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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인핸스드 게임즈
올여름 스포츠계에서 ‘인핸스드 게임즈’(Enhanced Games)가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인핸스드 게임즈란 약물과 기록의 규제에서 벗어나 오로지 ‘기록 달성’만을 가치로 삼는 대회다. 세계도핑방지기구(WADA)가 금지하는 약물의 복용이나 각 종목 단체가 불허하는 최첨단 신발, 유니폼 착용을 모두 허용한다.
인핸스드 게임즈는 호주 사업가 에런 드수자가 기획한 대회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들인 트럼프 주니어가 이 대회에 투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내년 5월 24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제1회 대회가 열릴 것으로 예정돼 있다.
주최 측은 금지 약물을 사용해 기록이 크게 나아지는 수영, 육상, 격투기 종목을 인핸스드 게임즈의 주요 종목으로 꼽고 있다. 주최 측이 내건 종목 1위 상금은 50만 달러(약 6억 9000만 원)다. 이들은 육상 100m와 수영 자유형 50m 세계 기록을 넘어서면 100만 달러(13억 8000만 원)를 주겠다고 공언했다. 거액을 내걸고 불법 약물과 과학의 힘을 빌려 신기록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포함해 전성기를 지난 선수들은 물론이고 일부 현역 선수들까지 출전을 선언하면서 인핸스드 게임즈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거센 반발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도핑방지기구(WADA) 총회 차 부산을 찾은 위톨드 반카 WADA 회장은 3일 “인핸스드 게임즈에 참가한 선수들은 더 까다로운 약물 검사를 받게 될 것이다”며 인핸스드 게임즈에 참가한 선수들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뜻을 명백히 했다. 그는 또 “인핸스드 게임즈는 너무나 위험한 행사다. 금지 약물을 복용하게끔 하는 건 반도핑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성토했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WADA 부산 총회에서 금지 약물에 대한 반카 회장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5일 열리는 폐회식에서는 스포츠 공정성과 선수 보호, 도핑방지 국제협력 강화를 위한 공동 의지를 담은 ‘부산선언’이 발표된다. 공정과 정직함은 스포츠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가치다. “선수의 가치는 메달이 아닌 정직함에 있고, 승패와 관계없이 인격과 겸손, 정직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스포츠를 존중하는 것”이란 반카 회장의 말처럼 약물에 의지한 신기록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지, 돈으로 작성된 기록이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 곱씹어 봐야 한다.
2025-12-0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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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굴 풍작
뚱보 황제로 유명한 로마 제국의 여덟 번째 황제 비텔리우스는 굴 애호가로도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비텔리우스 황제는 매주 1200개가 넘는 굴을 먹었다고 기록돼 있을 정도이니 하루 평균 170개가 넘는 굴을 먹은 셈이다. 로마 제국 시대 ‘박물지’의 저자 플리니우스가 해산물 중 콕 집어 굴의 효능을 기록한 점으로 미뤄 아마도 그 시절엔 비텔리우스 같은 굴 애호가가 넘쳐 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탈리아 뿐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는 굴이 비교적 풍부하게 채취됐기 때문에 중세까지 굴은 값이 아주 싼 편에 속하는 식재료였다. 굴 산지로 유명한 영국 템스강 하구와 프랑스 북부 해안 등지에서는 굴 생산량이 많아 껍데기 처리에 골머리를 앓았다는 기록도 있다. 게다가 굴은 기독교가 유럽을 지배하던 시절 금식일에 고기 대신 먹을 수 있는 소중한 단백질 공급원이었기에 빈민층과 노동자들까지 즐기는 해산물로 인식됐다.
굴의 양식이 본격화한 것은 18세기 프랑스였다.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에서는 수평망 방식의 양식법이 보급되기 시작해 굴 양식업을 대대로 이어간 가문까지 나왔다. 시작은 유럽 토착종인 넓적 굴이었으나 20세기 들어 대량 폐사가 발생하자 포르투갈 굴로 잠시 대체된 뒤 질병에 강한 지금의 태평양 굴로 대세종이 변했다.
태평양 굴의 최대 산지는 미국 동부 해안이었으나 산업혁명 이후 증기선과 대형 준설기가 개발되면서 바닥을 박박 긁어내 채취량을 극대화하는 방식이 등장하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준설과 같은 채취 방식은 곧 굴 군락 자체를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서식지는 이내 황폐화했다. 여기에다 산업혁명 이후 각국의 해안으로 공장 독성물질과 오폐수가 쏟아지자 굴은 서양에서 궤멸적 멸종 위기 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이런 역사를 거쳐 현재 전세계 굴의 대부분은 동북아시아 3국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 채취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남해와 서해의 드넓은 리아스식 해안과 갯벌이 굴 생장에 매우 좋은 환경인 데다 수하식 같은 양식법까지 개발돼 품질이 세계적으로 뛰어난 편이다.
굴 풍작을 맞고도 소비 부진으로 울상을 짓던 경남 남해안 굴 양식업계가 일본의 굴 흉작으로 일본 수출길을 넓히게 됐다는 소식이다. 동북아시아 3국 굴 중에서도 가장 품질이 뛰어난 우리 굴이 일본 식탁을 더 풍성하게 장식할 수 있었으면 한다.
2025-12-0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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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작원관 300 용사
1592년 4월(음력 기준)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본격적인 전투 첫날인 4월 14일 부산진성이 함락된 데 이어 이튿날인 4월 15일 다대진성과 동래성마저 왜군의 수중에 떨어졌다. 선봉장인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왜군은 경남 양산 황산잔도를 거쳐 한양을 향해 거침없이 진격했다. 그런데 밀양시 삼랑진읍 작원관에 다다른 왜군은 예상치 못한 거센 저항에 직면한다.
밀양 작원관은 조선 시대 서울에서 부산을 잇는 영남대로에 자리잡고 있었다. 경북 문경 조령관과 함께 2대 관문으로 불렸다. 작원관 일대의 길은 작원잔도로 불렸는데 왜군은 한양 진격을 위해 당시 가장 빠른 이 길을 선택했다. 작원관은 고려 시대부터 왜적의 침공을 방어하던 곳으로 고려 고종 때 지어졌다. 한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다른 한쪽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솟아있어 천혜의 요새로 불렸다. 평상시엔 영남대로와 나루를 통해 드나드는 사람들과 화물을 검문했고, 유사시엔 군사요충지 기능을 했다.
임진왜란 당시 동래와 양산 함락 소식을 접한 박진 밀양 부사는 지리적으로 유리한 작원관을 결사항전지로 선택했다. 4월 17일 시작된 작원관 전투로 300여 명의 군사와 백성들이 산화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희생하면서 왜군의 발을 3~4일 동안 묶었다. 이후 왜군은 5월 3일 한양을 점령했는데 만약 ‘작원관 300 용사’의 활약이 없었더라면 피란 여유가 더욱 줄어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작원관 전투에 대한 고증 등 학계 연구는 여전히 미미하다. 〈선조실록〉 등도 간략한 기술에 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한 이준영 작가가 ‘작원관 300 용사’를 주제로 〈임란, 삼백 감꽃〉(좋은땅)이라는 장편소설을 최근 선보였다. 전국시대 숱한 내전을 치르며 단련된 왜군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 박진 부사와 군사, 백성들의 모습을 세세하게 그려낸다. 작가는 온몸을 던져 나라와 이웃과 가족을 구하려던 이들의 활약상을 상상 속에서라도 재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작원관 용사들에 바치는 헌사인 셈이다.
임란 때 소실된 작원관은 전쟁 뒤 복구됐지만 1902년 경부선 철도 부설 공사를 하면서 작원잔도가 파괴된 데 이어 1936년 낙동강 대홍수로 멸실됐다. 이후 1995년 원래 위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작원관 관문인 한남문 등을 복원했다. 작원잔도 일원은 현재 낙동강 자전거길과 산책로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2025-12-02 [1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