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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처럼 다채로운 부산의 7가지 맛
숫자 7은 ‘행운의 숫자(Lucky Seven)’로 불린다. 무지개 색깔도 7가지, 방탄소년단(BTS) 멤버도 모두 7명이다. 부산은 공교롭게도 ‘세븐브릿지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BTS 공연이 다가오며 부산에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식 도시’ 부산에 오면 꼭 먹어야 하는, 부산이 만든 대표 음식 7개를 골라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요즘 부산 대표 음식에는 첫 번째로 돼지국밥이 꼽힌다. 사실 돼지국밥은 부산에서는 한두 달에 한 번은 학교급식 식단에 꼭 포함될 정도로 대중적인 음식이다. 예전에는 돼지국밥에서 특유의 돼지 누린내가 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신생 돼지국밥집은 메뉴를 보지 않으면 카페나 고급 레스토랑으로 착각할 정도로 깔끔하다. 피란 시절 음식이었던 돼지국밥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쉐린 가이드>에도 속속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진화한 돼지국밥집은 비좁은 국내 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중국·베트남·싱가포르 등 해외로도 진출하고 있다.
두 번째가 밀면이다. 예전에 밀면 장사는 여름 한 철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원한 밀면 한 그릇 하면 머리가 쨍하고 맑아지면서, 더위는 빙산이 녹듯이 녹아내리기 때문이다. 여름으로 접어드는 계절에 ‘밀면 천국’ 부산에서 밀면 한 그릇 안 먹고 가면 섭섭하다. 밀면은 한국전쟁 당시 이북 출신 피란민들이 고향에서 먹던 냉면을 생각하며 처음 만들었다. 당시 구하기 힘들었던 메밀 대신 원조 물자로 들어온 밀가루로 면을 뽑아 실향의 아픔을 달래며 먹었던 음식이다. 육수에서 한약재 맛이 나는 밀면집들도 있으니 취향껏 골라 가면 되겠다.
세 번째는 복국이다. 복어! 소동파는 죽음과도 바꿀만한 맛이라고 했다. 전통의 부산 복요리에 최근 CNN방송까지 주목했다. 부산 복요리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지만, 일본과는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 부산의 복국은 뚝배기에 팔팔 끓여 내놓는다. 콩나물, 미나리, 마늘을 듬뿍 넣어 국물이 훨씬 시원하고 개운한 해장국 방식으로 진화했다. 부산 복국의 이야기를 더 감칠맛 나게 만드는 MSG가 있다. 바로 부산 남구 대연동 지하방에 모여 “우리가 남이가”를 외쳤던 ‘초원복국’ 사건이다.
네 번째는 생선회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생선회를 가장 대중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바다 냄새를 맡으며 생선회를 먹으면 훨씬 맛있다. 부산 사람들은 횟집에서도 ‘쓰키다시(부요리)’가 한상 좌악 깔리는 푸짐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시장 상인과 직접 흥정해서 마음에 드는 활어를 산 뒤 횟감을 별도로 횟집에 맡기는 ‘초장집’도 부산에서 시작됐다. 초장집에서는 대개 일반 횟집보다 저렴하게, 취향에 맞는 어종의 생선회를 즐길 수 있다.
다섯 번째는 구포국수다. 구포시장은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이고, 구포국수는 우리나라에서 지명 자체로 유명 브랜드가 된 최초의 사례다. 구포국수의 명성은 습기를 머금은 낙동강의 바람에서 나왔다고들 한다. 면발을 널어 말리는 과정에서 바다와 낙동강에서 불어오는 염분을 함유한 습기 많은 바람이 배어들어 짭짤한 맛이 더해졌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전통을 이어가는 금정구 남산동 ‘구포촌국수’나 구포시장의 ‘이원화 구포국시’에서 오리지널의 맛을 느껴 보시라.
여섯 번째는 부산어묵이다. 부산에는 확실히 포장마차와 오뎅바가 많다. 부산어묵이 시작된 부평시장 어묵특화거리를 찾아 다양한 부산어묵 가게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포장마차나 오뎅바를 찾았다면, 부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물떡이 필수다. 해운대해수욕장 입구 고래사 매장에 내걸린 거대한 꼬치어묵 조형물은 부산이 어묵의 도시라는 사실을 웅변하고 있다. 어묵크로켓 열풍을 일으킨 삼진어묵은 어묵 업체 최초로 코스닥 상장을 했다. 돌아갈 때 챙겨갈 선물로도 부산어묵을 추천한다.
일곱 번째는 길거리음식이다. 이제는 다소 흔해졌지만 씨앗호떡의 고향은 남포동 거리이다. 평범한 호떡 사이에서 영양가와 식감을 높이기 위해 해바라기씨, 호박씨, 땅콩 등 다양한 견과류를 넣은 게 신의 한 수였다. 남포동 거리에서 다 구워진 호떡의 옆구리를 가위로 갈라 그 안에 볶은 견과류를 듬뿍 채워 넣는 모습을 지켜보시라. 어쩌면 씨앗호떡은 팍팍한 삶 속에서도 무언가 소중한 희망을 채워 넣으려는 소시민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부평시장에 가면 유부 보따리의 원조 ‘깡통골목할매 유부전골’도 만날 수 있다. 유부 보따리 속에는 각종 재료가 참 많이도 들어 선물 꾸러미 같다. 당면, 각종 채소, 버섯, 고기를 양념과 함께 넣어 유부 속을 만들고 미나리로 한 번 묶었다. 유부 보따리를 터트려 속 재료를 국물과 함께 뜨고 간장에 절인 파 하나 올려서 먹는 게 정석이다. 줄여서 ‘비당’이라고 부르는 비빔당면도 빠지면 섭섭하다. 비빔당면은 부평시장 ‘원조비빔당면’에서 처음 시작했다고 알려진다. 당면은 곧 잡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비빔당면은 국수도, 잡채도 아닌 처음 경험해 보는 맛을 선사한다. 부산의 맛은 무지개나 BTS처럼 다채롭다.
2026-06-08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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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메뉴 2500원 전국 최저가 쫄면 맛집 ‘선화당’
쫄면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갑자기 쫄면이 당겼다. 학창 시절 이후 수십 년 만에 쫄면을 찾아 나섰다가 부산 동구 초량에 있는 분식집 ‘선화당’을 알게 됐다. 쫄면, 쫄우동, 우동, 비빔우동, 라면, 떡볶이, 찐만두, 국수, 비빔국수, 수제비 같은 분식을 판다. 선화당에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첫 번째 이유는 가격이다. 놀라지 마시라! 모든 메뉴가 2500원으로 가격이 동일하다. 아메리카노 한 잔 값도 안 된다. 어쩌면 편의점 음식보다 저렴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격이 착한 식당이다. 쫄우동이 가장 인기 있고, 쫄면도 잘나간다. 양이 많지 않으니 둘 다 시켜 먹는 방법도 괜찮겠다. 미안하게도 쫄우동의 국물까지도 너무 괜찮다. 그전에는 모두 2000원 하다 2023년부터 500원이 오른 가격이라니….
선화당에 가봐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사람이다. 올해 86세의 이선기 대표와 80세의 배말순 씨 노부부 두 명이서 운영한다. 1988년부터 이 자리에서 38년, 초량 육거리 2파출소 부근에서 임대로 시작한 1966년부터 치자면 60년 분식 외길 인생이다. 세상에서 가장 착한 이 가격은 자가 건물에 별도 인건비도 나가지 않아서 겨우 가능한 모양이다. 90을 바라보는 이 대표는 지금도 오토바이를 타고 자갈치 시장에 가서 장을 본다. 카드나 계좌이체는 안 받는다. 한 명씩 이체받으려니 복잡하고, 고약한 녀석들에게 떼이기도 했다.
이 대표는 “올해나 버틸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올 만큼 왔는가 지난 1월부터는 손님이 팍 줄고, 안 온다. 우리도 이제 올해가 마지막이 아닌가 싶다”라고 말한다. ‘돈쭐’은 이런 집에 어울리는 말 같다. 문화재 같은 식당, 노부부 사장님의 만수무강을 빈다. 1970년부터 만들었다는 팥크림도 놓치면 엄청 후회할 맛이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2026-03-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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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년 전통' 부산 노포가 매년 간판 바꾸는 이유는?
지난 2일 오전 서면 ‘급행장’ 분위기는 여느 때와는 달라 보였다.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한우 전문점 급행장의 연례 신년 행사인 이른바 ‘간판 교체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올해로 70세가 된 손재권 대표가 이날 직접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급행장 간판에 ‘76년 전통 한우전문점’이라는 문구를 새로 붙었다. 요즘 전통을 내세우는 가게가 한둘이 아니지만, 급행장처럼 매년 간판 교체식까지 하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급행장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2대째인 손 대표가 가게를 물려받고 몇 년간은 ‘40년 전통’이 간판에 그대로 붙어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 친구분이 찾아와 “올해가 47년째인데 왜 40년 전통이고? 다른 집은 없는 전통도 만드는 데, 니는 있는 전통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느냐”라고 호통을 쳤다. 대오각성하고 그때부터 매년 새해에 간판을 바꾸기 시작했다. 47, 48, 49…76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제 손 대표의 남은 목표는 급행장 간판에 ‘100년 전통’이 새겨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는 “매년 간판을 교체할 때마다 손님에게 더 잘해서 무탈하게 한 해를 보내자는 각오를 한다. 숫자가 하나 더해지면 각오가 새로워지면서 의미도 더 생기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급행장 식구들은 새해 벽두에 가게 앞에서 이 같은 각오를 담은 화이팅을 함께 외쳤다. ‘76’이라는 숫자를 달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한국전쟁이 나기 직전이었다. 손재권 대표의 부친 손남출(1923~2009) 씨는 지금 급행장 자리 바로 앞 포장마차에서 1950년부터 고기와 냉면 등을 팔기 시작했다. 손 씨는 그전에는 대신동 구덕운동장 담을 넘어가 아이스케키를 파는 등 일찍부터 장사에 눈을 떴다. 서면이 한국전쟁 피란민들로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부전천이 복개되기 전이라 급행장 앞 하천에는 장마철이면 통나무가 떠내려가기도 했다. 하천가에는 피난민촌이 있었다.
전쟁 통에 꽤 돈을 번 손 씨는 1952년 지금 자리에 있던 2층 기와집을 사서 본격적으로 음식 장사에 뛰어든다. 급행열차와 완행열차밖에 없을 때였다. 손 씨가 ‘불고기를 빨리빨리 조리해서 낸다’는 뜻으로 직접 지은 이름이 급행장이다. 밥도 빨리 먹고, 빨리 돈 벌러 가야 했던 시절이었다. 1967년 건물을 증개축한 뒤 직원 35명, 지배인 3명을 둘 정도로 장사는 잘 되었다. 손 대표 가족과 함께 급행장에서 숙식하는 직원이 10여 명이나 되었다. 말 그대로 ‘식구’였다.
급행장의 호시절은 부산의 신발산업 호황과도 맞물려 있다. 지배인 한 명은 외상 수금을 전담했다. 신발 공장 월급날이 되면 간부들이 달아놓고 먹은 외상값 받아오는 게 일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급행장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유일하게 찾은 흔적이 예전 백색 전화(3-2100)를 계승한 급행장 전화번호(051-809-2100)다. 1960~70년대 전화기 보급률은 매우 낮았다. 당시 백색전화 한 대를 놓는 것이 집 한 채 값과 맞먹을 정도로 귀했다. 3, 2, 1, 0, 0. 비싸게 산 급행장 전화번호는 그냥 순서대로 다이얼을 돌리면 되었다.
막내였던 손재권 대표는 1997년 아버지로부터 급행장을 물려받는다. 건물과 땅을 절대로 팔지 말고 유지한다는 조건이었다. 하필이면 3남 4녀 가운데 막내를 선택했을까. 손 대표는 “살아보니까 내가 아버지와 생각이 똑같더라. 아버지는 내가 독해서 뭐라도 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들 부자는 통풍마저도 부전자전으로 똑같이 심하게 앓았다. 손 대표는 “부모 잘 만난 덕에 엄마 뱃속에서부터 소고기를 먹었고, 이 세상 누구보다 소고기를 많이 먹었다. 지금도 혼자서 500g을 먹는다”라고 말한다.
그 덕분에 소고기 맛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전국적으로 정평이 났다. 이름난 한우집에 들렀다가 먹은 고기가 한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한 적도 여러 번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집도 아주 쇠고집이다. ‘음식 파는 사람은 음식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고객’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손님이라고 하면 되지 않나? 고객이라는 생소한 단어는 한 번도 안 써봤다”라고 말한다.
언뜻 불친절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만의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다. 수십 년 단골에게 나가는 고기도 예외 없이 똑같다. 급행장은 일찍부터 일본에 소문이 나서 일본에서 개별 관광객이 많이 오지만 단체 관광객은 거의 오지 않는다. 외국인 손님에게 바가지를 씌울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이드 리베이트가 포함된 가격에 일절 타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손님을 생각하는 마음은 점심에 많이 찾는 갈비탕을 보면 알 수 있다. 요즘 보기 드문 한우 갈비탕이 나온다. 구이로 인기 높은 한우 갈비를 넉넉히 넣으려면 갈비탕 한 그릇 가격이 3만 원을 훌쩍 넘겨야 한다. 지팡이 짚고 힘들게 찾아오는 오랜 단골들을 위해 그 반도 안 되는 가격을 받고 있다. 알고 먹어서 그런지 갈비탕에 든 고기가 정말로 부드럽다.
급행장은 일 년 365일 하루도 쉬는 날이 없다. 쉬지 않고 돌아가려면 더 많은 직원이 필요하다. 손 대표는 어느 순간 이상한(?) 생각에 꽂혔다고 했다. "우리 아버지는 돈 한 푼 없이 시작해서 배고픈 사람에게 밥 팔아 돈을 벌었다. 그런데 휴일이라고 배가 안 고플까? 휴일에도 가게 문을 여는 게 맞겠다 싶었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영업시간도 얼마 전부터 오전 11시에서 10시 반으로 당겼다. 배고픈 사람, 밖에 세워 놓지 말자는 뜻이다. 손 대표는 “내가 쉽게 만들 수 있는 걸 어렵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무튼 요즘 들어 멋쟁이였던 아버지가 발등에 어린 나를 태우고 춤을 추던 모습이 떠오른다”라고 말했다.
신임 대표 손희철(38) 씨는 ‘급행장’ 3대를 이끌어갈 주역이다. 손 씨는 자동차 부품회사에서 5년간 해외 영업을 담당했다. 그 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라고 생각해 급행장으로 돌아왔다. 손 씨도 이날 “간판이 바뀔 때마다 한 해가 무사히 지나갔다 생각하면서 감사한다”라고 아버지와 비슷한 말을 했다. 하지만 가게 영업에 관한 생각은 달랐다. 손 씨는 “지금 급행장은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다. 가게 인테리어나 반찬도 젊은 사람들의 취향과는 좀 다르다. 지금까지는 아버지의 뚝심으로 해왔지만 이제부터는 트렌드에도 맞춰서 가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급행장에 나오는 시간을 줄이고, 아들은 늘리고 있다. 백년가게를 향한 급행장의 변화가 이제 시작된 것이다.
예전 사진이나 과거에 쓰던 불판 같은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은 두고두고 아쉽다. 손재권 대표는 “급행장에서 찍은 옛날 사진을 가지고 있는 분이 있으면 사례하겠다고 광고를 낼 생각이다.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과거 급행장의 모습은 그림으로 한번 그려 보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또 손희철 신임대표는 “지금까지 급행장에서 있었던 흥미로운 일들을 모아서 ‘급행장의 100가지 이야기’로 정리하고, 웹툰 형식으로도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통을 지키면서도 젊은 층에 다가가려는 참신한 시도로 보인다. 돌이켜보면 30년 가까이 이어진 간판 교체식 사진과 영상만 있었어도 훌륭한 사료가 되었을 것 같다. 구스타프 말러는 “전통은 불을 보존하는 것이지, 재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시간이 흐른다고 전통이 아니라 공동체의 수용과 가치 부여가 있어야 전통이 된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2026-01-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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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크린 찢고 나온 음식이 부산 맛집에
올해로 30회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26일 폐막한다. 머릿속에 영화의 잔상이 남아 너무 아쉽게 느껴진다면 ‘빵타스틱 마켓’ 기획단이 부산의 골목 맛집들과 함께 마련한 30돌 축하 이벤트 ‘부귀영화로:Scene to Table’ 현장을 찾아봐도 좋겠다. 이 행사는 ‘영화 속 한 장면을 음식으로 재현한다면’이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부산의 골목 맛집들이 영화 속 인상 깊었던 음식 장면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풀어낸 것이다. 모두 13곳에서 준비했지만, 행사 일정이 끝난 곳 등을 제외한 8곳을 골라 소개한다(상호/영화/메뉴 순).
■제과점빵/해초를 구해줘/해초 바게트
북구 구포역 근처 작은 빵집 ‘제과점빵’은 바다 생태계와 해초의 중요성을 다룬 캐나다의 다큐멘터리 ‘해초를 구해줘’를 골랐다. 영화는 주인공 프랜시스가 캐나다 서부 해안의 해양 생태계 파괴 현장을 목격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해초가 바다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해초 숲 복원 프로젝트에 직접 뛰어든다.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다시마를 키우고 해양 숲을 되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아냈다. 바다의 생명을 살린 해초가 우리의 식탁까지 이어지는 여정이 잘 묘사됐다.
‘제과점빵’은 아주 작은 한 조각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해초 바게트’를 준비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바게트 안에 싱그러운 해초 샐러드를 가득 담았다. 해초 바게트를 한입 크게 베어 물면 바다의 향긋함이 전해지면서 영화 속 장면이 떠오를 것 같다. 해양수도를 꿈꾸는 부산에 딱 맞는 영화와 메뉴라 더욱 궁금해진다. 부산 북구 구포만세길 116.
■베이크웍스/앙:단팥 인생 이야기/팥앙금밤파이
광안리 수변공원 근처에 위치한 디저트 카페 ‘베이크 웍스’는 일본·프랑스·독일 합작 영화 ‘앙:단팥 인생 이야기’를 선택했다. 납작하게 구운 반죽 사이에 팥소를 넣어 만드는 일본 전통 단팥빵 ‘도라야키’를 파는 가게가 영화의 배경이다. 우연히 가게에 들른 한 할머니는 자신이 만든 비법의 도라야키 팥소로 가게 알바생이 된다. 맛있는 도라야키로 입소문을 타고 줄 서는 맛집이 되지만 할머니의 비밀이 밝혀지는데…. 할머니에게 팥앙금은 단순한 단맛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담은 것이었다.
베이크웍스는 할머니가 정성들여 완성하는 도라야키를 떠올리며 팥앙금파이를 만들어 선보인다. 앵두팥을 푹 삶아 주걱으로 부드럽게 저어 만든 팥앙금에 직접 조린 밤을 더해 완성한 것이다. 앵두팥은 붉고 둥근 앵두 같은 모양을 지녀 이름 붙여진 토종 팥이다. 팥앙금밤파이는 인생이란 고난 속에서도 기다림과 정성을 통해 완성된다는 진리를 전한다. 부산 수영구 광안해변로307번길 25-2.
■말란드로/리틀 포레스트/시나몬 밤 크렘 브륄레
망미동 맛집 ‘말란드로’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시나몬 밤 크렘 브륄레’를 준비했다.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리틀 포레스트는 음식이 주는 위로를 차분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나오는 음식만 해도 배춧국, 배추전, 수제비, 꽃 파스타, 아카시아꽃 튀김, 쑥갓 튀김, 오이콩국수, 달걀 샌드위치, 김치전, 두부전, 막걸리, 떡볶이, 무지개 시루떡, 양배추 빈대떡, 감자빵, 크렘 브륄레, 밤조림, 곶감, 양파 통구이 등 그야말로 다채롭다. 친구 때문에 속상해하는 딸을 위로하며 엄마가 만들어준 디저트가 크렘 브륄레다. 커스터드 크림 위에 설탕을 올린 뒤 불로 구워 단단한 설탕 막을 입혀 만든다.
말란드로는 점차 쌀쌀해지는 가을을 앞두고 시나몬 밤 크렘 브륄레로 따뜻한 위로의 마음을 전하겠다는 생각이다. 말란드로(malandro)는 뜨거운 고무처럼 유연해서 언제 어디서나 적응하고,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는 사람을 부르는 포르투갈어다. 말란드로는 자신을 여행자의 감각을 담아낸 요리와 뜨거운 고무 같은 유연함이 있는 곳으로 소개한다. 부산 수영구 망미번영로63번길 54.
■위즈더미/리틀 포레스트/베이컨 감자빵
남천동의 테이크아웃 전문 베이크샵 ‘위즈더미’ 역시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골랐다. 감자빵, 호박전, 매실주, 오이장아찌, 달걀말이, 인절미….
영화 속에는 이처럼 제철 재료를 활용한 음식들이 중요한 매개체로 등장한다. 그래서 요리 영화나 힐링 영화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주인공 혜원이 힘들 때마다 엄마는 “감자는 땅속에서 오래 버텨야 맛이 나”라며 감자빵을 구워줬다. 감자빵은 단순한 빵이 아니라 인내와 기다림을 상징하는 음식이었다. 엄마는 혜원이 성인이 되면 감자빵 레시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랬던 엄마는 혜원이 수능을 본 뒤, 왜 편지를 숨겨두고 홀연히 떠난 것일까. 혜원은 감자빵을 구워내며 엄마를 생각한다. 위즈더미는 베이컨 감자빵에 그 순간의 따뜻함을 담아냈다. 그래서 베이컨 감자빵에서는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는 맛이 난다. 위즈더미는 포카치아와 감자빵 두 개의 빵 식감을 합쳐 만든 포카빵이 원래부터 인기 있었다. 부산 수영구 수영로475번길 9 .
■히비노브레드/해피 해피 브레드/콩빵
남천동 ‘히비노 브레드’는 일본 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에 나오는 콩빵을 선보인다. 이 영화는 도시 생활을 접고 홋카이도의 아름다운 호수 근처에 '카페 마니'를 연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그렸다. 남편은 맛있는 빵을 굽고, 아내는 향긋한 커피를 내리며 소박하지만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자 각자 사연과 상처를 가진 손님들이 찾아와 빵과 차를 나누며 치유되고 위로받는다. 히비노브레드는 마지막을 준비하던 노부부가 그곳에서 갓 구운 콩빵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문득 내일도 다시 이 맛을 보고 싶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는 장면에 공감했다. 빵 한 조각의 따뜻함이 삶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는 기적 같은 순간을 마음에 담아 콩빵으로 구워냈다. '매일의 빵'이란 의미의 히비노브레드는 매일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빵을 만들겠다는 각오를 담았다. 부산 수영구 광남로48번길 8.
■주든/비어페스트/페스트비어
광안리의 크래프트 맥주집 주든은 맥주 마시는 장면이 끝없이 이어지는 영화 ‘비어페스트(Beerfest)’를 골랐다. 이 영화는 독일의 전통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를 모티브로 삼아 주로 독일에서 촬영했다. 영화 속 비어페스트는 세계 최고의 맥주 마시기 대회로, 독일의 왕실과 귀족들이 참여하는 전통 행사다. 참석자들은 최고의 맥주를 맛보면서 경쟁을 통해 실력을 겨루게 된다. 비어페스트는 단순히 맥주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독일과 맥주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영화 속 맥주 마시기 대회의 모습은 옥토버페스트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재현했다. 마침 독일 뮌헨에서는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2주 동안 옥토버페스트가 열리고 있다.
주든은 툼브로이와 함께 독일 밀도르프에 자리 잡은 양조 가문이 옥토버페스트를 위해 양조하는 오리지널 레시피로 만든 페스트비어(Festbier)를 준비했다. 알코올 도수 5.7%에 IBU(쓴맛 지수) 21이다. 빵처럼 고소한 몰트의 깊은 풍미에 은은하게 어우러지는 홉의 밸런스가 매력적인 축제 맥주다. 물 대신 마셔도 된다(?)는 독일의 데일리 맥주 헬레스도 준비되어 있다. 부산 수영구 광남로 202.
■틴타젤/어바웃 타임·마이 올드 오크/피쉬 앤 칩스
광안리 다이닝바 틴타젤은 유일하게 영화 두 편을 골랐다. ‘마이 올드 오크’ 에선 술, ‘어바웃 타임’에선 안주를 선택한 것이다. ‘어바웃 타임’은 영국에서 만든 시간여행자에 대한 영화로 영국 콘월에서 촬영됐다. 틴타젤은 ‘아서왕 이야기’에 나오는 성(城) 이름으로 실제 영국 콘월 지역 에 존재하는 유일한 곳이라고 한다. 영화에는 주인공 팀이 바닷가에서 피시 앤 칩스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영국에는 '피시 앤 칩스 말고는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평범한 일상 음식을 통해 소소한 행복을 드러내고 있다. 틴타젤은 이 점에 착안해 피쉬 앤 칩스를 선보인다.
‘마이 올드 오크’는 거장 켄 로치 감독의 은퇴작으로 2023년 영국 영화다. 영국 어느 폐광 마을에 시리아 난민들이 집단 이주를 하며 마을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을의 유일한 펍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TJ와 시리아 난민 소녀 야라는 점차 우정을 쌓아 간다. 폐광 마을 주민과 시리아 난민이 함께 모여 건배하는 장면만큼 갈등이 해소되고 화합하는 장면이 또 있을까 싶다. 틴타젤은 이들처럼 영화팬들이 함께 모여 수제맥주와 위스키로 건배해 보자고 제안한다. 부산 수영구 광남로 238-1.
■재즈프레소 레코드바/존 윅/싱글 배럴 버번 위스키 ‘블랑톤’ 샷
남천동에 자리 잡은 ‘재즈프레소’는 에스프레소같이 깊고 진한 재즈의 매력을 전하는 곳이다. 부부가 10년 넘게 모은 1500장의 재즈와 소울 음악 LP로 채워진 공간이다. 영화 ‘첨밀밀’ 마지막 장면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실내 인테리어도 인상적이다. 매주 토요일에는 재즈 라이브 공연을 한다. 재즈프레소는 액션영화의 흐름을 바꿔놓았다고 평가받는 영화 ‘존 윅’의 한 장면을 뽑았다. 존 윅은 은퇴한 전설적인 킬러를 잘못 건드린 악당들에 대한 복수극으로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지만 액션신만큼은 모두가 인정하는 영화다.
재즈프레소는 존 윅에서 주인공을 맡은 키아누 리브스가 마셨던 싱글 배럴 버번 위스키 ‘블랑톤’을 내놓았다. 존 윅은 부상을 당한 뒤 진통제 대신 이 술을 마시기도 했다. 최초의 싱글 배럴 위스키로 말 위에 기수가 탄 경마 모양 병마개가 특징이다. 영화 존 윅을 좋아하면 무조건 마셔야 하는 술이다. 영화제가 끝나고 남은 진한 여운을 엔딩 크레딧 같은 블랑톤 버번과 재즈 음악으로 남겨보라고 권한다. 부산 수영구 광안해변로 27-3.
2025-09-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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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밀면 다대기, 넣어 먹어? 빼고 먹어?
여름은 밀면의 계절이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에 밀면 장사는 여름 한 철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름난 밀면집 부산 동래구의 ‘사철냉면’이란 상호에는 우리는 다른 집과 달리 사계절 장사한다는 뜻이 담겼다. 택시 기사들이 즐겨 찾아 ‘택슐랭’에 선정된 서구 영남냉면밀면은 지금도 여름철에만 영업한다.
최근 한 매체의 ‘부산 밀면 베스트10’ 선정 작업에 참여했다. 밀면의 계절을 맞아 최고 밀면 선정기 그 뒷이야기를 시원하게 풀었다.
맛집 검색 플랫폼 ‘다이닝코드’에 따르면 부산의 밀면집은 총 632곳에 달한다. 이 가운데 10곳을 선정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밀면은 가격이 냉면의 절반에 불과하고, 동네마다 각자가 좋아하는 밀면집이 따로 있지 않은가. 이틀 간의 일정 중 기자가 참여한 첫날만 해도 영남냉면밀면(서구)-대가면옥(사하구)-삼성밀면(사상구)-개금밀면(부산진구)-사철밀면(동래구)-해운대 가야밀면(해운대구)-국제밀면(연제구) 등 7곳을 하루에 도는 가위 ‘토 나오는’ 수준의 일정이었다.
베스트10 선정은 각자가 1~10위까지 순위를 매겨 합산하는 방식이었다. 패널끼리 함께 가서 맛보지 않았더라도 꼭 들어가야 할 밀면집이 있으면 추천해 달라고 했다.
기자는 연제구 국도밀면을 1위로 추천했다. 이곳의 밀면은 한 그릇에 단돈 4000원! 한 끼 식사 가격으로 부산을 넘어 전국 최저가가 아닐까 싶다.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육수와 면이 한 그릇에 1만 원씩 하는 유명 밀면집에 비해서 전혀 손색이 없었다. 곱빼기가 5000원인데, 단골만 찾는 ‘반곱’도 있었다. 한여름에 찾는 밀면, 시원하면서도 서민적인 분위기에 먹는 음식이 아니었던가.
기자는 사실 결과보다 선정 과정에서 전문가 패널끼리 주고받았던 밀면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흥미로웠다. 냉면으로도 이름난 유명 고깃집의 류나영 전 대표가 ”밀면에 든 다대기가 싫다. 왜 그렇게 다대기를 올려주는지 모르겠다. 나는 밀면을 받고는 다대기를 안 버무리고 그냥 육수만 먹었다”라고 먼저 포문을 열었다. 그는 또 “서울에서 밀면을 먹으러 갔는데 한약재 맛이 너무 많이 나서 못 먹겠더라. 부산 내호냉면에서는 맛있게 먹었는데 그 육수 맛이 많이 다른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음식강산>의 저자 박정배 작가도 밀면 육수에서 한약재 맛이 너무 난다며 동의했다. 밀면 육수의 한약재 맛, 그동안 “몸에 좋겠지”라며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먹었는데….
그러자 음식평론가 최원준 시인은 외지인에게 자신의 밀면 먹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나섰다. 최 시인은 “나는 고명처럼 올려주는 다대기를 다 걷어내고 먼저 육수 맛을 본다. 그렇게 먹다가 다데기를 조금씩 섞어서 입맛에 맞춰 먹으면 된다. 안 그러면 육수가 너무 달다”라고 말했다. 참고로 기자의 경우는 냉육수를 별도로 요청하는 편이다. 다대기가 들어가지 않은 원래 상태의 냉육수를 먼저, 그다음에 다대기를 푼 육수 맛을 봐서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조선일보 김성윤 음식전문기자는 의외로 다대기에 호감을 표시했다. 김 기자는 “전 국민 대상으로 보면 냉면보다 밀면을 좋아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 같다. 밀면은 달착지근하고 쫄깃쫄깃해서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맛이 다 들어 있다. 다대기 넣은 게 낫고, 그거 없이는 안 먹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맛집 블로거 ‘울이삐’ 김지현 씨는 “대부분 주는 대로 먹지만 점차 다대기가 빠진 밀면을 왜 먹느냐는 파와 다대기는 따로 먹어야 한다는 파가 ‘부먹’과 ‘찍먹’처럼 극명하게 나누어지는 것 같다. 새로 문을 열거나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운영하는 밀면집은 다대기 따로, 다대기 많게 혹은 작게를 선택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고메밀면이 대표적이다.
한약재 맛이 나는 밀면 육수도 그 실상을 알고 먹는 게 낫다. 육수에 감초, 황기, 계피를 넣어서 한약재 맛이 난다. 한약재 맛이 나는 육수는 가야밀면이 원조로 꼽힌다. 최 시인은 “냉면에서는 메밀 향이 난다. 하지만 밀가루로 만든 밀면은 면의 품질도 좀 떨어지고 밀가루 냄새가 나자 한약재를 넣었고, 그게 인기를 끌면서 한약재 육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밀면의 최대 약점 중의 하나가 고명과 꾸밈이라는 견해도 귀담아들을 만했다. 류 전 대표는 “밀면의 면은 전분이 많아서 담았을 때 똬리가 예쁘게 안 떨어지고, 철퍼덕거리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최 시인은 “나는 밀면 위에 고명으로 올린 수육은 너무 터벅터벅하고 별 맛도 없어서 안 먹는다. 육수를 뺀 고기를 위에 올려서 그렇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부산 사람들은 왜 여름만 되면 밀면집 앞에 줄을 서는 것일까. 김지현 씨는 “오래된 밀면집들은 대체로 육수가 달고, 면 익힘도 좋지 않지만 손님이 많다. 추억으로 먹는 집들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부산 사람들은 유명한 밀면집을 찾아가서 먹는 대신 자기 동네 자기 입에 맞는 집에 간다”라고 말했다. 음식 전문 김 기자가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부산 대표 음식이라고 하면 돼지국밥과 밀면인데, 두 음식에 대해서 부산 사람들의 태도나 자세는 완전 달랐다. 돼지국밥에 대해서는 자부심이 느껴졌고, 밀면은 소개하기 부끄러워하는 느낌이 엿보였다. 내가 보기에 밀면도 좋은 대중음식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최 시인은 “밀면은 최선의 음식이 아닌 차선의 음식이지만, 같은 값이면 넉넉하게 함께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공유의 음식이자, 같은 양이라도 값이 싸 여러 사람을 먹이는 배려의 음식이었다. 더 많은 부산 사람을 만나서 밀면을 좋아하는 이유를 찾아보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미쉐린가이드는 지금까지 밀면을 외면하고 있다. 힘든 시절 우리를 지켜준 밀면이 좀 더 잘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는 국제밀면, 대가면옥, 사철밀면, 춘하추동이 1~4위에 올랐다. 이들 밀면집들은 공통적으로 새로운 밀면의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4개 업체의 평균 밀면 가격은 8500원이었다. 박 작가는 “내호냉면, 가야밀면, 개금밀면 같은 1,2세대에 이어 요즘 인기 있는 이들 3세대 밀면집들은 실향민의 한과 서러움이 모두 빠져나간 채, 음식으로만 승부하는 시대의 세련된 맛을 내고 있다”라고 총평했다.
2025-08-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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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면의 유래 알려주는 40년 밀면 맛집
밀면의 원래 이름은 밀냉면이었다. 부산 서구 만포밀냉면 상호에서 그 흔적을 만났다. 1986년에 문을 열어 내년이면 서구에서만 만 40년째다. 이 집을 찾은 첫 번째 이유는 가격이다. 밀면 한 그릇에 4500원으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저렴한 밀면집이다. 20여 년간 3500원을 받다 재작년에서야 올리기 시작했다. 어르신 손님들이 눈에 밟혀 가격을 올릴 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두 번째 이유는 역시, 맛이다. 대부분 손님이 물밀면을 시키지만, 기자는 참기름으로 맛을 낸 고소한 비빔밀면이 더 입에 맞았다. 멸치 다시 온육수는 감칠맛이 출렁였다. 맛이 더 진해진다는 겨울이 기대된다. 정신없이 먹다 혼자서 일하는 사장님의 오른손 손가락 하나가 휜 게 눈에 들어왔다. 밀면은 얼음물 반죽을 한다. 손이 끊겨 나가는 통증이 반복되다 관절염이 온 탓이다. 몇 번 더 가서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밀면 장사 할 생각이냐? 괜히 골병든다”라고 만류한다.
임영숙 대표는 주방 보조를 하다 메인 셰프가 된 셈이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게 된 남편이 시작한 밀면집을, 일흔 나이의 임 대표가 혼자서 꾸역꾸역하고 하고 있다. 골병이 들어 안 아픈 구석이 없지만 직원을 두면 이 가격을 맞출 수가 없어서다. 그는 평안북도 만포가 고향인 시어머니가 세 살 된 아이 손을 잡고 월남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밀면은 실향민들이 고향에서 먹던 냉면을 그리워하며 만든 음식이라고 알려져 있다. 만포밀냉면에서 밀면의 유래를 만났다.
임 대표는 매일 새벽 5시 40분에 출근해 육수를 끓이기 시작한다. 어르신 단골들이 “아프지 말고 오랫동안 해 달라”라고 부탁하고 간다. 밀면에 청춘을 바쳤다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만포밀냉면에는 삼복더위에 에어컨도 없이, 오늘도 선풍기만 죽으라고 돌아간다. 아프지 말고…. 글·사진=박종호 기자
2025-08-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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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에 도전장 낸 생선살 가루 매력
매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제품 박람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가 열린다. 올해 초에 열린 ‘CES 2025’에 삼진어묵이 참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삼진어묵은 ‘블루미트 파우더’를 해외시장에 최초로 공개했고, 외국인들이 시식용으로 내놓은 어묵 피자를 맛보고는 “어메이징(놀라워)”과 “딜리셔스(맛있어)”를 연달아 외쳤다는 내용이었다. 대체 블루미트 파우더가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길래, 어묵 업체가 CES까지 나갔는지 내내 궁금했다. 마침, 삼진어묵이 코스닥 상장에 도전한다는 새로운 소식도 들려왔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어묵 업체를 3대째 이어가는 박용준 대표를 만나 어묵으로 꾸는 새로운 꿈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블루 미트 파우더’는 무엇인가. 어묵 업체가 왜 이런 걸 만드나.
“생선 살을 밀가루처럼 곱게 간 ‘바다 고기 가루’다. 여기다 물을 부어 반죽을 만든 뒤 튀기면 어묵이 된다. 어묵빵이나 어묵 피자, 면, 수제비도 만들 수 있다. 밀가루처럼 보관하기 편하고,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어묵 베이커리를 해보니 빵은 밀가루로 쉽게 만드는데 우리는 왜 냉동 연육으로 어렵게 반죽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밀가루를 열심히 파 보았다. 밀가루가 보편화되면서 관련 산업이 발전했더라. 저렴한 원료가 대량 생산되면 산업의 형태가 바뀐다는 깨달음이 왔다. 우리도 빵처럼 가루로 어묵을 만들고 싶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런 시장을 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싶다.”
-생선 살인 어육을 어떻게 가루로 만든다는 말인가.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방법을 알면 어렵지 않다. 동결건조와 열풍건조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어육 온도를 급격히 낮추는 동결건조를 통해 나온 가루를 어묵으로 100% 완벽하게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다만 아직은 냉동 방식의 동결건조가 전기를 많이 사용하기에 품질은 좋아도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열풍건조는 뜨거운 바람으로 수분을 태워서 날리는 방식이다. 수분이 빨리 날아가고 저렴하게 만들 수 있지만 영양소가 파괴되는 단점이 있다. 열풍건조는 과자를 만들 때의 밀가루 형태로 보면 된다. 블루미트 파우더는 동결건조 방식을 사용한다. 어묵으로 원형이 완벽하게 복원되는 가루는 어떤 시장을 대체할 수 있을까 상상하면서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갔다.”
-CES는 전자제품 박람회가 아닌가. 어묵 업체가 참가했다는 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CES는 단순한 전자제품 박람회가 아니다. CES 2025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가 ‘Food Sustainability(식량 지속가능성)’였다. 농업 기술, 대체 단백질, 푸드 테크(음식 기술)가 크게 주목받았다. 대체 단백질 시장은 2022년 기준 148억 달러(약 19조 원)였다. 2030년까지 연평균 성장률 14%를 기록하며 400억 달러(약 52조 원) 규모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체 단백질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삼진어묵은 부산 어묵의 푸드 테크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참가했다.”
- CES에서 가장 이질적인 존재였을 것 같다. 현지 반응은 어땠는가.
“우리가 있던 존 쓰리(3)에는 컴퓨터 관련 업체만 있었고 식품업체로서는 유일했다. 블루미트 파우더를 우리 부스에 밀가루 포대처럼 쌓아 두었다. 생선 살을 밀가루처럼 곱게 갈아 포대에 담았다는 사실 자체가 현지에서 큰 관심을 불러왔다. ‘블루미트 파우더’를 믹서에 물과 함께 넣어서 나온 반죽으로 도우를 빚어 어묵 피자를 만들었다. 외국인 바이어들은 생선을 먹는 혁신적인 방식이라며 놀라워했다. 당장 이걸 가져가서 빵처럼 만들고 싶다는 반응이었다. 심지어 NASA에서도 우주 식량으로 쓰고 싶다고 관심을 보였다. 대량생산이 이전의 실험 단계라고 답변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밀가루 같은 시장이 되는데 10년은 걸리겠지만 맛보기는 보여준 셈이다.”
-블루미트 파우더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것인가.
“새로운 걸 상상하고 기획하는 R&D 연구소 ‘어메이징 스튜디오’를 몇 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고 테스트도 한다. 내부적으로는 당장 돈이 안 되는 일을 한다고 욕도 많이 먹는 편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어묵 업체 가운데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한다. 투자 포트폴리오가 다양한 대기업은 어묵만을 힘들게 연구하지는 않는다. 우리처럼 많은 사랑을 받은 선도 업체가 어묵 업체들을 위해 희생한다는 정신으로 투자해야 된다.”
-‘어메이징 스튜디오’에서 만든 신제품에는 또 어떤 것이 있는가.
“지난달에 새로운 베이커리 간식인 어묵빵 13종을 출시해 지금 팝업스토어를 진행하고 있다. 시그니처 메뉴인 어묵고로케도 빵으로 만들어 속에다 어묵을 넣었다. 사실 내부에서도 어묵빵을 만들어 얼마나 팔리겠느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성심당 빵만 하더라도 부재료로 소시지가 많이 들어간다. 그 소시지를 어묵으로 대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빵에 어묵이 제대로 쓰이기만 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생각한다. 물론 새로운 세상 이야기만 할 게 아니라, 그 시장이 얼마큼 되는지 분석하고 얘기해야 한다는 분도 있어서 맨날 혼나고 있다. 그래도 어메이징 스튜디오에는 길이 좀 험난하고 눈보라가 쳐도 우린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목표치까지 올라가 보자고 이야기한다.”
-삼진어묵을 운영하는 삼진식품이 지난달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해 9월 초에 공모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묵 베이커리 시장은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했다. 도전하지 않으면 어묵 산업은 또다시 사양산업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건 싫다. 상장해서 체력이 되면 수산물로 산업의 가능성을 만들고 싶다. 양식해서 횟감으로 제공하는 게 아니라 밀가루 대신에 생선을 가루로 만들어서 대체 단백질로 쓰는 것이다. 제분 회사로 출발한 CJ처럼 삼진어묵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블루미트 파우더에 대한 특허 신청은 했나.
“특허 출원 중이지만 특허는 명목상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2014년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우리의 모든 특허는 당신의 것’이라는 글을 통해, 테슬라가 보유한 모든 특허를 누구나 선의로 사용할 경우 특허 소송을 제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테슬라가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전기차 시장은 아직도 성장하고 있고, 지금도 완전히 전기차 시장으로 바뀌지 않았다. 그때 테슬라 혼자만 했으면 전기차 시장이 지금처럼 커지지 않았을 것인데 어묵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문화는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우리만 만든다고 해서 시장이 생기는 게 아니다. 많은 업체가 경쟁하면서 파이를 키우는 게 맞다. 우리가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면 어묵 산업은 좋아질 수밖에 없다.”
-생각보다 꿈이 큰 것 같다. 박용준 대표의 꿈은 뭔가.
“블루미트 파우더는 밀가루와 비교해 어분이라는 차이뿐이다. 밀가루를 대체하려면 생산 가격이 더 낮아져야 한다. 횟감이 아니라 어묵 가공을 위해서 생선을 양식하면 수산물 가격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수산물은 어묵처럼 가공하는 방식이 가장 섹시하다고 생각한다. 자연에서 나오는 것과 양식 수산물의 비율을 잘 맞추는 방식으로 원료를 구해 대량으로 가공하고 더 다양한 맛으로 구현하는 6차 산업을 생각하면 너무나 매력적이고 가능성이 있다. 블루미트 파우더는 오늘날 라면처럼 세계의 주요한 식량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사업에 미쳐서 계속 투자하고 있다. 이 산업이 파이가 커지면 삼진어묵의 기업 가치가 달라지고, 어묵 업체들은 너도나도 다 좋은 상황이 된다. 지금 사랑받는 기업이 해야 할 역할인 것 같다.
삼진어묵의 CES 2025 참가는 어묵 업체가 전자제품 박람회에 등장했다는 흥미로운 사건 그 이상이었다. 전통 산업이 첨단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직접 보여 줬다. 가장 오래된 기업 삼진어묵의 야심찬 도전이 성공해 다른 어묵 업체를 비롯한 지역 경제에도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2025-07-18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