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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태화루 스카이워크
울산 중구 태화강 절벽 위에 자리한 태화루는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영남 3대 누각으로 꼽혔다. 신라 선덕여왕 12년인 643년 자장대사가 태화사를 세울 때 함께 건축했으나 임진왜란을 전후해 멸실됐다. 이후 개인이 매입한 옛 터엔 식당과 호텔, 예식장 등이 차례로 들어섰다가 2008년 태화루 복원을 위해 철거됐다. 태화루 복원 사업은 당초 공사비 확보 문제로 난항을 겪었으나 S-OIL이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사업비를 기부하면서 본 궤도에 올랐다. 울산시는 2014년 태화루 복원 공사를 완료, 시민에게 선보였다.
태화루공원 1만 138㎡ 중 731㎡에 정면 7칸, 측면 4칸 규모로 복원된 태화루는 태화강과 태화강국가정원의 풍광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지역 대표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태화루는 주변 경치가 빼어나 고려 시대부터 ‘울주팔경’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특히 태화루 인근 절벽 아래에 자리한 태화강 용금소는 물이 가장 깊은 데다 휘감듯이 흘러 이곳에서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김극기의 태화루시서, 권근의 태화루기 등 태화루를 주제로 한 수많은 선인들의 시와 글들이 현재까지 전해진다.
태화루 옆 용금소 절벽에 또 하나의 랜드마크가 들어선다. 울산시는 ‘태화루(용금소) 스카이워크’를 최근 완공, 24일부터 개방할 예정이다. 73억 원을 들여 1년 1개월 만에 건설된 스카이워크는 너비 20m, 길이 35m 규모로 조성됐다. 고래의 도시인 울산의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해 흰수염고래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바닥이 투명한 스카이워크를 이용하면 용금소를 끼고도는 강물 위에서 태화강의 아름다운 풍광과 강변에 조성된 십리대숲 등을 한눈에 즐길 수 있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하지만 스카이워크 설치를 둘러싸고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시민단체 등은 그동안 인공 구조물인 스카이워크가 태화루와 인근 국가정원의 품위와 정체성을 훼손할 여지가 크다며 건립을 반대했다. 반면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부족한 울산의 상황을 고려할 때 무작정 반대할 일은 아니라는 시민 반응도 적지 않았다. 인근 상인들은 관광객 유입에 따른 지역 경제 활성화 등을 고대하고 있다. 기대와 우려 속에 개방될 스카이워크가 아름다운 태화강의 수변 풍광과 태화루에 깃든 울산의 역사성을 제대로 알리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시가 운영의 묘를 최대한 살려주길 기대한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2025-12-2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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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한국 투자, 미 원전 굴기
미국은 인류 최초로 원자력을 전기로 전환하는 기술을 상용화했으나, 제조업 붕괴를 피하지 못했다. 그 최전선에 웨스팅하우스가 있다. 원자로뿐만 아니라 산업용 기기, 엘리베이터, 가전제품 등 전기·기계 부문에서 기술력과 신뢰의 정점을 찍었지만, 몰락은 순식간이었다. 부동산 투자 실패로 적자가 누적되면서 가전과 기계 부문을 시작으로 주력인 전력 및 원자력 부문까지 해외에 매각된 것이다. 영국과 일본, 캐나다 자본이 원전 사업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웨스팅하우스는 방송사 CBS를 인수한 뒤 미디어 회사로만 남은 적도 있다. 존폐 위기를 거듭한 기업이 전성기 수준의 기술력과 인력, 생산 기반을 즉시 회복하기는 어렵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중국의 급부상에 쫓기는 미국은 다급하다. 전력 공급이 곧 국가 안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형 원전 10기를 짓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웨스팅하우스의 차세대 원자로 AP1000 모델을 2030년까지 착공해서 2050년까지 발전 용량을 4배(400GW) 확대한다는 미국판 ‘원전 굴기’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이 지난 2일 백악관에서 관세 협정에 따른 한국 투자금을 원전 건설에 우선 사용하겠다고 밝힐 정도로 최우선 국정 과제다.
신규 원전 추진에서 인허가 속도와 주민 수용성도 걸림돌이지만, 사업을 주도하는 웨스팅하우스의 취약점도 문제다. 웨스팅하우스는 1979년 스리마일섬 사고 이후 실적이 없다. 일본 도시바에 인수된 이후 추진된 원전의 공기 지연과 비용 상승으로 파산한 적도 있다. 이러한 원전 생태계의 취약성과 해외 공급망에 대한 의존성 때문에, 한국과의 파트너십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미국 내에서 제기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한국은 56개월 만에 원전을 짓는데, 이는 세계 평균인 190개월보다 세 배 이상 빠르다. 웨스팅하우스에 없는 원자로 압력 용기와 증기 발생기 등 초대형 주단조품 제조 기술은 한국의 경쟁력이 세계적이다.
미국이 원전 산업의 부흥 비용을 조달하는 행태는 씁쓸하다. 걸핏하면 지식재산권 분쟁을 제기해 ‘노예 계약’을 강요하는 웨스팅하우스의 처사는 갑질의 전형이다. 하지만 분노를 넘어서야 한다. 방관하면 종속을 극복할 길이 없다. 한국은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미국 원전 사업에 적극 참여해 구조 전환의 계기를 잡아야 한다. 원전 제조 강대국의 저력을 발휘할 때다. 불공정한 틀이 고착하는 매몰 비용이 될지, 새 기회를 창출하는 전략적 투자로 발전할지는 한국의 선택에 달려 있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
2025-12-2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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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코너킥과 VAR
비디오 판독(VAR)은 스포츠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될 시스템이 됐다. 축구와 야구, 테니스, 배구, 농구 등 적용되지 않는 스포츠가 없을 정도다. 그만큼 스포츠의 공정성 문제가 승패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VAR의 도입을 막는 요소가 있다. 바로 경기 시간이다.
현대 스포츠는 경기 시간을 줄이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프로야구 등 경기 시간이 정해지지 않는 스포츠의 경우 최대한 시간을 줄여 팬들에게 보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하고, 선수들에겐 부상 방지와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되도록 매년 규정이 개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VAR의 도입과 확대는 경기 시간 지연이란 명분 아래 발목이 잡히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인 게 축구 경기에서 코너킥 판정 VAR 도입 문제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코너킥 판정에 VAR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최근 나왔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FIFA가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코너킥 판정에 VAR 체크 도입을 추진할 예정이다. 자체 실험을 진행해 VAR 프로토콜의 공식 항목으로 추가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그동안 축구에서의 VAR은 득점·페널티킥·퇴장·잘못된 경고 등의 상황에만 적용됐다. FIFA는 2023년부터 VAR의 범위를 프리킥, 코너킥, 두 번째 옐로카드 상황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축구 규칙을 제정하는 국제축구평의회(IFAB)는 ‘두 번째 옐로카드를 잘못 줘 퇴장으로 이어진 경우’까지 VAR의 범위를 확대하는 데 합의했지만, 코너킥 판정 검토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된 이유가 경기 시간 지연이었다. IFAB는 코너킥을 VAR에 추가하면 VAR을 도입한 모든 프로 리그가 이를 따라야 하는데, 기술적·인적 자원의 부족뿐만 아니라 경기 시간 지연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 옐로카드 판정’은 시즌 내 발생 빈도가 낮지만, 경기당 평균 10개 이상 나오는 코너킥 판정은 대부분 명확해 VAR 항목에 추가할 필요가 없다는 게 IFAB의 판단이다.
판정 불만을 낮추는 데 공을 들여 온 FIFA는 IFAB의 부정적인 의견에도 내년 월드컵에서 코너킥의 VAR 적용을 도입할 공산이 크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분이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보다는 공정한 판정이 낫다.
2025-12-18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