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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의 포커스온] 치매 환자 돌봄 인프라 확충해야
지난해 12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24만 명으로 전체 인구 5122만 명의 20%를 돌파하며 대한민국은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노인 인구 증가에 따라 노인성 질환인 치매 환자도 계속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3월 발표한 ‘2023년 치매 역학조사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치매 노인 환자 수는 올해 97만 명이고, 내년엔 100만 명, 2044년엔 2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정됐다.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를 앓는 셈이다. 이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부산의 올해 65세 이상 추정 치매 환자는 7만 명에 달한다.
치매는 기억력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판단력, 언어 능력, 행동 조절 등 전반적인 인지 기능이 악화하는 질환이다. 일상생활이 쉽지 않아 타인의 도움이 절실하다. 보건복지부 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치매 환자와 같이 살지 않는 가족도 주당 평균 18시간을 돌봄에 할애했다고 한다. 환자 1인당 연간 관리 비용은 지역사회에 거주할 때는 1733만 원, 시설·병원에 머물 때는 3138만 원에 달했다. 가족들이 경제적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급증하는 치매 환자로 인해 ‘간병 지옥’ ‘돌봄 지옥’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치매는 환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의 삶도 피폐하게 만든다. 치매 환자 돌봄이 여전히 환자 자신과 가정의 책임으로 남겨지기 때문이다. 치매 환자로 인한 사회 전체적인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수다. 우선 치매 검진과 예방, 치매 조기 발견, 환자 가족 지원 등을 담당하는 지역 치매 관리 기관인 전국 256곳의 치매안심센터 역할이 중요하다. 부산 지역 16개 구·군에 위치한 치매안심센터는 보건소가 운영을 맡고 있으며 간호사, 작업치료사,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 등 전문 인력이 상주한다. 치매안심센터는 치매 조기 진단 부문에서는 이전보다 성과를 내고 있지만, 조기 선별 이후 치료와 돌봄서비스로 연계하는 데는 미흡하다고 한다. 센터가 보건·의료·복지 등 지역사회 돌봄 체계와 더욱 긴밀한 협력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 이런 가운데 올해 부산시 치매안심센터 운영 지원 예산은 13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3억 원이 감소해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산시는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부산 전역에 총 40개의 치매안심마을을 선정했다. 치매안심마을은 치매 조기 검진, 치매 인식 개선 교육, 치매 예방 교실, 인지 강화 프로그램 등을 진행한다. 치매안심마을은 치매에 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을 위한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치매 환자와 가족들에게 좀 더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 확충이 필요하다. 네덜란드, 영국 등 고령화 시대를 먼저 경험한 국가들은 시설 중심 관리에서 벗어나 개인주택이나 치매 마을 건설을 통한 치매 환자의 자립적인 생활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치매 노인도 지역 사회에서 함께 늙어갈 수 있도록 ‘AIP’(Aging In Place·내 거주지에서 나이 들기) 기반을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08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치매마을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북쪽에 위치한 호그벡 마을이다. 치매 환자들은 이곳에서 거주자로 대우를 받는다. 국가 지원을 받아 200여 명의 중증 치매 환자들이 거주한다. 이들은 슈퍼, 음식점, 미용실, 극장 등 편의시설을 이용하고 마을을 자유롭게 활보한다. 250여 명의 요양 전문 간호사, 간병인, 의사, 자원봉사자들은 마을 주민으로 위장해 레스토랑 직원, 수리공, 산책하는 사람, 텃밭지도사 등 역할을 하고 함께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치매 환자를 돌본다. 호그벡 마을의 성공 요인은 치매 환자도 생활 능력을 유지해 삶의 질을 지키는 데 있다. 이상적인 모델인데, 이를 지역에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급속한 고령화로 치매 환자는 갈수록 늘 것으로 보여 효율적인 치매 관리는 국가와 지자체의 최대 과제 중 하나다. 치매안심센터와 치매안심마을, 치매전문 주간보호센터 등 인프라를 확충하고, 장기요양 재가서비스와 돌봄 공백 지원을 위한 장기요양 가족휴가제 등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정부도 2017년 ‘치매국가책임제’를 선언한 만큼, 치매 환자 돌봄을 가족에게만 맡기지 말고, 치매 환자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치매를 고령으로 인한 필연적인 질환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도 필요하다. 일본은 치매라는 용어 대신 ‘인지증’(認知症)이라는 표현을 쓴다. 말 그대로 단지 인지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치매 노인이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하나라는 인식 확산이 절실하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2025-05-06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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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의 포커스온] 지역문화사를 축적하자
“부산 문화예술계의 사표로 기릴 만한 예술인을 선정해 그들이 남긴 방대한 예술 작업의 결과를 집대성하고 문화사적 위치를 재정립하겠다.”
부산문화재단이 2020년 7월 ‘부산 예술인 아카이빙 사업’인 ‘부산의 삶, 예술로 기억하다’를 시작하면서 밝힌 취지다. 아카이빙은 ‘영구적인 가치를 위해 보존하는 인간 활동의 기록물’(아카이브)을 수집, 평가, 선별, 분류, 정리, 기술, 보존하는 과정을 말한다.
재단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부산 예술인 아카이빙 사업’을 통해 해마다 작고 예술인과 원로 예술인을 2~3명씩 선정해 순차적으로 집중 조명해 왔다. 윤정규 소설가, 허영길 연극 연출가, 황무봉 전통 무용가, 이상근 작곡가, 김석출 동해안별신굿 보유자, 송혜수 화가, 최민식 사진가, 이규정 소설가, 오태균 지휘자, 김종식 화가, 김한순 민속예술인 등 작고 예술인과 제갈삼 피아니스트, 허만하 시인, 조숙자 무용가 등 원로 예술인이 대상이었다. 당시 부산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예술인 상당수가 포함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모를 통해 선발된 아카이빙 연구팀들은 해당 예술인의 저서, 악보, 공연 팸플릿, 언론보도 기사, 사진, 동영상, 평론, 증언 자료 등을 폭넓게 수집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펼쳤다.
그 결과, 선정된 예술인들의 생애와 작품세계 등을 담은 책자가 연차적으로 나왔다. 재단은 시민이나 연구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게 전자아카이빙을 통해 전자책(e-book) 형태로도 등록했다. 또 연구 결과물은 전시, 학술 세미나, 축제 형태 프로그램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됐다. 이러한 아카이빙의 결과물은 부산을 대표하는 예술인들의 치열한 예술혼을 복원하고 지역의 역사·사회·문화 연구의 기초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를 통해 지역 문화예술사를 발전적으로 계승·축적할 수 있다.
재단은 올해부터 ‘부산 예술인 아카이빙’ 관련 2차 사업에 착수해 앞으로 5년간 예술인 10여 명에 대한 조명 작업에 나선다. 이번에도 예술인 선정 기준에 대한 객관성 확보가 중요하다. 지역 문화사에서 빼어난 업적을 남기고, 지역 문화예술의 고유성과 문화적 가치를 드높인 예술인을 선별할 필요가 있다. 재단은 책자 형태보다는 예술인 영상 채록을 통해 생애와 작품 세계 등을 담아 재단 유튜브 채널인 ‘컬쳐튜브’에 올릴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부산 지역 박물관과 미술관 등 일부 문화기관은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라 기록물의 활용과 확산을 위해 아카이빙 사업을 펼치고 있다. 부산근현대역사관은 유물 수집 외에도 기록물을 활용해 전시, 도록 발간,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아카이브 홈페이지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도 소장품에 대한 해제, 도록 발간, 디지털화 작업 등을 통해 체계적인 아카이빙 사업을 진행한다. 부산문화재단도 2009년 출범 초기부터 온라인 아카이브를 운영하면서 지역의 문화예술 성과를 축적하고 있다. 그러나 각 기관이 수행하는 문화예술 아카이빙 성과에 대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열람하거나 확인할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다. 서울에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기록원이 국립국악원, 국립극단, 국립무형유산원, 국립극장,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등 공연예술 관련 국립기관과 연계해 아카이빙 결과를 통합 제공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부산도 여러 기관의 아카이빙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가공해 제공하는 ‘온라인 아카이빙 종합 플랫폼’이 필요하다.
문화예술 아카이빙 관련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문학 장르의 경우, 2028년 개관 예정인 부산문학관이 부산문학사의 체계적 아카이빙을 수행할 콘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면 공연예술 등 타 장르는 아카이브 자료를 수집, 관리, 전시, 활용할 수 있는 종합적인 오프라인 공간이 부족한 실정이다. 가칭 ‘부산예술기록관’을 설립해 지역 예술 사료의 유실을 막아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부산예술기록관이 지역 예술 자원들의 체계적인 수립, 관리 기능을 수행하고 전시, 교육,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는 얘기다.
기관별로 추진하는 아카이빙 성과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사용자들에게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부산시가 주도적으로 나서 문화예술 아카이빙 총괄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대구시의 경우, 문화체육관광국 문화유산과에 문화예술기록팀을 설치해 문화예술 아카이빙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문화예술 아카이빙 사업은 비용 대비 즉각적인 효과를 내는 사업은 아니다. 꾸준하고 묵묵히 실행해야 하는 사업이다. 지역 문화예술 자원 기록 활성화를 통해 지역문화사를 복원하고 축적한다는 점에서 이 사업은 지속돼야 한다.
2025-04-03 [1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