산의 정신적 특징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선뜻 믿기지 않았다. 400만 명에 육박하던 인구는 330만 명으로 줄어들었고 청년들은 도시를 떠나 고령화율이 20%를 넘는 노인들이 사는 도시가 무얼 그리 개방적이고 역동적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 것이었다.
그러나 직면한 위기 속에서 부산의 회생을 위한 시민사회의 강렬한 몸부림은 부산의 역동성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 산업은행 부산 이전 그리고 2030 세계 엑스포 유치에 한 덩어리가 되는 부산의 시민사회 운동은 그야말로 부산의 역동성을 잘 보여 준 것이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과 산업은행 유치는 국가적 이익이라는 이름의 국가주의적 이기심에 근거한 수도권 지역의 극심한 반대를 극복하고 성취한 것이다. 2030 세계 엑스포 유치와 관련하여 지난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 때 보여 준 부산 시민의 열의, 기업과 시민들의 100억 원에 달하는 성금 모금은 부산 시민의 역동성을 보여 준 압권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부산의 역동성은 여전히 잘 작용하고 있지만 보다 강력한 성장동력으로 작용하기에는 조금은 부족한 부분도 있다. 그것은 부산의 문화적 특징들이 급격한 도시화에서 비롯된 것임을 고려할 때 인구가 줄어들고 고령화가 진행되는 과정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부산은 지속적인 도시의 성장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부산의 문화적 특징인 개방성과 포용성, 그리고 역동성을 강화해 나갈 방안을 모색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 먼저 역동성을 보전하고 증진시키는 지역사회 거버넌스 체제의 구성에 있어서 대표성을 강화해야만 한다. 지역사회의 거버넌스는 다양성에 기초한 많은 이해관계자가 상호 협력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해 가는 체제이다. 따라서 지역 거버넌스 체제는 지역별 연령별 등 다양한 대표성을 잘 망라해야 견제와 균형에 의한 역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또한 이렇게 구성된 지역사회의 거버넌스는 대의에 충실하되 이념적 편협함을 극복해야 한다. 부산 역동성의 기초가 되는 인구의 이질성에 근거한 문화적 다양성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인구유입의 중단과 부산 출신 인구가 외부 유입인구보다 많아져 구성원의 이질성보다는 동질성이 커지면서 다름 속의 화합이 아닌 같음 속의 불화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일부 지역적 현안에 대해 건설적인 과정을 통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YS와 관련한 부산 민주주의 역사관 건립에 관한 갈등이다.
역동성을 보전하고 지속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한 또 하나의 노력은 외부와의 의도적인 교류를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부산은 여전히 다른 시도에 비해 개방적이지만 부산에서 태어나서 부산에서 공부하고 부산에서 생활을 하는 인구의 비중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버넌스 체제의 구성의 차원을 넘어 중요한 가치배분을 담당하는 자리의 외부교류는 역동성을 유지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사회 속에서 미꾸라지와 메기 같은 관계를 의도적으로 조성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부산의 위기극복을 위한 노력인 세계 엑스포 유치, 가덕도 신공항 건설, 산업은행 부산 이전 등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바탕에 역동성이 제대로 작용해야 하며 이를 위한 시민사회 거버넌스 체제의 개선, 인적교류를 통한 가치배분 기관의 인적 구성 다양화를 추진해야 한다.
2023-08-23 [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