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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축제, 환대의 자리
어느 때보다 선선했던 6월이 지나고 여름이 온다. 여름은 축제의 계절이다. 축제(祝祭, festival)는 축하와 제사를 아우르는 말이다. 개인이나 집단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일과 시간을 기념하는 의식이다. 삶에는 크고 작은 축제들이 있어 함께 축하하고 때로는 슬퍼할 기회를 준다. 인생에 그런 축제가 있다는 것은 개인과 사회를 끈끈하게 붙들어 매는 일이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축제는 부산국제영화제이다. 지금은 영화의전당을 중심으로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남포동과 해운대를 오가며 다양한 영화와 영화인의 이야기를 만났다.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랐다. 그 뒤로도 여러 축제를 만났지만, 마음에 오래 남는 축제의 자리는 몇 안 된다.
크고 작은 축제들이 개인과 사회 연결
경계 허물고 연대 희망 주면 오래 남아
축제 단순 여흥 아닌 삶에 필요한 것
가벼움만 남고 환대 없는 축제 적잖아
부산 여름 축제 환대의 내력 되살려
도시를 사랑하고 이어 가는 힘 돼야
몇 해째 참가하는 ‘훌라당 댄스 페스티벌’이 있다. 하와이 전통 춤 훌라를 가르치는 커뮤니티가 여는 축제다. 작은 모임으로 시작해 지금은 수백 명이 모이는 자리가 되었다. 이 축제의 바탕은 알로하(Aloha) 정신이다. 알로하는 사랑과 평화의 가치를 담고 있는 하와이의 인사말이다. 그래서인지 서툴고 어리숙한 몸짓도 있는 그대로 포용한다. 어떤 모습이든 받아지리라는 믿음이 있어서 곁의 사람들과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느낀다. 낯선 이들과 눈빛과 몸짓을 나누다 보면 편안함까지도 느껴진다.
다른 하나는 뜻밖의 자리에서 왔다. 재작년 여의도 일대에서 열린 탄핵 집회다. 이름도 모르는 이들과 나란히 서서 같은 구호를 외치던 그 밤을 나는 일종의 축제로 기억한다. 그 겨울 광장에는 슬픔과 분노만 있지 않았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함께 그려 보는 묘한 활기가 흘렀다. 그 축제 같은 집회의 동력은 개인과 사회에 어떤 힘을 넘겨주어 우리 사회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 밤의 결속은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세 축제가 나에게 남긴 것을 환대라고 부르고 싶다. 환대(hospitality)와 적대(hostility)는 뿌리가 같다. 둘 다 낯선 이를 가리키는 옛말에서 갈라져 나왔다. 낯선 사람을 손님으로 맞아들일 것인가, 위협으로 밀어낼 것인가. 축제란 그 갈림길에서 환대를 택하는 자리다. 훌라에 흐르는 알로하의 정신이 그러하듯, 좋은 축제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너와 나 사이의 벽을 낮춘다. 그렇게 축제는 사람을 사람에게, 나와 사회를 잇는 오래된 방식이 된다.
축제는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여흥은 아니다. 가볍기보다 무거운 것, 삶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빈곤한 시대에도 사람들이 축제를 멈추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 무게를 가장 잘 보여 주는 자리가 죽음의 자리다. 옛사람들은 장례조차 잔치로 감쌌다. 떠나는 이의 곁에서 산 사람들의 웃음과 음식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것은 누군가 세상을 등지는 동안에도 세상의 소리는 멈추지 않고 남은 이들이 서로의 곁을 지킨다는 신호와 같았다. 축제는 혼자 삼키는 침묵이 아닌 기쁨과 슬픔까지 함께 끌어안아 견딜 만한 것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만나는 축제는 그 무게를 자주 잃는다. 잠시 체험하고 발을 담갔다가 빼는 소비의 자리, 재미있는 경험 하나와 사진 한 장을 얻어 돌아가는 자리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가벼움만 남고 의미와 환대가 빠질 때 축제는 시든다. 그래서 어설프게 차려진 지역 축제 앞에서 느끼는 실망은 한 개인의 투정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축제가 본래 우리를 서로에게 이어 주던 자리인 만큼, 그 자리가 헐거워질 때 아쉬움은 지역 공동체와 사회의 몫이 된다.
여름을 기점으로 부산에도 여러 축제가 열린다. 8월 해운대와 광안리 해변의 바다축제, 가을 삼락생태공원의 록 페스티벌, 10월 전 세계 영화인이 모여드는 부산국제영화제까지. 화려한 볼거리로 사람을 불러 모으는 축제도 반갑지만, 나는 그 축제들이 조금 더 환대의 자리이기를, 그 가치를 잘 보존하기를 바란다. 잘 차려진 환대는 그 자체로 가장 오래가는 관광자원이기 때문이다. 환대받은 사람은 그 도시를 마음에 담아 간다.
부산은 오래 사람을 맞아들이던 도시다. 피란의 시절 낯선 이들을 품었고, 항구를 통해 사람과 물건을 오가게 했다. 그 환대의 내력이 올여름 축제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면 어떨까. 함께 울고 웃으며 경계를 허문 기억은 몸에 남아, 이 도시를 사랑하고, 이어 가고 싶게 만드는 힘이 된다. 이번 여름 부산의 축제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까. 스쳐 가는 눈요기와 사진 몇 장일까, 아니면 낯선 이의 어깨에 스스럼없이 손을 얹게 하고 이 도시를 오래 아끼게 만드는 환대일까.
2026-07-0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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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부산의 '관계인구'를 늘리자
최근 일본을 방문하던 중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도쿄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청년이 수도권 대학 재학 중 오키나와의 지방대학에서 한 학기를 보내게 되었고, 졸업 후 그 지역에 정착했다는 이야기였다.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 간 학점 교류 프로그램 덕분에 기숙사에 머물며 공부하고 지역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그 경험이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고 했다.
이러한 사례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2026년도 예산에 ‘도시와 지방의 연계를 통한 국내유학 촉진 사업’ 예산 10억 엔을 새로 편성했다. 수도권 대학에 재학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지방대학에서 공부하고 지역 기업과 연계한 인턴십과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지원할 수 있는 사업을 만들어 예산을 배정한 것이다. 단순한 학점교류 차원에서 만든 사업은 아니었다. 청년들에게 “지방에 살아보니 괜찮다”는 경험을 제공하려는 국가 전략이다.
최근 일본의 지방소멸 대응 정책에서 가장 주목받는 개념이 바로 이러한 ‘관계인구’(關係人口)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자리 잡고 있는 ‘생활인구’와 유사한 개념으로, 해당 지역에 거주하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방문하고 배우고 일하며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이주하지 않는다. 먼저 경험하고 애정을 갖게 된 뒤 정착을 고민한다. 정주인구는 관계인구의 결과물인 셈이다.
발트해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는 이 개념을 국가 차원에서 실천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에스토니아는 2014년 세계 최초로 전자거주권(e-Residency) 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시민권이나 영주권은 아니지만 전 세계 누구나 디지털 신분증을 부여받아 에스토니아의 행정·금융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디지털 신분증을 가진 사람들은 기업 설립과 운영, 세무 처리 등을 온라인으로 수행할 수 있으며 유럽연합(EU) 시장에도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전 세계 기업가와 디지털 노마드들이 에스토니아와 연결되기 시작했고, 뒤이어 놀라운 성과로 이어졌다. 현재 180여 개국에서 수십만 명이 전자거주권을 취득했고, 이를 통해 수만 개 기업이 설립됐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이 제도가 수억 유로 이상의 경제효과를 창출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사람을 물리적으로 이주시킨 것이 아니라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새로운 경제공동체를 만들어낸 것이다.
부산 역시 관계인구 확대라는 관점에서 미래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수도권 집중을 단순히 막아야 할 위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을 부산과 연결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예를 들어 서울에 있는 대학 학생들이 졸업 전에 지방대학에서 한 학기 이상 생활할 경우 국가가 장학금을 지원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어떨까. 학생들은 학업은 차질없이 이어가면서도 관광객이 아닌 주민의 시선으로 지역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부산·울산·경남과 일본 규슈를 연결하는 구상도 가능하다. 부울경과 규슈 지역 대학들이 연합해 학생들이 국경을 넘어 서로의 도시에서 한 학기씩 생활하도록 하는 것이다. 유럽의 에라스무스(Erasmus) 프로그램처럼 ‘부울경-규슈판 에라스무스’를 만든다면 두 나라 젊은 세대의 이동과 교류는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훨씬 활발해질 것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987년 시작된 유럽의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수백만 명의 학생들이 유럽 각국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도록 지원하며 국가 간 관계인구를 확대하고 유럽 통합의 토대를 다진 성공적인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산은 또 에스토니아 사례를 참고해 외국인과 외지인 창업가들이 부산과 지속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부산형 디지털 거주제도’를 검토해 볼 수도 있다. 부산은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여러 법적 제약이 있겠지만, 중앙정부의 제도 틀 안에서도 창업·금융·행정 서비스를 패키지로 제공하는 모델은 충분히 가능한다는 판단이다. 더 나아가 부산만의 특례를 과감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정치권이 힘을 모아 지원에 나선다면 그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오는 10월 말 부산에서 ‘제19회 부산-후쿠오카 포럼’이 개최된다. 부산과 후쿠오카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연결하자는 취지로 출범한 이 포럼은 이번에 ‘관계인구 확대’를 핵심 의제로 다룰 예정이다.
인구 감소 시대에 도시는 사람을 붙잡는 것만으로 더는 성장할 수 없다. 더 많은 사람과 자본, 아이디어를 끌어들이는 도시가 경쟁력을 갖는 시대다. 앞으로 부산은 수도권과 일본 규슈를 넘어 아시아와 세계를 연결하는 개방형 플랫폼으로 거듭나야 한다. 지경(地境)을 넓혀야 부산의 미래도 넓어진다.
2026-07-0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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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중구에서 생각해보는 BTS·나운규·부산
방탄소년단 BTS가 일본, 미국, 멕시코에 이어 부산 공연을 마치고 유럽에 머물고 있다. 마드리드를 시작으로 유럽을 휘저은 후에는 다시 중남미, 아시아, 오세아니아 공연이 이어진다고 한다. 나라 잃은 백성으로 유랑할 때 김구 선생은 일찍이 〈백범일지〉에서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랬는데, 광복 70년 만에 실제로 청년 일곱 명이 세계 대중문화를 장악하여, 선한 영향력으로 세계 인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믿기지 않는 일이 우리 앞에 현실로 벌어지고 있다. 지난 6월 12~13일 부산 공연 때만 해도 우리 도시를 찾은 BTS 팬이 2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상 만물에 뿌리가 있듯이, 자랑스러운 ‘아리랑’ 세계 공연에도 뿌리가 있다. 그런데 BTS의 ‘아리랑’은 딱 100년 전인 1926년 춘사 나운규(1902~1937)가 만든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다. 본조아리랑 혹은 경기 아리랑이라고 불리는 이 노래는, 그러니까 까마득한 옛날부터 우리가 불러오던 곡조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풍운아 나운규가 단성사 합주단과 협력하여 만든 창작곡이다. 노랫말도 물론 나운규의 작품이다. 식민지 시기의 민족적 울분을 통쾌히 달래준 영화 ‘아리랑’은 서울 유학 후 실성해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 영진이 동네 악덕 지주의 하수인에게 시달리는 아버지와 누이동생을 보며 겪는 수난과 핍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의 끝부분에서 영진이 일본 순사에게 살인범으로 붙들려 손을 묶인 채 끌려갈 때, 마을 사람 모두가 아리랑 고개까지 따라 나와 눈물과 합창으로 부르는 노래가 BTS의 ‘아리랑’이다.
김구 선생 열망한 '높은 문화의 힘'
BTS 아리랑 세계 공연으로 현실화
뿌리는 100년 전 나운규 동명 영화
민족적 울분 창작 주제가로 녹여내
당시 부산 중구서 곡 다듬었을 듯
관련 이야기 발굴, 도시 가치 높여야
나운규가 ‘문예영화’라는 잡지에 남긴 ‘나의 러시아 방랑기’라는 자서전을 보면, 함경도 회령 출신인 그는 1919년 3월 만주의 명동 중학교 재학 중에 3·1운동에 가담하여 일경에 쫓기는 바람에 ‘장발장처럼’ 북간도와 러시아 연해주를 2년간 떠돈다. 이후 비밀결사조직 ‘도판부’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서울에서 체포되어 청진 감옥에 2년간 갇혀있다가, 1924년 초에 “영화나 해보자”라며 책과 이부자리를 팔아 부산으로 내려온다. 당시 부산에는 일본인 자본가와 영화 기술자, 조선인 연출자와 배우들이 모여 한국 최초의 영화사인 ‘조선키네마 주식회사’가 만들어져 있었다. 나운규는 부산에서 ‘해의 비곡’ ‘운영전’ ‘심청전’ ‘농중조’ 등 네 개의 작품에 출연하여 단역을 맡거나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 영화인으로서의 새로운 꿈을 키웠다. 그리곤 2년 만인 1926년 초에 서울로 상경, 바로 그 해에 위대한 영화 ‘아리랑’과 그 주제곡 ‘아리랑’을 민족 앞에 터뜨렸다. 나는 그가 어릴 적 고향의 철도 공사장에서 처음 들었다는, 남쪽 출신의 어느 인부가 불렀다는 그 아리랑 가락을 만주와 연해주 그리고 청진 감옥에서도 계속 품고 있다가, 부산에서 그 씨앗을 개화했다고 본다. 중구의 40계단문화관에서 오른쪽으로 구부러진 도로를 따라 (주)조선키네마가 있던 자리로 가본다. 원래는 러시아 외무부가 부산주재 러시아 부 영사관 건축용지로 사두었던 곳인데, 조선키네마의 영화 작업이 주로 이 터 안에서 이루어졌다. 지금은 그 당시를 알리는 벽화와 동판만 남아있지만, 나운규 선생도 밤낮없이 여기에서 작업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 좁은 골목길과 계단을 내려가서, 매립지의 일본인 거리를 돌아서, 걸어서 10분 거리였다는 관부연락선 부두까지 수시로 오가면서 BTS의 아리랑 곡조와 가사를 속으로 다듬고 다듬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연결이 안 된다. 아무리 나운규이고 아무리 천재라도, 부산 생활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간 바로 그해 10월 1일에 단성사에서 곧바로 ‘아리랑’ 폭탄을 터뜨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는 연속적이고, 모든 사물과 현상에는 뿌리가 있다. 오늘은 자랑스러운 BTS의 아리랑 세계 투어와 세계 인민의 아리랑 합창 깊은 곳에 청년 나운규의 방랑과 고뇌,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 부산 중구의 담벼락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약속이 있어 연산동에서 수영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는데, 지민의 사진이 도배된 BTS 열차에 우연히 앉았다. 아리랑~나운규~(주)조선키네마 연결선 위에서 계속 곱씹다 보면, 지민과 정국의 고향이 부산이라는 것, 부산이 영화의 도시로 불리는 것도 우연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남은 과제는 우리가 몰랐던 숨은 이야기를 더 발굴하고 얽고 접속하여 ‘아리랑의 도시’ ‘BTS 성지순례 도시’로서의 부산의 문화지도를 새롭게 더 보충하는 일일 것이다. 나운규와 아리랑과 BTS를 원본으로 새 형태의 창조적인 데칼코마니를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형성하여, 우리의 도시 가치를 스스로 높여가는 작업일 것이다.
2026-06-2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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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클래리티 법안, 한국에 주어진 마지막 골든타임
6월 1일, 미국 상원 본회의 의사일정에 ‘디지털 자산 시장구조법’(CLARITY Act)이 정식 등재됐다. 지난달 14일 상원 은행위원회를 초당적 표결로 통과한 데 이은 후속 절차다. 의회가 8월 휴회에 들어가기 전 본회의 표결이 이뤄진다면, 미국은 2025년 7월 시행에 들어간 스테이블코인 규율법(GENIUS Act)에 이어 두 번째 디지털 자산 입법을 완성하게 된다. 시장구조법과 스테이블코인법을 분리해 단계적으로 통과시키는 미국의 입법 전략은, 십수 년간 모호한 권한 다툼 속에 갇혀 있던 디지털 자산 시장을 마침내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결정타로 평가받는다.
두 법안의 의미는 분명하다. GENIUS법이 ‘디지털 화폐’의 발행과 유통에 관한 연방 차원의 통일된 규칙을 세웠다면, CLARITY법은 디지털 자산을 디지털 상품과 투자 계약 자산으로 나누어 각각 CFTC와 SEC의 관할로 분명히 정리한다. 그동안 발행 기업과 거래소, 투자자 모두를 괴롭히던 ‘이것이 증권인가 상품인가’의 회색지대가 해소되는 것이다. 코인베이스, 서클, 리플 같은 산업계는 물론, 그동안 신중한 태도를 보이던 월가의 자산운용사들까지 이 법안 통과를 일제히 기다리는 이유다. 규칙이 분명해지면 자본은 빠르게 들어온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에 서 있는가. 지난해 출범한 새 정부의 강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시장구조를 함께 다루겠다던 ‘디지털자산기본법’은 1년 가까이 국회에 머물러 있다. 지방선거가 끝나고 정치 일정이 다소 정리됐지만, 입법의 동력은 여전히 약하다. 한 번에 모든 쟁점을 풀려는 ‘통합 입법’ 방식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는 인상마저 든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미국이 이 어려운 작업을 ‘분리 입법’으로 풀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결제 인프라, 시장구조는 자본시장 질서라는 서로 다른 성격을 인정하고, 합의가 가능한 영역부터 차례로 매듭지은 것이다. 반면 한국은 모든 쟁점을 하나의 법안에 담으려다 보니, 어느 한 쟁점에 합의가 늦어지면 전체가 멈춰 서는 구조다. 입법의 속도가 곧 산업의 속도이고, 그 속도의 격차가 결국 시장의 격차로 굳어진다.
지체의 비용은 이미 눈에 보인다. 한 블록체인 보안 업체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스테이블코인 거래 규모는 최근 1년간 640억 달러에 달했다. 거래의 대부분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매개로 한 해외 자산 진입이다. 한국 투자자의 자본이, 한국의 결제·송금 인프라가, 한국이 만들지 못한 디지털 화폐를 통해 빠져나가고 있는 셈이다. 한 번 자리 잡은 결제 표준은 규제가 정비된 뒤에도 쉽게 되돌아오지 않는다. 미국의 CLARITY법이 통과되어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연방 인증’이라는 법적 옷까지 입게 되면, 그 흐름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완벽한 입법이 아니라 ‘우선 가능한 입법’이다. 첫째, 원화 스테이블코인부터 먼저 매듭지어야 한다. 발행 주체에 대한 이견은 시행령과 인가 심사 단계의 유연성으로도 풀 수 있다. 큰 틀의 법적 정의와 준비자산 요건, 이용자 보호 장치만 갖춰진다면 시장은 그 위에서 자라난다. 둘째, 시장구조법은 디지털 자산의 분류와 감독 권한의 분배에 집중해 별도 트랙으로 추진해야 한다. 자본시장법과의 정합성이라는 무거운 숙제는 분리해서 다뤄야 일정을 지킬 수 있다. 셋째, 커스터디·청산·결제 같은 인프라 영역의 인허가 체계를 선제적으로 정비해, 법안 통과와 동시에 시장이 움직일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특히 이 변화는 부산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해양수산부와 HMM의 부산 이전으로 ‘해양 금융 도시’로의 도약 기반이 마련됐지만, 그 위에 얹힐 디지털 금융 인프라가 없다면 절반의 성공에 그친다. 미국의 CLARITY 체제가 자리 잡으면 글로벌 디지털 자산 자본은 빠르게 재편될 것이고, 그 흐름을 부산이라는 도시가 받아내기 위해서는 중앙의 입법과 별개로 지역 단위의 규제 샌드박스, 시범 사업, 인재 양성 채널이 동시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다른 도시가 아닌 부산이어야 하는 이유는, 결국 ‘준비된 도시’만이 그 자본을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가 디지털 자산 시장구조법을 본회의에 올린 이 시점은, 한국에도 주어진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미국이 입법을 마치고 시행령과 감독 규정을 다듬는 데 들어가는 1~2년의 공백기야말로, 한국이 따라잡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창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디지털 화폐 시대의 결제·자본 흐름은 우리 손에 닿지 않는 곳에서 굳어질 것이고, 그때 가서 만들어 낸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선택지’가 아니라 ‘대안’으로 남게 된다. 입법은 정치이지만, 동시에 산업이고 또 시간의 문제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는 다시 한 번 ‘만들어진 표준’을 받아쓰는 자리에 머물게 될 것이다.
2026-06-2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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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SF와 시대유감
이번 1학기 뉴미디어 문화 관련 수업에서 학생들과 함께 SF(Science Fiction) 장르를 공부했다. 다양한 장르 가운데 SF에 주목한 까닭은 오늘날 뉴미디어에서 생산, 유통되는 콘텐츠 대부분이 SF적 상상력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미키 17’과 ‘원더랜드’, 웹소설 ‘나 혼자만 레벨업’, 아이돌 그룹 에스파(aespa)의 가상 아바타 ‘ae-aespa’에 이르기까지 SF적 상상력의 영향은 전방위적이다. 낯선 미래에 대한 상상이 가장 익숙한 문화적 형식이 된 셈이다.
SF 장르에서는 광활한 우주 전경이나 눈부시게 발달한 과학기술 같은 스펙터클적 요소가 주요하게 활용된다. 그런 만큼 영화나 드라마, 게임 등 시각 매체에서의 강세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요사이 한국문학에서도 SF가 눈에 띄게 약진하고 있다는 점은 적잖이 흥미롭다. 아마 전통적 한국문학 독자들에게 SF는 생소할 뿐만 아니라, 비주류적 장르로 인식되기도 할 것이다. 일본식 번역어인 ‘공상과학소설’이라는 명칭에서도 드러나듯이, SF는 허무맹랑한 공상(空想)으로 가득 찬 대중 오락물 정도로 여겨졌다. 한낙원의 〈금성탐험대〉를 위시한 소년 과학소설에서부터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에 이르는 SF 문학의 흐름이 있었지만, 일부 마니아층이 즐기는 주변부적 하위문화에 머물러 있었다.
영화·웹소설 등 뉴미디어 콘텐츠 기반
낯선 미래 상상이 익숙한 문화적 형식
2020년 전후 한국문학 주요 장르 부상
청년 작가 잇따라 등장 독자 관심 증가
계층 불평등·미래 불확실성·기후 위기
인간의 공존 방식과 대안적 미래 제시
2020년을 전후로 SF는 한국문학의 주요 장르로 급부상했다. 변방에 위치하던 장르가 중심부로 진입했다는 점에서, 한국문학의 큰 지각변동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한 전환의 한가운데 김초엽, 천선란과 같은 1990년대생 청년 작가들이 있었다. 2019년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발간은 한국 SF 문학의 파급력을 극적으로 보여준 계기였다. 천선란의 〈천 개의 파랑〉,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이 잇따라 출간되며 SF의 확산을 이끌었다. 이와 더불어, SF 소설에 대한 청년 세대의 관심도 빠르게 증가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오늘날 청년 작가와 독자들은 이토록 SF에 주목하는 것일까?
근대소설에서는 현실을 정확하게 구현하는 리얼리즘적 경향이 우세했다. 현실에 대한 명확하고 객관적인 판단 위에서 미래의 전망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리얼리즘적 전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실재와 가상이 마구 뒤섞인 ‘매트릭스’ 같은 세계 속에서 미래는커녕 발붙인 현실조차도 쉽게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확실성과 불안의 감각이 SF 장르 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SF는 현실이 아닌 낯선 세계를 그린다. 그런데, 그 낯선 세계는 계층적 불평등 심화와 미래의 불확실성 증대, 기후 위기를 비롯한 전 지구적 위기 상황 등 청년 세대가 마주한 현실적 조건의 급격한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즉, SF 소설은 청년 세대의 무의식에 자리한 불안감을 민감하게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한국 SF 소설이 그러한 무의식적 불안을 다루는 방식이 전통적 SF 문법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전통적 SF가 기술 문명의 스펙터클이나 종말론적 세계의 실상을 전면화했다면, 최근 SF 소설은 그러한 세계 속에 살아가는 인간 혹은 비인간의 관계성에 초점을 둔다. 예컨대,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우주 개척이 활발히 진행된 미래를 배경으로 가닿을 수 없는 행성으로 떠난 가족을 100년도 넘게 그리워하는 안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녀가 100년을 훌쩍 넘겨 살 수 있었던 것은 냉동 수면 기술 덕택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가족과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 까닭 역시 새로운 웜홀 통로가 발견되면서 기존 항로가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기술의 발전이 불러온 관계의 단절, 그리고 기술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관계성의 가치를 다룬다. 이처럼 한국 SF는 인간의 상실과 고독, 돌봄과 연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단절되고 고립되어 있는지, 그리고 관계의 회복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드러낸다.
한국 사회가 신자유주의적 질서로 빠르게 재편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기성세대의 낡은 문화에 대한 날 선 비판을 감행하던 서태지는 ‘시대유감(時代遺憾)’에서 “검게 물든 입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다며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 것 같네”라고 부르짖었다. 모두가 광기에 사로잡히는 미래가 세기말의 전망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 2024년 에스파는 이 곡을 리메이크했다. 3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시대에 대한 유감은 여전한 것이다. 지금의 청년 작가와 독자들은 유감스러운 시대를 향해 직설적 비판을 가하는 대신, SF를 통해 또 다른 대안적 미래를 상상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를 질문한다. 그렇기에 SF 소설의 흥행은 유감스러운 시대를 건너가는 청년 세대의 대응인지도 모른다.
2026-06-2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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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BTS 이후, 부산 관광의 골든타임
최근 부산은 다시 한번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BTS의 부산 공연을 보기 위해 국내는 물론 해외 각국에서 수많은 팬들이 부산을 찾았다. 공연장은 열광으로 가득 찼고, 호텔과 음식점, 카페와 관광지는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았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축제장이 되었고 부산은 글로벌 관광도시로서의 잠재력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번 공연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의미는 공연의 성공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왜 수많은 사람들이 부산을 찾았는가”라는 질문에 있다.
과거 관광객들은 유명 관광지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찾아 이동했다. 하지만 오늘날 관광의 흐름은 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단순히 관광지를 보기 위해 여행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경험하기 위해 이동한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드라마 촬영지를 방문하기 위해 국경을 넘으며, 스포츠 경기와 문화행사를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관광의 중심이 장소에서 콘텐츠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 각국에서 팬들이 몰려 온 부산
글로벌 관광도시의 잠재력 재입증
자연환경·관광명소 넘어선 콘텐츠
관광 패러다임 재정립 필요성 부상
이벤트 관광도시 부산 비전 수립해
새로운 관광 생태계 구축 서둘러야
이번 BTS 공연은 이러한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공연을 보기 위해 부산을 찾은 팬들은 단순히 콘서트만 관람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부산에 머물며 음식을 먹고, 쇼핑을 하고, 관광지를 방문했다. 공연은 여행의 목적이었지만 부산은 여행의 경험이 되었다.
최근 관광학계에서는 이를 ‘콘텐츠 관광(Content Tourism)’ 또는 ‘팬덤 관광(Fandom Tourism)’이라 부른다. 관광객이 특정 장소를 방문하는 이유가 자연환경이나 관광명소가 아니라 콘텐츠와 문화적 경험에 있다는 것이다. BTS, 영화, 드라마, 게임, 스포츠와 같은 콘텐츠는 이제 강력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실제로 세계 주요 도시들은 이러한 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는 세계적인 공연과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F1 그랑프리를 도시 브랜드 구축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 오사카 역시 국제박람회와 글로벌 문화행사를 통해 관광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관광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관광객이 찾아올 이유를 만드는 전략이다.
부산 역시 이제 새로운 관광 패러다임을 고민해야 한다. 그동안 부산 관광은 해양 관광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해운대와 광안리, 태종대와 송도는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자산이다. 하지만 세계 어느 도시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질 수 있다. 반면 사람을 움직이는 콘텐츠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BTS 공연을 통해 초대형 이벤트나 행사가 도시경제와 관광산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초대형 이벤트나 행사가 개최되는 것 자체가 아니다. 관광도시의 경쟁력은 행사를 유치하는 능력이 아니라 행사를 관광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는 능력에서 결정된다. 숙박과 교통, 다국어 안내체계, 관광상품 개발, 지역상권 연계 프로그램, 문화체험 콘텐츠는 충분히 준비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또한 방문객들이 부산에 하루 더 머물고 싶어 하고, 귀국 후에도 다시 찾고 싶은 도시로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경험 설계 역시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금이야말로 부산 관광의 골든타임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원아시아페스티벌, 국제 크루즈, MICE 산업, e스포츠 국제대회, 그리고 2027 세계청년대회까지 부산은 이미 다양한 글로벌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이를 개별 행사로 바라보느냐, 아니면 하나의 도시 전략으로 연결하느냐에 있다.
필요한 것은 ‘365일 이벤트 관광도시 부산’이라는 비전이다. 특정 계절이나 특정 행사에 의존하는 관광이 아니라 연중 다양한 이벤트와 콘텐츠가 관광객을 불러들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연과 축제, 스포츠와 문화행사, 국제회의와 전시산업을 하나의 관광 생태계로 연결해야 한다.
관광은 더 이상 관광지만으로 성장하는 산업이 아니다. 문화와 예술,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도시 브랜드가 결합된 종합산업이다. BTS 공연은 부산이 가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BTS는 부산을 찾아왔다. 그리고 세계의 시선을 부산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이번 공연의 성공을 일회성 이벤트로 남길 것인가, 아니면 부산 관광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출발점으로 만들 것인가. 부산 관광의 미래는 바다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을 움직이는 콘텐츠와 세계를 끌어들이는 이벤트,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전략 속에서 완성된다. 관광객을 기다리는 도시에서 관광객이 찾아오게 만드는 도시로, 해양관광도시에서 이벤트 관광도시로의 전환. 지금이 바로 부산 관광의 골든타임이다.
2026-06-1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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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해양수도 부산' 완성을 위한 금융의 두 날개
부산은 다시 해양수도를 말하고 있다. 전재수 시장 당선인이 강조해 온 해양수도 부산 구상은 단순한 도시 슬로건이 아니다. 조선·해운·항만·수산업·조선기자재·해양물류·북극항로 전략까지 포괄하는 부산의 미래 산업 전략이다. 그러나 해양수도는 배와 항만, 기업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들을 실제 산업으로 키우고 미래 투자로 연결하는 힘, 그 마지막 연결고리는 결국 금융이다.
부산이 해양수도가 되려면 조선소의 기술력, 해운사의 선대 확충, 항만의 자동화, 수산업의 고도화, 조선기자재 산업의 경쟁력 강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북극항로의 기점을 선점하기 위한 외교적·정책적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내빙선, 친환경선박, 항만물류 인프라, 저온물류 체계, 해상보험, 선박관리, 해양데이터 산업은 모두 막대한 장기 자금을 요구한다. 정책의 방향이 옳아도 자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산업은 움직이지 않는다.
특히 해운·조선 분야의 탄소중립 전환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국제해사기구의 해운 탄소규제 일정은 잠시 늦춰졌지만, 방향 자체가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속도는 조정될 수 있어도 친환경 선박, 대체 연료, 에너지 효율 개선, 항만의 저탄소화라는 흐름은 되돌리기 어렵다. 해상 풍력과 블루카본, 해양 탄소 금융, 해운기업의 부산 집적, 나아가 북극항로 기점 선점 역시 금융의 뒷받침 없이는 구호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현재의 자금 공급 체계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중견 조선사들이 선수금 환급 보증, 이른바 RG 발급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수주를 하고도 보증이 막히면 계약은 현실화하기 어렵다. 기술력과 일감이 있어도 금융이 병목이 되면 산업은 성장하지 못한다. 해양수도 부산의 가장 약한 고리는 바로 이 금융의 병목이다.
부산은 2009년 금융중심지로 지정된 이후 국제금융도시를 향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부산이 금융중심지라는 이름에 걸맞은 실질 기능을 갖추려면, 해양산업에 특화된 자금 공급 기능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서울에 있는 기존 금융기관의 일부 기능을 옮기거나 이름만 바꾸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동네에 중국집 하나가 있는데 간판만 바꾼다고 선택지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중국집이 생겨야 소비자는 선택할 수 있고, 공급자는 경쟁하며, 서비스의 질도 올라간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부산에는 새로운 금융 공급자가 필요하다.
그 첫 번째 날개가 정책 금융의 확충이다. 전재수 시장 당선인이 강조해 온 동남권투자공사의 조속한 설립은 그래서 중요하다. 다만 이름만 투자공사여서는 안 된다. 실질적으로 산업에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기관이어야 한다. 충분한 자본금이 필요하고, 그 자본의 질도 중요하다. 유동성이 낮은 현물 출자 중심으로는 실질적 금융 공급 능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채권 발행 등 안정적 자금 조달 수단도 필요하다. 자금 운용 역시 단순 대출에 그쳐서는 안 된다. 여신, 투자, 인수, 외환, 보증 기능을 함께 갖추어야 조선·해운·항만·물류 기업의 다양한 금융수요에 대응할 수 있다. 정부 보증도 사실상 필수다. 정부 신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낮은 조달 금리를 확보하기 어렵고, 시장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기 어렵다.
또한 산업은행과의 관계도 신중히 설계해야 한다. 동남권투자공사가 산업은행의 동남권 조직과 기능을 그대로 흡수하는 방식이라면, 결국 간판만 바꾼 중국집이 될 우려가 있다. 초기 안착을 위해 산업은행의 경험과 지원을 일부 활용하는 것은 불가피하더라도, 목표는 기능 이전이 아니라 기능 추가여야 한다. 산업은행은 기존 역할을 계속 수행하고, 그 위에 동남권투자공사라는 새로운 금융공급 축을 더해야 한다. 동남권투자공사는 산업은행의 축소판이 아니라, 동남권 산업과 해양 경제에 특화된 제2의 정책금융기관이어야 한다.
두 번째 날개는 민간 해양금융 플랫폼이다. 정책 금융만으로 해양수도 부산을 완성할 수 없다. 조선·해운·항만·수산·조선기자재 산업은 모두 장기 자본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시중은행은 과거 조선·해운 불황기에 큰 손실을 경험했고, 여신 담당자들이 사후 책임까지 부담한 기억이 있다. 은행이 다시 같은 위험을 단독으로 떠안으려 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은행을 억지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나누고 민간 자본이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민간 해양금융 플랫폼은 부산이 반드시 새로 만들어야 할 두 번째 금융 날개다. 싱가포르가 변동 자본 회사 제도를 통해 펀드가 머무를 수 있는 그릇을 만들고, 외화 금융의 유연성을 바탕으로 국제금융중심지로 성장했듯이, 부산도 이를 해양산업에 맞게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해양금융 투자회사 아래 친환경 선박, 조선기자재, 항만 인프라, 북극항로 물류 같은 구분 계정을 두고, 각 계정의 자산과 부채를 분리하면 위험은 낮추고 투자자는 넓힐 수 있다. 여기에 선박 가격, 용선료, 보험료, 기자재 수출입, 해외 투자자 배당처럼 달러로 움직이는 해양산업의 특성을 반영해 외화 자금 조달과 외화 투자를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는 장치를 결합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 금융의 부담을 줄이고, 시중 은행의 위험을 분산하며, 조선기자재와 중견조선사에도 새로운 자금통로를 열 수 있다. 무엇보다 부산에 펀드 설정, 투자심사, 회계·법률·평가·수탁·외환·리스크관리 기능이 실제로 쌓이게 된다. 금융중심지는 이름이 아니라 기능으로 증명된다.
물론 민간금융 플랫폼이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투자자 보호, 통 상규범, 외환 건전성, 자금 세탁 방지, 이해 상충 방지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특정 조선소나 특정 선사에 사실상 보조금을 주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 투자 대상은 공개된 기준에 따라 선정되어야 하고, 수익과 손실은 시장 원리에 따라 배분되어야 한다. 그래야 금융 당국과 투자자 모두가 신뢰할 수 있다.
해양수도 부산은 두 개의 금융 날개를 필요로 한다. 하나는 동남권투자공사를 중심으로 한 정책 금융의 확충이다. 다른 하나는 해양산업에 특화된 민간 금융 플랫폼의 구축이다. 정책 금융이 방향을 잡고 초기 위험을 나누어 준다면, 민간 금융 플랫폼은 더 넓은 자본을 해양산업으로 끌어오는 역할을 해야 한다.
부산의 미래는 바다에 있다. 그러나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배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배를 만들 돈, 항만을 바꿀 돈, 기자재 기업을 키울 돈, 친환경 전환을 가능하게 할 돈, 북극항로를 준비할 돈이 필요하다. 이제 부산은 해양산업의 도시를 넘어 해양금융의 도시가 되어야 한다. 금융의 두 날개를 달 때, 해양수도 부산은 비로소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다.
2026-06-1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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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티어] 부산의 미래는 ‘다시 해석하는 힘’에서 시작된다
부산은 오랫동안 만들고 실어 나르는 도시였다. 항구가 있었고, 그 항구를 통해 사람과 물자가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그 시대 부산의 힘은 ‘생산’이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이 한 도시를 찾는 이유는 달라졌다. 우리는 더 이상 물건만 사지 않는다. 그 공간의 공기와 태도, 그 지역이 품은 이야기까지 함께 경험한다. 커피 한 잔도 마찬가지다. 맛만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어떤 산지에서 왔는지, 누가 어떤 마음으로 내렸는지, 그 도시가 어떤 풍경을 가졌는지까지 함께 마신다. 결국 지금 시대의 경쟁력은 ‘브랜드를 만드는 힘’이고, 도시 역시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모모스커피가 화려한 도심이 아니라 영도 봉래동의 기름 냄새 나는 물양장 한편에 로스터리를 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조선소와 선박, 일하는 바다가 펼쳐진 그 풍경이야말로 부산을 먹여 살려온 ‘진짜 부산’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로스팅 공장을 닫힌 작업장이 아니라, 유리창 너머로 생두가 볶이고 포장되어 출고되는 과정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볼거리’로 만들었다. 동래 온천장의 오래된 골목, 영도의 원도심 바다, 해운대 마린시티의 현대적 풍경까지, 같은 부산이라도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한 잔의 커피에 담으려 했다. 그 바다와 산을 세계에 전하는 것이야말로 부산에 뿌리내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라 믿는다.
관광도시 부산이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머무름’이 ‘정주’로 이어져야 한다. 사람들이 찾아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살고 싶은 도시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볼거리와 경험만이 아니라 교통과 생활 인프라 같은 구조도 함께 갖춰져야 한다. 우리가 영도에서 주민에게 할인된 값으로 커피를 내리고, 주민 커피 교실을 열고, 봉래산과 금정산을 무대로 트레일 러닝 대회를 연 것도 잠깐 다녀가는 도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도시를 그렸기 때문이다. 커피박을 재활용해 시니어 일자리를 만드는 것처럼, 지역과 함께 나이 들어갈 방법을 고민하는 일까지가 관광도시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스페셜티 커피는 부산을 세계와 잇는 가장 좋은 언어다. 우리는 2012년부터 매년 산지를 직접 찾아 농부와 거래하고, 다이렉트 트레이드와 비영리 경매를 통해 공정한 거래 구조를 넓혀 왔다. 2019년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도, 최근 유럽 최대 커피 축제에서 ‘세계 최고의 카페’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도, 부산이라는 작은 출발점에서 한 걸음씩 쌓아 올린 결과였다. 좋은 커피라는 본질 위에 부산의 풍경과 문화를 입힐 때, 커피는 비로소 부산만의 브랜드가 된다. 부산이 세계 스페셜티 커피의 중심 도시로 불리기 시작한 것도 이런 작은 천착들이 켜켜이 쌓인 덕분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년과 로컬이다. 좋다는 것은 전부 서울로 향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부산에 완성도 높은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직접 와야만 경험할 수 있도록. 실제로 모모스에서 일하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온 동료가 절반이 넘는다. 하지만 청년이 부산에 머물게 하려면 멋진 공간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일하고 싶은 회사, 성장할 수 있는 일자리, 자기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 함께 많아져야 한다. 모모스가 커피 한 잔을 위해 건축·조경·디자인·브랜딩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해 온 것처럼, 좋은 브랜드 하나가 단단히 자리 잡으면 그 주변으로 연관 산업과 창작자가 모이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F&B와 디자인, 문화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일하기 좋은 공간’이 도시 곳곳에 늘어날 때, 비로소 청년은 떠나지 않고, 도시는 지속 가능해진다.
부산은 대한민국 남쪽 끝의 도시가 아니다. 바다와 산,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를 한 잔에 담아 세계로 전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할 일은 단 하나다. 부산이라는 도시를 다시 해석하는 것. 다시 해석한다는 것은 없던 것을 새로 짓는 일이 아니다. 기름 냄새 나는 물양장과 오래된 온천장 골목, 일하는 바다처럼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 온 풍경에서 가치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다. 그 시선 하나만 바뀌어도, 도시는 이미 가진 것만으로 충분히 새로워질 수 있다. 그 재해석이 더 큰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만들고, 결국 ‘우리 동네 브랜드’를 자랑스러워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2026-06-1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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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작은 것들을 위한 정치
곧 부산을 찾을 BTS의 월드투어 공연으로 부산이 들썩이지만 선거야말로 우리 일상에 가장 흥미롭고 스펙터클한 잔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투표율이 저조해져서 무관심과 냉소를 우려하던 때와 달리,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할 만큼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권자의 열기는 뜨거웠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저서 ‘정치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에서 정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측면보다는 희망적 사고와 주관적 열정이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곳이고, 그 점에서 인간의 특성을 가장 많이 닮아 있는 영역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 선거도 그랬다.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써내려 갔다.
먼저 절망의 기록부터 이야기해 보자. 〈부산일보〉가 짚었듯이 이번 부산 지방선거는 여성·노동·인권 감수성이 ‘증발’한 선거이기도 했다. 부산에서 국민의힘 여성 구청장 후보는 0명을 기록했고, 여야에서 내세운 청년 후보 역시 소수에 불과했다. 노동·장애·인권 등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후보 역시 드물었다. 개혁신당이 청년 후보를 내세워 부산시장에 도전한 것은 유의미한 성과지만 유세 중 음료 테러를 당해 청년 정치의 현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무관심·냉소 우려했던 이번 지선
투표 용지 부족할 만큼 열기 후끈
여성·노동·인권 감수성 부족 유감
후보·공약·선거운동 모두 퇴행적
그래도 곳곳서 소소한 희망의 싹
선택 가능한 대안으로 남게 되길
한편 부산 북갑 선거운동 과정에서 튀어나온 ‘오빠’ 발언은 거대 양당의 정치 성인지 감수성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지방자치제 시작 이래 30여 년이 됐지만 기초단체장 여성 후보 공천 비율이 여전히 한자릿수에 머물러 있는 현실이 이를 강력히 뒷받침한다.
여성신문이 이번 지방선거를 맞아 제작한 ‘성평등공약.zip’ 사이트에서는 전국 지방선거 후보자의 공약과 공보물 자료를 바탕으로 성평등 공약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는데, 광역단체장 후보 5명 중 1명은 성평등 공약이 하나도 없었으며, 있는 공약마저도 대부분 출산·보육 정책에 쏠려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선거의 패인 중 하나라는 분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응원봉 물결로 정치 공간에서 주목받았던 2030 여성 유권자를 집토끼 취급하며 이들에 대한 분석과 고민 없는 정책과 선거운동의 결과라는 것이다. 결국 여성 정책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 환경과 조건을 바꾸려는 노력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투표의 방향은 언제든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민주주의란 투표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라 어디에 투표할지에 대한 딜레마를 해결해 주는 체제이다.” 이는 정치사상가 보비오의 말이다. 다른 선택이 배제된 상태의 높은 참여는 민주주의와 관련이 없다. 투표에 대한 참여보다 정치적 대안을 조직할 자유가 먼저이며 그런 대안이 의미 있는 복수로 존재해야 투표 참여가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들에게 하나의 대안으로 작용했던 소수 정당들의 선전이 그 어느 때보다 빛을 발했다.
놀라웠던 성과 중 하나는 서울시장 선거 중 가장 규모가 작은 여성의당이 인적, 물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원내정당 후보를 제치고 4위를 기록한 사실이다. 지난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보다 1만 표를 더 얻어 유권자들의 공감을 산 것은 물론 ‘룸살롱 없는 서울’이라는 슬로건으로 의제 정당으로서의 가능성 또한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던 경북 안동에서 녹색당 시의원 후보가 당선된 것 또한 기록해야 할 중요한 성과다. 선거의 역동성과 마을 정치의 가능성을 동시에 실감할 수 있었다. 선거의 결과와 관계없이 연제구의 경우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진보정당 후보로 단일화에 성공하여 소수 정당에도 공정한 기회가 열렸고, 부산진구의 경우 기초의원 선거에서 노동당 김상희 후보가 3%가 넘는 득표율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다. 여당 후보이긴 하지만 장애인 당사자로서 최영아 후보는 수영구에서 지역구 시의원에 도전하여 장애인 의제를 가시화했다.
각자의 삶에서 비롯된 의제를 가진 사람이 정치 공간에 들어올 때, 정치는 비로소 다수 집단의 이해관계만을 처리하는 장치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담는 그릇이 된다. 여성이 여성 의제를, 청년이 청년 의제를, 장애인이 장애 의제를, 성소수자가 성소수자 의제를 직접 다루는 것이 당연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대안의 폭을 넓힌다는 점에서 정치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을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BTS의 노래 ‘작은 것들을 위한 시’는 대의와 큰 가치보다 바로 곁에 있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일상을 돌보는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정치에도 거대 양당의 대의명분과 거대 담론에 의한 정치적 양극화의 싸움보다는 작은 정당과 보다 많은 의제들이 선택 가능한 대안으로서 우리 곁에 지속적으로 머무르는 방식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2026-06-10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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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AI 대전환 앞에 선 부산의 생존 전략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 전 스마트폰으로 버스 도착 시간을 확인하고, 점심 메뉴는 앱 추천으로 고른다. 퇴근길에는 유튜브가 골라주는 음악을 듣는다. 우리는 이미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인공지능(AI)과 연결된 채 살아간다. 이제 AI는 일상은 물론 업무에서도 필수 도구가 됐다. 하지만 지금 세계의 선도 도시들은 이 AI를 단순히 ‘개인의 비서’로 쓰는 단계를 넘어, 도시 운영 자체를 바꾸는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복잡한 민원은 AI가 처리하고, 사고 위험은 사전에 예측해 대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처럼 행정·교통·복지 등 도시 서비스 전반을 AI로 재설계하는 흐름을 ‘AI 대전환’, 즉 ‘AX(AI Transformation)’이라 부른다.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AX는 결국 도시를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시스템’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세계 도시들은 지금 거대한 전환점을 지나고 있다. 과거 스마트시티가 센서를 설치해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집중했다면, 오늘날의 AI 도시는 그 데이터를 학습해 미래를 예측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행동하는 도시’로 진화하고 있다. 직관과 경험에 의존하던 도시 행정도 데이터 기반의 예측과 실행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모았느냐가 아니라, 이를 시민 삶의 질 개선에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글로벌 선도 도시들은 분명한 방향을 보여준다. 싱가포르는 행정 전반에 생성형 AI를 빠르게 도입하고, 두바이는 부처별 AI 책임자를 두어 실행력을 높였다. 뉴욕과 헬싱키는 AI 활용 과정을 공개하며 시민 신뢰를 확보하고 있다.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명확하다. 이들 도시는 AI를 기술 과시가 아니라 교통 혼잡, 범죄 예방, 노인 돌봄, 의료 접근성 같은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무엇을 해결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렇다면 부산은 어디쯤 와 있는가. 부산시는 5년간 4877억 원을 투입하는 AI 종합 전략을 발표하고, 에코델타시티를 중심으로 모델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분명 의미 있는 출발이다. 그러나 냉정히 보면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정부는 이미 ‘5극 3특’ 국가균형성장 전략 아래 광주(AX 실증), 대구(AX R&D), 전북(AI 팩토리), 경남(정밀 제조)을 중심으로 AX 연구·실증 거점을 선점하고 있다. 반면 부산은 아직 이 경쟁에서 뚜렷한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자칫 ‘순차적 검토 대상’에 머무는 후발 주자로 밀려날 가능성도 있다.
부산에는 다른 도시가 쉽게 갖기 어려운 강점이 있다. 세계적 수준의 항만과 해양 산업, 연구 기관의 집적, 그리고 해양수산부 이전으로 강화된 정책 역량이다. 부산의 AX는 이 강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특히 인접한 경남의 제조 특화 AI 거점과 연계해 부울경 초광역권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수많은 선박이 드나드는 항만 물류 데이터를 AI로 예측하고 자동화한다면, 부산항은 단순한 물동량 경쟁을 넘어 세계가 참고하는 스마트 항만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또한 해류와 기상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해양 재난을 예측하고, 이를 도심 침수 위험 지역 경보 시스템과 연계한다면 ‘재난에 강한 해양도시’라는 새로운 안전 모델도 구축할 수 있다.
그러나 AI 대전환이 산업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시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혁신은 혁신이 아니다. 복잡한 민원 절차는 간소화되고, 교통 약자는 대중교통을 더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독거노인의 위험 신호는 행정이 먼저 감지하고, 소상공인은 데이터 분석을 통해 매출 전략을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재난 상황에서도 시민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AI 전환이 실제로 작동하는 도시의 모습이다. AX는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일상을 바꾸는 변화다.
이 과정에서 지역 대학과 공공기관, 산업계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대학은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곳을 넘어, 정부 부처와 협업하여 지역 특화 데이터로 공공 서비스를 재설계하는 ‘지산학 AX 거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기업은 기술을 실증할 기회를 얻고, 부산시는 민간 기술을 수용하는 개방형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연결이 구축될 때 도시 전체가 하나의 유기적 시스템으로 작동할 수 있다.
지금 부산은 폭풍전야 앞에 서 있다. 세계 선도 도시들이 빠르게 AI 대전환을 이루고 있는 지금, 부산이 그 대열에 합류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다. 지금, 이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부산은 글로벌 AX 선도 도시로 나아갈 기회를 잃게 된다. 명확한 비전과 강력한 실행력, 그리고 투명한 행정을 통한 시민의 신뢰가 결합할 때, 부산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AX 선도 도시로 도약할 수 있다.
2026-06-0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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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칼럼] 산을 높이는 질문, 산을 내려오는 질문
브리아나 위스트는 그의 책 〈마운틴 이즈 유(The Mountain Is You)〉에서 서늘한 비유를 던진다. “산이 두 지각판의 충돌로 솟아오르듯, 당신의 산도 공존하면서 서로 충돌하는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욕구와 그 자리에 머물려는 욕구가 부딪칠 때, 사람은 스스로 제 발목을 잡는다. 위스트는 이 익숙한 자기 파괴(self-sabotage)야말로 우리가 매일 오르는 산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요즘, 유난히 많은 이들이 이 산을 오르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들 무언가를 쌓느라 분주하다. 자격증, 영어 점수, 사이드 프로젝트, SNS 브랜딩까지. 한 줄의 스펙을 더하려 어제보다 오늘 더 부지런히 달린다. 외국계 기업에서 홀로 모니터를 마주하며 일하는 나 역시 오래 그 대열에 섞여 있었다. 그런데 위스트의 질문법으로 그 분주함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꽤 충격적인 답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성공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안정감에 집착하고 있다.
이 불안에 기름을 붓는 것이 바로 어지러운 속도다. 어제의 필수 역량이 오늘은 한물 간 것이 되고, 새로 익힌 도구가 채 손에 익기도 전에 더 새로운 것이 등장한다. 흐름 하나를 겨우 따라잡으면 세상은 이미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솔직히 이 숨 가쁜 추격전은 흥미로운 동시에 멀미가 난다. 무엇을 더 쌓아야 안전한지 아무도 일러주지 않는데, 모두가 멈추면 큰일 날 것처럼 무언가를 쌓고 있다. 그렇게 트렌드의 속도는 ‘뒤처지면 끝’이라는 공포를 끊임없이 갱신하고, 우리는 그 공포를 잠재우려 또 한 줄의 스펙을 보탠다.
오늘날 청년 세대를 움직이는 동력은 ‘끊임없이 증명하라’인 듯하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목말라하는 것은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안도감이다. 정반대를 원하는 두 욕구가 부딪치니, 아무리 결과로 확인받아도 산은 좀처럼 낮아지지 않는다. 영어 점수도, 관리하는 몸도, 통장 잔고도, 취업도, 전문성에 대한 갈망도 실은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가지다. 형태만 다를 뿐 모두 ‘나는 가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려는 한 가지 욕구의 다른 얼굴인 셈이다. 더 깊은 자리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더 커진 뒤 감당해야 할 책임과 통제 불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웅크리고 있다.
증명 욕구는 의외의 곳에도 숨어 있다. 요즘 사람들은 정보를 좀처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좋은 글과 유용한 영상, 남들이 본다는 트렌드를 끊임없이 저장하고 갈무리하며 뿌듯해 한다. 그러나 그 부지런한 기록의 상당 부분은 배움이 아니라 ‘놓치면 뒤처진다’는 불안에서 나온다. 쉬는 일조차 편치 않은 이유도 같다. 게으름을 못 견디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 평화로운 상태 자체를 낯설어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은 더 많은 정보를 소비하는 삶이 아니라, 한 가지라도 깊이 살아내는 삶일 텐데 말이다.
그래서 요즘 부쩍 자기 정의(self-definition)라는 말이 귀해졌다. 사람들은 ‘OO형 인간’이라는 신조어나 몇 개의 해시태그 키워드에 자신을 욱여 넣으며 ‘나는 이런 사람’이라 빠르게 규정하고 안심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이해가 아니라 자기 분류에 가깝다. 진짜 자기 정의란 그럴듯한 라벨을 붙이는 일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이 진짜 필요한지를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외부의 어떤 기준보다 나 자신과의 약속을 먼저 헤아리는 사람만이, 트렌드가 아무리 바뀌어도 쉬이 흔들리지 않는다.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불안이 솟을 때 묻는 질문을 바꾸면 된다. ‘어떻게 하면 더 잘 할까’ 대신 ‘내가 왜 여기서 불안을 느끼는지’를 먼저 묻는 것이다. 전자는 끝없이 산을 높이는 질문이고, 후자는 비로소 산을 내려오게 하는 질문이다. 위스트는 책을 이렇게 끝맺는다. “결국 우리가 정복하는 것은 산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고.
다만 산을 내려온다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평화’를 뜻하는 건 아니다. 증명 욕구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게으른 휴식이 아니라, 의외로 또렷한 방향이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삶이 아니라, 적은 사람과 깊이 연결되는 삶. 수만 명에게 끊임없이 나를 입증하기보다 단 몇백 명과 진짜로 가닿는 일이 더 어렵고, 그래서 더 값지다는 감각이다. 자기 정의란 결국 ‘무엇을 그만 증명할지’를 고르는 일인지도 모른다. 넓이를 향한 욕망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깊이를 향한 자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세상이 당신을 한 줄의 스펙으로 줄 세우려 할 때, 당신은 스스로를 무엇이라 정의하는가. 더 정확히 묻고 싶다. 당신이 오늘도 넓히려 애쓰는 그것은 정말 당신이 닿고 싶은 깊이를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아직 한 번도 채워지지 못한 안도감을, 더 많은 사람의 인정으로 메우려는 먼 우회로인가.
2026-06-03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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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멈춰 선 블록체인 특구, 골목에서 답을 찾다
최근 부산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보도가 있었다. 국내 유일의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출발했던 부산 특구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놓였다는 내용이다. 6년간 416억 원이 투입됐지만 2022년 이후 신규 실증과제는 끊겼고,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실적은 없으며, 입주 기업 수도 4년째 17개사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었다. 더 아픈 대목은 숫자가 아니라 존재감이다. 업계 사람들조차 “부산에 블록체인 특구가 있었느냐”고 되묻는 상황이라면, 성과를 따지기 이전에 특구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그런데 같은 시기, 부산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지난해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64만 명을 넘었고, 관광 지출액도 1조 원을 돌파했다. 해운대와 광안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감천문화마을, 전포카페거리, 깡통야시장, 골목 맛집과 축제 현장까지 외국인들은 부산 구석구석을 걷고, 먹고, 찍고, 공유한다. 한쪽에서는 수백억 원을 들인 기술 특구가 멈춰 섰고, 다른 한쪽에서는 돈 들이지 않은 도시의 매력이 세계인을 불러들이고 있다. 부산 블록체인이 풀어야 할 다음 과제는, 바로 이 대비 속에 있다.
관광객의 설렘은 의외로 사소한 장면에서 멈춘다. 버스에 오른 외국인이 해외 카드를 꺼내지만 단말기는 반응이 없다. 교통카드는 없고, 충전하려면 현금이 필요하다. 식당 예약 앱은 국내 휴대전화 번호를 요구하고, 공연 예매는 본인 인증 앞에서 막힌다. 택시도, 숙소도, 골목 가게도 사정은 비슷하다. 손님은 돈을 쓰고 싶어 찾아왔는데, 도시는 그 돈을 받는 절차에서 멈칫한다. 실패한 결제 하나는 포기한 커피 한 잔이 되고, 못 탄 택시 한 번이 되고, 취소된 공연 표 한 장으로 남는다. 작은 불편처럼 보이지만, 쌓이면 결국 도시가 흘려보낸 매출이다.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이 눈에 띈다. 부산은 6년간 블록체인 특구에 적지 않은 돈을 쏟고도, 정작 블록체인으로 풀 수 있는 이 작은 불편 하나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니 질문을 바꿔볼 만하다. “특구가 잘했나 못했나”가 아니라 “부산의 블록체인은 그동안 누구의 불편을 풀어줬는가”다. 전문가들이 가장 큰 패착으로 꼽는 건, 블록체인을 마치 공장 짓듯 다루려 했다는 점이다. 본래 여러 서비스와 연결되며 함께 자라는 기술을, 부산은 정해진 울타리 안에서만 키우려 했다. 진짜 불편에서 출발하는 대신 ‘기술을 키울 공간’부터 그린 것이다. 지난 일을 탓하자는 게 아니다. 출발점을 바꿔보자는 이야기다.
다행히 그 작은 실험은 이미 부산에서 싹트고 있다. 부산의 한 대학은 외국인 유학생들의 불편에 주목했다. 학생증 발급과 재학 증명, 그리고 무엇보다 해외에서 한국으로 학비를 보낼 때의 번거로움이었다. 송금 한 번에 수수료가 붙고 며칠씩 걸리는 일이 예사다. 이 대학은 블록체인 기반의 ‘캠퍼스 지갑’을 준비하고 있다. 휴대전화 속 학생증과 디지털 증명서에서 시작해, 외국인 학생의 학비 납부, 나아가 지역 은행과 손잡은 교내 결제까지 한 걸음씩 넓혀가는 그림이다. 거대한 정부 사업이 아니라, 학생이 매일 부딪히는 불편에서 출발했다는 점이 핵심이다. 이미 서울의 한 대학은 블록체인 학생증으로 건물 출입과 도서관, 전자 출결을 하나로 묶어 검증을 마쳤다. 부산이라고 못 할 이유가 없고, 외국인 비중이 높은 만큼 오히려 더 절실하다.
상상을 한 뼘만 넓혀보자. 학생의 지갑이 도시의 지갑이 된다면 어떨까. 외국인 관광객의 결제와 교통, 예약, 관광 패스, 세금 환급, 안전 인증까지 하나로 묶는 ‘부산월렛’ 말이다. 국적과 상관없이 휴대전화만 있으면 바로 만들고, 카드 없이도 골목 가게에서 결제되는 지갑. 부산이 그토록 바라던 ‘더 오래 머물고, 더 많이 쓰게 하기’는 결국 이런 작은 마찰을 지우는 데서 시작된다.
이 흐름은 머지않은 미래와도 맞닿는다. 곧 AI 비서가 사람을 대신해 식당을 예약하고, 택시를 부르고, 입장권을 사주는 시대가 온다. 그런데 AI에게 내 신용카드 번호를 통째로 넘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얼마까지, 언제, 어디에만 쓸 수 있다’고 미리 한도를 걸어둔 지갑이 필요해진다. 세계적 기업들이 올해 잇따라 선보인 AI 결제 기술이 하나같이 블록체인 지갑 위에 세워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부산이 데이터센터를 미래 먹거리로 키우겠다면, 그 위에서 돈이 오갈 통로 역시 지금부터 그려둬야 한다.
부산은 지난 6년간 블록체인 도시의 토대를 다지는 데 적지 않은 공을 들였다. 다만 그 위에 무엇을 올릴지에 대한 답은, 이제 현실의 불편에서 찾을 때가 됐다. 외국인 관광객이 골목에서 지갑을 열다 멈칫하는 순간, 유학생이 학비 송금과 구내식당 결제 앞에서 헤매는 순간. 이런 생활 속 작은 불편을 푸는 데서 다시 출발하면 된다. 멈춰 선 특구라는 평가도, 부산이라면 충분히 다른 이야기로 바꿔 쓸 수 있다.
2026-06-0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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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선거의 바로미터, 여론조사와 그 규제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최근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는 조사기관마다 큰 차이를 보이고, 낮은 응답률과 표본의 대표성 문제 등 다양한 지적이 일고 있다. 여론조사는 단순한 통계자료를 넘어 유권자의 판단과 선거 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이 적지 않다. 이에 공직선거법은 여론조사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규제를 두고 있으나, 여전히 여러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사회적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유권자들은 본인의 동의 없이 휴대전화로 여론조사 전화가 걸려오는 것에 대한 불안과 불편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공직선거법상 허용된 ‘가상번호 제도’에 따른 것이다. 가상번호는 실제 휴대전화 번호를 직접 제공하지 않고 비식별화된 번호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통신사·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론조사기관 간 다층적 전달체계를 전제로 제한적으로 제공된다.
공직선거법 제108조의2는 선거여론조사기관이 공표 또는 보도를 목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경우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거여론조사기관은 관할 심의위원회를 거쳐 이동통신사에 가상번호를 요청할 수 있다. 이렇게 가상번호 제공의 법적 근거는 공직선거법에 마련되어 있으나, 개인정보보호법과의 관계나 정보관리 범위에 대한 세부 기준은 미비한 실정이다. 또한 공직선거법에 선거 목적 외 사용 금지, 제3자 제공 금지, 조사 종료 후 즉시 폐기, 제공거부권 고지 등의 보호장치가 존재하지만, 향후 정보제공 절차와 관리 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공직선거법상 여론조사에 대한 규제는 어떠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을까. 크게는 세 가지 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기준 마련과 심의, 시정명령 등의 감독 체계이다. 둘째, 여론조사를 수행하는 기관에 대한 등록 및 신고 제도이다. 셋째, 왜곡된 여론조사 결과의 공표 금지와 선거 직전 공표 제한 등 조사 내용과 공표 방식에 관한 규제이다. 선거를 앞둔 시기에는 여론조사를 수행한 기관의 적법성과 공표 방식을 둘러싼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108조 제3항은 여론조사기관이나 방송사·정당이 아닌 자가 선거 관련 여론조사를 실시하려는 경우 조사 개시일 전 2일까지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과 관련하여 자주 문제되는 사례로는 인터넷 카페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정치 성향 설문조사가 있다. 단순한 의견조사처럼 보이더라도,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로 판단될 경우 법 위반이 될 수 있다.
또한 공직선거법 제96조는 누구든지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왜곡하여 공표하거나 보도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또한 방송사나 신문사는 객관적 자료 없이 선거 결과를 단정적으로 예측하는 보도를 할 수 없다. 이와 함께 선거 직전에는 이른바 ‘깜깜이 기간’이라 불리는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제도가 적용된다. 공직선거법 제108조 제1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선거일 전 6일부터 투표 마감 시각까지 정당 지지도나 당선인을 예상하게 하는 여론조사의 결과를 공표하거나 보도할 수 없다.
이 제도는 막판 여론조사가 부동층의 판단에 과도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이다. 실제로 여론조사는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승패 프레임을 형성한다. 이는 우세한 후보에게 표가 쏠리는 ‘밴드왜건 효과’를 유발하기도 하고, 반대로 열세 후보에게 동정·응원 심리가 작동하는 ‘언더독 효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국 여론조사는 단순한 통계자료가 아니라 유권자의 심리와 표심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변수라는 점에서 여론조사 공표금지 기간의 실익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해당 기간동안 유권자의 알권리가 제한된다는 점에서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거나 제도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이에 대한 폐지 의견을 낸 바 있다.
현행법은 여론조사에 대하여 이미 상당한 수준의 규제를 마련하고 있으며,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많은 사례에 대한 조사 및 판단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다만 법에서 형식적 투명성을 담보하고 있음에도, 유권자가 체감하는 정보 환경은 아직 혼란스럽다. 선거의 공정성, 정보의 왜곡 방지와 함께 유권자의 알권리 및 개인정보보호, 나아가 여론조사에 노출되지 않을 의사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여론조사의 기능과 효율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유권자의 권리를 보다 균형있게 보장할 수 있는 세심한 제도적 보완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2026-05-2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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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런티어] ‘될 때까지’ 투자해 부산형 유니콘으로 키웁니다
부산에서 만난 한 창업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투자를 받으려면 결국 서울로 가야 하더라고요.” 좋은 기술과 시장, 팀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단계로 넘어갈 다리가 부족했다.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이것은 한 기업의 하소연이 아니라 지역 창업 생태계가 마주한 질문이다. 우리는 창업가를 잘 키우고 있는가? 아니, 더 정확히 묻자.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운 뒤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린아이에게는 격려와 보살핌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이는 자라서 언젠가 사회로 나가야 한다. 창업도 마찬가지다. 예비 창업자와 초기 기업 보육은 중요하다. 하지만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려면 보육을 넘어서야 한다. 넘어선다는 것은,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성장하고, 지역 인재를 채용하고, 지역에 뿌리내리는 일이다.
그동안 지역 창업 정책은 아이를 돌보는 일에 익숙했다. 창업 교육을 하고, 사무실을 제공하고, 시제품 제작을 도왔다. 그러나 기업이 스스로 설 수 있을 만큼 성장하지 못하면 보육은 출발선에서 끝난다. 창업 기업도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더 큰 시장과 인재, 과감한 자본을 만나야 한다. 나는 창업 보육의 끝판왕은 투자라고 생각한다. 투자는 “시장이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인정하는 신호”다. 창업가가 다음 단계로 건너가는 다리다.
부산의 고민도 여기에 있다. 좋은 기술과 창업가는 있지만, 성장의 순간마다 서울을 바라보게 된다. 투자자와 고객, 멘토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어야 한다. 창업가가 부산에 남아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가? 부산에서 창업하고, 투자받고, 글로벌로 진출하는 길을 충분히 열고 있는가.
저수지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퍼지듯, 지역 창업 생태계에도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좋은 창업자·멘토·투자사가 부산에서 만나야 한다. 멘토는 길을 함께 찾는 사람이어야 하고, 투자자는 단순히 돈을 대는 사람이 아닌, 기업의 가능성을 세상에 증명해 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만남이 많아질수록 창업가는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얻는다.
부산기술창업투자원이 하려는 일도 바로 그 물결을 만드는 일이다. 창업-스케일업-글로벌 진출까지 끊김이 없는 성장 사다리를 놓고, 창업가가 필요한 순간에 사람과 자본을 만나게 하는 일이다. ‘부기테크’ 같은 IR 채널 역시 같은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부산에 좋은 스타트업이 많다고만 해서는 부족하다. 보여줘야 한다. 보여야 연결되고, 투자와 성장으로 이어진다.
왜 스케일업하는 스타트업을 키워야 할까? 답은 일자리에 있다. 피지컬 로봇 자동화가 확산하면 AI, 대기업의 정형화된 일자리는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다르다. 초기 스타트업은 정해진 일만 하는 사람이 드물다. 한 사람이 기획·영업·기술을 함께 맡는다. 스타트업이 성장하고 고객이 늘수록 다양한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스타트업의 성장 자체가 일자리다.
그렇다면 지역은 일자리를 밖에서 기다릴 것인가, 스스로 만들어낼 것인가? 일본 구마모토가 TSMC 유치를 계기로 지역 산업과 인재 흐름을 바꾸고 있듯, 지역 혁신에는 강한 앵커가 필요하다. 그러나 부산의 앵커를 외부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 부산에서 태어난 스타트업을 키워 대기업으로 만드는 일, 그것이 부산의 미래 혁신 전략이다.
이제는 창업 숫자보다 성장의 깊이를 물어야 한다. 지역 펀드를 키우고 투자사가 부산에 머물게 하고, 대학과 병원, 항만, 공공기관이 스타트업의 실험장이 되어야 한다. 시민도 창업을 도시의 미래로 받아들여야 한다. 창업은 일부만의 도전이 아니라, 지역 일자리와 산업을 바꾸는 도시의 과제다.
어린아이를 보듬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도시의 미래는 고등학생을 어떻게 키우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 부산 창업 정책은 보호에서 성장으로, 지원에서 투자로, 행사에서 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혼자 가면 길이 되고, 같이 가면 역사가 된다”라고 했다. 창업가 혼자서는 길을 만들 수 없다. 멘토와 투자자, 대학·기업·시민이 응원할 때 그 길은 도시의 역사가 된다. 창업가가 서울로 떠나지 않아도 되는 도시. 부산에서 자라고, 투자받고, 세계로 나가는 도시. 부산은 “될 때까지” 키우는 도시가 되겠다.
2026-05-2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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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로365] 당신의 한 표는 부산의 '생존 매뉴얼'이다
오는 6월 3일, 부산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라는 중대한 분수령을 맞이한다. 새 정부 출범 1년을 지나는 시점에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단순한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 소멸의 임계선 앞에 선 부산의 미래를 결정짓는 자리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전히 ‘누가 돼도 내 삶은 바뀌지 않는다’는 냉소가 흐른다. 과연 그러한가. 우리가 손에 쥔 ‘선거권 사용 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을 때, 그 냉소의 비용은 고스란히 내 일상과 지역 사회로 배달된다.
가전제품 하나를 살 때도 우리는 설명서를 정독한다. 잘못 다루면 고장이 나고, 사람이 다치기 때문이다. 하물며 향후 4년간 부산의 해묵은 숙제를 풀어갈 ‘일상의 경영자’를 뽑는 일은 어떠해야 하는가. 지금 부산의 자화상은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 섞인 수식어에 압축돼 있다. 부산은 2021년 특·광역시 가운데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5%를 넘어섰다. 광역시 최초로 ‘소멸위험지역’ 단계에도 들어섰다. 청년이 수도권으로 떠난 빈자리는 적막이 채우고 있다. 헤밍웨이의 소설에서 노인이 사투 끝에 거대한 청새치를 잡고도 결국 뼈만 남긴 채 항구로 돌아왔듯, 부산이 추억의 잔해만 부둥켜안은 도시로 남는 일은 막아야 한다.
‘아파트’로 대변되는 정주 여건의 양극화도 시민의 삶을 팍팍하게 만든다. 우후죽순 들어서는 고층 아파트들이 부산의 상징인 바다 조망권을 사유화하는 사이, 원도심 노후 주거지는 재개발의 덫에 걸려 공동화되고 있다. 해수면 상승과 연안 침식, 폭염과 폭우의 일상화는 ‘바다를 품은 도시’ 부산의 안전을 정면으로 위협한다. 기후 위기는 자연현상이지만, 도시의 대비와 적응 수준은 정책의 영역이다.
이번에 선출될 시장과 구청장, 국회의원은 이 난제를 풀 실질적 권한을 위임받는다. 예산 편성과 인사, 입법과 조례 제정이라는 강력한 도구가 모두 이들의 손끝에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노인 복지 예산의 효율적 배분, 산업은행과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의 완수, 북항 재개발과 가덕도신공항 적기 개항, 북극항로 환적 거점화, 부산형 급행철도(BuTX) 구축, 그리고 난개발을 막는 도시계획 수립이 모두 이들의 결정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부산은 ‘우리가 남이가’라는 한마디로 요약되는 지역주의 정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30여 년 전 한 복국집에서 시작된 이 구호는 지금도 선거철이면 부산 시민의 합리적 선택지를 좁히는 보이지 않는 족쇄로 남아 있다.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단순한 연결고리만으로 특정 후보를 칭찬하거나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일은 위험천만하다. 그들이 쥐는 권한은 모든 통치 행위의 향방을 가르고, 한 개인의 강점과 약점이 그대로 시정과 국정의 역량과 한계로 옮겨와 내 삶과 지역 공동체 전체를 한꺼번에 바꿔놓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같은 학교 동문도, 같은 고향 향우도, 같은 정당 지지자도 아니다. 신공항이 늦어지면 함께 손해 보는 시민이고, 청년이 떠나면 함께 늙어가는 부모이며, 바다가 병들면 함께 위협받는 이웃이 진짜 ‘우리’다. 이 매뉴얼의 첫 경고문은 그래서 분명하다. 단순한 연고와 정서적 일체감만으로 결정 버튼을 누를 때, 오작동의 책임은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있다.
매뉴얼의 본문에는 세 가지 검증 항목이 담겨야 한다. 첫째, 후보의 과거 행적이다. 무엇을 약속했고, 무엇을 지켰으며, 무엇을 어겼는지를 사실에 근거해 살펴야 한다. 둘째, 현재 행보의 정합성이다. 내건 공약이 부산의 현안과 맞물리는지, 재원 조달 방안은 구체적인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셋째, 미래의 직무 수행 역량이다. 위기 앞에서 권한을 사익이 아닌 공익에 쓸 인물인지, 그의 강점과 약점이 부산의 과제와 어떻게 맞물릴 수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인상과 분위기라는 신기루가 아닌, 사실과 검증이라는 견고한 언어가 매뉴얼의 본문을 채워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권한의 오작동을 막고 부산의 4년을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다.
권력의 진짜 주인은 투표하는 시민이다. 향우회나 동호회의 회장직조차 결국 한 사람의 몫이고, 그 사람이 모임의 향방을 가른다. 하물며 시민의 일상을 4년간 좌우할 자리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6월 3일, 투표소로 향하는 발걸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이 후보는 ‘노인’을 예우하며 ‘청년’의 미래를 열 혜안이 있는가. ‘바다’를 공존의 자산으로 지켜낼 의지가 있는가. ‘아파트’ 숲에 가려진 시민의 권리를 회복할 역량이 있는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 권력을 올바르게 작동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주권자의 준엄한 한 표뿐이다. ‘진짜 일꾼’을 가려내는 수고로움이야말로 향후 부산의 일상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생존 매뉴얼이다.
2026-05-25 [1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