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의료개혁특위, 지역·필수의료 강화에 흔들림 없어야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료개혁특위)가 25일 공식 출범했다. 특위는 그동안 지적돼 온 의료 관련 핵심 문제의 해법을 모색한다는 취지 아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정책을 구체화하는 기구다. 하지만 예상됐던 대로 의료개혁의 당사자인 의사협회와 전공의협회 등 의사단체들은 이날 특위에 불참했다. 정부가 양보안을 내고 특위를 통한 대화의 길까지 열었는데도 이를 거부한 채 의대 증원 백지화 주장만 고수하는 의사들의 행태는 도무지 납득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사리 출범한 특위가 지역·필수의료 강화를 중심으로 의료개혁 과제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날 특위에는 노연홍 위원장을 비롯한 18명의 민간위원과 사회부총리 등 6명의 정부위원 등 모두 24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노 위원장은 “의료개혁은 교육, 지역 문제, 과학기술 등 사회 전반과 연관된 문제”라고 강조했는데, 이는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사회적 협의체 논의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할 것이다. 환자와 의사 모두 안심할 수 있는 의료 환경을 만들려면 법안 마련과 재정 투자가 수반돼야 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특위는 중증·필수의료 보상 강화, 의료 전달체계 정상화, 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 도입, 의료사고 안전망 강화 등 4개 과제를 선정해 향후 집중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정부는 이미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원칙에서 한발 물러서서 유연한 입장을 취한 바 있다. 얼마 전에는 의과대학 입학 모집인원을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는 양보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의료계는 이에 아랑곳없이 의대 증원 정책의 폐기와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고 특위 참여를 거부한다. 한 치 양보 없이 굴복만 강요하는 태도는 국민도 정부도 안중에 없는 집단 이기주의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구체적으로 원하는 게 있다면 특위에서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면 된다. 특위 구성이나 의제 설정이 불만이라면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밝히면 되고 다른 방식의 사회적 협의체가 필요하다면 그 또한 함께 의논하면 될 일이다.
특위가 의료계의 불참 탓에 반쪽짜리로 출범했지만 의료개혁 추진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특히 지역과 필수의료를 살려야 한다는 데에는 대다수 국민들이 동의한다. 애초 필수의료 인력 부족과 중앙-지역 간 의료 격차를 메우기 위해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나온 것도 그런 의미였다. 지역·필수·공공의료의 취약성 해소가 의료개혁의 본질이라는 사실은 의료 공백 사태 속에서 벌써 입증됐다. 환자와 국민들의 고충이 날로 커지는 시점에서 사회적 협의체를 통한 의료개혁의 타협안 도출이 시급하다. 정부와 의료계가 어떤 형태로든 만나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은 의료계가 전향적인 자세로 대화의 장에 나와야 할 때다.
2024-04-26 [05:12]
-
[사설] 부산상의 'HMM 본사' 부산 유치 추진을 환영한다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옛 현대상선) 본사 부산 유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부산항을 거점으로 한 국적 해운사 유치는 해양수도 부산의 숙원이었는데 최근 HMM 매각 협상 과정에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여기에 부산상공회의소 양재생 회장이 취임 일성으로 HMM 본사 부산 유치를 강조하면서 더욱 탄력을 받는 모양새다. 부산의 경제 수장이 대기업 본사 부산 유치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면서도 반가운 일이다. 양 회장은 25일 전정근 HMM 해원노조위원장을 부산상의로 초청해 본사 부산 이전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본사 부산 북항 건립을 놓고 긍정적 대화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HMM은 부산항을 모항으로 출발해 글로벌 해운사로 성장했다. 1967년 부산에서 설립돼 1990년대까지 세계 10위권 해운사로 도약했으나 2000년대 이후 글로벌 해운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다 2016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로 글로벌 해운 물동량이 급증하면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현재 국내 1위, 세계 8위 규모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내 수출입 물동량의 90% 이상이 부산항에서 처리되고 있고 실질적 업무도 부산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본사가 부산에 위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앞으로 북극항로를 통한 부산항 성장 전망을 감안하면 본사를 부산으로 옮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부산의 글로벌 허브도시 도약을 위해서도 HMM 본사 부산 유치는 중요한 모멘텀이다.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의 중심축이 해양과 금융이다. 해양 관련 공기업들이 모두 부산에 입지하고 있고 HMM 대주주이자 해운사를 지원하는 한국해양진흥공사 본사도 부산이다. 해양 분야의 집적과 시너지를 위해서도 HMM 본사 유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북항재개발로 본사 입지를 위한 여건도 조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직원 2000명에 최근 3년간 연간 매출액이 8조~18조 원에 이르는 대기업이 부산에 온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상징성을 갖는다. 부산이 글로벌 해운 중심지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국가균형발전이나 서울과 부산의 두 바퀴로 성장하는 대한민국이 구호로만 되는 일은 아니다. HMM과 산업은행 본사 부산 유치와 같이 실질적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 경제에 활력을 일으킬 대기업이 부산으로 와야 수도권에 대응하는 경제권 역할이 가능하다. 글로벌 허브도시특별법도 결국 국내외 대기업의 부산 유치를 위한 것이다. HMM 본사 부산 유치의 경우 앞서 서병수 전 부산시장이나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추진을 약속했고 심지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약에도 포함됐다. 박형준 부산시장도 적극적이다. 여야가 힘을 합해 추진해야 하는 일이라는 말이다. HMM과 산은의 부산 본사 유치가 하루빨리 성사돼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의 주춧돌이 되길 희망한다.
2024-04-26 [05:10]
-
[사설] 침체일로 부산 산단 체질 개선해 신성장동력 돼야
한국 경제의 한 축이자 기둥인 부산의 국가산업단지가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음이 들린다. 산단 곳곳에는 공장 매매·임대 스티커가 즐비하고 입주기업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기업들의 폐업도 줄을 잇는다. 지역 산단 전체 고용 인원은 1년 만에 2000여 명이 줄었다. 전국의 국가산단 평균 가동률은 84.1%지만, 녹산산단 가동률은 겨우 74.1%에 머무는 수준이다. 5년 전에 비해 녹산산단 입주업체는 114곳이 감소해 텅 빈 공장이 많은 상태다. 한마디로 총체적인 위기 신호다. 이는 부산 전 지역 산단 모두가 처한 상황으로 제조업 중심의 산단 성장엔진이 꺼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산단은 부산뿐만 아니라 한국 경제의 근간이다.
지역 산단에서 확인되는 현장의 몰락 정도는 심각하다. 〈부산일보〉 취재진이 찾은 조선기자재와 기계 생산업체 밀집 지역인 부산 강서구 녹산산단 한 골목에선 기계 돌아가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고 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고 한다. 경기 상황은 IMF 때보다 더 힘들다고 아우성친다. 고물가, 고금리로 인해 기업 자체적으로 혁신을 꾀하기도 힘들고 연구 개발할 고급 인력 수급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산단을 나가려는 기업은 있어도 입주하려는 기업은 찾아보기 힘든 이유기도 하다. “조선기자재 업체였는데 지금은 나가고 공장 대신 냉동창고로 쓰이는 것으로 안다”고 말한 한 직원의 말은 지역 산단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활력 잃은 산단은 비단 녹산만이 아니다. 신평장림산단, 회동·석대도시첨단산단, 반룡산단 등 부산 지역 산단 전체가 비슷한 현상을 보인다. 신평장림산단은 오후 5~6시만 되면 산단 내 모든 공장의 불이 꺼지고 적막감만 감돈다. 지난해 3분기 누계 수출액은 21.3%나 줄었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 비중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부산 산단 특성상 산단 입주기업 상당수가 원자재 가격 상승, 대출 이자 상승을 버텨낼 체력이 바닥났다고 분석한다. 부산 산단 27곳 중 20년 이상된 곳이 8곳에 달하고, 중장년 인력 중심의 ‘늙은 산단’이 돼버린 것도 문제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지역 산단이 무너지면 부산의 미래도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가만히 앉아서 침체의 늪에 빠질 순 없다. 부산 산단의 산업 다각화는 위기를 극복하는 돌파구가 돼야 한다. 산업 경쟁력의 기반인 산단을 미래형으로 바꾸는 ‘산단 대개조’가 필요하다. 외곽에 산단이 몰려있는 데다 특정 분야에 집약된 부산 산업 구조상 글로벌 위기가 닥쳤을 때 산단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기업을 적극 유치하고, 부산 기업들이 첨단 산업 등 신성장 동력을 찾을 수 있도록 체질 개선을 위한 다양한 지원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노후 산단의 환경 개선도 필요하다. 지역 연구개발을 활성화하고 고급 인력이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산학은 물론 부산시와 기초지자체도 적극 협력에 나서야 한다.
2024-04-25 [05:12]
-
[사설] 빈집 해결 나선 영도구, 원도심 활력 제고 성과 내길
주거지 내 공·폐가는 도시의 활력과 매력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치안과 위생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흉물로 장기간 방치된 건물은 외벽이 무너지거나, 안팎에 쓰레기가 쌓여 있기 일쑤다. 우범 지대가 되는 것도 순식간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을 빌리자면, 동네에서 몇 곳으로 시작한 빈집이 방치되면 어느샌가 슬럼가로 변모할 수도 있다. 국가 차원에서 ‘인구 감소 지역’으로 지정된 부산 동·서·영도구뿐만 아니라 부산진구 등 산복도로를 낀 고지대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같은 숙제를 안고 있다. 부산 영도구가 빈집을 매입해서 정비한 뒤 주민에게 돌려주는 데 사용할 기금 마련에 나선 것도 같은 문제의식의 일환이다.
‘빈집 기금’을 전국 처음으로 마련해 폐가 문제에 적극 대응한 부산 서구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서구는 2021년 도시재생·빈집정비기금 30억 원을 확보해 1000곳가량의 공·폐가 중 100곳을 정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결과 무단 투기 쓰레기 더미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악취·해충으로 고통을 주던 흉측한 공간이 주민 쉼터로 재탄생했다. 치안 사각지대는 밝은 LED 조명과 함께 순찰차 전용 주차장이 설치돼 여성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빈집 정비 사업으로 정주 환경이 개선되면서 마을 분위기가 밝게 바뀐 것이 가장 큰 성과일 것이다. 또 영도구 등 다른 기초지자체들에 좋은 선례가 됐다.
영도구는 부산에서 처음으로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30%를 넘은 초초고령화 지역이다. 젊은 세대의 유출과 맞물리면서 ‘나 홀로’ 노인과 공·폐가가 동시에 급증하고 있다. 영도구도 버려진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빈집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소유주의 동의를 받아 구청 예산으로 철거하고 3년간 빌려 쓰던 기존 정비 사업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 지역 내 빈집이 지난해 1147곳에서 올해 1339곳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인 것도 ‘매입 후 개발’로 방향을 튼 계기다. 폐가를 주민 편의·공공시설로 바꾸는 영도의 ‘빈집 기금’ 사업이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고 나아가 원도심 재생 사례가 될지 기대된다.
부산시는 올해 ‘부산형 빈집 정비계획’을 마련하고 16개 구·군 빈집 1만 1000여 곳에 대한 실태 조사를 실시한다. 다만 무허가 주택은 통계에 잡혀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실태를 밝힌 다음 부산시가 내놔야 할 것은 효율적인 활용 방안이다. 텃밭, 돌봄센터, 도서관, 취약 계층 임대 주택 등 선택지를 다양화해야 한다. 버려진 빈집을 자원으로 활용한 창의적인 사례도 참조해야 한다. 충북 충주의 관아골은 빈집을 저렴하게 고쳐 쓸 수 있게 젊은 층에 제공해 인구 유입과 관광객 유치에 성공했다. 부산도 영도·서구의 경험을 더 발전시켜 나가면 된다. 그게 원도심이 활력을 되찾는 길이다.
2024-04-25 [05:10]
-
[사설] 부산 교육 대토론회, 공교육 정상화에 방점 둬야
학생·교사·학부모가 모두 행복한 학교 현장을 만들자는 취지의 ‘교육공동체 회복 대토론회’(이하 대토론회)가 부산에서 시작됐다. 22일 부산시교육청·부산시·부산시의회 공동 주최로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개막식과 개막 토론회가 그 출발점이다. 이날 토론에서는 무너진 학교를 되살리기 위해 학생·교사·학부모 세 주체의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교권이 존중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 데 뭉쳤다. 대토론회는 향후 분야별 세부 주제에 따라 9월까지 이어진다. 부산발 ‘교육공동체 회복 프로젝트’라는 기치답게, 형식적인 행사에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미래 교육의 길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 학교 현장에는 학생과 교사 간 애정과 존중이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근년 들어 이를 분명하게 뒷받침하는 사례는 끊임없이 발생하는 교권 추락의 현실이다. 우리나라 성인 남녀 44.5%는 ‘교권 침해 상황이 심각하다’(2021년 한국교육개발원 조사)고 보고 있다. 학생 인권 강조, 교원에 대한 불신, 학생·학부모의 인식 부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교사들 10명 중 6명은 아예 아동학대 신고 대상이 되거나 그런 동료 교사를 곁에 둔 경험이 있다고 한다. 지난해 7월 악성 민원에 시달리다 생을 버린 한 초등 교사의 죽음은 교권 붕괴의 심각성을 전국에 알린 사건이었다. 생존권까지 위협받는 교사, 벼랑 끝에 선 교권은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사회문제다.
하지만 이는 어느 한쪽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부인할 수 없다. 교권 추락 현상이 학생 인권의 지나친 강화 탓이라는 관점은 전적으로 수용하기에는 부족한 측면이 있다. 지난 시절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일방적 복종을 강요당하는 오랜 암흑의 시대를 겪었다.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가는 학생 인권에 교권 추락의 모든 책임을 돌리는 건 부당하다. 인권은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모두 소중한 것이다. 양쪽이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학부모도 적극적인 참여와 인식 전환이 필요한 건 물론이다. 학생·교사·학부모 모두가 믿고 협력해야 교육의 붕괴를 막을 수 있다.
이번 대토론회는 전국 교육청 중 부산에서 처음으로 마련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교권’ ‘학습권’ ‘교육공동체 회복’을 주제로 향후 원도심·동부산·서부산권에서 각 세 차례씩 열리고 9월에는 종합토론회까지 예정돼 있다. 학생·교사·학부모가 모두 참여하는 집단 토론을 통해 학교 현장의 회복 방안을 찾겠다는 의지는 높이 살 만하다.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지려면 겉만 번지르르한 생색내기용 행사로 끝나서는 안 된다. 막연한 ‘사랑’이니 ‘존경’ 같은 추상적 언어로는 이 엄중한 현실을 바꿀 수 없다. 대토론회가 교육 당국과 정부를 견인해 교권 회복을 넘어 궁극적으로는 공교육 정상화의 길을 여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2024-04-24 [05:12]
-
[사설] 의사들에게 지역의료 공백·환자 고통은 남 일인가
의정 갈등이 해소될 조짐이 없다. 의사집단이 요지부동인 탓이다. 사태의 발단인 의대 증원 규모와 관련해 정부는 기존 2000명에서 최대 절반까지 줄일 수 있다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 등은 “단 한 명도 늘릴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전공의 대거 이탈이 두 달 이상 이어지고 있는 데다 조만간 의대 교수들의 무더기 사직까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환자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는 형편인데도 의사집단의 전향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이익을 관철하려는 의사집단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의대 교수들이 보이는 현재 모습에서 더 깊은 탄식이 나온다. 스승으로서 전공의 복귀를 종용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사직을 강행하겠다며 정부를 으른다. 이로 인해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의료공백 사태는 점점 더 심각해져만 간다. 거기에 더해 몇몇 대학의 의대 교수들은 외래진료와 수술을 부분적으로 중단하는 방안까지 논의한다고 한다. 그와는 별도로, 의협 등은 25일 출범하는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위에도 불참 의사를 밝혔다. 지역·필수의료 지원 등 광범위한 의료개혁 방안을 다룰 기구인데도 대안은 제시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모두가 환자는 안중에 두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테다.
의료공백에 따른 환자들의 고통은 이미 한계점에 다다랐다. 한시가 급한 중증 환자들의 불안감이 특히 클 수밖에 없는데, 의료인력 부족으로 예정된 치료와 수술이 돌연 취소되거나 지연되는 경우도 실제로 잇따르고 있다. 지역별로 각 대학병원의 수술률과 병상 가동률이 예년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환자가 치료받을 병원을 찾아 헤매다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도 속출한다. 이런 형편에 의대 교수들까지 무더기로 사직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짐작조자 어렵다. 정부는 사직서 제출 규모가 작아서 현실적인 피해는 적을 것으로 전망하지만 환자들의 불안감을 덜어주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의사집단은 의대 정원과 관련해 발전적인 대안을 제시한 적이 없다. 대학별 자율 증원도 수용할 수 없다며 논의 자체를 거부한다. 의료개혁특위에도 참여할 의사가 없다. 오로지 정부를 향해 백기투항을 요구할 뿐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협상 조건으로 복지부 차관 경질 등을 운운한다. 사안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요구다. 의사집단의 이런 모습은 자신의 이익만 관철하려는 아집과 트집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나아가 국민의 열망인 의료개혁 자체를 무산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든다. 이런 우려와 의심을 불식시키려면 의료현장을 끝까지 지키고 논의에 적극 나서는 것뿐임을 의사집단은 명심해야 한다.
2024-04-24 [05:10]
-
[사설] 부산 원도심 소멸 막으려면 '세컨드 홈' 특례 적용해야
정부가 인구 감소 지역 활성화를 위해 발표한 ‘세컨드 홈 특례’에 인구 감소가 극심한 부산 원도심을 제외해 큰 반발을 사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방소멸 위기에 대한 대응책으로 수도권 등에 1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인구 감소 지역의 공시가 4억 원 이하 주택을 구입해도 1세대 1주택자로 인정해 종합부동산세 등 세제 혜택을 받는 내용의 ‘인구 감소 지역 부활 3종 프로젝트’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생활인구와 방문인구, 정주인구를 늘려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취지다. 전국 인구 감소 지역 89곳 중 83곳이 포함됐다. 하지만 89곳에 해당되는 부산 동·서·영도구는 세컨드 홈 특례 지역에서 제외돼 잔뜩 기대했던 해당 지자체와 지역민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부는 부산 원도심을 특례 지역에서 제외한 이유로 “수도권과 광역시 지역은 부동산 투기 우려를 고려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수도권과 광역시 중에서도 인천 강화군·옹진군, 경기 연천군과 광역시인 대구 군위군은 특례 대상에 포함했다. 부산의 원도심 지자체장들로 구성된 부산 원도심 산복도로협의체는 성명을 통해 “재검토를 촉구한다”면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가 제외 대상 지역의 근거로 제시한 부동산 투기 우려는 부산 원도심의 실정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부산 원도심 지자체장들이 한결같이 특례 지역 포함을 요구하는 이유다.
부산 원도심은 전국 최악 수준의 인구 절벽에 직면해 있고,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은 28.5% 이상으로 초고령화에 진입한 지 오래다. 부동산 실거래 건수도 부산 지역 평균의 4분의 1에 그치고 있다. 게다가 산복도로 망양로 고도 제한 등 각종 규제는 물론이고, 계단이 많은 고지대 특성으로 정비 사업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은 빈집들은 치안 문제마저 야기하고 있다. 영도구의 경우 지난 10년 사이에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줄면서 전국에서도 감소율이 세 번째로 크다. 지방소멸이 가장 심각한 곳이 부산 원도심이라는 방증이다.
정부는 부산 원도심을 세컨드 홈 특례 지역에 포함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교통·의료·상하수도·공공서비스 등 인프라가 갖춰진 부산 원도심에 외지인의 워케이션(휴가지 원격 근무) 용도 주택 구입 등 거래가 활발할 경우 생활인구 유입과 경제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생활인구의 유입은 정주인구 증가로도 이어질 수가 있다. 이는 정부의 지방소멸 방지라는 당초 정책 취지와도 부합한다. 정부는 지방소멸 방지와 지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정책을 모처럼 내놓은 만큼, 실질적인 정책 효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부산 원도심의 세컨드 홈 특례 적용을 적극적으로 재검토하길 촉구한다.
2024-04-23 [05:12]
-
[사설] 지역 노인층 활용한 시니어 특화산업 선도 길 보인다
부산은 2021년 전국 첫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20% 이상)에 진입한 이래 각종 지표가 악화일로다. 지역을 미세하게 들여다보면 행정동(洞) 기준 4곳 중 1곳이 65세 이상 30%를 넘겨 이미 초초고령화다. 젊은 인구가 유출되는 원도심이 특히 심각하다. 1인 가구 중 60대 이상 비율도 41.3%로 8대 특별·광역시 중에서도 가장 높다. 이혼·사별·자녀 출가 등으로 가족 관계가 해체되고 혼자 남게 된 중장년층은 말벗도 잃고 외로움에 시달린다. 이들이 공동체와 다시 연결되고 의료와 문화·체육 활동을 즐기려면 액티브 에이징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나 홀로’ 어르신이 어떤 삶을 사는지에 부산의 미래가 걸려 있다.
부산이 초초고령화로 진행하자 어느샌가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가 번졌다. 도시의 활력 저하와 암울한 미래를 당연시하는 나쁜 관념이다. 하지만 역발상으로 미래 성장 동력을 찾는 움직임도 있다. 실버 세대를 겨냥한 신수종 사업이 그것이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ICT 기술로 구현한 부산의 시니어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취미 등 관심사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플랫폼 ‘웨이어스’는 오픈 6개월 만에 회원 5000명을 넘겼다. 골프·재테크·여행·건강 정보 소통 공간을 제공한 게 먹혔다. “수도권에 비해 중장년이 즐길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 부산은 기회의 땅”이라는 게 업체 측의 설명이다.
스타트업 ‘헬퍼잇’은 실버 세대에 일자리를 연결한다. 취업 형식을 지양하고 초단기 일자리 매칭에 주력하는 게 특징이다. 숙박 시설·상가·병원 등에 청소 전문 인력을 소개하는데, 시니어라면 안심하거나 반기는 분위기 덕분에 사업은 확대일로다. 업체 측은 공감과 이해 측면에서 병원 동행, 목욕 관리 같은 ‘노노돌봄’으로의 확장을 내다본다. ‘하루하루움직임연구소’는 기저질환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부산의 스타트업이다. 전용 운동 치료 센터에 ICT 기술이 적용된 장비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운동 처방을 제시한다. 전체 회원의 50%가 실버 세대일 정도로 중장년에 인기다. 실버 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베이비 부머 세대가 노인 세대로 유입되고 있고, 노인 인구의 기대 여명은 늘어나는 만큼 고령화 속도는 더 빨라질 게 분명하다. 고령자 우위의 인구 구조는 부산의 당면한 미래로 적극 대비해야 한다. 최근 부산시와 부산가톨릭대가 발표한 ‘하하(HAHA) 캠퍼스’ 계획은 주목되는 사례다. 대학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대규모 시니어 평생교육시설로 전환하는 전국 첫 시도다. 부산시는 ‘고령 친화 행복도시’를 내세우고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어르신들이 공동체로부터 단절되지 않고 여가 활동을 즐기며 활기차게 노년을 보내는 도시가 핵심이어야 한다. 공공뿐만 아니라 민간의 활력도 결합돼 시너지 효과를 낼 때 부산 미래는 밝아진다.
2024-04-23 [05:10]
-
[사설] 지방소멸 완화할 지역 맞춤형 외국인 정책 필요하다
인구 감소로 지방소멸 위기에 처한 전국의 지자체들이 이에 대한 대책으로 지역 맞춤형 외국인 정책의 도입을 역설하고 나섰다. 19일 부산에서 열린 ‘제59차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임시총회’에 참석한 16개 시도지사·부도지사들은 지역 맞춤형 외국인 정책 도입을 집중적으로 논의한 뒤 정부에 이와 관련한 범부처 차원의 전담 조직 신설을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저출생·고령화와 극심한 수도권 집중으로 지방소멸의 사면초가 상황에 처한 지자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정책으로 외국인 유치 외에 달리 선택할 대안이 없는 게 현실이다. 절박함에서 나온 제안인 만큼 앞으로 전향적인 논의가 있어야 하겠다.
현재 정부는 외국인 유치 관련 몇몇 정책을 이미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에 걸친 일률적인 적용으로 각 지역의 다양한 실정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이번에 열린 시도지사협의회 임시총회는 이러한 단점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결론은 지역마다 사정이 상이한 점을 고려해 외국인 정책 역시 지역 특수성에 따라 맞춤형으로 수립·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지자체마다 산업 구조와 경제 여건 등이 제각각인 만큼 이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일률적으로 시행 중인 정책이 지역 맞춤형으로 업그레이드되면 정책 효과도 더 광범위하고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
거주자든 유학생이든 외국인 유치를 통해 인구 감소에 대응하려는 시도는 최근 거의 모든 지자체의 정책 선택지에서 빠지지 않는다. 부산도 예외가 아니다. 부산시는 지난달 제42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2028년까지 유학생 3만 명 유치, 취업·구직 비자 전환율 40%까지 확대 등 유학생의 취업·정주를 위한 단계별 지원 전략을 내놨다. 경남도도 외국인이 도내 11개 시·군에 거주할 경우 취·창업은 도내 어디든지 가능하도록 허용했다. 수도권과 대칭축을 이룬다는 부산·경남이 이럴진대 다른 지자체들의 사정은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외국인 유치는 인구 정책에 관한 한 핵심 요건이 됐다.
시도지사협의회가 이번 임시총회에서 제시한 외국인 정책의 방향은 분명하다. 지역별 맞춤형 정책을 위한 관련 전담 조직의 신설과 함께 정책 수립에 광역 지자체의 참여가 꼭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외국인 유치의 핵심인 비자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 지적에는 정부가 하루빨리 지자체와 협의해 개선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지방소멸에 처한 지자체 대부분이 ‘지역특화형 비자’를 통해 인구 문제의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현실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이민청 설립까지 이미 가시권에 들어선 마당이다. 이제는 당면 현안이 된 외국인 맞춤형 정책을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협업은 더 이상 미루어 둘 일이 아니다.
2024-04-22 [05:12]
-
[사설] 윤 대통령-이 대표 첫 만남… 진정한 협치 출발점 되길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이 조만간 이뤄질 예정이다. 아직 일정, 형식, 의제 등이 확정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지난 19일 전화로 만남을 직접 제의했고, 이 대표가 즉각 수용했으며, 지대한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는 만큼 회담 자체가 무산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 이뤄지는 이번 영수회담에서는 민생 대책을 포함해 후임 총리 인선까지 다양한 현안이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물가 등으로 국민 삶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인지라 국정 쌍두마차인 대통령과 제1 야당 대표의 전격적인 만남은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윤 대통령의 만남 제의에는 사실 만시지탄의 느낌이 크다. 윤 대통령은 2022년 3월 당선 때에는 야당과의 협치를 강조했다. 그러나 취임 후에는 여당 지도부와는 10여 차례 공식 회동을 가지면서도 야당 대표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이후 8차례나 이어진 이 대표의 영수회담 제안을 윤 대통령은 매번 묵살했다. 야당을, 특히 여소야대 정국임에도, 국정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국정 수반이자 사회 갈등의 최고 중재자로서 어울리지 않는 대통령의 그런 모습에 비판 여론이 높았다. 그런데 이번에 윤 대통령이 늦게나마 입장을 바꾸었으니, 향후 국정기조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 만큼 앞으로 있을 회담에서 두 영수는 구체적인 성과를 보여 줘야 한다. 단순히 언론의 카메라 앞에서 손 잡고 사진 찍는 보여주기식 만남에 그쳐서는 또다시 국민적 공분만 살 뿐이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상대의 말에는 귀를 닫는 등 회담 시늉만 내는 자리가 돼서도 안 된다. 이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확인된 국민의 요구를 윤 대통령에게 분명하면서도 가감 없이 각인시키고, 윤 대통령은 다소 불편할 수도 있는 그런 요구에 성실히 답하고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온 국민이 기대 속에 지켜보는 영수회담을 정국주도의 수단이나 국면전환의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어쭙잖은 생각은 애당초 금물이다.
여당 참패로 끝난 총선 민심은 윤 대통령이 국정운영 기조를 바꿔 야당과 협치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기존 정책 방향은 옳다”며 그런 민심에 부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총선 결과에 대한 사과도 국민 앞에 직접 한 게 아니라 국무회의 비공식 발언으로 갈음했다. 그 결과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최근 2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윤 대통령으로선 이번 회담에 진정을 다 해야 비로소 민심 회복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터이다. 이 대표도 사리가 아닌 국익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치밀한 준비와 논리로 윤 대통령의 협치 의지를 이끌어 내야 한다. 모처럼의 영수회담이 협치의 새로운 본보기가 되길 당부한다.
2024-04-22 [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