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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금 오페라와 고령 도시 부산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막장 드라마를 욕하면서도 끝까지 보게 되는 이유는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개연성 때문이다. 극 전개가 어처구니없고 결국은 뻔한 결말로 치닫지만, 눈길을 떼기가 어렵다.
중독과 더 센 자극이 반복되는 막장 드라마에는 계보가 있다. 원조는 16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발명’된 오페라다. 신과 왕을 칭송하는 대신 인간의 희로애락을 정면으로 응시하자는 취지로 음악과 문학, 극, 춤 장르가 통합되어 탄생했다. 흥미를 끌려다 보니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멜로드라마로 흐를 수밖에 없었고 소재도 가정 불화, 배신, 비극적 죽음 일색이었다. 하지만 관객들은 열광했고 그 덕분에 상업 극장 시대가 열려 ‘밤마다 객석을 가득 채우는 대중오락’으로 발전했다. TV 드라마가 영어로 소프 오페라(soap opera)로 불리게 된 것도 막장계의 후예라서다.
부산 오페라하우스는 2026년 말 준공과 2027년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부산과 오페라의 조합은 여전히 낯설고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여론이 있다. 오페라는 점잖고 교훈적이며, 우아하고 품격이 있다는 선입견 탓이다. 어렵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고정관념을 극복하지 못하면 일반 시민에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당신’이 될 수밖에 없다. 오페라하우스의 문턱을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페라를 격조 있게 꾸민 성인 드라마쯤으로 여기고 가볍게 즐기는 문화가 형성돼야 저변 확대가 가능할 것이다. 요컨대 관객과의 이질감 해소가 관건이다.
■ 고급으로 포장된 막장
‘이 작품은 가정 폭력, 성폭력, 살인, 누드, 약물, 음주, 거친 언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잉글리시내셔널오페라 극장이 2024/2025 시즌에 무대에 올린 ‘카르멘’에는 미성년자 입장 제한이 붙어 있다. 다른 극장에서도 작품에 따라 관람 연령을 지정하거나 부모 동반 조건을 붙인다. 원작 자체가 사회의 부조리를 극단적 방식으로 표현하는 성인물 장르인 데다,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프로덕션이 한술 더 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피가로의 결혼’은 모차르트가 남긴 오페라 부파(희극)의 걸작이다. 한국에서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팬층이 두텁고 친숙한데, 아마 2023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버전을 만나면 입이 쩍 벌어질 것이다. 연출가 마르틴 쿠세이가 알마비바 백작과 하인 피가로를 폭력과 마약에 물든 마피아로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성 착취와 총격전, 선혈, 알몸이 무대를 뒤덮는다. 원작의 귀족-평민 계급 갈등 구조를 현대의 위계적 권력관계로 대체한 것이다. 경쾌한 희극 요소는 희미해지고, 누아르의 질감이 두터워진 새로운 서사 구조를 읽어내는 묘미가 있다.
역시 잘츠부르크에서 2005년 초연된 빌리 데커 연출의 ‘라 트라비아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텅 빈 무대에 거대한 시계 하나가 덩그러니 놓인 장면이 각인되면서 ‘시계 트라비아타’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 무대 설정은 폐결핵으로 죽음을 앞둔 여주인공 비올레타의 삶이 유한한 시간에 갇혀 있음을 상징한다. 원작의 순애보를 뛰어넘은 인간 존재론의 질문이다. 연출 의도를 이해하고 나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한층 애틋해질 뿐만 아니라 죽음의 그림자가 주는 극적 효과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신산의 고비고비를 거치고 난 인생의 후반기에 이 연출을 접했다면 공감 영역이 훨씬 넓어질 테다.
■ 오페라, 덧없는 인생을 노래하다
‘카르멘’은 멀쩡한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치정극이다. 한국 관객에게 인기가 많은 ‘라 트라비아타’·‘리골레토’·‘토스카’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주인공의 비극적 죽음과 절규로 끝을 맺는다. 한데, 뻔할 것 같은 팜므 파탈 소재도 연출에 따라 전혀 다른 주제 의식으로 재탄생한다.
영국의 로열오페라하우스와 미국 뉴욕메트로폴리탄오페라가 2023/2024 시즌에 ‘카르멘’을 동시에 선보였다. 두 곳 모두 신예인 메조소프라노 아이굴 아흐메트쉬나가 카르멘 역을 맡고 시공간을 현대로 옮긴 건 같지만 메시지가 달랐다.
뉴욕의 카르멘은 멕시코 국경을 무대로 한 무기 밀매단 소속으로, 미국 사회의 폭력·총기 문제를 드러냈고, 이민 여성 노동자로 그려진 영국의 카르멘은 사회적 약자를 향한 폭력 구조를 시사했다. 두 작품 모두 메가박스에서 상영된 터라 국내 오페라 팬들은 동시에 두 프로덕션을 비교 음미할 수 있었다.
클래식부산의 정명훈 예술감독은 지난 19~20일 부산콘서트홀 무대에 콘서트 오페라 형식의 ‘카르멘’을 올렸다. 정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내년에 전막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명실상부 세계 최정상급인 정 감독이 선보일 ‘카르멘’이 어떤 메시지를 담아낼지 기대가 크다. 또한 이 작품에 부산이라는 도시의 색깔이 어떻게 투영될지도 궁금하다.
또 정 감독은 자신이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이탈리아 라스칼라 극장의 ‘오텔로’ 프로덕션을 부산에 초청할 계획이다. 오페라 발상지의 본격 무대를 부산에 소개하겠다는 취지다. 부산 오페라의 르네상스를 불러일으키겠다는 사전 포석이 착착 진행되는 모양새다.
■ 인생 황금기에 즐기는 예술 장르로
이탈리아에서 상업 극장이 처음 문을 열었을 당시의 풍경을 비유적으로 기록한 것을 보면 대단한 센세이션이 느껴진다. 농사를 팽개친 남편들이 도시의 극장을 전전해 부인들이 한탄하고, 싼 가격에 좋은 자리를 구하려는 극장 앞 노숙자까지 생겨났다. 왜냐하면 너무 재미있어서 안 보고는 배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산 오페라하우스 개관 이후라면 어떨까. 대박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부산의 공연 문화계에 분명한 입지를 구축하고 안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 유수의 극장과 어깨를 겨루는 원작 그대로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연출로 재창작되는 ‘부산 프로덕션’ 병행을 모색하는 유연한 운영이 바람직하다.
부산이 초고속 고령화가 진행되는 도시라는 점에 착안한 시니어 맞춤 전략은 어떨까. 부산은 2050년에 가면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44%로 늘어난다. 오페라하우스가 곁에 있어서 인생의 쓴맛, 단맛을 곱씹게 만드는 작품을 즐기며 노년을 보낼 수 있는 도시. 부산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요인이 될 테다. 원래 오페라가 통속 성인물로 출발했으니, 초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쉽다. 여기에 부산의 색깔이 입혀지면 금상첨화다. 낡은 장르라도 새 숨결을 불어넣으면 경쟁력 있는 콘텐츠로 재탄생된다. 부산 오페라하우스가 그 산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5-12-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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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산 경제자유구역 확대, 해양물류 신산업 육성 거점 되길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은 세계 2위의 환적항이자 세계 7위의 컨테이너 물동량을 처리하는 부산 신항만을 중심으로 조성된 동북아 최고의 물류 중심지이다. 2003년 10월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었고, 2004년 3월 부산시와 경상남도의 협의로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이 개청했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은 동남권 핵심 인프라인 가덕신공항과 진해신항 개항을 중심으로 경제자유구역을 확대한다고 한다. 경자청은 지난 22일 ‘2040 발전계획 수립 연구용역 최종보고회’를 개최해 개발·정주·투자·산업 등 4대 분야별 전략 실행 과제를 확정했다. 개청 이후 첫 장기 개발 계획을 마련해 글로벌 경제환경 변화와 산업구조 전환 대응에 나선 것은 바람직하다.
가덕신공항과 진해신항 개항을 경제자유구역 도약의 핵심 전환점으로 설정했다는 점이 발전계획에서 가장 눈에 띈다. 2040년까지 항만·공항·배후단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트라이포트 기반’ 복합물류체계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가덕신공항과 진해신항 배후지역을 중심으로 경제자유구역 확대를 추진한다. 항만물류 수요 증가와 산업 집적 여건을 고려해 중장기적으로 김해, 거제 등 인근 주요 산업·물류 거점과의 연계 방안도 모색한다. 항만과 공항을 연계한 첨단 교통·물류시스템 구축, 컨테이너 전용차선 운영 등 과제를 차질 없이 이뤄내야 한다. 속도와 효율을 끌어올려 국가 물류 경제의 성장엔진이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커피와 항만, AI(인공지능) 등 부산항의 전략 산업으로 지정된 분야를 고도화하기 위해 투자와 개발에도 나선다고 한다. 경자청은 지난해 커피콩, 콜드체인 부품, 수소에너지, 선박용 기계부품, 로봇부속품을 전략 산업으로 선정한 바 있다. 경제자유구역의 산업 분야에서 중요한 것은 AI와 결합한 제조·물류 산업의 고부가가치 전환이다. 제조 AI 산업 생태계 조성과 항만물류 AI·로봇 연구 기능 강화, 스마트 물류 고도화를 통해 해양물류 신산업 육성의 거점이 되어야 한다. 항만물류자동화 미니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경제자유구역은 각종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의 경제 활동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고 외국인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특별경제구역이다. 투자 유치를 위해 인허가 원스톱 지원은 물론 기업의 투자, 정착, 성장을 잇는 전주기 지원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특히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은 항만물류를 거점으로 첨단산업 생태계를 조성해 글로벌 비즈니스·물류 허브로 나아가야 한다. 주거·교통·교육·문화·의료 등 인프라도 대대적으로 확충해 ‘일하고, 살고,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해양 수도 부산’ 시대를 맞아 부산항의 경쟁력을 높이고, 동남권과 대한민국 경제의 핵심 신성장 축으로 도약해야 할 것이다.
2025-12-26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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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언론 입틀막' 정보통신망법 개정 대통령 거부권 행사해야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다. 언론계와 시민단체는 물론 국민의힘과 진보당 등은 이재명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허위조작정보근절법’으로 명명한 이 법은 언론, 유튜버 등이 불법·허위·조작 정보를 유포해 타인에게 손해를 끼치면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한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이 법은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 국민의 눈과 귀, 입 역할을 하는 언론 ‘입틀막법’이라는 말까지 나온 상황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면 민주주의는 큰 위기를 맞는다. 이 대통령의 합리적인 판단이 절실하다.
가짜 뉴스 등 허위조작정보의 폐해는 현재 심각한 수준이다. AI 활용이 일반화되면서 허위조작정보는 한층 정교해지고 있다. 이런 부작용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피해 확산을 방지하는 강력한 조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허위조작정보를 유통한 언론과 유튜버 등에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크다.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판단 기준 등도 모호한 상황이다. 징벌적 손해배상 등을 우려해 언론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입법 취지와 달리 언론에 재갈을 물릴 우려가 높은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헌법에 보장된 언론 자유의 본질을 훼손해선 안 된다.
그동안 시민단체 등은 여당에 이 법안에 대한 충분한 토의를 지속적으로 주문했지만 민주당은 일방적으로 입법을 밀어붙였다. 법사위를 통과한 법안을 본회의 상정 직전에 다시 손질하면서 졸속 입법 논란도 확산됐다.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5개 언론단체는 공동성명을 내고 “권력자들의 소송 남발로 인한 언론 자유 위축은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힘도 “민주당이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정치적 이해에 배치되는 취재 내용 공개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진보당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재의요구권 행사를 요청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런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현재도 언론은 기사 봉쇄나 시간 끌기를 목적으로 하는 거액의 소송, 악의적인 ‘댓글 폭탄’ 등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법까지 통과되면서 ‘언론 입틀막 소송’이 상시적으로 남발될 우려가 높아졌다. 이것은 언론 개혁이 아니라 개악에 불과하다. 언론 활동이 위축되면 우리 사회는 퇴행의 늪에 빠진다. 군사정권이 언론을 통제해 국민을 기만하던 그 시절의 암울함이 재현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이 대통령은 법 공표를 막아야 한다. 그 뒤 충분한 시간을 갖고 국회와 시민단체, 언론계 등이 머리를 맞대면 허위조작정보를 효율적으로 차단할 방안을 충분히 모색할 수 있다.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한다.
2025-12-26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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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5극 3특·2차 공공기관 이전 치밀한 대응 전략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현재 수도권 일극주의와 지역 소멸이라는 큰 난제에 봉착했다. 경제 발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선택한 수도권 집중 전략은 국토 균형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5극 3특 국가균형성장’ 정책을 추진한다. 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 등 5개 초광역권과 제주·강원·전북 3개 특별자치도 중심으로 경제·생활권을 재편하겠다는 구상이다. 2차 공공기관 이전도 병행한다. 국토 곳곳에 다양한 성장축을 만들어 미래 발전을 견인토록 하겠다는 것이다. 허울뿐인 제2의 도시로 전락한 부산을 살릴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부산시의 치밀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부산시는 ‘5극 3특’ 정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내년 상반기 조직 개편에 나선다. 부울경초광역경제동맹추진단을 본부 체제로 확대 개편하는 것이 골자다. 인력과 권한을 늘려 정부 정책에 선제적으로 대응, 초광역 협력의 효율성과 실행력을 높이겠다고 한다. 시는 또 2차 공공기관 이전에 대비해 최근 미래혁신부시장과 도시혁신균형실장을 각각 단장·부단장으로 하는 ‘공공기관 이전추진단 전담 조직’(TF)을 구성했다. 다소 뒤늦은 감은 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중차대한 정부 정책과 관련, 조금의 후회도 남지 않도록 시가 최선을 다해주길 기대한다. 시의 역량에 부산 미래가 달렸다는 점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
특히 부산은 다른 광역지방자치단체와 입장이 다르다.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전국을 아우르는 성장 정책 추진이 당연하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수도권 일극주의의 뿌리 깊은 부작용을 일거에 치유하기 위해서는 ‘5극 3특’과 2차 공공기관 이전 과정에 ‘선택과 집중’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는 제2의 도시이자 수도권과 견줄 수 있는 성장 인프라를 갖춘 부산 등 동남권을 제2의 성장축으로 삼아야 한다. 시는 정부를 상대로 이런 점을 강하게 피력하는 등 정책 설계 단계부터 당당한 동반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다른 광역지자체를 압도하는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시의 절박한 각오와 실천 의지가 절실하다.
2차 공공기관 이전 문제와 관련해 가장 시급한 것은 근거 자료를 확보해 기관 유치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다. 특히 이전 기관 구성원들이 선호하는 다양한 정주 여건 등에 대한 빈틈없는 준비도 필수다. 시는 현재 2차 이전을 통해 총 37곳의 공공기관을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해양강국을 견인할 해양수도이자 영화도시, 금융도시인 부산 정체성에 부합하면서도 미래 성장에 필요한 기관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유치 전략이 시급하다. 정부도 고른 배분에 방점을 찍은 1차 공공기관 이전이 반쪽 효과에 그쳤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은 시가 간절한 시민 열망에 부응할 시간이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를 당부한다.
2025-12-25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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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만덕~센텀 대심도 통행료 부담 줄이는 방안 고민해야
부산 도심을 동서로 가로지를 때 맞닥뜨려야 하는 고질적인 교통 병목 현상을 해소할 인프라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지하로 건설되는 부산의 첫 대심도(大深度) 도로인 ‘만덕~센텀 도시고속화도로’(9.62㎞, 왕복 4차로)가 내년 1월 준공에 이어 2월 초 개통을 앞두고 있다. 승용차 기준 김해공항과 해운대를 30분 안에 연결하기 때문에 만성 정체에 시달리는 부산 교통 체계에서 숨통을 틔우는 기능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항과 해운대의 쌍방향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면서 도시의 관광·비즈니스 경쟁력 강화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다만 승용차 기준 2500원으로 예상되는 높은 통행료와 접속도로 불편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대심도 개통으로 인한 효과 중 도심 혼잡 감소는 가장 기대되는 대목이다. 지상 도로의 통행량을 줄이는 우회 도로가 지하에 확보되는 것이어서 도심의 물류·업무 이동 속도가 한층 높아지기 때문이다. 도시 접근성 향상이 시민 체감으로 이어지려면 이용률이 높아져야 한다. 하지만 대심도에 유료도로 중 최고 수준의 통행료가 부과되면 시민 외면을 받을 우려가 제기된다. 통행료 부담이 시간 절감의 편익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자 방식으로 건설된 유료도로라는 한계가 있겠지만 합리적 요금제는 필수적이다. 높은 통행료 탓에 시민들이 지하가 아닌 지상 도로로 몰리면서 공든 탑이 무너지는 꼴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또 대심도 이용의 활성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요인은 접속부 연결에 있다. 22일 개통된 해운대 신시가지~센텀시티 구간의 광안대교 접속도로는 벡스코 요금소 철거와 함께 대심도로 이어지는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만드는 효과가 기대된다. 하지만 센텀IC 인근 접속부는 대심도 진입 차로가 도로 중간에 설치되며 기존 차로가 줄어든 탓에 개통 초기 불편은 불 보듯 뻔하다. 부산시는 부산경찰청과 협의해 신호체계를 개선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도로 체계 개선을 포함해서 종합적인 보완 대책을 조속하게 제시해야 한다. 대심도 진출입로 주변부 정체로 인한 주민과 차량의 불편은 최소화돼야 한다.
만덕~센텀 대심도 개통으로 부산의 동서 흐름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는 점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시민 이용률이 높은 교통 인프라로 자리 잡기 위한 패키지 처방이 꼭 제시되어야 한다. 적정 요금제가 가장 중요하다. 부산에는 전국 최다 유료도로가 몰려 있다. 백양터널 무료화로 1곳이 줄었다가 대심도 추가로 다시 8곳으로 늘게 된다. 시민이 납득하는 요금 정책이 제시되는 것이 중요하다. 대중교통 연계 할인, 출퇴근 시간대 감면, 친환경 차량 인센티브 등 유인책과 함께 교통량·혼잡 변화 데이터를 공개하는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시민 체감형 교통 인프라 정착은 합리적 요금과 접속도로 개선 병행에 달려 있다.
2025-12-25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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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산 찾은 이 대통령 "동북아 해양도시 발돋움 총력 지원"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처음 열린 국무회의에서 해양수산부를 올해 안에 부산으로 이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 안에는 부산을 진정한 해양수도로 격상시킴으로써 국토 균형발전을 이루고 끝내 해양강국 대한민국을 이뤄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첫 국무회의에서 한 그 약속은 23일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해수부 임시청사 개청식에서 현실이 됐다. 대통령은 이날 해수부 임시청사에서 세종청사 아닌 곳에서의 현 정부 첫 국무회의를 열고 또 다른 약속을 끄집어냈다. 부산을 동북아시아 대표 경제·산업·물류 중심도시로 만드는 데 재정과 행정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새로운 약속 내용이다.
이를 위해 이 대통령은 전재수 전 해수부 장관의 사퇴로 공석이 된 해수부 장관 인선 문제부터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현재 공석인 해수부 장관 자리에는 부산 지역 인재를 중심으로 발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임시청사 개청식으로 ‘해수부 부산 시대’가 공식화한 이상 해수부의 진정한 부산 착근을 위해서는 정부 정책을 지역 현실에 담을 수 있는 리더가 절실히 요구된다. 전임 장관이 임명 때부터 야권의 비토 없이 해수부 부산 조기 이전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리더의 조건에 부합해서였다. 이는 지역적 공감대 확보로 여야 협치의 영역을 키우는 데에도 순기능을 할 것이라 기대를 모은다.
이 같은 이 대통령의 전폭적 지원 약속과는 별도로 부산 이전 주체인 해수부도 이날 해양수도 부산 실현을 위한 자체 밑그림을 내놓았다. 해수부는 이날 부산이 명실상부한 북극항로의 전초기지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범부처급 북극항로추진본부를 출범시켰다. 북극항로가 국제 해양 물류의 뉴 노멀을 예고하는 현실에서 이니셔티브를 쥐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해수부는 북극항로의 상업운항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고 보고 상업운항에 참여하는 해운업체에 선제적으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 마련에도 나섰다. 해수부는 이와 함께 해양수도정책과 등을 신설함으로써 해양수도 부산 육성 전략안 마련에도 주력할 방침이다.
부산이 진정한 동북아시아 대표 경제·산업·물류 중심도시로 비상하려면 해수부의 활약만으로는 부족하다. 해양산업의 배후 연관 산업 진흥과 공항·철도 같은 인프라 구축까지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해수부조차 해양산업을 이끌기 위한 기능 강화 측면에서 모자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언급한 재정과 행정 차원의 지원이 그동안 숱하게 나돌던 기존 말잔치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해수부 기능 강화를 그 첫걸음으로 삼아야 한다. 정부 출범 이후 첫 국무회의의 해수부 연내 이전 약속 이행으로 이제 서막을 열기 시작한 해양수도 부산이 새 약속의 이행으로 성큼 현실화하길 기원한다.
2025-12-24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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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블록체인 도시 부산, 시민 체감할 수 있는 기술 확산해야
부산은 전국 7개 규제자유특구 가운데 블록체인을 전담하고 있다. 2019년 최초 지정 이후 지난해까지 규제 특례를 활용한 다양한 혁신 서비스 실증이 이뤄졌다. 22일 부산 해운대구 시그니엘 부산에서 열린 ‘블록체인 위크 인 부산 2025(BWB 2025)’는 부산 블록체인 실험이 실증을 넘은 실행 단계로 진행하고 있음을 입증한 콘퍼런스였다. 이날 공개된 디지털지갑 ‘비단주머니’와 디지털 상품권 교환 서비스 ‘비단 팝팝’ 등은 블록체인 기술이 시민의 체감과 참여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여준 것이다. 첫 5년의 실증 기간 중 일부에서 제기된 우려를 불식하고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것 자체가 성과라는 평가도 나온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은 블록체인 콘퍼런스는 앞으로의 방향성과 실행 계획이 제시됐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 핵심은 블록체인 기술이 실물 경제와 일상에 스며드는 것이다. 비단이 공개한 ‘비단주머니’가 그 사례다. 웹2·웹3와 연동하면서 교통, 결제, 행정 서비스와 통합된 플랫폼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보였다. 상품권 기반 신사업 ‘비단 팝팝’도 시민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실용적 서비스다. 이밖에 금 기반 토큰, 도시형 금융 인프라 등 일상적 서비스가 주목받았다. 이처럼 도시 생활과 직결되는 분야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확산하면 부산이 목표로 하는 ‘2026 블록체인 시티’ 구현은 한층 앞당겨지게 된다.
부산 블록체인 특구는 정부와 부산시의 지원으로 성장해 이제 도약대에 올랐다. 시민 대다수가 혜택을 보는 서비스를 보급하는 한편 수익 모델을 확립하는 것이 과제다. 지금까지 기술 개발의 초점이 인프라 구축에 있었다면 이제는 사용자 중심의 응용 서비스로 진화해야 한다. 기술을 홍보하는 단계를 벗어나 실용적인 서비스로 시민의 삶이 변화하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예컨대 보안과 신뢰 기반의 블록체인 본인 인증을 거쳐 행정·금융·교통 통합 서비스를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 경제의 파급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부산의 주력 산업인 해양·관광·금융 부문과의 시너지 효과도 입증해야 한다.
인구 330만의 도시를 실험 무대로 블록체인 도시 생태계 구축 프로젝트가 목하 속도를 내고 있다. 목표에 근접할수록 부산이 지향하는 글로벌 허브도시로의 전환은 가속화한다. 실증에서 실행으로 단계가 상승한 만큼 어려운 도전적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글로벌 사용자까지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완벽한 개인 정보 보호와 보안 기술은 필수다. 행정과 교통 등 공공 서비스 연계는 지속성이 생명이다. 골목 상권까지 확대되며, 이점을 널리 공유할 수 있는 범용 솔루션 제공 여부가 성패를 가른다. 부산의 블록체인 특구 실험은 이제 변곡점을 맞이했다. 화려한 수사보다 시민 체감 서비스 구현이 급선무다.
2025-12-24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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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해수부 부산 시대 개막, 해양 수도 비상 꿈 이루자
해양수산부가 23일 부산 동구 수정동 IM빌딩 청사 본관에서 개청식을 연다. 이로써 해수부 부산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는 것이다. 해양수산부가 1996년 8월 발족 이후 30년 만에 정부 부처 가운데 처음 부산으로 단독 이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부산시는 2000년 12월 18일 동북아 중심 해양 관문 도시를 지향하며 ‘대한민국 해양 수도’를 선포했는데, 25년 만에 현실이 됐다. 해수부는 2008년 2월 국토해양부와 농림수산식품부로 업무가 분산되면서 해산의 아픔을 겪었지만, 2013년 3월 부활했다. 해양 수도를 향한 여정에서 숱한 우여곡절을 경험했기에 이번 개청식을 보는 부산 시민들은 감개무량할 수밖에 없다.
해양산업계와 시민사회도 ‘해수부 부산 시대’ 개막을 환영했다. 그러면서도 해수부 이전이 실질적인 해양 수도 완성과 글로벌 해양강국 건설의 주춧돌이 되도록 후속 조치를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해수부 부산 이전 등 관련 국정 과제를 진두지휘하던 전재수 전 장관의 갑작스러운 낙마로 컨트롤 타워 공백이 생겼다. 정부는 해양수산 공공기관과 해운기업 본사 부산 유치 로드맵을 후임 장관 임명 전에라도 빠른 시일 내에 공개해야 한다. 후임 장관 임명을 서둘러 해수부 이전의 구심력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9월 이후 공석인 대통령실 해양수산비서관도 조속히 임명해야 한다. 리더십 공백 장기화는 해수부나 지역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해수부 부산 시대 개막은 해양 수도권 구축을 통한 해양강국 건설의 출발이자 국가균형발전 실현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의 기회다. 이를 위해서는 해수부가 명실상부한 해양정책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도록 위상과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해수부 이전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기능 강화 등 핵심 내용이 빠진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지적이 많다. 해양수산 공공기관과 HMM과 같은 해운기업 이전, 동남권투자공사와 해사법원 설치, 북극항로 거점 구축 등 해양 행정·사법·금융을 포함한 해양산업의 종합적인 집적은 반드시 이뤄내야 할 과제다. 해수부 이전은 지속 가능한 해양 정책의 혁신과 해양산업 생태계를 강화하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해양 수도 부산이 되려면 지역 역량과 국가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 이를 위해 전통 해양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해양 신산업 육성 전략,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해양산업 현장과 정책을 연계해 실행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거버넌스 구축이 시급하다. 동남권의 특장점과 북극항로를 연계시키기 위해 해수부 주관 아래 산업부, 국토부, 기재부 등이 범정부 합동 종합 계획 수립에 나서야 한다. 민간 금융과 정책 금융이 협업해 글로벌 해양금융중심지 조성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지역, 민간, 정부의 역량을 모으고 극대화해 해양 수도 비상의 꿈을 실현해야 할 것이다.
2025-12-23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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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통일교 특검 급물살… 정치적 물타기 변질 안 된다
통일교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특별검사 도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2일 통일교 게이트와 관련해 “여야 정치인 누구도 예외 없이 모두 포함해서 특검을 할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한 야당의 특검 도입 주장에 선을 그었던 것과는 달리 사실상 조건부 수용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여야 정치인을 모두 수사 대상에 포함하겠다는 방침에 국민의힘과 개혁신당도 환영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통일교를 둘러싼 각종 의혹은 제도적 절차를 통해 본격적으로 규명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번 특검이 정치적 계산을 넘어 공정한 진상 규명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민주당은 전날까지 “통일교 특검에 동의할 만한 명확한 근거가 없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통일교 의혹을 털고 넘어가기를 바라는 지지층의 특검 요구가 커지자 태도를 바꾼 것으로 해석된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위고하 없는 엄정 수사’ 지시와 여론조사 결과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실제 한국갤럽이 최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통일교 특검 도입에 대한 찬성 여론은 62%에 달했고, 민주당 지지층의 찬성(67%)이 국힘 지지층(60%)보다 높았다. 장기간 이어진 공방이 민주당의 특검 수용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번 결정의 순수성이 의심된다.
민주당이 통일교 특검을 민생법안, 2차 종합 특검과 연계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순수성 논란을 자초한 꼴이다. 야당이 “특검을 하자면서 또 다른 특검을 얹는 것은 정치적 물타기 아니냐”고 경계하는 이유다. 실제로 특검이 민생 법안 처리와 연계되고, 정국 주도권 싸움의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국민 신뢰는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앞서 민중기 특검은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문재인 정부 시절 여당이던 민주당 의원들에게 정치자금을 전달했다고 진술했음에도 민주당 관련 의혹은 수사하지 않고 국민의힘에 대한 정치자금 제공 혐의만 수사했다. 이로 인해 특검 자체가 의혹의 대상이 됐다. 특검이 또다시 새로운 논란을 낳아서는 곤란하다.
통일교 특검의 성패는 공정성에 달려 있다. 무엇보다 구색 갖추기식 수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수사 대상과 범위를 명확히 하고 특검 추천과 임명 과정에서 정치적 편향을 차단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나아가 신속하고 투명한 진상 규명이야말로 이번 특검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길이다. 이를 제대로 담보하지 못한다면 결과가 무엇이든 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통일교 특검은 여야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사안이다. 정치권은 ‘특검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특검이 되느냐에 답해야 한다. 특검을 통해 금품 수수 등 통일교를 둘러싼 의혹이 속 시원히 밝혀지길 국민은 바라고 있다.
2025-12-23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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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가덕신공항 팽개친 현대건설, 국책사업 나쁜 선례 막아야
가덕신공항 부지조성 공사의 우선협상대상자였다가 공기 연장 불가를 이유로 일방적으로 공사 참여를 포기한 현대건설을 제재할 수 있을지가 다시 관심사로 떠올랐다. 관련 사업 주무부처인 국토부가 현대건설의 부정당업자 제재를 위해 국가계약법 소관 부처인 기재부에 사실관계 판단을 다시 요청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부산지역을 비롯해 가덕신공항 조기 개통을 간절히 바라는 동남권은 국책사업을 무책임하게 팽개침으로써 사업을 지연시킨 대기업에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향후 공사 재입찰 과정에서 같은 사태가 반복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준엄한 판단이 필요해 보인다.
국토부는 상반기 기재부에 현대건설 부정당업자 제재 가능성 판단을 요청했다가 제재 대상 지정 불가 판단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법제처가 해당 판단은 사실관계를 따져 결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해석을 별도로 내놓자 국토부는 최근 새로운 사실관계를 첨부해 기재부에 제재 가능성 판단 재요청을 했다. 국토부가 새롭게 첨부한 사실은 현대건설이 활주로 부지의 지반 시추 조사조차 실시하지 않는 등 사업 불참 근거가 부족하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새로운 사실관계가 현대건설의 사업 불참 결정 근거 부족으로 인정되면 현대건설을 부정당업자로 지정해 공공 입찰 제한 등의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10월 가덕신공항 부지 조성 공사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이후 갑자기 공기를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현대건설은 공기를 국토부와 당초 합의한 84개월이 아니라 108개월로 늘려야 한다고 버티다 5월 사업 불참을 선언했다. 이후 가덕신공항 사업은 아직까지도 후속 시공자가 선정되지 못 하는 등 공항 개통 시기가 당초보다 6년 늦어질 위기에 처했다. 그러는 사이 김해공항은 올해 국제선 이용객만 1000만 명을 돌파했을 정도로 시설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최근 김해공항의 인프라는 수하물 수취 시간, 주차 시설 등에서 전국 최하위권으로 처졌다.
현대건설이 무책임하게 사업 불참 선언을 한 여파는 동남권에 가덕신공항 부지 조성 공사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겼다. 재입찰이 추진되고 있으나 공기를 놓고도 여전히 새 우선협상대상자의 신의성실에만 기댈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트라우마는 더욱 크다. 국책사업 시공자가 기본설계 과정에서 해상 지반 시추 같은 기본적인 조사조차 하지 않고 입찰 조건을 내팽개치는 행위를 방치한다면 향후 재입찰에도 나쁜 선례를 남길 가능성이 높다. 가덕신공항은 지역 균형발전의 핵심 인프라다. 조기 개항 꿈이 흔들리도록 한 책임조차 엄히 물을 수 없다면 정부의 지역 균형발전 구호는 사탕발림이 되고 말 것이다.
2025-12-22 [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