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재수의 TF 시정, 부산 변화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전재수 부산시장이 6일 취임 후 첫 확대간부회의에서 주요 현안에 대해 태스크포스(TF)팀 2~3개를 운영해 속도감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전 시장이 취임 1호 결재 사안인 ‘민생 100일 비상조치 계획’에 따라 부산 민생안심특별본부(TF)를 즉시 가동하고, 자신이 본부장을 맡아 진두지휘하기로 한 데 이은 행보다. 이른바 전재수표 ‘TF 시정’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6·3 지방선거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부산시장을 선택하며 변화를 주문한 시민들의 기대감에 기민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전 시장이 형식적인 취임식을 없애고, 전임 시장 라인까지 품는 인사를 하는 등 파격 행보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전 시장이 ‘TF 시정’으로 임기 초반을 풀어가기로 한 것은 실용적 접근으로 긍정적이다. 해양수도 완성, 경기침체 극복 등 부산 현안 상당수는 단기에 성과를 내기 어렵다. 여기에 정부의 ‘3대 메가 프로젝트’로 전국이 떠들썩하다. 이런 가운데 시가 다수의 TF를 가동하는 것은 선택과 집중으로 시정 속도감을 높이고 조기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부분을 챙길 수 있는 유용한 카드다. ‘시장 바뀌고 부산이 달라졌다’는 평가 역시 놓칠 순 없다. 여소야대 부산시의회 구도상 조직개편이나 조례 개정 등 절차를 차근차근 밟을 여유도 없다. 전 시장도 이날 시 조직개편과 관련, “9월까지 할지 연말까지 갈지 시기를 특정할 수 없다”고 했다. 당장 전 시장은 관광과 북항 재개발 등 두 분야를 TF 시정 대상으로 꼽았다. 관광은 성과가 수치로 뚜렷하게 확인되는 부문이다. 때마침 부산으로 외국인 관광객도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5월 기준 부산의 외국인 관광객 수가 193만여 명을 기록하며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0%가 증가했다. 관광 지출액은 전국 2위에 안착했다. 북항 재개발 관련 TF가 꾸려지면 전 시장의 대표 공약인 돔구장, 랜드마크 개발 등을 맡아 풀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두 사안 모두 시민 관심이 크고, 해양수산부, BPA, 부산시의회, 시민단체 등 다수 기관과의 협의와 조율이 필요하다. TF 체제로 사업 속도감을 높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전 시장은 TF 체제로 부산시 내부를 파악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얻는 부대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부산시 조직개편이나 인사가 다소 늦는 데 대해 “전 시장이 시 내부 사정이나 공무원 면면을 너무 모른다”는 얘기도 있다. 반면, 임기 초 임시 조직인 TF 체제에 대한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장기적으로 운영돼선 곤란하다. 각 TF가 가진 특유의 기동성과 효율성을 발판으로 빠르게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하고 시 정상 조직을 가동해야 한다. 특히 TF 체제가 부산시의회 견제를 피하려는 모양새로 흘러서도 안 된다. 부산 미래를 위해 부산시와 시의회 모두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은 협치의 끈이다.
[사설] 한화와 KAI 협력 시너지, 한국판 스페이스X 기대한다
한화그룹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2대 주주 지위를 획득하고 경영 참여를 선언하면서 경남을 거점으로 한 방산·우주항공산업이 전환점을 맞게 됐다. 한화는 연관 산업 시너지와 수출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국내 항공기 분야의 독점적 기업인 KAI 지분율을 9%대까지 끌어올렸다. 경남 사천에 본사를 둔 KAI와 창원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거제의 한화오션 등이 힘을 합칠 경우 발사체·위성·항공기·방산의 협력 체제가 완성된다. 특히 정부가 지난 3일 영남권 메가 프로젝트 사업으로 경남에 항공우주 클러스터 비전을 밝힌 직후여서, 경남은 물론 제조업 생태계를 공유하는 동남권 전체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우주항공 산업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상징 산업이 아니다. 발사체·위성·통신·정찰·기상·항법·방산·데이터 분야가 융합된 국가 전략 산업으로 부상했고, 세계 각국은 기술 경쟁을 넘어 자본·규모·공급망 경쟁에 돌입했다. 그동안 국내 우주항공 산업은 정부 예산 의존도가 높고 민간 주도 생태계가 약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이미 미국은 NASA(미 항공우주국) 중심 체제에서 스페이스X 등 민간 기업이 혁신을 주도하는 구조로 빠르게 이동했다. 정부가 모든 개발과 운영을 직접 떠안는 시대가 지났다는 점에서 한화의 KAI 경영 참여 선언은 산업 재편의 신호탄인 동시에 ‘한국판 스페이스X’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징후로 읽힌다. 한화-KAI 협력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동남권 산업 생태계에 미칠 파급력 때문이다. 메가 프로젝트가 안착할 경우 경남은 단순 생산 기지를 넘어 연구개발, 시험·인증, 부품 공급망, 인력 양성, 창업 생태계를 포괄하는 우주항공 클러스터로 도약할 수 있다. 경남이 한국판 스페이스X의 핵심 거점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부산의 항만·물류·금융, 울산의 첨단 제조·소재 역량이 진가를 발휘해야 한다. 개방형 클러스터로 독점 논란을 잠재우는 한편, 지역 기업·대학·연구기관 사이에 공급망 공유와 공동 연구개발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역 경제에 긍정적 효과가 누적되면 자연스럽게 동남권 우주항공 산업벨트 형성이 가시화될 것이다. 한화와 KAI 협력은 한국형 민관 우주산업 생태계가 창출되는 한편, 지역의 산업 재편과 일자리 창출까지 기대되는 드문 기회다. 정부는 시의적절한 정책적 개입으로 민간 투자의 불확실성을 낮춰야 한다. 민선 9기 행정은 영남권 메가 프로젝트가 초광역 협력의 시험대라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기왕의 동남권 경제동맹체 구상을 심화해 실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대기업 간 결합이라고 해서, 정부가 지원한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경남을 중심으로 한 동남권은 역내 제조 역량을 결집해 최대한의 시너지를 내야 한다. 대한민국 우주경제의 핵심 거점으로 도약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사설] PK 지역 피지컬 AI·우주항공 투자에 대한 기대와 우려
이재명 정부가 야심차게 발표해 온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의 전체 윤곽이 마침내 확정됐다. 지난 3일 이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가운데 열린 ‘영남권 첨단산업 발전 비전 국민보고회’에서 영남권 투자 계획이 구체화했기 때문이다. 이 보고회에서 삼성·SK·현대자동차·한화·LG·두산 등 주요 기업들은 영남권에 모두 312조 원 이상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이를 두고 앞서 발표한 호남권의 890여조 원이나 충청권의 390여조 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수도권에 집중 투자돼 온 재원이 지방으로 대거 물꼬를 트는 계기가 마련된 만큼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큰 것도 사실이다. 정부와 기업들이 보고회를 통해 밝힌 동남권의 미래는 ‘피지컬 AI’와 ‘우주항공’이라는 두 분야로 축약된다. 각론적으로는 휴머노이드 로봇, AI 데이터센터 등 AI 제조 혁신 거점 구축과 자율주행차, 우주발사체 개발 등이 울산과 경남을 거점으로 해 거론됐다. 구윤철 부총리는 여기에다 부산 지역이 강점을 보이는 차세대 전력 반도체까지 포함해 전략 특구를 구성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에 이번 투자 계획이 신산업에 대한 투자보다는 지역의 기존 산업 지원에 치중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발표를 환영하면서도 '호남권 전폭 투자를 위한 들러리로 이 지역을 세운 것이 아니냐'던 동남권 산업계 목소리의 연장선이다. 어떤 방향으로 해석을 한다고 해도 그동안 정부나 기업들의 투자가 수도권에 집중돼 오던 과거와는 양상이 달라졌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배경이 무엇이든 지역 균형발전을 향한 투자의 방향성을 놓고는 박수를 쳐야 마땅하다. 문제는 이번 프로젝트의 발표가 얼마나 실행력을 가질 수 있느냐다. 특히 비수도권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선언적으로 이뤄져 왔던 지역 이전이나 투자가 어떻게 왜곡되거나 무산됐는지를 너무나 자주 접해와서다. 경남 사천에 우주항공청을 개청하고도 연구개발 기능을 수도권 인접지로 분리하려던 게 불과 지난해의 일이다. 이 같은 박탈감들이 특정 지역 들러리론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동남권에서는 투자의 현실화를 위한 몸부림이 이어지는 중이다. 김상욱 울산시장이 울산 투자 계획을 밝힌 기업과 직접 접촉해 전력·인력·부지 확보를 위한 행정 지원과 속도전을 강조하고 나선 게 대표적이다. 경남과 부산의 광역단체장들도 조만간 기업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 구체적인 지원책 마련에 나설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와 기업이 내민 투자 카드는 기본적 얼개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 얼개의 구석구석을 얼마나 빨리, 얼마나 더 알차게 채울 수 있느냐는 결국 투자 주체와 대상의 공동 노력에 달렸다. 이제 시작된 동남권의 몸부림에 정부와 기업이 걸맞은 화답을 할 수 있어야만 들러리론을 잠재울 수 있다.
행복하시게, 견공
극한 환경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구조견의 역사는 17세기 스위스·이탈리아 국경의 대 세인트 버나드 수도원 경비견에서부터 본격화한다. 수도사들이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기른 덩치 큰 견공이 알프스에서 실종된 여행자를 찾는 과정에서 맹활약한 것이 구조견의 시초다. 18세기 중엽부터는 아예 2마리의 견공이 팀을 이뤄 여행자 구조에 나섰다. 견공들은 한 마리가 조난자 곁에 누워 체온을 지키고 다른 한 마리가 수도원으로 도움을 청하러 가는 방식으로도 훈련을 받았다.대 세인트 버나드 수도원에서 활약한 가장 유명한 구조견은 ‘바리’다. 1800년께부터 12년 동안 구조견으로 활약한 바리는 40명 이상의 생명을 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얼음 동굴에서 잠든 어린 소년을 발견해 얼굴을 핥고 몸을 밀착시켜 체온을 유지한 뒤 등에 업고 수도원까지 데려온 전설적 일화도 있다. 이 때문에 바리의 이름 앞에는 독일어로 ‘Menschenretter(인명 구조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1812년 은퇴한 바리는 스위스 베른 일반 가정에서 마지막 2년을 보낸 뒤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바리의 사체는 박제돼 베른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됐고 파리 근교 애견 묘지에는 기념비가 세워졌다.현대에 들어서는 산악지형에서의 조난보다는 테러와 지진 등 대형 사건사고 현장에서의 구조견 활약상이 두드러진다.2001년 9·11테러 당시 미국에서는 사고 발생 15분만에 현장에 도착한 구조견 ‘아폴로’가 화제를 모았다. 아폴로는 불길이 치솟고 먼지가 자욱한 잔해 속에서 생존자와 유해를 찾는 작업을 하루 18시간씩 이어갔다. 이듬해 아폴로는 동물계의 무공훈장 격인 ‘디킨 메달’을 받고 미국 구조견의 영웅으로 기록됐다.멕시코 해군 소속 ‘프리다’는 2010년 아이티 지진 현장에 투입돼 12명의 생존자를 찾아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구조견이다. 멕시코시티 학교 건물 붕괴 사고 잔해 수색 때 착용한 고글과 신발의 힙한 모습으로도 인기를 끌다 은퇴 후 입양됐다.부산에서도 7년 동안 280회가 넘도록 현장을 누빈 부산소방재난본부의 119구조견 ‘충성’이 지난주 은퇴식을 끝으로 현장을 떠났다. 활동 기간 중 무려 16명의 인명을 구조한 기록을 남긴 충성은 은퇴 이후 일반 가정에 입양돼 제2의 견생을 시작했다. 인명 구조를 위해 절제된 식단만 접하면서 반복되는 고된 훈련을 묵묵히 견뎌온 견공의 여생이 그 눈부신 활약에 걸맞게 행복하길 빈다.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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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친절은 강자의 덕목이다
〈초한지〉와 〈삼국지〉는 중국을 대표하는 양대 고전이다. 그러나 마니아라면 두 작품이 주는 울림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안다. 〈삼국지〉가 영웅호걸들이 펼치는 무용담을 담았다면 〈초한지〉는 사람을 얻고 사람을 잃는 처세를 담았다. 전란 속에서 인간군상이 선택하고, 배신하고, 인내하고, 결단하는 생존의 기록인 셈이다. 〈초한지〉에서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은 단연 한고조 유방과 서초패왕 항우다. ‘힘으로 산을 뽑고, 기운이 세상을 덮었다’는 천하의 명장이 바로 항우다. 항우는 유방과 7번을 싸워 7번을 내리 이겼다. 그때마다 유방은 질그릇처럼 깨지며 도망치기를 바빴다. 달아나는 수레의 무게를 줄이려 자식마저 내던졌다는 기록도 남아 있으니 그 궁색함이야 오죽했을까. 누가 봐도 천하의 주인은 항우였다. 그러나 항우를 무너뜨린 것은 유방의 칼도 아니고 하늘의 뜻도 아니었다. 결국 사람이었다. 항우는 충신 범증의 조언을 고깝게 여기고, 피붙이가 아닌 장수를 믿지 않았다. 공을 세운 신하에게 봉지 내려주기를 아까워 해 ‘도장 모서리가 닳도록 만지작 거렸다’고 했다. 뛰어난 신하는 하나둘 곁을 떠난 것은 당연지사. ‘한삼걸’ 중 하나인 한신도 벼슬은 항우 밑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유방의 품에 안겼다. 유방의 사람 씀씀이가 그사이 빛을 발했다. 전쟁은 한신을 믿었고, 행정은 소하에게 일임했으며, 외교는 장량에게 의지했다.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공은 함께 나누고, 사람은 끝까지 붙잡았다. 유방이 일곱 번을 내리 지고도 결국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다. 최근 전재수 부산시장이 꺼낸 ‘친절’이란 화두가 관가에서 화제다. 전 시장은 자리마다 “친절한 직원을 추천해 달라” “친절은 여유에서 나오고, 유능함에서 나온다”며 거듭 친절을 강조하고 있다. 오거돈 전 시장은 2018년까지 무소속 신분을 유지하다 부산시장 선거 전 민주당에 입당했다. 따지고 보면 사실상 부산의 첫 민주당 시장은 전 시장이다. 그랬던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단어는 ‘파격’이나 ‘쇄신’ ‘구습 타파’가 아니었다. 뜻밖의 ‘친절’이었다. 공무원 조직의 경계심을 달래고 오 전 시장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영리한 처신이라는 반응이 부산시 안팎에서 나온다. 물론 초나라 귀족 출신 항우도 아픈 부하를 만나면 눈물을 흘릴 만큼 정이 깊었다고 한다. 개인에게는 크나큰 장점일 수 있지만, 조직을 이끄는 리더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성정이다. 조직 전체를 책임지는 리더에게 친절함이란 다른 문제다. 사람 하나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조직 전체를 살리는 판단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사람의 정과 공적인 결단은 자주 충돌한다. 새 시정이 출범하는 과정에서 전임 시장의 주요 공약을 전담했던 부서의 개편은 불가피하다. 주요 부서장의 교체 역시 어쩔 수 없는 인사의 과정이다. 그러나 전 시장은 지난 3일 첫 고위 간부 인사에서 박형준 전 시장의 비서실장을 파격적으로 승진자 명단에 넣었다. 당사자의 평판과 능력을 감안한 조처라고 했다. 적지 않은 상징성을 갖는 인선이다. 전 시장이 강조한 친절함이 필부의 친절함뿐 아니라 리더의 친절함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장이 바뀌면 사람부터 갈아치우는 게 일상화된 관가의 풍경이다. 내 편과 네 편을 가르고, 전임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공식처럼 여겨졌다. 그러니 출신과 과거를 따지지 않고 사람을 두루 품고 일하겠다는 메시지는 강자의 친절함이라 할만하다. 특히나 민선 9기로 넘어오며 부산시는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앞두고 있다. 개편의 강도나 방향을 놓고 조직 내 술렁임이 상당하다. 첫 인사에서 보인 그 친절한 리더십이 이 술렁임을 잠재우고 보다 안정감 있게 시정을 끌어갈 원동력이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고전이 고전으로 남는 이유는 시대가 달라져도 그 울림이 계속되는 까닭이다. 20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인간과 조직의 본질이 변하지 않았다. 사람을 얻고 마음을 얻는 자가 성공한다는 진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항우의 실패도, 유방의 성공도 결국 사람에게서 비롯됐다. 민선 9기의 성패가 전 시장이 강조한 친절에 달린 이유도 여기 있다. 친절이 구호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 시장의 태도가 되고 인사의 원칙이 돼야 한다. 친절함이 부산시의 운영 철학이 된다면, 그래서 그 첫 마음가짐이 내내 이어진다면 그건 속된 이미지 관리가 아니다. 사람을 얻는 시정이다. 권상국 사회부 부장 ksk@busan.com
[노트북 단상] '시장 부탁도 거절하라'는 주문
“제가 하고 싶은 일이라도, 틀렸으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 울산시 싱크탱크인 울산연구원의 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김상욱 울산시장이 꺼낸 이 한마디는 여러 발언 가운데 가장 도드라졌다. 원론적 발언이지만 맥락을 짚어보면 뼈가 있다. 울산연구원은 그간 부울경 메가시티 같은 현안을 놓고 단체장 입맛에 맞춰 용역 결과를 내놓으며 시정의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눈총을 받았다. 원장 스스로 “박사 위에 주사(6급 공무원의 옛 호칭) 있다”며 자조할 만큼 공무원 눈치를 보는 연구기관에 단체장이 먼저 독립성을 약속한 것이다. “저를 포함해 누가 특정인을 채용해 달라고 부탁하더라도 무시하십시오.” 상시 채용 탓에 잡음이 잦았던 울산시설공단 보고에서도 비슷한 주문이 이어졌다. 산하·출연기관 채용 의혹이 수사로 이어진 전례가 숱하고, 온정주의로 포장된 청탁은 관가의 고질병이었다.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는 채용 공고를 봐도 ‘어차피 내정자가 있을 것’이라는 냉소가 적지 않았다. 인사권의 정점에 선 단체장이 공개 석상에서 먼저 선을 그은 셈이다. 2028 국제정원박람회 추진단을 향한 쓴소리도 같은 결이다. “이 박람회의 핵심이 무엇인지 시민에게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00억 원대 예산이 투입되지만, 정작 상당수 시민은 행사의 실체를 체감하지 못한다. 옛 쓰레기매립장인 박람회장 예정지를 찾은 김 시장이 “꽃을 아무리 심어도 악취가 나면 망신”이라고 꼬집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지 못하는 것은 기획이 그만큼 설익었다는 방증이다. 이 세 발언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앞선 두 발언이 권력 절제라는 ‘원칙’이라면, 마지막은 행정의 본질을 묻는 ‘실용’이다. 물론 취임 초 공정과 소신을 앞세우지 않은 시정은 여태 없었다. 결국 차이는 실천에서 갈린다. 울산연구원이 시장 뜻과 어긋난 결론을 내놓았을 때 그것을 감내하는지, 선거 직후 밀려들 논공행상의 압력 앞에서 다짐을 지키는지, '한 문장 요약'의 잣대를 재검토에 착수한 공연장·트램 사업에도 예외 없이 들이대는지가 그 시금석이다. 시민은 화려한 말보다 반복되는 행동을 기억한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 시장에게 전체 22석 중 15석을 국민의힘이 차지한 울산시의회와의 협치는 피할 수 없는 험난한 과제다. 야당 시의원 상당수의 취임식 불참은 앞으로 펼쳐질 가시밭길의 예고편에 불과하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유연한 협치의 기술이 절실한 시점이다. 공직사회 역시 시장의 표정이 아니라 원칙에 공감해 스스로 움직이도록 이끌어야 한다. 말로는 소신을 강조한 채 공약과 결이 다른 보고에 불쾌감부터 드러낸다면, 주변은 금세 ‘예스맨’으로 채워지고 시정의 사각지대는 더욱 커질 것이다. 민선 9기 김상욱호의 성패는 거창한 비전에 있지 않다. 쓴소리에 귀를 열고, 내 사람을 심지 않으며, 시민이 단번에 고개를 끄덕일 정책의 본질을 내놓는 것. 김 시장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시민 주권’의 실체도 결국 거기에서 드러날 것이다.
[2030 칼럼] 축제, 환대의 자리
어느 때보다 선선했던 6월이 지나고 여름이 온다. 여름은 축제의 계절이다. 축제(祝祭, festival)는 축하와 제사를 아우르는 말이다. 개인이나 집단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일과 시간을 기념하는 의식이다. 삶에는 크고 작은 축제들이 있어 함께 축하하고 때로는 슬퍼할 기회를 준다. 인생에 그런 축제가 있다는 것은 개인과 사회를 끈끈하게 붙들어 매는 일이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축제는 부산국제영화제이다. 지금은 영화의전당을 중심으로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남포동과 해운대를 오가며 다양한 영화와 영화인의 이야기를 만났다.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그 뒤로도 여러 축제를 만났지만, 마음에 오래 남는 축제의 자리는 몇 안 된다. 크고 작은 축제들이 개인과 사회 연결 경계 허물고 연대 희망 주면 오래 남아 축제 단순 여흥 아닌 삶에 필요한 것 가벼움만 남고 환대 없는 축제 적잖아 부산 여름 축제 환대의 내력 되살려 도시를 사랑하고 이어 가는 힘 돼야 몇 해째 참가하는 ‘훌라당 댄스 페스티벌’이 있다. 하와이 전통 춤 훌라를 가르치는 커뮤니티가 여는 축제다. 작은 모임으로 시작해 지금은 수백 명이 모이는 자리가 되었다. 이 축제의 바탕은 알로하(Aloha) 정신이다. 알로하는 사랑과 평화의 가치를 담고 있는 하와이의 인사말이다. 그래서인지 서툴고 어리숙한 몸짓도 있는 그대로 포용한다. 어떤 모습이든 받아지리라는 믿음이 있어서 곁의 사람들과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느낀다. 낯선 이들과 눈빛과 몸짓을 나누다 보면 편안함까지도 느껴진다. 다른 하나는 뜻밖의 자리에서 왔다. 재작년 여의도 일대에서 열린 탄핵 집회다. 이름도 모르는 이들과 나란히 서서 같은 구호를 외치던 그 밤을 나는 일종의 축제로 기억한다. 그 겨울 광장에는 슬픔과 분노만 있지 않았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함께 그려 보는 묘한 활기가 흘렀다. 그 축제 같은 집회의 동력은 개인과 사회에 어떤 힘을 넘겨주어 우리 사회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 밤의 결속은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세 축제가 나에게 남긴 것을 환대라고 부르고 싶다. 환대(hospitality)와 적대(hostility)는 뿌리가 같다. 둘 다 낯선 이를 가리키는 옛말에서 갈라져 나왔다. 낯선 사람을 손님으로 맞아들일 것인가, 위협으로 밀어낼 것인가. 축제란 그 갈림길에서 환대를 택하는 자리다. 훌라에 흐르는 알로하의 정신이 그러하듯, 좋은 축제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너와 나 사이의 벽을 낮춘다. 그렇게 축제는 사람을 사람에게, 나와 사회를 잇는 오래된 방식이 된다. 축제는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여흥은 아니다. 가볍기보다 무거운 것, 삶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빈곤한 시대에도 사람들이 축제를 멈추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 무게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자리가 죽음의 자리다. 옛사람들은 장례조차 잔치로 감쌌다. 떠나는 이의 곁에서 산 사람들의 웃음과 음식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것은 누군가 세상을 등지는 동안에도 세상의 소리는 멈추지 않고 남은 이들이 서로의 곁을 지킨다는 신호와 같았다. 축제는 혼자 삼키는 침묵이 아닌 기쁨과 슬픔까지 함께 끌어안아 견딜 만한 것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만나는 축제는 그 무게를 자주 잃는다. 잠시 체험하고 발을 담갔다가 빼는 소비의 자리, 재미있는 경험 하나와 사진 한 장을 얻어 돌아가는 자리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가벼움만 남고 의미와 환대가 빠질 때 축제는 시든다. 그래서 어설프게 차려진 지역 축제 앞에서 느끼는 실망은 한 개인의 투정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축제가 본래 우리를 서로에게 이어 주던 자리인 만큼, 그 자리가 헐거워질 때 아쉬움은 지역 공동체와 사회의 몫이 된다. 여름을 기점으로 부산에도 여러 축제가 열린다. 8월 해운대와 광안리 해변의 바다축제, 가을 삼락생태공원의 록 페스티벌, 10월 전 세계 영화인이 모여드는 부산국제영화제까지. 화려한 볼거리로 사람을 불러 모으는 축제도 반갑지만, 나는 그 축제들이 조금 더 환대의 자리이기를, 그 가치를 잘 보존하기를 바란다. 잘 차려진 환대는 그 자체로 가장 오래가는 관광자원이기 때문이다. 환대받은 사람은 그 도시를 마음에 담아 간다. 부산은 오래 사람을 맞아들이던 도시다. 피란의 시절 낯선 이들을 품었고, 항구를 통해 사람과 물건을 오가게 했다. 그 환대의 내력이 올여름 축제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면 어떨까. 함께 울고 웃으며 경계를 허문 기억은 몸에 남아, 이 도시를 사랑하고, 이어 가고 싶게 만드는 힘이 된다. 이번 여름 부산의 축제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까. 스쳐 가는 눈요기와 사진 몇 장일까, 아니면 낯선 이의 어깨에 스스럼없이 손을 얹게 하고 이 도시를 오래 아끼게 만드는 환대일까.
[편집국에서] 일류 기업과 삼류 정치
“우리나라 기업은 이류, 행정은 삼류인데, 정치는 사류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5년 4월 국내 언론사 베이징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발언이 요즘 세간에 자주 오르내린다. 기업은 제 몫을 다해 주고 있는데 반해 우리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수준이하라는 얘기다. 반도체에선 인공지능(AI) 바람과 함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분기별로 수십조 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글로벌 메모리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고, 방산과 조선, 배터리, 초고압 변압기, 정유화학 등의 제조 분야에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특정 분야에 강점이 있는 선진국들과 달리 한국은 첨단 기술로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외국 경제학자들은 ‘저렇게 작은 나라에서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주요 제조 분야를 경쟁력 있게 유지하고 있을 수 있는 나라가 있을까’하며 감탄하고 있다. 이 같은 제조기업들의 활약 덕분에 최근 코스피 지수도 9000을 넘나들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올해 초만 해도 한국 경제는 ‘1%대 저성장’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글로벌 투자은행과 경제연구기관들은 한국의 3~4% 성장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정부·여당은 최근 경제성장과 주가 상승은 자기들이 정치를 잘 한 덕분이라며 자화자찬하기 바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AI 바람을 타고 관련 종목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수요가 폭발한 탓”이라며 정부·여당과 다른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오히려 여론 수렴 없이 이뤄지는 정책 발표와 실패로 인해 국민들의 실망만 늘어가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게 부동산 정책이다. 다주택자 압박에 수도권 위주로 전세난, 월세 상승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당 지지도가 높았던 20~40대는 마음을 바꾸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2년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시절 “국정 운영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과학적 근거에 의한 판단과 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기업을 규제하는 법안을 마련하면서 야당이나 경제주체 등 이해당사자와의 협의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노조에게 파업 책임을 묻지 못하는 ‘노란봉투법’까지 도입하면서 기업인들사이에선 “못해먹겠다”는 얘기가 절로 나온다. 최근 1000조 원 이상이 드는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사업을 놓고도 후보지도 없이 ‘호남’이라는 특정 지역을 막무가내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영남은 왜 안되냐”고 질문하면 대통령은 “그동안 영남은 한 게 뭐 있냐”는 식으로 답한다. 국책사업도 아니고 기업이 자율적으로 정해야 하는 대규모 투자 사업에 현 정부가 나서서 추진하는 모양새도 좋지 않다. ‘외압이 아니냐’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번 결정에 앞서 청와대와 여당은 수개월 전부터 반도체 기업 초과 이익의 사회환원을 언급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압박했다. 정부·여당 인사들은 공산당식으로 “나눠 갖자”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외압이라는 지적에 여당 측 인사들은 “삼성이 어떤 기업인데 우리가 하라한다고 하겠냐”는 식의 대응논리를 펴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재명 대통령 임기 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을 마치겠다”고 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의 경우 부지 선정과 검토에 보통 5~7년이 걸린다. 현재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는 군공항 부지는 부지 특성상 시간이 더 많이 걸릴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또 올초만해도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추진 얘기가 없다가 2개월전에야 급부상했고, 지난달 29일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주내용인 ‘메가 프로젝트’ 발표가 이뤄졌다. 이 대통령은 메가 프로젝트를 두고 “제가 지금까지 해낸 일 가운데 가장 큰 국민적·역사적 성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야권은 곧바로 ‘직권남용’이라며 반발했고, 이 대통령은 ‘언제까지나 행정지도’라고 눙쳤다. 그간 역대 대통령중에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다가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사태가 그랬다. 이번 사안도 그에 못지 않게 ‘위험한 일’로 여겨진다. 참여연대 출신의 김경률 회계사는 한 유튜브에 출연해 “삼성전자의 최근 수년간 사업보고서 어디에도 호남 반도체 투자에 대한 얘기가 없다. 대규모 투자는 이사회를 거쳐야 하는 사안인데 과연 통과할 수 있을까”하며 의문을 제기했다. 삼성의 모 반도체 임원은 “이번 호남 반도체 투자는 자발적 투자가 아니다”고 했다. 삼류 정치가 계속되면 일류 기업도 결국 이류 기업이 된다. 아직도 정치가 기업 발목을 잡는 나라,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양보원의 유행 너머] 콰자작!
“콰자작!” 손안에서 왁스가 부서진다. 왁스를 깨뜨리면 알록달록한 비즈나 점토가 쏟아지고, 손으로 조물조물 주무르는 소리까지 더해진다. 별것 아닌 영상인데 이상하게 끝까지 보게 된다. 5000원 안팎의 작은 장난감이 올여름 가장 뜨거운 소비가 됐다. ‘왁뿌볼’은 왁스로 만든 공을 깨뜨리는 장난감이다. ‘말랑이’는 말 그대로 손으로 계속 주무르고 싶은 폭신한 촉감의 제품이다. ‘슬랑이’는 슬라임+말랑이로, 비즈를 넣은 슬라임을 고무로 감싸 완성한다. 모두 소리와 손끝으로 느껴지는 촉감이 매력 요소다. 30초짜리 왁뿌볼 영상을 보고, 퇴근길 문구점에서 말랑이 하나를 사고, 손으로 몇 번 주무르며 기분을 푼다. 커피 한 잔보다 저렴한 돈으로 잠깐의 재미를 살 수 있다. 마음에 쏙 드는 말랑이를 찾아 문구 시장을 방문하는 ‘말랑이 사냥’도 유행이다. 신상품이 많이 들어오는 시장은 어느새 새로운 핫플이 됐다. 서울에선 동묘 창신동 완구 거리로, 부산에선 국제시장의 문구사로 사냥을 떠난다. 비슷한 흐름은 해외에서도 나타난다. 영미권에서는 최근 스트레스 해소용 장난감인 ‘피젯 토이’ 열풍이 거세다. 손으로 반복해 만지고 누르며 긴장을 푸는 장난감으로, 성인 소비자들까지 가세하며 품절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 완구 브랜드 ‘니도’의 말랑이는 블랙핑크 로제가 애용하는 모습이 알려진 뒤 오픈런과 품귀 현상을 빚었고, 일부 제품은 중고 거래 가격이 정가의 수십 배까지 뛰었다. 랜덤 색상의 만두 모양 말랑이를 뽑는 ‘랜덤 만두 스퀴시’는 틱톡에서 수천만 회 조회수를 기록하며 ‘니도 헌팅’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 비싼 취미보다 손안에 쉽게 잡히는 촉감과 소리, 짧지만 확실한 만족을 소비하는 문화가 국경을 넘어 확산하고 있다. 랜덤 뽑기나 가챠 등 안에 든 내용물보다 열어보는 순간의 설렘과 짧은 행복을 소비하는 문화도 일상이 됐다. 오래 쓰는 제품이 아닌 순간 기분을 전환해 주는 작은 자극에 투자를 망설이지 않는 게 요즘 소비 공식이다. 유행은 늘 시대를 닮는다. 거창한 취미를 시작하기에는 시간도 돈도 부족하다. 여행 한 번 가려면 수십만 원이 들고, 공연 티켓도 만만치 않다. 치솟는 물가에 작은 소비조차 계산하게 되는 시대다. 하지만 얇아진 지갑, 바쁜 하루, 길어진 불황 속에서도 우리는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행복의 물리적 크기가 조금 작아졌을 뿐이다. “몇 분만이라도 내 감각에만 온전히 집중하며 아무 생각 없이 편하고 싶다.” 복잡한 세상 속 젊은 세대가 소비하는 작고 확실한 즐거움 뒤에 숨은 이면이다.
[오션 뷰] 디지털 노마드가 꿈꾸는 부산
7월의 부산 바다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겁고 역동적인 곳이다. 끝없이 펼쳐진 파라솔 행렬과 해변을 가득 메운 인파는 해양도시 부산의 살아있는 활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여름 풍경이다. 해운대와 광안리, 송정을 찾은 수많은 관광객들로 도시는 활기를 띠고, 지역의 골목 상권도 모처럼 따뜻한 특수를 누린다. 하지만 필자가 최근 업무차 방문했던 인도네시아 발리의 해변에서는 조금 다른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짱구(Canggu)와 울루와투(Uluwatu)의 해변 카페 곳곳에는 서핑보드 옆에 노트북을 펼쳐 놓고 일에 몰두하는 젊은이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단순히 파도를 즐기러 온 일회성 여행자가 아니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개발자, 디자이너, 기획자, 콘텐츠 크리에이터 등 이른바 ‘디지털 노마드’들이었다. 오전에는 바다에서 파도를 타며 삶의 에너지를 얻고, 오후에는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카페에서 화상회의를 하거나 각자의 업무를 이어간다. 저녁에는 코워킹 스페이스나 커뮤니티 행사에 참여해 새로운 동료를 만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논의한다. 발리가 전 세계 젊은 인재들의 성지가 된 이유는 단순히 좋은 파도 때문만이 아니다. 파도 바로 옆에서 일할 수 있는 인프라 환경과 글로벌 커뮤니티가 결합된 ‘일하는 해변’(Workable Beach)이라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성공적으로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7월의 부산 해수욕장을 바라보며 우리는 한 가지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매년 부산을 찾는 수백만 명의 방문객 가운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산을 ‘다시 오고 싶은 도시’, 더 나아가 ‘정착해서 살고 싶은 도시’로 기억할까. 지금까지 부산의 여름 경제는 파라솔 대여나 숙박, 음식 소비와 같은 단기 관광 수익을 올리는 일에 지나치게 집중해 왔다. 물론 이러한 직관적인 관광 소비도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광객은 며칠 머물다 떠나며, 여름 성수기가 지나면 해변 상권의 활력은 급격히 떨어진다.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의 시대를 맞아 이제는 바다를 대하는 관점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관광객, 즉 떠나는 사람을 관계인구, 즉 머무는 사람으로 전환하는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핵심은 부산의 바다가 관광객들이 잠시 찾는 단순한 관광지에 머무는 것을 넘어서 그들의 창의적인 ‘오피스’가 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실제로 송정과 광안리 일대에서는 서핑과 원격근무를 유기적으로 병행하는 청년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아직 전체적인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는 부산이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임에 분명하다. 부산은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망과 대도시의 편리한 생활 인프라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동시에 도심에서 불과 10~20분 차로 이동하면 서핑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해변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이상적인 조건을 동시에 갖춘 도시는 세계적으로도 대단히 드물다. 여기에 부산이 가진 국제항만도시의 정체성과 풍부한 문화 콘텐츠, 우수한 의료·교통 인프라까지 함께 고려한다면 글로벌 경쟁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바다를 활용하는 새로운 행정적 상상력이다. 멋진 워케이션 센터 건물을 보여주기식으로 하나 더 짓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해변 전체를 일하고 자유롭게 교류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다. 해변 카페가 공유 오피스가 되고, 서핑숍과 마리나가 글로벌 네트워크의 거점이 되며, 장기 체류자들이 지역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튼튼한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행정의 유연함이 필요하다. 해안가 카페들을 업무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과감한 규제 완화와 해외 청년들이 마음껏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해변 공공 와이파이 확대, 특구 지정, 멤버십 도입과 같은 창의적인 정책을 적극 발굴하고, 검토할 시점이다. 더 나아가 영어 기반 행정 서비스와 글로벌 국제 창업 커뮤니티 지원, 다양한 장기 체류 프로그램 등도 서둘러 마련해 세계의 젊은 인재들이 부산으로 찾아와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서핑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필자가 꿈꾸는 부산의 여름은 더 이상 파라솔 개수로 경쟁하는 정적인 도시가 아니다. 송정에서 파도를 탄 청년이 광안리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영도의 바다를 바라보며 세계의 젊은 인재들이 해양환경 문제를 치열하게 토론하는 도시다. 바다가 청년들의 꿈과 도전을 실현하는 플랫폼이 될 때 부산은 인구 감소의 위기를 넘어 ‘늙지 않는 해양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파도를 기다리는 도시를 넘어, 파도 위에서 미래를 설계하는 도시. 부산의 다음 여름은 그곳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위험천만 스쿨존] 미끄럼 방지 포장, 2년 지나니 브레이크 밟아도 '쭉~'
부산시, 관광·북항돔구장 전담 TF 띄운다
부산 외국인 관광객 올해 벌써 200만 명
경상도서 ‘무섭노’ 일상 언어인데… 정치권 가세한 혐오 논란
[위험천만 스쿨존] 멀쩡한 외형에 깜깜이 점검, 사고 키우는 ‘미끄럼 방지 포장’
정통망법 시행 앞두고 ‘표현의 자유’ 위축 우려 확산…野 “입틀막법” 반발
[10대 부산시의회 공식 출범] 강무길 전반기 의장에 선출… 민주당도 대부분 ‘찬성표’
김석준 "단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공교육 실현하겠다"
'통합돌봄' 시민 10명 중 9명 '이용하겠다'… 전담 인력·전문성은 과제
넥센그룹 강병중 회장 "사람 중시 한국형 기업가정신, AI 시대 지속가능 성장 기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