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예고된 파국
서정아 소설가
삶에 축적되는 작은 문제들
무심하게 흘려보내는 순간
파국은 이미 시작되고 있어
싱크대 배수구에 물 내려가는 게 좀 시원찮다 싶었는데 한동안 집안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방치해 두었더니 어느 순간 꽉 막혀 버렸다. 난감하고 당황스러웠다. 계속 그렇게 방치해두면 언젠가 문제가 터질 거란 예상을 못한 건 아니었지만 그 순간이 그렇게 빨리 닥쳐올 줄은 몰랐다. 주말이어서 배관업체에 연락이 어려울 것 같기도 했고 일단은 하는 데까지 해보자 싶어서 뜨거운 물도 부어보고 집에 있던 플라스틱 와이어로 이물질을 빼내려고도 해보았지만 도무지 진전이 없었다. 아무래도 아래쪽 배관이 막힌 것 같아 싱크대 아래 가림판을 열고 배관 연결 부위를 풀어 호스의 끝을 대야에 갖다 댔다. 호스의 중간 부분이 잔뜩 막힌 건지 싱크대에 고인 물은 여전히 흘러나오지 않았다. 한참동안 막막한 마음으로 배관 호스를 이리저리 움직여 보는데 호스 끝에서 갑자기 왈칵 하고 갈색 덩어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싱크대에 고여 있던 물이 호스를 통해 주르륵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받쳐둔 대야는 너무 작았고, 뭘 어찌해볼 틈도 없이 대야 밖으로 흘러넘친 더러운 물로 바닥이 흥건하게 젖어버렸다. 얼른 수습해 보았지만 오랫동안 축적되어 있다가 한 순간에 밖으로 분출된 이물질의 악취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작은 이물질들이 쌓이고 쌓여 커다란 덩어리로 굳어버린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사건이 터진 이후에야 비로소 원인을 살핀다. 파국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데 우리가 그 암시들을 민감하게 감지하지 못하고 놓칠 뿐이다. 그러니까 진짜 문제는 배수구가 막혀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는 결과론적인 사건 하나가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축적되었던, 매우 사소하고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이다.
얼마 전에 장 뤽 고다르의 영화 〈경멸〉을 보았다. 극작가인 폴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시나리오 각본 일을 맡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자본가인 제작자의 요구에 따라 조금씩 타협해가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 중 하나로, 폴이 자신의 아내 카미유를 제작자의 자동차에 태워 보내는 장면이 있는데 그 이후로 카미유는 폴을 ‘경멸’한다고 말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과연 카미유가 그 일 하나만으로 폴을 경멸하게 되었을까. 관계의 파국은 단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 한 번의 실망으로 누군가를 경멸하게 되지는 않는다. 누적된 사건들, 침전된 감정들,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였다가 어느 순간 터져버린다. 싱크대가 완전히 막혀버렸던 이유가, 커다란 음식물 하나를 갑자기 버려서가 아니라 매일매일 조금씩 흘려보냈던 작은 이물질들이 뭉쳐졌기 때문이었던 것처럼.
그렇지만 우리는 대체로 파국의 마지막 순간만을 기억한다. 막혔다가 터져버린 물이 바닥을 흥건히 적셔 난장판이 되어버린 장면만을 선명하게 기억할 뿐, 수백 번의 설거지 속에서 무심코 흘려보낸 기름 한 방울들과 작은 음식물 찌꺼기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폴이 카미유를 제작자의 차에 태워 보낸 일은 ‘경멸’의 단 한 가지 원인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진행되고 있던 마음의 균열이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에 불과하다.
막힌 배관을 뚫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지만 그보다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은, 배관이 완전히 막히기 전에 평소와 달라진 사소한 변화들을 알아채는 일일 것이다. 싱크대 배수구의 물이 예전보다 조금씩 느리게 내려갈 때, 누군가와의 대화 사이에 침묵이 조금 길어질 때, 상대의 눈빛에 작은 슬픔이 담겨 있을 때, 파국은 그런 미세한 신호 속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배관에 하나둘 쌓인 이물질은 언젠가 커다란 덩어리가 되어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그런 덩어리가 싱크대 아래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