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름값 최고가격제, 시장 왜곡·재정 부담 부작용 고민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의 무조건 항복 없이는 협상이 없다고 밝힌 데다, 이란이 인접국 공격을 재개하자 장기전 우려가 커지며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중동발 고유가 파장은 국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해 국가 경제와 서민 생활을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운송 지연과 운임 상승으로 수출에도 비상등이 켜진다. 이러한 시장 불안감은 올해 2% 성장 전망치마저 흔들고 있다. 이란 사태로 촉발된 불확실성과 불안감은 리터당 2000원으로 치닫는 기름값이 상징적이다. 시장 안정화와 소비자 보호 대책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구조적 대응책을 놓친 채 단기 처방에 급급하다면 국가적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필요하다. 정부는 30년 만에 기름값 최고가격제를 검토하고 있다. 판매가 상한을 정해 소비자 부담을 낮추는 방식인데, 1990년대 가격 자유화 이후 사문화된 정책을 꺼내 든 것이다. 하지만 시장 구조가 달라진 상황에서 인위적 통제의 효과와 타당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우선 시장 왜곡 가능성이다. 정유사와 주유소의 공급 기피와 유통 축소를 초래할 수 있다. 소비자 사재기가 나타날 소지도 있다. 재정 부담도 부작용이다. 인위적으로 설정된 가격을 넘은 부분을 정부가 보전하면 사태 장기화 때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 이미 유류세 인하로 세수 감소가 발생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으면 정책 지속 가능성도 흔들릴 수 있다. 고유가 대책은 지역 경제의 현실을 살펴서 추진돼야 한다. 부산은 항만과 물류, 수산업 등 연료 의존도가 높은 산업이 밀집한 도시다. 유가 상승은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경유 가격이 휘발유를 앞지르자, 운송·물류업 부담이 커지고, 화훼 농가는 난방비 상승의 직격탄을 맞았다. 가격 통제로 공급이 위축되거나 유통 혼란이 발생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시장 안정과 소비자 보호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이다. 유류세 인하 연장과 비축유 방출 같은 단기적 완충 장치는 적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수입선 다변화는 기본이고, 국내 유통 구조 투명성 제고와 취약 업종 선별 지원책 등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이란 사태의 장기화로 인한 변동성과 불안감은 실물경제의 발목을 잡고 금융시장을 마비시킬 공산이 크다. 치솟는 기름값이 물가 상승, 소비 심리 위축, 내수 감소의 악순환을 초래하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정부가 선제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보이는 것은 적절하다. 다만 단순 처방이 시장 혼란을 야기해서는 안 된다. 가격 통제 정책을 30년간 사용하지 않은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인기 위주의 단기 대응이 아니라 시장 안정과 재정 건전성을 함께 고려한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유가는 물가와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다. 유가 불안에 대응하는 정책일수록 신중하면서도 구조적인 해법이 요구된다.
[사설] 감천항 수산가공단지, 주먹구구식 운영에 조성 취지 무색
부산은 한국을 대표하는 수산도시이다. 수산물 유통 및 가공업체, 냉동냉장창고 등이 밀집한 것은 물론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수산물도매시장 등 다양한 수산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그중에서도 서구 암남동 감천항에 들어선 수산가공선진화단지는 수산물을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가공, 세계 곳곳에 수출하는 중요한 거점이다. 특히 감천항을 국제수산물류무역기지로 발돋움시키기 위한 핵심 시설이다. 하지만 부산시가 상위법에 위배되는 방침을 마련하면서 수산가공선진화단지 내 입주 업체들이 공장 양도양수를 임의적으로 자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이런 불법 행위가 공공연하게 장기간 반복되었다고 하니 기가 막힐 일이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수산가공선진화단지를 관할하는 시 관리사업소는 사용 계약 만료 등으로 퇴거를 앞둔 기존 입주업체가 입주할 업체를 직접 선정해 사업소에 추천할 수 있도록 하는 내부 방침을 2016년 마련했다. 공공예산을 들여 건립한 공공시설 입주가 업체 간의 비공개적인 양도양수에 의해 사실상 좌우되도록 한 것이다. 이는 산업집적법 등에 명백히 위배된다. 사업소는 퇴거 업체가 초기 투자 설비를 남겨놓고 갈 경우 큰 손해를 본다는 이유로 불법적인 내부 방침을 만들었다고 한다. 조성 취지를 해칠 구조적 문제가 있으면 근원적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데도 이를 외면한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불법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데도 그동안 감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1421억 원을 들여 6만 6395㎡ 부지에 지상 7층 규모로 건립한 수산가공선진화단지는 지난 2014년 2월 개장했다. 그런데도 부산시는 지난해 9월 선진화단지에 대한 첫 감사를 진행해 불법적인 내부 방침의 존재를 확인했다. 공공시설에 대한 감사는 통상 3~5년마다 이뤄지는 게 정상인데도 개장 11년 만에야 첫 감사를 진행한 것은 그동안 부산시의 관리감독이 아예 부재했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결국 부산시의 행정력에 구멍이 뚫리면서 관리사업소가 불법적 운영으로 일관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현재 수산가공선진화단지에는 식품가공공장 55곳이 입주 중이다. 선진화단지는 영세하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은 소규모 수산업체들을 인큐베이팅해 수출 거점 기업으로 육성하자는 취지로 건립됐다. 수산물종합연구소와 수출입정보센터 등 연구·지원시설도 갖췄다. 하지만 그동안 단순 공장 임대에 그치고 입주 기업 설비나 연구 사업에 대한 다양한 자금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급기야 면밀한 심사를 통해 성장성 있는 입주 업체를 지정하려는 시의 노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업체들간의 ‘깜깜이 양도양수’까지 판친 것으로 드러났다. 수산가공선진화단지 조성 취지를 망각한 부산시의 각성을 촉구한다.
[사설] 중동 전쟁 틈탄 '미친 기름값' 시장 안정 대책 필요
미국과 이란의 중동 전쟁으로 국제유가 변동성이 높아지면서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5일 오후 3시 기준 1822원을 기록했다. 휘발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건 2022년 8월 12일(1805.9원) 이후 3년 7개월 만이다. 특히 사흘 새 부산 휘발윳값은 L당 141원, 경유 가격은 L당 226원이나 폭등했다. 그야말로 ‘미친 휘발윳값’이다. 증시가 최근 단기 급등했지만, 성장률은 1%대에 머물고 실질 소비 지출도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등 실물 경제 부진은 여전하다. 특히 고환율로 물가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기름값 폭등은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 경제 주름살만 늘릴 우려가 크다. 국제 유가 상승이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기까지 통상 2주가 걸린다.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유통하는 과정에서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원유가 국내에 공급되기도 전에 주유소 판매가격이 먼저 오르는 모양새다. 정유사들이 불안한 국제 정세를 빌미로 기름값을 올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 간 무력 충돌로 국제 유가 불확실성이 커졌을 때도 국내 휘발유 판매가격은 L당 1800원에 육박했다. 현재 국내 석유 비축일수는 208일분, 세계 6위 수준으로 단기 재고량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불안한 민심 수요를 악용해 기름값이 ‘오를 때는 빠르게, 내릴 때는 천천히’라는 관행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도 강경 대응에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임시 국무회의에서 폭등하는 휘발유 가격에 대해 ‘최고가격 지정제’ 시행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지역별·유류 종류별로 적용하는 등 현실적 방법을 찾아 신속하게 지정하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최고가격 지정은 2004년 관련법률 제정 이후 처음 시행하는 것이다. 또 주유소의 바가지 행위를 제재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유가가 오르는 틈을 타 매점매석이나 가격 인상은 파렴치하다”며 상응하는 처벌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어려운 시장 상황을 악용해 폭리를 취하려는 시도에 정부가 단호한 대응을 천명한 것은 합당하다. 중동 전쟁이 장기화한다면 국제 석유 시장 변동성이 증가하고 에너지 수급 불안이 현실화할 수 있다. 국제 유가가 치솟으면 국내 경제에 상당한 파장을 미치고, 자가용·생계용 운전자 등의 부담은 더 커진다. 정부도 에너지 수급 우려가 커지자 5일 석유·가스에 ‘관심’ 단계의 자원 안보 위기 경보를 발령했다. 수급 위기에 대비한 원유 추가 물량 확보, 비축유 방출 준비, 석유 유통 시장 단속 강화 등을 차질없이 해야 한다. 가짜 석유, 정량 미달 등 불법 유통 행위 관리도 강화해 부당하게 폭리를 취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적극적인 석유 시장 안정 대책을 통해 서민 부담을 줄이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밀물썰물] 비운의 '중동 집시'
쿠르드족은 한 번도 독립 국가를 세우지 못한 비운의 민족이다. ‘세계 최대의 나라 없는 민족’인 이들은 튀르키예 남동부, 이라크의 북부, 시리아 북동부, 이란 북서부 등 네 나라 국경이 맞닿은 산악 지대에 흩어져 거주해 왔다. 이런 특성 때문에 ‘중동의 집시’로 불린다. 약 4000만 명에 이르는 이들은 고유 언어인 쿠르드어를 쓰며, 대다수가 수니파 무슬림이다. 나라를 이루지 못한 것은 지형이 험한 산악 지역에 살다 보니 정치적 공동체를 이루기 쉽지 않았고, 쿠르드족이 사는 네 나라 모두 독립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중세 십자군 전쟁의 영웅 ‘살라딘’이다. 그는 12세기 이슬람 군대를 이끌고 십자군에게 빼앗겼던 예루살렘을 탈환한 지도자다. 이슬람권과 서양에서 모두 존경받는 살라딘은 쿠르드족에겐 역사적 자부심이다.하지만 이 민족의 역사는 ‘독립의 꿈’과 좌절의 반복이었다. 쿠르드족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의 편에 서서 자신들의 지배국이었던 오스만 제국 공격에 참여했다. 1920년 연합국은 패전국인 오스만 제국과의 세브르조약에 쿠르드 국가 건설을 포함시켰지만, 1923년 로잔조약에서 해당 조항이 삭제됐다. 쿠르드족 거주 지역에서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자 영국이 약속을 저버린 탓이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때도 두 나라는 상대 국가에 있는 쿠르드족을 이용한 뒤 냉정하게 외면했다. 1991년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정권 타도를 위해 이라크 쿠르드족의 내부 봉기를 촉구했다. 쿠르드족이 호응해 무장 투쟁에 나섰지만, 미국은 군사 지원을 하지 않았다. 2010년대 이슬람국가(IS)가 중동에서 맹위를 떨치자 쿠르드족은 미국과 서방을 도와 IS 격퇴에 앞장섰다. 그러나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시리아 철군을 선언했고, 미국 묵인 아래 튀르키예의 공습은 받은 쿠르드족은 큰 피해를 봤다.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대이란 군사작전에 쿠르드족 개입을 원하지 않는다며 찬성 입장에서 선회했다. 쿠르드족이 참전하면 이란전은 공습이 아닌 지상전 양상으로 치닫게 되고, 전선이 중동 전체로 확장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미국이 남의 힘을 빌려 적을 제거하는 ‘차도살인’(借刀殺人) 전략을 접은 것은 다행이다. 용맹한 쿠르드족이 다른 나라 전쟁에 자꾸 휘말리는 모습이 안타깝다. ‘산 말고는 친구가 없다’는 쿠르드의 오래된 격언이 비애를 느끼게 한다. ‘나라 없는 민족’의 설움과 박해로 점철된 이들의 기구한 운명은 언제 끝날까.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논설주간/상무이사
강윤경
수석논설위원
김승일
논설위원
정달식
이상윤
김상훈
천영철
[데스크 칼럼] 다시 떠오른 양산 '행정 관할 일원화'
최근 양산시와 시민들의 시선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쏠렸다. 창원지법 김해지원과 양산지원 설치 법안 처리 여부 때문이었다. 희비가 엇갈렸다. 김해지원 설치 법안은 법사위를 통과·본회의에서 확정됐지만 양산지원 설치 법안은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김해지원 설치 법안은 2012년 처음 발의된 이후 14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인구 50만 대도시 중 유일하게 법원 지원이 없던 김해시는 이번 법안 통과로 ‘사법 접근성 향상’이라는 오랜 현안을 해결하게 됐다. 반면 양산지원 설치는 국회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지역 정치권은 “계속 추진하겠다”라는 입장이지만 김해 사례를 보면 쉽지 않아 보인다. 이번 무산은 단순히 지역 현안을 넘어 양산시의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고질적 문제인 ‘행정기관 관할 불일치’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양산의 행정 관할은 한마디로 ‘뿔뿔이’ 흩어져 있다. 행정구역은 경남이지만 법원과 검찰, 보훈 업무는 울산 관할이다. 경남 소속 경찰이 울산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고, 시민들은 재판과 보훈 업무를 보기 위해 울산지법·울산보훈지청으로 가야 한다. 방송권역은 부산과 울산, 창원으로 갈라져 있다. 경남도 등이 2023년 KBS·KNN은 경남 방송국 채널로 시청권역을 통일하고, MBC는 부산과 경남 채널을 동시에 시청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했지만, 시민 불편은 해소되지 않았다. 세무 행정은 2018년 양산세무서 신설로 해결됐으나 한 도시 안에 세 개의 행정 구조가 공존하는 것은 여전하다.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1990년대 신도시 개발로 인구가 급증하면서 시민 불편이 시작됐다. 2000년 초 시민들이 중앙정부에 민원을 제기했고, 2006년 이후에는 양산시 차원의 공식 건의도 이어졌다. 선거철이면 단골 공약으로 등장했고 ‘추진하겠다’라는 약속도 반복됐다. 하지만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도록 실질적 변화는 거의 없다. 양산세무서 신설이 일부 성과로 꼽히지만, 법원과 검찰, 보훈 등 핵심 영역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관할 불일치는 단순한 이동 거리 문제만은 아니다. 시민들은 행정 서비스 이용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반복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행정기관 간 협조 과정에서도 비효율이 발생하고, 기업 역시 법적 절차를 위해 권역을 넘나들어야 한다. 행정 체계 분산은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만들고 지역 정체성은 물론 소속감에도 영향을 미친다. 나아가 도시의 소속감과 정체성을 악화시킨다. 이 때문에 양산 시민들은 수시로 ‘경남 홀대론’을 제기하고 선거철마다 부산·울산 편입 이야기가 등장한다. 행정의 경계가 심리적 경계로 이어지고 있다. 김해지원 설치 과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해 역시 처음에는 창원지법 기능 축소 우려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인구 규모와 사건 수요, 시민 불편에 따른 사회·경제적 손실 등을 수치로 제시하며 설득에 나섰고 결국 입법 문턱을 넘었다. 지역 숙원을 ‘논리와 데이터’로 풀어낸 결과다. 양산은 인구와 산업 규모에서 뒤지지 않지만, 지원 설치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부산과 울산, 창원 등 3개 권역 법원이 인접해 있다는 지리적 특수성이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이는 행정 편의를 중심으로 한 논리일 뿐 시민 편익을 기준으로 보면 아쉬운 대목이다. 행정기관 관할 일원화는 단지 기관을 옮기는 문제가 아니다. 시민들이 행정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는 일이다. 경남도 역시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박완수 경남도지사가 공개 석상에서 양산시의 관할 불일치 문제를 언급했고, 2023년 1월에는 경남도와 양산시, 경남연구원이 함께하는 TF팀도 구성했다. TF팀은 양산지원 설치와 양산·김해·밀양을 관할하는 보훈지청 신설, 방송권역 통일, 법기수원지 관리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30여 년 만에 공식 논의가 시작되자, 시민 기대감도 컸다. 그러나 방송권역 일부 조정에 그쳤고, 기대했던 양산지원 설치는 무산되면서 실망감도 커졌다. 행정기관 관할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법 개정과 예산 확보, 관계 기관 협의가 필요하고,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그렇다고 해서 30년을 미룰 이유는 되지 못한다. 이제는 경남도와 중앙정부, 정치권이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경남도의 TF팀 구성처럼 일회성 선언에 그쳐서는 안 된다. 구체적인 로드맵과 입법 추진 전략이 필요하다. 행정기관 관할 일원화는 선택이 아닌 시민 기본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이제는 답을 내놓아야 할 시간이다.
[노트북 단상] 숫자 뒤의 얼굴
“숫자를 안 볼 수는 없습니다. 결국 사업은 수치로 평가받으니까요.” 최근 만난 한 고용서비스업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취업률과 매출, 성과 지표가 늘 따라다니는 업종이다 보니 숫자를 외면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사람 이야기를 먼저 들어야 합니다.” 숫자는 결과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과정에는 각자의 사정이 있다. 취업률이라는 숫자 뒤에는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해 근무 시간을 조정해야 하는 부모가 있고, 집과 일터 사이 왕복 두 시간을 고민하다 지원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새로운 일을 배우기 위해 다시 교육장에 앉는 사람들도 있다. 그 말을 들으며 숫자와 사람 사이의 거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지난 1년간 주로 숫자를 다뤘다. 매출 증감률, 방문객 수, 가동률, 점유율. 기사에는 근거가 필요했고 숫자는 가장 분명한 언어였다. 설명이 쉬웠고 반박도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명확했고 간결했고 제목으로 뽑기에도 적당했다. 그래서 수치를 여러 번 확인했다. 숫자가 맞는지 두 번, 세 번 점검했다. 돌이켜보면 숫자에 대해서는 집요했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 전시장 가동률을 물으면서도 그 공간을 지키는 사람의 하루를 묻지 않았다. 외국인 매출 비중이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하면서도 매장에서 하루 종일 서 있을 직원들의 표정을 보지 않았다. ‘역대 최대’라는 표현을 쓰면서도 그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같은 속도로 나아가고 있는지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성장의 언어에 익숙했다. 얼마나 늘었는지, 얼마나 회복했는지, 얼마나 확장했는지, 기사 역시 그 흐름을 따라왔다.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숫자는 여전히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좌표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숫자가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최근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의 말은 성장보다 생존을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요즘은 그냥 유지하는 게 목표예요.” “크게 바라는 건 없고 지난해만큼만 되면 좋겠습니다.” 확장보다 버팀을 말하는 문장이 많아졌다. 기사 속 숫자들은 분명히 변화를 보여주지만, 사람들의 체감은 그 속도와 꼭 같지는 않았다. 경제는 회복을 말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버티는 하루를 말한다. 성장의 숫자와 삶의 체감 사이에 간극이 생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숫자는 평균을 말하지만 삶은 평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은 ‘얼마나 성장했는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시대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수치는 중요하지만, 그 수치가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월세와 인건비를 계산하며 다음 달을 고민하는 일상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질문을 조금 바꿔보려 한다. 얼마나 늘었는지를 묻는 대신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 몇 퍼센트 상승했는지 대신 그 변화 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를 보는 방식이다. 숫자가 가리키는 방향 끝에 서 있는 사람을 함께 보겠다는 마음이다. 성장의 속도만이 아니라 생존의 온도를 적어보려 한다. 우리는 여전히 성장률을 확인한다. 그러나 동시에 얼마나 무사했는지도 묻기 시작했다. 성장의 숫자만으로는 지금의 삶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는 숫자 뒤에 있던 얼굴을 조금 더 오래 보려고 한다.
[중앙로365] 금융중심지 추가 지정과 결단
서울과 부산에 이은 금융중심지 추가 지정이 논의되고 있다. 먼저 왜 금융중심지 육성이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 가능한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금융중심지 지정이 국내 금융산업의 지역 간 배분 논쟁으로 흘러가면 자칫 땅따먹기식이 되어 결론이 어떻든 상처만 남을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국제 금융도시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뉴욕, 런던, 홍콩, 싱가포르, 두바이는 물론 베트남, 카자흐스탄 같은 후발 주자들을 분석한 전문가들은 다음의 세 가지 축을 공통 요소로 지적한다. 첫 번째 축은 금융 법규를 포함한 규제 체계다. 이는 다시 세 가지 요소로 나뉘는데 그 첫째 요소는 금융 거래 규제 법규이다. IT 발달로 거래는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더구나 금융회사 간 경쟁 격화로 그 소요 시간은 점점 더 단축되고 있다. 부담할 리스크는 크게 증가하는 반면 이를 검토할 시간은 부족하게 된다. 규율 제도가 국제적 기준과 차이가 나게 되면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점이다. 그래서 후발 금융중심지들은 금융 법규의 국제 정합성을 가장 최우선시하여 영미 법규를 적극적으로 채택할 뿐만 아니라 분쟁 해결을 위한 사법시스템도 과감하게 영미법적으로 개편하고 있다. 두 번째 요소는 금융 감독 방식이다. 국가별로 금융 감독 방식에 차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감독기관의 개입이 금융회사의 자율에 맡겨야 할 영역까지 확대되거나 개별 거래에 지나치게 깊이 관여하게 되면 경영 자율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책임에 기반한 창의와 혁신도 발휘되기 어렵게 된다. 감독과 검사에 대한 금융회사의 신뢰도 중요한 요소다. 감독 방식과 태도가 국제적 정합성을 벗어날 경우 글로벌 기업에 큰 부담 요인이 되고 결국은 진출 자체를 주저하게 만든다. 셋째 요소는 외환거래 자율화이다. 외환거래가 불편하면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장기적으로 머물지 않는다. 외환거래 자율화는 국제 금융 생태계의 기본 조건에 가깝다. 만일 외환거래 자유화가 국제수지나 국내 외환시장에 야기할 교란이 우려된다면 금융중심지-역외 간 거래와 금융중심지 내 거래는 자율화하되, 국내 다른 지역과의 거래는 차단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고 본다. 두 번째 축은 어떨까. 조세 등 인센티브 제도이다. 법인세율, 금융 종사자의 소득세율은 국제 금융도시 경쟁에서 사실상 가격표 역할을 한다. 현행 우리나라 조세 경쟁력이 국제 금융중심지들과 경쟁하기에는 너무 낮다는 점이다. 국내 금융회사들의 비수도권 이전을 이끌기에도 부족한 세제 인센티브로 글로벌 금융회사와 전문 인력을 유치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더 강한 인센티브 패키지가 필요하다. “그렇게까지 해서 우리에게 남는 게 무엇이냐”는 반론이 따른다. 그러나 두바이는 초기부터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했고, 시간이 흐른 지금 그 금융은 두바이 경제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가 추진 중인 5극 3특 정책도 특정 지역을 우대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갖춘 전략적 기능을 어디에, 어떻게 집적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기능이 다른 거점에는 제도와 인센티브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인센티브의 지역 간 형평성만 강조하다가는 더 큰 국가적 손실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세 번째 축은 정주 여건이다. 이 중 단연 교육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 금융 전문가들은 높은 수준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는 집단이다. 자녀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어떤 인센티브도 장기 체류를 끌어내기 어렵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언어 환경이다. 후발 국제 금융중심지들이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 원활하고 편리한 국제·국내 교통인프라, 신뢰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도 빠뜨려서는 안 될 중요 요소이다. 이들 세 가지 핵심 축이 구현되는 마지막 조건은 국민적 합의와 정치적 리더십이다. 국제 금융은 신뢰의 산업이다. 정책이 일관되고 지속되지 않으면 어떤 금융회사도 장기 투자를 결정하지 않는다. 국내 금융중심지 추가 지정으로 국제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면 무엇이 걱정이겠는가. 진정으로 국제 금융중심지 육성을 원한다면 국내외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이상의 3대 축을 국제 수준으로 끌어올릴 결단을 할 수 있는가. 이것이 금융중심지 추가 지정을 앞둔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이다.
[편집국에서] 본말전도된 행정통합, 속도전을 경계한다
지난해 국제 정세를 관통한 단어는 단연 ‘관세’였다. 자유진영의 리더를 자임하는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세계를 향해 관세 폭탄 투하를 선포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유진영의 맹주답게, 최후의 선택은 각국의 자유에 맡겼다. 미국의 뜻을 따르거나, 온몸으로 관세 폭탄을 맞거나. 세상은 잠시 술렁였지만 이내 기묘한 냉정 속으로 가라앉았다. 처음엔 미국의 억지를 받아들여선 안된다는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허나 그 목소리는 곧 ‘현실 감각이 부족한 이상주의자의 넋두리’로 치부돼 스러졌다. 대신 각국은 ‘조금이라도 덜’ 손해 보는 답안지 마련에 골몰했다. 사람들은 이 기형적 풍경을 ‘뉴노멀’이라 불렀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소동을 보고 있으려니 지난해 관세 소동이 겹쳐 떠오른다. 정부가 당차게 밀어붙이는 ‘행정통합’이다. 정부는 통합에 응한 지자체에 4년간 20조 원을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돈 내놔라’ 협박하는 미국과 ‘돈 주겠다’ 꼬드기는 우리 정부가 어찌 닮았느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두 경우 모두 의사(意思)가 결정되는 방식은 판에 박은 듯 같다. 형식의 자유 뒤로 ‘돈’을 무기로 한 강제가 숨어 있다. ‘관세 협상’이나 ‘행정통합’이나, 어디까지나 선택은 각국 혹은 각 지자체의 자유의지에 달렸다. 형식적으론 그렇다. 그러나 관세 폭탄을 감수하고 홀로서기를 택한 나라는 손에 꼽히고, 또한 20조 원이라는 미끼를 뿌리치고 행정통합을 거부하는 것 역시 예사 결단이 아니다. 결국 돈으로 의지를 구부린다는 점에서 두 장면은 닮았다. 더욱이 그 선택의 압박 속에서 미국의 부당함에 대한 비판이 스러지듯, 행정통합의 당위성을 묻는 공론 또한 사라지고 있다. 이 또한 닮았고, 이게 더 치명적이다. 정부가 넉넉지 않은 곳간에서 수십 조를 털 만큼 행정통합은 절실한가. 지역 소멸의 위기감이 짙은 현재 △규모의 경제 실현 △광역 인프라 구축에 대한 신속한 결정 △중복 행정의 혁파 등 행정통합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분명 적지 않다. 그러나 동전의 뒷면에는 지역 내 불균형 심화와 주민 갈등이라는 우려 또한 숨어 있다. 창원·마산·진해 통합의 진통은 우리가 이미 몸으로 겪은 전례다. 숙의와 공감 없이는 그 어떤 통합도 온전히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교훈을 그 경험은 남겼다. 그런데 지금 그 당연해야 할 숙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많은 이에게 행정통합의 필요성을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대개 하나다. “우리(부산·경남)만 20조 원을 놓칠 거냐.” 통합이 반드시 필요하기에 지원금으로 이를 촉진한다는 논리가 되레 뒤집혀, 지원금을 받기 위해 통합이 필요해지는 기묘한 전도(顚倒)가 일어나고 있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통합의 본질을 묻는 물음은 자취를 감춘 채 ‘선거 전 통합하느냐 마느냐’를 묻는 목소리만 더욱 커질 거라는 점이다. 심지어 그 여부의 기준조차 지역민의 삶에 대한 성찰보다 선거판의 유불리라는 정치공학적 저울질에 더 크게 기울 것이다. 지난 1일, 전라남도와 광주광역시 행정통합을 위한 특별법과 지방자치법 개정안이 여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제 누군가는 출발선을 넘었고, 아직 출발선 뒤에 서있는 다른 누군가는 앞선 주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바심을 삭이기 어렵다. 그렇게 행정통합의 속도전은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가속도를 더해간다. 정부는 “통합이 늦은 지자체도 차별 없이 지원하겠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속도는 중요해 보인다. 2027년으로 예정된 수도권 공공기관의 2차 지방 이전 과정에서 통합 지자체에 우선권을 부여하겠다고 하니 말이다. 이번 지방선거 전 행정통합을 이루지 못할 경우 서둘러도 2028년에야 통합이 가능하다. 이 경우 앞서 시작될 공공기관 이전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크다.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여당의 예비후보들도 노골적으로 “우리만 손해볼 수 없다”며 빠른 행정통합 추진을 강조한다. 유권자들 입장에서도 내 세금이 나랏돈이라는 이름으로 타 지역 행정통합을 지원하기 위해 쓰여진다고 생각하면 심사가 뒤틀릴 수밖에 없다. 그 뒤틀린 심사만으로 ‘우리도 빨리 통합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잠시 속도를 늦추고 다시 ‘왜’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경남 어느 산골에 홀로 사는 할머니에게, 일자리가 없어 고향을 등지는 소도시 젊은이에게, 가장 먼저 대답해야 한다. 당신들이 거액의 미끼까지 내걸고 추진하려는 행정통합이 이뤄지면 할머니 집 앞까지 오는 마을버스가 더 자주 오는지, 아플 때 달려갈 병원이 가까이 생기는지, 떠난 젊은이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까닭이 마련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20조 원을 행정통합 여부와 관계 없이 그것들을 위해 쓸 순 없는지도.
[양보원의 유행 너머] '두쫀쿠'와 '봄동' 사이
“그냥 느껴.” 요즘 유행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말이다. 맥락을 따지고, 의미를 분석하고, 왜 이게 떴는지 이유를 붙이려는 순간 이미 유행에서 한발 뒤처진다. 봄 제철 채소인 봄동을 주재료로 한 봄동 비빔밥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덩달아 봄동 가격도 오름세를 보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봄동 15kg 한 상자 가락시장 도매가격은 4만 7099원이다. 지난달 초와 비교하면 33% 이상 올랐다. SNS 유행으로 원재료 가격이 오르는 모습은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얼마 전 ‘두바이 쫀득 쿠키(두쫀쿠)’가 한창 유행할 때는 피스타치오 가격이 올랐다. 한 대형마트의 탈각 피스타치오 400g 소비자가격은 2024년 약 1만 8000원에서 지난 1월 2만 4000원까지 올랐다. 유행이 한풀 꺾인 현재는 다시 예전 가격을 회복하고 있다. 유행하는 음식이 생길 때마다 재룟값이 반짝 상승세를 보였다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유행 주기도 점점 짧아지고 있다. 2020년 큰 인기를 끈 ‘크로플’이 정점을 찍고 인기가 식는 데 5개월이 걸렸다면, 두쫀쿠는 약 2주 만에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크로플은 검색량이 최고점에 도달한 뒤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기까지 163일이 소요됐다. 탕후루의 반감기는 54일로 줄었고, 두쫀쿠는 17일에 불과했다. 두쫀쿠에서 봄동으로 유행이 넘어가는 기간은 크로플에서 탕후루로 유행이 바뀌는 기간에 비해 10분의 1로 단축됐다. 역대급으로 짧은 유행에 대해 기성세대는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는다. 두쫀쿠와 봄동 사이 유행의 흐름을 분석하려는 해설위원들의 말이 넘친다. 혹자는 건강을 해치는 사치스러운 소비에서 제철 채소를 챙겨 먹는 개념 소비로 유행이 넘어갔다며 칭찬한다. 다른 이는 따라잡기 힘들 만큼 빠르게 싫증 내는 젊은 세대의 특성이 유행에 반영된 것이라고 해석한다. “나도 유행 음식 한 번 먹어보자”며 두쫀쿠를 사러 나섰던 이들이 봄동 비빔밥을 보고는 “다 아는 맛인데 이게 왜 유행이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요즘 유행’을 타자화하는 말속엔 유행을 좇는 젊은 세대에 대한 은근한 타박이 묻어 있다. 이런저런 해설도 시원치 않으면, 결국 그들을 찾아가 묻는다. “그래서 그게 왜 좋은데?” 유행은 이해와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체감의 영역이다. 일관성보다는 가벼운 변덕 자체가 놀이가 된다. 봄동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빠르게 바뀌는 유행은 ‘젠지세대’의 놀이문화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맞다, 틀리다, 수준이 높다, 낮다고 재단할 문제가 아니다. 요즘 유행을 대하는 가장 바람직하고 쉬운 방법은 하나다. 그냥 존중하며 느끼는 것.
[오션 뷰] 부산은 바다를 보여주고 있는가
얼마 전 호주 시드니에서 새롭게 문을 연 시드니 피시마켓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곳은 남반구 최대 규모의 수산시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연간 약 300만 명이 찾는 대표적인 해양 관광 공간이다. 동시에 하루 약 50톤에 이르는 수산물이 거래되는 활발한 산업 현장이기도 하다. 기존 건물 옆에 새로 건설된 새 시설은 단순한 시장 교체가 아니라 바다와 도시, 산업과 관광이 함께 작동하는 새로운 해양 공간에 가까웠다. 시장 건물은 바다와 바로 맞닿아 있고 시민과 관광객이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해안 산책로와 공공 공간이 함께 조성돼 있었다. 수산물 경매와 도매 유통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산업 현장이 관광과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바다에서 시작된 산업이 도시의 일상 속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이곳을 둘러보며 자연스럽게 부산의 어시장을 떠올렸다. 부산에는 자갈치시장과 공동어시장이 있다. 자갈치시장은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해산물 시장이고 공동어시장은 전국 최대 규모의 수산물 경매가 이루어지는 산업 공간이다. 그러나 두 공간은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진 채 분리된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자갈치시장은 관광 중심 시장이고 공동어시장은 철저히 산업 기능 중심의 시설이다. 두 시장은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지만 도시 경험 속에서는 거의 연결되지 않는다. 자갈치시장은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과 어민들이 바닷가에서 생선을 팔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시장으로서 해양문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자갈치시장은 과거의 풍경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2006년 현대화 사업을 통해 새 건물이 들어서면서 시장은 훨씬 정돈된 공간이 되었지만 동시에 바다와의 관계는 이전보다 멀어졌다. 원래 자갈치는 배가 들어오고 어민들이 바로 생선을 팔던 공간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시장은 도로와 건물 구조로 인해 바다와 물리적으로 분리된 형태가 되었다. 관광객이 보는 것은 어업의 현장이 아니라 해산물을 소비하는 공간에 가깝다. 바다가 있는 도시의 시장이지만 정작 바다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일본 도쿄의 사례는 또 다른 방식의 해법을 보여준다. 도쿄의 대표적인 어시장이었던 츠키지 시장은 산업 기능을 토요스 시장으로 이전했다. 대신 기존 츠키지 지역은 식문화와 관광 중심의 시장으로 남겼다. 토요스 시장에서는 여전히 참치 경매와 수산물 거래가 이루어지고 관광객은 관람 공간을 통해 이를 직접 볼 수 있다. 산업 기능을 보호하면서도 관광과 연결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산업과 관광이 분리되어 있지만 동시에 하나의 도시 경험 속에서 이어지는 방식이다. 부산은 최근 해양수산부 이전을 계기로 해양수도로서의 역할에 기대감이 더 높아지고 있다. 해양 정책의 중심 도시로서 부산의 역할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해양도시는 단순히 바다를 곁에 둔 도시를 의미하지 않는다.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산업과 삶이 도시 공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도시여야 한다. 시민과 관광객이 바다를 바라보고 그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을 직접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부산은 중요한 변화를 앞두고 있다. 공동어시장은 현대화 사업을 통해 새로운 시설로 건설될 예정이고 북항 재개발 역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 사업들이 각각의 시설 개선이나 도시 개발에만 머문다면 부산의 해양 공간은 여전히 단절된 채 남을 가능성이 크다. 자갈치와 공동어시장, 그리고 북항을 하나의 해양 도시 축 속에서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부산이 고민해야 할 것은 단순한 시장의 현대화가 아니라 바다를 보여주는 도시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수산물 경매와 유통 같은 실제 어업 활동을 시민과 관광객이 경험할 수 있는 산업 관광 프로그램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자갈치와 북항, 공동어시장을 하나의 해양 축으로 연결해 바다를 따라 걸으며 시장과 항만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도시 구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시장을 단순한 유통 공간이 아니라 해양 식문화와 교육, 관광이 함께 이루어지는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부산은 이미 훌륭한 바다를 가지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바다를 도시 속에서 드러내는 일이다. 바다에서 이루어지는 산업과 삶이 시민과 방문객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보이고 경험되는 도시, 그것이 진정한 해양도시의 모습일 것이다. 자갈치와 공동어시장, 그리고 북항은 부산의 바다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공간들이 서로 연결될 때 부산의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자산이 될 수 있다. 부산은 과연 바다를 보여주고 있는가. 해양수도 부산은 결국 바다의 산업과 삶이 함께 드러나는, ‘바다를 보여주는 도시’일 것이다.
예선 흥행에는 득 ! 본선 경쟁력엔 독? [국힘 부산시장 경선 관전 포인트]
[속보] 국민의힘, '尹 절연·계엄 사과' 결의문 발표…"장동혁 대표도 동의"
박형준 "보수의 배수진" vs 주진우 "젊고 강한 부산"
아파트 등기 환급금 8억 ‘꿀꺽’ 법무사 사무장 입건
천장 뚫린 유가, 금융시장 또 패닉
“점퍼 맞춰 입고 볼링 치는 게 의원 역량 강화?”
환골탈태? 이목 쏠리는 BNK 26일 주총
주말·공휴일 돌봄 공백 없앤다…부산교육청, 3월부터 1년간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