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화의 크로노토프] 대한민국 예술수도 부산을 그리다
‘고령화’를 말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고령사회를 넘어 ‘인구소멸’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특히 부산은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 불리며 ‘지방소멸’이라는 끔찍한 경고 앞에 서 있다. 대한민국 전체 인구감소 위기 속에서 부산은 자연적 인구감소와 수도권 집중화, 생산가능인구 유출로 급격한 초고령화가 진행되는 도시다. 여러 데이터 분석을 보면, 청년 3명 가운데 1명이 직장을 찾아 부산을 떠났거나 떠날 계획이라 한다.
2023년 기준 나라살림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국토 면적의 12%밖에 차지하지 않는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약 51%가 살고 있다. 수십 년간 외쳐온 국토 균형발전은 공허해졌다. 수도권 인구집중 현상의 주된 원인은 일자리다. 그다음 거론되는 것이 의료시설과 문화시설의 차이다. 그런데 이 두 경우는 순위에 큰 차이가 없다 한다. 그만큼 삶에 있어서 문화생활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지역 의료시설이나 시스템을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는 솔직히 모른다. 하지만 문화, 그중에 특히 음악과 관련된 일을 생각한다면 방법이 있다. 가장 중요한 일은 기초예술을 위한 제대로 된 제작극장을 만드는 일이다. 부산에 새로 생기는 오페라하우스가 명실상부한 제작극장 역할을 다한다면 최소 500여 명의 일자리가 생긴다. 동반되는 가족까지 합치면 적어도 1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산에 직접 거주하게 되는 셈이 된다.
1000여 명이 근무하는 미국 뉴욕 메트 오페라의 경우 파생 일자리가 4900여 개에 이른다 한다. 이처럼 제작극장은 대개 3배에서 5배 정도의 파생 고용 시장이 만들어진다. 예술가 한 명의 직접 고용이 지역 거주민의 직접적인 증가와 간접적인 일자리 창출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증거다. 쿠사마 야요이의 점박이 호박으로 유명해진 일본 나오시마는 약 3000명이 사는 작은 섬이지만 연간 70만 명의 관광객이 몰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섬 자체가 ‘미술관’이 되어 관광 도시의 상징이 되었다. 제작극장이 만들어지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음악 관련 예술가들이 살 수 있는 도시 부산이 된다. 충분히 그들을 부를 수 있다. 그들은 부산에 살며 아이도 키울 것이고, 다양한 나라에서 경험했던 노하우와 상상력으로 더 나은 부산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부산이 음악인들이 모여 사는 독일 베를린 같은 도시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요하네스 라우는 독일에서 가장 큰 주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총리를 20년간 역임했고, 1999년부터 2004년까지 독일 대통령을 역임하면서 ‘문화 대국’ 독일을 만들었다. 그는 예술과 문화의 공적 지원을 강조하며 “예술과 문화는 반죽에 들어가는 효모”라며 “효모가 들어가지 않은 반죽은 빵 대신 돌덩어리만을 얻게 될 것”이라 했다. 예술과 문화에 공적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은 “공동체 사회를 지구 중심까지 추락시키는 일”이라 강조했다. 그가 만들어 낸 이런 환경과 분위기는 지금도 수많은 예술가를 베를린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2026년 오페라하우스가 문을 열었을 때의 부산을 생각해 본다. 부산이 선도적으로 제대로 된 대한민국 최초의 제작극장을 선보인다면, 부산은 음악가가 가장 많이 몰리는 도시가 될 것이다. 머지않아 대한민국 예술의 중심도시가 될 것이다. ‘해양수도’이자 ‘예술수도’가 될 것이다.
지금 국내의 뜻있는 음악가들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수백 명의 음악가들이 고국에 제작극장을 요구하고 있다. 제작극장은 공공극장이 예술가를 직접 고용하고 공연을 자체 제작하여 시즌제로 운영하는 레퍼토리 시스템이다. 예술을 공부하고 예술가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 제공은 지방인구 소멸과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방안이다. 동시에 시민들에게는 더 나은 예술 향유 환경을 제공하고 극장의 문턱을 낮추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일찍이 김구 선생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라며 “높은 문화의 힘”으로 이를 이룰 수 있다 했다. 부산에 제대로 된 제작극장이 생기면 상서로운 구름이 모이듯 각지에서 흩어진 한국 예술가들이 모일 것이다. 인구도 늘 것이며, 예술의 힘으로 활력 넘치는 도시가 될 것이다. 그들이 모여서 부산이란 가마솥에서 문화와 예술을 꽃피우게 만들자. 세계 각지에서 배웠던 그들의 경험은 부산을 발전시키는 데 충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바야흐로 봄이다. 언 땅을 뚫고 새싹이 돋고 수많은 꽃이 핀다. 부산 문화의 봄을 새로이 만들자. 풍요롭고 충만한 예술문화 덕분에 세계 각지에서 많은 예술가가 끊임없이 모여드는 역동성 넘치는 해양수도 부산, 예술수도 부산을 상상해 본다.
2024-03-14 [18:02]
-
[백재파의 생각+] 인공지능의 평가, 괜찮을까
바야흐로 인공지능(AI)의 시대이다. 학생들은 종이 사전 대신 인공지능 기반의 자동번역기를 활용하고, 챗GPT와 같은 거대 언어모델 기반의 생성형 인공지능 챗봇에 모르는 것을 물어본다. 심지어 인공지능 그 자체가 교육과정 내 하나의 교육 내용으로 자리 잡았다.
인공지능을 교육의 도구 및 내용으로 다루는 데에서 나아가 최근에는 인공지능을 평가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있다. 객관식 문항은 애초 기계적 채점이 가능하므로 서술형 문항, 특히 학생들의 작문에 대한 자동채점 방안이 인공지능 활용 평가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작문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국어 관련 학문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작문 자동채점에 대한 사업과 연구가 활발하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는 서술형 글쓰기의 자동채점을 위한 기초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국립국어원에서는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글쓰기 자동채점과 첨삭이 가능한 ‘K-로봇’ 개발을 시작했다. 개발 이후 대규모 글쓰기 진단 체계를 운영하여 일반 국민의 글쓰기 능력 진단과 첨삭 지원, 공공기관과 기업체의 인재 선발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다. 또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 보급을 담당하는 세종학당 역시 인공지능 기반의 자동채점을 모의 시행하고 있으며, 완전한 인공지능 기반의 평가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이처럼 평가에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동채점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이유는 그것이 갖는 경제성에 기인한다. 현행 대규모 서술형 답안 평가에서는 다수의 채점자가 많은 분량의 답안을 교차 채점해야 하므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그러나 자동채점 시스템은 일단 구축해 놓기만 한다면 채점에 시간과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자동채점은 인간의 채점과 달리 채점자의 주관이 개입하지 않아 일관적 채점이 가능하다는 것도 이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입학과 취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평가를 인공지능에 맡기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그 이유는 최근 자동채점에서 활용되는 딥러닝 기반의 자동채점 시스템의 경우 은닉층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떤 변인을 근거로, 어떤 방식으로 계산해 점수를 산출하는지 알 수 없는 이른바 ‘블랙박스’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채점 과정과 결과가 타당한지 따질 수 없으며, 채점 근거가 제공되지 않아 평가 결과를 교육에 환류하는 것이 불가능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채점의 변인을 지정하는 지도학습 기반의 자동채점 시스템을 도입하면 되지 않을까. 아쉽게도 현재 자연언어 처리 기술로는 문장 길이, 단어 수, 고빈도 어휘 수 등 단순한 언어적 정보만을 통해 분석이 가능해 작문 채점에서 기대되는 논리적 적합성, 구조의 체계성, 내용의 창의성 등은 채점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재의 지도학습 기반의 자동채점 시스템이 도입될 경우 교육 현장에서는 글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쓰는 방법을 교육하기보다는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방법, 이를테면 어려운 단어를 글 전체에 흩뿌려 쓰거나 연결어미를 사용해 문장을 늘리는 등 기술적인 방법이 교육될 공산이 크다.
근본적으로 현재의 자동채점 시스템은 알고리즘을 구성할 때 인간 채점 결과를 바탕으로 채점 모형을 설계하므로 채점 알고리즘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인간 채점 결과의 타당도와 신뢰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이는 자동채점 결과는 인간 채점에 비해 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오류가 있는 채점 결과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동채점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편익을 위해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못된 점수를 부여하는 것이 정당한가, 채점 오류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와 같은 윤리적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유럽연합은 이러한 맥락에서 학생 평가 목적의 인공지능 시스템을 고위험 인공지능 규제 대상으로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인공지능이라는 시대적 유행에 편승하는 데에만 급급해 인공지능 평가 시스템의 도입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단기간에 대규모 평가에서 인공지능 평가의 도입만을 목적으로 하기보다 채점자의 인지 부담을 줄여주는 채점 보조 수단으로, 학습자의 자기주도 학습을 도와주는 보조 도구로 인공지능 평가 시스템을 연구하고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이후 기술이 더 발전해 모델이 정교화되고 타당한 채점 근거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비로소 사회적 논의를 거쳐 실제 평가에 도입해야 할 것이다.
2024-03-07 [18:05]
-
[정훈의 생각의 빛] 숭고한 영혼이 머문 자리에서
며칠 전 한 지인으로부터 한숨 섞인 푸념을 들었다. 태어난 지 30개월도 채 안 된 손자가 3층 베란다에서 떨어진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고 했다. 발목 골절상이 심해 전신마취 수술을 했는데 눈에 가해진 충격이 커 응급치료는 했지만 후속 치료를 위해 안과 전문의에 수소문해도 여태 병원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 입원 중인 병원은 퇴원 수속을 종용하고 있고 후속 치료를 위한 병원은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나의 지인은 연방 한숨 소리만 내었다.
최근에 이러한 사례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수술이나 진료가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의사가 모자라 의사를 차차 늘리겠다는 정부의 계획에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전공의 및 의대 교수와 의대생들이 거세게 반대하는 이유는 이렇다. 우선 소아과뿐만 아니라 신경외과와 외과 등 소위 말해 ‘돈 안 되는’ 쪽을 기피하고 피부과나 성형외과 등에 쏠리는 현상을 바로잡으면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갑작스러운 의대생 증원으로 생기는 교육의 질 저하를 꼽는다. 세 번째는 우리나라 1000명당 의사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최하위 수준이지만 기대수명이나 영아사망률 등의 주요 보건지표가 최상위권이기 때문에 현재 의사 수가 적정하다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충분한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양쪽의 논리가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피해를 보는 쪽은 두말할 것도 없이 국민이다. 이쯤 해서 떠오르는 두 명의 의사가 있다. 두 사람 모두 ‘한국의 슈바이처’로 존경을 받았다. 이태석 신부와 장기려 박사다. 이태석 신부는 가톨릭 살레시오회의 수도자 겸 성직자와 의사로서 남수단 톤즈에 선교 사제로 파견되어 구호와 의료 및 사목 활동에 힘쓰다 2010년 대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열악한 수단의 환경 속에서 손수 병원을 만들었고, 한센병과 결핵 환자들을 보살피며 지속적인 예방접종 사업을 벌였다. 사망 이후 그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져 많은 이들을 숙연하게 했다. 이태석 신부의 사망 소식으로 톤즈를 비롯한 현지 주민들이 신부를 애도하는 가두 행진을 벌였는데, 시국이 불안한 곳이라 시위나 행진 같은 집단행동이 엄격히 금지되었는데도 군인이나 민병대원들 중 어느 누구도 그것을 막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들도 이태석 신부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장 낮은 자를 위해 의술로서 평생을 헌신한 장기려 박사 또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난 그는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외과의사로 명성을 날렸던 백인제의 제자로서 수련하다 이후 나고야 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1월 부산 서구 암남동에 현 고신의료원의 전신인 복음병원을 세워 피난민을 비롯한 가난한 사람을 위해 무료로 진료하면서 25년간 복음병원 원장으로 인술을 베풀었다. 장기려 본인은 작가의 상상 속 인물이라며 부인했지만, 춘원 이광수 소설 〈사랑〉의 주인공인 안빈의 모델로 회자되기도 했다. 봉사, 박애, 무소유를 기반으로 한 그의 의료 행위는 돈 없는 숱한 환자들에게 치료의 기회를 주고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는 “의사를 한 번도 못 보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뒷산 바윗돌처럼 항상 서 있는 의사가 되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태석 신부와 장기려 박사는 2022년 부산시교육청 선정 ‘부산을 빛낸 12명’의 일원으로 송상현 장군, 안용복, 최동원 선수, 박차정 의사(義士) 등과 함께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지금의 의료대란을 보면서 이들을 떠올린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능력’과 ‘능력주의’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공부 박사’들인 의대생이 의사 면허를 따 일선 병원에 근무하면서 행하는 의료행위는 분명 값지고 존경받아 마땅하다. 타고난 능력과 재능으로 건강한 사회를 위해 힘을 쏟고 있음은 부정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들의 능력은 때때로 능력주의로 돌변해 전문성을 명분으로 한 융통성 없는 논리를 내세우는 까닭에 국민들에게 ‘밥그릇 지키기’로 비치기도 한다. 그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비범한 능력조차 뛰어넘어 상상을 초월한 베풂과 나눔을 실천했던 이태석 신부와 장기려 박사의 고귀하고 숭고한 뜻을 지금의 의사들에게 요구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세계사적으로 보기 드문 독립운동이었던 3·1 만세운동을 맞아 이 나라 이곳, 부산을 살다 간 이태석 신부와 장기려 박사가 머문 자리에서 한 번쯤 생각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신학자로도 유명했던 슈바이처가 남겼던 말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살 때 우리 삶은 더 힘들어지지만, 동시에 더 풍요롭고 행복해진다.”
2024-02-29 [18:09]
-
[배학수의 문화풍경] 물질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가
부산이나 경남 통영처럼 아름다운 항구 도시를 ‘한국의 나폴리’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의 나폴리로부터 8km 떨어진 곳에 헤르쿨라네움이라는 도시가 있었는데, 서기 79년 베스비우스 화산이 폭발할 때 생기는 화산 쇄설류 때문에 20m 아래에 덮이어 버렸다. 그 후 1600년 동안 헤르쿨라네움은 위치조차 잊힌 채 매몰되어 있었고, 그 위에 에르콜라노라는 새로운 도시가 건설되었다.
헤르쿨라네움의 자매 도시 폼페이도 베스비우스 화산이 폭발할 때 화산재로 매몰되었다. 두 도시는 성격이 달랐다. 폼페이는 부산한 상업 도시이다. 헤르쿨라네움은 작고 조용한 항구 도시인데, 매우 아름다워서 약 250km 북쪽에 있는 로마의 귀족들이 별장을 두고 있었다. 줄리어스 시저의 장인인 유력 정치가 피소도 화려한 저택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는 에피쿠로스 학파를 추종하고 있었고, 필로데모스라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자를 후원하고 있었다. 피소의 저택에는 큰 규모의 도서관이 있었는데, 서기 79년 필로데모스는 여기에 상주하고 있었다.
이 도서관에는 파피루스에 기록된 에피쿠로스 학파의 저술들이 소장되어 있었다. 화산 폭발의 전조가 보이자 직원들은 파피루스의 저술들을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둘둘 말아서 항만으로 이송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전에 고온의 화산 물질이 덮쳐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숯덩이처럼 탄화되었다. 18세기 중반 터널을 뚫어 피소의 저택을 조사했을 때 약 1800개의 파피루스 스크롤이 발견되었다. 이것을 ‘헤르쿨라네움 스크롤’ ‘헤르쿨라네움 파피루스’라고 부르고, 피소의 저택을 ‘파피루스 저택’이라고 한다.
피소 도서관의 파피루스 컬렉션은 정말 귀중하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고대 철학자의 저술은 모두 중세의 원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것은 고대의 원전을 수도사들이 몇 세대를 걸쳐 베껴 쓴 것인데, 그사이 수정이 얼마나 벌어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헤르쿨라네움 파피루스는 우리가 고대의 문헌에 직접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물에 젖은 화장실 두루마리를 펴기 힘들 듯이, 탄화된 파피루스 스크롤을 펴서 거기에 적힌 글자를 읽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칼로 스크롤을 잘라서 열었는데 이 과정에서 파피루스는 훼손되었으며, 어떤 사람은 수은 액체를 스크롤에 부어 조각들을 파괴하지 않고 분리하기를 기대하였으나 수은의 밀도 때문에 파피루스는 가루가 되었다.
파피루스 스크롤의 가치를 그 당시 사람들은 아주 낮게 평가했다. 나폴리의 왕은 파피루스 스크롤이나 조각들을 외교적 선물로 다른 나라에 제공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6개를 얻어 프랑스 학술원에 넘겨주었고, 영국 왕은 캥거루 18마리를 주고 18개를 얻었는데 옥스퍼드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나머지 스크롤은 대개 국립 나폴리박물관에 있다.
피소의 도서관은 사실상 읽을 수 없는 문헌을 소장하고 있다. 파피루스 스크롤은 파괴하지 않고는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스크롤을 열기 위한 초기의 위험한 시도 이후 20세기부터는 스크롤을 열지 않고 그냥 보관만 했는데, 21세기에 돌파구가 뚫렸다. 미국 켄터키대학의 전산학과 브렌트 실즈 교수팀이 의학의 인체 스캔 기술과 인공지능, 데이터 과학을 통합하여 스크롤을 물리적으로 열지 않고 내부를 들여다보는 가상 개봉(virtual unwrapping) 방법을 만들어 내었다. 그는 프랑스 학술원에서 이전에 스캔한 파피루스 스크롤의 영상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고, 글자를 해독하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는 대회를 2023년 개최했다. 이것이 ‘베스비우스 챌린지’이다. 작년 연말에 마감된 1회 대회의 결과가 지난 2월 초에 발표되었는데, 3명의 연합팀이 대상으로 70만 달러를 수상했다. 그들이 해독한 것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던 필로데모스의 쾌락에 관한 저술 마지막 단락이다.
‘음식의 경우처럼, 물질의 부족이 풍족보다 우리를 반드시 더 즐겁게 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이것이 단락의 첫 문장이다. 이 저술에서는 부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지의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이런 주제는 현대에도 뜨거운 토론 거리이다. 물질만능주의는 물질이 행복의 핵심 요소라고 간주하는데, 필로데모스는 이런 입장에 동조하는 듯하다. 이것은 학파의 창시자 에피쿠로스의 입장과는 반대이다. 돈을 버는 데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에 물질을 추구하지 않아야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에피쿠로스는 생각했다.
아직 손대지 않고 보관하고 있는 헤르쿨라네움 스크롤은 600개가 넘는다. 이것을 가상 개봉 기술로 연다면 우리는 고대의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수 있다. 피소의 도서관에는 아직 발굴하지 않은 방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헤르쿨라네움에 도서관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2024-02-22 [18:11]
-
[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의사만 부족한 게 아니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2025년부터 2000명 증원하겠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대학은 무전공 입학을 확대하고 등록금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도록 소득 상위 20%를 뺀 모든 대학생에게 국가장학금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장 “고등학교는 내년부터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는데 진로에 맞는 과목을 선택해 듣는 고교학점제와 대학 무전공 입학 정책이 말이 되냐”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올해 고3이 되는 자식을 둔 지인을 지난 설 연휴 때 만났더니 “도대체 교육정책은 누가 만드는 건지, 생각은 있는 건지 궁금하다”고 했다.
응급실 의사가 모자라 정작 치료받아야 할 사람이 사망하고, 지방 보건소는 의사를 구할 수 없고, 소아과에선 ‘오픈런’을 해야 한다. 그러니 표면상으로는 의사가 부족한 게 맞다. 그런데 부산 서면이나 해운대 센텀 곳곳에 밀집해 있는 피부과와 성형외과 의원들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나. 정작 우려해야 할 것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실천하는 의사가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정부 교육정책에 대한 우려 커져
현장 목소리 이해 못 한다는 비판
형식보다 본질적 내용을 살펴야
의대 정원 확대 발표가 나오자 제일 먼저 움직인 곳은 학원가다. 대학생, 재수생, 학부모뿐만 아니라 직장인들로부터도 의대 입학 관련 문의가 쇄도한다고 한다. 지역인재 선발 비율을 확대한다고 하자 발 빠른 서울의 부모들은 벌써부터 지방으로의 이사를 생각한다.
상위권 공대나 과학 쪽 우수 인재들의 의대 쏠림 현상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안 그래도 ‘SKY’라 불리는 대학에 등록하고도 의대에 가기 위해 재수, 반수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서울대 자연계열 입학생 수보다 많은 2000명의 의대생을 더 뽑는다고 한다. 이공계 인재들의 이탈이 가속화돼 첨단 분야 인력난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거기다 대입에서 학과나 전공을 선택하지 않고 입학한 뒤 진로를 정하는 무전공 선발 확대까지 예고하니, 기초학문은 고사하고 취업이 잘 되는 학과로 몰리는 전공 선택 양극화가 심해질까 걱정이다.
잘하자고 바꾸는 교육정책을 지지하기보다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는 것은 정부가 현장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게 숫자로 표시되는 현실에서 직업 선택은 연봉순이고 대학은 성적순이라는 법칙은 좀체 깨지지 않는다. 의대에 학생이 몰리는 이유는 정년이 없고 연봉이 높기 때문이다.
기초학문의 고사가 우려되는 무전공 선발 확대는 고교 수업과의 연결, 전공·부전공 선택 조건 등 세부지침이 부재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에 있는 대학들은 오래전부터 자유전공이나 무전공 선발을 했다. 전공을 선택해서 들어가도 입학만 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고등학교 때 들었던 과목 중 대학 전공과 연결된 과목은 학점으로 인정받는다. 이게 고교학점제와 이어지는 지점이다. 그러니 대학에서 ‘3년 졸업’도 가능하다. 물론 전공을 바꿀 때는 그 전공에 대한 필수 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여러 번 전공을 바꾸면 그만큼 졸업이 늦어진다. 그렇다고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그 과정에서 항상 대학의 코디네이터와 상담하고 전공을 바꾸는 이유, 계획 등을 세세히 짜면 된다. 당연히 관련 인턴십 참여도 바쁘다. 물론 취업이 잘 되는 학과는 여전히 많이 선택하지만 어렵고 적성에 안 맞아 도중에 다른 과로 옮기기도 한다.
여기서 또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게 있다. ‘리버럴 아츠 칼리지’라는 학부 중심의 연구대학에서는 졸업 때까지 수백 권의 고전을 읽고 토론하게 한다.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대학교도 마찬가지다. 전공을 선택하기 전인 1학년 과정에서 읽어야 할 고전 분량은 어마어마하다. 미국의 이른바 아이비리그에서는 고전, 철학, 심리, 역사 등 인문학을 기본으로 하여 다른 학문을 융합시키려 한다. 스탠퍼드대학교에는 심지어 고전학과가 있다. 컴퓨터사이언스를 전공하러 들어왔다가 오히려 철학, 역사 쪽으로 전공을 바꾸는 학생도 있다. 인문학 관련 학과 중 한두 명이라도 학생이 있으면 대학원까지 적극 지원한다. 학문은 모든 사람이 다 이을 수는 없다. 학생이 적다고 과를 없앤다는 건 경제적 효용을 따지는 문제지 학문을 가르치는 대학에서 할 일은 아니다.
건축학과는 오래 전인 2002년부터 미국식 학제를 바탕으로 5년제로 운영되고 있다. 5년제임에도 설계와 디자인에만 집중하다 보니 인문, 철학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시공, 구조, 환경, 재료 등 건축 전반에 대한 교육도 부족하다. 교육의 제도나 형식만 따오지 말고 내용을 보자. 이제껏 우리가 외국에서 가져온 교육정책이 한두 가지였나. 전체 교육의 형식과 내용을 바꾸지 않는 이상, 결국은 제로섬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의사만 부족한 게 아니다.
2024-02-15 [18:08]
-
[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앤디 워홀을 이해하는 방법
앤디 워홀의 인기는 여전히 건재하다. 어디선가 늘 미술 전시나 콜라보(협업) 프로모션 등이 진행 중이다. 지난달에는 앤디 워홀의 작품 ‘달러 사인’이 미술품 조각투자 상품으로 국내에 선보여 7억 원 규모의 투자계약 증권 청약 모집이 마감되기도 했다.
앤디 워홀은 팝아트(pop art)를 선도한, 20세기 가장 유명한 미술가이다. ‘팝아트’는 ‘인기 있는’ ‘대중적인’이라는 의미의 ‘popular’에서 온 명칭인데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통속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로부터 소재를 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만화, 영화, 사진, 광고 등 유행하는 대중 예술에 우호적이다. 팝아트는 추상미술이 추방했던 삶과 일상을 다시 미술 속으로 끌어들였다. 우리가 늘 마시는 코카콜라, TV에서 자주 보는 스타의 모습, 만화 속 이미지, 햄버거나 아이스크림 등이 소재가 된다.
워홀은 전통 미술의 수작업이 아닌 상업 포스터를 제작하는 실크 스크린이라는 판화 형식의 기계적 공정을 사용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실을 ‘공장(factory)’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그의 작업 철학을 드러내는 것이다. 워홀의 이러한 기계적 제작 방식과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반복적 이미지들은 1960~70년대 미국의 대량 생산·소비 사회를 상징한다. 영국에서 시작된 팝아트가 미국으로 건너가 전성기를 이룬 1960년대는 바로 서구 산업사회의 물질문명이 황금기를 구가하던 때이다. 팝아트는 미국 물질주의 문화의 반영으로서, 그에 대한 집착과 낙관을 드러낸다.
예술가로서 본격적 인생을 시작하기 이전 워홀의 경력에서 우리는 그의 팝아트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을 발견할 수 있다. 카네기 공과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1949년 뉴욕으로 옮긴 워홀은 곧 인기 삽화가로 자리 잡았고, 10년 후 성공한 광고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의 삽화와 광고 디자인은 〈보그〉 등 유명 패션지를 뒤덮었고, 그는 고급 패션업계 홍보를 전담했다. 상업 예술가로서 절정에 선 바로 그때 워홀은 순수미술 세계로 전향한 셈이다. 그때까지 잡지, 만화, 대중매체, 패션을 수없이 접했던 뉴욕에서의 경험은 그가 독특한 20세기 미술가가 되는 자양분을 제공했다.
워홀은 진정한 자본주의 예술가로서 돈 버는 예술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주장하면서 처음부터 팔릴 만한 작품들을 제작해 많은 돈을 벌었다. 그의 작품들이 워홀 자신의 광고였을 뿐 아니라 자신에 대한 이미지 홍보 전략을 통해 스스로를 상품으로 광고했다. 그러나 워홀이 위대한 천재로, 매력적인 스타로 자리 잡게 된 것은 그가 양면성을 지닌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물질문명을 찬양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 그 모든 것의 무상함을 강조했다. 특히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이후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의 모습을 담은 ‘재키II’ 시리즈나 ‘전기의자’‘총’ 같은 작품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워홀은 팝아트 화가로 잘 알려져 있으나 다른 한편 아방가르드 영화 제작자이기도 했다. 그는 8시간 동안 카메라 이동도 편집도 없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을 밤새 찍은 ‘엠파이어’(1964)나 부조리한 상황극과 같은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러한 워홀의 영상 작업을 엿볼 수 있는 영화 두 편이 있다. 먼저 1965년을 배경으로 한 조지 하이켄루퍼 감독의 2007년 작 ‘팩토리 걸’은 워홀에게 예술적 영감을 제공하는 뮤즈이자, 다른 한 편은 자본을 제공하는 스폰서였던 에디 세즈윅이라는 여성에 관한 영화이다.
또 다른 영화는 메리 해런 감독 1996년 작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가 있다. 워홀은 1968년 6월 3일 총을 맞았다. 폐, 지라, 위, 식도를 관통할 정도로 중상을 입었지만,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앰뷸런스가 아니라 기자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었다. 그가 얼마나 자기 자신의 이미지를 하나의 작품으로, 스타로 만드는 데 능숙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워홀은 총격에서 살아남았지만 죽을 때까지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고, 이 사건 이후 ‘죽음’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이때 워홀을 쏜 사람은 워홀 팩토리를 기웃거리던 밸러리 솔라나스라는 여성이다. 워홀에게 넘겨주었던 자신의 희곡을 도용당했다고 생각한 솔라나스는 워홀에게 ‘영혼의 살인자’라고 외치며 방아쇠를 당겼다.
이 두 영화에 나타난 상반된 성격의 두 여성을 비교해 보면, 워홀이 주변 사람들과 맺었던 관계와 워홀이라는 인물에 관해 좀 더 다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워홀 자신과 워홀 팩토리의 분위기, 그리고 그의 작업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도 꽤 도움이 된다. 영화 ‘팩토리 걸’에는 워홀 재단의 도움을 받아 실제 워홀의 작품들이 영화 소품으로 사용되었는데, 이것 역시 좋은 볼거리이다.
2024-02-08 [17:45]
-
[김정화의 크로노토프] 클래식 스타에게 유독 관대한 부산 관객
옛말에 “물건을 모르면 값을 더 주라”는 말이 있다. 물건을 몰라 속는다는 뜻이 아니라 잘 모르는 물건은 비싼 것이 제값을 한다는 뜻이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말은 공연을 선택하는 데에도 어느 정도 통한다. 언론에 자주 노출되고 많은 찬사가 따라다니는 연주자의 공연은 대개 기본 수준을 상회한다. 자연스레 신뢰하며 기꺼이 비싼 값을 치러 예매하고 시간을 내어 공연장을 찾는다.
원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 잔뜩 기대하고 간 공연에서 엄청난 실망을 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수많은 찬사가 따라다니는 유명 연주자에 대한 기대는 공연을 선택하고 관람하러 간 관객만의 탓은 아닐 것이다. 그 기대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억측한 것일 수 있지만, 여태껏 있었던 다른 사람의 평가를 통해 관객들이 바라고 있던 것이다.
세계적 대가들 무성의한 부산 공연 실망
명성만 보고 박수 치며 환호하면 곤란
수준 높은 부산 관객 ‘무서움’ 알게 해야
지난 몇 년 동안 전 세계는 듣도 보도 못한 바이러스로 자가격리와 거리 두기라는 갑갑함을 경험했다. 공연계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공연이 축소 또는 취소되었고, 예술 애호가들 또한 마음 편히 공연장을 찾을 수 없었다. 팬데믹은 작년이 되어서야 끝나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공연계도 정상적으로 운영되었다. 갑갑함에 대한 보상 심리 때문인지 공연장은 연일 매진 또는 성황을 이루었다.
그런데 공연을 하나씩 살펴보면 부산을 거친 자칭 타칭 ‘대가’들의 공연 중에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로 손꼽히는 사라 장의 2022년 12월 연주에서는 새로움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자 양인모는 마치 리허설 같은 연주를 들려주고 갔다. 새로운 음반에 수록된 곡들로 독주회를 가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선우예권의 피아노 연주는 무성의했다. 뒷짐을 지고 나온 무대 인사는 차치하더라도, 눈에 다래끼가 났으니 반대쪽 얼굴 사진만 찍어달라고 요구하는 모습은 연주보다 쇼맨십이 더 눈에 띄었다.
음악 전공자들의 귀감이라는 피아니스트 언드라시 시프는 2년 연속 공연을 펼쳤는데 거의 같은 프로그램 구성과 늘 듣던 멘트로 새로움을 기대하는 청중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은 완벽한 연주를 위해 개인 피아노까지 들고 다니며 무대 위나 밖에서의 컨디션 조절에 극도로 예민하여 사진 한 장 찍는 것조차 금지한다. 그는 심한 감기에 걸렸는지 공연 내내 콧물을 훔치고 기침하며 감동 없는 밋밋한 연주로 시간만 때우고 떠났다. 문제는 이 모든 공연이 부산을 대표하는 공공 공연장의 기획 공연이라는 점이다.
이들의 실황을 본 객석의 반응은 다양했다. “리허설하러 온 줄” “부산이 만만하게 보이나?” “할인 못 받고 비싼 좌석 샀으면 아까웠을 뻔” “유명 연주자가 부산만 오면 연주가 안 된다” “음악 잘 모르는 아시아에 돈 벌러 왔네” “나만 그런가? 왜 음악에 감동이 없지?” 등의 불만이 터졌다. 심지어 다시는 저들의 연주를 보러 가지 않겠다는 애호가들도 제법 있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최한기는 “귤이 회수를 넘으면 탱자가 되고, 오소리가 문수를 넘으면 죽어버리는 것은 모두 땅의 기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라 했다. 정약용도 “유자가 강진 땅만 벗어나면 탱자가 되고 만다”며 통탄했다. 부산 바닷물에 절어서 그런가? 유독 연주자들이 낙동강을 넘어 부산만 오면 탱자가 되는 이유를 모르겠다. 국내 연주자뿐만 아니라 투어를 도는 해외 연주자 중 부산에만 오면 연주가 안 되는 연주자들이 저들 말고도 제법 있다.
어떤 까닭인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혹시 그들이 부산이라는 도시의 예술 지형을 가볍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지 묻고 싶다. 스타 예술가가 받는 개런티에는 예술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자기관리 비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적어도 무대에 서는 예술가라면 자기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물론 사람이 하는 일이라 완벽할 순 없겠지만 최소한 관객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십수만 원이나 되는 티켓을 사고 귀한 저녁 시간을 오롯이 그들의 공연에 할애하는 관객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다.
아티스트의 명성에만 기대서 분별없이 박수 치고 환호하면 곤란하다. 대개 슈퍼스타들의 연주가 성의 없고 부실한 것은 관객을 존중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것을 따져 물어야 관객 수준의 무서움을 알게 된다. “바닷가에서 회 한 접시 먹고 놀다 오자”는 말보다 “부산에 가서 대충 연주하면 안 되겠더라”라는 말이 연주자들의 입에서 나오게 해야 한다. 부산 공연 문화 수준을 더 높이는 일, 그것은 관객의 수준에서 시작한다. 유명하다고 무조건 박수갈채를 보내지 말자. 비싼 값을 치른 관객은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관객의 권리다.
2024-02-01 [18:20]
-
[백재파의 생각+] 선거의 효율성과 선거의 공정성
지난 13일 대만 총통과 입법위원(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치러졌다. 대만의 선거는 2024 지구촌 첫 대선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미중 갈등을 둘러싼 국제 정세에 큰 영향을 끼치는 선거라는 점에서 그 결과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리고 선거 결과뿐만 아니라 대만의 독특한 선거 방식이 SNS나 국내외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화제가 되고 있다.
대만에서는 투표가 끝나면 투표소가 바로 개표소로 바뀌어 그 자리에서 개표가 이루어지는데, 개표 방식이 흡사 과거 우리의 국민학교 시절 반장 선거를 연상하게 한다. 먼저 선거관리원이 투표함에서 투표지를 한 장씩 꺼내 기표된 후보자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치고 투표지를 머리 위로 들어 참관인이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그러면 다른 선거관리원이 칠판에 적힌 후보자의 이름 옆에 ‘바를 정(正)’ 자로 득표수를 기록한다. 이런 방식으로 투표함의 개표가 모두 끝나면 빈 투표함을 참관인에게 보여 준다. 이런 개표 과정은 누구나 현장에서 직접 참관하고 촬영도 할 수 있다.
최근 진행된 대만 선거 수개표 관심
선거 효율성 중점 우리와 다른 모습
의혹 불식 등 위해 절차 재정립 필요
또 대만은 사전, 부재자 투표 제도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투표권을 행사하려면 선거일에 자신의 호적지로 가서 투표해야 한다. 상당한 불편을 감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만의 투표율은 70%가 넘는다고 한다. 대만의 이러한 선거 방식에 대해 미국 블룸버그 TV는 “대만의 수동 개표 방식은 다소 고루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공정하고 안전하다”고 말했으며, 독일의 한 시사주간지 기자는 “대만의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다”고 평했다.
SNS와 언론을 통해 대만의 선거 방식을 알게 된 우리나라의 많은 유권자도 대만의 투표와 개표 방식이 공정하게 생각되며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방식을 도입하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이 대만식 선거 방식 도입을 원하는 이유는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에서 불거진 각종 불법 선거 의혹이나 소송 등으로 투표와 개표 방식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나라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므로 대만식 선거 방식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경우 부재자 투표를 없앨 경우 군인들의 참정권을 빼앗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토 면적과 유권자 수, 투표소 수, 접근성 등이 각기 달라 대만처럼 투표소에서 곧바로 손으로 개표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큰 어려움이 있다.
다만 대만 선거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투표와 개표 과정에서 선거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 이를 지키기 위해 발생하는 많은 불편을 기꺼이 감수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우리나라도 선거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발표한 투·개표 관리 절차 개선안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선관위는 선거 때마다 계속되는 부정선거 시비 의혹을 불식하기 위하여 오는 4월 총선부터 개표 사무원이 투표지를 일일이 확인하는 수검표 절차를 도입하고, 사전 투표함 보관 장소에 설치된 CCTV 영상을 24시간 공개하겠다고 하였다. 선관위의 개선책을 놓고 개표 방식에서는 일부 진전이 있지만 투표 방식은 사실상 그대로여서 반쪽짜리 개선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현재 사전 투표는 투표 관리관이 현장에서 투표용지에 관인(官印)을 직접 날인하지 않고, 관인이 미리 인쇄된 투표용지를 나누어 주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따라서 투표용지가 조작, 도난, 분실될 경우 부정 투표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실제 2020년 총선 이후 이루어진 선거무효 소송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비정상 투표용지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사전 투표용지에 대한 여러 의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관위는 ‘실무 현실’을 고려해 현행 제도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여기에서 실무 현실이란 관인을 직접 날인하기 위해서는 선거 사무원을 더 투입해야 하는데 이에 따른 비용 증가의 문제, 투표 시간이 늘어나는 등의 문제를 말한다. 즉 선관위는 선거의 투명성과 공정성보다 선거의 편의와 효율성을 더 우선시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은 선거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선거의 공정성을 지키는 것은 곧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정한 선거를 위해 추가 소요되는 비용이 얼마가 됐든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고, 투표 시간이 얼마나 늘어나든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투·개표 개선책을 마련하고 있는 지금, 선거의 공정성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 단 하나의 부정선거 의혹도 제기되지 않도록 제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2024-01-25 [18:07]
-
[정훈의 생각의 빛] “성공은 죄악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을 하곤 한다. 〈구약성경〉의 ‘전도서’ 1장 9절에서 비롯되어 널리 회자되는 말이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것이 없나니.’ 여기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거나 입에 올렸을 것이다. 이 표현은 한편으로는 ‘시크’한 느낌을 주는 말이기도 하다. 2024년이 밝았을 때 사람들은 대체로 ‘올해만큼은 뭔가 다르겠지’ 같은 생각을 한다. 한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될 무렵 부산하게 새해를 맞이하곤 한다. 어떤 이는 새해라고 해서 특별할 게 없다는 식의 말을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새해를 맞아 각자 기대와 희망을 품는다. 설령 달라질 환경이나 여건이 여의찮더라도 내심 ‘올해만큼은…’ 어딘가 달라지리란 믿음과 함께.
사람들이 해마다 품게 되는 그러한 희망이나 기대는 매번 ‘속을지라도’ 변함없이 작동된다. 어떤 시간의 마디나 경계를 지나고 맞이할 때면 절로 일게 되는 마음의 ‘세탁’은 오래전부터 인류 문화의 특징이었다. 이는 신화적 시간이 오늘날에도 성스러움의 위장된 형태로 남아 있다고 분석한 미르체아 엘리아데 신화론의 골자이다. 기술문명이 극도로 발전한 오늘날의 현대인이라고 하더라도 별수 없이 ‘종교적 인간’이라는 논리다. 여기서 ‘종교적’이라는 수식어는 특정 종교를 말하는 게 아니라 고대인의 신화적이고 원형적인 삶의 규칙이나 태도와 관련되어 있음을 뜻한다.
인간을 포함하여 만물의 기원이나 탄생에서부터 죽음과 소멸에 이르는 일련의 순환 사이클에서 숱한 신화적 요소들이 개입되거나 만들어진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이왕이면 ‘사람 노릇’ 제대로 하고 가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은다. 사람 노릇이란 게 흔히 말하는 ‘성공 신화’와 밀접하게 엮여 있다. 크게 성공하지는 못하더라도 남들만큼이나 그럭저럭 삶을 영위할 수만 있어도 그나마 실패한 삶이 아니라는 통념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왕이면 다홍치마’란 말도 있듯이, 경쟁을 해서 남들보다 좀 더 우월한 지위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욕망이 팽배해진 요즘이다. 그 피비린내 나는 세계의 첫 마당이 되는 곳이 바로 학교다.
교육의 본래 지향점이나 목적이 실종된 지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화된 사회 여건과 시대의 요구에 발맞춰 교육정책이 조금씩 바뀌지만 여전히 잡음과 부정적인 여론이 끊이지 않는 까닭을 생각해 본다. 위정자들이나 교육 관계자들은 매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육정책의 근본적인 전환과 대책을 이야기하지만, 아직도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선 교육 현장의 훌륭한 선생님들과 사학 설립자를 비롯한 재단 이사장의 가치와 철학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정치가들의 교육정책도 단지 책상머리에서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나름대로 고민을 거듭한 끝에 수립된 정책이기에 우선은 믿을 수밖에 없다.
사회 여러 부문에서 변화가 가장 더딘 곳 가운데 하나가 ‘교육 문화’일 것이다. 최근 경남 양산에 있는 개운중학교와 효암고등학교의 졸업장 문구가 알려져서 화제다. 아니 ‘졸업장’이 아니라 ‘지극한 정성’이란 이름을 달았다. ‘지극한 정성’을 펼치면 이런 식의 문구가 나온다. ‘학생은 솜털 보송한 아이로 우리 학교에 왔었는데, 울고 웃으며 보낸 3년 동안 몸과 생각이 자라서 더 넓은 곳으로 보냅니다. 붙들어 안아주고 싶고,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출가하는 자식을 보듯 입술을 깨물며 보냅니다. 우리보다 더 좋은 선생님, 더 좋은 벗들을 만나서 멋진 삶을 가꾸시길 기원합니다.’
일반적인 ‘졸업장’을 받는 학생의 마음과, 위 ‘지극한 정성’에 담긴 문구를 읽으며 학교를 떠나는 학생의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전자는 상급 학교에 진학하여 이 나라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방편인 톱니바퀴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되는 반면, 후자는 더욱 새로운 세계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을 상상하며 자신을 추스르는 주체로 거듭날 확률이 높다. 물론 절대적인 논리는 아니다. 그만큼 여태까지의 교육 관행을 깨트리는 일이 학생에게 끼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는 뜻이다.
위 두 학교는 시대의 어른으로 조명된 적이 있는 효암학원 채현국 선생이 이사장으로 계셨던 곳이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이름을 알리겠다는 목표를 세우거나 중요한 사람이 되려고 하거나, 그런 데 삶의 목적을 두지 않고 순하고 착하게 지낼 생각만 하면 굳이 남을 이길 이유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이런 삶의 철학이라면 흔히 말하는 ‘성공’은 이웃을 죽이는 크나큰 죄악이 될 수밖에 없다. 성공이야말로 인생의 가치 있는 수확이라고 생각하는 우리 같은 사람을 둔중하게 때리는 망치와도 같은 말씀이다.
2024-01-18 [18:27]
-
[배학수의 문화풍경] 새해 결심에서 우리가 놓치는 한 가지
“술을 적게 마시고, 담배를 끊고, 낯선 사람에게 황당한 소리를 하지 않는 것이랍니다.”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여자 주인공 브리짓은 신년 가족 파티에서 새해 결심을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새해의 시작과 함께 자신의 직업적 스킬을 개발하거나 나쁜 습관을 없애고자 하는 열망을 새해 결심으로 집약한다.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새해 결심에는 좌절이 흔히 따라다닌다. 좀 의지가 약한 사람은 새해가 10일만 지나면 예전의 자기로 돌아가며, 한두 달 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새해가 들면서 세웠던 목표를 포기하고 새해 결심 자체를 망각하고 만다. 이런 일이 연례행사처럼 반복하면 사람들은 자신감이 줄어들고, 아예 새해 결심 자체가 쓸데없다고 판단하여 그것을 하지도 않게 된다. 위의 사례 외에 체중을 6㎏ 줄이고, 토익 점수를 800점 넘기겠다는 등의 목표도 새해 결심의 흔한 유형이다. 그런데 그런 목표는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새해 결심의 본질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목표는 가치를 지향한다. 매일 한 시간씩 운동하는 것은 목표이며, 이 목표는 건강의 가치를 지향한다. 토익 점수를 800점 넘기겠다는 것은 목표이며, 이 목표는 영어 능력 개발의 가치를 지향한다. 브리짓은 새해가 되면서 일기장에 매일매일 체중과 피우는 담배 개수, 그리고 마시는 술의 양을 적는다. 이렇게 자신의 생활을 제어하고자 하는 것은 목표이며, 그것은 남자로부터 관심을 받아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관계의 가치를 지향한다.
현대 사회는 목표만 지나치게 염두에 두다 보니 자주 가치와 목표를 혼동하는데, 이 둘은 다른 개념이다. 여행에 비유하면 가치는 여정의 방향이며, 목표는 여정에서 거쳐 가는 도시이다. 우리가 부산에서 서쪽으로 여행한다면 진주와 여수는 목표이며, 서쪽 방향이 가치이다. 목표는 도달할 수는 있지만, 가치는 도달할 수 없다. 모든 도시에 도달하더라도 우리는 계속 서쪽으로 여행할 수 있는 것이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도 여전히 가치를 지향할 수 있다. 매일 한 시간씩 달리기하려는 목표를 한 달이 지나 포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이 우리는 건강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었으며, 3일에 한 번 30분씩 운동하더라도 여전히 그 가치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브리짓은 새해가 들며 결심한 절주와 금연의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고 실패한다. 그러나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출판사에서 방송국으로 이직하는 등 다른 방식을 발견하여 매력적 여성이 되어 간다.
사람들이 각자 추구하는 가치는 다양하게 보인다. 그런데 모든 가치를 하나의 단어로 통합하면 그것은 행복이다. 무엇이 행복인지 철학사에서 크게 두 개의 입장이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대립하고 있다.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학파이며, 다른 하나는 에피쿠로스학파이다.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위력을 떨치고 있는데, 그것은 행복을 쾌락이라고 간주한다. 행복에 관한 이런 사상을 쾌락주의라고 부른다. 쾌락주의자는 관능적 쾌락에 탐닉하는 사람으로부터 산속에서 고행하는 수행자에 이르기까지 정반대로 보일 정도로 다양한 형태로 살아간다. 쾌락에는 종류가 아주 많기 때문이다. 적극적 쾌락은 승리나 음주에서 오는 환희나 유쾌한 상태이며, 소극적 쾌락은 불안이나 고통의 부재에서 오는 덤덤한 마음 상태이다. 우리가 새해 결심처럼 목표를 높이 설정하면 달성에 실패하기 쉽고 실패에는 좌절의 고통이 따라온다. 에피쿠로스는 적극적 쾌락을 향유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목표를 낮추고 욕망을 줄여 아타락시아 즉 마음의 평정을 추구하는 인생 전략을 세웠다. 목표가 별것 없으면 실패할 일도 없고 그러면 당연히 좌절의 고통도 없을 것이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학파는 행복을 인간적 역량의 발휘라고 간주한다. 인간이 동물이나 식물과 다른 점은 독특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배우고 탐구하며 행동과 감정을 통제하는 지성 즉 이성의 역량이다. 이 능력을 누구나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것을 개발하지 않고 썩히며 사는데 그런 부류의 인생은 동물의 삶과 비슷하다. 어떤 사람은 계속 지성을 개발하고 활용하며 산다. 이런 삶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지만 지성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수록 인생은 더욱 행복하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확신한다.
무엇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어떻든 새해 결심은 궁극적으로는 행복의 가치를 추구하는 소망에서 나온다. 실패가 그런 노력에 자주 동반하더라도 우리가 행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돌아가더라도 가는 것이고, 늦더라도 아예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2024-01-11 [18:15]
-
[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진실은 어디 있나
유명 배우의 자살과 정치인의 피습사건으로 지난 연말부터 계속 어수선하다. 무성한 말과 소문은 진실을 난도질하고 침묵의 숲에 가둔다. 무엇이 진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세간의 조롱을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상처가 깊다. 아무리 억울해도 바람을 이길 재간이 없다. 버틴다고 진실이 밝혀진다는 보장은 없다.
미국의 유명 사전출판사 메리엄웹스터가 ‘진짜의’ ‘진품의’라는 의미의 ‘어센틱’(authentic)을 2023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메리엄웹스터는 단어 조회 수와 검색량 증가 정도 등을 토대로 매년 연말쯤에 ‘올해의 단어’를 선정하는데, ‘어센틱’의 검색은 이전에도 많았지만 지난해에는 1년 내내 전례 없이 높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를 보도한 AP통신에서는 ‘인공지능(AI)의 발전 속에 딥페이크(deepfake, AI를 활용해 인물의 이미지를 실제처럼 합성하는 기술)가 흥하고 객관적 사실, 진실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탈진실 시대의 양상이 반영된 결과’라고 했다.
메리엄웹스터의 소콜로프스키 편집장은 “우리는 2023년에 일종의 ‘진실성의 위기’(crisis of authenticity)를 목도하고 있다”면서 “학생이 진짜로 이 논문을 썼는지, 정치인이 실제로 이 발언을 했는지 믿을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이제 우리가 목격하는 것들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때때로 우리의 눈과 귀를 믿지 못한다”고 말했다.
챗GPT로 잘 알려진 생성형 AI는 명령어를 넣으면 동영상, 이미지, 그리고 음성파일까지 만들 수 있다. ‘~카더라’가 아니라 딥페이크를 통해 실제처럼 조작된 것들이 소셜미디어에 퍼지게 되면 허위조작 정보는 곧 진짜처럼 둔갑해 사실인 것처럼 확산된다.
딥페이크가 아니더라도 이미 거짓 정보는 차고 넘친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것도 한몫한다. 그동안 미디어는 불확실한 사회에서 그나마 믿을 만한 판단 기준을 제공할 것이라는 암묵적인 믿음이 있었다. 그마저도 이제는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이 명확하지 않다.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실패만 해도 그렇다. 엑스포를 유치하지 못한 게 문제가 아니라 결선까지 간 후 박빙의 순간을 예견한 시나리오가 문제였다. 부산 시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의 응원이 무색해져 버린 투표 결과를 보고 대한민국의 정보 수집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잘못된 정보로 희망회로를 돌린 것에 대한 사과는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다. “그래도 잘했다”는 말은 정부나 부산시가 아니라 부산 시민이 해야 하는 말이다.
엑스포가 아니더라도 도시 부산은 리뉴얼해야 한다. 2030엑스포 유치가 불발로 끝나자 우려했던 대로 북항재개발 2단계 사업계획 수립 용역도 중단되고, 북항 1단계 사업도 랜드마크 부지 개발 상황이 여전히 답보 상태다. 사업비 문제와 수익성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건축과 도시의 문제를 토지와 건물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면 수익성을 따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부동산 문제를 건축과 도시의 문제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물론 전혀 관련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건축과 도시의 문제는 편리, 안전, 성장은 물론 문화적 의미까지 포괄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부동산 가치로만 환산하게 되면 본래의 의미는 퇴색하고 건물이 우후죽순 들어서기 마련이다.
지난해 여름, 인문 무크지 〈아크〉 편집위원들과 함께 속초를 방문했다. 부산보다는 작은 항만도시지만 설악산을 배경으로 하는 속초는 그 나름의 아름다운 곳이라고 기억했다. 10여 년 만에 방문한 그곳은 항구 주변에 무분별하게 들어선 고층 아파트들이 자연 풍광을 망치고 있었다. 현지의 지역학자 말을 빌리자면 속초의 롤 모델이 해운대라고 하는데 눈앞에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겸손하지 않은 건축이 도시를 어떻게 망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올해는 미국과 러시아의 대통령 선거, 대만 총통 선거 등 무려 50여 국가에서 대선, 총선이 예정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열린다. 딥페이크가 퍼진 후 실시하는 첫 번째 선거다. 잘못된 정보를 가공해 제공하는 유튜버와 댓글부대로 인해 피로도가 높은데 딥페이크까지 가세하게 된다면 진실은 고사하고 분열과 증오가 난무할까 염려된다.
찰스 칼렙 콜튼은 진실의 가장 큰 친구는 시간이고, 진실의 가장 큰 적은 편견이며, 진실의 영원한 반려자는 겸손이라고 했다.
2024-01-04 [17:58]
-
[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모두의 미술관’을 향하여
최근 많은 문화예술기관들은 무장애 시설 환경개선과 함께 감상 콘텐츠 운영 등을 통해 모두가 함께하는 행복한 공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도 그에 동참하고 있다.
이색적인 판석과 푸른 잔디가 어우러진 클레이아크 미술관 산책로는 시각적으로는 아름답지만, 판석 사이의 유격과 고르지 못한 경사면으로 인해 노약자의 보행 및 휠체어와 유아차 이동 불편이 컸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돔하우스에서 큐빅하우스로 이어지는 약 280m 경사면의 판석 간 유격을 최소화하고 노면을 최대한 평탄화하는 공사를 시행했다. 이를 통해 좀 더 편안하게 모두가 편리하게 미술관 산책로를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무장애 전시 감상 콘텐츠 개발과 프로그램 운영도 추진 중이다. 올해 전시 감상을 위한 ‘수어 전시해설’ 영상과 시각장애인용 오디오 가이드를 제작하고 홈페이지와 미술관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배포했다. 미디어 콘텐츠 제작과 더불어 시청각 장애인의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12월에는 무장애 전시 감상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하였고, 내년에는 그것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 농아인연합회와 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를 통해 수요 조사를 진행했으며, 시각장애인 대상으로 먼저 운영했다.
이는 그저 형식적인 시혜성 행사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작품에 대한 좀 더 나은 이해와 즐거운 감상을 끌어낼 수 있도록 참여자 경험을 모니터링하고, 설문조사 등을 분석하여 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지속적인 연구를 해 나갈 예정이다. 원근, 모양, 질감, 색, 크기와 같은 시각적 정보를 포함한 해설 원고로 도슨트를 운영하는 한편, 만져서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을 선정해 촉각을 통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체험에는 작품 감상과 함께 시각 이외에 후각을 자극하는 조향 체험(룸 스프레이 만들기)과 촉각을 통한 도자 체험도 병행했다. 내년에는 레플리카(원작의 복제품)를 만져볼 수 있는 감상과 함께 다른 감각들을 환기시키는 프로그램을 더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인들은 오감이라고 부르는 감각 중 시각적 감각에 지나치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살고 있다. 학습과 업무 처리로부터 오락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시각적인 정보와 자극의 크기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사진과 영상, AR(증강현실), VR(가상현실) 등의 기술 발전은 이러한 경향을 앞으로 더 가속화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 감각의 불균형은 더욱 심화될 것이며, 이는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 양 측면 모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시각 이외의 감각들을 일깨우고 발달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현대미술에서도 시각 이외의 감각들, 즉 청각에 의존하는 사운드 아트, 촉각적 감각을 활용한 조각 등의 다채로운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은 2021년 ‘시시각각; 잊다있다’라는 전시에서 시각 예술이 지배하는 동시대 예술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비물질 조각의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수년에 걸친 기술적 연구를 통해 ‘보이지 않는 조각 시리즈’를 만든 송예슬 작가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 전시에는 ‘소리조각’ ‘온기조각’ ‘공기조각’ ‘냄새조각’ ‘생각조각’과 ‘보이지 않는 숲’ 등이 선보였다. 이는 시각에 의존하는 정형화된 기존의 관람 경험을 탈피해 촉각·후각·청각 등 다양한 감각을 통합해 관람할 수 있는 실험적인 뉴미디어 작품이다. 이를 통해 관람객들은 감각적 인식의 상대성과 다양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앞으로 국공립 공연장과 전시장에서는 매년 1회 이상 장애예술인의 공연과 전시들이 개최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6월 국회를 통과한 ‘문화예술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21일부터 시행되었다. 이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설치한 국공립 공연장, 전시장 등 총 769개 기관(2022년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 기준)은 연 1회 이상 장애예술인의 정기공연 및 전시를 개최해야 한다. ‘공연법’에 따라 국가와 지자체에 등록한 공연장, ‘박물관 및 미술관법’에 따라 등록한 국공립 미술관이 이에 해당한다. ‘장애인 문화시설 장애인 접근성 실태 조사’에 따르면, 예술인의 문화예술 행사 활동 횟수는 연 29.3회인 반면, 장애예술인의 경우 0.9회로 일반 예술인의 30분의 1에 불과했다.
앞으로도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은 단순한 장애인 프로그램을 뛰어넘어 다양한 감각 경험을 환기하고 발달시키는 작품들을 소개하고, 연계 프로그램들을 개발할 뿐 아니라, 장애예술인 초청 전시 등을 통해 ‘모두의 미술관’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2023-12-28 [17:56]
-
[백재파의 생각+] 후속 세대를 위한 아름다운 퇴장
최근 쿠팡플레이의 ‘대학 전쟁’이란 예능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간단히 설명하면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연세대, 고려대 이른바 ‘서카포연고’ 학생들이 팀으로 나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승부를 겨뤄 우승 대학을 가리는 프로그램이다.
‘더 지니어스’, ‘문제적 남자’와 같이 문제를 푸는 프로그램을 좋아해 보기 시작하였는데, 참가자들이 문제를 푸는 과정을 보는 재미도 재미이지만 기성세대와는 다른 젊은 세대, 특히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후속 세대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어서 더욱 흥미롭게 보았다.
먼저 우리 후속 세대들의 첫 만남을 살펴보자. 1화에서는 각 대학 참가자들이 처음 만나 인사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기성세대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이름과 자기소개를 한 후 어김없이 “몇 학번이에요(몇 살이에요)”라는 질문을 했다. 기성세대라면 여기서 나이에 따라 서열이 정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들은 기성세대와 달랐다.
서울대 학생들은 “어차피 계속 같이 할 건데 말 편하게 하자”며 말을 놓았고, 카이스트의 경우 가장 나이가 많은 학생이 “존댓말을 쓰면 여러모로 불편하니까 지금부터 반말하자”고 제안해 서로 말을 놓았다. 이외 다른 대학들도 그 과정이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모두가 존댓말 없이 서로 편하게 말을 놓고 있었다.
나이에 따른 서열을 없애고 말을 편하게 해서일까. 그들은 문제가 주어질 때마다 자유롭게 그리고 때로는 치열하게 자신의 의견을 제안하고 논의하며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서열에 따라 누군가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 수직적 구조가 아닌 모두가 같은 위치에서 토론하고 합의하여 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수평적 구조를 만든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 하버드대를 대하는 자세도 인상적이었다. 포항공대가 탈락하고 그 자리에 하버드대 팀이 들어오게 되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 명문대학의 등장에 기가 눌릴 법도 하지만 우리의 후속 세대 학생들은 전혀 주눅들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의 주입식 교육 힘’으로 그들을 이기겠다며 전의를 불태운다.
역사적 맥락에서 기성세대는 전쟁과 산업화를 거쳤고 이 과정에서 선진국의 원조를 받는 가난한 나라의 국민이었다. 따라서 국제 사회에서 어딘지 모르게 자신감이 부족했으며 학문적, 문화적 사대주의에 빠진 모습도 일부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후속 세대는 어떠한가. 원조를 받는 나라가 아닌 도움을 주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선진국의 학문과 문화를 그대로 수입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선진국에 진출하여 그들보다 더 큰 성취를 이루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 후속 세대들은 국제 사회에서 주눅들지 않고 그들과 당당히 경쟁하고 또 세계를 선도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들이 이끌어 나갈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가 벌써 기다려진다. 그러나 행복한 상상도 잠시. 최근 정치권에서 들려오는 기득권 세력과 관련한 뉴스를 보면 과연 우리의 후속 세대가 이 땅에 설자리는 있는지 우려돼 금세 우울해진다.
인요한 전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이준석 전 대표에게 단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준석이’ 운운한 사건,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어린 놈이’라고 비난한 사건들을 보면 우리 정치권에 나이 서열 문화가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나마 나이 서열로 젊은 세대를 깎아내리는 것은 양반이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젊은 청년 정치인을 발탁해 2030 청년층의 표심을 사는 데 소모하고 선거가 끝나면 청년 정치인과 청년을 위한 공약을 토사구팽하기 일쑤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우리 후속 세대는 사회를 이끌기는커녕 목소리를 내는 일조차 힘든 형편에 처해 있다.
더 무서운 것은 여야 할 것 없이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기득권 유지를 위해 필요한 일은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 권력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잡고 유지하는 것, 권력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이들의 모습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빅 브라더 당과 다른 점이 없다.
AI를 필두로 한 첨단 과학 기술의 발달로 매일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는 21세기, 기성세대가 기득권을 잡고서 후속 세대가 올라올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우리의 미래가 없다. 격변하는 시대 우리나라가 세계와 경쟁하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젊은 후속 세대가 사회의 주축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성세대는 구태 정치를 비판하며 정치권에 입성한 젊은 날을 스스로 되돌아보고, 유능하고 젊은 후속 세대를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는 아름다운 퇴장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2023-12-14 [18:08]
-
[배학수의 문화풍경] 철학적 계절, 12월
한 해가 저물어 가는 12월은 기후적 의미뿐 아니라 철학적 의미에서도 독특한 달이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낮은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는 12월의 물리적 특성은 명상과 독서를 위한 자연스러운 환경을 조성한다. 그리고 12월은 한 해가 끝나고 새로운 해가 시작하는 변환기이다. 시간의 전환점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실존적 평가를 내리며 일반적 삶의 조건을 성찰한다.
12월은 인간 유한성에 대한 은유로 볼 수 있다. 연말은 종말로 나아가는 삶의 진행을 반영하기에 실존적 질문을 불가피하게 촉발한다. 12월에 사람들은 지나간 한 해를 되돌아보고 다가올 한 해를 기대하면서, 마르틴 하이데거의 ‘죽음을 향한 존재(Sein-zum-Tode)’ 개념과 유사한 과정에 참여한다. 이 개념은 인간의 삶이 진행하다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진정한 삶은 늘 죽음과 마주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보통 사람들은 삶과 죽음을 분리하여 삶이 끝나면 죽음이 온다고 생각하는 데 반해, 하이데거는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삶 즉 존재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죽음이 인간 존재의 필연적 조건이므로, 죽음은 존재의 가능성이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단순한 삶과 존재를 구별한다.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도 인간은 살기는 살겠지만, 그것은 생활일 뿐 존재는 아니다.
겨울·연말이라는 자연적 시간적 조건
사색과 성찰 위한 완벽한 무대 제공
삶의 가치와 중요성 다시 돌아볼 기회
죽음이 존재의 가능성이라는 점을 1952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살다’에서도 우리는 발견한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시청에서 거의 30년을 근속한 공무원이다. 그는 반복적 일상 속에서 중요한 개인적인 성취나 기쁨도 전혀 없이 단조롭고 성취감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와타나베의 삶에 대해 영화의 내레이션은 이렇게 평가한다. “그는 시간만 때우고 있을 뿐이니까. 그는 산 적이 없다. 그래서 그는 살아있다고 할 수 없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단순한 생활을 넘어서는 것이다. 와타나베의 삶은 말기 암 진단 때문에 커다란 전환을 이루게 된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성찰의 상태 즉 하이데거의 ‘죽음을 향한 존재’로 자신을 몰아간다. 위암 진단은 유한성을 일깨우는 실존적 경고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와타나베의 경우처럼 말기 암 진단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실존적 순간은 매년 찾아온다. 그때는 12월이다. 한 해가 끝나는 12월에 우리는 종말과 마주 서서 삶의 가치와 목적에 의문을 제기한다.
12월의 성찰 행위는 삶의 의미를 찾는 보편적인 탐색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빅토르 프랑클의 ‘로고테라피’는 인간의 주된 행동 동력이 프로이트가 제안한 쾌락이나 아들러가 주장한 권력이 아니라, 우리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가정한다. 인간은 인생에서 쾌락이나 권력이 아니라 의미를 궁극적으로 추구한다는 것이다. 12월은 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 탐색하는 활동에 독특한 기회를 제공한다. 연말은 사람들이 당면한 일상의 재촉에서 벗어나 넓은 맥락에서 자신의 삶을 평가하고, 자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년에 자신의 행동을 이러한 가치에 어떻게 맞출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는 시기이다.
12월의 성찰적인 성격은 종종 개인적인 변화와 결심을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한다. 새해 결심은 이러한 현상에 대한 증거이다. 개인이 바람직하지 않은 특성이나 행동을 바꾸거나 삶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결심하는 행태는 본질적으로 철학적 활동이다. 이런 활동은 철학자만 하는 것은 아니다. 12월이 되면 누구나 실존적 성찰에 참여한다.
독서와 사색뿐 아니라 여행도 철학적 활동이다. 2007년 숀 펜 감독의 영화 ‘황야 속으로’는 여행을 통한 철학적 사색의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1990년 미국의 명문 에모리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크리스토퍼 맥캔들리스는 자신의 가치를 탐색하기 위해 혼자서 정처 없이 여행을 떠난다. 도중에 그는 여러 사람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목격하고, 자신의 이상을 확인하며, 그들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가치관을 변화시킨다. 결국 그는 행복이란 완전한 자유라고 확신하고 문명으로 오염되지 않은 알래스카의 황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처음에 그는 산과 강에서 순수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사회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완전한 자유를 향유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외로움이 증가하면서 가족과 여행 중에 만난 소중한 사람들이 자꾸 머리에 떠오른다. 몇 주 후 행복은 타인과 공유해야 진짜가 된다는 점을 깨닫고 그는 알래스카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려고 결심한다.
12월은 철학적 계절이다. 겨울의 자연적 조건과 연말의 독특한 위치는 사색을 위한 완벽한 무대를 마련한다. 이러한 성찰적 성격은 12월을 단순한 시간적 표시에서 철학적 중요성의 시기로 끌어올린다.
2023-11-30 [18:15]
-
[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부산은 넘버원(No.1)
이념도 세대도 지역도 뛰어넘었다. 부산시는 물론 정부와 재계, 그리고 문화계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 활동을 하고 있다. 부산 시민단체들은 지난 21일 부산시와 시민들과 함께 ‘2030부산월드엑스포(세계박람회) 유치 성공 출정식’을 개최했다. 부산 기업인들도 27일 프랑스 파리로 간다고 한다. 장인화 부산상공의회소 회장은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임무는 다음 주 파리에서 있을 BIE(국제박람회기구) 총회장에서 2030월드엑스포 개최지로 부산의 이름이 울려 퍼지도록 하는 것”이라 했다.
이렇게 하나 된 마음을 간절하게 보여준 적이 있었던가. 괜히 울컥하며 절박감이 밀려온다. 결전을 기다리는 선수처럼, 합격 발표를 기다리는 수험생처럼 초조감과 기대감이 교차한다. 매년 하는 행사가 아니라 5년마다 하는 것이기에 더하다. 더구나 1851년 시작한 이래 대한민국은 세계(등록)엑스포를 한 번도 열지 못했다.
세계박람회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이벤트로 불린다. 올림픽과 월드컵이 체육을 주제로 한다면 세계박람회는 기간도 다른 행사에 비해 길 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경제, 과학, 문화적 성과를 선보이는 자리다. 개최국은 도시 재정비는 물론 경제, 관광, 마이스, 문화적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다.
태평양전쟁의 주축이자 패전 후 피폐해진 일본의 나쁜 이미지를 씻고 일본을 한 단계 성장시켰던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 중국 정부의 대규모 투자와 지원을 바탕으로 13조 원이 넘는 경제효과를 누린 2010년 상하이엑스포는 그 대표적인 예다. 상하이엑스포는 역대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참여했으며 상하이가 세계 도시로 성장하고 위상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일본 오사카는 다시 한번 그때의 영광을 기대하면서 2025년 엑스포를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부산이 2030년 엑스포를 개최하게 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2030부산세계엑스포는 육지와 수면을 포함해 약 340만㎡에 달하는 북항 일대에서 열릴 예정이다. 부산시는 2030부산세계엑스포 유치를 통해 45조 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25만 명 이상의 고용창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국가 위상 제고와 국가균형발전을 이룰 시금석으로 보기도 한다. 이런 파급 효과는 부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건축에 있어서도 많은 기대를 하게 된다. 엑스포 유치 시 기반 시설뿐 아니라 참가국들의 전시관 설계와 건축 및 철거까지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 현지의 규정과 법에 맞게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전(1993년), 여수(2012년)에서 열렸던 전문(인정)엑스포는 참가국이 국가관을 건축할 수 없고 개최국이 지어서 참가국들에게 유료 또는 무료로 부스를 임대하는데, 전시 면적은 25ha 미만이다. 전시 기간도 3주에서 3개월로 세계(등록)엑스포에 비해 짧다. 그에 비해 부산이 도전하고 있는 세계(등록)엑스포는 전시 면적에 제한이 없고 참가국이 자국 경비로 전시관을 만든다. 그러다 보니 국가 전시장 자체가 이미 각국 대표 건축가들의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주거나 사무 공간이 아니라 전시와 홍보를 위한 공간이기에 건축가들은 유연하고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 나라별 국가 전시장을 못 짓는 경우 국내 건축가들에게 배분한다. 각국 전시장을 통해 국내 건축가들의 작품 세계를 알리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 때 한국관은 고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했다. 거북선 등 모양을 지붕에 얹은 그의 작품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세계엑스포를 가장 많이 연 도시는 파리다. 무려 6번이나 치렀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시설을 세우고 도시를 정비했다. 에펠탑은 프랑스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며 열린 1889년 파리박람회 때 세워졌다. 물론 당시는 흉물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지금 에펠탑은 파리의 자랑이자 상징이다.
부산시도 엑스포를 준비하기 위해 도시건축통합계획을 수립하고 입체적인 도시로 재구성하겠다고 ‘2030부산 건축-도시 디자인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부산은 6·25전쟁 때 피란민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다양성과 포용성, 그리고 확장성을 만들어 왔다. 그 이면에 전쟁만큼 비참한 것은 없다는 ‘평화’의 정서가 깔려 있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평화를 염원하는 피란수도 부산이 쌓아온 저력의 담대함이 요구된다.
나흘 남았다. 오는 28일 BIE 총회에서 182개 회원국의 투표로 가려진다. 투표 후 결과는 20분 만에 판가름 난다. 3분의 2 이상의 표를 얻는 도시가 ‘2030월드엑스포’ 개최지로 낙점된다. 부산은 넘버원이다.
2023-11-23 [1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