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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행복하시게, 견공
극한 환경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구조견의 역사는 17세기 스위스·이탈리아 국경의 대 세인트 버나드 수도원 경비견에서부터 본격화한다. 수도사들이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기른 덩치 큰 견공이 알프스에서 실종된 여행자를 찾는 과정에서 맹활약한 것이 구조견의 시초다. 18세기 중엽부터는 아예 2마리의 견공이 팀을 이뤄 여행자 구조에 나섰다. 견공들은 한 마리가 조난자 곁에 누워 체온을 지키고 다른 한 마리가 수도원으로 도움을 청하러 가는 방식으로도 훈련을 받았다.
대 세인트 버나드 수도원에서 활약한 가장 유명한 구조견은 ‘바리’다. 1800년께부터 12년 동안 구조견으로 활약한 바리는 40명 이상의 생명을 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얼음 동굴에서 잠든 어린 소년을 발견해 얼굴을 핥고 몸을 밀착시켜 체온을 유지한 뒤 등에 업고 수도원까지 데려온 전설적 일화도 있다. 이 때문에 바리의 이름 앞에는 독일어로 ‘Menschenretter(인명 구조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1812년 은퇴한 바리는 스위스 베른 일반 가정에서 마지막 2년을 보낸 뒤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바리의 사체는 박제돼 베른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됐고 파리 근교 애견 묘지에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현대에 들어서는 산악지형에서의 조난보다는 테러와 지진 등 대형 사건사고 현장에서의 구조견 활약상이 두드러진다.
2001년 9·11테러 당시 미국에서는 사고 발생 15분만에 현장에 도착한 구조견 ‘아폴로’가 화제를 모았다. 아폴로는 불길이 치솟고 먼지가 자욱한 잔해 속에서 생존자와 유해를 찾는 작업을 하루 18시간씩 이어갔다. 이듬해 아폴로는 동물계의 무공훈장 격인 ‘디킨 메달’을 받고 미국 구조견의 영웅으로 기록됐다.
멕시코 해군 소속 ‘프리다’는 2010년 아이티 지진 현장에 투입돼 12명의 생존자를 찾아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구조견이다. 멕시코시티 학교 건물 붕괴 사고 잔해 수색 때 착용한 고글과 신발의 힙한 모습으로도 인기를 끌다 은퇴 후 입양됐다.
부산에서도 7년 동안 280회가 넘도록 현장을 누빈 부산소방재난본부의 119구조견 ‘충성’이 지난주 은퇴식을 끝으로 현장을 떠났다. 활동 기간 중 무려 16명의 인명을 구조한 기록을 남긴 충성은 은퇴 이후 일반 가정에 입양돼 제2의 견생을 시작했다. 인명 구조를 위해 절제된 식단만 접하면서 반복되는 고된 훈련을 묵묵히 견뎌온 견공의 여생이 그 눈부신 활약에 걸맞게 행복하길 빈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2026-07-0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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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삼장수 관광자원화
예나 지금이나 국가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요즘도 합격자 발표철이면 마을 어귀나 학교 정문 등에 매단 축하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여러 형제들이 나란히 군인의 길을 가는 경우도 화젯거리가 된다. 그런데 조선 시대 경남 양산에서는 3명의 형제가 모두 무과에 급제하는 일이 있었다. 더군다나 형제들이 모두 고위직인 장군직까지 올랐다고 하니 당시로서도 무척 드문 일이었다.
부산에서 통도사 방향으로 국도 35호선을 타고 가다가 양산소방서 하북119안전센터 인근에서 좌회전해 올라가면 양산 하북면 삼수리가 나온다. 조선 시대 무관인 이징석(1395~1461), 이징옥(1399~1453), 이징규(1403~1468) 형제가 태어난 곳이다. 삼수라는 지명도 ‘삼장수’에서 유래했으며 현재는 통상 ‘삼장수 마을’로 불린다.
이징석은 세종 때 무과에 급제해 경상도병마절도사, 경상좌도 호치사, 경상우도 안무처치사 등을 역임한 데 이어 문종 때 중추원부사를 거쳐 세조 때 숭록대부 양산군으로 책봉됐다. 이징옥은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계유정난에 반발해 난을 일으킨 인물로 유명하다. 북방 6진 개척에 공을 세우고 김종서의 뒤를 이어 함길도 도절제사를 역임했다. 막내 이징규도 병조판서를 거쳐 무인 최고 벼슬인 종일품에 올랐다.
양산에는 삼장수 이야기를 담은 민요가 전승되고 있다. 삼장수를 기리기 위해 해마다 열리는 양산삽량문화축전에서 삼장수 민요를 부르며 춤을 추는 ‘삼장수 기상춤’ 경연대회도 열린다. 이와 함께 양산시는 삼장수 마을을 관광자원으로 조성한다. 시는 56억 원을 들여 지난해부터 삼장수 마을에 설화 마당과 충절원, 장수 체험 마당, 명상의 숲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설화 마당에는 디딤돌을 활용한 한반도 지도가 만들어지고, 반원 모양의 충절원에는 삼장수 기념비와 야외무대가 설치된다. 장수 체험 마당에는 포토존과 잔디광장, 전통 놀이마당이 들어선다. 명상의 숲에는 삼장수 동상과 일대기 벽화 등이 세워진다. 마을 방문객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진입도로도 대폭 정비, 빠르면 내달 준공할 예정이다.
양산시는 삼장수 마을 관광자원화 사업을 완료한 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인근 통도사와 내원사, 신라 시대 충신 박제상 공을 모신 효충사, 한송예술인촌 등 주변 관광지와 연계한 테마 관광 명소로 육성할 계획이다. 삼장수 마을 관광 자원화 사업이 양산 지역 관광을 한층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
2026-07-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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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의약품은 용도에 맞게
19세기 영국의 저명한 외과 의사 로버트 리스턴의 별명은 ‘날아다니는 칼’이었다. 수술 시작과 동시에 그의 칼은 현란하게 춤을 췄고, 수술도 빨리 끝났다. 다리 절단과 봉합에 3분이 걸리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제대로 된 마취 기술이 없던 시절이었다. 수술이 길어지면 환자의 고통도 연장되고 사망률도 올라갔다. 손 빠른 의사가 최고였다.
당시 의사들은 술이나 아편으로 환자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도 했다. 몽둥이로 환자를 기절시키는 민간요법도 있었는데, 힘 조절에 실패해 사망 사고가 나기도 했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수술에 들어가면 환자는 사지를 비틀며 괴로워했고 쇼크사도 흔했다.
19세기 말 에테르, 클로로포름 같은 흡입용 마취제가 퍼졌다. 잠든 상태에서 수술을 받는 길이 열렸지만, 부작용도 컸고 사고도 많았다. 다행히 1930년대 ‘티오펜탈’이라는 정맥 주사용 마취제가 나오는 등 꾸준히 마취 기술이 발전해, 지금에 이르렀다. 마취 기술이 발달할수록 수술이 가능한 범위가 늘고 수술 성공률도 올라갔다.
마취제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는 비슷하다. 마취제 성분이 뇌 안으로 침투해, 수용체라고 불리는 특정 단백질과 반응한다. 그 결과로 중추신경계를 억제하는 신경전달물질 ‘가바’가 활성화되면, 의식이 잠들어 버린다. 통증 등 외부 자극을 받는 수용체의 기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어쨌든 마취제는 수술 과정의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환자의 뇌를 자극하고 인위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1989년 마취제로 승인된 프로포폴도 같은 원리로 작용한다. 다만 물과 잘 섞이지 않고 지방에는 잘 녹는 성질이 있다. 그 덕에 혈액을 타고 뇌혈관장벽을 빠르게 통과해 반응을 일으킨다. 뇌에서도 빠르게 빠져나가, 환자는 숙취 없이 깨어날 수 있다. 그 덕에 몇 분 만에 깨어나도 뇌는 오래 잠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고, 기분이 개운해지고 미량의 도파민도 나온다.
최근 부산의 한 성형외과 원장이 미용 시술을 빙자해 환자들에게 프로포폴을 215차례 불법 투약했다가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원장 부인도 프로포폴 중독으로 불법 투약을 받았다고 한다.
모든 약은 처방에 맞게 써야 부작용이 없다. 마취제는 수술 과정에서의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는 용도다. 마음의 고통을 덜어줄 목적으로 쓰면 중독이라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2026-07-02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