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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1억 코인’ 어디까지 달리나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프로그래머가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암호화폐 비트코인을 개발해 세상에 공개했던 2009년 1월에만 해도 가격은 0에 가까웠다. 당시에는 사이버머니 같은 데 왜 돈을 써야 하는지도 몰랐고 코인의 가치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2010년 5월 22일 미국 플로리다에 사는 한 프로그래머가 비트코인 1만 개를 건네고 두 판에 30달러인 파파존스 피자를 구매한 게 최초의 거래였다. 1비트코인이 0.003달러였던 것이다. 그런 비트코인이 최근 ‘꿈의 가격’으로 불리는 1억 원을 돌파했다. 14년 전 단돈 30달러만 투자했으면 지금 1조 원의 자산가가 돼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비트코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를 찾는 개인투자자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향후 시장 전망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도 쏟아지고 있다.
∎‘꿈의 가격’ 1억 원 돌파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11일 국내 거래소에서 사상 처음 1억 원을 돌파했다. 올해 들어 급등세를 이어 오다 지난달 28일 전고점이던 8270만 원(2021년 11월 9일)을 돌파한 데 이어 ‘꿈의 가격’으로 불리는 1억 원을 뚫고 올라선 것이다. 두 달 남짓한 기간 70% 이상 급등했다. 세계 자산시장에서 비트코인은 시가총액이 1조 4200만 달러 수준으로 은(銀)을 넘어섰고 금(金),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엔비디아, 사우디 아람코, 아마존, 구글에 이어 8위에 올랐다.
비트코인 불장 덕분에 전 세계에서 매일 1500명가량의 ‘백만장자’(100만 달러, 13억 원 이상의 자산가)가 탄생하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한다.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비트코인으로 15억 원을 번 공무원이 압구정 ‘현대아파트 사러 간다’는 글을 올려 진위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2017년 한 방송에서 비트코인을 2000년대 초 유행하던 아케이드 게임인 ‘바다이야기’에 비유하며 도박이고 사기라고 했던 발언까지 소환되고 있다. 가치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이 “비트코인은 생산적이지도 않고 내재가치도 전혀 없다”고 한 발언도 다시 화제다. 최근의 비트코인 광풍을 두고 ‘포모(FOMO) 증후군’을 겪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포모 증후군이란 유행에 뒤처지는 것 같아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받는 상태로 투자와 관련해서는 자신이 매수하지 않은 종목의 급등으로 수익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미 현물 ETF 승인 제도권 진입
최근의 비트코인 열풍을 이끈 것은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1월 10일(현지시간) 블랙록, 피델리티, 아크인베스트 등 11곳의 자산운용사가 출시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했다. 비트코인이 ETF로 거래된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주식처럼 거래할 수 있다는 의미다. ETF 거래가 시작되면서 이들 자산운용사 계좌로 개인 투자자금이 몰렸다. 이들 투자자금은 기초자산인 비트코인에 대한 투자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가상자산 시장의 큰손을 뜻하는 ‘고래’들도 시세 차익을 노리고 동반 매입에 나서면서 비트코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SEC의 ETF 승인이 수급 차원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은 음지에 내몰리던 비트코인이 당당히 양지로 나왔다는 점이다. 이는 전통 금융과 가상자산 시장의 벽이 무너지고 제도권 안에서 함께 경쟁하고 성장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뜻이다. 기관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거래한다는 것은 가상자산에 대한 대중의 긍정적 인식 변화를 유도한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가상자산 시장이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비트코인에 이어 또 다른 가상자산인 이더리움 현물 ETF 승인 절차도 시작됐다. 영국 런던증권거래소도 가상자산 관련 상장지수증권(ETN) 거래 신청을 받는다고 발표하는 등 각국에서 가상자산의 제도권 진입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반감기 전후로 요동친 가격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이 통제하는 제도권 화폐의 인플레이션에 대항하기 위해 등장해 애초 발행량을 2100만 개로 한정했다. 그중 이미 1950만 개 정도가 채굴됐다. 채굴에 따른 보상으로 주어지는 비트코인 개수는 4년마다 반으로 줄도록 설계돼 있는데 이를 반감기라 한다. 올해 4월이면 4번째 반감기가 돌아오는데 현재 6.25개인 채굴 보상이 3.125개로 줄어든다. 역사적으로 비트코인 공급량이 반으로 준 2013년, 2017년, 2020년 반감기를 기점으로 가격이 상승했다. 2013년 첫 반감기를 지나고 1년도 되지 않은 그해 말 비트코인 가격은 1240달러로 41배나 뛰었다. 2017년 초 1150달러이던 가격은 반감기를 거치며 1만 9000달러까지 치솟았다. 2020년 3차 반감기 후 6만 5000달러까지 치솟던 가격은 중국의 채굴 금지와 테슬라의 비트코인 결제 정책 철회 등 악재로 조정을 받는가 싶더니 2021년 11월 6만 8990달러로 역대 신고가를 경신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이다. 비트코인은 15년 역사 동안 가격이 폭락하는 두 번의 ‘크립토 윈터’를 겪었다. 2017년 정점을 찍은 후 2018년 12월에는 3400달러로 하락했다. 고점 대비 80% 이상 폭락하면서 가상화폐 ‘무용론’까지 등장했다. 이후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 NFT(대체불가토큰) 등이 도입되고 블록체인 산업생태계에 대한 기대가 확산하면서 2023년 11월 다시 역사적 최고점을 찍었다. 그러나 2022년 5월 루나 사태와 세계 3위 가상화폐 거래소 FTX 파산, 글로벌 금리 인상 등이 맞물리며 두 번째 그립토 윈터를 겪었고 2023년 1월 1만 6000달러까지 폭락했다.
∎‘2억 간다’ vs ‘거품이다’
신영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당분간 비트코인의 견조한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고 8만~10만 달러에 도달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역사적으로도 반감기 이후 1년가량 상승세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영국의 스탠다드차타드(SC)와 미국 번스타인 등의 보고서를 종합하면 연내 15만 달러(약 2억 원)까지 상승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025년 20억 달러 돌파 등 장밋빛 전망도 쏟아진다. 금 ETF 등장 후 가격이 대세 상승기에 진입한 것처럼 향후 비트코인 가격도 급등락 없이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표적 가상화폐 긍정론자인 마이클 세일러 마이크로스트래티지 회장은 “비트코인은 금의 모든 훌륭한 속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금이 지닌 결함은 갖고 있지 않다”며 “앞으로 디지털 금이 돼 뿌리 깊은 투자자산인 금을 대체할 것”이라 전망했다.
그러나 단기 시장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역사적 가격 변동성을 고려하면 현시점에서 비트코인 투자는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장난이나 재미 기반의 ‘밈코인’이나 인공지능(AI) 코인 급등은 투기적 시장 신호라는 분석이다. JP모건 체이스는 비트코인이 4월 이후에는 4만 2000달러로 내려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반감기 이후 상승장을 이어 가던 이전 흐름과 달리 이번 강세장은 ETF 승인, 반감기, 금리 인하 등 호재가 이미 가격에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가상화폐 시장의 앞길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변동성이 클 것이라는 주장이다. 현재의 비트코인 역사적 고점 돌파가 ‘크립토 스프링’의 시작인지 이미 ‘크립토 섬머’를 지나고 ‘크립토 윈터’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인지 전문가 의견도 갈린다.
비트코인의 향후 시장 전망과는 별개로 최근 가상자산을 둘러싼 글로벌 시장에서의 제도화 움직임은 블록체인 특구 확대와 디지털자산거래소 출범 등 블록체인 산업생태계 조성을 미래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는 부산에는 긍정적 분위기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2024-03-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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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이젠 녹색이야”
산업혁명 이후 세계 각국의 도시들은 과밀화로 도시 내 녹지율이 급격히 낮아졌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의 불로뉴 숲이라든지,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가 조성됐다. 그게 도심 속 자연이라는 개념의 ‘공원 같은 도시’였다면, 지금은 도심 속에 파편적으로 흩어진 숲과 숲, 공원과 공원을 이어주는 ‘도시 같은 공원’ 형태로 한발 더 나아가고 있다. 도시 계획 역시 전통적인 도시 개발 모델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생태적 접근 방식으로 전환된다. 부산도 이런 변화의 흐름에 발맞춰 지난 4일 시청 내 푸른도시국이 신설돼 그 시작을 알렸다. '도시 속의 공원'에서 '공원 속의 도시 부산'으로 도시 구조를 재편하겠다는 의지의 발로다. 공원이나 정원, 생태 도시·도시 숲 조성은 물론이고 기후변화 대응 등 향후 부산의 녹색 정책이 여기서 펼쳐질 예정이다. 바야흐로 ‘녹색 공간(그린 인프라)’이 도시 경쟁력이 되는 시대. 여기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딘 부산이다. 어디를 바라보고, 어떻게 헤엄쳐야 할까?
■싱가포르, 길이 될까?
황폐한 농장, 썩고 오염된 강….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했을 당시 싱가포르의 모습이 이랬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친 노력 끝에 싱가포르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정원 도시가 됐다.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녹지율이 높아지고 있는 특이한 국가가 바로 싱가포르다.
싱가포르 친환경 도시계획의 비전은 ‘정원 속 도시’다. 도시에 정원을 짓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자연으로 만들겠다는 녹색 도시에 대한 강한 비전을 담고 있다. 이는 도심 속 정원 가든스 바이 더 베이를 비롯해 보타닉 가든, 주얼창이공항 등에서 잘 느껴진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싱가포르 녹지정책의 핵심은 바로 ‘연결’이다. 시민들이 짧게는 250m, 멀어도 400m 안에 접근 가능한 공원이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실제로 싱가포르 포트 캐닝 파크 주변에는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이스타나, 워메모리얼, 에스플란데 파크가 자리 잡고 있다. 공원과 공원 사이는 연결(혹은 선형)녹지 형태의 그린웨이가 구축돼 있다. 그 주변으론 주거, 상업, 문화시설을 배치하고, 생태통로도 갖춰 생물의 종 다양성도 확보했다. 공원과 공원의 연결 외에도 녹색으로 뒤덮인 수직 고층 빌딩, 생태 중심 디자인 건축물 등은 정원 속 도시 싱가포르의 면모를 한껏 보여준다.
세계적인 추세 또한 녹지의 연결이다. 요컨대 뉴욕은 센트럴파크를 중심으로 100만 평이 넘는 대공원과 시민 생활권역 내 중소 공원들이 친환경 보행길로 네트워크를 이룬다.
싱가포르나 뉴욕이 부산시가 추구하는 그린 인프라 방향의 정답은 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 분명 힌트는 될 수 있을 것이다.
■ ‘녹지’가 왜?
싱가포르와는 결이 좀 다르지만, 일본 도쿄도 녹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롯폰기힐스, 미드타운, 아자부다이힐스는 도쿄의 주요 재개발 지역이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첨단복합단지 아자부다이힐스는 중앙광장을 포함해 전체 부지 면적의 37%가 녹지다. 건물의 옥상 부분까지 녹색으로 덮여 있을 정도다. 옛 일본 방위청 자리에 2007년 들어선 초고층 복합상업단지 미드타운은 부지 면적의 40%가 녹지다. 이쯤 되면 ‘도심 속의 공원’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2003년 콤팩트시티의 효시로 개발한 롯폰기힐스 역시 넓은 녹지와 문화 공간 등을 통해 매년 3000만~4000만 명이 찾는 도쿄의 명소가 됐다. 근래 도쿄를 관광하는 여행객들은 “무료했던 도시가 활기 넘쳐 보인다”고 말할 정도다. 그 활기의 한가운데 바로 녹지가 있다. 도쿄의 고밀도 개발은 넓은 녹지 공간을 통해 경쟁력 있는 공간을 만들어 도시 활력을 높이고 도시와 시민에게 기여한다는 점에서는 장점이다. 다만 초고층이기에 도시경관 훼손과 같은 부작용은 피할 수 없다는 게 단점이다.
도시의 70%가 녹지로 조성돼 유럽의 허파로 불리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버려진 공장을 수경 재배 농장으로 바꾼 영국의 뉴어크, 산업 부지를 자연공원으로 탈바꿈한 독일 베를린처럼 자연이나 녹지와 함께할 길을 찾아낸 도시들이 점점 늘고 있다. 외국 사례만 있는 건 아니다. 전남 순천시는 일찍부터 생태와 정원이라는 가치를 품고 도약했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처음 개최(2013년)할 당시에는 단순히 정원에만 초점을 두었다. 하지만 지난해 국제정원박람회 때는 그 범위를 도심권, 국가정원, 순천만 습지 등 도시 전체로 확장했다. ‘도시가 정원이다’라는 박람회 캐치프레이즈는 순천시의 지향점이 어딘지를 말해 준다. 경북 포항시는 2016년부터 2021년 말까지 6년간 축구장 66개 규모인 47만여㎡의 도시 숲과 녹지 공간을 조성해 철강 산업 중심의 회색 산업도시를 지속 가능한 녹색 생태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도시계획 전문가인 찰스 몽고메리는 저서 <행복한 도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도시 녹지는 건강한 주거 공간을 이루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라고.
■그럼, 부산은 어디로
부산시는 푸른도시국 신설을 계기로 전국 최고의 공원 도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물론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푸른도시국의 조직이나 최근의 부산시 행보를 보면 국가 정원에 너무 목매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국가 정원 같은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너무 골몰해 더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무엇보다 생활밀착형 녹지 확충, 이를 기반으로 시민들이 체험할 수 있는 도심 속 녹지 연결이나 그린웨이 조성도 국가 정원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앞서 싱가포르 사례에서 보았듯이 도시에 1만 평짜리 공원 하나를 짓는 것보다 1000평짜리 공원 10개를 조성해 이를 연결하는 게 시민들에게는 훨씬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40년 부산도시기본계획에도 나와 있듯이 ‘도시공원·녹지의 연결성 부족’ ‘조성된 공원의 비효율적 사용’ 등은 부산시가 향후 해결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공원과 공원, 숲과 숲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녹지의 가치와 효율성이 더 높아진다.
부산에는 낙동강이 있지만 인접한 일부 시민을 제외하곤 걸어서 가기엔 접근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 언제든지 낙동강으로 갈 수 있는 녹지를 기반으로 한 보행로가 만들어져야 한다. 공원이나 숲과 같은 녹지를 이용하는 주체는 시민이다. 녹지는 도시의 구색 갖추기가 아니라 녹지가 시민의 일상과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부산시가 구현하는 ‘15분 도시’도 시민 곁으로 성큼 다가올 수 있다. 현재 지역별로 파편화된 공원을 산림·하천·해안 축으로 연결하고, ‘15분 도시’와 발맞춰 어느 곳에서든 15분 안에 녹지 공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도시의 가치는 사람들의 삶의 질과 연관이 있다. 사람들의 삶의 질은 공원이나 녹지의 넓이와 직결된다. 그래서 1인당 공원 면적을 따지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도시의 미래를 위해, 단순히 아파트만 높게 쌓을 것이 아니라 녹지도 더 많이 만들어 나가야 한다. 도시 전문가들은 흔히 행복한 도시는 걷기 좋은 도시라 말한다. 걷기는 시민의 건강과 직결되고, 보행길은 녹지와 연결된다. 사람이 걷는 곳은 상권이 활성화된다. 궁극적으로 걷기 좋은 도시라고 하면 ‘시민 건강-경제-도시 환경’이 한 축이 돼 향상된다는 의미를 갖는다. 도시 경쟁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단 얘기다. 어쩌면 향후 부산의 도시 경쟁력도 녹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와 자연은 공존할 수 없다’는 생각은 이제 우리 손으로 뒤엎어 버리자.
‘미군 55보급창이 있던 곳은 인근 동천과 함께 하구 숲을 이루고, 경부선 철길이 지나다니던 곳에는 숲길이 이어진다. 북항에서부터 도심을 가로질러 낙동강까지 ‘녹지 회랑’이 이어지는 부산.’ 부산시가 그리는 2040년의 녹지 모습이다. ‘녹색 꿈’이 야무지게 영글기를 바란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2024-03-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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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21세기 골드러시’ 천연수소를 찾아라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문제가 전 지구적 이슈가 된 이후 친환경 에너지원 발굴은 인류 전체의 과제가 됐다. 지구를 보호하면서 현재의 인류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에너지원 발굴은 금세기 인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된 것이다.
현재 인류가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주목하고 있는 대상은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자연력과 우주에서 발견된 원소 중 가장 풍부한 수소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이미 ‘2050년 탄소중립 추진 전략’을 선언한 우리 정부는 탄소중립 전략의 핵심으로 수소를 꼽고 이와 관련한 정책 추진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수소의 에너지원 활용에는 아직 넘어야 할 문제가 있다.
■ 기존 수소 활용 단점 극복할 천연수소
수소는 우주에서 가장 흔하기도 하고 물의 3분의 2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로 일반인에도 익숙하다. 이 때문에 일찍부터 새로운 대체 에너지원으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수소의 생산 비용이 발목을 잡는다.
수소는 가장 가벼운 원소로 다른 원소와 반응성이 높아 수소 그 자체로만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 다른 원소와 화합물로 존재해 순수 수소를 분리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산업적인 공정을 거쳐야 한다. 이에 따라 그레이(회색) 수소, 블루 수소, 그린 수소 등으로 나뉜다. 그린 수소는 이산화탄소 발생이 거의 없는 청정한 수소지만, 비싼 비용이 단점이다. 그래서 현재는 메탄을 수증기와 반응시켜 수소를 얻은 방식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그레이 수소라고 한다. 일부에서는 이런 이유를 들어 수소를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최근 이 같은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 바로 천연수소의 발견이다. 지구의 지층에서 수소가 자연적으로 샘솟는 곳이 알려진 것이다. 화산에서 가스가 나오듯 방출되는 수소를 활용한다면 기존 수소 활용의 단점도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 지구 땅속에 5만 년 사용량
천연수소의 놀라운 가능성이 알려지면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이를 찾으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데 최근 프랑스 그르노블알프스대와 알바니아 과학자들이 알바니아의 한 광산 지역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천연수소 샘을 발견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가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연구진은 광산에서 나오는 물의 흐름을 추적한 끝에 땅속 1㎞ 지점에서 자연적으로 수소를 뿜어내는 물웅덩이를 발견했는데, 30㎡ 크기인 이 한 곳에서 솟아 나오는 수소만 연간 11톤 규모라고 한다.
연구팀은 여기뿐만 아니라 인근 갱도와 동굴에서도 방출되는 수소 가스를 찾았다. 이를 종합한 결과 이곳에서 나오는 수소 가스는 연간 최소 200톤이 넘으며, 순도도 84%에 이를 정도로 분석됐다. 지금까지 보고된 천연수소 방출량 중 최대 규모다.
천연수소가 이곳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근래 알려진 미국 지질조사국(USGS)의 미발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지하에는 최대 5조 톤의 수소가 있다고 한다. 현재 전 세계의 연간 수소 소비량이 1억 톤 정도임을 고려하면 앞으로 5만 년가량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다.
■ 미국 등은 정부 차원 지원 박차
엄청난 규모로 추정되는 지구 지층의 천연수소가 시장에 나오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천연수소 추출 가능 지역의 지질조사를 비롯한 여러 관련 사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추출을 위한 기술적인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 이를 감안하면 수년 또는 그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천연수소의 대량 매장이 확인된 이상 이의 활용은 시간문제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 등은 천연수소 탐사·발굴에 지원을 확대하는 추세다. 지난해 미국 정부는 땅속의 청정한 수소를 탐사하고 추출하는 기술 연구에 2000만 달러의 지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지층에 매장된 수소의 일부만 추출해도 수천 년 정도는 에너지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작년 전국 5개 지점에 측정 장치를 설치해 국내 최초로 천연수소 발생을 확인했다.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도 ‘21세기 골드러시’의 대상인 천연수소를 발굴·활용할 수 있는 첫발은 내디딘 셈이다. 물론 아직 넘어야 할 과제가 많고 또 석유나 천연가스처럼 에너지원으로서 신기원을 열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 가능성만큼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러다 혹시 우리나라에도 정말 ‘에너지 대박’이 터질지 누가 알겠나.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2024-03-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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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건국전쟁’ 흥행이 씁쓸한 이유
■흥행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감독 김덕영)이 지난 21일 관객 80만 명을 돌파했다. 개봉 20일 만이다. 특정 인물, 특히 과거 정치 인사에 대한 다큐로는 이례적인 흥행 속도다. ‘건국전쟁’ 속편도 곧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런 열기는 관객의 순수한 호응에 따른 것일까. 그럴 수도 있을 테다. 제작사의 새로운 홍보 기법에 힘입은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해당 제작사는 청년 관람객이 영화표를 인증하면 표값 전액을 되돌려주는 이벤트를 진행해 사재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이변이라 할 정도의 흥행에 대한 설명으로 충족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장면1
‘울산시 총무부서는 최근 시청 내 부서와 산하기관 등에 ‘2024년 직원 MT 추진 계획’이라는 공문을 보냈다. …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쪽지로 전해져 온 별도의 공문에는 21일부터 27일까지 오후 7시에 남구 삼산동의 영화관 특정 상영관(192석)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계획이 제시됐다. 해당 상영관에선 영화 ‘건국전쟁’이 상영된다. … 한 공무원은 “‘자율’이라면서 특정 시간·특정 극장·상영관을 제시해 압박하고 있다”며 “관람하겠다고 나서는 직원이 없자 ‘이러면 (시장에게) 찍힌다’는 말이 나왔다. 결국 강제로 영화를 보게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 다른 공무원은 “여당 인사들의 ‘관람 인증 릴레이’가 벌어지는 영화 관객수를 늘리려 여당 소속 단체장이 공무원을 동원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울산시 공무원노조도 … “많은 부서에서 자율이라는 명목하에 특정 영화 ‘건국전쟁’ 관람을 MT로 정하고 있다”며 “특정 정치성향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영화를 공무원 조직에서 굳이 단체관람을 추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이는 지난 20일 <세계일보>가 보도한 기사 일부분이다.
■장면2
‘건국전쟁’ 관람에는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과 김영호 통일부장관 등 현 정부 국무위원들도 적극 참가하고 있다. 김덕영 감독이 지난 13일 SNS에 올린 영상에서 유 장관은 전날 ‘건국전쟁’ 관람 후 “역사적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많은 분이 꼭 와서 봐주셨으면 좋겠다”라고 권했다. 김 장관도 지난 17일 ‘건국전쟁’ 관람 후 “큰 감명을 받았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또 지난 20일 <문화일보> 칼럼을 통해 “‘건국전쟁’은 올바른 역사 인식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자유민주통일의 시발점임을 웅변한다”고 역설했다.
■장면3
일부 개신교계와 보수·우익 세력이 ‘건국전쟁’ 흥행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양상이다. 부산 세계로교회를 비롯해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등 각 지역의 크고 작은 교회들이 연일 단체 관람을 이어오는 것이다. 부산 세계로교회는 ‘건국전쟁 영화 세계로교회 1200명 관람 후기’란 유튜브 영상을 통해 교인들의 감상후기를 소개해 놓았다. 한국자유총연맹은 지난 15일부터 자체 홈페이지에 댓글 응원과 관람 사진을 올리는 ‘건국전쟁 관람 인증 챌린지’를 시작했다. 한국자유총연맹은 이 챌린지를 다음 달 26일까지 계속할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 성향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일베)’에서도 회원들끼리 후기를 올리는 등 ‘건국전쟁’ 관람을 독려하고 있다.
■정치권이 더…
정치권, 정확히는 여권이 총선을 앞두고 ‘건국전쟁’ 띄우기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그 선두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 지난 설 연휴 중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건국전쟁’에 대해 “역사를 올바르게 알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이승만 대통령기념관 건립 사업에 500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인사들도 잇따라 대열에 합류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 등이 ‘건국전쟁’을 관람한 데 이어 현역 의원이나 총선 출마 예정자들도 SNS 등에 관람 후기를 올리고 있다. 그중 부산의 어느 의원은 “오는 4월 총선은 제2의 건국전쟁이다. 반드시 자유 우파가 승리해서 건국-산업화-민주화-선진화로 이어진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되찾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순수한가?
‘건국전쟁’의 흥행을 미심쩍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이념몰이 목적의 관객 동원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런 의심은 진영을 떠나 과거에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가 개봉했을 때 이해찬 전 총리 등 당시 여권 인사들이 앞다퉈 관람했다. 문재인 정부 때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건국전쟁’의 영화적 수준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그런 것은 상당 부분 개인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건국전쟁’ 흥행의 배경이 순수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은 지적할 수 있겠다. 총선을 코앞에 둔 지금 시점이라 특히 더 그렇다.
2024-02-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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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정치인 숏폼 홍보, 할 거면 제대로 하라
총선을 50여 일 앞둔 정치권에서 신경 쓰는 부분이 20~30대 젊은 세대들의 표심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이다. 이들의 표심을 얻기엔 기존 방식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정치권이 숏폼(short-form)이라는 콘텐츠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숏폼이란 글자 그대로 짧은 길이의 영상을 말한다. 짧게는 15초에서 길게는 10분 이내의 영상까지 다양하다. 흥미를 유발하고, 웃음을 추구하는 강렬하고 짧은 콘텐츠. ‘영상이 길면 보지 않는다’는 예능 상식이 이제 총선 주자들의 홍보까지 바꿔 놓는 모양새다.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중장년이나 고령층에도 간결하고 쉬운 형식이 더 잘 ‘먹힌다’는 점에서 주목받는 홍보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유권자의 입장에선 마냥 좋게만 인식되는 건 아니다.
■이용 많은 젊은 세대 공략에 주효
고령사회로 넘어가는 한국이지만 여전히 20, 30대의 청년 인구는 28.8%(2023년)에 달한다. 이들의 마음을 잡지 못하면 선거에서 이기긴 힘들다. 이 때문에 정치인이면 청년들의 표심을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각 당의 예비 후보나 주자들은 숏폼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거나 공약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틱톡(TikTok)을 비롯해 인스타그램의 릴스(Reels), 유튜브의 쇼츠(Shorts) 등 여러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 숏폼을 선보인다. 정치판에서 숏폼을 활용하는 이유는 짧은 형식으로 정보를 전달해 유권자들이 총선 주자들의 정책, 캠페인 메시지, 현재 정치적 이슈 등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총선 주자 입장에선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나 동영상을 통해 시각적으로 자신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홍보 수단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SNS를 통해 정보를 접하곤 한다. 지난해 3월에 나온 ‘소셜미디어‧검색포털 리포트 2023’에 따르면 전국 15~59세 남녀 5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68.9%가 숏폼을 시청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20대는 82.9%, 30대는 73.9%가 숏폼을 접해 봤다고 답했다. 숏폼이 젊은 층에서 최적의 플랫폼으로 평가받는 만큼, 이들을 공략하기 위한 정치인들의 숏폼 활용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2022년 대선 찍고, 이번 총선서도 활용
숏폼은 2022년 대선에서도 활용됐다.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15초짜리 숏폼이 화제가 됐다. 탈모 관련 지원 정책을 검토하겠다는 취지의 영상이었다. 이 후보의 숏폼이 화제가 되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가세했다. 국민의힘은 당시 유튜브를 통해 59초 분량의 생활 밀착형 공약을 제시하는 영상을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정치권은 4·10 총선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서울 동작구을 출마를 준비하는 나경원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 즉석 길거리 인터뷰를 하는 숏폼 채널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나 전 의원은 판사 출신으로 로스쿨 입학시험 문제를 푸는 영상을 제작해 한 달 만에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대전 서구갑 출마를 준비하는 유지곤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는 자신이 올린 인스타그램 릴스 동영상의 조회수가 수백만 회를 넘었다. 숏폼을 통해 선보인 ‘나루토춤’은 젊은 세대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춤으로 ‘유 후보가 포인트를 맛깔나게 살렸다’ 등의 호의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나경원 전 의원을 비롯해 몇몇 예비 후보들의 이 같은 홍보 방식이 먹히자 다른 총선 주자들도 숏폼을 활용해 하나둘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 쇼츠나 릴스 등에서 유행하는 ‘나루토춤’ 등을 활용해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려는 후보들부터 선거 브이로그, 경력과 스펙 소개 영상, 대형 정치 유튜브 채널 출연까지 활용 형태도 다채롭다. 이뿐만이 아니다. 4·10 총선이 다가오면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등 주요 정당들도 숏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정도다.
■짧은 시간 주요 메시지 전달… 몰입도 높아
숏폼 영상은 스마트폰으로 쉽게 볼 수 있게 세로로 촬영하고 단 몇 초 만에 시선을 사로잡을 콘텐츠를 올리는 게 핵심이다. 장점은 짧은 시간에 주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간결하고 강렬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어, 유권자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은 큰 강점이다. 숏폼 영상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쉽게 공유된다. 공유와 확산 자체가 기존 소셜미디어보다 빠르다는 얘기다. 따라서 더 많은 유권자에게 전파할 기회가 많다. 또한 공유와 댓글 등을 통해 더 큰 관심과 인기를 얻을 수도 있다. 영상이 짧아 제작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고, 유권자 반응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어 피드백을 통한 자기 개선도 가능하다.
유권자들은 여러 출마자의 숏폼을 시청할 수 있어 그들의 정책과 의견을 비교·평가할 수 있어 좋다. 영상이 짧아 바쁜 일상에서도 정치적인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짜뉴스 양산될 가능성 높아
숏폼은 보통 짧은 시간에 정보를 전달해야 해 정책 내용을 축약해야 한다. 이에 출마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책의 세부 내용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을 수 있다. 요컨대 청년들의 세대 아픔에 공감하고 보듬어주는 정서가 담겨 있으면 좋은데 영상이 짧다 보니 이런 것은 빠지고 출마자의 춤 같은 행위가 더 크게 부각될 수 있다. 가짜뉴스나 허위 정보에 더 취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짧은 콘텐츠인 만큼 내용이 조작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정교하게 만든 조작 영상은 검색 등을 통한 진위 검증 자체가 쉽지 않다. 최근 화제가 됐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거짓 음성은 숏폼 형태로 퍼져나가, 수천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처럼 가짜뉴스가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 자칫 정치를 후퇴시킬 수 있다. 시각적 효과를 통해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숏폼에 30분만 노출돼도 사고력과 기억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잠깐 마비된다는 얘기도 있다. 관련 전문가들은 “숏폼을 지나치게 보면 마약과 같은 중독 현상에 빠질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숏폼 같은 동영상 마케팅을 받아들일 때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 총선 주자들이 제시하는 정보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게 아니라, 그들의 정책과 목표를 심층적으로 비교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숏폼에 잘못 빠지면, 총선 출마자에 대한 판단마저 흐려질 수 있다.
■이왕 ‘숏폼’ 한다면 제대로 해야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선보이는 숏폼은 최근 유행하는 챌린지를 정치인들이 따라 하는 형태가 주를 이룬다. 일단 짧은 영상과 쉬운 글로 유권자들의 눈길은 끌게 됐지만, 이 정책이 왜 필요하며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한 메시지가 잘 안 보인다는 얘기가 들린다.
숏폼 콘텐츠가 대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총선 출마자들의 공약은 흥미만 끌면 되는 게 아니다. 짧고 강렬하게 내지른 뒤 ‘아무튼 잘해보겠다’는 식의 홍보는 곤란하단 얘기다. 20~30대 청년 유권자들은 숏폼에 대해 처음에는 재미에 무게를 두었으나, 최근에는 내용을 보는 경향이 많아졌다. 그만큼 총선을 앞두고 젊은 유권자들이 깐깐해졌다는 얘기다.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은 좋다. 하지만 잘못 만들면 자칫 경박스럽다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정치인의 숏폼은 유권자와의 소통과 그 진정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게 좋다. 재미와 내용,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20대 한 청년 유권자는 “하고 싶은 공약이나 메시지를 담아야지, 정치인이 나와서 어설프게 춤추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후보자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청년들을 이해하는 것은 청년들이 원하는 것을 청년들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2024-02-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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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지역인재전형 확대, 지역 교육 지형 바꿀까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서울 강남구 대치동 휘문고 길 건너편 S학원 인근. 오후 늦은 시간, 고급 승용차들이 비상등을 켠 채 도로 3~4차선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거하고 있다. 어떤 이는 그냥 우두커니 차를 세운 채 차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학원에서 나온 자녀들을 다음 학원으로 데려다주기 위해서다. 의대 증원이 발표된 다음 날인 7일, 이 일대는 대형학원의 ‘의대 진학 설명회’가 잇따라 열리면서 학부모와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부산에서 고등학교 재학 중인 딸과 함께 2년째 방학마다 대치동 학원가를 찾는다는 송 모 씨(48)는 “의대 정원 확대가 발표되고 나서, 학부모들의 눈빛이 달라졌다”면서 “완전 장난 아니다”라고 말한다. 송 씨는 “일타강사가 몰린 대치동 학원가에 오랫동안 단련된 서울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지방 학생이 정시로 상위권 대학에 가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고 토로했다.
■‘의대 증원+지역인재전형 확대’ 파장 폭발적
정부는 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해 2025년도부터 지역 국립대와 정원 50명 이하 미니 의대를 중심으로 의대 정원을 2000명으로 대폭 늘리고, 신입생의 60%까지 지역인재전형을 확대하기로 했다. ‘비수도권 위주 의대 정원 2000명 확대’와 ‘지역인재전형 비중 60% 이상 확대’가 동시에 결합되면서 의대 지역인재전형 선발 인원이 현재 1068명에서 최소 2배가량인 2018명으로 급증할 예정이다. 현재 지방권 의대 27곳은 전체 모집정원 2023명의 52.8%인 1068명을 지역인재전형으로 선발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최소 2배 이상 급증하는 셈이다. 대한민국에서 파급력이 가장 큰 입시 정책의 변화로 엄청난 후폭풍이 불고 있다. 벌써부터 지역인재전형을 노리고 중학생들의 지방 전학 얘기마저 나올 정도다.
■지역인재전형 비율 계속 높아질 듯
현재까지 지역인재 입학 비율을 60%로 높였던 지역 대학들이 향후 80%까지 올릴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실제로 부울경 일부 의대의 경우 지역 출신 신입생 비중을 전체 정원의 80%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사회에서는 의대 증원분을 지방 의대로 집중할 것과 증원 인원 100%를 지역인재전형으로 선발해야 한다고 요청하는 상황이다. 눈앞에 닥친 지역 의료체계 붕괴에 대처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책이라는 판단이다. 의대 지역인재전형 규모는 향후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지역 A 의대 입학 업무를 담당했던 K 교수는 “졸업 후 지역에 남는 것은 지역인재전형 학생들”이라고 단언한다. K 교수는 “의대생 졸업 이후 경로에 대한 통계를 내고 있다”면서 “지역인재전형 학생들은 졸업 후 20~30% 외에는 대부분 지역에 남지만, 수도권 출신들은 20~30%를 빼고는 서울로 돌아간다”고 밝혔다. 지역 출신이 지역에 남을 확률이 통계적으로도 훨씬 높다는 결론이다. 현실적으로 인턴과 레지던트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지역에서 학생을 선발할 수밖에 없고, 지역 의료 서비스를 위해서는 지역인재전형이 긴요한 정책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지역인재전형 100% 확대 가능성은
K 교수는 “전국 경쟁으로 뽑힌 학생과 지역인재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내신 등급이 0.3 정도 차이가 나지만, 의대 교육에는 큰 차이가 없다”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 나오는 100% 지역인재전형은 입시 체계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대학 입학에서 최저등급을 요구하는데, 수시는 물론이고 정시에서도 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 의대 관계자들은 대학 자율로 맡기더라도 지역인재전형 비율은 80%가 최대치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지역 의대 관계자는 “상당수 지역 의대가 벌써부터 지역인재전형 입학 비율을 60% 수준으로 확대하고 있고, 의대 증원과 함께 이 비율도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역 학생에게 기회 될까
부산 지역 고등학교 입시 담당 교사들은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지역 학생들에게는 확실히 기회가 늘어난다”고 입을 모은다. 의대 정원이 2000명 늘어나면 현재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이공계 합격생의 78.5%가 의대 진학 가능권에 속하게 된다. 신입생 10명 중 8명은 의대에 지원해도 합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역 고등학교를 졸업한 비수도권 합격생의 경우 그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다.
부산 S고 입시 담당 H 교사는 “2000명 정원이 늘어나고, 지역인재전형까지 확대되면서 지금 고3에 올라가는 학생들은 전국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최소 한 명씩은 의대에 더 들어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 “지역 학생은 전국보다는 지역 내부에서의 경쟁이 훨씬 수월하다”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당장은 올해 새학기부터 수도권 상위 대학 신입·재학생의 중도 이탈이 급증하고, N수생이 대거 몰리면서 최저 등급 컷이 높아질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역 대학 입학처장을 역임했던 W 교수는 “지역 공대의 몰락, 2024년도 합격생의 등록 포기 등 장기적으로 논란은 불가피하겠지만, 지역 의료 공백 해소와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는 당근책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 가속화 계기
지역에서는 지역 의대 중심의 의대 증원과 지역인재전형 비율 확대가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의대 증원으로 청년인구가 늘고, 의료체계가 갖춰지면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수도권에서 지역으로 이전했던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기러기 부부’들에도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매주 금요일 오후마다 KTX에 몸을 싣고 서울 집으로 가던 분위기에서 서울 집을 정리하고 지역으로 결합하는 추세가 두드러질 전망이다. 또한, 자녀를 가진 공기업 직원의 경우 근무처를 서울본부에서 지역 본사 우선 지원으로 흐름이 바뀔 전망이다. KDB산업은행 등 공공기관 직원들이 지방 이전에 반대하거나, 단독 부임하는 속내도 결국 ‘자녀 교육 환경’이기 때문이다. 지역인재전형에 지원하려면 고등학교를 해당 지역에서 졸업해야 가능하다. 3년 뒤인 2028학년도부터는 중학교부터 의대 소재 지역에서 다녀야 한다. 지역 소재 공공기관의 경우 가족 전체가 자연스럽게 지역 본사 소재지로 옮길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상황이다.
의대 지역인재전형 확대가 이런 수도권 중심의 교육 열기에 미세하게나마 균열을 낼 수 있다는 바람도 생겨나고 있다. 또한, 강남 학원가를 중심으로 자녀만 지역 중고교로 진학시키는 ‘지방 유학’ 문의도 쇄도하고 있지만, 자녀 교육 특성상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지역 학원 관계자는 “비수도권 학생, 특히 의대가 밀집한 부울경 학생들이 의대를 진학하기에 수도권보다 매우 유리한 구도가 됐다”며 “부모 직장 등 조건이 갖춰지면 초등학교 때부터 아예 지방으로 이주하는 가족이 늘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흐름은 국가균형발전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수도권 인구의 지역 분산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역 공공기관 지역균형인재 취업도 노려볼 만
의대 지역전형 확대 정책 발표에 앞서 비수도권 공공기관이 신규 직원을 뽑을 때 전체 채용 인원 중 35%를 지역인재로 선발하도록 하는 내용의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도 국회를 통과되면서 지역균형발전에 청신호로 작용하고 있다. 앞으로 비수도권 공공기관의 지역인재(지역대학 졸업자 또는 졸업예정자) 채용 비율을 35%로 의무화했다.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에 대해서도 지역인재 채용을 독려하도록 하는 규정을 넣었다. 지방대 출신 취업 준비생들의 공공기관 취업과 이로 인한 정착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문제는 대학 입학 단계에서 거점 국립대와 서울 중위권 대학에 동시 합격하면, 서울로 가는 추세를 막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S 교사는 “10년 이상 고3 제자와 학부모들을 보고 있으면, 4~6년 뒤에 지역 공공기관 입사를 염두에 두고 대학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면서 “공공기관 지역인재 전형은 지역 출신 대학생들이 고향에 남을 수 있는 정책으로 생각된다”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우려와 기대
서울 상위권 대학은 물론이고, 지역에서도 이공계 출신들의 잇따른 이탈이 예상된다. 특히 지역 대학의 이공계 우수 인재들이 대거 의대로 흡수될 경우 자동차·조선 관련 제조업 위주의 부울경 산업 현장을 주도할 인재를 찾기 어려울 우려가 높다. 일각에서는 의사만 양성하고, 대학 이공계 R&D 예산은 축소하는 국가에 과연 미래가 있느냐는 의문마저 제기할 정도이다. 의대 증원으로 인한 이공계 이탈 현상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의대 증원 확대 정책과 관련해 윤석열 정부가 던지는 메시지의 불명확성도 우려를 증폭시킨다. 과연 심각한 지역의료체계 복원과 지역균형발전 차원인지, 혹은 정권마다 매번 총선을 앞두고 내세우는 여론 호도용 정책인지도 모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세대의 수도권 쏠림 탓에 부산을 비롯한 비수도권의 인구 감소가 심각한 상황에서는 바람직한 측면도 배제하기 어렵다. 의사 전문직의 지역 정착과 지역의료체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된다면, 지역 주거 환경도 한층 높아질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혁신도시 조성과 공공기관 지역 이전 정책 등도 한층 힘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마저 갖게 된다. 지방의대의 증원과 지역인재 채용 확대가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 인구집중 완화, 지역 회생의 마중물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2024-02-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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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캘리포니아 엑소더스의 교훈
‘California Dreaming.’ 1960년대를 풍미한 마마스앤파파스는 꿈만 같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삶을 노래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류 기업과 인력이 떠나고 도심은 노숙자로 넘쳐나는 악몽을 겪고 있다. 이른바 캘리포니아 엑소더스(탈출) 현상이다.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꼽혔던 캘리포니아 인구는 2020년부터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초유의 인구 감소 지역으로 전락했다. 글로벌 IT 기업들이 줄줄이 떠나고 인구는 50만 명 이상이 순유출된 상태다. 삶이 팍팍해서 떠나고, 기업 활동에 애로를 느낀 업체들이 앞다퉈 짐을 싼 탓이다. 이런 대규모 유출은 전례가 없던 터라 미국 내에서는 초미의 관심사이자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대탈주를 부추기는 건 경제적 요인이다. 그중 으뜸은 주거난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월세를 연체하다 강제 퇴거로 내몰리기 일쑤고, 노숙자로 전락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다. 물가 앙등, 교통난도 캘리포니아를 등지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 대목에서 언뜻 한국의 상황이 겹쳐진다. 사람과 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탓에 내부에서 초과밀 경쟁이 발생해 옴짝달싹 못하게 된 곳, 치솟는 아파트 가격에 젊은 세대의 미래가 저당잡히고, 삶의 모든 지표가 바닥을 쳐 ‘국가소멸’의 경종이 울린 곳. 바로 일극화된 한국의 수도권이다. 과밀의 폐해가 공통 키워드로 엮이는 캘리포니아 엑소더스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찾아야 할까?
■ 글로벌 IT 기업도, 인력도 탈주 행렬
테슬라, 휴렛팩커드, 오라클, 찰스슈왑 등은 이미 탈 캘리포니아를 감행했다. 포춘지 선정 글로벌 1000대 기업에 속한 기업 중 10곳 이상이 수년 사이 짐을 쌌다. 100명 이상 규모 기업으로 확대해 보면 60곳 이상이 떠났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메타), 아마존은 캘리포니아 본사를 유지하는 대신 미국 내 다양한 지역으로 사무실과 시설을 확대하고 있다. GDP만 놓고 보면 캘리포니아 경제 규모는 웬만한 국가급으로 일본과 독일 다음인 세계 6위 수준이다. 이러한 거대 경제권에 파열구가 생긴 것이다.
인구는 2020년 3950만 명에서 지난해 3896만으로 54만 명이나 줄었다. 한번 꺾인 인구 추세는 속절없이 추락 중이다. 유권자가 줄자 연방 하원 의석이 53석에서 52석으로 줄어드는 수모까지 겪었다. 캘리포니아 이탈 요인은 과도한 법인세, 고용 규제, 교통난, 도심 노숙자와 범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으나 가장 큰 이유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주거 비용이다. 샌디에이고 지역 매체 CBS8에 따르면 침실 한 개짜리 주택의 평균 월세는 2400달러(우리 돈 320만 원)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침실 2개짜리 아파트에 월 5000달러(우리 돈 670만 원)가 예사다. 평범한 직장인 가족이 단란하게 살 수준을 한참 넘어서 버리는 것이다.
월세 연체로 인한 강제 퇴거는 사회 문제로 번진 지 오래다. LA타임스는 LA카운티에서 월세가 5% 오르면 2000명이 노숙자로 전락해 거리로 나온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노숙자를 줄이기 위해 행정 당국이 코로나19 기간 퇴거 유예 명령을 내렸지만 지난해 유예가 종료된 뒤 건물주와 세입자 사이에 퇴거를 놓고 소송전 비화, 시위 등 갈등이 잇따르고 있다.
■ 과밀 피해 분산으로 각자도생
스탠포드대와 UCLA처럼 좋은 대학이 즐비하고, 여기서 배출되는 인재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을 차리고 이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덕분에 도시에 활력을 주는 성장 모델. 이 선순환이 캘리포니아의 성공 비결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 성장 모델에 한계가 온 것일까? 대탈주 현상의 근저에는 과밀의 폐해가 있다. 수용할 수준을 넘은 인구가 몰리면서 발생한 혼잡 비용이 너무 커졌다는 거다. 주거난과 교통난이 초래되고 빈부 격차와 범죄율까지 덩달아 악화된 것이다.
지난달 18일 부산 동구 ‘창비 부산’에서 자신의 신간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 북콘서트를 열었던 미국 출신의 로버트 파우저 전 서울대 교수는 “LA 한인들은 미국 중부로 많이 이사 간다. 집값이 너무 비싸서 사람들이 떠나고 있다”(부산일보 2024년 1월 22일 보도)고 전했다. 파우저 교수는 “런던과 도쿄 같은 대도시는 삭막한데, 서울이 그렇게 변해 가고 있다”면서 ‘도시 속 자연과 소통하는’ 매력 때문에 살고 싶은 도시 1순위로 부산을 꼽았다. 주거난, 교통난을 피해 캘리포니아를 떠나 텍사스 등 다른 주로 이주한 이들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자문해야 한다. 한국 수도권에서도 젊은 세대가 꿈꿀 수도 없는 높은 집값과 교육비 부담에 결혼과 츨산을 포기하고, 최장 3시간 출퇴근과 ‘지옥철’ 등 살인적인 교통난이 흔하다. 캘리포니아를 탈출하게 만드는 상황에 버금간다. 그런데, 왜 캘리포니아 엑소더스처럼 서울 엑소더스, 수도권 엑소더스는 일어나지 않는 걸까?
■ 다시 수도권 집중 망령
새해 윤석열 대통령은 지방민을 여러 차례 깜짝 놀라게 했다. 윤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저출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과잉 경쟁을 개선하기… 위해 지방균형발전 정책을 확실하게 추진하겠다”고 다짐해서 큰 기대감을 갖게 했다. 저출생 문제의 본질이 지방소멸을 자양분으로 살찌는 수도권의 과도한 집중에 있다는 대통령의 정확한 진단과 해결책이 반갑게 들렸던 것이다. 하지만, 연이은 수도권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확장 계획 발표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지역균형발전의 포기 선언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비수도권 지역 대학에서 반도체를 전공한 인력은 자연스럽게 수도권 클러스터에 취업하는 구조가 된다. 반도체 생산 기업이 수도권에 몰려 있고 지역에는 인력을 받아줄 회사가 없으니 지역 대학이 애써 키운 인재들은 서울과 경기도로 유출될 수밖에 없어서다. 실제 지난해 부산에서 수도권으로 순유출된 1만 1260명 중 20대가 5000명이 넘는다. 해마다 이런 식으로 젊은 세대가 취업을 위해 지역을 떠나니 지방소멸과 수도권 집중의 악순환 고리는 공고화될 뿐이다. GTX 확장 계획은 겉으로 교통 불편 해소를 내세우지만 실은 수도권의 비대화를 더욱 부추기고 지방 고사를 가속화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노선을 충청과 강원도까지 확대하겠다니, 수도권 블랙홀의 흡입력을 키워 일부 지방까지 준수도권으로 만들 작정이다. 지역균형발전을 다짐하면서 622조 원을 투자해 346만 개 일자리를 만든다는 반도체 클러스터나 134조 원을 들여 GTX를 확장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캘리포니아 엑소더스 행렬은 숨막히는 밀집 상태를 벗어나 낮은 주거비 등 쾌적한 생활 환경을 찾아 떠난 거다. 캘리포니아에 남은 사람들도 과밀이 해소되고 그 덕분에 주거난과 교통난에 숨통이 트이면 삶의 질이 개선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집중의 폐해는 분산으로 풀면 된다. 캘리포니아주 정부가 억지로 개입하지 않고도 수요와 공급 불일치 해소 과정에 분산의 지혜가 발휘되는 중이다. 이를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지역균형발전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국가 시책으로 수도권 일극화 집중을 부추기는 경로 의존이 반복된다. 윤 대통령 스스로 인구절벽과 국가소멸의 위기 원인이 수도권의 과잉 경쟁이며 해결책이 지역균형발전이라 선언해 놓고도 수도권에 거미줄 교통망을 깔고 기업과 인력을 빨아들이는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고 한다. 이미 수도권이 과포화되어 지속불가능하다는 진단이 나왔는데 인공호흡기를 달아 생명을 연명하겠다는 것이 아니면 뭔가.
이대로라면 국가소멸의 묵시록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닥쳐오게 된다. 재앙을 피하려면 서울 엑소더스, 수도권 엑소더스가 필요하다. 수도권 인구가 해마다 지역으로 유출되고, 기업의 탈 수도권 행렬 뉴스가 들릴 때 비로소 한국은 ‘사라지는 국가’로의 진행을 멈추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수도권은 캘리포니아 엑소더스와 정확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2024-02-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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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김정은의 ‘전쟁할 결심’ 실전으로 이어질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해를 넘기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중동 전면전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으며 세계는 지금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해 들어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 고조가 지구촌 평화를 위협하는 새로운 요소로 등장했다. 외신들이 잇따라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주목하기 시작한 가운데 북한의 움직임에 무심하던 백악관에서조차 김정은의 도발을 우려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잊고 지내는 사실이지만 한반도는 지금도 전쟁 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휴전’ 상태다. 언제든 전쟁이 재개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희박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한반도가 안고 있는 숙명적 리스크다.
∎김정은 “전쟁 준비를 서두르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연말 노동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을 적대적 두 교전국 관계로 정의하며 ‘남조선의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를 명령했다. 헌법을 고쳐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이자 ‘불변의 주적’으로 명기하고 ‘통일’을 삭제했다. 선대 수령들이 추진한 정책마저 전면 부정하며 남북 관계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최근 평양의 통일거리 남쪽 입구에 세워져 있던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도 철거한 사실이 위성사진을 통해 확인됐다.
새해부터는 대남 도발 수위도 높이고 있다. 지난 5일 백령도 북방 장산곶과 연평도 북방 등산곶 일대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쪽으로 200여 발의 포격을 강행했다. 14일에는 동해상으로 고체연료 추진체계가 적용된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24일에는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 여러 발을 발사한 게 우리 합동참모본부에 포착됐다.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미사일총국이 개발 중인 신형전략순항미사일 ‘불화살 3-31’형이라고 보도했다. 접경지역에서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핵 전술 고도화를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외신, 한반도 전쟁 가능성 주목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시그프리드 해커 교수는 북한전문매체 38노스 기고문에서 “한반도 상황이 한국전쟁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며 “북한 관영매체에 등장하는 ‘전쟁 준비’ 메시지는 북한이 통상적으로 하는 ‘허세’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도 미국 외교안보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 기고에서 “2024년 동북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최소한 염두에는 둬야 한다”고 밝혔다. 갈루치 교수는 1994년 1차 북 핵 위기 당시 미국 특사로 대북 협상을 담당하면서 북한 핵무기 개발 중단을 대가로 경수로와 관계 정상화를 약속한 북미 제네바 합의를 성사시켰던 인물이다.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해 미국 정부와 언론의 관심도 점점 커지는 양상이다. 23일(현지시간) 백악관 언론 브리핑에서는 ‘북한이 전쟁 준비를 하고 있느냐’ ‘북한의 군사 태세에 변화 조짐이 있느냐’는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와 관련해 백악관 존 커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우리는 핵 능력을 포함해 군사력의 지속적 증강을 추구하는 체제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김정은 위원장)의 수사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군사 동향에 대해서도 “매우, 매우 긴밀하게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예멘 후티 반군과의 충돌 등의 안보 현안에 밀려 있던 북한 이슈가 다시 살아나는 기류다.
∎한미 선거철 틈타 몸값 키우려는 의도
일부에서 제기되는 한반도 전쟁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실제 무모한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대체적 시각이다. 북한이 최근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내부 체제 보안을 강화하고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정부의 재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몸값을 높이는 동시에 한국의 4월 총선에도 영향을 미치려는 복합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한국과 미국의 선거철이면 도발을 감행했다. 2012년 말 미국 대선 직후 한국 대선 직전 시기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고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 핵실험을 실시했다. 또 2016년 미국 대선 두 달 전 핵실험을 다시 감행했다.
북한도 전면전은 정권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전쟁 능력을 강화하고 남한을 향한 태도가 강경해지고 있지만 그 어느 것도 김 위원장이 정말 전쟁을 원하고 있음을 시사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도 북한은 자멸하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한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고 이길 수 없다는 것도 너무 잘 안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 정권이 진지하게 전쟁을 준비한다면 무기와 탄약을 러시아로 보내지 않고 비축하고 있을 것이라며 실전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음을 시사했다.
∎우발적 확전 가능성에는 대비해야
북한의 전쟁 도발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축하면서도 국지적 도발 가능성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다. 북한이 일부 영토와 군을 상대로 도발을 감행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에 대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압박 중심 대응이 위험을 키울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한미 간 억제 조치 강화가 위기 상황을 사전에 봉쇄할 수 있다고 느낄 수 있지만 압박 기반의 강압적 방식은 때론 상황을 더 악화시켜 왔다고 밝혔다. 지금은 북한의 침공보다는 남북 간 우발적 충돌에 따른 확전 가능성을 크게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미동맹이 공고해지고 북미 대화 가능성이 희박해지면 북한이 제한적 방식의 핵무기 사용 방법을 찾아낼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이 자멸을 원하지 않겠지만 그가 어떤 세계관을 가졌는지 우리가 잘 모른다는 것은 그의 오판 가능성도 포함하는 이야기다. 현재 북한은 핵무장이 고도화돼 언제든 핵을 쓸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게 일반적 평가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한반도에서 우발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 ‘즉시, 강력하게, 끝까지’란 표현으로 우리 대응 전략을 밝혔는데 이런 게 확전 가능성을 키울 수도 있다. 북한의 위협에 지나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지만 위기관리는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주문한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면 경제적으로도 부정적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게 우리 딜레마다. 북한 도발에 대한 충분한 억지력을 확보하면서도 위기관리를 위한 노력을 동시에 해야 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남북 간에 군사 채널이든 뭐든 있었는데 지금은 북한이 조평통(조국평화통일위원회)까지 없앤 마당이다. 한미일 공조는 물론이고 중국과의 외교를 통한 통합 억지력도 필요한데 우리 외교에서 취약해진 부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재집권이 몰고 올 다양한 영향에 대해서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트럼프 집권 시 북미 간에 소위 비핵화 교섭이 아닌 핵 군축 교섭이 진행되고 한국의 핵무장 요구가 비등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래저래 한반도 안보 상황에 대해 다각도로 대비해야 하는 한 해다.
2024-01-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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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AI 야구 심판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올해는 한국 프로야구가 획기적 변신을 꾀하는 해다. 볼·스트라이크 자동 판정 시스템(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이 도입되고, 투수의 공 던지는 시간을 제한하는 ‘피치 클록’도 시행된다. 그 밖에 베이스 크기 확대, 수비 시프트 제한 등 새롭게 도입되는 제도가 여럿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11일 이사회를 열어 이를 공식 확정, 발표했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눈길이 쏠리는 것은 당장 개막전부터 적용되는 ABS다. 이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정확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주장과 기술적 오류나 인간적 감성의 부재를 지적하는 견해가 부딪치기 때문이다.
■ AI 심판 어떻게 운용되나
주심 대신 기계가 볼과 스트라이크를 판정하는 ABS는 인공지능(AI) 심판 혹은 로봇 심판으로 불린다. 미국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도 아직 공식 도입하지 않았으니, 한국이 어찌 보면 세계 최초인 셈이다. 그동안 고교 야구와 프로야구 2군 경기에서의 시범 운용을 지켜본 심판들이 그 필요성에 공감하고 동의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ABS 방식은 이렇다. 여러 각도에서 설치된 카메라가 미리 스트라이크 존을 설정해 놓은 뒤 공이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오면 이어폰을 통해 주심에게 음성 신호로 전달하고, 심판은 이 소리를 듣고 볼 혹은 스트라이크 ‘콜’을 한다. 이를 위해선 고도의 AI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
■ 공정성과 정확성이 장점
ABS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정확성과 공정성이다. 그동안 주심의 판정 때문에 선수와 심판 사이에 숱한 갈등이 일었던 게 사실이다. TV 중계 화면에 잡히는 스트라이크 존과 심판 판정이 어긋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선수는 선수대로 억울해했고, 심판은 심판대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이런 모습을 보는 팬들 역시 스트레스를 받았다.
ABS는 정교한 센서와 알고리즘을 통해 정확한 판정을 내리는 데 더 유리하다. 인간의 판정은 선수나 팀, 경기장 분위기 등 다양한 외부 요소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이런 주관적인 영향을 제거해 오류를 줄이고 모든 팀에게 공평한 판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 AI 심판의 긍정적 매력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보다 빠른 판단으로 판정 갈등이나 논란을 줄여 경기 진행 속도를 높이는 장점도 있다.
4년간의 2군 경기 시범 운용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약간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볼카운트에 대한 이의제기는 별로 없었다고 한다. 시합하는 양쪽 팀에게 동일한 ABS가 적용되면 공정성 논란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1군 경기에 도입할 경우에도, 적어도 사람으로 인해 일어났던 판정 실수는 막을 수 있을 것으로 KBO는 보고 있다.
■ 기술 오류 우려, 스포츠 묘미 실종?
하지만 ABS는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일까. 센서 오작동이나 소프트웨어 버그 등 기술적 오류로 잘못된 판정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결국 경기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판정 불신으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현장의 선수들이 AI 판독의 정확성에 회의적이다. 투수마다 던지는 공의 높이, 탄도, 움직임이 제각각이라서다. 판독이 각도에 따라 다를 경우, 각도 하나 비틀어지면 그 경기의 모든 스트라이크 존은 달라진다.
AI 심판이 적용된 고교 야구를 지켜봤다는 김성근 감독은 최근 유튜브 채널에서 이런 말을 했다. “기계가 스트라이크를 안 잡아주니까 타자가 이를 악용한다. 배트를 휘두르지 않는 거다. 투수는 하는 수 없이 한복판으로 슬슬 던져야 한다. 이러면 야구의 질이 떨어진다.”
ABS에서는 주심이 AI의 음성을 전달받아야 하니까 직접 판단할 때와 달리 약간의 시차가 있다.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예컨대, ‘2스트라이크 3볼’에서 누상의 주자가 뛰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뒤늦게 스트라이크 판정이 날 경우, 주자는 다시 돌아와야 한다. 볼 판정 시간이 지연되면 이뿐만 아니라 각종 상황에서 집중력과 긴장감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 야구의 묘미는 그때그때의 순간적 판단과 센스에 있는데, 그것이 반감되는 것이다. 주심의 개성 넘친 스트라이크 콜과 멋진 액션을 볼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심판의 판단이나 감정도 경기의 일부로 여겨져 왔다. 심지어 논란이나 갈등까지 경기의 재미 중 하나로 보는 사람도 있다. AI 심판은 이런 인간미를 없앤다는 점에서 아쉽다.
■ 한국 야구 발전의 계기로
AI 야구 심판 1군 리그 정식 도입. 결국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은 한국에게 돌아왔다. 고교 야구와 2군 경기의 시범 운용에서 ABS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게 KBO의 판단이다. 메이저리그는 트리플A에서 AI 심판을 적용한 결과 경기 진행 시간이 더 늘어나자 도입을 유보한 상태다.
어쨌든 새로운 제도의 시행이 확정된 만큼 선수들은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 때부터 변화한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개막전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즌이 열리면 ABS에 대한 여론이 어떤 식으로든 형성될 것이다. 새 제도에 대한 면밀한 체크와 함께 그에 걸맞은 재조정 작업도 필요에 따라 제기될 수 있다고 본다.
가장 중요한 건 경기의 품질과 야구팬의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다. 요컨대, 한국 야구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한국 야구의 미래에 최선의 선택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갑진년은 한국 야구 변신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다. 향후 세계 프로야구의 트렌드를 주도할 역량도 여기 달려 있다.
2024-01-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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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한국판 NASA’ 안착, 초대 청장이 관건
우여곡절 끝에 지난 9일 우주항공청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무려 9개월 만이다. 그동안 쟁점이었던 연구개발(R&D) 기능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새로 설립되는 우주항공청이 모두 수행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항공우주연구원의 소속은 한국천문연구원과 함께 우주항공청으로 편입됐다. 앞으로 대전에 있는 두 연구원을 이전할 경우 국회의 동의 절차를 밟도록 했다. 모두 더불어민주당의 요구를 받아들인 절충안이다. 항공청은 현 정부의 국정 과제에 따라 경남 사천에 터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우주항공청법 통과로 숙원이던 항공청 설립은 본궤도에 올랐지만, 앞으로 우주항공 전문기관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고비를 넘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초대 청장의 역할을 꼽고 있다.
■ 파격적인 인력 확보 중요
단독 기관으로 출범하는 항공청의 조기 안착 여부는 초대 청장의 활약에 달렸다는 게 중론이다. 신생 기관인 만큼 항공청의 조직과 인력 관리를 통한 부처의 정체성 수립부터 예산 배정을 위한 정치권과의 소통, 국민의 지지 확보를 위한 홍보 전략 등이 모두 초대 청장의 몫이다. 이를 원활하게 수행하면서 항공청을 초기에 반석 위에 올려놔야 하므로 그만큼 인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우리보다 앞선 외국의 사례가 좋은 참고가 될 듯하다. 특히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의 초석을 다진 제임스 웨브 국장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임스 웨브 국장은 국무부 차관 출신의 공무원이었지만, 우주 탐사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당시 예산 낭비라는 의회의 공세를 막아내며 230조 원에 달하는 아폴로 계획을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정치권과 소통을 통한 우호적 여론 확보, 조직의 안정 등 초기 어려움을 뛰어난 리더십으로 이겨냈다. 신설 기관인 우주항공청을 이끌 초대 청장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아랍에미리트(UAE)가 초대 우주청장으로 30대의 여성 과학자를 임명한 파격적인 인선도 의미 있는 참고 사례가 될 만하다. UAE 첨단과학기술부 장관 겸 우주청장인 사라 알 아미리(37)는 2021년 2월 UAE의 화성 탐사선 ‘아말’의 화성 궤도 진입을 성공시켜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 국적과 상관없이 해외의 젊은 인재를 영입하고 이들과 적극적인 협업을 끌어내면서 2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던 화성 탐사선의 발사 기간을 절반 이상 단축했다.
■ 열린 시각의 종합적 지원 필수
항공청을 실질적으로 움직일 연구원의 인선도 최대한 열린 시각으로 문호를 넓히는 게 중요하다. 항공청이 우리나라의 우주 개발과 탐사 활동에 대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 만큼 조직과 연구 인력 구성에 다른 정부 부처와는 다른 개방성과 유연성의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연구원의 연봉부터 예산과 조직 운영의 자율성 등이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다른 부처와의 형평성 문제가 언뜻 제기될 수도 있겠으나 항공청의 조속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파격적인 수준의 종합적인 지원은 불가피하다.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세계 우주 탐사 경쟁에 우리나라도 항공청 설립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가세한 이상 아낌없는 정책 지원을 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국민 여론도 별다른 이견은 없어 보인다. 지난해 과기부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국민들이 우주항공청의 성과 달성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최고의 인재 유치’와 ‘안정적인 예산 확보’를 꼽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런 여론을 바탕으로 우수한 인재들이 우주항공청이 들어설 경남 사천에서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정주와 교육 등 환경 개선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주항공청의 역할 정립과 세부 과제 수립, 우수 연구원 유치·확보, 업무 분장 등과 같은 사안에서 전문가의 시각이 존중돼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권이나 정부의 지나친 간섭은 항공청의 앞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의 여망을 안고 항공청이 설립되는 만큼 정부는 정부대로,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후방에서 가능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만이 우리 국민에게 태극기를 단 우주 탐사선의 항해를 하루라도 빨리 보여줄 수 있는 길이 되리라 생각된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2024-01-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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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이재명 대표 피습… '증오·확증편향 정치' 멈추는 계기 되길
한국 정치가 아프다. 1월 2일 부산 가덕도 대항전망대를 방문했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으로 불과 3개월 앞둔 4·10 총선 일정이 비틀어지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가덕도는 조선시대 일본 왜군과 대척하는 최전방 군사기지였다. 한반도에서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봉수대의 출발점이 가덕도 연대봉이었다. ‘말기암’ 증세에 이른 한국 정치의 위기를 알리는 봉화가 새해 벽두 가덕도에서 오른 것이다.
특히,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일반인인 60대 김 모 씨가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진술하면서 더욱 충격적이다. 민주주의는 갈등을 폭력과 협박이 아니라, 투표로 해결하는 시스템이다. 한국 민주주의 성지인 부산에서 그런 불미스러운 정치 테러가 벌어졌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증오와 혐오에 맞서기 위한 국가적인 지혜가 절실하다.
■조직에서 개인 정치 테러로
광복 직후인 1945년 12월 우파 정치인 송진우, 1947년 중도좌파 여운형 암살 사건이 일어났다. 여운형은 해방 후 2년 동안 무려 10차례나 피습됐다. 같은 해 12월엔 한국민주당 장덕수, 1949년 6월엔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가 저격당해 숨졌다. 1969년에는 김영삼 신민당 원내총무 승용차 초산 테러 사건, 1973년에는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 주도로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났다. 전두환 정권 때인 1987년 4월엔 안기부가 배후 조종한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테러인 ‘용팔이 사건’이 있었다. 과거 대부분의 정치 테러는 국가 권력이나 반대파에 의한 조직적인 범죄 위주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개인의 정치 테러가 일상화되고 있다. 2006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지방선거 지원 유세 도중 괴한에게 공격당해 얼굴에 60바늘을 꿰매는 봉합 수술까지 받았다.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2022년 서울 선거운동 과정에서 70대 유튜버로부터 쇠망치로 머리를 가격당했다.
물론,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은 46명의 대통령 중 4명이 암살되고, 6명에 대한 테러 공격이 있었다. 일본도 최근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하여 근현대사에서 많은 정치인이 폭력과 암살로 희생되었다. 다만, 이번 이 대표에 대한 테러 공격은 너무도 평범한 일반인이 명백한 살인 의도를 가지고 저지른 정치 테러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해외 언론에서 본 이재명 피습과 한국 정치사회
이 대표 피습 사건에 대해 해외 언론들은 ‘정치의 극심한 양극화 현상’을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다. 미국 공영라디오방송 NPR은 “아시아의 주요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경고 신호”라면서 “한국이 극단적인 시각을 가진 소외된 외톨이들에 의한 범죄가 증가하고 있고,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초당적 협력이 실종되면서 분노의 정치가 확산된 탓”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CNN 방송은 “한국 정치는 최근 몇 년 동안 보수와 진보 진영 간 극심한 양극화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갈수록 양극화되는 한국 정치 분위기에서 4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과 이 대표 지지자들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물론 사상 초유의 의사당 점령 사태가 발생한 미국, 극단적인 정치 세력이 잇따라 집권에 성공하는 유럽, 중동 등에서도 정치 양극화가 심각하지만, 이들마저도 한국의 정치 상황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고 있다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극단주의 정치 심화시킨 확증편향
해외 언론에서도 지적한 한국 사회의 확증편향 심화 현상은 ‘무조건 내 편은 옳고, 네 편은 틀렸다’로 귀결된다. 확증편향(원래 갖고 있던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경향)은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유사한 정보만 취득하고 그 외는 무시하는 현상에 대한 심리학적 용어다. 이런 편향성은 의사 결정 시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수집하는 단계부터 나타난다. 사실 여부는 상관이 없는 상황이다. ‘자기 생각에 대한 강한 확신’ ‘타인에 대한 부정’ ‘부족주의와 흑백논리’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임석준 교수는 “정치 분야에서 개인들이 자신의 정치적 시각과 일치하는 특정 견해의 미디어를 시청하면 알고리즘이 이와 유사한 정보를 계속 보내주기 때문에 확증편향 현상이 더욱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일반인인 피의자 김 씨를 테러리스트로 키운 것은 정치 유튜브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자기와 견해가 맞지 않은 정치인은 제거 대상으로 생각하는 확증편향 현상이 극렬하게 드러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유튜브·SNS가 확증편향 부추겨
이 대표를 피습한 피의자 김 씨의 경우 ‘평소 정치 유튜브를 크게 틀고, 즐겨 봤으며 정치권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을 쏟아냈다’는 주변인 증언이 나올 정도로 유튜브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몇 편의 동영상을 클릭하면 내부 알고리즘으로 비슷한 내용의 콘텐츠만 자동으로 추천하면서 확증편향의 부작용을 심화시킨다. 가짜뉴스도 이를 기반으로 더욱 퍼진다. 내 입맛에 맞는 영상만 골라서 보게 되면서 정치성향은 더욱 한쪽으로 쏠리게 된다.
사건 이후에도 일부 유튜버는 허위정보를 발산하거나, 선동적으로 콘텐츠를 만들면서 확증편향을 심화시키고 있다. 1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한 유튜버는 ‘이 대표가 칼에 찔린 것이 아닌, 나무젓가락이나 나무칼 등에 찔린 것. 자작극’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밴드 하나 붙이면 치료 완료’ ‘재판을 미루려는 이재명의 꼼수’라며 상대 진영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일삼고 있다. 반대편에서도 “윤석열과 김건희가 사주해 벌어진 일” “악마들이 의료진을 매수할지 모르니 우리가 지켜야 한다” “테러를 의도적으로 방조했다” 등등 가짜뉴스가 유튜브를 통해 퍼지고 있다.
■증오 조장하는 정치권과 언론
이런 상황에도 진영 논리에 매몰된 정치권은 오히려 사태를 키우는 모양새다. 이경 전 민주당 부대변인은 자신의 SNS에 “대통령이 민생은 뒷전이고 카르텔, 이념 운운하며 국민 분열을 극대화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 아닌가”라고 한 것도 대표적이다. 피폐해진 한국의 정치가 확증편향을 키울 불쏘시개만 찾아 발언 수위를 연일 높이고 있고, 이는 결국 정치 테러에 자양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상대 진영은 무조건 타도의 대상으로 여긴다.
21대 국회는 유튜브 콘텐츠 규제 관련 법안이 10개나 발의됐지만 정쟁에 파묻혀 논의조차 진행하지 못했다. ‘초당적 협력과 협치 상실’이라는 지적처럼 정치권은 통합과 갈등 해소보다는 권력 쟁취 목적으로 확증편향만 부채질하는 셈이다. 그래서 정치 테러는 ‘증오와 분노의 정치를 양산한 정치권이 원죄’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게 나오는 이유다.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차재권 교수는 “원론적으로 극단적인 진영 대립의 정치가 결국 이런 불상사로 귀결되었다”면서 “정치인들이 정치 혐오를 양산하는 원인을 제공했고, 옐로 저널리즘으로 특징되는 일부 언론의 부정적인 역할도 무시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확증편향이 극단 사회 부채질
잘못된 정보와 신념이 SNS를 타고 전파되면서 사회 불안과 균열을 확대한다. 한국사회 및 성격심리학회는 ‘2024년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사회심리 현상’으로 확증편향을 선정했다고 4일 밝혔다. 이러한 확증편향은 사회적 불안과 갈등을 심화시키고, 결국 이 대표 피습과 같은 평범하지만 고립된 개인에 의한 정치 테러 등 극단적인 행위가 나타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동의대 신문방송학과 원숙경 박사는 “사회가 정치적으로 양극화될수록 자신의 신념에 부합하는 미디어 콘텐츠를 중심으로 응축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번과 유사한 테러와 사회적 분열은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원 박사는 “이 대표 테러 사건을 조명하기 이전에 가짜뉴스의 급속한 확산은 다른 형태의 테러”라고 덧붙였다.
■국내 분열 목적의 외부 테러도 우려
4·10 총선 등 극렬한 국내 정치 대립은 자칫 외부 세력이 개입할 위험성을 한층 키울 수 있다. 상존하는 위험은 ‘2024년 전쟁 위기론’을 불 지피고 있는 북한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한 사회 내부의 균열을 목적으로 ‘내부 정치 테러’를 가장한 ‘공작 테러’를 저지를 위험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2017년 말레이시아 국제공항에서 북한 김일성의 손자이자 김정일의 장손,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의 독극물 테러 사건이 국내에서 발생하지 못하리라는 보장도 없는 상황이다. 당시 북한은 ‘한국 정부가 북한 국민을 테러한 사건’이라고 주장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칫 북한이 총선 국면에서 정교하게 설계해 실행한 ‘공작 테러’를 국내 정치 테러로 전가할 경우 한국 사회 내부에 극심한 분열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북한의 남파 간첩이 독약앰플을 소지하거나, 해외에서 한국 외교관이나 선교사가 독극물에 의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것도 이런 우려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전망 및 대책은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선거전이 과열되면 진영 간 극단적인 대립은 더욱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무슨 일이 벌어질지 매우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앞장서서 풍토를 바꿔야 한다. 갈등과 혐오로 팬덤 정치를 지향하면, 결국 스스로도 증오 메커니즘에 함몰되기 때문이다. 동아대 임석준 교수는 “총선이 시작되는 시점에 터진 정치 테러는 여야 정치권이 서로를 증오하는 정치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필요성을 제기했다”면서 “타협과 상생의 정치가 간절하다”라고 밝혔다. 정치권에서 이번 사태를 극단적 정치 문화를 중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일침이다.
동의대 원숙경 박사는 “객관적 판단보다는 정치적 신념을 앞세워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군중의 심리를 이용한 SNS와 미디어의 ‘클릭 장사’도 이번 기회에 점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해 벽두 가덕도에서 올린 ‘한국 정치가 아프다’라는 봉화가 대한민국 사회에 경각심을 줄지, 아니면 국가 분열이라는 국난으로 전락할지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국가와 사회 전체에 달려 있다. 분명한 사실은 화합과 상생이란 국가적 과제를 구성원 모두가 외면할 경우 그 후폭풍은 온전히 국민 모두가 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2024-01-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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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문과침공’, 당분간은 참으라고?
■더 심해진 문·이과 격차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역시 이른바 ‘문과침공’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니, 더 심해졌다. 문과침공은 이과 과목을 공부한 수험생들이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얻고 문과 계열 학과에 지원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수능이 문·이과 통합형(말이 통합형이지 실제론 선택과목을 둔 불완전 통합형이다)으로 치러진 2021년부터 특히 더 두드러졌다.
문과침공의 원인은 선택과목 사이 난이도 조정 실패다. 문과 수험생이 주로 고르는 수학 과목은 ‘확률과 통계’다. 이과 수험생은 미적분·기하를 대부분 선택한다. 그런데 ‘확률과 통계’와 미적분·기하 사이 난이도 조정이 제대로 안 될 경우 원점수가 같아도 표준점수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통상 더 어렵다고 판단되는 미적분·기하에 점수를 더 얹어 환산하기 때문이다. ‘확률과 통계’를 고른 A 수험생과 미적분·기하를 고른 B 수험생 모두 한 문제도 안 틀려도 표준점수에서 B 수험생이 더 높게 나오는 이유다. 그 차이가 2021년에는 1점, 2022년엔 5점이었는데, 올해에는 무려 11점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합격을 위해 소수점까지 다투는 형편에서 11점은 어마어마한 차이다. 실제로 올해 수능에서 수학 1등급은 이과 수험생이 97%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이과 수험생들이 문과 계열로 지원한다면, 처음부터 11점을 깎이고 들어가는 문과 학생들로서는 패닉 상태에 빠질 법도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올해 문과침공이 사상 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서울 종로학원에 따르면 이과 수험생 중 절반은 대학의 인문사회 계열 학과에 지원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정 모르는 주장들
“문과 수험생들도 미적분을 공부해서 시험을 치르면 되지 않냐”는 사람도 있다. 물정 모르는 소리다. 2015년부터 고등학교에서 문·이과 구분을 없애기는 했다. 형식적으로는 문과를 지망해도 미적분을 공부할 수는 있지만 학교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문과나 이과로 진로를 정한 다음에는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이 사실상 한정된다. 문과 학생이 이과 과목을 공부하려면 결국은 사설 학원 등에서 따로 공부해야 돼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여하튼 억울하면 문과 수험생도 이과 계열 학과에 지원하라고? 역시 물정 모르는 소리다. 이론적으로는 문과 수험생의 이과 계열 지원이 가능하다. 하지만 주요 대학들은 의학·이공 계열 지원 시 미적분 등 이과 과목 응시를 명시해 놓았고, 선택과목 제한을 없앤 대학이라도 이과 과목에 가산점을 주는 곳이 많다. 반면에, 인문사회 등 문과 계열 학과에 진입 장벽을 두는 대학은 거의 없다. 이런 차별적 조건 때문에 이과 수험생들이 높은 수학 표준점수를 무기 삼아 문과 계열 학과에 지원하는 문과침공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대학 황폐화 우려
문과침공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의대를 희망하나 충분한 점수를 받지 못한 수험생이 마치 보험 들듯 일단은 국문과로 진학한다? 그 수험생이 대학 생활을 잘할 리 없다. 십중팔구 재수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혹 그러지 않는다 해도, 적성에 맞지 않은 공부를 억지로 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해당 학과에 적응하지 못해 학업 성취도가 크게 떨어질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어느 대학교에서 문과 계열 학과에 들어온 이과 출신 학생들의 평균학점을 조사했더니 문과 출신 학생들의 평균학점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근래 문과 계열 학과 대학생들의 중간 이탈이 급증하고 있다. 입학만 해 놓고는 학교에 다니지 않거나, 1~2년 다니다 자퇴하는 것이다.
부작용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문학 등 문과 계열 공부를 진정으로 하고 싶은 수험생들은 문과침공으로 인해 처음부터 기회를 빼앗긴다. 잘못된 제도의 피해자가 되는 셈이다. 이런 일이 누적되면 문과 계열 학과, 특히 사회 유지의 근간이 되는 인문사회 관련 학문의 황폐화 또는 붕괴 현상이 벌어질 수 도 있다. 이게 지금 우리 대학이 처한 현실이다.
■당장의 대책을 내놓으라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월 주요 대학 입학처장 간담회에서 “수능 과목으로 입시 불리함 없게 개선 방향을 찾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올해 수능에서 보듯이 그 말은 빈말이 됐다. 원래 통합 수능은 융합형 인재를 기르자는 취지에서 2021년 수능부터 시작됐다. 학생들이 적성에 맞게끔 부담이 가지 않는 방향으로 출제한다고 약속했지만 허울에 불과했다.
문과라는 이유만으로 수능과 대입 전형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현실은 개인에도 사회에도 큰 손실이다. 어떤 식으로든 대책을 시급히 강구해야 한다. 2021·2022년 수능 때 문과침공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교육부와 대학들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기는 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움직임은 없었다. 그러다 나온 것이 지난 27일 교육부가 발표한 ‘2028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이다. 개편안에 따르면 올해 중학교 2학년들이 치를 2027년 수능은 선택과목 없이 공통과목만 치르게 된다. 수학도 문·이과 수험생이 같은 과목을 치른다.
수능 개편의 방향은 옳다고 하겠으나, 개편안이 시행되기까지 기존 방식대로 수능을 치러야 하는 수험생들은 어쩔 것인가. 3년 동안은 그대로 방치하겠다는 이야기 아닌가. 개편안은 현행 수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교육부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에 나왔을 테다. 그렇다면 보완책이라도 당장 내놓는 게 옳다. 수험생 절반을 애꿎은 희생양으로 만들면서까지 잘못된 정책을 유지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2023-12-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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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손흥민이 불러온 ‘우리’… 다시 ‘우리’를 되돌아보다
캡틴 손흥민이 팀을 바꿔 놓고 있다. 여기서 팀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아니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다. 올 시즌 토트넘은 팀 성적도 성적이지만, 팀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22일 현재(한국시간) 토트넘은 프리미어리그 5위다.
시즌 초반만 해도 영국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은 토트넘의 성적을 팀의 간판 케인의 이적, 잘 알려지지 않은 안지 포스테코글루 신임 감독 선임, 전성기가 지났다는 손흥민의 에이징 커브(Aging Curve) 등 여러 가지 이유로 10위권 정도로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시즌이 열리고 경기가 진행되면서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가 알던 답답했던 과거 팀과는 전혀 다른 팀이 됐다. 케인 중심의 단순한 공격, 수비 위주의 답답했던 전술은 거의 사라졌다. 올 시즌 토트넘을 바꾼 것은 신임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수비라인을 끌어올린 공격형 전술도 있지만, 새로운 캡틴 손흥민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팀 불화 등으로 분열된 팀을 ‘우리 클럽(Our Club)’ ‘우리 팀(Our Team)’으로 변화시켰다.
▶‘나’보다 ‘우리’ 앞세운 캡틴
올 시즌 초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팀의 전력 보강을 추진하며 손흥민에게 주장 완장을 맡겼다. 그게 올해 8월이었다. 손은 토트넘 입단 8년 차지만 주장단 같은 팀의 리더 그룹에 속했던 적은 없었다. 토트넘은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 서유럽 국가 백인 선수 위주로 긴 시간 주장단을 구축하며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만들었다. 호주 출신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이것을 과감히 깼다. 팀의 전면 쇄신이 필요한 상황에서 특정 국적을 떠나 동료, 팬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는 선수에 주목했고, 손을 주장으로 발탁한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주장을 맡고 있는 손은 준비된 캡틴이었다. 캡틴 손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토트넘을 ‘원팀’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중요한 순간에는 개인주의가 튀어나오는 유럽·남미 선수들과 달리 배려와 양보에 익숙한 손흥민은 팀을 하나로 묶었다. 팀을 언급할 때도 ‘우리 팀’이란 말을 달고 다녔다. 자신이 골을 넣고도 '내 골'이 아니라 '팀의 골'이라고 했다.
‘우리’라는 단어가 주는 힘은 대단했다. 어느 순간 토트넘 선수들도 경기에 대해 언급할 때 ‘우리 팀’ ‘우리 토트넘’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일종의 한국식이다. 개인주의의 서양에서 축구를 잘하는 것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캡틴 손의 품성에 조금씩 동화됐다. 토트넘은 가족처럼 원팀으로 뭉쳐졌다. 시즌 초반 ‘리그 1위’ 질주의 한가운데 바로 ‘우리’가 있었다. 이후 토트넘은 경기에서 잇달아지며 주춤한 적도 있었지만, 다시 ‘우리’를 앞세워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유럽의 외국 선수들은 그냥 ‘클럽(club)’이라 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팀보다는 자신의 개인 성적을 우선시하고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를 내세운 손의 리더십은 달랐다. 선수 생활 보여준 그의 겸손과 헌신, 밝고 착한 심성은 그의 리더십과 결합해 동료들과 구단 관계자, 팬들의 믿음과 열정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EPL에 새로운 팀 문화 만들어
손흥민은 축구를 철저하게 팀 종목으로 대한다. 자신이 골을 넣기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고, 우리 팀이 승리할 수 있는가를 앞세운다. 공격수로서 수비 가담도 열심히 하고 동료도 챙긴다. 지난 11일 펼쳐진 뉴캐슬 전에선 후반 페널티킥 골을 넣기는 했지만, 그에 앞서 팀 동료들에게 두 차례나 골로 연결하는 결정적인 지원을 해줘 두 개의 ‘도움’을 기록했다. 전방 공격수로 이미 영국 프리미어리그 최고 선수임에도 동료를 위한, 그리고 팀 승리를 위한 축구를 더 중요하게 여길 정도다.
캡틴 손은 공격수 히샬리송이 긴 부진에 빠졌을 때, 언론과 팬들의 질타를 앞장서 막아내며 용기를 북돋워 주기도 했다. 셰필드 유나이티드와의 리그 5라운드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2 대 1 역전승의 주역이 됐던 히샬리송을 팬들 앞에 나아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도록 배려해 주었다. 이게 손흥민의 리더십이었다. “손흥민은 남쪽 스탠드로 히샬리송을 데려갔다. 오늘 엄청난 임팩트를 남긴 히샬리송을 축하받도록 하기 위한 너무나 사랑스러운 행동이다.” 토트넘 공식 채널 스퍼스 플레이의 해설가 롭 달리는 이렇게 말했다. 낮춤과 겸손 같은 동양적 가치, 캡틴 손의 이런 모습이 토트넘 팬은 물론이고 영국인들의 마음마저 훔쳤다.
동료 실수와 슬럼프를 지적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위로하며 낙오 없이 함께 가길 바라는 캡틴 손. 그가 바꿔가는 토트넘은 더 이상 수비만 하고 지나치게 케인에게 의존했던 나약한 팀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영국의 한 방송에서는 “어떻게 토트넘 선수들이 단 한 시즌 만에 이렇게 변화할 수 있었나”라고 얘기할 정도다. 한국 스타일이냐고 영국 현지에서 묻기까지 하는 손의 리더십에 포스테코글루 감독, 토트넘 동료들과 팬들 모두 그를 향해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캡틴 손이 앞장서 EPL에서 보기 힘든 팀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손은 개인적으로도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벌써 10골을 기록하며 EPL 역대 7번째 '8시즌 연속 프리미어리그 두 자릿수 득점'이라는 대기록도 작성했다.
▶다시 ‘우리’를 되돌아 보다
손흥민이 불러온 ‘우리’라는 리더십과 그의 팀 내에서의 행동은 단순히 축구 경기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먼저 우리 모두가 각자의 분야에서 어떻게 협력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준다. 더불어 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동시에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법을 보여준다. 일종의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그의 리더십과 팀워크, 공동체의식은 축구 경기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적용될 수 있는 가치이다.
최근 ‘우리’라는 공동체적 개념이 점점 옅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그가 불러온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가치와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근래 우리 사회는 남을 이겨야 내가 산다는 극단적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캡틴 손이 보여준 ‘우리’의 리더십을 본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손흥민과 같은 리더가 보여주는 팀워크와 협력의 힘은 개인적인 성공뿐만 아니라, 더 큰 공동체의 성공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골을 넣은 선수뿐만 아니라 도움을 준 선수를 우대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협력을 우대하는 시스템과 문화도 만들어야 한다. 줄다리기처럼 반대 방향으로 당기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무조건 반대는 힘만 쓰고 제자리에 머물게 할 뿐이다. 때론 한 방향으로 협력해야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협력하는 것이다.
급변하는 시대에서 새로운 리더들의 롤 모델이 되어줄 리더를 찾기란 점점 어려워진다. 현재 우리 사회의 리더들은 이익을 위해 쉽게 룰(Rule)도 바꾼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잘 사과하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도 사라진 지 오래다. 손흥민의 ‘우리’가 다시 ‘우리’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2023-12-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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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수도권 과밀이 부른 ‘인구 절벽’… 지역균형발전이 해답
인구 절벽 신호는 이제 경고음을 넘어 최후통첩으로 들린다. 연말에 쏟아지는 각종 통계 수치를 보면 한국의 미래상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합계출산율은 최저치 경신을 거듭하더니 전 세계 꼴찌로 내려 앉았다. 신혼부부 수도 급감했다. 열 가구 중 셋 이상이 혼자 산다. 독거 노인만큼 독거 청년도 흔한 일상이 됐다. 문제는 이들 지표가 개선될 여지가 안 보인다는 점이다. 인구 재앙의 시한폭탄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게 됐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일자 칼럼에서 한국 저출산을 놓고 “흑사병이 유럽에 초래한 것보다 더 많은 인구 감소를 의미한다”며 ‘한국이 사라지는가?(Is South Korea Disappearing?)’라는 과격한 전망까지 내놓았다. 그런데 이 칼럼니스트는 저출산 요인으로 교육 경쟁과 함께 낮은 혼외 출산율로 대표되는 보수적 문화를 꼽았다. 경쟁과 보수적 분위기가 저출산의 배경이긴 하지만 해법으로 이끄는 본질적인 원인 분석으로는 불충분하다.
저출산 고령화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한국의 추락 속도는 왜 이렇게 빠를까? 그 원인에 맞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새해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는 부동산 혜택과 금융·세제 지원책이 쏟아진다. 지금까지 했던 금전 지원책으로 국가소멸의 시계를 되돌릴 수 있을까?
■ 러시아, 무자녀세·낙태 금지 논쟁 중
러시아 하원의 예브게니 페도로프 의원은 최근 언론에 성명을 보내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무자녀 세금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과거 구 소련 시절 자녀가 없는 성인에 부과했던 무자녀세를 부활하자는 것이었다. 소련은 인구 감소가 사회 문제가 되자 성인 남성과 기혼 여성 중에 자녀가 없을 경우 임금의 6%를 원천 징수하는 불이익을 줬다가 1990년대 들어 폐지했다.
이 전체주의적 발상은 즉각적인 반대 여론을 불렀다. 니나 오스타니나 하원 가족여성아동위원장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과거 소련 시절은 일자리와 주택이 무료로 제공됐기에 무자녀세가 가능했지만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반박했다.
같은 맥락에서 러시아 의회는 병원에서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을 논의 중인데 출생률을 높이는 실효성이나 윤리성 때문에 반대 여론이 커서 강행 여부는 미지수다.
북한도 저출산을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3일 평양에서 열린 제5차 전국어머니대회 개회사에서 “지금 사회적으로 놓고 보면 어머니들의 힘이 요구되는 일들이 많다”며 출생률 감소와 보육, 교육을 해결 과제로 꼽았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행사 중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여 그 배경을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대다수 선진국들이 인구 감소 추세를 뒤집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와중에 일본 정부가 최근 마련한 지원책은 파격적이다. 자녀가 3명 이상인 다자녀 가구의 자녀 전원에 대학 수업료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출산율을 반등시켜야 한다는 절박감이 천문학적 재원 부담 논란을 잠재우는 지경이다.
대체 이들 국가의 인구 감소가 얼마나 심각하길래 이런 파격이 나올까? 지난해 기준 합계출산율이 러시아는 1.42명, 북한은 1.79명, 일본은 1.26명이었다. 한국은 지난해 0.778명에서 올 3분기에 역대 최저인 0.7명으로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합계출산율은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다. 2명이면 현상이 유지된다. 2명 선이 깨지면 인구 절벽에 진입하고 1명이면 반토막이 된다. 통계청은 14일 발표한 인구 추계에서 2025년 0.65명으로 바닥을 찍고 반등하는 경우와 2026년에 0.6명 선이 붕괴되어 0.59명까지 내려가는 비관론까지 내놨다. 어느 쪽이나 국가소멸을 예상한 NYT의 지적이 과하지 않다. 한국 사회가 위기에 무뎌져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비판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 결혼 때 3억 원까지 증여세 면제 등 지원책 봇물
새해에 결혼과 출산을 늘리기 위한 부동산·세제·금융 혜택이 쏟아진다.
우선 결혼과 출산 때는 최대 3억 원까지 증여세가 면제된다. 증여세는 직계 사이에 10년간 5000만 원 한도로 면제됐으나, 결혼·출산 때 1억 원이 추가된 것이다. 즉, 부부가 양가에서 최대 3억 원까지 비과세로 받을 수 있다. 자녀 세액 공제 대상도 확대된다.
‘청년주택드림청약통장’이 출시되는데, 사상 최초로 대출이 연계된다. 청약 통장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주택담보대출을 연 2% 저금리로 받을 수 있다. 신생아 특례 대출과 아파트 분양 시 신생아 특별 공급도 확대된다.
이러한 금전적 지원책은 당연히 필요한 것이다. 다만, 실효성 의문과 논란의 꼬리표가 따라 붙는다. 우선 증여세 면제가 부자 감세라는 지적이다. 저축성 금융 자산을 1억 5000만 원 이상 보유한 가구는 13.2%에 불과한 점이 그렇다. 노후 자금도 빠듯한 가구라면 상실감을 갖게 될 수 있는 대목이다.
청약과 대출 혜택도 당장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청년 세대를 분양 시장으로 불러들이는 일정 효과는 있겠지만 분양가가 너무 올라 2030 세대에 여전히 부담이다. 게다가 2~3년 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로 집을 산 젊은 세대가 고금리 탓에 대출 연체율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아져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2006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한 이후 15년간 300조 원을 투입했지만 ‘국가소멸 위기’라는 참담한 성적표로 돌아왔다. 젊은 세대가 결혼·출산·내 집 마련을 수월하게 하도록 지원하는 한편 일·가정 양립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수많은 대책이 추세를 반전시키는 근본 대책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수도권 과밀이 저출산 근본 원인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는 14일 발간한 ‘출산율 제고를 위한 정책제언’ 보고서에서 출산율 급락의 첫째 원인으로 ‘수도권 집중과 높은 주거비 부담’을 꼽았다. 앞서 지난 2일 한국은행은 ‘지역 간 인구 이동과 지역 경제’ 발표에서 “청년층의 수도권 집중이 전국적인 출산율 저하를 초래한 탓에 30년 뒤 한국 인구가 700만 명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도 지난 6월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지방소멸대응전략포럼’에서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은 수도권 집중”이라고 진단했다.
이 진단은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의 악순환에 착목한 것이다. 지방 젊은 세대가 교육과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리면 지역 청년 인구와 출생률이 동시에 떨어지고 감소한 다음 세대도 또 수도권으로 유출된다. 악순환의 결과가 지방소멸이다. 반대로 인구 과잉이 된 수도권은 교육, 취업, 주거 과열 경쟁이 벌어진 탓에 미혼과 만혼이 늘고 출산율이 감소한다. 실제 합계출산율이 가장 낮은 곳은 서울이다.
수도권 과밀화가 인구 절벽의 원인이다. 이 원인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인구 감소 추세를 근본적으로 막기 어렵다. 부동산이나 세제 혜택은 필요하되, 추세를 뒤집는 결정타는 될 수 없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일극화를 해소하고 지역에서 청년 세대가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토교통부 주최로 14일 열린 '지역균형발전포럼 정책세미나'에서 중앙대 마강래 교수는 부산, 대전, 대구, 광주 등 지방 거점 도시에 대한 전략적 투자로 경쟁력 있는 ‘초광역 경제권’을 만들면 인구 감소를 방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방이 ‘인구 댐’이 되어야 국가소멸을 막을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다른 나라도 저출산 고령화에 직면하고 있지만 한국이 극단적인 속도로 악화되는 까닭이 여기 있다. 수도가 지방의 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한국이기에 전 세계에서 유례 없는 속도로 인구가 줄고 있다. 그렇다면 수도권 과밀을 해소하고 지방 거점 도시를 육성해 나가는 것이 시급한 국가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데 총선을 앞두고 나온 ‘서울 메가시티’ 주장으로 수도권이 요동친다. 정치권은 반사 이익을 챙기려 주판알만 튀긴다. 인구 재앙 위기에 우리 사회가 무뎌져 있다는 증거다. 무수한 대책들이 변죽만 울리고 효과가 없었던 까닭이다. 지역균형발전을 골간으로 하는 국가 대개조 혁신이 시급하다. 지금이라도 방향을 틀지 않으면 국가소멸의 가속도는 더 빨라질 뿐이다.
2023-12-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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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월드 스타’ 이강인 시대 열리나
이강인의 주가가 날로 치솟는다. 프랑스 프로축구 파리 생제르맹(PSG) 이적 뒤 유니폼이 불티나게 팔려 간판선수인 음바페를 뛰어넘었다는 소식이다. 지난 3일(한국시간)에는 PSG 선수들이 한글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는 이색 풍경도 펼쳐졌다. 이강인이 이적 반년 만에 팬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다.
“메시를 연상시킨다”는 극찬에서부터 “음바페가 질투할라” 같은 호들갑까지 현지 언론들의 평가도 좋다. 뛰어난 상황 판단과 저돌적인 드리블, 패스 능력 등 일찍이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이강인의 발재간은 유럽에서도 통하는 모양새다. ‘진격의 이강인’, 그의 시대는 열릴 것인가.
■ 치솟는 주가 ‘이강인 효과’
이강인, 솔레르, 하키미, 음바페, 뎀벨레…. 3일 원정 경기에서 나선 PSG 선수들의 등 뒤에 한글 이름이 또렷했다. 세계적인 축구 클럽 PSG에서 한글 유니폼은 구단 역사상 처음이다. 이런 ‘팬 서비스’를 보였다는 게 놀랍다.
올 시즌 PSG의 홈경기 관중 가운데 한국인의 비중도 20%나 늘어났다. 이강인 이름이 적힌 유니폼이 날개 돋친 듯 팔려 음바페 유니폼과 판매 1위를 다툰다. PSG에게 한국은 어느덧 프랑스‧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시장이다. 이강인은 올해 7월 마요르카(스페인)를 떠나 PSG로 이적했는데 불과 반년 만에 복덩이로 떠오른 것이다.
이강인은 PSG의 주전급 선수로 도약 중이다. 올 시즌 주축 미드필더로 뛰며 프랑스 프로축구 리그1 10경기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리그1 데뷔골은 PSG 선정 ‘11월의 골’로 뽑힐 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최근 리그1 사무국은 홈페이지를 통해 “이강인은 PSG의 숨겨진 슈퍼스타”라는 표현을 썼다. 이 모두가 ‘이강인 효과’를 증명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 마케팅용 선수라고?
‘마케팅용 선수’라는 수식어가 있다. 아시아 선수들에게 흔히 붙는 타이틀 중 하나다.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구단 전략과 관련돼 있다는 의미다. 박지성도, 손흥민도 초기에는 이런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PSG의 이강인 활용도 이와 무관하다 볼 수 없다. 한국인 관중이 늘고 덩달아 유니폼 판매가 증가하는 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강인 유니폼 판매량 1위는 여러 분석이 가능하다. 슈퍼스타인 음바페의 유니폼을 구매한 사람은 이미 많을 것이므로 새로 영입된 이강인의 유니폼 판매가 늘어나는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 머니’의 유입이 힘을 보탰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유럽의 축구 문화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유럽인에게 축구는 일상생활이고 그에 걸맞게 스포츠 시장이 발달돼 있다. 특히 연고지 클럽에 충성하는 비율이 높다. 예컨대, 프랑스 파리에 사는 축구 팬들을 보자. PSG 유니폼이나 프랑스 국가대표 유니폼은 구입하겠지만 다른 나라나 다른 클럽의 선수 유니폼을 장만하는 데 애쓰지 않는다.
아시아는 다르다. 자신이 사는 도시의 축구팀 유니폼보다는 유럽 클럽에 입단한 아시아 선수의 유니폼이 더 인기다. 현대축구의 중심지인 유럽 축구의 위상이 그런 것이다. 그래서 이강인처럼 인기 있는 아시아 선수가 최고의 클럽에 입단한다면 유니폼 판매량이 압도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 ‘월드 스타’ 자격 갖췄다!
그러나 마케팅이 그의 인기를 다 설명하진 못한다. 어쩌면 그것은 결과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유럽에서도 통하는 이강인의 축구 실력이다. 공격적인 침투 패스, 눈이 즐거운 개인기와 탈압박, 묵직한 슈팅과 날카로운 크로스까지, 이는 국내외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중 한 사람이 1986년 월드컵 우승을 이끈 아르헨티나의 축구 전설 호르헤 발다노다. 그는 2019년 한 칼럼에서 스페인 발렌시아에서 뛰는 이강인의 대담하고 정확한 패스와 뛰어난 드리블, 볼 터치 능력을 극찬했다. “마라도나의 고향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나는 믿었을 것이다.”
이강인은 리오넬 메시의 천재성과도 비교되곤 한다. 스페인의 전설 사비 에르난데스 FC 바르셀로나 감독은 여러 차례 이강인을 언급했다. “이강인의 유소년 시절 드리블과 패스를 보면 어릴 적 메시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이강인의 PSG 이적이 결정됐을 때도 “이강인은 메시의 대체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사비 감독은 어릴 적부터 메시와 경기를 함께 뛴 인물이다.
스포츠 전문 매체들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은 지난 6월 이강인 평가 기사를 내놨다. “양발을 사용하며 공을 잘 다루는데, 이를 속도와 민첩함으로 결합해 상대 수비수를 벗겨낸다. 무게 중심이 낮아 태클조차 걸기 어렵다.” 프랑스의 <프렌치 풋볼 위클리>는 이강인이 유럽 최고의 드리블러 중 하나라는 점을 수치로 분석했다. 지난 시즌 총 90개의 드리블, 경기당 2.9개의 드리블을 성공시키며 유럽 최고의 드리블러 4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이강인은 이미 월드 스타의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 활용 가치 높여 존재감 입증을
이강인은 무엇보다 공간인지 능력이 뛰어나다. 자기 몸의 움직임으로 상대의 동작을 끌어낸 뒤 원하는 공간을 만들 줄 안다. 압박을 이겨내 방향을 전환하는 능력도 좋다. 그는 약점으로 여겨졌던 수비 능력에서도 근래 들어 확실한 개선을 보이고 있다. 신체 능력을 키워 활동량과 속도를 높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수 양쪽, 여러 위치에서 다양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선수로 발돋움했다.
PSG로의 이적은 기회이자 도전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공격형 미드필더와 공격수를 보유하고 있는 팀이 PSG다.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공격형 미드필더이든 수비형 미드필더이든 자신의 활용 가치를 증명해 나가야 한다.
지금 팀은 심각한 전력 누수로 고충을 겪고 있다. 중원 핵심 파비안 루이스가 어깨 탈구로 전열에서 이탈한 게 얼마 전이다. 당장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통과가 관건인데, 부상과 경고 누적으로 뛸 수 있는 선수가 많지 않다. 중원과 측면 모두 소화 가능한 이강인에게 자연스럽게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중용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줄 기회다.
이강인이 PSG 입단 이후 실력과 마케팅 면에서 보여준 효과는 실로 긍정적이다. 프랑스를 넘어 전 세계가 이강인을 주목한다. 나이가 어려 앞날도 창창하다. 향후 이강인이라는 스타성의 완성을 예견하기에 충분하다. 바야흐로 ‘이강인의 시대’가 잉태되고 있다.
2023-12-09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