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라이프

    "잠깐을 살아도 하고 싶은 일
    해야 하지 않을까요"

    2006년 유엔 산하 전문기구인 WHO(세계보건기구)에 단기 계약직으로 채용된 한국인 여성이 있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박문주 씨다. 거의 모든 국제기구의 문을 두드려 100번도 넘게 떨어진 끝에 이뤄낸 값진 성과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박 씨는 WHO 사무총장실 비서국장 대행이자 독립자문위원회를 책임지고 있는 핵심 인사로 성장했다. 그는 WHO뿐만 아니라 다른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들의 멘토 역할까지 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지난해 연말 가족과 함께 휴가차 고향 부산을 찾은 박 씨를 만났다.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 사태에 대한 대비는 잘되어가는지, 요즘 유엔의 분위기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등 궁금한 점이 많았다. 그는 WHO에 들어가게 된 이야기부터 시원하게 털어놓았다.박문주 씨는 7공주집의 넷째 딸로 태어났다. 이 유별난 가족의 사연은 KBS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행복이 가득한 집’에 소개되기도 했다. 92학번으로 들어간 부산대 분자생물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이탈리아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하필 이탈리아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영어에 자신이 없어서”라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자전거 도둑’ 같은 이탈리아 영화를 좋아하니 이탈리아에 가면 재미있을 것 같았단다. 옷 가게를 하던 아버지에게 이탈리아에 가서 패션 공부를 하겠다고 내건 명분도 주효했다. 하지만 패션은 적성에 전혀 맞지 않았고, 친구들 따라 지원해 혼자 합격한 곳이 명문 보코니 대학 MBA 과정이었다. 학위를 마친 뒤에는 유명 종합병원 마케팅실장으로 스카우트되었다.직장에서는 인정받았고, 가끔은 친구들을 만나서 술 마시고 놀았다. 이만하면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던 시절이었다. 그 생활도 5년이 지나자,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국제 NGO(비정부기구)에 지원했다. 한 번이라도 이름을 들어본 NGO는 다 도전했지만 한결같이 문전박대였다. 나이가 많아서, ‘과한 스펙(Over-Spec)’이어서…. 떨어뜨리는 이유도 참 가지가지였다.시간을 두고 방법을 모색하자며 2004년 영국의 명문 요크대학 보건경제학 석사 과정에 들어갔다. 그게 신의 한 수였다. 논문을 쓰기 위해 WHO의 인턴십 과정에 지원해 운 좋게 합격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인턴을 하며 내부 세미나를 부지런히 쫓아다녔고, 틈날 때마다 조언을 구하면서 여기서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2006년 2월 드디어 풍토·열대병 관리과에 전문 직원으로 채용됐다. 지성이면 감천이었다. 돌이켜 보니 국제기구마다 WHO는 협력 사업이 많은 A 학교, ILO(국제노동기구)는 또 B 학교를 나오면 유리하다는 식으로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가 있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면 유학할 학교와 지도교수를 정할 때부터 이 같은 사항을 미리 고려하면 좋겠다.박 씨는 그동안 WHO의 공중보건 위기 대응과 긴급 상황 처리 등을 감독·평가하는 독립자문위원회를 책임져 왔다. 얼마 전부터는 WHO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을 가까이 보좌하는 사무총장실 비서국장 대행까지 겸임하고 있다. 게브레예수스 총장은 2017년 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최초로 제8대 WHO 수장으로 선출됐고, 2022년 연임되어 2027년까지 WHO를 이끈다. 박 씨는 코로나19 대응 데이터 수집·분석, 전략 지침 발간 등 팬데믹 대응과 관련된 중요한 업무에도 참여했다.그는 “코로나를 담당하는 부서가 별도로 있었지만 총장실에서는 전체 정책 결정과 미디어 대응을 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사무총장실에서는 매일 사건이 터졌다”라고 말했다. 게브레예수스 총장은 한국의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우리는 문주 씨가 자랑스럽습니다. 문주 씨 덕에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할 줄 압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박 씨에 대한 신뢰와 친근감을 표시하기도 했다.하지만 박 씨는 미래에 다가올지도 모를 팬데믹에 대비하기 위해 WHO 회원국들이 2021년 결의한 ‘팬데믹 조약’이 아직도 표류하는 데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마감 시한인 올 5월을 넘겨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코로나 팬데믹 당시 드러난 백신과 치료제의 불평등한 접근, 정보 공유 부족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한 조약조차 제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면 WHO의 존재 이유에 대해 회의가 들 수밖에 없다.WHO는 사실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져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WHO 탈퇴 절차를 시작하는 문서에 서명하고, 분담금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WHO 예산의 20%가까이 내는 최대 재정 후원자였다. WHO는 재정적 위기에 따라 본부가 있는 제네바에서만 600명을 해고하고, 모든 신규 채용까지 취소한 상태다.박 씨는 WHO가 어려워질수록 제6대 이종욱 사무총장이 생각난다고 했다. 이 총장은 한국인 최초로 선출직 유엔 전문기구 수장에 올랐지만, 회의 중에 쓰러져 61세로 별세하고 말았다. 박 씨는 이 총장이 WHO의 개혁을 위해 홀로 분투하다 돌아가셨다고 기억했다. 그는 이 총장을 오래 보지는 못했지만 부인 가부라키 레이코 씨와의 인연은 지금까지 유지해 오고 있다. 이 총장의 장례식을 앞두고 WHO 직원들에게 레이코 씨가 보낸 단체 메일이 계기였다. “부조는 받지 않습니다. 꼭 내고 싶은 분은 제가 일하는 NGO에 기부해 주세요”라는 내용이었다.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정신이 하나도 없을 때 그런 원칙을 먼저 내세우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박 씨는 시키는 대로 NGO에 기부하고, 애도의 뜻을 표하는 이메일도 보냈다. 몇 달 뒤에 레이코 씨가 제네바에 왔다가 그를 만난 뒤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게 된 것이었다. 팔순이 넘는 나이의 레이코 씨는 지금도 페루의 가난한 마을에서 현지 여성들과 함께 뜨개질을 하며 알파카 울을 팔아 자립을 돕는 활동을 한다. 박 씨는 오는 5월에 열리는 WHO 총회장에서 이 사무총장 추모 20주년 행사를 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세월이 흐르며 거의 잊힌 한국인 이 총장을 기억하고 챙길 사람은 자신밖에 없을 것 같아서다. 페루에 있는 레이코 씨를 제네바로 초청했던 10주년 행사도 그가 먼저 제안했다.매년 5월 제네바에서는 WHO 194개 회원국 대표단(대개 보건부 장관급)이 참석하는 세계보건총회가 열린다. 덕분에 박씨는 재직 기간 한국의 보건복지부 장관은 거의 다 만나봤다. 그가 보기에 안타깝게도 한국은 돈을 쓰면서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나라다. 반면에 선진국도 아니고 돈도 안 쓰면서 WHO에 와서 자국 이익에 맞춰달라고 요구하는 나라들이 있다. 이들 국가는 관심도 많고 “어떻게 저런 것까지 알지?”라고 놀랄 정도로 지식도 많아 온갖 잔소리와 훈계를 늘어놓는다. 말이 많으면 어느 정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게 세상 이치다.한국은 세계 9위 규모의 WHO 의무 분담금을 내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국제기구에 관심이 크지 않아, 국제 무대에서 위상이 떨어지는 편이다. 박 씨는 "한국 정부는 국제기구에 당연히 해야 할 요구도 하지 않는다. 한국에 유리하게 해달라든지, 우리 자리 하나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왜 하지 않느냐”라고 답답해했다.그는 “어린 시절에는 국제기구에 들어오는 데 전부를 걸었지만, 막상 들어와 지금까지 살아남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라고 과거를 돌아봤다. 이어서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다자 협력 기구 UN이 과연 필요한지, 다국적 협력이 유용한지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사실이다”라고 털어놓았다. 박 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깐을 살아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자기가 믿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래서 국제기구 후배들이 그를 많이 믿고 의지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이다. 국제기구에서는 개인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자국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밀어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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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자라는 통념에 <br />근본적 질문 던져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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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자라는 통념에
    근본적 질문 던져본다면

    우울, 불안,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정신과와 심리상담센터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말 못할 고민에 마음 아픈 이들이 기댈 곳은 실상 그리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마음산책>은 이들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내적 고통에서 벗어날 길을 보여줍니다. 올해 초 동아대병원에서 정년퇴임한 정신과 전문의이자 정신분석가인 김철권 박사와 함께 이메일(gomin119@busan.com) 등을 통해 접수된 사연 중 한 건을 선정해 매월 한차례 고민을 풀어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편집자주)Q. 아내는 현모양처의 전형이었습니다. 살뜰하게 집안일을 챙기고 자녀들도 남부럽지 않게 키웠습니다. 열심히 공부해 자격증을 따고 소일거리를 찾아 가정에 보탬이 됐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연예인에 빠지면서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자녀를 어느 정도 키우고 몰입할 거리를 찾았나 싶어 같이 콘서트도 가면서 응원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생활의 중심이 연예인이 됐습니다. 콘서트에 간다며 수일간 집을 비우고 팬클럽 사람들하고만 어울렸습니다. 은퇴하고 나서 아내와 함께 할 생각에 마냥 들떴는데…. 아내가 가정을 내팽개친 듯해 너무 속상합니다. 부부상담을 받자고 하면 연예인 좋아하는 게 무슨 죄냐며 화부터 냅니다. 어디서 어떻게 문제를 바로잡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A. 이번 사례에 대해 3가지 치료 기법으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먼저 ‘행동치료’입니다. 임상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며 문제해결 방식을 중시합니다. 대부분의 부부상담이나 부부치료가 이런 접근법을 채택합니다. 행동치료에서는 what(무엇이 문제인가?)과 how(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중시됩니다. 대신 why(왜 아내는 그런 행동을 할까?)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여깁니다. 여기서 문제란 아내가 현모양처의 전형에서 벗어나 가정을 내팽개친 듯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설정됩니다. ‘지금, 그리고 여기’ 원칙에 맞춰 과거는 묻어두고 현실에 초점을 맞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해결책들을 생각해냅니다. 각 해결책을 놓고 장단점을 따져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선택합니다. 구체적으로 남편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설정하고(아내가 집을 비우는 기간), 아내를 비난하기보다는 자기의 불안과 상처 입은 감정을 이야기하고(당신이 연예인을 좋아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가정을 내팽개친 듯이 행동해서 불안하다. 가정이 파괴될까 겁이 난다), 서로 양보하면서 가정의 틀을 깨지 않기 위해 합의할 수 있는 타협점을 도출해 냅니다. 행동치료의 장점은 부부가 서로 동의하고 만족하는 타협점을 찾아낸다면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단점은 부부 중 한쪽이 치료를 거부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두 번째는 부부 중 한 사람을 대상으로 ‘정신분석치료’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사례에서는 아내가 대상이 됩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현모양처의 역할을 하던 아내가 갑자기 생활의 중심을 연예인으로 잡은 데는 분명한 심리적 요인이 작용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이나 행동 뒤에는 언제나 욕망이 흐르고 있습니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억압된 욕망의 분출이 증상(현모양처의 전형에서 벗어나 가정을 내팽개친 듯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만든 것입니다. 억압된 욕망은 무엇일까? 그것을 알아가는 것이 바로 정신분석치료입니다. 아내가 ‘아! 그런 이유 때문에 내가 연예인에게 집착하는구나’를 깨닫는다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정신분석치료의 장점은 아내만 동의하면 시행할 수 있지만 단점은 시간과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들고 좋은 분석가를 만나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마지막으로는 남편의 시각이나 관점을 바꾸는 것입니다. 정신과에서는 보통 인지치료라고 하지만 저는 ‘철학치료’라고 부릅니다. 철학치료는 정신과에서의 인지치료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깊이와 폭이 깊고 넓습니다. 철학자는 그 어떤 정신과 의사보다도 뛰어난 치료자의 자질을 갖고 있습니다. 철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근본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철학을 공부하면 더 좋은 정신과 의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사례는 ‘아내는 현모양처의 전형이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이 문장이 남편의 아내관을 보여주는 핵심입니다. 남편이 생각하는 아내의 본질은 현모양처이고 그 본질을 기준으로 어느 정도 일치하느냐 얼마나 닮았느냐가 아내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현모양처의 전형에서 가까워질수록 아내는 좋은 아내가 되고 전형에서 벗어날수록 아내는 나쁜 아내, 아내답지 못한 존재가 됩니다. 현모양처의 기준이나 전형에서 벗어나는 아내의 행동들은 일탈로 낙인 찍힙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왜 아내는 현모양처여야 하는가? 아내는 생활의 중심을 연예인으로 두면 안되는가? 나는 왜 그런 아내관을 가졌는가? 이런 주제를 놓고 남편과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철학치료를 통해 남편의 아내관을 더 확장할 수 있습니다.결론적으로 인간의 정신세계는 사고, 행동, 감정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고는 철학치료로, 행동은 행동치료로, 감정은 정신분석치료로 도움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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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고야 장어 덮밥, <br />홋카이도산 밀가루…<br />맛은 국경을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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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고야 장어 덮밥,
    홋카이도산 밀가루…
    맛은 국경을 넘나든다

    올해가 열흘도 남지 않았다. 한 해를 잘 마무리하고 알찬 새해 계획을 설계할 시기이다. 돌이켜 보면 2025년은 정치적 변수에도 불구하고 한일 관계가 잘 자리잡는 모습을 보인 한 해였다. 지난 10월까지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766만 800명으로 역대 최대로 많았다. 엔화 약세에다 지리적 근접성으로 일본이 우리에게 최고 인기 여행지로 부상한 것이다. 1965년에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어 한일 간 국교가 정상화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운 결과였다. 특히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운 부산은 오래전부터 일본 음식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일 관계가 더욱 성숙해지기를 바라는 의미로,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 부산에서 자신만의 맛을 내고 있는 두 곳을 소개한다. ‘이웃’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고향으로 돌아온 장어의 꿈 ‘우나쥬’나고야서 자수성가해 30년 만에 부산 돌아와30년 경력 일본인 셰프 모셔 장어덮밥 전문점민물장어는 바다에서 태어나 민물에서 성장한 뒤 다시 깊은 바다로 회유한다. 민물장어에게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 맨몸으로 부산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지 벌써 30년 세월이 되었다고 했다. 일본 나고야에서 자수성가한 외식 사업가가 말년에 부산으로 돌아와 새로 음식점을 열고 고생을 사서 하는 모습이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장어덮밥 전문점 ‘우나쥬’ 김동섭 대표의 인생이 묘하게도 민물장어를 닮았다.민물장어는 일본어로 우나기다. 가게 이름 ‘우나쥬’는 우나기에다 목숨 수(壽)를 합쳐서 만들었다. 보양식으로 잘 알려진 장어를 드시고 건강하게 장수하라는 뜻을 담았다. 김 대표는 봉사를 통해 일본 땅에 단단하게 뿌리내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을 때는 수천 명분의 식사를 탑차에 싣고 달려갔다. 지진 발생 한 달 만에 민간인으로서는 가장 먼저였다. 큰 지진이 날 때마다 매번 그랬다. 금요일에는 십 년 넘게 보육원을 찾아가 김밥을 같이 말고, 한국 이야기도 하면서 봉사했다. 나고야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그에게 먼저 연락이 올 정도로 그렇게 신뢰를 얻었다. 별다른 의도는 없었다. 일본에서 아이 낳고 키우며 사람들한테 도움받았으니 당연히 하는 일이었다.수구초심이란 말이 그래서 생겼을까. 나이가 드니 더 늦기 전에 한국에서 제대로 된 일본 음식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래서 선택한 종목이 나고야의 명물, 장어덮밥인 히츠마부시다. 일본에서는 장어를 쪄서 구우면 도쿄식, 바로 구우면 나고야식이라고 부른다. 우나쥬는 초벌 장어를 다시 구워 쫄깃한 식감을 살렸다.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하다)이라는 말 그대로다.민물장어는 조리법이 어려워 전문 셰프가 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꼬치 끼우기 3년, 손질법을 익히는데 8년, 굽는데 평생’이라는 격언이 있을 정도다. 친구인 김 대표를 믿고 한국으로 온 나고야 장어전문점 30년 경력의 와키타 다이사쿠 셰프의 솜씨에는 한 치의 빈틈이 없었다. 주방에서 만난 다이사쿠 셰프는 “소스가 50%, 굽는 방식에서 50% 차이가 난다. 이 장어는 탈 것인가, 타지 않을 것인가?”라는 선문답 같은 질문을 던졌다. 장어가 타기 직전까지 잘 구어야 그 맛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노르스름한 소금구이에서 드러난 장어 빛깔은 황홀할 정도였다.히츠마부시를 먹기 위해선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다. 즉석에서 굽고 모리츠케(플레이팅)까지 15분이 걸리기 때문이다. 처음엔 장어 그대로, 두 번째는 와사비와 고명을 풀어서, 세 번째는 오차즈케(녹차물)로 각각 다르게 즐겼다. 민물장어를 통해 일본을 느끼는 귀한 시간이었다. 전통 음식은 그 분야에서 오랫동안 종사한 현지 셰프의 솜씨를 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식약청 검사 결과 위생 상태가 매우 우수하다는 별 3개를 받았으니, 믿고 먹어도 되겠다. 김 대표는 잠잘 때 말고는 항상 앞치마 차림이라고 했다. ‘앞치마 표’ 김 대표가 고향에서 펼치려는 마지막 봉사가 제대로 결실을 보았으면 좋겠다. 부산 해운대구 청사포로67번길 39,■매일 1%씩 좋아지는 ‘쿠루미 과자점’법대 다니다 제과에 꽂혀 일본 요리학교 유학제과점 1년치 기록 적은 플래너서 진심 느껴져부산 대표 음식을 개발하는 사업인 ‘B-푸드 레시피’를 비롯해 올해 30주년을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 부대행사로 열린 ‘잇츠시네마’, 축하 이벤트 ‘부귀영화로:Scene to Table’ 등에 계속 이름을 올리는 가게가 있다. 부산도시철도 명륜역 앞의 ‘쿠루미 과자점’이다. 이름에서 일본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김성진 대표는 일본의 요리 명문 츠지제과전문학교를 나왔다. 법대를 다니던 학생이 군대에 가서 제과에 꽂힌 유별난 사연이 있었다.군에서 휴식 시간에 방송 ‘걸어서 세계 속으로’ 벨기에 편에서 나온 초콜릿 장인들을 보다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했다. 그 즉시 휴가를 신청해서 제과 장인들을 찾아다녔단다. ‘쿠루미’란 이름도 일본 록밴드 ‘미스터칠드런’의 노래 쿠루미에 감동을 받아 지었다니, 김 대표가 어떤 감성의 소유자인지 대략 짐작이 간다.그는 남들보다 제과를 늦게 시작했으니, 유학을 다녀와야겠다고 결심한다.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분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프랑스에서 배운 걸 들고 오면 한국에서 바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일본에 가서 같은 동양인에게 한 번 소화가 된 거를 배우는 게 어떠냐?”라고 말했다. 그렇게 입학한 츠지에서 처음 들었던 말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교장 선생님은 “빵 공부라는 건 기준을 만드는 거다. 100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80점, 90점짜리도 만들 수 있다”라고 했다. 기준도 없이 자기 것을 100점이라고 생각하면 발전이 없다.일본과의 인연은 유학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공기도 땅도 좋은 홋카이도산 밀가루 유메치카라를 직접 수입해 식빵을 만든다. 10년 동안 매주 식빵을 사는 단골들을 보면 그 보람이 느껴진다. 요즘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정도로 비싼 팥은 강원도 정선에서 나오는 국산을 계약 재배해서 사용한다. ‘기술은 몰라도, 재료는 국내에서 제일 좋은 거를 쓴다’가 그의 겸손한 자부심이다.쿠루미 직원들은 모두가 빵을 만들고, 돌아가면서 카운터도 본다. ‘내가 만든 것을 내가 팔 수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드는 사람이 직접 판매에 나서니 손님 입장에서 더 신뢰가 간다. 창업해 나간 옛 직원들도 "우리가 장사할 수 있게 만들어 준 그 대목이 제일 고맙다”라고 입을 모은다. 쿠루미는 매년 한 번씩 김 대표가 비용의 절반 이상을 부담해 전 직원들을 일본에 시찰 보내고 있다. 제품의 질을 올려 가게를 성장시키려면 혼자 힘만으로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주방 벽에 붙은 플래너에서 빼곡한 숫자들을 발견했다. 일 년간 매일의 기온, 주방 온도, 반죽 온도, 물 온도를 빠짐없이 모두 기록한 것이었다. 빵은 기온은 물론이고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습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일 년 365일 똑같은 빵이 나가기 위해 모든 변수를 직원들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날씨가 급변하는 계절에도 ‘오늘은 실수로 빵이 좀 안 좋아졌어도, 내일은 무조건 제대로 맞추자’라는 의미다. 쿠루미는 매일 1%씩 맛있어지는 가게를 지향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가게가 될 것 같다. 그날 빵은 무조건 그날 소진한다. 무릇 빵은 그래야 한다. 부산 동래구 온천천로 71-1. 글·사진=박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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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둠 밝힌 빛, <br />별처럼 반짝이니 마법같은 세상
    사회

    어둠 밝힌 빛,
    별처럼 반짝이니 마법같은 세상

    추위 때문일까. 겨울밤의 공기는 유난히 밀도가 높다고 느껴진다. 무겁기도 하지만 무척이나 까맣다. 무겁고 까만 겨울밤엔 불빛이 유난히도 밝게 보인다. 연말연시만 되면 이러한 분위기를 그냥 넘길 수 없어 지역마다 앞다퉈 불을 밝힌다. 불빛 축제들이다. 대구 달성군 송해공원을 찾았다. 대구시가 올해 처음으로 송해공원에 ‘별빛 산타 레이크’를 만들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났는데 웬 산타하겠지만, 이곳은 내년 3월까지 운영되면서 새로운 겨울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송해공원 산타마을송해공원은 대구시 달성군 옥포읍의 ‘옥연지’라는 대규모 저수지 인근에 마련돼 있다. ‘전국노래자랑’ MC로 유명한 방송인 송해 씨의 이름을 딴 공원이다. 이곳은 송해 씨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옥연지 바로 옆 동네 ‘기세리’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은 송해 씨의 처가가 있는 곳이다. 황해도 출신인 송해 씨는 생전 이곳을 ‘제 2의 고향’이라 여기며 실향의 아픔을 달랬고, 명예 군민과 홍보대사를 맡았다. 마을 주민들도 송해 씨의 장수 이미지에 걸맞게 백세교와 백세정을 지으면서 2015년 65만㎡ 규모의 송해공원이 생겨났다.계절마다 다양한 꽃을 볼 수 있는 송해공원은 둘레길 데크, 백년수중다리, 바람개비 쉼터, 전망대, 얼음빙벽 등 많은 볼거리로 조성돼 있다. 2018년 제21회 세종문화대상 대한민국 명인·명품·명소 대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명소로 선정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서울 청계천, 가평 자라섬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선정됐다. 올해부터는 별빛 산타마을까지 조성되면서 사계절 관광지로 떠올랐다.송해공원 입구에 들어서기 전 산타복장을 한 거대한 조형물 ‘웰컴투 산타할아버지’가 반긴다. 입구부터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줄을 서 있다. 산타를 담으려면 횡단보도 밖에서 사진을 찍어야 해서 마치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줄을 서 있는 듯한 묘한 풍경도 연출된다.산타할아버지를 뒤로하고 마을에 들어서면 일명 별빛 터널인 ‘마법 터널’을 만날 수 있다. 수천 개의 작은 전등들이 별 형상을 하며 터널을 이루고 있다. 이곳을 지날 때면 마치 은하계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느낌마저 든다. 별빛 터널을 통과하면 10m 높이의 대형 트리와 그 주변에 8m 높이의 트리들이 어울어져 송해공원의 야경은 생기를 더한다. ‘ㄷ ㅏ ㄹ ㅅ ㅓ ㅇ(달성)’이라고 적힌 커다란 트리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최고의 포토존이다.트리존을 지나면 추운 겨울 몸을 녹일 수 있는 훈훈한 공간이 나온다. 달성군이 관광객들의 위해 온기가 나오는 쉼터를 마련한 것이다. 세심한 배려다. 이곳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행사도 마련돼 있다. 새해맞이 ‘소원지 작성’과 산타 복장을 입고 촬영을 할 수 있는 대여숍도 관람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잠시 몸을 녹인 뒤 백세교와 백세정으로 향하면 산타할아버지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X-마스가 지나 다소 이상해 보이지만 여전히 산타할아버지는 모두에게 인기다. 생뚱맞은 산타를 뒤로 하고 프러포즈 포토존 ‘설렘 가득한 하트 터널’을 지나면 백세교를 만날 수 있다.백세교 입구에 삿갓 쓴 송해 씨의 모형물이 반긴다. ‘전국~ 노래자랑’이란 우렁찬 송해 씨의 음성이 귀가를 스쳐 지나간다.백세교는 태극 모양으로 이어져 있는데, 쉼터에서 작성한 소원지는 백세교 난간에 걸면 된다. 백세교를 따라가면 백세정이 나온다. 방문객들에겐 쉼터다. 2층 누각으로 지어진 백세정에서의 야경은 더욱 매력적이다. 태극 모양으로 이어진 백세교가 마치 새로운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인 듯 하고, 백세교 양편으로 수면 위에 떠 있는 달 모양의 조형물에선 신묘함마저 들었다. 백세교와 백세정은 모두 송해 씨의 무병장수 이미지에 맞춰 이름 지었다. 송해 씨는 2022년 9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곳에서는 ‘백세교를 한 번 건너면 100세까지 살고 두 번 건너면 무병장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가족과 연인이 함께 복을 비는 명소로 인기가 높다. 송해공원 산타마을은 일몰 후 자동 점등되고 오후 11시까지 매일 운영된다. 3월말까지 빛축제를 관람할 수 있다.■송해기념관송해공원 인근에 송해기념관을 가보는 것도 추천한다. 송해기념관은 방송인 송해 씨의 인생과 삶의 흔적을 한곳에 모아 놓은 곳으로 2021년 12월 문을 열었다. 지상 3층으로 지어진 기념관에는 송해전시관을 비롯해 체험실, 하늘정원, 송해카페 등으로 구성돼 있다. 또 송해 씨의 60여 년 활동상을 알 수 있는 432점의 소장품을 볼 수 있고, 달성군과의 인연, 전국노래자랑 코너 등도 관람할 수 있다.송해 씨는 생전 이곳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그는 기념관이 건립될 당시 “처음 달성군과 인연이 된 건 집사람 고향이 달성군이기 때문인데 그 인연을 시작으로 고맙게도 송해공원이 만들어지고 기념관까지 건립이 됐다. 많은 분들이 이곳에 오셔서 못다 한 저의 인생 이야기도 들어보시고, 제가 사랑하는 달성의 더 큰 매력도 듬뿍 느끼고 가시길 바란다” 고 밝히기도 했다.요즘은 이곳이 지역민과 관광객이 함께하는 지역문화 활성화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재)달성문화재단 달성문화도시센터가 송해기념관을 선비체험관 등으로 운영하면서 치유명상과 자연인문학, 역사문화산책 등 문화아카데미 프로그램을 활용해 지역 문화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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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은 잉크가 아닌 <br />피와 눈물로 쓰여진다
    문화라이프

    법은 잉크가 아닌
    피와 눈물로 쓰여진다

    이 책은 추천사로 시작한다. 추천 글을 쓴 정재민 변호사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재판들은 미국 법정에서 벌어진 가장 격렬한 전투들이다. 미국 사회를 뒤흔든 판결들만 모아놓았다”라고 소개한다.책은 법리 논쟁과 재판 결과보다 법정에 선 사람들의 사연과 얼굴, 목소리(주장)로 채워져 있다. 각각의 애틋하고 극적인 사연은 마치 단편 소설처럼 느껴질 정도이다.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베이징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이후 미국으로 이주해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변호사로 활동한다. 20년 넘게 변호사로 일하며 앞서 판례들과 사례를 통해 미국의 법률, 사회, 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나라’라고 믿었던 미국이 실은 허점투성이 나라였다는 걸 여실히 깨닫는다.독립선언문의 이념과 다르게 헌법은 중립적이지 않았다. 노예제를 ‘적극적인 선’이라 칭하고, 인종 분리를 ‘남부의 생활 방식’이라 포장했다. 사랑할 권리마저 빼앗았던 법은 그저 권력의 편에 서서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었다. 노예제, 흑인 차별 등 과거 이야기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책에는 최근 판결까지 거론하며 여전히 힘들게 싸우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도 전한다. 예를 들어 1973년 여성들의 자기 결정권과 임신 중지권을 보장한 판결이 지난 2022년 같은 연방대법원에 의해 뒤집혔다. 법은 진보할 수 있지만 불완전하고, 언제든 후퇴할 수 있다는 것까지 솔직하게 드러낸다.책에 언급된 사건 몇 개를 보자. 흰 피부와 파란 눈동자, 금발 머리, 말투, 행동까지 완벽한 백인인 소녀 모리슨은 남부 농장주에게 노예로 팔린다. 모리슨은 농장에서 도망쳤고, 농장주는 그녀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다. 모리슨은 자신은 흑인이 아니며 납치돼 흑인으로 팔렸다고 오히려 자신이 농장에서 학대당했다며 보상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농장주는 그녀의 선조까지 추적해 흑인 노예 혈통이 있다는 걸 서류로 증명하며, 한 번 노예는 그의 후손까지 모두 노예라는 걸 인정받는다. 물론 역사책에서 배웠듯 참혹한 내전과 60여만 명의 국민, 한 사람의 대통령까지 희생된 후에야 미국에서 노예 제도의 속박이 강제로 깨졌다.중국계 이민자 린궁과 미국 여성 캐서린은 결혼해 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았지만, 어느 날 학교에서 “중국인 아이는 백인 학교에 다닐 수 없다”라고 통보해 평범한 일상이 무너진다. 사립학교에 보낼 형편이 되지 않았던 이 가족은 이 관행과 맞서는 소송을 시작한다. “성실한 학생인데 인종을 이유로 쫒아낼 수 없다”라고 주장하지만, 주 대법원은 “입법자의 의도는 백인 학생을 다른 인종과 분리하는 데 있다. 학교 당국의 조치가 정당했다”라고 인정한다. 남북전쟁이 끝났어도 남부는 법으로, 북부는 관행으로 흑백을 분리했고, 앞서 린궁 가족의 판결처럼 “분리하되 평등하다”라는 논리가 만연했다.백인 남편 리처드 러빙과 흑인 아내 밀드레드 러빙은 워싱턴DC에서 합법적으로 결혼했지만, 고향 버지니아로 이사 오자 ‘인종혼인금지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주 밖 추방형을 선고받는다. 이 법은 혼혈을 막아 백인의 순수성을 지키겠다는 노골적인 인종 규제였다. 러빙 부부는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데 이게 왜 불법이냐”라고 주장하며 연방대법원까지 이 사건을 끌고 간다. 대법원은 인종혼인금지법이 평등권과 자유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해 주들이 인종을 이유로 결혼을 금지하는 권한이 없다고 판결한다. 이 판결로 수많은 혼혈 가정과 그 자녀들이 ‘존재 자체가 불법 취급되던 시대’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책에선 승리의 서사만 제시되지 않는다. 정의는 한 번의 판결로 완성되지 않는다. 법을 바꾸는 일은 법률가만의 몫이 아니라 부당함 앞에 침묵하지 않는 시민, 불의를 기록하는 목격자, 변화를 믿고 법정에 서는 평범한 사람들, 이들이야말로 법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류쭝쿤 지음/강초아 옮김/들녘/476쪽/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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